돌멩이
강 소 천
돌멩이 (1)
■ 경구의 혼자 생각
돌멩이 - 큰 돌멩이, 작은 돌멩이, 둥근 돌멩이, 넓적한 돌멩이, 흰 돌멩이, 검은 돌멩이, 노란 돌멩이,알록달록한 돌멩이.
돌멩이 - 돌멩이는 어디든지 있다.
산에도 있고 들에도 있다.
길바닥에도 있고 냇가에도 있다.
땅 위에도 있고, 땅 속에도 있다.
돌멩이 - 둥근 돌멩이, 새알 같은 돌멩이, 새하얀 돌멩이, 달걀 같은 돌멩이, 달걀에 귀가 없는 것같이, 돌멩이에도 귀는 없다.
달걀에 눈이 없는 것같이, 돌멩이에도 눈은 없다.
달걀에 입이 없는 것같이 돌멩이에도 입은 없다.
달걀에 발이 없는 것같이 돌멩이에도 손과 발은 없다.
달걀 - 달걀은 움직이지는 않아도 죽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돌멩이 - 돌멩이는 달걀처럼 산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죽은 것도 같지 않다.
여름 날 나는 냇가에 나가 돌멩이를 하나하나 만져 본다.
돌멩이는 따뜻하다.
금방 낳은 달걀처럼 따뜻하다.
돌멩이도 산 것인지 모른다.
돌멩이도 마음을 가졌는지 모른다.
돌멩이도 생각할 줄 아는지 모른다.
나는 돌멩이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여 본다.
커다란 돌멩이 옆에 놓여 있는 조그만 돌멩이를 볼때, 나는 그 커다란 돌멩이가 어쩐지 아빠 돌멩이나 엄마 돌멩이 같아 보이고, 조그만 돌멩이가 어쩐지 아기 돌멩이들만 같아 보인다.
여름날이면 냇가에 수많은 아이들이 나와 돌멩이를 주워 가지고 놀지만 나처럼 돌멩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언제인가 나는 냇가에 빨래하러 나온 귀순이에게 이런 말을 물어본 일이 있었다.
"귀순아! 너 이 큰 돌멩이 옆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나니?"
"어떤 생각이라니?"
"그래, 아무런 생각도 안 난단 말이야?"
"글세 어떤 생각이 날까?
내 이제 생각해 봐서 생각이 나면 말하지, 아직 아무런 생각도 안 나니까, 호호호 …"
"아, 무얼 생각해 볼 게 있담?
얼른 보자, 생각나는 게 없단 말이냐?"
"없어, 없어. 몰라, 몰라. 난 빨래할 테야 …"
이런 대답은 귀순이만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냇가에 나와 앉아 수많은 돌멩이를 만져 보기도 하고 한 개 한 개 돌멩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도 한다.
돌멩이 - 나는 돌멩이와 친하고 싶다.
나는 돌멩이와 얘기하고 싶다.
■ 돌멩이의 이야기
나는 냇가의 한 개의 커다란 돌멩이다. 들은 이야기, 본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많지만, 내게는 입이 없다.
내게 만일 입이 있다면, 나는 늘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경구라는 아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게다.
그저 나는 언제나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고만 있다.
언제 내가 말할 수 있게 된다면, 한 번 이렇게 말해 보련만 - 우리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는 아주 딴판이다.
물론 짐승이나 새들과도 같지 않다.
첫째로 우리는 사람들처럼 옷을 입지 않는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들처럼 밥이나 떡이나 과자나 과일 같은 것을 먹지도 않는다.
셋째로 우리에게는 집이 없다. 우리는 그저 이 곳서 저 곳으로 옮겨지는 대로 가서 산다. 여기저기 걸어다니지도 않는다.
우리는 열이나 스물 이상, 더 많은 셈을 셀 줄 모르니까, 이 냇가에 우리의 일가 친척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아마 모르리라.
더구나, 한 해 여름 장마를 한 번 치르고 난 뒤에는, 우리의 동무들이 수없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그 대신 또 다른 동무들이 우리 곁에 와 살게 된다.
내가 이 냇가에 온 지도 벌써 여러 해 되지만, 나도 본시 여기서 나지는 않았다. 내 고향은 본시 깊은 산골이다.
고향 - 사람들은 한 해 , 두 해만 다른 곳에 가 살아도 고향이 그립다고들 하더라.
그러나 한 번 떠난 후 다시 고향에 가 보지 못한 나야, 고향이 그리우면 얼마나 그리울 것이냐.
아아, 지금 내 고향은 몰라보게 변하였으리라.
나는 벌써 고향으로 가는 길을 잊은 지 오래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내 부모 동생들의 얼굴을 잊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어떠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될는지.
그렇지만 그걸 누가 알 수 있으랴?
꼭 만나리라 믿을 수도 없는 일이다.
지금 나는 단 홀몸이다.
단 하나밖에 없던 내 아들 차돌이까지도 얼마전에 잃어버렸다.
나는 내 나이 지금 몇 살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냇가에서 내가 제일 나이 많으리라.
내 나이 어렸을 때 - 그 때는 참 옛날이다.
우리 할머니는 어린 나를 안고 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가을 볕이 따스하다.
졸음이 온다. 곁에 있는 아이 놈들은 다 자나 보다.
오늘은 아무도 냇가에 나오지 않는구나.
사방이 조용하다.
이 날이면 나는 곧잘 차돌이 꿈을 꾼다.
차돌이 - 나는 차돌이가 몹시 그립다.
"사랑하는 내 아들 차돌아!"
불러 보고 싶은 날이다.
그러나, 차돌이는 내가 부른대도 듣지 못하리라.
차돌이는 앞마을 영이네 집에 가 살고 있다.
영이 할아버지 쌈지 속에 들어가 살고 있는 내 아들 차돌이가 나는 그립다.
지난 여름, 나는 차돌이를 만났었다.
차돌이 - 내가 지금 내 아들을 차돌이라고 부르지만, 지금 내 아들 이름은 차돌이가 아니다.
지금 내 아들 이름은 부싯돌이다.
사람들이 부르는 내 아들의 이름이다.
부싯돌 - 그러나, 내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는다.
차돌이 - 내 아들의 이름은 언제나 차돌이다.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어느 여름 날 이 마을에 사는 남이하고 영이가 이 냇가에 와서 돌멩이를 주워가지고 놀다가, 영이가 그 만 내 아들 차돌이를 쥐더니,
"남이야! 이 돌멩이 참 예쁘지?"
"참!"
"이거 우리 할아버지 갖다 드릴까?"
"할아버지가 돌멩이는 해서 뭘하게?"
"부싯돌 하지, 부싯돌 …"
"참, 그거 부싯돌 했으면 좋겠다."
이리하여 내 아들 차돌이는 그만 영이의 손에 잡혀 영이네 집에 가게 되었다.
여름마다 나는 영이 할아버지가 이 냇가에 나오기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지난 여름, 영이 할아버지가 기다란 담뱃대를 가지고 이 강변에 왔을 때, 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쌈지 속에서 영이 할아버지가 내 아들을 꺼내었을 때, 나는 얼른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차돌이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아, 또 눈물이 난다.
그 때 차돌이와 나는 오래간만에 만났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했다.
영이 할아버지는 차돌이와 나 사이를 영 모르는 모양이었다.
담뱃불을 붙이자 영이 할아버지는 내 아들 차돌이를 다시 쌈지 속에 넣어 버리고 말았다.
아아, 벌써 해가 지나 보다.
벌써 어둠이 오나 보다.
벌써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하나 보다.
오늘 밤도 어젯밤처럼 달이 밝으리라.
오늘 밤은 차돌이가 그리워서 어떻게 잠이 드나?
귀뚜라미는 왜 저리도 몹시 우느냐.
"내 아들 차돌아, 쌈지 속에서나마 편히 잠들거라."
날씨가 이리 따뜻한 것을 보니 아마 또 봄이 왔나 보다.
음산하던 가을이 간 후에, 춥던 겨울이 간 후에 오는 것은 언제나 봄인가 보다.
다 죽은 줄 알았던 나뭇가지에 눈이 트나 보다.
다 죽은 줄 알았던 금잔디가 다시 파래지기 시작하나 보다.
싹이 트나 보다. 눈이 트나 보다. 잎이 피나 보다.
지금은 싹트는 때, 지금은 눈트는 때, 지금은 잎 피는 때 …
아아, 나는 갑갑하다.
아아, 나는 답답하다.
나는 왜 돌멩이가 되었나?
돌멩이는 왜 싹트지 못하나? 돌멩이는 왜 눈트지 못하나?
돌멩이는 왜 잎 피지 못하나?
돌멩이 - 몇 백 년 봄을 맞이해도 싹 나지 않고, 눈 트지 않고, 잎 피지 않는 돌멩이.
나 - 나는 이런 커다란 돌멩이가 되기보다 조그만 한 개의 밀알이 되고 싶다.
한 개의 달걀이나 새알이 되고 싶다.
한 개의 옥수수알이나, 감자알이 되어 보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이 냇가에 굴러 다니는 아무 쓸데없는 물건인가 보다.
누가 나를 들어다 영이네 집 토방돌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
는 한 개의 쓸 수 있는 물건이 되어 보고 싶다.
벌써 버들가지에 물이 오른가 보다.
아이들의 버들피리 소리가 들려 온다.
확실히 봄이 왔구나, 봄이.
아아, 나는 한 가지의 버들이라도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나는 노래할 수 있으리라.
나는 경구와 친할 수 있으리라.
봄이다.
나도 눈 트고 싶다. 나도 자라고 싶다.
아아, 갑갑하다. 아아 답답하다.
나는 돌멩이다.
■ 돌멩이의 이야기
오늘은 경구가 오는 날이라고 계성이와 진수, 영이는 몇 차례나 이 냇가에 나와 앉아 경구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구는 오지 않는다.
나는 어쩐지 서운한 생각이 난다. 영영 못 만나 볼 내 아들 차돌이 생각도 난다.
강을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
옳아! 낼모레가 희성이와 귀순이의 결혼식 날이라지?
벌써 해가 서산으로 꼴깍 숨어 버렸다.
가을 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온다.
아마도 경구가 오늘은 못 오나 보다. 아이들이 지껄이며 또 나온다.
계성이와 진수와 영이로구나.
"우리 이 강을 건너 웃마을까지 마중을 갈까? 안 올리가 없는데 …"
"그래, 가 보자."
계성이와 진수와 영이는 강을 건너간다.
어디까지 경구의 마중을 가려느냐?
어둠이 점점 깊어 간다.
하늘에는 별의 수가 점점 많아진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경구는 안 오나 보다.
계성이와 진수아 영이는 왜 돌아오지 않느냐?
"어어이, 어어이."
사람들 부르는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돌아오나 보다.
"경구가 왔다."
기쁨에 넘치는 계성이의 목소리로구나.
경구가 왔구나, 정말 온다는 날 왔구나.
경구야, 어서 건너 오너라, 더 어둡기 전에 네 얼굴이나 좀 보자.
경구가 강을 건너왔다.
진수와 계성이와 영이와 경구, 얼마나 너희들은 친한 친구들이냐?
그들은 웃으며 지껄이며 내 앞으로 온다.
"얘들아! 우리 여기서 잠깐 쉬어 가자!"
아아 낯익은 경구의 목소리로구나, 반가운 경구의 목소리로구나.
"경구야! 그 동안 잘 있었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경구는 몰라보게 컸다.
삼 년 동안에 아주 어른이 된 셈이다.
경구는 내 앞에 오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말문이 막혔나 보다.
경구의 손이 눈가로 가는 것을 보아 나는 경구가 우는 줄을 알았다.
경구의 부드러운 손이 나의 등을 어루만져 준다.
나도 따라 울었다.
"내일 다시 만나자, 돌멩이야."
"잘 가거라. 경구야!"
경구는 친구를 따라 천천히 마을로 들어간다.
아! 경구는 만났거만 내 아들 차돌이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아들이라면 이다지 슬프지는 않았으리라.
휴우, 이젠 차돌이 생각을 하지 말리라.
"경구, 경구, 경구, 경구가 왔다."
내일은 경구가 친구를 데리고 이 냇가에 나오리라.
그러나, 희성이와 귀순이 만은 이 냇가에 나오지 못하리라.
생각하면 우습고도 재미있는 일이 아니냐?
한 마을에서 나서 같이 놀고 싸우고 자라던 아이들이 벌써 저렇게 커서 장가를 가느니 시집을 가느니 야단이니
아무도 희성이와 귀순이가 어려서 이런 우스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리라.
그게 아마 희성이와 귀순이의 나이가 열 살 하고 겨우 한두 살 먹었을 때였으리라.
한창 추워지는 초겨울 어느 날
귀순이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느랍시고 또닥거리는데 희성이가 마침 징검다리를 건너오다가, 이걸 보고 장난 잘 하는 아이인지라 슬그머니 돌멩이 하나를 들어 귀순이가 있는 앞에 퉁 하고 던지는 바람에 그만 물이 튀어서 귀순이가 옷을 함빡 적셨다.
이걸 본 희성이는 너무 우습고도 고소해서 징검다리 중간에 선채 깔깔깔 웃다가 그만 고무신 한 짝을 물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귀순이는 이걸 보고 고거 싸다고 가만히 흘러가는 고무신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던 모양인지, 제 앞으로 흘러가는 고무신을 빨래 방망이로 끌어 내어 희성이에게 주었더니, 희성이는 그만 얼굴이 빨개서 고무신을 받아 신고는 뺑소니를 쳤다.
희성이도 컸다.
귀순이도 컸다.
아니 경구는 더 컸다.
세월이 잠깐이다.
빠알간 아침해가 떠오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희성이와 귀순이의 결혼식이 지나니 이 냇가는 전같이 조용하다.
경구는 몇 날이나 더 이 곳에 머무를는지 모르겠다.
이건 또 누구의 휘파람이냐, 경구로구나.
이 쪽 건 누구냐? 영일 테지, 옳아 영이다.
경구와 영인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으냐?
그럴 테지, 삼 년이나 모아 두었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테지.
경구와 영인 내 옆에 와 앉아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그러다가 그들은 돌아간 영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또 시작한다.
경구는 웬일인지 얼른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나는 이 부싯돌을 볼 때마다 너의 할아버지 생각이 나더라."
부싯돌이라니?
그게 사람이 부르는 내 아들 차돌이의 이름이 아니냐?
내 마음은 몹시도 두근거렸다.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하였다.
경구는 정말 내 아들을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었다.
"경구야! 그게 바로 내가 여기에서 주운 것이란다. 남이하고 놀다가 주운 건데 할아버지 부싯돌 하라고 그런 거야."
"그래 나두 안다, 그런 줄을. 너의 할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하시며 주시더라."
"그게 바로 이 큰 돌멩이 곁에 있었어."
"어디 이 돌멩이 곁에?"
"응."
경구는 갑자기 무엇을 깨달은 모양이다.
차돌이와 내가 아버지와 아들인 것을 알아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차돌이를 알아봤다.
차돌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버지!"
"차돌아!"
그러나, 영이나 경구 귀에 이런 말이 들릴 리 없다.
"영이야! 너 이런 큰 돌멩이 곁에 조그만 돌멩이가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니?"
바로 이건 시집간 귀순이에게 묻던 말이다.
오래 전부터 경구가 이 곳을 떠나기 전 귀순이의 나이 아직 영이 같을 때에 묻던 말이다.
귀순이는 그 말 대답을 못한 채 나이 먹어 시집을 갔다.
"큰 돌멩이는 아빠나 엄마 돌멩이 같고, 작은 돌멩이는 아가 돌멩이들 같애 … 호호호 …"
"영이야? 너두 그렇게 생각되니?"
경구는 너무도 기쁘고 좋은 모양이다.
"영이야? 그럼 이 차돌은 이 커단란 돌멩이의 아들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들일 게다. 그러니 우리 이걸 옆에 놓아 주자!"
"참말, 그랬으면 좋겠어."
경구와 영이는 나와 차돌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빙긋이 웃는다.
"차돌아 - 그 동안 잘 있었니?"
"예, 아버지도 잘 계셨어요?"
"응, 난 잘 있었다.
정말 나는 내가 경구를 따라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 꼭 네가 영이 할아버지 무덤 속에 들어가 있을 줄만 알았다."
"나는 그 동안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잘 있었어요.
내 인제 천천히 그 곳 이야기를 아버지께 해 드리지요."
"그래!"
"그 곳서 나는 늘 이 곳이 그립고 아버지가 그리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나두 늘 네가 그리워서 울었단다."
"정말, 아버지 - 내일 모레나 글피는 경구가 또 이곳을 떠나간대요."
"경구가 떠나가?"
나는 얼른 머리를 들어 경구와 영이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봤으나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벌써 저 쪽 버들 있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경구는 착한 아이다. 좋은 아이다.
우리에게 제일 고마운 아이다.
우리는 경구의 앞날이 복되기를,
그리고 빛나기를 아침마다 밤마다 하늘을 우러러 빌자!"
"그럽시다, 아버지."
오오, 하늘이여! 경구의 앞길에 밝은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돌멩이(2)
■ 경구의 혼자 생각
내가 고향을 떠나 이 곳에 온 지도 벌써 석 달이 지났다.
내 머리에는 아직도 그 때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상에 나서 열 두 해를 자란 정든 내 고향, 내 마을, 내 집, 내 동무들을 두고 떠나던 내 슬픔이란 말할 수 없이 컸었다.
- 경구야! 잘 가거라. 가거든 곧 편지해라!
하던 귀순이의 목소리라든지,
- 그 곳 가도 학교에는 계속하여 다녀라!
하던 남이의 목소리라든지,
- 언제 한번 올 테냐?
하던 영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들리는 듯 쟁쟁하다.
- 귀순아! 영이야! 남이야! 보고 싶구나!
내가 지금 여기서 소리질러 그 애들을 불러 본대도 그 애들은 내가 부르는 줄을 알 리 없으리라.
아직도 나는 그 때 그 일을 잊어 본 적이 없다.
바로 내가 집을 떠나던 전날이다.
나는 진수와 계성이를 데리고 냇가에 나와 앉아,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계성아! 난 내일 떠난다.”
“벌써 영이에게서 들었다.”
“그럼 진수도 아니?”
“..............”
진수는 말문이 막혔는지, 고개만 아래위로 약간 끄덕거릴 뿐, 말이 없다.
- 진수야! 계성아! 너희들은 지금 무엇하고 있느냐?
제일 보고 싶은 내 동무들아!
“경구아!”
진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이런 말을 물어 본다.
“너 그 곳 가면 우리들은 아예 잊어버리고 말 테지?
그 곳 가면 또 다른 친구가 많이 생길 테니.”
나는 진수가 왜 이런 말을 묻는지를 알았다.
그 곳 가도 이 곳에 남아 있는 우리들을 잊지 말라는 뜻이리라.
“몇 해만 지나면 경구도 나이 먹고 키가 크면 아무리 먼 곳에 가 있을지라도 고향에 찾아올 수 있을 테지. 경구야! 어서 커라.”
계성이가 이런 말을 하며 하하하......하고 웃었으나, 계성이도 사실은 나처럼 흠뻑 마음이 슬펐으리라.
“경구야! 네가 좋아하는 버들피리나 좀 불어 보렴.”
나는 진수의 말에 못 이겨서가 아니라, 내일이면 이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동무들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진수의 말과 같이 버들피리라도 힘껏 불어보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 났다.
우리 세 동무는 아무 말 없이 버들피리를 만들었다.
사실 버들피리는 나보다 계성이가 훨씬 더 잘 부는 편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먼저 부는 것이 순서일는지도 모른다.
나는 피리를 입에 물었다.
전 같으면 아주 흥이 나서 잘 불었을 버들피리지만, 이것이 떠나는 마지막 피리라고 생각하니, 그만 목이 메고 숨이 가빠서 좀처럼 불수가 없다.
나는 마디마디 끊어지는 힘없고 흥 안 나는 피리를 조금 불었으나, 너무 싱거운 피리였다.
“나는 못 불겠다.
너희들이나 좀 잘 불어 봐라.
내일 떠나는 나를 위하여 실컷 들려 다오.”
진수가 피리를 물고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수는 불다 말았다.
그 잘 부는 계성이도 역시 조금 불다 말았다.
“자아, 그럼 우리 다 함께 불어 보자.
내일 서로 이별한다는 생각일랑 아예 말고, 기쁘게 흥이 나게 불어 보자.”
그 날 나는 있는 힘을 다 내어 이렇게 즐거운 듯이 말을 했다.
우리는 잠깐 동안 모든 생각을 잊어버린 듯이 피리를 불었다.
“경구야! 이러고 보니 오늘이 학교 졸업식날 같구나.”
“참, 재학생들이 졸업 노래를 한 절 부르고 졸업생들이 한 절 부르고, 마지막엔 다같이 부르고......”
“하하하......참 그래......그런데 오늘 우리는 순서가 조금 바뀌었어......”
“정말......우리가 먼저 불고 경구가 두 번째로 불어야겠던 걸.”
눈을 감으니 계성이의 웃는 낯이 눈앞에 또 나타난다.
나는 이 이상 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옳으리라.
더 생각한대야 눈물나는 기억밖엔 더 없을 터이니, 나는 또 냇가로 가리라.
돌멩이나 주우며 내 마음을 달래 보리라.
■ 돌멩이의 이야기
또 여름이 왔다.
여름처럼 우리 돌멩이들에게 답답한 때는 없다.
냇가에 있으면서도 목욕 한 번 해보지 못하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는 눈이 빠지게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검은 구름이 뜨기만 바라고 소나기가 오기만 바랄 뿐이다.
날씨가 점점 더워 갈수록 이 냇가는 점점 더 분주해 간다.
오늘도 이 마을 아이들이 많이 나와 목욕을 하며 놀았다. 진수, 계성이, 태유, 상덕이, 계림이, 선우, 귀봉이 …
아무리 보아야 경구는 없다.
경구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나는 행여나 경구나 나오지나 않았나 하고 경구를 찾아본다.
그렇다. 경구는 갔다.
머얼리 멀리 알지 못하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경구가 정말 좋았다.
경구도 나를 퍽 좋아했다.
경구는 곧잘 다른 아이들 몰래 이 냇가에 나와, 내 등에 걸터앉아 무얼 자꾸만 생각하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경구네가 이 마을에서 살 수가 없어, 외삼촌네가 있는 어느 먼 곳으로 이사를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얼마나 가슴이 뜨금하고 서글펐는지 모른다.
경구가 이 마을을 떠나던 전 날, 경구는 나의 몸을 어루만지며,
"아아, 사랑하는 돌멩이야,
내가 네 위에 앉아 보기도 오늘이 마지막이로구나!
돌멩이야! 너도 잘 있거라
널랑은 부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말로, 이 냇가에서 오래오래 살아라.
아마 이 마을에서 지낸 모든 일을 네가 제일 잘 알리라 언제나 무얼 생각하고 혼자 슬퍼하던 나를 잘 아는 것도 너밖엔 없으리라.
나는 갑갑할 때마다 너를 찾았고, 마음이 슬플 때마다 너를 찾아 나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졸랐었지
돌멩이야, 부디 잘 있거라. 나는 내일이면 영영 마을을 떠난다."
나는 경구가 그립다.
내 아들 차돌이 만큼이나 그립다.
경구는 올는지 모른다.
그러나, 차돌이는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내 아들 차돌이를 부시 쌈지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영이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내 아들 차돌이도 같이 파묻혀 버렸을 것이다.
차돌이가 내 아들인 줄을 영이가 알았다면, 그리고 차돌이가 그리워 내가 밤마다 남 몰래 우는 줄을 영이가 알았다면, 영이는 할아버지 쌈지 속에서 내 아들 차돌이를 꺼내어 내 곁에 갖다 놓아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이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경구라면, 혹시 그런 생각을 할른지 모르지만, 영이나 계성이나 진수나 귀순이가 그런 생각을 하지는 못하리라.
아이들의 지껄이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또 누가 나오는가 보다. 누구냐?
어디 보자? 귀순이, 서분이, 이 쪽은 누구냐? 영이다, 영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말하고 싶다.
영이에게 할 말이 있다. 물어볼 말이 있다.
아이 갑갑해. 내게는 왜 입이 없나? 나는 왜 말할 수 없나?
"영이야, 너 내 아들 차돌이를 어쨌니?
너의 할아버지 부싯돌 하겠다고 주워 간 내 아들 차돌이를 어쨌느냐 말이다.
너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쌈지 속에 넣은 채,
그냥 넣어 할아버지와 함께 내 아들을 관속에 넣어 보냈느냐?"
말하고 싶다.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말할 수 있게 만들어진 사람은 얼마나 좋겠느냐?
부럽다.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 나는 사람이 되어 봤으면 …
사람은 못 되나마, 새처럼 노래할 수나 있었으면
하다 못해 조그만 벌레같이 소리내어 울어 볼 수나 있어도 좋지 않겠느냐?
나는 말할 줄도, 노래할 줄도, 울 줄도 모르는 돌멩이구나.
나는 내가 얼마나 갑갑한 물건인가를 생각해 보기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지만 오늘처럼 갑갑해 본 적이 없다.
"귀순아! 목욕하지 않겠니?"
"이런 곳에서 어떻게 대낮에 목욕을 한담!"
"왜 못해?"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보면 어쩌니?"
"보면 뭣하니?"
서분이가 영이 대신 대답한다.
"그럼, 너희들이나 하렴 … 난 세수나 할 테다."
세월이 빠르구나, 참 빠르구나. 엊그저께 코를 줄줄 흘리며 발가벗고 엄마를 따라 이 냇가에 나와 물장난을 치던 귀순이가 벌써 제법 부끄러워할 줄 아는 색시가 되었으니.
■ 차돌이의 이야기
내가 경구의 호주머니에 들어서 이 산골에 온 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다.
경구는 벌써 지난 봄에 이 곳 소학교를 졸업했다.
그렇게 공부 잘하는 경구가 중학교에 못 가게 된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일이라고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때, 어쩐지 조그만 나이지만 몹시도 슬펐다.
경구는 오늘도 아버지를 도와 밭으로 나갔었다.
지금은 점심 시간이 되어 경구는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경구는 흰 종이쪽에 연필로 무어라 벅벅 자꾸만 쓰는 모양이다.
"누구에게 보낼 편지일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느라니까, 경구는 편지를 다 써 놓고 한번 주욱 내려 읽는다.
나는 그때서야 경구가 무어라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계성이와 진수에게 하는 편지였다.
아마 전번 계성이에게 온 편지에, 귀순이가 이번 가을에 시집을 간다는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때를 이용하여서 이번 가을에는 고향에 한번 갈 터이라는 편지였다.
나는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서 이런 말을 듣고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구가 나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내게는 기쁠 것도 아무것도 없지 않나?
"경구야, 나를 데리고 갈 테냐?"
고 물어보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몸이라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문득 났다.
돌멩이는 얼마나 불쌍한 물건이냐?
입이 없으니 말할 수도 없고 발이 없으니 걸을 수도 없고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경구의 손이 덥석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집어낸다.
"차돌아! 부싯돌아! 너도 나와 같이 갈 테냐?"
나는,
"응!"
이 간단한 한 마디의 대답을 하기에 무척 애를 써 보았으나, 대답은 종시 나오지 않는다.
경구는 내 속을 알 리 없다.
내가 얼마나 고향에 가고 싶어하는지를 ...
"차돌아! 부싯돌아!
우리가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구나.
너는 아직도 모르리라만, 영이 할아버지는 우리가 이 곳으로 이사를 온 후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더라.
부싯돌아! 나는 지금 영이 할아버지가 너를 내게 주며 하던 말씀을 그냥 그대로 따로 외울 수도 있다.
'경구야! 네가 이 차돌을 늘 곱다고 했기에, 이걸 네게 준다.
이 돌멩이를 볼 때마다 나를 생각하고 내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 또 타일러 주던 말을 잘 지켜라. 응?
그러면 너는 장래에 훌륭한 사람이 될 터이니.'
차돌아! 그게 바로 내가 고향을 떠난다고 그러던 몇날 전 일이었다.
참으로 영이 할아버지는 훌륭하신 분이다.
내가 너를 곱다는 말을 언제 꼭 한 번 밖에는 하지 않은 듯한데, 그 말을 잊으시지 않고 내게 너를 주셨다.
차돌아! 너는 고향이 그립지 않느냐?
보고 싶은 친구는 없니?"
나는 그만 울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경구는 내가 우는 줄을 모를 것이다.
눈에 눈물이 없고, 흐느껴 우는 소리가 안 나니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경구도 고향이 그리운 모양이다.
친구가 그리운 모양이다.
돌아가신 영이 할아버지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경구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구나.
경구도 나처럼 우는구나.
경구가 만일 경구네 고향 앞 시냇가에 있는 커다란 돌멩이가 내 아버지라는 것을 안다면 나는 데리고 가리라.
그리하여 나와 아버지가 만날 기회를 주리라.
어떻게 하면 경구에게 내 아버지를 알려 줄 수 있을까?
아아,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
내 아버지는 내가 여기 온 줄 꿈에도 모르리라.
나는 다시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경구는 편지를 부치러 가는 모양이다.
편지를 부치고 난 경구는 약간 마음이 가벼워진 모양이다.
경구는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
나도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서 마음이 즐거워 집으로 돌아온다.
■ 돌멩이의 이야기
오늘은 경구가 오는 날이라고 계성이와 진수, 영이는 몇 차례나 이 냇가에 나와 앉아 경구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구는 오지 않는다.
나는 어쩐지 서운한 생각이 난다. 영영 못 만나 볼 내 아들 차돌이 생각도 난다.
강을 건너가고 건너오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
옳아! 낼모레가 희성이와 귀순이의 결혼식 날이라지?
벌써 해가 서산으로 꼴깍 숨어 버렸다.
가을 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온다.
아마도 경구가 오늘은 못 오나 보다. 아이들이 지껄이며 또 나온다.
계성이와 진수와 영이로구나.
"우리 이 강을 건너 웃마을까지 마중을 갈까? 안 올리가 없는데 …"
"그래, 가 보자."
계성이와 진수와 영이는 강을 건너간다.
어디까지 경구의 마중을 가려느냐?
어둠이 점점 깊어 간다.
하늘에는 별의 수가 점점 많아진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경구는 안 오나 보다.
계성이와 진수아 영이는 왜 돌아오지 않느냐?
"어어이, 어어이."
사람들 부르는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돌아오나 보다.
"경구가 왔다."
기쁨에 넘치는 계성이의 목소리로구나.
경구가 왔구나, 정말 온다는 날 왔구나.
경구야, 어서 건너 오너라, 더 어둡기 전에 네 얼굴이나 좀 보자.
경구가 강을 건너왔다.
진수와 계성이와 영이와 경구, 얼마나 너희들은 친한 친구들이냐?
그들은 웃으며 지껄이며 내 앞으로 온다.
"얘들아! 우리 여기서 잠깐 쉬어 가자!"
아아 낯익은 경구의 목소리로구나, 반가운 경구의 목소리로구나.
"경구야! 그 동안 잘 있었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경구는 몰라보게 컸다.
삼 년 동안에 아주 어른이 된 셈이다.
경구는 내 앞에 오더니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말문이 막혔나 보다.
경구의 손이 눈가로 가는 것을 보아 나는 경구가 우는 줄을 알았다.
경구의 부드러운 손이 나의 등을 어루만져 준다.
나도 따라 울었다.
"내일 다시 만나자, 돌멩이야."
"잘 가거라. 경구야!"
경구는 친구를 따라 천천히 마을로 들어간다.
아! 경구는 만났거만 내 아들 차돌이는?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아들이라면 이다지 슬프지는 않았으리라.
휴우, 이젠 차돌이 생각을 하지 말리라.
"경구, 경구, 경구, 경구가 왔다."
내일은 경구가 친구를 데리고 이 냇가에 나오리라.
그러나, 희성이와 귀순이 만은 이 냇가에 나오지 못하리라.
생각하면 우습고도 재미있는 일이 아니냐?
한 마을에서 나서 같이 놀고 싸우고 자라던 아이들이 벌써 저렇게 커서 장가를 가느니 시집을 가느니 야단이니
아무도 희성이와 귀순이가 어려서 이런 우스운 일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리라.
그게 아마 희성이와 귀순이의 나이가 열 살 하고 겨우 한두 살 먹었을 때였으리라.
한창 추워지는 초겨울 어느 날
귀순이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느랍시고 또닥거리는데 희성이가 마침 징검다리를 건너오다가, 이걸 보고 장난 잘 하는 아이인지라 슬그머니 돌멩이 하나를 들어 귀순이가 있는 앞에 퉁 하고 던지는 바람에 그만 물이 튀어서 귀순이가 옷을 함빡 적셨다.
이걸 본 희성이는 너무 우습고도 고소해서 징검다리 중간에 선채 깔깔깔 웃다가 그만 고무신 한 짝을 물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귀순이는 이걸 보고 고거 싸다고 가만히 흘러가는 고무신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던 모양인지, 제 앞으로 흘러가는 고무신을 빨래 방망이로 끌어 내어 희성이에게 주었더니, 희성이는 그만 얼굴이 빨개서 고무신을 받아 신고는 뺑소니를 쳤다.
희성이도 컸다.
귀순이도 컸다.
아니 경구는 더 컸다.
세월이 잠깐이다.
빠알간 아침해가 떠오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희성이와 귀순이의 결혼식이 지나니 이 냇가는 전같이 조용하다.
경구는 몇 날이나 더 이 곳에 머무를는지 모르겠다.
이건 또 누구의 휘파람이냐, 경구로구나.
이 쪽 건 누구냐? 영일 테지, 옳아 영이다.
경구와 영인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으냐?
그럴 테지, 삼 년이나 모아 두었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테지.
경구와 영인 내 옆에 와 앉아 별별 이야기를 다 한다.
그러다가 그들은 돌아간 영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또 시작한다.
경구는 웬일인지 얼른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나는 이 부싯돌을 볼 때마다 너의 할아버지 생각이 나더라."
부싯돌이라니?
그게 사람이 부르는 내 아들 차돌이의 이름이 아니냐?
내 마음은 몹시도 두근거렸다.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하였다.
경구는 정말 내 아들을 호주머니 속에서 꺼내었다.
"경구야! 그게 바로 내가 여기에서 주운 것이란다. 남이하고 놀다가 주운 건데 할아버지 부싯돌 하라고 그런 거야."
"그래 나두 안다, 그런 줄을. 너의 할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하시며 주시더라."
"그게 바로 이 큰 돌멩이 곁에 있었어."
"어디 이 돌멩이 곁에?"
"응."
경구는 갑자기 무엇을 깨달은 모양이다.
차돌이와 내가 아버지와 아들인 것을 알아냈는지도 모른다.
나는 차돌이를 알아봤다.
차돌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버지!"
"차돌아!"
그러나, 영이나 경구 귀에 이런 말이 들릴 리 없다.
"영이야! 너 이런 큰 돌멩이 곁에 조그만 돌멩이가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니?"
바로 이건 시집간 귀순이에게 묻던 말이다.
오래 전부터 경구가 이 곳을 떠나기 전 귀순이의 나이 아직 영이 같을 때에 묻던 말이다.
귀순이는 그 말 대답을 못한 채 나이 먹어 시집을 갔다.
"큰 돌멩이는 아빠나 엄마 돌멩이 같고, 작은 돌멩이는 아가 돌멩이들 같애 … 호호호 …"
"영이야? 너두 그렇게 생각되니?"
경구는 너무도 기쁘고 좋은 모양이다.
"영이야? 그럼 이 차돌은 이 커단란 돌멩이의 아들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들일 게다. 그러니 우리 이걸 옆에 놓아 주자!"
"참말, 그랬으면 좋겠어."
경구와 영이는 나와 차돌이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빙긋이 웃는다.
"차돌아 - 그 동안 잘 있었니?"
"예, 아버지도 잘 계셨어요?"
"응, 난 잘 있었다.
정말 나는 내가 경구를 따라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난 꼭 네가 영이 할아버지 무덤 속에 들어가 있을 줄만 알았다."
"나는 그 동안 경구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잘 있었어요.
내 인제 천천히 그 곳 이야기를 아버지께 해 드리지요."
"그래!"
"그 곳서 나는 늘 이 곳이 그립고 아버지가 그리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나두 늘 네가 그리워서 울었단다."
"정말, 아버지 - 내일 모레나 글피는 경구가 또 이곳을 떠나간대요."
"경구가 떠나가?"
나는 얼른 머리를 들어 경구와 영이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봤으나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벌써 저 쪽 버들 있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경구는 착한 아이다. 좋은 아이다.
우리에게 제일 고마운 아이다.
우리는 경구의 앞날이 복되기를,
그리고 빛나기를 아침마다 밤마다 하늘을 우러러 빌자!"
"그럽시다, 아버지."
오오, 하늘이여! 경구의 앞길에 밝은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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