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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아이히 詩 모음
2017년 08월 09일 18시 47분  조회:2219  추천:0  작성자: 강려

비가 전하는 소식

귄터 아이히 

슬레이트지붕에서 기와지붕으로,
... 빗방울이 북소리 같이 울리며,
전염병처럼 퍼져,
내게 전하는 소식, 
가지고 싶지 않은 자에게
전달되는 밀수품-

벽의 바깥에 창문의 함석조각이 울리고,
자음과 모음들이 달그닥거리며 한데 합치면,
비는 말한다
나밖에는 아무도 알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언어로-

깜짝 놀라 나는 듣는다
절망의 소식을,
빈곤의 소식을,
그리고 비난의 소식을,
이 소식이 내게 전해져 불쾌하다,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나는 소리높여 외친다,
비도, 비의 고발도, 그리고 그것을 내게 보낸 자도

나는 두렵지 않다고,
적당한 시간에 
밖으로 나가 그에게 대답하리라고

 

 

소지품 목록/ Guenter Eich


이것은 나의 모자,
이것은 나의 외투,
여기 아마포로 만든 주머니 속에는
나의 면도기.

통조림 깡통은
나의 접시, 나의 술잔,
나는 그 생철 그릇에다
이름을 새겼다.

모두들 갖고 싶어 해서
내가 숨겨두었던,
이 소중한 못을 가지고
여기에다 새긴 것이다.

빵주머니 속에는
면양말이 한 켤레 들어 있고.
또한 내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몇 개 들어 있다.

그래 이것을 밤이면
베개처럼 머리 맡에 베고 잔다.
여기 있는 이 마분지 판때기를
땅바닥에 깔고.

이 연필심을
나는 가장 아낀다.
밤에 생각한 몇 줄의 시를
낮에 이 연필심으로 쓰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공책,
이것은 나의 천막조각,
이것은 나의 세수수건,
이것은 나의 바느질 연장.

 

 

 

- 쓰레기 적치장/귄터 아이히
 

 

누구도 듣지 않고, 모두가 듣는
세계의 슬픔은 며느리밑씻개 위에서 시작된다.
바람은 매트레스의 스프링의
신축재를 건드린다.

꽃들과 포도송이들의 장식 속에서
잔에 쓰인 금자를 나는 어슴푸레
읽을 수 있었으니, 오 나는 얼마나 섬찟했던가.
사랑, 희망 그리고 믿음이란 말.

아 누가 너무나 쓰디쓴 고통에 대해
조각들을 이렇게 붙일 수 있나?
가슴을 지나듯 법랑을 지나
면리밑씻개의 불길은 커만 간다.

녹슨 철모에 남은 물찌꺼기는
스쳐가는 새들의 목욕을 위한 것.
망실되 영혼이여, 네가 누구를 떠나든간에,
누가 은총 속에서 너를 다시 맞출까?

 

 

- 변소/귄터 아이히

 


피와 오줌이 잔뜩 묻은 종이조각들,
악취가 진동하는 도랑 위에,
싯누런 똥파리들에 에워싸여,
나는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숲이 우거진 강가, 정원들과,
물가에 멎은 보트를 바라본다.
썩은 진흙구렁 속으로
돌덩이처럼 딱딱한 똥이 철썩 떨어진다.

엉뚱하게도 내 귀에는
휠덜린의 시가 울려온다.
눈처럼 하얀 구름이
오줌 속에 반사한다.

『이제 그만 가서
아름다운 가론느 江에게 인사하라-』
휘청거리는 발 아래서
구름이 헤엄쳐 도망간다.

 

 기하학적 위치/ 귄터 아이히

 



우리는 우리들의 그림자를 팔아 버렸다,
그림자는 히로시마의 담벼락에 걸려 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던 사업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자를 거둬들이고 있다.

한데,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의 위스키를 마시자꾸나.
그러나 양심의 증명서인
이름을 지닌
나의 술병이 있는
주막집을 나는 찾을 수가 없으리라.

예수의 탄생 때에
나는 동전 한 푼 은행에 맡긴 일이 없다.
그런데 인간에 대적해서 훈련받은 개들의 자손들을
나는 도나우 학파의 언덕 위에서 보았다.
그것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나는, 히로시마의 주민들처럼,
화상 입은 피부는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마시고 노래하고 싶다,
위스키에 대해 나는 노래를 한다.
채석강이나 철조망 속에서
그의 조상들이 인간을 향해 뛰어오르던
그런 개들을 나는 쓰다듬고 싶다.

히로시마의 은행에 있는
그대, 나의 그림자여,
때때로
나는 모든 개들과 함께 너를 방문하며
우리들의 당좌예금의 안전을 위해
그대를 향해 잔들 들겠다.

박물관은 뜯겨 버리리라,
그 전에
나는 몰래 너에게 숨어들리라,
너의 난간 뒤로,
너의 웃음 뒤로, 우리들의 구원된 외침으로,
바로
그 순간
너와 나의 신발이,
우리들이 또다시 서로 어울리리라.



- 비둘기/귄터 아이히

 



밭을 지나 저쪽으로 비둘기들이 날아간다, -
날개를 한 번 치는 것이 아름다움보다 더욱 빨라
아름다움은 그것을 따르지 못하고,
나의 마음 속에 불안으로 남는다.

비둘기집 앞에서, 녹색 페인트 칠을 한 그 조그만 새집 앞에서,
비둘기들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날으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일일까,
땅을 내려다보는 그들의 눈은 얼마나 날카로울까.
그들은 어떻게 모이를 쪼아 먹으며
또한 매가 날아오는 것을 알아차릴까.

나는 비둘기들을 두려워하리라 마음먹는다.
나는 말하고 싶다. 네가 그들이 주인은 아니라고, 네가 모이를 뿌려주려고,
네가 그들의 깃털에 통신문을 매달고,
네가 그들을 예쁜 모습으로 치장해주긴 하지만, 새로운 색깔,
머리와 발목의 새로운 깃털.
너의 힘을 믿지 말라,

그러면 너는 놀라지 않으리라,
네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너희들의 곁에 숨겨진 王國이 있어,
알아낼 수 없는, 소리없는 언어가 있고,
힘은 없어도, 건드릴 수 없는 다스림이 있고,
또한 비둘기가 날아갈 때 결단이 내려진다는 것을 알아도.




- 꿈/귄터 아이히

 

 


깨어나라, 너희들은 악몽을 꾸고 있다!
잠들지 말라, 무서운 일이 서서히 닥쳐오고 있다.

네 비록 피 흘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너에게도 그것은 닥쳐오고 있다.
네가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낮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역시.
오늘 그것이 닥쳐오지 않으면, 내일 오리라.
그러나 틀림없는 일이다.

『아니타가 일주일 동안 수를 놓아서 크리스머스 선물로 준,
빨간 꽃무늬의 베개를 베고,
오, 쾌적한 잠,
기름진 불고기와 연한 채소를 먹고 난 다음의
오, 쾌적한 잠,
잠들면서 우리는 어제 저녁의 뉴스 영화를 생각한다.
유월절의 양들, 소생하는 자연, 바덴바덴의 도박장 개설,
케임브리지 팀이 옥스퍼드 팀을 2정신반 앞서 이겼다든가 하는-
잠들기 전의 상상으로는 이만하면 족하다.

오, 최고급 깃털로 만든 이 부드러운 베개!
이 베개를 베고 우리는 이 세계의 불쾌한 일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예컨대
낙태를 시켰다고 고발된 여인이 스스로의 변호를 했다는 소식을,
일곱 아이의 어머니인 그 여인이 젖먹이를 데리고 나에게 왔다.
아기의 기저귀가 없어
신문지로 기저귀를 채워가지고.
하지만 그거야 재판소에서 알아 할 일이지, 우리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팔자를 세게 타고난 걸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우리 손자들은 훌륭히 싸워 이길 테니까』

『아, 너는 벌써 자고 있느냐? 어서 깨어나라, 나의 친구여! 철조망에는 벌써 전류가 흐르고, 초병들이 늘어섰다』

이 세계의 주재자들이 분주한 동안은 안 된다. 자지 마라!
너희들을 위하여 노력해야만 한다고 그럴 듯하게 내세우는 그들의 권력을 믿지 마라!
너희들의 마음이 공허하게 될 것을 얘기하더라도 너희들의 마음이 텅 비지 않도록 주의하라!
유익하지 못한 일을 하라, 사람들이 너희들의 입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노래를 불러라!
불유쾌하게 살라, 이 세계라는 기계 속의 기름이 되지 말고, 모래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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