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어귀 가로등 아래에 손수레가 한 대 서 있습니다. 전봇대에 비스듬히 기대 세워져 있는 이 손수레는 민희네 아랫방에 세들어 사는 할머니 것입니다.
지난 봄에 이 방으로 이사온 할머니는 동네 골목골목을 돌며 헌 신문지나 고물을 주워 모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이 곳 세검정에서 벌써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들 같으면 며느리가 해다 주는 밥상을 받고 앉았을 칠순이 넘은 나이인데도 할머니는 하루도 안 빠지고 일을 나갑니다.
화계쇼핑 앞에서 빈 상자를 차곡차곡 접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수군거립니다.
"저 할머니도 자식이 없나 봐."
"그러게 말이야,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일만 하다니……."
할머니는 하루 종일 주워 모은 빈 상자들을 나일론 끈으로 단단히 묶었습니다.
해질 무렵이면 할머니는 이것들을 신영상가 뒤에 있는 고물상에 갖다 줍니다.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쭉 펴 봅니다. 하루 종일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한 탓인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픕니다. 그렇지만 마냥 그러고 서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는 손수레를 가지러 골목으로 갔습니다. 할머니가 세들어 사는 골목은 리어카도 못 들어올 정도로 길이 좁습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겨우 다니는 길이지만 할머니는 그 골목이 좋았습니다. 피곤할 땐 눈을 감고도 걸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골목을 걸어 들어가자 전봇대에 얌전히 기대 서 있던 손수레가 활개를 치며 할머니를 맞아 줍니다.
손수레를 보자 할머니는 기운이 솟았습니다.
"아이구, 네가 효자다!"
할머니는 손수레가 그렇게 고맙고 기특할 수가 없습니다. 이 손수레를 구하기 전에는 주워 모은 폐품들을 머리에다 이고 고물상까지 걸어가야 했습니다. 고물상에서 이 손수레를 구한 뒤부터는 할머니의 일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할머니는 이 손수레를 자식처럼 아꼈습니다. 매일같이 닦아 주고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는 저녁에는 가로등 아래에 기대 세워 놓고 행여 누가 끌고 갈까 봐 쇠줄로 매어 자물쇠까지 채워 놓곤 합니다.
"가자, 오늘도 많이 주워 놓았다."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손수레에 걸려 있는 자물쇠를 열면서 할머니가 손수레에게 말했습니다. 손수레도 애타게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앞장서 달려갔습니다. 손수레는 리어카보다 몸집이 훨씬 작지만 짐은 꽤 많이 실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돌며 하루 종일 주워서 묶어 놓은 폐품들을 손수레에다 차곡차곡 실었습니다.
화계쇼핑 앞에 있는 빈 상자들을 싣고 나자 더 이상 짐을 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낑낑대며 손수레를 끌고 신호등 앞으로 갔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할머니와 손수레를 훔쳐보았습니다.
신호가 바뀌자 할머니는 비트적거리며 손수레를 밀고 횡단 보도를 건넜습니다.
효동빌라 앞에도 할머니가 묶어 놓은 폐품 두 뭉치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실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는 행여 누가 그것들을 갖고 갈까 봐 손수레를 길 한쪽에 세워 놓고 폐품 뭉치들을 동해횟집 간판 뒤에다 숨겨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손수레를 밀고 육교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제 육교 아래만 지나면 바로 신영상가입니다. 그러나 육교가 문제입니다. 전에는 이 신영삼거리에 육교 대신 횡단 보도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신호에 따라 건너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신영삼거리에 육교가 설치되었습니다. 육교가 생기자 동네 사람들은 좋아했지만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손수레를 끌고 이 곳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육교 아래까지 내려간 할머니는 주위를 한번 살펴본 뒤 아슬아슬하게 찻길로 들어섰습니다.
퇴근길의 삼거리는 몹시 붐볐습니다. 차들이 밀려 있는 틈을 타서 할머니가 손수레를 밀고 삼거리로 들어서자 사방에서 차들이 빵빵거렸습니다. 구기터널 쪽에서 오던 차들이 좌회전 신호를 받고 북악터널 방향으로 돌자 할머니는 얼른 그 틈을 이용해서 길을 건넜습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쉰 사람은 할머니뿐만이 아닙니다. 길 가다 멈춰 서서 바라보던 사람과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다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모험 속에서 살았습니다. 산다는 것이 어차피 다 이런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고물상까지 손수레를 밀고 가자 온몸에 힘이 쏘옥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운동 삼아 조금씩만 해 오세요."
고물상 주인 김씨 아저씨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놀면 뭐 하우? 일하는 데까진 해야지."
할머니의 손수레에서 폐품들을 내려 준 김씨 아저시는 만 원짜리 한 장을 할머니 손에 쥐어 주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수고하셨어요. 조심해 가세요."
신영상가 앞으로 나온 할머니는 차들이 밀려있는 틈을 이용해서 빈 손수레를 끌고는 얼른 길을 건넜습니다.
골목 어귀로 들어서자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 푹 쉬어라."
할머니는 가로등 아래 전봇대 기둥에다 손수레를 묶어 놓고는 걸레로 먼지를 닦아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할머니는 골목 쪽으로 나 있는 문을 열었습니다. 할머니가 거처하는 작은 방 한 칸이 나왔습니다.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면 방안에서도 손수레가 마주 보입니다.
손발과 얼굴을 씻고 난 할머니는 저녁을 대강 챙겨 먹고 일찍암치 자리에 누웠습니다. 피곤해서 금방 잠이 들 줄 알았는데 정신은 더욱 말똥말똥해집니다. 시집간 딸과 두 아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눈에 떠올랐습니다.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할머니는 또 콧등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아려 옵니다. 자식들 생각을 하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습니다.
젊은 나이에 홀로되어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키느라 안 해 본 장사가 없습니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이건만 장가가더니 한 달 내 가야 혼자 있는 어미에게 안부 전화 한 통 하는 놈이 없습니다.
할머니는 아들이 둘이나 있어도 어디 한 군데 마음 붙이고 살 데가 없습니다. 큰아들네는 아들 며느리가 하루가 멀다고 티격태격 싸워대서 마음이 편칠 않고, 둘째는 둘째대로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대니 괜히 아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같이 살기가 싫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폐품을 주우며 혼자 살아갑니다. 몸이 고달파서 그렇지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들 생각이 한시도 떠나지 않습니다.
'자식도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장가보내고 나면 다 남이야. 암, 그렇구말구…….'
할머니는 이렇게 마음을 달래봅니다. 그 때였습니다. 한 떼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할머니 방문 앞을 지나갑니다.
"넌 엄마 선물 뭐 샀니?"
"스카프. 넌?"
"난 예쁜 손수건 샀어."
내일이 어버이날이라고 아이들이 선물을 사 들고 재잘거리며 골목을 지나갑니다. 그러자 할머니의 머릿속에 갑자기 작은아들이 떠올랐습니다.
며칠 전 작은아들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버이날 저희 형과 함께 찾아오겠다는 전화였습니다.
'그래도 못난 에미를 잊지 않고 찾아오겠다니……. 에이구, 부모자식 사이라는 게 다 뭔지…….'
초저녁이 되자 소쩍새가 옆집 고목나무에서 구슬프게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내일 아들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골목으로 나 있는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가로등이 환히 켜져 있는 골목에는 카네이션을 사 들고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할머니는 하얀 고무신을 찾아 신고 골목으로 내려섰습니다. 전봇대에 기대고 서 있던 손수레가 할머니를 보자 반갑게 맞아 줍니다.
할머니는 손수레를 가만히 쓰다듬어 봅니다.
지난 삼 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할머니를 도와주던 손수레였습니다. 손수레는 마치 '할머니, 뭘 도와 드릴까요?' 하고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네가 자식보다 낫구나.'
할머니는 손수레를 가만히 끌어안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손수레를 보자 할머니는 갑자기 아까 줍다 만 빈 상자 생각이 났습니다.
'잠도 안 오고 한데, 아까 하다 만 일이나 계속해야지…….'
할머니는 미닫이문도 활짝 열어 놓은 채 손수레를 끌고는 바삐 골목을 빠져 나갔습니다.
손수레를 끌고 문방구 앞을 지나다가 안집 민희 엄마를 만났습니다.
"할머니, 어두운데 어딜 가세요?"
"잠이 안 와서 아까 하던 일이나 마저 하려구……."
"할머니,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병나면 어쩌시려구요?"
"먼저 들어가. 내 금방 돌아올게."
민희 엄마와 헤어진 할머니는 화계쇼핑 앞으로 갔습니다.
빈 라면 상자와 과일 상자들이 길가에 널려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것들을 하나하나 납작하게 펴서는 묶었습니다.
아무래도 내일은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손주 녀석도 데려올지 모르니까 함께 놀아야지요. 놀이 공원에라도 갈 작정입니다. 작년에는 그러지 못했었지만 올해는 꼭 그럴 생각입니다.
손수레에 빈 상자를 반쯤 실은 할머니는 아까 길 건너 동해횟집 간판 뒤에 숨겨 놓은 폐품들을 가지러 길을 건너려 했습니다.
길을 건너려면 소방서 앞 횡단 보도까지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일을 한 탓인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거기까지 걸어 올라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화계쇼핑 앞에서 바로 길을 건너려 했습니다.
길은 차들로 만원이었습니다. 차 소리가 귀에 따갑고 차들이 늘어선 길은 온통 빨간 샐비어 꽃밭 같았습니다.
시내 쪽으로 나가는 차들이 밀려 있는 틈을 타서 할머니는 찻길로 내려 섰습니다. 그리고는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들어가 길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끼이익―!'
그 날 밤, 소쩍새들은 더욱 애끓는 소리로 밤새 울었습니다.
<작품 해설>
할머니와 손수레
갖은 고생을 다하며 키웠건만 결혼해 나간 뒤에는 늙은 부모를 돌보지 않는 아들딸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우리의 그런 현실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그린 작품입니다.
자식의 부양 대신 손수레에 의지하여 살아가던 할머니가 어버이날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자라나는 세대의 할 일입니다.
<작가 약력> 강민숙
1948년,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났습니다.
1983년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고무줄 새총>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노천명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슬픈 눈의 코카》 《풀과 나무의 집 아이들》 <고무줄 새총> <늦둥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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