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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과 표현
김 기 덕 [ 한국]
시인들은 많지만 표현의 방법을 제대로 알고 시를 쓰는 시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관념을 전달하기 위해 주제의 통일이나 의미의 나열에 치중하여 시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시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언어를 통해 그림을 그리듯이 시를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림 속에는 화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성이나 메시지가 있겠지만, 그림 자체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림 속에 담긴 관념을 금을 캐듯 채취하는 것이다.하나의 시 속엔 철학의 광맥이, 관념의 광맥이 필요하다. 그 관념성은 지상에서 볼 수 없는 광맥처럼 숨겨진 존재이다. 잘 표현된 시 속엔 철학과 사상, 이념의 고차원적인 광맥이 숨겨져 있어야 하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시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표현 속에 관념을 감추고 심오한 생각의 깊이를 보여주기 위해선 표현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
시의 표현은 하나의 단어로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문장에서 시작된다. 그 문장은 이미지로 결합된 문장이며, 설명이나 관념의 기름기가 빠진 순수 사물적이거나 감각적이어야 한다.
1.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의 필요성
지금까지 우리의 시 쓰기는 대부분 연역적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역적 방법은 간접추리와 직접추리와 같은 연역적 추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간접추리는 일반적으로 둘 이상의 명제로부터 새로운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예) “모든 유대류는 척추동물이다.”
“모든 캥거루는 유대류이다.”
그러므로 “모든 캥거루는 척추동물이다.”
직접추리는 하나의 명제에서부터 새로운 한 명제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예) “모든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다.”
그러므로 “어느 비이성적 동물도 사람이 아니다.”
예) “어느 자유주의자도 전체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전체주이자도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시는 증명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학의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시 쓰기의 방법적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연역적 방법은 일반적인 원리를 가지고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예) 모든 동물은 죽는다. -대전제(일반적 원리)
사람은 동물이다. -소전제(구체적 사실)
그러므로 사람은 죽는다. -추론(구체적 원리)
연역적 방법의 시 쓰기는 하나의 주제의식, 즉 결론적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연이나 사물, 정황의 의미, 철학성, 교훈성, 유희성 등등의 대전제를 세우고 감성적 정서나 이야기 등의 소전제를 덧붙여 시인의 시적 의도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연역적 방법의 시는 연역법적 증명의 형식을 갖는 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발상에서부터 완성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의미한다. 대전제는 시에 대한 발상을 얻고 어떤 주제로 써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소전제는 이 주제에 대한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 등의 표현을 빌려와 주제성을 뒷받침하는 것을 의미한다. 추론은 결론적 감성의 증명, 새로운 차원의 제시, 상승된 시심의 도출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는 정확한 논리적 증명을 위한 글은 아니지만, 그 방법적인 면에서 볼 때 대부분 연역적 방법을 취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시는 비논리의 논리이다.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비논리와 상상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로 이해하려 한다면 시의 접근성이 차단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연역적 방식의 시들은 시간성, 인과성, 예상가능성의 원리들을 통해 생각을 펼치며 개인적 정서의 증명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첫 문장을 보면 시의 가능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첫 문장이 표현되었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앞으로 생각이 뻗어갈 수 있는 씨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 씨알은 주제의식을 나타내며 시적 정서를 증명하기 위한 대전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들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내용을 거의 다 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의 표현방법을 말하면서 접근법을 끌어들인 것은 표현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시 쓰기를 시작한다면 시에 대한 표현보다는 관념성에 갇히게 된다. 물론 숨겨진 관념을 나타내기 위해 잘 표현된 시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시인들에겐 시 쓰기의 근본적인 접근 방법을 바꾸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 쓰기 방법은 하나의 사물이나 풍경, 이야기 등을 통해 착상이 이루어지면 연못에 던져진 돌의 파장처럼 이미지를 확장해 가거나 굴착기 같은 생각의 압력을 통해 사고의 지반을 꿰뚫으려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시작점은 착상의 중심이고, 시의 전개는 이 중심의 확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니 정방향의 일방적 시 쓰기가 되어 예상이 쉽고 의미가 드러나 식상한 맛을 주었다. 시는 어려워야 하나? 라는 질문을 받는다. 시는 어려워야 할 필요가 없다. 단지 깊이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반복하여 써온 시의 정서들이 이제는 식상한 공식이 되었다. 첫줄을 읽고 다 알아버린 시의 맛은 맹물 같은 것이다. 대하소설을 읽는데 그 내용이 예상된다면 누가 시간을 들여 읽으려하겠는가. 초보적 시 쓰기에서 벗어난 고수들의 바람은 신선한 접근과 파격적 전개는 아니라 해도 우려먹어서 맛이 다 빠진 녹차 잎 같은 시는 아닐 것이다. 시를 어렵게 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 편의 시 속에 많은 이미지와 생각의 씨알을 담는다면 당연 시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편하게 읽혀서 감동을 주는 시도 있지만 그 속에 안주해서 감동도 없고 신선함도 없는 시들이 너무 많다. 새로운 실험을 통해 과감히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버려야 할 것이다.
2.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
이러한 기존의 연역적 시 쓰기 방식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귀납적 방법이다.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은 연역적 방식과 접근법에서 상반적인 방향성을 갖는다. 연역의 추리는 그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귀납적 추리는 전제와 결론 사이에 필연성이 없다. 귀납적 추리는 그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 낼 때 개연성(꼭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개 그러리라고 생각되는 성질.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의한 귀납적 비약이 반드시 따른다. 이러한 논리학의 논리가 시에 도입되어 활용될 때는 연역적 전개의 반대적 방향성을 갖는다.
귀납법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을 통해 일반적인 원리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예) 사람은 죽는다. -구체적 사실
소도 죽는다.
돼지도 죽는다.
개도 죽는다.
사람, 소, 돼지, 개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동물은 죽는다. -추론(일반적 원리)
다시 말하면 연역법은 일반적 원리를 근거로 구체적, 개별적 문제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귀납법은 구체적, 개별적 사실들을 논거로 하여 일반적인 원리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은 연역법의 대전제와 같은 의미, 철학성, 교훈성, 유희성 등을 세우기 이전에 관찰적 근거들을 모으듯 이미지를 뽑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먼지라는 소재를 통해 시를 쓴다면, 연역적 방법은 ‘먼지를 통해 인간은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는 주제성을 통해 접근한다든지, ‘먼지로 인한 폐해’와 같은 문제성으로 출발할 것이다. 하지만 귀납적 방법은 먼지라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관찰적 근거가 되는 주변 이미지를 뽑으라는 것이다. 먼저 유사한 이미지들로 모래, 재, 진드기, 꽃가루 등을 찾았다면, 인접성의 이미지 침대, 방, 진공청소기, 걸레 등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상징적 이미지인 사람, 별, 나뭇잎, 구름 등을 찾아 순서를 정한다.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은 확장된 이미지, 팽창된 의식에서 집중된 이미지, 집약된 의식으로 가는 수축의 과정이다. 먼지와 연결된 이미지가 세상엔 무수히 많다. 이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을 취사선택하여 집약된 정서적 논증을 이루어야 한다.
⑴ ‘먼지’를 소재로 한 구체적 시 쓰기 방법
먼지라는 소재를 대상으로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먼저 먼지에 대한 책을 한 권 정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먼지에 대한 기본 지식이 갖추어진 다음에 이미지를 뽑게 되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이미지들을 뽑을 수 있다. 인간은 아는 만큼 생각하고 아는 만큼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시를 쓰면서 논문이나 책을 통해 그에 연관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또한 한 편의 시 속에 책 한 권 분량의 지식과 상징을 압축할 수 있다면 대단한 시가 될 것이다. 한 줄 문장 속에 책 한 권을 압축하기 위해선 상징적 이미지의 활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상징적 이미지 속엔 천년 은행나무의 씨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최대한 많이 뽑을수록 좋다. 그것을 다 활용하지 않아도 연관된 사고의 확장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뽑은 이미지에 대한 문장 만들기
뽑은 이미지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 때는 벌이 꽃에서 단물을 빨아 몸에서 침과 함께 숙성시켜 꿀을 생산해 내듯 그 이미지를 자신의 경험과 정서적 지식을 통해 숙성시켜 시적표현으로 토해내야 한다. 그래서 똑같은 이미지라도 시인마다 다르게 표현되며, 다른 맛과 색깔을 나타낼 수 있다. 그렇다면 먼지에 대해 유사성, 인접성, 상징성으로 뽑은 이미지를 가지고 나의 정서적 사고의 숙성을 통한 문장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꽃가루: 꽃 입술에서 나온 꽃가루들이 거울 같은 세상을 지운다.
화산재: 성층권까지 치솟는 분노의 화산재.
모래: 변심한 애인의 모래바람.
중금속 입자: 중금속으로 살던 입자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나를 깨운다.
석면가루: 석면가루의 말들이 진폐증을 일으킨다.
진드기: 진드기나 박테리아들과 한 이불 덮으며 살아도
침대: 침대 밑 쥐며느리나 개미들처럼 껴안지 못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책상: 책상 위에 쌓인 중금속들이 비둘기로 날아간다.
창문: 유리창에 달라붙은 꽃가루들이 자동차가 되어 달린다.
나: 나는 몇 억만 년 전에 피어난 소금방울이고 화산재였나.
벽: 벽을 통과해 내 몸 속에 둥지 틀고 먼지들이 기침을 한다.
구름: 구름방울, 빗방울로 살다가 지상 위에 날개를 접는다.
별: 반짝이는 먼지들로 가득한 은하계에 바람이 인다.
화장터 연기: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는 내 안의 미립자들.
지구: 먼지별에 가득 찬 먼지들 서로 껴안고 몰려다닌다.
노을: 굴절과 산란을 만들며 노을처럼 흩어진다.
빛: 나뭇잎마다 수북이 쌓이는 빛
⑵ ‘먼지’를 소재로 한 시 쓰기의 완성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문장들을 적절히 배합하고 배치하여 한 편의 시로 만들면 되는데, 하나하나의 문장이 거의 독립적이기 때문에 배치순서가 달라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거나. 사고의 대소, 현실과 이상 등의 차이에 의해 다르게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서 부족한 부분들은 좀 더 보충하여 매끄럽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음의 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 나름대로 완성한 시이다.
먼지 보고서
먼지별에 가득 찬 먼지들 서로 껴안고 몰려다닌다.
바람의 미세 혼령들 한통속으로 몸을 드나들며 구름을 일으킨다.
성층권까지 치솟는 분노의 화산재
변심한 애인의 모래바람
꽃 입술에서 나온 꽃가루들이 거울 같은 세상을 지운다.
불을 피우고, 물을 뒤집어쓰며 풀풀 먼지만 피우다가
연기로 사라지는 미세먼지들
벽을 통과해 내 몸속에 둥지 틀고 기침을 한다.
어젯밤 꿈으로 분해된 초미세먼지의 빙의
아 무서워, 현실의 악몽들은
중금속으로 살던 입자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나를 깨운다.
분해결합하며 공간 이동한 에어로졸들은 또 거미가 되고 세균이 되겠지.
진드기나 박테리아들과 한 이불 덮으며 구름방울, 빗방울로 살다가
아지랑이처럼 흩어질 내 안의 미립자들
쥐며느리나 개미들처럼 껴안지 못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책상 위에 쌓인 중금속들이 비둘기로 날아간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꽃가루들이 자동차가 되어 달린다.
나는 몇 억만 년 전에 피어난 소금방울이고 화산재였나.
석면가루의 말들이 진폐증을 일으킨다.
메트로놈의 파장이 엔진을 돌린다.
먼지로 왔다가 먼지로 돌아가는 날개들의 소리 없는 퍼덕임
굴절과 산란을 만들며 노을처럼 흩어진다.
반짝이는 먼지들로 가득한 은하계에 바람이 인다.
나뭇잎마다 수북이 쌓이는 빛.
(먼지보고서 전문/ 김기덕)
3. 귀납적 시 쓰기 방법에 있어서의 표현 문장 만들기
귀납적 방법의 관찰적 근거들로 찾은 이미지들은 완성된 시의 정서적 증명을 위한 핵심요소들이다. 이 핵심적 근거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시의 정서적 증명을 위한 표현의 방식이 달라진다. 하나의 문장 속엔 이미지의 뼈를 세우고 생동하는 활력의 살을 붙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이미지가 있는 명사를 선택해야 한다. 관념적 명사를 제외시키고 이미지적 명사를 주어로 해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말씀보다는 성경을, 권력보다는 총과 칼을, 사랑이라는 관념보다는 하트나 눈물 같은 이미지를 문장의 주어로 써야한다. 이러한 사물적 단어를 주어로 끌어오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사물 속에 이미 담겨 있는 관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은 사물 속에 담긴 죽은 관념을 봐서는 안 된다. 그 관념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어야 하며 자기만의 깨달음, 의미 부여가 되어야 한다. 빨간 신호등은 정지를 나타낸다. 이 정지의 관념은 누구나 다 아는 관념이기 때문에 이 관념을 염두에 둔 빨간 신호등을 끌어온다면 이미 죽은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빨간 신호등은 신선한 시의 이미지를 쓰기 위해선 새로운 관념의 옷을 입혀야 한다. 내 앞에 켜진 빨간 신호등은 나의 관점에서는 정지이지만 다른 방향에 있는 차들의 관점에서는 소통이 될 수 있다. 이렇듯 하나의 사물을 끌어와 문장의 주어로 쓸 때는 새로운 관념의 차원을 생각해야 한다.
시에서의 핵심적 문장은 주어+동사의 문장이다. 이미지로 선택된 사물의 주어에 어떤 동사를 배치해야 살아있는 표현이 될까? 시는 결국 언어로 그린 사물적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인간 정서를 표현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사물적 그림을 그리되 그 그림 속에서 인간적 정서를 느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사의 쓰임이 더욱 중요하다. 만약에 먼지라는 이미지의 사물을 선택했다면 먼지를 주어로 해서 동사를 배치할 때 인간적 정서가 있는 동사냐 아니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먼지들이 떠다닌다.’라는 문장과 ‘먼지들이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닌다.’라는 문장은 차원이 다르다. ‘먼지들이 떠다닌다.’라는 문장은 1차원의 문장이라면 ‘먼지들이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닌다.’라고 하면 2차원, 3차원의 의미를 갖는 문장이 된다. 그래서 동사의 정서적 배치는 시의 상징적 관계를 만들며 다양한 해석을 갖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인들이 인간적 정서의 연결고리가 있는 동사를 사용하지 못하고 1차원적인 주어에 대한 서술만을 하기 때문에 표현의 문장 만들기에 실패하곤 한다. 몇 가지 인간적 정서의 연결고리가 있는 동사의 사용에 대한 예를 든다면 ‘달이 밝다’는 ‘달이 웃는다’로, ‘낙엽이 진다’는‘낙엽이 투신한다’로, ‘별이 반짝인다’는 ‘별이 윙크한다’와 같은 표현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이미 활유법이라는 방법으로 사용되어 온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의 문장을 씀에 있어서는, 즉 사물적 언어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활유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적 동사를 사용할 수만 있다면 증명하고자 하는 정서적 결론을 쉽게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서적 문장 표현에는 동사의 활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깨동무한 먼지’, ‘웃음 짓는 달’, ‘투신하는 낙엽’ 등과 같이 직접 주어를 꾸며줄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큰 틀에서 동사의 활용방법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미지의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이러한 표현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표현은 사물로 바꾸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과 사물은 공존하고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하나의 그림 속에 넣을 수 있지만, 심층적 조화와 고도의 상징적 표현을 위해선 사람을 사물로 변환시켜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물로 변형된 인간이 아닌 존재로 시에서의 등장은 사물과 인간의 경계를 긋고, 의미가 드러난 관념 쪽으로 이끌 수가 있다. 예를 든다면 ‘여자가 서있다’라는 문장에서 여자를 사물로 바꾸어 준다면 ‘느티나무 같은 여자가 서있다’와 같이 바꾸어줄 필요가 있다. 여자를 사물로 바꾸어주는 과정에서 직유든, 은유든, 상징이든 상관없다. 단지 감쪽같은 접합을 위한 언어적 풀질의 테크닉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느티나무 같은 여자’든, ‘느티나무 여자’든, ‘느티나무’든 그것은 시인의 역량에 따라서,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내가 근골의 팔을 내보인다’라는 문장도 표현의 문장으로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플라타너스 같은 사내가(플라타너스 사내가/ 플라타너스가) 근골의 팔을 내보인다’로 사내를 사물로 바꾸어준다면 자연스런 언어적 표현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근골의 팔을 내보인다’라는 표현에서도 이미 사내는 나무로 변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근골’이란 단어 자체가 뿌리와 뼈를 접합시키는 이미지이며, ‘근골의 팔’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자연적 사물을 인간적 정서와 연결시킨 표현이기 때문이다.
4. 귀납적 시 쓰기의 결론
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은 기존의 수목적 사고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유목적 사고의 방식을 추구하는 구체적 방법 중에 하나이다. 사고는 흐름과 방향성을 갖는다. 그 흐름과 방향성은 그냥 놔두면 관습적인 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항상 땅으로만 떨어진다. 시에서의 사과는 땅이 아닌 하늘로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관습적 사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뻗어 온 우리의 사고, 시적 전개의 방식을 과감히 탈피하여 잎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뿌리로 접근하는 방식의 추구가 바로 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이다. 내가 무엇에 대해 시를 쓸 것인가 하는 대전제를 세우고, 많은 이미지와 스토리를 끌어와 작자의 의도대로 정서적 결론을 이끌며 도출하던 시의 방식에서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 이미지든 사건이든 시적 대상을 잡았다면 먼저 이미지를 뽑고, 이미지적 문장을 통해 언어의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독자들이 생각하고 유추해 갈 수 있는 시를 써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표현적 문장을 자유롭게 배치하고 조합하는데 묘미가 있다. 하나의 화폭에서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린다고 가정할 때는 나름대로 그리는 순서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들이 분해되어 재구성 될 때는 순서가 필요 없다. 여러 가지 관찰적 근거들이 모여 하나의 사실을 증명하듯 나름대로 주제성을 느끼며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주제적 큰 틀을 표현하고 정서적 증명을 위해 연관된 많은 사실적 근거의 이미지를 찾고, 이미지들을 인간적 감성의 연결고리가 있는 동사들로 표현의 문장을 만들어 뒤섞인 퍼즐적 조합을 통해 시를 썼을 때 독자들은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은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귀납법적인 방법에 의한 표현적 시 쓰기는 식상해진 관념적 시의 탈피를 위해 도전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의 생명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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