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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 시학 흐름 자료 두편[ 스크랩]
2018년 10월 19일 16시 50분  조회:882  추천:0  작성자: 강려
보들레르는 라바테르로부터, 특히 스웨덴보르그로부터 이끌어낸 ꡐ유추ꡑ라는 추상적 개념에다가 ꡐ상징ꡑ과 ꡐ상응ꡑ이라는 보다 직접적으로 시적인 이론을 결부시킨다. 그는 또한 <낭만주의 예술>이라는 글에서 스웨덴보르그와 라바테르를 직접 언급하면서 자연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정신계에 있어서도 상응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다 뚜렷이 강조한다.
  
  더구나 훨씬 더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스웨덴보르그는 일찌기 하늘이 하나의 거대한 인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바 있다. 그리고 또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정신계에 있어서도 형태, 운동, 수, 색깔, 향기 등 모든 것이 의미 깊고 교호적이고, 상호 봉사적이고, 상응적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바 있다. 사람의 얼굴에 우주적인 진실이 나타나고 있음을 국한시켜 살폈던 라바테르도 우리에게 윤곽, 형태, 차원의 정신적 의미를 밝혀준 바 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욱 긴밀히 보들레르의 상응 이념에 결부되는 사람으로는 푸리에와 죠셉 드 메스트르를 들 수 있다. ꡒ자연은 하나의 언어다ꡓ라고 말한 푸리에와, <성 페테르브르의 야회>에서 ꡒ감각적 법칙이면서 정신적 법칙을 지니고 있지 않은 어떤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감각적 법칙이란 정신적 법칙의 가시적 표현에 불과하다ꡓ고 말한 죠셉 드 메스트르의 주장은 보들레르로 하여금 시적 또는 미학적 ꡐ초자연주의ꡑ에 대한 확신을 보다 강하게 갖게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보들레르는 이러한 초자연주의에다 카발라비법의 계시나 플라톤의 이데아의 이념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ꡐ무덤 저너머에 있는 기적들에 대한 환희에 찬 통찰력ꡑ을 보다 확고하게 믿게 만든 것은 <시의 원리>의 저자인 에드가 포우이다. 보들레르는 1859년에 쓴 테오펄 고티에에 관한 유명한 글에서 자신의 시적 신념을 표명하기 위해 에드가 포우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그대로 빌려 온다.
  
   미를 향한 바로 이 경탄스럽고 영원불멸한 본능으로 해서 우리는 이 ꡐ대지ꡑ와 거기에 펼쳐지는 장엄한 광경을 마치 하나의 전체적인 포착, 혹은 ꡐ하늘ꡑ의 상응처럼 바라보게 된다. 저너머에 존재하는 모든 것, 삶이 환기시키는 모든 것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갈망은 우리의 불멸성을 증명해 주는 가장 활기찬 증거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무덤 저너머에 있는 찬란함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도 시에 의해서, 그리고 시를 통해서이고, 또 동시에 음악에 의해서,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들레르가 이들 신비사상가들이나 시인들로부터 ꡐ철학적으로ꡑ 영향을 받아 상징의 시학을 수립하게 된 것으로 쉽사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 보들레르는 그의 시를 통해서 ‘상징ꡑ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악의 꽃들>에서 ꡐ상징ꡑ이라는 말이 직접 나오는 시는 <상응>, <시떼르 섬으로의 여행>, <작은 노파들> 등 세 편에 불과하다. 그는 차라리 ꡐ상징ꡑ이라는 낱말보다는 ꡐ알레고리ꡑ나 ꡐ상응ꡑ이라는 낱말을 더 즐겨 사용하고 있다. 엄정한 의미에서 그에게 상징주의라는 말을 적용하고자 한다면, 알프레드 드 비니가 말하는 ꡐ상징적 전이ꡑ와 같은 의미 밖에는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보들레르에 있어서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넘쳐 흐르는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조화의 직조물, 알레고리의 편물, 상응의 그물을 재료로 하여 ꡐ깊고 어두운 통일성ꡑ을 꿰뚫어 보는 일이다. 가장 빼어난 상징시학의 이론이며 동시에 선언이기도 한 저 유명한 소네트 <상응>을 읽어보면, 보들레르가 추구하고자 한 ꡐ상징의 숲ꡑ의 두 개의 기본적인 축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은 수평적 상응과 수직적 상응이라는 기하학적 은유의 축이다. 가로좌표로서의 수평적 상응은 비교 및 은유와 같은 수사법을 통해 언뜻 보기에는 서로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요소들을 서로 접근시키고 화해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시 <상응>의 중심부를 이루는 6행의 시귀는 전형적인 공감각 세계의 놀라운 변주를 보여주면서 지극히 조화로운 상호적 유추관계를 이룬다.
 
 
어둠처럼 빛처럼 광막한
   깊고 어두운 통일성 속에서
   아스라히 뒤섞이는 긴 메아리처럼
   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답한다.
   어린아이 살결처럼 싱그러운 향기, 오보에 소리처럼
   부드러운 향기, 초원처럼 푸르른 향기가 있다.
  
   세로좌표로서의 수직적 상응은 수평적 상응과는 달리 훨씬 더 절묘하고 본질적이다. 수직적 상응에 있어서는 감각적 현실의 흩어져 있는 요소들을 서로 접근시키고 화답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요소들이 지니는 의미가 천상적인 계시나 정신적인 신성함을 지닐 수 있게끔 어떤 지고한 합일의 상태, 즉 열광의 절정 상태에까지 고양시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소네트의 마지막 4행의 시귀는 이같은 ꡐ확신ꡑ과 ꡐ열광적 전이ꡑ를 역동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또한 썩고, 풍부하고, 호기로운 향기
   무한한 것들의 확산을 지니면서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정신과 감각의 열광을 노래하는 향기도 있다.
  
   이러한 보들레르의 상응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그의 주목할 만한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외계의 자연을 ꡐ아날로지의 거대한 저장고, 일종의 상상력의 자극제ꡑ로 간주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ꡒ가시적 세계는 시인의 상상력이 그것들에게 제각기 알맞는 자리와 가치를 부여하기를 기다리는 이미지와 기호들의 저장고일 뿐이며, 그것은 상상력이 먹어서 소화하여 다른 것으로 변형시켜주지 않으면 안될 일종의 목초지인 것이다.ꡓ
   그러기 때문에 보들레르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상상력의 역할이다. 그는 1856년 1월 21일자 알퐁스 뚜스넬에게 보낸 편지에서 ꡒ상상력이 기능 중에서 가장 과학적인 것ꡓ으로, ꡒ이 기능의 여왕으로서의 상상력을 소유한 사람, 즉 참다운 시인만이 가시적인 것과 물질적인 대상 뒤에 숨겨진 깊은 의미를 번역하고 해독할 수 있다ꡓ고 쓰고 있다. 우주만상이 상형문자이지만 그 뜻을 해독할 줄 아는 사람(시인)에게는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해독력이란 지식의 영역이 아니고 합리적인 사고를 초월한 ꡐ거의 초자연적인 어떤 영혼의 상태ꡑ에 도달한 시인의 투시력에 속한다. 그러한 영혼의 상태에서 시인은 ꡒ향기와 빛깔과 소리가 서로 화답하는ꡓ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ꡐ어둡고 깊은 통일성ꡑ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스웨덴보르그, 호프만, 라바테르, 네르발, 발자크 등에 의해 개발된 신비주의의 전통을 참조하여, 그렇지만 스스로의 상상력을 희생시킴이 없이 <상응>의 소네트를 씀으로써 상징주의의 시조가 된다. 이 유명한 상응의 시학은 보들레르의 자연관과 우주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1890년대의 상징파 시인들과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이론의 복음이 되었을 뿐 아니라 20세기의 후계자들의 시창작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1924년 <보들레르의 위치>라는 제목으로 행한 한 강연에시 발레리는 ꡒ베를렌느나 말라르메 그리고 랭보가 결정적인 시기에 <악의 꽃들>을 읽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누렸던 위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ꡓ 라고 단언한 바 있다. 이는 보들레르가 상징주의 시의 제 2세대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는 세 시인들에게 끼친 영향의 깊이를 말해 준다.
   마르셀 레이몽이 <보들레르에서 쉬르레알리즘까지>에서 명쾌하게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발레리 역시 보들레르를 근원으로 해서 두 개의 줄기로 흘러 내려가는 계보를 그려 보여준다. ꡒ베를렌느와 랭보가 감성과 감각의 질서 속에서 보들레르를 이어 받았다면, 말라르메는 완벽성과 시적 순수성의 분야에서 보들레르를 신장시켰다.ꡓ 이 두 가닥의 계열은 다같이 <악의 꽃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한편에서는 ꡐ여행ꡑ의 시인인 보들레르가 그 입구에서 멈추어 선 ꡐ심연의 밑바닥ꡑ에까지 내려가보려는 모험을 감행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존재와 세계의 신비를 언어로 번역하고 암시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전자는 말할 것도 없이 베를렌느, 랭보, 로트레아몽, 초현실주의 시인 등의 ꡐ연금술사들ꡑ을 가리키며, 후자는 말라르메를 비롯한 상징파 시인들과 발레리 등의 ꡐ예술가들ꡑ을 가리킨다.

http://cafe.daum.net/beautiful926/Cu9L/504?q=

상징주의/ 보들레르 시학의 흐름 
 
 
1. [상징주의] 상징주의 시학의 성립... 
 
서구 상징주의 시학의 성립과 전개 
 
─ 보들레르 시학의 흐름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시의 주요 흐름을 특징짓는 상징주의가 무엇인가를 엄밀한 말로써 정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상징주의는 흔히 그것을 보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알카의 용에 비유되는 매우 종잡기 어려운 사조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폴 발레리의 다음과 같은 정의가 상징주의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규정하는데 비교적 가까이 다가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ꡒ상징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미적 태도는 음악에서 자신들의 재산을 다시 찾아가겠다는 여러 집단의 시인들이(사실 그들 서로간의 의견대립 또한 대단하지만) 공통으로 지닌 의도라고 매우 간단하게 요약된다.ꡓ 그러나 이같은 발레리의 간단한 요약에도 불구하고, 문예사조로서의 상징주의에 대해 언급할 때, 그것의 성립 시기와 전개과정, 그리고 그 쇠퇴기를 명확히 구분하여 말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1936년 벨기에의 국영방송은 ꡐ상징주의 50주년ꡑ을 기념하는 소책자 《상징주의 1886~1936》의 간행을 기획하여, 당시 상징주의에 가장 정통한 시인으로 알려진 발레리에게 기고를 의뢰한 바 있다. 1936년이라는 해는 쟝 모레아스가 1886년 9월 18일자 《피가로》지에 이른바 <생볼리즘 선언>을 발표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러간 해이다. 상징주의 선언문의 발표 50주년을 기념하고자 하는 벨기에 방송 측의 시사적 기획의도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기는 하나, 이른바 모레이스 등이 벌인"상징파" 시인들의 운동을 상징주의 성립의 기점으로 삼는 것은 편협한 관점이다. 
 
 
 
'상징주의'를 "상징파"와 똑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쟝 모레아스를 비롯하여 르네 길, 스튜아트 매릴, 프랑시스 비엘레 그리팽, 귀스타브 칸 등 1880년 경에 활동한 군소 시인들에게 상당한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느, 말라르메를 단순한 선구자로서만 취급해 버린다면 상징주의 이해에 혼선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 1885년을 전후하여 일어난 일군의 젊은 시인들의 운동을 하나의 문학 유파로 규정하여 그것을 "상징파"로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의 상징주의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전개된 시적 이상주의의 방대한 흐름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심정토로의 낭만주의 문학에 대한 반동, 합리적 이성과 과학정신을 표방하는 실증주의와 결정론에 바탕을 둔 자연주의 문학에 대한 반동, 딱딱하고 고정되고 대리석같이 싸늘한 형식미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파로니스파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상징주의는 보들레르라는 한 혁신적인 ꡐ현대성ꡑ의 시인에 의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디게 된다. 따라서 상징주의의 기본적 성격과 이론적 핵심을 어느 정도 체계 있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징주의 시의 원점에 놓여 있는 보들레르 시학의 골자를 살펴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적이다. 
 
 
 
"삼라만상이 상형문자로 되어 있다" 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보들레르의 독특한 우주관은 1840년부터 그의 사상형성에 깊은 영향을 끼친 사상가들이나 신비주의 작가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맨 먼저 언급해야 할 사람은 에른스트 호프만이다. 보들레르는 이 독일 낭만주의 작가에게서 소리와 향기가 서로 화답하는 공감각 체계를 발견한다. 그는 미술평론 <1846년의 살롱>에서 호프만의 작품 <크라이슬레리아나>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 함으로써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상응의 이념을 간접적으로 피력한다. 
 
 
 
내가 색깔과 소리와 향기들 사이의 어떤 유추관계나 내적 결합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잠들기 전에 찾아오는 가벼운 혼미와 꿈 속에서 뿐만 아니라, 깨어 있을 때, 즉 음악을 듣고 있을 때도 가능하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 모든 것이 어떤 한 같은 광원(光源)에서 태어났던 것 같고, 그러므로 그것들은 어떤 한 협주곡 속에서 통합되어야 하는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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