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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의 구조-로만 야콥슨의 이론을 중심으로
2018년 10월 25일 16시 10분  조회:1512  추천:0  작성자: 강려
시의 구조-로만 야콥슨의 이론을 중심으로
 
 
 구조주의 사상을 우리가 다시 한 번 살펴본다면 소쉬르의 언어학에 영향을 받아 모든 것이 관계의 그물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나와 세계 자체의 본질은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중요한 것은 관계일 뿐이다. 하나의 기호가 기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며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듯이 구조주의적 관점에서는 대상과 대상들이 어우러지는 관계만이 중요하다. 우리는 세계의 본질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관계의 구조를 이해한다면 세계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을 문학에 적용한다면 언어에는 개별적인 언어인 빠롤과 달리 공통의 문법을 지닌 랑그가 존재하듯이, 하나의 작품에 있어서도 공통으로 존재하는 구조의 문법이 있다. 이러한 구조의 문법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처럼 글쓰기가 언어를 갈고 닥아 영혼을 보둥켜안는 고귀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러한 구조주의처럼 기분 나쁜 문학이론은 없다. 우리가 온밤을 꼬박 새워 쓰는 소설이나 수필 같은 산문에 무슨 철근과 골조를 쌓아 올라가는 콘크리트 건물 같은 구조가 있단 말인가? 서론, 본론, 결론이나 기승전결이 있는 산문의 경우 구태여 구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구성의 틀이 존재한다고 하자. 그러면 시의 경우는 어떠한가? 시의 경우에도 시를 시답게 만드는 단어와 단어, 또는 행과 행 사이의 어떤 구성의 틀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러나 어떤 이론이 ‘주의(ism)’ 라는 이름의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그러한 이론 속에 끼여 맞추려는 무리한 확장을 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모든 이론의 역사이다.
 
    
야콥슨 (1896∼1982)
- 러시아 형식주의자 중 한 사람인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은 러시아 출신으로 형식주의와 현대의 구조주의 사이에 중요한 연결고리를 마련하였다. 야콥슨은 1915년에 창설된 형식주의자의 집단인 모스코 언어학파의 지도자였다. 1920년엔 프라하로 이민 가서 체코 구조주의의 주요 이론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 뒤 다시 나치스를 피하여 1939년 스칸디나비아 제국을 거쳐 미국으로 귀화하였다. 그 후 모스크바와 프라하에서 언어학회를 결성하고 프라하학파의 창시자가 되었으며, 프라하대학교를 비롯하여 1967년 하버드대학교 및 매사추세츠공과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의 연구 분야는 일반언어학·시학·운율학·슬라브언어학·언어심리학·정보이론 등 여러 방면에 걸치는데, 그는 언어학과 인접과학과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주요저서로 《음성분석 서설―판별적 특징과 그 관련량(關聯量) Preliminaries to Speech Analysis》(1952, Morris Halle, G. Fant 공저), 저작집 《Selected Writings》(7권, 1962∼), "1942~43년 뉴욕에서의 강의록" 《Six Lectures on Sound and Meaning》(1976발간, 프랑스 Les Editions de Minuit 사 편집) 등이 있다.
 
  일찍이 러시아 형식주의 운동에 관여하고 10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 천재적 언어학자는 사실상 구조주의의 시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소쉬르의 언어학이 갖고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일찍이 간파하고 레비 스트로스나 자크 라캉 같은 학자들과 교류하며 구조주의라는 20세기 최고 흥행의 지적 흐름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러시아 형식주의 운동 초기에 일상 언어와는 달리 시적인 언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시란 일상 언어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이다라고까지 말하였다.  일상 언어가 의미를 전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면 시적 언어는 언어 자체로의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러시아 형식주의의 ‘낯설게 하기’의 개념을 계승한 것이다.
 
 1958년 발표한 <언어학과 시학>이란 논문에서 야콥슨은 언어의 기능을 여섯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언어 활동을 요소는 대체로 ①말하는 이, ②말 듣는 이, ③쓰여진 말 자체, ④말이 관계를 맺고 있는 관련상황, ⑤말이 쓰여진 분위기 내지 경로, ⑥ 사용되는 언어의 종류를 들 수 있다. 이를 도식화 하면 다음과 같다.
 
 
                 대상 ④
                    l
발신자 ① - 전언 ③(message)- 수신자 ②
                    l
               경로 ⑤ / 언어 ⑥
 
 
 이 여섯 가지 요소 중 어느 요소가 강조되느냐에 따라 언어의 기능이 여섯 가지로 분화된다. ① 정보적 기능, ② 표출적 기능, ③명령적 기능, ④친교적 기능, ⑤ 관어적 기능, ⑥ 미학적 기능(시적 언어는 여기에 속한다.)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젊은 사람이 쓰는 스마트폰을 보고 “저것이 새로 나온 삼성의 갤럭시 폰이야.”라고 말했다면 그는 4)의 대상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정보적 기능)
발신자의 언어가 수신자로 하여금 “커피 좀 타와.”라고 어떤 행위를 하도록 요구한다면 그것은 언어의 명령적 기능이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지난 번 쓴 글 참 좋았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언어의 어떤 기능에 속할까? 그러한 말을 지난 번 쓴 글(대상)에 대한 정보나 사실을 판단하는 정보적 기능으로 판단하고 기분이 우쭐해지면 곤란하다. 그것은 “오늘 날씨 참 좋죠?”라는 말처럼 상대(발신자)가 나(수신자)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언어의 친교적 기능에 속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요즘 안색이 좋아 보입니다.”라거나 “미스 김. 요즘 많이 예뻐진 것 같아.”같은 말들도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표시하는 언어의 친교적 기능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표출적 기능이란 언어를 통해서 발신자의 감정상태를 나타내는, 알 수 있는 언어를 말한다. 기분 나쁜 일을 보고 “쯧쯧...”하고 혀를 찬다든지 초조하여 자꾸만 “에헤~”하고 말을 끈다든지 하는 경우의 말이 이 경우에 속한다.
 
 그런데 야콥슨은 시의 언어는 언어의 6가지 요소 중 전언 자체(메시지)에 초점을 둔 언어라는 것이다. 여기서 메시지는 시의 내용이 아니다.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 그 자체이다. 시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언어가 자기자신과 일종의 자의식적인 관계에 놓임에 있다는 생각이다. 언어의 시적 기능은 기호들의 감각성을 증진시키고 기호를 단지 의사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적 특질에 주의를 모은다는 것이다. 시적인 것에서 기호는 그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즉 기호와 지시 대상 사이의 평상적인 관계는 깨지며 기호는 그 자체 가치대상으로서의 어떤 독립성을 허락받는다. 따라서 시적 언어는 어떤 상황에서 발신자가 왜 무엇을 말하는냐가 아닌, 단어들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유사성과 인접성
 
 야콥슨은 같은 논문에서 시적 기능은 선택의 축에서부터 결합의 축에로 등가의 원리를 투사한다라는 시의 구조에 관한 유명한 말을 하였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우선 그는 소쉬르가 하나의 문장을 이루는 구조를 분석한 선택의 축과 결합의 축이라는 개념을 빌어 왔다. 철수는 빵을 먹는다란 하나의 문장이 있다고 하자.
 
(철수)는 (빵)을 먹는다.
영희+ 과자+ 먹는다.
엄마+ 밥 + 먹는다.
 
 
 이러한 문장에서 철수나 빵 대신에 다른 단어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선택의 축이라고 한다. 소쉬르에 의하면 인간의 언어 행위는 이러한 선택의 ( )안에 다른 단어를 바꾸어 끼여 넣은 행위이다. 그런데 아무거나 바꾸어 끼어 넣는 것이 아니라 원래 관념과 유사한 것들(유사성에 의해서)을 끼여 넣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위의 예에서 철수 대신에 가족이라는 테두리 중의 영희나 엄마 등의 다른 사람을 끼여 넣을 수도 있고 빵 대신에 유사한 다른 먹을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빵 대신에 유사성이 없는 나무나 바위를 선택할 수는 없다. 또한 철수, 빵, 먹는다는 각각의 단어는 철수는 빵을 먹는다로 결합하여 하나의 문장(결합의 축)을 만든다. 이처럼 철수와 빵이 선택되면 빵이랑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는(인접성에 따라) 먹는다는 단어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야콥슨은 전통적인 수사법에서 은유는 유사성에 따른 선택이고 환유는 인접성의 원리에 따른다고 말한다. 잘 알다시피 은유는 수사법에서 하나의 관념을 다른 관념으로 대체시키는 것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나 노년은 인생의 황혼이다.‘라는 문장에서 호수는 마음의 은유이고 황혼은 노년의 은유이다. 이처럼 은유는 A=B로 표현할 수 있는 등가의 원리가 작용한다. 야콥슨은 이처럼 시란 단어와 단어가 결합될 때 등가의 원리에 따라 결합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환유는 어떠한가? 환유란 하나의 단어가 즉각적이고도 자연스럽게 다른 단어를 연상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인접성의 원리에 따르는 것이다. 나이프하면 포크가 생각나고 청와대하면 대통령이나 권력이 연상되며 머리를 빡빡 민 사람은 중이나 죄수가 연상되는 것과 같다. 또한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거나 특정한 기표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도 환유적 작용이다. 예를 들면 치마는 여자를 뜻하고, 펜은 글이나 지식을, 십자가는 기독교를 뜻한다. 이처럼 환유는 어떤 사물을 그와 관련 있는 다른 사물을 빌어 나타내거나, 기호로써 나타내는 것을 대신한다. 야콥슨은 주로 산문의 경우 환유가 많이 쓰인다고 주장한다. 산문이란 문장을 계속적으로 부가해 가는 글쓰기 방식인데 작가는 자기도 모르게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을 환유적 방식(인접성의 원리)에 의해 결합해 간다는 것이다.
 
 야콥슨은 1920년대 러시아 형식주의 운동에 관여하면서부터 필생에 거쳐 시만이 갖고 있는 구조를 밝히려는데 애를 쓰다가 40년 만에 겨우 하나 건졌다. 시는 선택의 축에서부터 결합의 축에로 등가의 원리를 투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시에 있어서는 유사성이 인접성에 덧붙여진다는 것이다. 단어들은 일상대화에서처럼 단지 그들이 담고 있는 의미 때문에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유사성, 대립, 병립 등의 패턴과 소리, 의미, 리듬과 함축에 의해 생겨난 패턴에 따라 결합한다. 어떤 문학형식들, 예를 들면 사실주의 산문은 연상작용에 의해 기호들을 결합하는 환유적인 경향이 있고, 낭만주의나 상징주의 시 같은 다른 형식들은 고도로 은유적이라는 것이다.
 
                                                                                              - 로만 야콥슨과 모리스 홀의 공저 <언어의 토대> 중에서
 
 야콥슨은 시는 기표들이 등가의 원리에 따라 병렬로 늘어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평행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그는 이러한 평행성의 원리가 기표뿐만 아니라 소리나 리듬에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 시에서 나타난 운율의 반복현상을 고찰한 홉킨슨의 논문을 인용하여 홉킨슨이 파악한 압운이나 각운 등이 시에서 반복되는 병행성은 시에서 쓰이는 단어뿐만 아니라 소리나 리듬 또한 등가의 원리(기능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기능의 반복, 즉 평행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라 주장한다. 드디어 확고부동한 시의 구조를 밝혀냈다고 흥분한 야콥슨은 1962년 레비 스트로스와 공동으로 보들레르의 <고양이들>이란 시를 구조주의적 관점으로 분석한다. 이 논문은 프랑스 비평계에 <고양이 논쟁>을 불릴 정도로 화제를 일으켰지만 도대체 전문가들이 아니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분석이 비평으로서 무슨 의미를 갖는가는 비판을 받는다.
 
 
평가 및 비판
 
 로만 야콥슨의 최대 공적은 그가 최초로 언어의 기능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언어를 메시지를 매개로 한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소통으로 파악한 그의 이론은 오늘날 문학비평뿐만 아니라 매스 미디어에서 상품 광고에까지 여러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그리고 은유와 환유의 연구를 통하여 그것이 단순한 수사법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 구조의 본질적인 측면에 속한다는 것을 밝힘으로서 구조주의라는 사상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언어학 분야의 지대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론은 너무 무리하게 이론을 적용한 것이 아닐까? 시는 선택의 축에서 결합의 축으로 등가성의 원리가 투사한 것이라는 그의 시론은 시를 지나치게 은유적인 것으로만 보는 문제점이 있다. 환유에 의한 시는 시가 아니가? 또한 음악성이 배제된 산문시는 시가 아니란 말인가? 그의 은유와 환유 이론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은유와 환유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표현에서 마음과 호수는 은유이지만 이런 은유는 너무나 많이 쓰여 이제는 은유로서의 가치를 잃고 환유에 가까운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은유라도 상투적으로 많이 쓰이면 오히려 인접성에 따른 환유적인 것으로 되어 버린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결국 어떠한 가치라는 것은 불변의 것이 아니고 시간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 역사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를 등가성의 원리로 병렬한 것 이라는 그의 이론에 따라 모든 기표들을 등가성의 원리에 따라 병렬했다고 해도 어떤 것은 시가 되고 어떤 것은 시가 안 되는 것을 그의 이론은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시가 되고 시가 안 되는 것은 시의 내부(구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외부에 존재하는, 시를 읽는 독자의 가치판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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