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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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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하이퍼시론

하이퍼시에 대한 이해 / 정 신 재
2018년 11월 06일 18시 26분  조회:1190  추천:0  작성자: 강려
 

하이퍼시에 대한 이해

 

정 신 재

 

“얼마나 많은 기차가 지나갔는지/ 얼마나 많은 이별을 했는지/ 낡은 침목은 가끔 쿨럭거리고/ 날것의 비를 온종일 맞은 침목처럼/ 갈비뼈는 평생 울음을 받치고 있었다/그 새벽 기차 소리 듣는 사람은/ 소리가 시나브로 사라질 무렵/ 한 가지 깨닫는 게 있다/ 더 이상 기차가 가슴 위를 지나지 않을 때/ 마지막 승객이 내가 된다는 것/ 철커덩철커덩 기차가 멀리 떠나고 소리 잠든다/ 아직 새벽이다”(이성주,「기차 떠나는 새벽」에서)

 

사람들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한다. 그곳은 미지의 세계일 수도 있고,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일 수도 있다. 우리가 창작을 하는 것은 현실을 닮은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한 고독과 사색의 경험도 포함된다. 그곳에 가면 진실과 진리와 아름다움이 놓여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내가 모두(冒頭)에서 이성주의 「기차 떠나는 새벽」을 인용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낡은 침목은 가끔 쿨럭거리고/ 날것의 비를 온종일 맞은 침목처럼/ 갈비뼈는 평생 울음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같이, 지금 우리들의 갈비뼈는 실재(實在)에 가 닿기 위한 창작열로 불타고 있다. 우리가 왜 전국 각지에서 비싼 돈을 들여가며 여기에 모여 있는가. 그것은 단지 하나 문학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문학이 우리를 미치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 모여서 우리는 각자 그동안 쌓아 두었던 고독의 짐을 풀어 놓고 영혼을 전율시키는 감동을 찾아 그것을 독자들에게 실어나르기 위해서 잠시 정거장에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독자들과의 소통을 찾아나서기 위한 기착지(寄着地)라 할 만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간 구원과 존재의 본질을 찾아나서는 창작의 길이 쉽지  않음을 실감할 것이다. 그것은 문학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전철을 타거나 길거리를 걷다 보면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나 갤럭시를 보는 데 익숙하고, 맛집이나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데서 쾌락을 맛보기도 한다. TV 시청자들은 리모콘을 들고 보다 재미 있는 프로를 찾아 채널 돌리는 데에 익숙해 있다. 이제 전철에서 책을 보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이에 따라 문학은 몇몇 유명 문예 잡지를 제외하고는 온라인 문학 카페에 정착하기도 한다.

달라진 것은 비단 문인들의 모임만이 아니다. 문학 양식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시에 소설적인 이야기나 대화가 들어가는가 하면, 극적 구성이 짜여지기도 하고 소설에서 시나 소설적인 요소가 나타나기도 한다. 장르의 탈경계나 가로지르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의 음보만 보더라도 예전의 3,4음보보다 훨씬 긴 음보가 유행하고, 아예 산문율로 이야기나 대화가 전개되기도 하며, 극단적이거나 엽기적인 행위가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서 형이상학적인 것과 형이하학적인 것이 컨시트로 엮어지거나, 현실과 환상이 하이퍼링크로 연결되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기법들이 문예 잡지사마다 특징을 가지고 자리잡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하이퍼시를 소개하려 한다.   

 

하이퍼텍스트는 단편적인 정보와 정보를 연결하는 하이퍼링크(hyperlink)를 통하여 정보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텍스트에 그림이나 밑줄친 부분을 마우스로 누르면 다른 텍스트가 연결되어 화면에 나오는데 이렇게 다른 텍스트로 연결하여 주는 것을 하이퍼링크라 하는데,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쌍방향성 복수의 텍스트 전체가 하이퍼 텍스트가 된다.

하이퍼텍스트는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유통의 지식, 성장하는 지식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연결 고리는 리좀(rhizome)의 사유에 닿아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수목(tree)형과 대비시켜 리좀 개념을 제기한 바 있다. 리좀은 우리말로 근경(根莖)이나 뿌리 줄기에 해당한다. 줄기가 마치 뿌리처럼 땅속을 파고들어 사방팔방으로 소통하면서 뿌리와 줄기의 구별이 모호해진 상태를 말한다. 수목의 개념이 계통화되고 위계화되는 방식에 있다면, 리좀의 개념은 통일되거나 위계화되지 않은 복수성과 이질성에 있다. 리좀은 새로운 접속과 창조가 이어지면서 열린 사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리좀은 원줄기를 가지고 있으나 수만 갈래의 뿌리 줄기와 네트워크화를 이루고 있어 원줄기와 단절되어도 생명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리좀은 탈중심성, 탈고정성, 탈유한성을 지향하는 담론에서 즐겨 비유된다. 리좀은 이성적 사유, 전통적 시적 주체를 해체하고 시인과 독자의 소통 구조를 단선적 구조에서 다양한 해석 체계로 전환시켜 주고 있다.

리좀적 사유를 담고 있는 하이퍼시는 시어 혹은 시행을 따라가다 보면 시적 주체가 더욱 탄탄해진다. 좌충우돌하는 듯한 이미지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교차되면서 더욱 탄탄한 의미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시는 생명을 얻고 이미지는 성장을 한다. 초현실주의시들이 이미지조차 단절시키고 있는 데 비하여, 하이퍼시는 이미지의 새로운 결합을 보여준다. 하이퍼시는 첫 시어의 이미지와 이어지는 이미지가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절은 영구한 단절이 아니라 또다른 연결고리를 위한 일시적인 단절이다. 결국 그 연결망은 한 편의 작품에서 충실한 의미를 가진다. 하이퍼링크를 통하여 정보가 단단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이퍼시가 가진 의미의 단단함과 주제의 생명성은 하나의 주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해석, 즉 다양성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의 행은 끝이 나도 이미지의 구성은 끝나지 않고 독자들을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래서 언어적 유희, 발랄한 상상, 재빠른 이미지의 전환 등과 같은 요소들이 비틀어짜기로 결합될 수 있다. 

심상운은 「하이퍼시의 창작 방법」(<시문학>, 2008.10)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 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 현실의 보여주기는 갈등 구조인 소설적 서사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떠한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되었다.

8)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의 이중 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를 보면 하이퍼시는 초현실주의시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초현실주의시가 의식과 무의식 간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이미지와 이미지, 현실과 상상, 행과 행, 구절과 구절이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제시하고 두 사물 간의 거리를 멀게 함으로써 상상의 힘이나 의미의 다양성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하이퍼시는 사물 간, 이미지 간 거리가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의식과 무의식, 존재와 존재, 사물과 언어가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어 있음을 특징으로 한다. 이를 이성주의 시를 통하여 살펴보자.

 

어머니 나를 물에 빠트린다

괘씸한 년, 말 없는 손이 무겁게 짓누른다

수초를 뒤집어 쓴 어머니

나를 잡아끌었다, 떨칠 수 없이

엄마, 나는 물에 젖어 울었다

사람들이 명당이라고 말한

송추松楸는 시름시름 앓았고

차오르는 물보다 더 빠르게

아파트에 둘러싸인 섬이 되었다

 

유택幽宅으로 향하는 길목

번번이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나도 이끼로 덮여갈 즈음

내 몸에 꼭 맞는 수의 하나 맞췄다

물에 잠겨 퉁퉁 분 몸으로

관 속에 들어갔다

 

다시 찾아오지 않는 어머니

물은 바닥을 다 드러내고

어머니 안녕하시다

 - 이성주,「이장移葬」전문

 

이 작품에서는 죽은 어머니와 산 화자가 하이퍼링크로 만나고 있다. 여기서 죽음은 슬픔으로만 고착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화자를 “물에 빠트”리는 악마도 될 수 있고, 화자는 어머니와 놀아주는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 이때 무덤은 놀이의 공간이 되고, 물은 두 존재를 맺어 주는 수단이 된다. 놀이는 화자가 관 속으로 들어가는 입관의식으로까지 발전한다. “나도 이끼로 덮여갈 즈음/ 내 몸에 꼭 맞는 수의 하나 맞췄다/ 물에 잠겨 퉁퉁 분 몸으로/ 관 속에 들어갔다”.

이 작품에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만나는 꿈 장면과 “아파트에 둘러싸인 섬”(무덤)을 다룬 현실이 하이퍼링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연결을 통하여 존재와 존재-화자와 죽은 어머니-, 존재 存在와 부재不在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는 죽음에 대한 기존의 편협한 시선을 해체하고 현실과 무덤의 경계를 넘어서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가져다 준다. 이는 하이퍼링크가 가져다 준 놀이의 방식이다.   

 

잘 익은 부사를 깎는다

둥글게 깎여나간 이란 꽃뱀 한 마리

쟁반에다 또아리를 튼다

 

과도에 내 손이 닿아 끈적끈적 달라붙는 군살

 

우리집 통유리창 틈으로 들어오다 보름달이 해체된다

초승달 하현달 반달 갈고리달 둥글게 머리 맞대고 모니터 앞에 앉아 부사란 단어를 검색중이다

사과의 한 품종으로서 당도가 높고 색깔이 붉다. 품사의 하나로서 한 문장의 특정한 성분을 꾸며주는 성분 부사(잘 매우 겨우 등) 그리고 문장 전체를 꾸며주는

문장부사(과연 설마 제발 등)”

 

내가 깎아낸 부사 쟁반을, 슬슬 기어다니는 붉은 꽃뱀을 만진다

미끈 소름이 돋는다

 

잘 깎은 내 얼굴, 속살이 달다

- 송시월,「사과를 깎으며」 전문

 

이 작품에서도 “잘 익은 부사”와 “문장 부사”가 하이퍼링크되어 있다. “부사”는 “꽃뱀 한 마리”와 연결되지만 “또아리를” 트는 사과 껍질을 연상하면 두 사물 사이가 단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지막 행에서 “잘 깎은 내 얼굴, 속살이 달다”도 “부사”와 단절되어 있는 것 같지만, “부사”의 둥근 모양과 사람의 둥근 얼굴이 환유의 관계 연결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자크 데리다, 자크 라캉 등을 비롯한 현대의 철학자들은 해체를 강조하여 왔다. 그것은 기표와 기의 간에 기존의 관계를 해체하여 존재나 사물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해체가 존재로 나아가는 다양한 의미를 표출한다고는 하지만, 존재나 사물이 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해체된 의미들이 엮어져서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결합이 요구된다. 하이퍼링크는 흩어져 있는 의미들을 모아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데 소용된다. 이미지나 사물의 단절과 결합은 생명력 있는 존재나 사물을 만드는 필요적절한 원리다. 이러한 원리는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 존재와 존재를 해체하고 결합함으로써 시에 생동감과 활력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하이퍼텍스트의 원리를 응용하는 것은 여러분의 권리이다. 

 

 

 

 

 

* 정신재 약력

                              

 1983년 1월 <시문학>지를 통해 문학평론으로 등단. 1992년 국민대에서 문학박사학위 취득. 제14회 문학평론가협회상, 제4회 이은상 문학상 수상. 현재 시인, 문학평론가.

저서-『

성과 광기의 담론』외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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