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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좀과 다양체 [스크랩]
2018년 12월 04일 14시 16분  조회:1100  추천:0  작성자: 강려
* 리좀과 다양체 


리좀 rhizome은 넝쿨식물의 땅속줄기이다. 리좀은 뿌리가 흔들리거나 뿌리에 말썽이 있으면 전체가 죽어버리는 수목arbolic적인 사유에 반대하는 의미로 쓰인다. “사유는 결코 나무 형태가 아니며, 뇌는 결코 뿌리내리거나 가지 뻗고 있는 물질” 이 아니기 때문이다.

넝쿨식물의 뿌리는 한 뿌리가 죽더라도 다른 뿌리로 살아낼 수 있다. 보통 넝쿨식물은 포기 나누기가 가능하고 넝쿨뿌리는 흙 아래로 뻗어내려 단단히 심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오히려 벽을 타고 얇게 사방으로 뻗친다. 넝쿨은 벽, 바위, 어디든 휘감는다. 넝쿨뿌리는 깊은 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작은 먼지에도 몸을 댄다. 뿌리가 썩은, 죽은 수목위에도 내뻗친다. 

리좀은 필연적으로 다양체이다. 리좀에게 있어서 뿌리는 중요한 기관이 아니다. 수목형 식물의 뿌리는 뿌리 내림과 뿌리박음 즉 움직이지 않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다. 여기 이곳에 머묾, 정적임, 부동성이 뿌리의 역할이다. 뿌리의 기능이 리좀에게 있어 중요하지 않는 까닭은 리좀은 여기 머묾이 아니라, 뻗침, 뻗어 내림 여기 저기 사방팔방으로 뻗침에 있기 때문이다. 리좀은 움직임이다. 리좀은 운동인가? 이행인가? 리좀은 이곳에서 저 곳으로 상승하는 저 곳을 향하기 위한 매개와 모순을 간직한 운동이 아니다. 리좀이 운동이라면 “이 운동, 운동의 본질과 그 내면성은 대립도 아니고 매개도 아닌 다만 반복일 뿐이다.” 리좀은 여기에 있고자 함 저기에 가고자 함 모두 아니다. 리좀은 에레혼Erewhon을 다룬다. 에레혼은 원초적인 부재의 장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여기를 어떤 마주침의 대상으로 “지금들과 여기들이 항상 새롭고 항상 다르게 분배되는 가운데 무궁무진하게 생겨나는” 언제나 새롭게 재창조되는 ‘지금, 여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좀은 여기-지금에 있거나 있지 않다. 

넝쿨식물의 뻗침을 리좀의 연결, 리좀의 접속이라고 부르자. 리좀은 만들고 부스고 연결하고 접속하는, 생물학적 의미를 넘어서 있는 야생적 다양체이다. 리좀은 형태가 미결정적이며, 접속의 양태에 따라 다른 존재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접혀있던 주름이 펼쳐진다. 그리고 개봉되면서 안주름진다. 

리좀의 접속과 연결은 일종의 코드 꼽기(plug in)이다. 그러나 리좀이 플러그 인인 것은 기본 동체에 부가적 기능을 추가하는 점에서라기보다는 평행적 배열이며 코드 꼽기를 통해 “어떤 되기”를 뜻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리좀은 기계와 같다. 리좀은 연결과 연결을 통해 연결들이 불어나는 기능적 측면에서 기계들이며, 기계들처럼 유기적이며 하나의 통일성과 체계성을 지니지 않았다. 무한한 연결이 가능하다는 점, 이것은 기계가 수행하는 절단과도 관련이 있다. 기계들은 절단들의 체계이다. 기계들이 절단하는 것은 흐름을 막고 있는 구조이다. 자름으로써 흐름은 흐른다. 절단이 흐르게 한다는 점에서 절단은 흐름의 연결이다. 

그래서 리좀, “다양체는 연결접속들을 늘림에 따라 반드시 본성상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배치물이란 이러한 다양체 안에서 차원들이 이런 식으로 불어난 것이다. 리좀에는 구조, 나무, 뿌리와 달리 지정된 점이나 위치가 없다. 선들만이 있을 뿐이다.” 리좀의 연결은 연결들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하나의 구조로 정착되지 않는다. 이 연결은 배열일 뿐이다. 

무한 증식이 가능한 리좀, 다양체에 있어서 나라는 말은 불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나라고 말하지 않는 지점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고 말하든 말하지 않던 더 이상 아무 상관이 없는 지점에 이르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움을 받았고 빨려 들어갔고 다양화되었다.” 

*그리고et 그리고 변주variation 

리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에 머물러서 이것은 무엇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식물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식물들은 뿌리를 갖고 있을지라도 언제나 어떤 바깥을 가지며, 거기서 식물들은 항상 다른 어떤 것, 예컨대 바람, 동물, 사람과 더불어 리좀 관계를 이룬다.” 우리는 무엇임, 항상 현재임과 같음에 묶여 있는 여기-지금이 아니라 언제나 바깥임 것과의 관계, 다른 것들에 대해 우리의 감각을 열어야 한다. 

무엇이다 라는 규정성은 어떤 유사와 유비 기원의 그것!과의 동일성을 통해서 확보된다. 왕권은 혈연을 통해 계승된다. 적자는 피의 고유성과 기원과 맺은 동일성의 함유량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나무는 혈통 관계이지만 리좀은 결연 관계이며 오직 결연 관계일 뿐이다. 나무는 -이다 etre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그리고et 그리고et 그리고et 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이 접속사 안에는 이다 라는 동사를 뒤흔들고 뿌리 뽑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 그래서 리좀은 항상 무엇임인 것을 뿌리 뽑는다. 리좀은 그리고를 통한 연결과 되기이다. 

“음악 형식은 단절되고 증식한다는 점에서도 잡초나 리좀에 비견될 수 있다.” 

리좀의 관심은 변주(variation)시키기. 변주는 반복이다. 일정한 선율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 반복은 재현이 아니다. 일정한 선율과 주제가 되풀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변주를 재현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변주는 주제에 새로운 성격을 덧붙여가며 변형시킨다. 변주는 다양함과 관련이 있다. 변주에 있어서 주제 선율이 되풀이 된다는 점, 이것을 존재의 일의성에 비견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제 선율보다 주제 선율을 변주하는 방식이 변주곡의 아름다움을 좌우한다. 주제가 일종의 테마라면 주제는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변주는 처음 시작했던 변주에서 각각 다시 들었던 변주가 겹쳐지며 반복된다. 바흐의 ‘푸가의 기법’ ‘토카타’와 마찬가지로 변주는 주제를 훨씬 풍성하게 해준다. 변주는 다시 돌아오는 하나의 목소리이다. “천 갈래로 길이 나 있는 모든 다양체들에 대해 단 하나의 똑같은 목소리가 있다. 모든 물방울에 대해 단 하나의 똑같은 바다가 있고, 모든 존재자들에 대해 존재의 단일한 아우성이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먼저 각각의 존재자와 각각의 물방울은 각각의 길에서 과잉의 상태에 도달했어야 했고, 다시 말해서 자신의 변동하는 정점 위를 맴돌면서 자신을 전치, 위장, 복귀시키는 바로 그 차이에 도달했어야 했다.” 

변주는 주제를 극단으로 몰고 과장하고 과잉하며 흘러 넘쳐 풍부해진다. 화음과 화성의 변주를 통한 대위법으로, 박자의 빠르기와 장식음으로, 변주는 주제에서 가장 멀어졌다가 주제를 황홀하게 표현한다. 

들뢰즈는 우리에게 “변주시켜라.” 라고 말한다. 왜 변주시켜야 하는가. 그것은 삶을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풍성한 삶은 고요한 삶이 아니다. 예상되는 삶이 아니다. 변주가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고 한다면 그것은 변주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다 다양하게 함축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삶은 세상살이의 선과 악, 세상살이의 평가에 놓인 좋음과 나쁨과는 관련이 없다. 자기 집을 가진 자들의 눈에 떠도는 집시의 삶이 얼마나 기약 없는 흔들림인가? 그러나 삶은 평면적인 번들거림, 광택이나 관조가 아니다.

* 탈주, 에토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란 물음은 유효하지 않다. 어떤 삶이라고 물었을 때 어떤 삶은 삶의 목적에 관해 묻고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삶을 여행으로 은유했을 때 들뢰즈는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묻는 것의 무의미성을 말한다. 

“어디로 가는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어디를 향해 가려 하는가? 이런 물음은 정말 쓸데없는 물음이다. 백지 상태를 상정하는 것. 0에서 출발하거나 다시 시작하는 것, 시작이나 기초를 찾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여행 또는 운동에 대한 거짓 개념을 함축한다. 하지만 클라이스트, 렌츠, 뷔히너는 여행하고 움직이는 다른 방법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중간에서 떠나고 중간을 통과하고 들어가고 나오되 시작하고 끝내지 않는 것이다.” 

멈추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디로 왔는가를 반추하고 떠올리기 보다는, 들뢰즈는 삶을 부추기고 도모한다. “슬로건을 통해 써라.” 짧은 문장으로! 단정적인 표현으로! 동요하고 있는 미확정적인 주절거림을 행동하도록 도발하고 호소한다. 

“항상 단절을 통해 리좀을 따라가라. 도주선을 늘이고 연장시키고 연계하라.” 

“탈영토화를 통해 너의 영토를 넓혀라. 도주선이 하나의 추상적인 기계가 되어 고른 판 전체를 덮을 때까지 늘려라“ 

“절대로 심지 말아라! 씨뿌리지 말고, 꺾어 꽂아라! 하나도 여럿도 되지 말아라, 다양체가 되어라! 선을 만들되, 절대로 점을 만들지 말아라! 속도가 점을 선으로 변형시킬 것이다! 빨리빨리, 비록 제자리에서라도! 단지 하나의 관념을. 짧은 관념들을 가져라! 핑크 팬더가 되라.” 

항상 떠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떠남이 아니라 언제나 중간이다. 중간은 평균치가 아니라 속도를 내는 장소, 능력의 한계를 표기하는 감각의 온도계를 박살내는 장소이다. 어떤 파괴적인, 폭력적인 상황, 옴짝 달싹 못하는 수동적인 놓여있음에 있는 장소이다. 이 장소에서 넘어선다는 것. 이 장소에서 넘어섬은 지금-여기로부터 탈주하고 우리는 탈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난다. 

탈주하는 삶, 리좀, 다양체, 연결시키기는 어쩌면 시간을 잃어버리는 행위일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은 시시각각 언제나 항상 따라붙는다. 그것은 고독한 삶일지도 모른다. 욕망을 표현하는 것은 금지당해 있기에 욕망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불온하다. 불온한 삶을 욕망하는 것은 양화된 시간을 낭비한다. 

이 낭비하는 시간이 삶을 표현하는 길이다. 이론적인 제시가 아니라 실천적인, 욕망하는 힘과 역량이며 삶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에토스ethos이고 윤리학ethics이다. 그래서 삶은 배움이다. 


“헛되이 보내 버린 이 시간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배움의 본질적 성과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시간을 헛되이 잃어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는 이미 기호들을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게으른 삶이 바로 우리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전 생애가..... 하나의 천직이다.>” 


(따옴표 인용; 천개의 고원, 차이와 반복(질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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