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의 자서전
박남희
머리카락은 수시로 자서전을 쓴다
바람에 흩날리면서 이리저리 헝클어지면서
자서전을 쓴다 머리를 감을 땐
한 뭉치씩 빠지면서, 가려움을 토해 놓으면서
자서전을 쓴다
내 마음 가까이에 사는 여자는 얼마 전에 긴 머리를
잘랐다
사람들은 산뜻하고 젊어졌다고 말하지만 난 그녀가
자신의 자서전에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안다
갈대들도 가을이면
허리를 굽혀 한 계절의 마지막 자서전을 쓴다
갈대의 머리가 흰 것은
이제 더 이산 먹물을 찍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가을 능선이 점점 흰 머리가 늘어간다
무덤에 들었던 아버지가 바람에 함께 출렁이며 일어나
못다 쓴 흰 머리카락의 자서전을 쓰고 있다
<이선의 시 읽기>
박남희의 「머리카락 자서전」은 1연 나의 머리카락, 2연 그녀의 머리카락, 3연 갈대의 머리카락, 4연 아버지의 머리카락의 구조로 되어 있다. 정확하게 구획정리된 논밭처럼, 잘 자란 나무처럼, 박남희 시는 단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박남희 시의 구조를 나무에 비유한다면 뿌리와 줄기, 잎, 잘 익은 열매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새, 바람, 비, 안개까지 다양한 보조자료들이 분위기를 돋운다. 어린아이가 열매를 따 먹고 입맛을 다시는 묘미까지 상상력을 펼친다.
또한 직관과 사유를 통한 ‘낯설게하기’가 감각적 즐거움과 감상의 깊이를 더해준다.
박남희 시는 통합공과처럼 스케일이 크다. 또한 객관화된 상상력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박남희 시는 철저하게 사물에 기초한 사물시다. ‘사물이 말하게 하라’는 규칙을 엄격하게 지킨다. 객관화된 상상력으로 시를 쓰기 때문에 낯선 전개와 새로운 철학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이 있으며, 독자는 그에게 설득당한다.
박남희 시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서 딱딱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인간본연의 보편타당한 서정을 건드려서 새롭게 조명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일상에서 만나는 소재를 선택하여 사람 사는 기본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박남희 시인의 재능은 많은 시인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가져온 곳 : 카페 >시와 도자기|글쓴이 : 이미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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