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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멀미 정연덕
2018년 12월 20일 15시 58분  조회:840  추천:0  작성자: 강려
봄밤의 멀미
 
 
                                        정연덕
 
 
 
작은 귀를 세우고 그 얼굴에 욕망을 잘라낸다
땡볕에 몸을 태우는 원시인 하나 산피에트로 광장에
흰나비 날고 수채화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서성이던 로테*의 가슴에 쪽빛 파도가 출렁이다
 
홍매화와 딱따구리 사이 키들거리는 버들치가
어떤 빛인지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며
투명한 바다를 찾아 나선 여자들의 아랫도리가
나비 그림 속으로 하나씩 둘씩 뛰어든다
 
바로크의 메리안* 그녀의 꽃과 나비들
뜨겁게 자란 촉수로 봄의 손가락을 잡는다
숲에서 천둥번개를 찾다 멀미를 한다
 
큐폴라* 천정의 벽화가 있는 제단을 나와
날아오르다 나풀나풀 거리다 솔솔 입력되고
봄을 끌어내 청보리 물결로 춤을 춘다
 
 
 
* 로테(Rothe): 독일 관념론 학파의 루터교 신학자, 저서에 신학적 윤리학 등
* 메리안: 독일의 삽화가, 판화가, 여성 불평등에 반기를 든 바로크시대의 인물
* 큐폴라: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대성당의 대원개 큐폴라(Cupla)의 빨간 돔
 
 
 
 
 
 
 
   <이선의 시 읽기>
 
  정연덕의 「봄밤의 멀미」는 하이퍼시의 성립조건과 서정시의 성립조건을 복합적으로 충족시키고 있다. 하이퍼시의 단점으로 고착될 것 같았던 정서적 건조, 철학의 부재, 시의 진정성을 모두 해결하였다. 하이퍼시와 서정시의 그 방법론을 찾아보자.
  첫행의 ‘작은 귀를 세우고 그 얼굴에 욕망을 잘라낸다’는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욕망’이라는 관념어를 첫행에서 서슴없이 ‘의제’로 제시한다. ‘욕망’은 모든 인류의 역사와 문화, 사랑, 배반을 내포하는 포괄적 주제다.
 ‘욕망’을 다루면서도 이 시가 관념에 빠지지 않는 것은 ‘사실과 사물’을 시의 기본재료로 사용하면서 ‘사건’을 꾸미기 때문이다. 첫째, ‘로테’라는 실존적 인물을 등장시켰다. 또한 ‘산피에트로 광장’이란 장소를 제시하여 ‘현재의, 장소와 시간’을 제시하고 ‘현재성과 진정성’을 획득한다.
  둘째, ‘바로크의 메리안’과 ‘큐폴라 천정의 벽화가 있는 제단’을 제시함으로써 철학과 신화, 여성주의까지 언급한다. 갸웃갸웃 놀이판을 들여다보며 숨은 의도성과 배반을 찾아내도록 호기심을 자극한다.
  셋째, ‘큐폴라 천정의 벽화가 있는 제단’을 내세워 첫행에서 제시한 시제인 ‘인간의 욕망’의 문제를 다시 거론한다. 각 연에서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제목으로 연관시키는 하이퍼시의 필요충분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
  넷째, 서정성이다. ‘1연- 롯테의 가슴에 출렁이는 쪽빛 파도, 2연- 투명한 바다를 찾아 나선 여자들의 아랫도리가/ 나비 그림 속으로 하나씩 둘씩 뛰어든다, 3연-뜨겁게 자란 촉수로 봄의 손가락을 잡는다, 4연-봄을 끌어내 청보리 물결로 춤을 춘다’ 등 자연과 여인과 서정이 파도치며 흰 물결을 일으킨다. 짐짓 치고 빠지며 역사적 여인들과 놀망놀망 희롱하는 여유를 보인다. 
   또한 여러 개의 그림들이 겹치며 무한 미술구성을 그린다. ‘흰나비, 수채화, 바다, 숲, 청보리 물결’ 등 회화성과 운동감, 서정성을 갖춘 상상력이 감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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