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廢船)
차윤옥
아우성치는 격랑의 파도,
때때로 철썩철썩 울음 울 때
상처투성이의 이력(履歷)을 드러낸 채
밧줄에 결박되어 귀의(歸依)한 목선 한 척
출항을 못하는 그물에 얽힌 사연,
슬픈 조각들이 주름진 시간 속에 녹아 있다
얽히고 얽힌 그물처럼
얽히고 얽힌 우리의 삶
일출과 일몰을 투망질하는
남루한 하루
구석진 곳까지 찾아주는 밀물과 썰물
오늘도 먼 바다를 꿈꾸고 있다.
<이선의 시 읽기>
강하고 아름다운 것은 저리 가라,
부자와 행복도 물러가라.
시가 실현하고 있는 소재는 상처와 상실이다.
차윤옥의 「폐선(廢船)」은 시의 필요충분조건인 ‘상처와 울음’ 조각들의 ‘색채 구성화’다. ‘파도, 격랑, 버려진 것, 슬픈 조각, 일출, 일몰, 구석진 곳(1-2연)’ 등 소외되고 약한 부분을 통체적으로 드러낸 고백적 그림이다.
플라톤은 시인은 사회에서 쓸모없는 몽상가라고 비웃으며 추방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플라톤은 반만 진실을 말하였다. 시니컬하게 자신을 고발하고, 비웃음으로써 스스로 정서치유를 하고 독자를 힐링한다는 시의 효용성을 무시하였다. 시는 슬픔에서 출발하지만, 이상과 희망을 꿈꾼다.
위의 시에서처럼. 버림받은 사물이 된 「폐선」은 ‘상처투성이의 이력(1연 3행)’을 와신상담하며 또 다른 꿈을 찾고 있다.
차윤옥의 시는 ‘격랑의 파도’가 ‘폐선’을 위무하듯 따듯한 위로가 있다.
또한 ‘밧줄에 결박되어(1연 4행)’ 있어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상주의가 있다.
‘구석진 곳까지 찾아주는 밀물과 썰물/ 오늘도 먼 바다를 꿈꾸고 있다. (2연 1-2행)’을 살펴보자. 어머니의 자궁을 닮은 바다에, 마치 양수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태아처럼. 밀물과 썰물에 폐선은 몸을 맡기고, 바다에 귀의하고 있다.
차윤옥의 시는 표현의 기교에 의지하지 않는다. 튼튼하고 굳건한 생활의지와 삶의 본질을 굵은 선으로 처리한다. 슬픔을 부드럽게 감싸지만, 나약하지 않다. 그 이유는 사족을 붙이지 않은 간략하고 짧은 문장. 행의 명사형 끝처리가 선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용에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줄일 수 있는 마지막까지 압축하여 내용을 선명히 부각시켰다.
‘밀물’과 ‘썰물’처럼 시어들을 구석구석 음미하여 보라,
알맞게 발효한 김치처럼
맛있게 익은 시어가 삶의 의미화를 증폭시킨다.
어떤 기교보다 멋스러운
진정성이라는 기교와 만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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