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세상
신진
아래세상이 궁금하다
비행기를 탈 때도
아래세상이 궁금하다
산길 오를 때에도
자꾸 내려가고 싶다
일 층 집에 앉아서도
자꾸 궁금한 아래세상
땅바닥을 내다본다
* 신진 신작시집 『미련』중에서
<이선의 시 읽기>
신진의 신작 시집『미련』중에서 <장자론>이나 <노자론> 같은 ‘2부, 3부’의 짧은 시를 주목한다. ‘지하철역에 <신진 코너>를 만들어 시리즈물로 전시하면 어떨까?’ 대중들이 반길 것 같다. 지하철역에 걸린 시는 15행 이내의 짧은 시다. 위의 시는 8행의 짧은 시다. 행도 짧고, 쉬운 한글로 썼는데, 깊이와 넓이와 해학이 있다. 세상사는 이치가 보인다. 신진의 시를 ‘놓음의 미학’이라고 이름하여 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선택한 시는 ‘놓음’이 아니라, 시집 제목처럼 ‘미련’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이 이 시의 반전이다. ‘역설과 아이러니’ 기법 구조를 가지고 있다.
먼저 화자의 심리상태를 두 가지 측면으로 분석하여 보자. 첫째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정말 형이하학적인 ‘아래 세상’에만 관심을 갖는 현재상황이다. 둘째는 문자 뒤에 숨은 화자의 심리상태를 유추해 보는 방법이다. 형이상학에만 관심을 갖고 살던 꿈꾸는 이상주의자인 청년기를 지나서, 중년의 나이에 형이하학적인 아래세상 것에 관심을 가져보려고 새롭게 시도하는 도입상황이다.
첫 번째 상황에 집중하여 해석하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의 ‘짧은 사유 시’ 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상황은 ‘아이러니와 역설’ 구조의 시로 해석된다. 본 장에서는 위의 시를 두 번째 상황으로 분류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인생은 마흔이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마흔 살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다.
‘매슬로우의 욕망’의 법칙을 살펴보면, 인간의 욕망은 삼각형 구도를 가지고 있다. 첫 단계인 먹을 것, 입을 것이 충족되면, 인간은 그 다음 단계인 정신적, 정서적 욕망을 충족하려하고, 꼭지점에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으려 한다.
20세를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성년으로 칠 때, 마흔 살은 20년 정도 사회생활을 한 성숙한 시점이다. 인간은 마흔의 분기점에 서면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생을 뒤돌아보게 된다. 참 열심히 살아왔는데, 자신의 입신양면만을 위해 산 사람은 생활태도를 반성하며 이웃을 돌보는 자선의 삶으로 우회한다. 또는 반대로 자기를 버리고 배우자, 자녀, 가족, 이웃 등에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한 사람은, 자기가 없다는 허탈감과 자괴감에 빠진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거나, 직업을 갖거나 사회활동을 시작하여 존재확인을 하며 성취감을 가지려 한다.
위의 시의 중심어인 <아래세상>은 신진의 시집 제목처럼『미련』이라는 단어로 해석되고 요약된다. 위의 시의 화자를 불특정한 한 사람으로 치환하여 대입하여 보자. 그 시점을 40세 중년이 아니라, 노년기 인물을 대입하여 보자.
중년보다 노년에 돌아보는 개인의 삶은 더 극적이며 파국적 국면이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삶이든 실패한 삶이든 누구에게나 인생은 진정성 있는 치열한 전쟁터였다. 파노라마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재상연할 때, 후회도 되고 시집 제목처럼 ‘미련’도 남을 것이다.
인간은 향이상학을 꿈꾸면서 몸은 향이하학인 세상에 산다. 꿈을 꾸는 청년기에는 위를 보면서 살았을 것이다. 꿈이 현실을 밀어내고 아래세상을 우습게 보았을 터. 미련도 없었을 터. 그러나 노년기가 되면 ‘지금까지 알고, 생각하고, 실행하던 삶의 방식이 옳은 것이었을까?’ 질문하게 될 것이다. 어떤 부분은 후회도 될 터. 인생은 치열하게 살아온 뒤에 남는 미련 같은 것. 후회는 아니지만 자꾸 궁금하여 뒤돌아보는 것. 연애처럼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흥미로운 것.
신진의 시는 단어와 문장, 행간에 더 많은 이야기를 숨겨 두고 있다.
1행의 ‘궁금하다’는 단어는 가능성이며 열린 기회다. 궁금하여야 과학과 역사가 새 옷을 갈아입는다. 새로운 도약과의 비밀이 벗겨진다. 궁금하지 않으면 ‘개미, 잠자리, 개구리, 도마뱀’을 평생 연구하는 사람이 없다. 궁금할 때 사물이 옷을 벗고 내재된 속내를 보여준다.
신진의 ‘아래세상’은 성공가도를 달리다 잠깐씩 뒤돌아보는 간이정거장 같은 휴지다. 산 정상을 향하여 땀 흘리며 오르다가, 바위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는 보랏빛 쑥부쟁이 들판을 보는 환희다. 내가 보지 않고 간과했던 나의 자화상이다. 부끄러움이다. 시의 뒷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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