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삼현 작품세계 언급 비평] 2004 한국동시문학 봄호(제5호)
상징의 활용
유경환
동시를 쓰는데 상징(symbol)을 왜 알아야 할까? 대답은 잠시 뒤로 미루자. 이론을 들어본 적이 없어도 훌륭한 작품을 써낼 수 있다. 이론 공부 없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하고 문예지 추천으로 등단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론 공부를 구태어 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창작 행위에 있어서 이론이란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을 알아 두어야 할 이유가 있다. 이론 공부는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한 ‘거름주기’와 같다.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수준의 동시를 계속 생산하려면 이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함을 동시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동시 창작에 있어서 상징의 활용은 필요 조건이 아니라 충분조건이다. 쉬운 말로 한다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되 있으면 더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을 알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조건을 더 얻는 셈이다.
유치환 시인의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 곧 생명의 몹부림을 상징하는 시어로 씌였다. 이육사 시인의 ‘광야’는 광막한 현실, 곧 일제 강점기 우리의 핍진한 현실을 상징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존재론적 의미를 상징한다. 태극기는 우리나라 상징이고 푸른 색 한반도는 통일 한국의 상징이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며 학교마다 교기나 배지가 있다. 이들이 다 상징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은 복합적 의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대신하도록 특별한 의미를 확대한 표상(表象)이다. 그래서 문예이론서에서는 상징주의를 표상주의라고도 부른다.
동시 작품을 쓰는데 상징법을 활용한다는 것은 직접 표현을 미뤄놓고 간접 표현을 써서 독자로 하여금 더 깊고 더 넓은 뜻을 생각하도록 새로운 해석의 장으로 이끌고자 함이다. 일종의 유도 기법이다. 참신한 동시를 쓰고자 한다면 참신한 상징 시어를 찾아내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요즘 박두순, 이준관, 윤삼현, 이상문, 이정석, 한명순, 신형건(무순) 시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까닭은 상징의 활용에 남다른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그 앞 세대가 구사하던 상징 기법과 아주 다른 상징 기법을 스스로 개척하여 활용하는 본보기들이다.
그러나 이런 분들의 상징 활용과 상징 기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동시가 너무 어려워서…난해한 것을 써놓고 저희들끼리만 좋다고 하는,저들끼리 만의 잔치’라고. 직접 표현의 시어만 가지고 동시를 써온 세대가 있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읽고 들으면 금세 알아듣는 직접 표현의 세대가 오늘날 70대 후반, 80대에 이른 원로 세대다. 직접 표현의 대표격이 ‘반달 같은 눈썹’ ‘앵두 같은 입술’ 등의 시어이다. 이들 시어는 상징의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퇴색하고 말았다. 6·25 전쟁 직후 새로운 세대 동시인들이 직접 표현 대신에 간접 표현의 시어를 도입 구사하는 방식으로 ‘동시도 시여야 한다’는 기치를 올렸던 까닭이다. 이 기치는 필자가 맨 먼저 들었다. 동시도 시여야 한다는 말의 뜻은 동시는 ‘어린이에게 읽힐 만한 시’라는 의미다.
동시가 한찬 전 세대의 노랫말 수준에 머물러서는 설득력이 없다. 영국의 어린이들이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를 ‘어린이가 읽을 만한 시’로 받아들여 읽고 외우는 까닭을 모르면, 프랑스 어린이들이 보들레르의 시를 초등 과정에서 외워 낭송하는 까닭을 모르면 ‘동시에 왜 상징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것이 뻔한 일이다.
좋은 동시로서 난해한 시는 있을 수 없다.
산을 다룬 동시는 산을 주제로 한 동시로 읽히면서 인물이 덕스런 할아버지의 상징성을 풍기기도 한다. 강을 다룬 좋은 동시는 강을 주제로 한 동시로 읽히면서 오랜 역사나 삶의 흐름을 넌지시 던져주기도 한다.
좋은 동시인데도 난ㄹ해하다고 우긴다면 그 상징성을 파악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만한 독해력을 갖추지 못한 독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일반 독자도 아닌 비평가라는 사람이 좋은 동시를 놓고 난해하다고 앞장선다면, 우리는 이비평가란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 『엄마휘파람새 』(윤삼현 제2 동시집)(1996. 2.10 발간)에 실린 몇 편의 동시
야간 비행
밤하늘을 바라볼 때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의 뜰에서 노닐고 있었다
밤비행기를 타고 비행을 하다가
나도 하늘의 뜰에서 노니는
별이 되었다
땅을 내려다 보니
땅에도 별들이 노닐고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 반짝이는 별이었다.
분수
분수는 분수는
땡볕이 좋다
더운 여름날이 좋다
따가운 햇볕이 싫어
찐득한 대낮이 싫어
다들 그늘 속으로
움츠러 들지만
분수는 분수는
햇살과 맞선다
힘을 겨룬다
그러다가 서로 좋아져 버렸는지
아예 햇살과 손 잡으러
쑤우우욱
키를 키운다.
꽃들의 약속
같은 이름을 가진 꽃들은
서두르거나 게으름 피우는 일 없이
끼리끼리 한 날짜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같은 얼굴을 한 꽃들은
양지에 있거나 음지에 있거나
또래또래 제 날짜에
꽃봉오리 터뜨린다.
내 마음은
내 마음은
한번은 밀물이다가 한번은 썰물
밀물 들 때면
뭍으로 뭍으로 설레임 출~렁
썰물 날 때면
먼 수평선으로 그리움 쏴~아.
산을 오르다가
산을 오르다가
나는 뱃사람이 됩니다
불끈 솟아난 파도 언덕 끝에서
배를 멈추고
저 크고 작은 산굽이 파도를
내려다 봅니다
넘실넘실 파도 떼
쏴 쏴 물결소리
내 배는 두둥실
산 파도를 넘습니다.
도시에서는
고향길에서 자주로 만나던 풀벌레 소리
덤불 숲 같은 도심 한복판 거리를
헤집고 다녀도
여기선 왜 울음소리 한 개 걸리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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