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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箱의 실험적 정신과 현대시의 실험적 양상- 유창섭
2019년 01월 22일 16시 37분  조회:1436  추천:0  작성자: 강려
이상李箱의 실험적 정신과 현대시의 실험적 양상
                          유창섭. 시인. 본지 주간
 
 
2010년은 천재 시인 이상李箱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스물일곱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이 남겨놓고 떠난 흔적은 한국시단의 근대화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근대적 문학에 필요한 시대적 흐름의 반영과 새로운 물결에의 접목은 그의 새로운 실험적 성향과 난해하고도 복잡한 그의 삶의 역정만큼이나 큰 그림자를 던져 주었다.
그의 이후에도 현대시에서의 새로운 변화와 시적 형식, 또는 내용에 실험적 태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 일부를 후술하겠지만 오랜 시간 자신이 창안해낸 “무의미 시”라는 새로운 시적 성향의 탐구로 일생을 천착한 김춘수 시인이나, “날 이미지 시”의 내용을 전개하며 집착한 오규원 시인과 같은 개별적 실험에 일생을 바친 시인도 있고, 하나의 흐름으로 전후세대의 화두가 되었던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든가, “해체시”, 또는 “상징시”, 그리고 최근의 “미래파”시라든가 지금도 진행 중인“형이상 시”라든가 하는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 동안---그 하나의 업적으로 오랜 탐구와 연구의 집중을 가져오게 한 시인으로 이상을 꼽기를 주저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시적 성향이나 실험적 정신은 우리 현대시에 얼마나 의미있는 영향을 주고 현대시의 발전에 기여한 것일까를 생각하여 보는 일은 시인들이 좋은 시를 쓰려는 일생의 작업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상李箱의 詩와 실험정신 <오감도烏瞰圖>
----(시 제1호)를 중심으로
 
1937년 이상과 김유정은 이땅에서 나란히 사라졌다. 김유정은 3월29일 스물아홉의 나이에, 이상은 20일 뒤인 4월17일 스물일곱에 죽었다.
둘다 폐결핵이 원인이었고 요절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혼을 이해했던 절친한 문우였다.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구인회]에서 단짝으로 지냈던 이들이 죽자 문단에서는 그해 5월15일 부민관에서 합동추도식을 올렸고, 평론가 백철은 [파시즘의 도래를 앞둔 문학의 죽음]이라고 애도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는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소설 [날개]에서 번쩍이는 기지와 독설을 남기고 찬란하게 파산한 이상은 지금도 문학청년들이 한번씩 거쳐가는 통로이자 극복의 목표다.
이상과 함께 구인회 멤버였던 시인 김기림은 “이상의 죽음으로 우리문학이 50년 후퇴했다”고 말했다.
김윤식 교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문제로 고민하는 문인들은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근대]를 파악했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동시에 초극하려 했던 이상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문학이라는 [지방성]에 가두지 말고 세계문학의 반열에서 이상을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상은 본명이 김해경으로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건축 기사가 되었다. 31년에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고, 서양화 [초상화]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상했다. 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 36년에 잡지 조광에 소설 [날개]를 발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때 다방 [제비] [69] 등을 경영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불온사상 혐의로 체포됐다.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지병인 결핵으로 결국 동경에서 사망했다.
<[이상-김유정 60주기] 박제가 된 두 천재를 아십니까 / 조선일보에서 인용>
 
이 두 문인 중에 詩의 천재로 인정받고 있는 이상에 대하여, 그것도 그의 작품 <오감도烏瞰圖>(시 제1호)에 대한 詩를 통해 실험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오감도烏瞰圖>
 
<시 제1호>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4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5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6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7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8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9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0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1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십삼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1937년 동경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요절한 시인이다.
출생을 살펴 보면, 그의 할아버지 김병복의 둘째 아들인 그의 아버지는 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인지 큰아버지 밑에서 함께 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큰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이상은 할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장손으로 큰아버지에게는 양자가 된 아들로서 친 아버지에게 역시 아들로서의 귀한, 어쩌면 매우 처신하기 어려운 아들”의 위치에 있는 존재적 경험을 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환경에 있던 이상은 3세 때에 자기 친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친부모는 분가를 하게되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밑에서 자라게 되는데, 그에게 형식상 어머니 역할을 하게 된 큰어머니에게는 데리고 들어온 자식이 있어 그 사이에서 이상은 알게 모르게 “심리적 박해”을 겪어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면 “심리학상”으로 이상은 친부모와 원치 않는 이별을 통해서 얻게 된 심리적 분리불안分離不安(seperation anxiety)을 경험하게 되고, 동시에 친부모와의 관계에서 다수의 경쟁자인 할아버지, 큰아버지, 아버지라는 여러가지 얼굴의 부성적父性的 대상 사이에서 동일시 현상(identification phenomenon)의 혼돈(confusion)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거기에다 덧붙여서 큰어머니가 데리고 들어온 형제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에 의해 형제충돌(sibling rivalry)을 경험하므로서 정신적 외상外傷을 입었을 가능성이 컸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심리학적 장애 요인들은 이상의 詩에 투영되어 여러가지 심리적 방어기제(psychological defense mechanism)로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이 詩가 발표되던 1934년경에는 세계적으로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sur-realism ; 1920년대에 일어난 예술운동의 한 경향으로 인간을 이성理性의 속박에서 해방하고 초현실적이고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운동)과 반이성주의적反理性主義的 예술운동의 하나인 다다이즘(dadaism ;일체의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전통적인 예술 형식을 파괴하는 운동으로 후에 초현실주의에 흡수됨)이 풍미하던 시절이었고, 한국의 몇 안되는 동경 유학파 지식인들 중의 하나인 이상에게도 그러한 사조思潮의 흐름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이상의 작품을 폄하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 당시 풍미하던 예술적인 흐름을 모방한 “하나의 詩的 실험實驗”이라고 보며, 하나의 치기稚氣로 해석하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모방적 실험이든, 아니면 그 자신이 창안해낸 실험 정신의 극치이든 그것은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도전적인 시적 실험으로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를 보면 한국의 지성인으로서 어찌보면 마음 편안하게 나라 잃은 젊은이가 용기있게 항거할 수도 없는 가슴 속의 수치심, 또는 마음 속에 담고 있던 막연한 울분이나, 자신이 자라난 가족환경 속에서 얻어진 무의식 속에 침전되어 있던 정신적인 상처가 복합적으로 그의 詩에 하나의 투사(投射;projection)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詩<오감도>의 제1호에 있는 詩는 많은 사람들의 해석적 도전과 해체를 위한 연구 대상이 되었던 대표적인 詩이다.
 
"모든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고 외쳤다는 이상李箱.
그는 여기에서 절망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사전에 보면 “조감도鳥瞰圖”라는 말이 있을 뿐, “오감도烏瞰圖”라는 말은 없다. 여기에서 이 시가 실린 조선일보의 활자 선택에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이상의 의도적인 제목이라는 주장이 서로 엇갈린다.
 
이상의 의도적인 제목이라는 해석은 이 시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그려내기 위한 장치로서 시의 제목에 “음울하고 불길한 새”의 상징인 “까마귀(烏)”를 도입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즉 불길하고 갇혀버린 탈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까마귀의 눈으로 내려다 보며 쓴 형상의 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먼저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13'이라는 숫자이다.
 
이것의 의미는 (1)당시 우리 나라의 도(道)가 13도였다는 것으로 식민지 조국을 상징한다는 것, (2)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와 12제자를 상징한다는 것, (3)무수(無數)의 상징이라는 것, (4) “13의 금요일”처럼 가장 불길한 숫자로서의 상징이라는 것, (5)일종의 국외적(局外的) 성격을 띤 사물을 상징이라는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 작품에서의 의미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오감도”의 까마귀의 불길함과 연관지어 볼 때, 이 13이라는 숫자도 불길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러면 각 시의 구절을 살펴보기로 한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앞의 말을 뒤집어 놓는다.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결국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로 시작하여 13번의 반복 끝에 매달아 놓은 이 절망의 장치는 피 할 수 없는 숙명적인 절망(=막다른 골목)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무섭다고 그리오”라는 말로 시작하여 “무서운 것”으로부터 도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같은 의미 전달이 13번이나 되풀이 되면서 처음 언술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느끼는 속도감이 점점 더 빠르게 진행되어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 극도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음을 주목해 보면 더욱 뚜렷해 진다.
 
그 13이라는 상징적인 여러가지 해석 중 몇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이상의 무의식적 인식 속에 자리하고 있던 그 절망의 인식을 그는 이렇게 불길한 언어와 불길한 숫자와 연결하면서 절망적인 상황—“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라고 절망적으로 포기하는 모습--을 피할 수 없이 포기하는 하나의 과정(=뚫린 골목이라도 적당)으로 인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에 그가 동경에 머무르다가 불온 사상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지병인 폐결핵으로 그곳에서 죽었다는 것만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노출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근거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나약한 한 지식인으로서 식민통치를 하던 일본이라는 존재를 “무서운 존재”로 설정하여 우리나라 전국토의 제1도(제주도)부터 제13도(함경북도)까지 모두가 무섭다고 말하며 도망치는 모습을 상징하였다고 본다면 그 또한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드러내놓고 저항할 수 없는 존재들—아버지,큰아버지, 할아버지, 또는 큰어머니와 같은 가족이라는 굴레를 포함하여 일본과 같은 압제자들—로부터 도피 하려는 의식의 강한 표출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처음과 마지막에 장치한 괄호 안의 언술을 보자.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그 작품 속에는 피하고 싶어하는--“자유로움을 향한 탈출”에 대한 강한 희망이 실려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의 편이 아니었다고 포기하면서 그는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마찬가지라고 포기하고 있는 자세로, 마음 속으로만 탈출을 꿈꾸었을 뿐 실제로는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면서 그의 삶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는 것이 옳은 지적일 것이다.
 
그의 유년시절 겪었던 분리불안은 그에게 양가치(兩價値;ambivalance)라는 심리적 갈등상태를 야기시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 속의 갈등을 투사(投射:projecton)시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어린시절의 정신적 피해가 꼭 그 어린시절에 정신적으로 자신을 꼼짝도 못하게 했던 가족에 대한 도피 또는 절망감으로부터의 탈출로만 노출되고 있다고는 볼 수가 없을 것이며, 그 경험들이 다른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반응하여 그를 옭죄는 사회적 굴레(=속박)들에 대해서도 그 같은 형태로 작용하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난한 삶이나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회적 고통을 상정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경제적으로는 크게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러한 뒷받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가 “다방”을 경영하여 실패를 했다던가 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 당시 한국인의 전체적인 평균적 생활 수준으로 볼 때, 그러한 방황을 감당하면서도 마지막에 동경으로 건너가는 일까지 감행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의 특권층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이었으므로 그의 삶이 정신적으로는 비참하였을지 모르지만, 요즘의 말로 말하면 정신적 사치 속에서 싹튼 삶에 대한 존재론적인 자유로움의 추구를 획득하지 못한 절망과 고뇌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터이다.
 
어찌 되었건 이상의 이 <오감도>는 개인적, 정신적인 사치라는 비난 보다는 우리나라 詩문학 발전에 기념비적인 “실험적 문제”를 제기시켜 놓았다는 데에 이견이 없을 듯 하다.
 
그의 첫째 여인으로 이야기 되는 금봉이와의 동거에서도 드러난바 있거니와 그것이 그의 소설 “날개”로 나타났다는 데에 이론이 없는 것을 보면, 그가 어린 시절에 겪은 심리적 갈등 상황은 어른이 되어서도 지울 수 없는 큰 멍에로서 작용한 것 같다.
그것은 누구라도 어릴 적의 여러가지 경험이나 사건 속에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정서적 상처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과 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시인들이 이 이상李箱의 <오감도> 읽기를 시도하여 왔다. 그의 시를 초현실주의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험적 시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자동기술법에 의한 심리적 실험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 읽기가 상당히 많은 부분까지 깊숙이 파헤쳐서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불안정과 그의 절망을 통하여 현대인의 절망을 드러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그는 일반적인 시 형식인 산문적 구조로 시를 썼고, 자유시 형식으로 쓴 것도 몇편—“명경”, 무제”, 거울”, 회한의 장”등과 같은 시들—이 있으나 그것도 깊이 들여다 보면 산문적 틀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발표한 이상李箱의 시詩들이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아니던 우리 시詩에 하나의 독특한 실험으로 빛나는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시에서의 시적 실험과 양상
 
 
이 시대에 詩를 쓰는 사람들 중에도 끊임없이 실험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시적 실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실험에는 적어도 어떤 통일적인 자신의 의도가 확고한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을 경우에 그 실험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흔히 가벼움이나 건들거리는 모방으로, 또 자기 자신도 모르는 표현으로 자기를 감추며 애매성이나 난삽성으로 포장하려는 실험이나 과도한 언어의 비틀기나 목조르기와 같은 기초적인 문법적 소양도 갖추지 못하고, 문법을 뛰어넘으려는 실험은 그 자체로만 끝나고 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에 남다른 열정으로 시적 실험에 집중한 시인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무의미 시”로 대변되는 김춘수 시인이나, “날이미지 시”로 대변되는 오규원 시인, 그리고 이승훈 시인의 “비대상시”나, 이후에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미래파 시인들의 시”와 같은 실험이 지속되었고, 일부는 계승 발전되어 새로이 조명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극히 일부의 인식에 그쳐 그 중요한 형식이나 의미론에 다가서지 못한 한계가 드러나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실험적 정신은 우리 한국시의 지평을 열어가고, 보다 더 넓은 인식의 세계로의 발견과 시로운 시의 등장과 새롭게 접목되는 시의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시전문지에서 “우리 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때 우리 시의 문제점에 대해 정리된 두 가지의 관점이 있었다.
하나는 “실험의식의 부재와 복고적 서정성으로의 퇴행”이고 또 하나는 “소통불능의 자폐적 내면으로의 갇힘”이라는 점이었던 것 같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시가 서정성을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점과 시인들이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바탕 위에서 창조해 내는 작품이 과연 내면의 소리를 외면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할 소지는 있지만, 시적 실험이 그러한 요소를 모두 배제한 실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러한 의식의 바탕위에서 새로움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초점이 두어지고 있다고 볼 때 그러한 실험은 우리의 사상과 인식의 세계를 확장시키고 시가 종전 보다 더 많은 아름다움을 다양하고 새롭게 담아내는 역할을 해 내게 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규원 시인의 육성으로 기록된 “날이미지 시”에 대한 일단을 인용하여 살펴 본다.
 
 
담쟁이덩굴이 가벼운 공기에 업혀 허공에서
허공으로 이동하고 있다
 
새가 푸른 하늘에 눌려 납짝하게 날고 있다
 
들찔레가 길 밖에서 하얀 꽃을 버리며
빈 자리를 만들고
 
사방이 몸을 비워놓은 마른 길에
하늘이 내려와 누런 돌멩이 위에 얹힌다
 
길 한켠 모래가 바위를 들어올려
자기 몸 위에 놓아두고 있다
 
― 「하늘과 돌멩이」
 
 
이 작품은 ‘발견적 날이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실적 날이미지’로 되어 있는 「지는 해」와는 다르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느낄 것입니다. ‘발견적 날이미지’로 되어 있는 날이미지시는 사실성 위에 새롭게 발견된 다른 의미가 부과되어야 합니다.
이 작품을 사실적 날이미지로 쓴다면 “담쟁이 덩굴이 뻗어 있다/하늘에서 새가 날고 있다/들찔레 꽃이 졌다/돌멩이 위로 하늘이 있다/길에 바위가 놓여 있다”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 사실적 날이미지가 발견적 날이미지로 바뀌는 것은 그 뜻 그대로 발견적 시선이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들찔레가 길 밖에서 하얀 꽃을 버리며/빈 자리를 만들고”라는 현상을 그 예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이 현상의 사실적 표현은 “들찔레 꽃이 졌다”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인 내가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들찔레의 시선으로 본다면 꽃을 떨어뜨리는 순간은 자신의 일부를 버리는 시간인 동시에 또한 자신의 일부로서의 빈 자리를 만드는 시간인 것입니다.
‘존재가 사라지면 빈 자리가 생긴다’는 인식과 ‘사라지면서 존재는 빈 자리를 만든다’는 인식의 차이를 생각해보십시오. 주체 중심의 시선이 아닌 반주체 중심의 시선이 발견적 이미지를 가능하게 합니다.
발견적 날이미지는 관념적으로나 비유적으로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려져 있던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낯설지만 분명 사실적이고 객관적입니다.
( “오규원 시인과의 대담“ 중에서 / 시와 세계/ 2004년 4월호)
 
다음에는 김춘수 시인의 “무의미시”를 더듬어 본다
무의미시는 ‘서술적 언어 체계’속에서 이루어지고, ‘주체 중심의 심리적 세계’로서 심리적 주관적 묘사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의 시 “나의 하느님” 한 편을 살펴본다.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여기에서 하느님을 ‘비애’이며 푸줏간 살점‘이며 ’놋쇠 항아리‘라고 말하는데, 도무지 하느님과의 연상작용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언어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뒷면의 심리적 주관, 즉 비유적 속성으로 읽혀야 마땅할 것 같다.
‘여자의 마음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란 무엇일까? 그것은 금전적 대가로 생각된다.
태초에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였는데, 세월이 가면서 인간은 정신적 가치는 잃어버리고 물질적 가치를 탐하는 형태로 변형되고 말았으니 어찌 하나님이 슬프지 않겠는가. 바로 인간이 물질적 향락에 탐닉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현대인의 모습에 하느님은 비애를 느끼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장치로서 푸줏간의 살점 정도로 표현해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무의미하게 해체된 언어의 뒷면에 깊이 박힌 의미를 해석해내어야 하는 고통이 수반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시적 실험에 수많은 세월을 바쳐 천착한 시인들의 실험적 양상을 모두 드러내어 섭렵하는 것은 지면상 어렵다. 그것은 좀 더 깊이있는 개별적인 탐구의 과제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우리 시대에 존재했던 시적 실험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가의 예를 들고 싶었을 따름이다.
현재에도 크고 작은 시적 실험정신이 투영된 시들이 탄생되고 있다.
이들은 우리 현대시의 새로운 내용으로 또는 형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양상을 우리는 겨우 신춘문예제도 상으로 학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그것은 치기稚氣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새로움을 새로이 등단하는 젊은이에게만 맡겨둘 일은 더욱 아니다.
 
대체로 신춘문예에 나타난 시인들의 실험정신은 대부분 일회성에 그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직 문단에 나선다는 면허증, 그 당선에만 목적이 있었을 뿐, 그 이후의 시적 태도나 철학이 없었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나 시를 창작하는 데에 자신만의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지 못한 경우에 그러한 현상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적 실험이라는 것이 거대한 흐름으로 정리된다면 더욱 바랄 것이 없겠지만, 개개의 시인 자신이 커다란 물결을 창안해 내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에서라도 언어적 실험이나 이미지의 실험, 또는 새로운 시선의 조립과도 같은 작은 실험들이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믿는다.
 
시인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시적 정서를 발현해 내는 방법에 대하여 고뇌하고, 자신만의 어법으로 감동을 주는 정서를 노래하는 일은 바로 새로움의 추구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적어도 의식이 있는 시인이라면 언제까지나 과거의 형식이나 내용을 곁눈질 하면서 적당히 모방하면서 흔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자신의 그릇에 담고자 하는 사상들을 새롭게 탐색하고 투영하며 새로운 눈길로 형상화하여 선험적 태도로 시를 창작해 내는 실험정신이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문제시. 명시 해설과 감상(자유지성사)
이상문학전집 1
이상문학연구(박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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