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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교수의 한시 이야기
2019년 01월 31일 21시 27분  조회:1792  추천:0  작성자: 강려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1)
사람들은 왜 시를 짓고 시를 읽을까? 그냥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하는 말과 시에서 쓰는 표현은 어쩐지 조금 달라 보인다.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어떤 풍경이나 느낌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우리가 그냥 주고받는 표현 속에는 이런 느낌이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언어와 문학 작품 속에서 쓰는 언어는 어떻게 다를까? 다음 예화를 통해 알아보자.
 
옛날 중국의 유명한 철학자 노자의 스승은 상용이란 사람이었다. 스승은 늙고 병들어 이제 곧 숨을 거두려고 하였다. 노자는 마지막으로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가르쳐 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고향을 지나갈 때에는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가거라.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네! 선생님! 어디에서 살더라도 고향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수레에서 내려서 걸어간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데서 나온 예의 바른 행동이다. 그래서 노자는 스승의 엉뚱해 보이는 말을 듣고 이렇게 알아들었던 것이다.
스승이 다시 말했다.
“높은 나무 밑을 지날 때는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거라. 알겠느냐?”
노자가 바로 대답했다.
“네! 선생님. 어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시지요?”
높은 나무는 그 숲에서 가장 키가 크고 나이가 많은 나무다. 종종걸음은 걸음의 폭을 짧게 해서 어른이나 임금님 앞을 지날 적에 걷는 걸음걸이이다. 높은 나무 밑을 지나갈 때 종종걸음으로 가라는 스승의 말을 듣고 노자는 윗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씀으로 금세 바꾸어서 알아들었다.
이번에는 스승이 입을 크게 벌렸다.
“내 입속을 보거라. 내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이가 있느냐?”
상용은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빨이 다 빠지고 없었다.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님!”
스승은 곧바로 제자에게 말했다.
“알겠느냐?”
노자는 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겠습니다. 이빨처럼 딱딱하고 강한 것은 먼저 없어지고, 혀처럼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자 스승은 돌아누웠다.
“천하의 일을 다 말하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이빨은 딱딱하고 굳센 것인데 먼저 없어져 버렸다. 혀는 부드럽고 약한 것인데 남아 있었다. 상용이 혀와 이빨을 차례로 보여 준 것은 부드럽게 남을 감싸고, 약한 듯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오랫동안 복을 받고 잘 살 수가 있고, 제 힘만 믿고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얼마 못 가서 망하고 만다는 뜻이었다.
 
상용이 말한 것을 정리해 보면 고향을 잊지 말고, 어른을 공경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기라는 가르침이었다. 이렇게 직접 말하면 될 것을 가지고 상용은 일부러 빙빙 돌려서 비유를 통해 설명했다. 왜 상용은 직접 말하지 않고 일부러 어렵게 돌려서 이야기했을까?
사실 상용이 이 말을 직접 했다면 그것은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는 싱거운 말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대신에 상용은 직접 입을 벌려서 혀를 보여 주고 또 이빨을 보여 준 후, “알겠느냐?” 하고 물었다. 이렇게 해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평범한 교훈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인상 깊게 심어 줄 수가 있었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라는 것은 상용의 말처럼 직접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돌려서 말하고 감춰서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돌려서 말하고 감춰서 말하는 가운데 저도 모르게 느낌이 일어나고 깨달음이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느낌과 깨달음은 지워지지 않고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는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1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1)|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2>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2)
 
한시에서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을까? 이제 직접 한시를 한 수 감상해 보기로 하자.
 
흰둥개가 앞서 가고 누렁이가 따라가는                  白犬前行黃犬隨(백견전행황견수)
들밭 풀 가에는 무덤들이 늘어섰네.                       野田草際塚纍纍(야전초제총누루)
제사 마친 할아버지는 밭두둑 길에서                     老翁祭罷田間道(노옹제파전간도)
저물녘에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해서 돌아온다.          日暮醉歸扶小兒(일모취귀부소아)
  - ‘제총요(祭塚謠)무덤에서 제사지내는 노래’ 전문
 
조선 중기의 이달이라는 시인의 작품이다. 이 시의 제목은 <무덤에 제사 지내는 노래>이다. 시 속의 광경을 먼저 살펴보자. 먼저 첫 번째 구절에는 흰 강아지와 누렁 강아지 두 마리가 나온다. 흰 강아지가 앞장서서 뛰어가고 누렁 강아지가 뒤질세라 멍멍 짖으며 그 뒤를 따라간다. 밭들이 옹기종기 펼쳐진 풀밭 가에는 무덤들이 굉장히 많다. 거기에 어떤 할아버지가 손자와 함께 개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세 번째 구절에는 ‘제사를 마쳤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으로 보아 할아버지는 그 풀밭 가에는 많은 무덤들 가운데 어느 한 무덤에 제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시간은 땅거미가 밀려드는 저물녘이다. 할아버지는 술에 취하셨다. 술 취한 할아버지가 자꾸 비틀거리시니까 옆에 있던 손자가 걱정이 되는지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있다.
자!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이 시 속의 풍경을 그림으로 떠올려 보자. 강아지 두 마리와 밭두둑이 보이고 무덤들도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손자.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지나가는가? 우리는 지금도 추석 때나 한식날이 되면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간다. 지금 할아버지와 손자는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기에는 위 시의 내용이 왠지 너무 심심하다. 할아버지가 손자와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성묘를 갔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걸까?
과연 위의 시에서 시인이 말하려고 한 것은 이것이 전부일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몇 가지 이상한 부분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무얼까? 우선 왜 아버지는 없고 할아버지와 손자만 성묘를 갔을까 하는 점이 궁금하기 짝이 없다. 왜 산 위도 아니고 밭두둑 가에 있는 풀밭에 무덤이 많다고 했을까? 보통 풀밭에는 무덤을 쓰지 않는데 말이다. 또 할아버지는 왜 술에 취했을까? 저물녘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무덤 옆을 떠나지 못했던 걸까?
이런 의문을 품고 이 시를 새로 읽어 보면, 앞서 와는 다른 느낌이 일어난다. 이 시는 그냥 단순히 조상의 성묘를 갔다 온 장면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와 손자가 제사를 지낸 사람을 누구였을까? 증조할아버지? 아니면 고조할아버지? 그도 아니라면 할머니였을까? 그렇지가 않다. 두 사람이 제사를 지낸 주인공을 바로 시 속에 나오는 할아버지의 아들이고, 손자의 아버지였다.
그렇다면 밭두둑 옆 풀밭에는 왜 그렇게 무덤이 많았던 걸까? 아마도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것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모양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서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양지바른 산 위에다 묻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도 전쟁 같은 천재지변을 만나 돌아가신 것이 틀림없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아들의 산소에 성묘하러 왔다. 무덤에 돋은 풀을 뽑고, 술을 부어 한 잔 따라 주고 나니까 죽은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차마 그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하루 종일 무덤 옆에 앉아서 속이 상해 술을 마셨다. 강아지를 두 마리나 데리고 간 것으로 보아, 무덤이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사정도 알 수 있다.
이 시를 지는 이달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직접 체험했던 시인이었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시를 다시 읽어 보면, 좀 더 깊이 있게 이 시를 이해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임진왜란 때에 쳐들어온 왜적에게 죽음을 당했고, 이 때 온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억울한 희생을 당했다. 한식날 할아버지는 아들이 남긴 하나뿐인 혈육인 손자를 데리고 죽은 아들의 무덤을 찾아왔다. 하루 종일 슬픔에 잠겨 있던 할아버지는 제사를 지내려고 가지고 간 술을 혼자 다 마셔서 취하고 말았던 것이다. 손자는 나이가 어려서 할아버지의 슬픔을 잘 알지 못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다. 오늘따라 할아버지가 왜 저러실까 싶어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올려다볼 뿐이다.
이렇게 한 편의 시를 곰곰이 따져서 읽어 보면, 처음 별생각 없이 시를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았다. 시인이 이 시 속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얼까?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이 가져다준 뜻하지 않은 죽음과 그 죽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깊은 상처였다.
그러나 시인 말하려고 했던 이런 의미는 꼼꼼히 따져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위의 시를 읽고서 그냥 한식날 성묘 간 일만 생각했다면 이 시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쓰는 말은 금세 이해할 수 있고 또 다른 생각이 필요 없다. 그러나 시에서 쓰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여 한다. 대충 겉만 보아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것이 시를 읽는 재미이다.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 생각하는 힘을 살찌워 준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던 사물을 찬찬히 살피게 해 준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8-24.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2>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2)|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3>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옛날부터 그림과 시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시는 모양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가 없는 시라는 말도 있었다. 이번에는 그림 이야기를 통해 시를 이해하는 공부를 해보기로 하자.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서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시인이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고 시 속에 숨겨둔 말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것은 숨은그림찾기 또는 보물찾기놀이와도 비슷하다. 이 점은 화가도 마찬가지다. 화가는 풍경을 그리거나 정물화를 그린다. 이때 화가는 화면 속에 자신의 느낌을 직접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림은 사진과는 다르다. 화가는 색채나 풍경의 표정을 통해 자기 생각을 담는다. 이제부터 살펴볼 몇 가지 이야기는 그림이 시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잘 보여준다.
 
옛날 중국의 송나라에 휘종 황제란 분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너무 사랑했다. 그림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훌륭한 화가였다. 휘종 황제는 자주 궁중의 화가들을 모아 놓고 그림 대회를 열었다. 그때마다 황제는 직접 그림의 제목을 정했다. 그 제목은 보통 유명한 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었다. 한번은 이런 제목이 걸렸다.
 
꽃을 밝고 돌아가니 말발굽에서 향기가 난다.
 
말을 타고 꽃밭을 지나가니까 말발굽에서 꽃향기가 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황제는 화가들에게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그림으로 그려 보라고 한 것이다. 꽃향기는 코로 맡아서 아는 것이지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보이지도 않는 향기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화가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다. 꽃이나 말을 그리라고 한다면 어렵지 않겠는데,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만은 도저히 그려 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그림에 손을 못 대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젊은 화가가 그림을 제출하였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그 사람의 그림 위로 쏠렸다. 말 한 마리가 달려가는데 그 꽁무니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묻은 꽃향기를 나비 떼가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젊은 화가는 말을 따라가는 나비 떼로 꽃향기를 표현했다. 이런 것을 한시에서는 ‘입상진의(立象盡意)’라고 한다. 이 말은 ‘형상을 세워서 나타내려는 뜻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비 떼라는 형상으로 말밥굽에 묻은 향기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형상을 시에서는 이미지(image)라는 말로 표현한다. 시인은 결코 직접 말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통해서 말한다. 그러니까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다시 휘종 황제의 그림 대회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이번에는 이런 제목이 주어졌다.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다.
 
절을 그려야 하지만 감춰져 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한참을 끙끙대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대부분 산을 그려 놓고, 그 숲 속 나무 사이로 절 집의 지붕이 희미하게 비치거나, 숲 위로 절의 탑이 삐죽 솟아 있는 풍경이었다. 황제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때 한 화가가 그림을 제출했다. 그런데 그가 제출한 그림은 다른 화가의 것과 달랐다. 우선 화면 어디에도 절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서 올라가는 모습을 그려 놓았을 뿐이었다. 황제는 그제야 흡족한 표정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이 화가에게 1등 상을 주겠다.”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황제가 설명했다.
“자! 이 그림을 보아라. 내가 그리라고 한 것은 산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절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라고 했는데, 다른 화가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절의 지붕이나 탑을 그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절을 그리는 대신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을 그렸구나.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이 너무 깊어서 절이 보이지 않는 게로구나. 그가 비록 절을 그리지 않았지만,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만 보고도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이 내가 이 그림에 1등을 주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그제야 황제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화가는 절을 그리지 않으면서 절을 그리는 방법을 알았다. 화가가 그리지 않으면서 절을 그렸다. 시인은 말하지 않고서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이제 위의 그림과 비슷한 한시를 한 수 감상해 보자.
 
약초 캐다 어느새 길을 잃었지
천 봉우리 가을 잎 덮인 속에서.
산 스님이 물을 길어 돌아가더니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일어난다.
 
율곡 이이 선생의 <산속>이란 작품이다.
단풍이 물들고 나더니 어느새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어떤 사람이 망태기를 들고 낙엽 쌓인 산속에서 약초를 캔다. 여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약초가 낙엽을 들추자 여기저기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때는 볼 수 없던 귀한 약초들도 많다. 정신없이 약초를 캐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길에서 한참이나 들어온 가을 산속이다. 낙엽은 어느새 무릎까지 쌓여 오고, 조금 전 자기가 올라온 길이 어딘지조차 알 수가 없다. 약초꾼은 그만 털컹 겁이 난다. 어느새 해도 뉘엿뉘엿해졌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겠는데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덮어놓고 내려가다가 낭떠러지가 나오면 어쩌나? 길을 잘못 들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어쩌지? 이러다가 밤이 되면 산짐승들이 내려올 텐데 어찌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저 건너편 숲 사이로 희끗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하도 반가워 자세히 살펴보니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에 물을 길어 가고 있다. 스님의 모습은 금세 숲 사이로 사라지고 말았다. 저리로 가면 스님이 계신 암자가 나올까? 혹시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짧은 시간에도 생각은 어지럽기만 하다.
바로 그때다. 스님이 사라진 숲 저편 너머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좀 전에 물을 길어 간 스님이 낙엽을 태워 찻물을 끓이고 있는 모양이다. 약초꾼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반가웠겠다. 마치 스님이 약초꾼의 다급한 마음을 알아서 신호탄을 쏘아 올린 듯한 느낌까지 들었을 것 같다. 갑자기 목이 마르다. 어서 가서 스님에게 차 한 잔을 얻어 마셔야지. 하루 종일 캔 약초로 망태기는 이미 묵직하다. 하지만 발걸음이 가벼워져서 무거운 줄도 모른다. 무릎까지 푹푹 파묻히는 숲길도 이제는 조금도 힘들지 않다.
이 시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떻게 될까? 낙엽 쌓인 산속에 망태기를 든 약초꾼 한 사람이 먼 곳을 보며 서 있겠지. 스님의 모습은 그리면 안 된다. 다만 숲 저 편으로 실오리 같은 연기가 모락모락 하늘 위로 피어오르면 된다. 앞서 본 휘종 황제의 그림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은가?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뛰어난 화가는 그리지 않고서도 다 그린다. 훌륭한 시인은 말하지 않으면서 다 말한다. 좋은 독자는 화가가 감춰 둔 그림과 시인이 숨겨 둔 보물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찾아낸다. 그러자면 많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25-32.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3>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4>
 
진짜 시와 가짜 시
 
  시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을까? 물론 있다. 진짜 시와 가짜 시는 어떻게 구분할까?   겉보기에는 멋있는 것 같은데 읽고 나도 아무 느낌이 남지 않는 시는 가짜 시다.  특별히 잘 쓴 것 같지 않아도 읽고 나면 느낌이 남는 시가 진짜 시다.  시뿐 아니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에 천하에 명화로 알려진 유명한 그림이 있었다.  소나무 아래서 선비 한 사람이 뒷짐을 지고 위를 올려다보는 그림이었다.소나무도 잘 그렸지만 뒷짐 진 선비의 표정이 너무너무 생생했다. 모두들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유명한 화가 안견이 이 그림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 그림을 구경하러 갔다. 그림 주인은 훌륭한 화가가 자기 그림을 보겠다고 직접 찾아온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림을 펼쳤다. 이제 과연 어떤 칭찬이 쏟아질까? 주인은 설레는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한참 만에 안견은 실망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잘 그리긴 했는데, 조금 아깝구려.”
  주인은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한번 생각해 보시오. 사람이 높은 곳을 올려다보자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게 마련이오. 그런데 고개를 젖혀 바라보는 선비의 뒷덜미에 주름이 하나도 없질 않소?”
  안견은 다시 보기도 싫다는 듯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이 그림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린 그림이 되고 말았다. 소나무를 그리는 솜씨도 뛰어났고, 사람의 표정도 생생했다. 다만 화가는 소나무를 올려다보는 선비의 목 뒤의 작은 주름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 소나무의 푸르른 기상을 우러르는 선비의 마음까지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이런 그림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고 밥을 떠먹이는 그림이었다. 천하의 명화로 이름이 높았다. 소문을 듣고 세종대왕께서 이 그림을 보았다. 왕은 한참 바라보더니 무엇이 못마땅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긴 참 잘 그렸다. 그렇지만,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에는 저도 모르게 자기의 입이 벌어지는 법이다. 그런데 이 그림 속의 노인은 입을 다물고 있구나. 아! 아깝다.” 
  정말 그렇다.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를 생각해 보자. 엄마는 숟가락에 밥을 떠 가지고 그 위에 반찬을 얹는다.아이의 입 가까이에 가져간다. “아! 아.” 하며 자기의 입을 벌린다. 아이는 엄마의 벌린 입을 보며 자기의 입을 벌려 음식을 받아먹는다. 그런데 그림 속의 할아버지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손자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화가는 다 잘 그려 놓고 조그만 실수를 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 조그만 실수가 가장 큰 실수가 되고 말았다.화가는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할아버지의 입을 그리지 않았다. 이것을 놓쳤기 때문에, 손자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림에서 없어져 버렸다.
  화가는 그림 속에 자기의 진실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사진처럼 똑같이 그린 그림도 죽은 그림이 되고 만다. 그런 그림은 가짜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 속에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워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살아 있는 시는 어떤 시일까? 한시를 한 수 살펴보자. 고려 때 시인 고조기가 지은 <산장의 밤비>라는 작품이다.
 
 
    어젯밤 송당에 비가 왔는지
    베갯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자던 새는 둥지를 아직 떠나지 않았네.
 
 
  내용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다. 간밤 잠결에 시냇물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간밤에 비라도 온 걸까? 새벽에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마당 나무 위 새둥지에 새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이 시의 내용은 별것이 아니다.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다. 시인은 어째서 나무 위에서 자던 새가 여태까지 둥지를 떠나지 않은 것을 말했을까? 산속 집의 아침은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노래하는 산새들의 합창으로 시작된다. 보통 때 같으면 새소리에 늦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밖이 거짓말처럼 조용하다. 시인은 처음에 “어? 오늘은 웬일로 요놈들이 이렇게 조용하지?”하고 생각했다. 그는 궁금해서 방문을 활짝 연다. 처음에는 새들이 울지 않기에 아직도 날이 새지 않은 줄 알았다. 문을 열고 보니, 새들은 포근한 제 보금자리를 나올 생각이 없다는 듯이 둥지 속에다 제 몸을 파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시인은 모든 사실을 다 알아차렸다. 그래 어젯밤에 꿈결에 시냇물 소리가 들려왔었지. 간밤에 산속에 비가 많이 왔었구나. 그 비에 시냇물이 불어났던 게로군. 숲이 온통 젖어 먹이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 저 녀석들이 둥지에 틀어박혀 있는 게로구나. 시인은 배를 깔고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둥지 속의 새를 쳐다본다. 둥지 속의 새도 말똥말똥 주인을 바라본다. 오늘 아침은 이렇게 말없이 놀자고 한다.
  가만히 이 시 속의 정경을 그림으로 옮겨 보면 참 재미가 있다. 숲 속에 작은 오두막집이 있다. 오두막집의 방문을 열려 있다. 주인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본다. 숲 속 둥지에선 새가 주인을 마주 본다. 마당은 젖었다. 나무에선 아직도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 같다. 이 가운데 주인과 둥지 속의 새 사이에 오고 가는 말 없는 대화가 귀에 쟁글쟁글 들리는 것만 같다. 자연을 아끼고 생명 있는 것을 사랑하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씨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도 입을 꽉 다문 할아버지의 그림은 가짜 그림일 뿐이다. 비록 덤덤하지만 그 속에 시인의 투명한 정신이 담겨 있을 때 진짜 시가 된다. 겉꾸밈만으로는 안 된다. 시 속에 참된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33-3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4> 진짜 시와 가짜 시|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5>
 
다 보여 주지 않는다
 
 
좋은 시는 직접 말하는 대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하나하나 모두 설명하거나 직접 다 말해 버린다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가 없다.
한시 한 편을 살펴보도록 하자.
 
혼자 앉아 찾아오는 손님도 없이 (독좌무래객 獨坐無來客)
빈 뜰엔 비 기운만 어둑하구나. (공정우기혼 空庭雨氣昏)
물고기가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어요하엽동 魚搖荷葉動)
까치가 밟았는가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작답수초번 鵲踏樹梢飜)
거문고가 젖었어도 줄에서는 소리가 나고 (금윤현유향 琴潤絃猶響)
화로는 싸늘한데 불씨는 아직 남아 있다. (로한화상존 爐寒火尙存)
진흙길이 출입을 가로막으니 (니도방출입 泥途妨出入)
하루 종일 문을 닫아걸고 있는다. (종일가관문 終日可關門)
 
조선 초기의 문인 서거정의 <혼자 앉아(獨坐)>라는 작품이다. 시를 읽고 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빈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는 손님이 없다는 말은 아무도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 좀 찾아와서 이 심심하고 적막한 위로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빈 뜰이라고 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하다는 뜻도 된다. 비 기운 때문에 어둑한 날씨는 우중충한 시인의 기분과 꼭 같다.
시인은 지금 마당이 보이는 마루나 사랑방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연못의 연잎이 툭 하고 흔들린다. 물고기가 연잎 줄기를 툭 건드리고 지나간 모양이다. 무심코 고개를 드니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가지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훌쩍 날아간 것이다. 시인은 마당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는 지금 너무도 심심해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구절을 보면 갑자기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가 나온다. 거문고 줄을 삼실을 꼬아서 만든다. 비가 오거나 흐려서 공기 중의 습도가 높아지면 젖은 기운을 머금어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 시인은 날씨가 흐리니까 거문고에서 소리가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혹시나 싶어 뚱겨보니 뜻밖에 맑은 소리가 난다. 조금 추운 듯싶어 화로 가까이에 손을 가져갔다. 온기가 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불씨가 다 꺼졌나 보다 싶어 뒤적여 보니 식은 재 속에 따뜻한 불씨가 아직 남아 있다.
시인은 왜 갑자기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를 꺼냈을까? 젖어서 소리가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소리를 간직한 거문고, 식어서 불씨가 없을 줄 알았지만 불씨를 지닌 화로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일까? 두 사물의 공통점은 겉으로는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쓸모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바로 시인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과 꼭 같다. 그는 지금 아마도 현실에서 어떤 힘든 일을 경험하고 물러나 있는 처지였던 모양이다. 세상이 자신을 버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지만, 나는 아직 가슴속에 세상을 위해 일할 열정과 포부를 지니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끝에서 그는 나가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에 문을 닫아걸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진흙길’이 출입을 방해한다는 말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진흙탕 길에 나가 봐야 옷만 더럽히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아직도 진흙탕 길처럼 어수선하고 어지럽다. 그래서 마음속의 열정을 묻어 둔 채 식은 화로처럼 그렇게 문을 닫아걸고서 때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시인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아껴 두고, 연잎을 흔드는 물고기와 나뭇가지를 밟고 날아간 까치, 그리고 젖은 거문고와 식은 화로 이야기를 슬쩍 던져 놓고, 그것들을 시켜 자기가 할 말을 대신하게 한다.
시인은 시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독자는 다 알아들을 수가 있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45-4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5> 다 보여 주지 않는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6>
 
연꽃에서 찾는 여러 가지 의미
 
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사물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연꽃과
관련된 세 편의 한시에서 같은 사물 속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자. 곽예는 고려 때의 유명한 문장가였다. 겸손하여 높은 지위에 올라서도 벼슬하지 않은 사람과 같이 검소하게 살았다. 그는 바쁜 일과 중에도 조용히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그는 비가 오면 혼자 우산을 펴 들고 맨발로 연못으로 가서 연꽃을 감상하곤 했다.
  어느 날 연꽃을 보면서 <연꽃 구경(賞蓮상연)>이란 시를 지었다.
    
    세 번이나 연꽃 보러 삼지를 찾아오니 (상련삼도도삼지 賞蓮三度到三池)
   푸른 잎 붉은 꽃은 그때와 변함없다. (취개홍장사구시 翠盖紅粧似舊時)
   다만 꽃을 바라보는 옥당의 손님만이 (유유간화옥당객 唯有看花玉堂客)
   마음은 변함없어도 머리털이 희어졌네. (풍정미감빈여사 風情未減鬢如絲)
    
  연못 이름을 삼지(三池)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곳은 작은 연못이 세 개로 나뉘어 있었던 모양이다. 세 번째로 찾아왔다고 했지만 삼지란 말과 호응을 이루기 위해서였고, 그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이곳을 찾아왔었다. 커다란 푸른 잎과 아름다운 연꽃을 보기 위해서다. 연꽃은 옛날 내가 이곳을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곱고 어여쁜데 그것을 구경하고 있는 나는 어느새 귀밑머리털이 희게 변해 버렸다.아마도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매일 매일 바쁘게 지내다가 훌쩍 나이만 먹어 버린 것이 슬펐던 것 같다. 곽예는 연못가에 맨발로 우산을 쓰고 앉아서 연못 가득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을 보며 이런 다짐을 했을 것이다. 높은 벼슬아치가 되면 교만해져서 거들먹거리기가 일쑤인데, 곽예는 오히려 맨발로 연꽃을 구경하면서 겸손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애썼다.
  옛날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주돈이는 <연꽃을 사랑하는 이유>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을 지은 일이 있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가 않다. 속은 비었고 겉은 곧다. 넝쿨도 치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는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꼿꼿하고 깨끗하게 심어져 있다.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어도 업신여겨 함부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이후로 연꽃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글 가운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는 말이 있다. 연꽃은 연못 가운데서 피니까 가까이 가서 코를 대고 그 향기를 맡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따금 바람결에 실려 오는 그 향기는 더욱 맑게 느껴진다.
 
 
  고려 때 시인 최해도 <빗속의 연꽃(雨荷우하)>이라는 시를 남겼다. 
    
    후추를 팔백 가마나 쌓아 두다니 (저초팔백곡 貯椒八百斛)
   천년 두고 그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천재소기우 千載笑其愚)
   어찌하여 푸른 옥으로 됫박을 만들어 (여하벽옥두 如何碧玉斗)
   하루 종일 맑은 구슬을 담고 또 담는가. (경일량명주 竟日量明珠)
 
 
  당나라 때 원재란 사람은 탐욕스런 관리였다. 그는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을 받아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그가 죽은 뒤 창고를 뒤져보니, 후추가 무려 팔백 가마나 나왔다. 종유 기름도 오백 냥이나 나왔다. 평생을 써도 절대로 쓸 수 없는 양이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이를 몰수하였다. 첫 번째, 두 번째 구절에서는 원재의 이 탐욕스런 마음을 이야기했다.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으냐고 나무란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빗속의 연꽃을 노래한 것이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는 바로 세 번째, 네 번째 구절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세 번째 구절에서 말한 ‘푸른 옥으로 만든 됫박(바가지)’은 바로 넓고 푸른 연잎을 말한다. 비 오는 날 연잎마다 비 구슬을 담았다가 연못에 붓고, 또 담았다가 연못에 붓고 하는 됫박질이 한창이다. 이제 연못은 연잎이 하루 종일 모아서 쏟아 놓은 맑은 구슬로 가득 차 버렸다.
  비록 원재는 후추를 그렇게 욕심 사납게 쌓아 두었다가 후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다. 그렇지만, 하늘이 준 맑은 구슬을 연못 속에 가득 쌓아 두고픈 시인의 욕심은 아무리 지나쳐도 나쁠 것이 없을 것 같다.그만큼 마음이 맑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원나라에 머물고 있던 충선왕이 임금이 되기 위해 고려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충선왕이 너무도 사랑한 여인이 있었지만 그녀를 함께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 왕은 그녀에게 이별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꺾어 주고 차마 떨어지지 않은 걸음을 돌렸다. 왕은 도저히 그녀를 잊을 수가 없어 한참을 지낸 후 신하인 이제현을 시켜서 그녀를 찾아보게 하였다. 그녀는 왕과 헤어진 후 상심하여 며칠 째 아무 것도 못 먹고 누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지경이었다. 그녀는 겨우 일어나 울면서 <연꽃(蓮연)>이란 시 한 수를 써서 왕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떠나며 보내 주신 연꽃 한 송이 (증송연화편 贈送蓮花片) 
   처음엔 너무도 붉었는데, (초래적적홍 初來的的紅) 
   줄기를 떠난 지 며칠 못 되어 (사지금기일 辭枝今幾日) 
   초췌함이 제 모습과 똑같습니다. (초췌여인동 憔悴與人同)
    
  이제현은 이 시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으나 왕에게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거짓말을 했다. “전하! 제가 그 여인을 찾아가 보니, 술집에서 젊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어서,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충선왕은 너무도 분해서 침을 뱉으며 그녀를 잊었다. 고려에 돌아온 이듬해, 왕의 생일이 되었다. 이제현은 왕에게 생일을 축하하는 술잔을 올리고 나서, 갑자기 뜰에 엎드렸다 “신이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그러고는 이제현은 그때의 일을 사실대로 아뢰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그날 만약 내가 이 시를 보았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그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대가 나를 사랑한 까닭에 거짓으로 말하였으니 참으로 그 충성이 간절하도다.” 임금과 신하 사이의 아름다운 미담으로『용재총화』라는 책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앞서 곽예의 시에서 연꽃은 멀리서 은은한 향기를 전해 주는 군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는가 하면, 최해의 시에서는 반대로 비 구슬을 사랑하는 욕심꾸러기로 나온다. 한편 위의 시에서 연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시들어 가는 여인의 모습으로 노래되고 있다. 이처럼 같은 꽃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연꽃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다 그렇다. 좋은 시는 어떤 사물 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49-5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6> 연꽃에서 찾는 여러 가지 의미|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8>
 
새롭게 바라보기
 
 
어떤 사물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낯설게 보이는 수가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보통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새롭게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새롭게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사물과 비로소 만날 수가 있다. 시는 이런 만남을 주로 노래한다. 시인은 사물과 새롭게 만나게 해 주는 사람이다.
시를 쓸 때는 남들 보는 대로 보지 않고, 내가 본 대로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시를 통해 우리는 나와 아무 상관없던 사물과 새롭게 만난다. 새롭게 만나려면 새롭게 보아야 한다. 남들 보는 대로 보아서는 그 사물의 새로운 점이 보이지 않는다.
낯익은 사물도 새롭게 보면 낯설어진다. 매일 똑같이 보던 것인데 어느 날 갑자기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 그 사물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지금까지 그것을 보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아 보인다. 그래서 내가 느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는 시인이 사물과 새롭게 만나 느낀 감동을 입을 열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적은 것이다.
다음 시를 한 수 보자.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甲日花無乙日輝 갑일화무을일휘)
한 꽃으로 두 해님을 보기가 부끄러워서다. (一花羞向兩朝煇 일화수향양조휘)
날마다 새 해님 향해 숙이는 해바라기를 말한다면 (葵傾日日如馮道 규경일일여빙도)
세상의 옳고 그름을 그 누가 따질 것인가. (誰辨千秋似是非 수변천추사시비)
 
고산 윤선도의 <무궁화>라는 작품이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꽃이다. 무궁화는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다 진 꽃이 다음날 아침에 보면 어느새 나무 가득 다시 활짝 피어 있다. 그래서 피고 지고 또 피는 그 은근과 끈기의 정신을 기려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꽃을 무궁화, 즉 ‘다함이 없는 꽃’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나라꽃으로 정해 아끼고 사랑해 왔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우리가 나라꽃으로 사랑하는 이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꽃이 하루도 못 가서 땅에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꽃 이름도 무궁화라 하지 않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 또는 꽃의 화려함이 하루밖에 못 간다고 ‘하룻영화꽃’이라고 낮춰서 불렀다. 가진 것도 없이 뽐내는 소인배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였다.
윤선도는 무궁화를 ‘일일화(一日花)’라고 불렀는데, 이 말도 하루밖에 못 가는 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하루밖에 못 가는 꽃에 대한 윤선도의 생각은 중국 사람과 아주 다르다. 무궁화는 오늘 피었다가 오늘 진다. 하나의 꽃으로 두 해님에게 인사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보니까, 무궁화는 이랬다저랬다 하는 꽃이 아니라 참으로 순수하고 충직한 마음을 지닌 꽃이 되었다.
다른 꽃들은 오늘 핀 꽃으로 내일도 모래도 글피도 새로 떠오르는 해님에게 인사한다. 시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새 해님 앞에 자태를 뽐내는 꽃들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그렇지만 무궁화는 다르다. 한편, 해바라기는 언제나 태양을 향하여 고개를 숙이기 때문에 임금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나타내는 꽃으로 늘 칭찬받아 왔다.
이렇게 해바라기는 일편단심의 충성스런 마음을 상징하는 꽃이다. 그런데 위 시에서 윤선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무궁화는 한 태양만을 섬기기 위해 매일 지는데, 해바라기는 매일매일 떠오르는 다른 태양을 향해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니 오히려 지조가 없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태양을 임금이라고 생각해 보자. 윤선도가 말하려고 한 뜻을 금세 알 수 있다. 옛말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의 태양, 즉 한 분의 임금님만을 섬기기 위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무궁화는 정말로 충성스런 꽃이다. 반대로 여러 개의 태양, 즉 여러 임금에게 모두 다 아첨하는 해바라기야말로 간신배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니까 무궁화는 하루 만에 지지만 매운 정신을 지닌 꽃이 되었고, 해바라기는 지조도 없고 아첨만 잘하는 소인배를 나타내는 꽃이 되었다.
위 시에서 두 해님이라 읽은 것은 ‘양조(兩朝)’인데 두 조정, 즉 두 임금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한시에서 하나의 단어를 이렇게 두 가지 뜻으로 읽는 것을 ‘쌍관의(雙關義)’라고 말한다.
윤선도는 효종 임금을 위해 평생 충성을 바쳤던 분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를 간신배라고 비방하고 헐뜯었다. 그는 평생 20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했다. 이 시도 귀양 가서 지은 것이다. 자신을 소인배라고 헐뜯는 조정 벼슬아치들에게 윤선도는 자신은 무궁화와 같은 사람이라고 당당히 대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해바라기 같은 너희들이 바로 간신배가 아니냐고 따졌던 것이다.
이 시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 속에 보이는 무궁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무궁화와는 전혀 다른 꽃처럼 느껴진다. 무궁화를 이렇게 바라본 사람은 없었다.
시인은 늘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그 사물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해 준다. 어느 날 내가 그것들은 주의 깊게 살펴 대화할 수 있게 되면, 사물들은 마음속에 담아 둔 이야기들을 나에게 건네 오기 시작한다. 시는 사물이 나에게 속삭여 주는 이야기를 글로 적은 것이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75-82.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8> 새롭게 바라보기|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9>
 
의미가 담긴 말
 
 
 
한시 속에는 어떤 단어 안에 사전에 나오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이 담긴 말들이 많다. 하나의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담고 반복적으로 노래되다 보니 새로운 뜻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새로운 의미를 ‘정운의(情韻義)’라고 한다. 정운의를 잘 알아 두면 시를 감상하는 데 아주 편리하다.
조선 시대 홍랑이란 기생이 함경도에 벼슬 살러 온 최경창이란 시인을 사랑했다. 임기가 끝나 최경창이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홍랑은 최경창에게 시조를 한 수 지어 주며 이별하였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의 앞에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옛날에는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이별의 정표로 버들가지를 꺾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 버들가지는 꺾은 가지를 땅에 심어도 다시 뿌리는 내리는 성질을 지닌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비록 이렇게 헤어지지만 훗날 반드시 다시 만나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것이다.
다시 버들가지를 꺾는 이야기가 나오는 한시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어 (離人日日折楊柳 리인일일절양류)
천 가지 다 꺾어도 가시는 임 못 잡았다. (折盡千枝人莫留 절진천지인막류)
어여쁜 아가씨들 눈물 때문일까 (紅袖翠娥多少淚 홍수취아다소루)
안개 물결 지는 해에 근심만 가득하다. (烟波落日古今愁 연파락일고금수)
 
조선 시대 임제가 지은 <대동강 노래(浿江曲)> 가운데 한 수이다. 원문을 보면 첫째 구절 끝에 버들‘류(柳)’자가 있고, 둘째 구절 끝에 머무를 류(留)자가 있다. 두 글자의 소리가 같기 때문에 버드나무라는 말은 가지 말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버들가지를 준 것은 다시 만나자는 다짐보다 가지 말라는 만류의 뜻이 더 많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날마다 대동강 가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진다. 헤어지는 사람마다 버들가지를 꺾어 주며 가지 말라고 붙든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다 떠나가 버렸다. 평양의 아가씨들은 매일 강변에 나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한숨 쉬며 눈물을 흘린다. 강물 위에는 그녀들이 흘리는 눈물과 내쉬는 한숨 때문에 안개가 저렇게 자욱하다고 시인은 과장해서 말했다.
한시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가 바로 버드나무이다. 버드나무는 봄날의 설렘과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희망을 나타내는 나무이다. 이런 뜻은 물론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한편으로 한시에 보면 가을 부채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왜 가을에 부채를 부칠까? 먼저 다음 한시를 한 수 읽어 보자.
 
은촛대에 가을빛은 그림 병풍에 차가운데 (銀燭秋光冷畵屛 은촉추광냉화병)
가벼운 비단 부채로 반딧불을 치는구나. (輕羅小扇撲流螢 경라소선박류형)
하늘 가 밤빛은 물처럼 싸늘한데 (天際夜色凉如水 천제야색량여수)
견우와 직녀성을 앉아서 바라본다. (坐看牽牛織女星 좌간견우직녀성)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 두목의 <가을밤(秋夕)>이란 작품이다. 가을밤이면 추워서 오싹하고 찬 기운이 느껴진다. 가을밤에 어떤 여인이 혼자 앉아 견우와 직녀성을 바라보고 있다. 시속에는 ‘차갑다’와 ‘싸늘하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도 그녀는 손에 부채를 쥐고 있다. 추운 가을밤에 왜 그녀는 손에 부채를 쥐고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부채로 방 안으로 날아드는 반딧불이를 치고 있다. 열어 둔 창문으로 반딧불이가 자꾸만 날아든다.반딧불이는 원래 인적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날아다닌다. 그런데 그녀의 방까지 날아들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 그만큼 황량해졌다는 뜻이다. 그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부채를 들어 반딧불이를 내쫓는다.
이 시는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잊혀 진 궁녀의 신세를 노래한 것이다. 끝에서 그녀가 우두커니 앉아서 견우와 직녀성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일 년 내내 떨어져 있다가 칠월칠석날 단 하루만 만난다. 견우와 직녀는 이 다리를 건너서 반갑게 만난다. 두 사람은 만남이 반갑고 또 헤어질 것이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칠월칠석날에는 늘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다.
그녀는 왜 하필 많고 많은 별 중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것은 두 가지 풀이가 가능하다. 하나는 우리도 견우와 직녀처럼 헤어져서 만나지 못하니 너무 슬프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견우와 직녀는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영영 사랑하는 임과 다시는 만날 수가 없어 슬프다는 것이다. 아마 나중의 풀이가 더 맞을 것 같다.
시인은 그녀가 임금에게 버림받은 궁녀라는 것을 단지 그녀의 손에 부채를 쥐여 줌으로써 독자들이 눈치 챌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전부터 많은 시인들이 가을 부채를 버림받은 여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버들가지를 꺾어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다. 가을 부채가 버림받은 여인의 의미를 나타낸다.이렇게 된 것은 그 물건이 지닌 성질 때문이다. 처음에 어떤 시인이 이것을 시로 쓰자, 그 비유가 너무나 알맞았기 때문에 그 뒤로 많은 시인들이 뒤따라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 마침내 이 비유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표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처음 가을 부채로 버림받은 여인을 비유했을 때는 매우 낯설어서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그것이 자주 쓰여서 상징이 되면, 일반적인 부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 즉 정운의를 간직하게 된다.
겉으로 보아서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물들이 생각의 단계를 거쳐 전혀 다른 의미와 연결된다. 한시에는 이런 말들이 많다. 이 정운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시를 훨씬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83-90.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9> 의미가 담긴 말|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0>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말에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는 말이 있다. 무슨 일이든지 미친 듯한 열정으로 하지 않으면 성취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조선 시대 유명한 서예가인 최흥효란 사람이 있었다. 젊어서 과거 시험을 보러가서 문제의 답안을 쓰다 보니 그 중에 한 글자가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의 글씨와 꼭 같게 써졌다. 평소에는 수백 번씩 연습해도 잘 써지지 않던 어려운 글자였다. 그런데 이번에 쓴 것은 오히려 왕희지보다 더 잘 쓴 것 같았다. 그는 그만 자기 글씨에 도취되어 차마 아까워서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하고 그냥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우연히 같게 써진 한 글자의 글씨 앞에서 그는 자기가 과거 시험을 보고 있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글씨 연습을 해서 그는 뒷날 과연 이름난 서예가가 되었다.
조선 중기에 이징이란 화가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의 아버지 이경윤도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는데 그림을 잘 그려도 천한 대접만 받았으므로 아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었던 이징은 몰래 집 다락에 숨어서 그림을 그렸다. 집에서는 갑자기 아이가 없어졌기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났다. 가족들은 사흘 만에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년을 찾아냈다. 아버지는 너무도 화가 나서 볼기를 때렸다. 소년은 매를 맞고 울면서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찍어 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소년에게 그림 그리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또 조선 시대 왕실의 친척이었던 학산수란 이가 있었다. 그는 노래를 잘 부르는 명창으로 이름이 높았다.산에 들어가 노래 공부를 할 때는 반드시 신발을 벗어 앞에 놓고 노래 한 곡을 연습하고 나면 모래 한 알을 주워 신발에 담았다. 또 한 곡이 끝나면 다시 모래를 한 알을 담았다. 그렇게 해서 모래가 신발에 가득 차면 그제야 산에서 내려왔다.
한번은 황해도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도적 떼를 만났다. 도적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귀한 신분인 줄 알아채고, 가진 것을 다 빼앗은 후 그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슬퍼져서 나무에 꽁꽁 묶인 채로 바람결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들은 도적들은 모두 감동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노래가 끝나자 도적들은 그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잘못을 빌었다. 그를 풀어 주고 빼앗았던 물건도 다 돌려주었다.
조선 후기에 이삼만이라는 서예가는 초서 글씨를 잘 쓰기로 유명했다. 종이를 구하기 힘든 때였기 때문에 그는 흰 베를 빨아서 그 위에 글씨를 썼다. 흰 베가 온통 까맣게 되면 이것을 빨아서 다시 썼다. 아무리 아파도 하루에 천 자씩은 꼭 썼다. 처음에 그는 부자였는데, 글씨만 쓰고 다른 일은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주 가난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는 열심히 글씨만 썼다. 그는 글씨를 배우려는 젊은이에게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네가 글씨를 잘 쓰려면 적어도 벼루 세 개쯤은 먹을 갈아 구멍을 내어야 할 걸세.”
그 단단한 벼루가 먹을 갈아서 구멍이 나도록 그는 글씨를 쓰고 또 썼다. 그래서 마침내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다.
우연히 같게 써진 글자 하나 때문에 과거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았던 최흥효나 매를 맞으면서도 눈물을 찍어 새 그림을 그렸던 이징, 노래 한 곡을 부를 때마다 모래 한 알을 담아 넣으며 노래 공부를 했던 학산수,여러 개의 벼루를 구멍 내 가면서 글씨 연습을 했던 이삼만, 이 네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미쳤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은 이런 끊임없는 노력과 미친 둣한 몰두 속에서 이루어진다. 노력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시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시인은 마음에 드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한다.
고려 때 강일용이란 시인이 있었다. 그는 깃이 흰 백로를 유난히 사랑했다. 백로를 가지고 정말 훌륭한 시를 한 수 짓고 싶었다. 그래서 비만 오면 짧은 도롱이를 걸쳐 입고 황소를 타고 개성 시내를 벗어나 천수사란 절 옆의 시냇가로 갔다. 황소 등에 올라앉아 비를 쫄딱 맞으며 백로를 구경하곤 했다.
비가 올 때마다 나가서 백로를 관찰하였지만, 아름다운 시상(詩想)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백일 만에 갑자기 한 구절을 얻었다. 그 시구는 이러했다.
 
푸른 산허리를 날며 가르네. (飛割碧山腰 비할벽산요)
 
그는 어느 날 시내를 박차고 날아오른 백로가 유유히 산허리를 가르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비가 와서 푸른 산허리에는 흰 안개가 자옥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시인은 흰 안개가 흰 백로가 훨훨 날아가면서 푸른 산허리에 흰 줄을 그어 놓은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이 구절을 얻고서 그는 너무도 기뻐서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오늘에야 옛사람이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을 비로소 얻었다. 훗날 이 구절을 이어 시를 완성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한 구절이 너무도 마음에 들고, 또 이 구절을 얻은 것이 너무도 기뻤던 나머지, 그는 다른 구절을 채워 한 수의 시를 완성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위대한 예술가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이러한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를 완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위대한 예술은 탄생한다. 옛 시인들은 한 편의 마음에 드는 시를 짓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당나라 때 시인 맹교는 좋은 시를 짓기 위해서라면 칼로 자기 눈을 찌르고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살아서는 한가한 날 결코 없으리 (生應無暇日 생응무가일)
죽어야만 시를 짓지 않을 테니까. (死是不吟詩 사시불음시)
 
‘괴로이 읊다(苦吟)’란 제목의 이 시처럼, 죽기 전에는 결코 시 짓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당나라 때 노연양이란 시인도 아주 재미난 시를 남겼다.
 
한 글자를 꼭 맞게 읊조리려고 (吟安一箇字 음안일개자)
몇 개의 수염을 배배 꼬아 끊었던가. (撚斷幾莖髭 연단기경자)
 
시를 지으려고 하는데 알맞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글자가 좋을까, 저 글자가 좋을까? 고민하느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염을 배배 꼬다가 도대체 몇 가닥이나 끊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생각에 골똘히 빠져서 손가락 끝에 수염 하나를 감아쥐고 배배 꼬는 그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스스로 만족스러울 때까지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들볶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작품 하나에도 한 예술가의 일생이 담겨 있다. 시인은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남기기 위해 어떤 괴로움도 다 참아 내며 견딘다. 화가는 멋진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음악가는 아름다운 곡을 작곡하려고 힘든 줄도 모르고 밤을 새우며 작업에 몰두한다.
위대한 예술은 자기를 잊는 이런 아름다운 몰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은 독자가 뭐라 하던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우리가 쉽게 읽고 잊어버리는 작품들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91-9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0>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1>
 
시는 그 사람과 같다
 
옛말에 ‘글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 있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시인이 사물과 만나면 마음속에서 어떤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그것을 시로 옮긴다. 이때 사물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그 사람의 품성이나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한 마디에도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시인과 만날 수 있다. 고려 예종 때 시인 정습명이 지은 <패랭이꽃>이란 작품을 보자. * 한시의 제목은 석죽화(石竹花)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해서 (世愛牧丹紅 세애목단홍)
동산에 가득히 심어서 기른다. (栽培滿園中 재배만원중)
그렇지만 황량한 들판 위에도 (誰知荒草野 수지황초야)
예쁜 꽃 피어난 줄은 아무도 모르네. (亦有好花叢 역유호화총)
그 빛깔은 시골 연못에 달빛이 스민 듯 (色透村塘月 색투촌당월)
향기는 언덕 위 바람결에 풍겨 온다. (香傳隴樹風 향전롱수풍)
땅이 후미져서 귀한 분들 오지 않아 (地偏公子少 지편공자소)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맡긴다. (嬌態屬田翁 교태속전옹)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마당 가득히 심어 놓고 그 붉은 꽃처럼 부귀하고 영화롭게 살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패랭이꽃은 그렇지가 않다. 다섯 개의 가녀린 꽃잎을 가진 패랭이꽃은 꽃잎도 작고 빛깔은 수줍은 분홍빛이다. 아무도 이 꽃을 마당에 심어 두려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오지 않은 들판의 오솔길 옆에서 바람에 맑은 향기를 날리며 피었다가 조용히 질 뿐이다.
그렇지만 패랭이꽃도 모란꽃만큼이나 아름답다. 아니 모란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모란꽃은 짙게 화장을 하고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은 영화배우와 같다. 패랭이꽃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 순진하고 해맑은 산골 아가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도 패랭이꽃은 그 아름다운 모습을 농사짓는 시골 농부들에게만 보여 주며 피어 있다. 하지만 시골 농부는 늘 농사일에 바빠 패랭이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분 높은 귀한 사람은 시골에 오지 않는다. 결국 패랭이꽃은 그냥 혼자 피었다가 혼자 질 뿐이다.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는 패랭이꽃과 상관이 없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어여쁜 꽃잎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바람결에 흩날릴 뿐이다.
정습명은 이 시를 왜 썼을까? 그는 기이한 재주와 넓은 포부를 지녔던 뜻 높은 선비였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 시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내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자기 소개서인 셈이다.
고려 예종 임금께서 이 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뛰어난 시인이 있었단 말이냐. 어서 가서 그를 불러오너라.”
시 속에 담긴 내용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예종은 그를 만나보고는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에게 벼슬을 내리고 늘 가까이 머물게 했다.
다음 시는 역시 고려 때 시인 최해가 지은 <시골집의 눈 오는 밤>이란 작품이다.
* 한시의 제목은 현재설야(縣齋雪夜)이다.
세 해의 귀양살이 병까지 들고 보니 (三年竄逐病相仍 삼년찬축병상잉)
한 칸 집에 사는 모습 스님과 비슷하다. (一室生涯轉似僧 일실생애전사승)
눈 덮인 사방 산엔 찾아오는 사람 없고 (雪滿四山人不到 설만사산인불도)
파도 소리 속에 앉아 등불 심지 돋운다. (海濤聲裏坐挑燈 해도성리좌도등)
 
최해도 높은 기상과 재주를 지녔던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는 자신의 능력을 뽐내어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가 맡은 일에 큰 실수를 저질러 구석진 시골로 쫓겨나 있었다. 첫 번째 구절을 보면 그가 쫓겨나 이곳에 온 것이 벌써 삼 년이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살림에 병까지 들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가난한 스님과 같다고 했다. 하루 세 끼 끼니초자 잇기 어려운 힘든 형편을 하소연했다.
가뜩이나 살아가기 힘든데, 눈이 펑펑 내려서 춥기도 하고 밖으로 통하는 길이 다 막혀 버렸다. 군불도 때지 않은 추운 방에서 벌벌 떨고 있자니 창문 밖에서 엄청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고 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했으니까 진짜 파도 소리는 아니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소리가 마치 집채만 한 파도가 집을 덮쳐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는 잠을 못 이루며 오두마니 앉아서 등불 심지를 돋우고 있다. 예전 등불은 심지가 다 타면 다시 심지를 돋우어 주어야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등불 심지를 돋우는 것은 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는 행동이다.
눈이 펑펑 내렸다. 이 눈 속에 이곳을 찾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시인은 등불 심지를 돋워서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한다. 등불마저 꺼져 버린다면 깜깜한 어둠 속, 집채만 한 파도 소리 속에 자신마저 휩쓸려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가물대는 등불 심지를 돋우는 모습에서 깊은 밤에 혹시 누군가 자신을 찾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기다림의 심정마저 느껴진다.
이 시를 읽어 보면 앞서 패랭이꽃을 노래한 정습명이 태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습명은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해는 아무도 올 수 없는 눈 오는 밤중에도 누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여 등불 심지를 돋우고 있다. 그는 오랜 귀양살이 끝에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의 존재가 완전히 잊혀질까 봐 괴로워했던 것 같다. 결국 최해는 이렇게 불우하게 살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정습명과 최해의 시를 보면 이 말을 더 실감할 수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한자로는 ‘농가성진(弄假成眞)’이라고 하는데, 뜻 없이 한 말이 말한 그대로 진짜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 속에 정령이 살아 숨 쉰다고 믿어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내가 오늘 무심히 하는 말투와 행동 속에 내가 품은 생각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99-10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1> 시는 그 사람과 같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2>
 
치마 위에 쓴 시
 
 
한시 속에는 옛날의 유명한 시인들이 쓴 표현이나 이야기를 빌려 오는 경우가 꽤 많이 보인다. 이런 것을 ‘용사(用事)’라고 한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는 아주 효과적인 표현 방법이다.
왕헌지는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 왕희지의 아들이었다. 그도 역시 명필로 이름이 높았다. 그가 오흥 태수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 마을에 양흔이란 열두 살 난 소년이 글씨를 아주 잘 썼다. 왕헌지는 양흔을 아주 아꼈다. 하루는 양흔이 보고 싶어서 그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다.
그때 소년 양흔은 마침 새로 해 입은 비단옷을 입고 글씨 연습을 하다가 붓을 한 손에 든 채로 곤하게 낮잠이 들어 있었다. 천진스레 낮잠에 빠져 있는 소년을 보던 왕헌지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양흔의 붓을 빼앗아 들고 양흔의 새 옷 위에다 글씨를 써놓고 갔다. 이윽고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새 옷 위에 어지럽게 글씨가 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신을 가만히 차리고 살펴보니 다름 아닌 선생님의 글씨였다. 감격한 소년은 옷 위에 써 준 선생님의 글씨를 보면서 더욱더 글씨 공부에 정진해서 훌륭한 서예가가 되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왕헌지가 양흔의 옷자락에 글씨를 써 준 것을 가지고 ‘글씨 치마’라는 말을 만들어 후세에 전했다. 스승이 제자를 아끼는 마음과 제자가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빚어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도 이 글씨 치마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1813년에 정약용은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전라남도 강진 땅에 귀양 가 있었다. 강진의 만덕산 옆에 조그만 초가집을 짓고 살면서 오로지 책 읽고 글 쓰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벌써 귀양살이도 13년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서울 집에서 인편에 편지와 옷가지를 부쳐 왔다. 반가워 보자기를 열어 보니 가족들 모두 편안히 잘 있다는 안부 편지와 함께 낡아서 못 입게 된 치마 몇 벌이 들어 있었다. 아내가 시집오던 날 입었던 붉은색의 활옷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붉은빛은 이미 다 바래 버리고 노란색도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것이었다.
아내가 왜 이 낡은 치마를 나에게 보냈을까? 정약용은 이렇게 생각하다가 가위를 가져와서 빛바랜 치마를 펴고는 네모나게 잘랐다. 그것으로 공책을 만들었다. 거기에 먼저 두 아들에게 주는 훈계의 말을 적었다. 죄인이 되어 멀리까지 귀양 와 사는 동안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담아 열심히 공부하고 바른 사람이 되라는 부탁을 함께 곁들였다.
어머니가 시집오시던 날 입었던 빛바랜 치마 위에 아버지가 써주신 훈계의 말씀을 받아 들었을 때 자식들의 가슴은 얼마나 뭉클하였을까? 아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을 적고 나서도 치마 천이 조금 남았다. 그래서 다시 시집간 딸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딸을 위해 그려 준 그림과 시는 지금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림을 보면 먼저 위쪽에 매화 가지를 그렸다. 가지에는 매화꽃이 활짝 피었다. 봄날이 온 것이다. 어디선가 날아온 꾀꼬리 두 마리가 정답게 매화가지 끝에 앉아 있다. 두 마리 꾀꼬리는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며 즐겁게 봄날을 노래한다. 그 아래에 이렇게 시를 써 놓았다. 이 시의 제목은 ‘매조도에 쓴 시(梅鳥圖詩)’이다.
 
펄펄 나는 저 새가 (翩翩飛鳥 편편비조)
우리 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息我庭梅 식아정매)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有烈其芳 유렬기방)
즐거이 놀려고 찾아왔다. (惠然其來 혜연기래)
여기에 올라 깃들여 지내며 (爰止爰棲 원지원서)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樂爾家室 락이가실)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花之旣榮 화지기영)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 (有蕡其實 유분기실)
 
한 쌍의 꾀꼬리가 매화 향기를 찾아 내 집 마당으로 날아들었다. 그 춥던 겨울이 다 끝난 것이다. 새들은 꽃향기에 취해 나뭇가지를 떠날 줄 모른다. 즐거운 노래가 그치지 않는다. 겨우내 쓸쓸하던 마당이 갑자기 환하다.
이 시의 원문은 공자가 엮은『시경』이란 옛 시집 속에 실려 있는 시들처럼 네 글자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시경에 있는 <아가위꽃(常棣)>이란 다음 시도 이와 같은 형식이다.
 
아내와 자식이 정답게 지내는 것이 (妻子好合 처자호합)
마치 금슬을 연주하는 것 같아도 (如鼓琴瑟 여고금슬)
형님과 아우가 화목해야만 (兄弟其翕 형제기흡)
즐겁고 기쁘다고 할 수가 있다. (和樂且湛 화락차담)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 (宜爾室家 의이실가)
그대의 처자식을 즐겁게 해 주어라. (樂爾妻帑 락이처탕)
이렇게 하려고 애를 쓴다면 (是究是圖 시구시도)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亶其然乎 단기연호)
 
위 시의 다섯 번째 구절을 보면 ‘네 집안을 화목하게 하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앞에서 본 정약용 시의 여섯 번째 구절에 나오는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라는 말과 비슷하다. 정약용은 일부러『시경』의 시와 비슷한 표현을 골라서 위 시의 내용을 자기의 시 속에 담으려고 했던 것이다.
정약용이 딸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려 주며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치마에 그려 보내 준 그림을 보고 멀리 계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예전에 있던 시의 표현을 슬쩍 빌려 와서 자신의 생각을 담는 것을 한시에서는 ‘용사’라고 한다. 그래서『시경』에 실려 있는 <아가위꽃>이라는 시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약용이 새에게 하고 있는 말만 듣고도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줄 금세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다 떨어져서 입을 수 없게 된 치마가 이렇게 해서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되었다. 이 그림과 시가 참으로 아름다운 까닭은 그 안에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모든 것이 너무나 풍족하니까 물건이 아까운 줄도 모른다. 멀쩡한 새 옷도 다 내다 버리고 학용품도 아낄 줄 모른다. 아낄 줄 아는 마음이 없이는 소중한 것도 없다. 부모가 소중하고 형제가 소중하고 가족이 소중하고 친구가 소중한 줄을 모른다. 헌 치마 조각도 이렇게 아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나눌 줄 알았던 옛 선인들의 거룩한 마음씨를 잊지 말아야겠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07-114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2> 치마 위에 쓴 시|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3>
 
계절이 바뀌는 소리
 
시 속에는 시인이 일부러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하게 말하기 않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게 된다. 이런 것을 전문적인 말로는 ‘모호성’이라고 한다. 시인은 일부러 모호하게 말해서 독자가 더 많이 생각하고 더 크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번에는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고 있는 한시 몇 수를 함께 읽으면서 이 모호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주의 깊게 살펴보면 사물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 그런데 그 소리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다음 한시는 고려 말의 충신인 정몽주의 <봄비〔春雨〕>라는 작품이다.
 
봄비가 가늘어서 방울도 짓지 못하더니 (春雨細不滴 춘우세부적)
한밤중에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夜中微有聲 야중미유성)
눈 녹아 남쪽 시내에 물이 불어나니 (雪盡南溪漲 설진남계창)
새싹들이 많이도 돋아났겠다. (草芽多少生 초아다소생)
 
봄비는 너무 가늘어서 마치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처럼 사각사각 내린다. 비를 맞아도 옷이 젖는 줄을 모른다.
낮에 시인은 땅을 촉촉이 적시며 봄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아! 봄이 왔구나.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어 흥분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시인은 방안에서 가느다란 소리를 듣는다. 무엇이 내는 소리일까? 시인은 시 속에서 분명하게 말해 주지 않는다.
시인은 방 안에 앉아서 소리를 따라 생각에 잠긴다. 산속 깊은 곳에 쌓인 눈도 이제 녹기 시작하겠구나. 깊은 산속에는 지금쯤 새싹들이 언 땅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고 있겠지. 이 밤 봄비를 맞으며 겨우내 언 몸들을 녹이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시인은 한없이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 이 시를 썼을 게다.
 
쓸쓸히 나뭇잎 지는 소리를 (蕭蕭落木聲 소소락목성)
성근 빗소리로 잘못 알고서, (錯認爲疎雨 착인위소우)
스님 불러 문 나가서 보라 했더니 (呼僧出門看 호승출문간)
“시내 남쪽 나무에 달 걸렸네요.” (月掛溪南樹 월괘계남수)
 
조선 시대 시인 송강 정철의 <산 절에서 한밤중에〔山寺夜吟〕>라는 작품이다. 시인은 산속에 있는 절에 와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웬일인지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을 갈수록 또랑또랑해진다. 바쁘게만 지내다가 절에 와서 한가로이 누워 있으려니까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창밖에서 아까부터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맑고 쾌청한 날씨였는데 갑자기 웬 비가 오는 걸까? 절에서 심부름 하는 어린 사미승을 불러 비가 오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꼬마 스님은 돌아와서 빙그레 웃으며 “시내 남쪽 나무 위에 달이 걸려 있는 걸요.”라고 동문서답을 한다. 달이 떴다면 비가 올 리가 없고, 비가 온다면 달이 뜰 수가 없다. 그러니까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 순간 손님은 그것이 비 오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을 낙엽 지는 소리인 줄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스님의 이 엉뚱한 대답이 이 시를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만일 “비 안와요. 낙엽 지는 소리예요.”라고 했다면 이것은 시가 될 수 없다. 독자가 생각할 빈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모호성은 독자가 들어갈 빈 공간을 만들어 준다.
 
첫째 개가 짖어대자 (一犬吠 일견폐)
둘째 개가 짖어대네. (二犬吠 이견폐)
셋째 개도 덩달아 따라 짖으니 (三犬亦隨吠 삼견역수폐)
사람일까 범일까 바람 소릴까? (人乎虎乎風聲互 인호호호풍성호)
“산 달은 촛불처럼 환히 밝고요 (童言山月正如燭 동언산월정여촉)
반 뜰에는 오동 잎새 소리뿐예요.” (半庭惟有鳴寒梧 반정유유명한오)
 
조선시대 시인 이경전이 아홉 살 때 지었다는 <눈앞의 풍경〔卽事〕>이란 시다. 달이 환한데 온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 개들이 왜 저렇게 한꺼번에 짖을까? 이 밤중에 누구 집에 도둑이라도 든 걸까? 아니면 산에서 범이라도 내려왔나? 아니면 가을바람 소리를 듣고 기분이 이상해진 걸까?
밖을 내다본 꼬마는 막 동산 위로 둥실 떠오른 환한 달빛을 보았다. 마지막 구절에서 ‘반 뜰(半庭)’이라고 말했다. 달이 아직 하늘 한가운데까지 솟아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담장에 걸려 마당의 절반에만 달빛이 비친 것이다.
산에 달빛이 저렇게 밝은 걸 보니 도둑이 들 리도 없고, 호랑이가 내려올 리도 없다. 바람 소리 때문도 아니다. 온 동네 개들은 저 환하게 뜬 달빛을 보고 저렇게 짖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개들은 보름달이 뜨면 달을 보고 우우거리며 소리를 지른다. 보름달빛은 동물을 들뜨게 만드는 모양이다. 온 동네 개들을 저렇게 짖게 만든 것은 바로 달빛이었다.
여기서도 시인은 분명하게 달빛을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았다. 도둑과 호랑이와 바람을 꼽아 놓고, 여기에 다시 달빛과 오동잎 소리를 더해 놓았을 뿐이다. 시인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분명하게 다 말해 버리고 나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조금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는 슬쩍 빠져 버리고 독자들이 빈 칸을 채워 넣게 한다.
계절은 이렇게 소리 속에 오고 간다. 봄비 내리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낙엽 지는 소리를 따라 봄이 가고 가을이 온다. 도시의 복잡한 소음 속에서는 이런 소리들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아파트에 앉아서 귀를 귀울이면 자동차의 경적 소리, 옆집의 텔레비전 소리, 아이들이 쿵쾅거리는 소리, 사람들이 티격태격 다투는 소리만 들려온다.
우리의 생활이 날이 갈수록 자연의 소리와 멀어지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깊은 밤중에만 들려오는 우주가 돌아가는 소리, 내 마음에 새싹이 터 오는 소리, 낙엽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환한 달빛이 내 창 가득히 고여 올 수 있도록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아 놓아야겠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15-124.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3> 계절이 바뀌는 소리|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4>
 
자연이 주는 선물
 
자연은 예술의 영원한 주제다. 자연은 말 없는 선생님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일깨워 준다. 자신을 닮으라고 한다. 예술가들은 넘치는 자연의 에너지를 받는다.
조선 후기 이덕무가 지은『이목구심서』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지리산 속에는 연못이 있다. 연못가에는 소나무가 주욱 늘어서 있어, 그 그림자가 언제나 연못 속에 비친다. 연못 속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는데, 그 무늬가 몹시 아롱져서 마치 스님이 입고 다니는 가사옷 같다. 그래서 이 물고기의 이름을 가사어라고 부른다. 물고기의 이 무늬는 연못에 비친 소나무의 그림자가 변해서 된 것이다. 이 물고기는 너무 날쌔서 잡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 물고기를 잡아서 삶아 먹으면 능히 병 없이 오래 살 수가 있다고 한다.
 
지리산 속에 있는 깊은 연못 속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언제나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닮아서 삶아 먹으면 병도 없어지고 오래오래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소나무의 무늬가 물고기에 비친다. 무늬가 물고기 위에 새겨진다. 그 물고기를 먹으면 소나무처럼 오래 살 수가 있다. 과학적으로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이지만, 옛사람들의 생각하는 방법을 알게 해 주는 글이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가죽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소나무의 그림자가 오래 쌓여서 물고기 무늬를 만들 듯이 사람도 사물에 내 마음을 주면 어느 순간 그 사물이 내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옛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하고 예찬한 것은 모두 이런 이유에서였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만 권의 책을 읽고, 먼 길을 여행 다녀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서를 많이 하고 여행을 많이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책과 자연을 통해 듣고 본 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나를 변화시킨다. 글을 쓰면 글에서 솔바람 소리가 울려 나오고, 그림을 그리면 도화지 위에서 꽃향기와 새소리가 퍼져 나온다.
다음 시는 송시열의 <금강산>이란 한시이다.
 
산과 구름 다 하얗고 보니 (山與雲俱白 산여운구백)
산인지 구름인지 알 수가 없다. (雲山不辯容 운산불변용)
구름이 돌아가자 산만 홀로 섰구나. (雲歸山獨立 운귀산독립)
일만 이천 봉우리 금강산이다. (一萬二千峰 일만이천봉)
 
겨울의 금강산은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부른다. 모두 ‘개(皆)’, 뼈 ‘골(骨)’, 흰 뼈처럼 모두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금강산에 와 보니 온통 흰 빛깔뿐이다. 산도 희고 그 위에 잠긴 구름도 희다. 산봉우리가 구름에 잠겨 있을 때는 산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날씨가 개자 구름이 걷혔다. 구름이 사라지고 나니 우뚝하게 솟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우리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어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시인은 산과 구름이 섞여서 모습을 알아볼 수 없던 상태에서 구름을 걷어 냄으로써 홀로 우뚝하게 솟은 금강산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우리의 삶도 마땅히 이러해야 할 것이다. 자질구레한 집착과 욕심, 좀 더 놀고 싶은 생각, 더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을 활짝 걷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본마음이 환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산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자태로 그렇게 우뚝 솟아 있다. 사람들은 멀리서 그 산을 바라보면서 그 늠름한 기상을 마음속에 새기곤 한다. 늘 바라보던 그 산빛이 내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서 내가 바로 산이 된다. 산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다음 시는 고려 때 김부식의 <송도 감로사에서>라는 한시이다.
 
세속 나그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俗客不到處 속객부도처)
올라오니 생각이 해맑아진다. (登臨意思淸 등임의사청)
산의 모습은 가을이라 더욱 곱고 (山形秋更好 산형추갱호)
강 물빛은 밤인데도 오히려 밝다. (江色夜猶明 강색야유명)
해오라기 높이 날아 사라져 가고 (白鳥高飛盡 백조고비진)
외론 돛만 혼자서 가벼이 떠간다. (孤帆獨去輕 고범독거경)
달팽이 뿔 위에서 (自慙蝸角上 자참와각상)
공명(功名)을 찾아다닌 반평생이 부끄럽구나. (半世覓功命 반세멱공명)
 
복잡한 세속에서 바쁘게 살다가 절 집을 찾아 산에 올랐다. 높이 올라 멀리 보니 마음이 아주 맑고 편안해진다. 가을 산은 이미 낙엽이 다 떨어지고 없다. 잎이 다 지고 없는 텅 빈 가을 산인데, 내게는 그것이 봄 산의 화려함보다 더 좋게 보인다. 멀리 강물이 보인다. 강물 빛은 밤이 되자 오히려 달빛을 받아서 더 희게 느껴진다. 강물을 한밤중에도 달빛 아래서 저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저 아래 물가에서 흰 해오라기 푸드득 날개를 치는가 싶더니, 이 한밤에 높이 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날아간다. 강물 위엔 배 한 척이 바쁜 세상일은 상관도 않겠다는 듯이 가볍게 강물 위를 떠내려간다.
허공 위로 훨훨 날아가 버린 해오라기, 바쁠 것 없어 유유히 떠내려가는 돛단배를 보다가 시인은 갑자기 말도 못하게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달팽이 뿔처럼 좁디좁은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겠다고 아옹다옹 다투고 싸우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높이 올라 날아가 버린 것은 해오라기가 아니었다. 홀로 가볍게 떠내려간 것은 돛단배가 아니었다. 정작 날아가 버리고 사라져 버린 것은 내 안에 잔뜩 들어 있던 욕심스런 마음이었다. 속세의 나그네로 들어온 가을 산속에서 그는 비로소 새롭게 태어나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떳떳한 삶의 모습을 일깨워 준다. 일상에 찌들어 풀이 죽어 있을 때, 자연은 인간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지리산 연못 속에 산다는 그 물고기처럼, 우리도 마음속에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무늬를 지니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 산을 닮고 나무를 닮고 강물을 닮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15-132.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4> 자연이 주는 선물|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5>
 
울림이 있는 말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더 힘 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시콜콜히 다 말하는 것보다 아껴 두고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직접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더 좋다.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는 방법도 이와 같다. 다 말하지 않고 조금만 말한다. 직접 말하지 않고 돌려서 말한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한다.
멀리 함경도 안변이란 곳에 벼슬 살러 가 있던 양사언이 한양에 있던 친구 백광훈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오랜만에 친구의 편지를 받은 백광훈은 반가워서 편지 봉투를 서둘러 뜯었다. 그런데 편지가 좀 이상했다. 다음과 같이 딱 한 줄, 한문으로는 열두 자만 씌어 있었던 것이다.
 
    삼천 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옛날에는 편지도 직접 사람을 보내 전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낸 편지가 받을 사람에게 도달하는 데도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 먼 길에 그렇게 힘들게 보낸 편지인데, 고작 열두 글자만 썼다니 이상하다.
한참 그 편지를 읽어 보던 백광훈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양사언은 이 편지에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편지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먼저 그는 삼천 리 밖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밝은 달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달은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하다. 환한 달빛을 보고 싶은데 구름이 자꾸 방해를 한다.
그는 왜 달빛과 친하게 지낸다고 했을까? 달은 내가 있는 이곳이나 네가 있는 그곳이나 똑같이 뜰 것이다.나는 여기서 너를 생각하면서 저 달을 본다. 너는 또 내가 보고 싶어서 달을 보겠지.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은데, 만나 볼 길이 없어서 매일 저 달만 쳐다본다. 그런데 그 달마저도 구름에 가려서 보일 듯 말 듯하니 너무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양사언은 백광훈에게 멀리서 나는 네가 보고 싶어 죽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길게 안부를 묻고 보고 싶다는 말을 적은 편지보다 훨씬 더 깊은 정이 느껴진다. 이 편지를 손에 들고 달을 올려다보며 친구 생각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을 백광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직접 다 말해야만 좋은 것이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통하고, 속으로 고여서 넘치는 정이 있다.
다음은 조선 시대 능운이란 기생이 사랑하는 임을 그리며 지었다는 <달을 기다리며〔待月〕>란 한시다.
 
달 뜨면 오시겠다 말해 놓고서 (郞云月出來 랑운월출래)
달 떠도 우리 임은 오시지 않네. (月出郞不來 월출랑불래)
아마도 우리 임 계시는 곳엔 (想應君在處 상응군재처)
산이 높아 저 달도 늦게 뜨나 봐. (山高月上遲 산고월상지)
 
임은 달이 뜨면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하지만 저 달이 중천에 이르도록 임은 오실 줄을 모른다. 그녀는 저녁 내내 조바심이 나서 달만 보며 마당에 나와 서 있다. 왜 안 오실까? 저 달을 못 보신 걸까? 혹시 마음이 변하신 것은 아닐까? 조바심은 점차 불안감으로 변해 자칫 그리움의 원망이 쏟아지고 말 기세다.
그러나 그녀는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오지 않는 임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대신 오히려 임의 편을 들어 주기로 한다. 아마 지금 임이 계신 곳에는 산이 하도 높아서 내게는 훤히 보이는 저 달이 아직도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모양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임이 내게로 오시지 않을 까닭이 없다. 설령 임이 나와의 언약을 까맣게 잊고 안 오시는 것이라 해도 나만은 이렇게 믿고 싶다. 여기에는 또 혹시 이제라도 오시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바람도 담겨 있다. 임을 향해 직접적으로 원망을 퍼붓는 것보다 은근한 표현 속에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더 큰 매력이 있음을 느낀다.
황희가 정승이 되었을 때, 공조판서로 있던 김종서는 태도가 자못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의자에 앉을 때도 삐딱하게 비스듬히 앉아 거드름을 피웠다. 하루는 황희가 하급 관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김종서 대감이 앉은 의자의 다리 한쪽이 짧은 모양이니 가져가서 고쳐 오너라.”
그 한마디에 김종서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크게 사죄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뒷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육진(六鎭)에서 여진족과 싸울 때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오는 속에서도 조금도 두려운 줄을 몰랐는데, 그때 황희 대감의 그 말씀을 듣고는 나도 몰래 등 뒤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었네.”
정색을 한 꾸지람보다 돌려서 말한 한마디가 거만하기 짝이 없던 김종서로 하여금 마음으로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게 했다.
다음은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이 지은 <산중문답(山中問答)>이란 작품이다.
 
나더러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사냐길래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웃으며 대답 않았지만 마음만은 한가롭다.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불답심자한)
복사꽃이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내려가니 (桃花流水杳然去 도화류수묘연거)
인간 세상이 아니라 별천지이다.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산에서 사는 나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이 불쑥 묻는다.
“왜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사십니까?”
나는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산이 좋아서 사는 사람에게 산에 사는 이유가 달리 있을 까닭이 없다. 산이 좋은 까닭을 말로 설명할 재주도 없지만, 말한다 한들 그가 알아듣기나 하겠는가?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답답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한가롭다.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강물 위에는 복사꽃이 둥둥 떠내려간다. 인간 세상에는 달리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도 그는 나더러 왜 답답하게 산속에서 혼자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웃는 것 외에는 대답할 방법이 없다. 이것은 침묵의 언어가 지닌 힘이다.
추사 김정희의 글에 이런 것이 있다.
 
    작은 창에 햇볕이 가득하여,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한다.
 
책상 하나만 놓여 있는 방안으로 따스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볕이 고마워서 말없이 오래도록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물질의 풍요로움은 비록 지금만 못했지만, 정신만을 넉넉하고 풍요로웠던 선인들의 체취가 문득 그립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33-140.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5> 울림이 있는 말|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6>
 
간결한 것이 좋다
 
말과 글은 다르다. 말로 하면 긴데, 글로 쓰면 몇 줄 안 된다. 전화로 하면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다른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 길어진다. 편지를 쓰면 그 많던 말은 다 어디로 가고 없고 몇 줄 쓰고 나면 쓸 말이 없다.글은 말을 간추려 요점만 모아 놓은 것이다.
시는 글을 다시 한 번 더 압축해 놓은 것이다. 시인은 절대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시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자세한 설명보다 좋은 점수를 받는다. 시에서는 말을 아낄수록 여백이 더 넓어진다.
구양수는 송나라의 유명한 문장가다. 그는 글을 쓸 때 벽에 붙여 놓고 고치고 또 고쳤다.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쳤다. 글을 완성한 뒤에 보면 제목만 빼고 다 고친 경우도 있었다. 그가 처음 글쓰기를 배울 때 일이다.어떤 사람이 비문을 지어 스승에게 보여 주었다. 스승은 다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잘 지었다. 그렇지만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구나. 절반으로 줄여 오너라.”
구양수는 스승의 말을 따라 처음 천 글자에 가깝던 글을 힘들게 5백 자로 줄여 가지고 갔다.
“많이 좋아졌다. 다시 3백 자로 줄여 오너라.”
구양수는 다시 2백 자를 더 줄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에 천 글자로 썼던 비문을 3백 자로 줄이고 나니,처음보다 나중 글이 훨씬 더 짜임새가 있고 훌륭해진 것이다. 여기서 구양수는 문장을 짓는 방법을 크게 깨달았다.
한시에는 설명하는 말이 없이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꽤 있다. 이달의 <김양송의 그림책에 써 주다>라는 시를 보자.
 
한 줄 두 줄 기러기(一行二行雁 일행이행안)
만 점 천 점 산.(萬點千點山 만점천점산)
삼강 칠택 밖(三江七澤外 삼강칠택외)
동정 소상 사이.(洞庭瀟湘間 동정소상간)
 
도대체 무슨 말일까? 설명하는 말은 하나도 없고, 단어만 나열해 놓았다. 삼강과 칠택, 동정과 소상은 모두 중국 남쪽 지방에 있는 유명한 호수와 강물의 이름이다.
제목을 보면 김양송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림책을 보고, 그 그림의 빈 곳에 써 준 시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지금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어떤 그림이었을까? 한 줄 두 줄 기러기라고 했다. 그림 속에는 V자 모양으로 줄을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만 점 천 점 산이라고 했다. 무수히 많은 산들이 그려져 있었던 모양이다. 삼강과 칠택의 밖, 동정과 소상의 사이라고 했으니, 무수한 산과 들 사이로 많은 호수들이 있었겠다.
그림은 기러기 떼가 산 넘고 강 건너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날아가는 장면이었다. 멀리 조그만 점으로 기러기 떼를 그려 놓고 다시 그 아래에 산과 호수를 그려 놓았다. 호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중국 남쪽 지방을 그린 것 같다는 말이다. 시인의 생각을 헤아려서 설명을 보태면 이렇게 된다.
 
한 줄인지 두 줄인지 기러기가 날아가는데
만 점인지 천 점인지 산은 많기도 많다.
삼강과 칠택의 바깥 같기도 하고
동정호와 소상강 사이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설명이 필요한 것을 시인은 아무 설명 없이 그냥 단어만 늘어놓았던 것이다. 말을 아낄수록 뜻이 깊어지는 것은 현대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박목월의 <나그네>란 작품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다섯 도막의 짧은 시다. 그나마 두 번째와 마지막 연은 내용이 꼭 같다. 저녁 무렵 남도로 가는 길에 어떤 나그네가 걸어가고 있다는 것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의 전부다. 하지만 시를 읽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른다.
지금은 다리가 다 놓여서 나루터에서 배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나그네는 배를 타고 나루터를 건넌다. 길옆으로 푸른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춤추는 밀밭은 마치 구름밭 같다. 그 구름밭 사이로 나그네는 마치 일렁이는 달빛처럼 흘러간다.
외줄기 밀밭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나그네가 갈 길도 끝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도 바쁠 것 없다는 듯 유유히 걸어간다. 어느덧 건너편 산 너머로 빠알간 노을 불타고 있다.
산 아래 그림같이 예쁜 마을이 보인다. 집집마다 술을 담가 놓고 지나는 나그네가 재워 달라고 하면 따뜻한 잠자리를 내주고, 밥과 술을 내오는 그런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오늘 밤은 저 마을에서 묵고 가야지. 나그네는 마음이 먼저 훈훈해 오는 것을 느끼며 발길을 그리로 옮긴다.
시인은 짧게 말했지만, 시를 따라 가며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처럼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또, 이 시에서 알지 못할 슬픔이 서려 있다. 나그네의 허전한 마음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시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시기에 지어졌다. 먹을 것을 모두 빼앗기고, 술을 담그기는커녕 끼니도 잇지 못해 풀뿌리를 캐 먹으며 겨우 살아가던 힘겨운 시절이었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실제의 광경이 아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인심이 넉넉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과 믿음이 있던 옛날을 꿈꾸듯 그려 본 것이다. 나그네가 찾아오면 재워 주고, 밥과 술을 넉넉히 먹여 보내던 사람들. 그 시절의 인정을 그리워하며 그려 본 상상 속의 풍경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인이 말을 아끼고 있는 시는 그냥 읽기만 해서는 알 수가 없다.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이런 시는 다 읽고 천천히 음미하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말이 많으면 언제나 탈이 난다. 말을 아낄 때 그 말이 가치가 있다. 시인은 말하지 않으면서, 웅변보다 더 큰 효과를 거두려는 사람이다. 좋은 시는 절대로 다 말해 주지 않는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1-158.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6> 간결한 것이 좋다|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7>
 
물총새가 지은 시
 
시인은 시를 통해 사물과 만난다. 이전까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던 사물이 시 속으로 들어오면 문득 달라진다. 나와 사물들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가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이 그대로 사물에게 전달되기도 하고, 사물들이 품은 생각이 내게로 옮겨오기도 한다.
다음은 조선 시대 시인인 이경동이 지은 <사근역(沙斤驛)에서>란 작품이다.
 
피곤한 나그네는 턱을 괴고 누워서 (倦客支頤臥 권객지이와)
날이 다 새도록 시를 짓고 있다. (探詩日向中 탐시일향중)
비취새의 울음소리 한 번 들리니 (一聲聞翡翠 일성문비취)
역창의 동쪽에서 울고 있구나. (啼在驛窓東 제재역창동)
 
사근역은 경상남도 거창에 있던 역 이름이다. 역은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운영하던 여관이다. 암행어사가 마패를 보여 주고 마패에 새겨진 숫자만큼 말을 빌리던 곳도 이곳이다. 말은 금세 지쳐 먼 길을 못 가므로 역에서 말을 바꿔 타고 가곤 했다.
위 시에서 보이는 나그네는 전날 먼 길을 힘들게 왔던 모양이다. 해가 훤히 떴는데도 이불 속에 누워 있다. 턱을 괴고 있다는 것은 그가 잠이 깨 있었다는 뜻이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는 말이다. 그는 아침부터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걸까?
그는 시를 짓고 있었다. 새벽 이불 속에서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시가 될 듯 말 듯 마무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해가 중천에 떠올라 오는 것도 잊은 채 온통 시에 정신이 뺏겨 있다. 아예 안 될 것 같으면 훌훌 털고 일어나겠지만 금방이라도 될 듯 말 듯 하면서도 막힌 생각이 열리지 않으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바로 그때 그는 창밖에서 우는 비취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시인은 저도 몰래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쪽 창이 벌써 환히 밝았던 것이다.
“날 샜다. 빨리 떠나거라. 그깟 시 때문에 낑낑대지 말고.”
비취새는 아마도 시인에게 이렇게 말한 것만 같다. 그 순간 신통하게도 시인의 시도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말았다.
비취새는 물총새다. 파랑새목 물총샛과 물총새속에 속하는 여름 철새다. 작은 몸에 큰 머리, 길쭉한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비췻빛의 푸름을 지닌 아름다운 깃털 때문에 푸른 보석인 비취에 견주어졌다.
물고기 잡는 솜씨가 워낙 탁월해서 대장 어부(kingfisher)라는 영어 이름을 가졌다. 낚시꾼이란 별명도 있다. 모두 뛰어난 물고기 사냥 솜씨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 시는 당나라 때 육구몽이란 시인의 물총새를 노래한 <물총새(翠鳥)> 작품이다.
 
붉은 옷깃 푸른 날개 알록달록 고운데 (紅襟翠翰兩參差 홍금취한양참치)
안개 꽃길 날아와 가는 가지 앉았다. (徑拂煙花上細枝 경불연화상세지)
봄물이 불어나 고기 잡기 쉬우니 (春水漸生魚易得 춘수점생어이득)
비바람도 싫다 않고 앉았을 때가 많구나. (不辭風雨多坐時 불사풍우다좌시)
 
첫 번 구절에서 ‘붉은 옷깃’을 말한 것은 이 새의 앞가슴이 주황색이기 때문이다. 물총새가 물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봄이 왔고, 물이 불었다.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자꾸만 입을 뻐끔거린다. 비바람에 옷깃이 젖어도 물총새는 꼼짝 않고 앉아 있다. 물고기만 나타나면 곧장 수면 위로 차고 내려 물고기를 낚아채려는 속셈이다.
다음 시는 정약용의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20수 중의 한 수이다.
 
흰 종이 펴고 술 취해 시를 못 짓더니 (雲牋闊展醉吟遲 운전활전취음지)
풀 나무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草樹陰濃雨滴時 초수음농우적시)
서까래 같은 붓을 꽉 잡고 일어나서 (起把如椽盈握筆 기파여연영악필)
멋대로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沛沿揮洒墨淋漓 패연휘쇄묵림리)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不亦快哉 불역쾌재)
 
시를 지으려고 종이를 펼쳐 놓고 붓에 먹을 찍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생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붓을 들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붓방아만 찧고 있다.
창밖은 소나기라도 한바탕 오려는지 잔뜩 흐렸다. 답답한 내 마음과 같다. 한순간 천둥 번개가 우르릉 꽝 하고 친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소나기가 퍼붓는다.
그 순간 답답하게 꽉 막혔던 내 생각도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큰 붓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쓸 겨를도 없다. 마구 붓을 휘두르니 여기저기 먹물이 뚝뚝 떨어진다.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스레 뚫린다.
앞서는 물총새의 울음소리가 막혔던 생각을 뚫어 주었고, 여기서는 쏟아진 소나기가 내 생각을 열어 주었다. 시에서 이렇게 바깥 사물이 내게로 와서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시 속에서만 가능한 마술이다. 반대로 시인의 행동이 사물에게로 옮아가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박은의 <밤에 누워 시를 짓다가>라는 작품이다.
 
베개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는데 (枕上得詩吟不輟 침상득시음불철)
마구간에 마른 말이 길게 따라 울음 운다 (羸驂伏櫪更長鳴 리참복력갱장명)
밤 깊어 초승달은 그림자를 만들고 (夜深纖月初生影 야심섬월초생영)
고요한 산 찬 소나무는 절로 소리를 낸다 (山靜寒松自作聲 산정한송자작송)
 
사실 내가 시를 읊조리는 소리와 말 울음소리, 달빛과 솔바람 소리는 아무 상관없이 동시에 일어난 우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낭랑하게 읊은 시 소리를 듣고 마구간에 지친 말은 갑자기 빨리 길 떠나자고 힝힝거리기 시작했고, 달빛도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디밀고 있으며, 마침내 소나무까지도 소리를 내며 내 목소리에 박자를 맞추더라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이 시인의 눈과 귀를 거치고 나면 모두 시의 재료로 된다. 마구간의 말이 말을 건네 오고, 물총새가 시비를 걸어온다. 소나무도 같이 놀자고 하고, 소나기도 내 마음을 알겠다고 한다. 시 속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시인은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9-16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7> 물총새가 지은 시|작성자 옥토끼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8>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옛 여성들은 참으로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 무서운 시어머니와 어려운 남편을 모시면서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그래서 한시에는 시집살이에 대한 한시가 적지 않다. 이번에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노래한 작품들에서 옛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살펴보자.
 
우리 임을 위해서 누비옷을 짓는데 (爲郞縫衲衣 위랑봉납의)
꽃 기운 때문에 나른하고 피곤해서 (花氣惱憹倦 화기뇌뇌권)
바늘을 돌려 감아 옷섶에 꽂아 두고는 (回針揷襟前 회침삽금전)
앉아서《숙향전》을 읽었답니다. (坐讀淑香傳 좌독숙향전)
 
이옥의 <아조[雅調]>라는 작품 가운데 한 수인 <바느질>이다.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아씨의 마음을 잘 그려 내었다. 명주 고운 천 안에 얇게 솜을 두어 임이 입으실 옷을 바느질한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임을 향한 나의 사랑을 담았다. 한참을 바느질만 하려니까 문득 졸음이 온다. 봄날, 창밖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있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와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노곤한 봄날이라 낮잠이 쏟아진다.
계속하다가는 바느질이 고르게 될 것 같지가 않다. 까딱하면 바늘로 손가락을 찌를 것만 같다. 새아씨는 잠시 바느질을 멈추기로 한다. 바늘로 실 끝을 한 번 되감아 홀쳐서 옷감을 저만치 밀려 두고《숙향전》을 꺼내서 읽어 본다.
새아씨는《숙향전》을 수도 없이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래도 읽을 때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행복을 되찾는 숙향의 이야기는 힘든 시집살이에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모두 한문으로 쓰여 있어서 일반 백성들은 무슨 말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위 시에서처럼 한글로 쓰인 소설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옛날에는 소설책을 지금처럼 눈으로 읽지 않고 귀로 들었다.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 연극배우처럼 여러 사람 목소리를 내면서 소설을 읽으면, 방 안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서 바느질을 하거나 새끼를 꼬면서 그 이야기를 실감 나게 들었다. 읽다가 신바람이 나면 소설에 쓰여 있지도 않은 내용을 보태기도 했고,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훌쩍 건너뛰기도 했다.
소설책의 인기가 너무 높았기 때문에 여자가 시집갈 때 가져가는 혼수 품목 중에는 반드시 소설책이 들어 있었다. 소설책 값이 너무 비싸서 살 형편이 못 되는 집에서는 공책을 만들어 소설책을 빌려다가 붓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써서 베꼈다. 이렇게 베낀 소설책을 필사본 소설이라고 부른다.
그 많은 분량의 소설을 다 베껴 쓰고 나면 베껴 쓴 사람은 소설 끝에다 몇 마디씩 베껴 쓰게 된 이유나, 쓰면서 느낀 생각들을 몇 줄씩 써서 남겼다. 다음은《임경업전》이라는 고전 소설의 끝에 누군가가 쓴 글이다.
 
병오년 2월에 조씨 집안에 시집을 간 딸이 자기 동생의 결혼식을 맞아 집으로 왔다. 《임경업전》을 베껴 쓰려고 시작하였다가 미처 다 베끼지 못하고 시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 동생을 시켜서 베껴 쓰게 하고, 사촌 동생과 삼촌과 조카들도 글씨를 중간 중간에 쓰고, 늙은 아비도 아픈 중에 간신히 서너 장 베껴 썼으니,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아버지가 시집간 딸을 위해 소설책을 베낀 뒤에 써 준 글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딸이 시집갈 때 소설책 한 권도 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동생, 사촌 동생, 삼촌, 조카까지 동원해서 필사가 끝나 책을 매면서 아버지는 딸에게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위의 글을 쓰고 나서 맨 끝에 이렇게 썼다.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 말인가? 시집간 딸은 이 글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울었을 것이다. 이럴 때 소설책은 단순히 그냥 책이 아니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애틋한 정이 담긴 사람의 정표이다. 시집살이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든든하고 힘이 절로 솟았을 것이다. 부모는 그렇게 뒤에서 자식들의 듬직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다시 이옥의 <아침 문안>이라는 한시 한 수를 감상해 보자.
 
새벽 두 시에 일어나 머리를 빗고 (三更起梳頭 삼경기소두)
네 시에는 시부모님께 아침 인사를 올리죠. (五更候公姥 오경후공모)
친정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誓將歸家後 서장귀가후)
밥 안 먹고 대낮까지 잠만 잘래요. (不食眠日午 불식면일오)
 
옛사람들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그래도 새벽 두 시에 일어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때부터 머리를 빗고 단장을 해야지 닭이 울어 시부모님께 인사할 때 단정한 모습을 보일 수가 있다. 잠이 쏟아지지만, 조금만 더 자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다음에 친정집에 갈 일이 있어 간다면, 밥도 안 먹고 그냥 잠만 자겠다고 다짐했다. 얼마나 잠이 부족했으면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예전에는 출가외인이라고 해서 딸은 시집가면 마음대로 친정집에 올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고 형제들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 볼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금지옥엽 귀하게만 자라다가 고된 시집살이들 하자니 가족 생각이 더 간절했겠다.
다음은 이양연의 <마을 아낙네[村婦]>란 시이다.
 
자네 친정은 멀어서 오히려 좋겠네 (君家遠還好 군가원환호)
집에 가지 못해도 할 말이 있으니까. (未歸猶有說 미귀유유설)
나는 한동네로 시집와서도 (而我嫁同鄕 이아가동향)
어머니를 삼 년이나 못 뵈었다네. (慈母三年別 자모삼년별)
 
마을 아낙네 둘이서 주고받는 대화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두 아낙네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을 것이다. 이 대화를 시로 옮겨 놓은 것이다.
옛날의 여성들은 참으로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 집안의 크고 작은 살림을 혼자 다 감당했다. 그러자니 잠이 늘 부족했고, 겨울엔 얼음을 깨고 찬물에 빨래를 하느라고 손등이 다 얼어 터졌다. 바느질을 해서 식구들 옷을 다 해 입혀야 했고, 농사일도 직접 다 챙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친정은 집안에 혼사 같은 큰일이 있을 때만 몇 년에 한 번 겨우 다녀올 수가 있었다.
그렇게 힘들고 고단할 때, 그녀들은 이야기책을 읽었다. 주인공들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행복을 찾아 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마치 자기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라도 한 듯 착각을 하며 행복한 상상에 젖곤 했다. 문학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67-17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8>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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