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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 유형의 시 쓰기(문광영문창5)
2019년 02월 01일 17시 54분  조회:3024  추천:0  작성자: 강려
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 유형의 시 쓰기(문광영문창5)
 
 "공부하는 인천문협"
 
 
  5차 강의는 묘사시(descriptive poetry), 이미지(image)시, 사물시((physical poetry)의 미학적 형상화입니다. 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는 서로 깊게 관련되기 때문에 같이 논의를 하려고 합니다.   
 문학 창작에서 묘사는 서사와 함께 대단히 중요합니다. 화가가 색과 선으로 형체를 드러내야 하듯이, 문학 작가는 묘사로서 외면풍경의 대상과 그리고 내면 풍경의느낌,생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인천문협 작가 가운데 묘사력이 미흡한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문학은 진술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묘사의 '보여주기'와 진술의 '드러내기'가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대개의 시, 수필, 소설들의 경우 첫 모티브에서 묘사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바람직한 서두 쓰기, 곧 good begining은 작품의 성공여부를 판가름짓게 합니다. 나아가 좋은 작품은 묘사력에서 금방 드러납니다. 정서 표현에서 훌륭한 묘사는 글의 구체성과 생동감, 환기력이 높혀 주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의 미학적 형상화
 
 
 
1. 감각적(비유적) 묘사란?
 
 
 
○ 어떤 대상을 놓고 모양, 빛깔, 감촉, 소리, 냄새 등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려내는 방법을 묘사라고 한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묘사의 방법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그 대상에 대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묘사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은행 잎이 노랗다.
은행잎이 金貨로 보인다
 
 
○ 묘사는 대상을 그려 보인다 해도 그 목적이 그 대상에 관한 정보나 지식의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대상에서 받은 인상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있다는 점에서 설명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은행 잎이 노랗다.”라고 할 때, 은행잎이 ‘노랗다’는 기술은 일반적으로 은행잎이 지닌 형태의 한 부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은행잎이 金貨로 보인다.” 라고 할 때 은행잎의 구체적 상황이 주관적 해석을 통해 관찰자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은행잎 = 금화’라는 등식에 은행잎은 새로운 감각의 세계로 변하고 은행잎이 주는 인상이 금화로 의미론적 이동을 함으로써 특이한 감각을 낳게 하는 것이다.
 
○ 그런데, 어떤 대상을 묘사한다고 할 때, 글쓴이의 눈에 비친 모든 대상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자세하게 그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쓴이는 그 대상으로부터 가장 강렬하게 느낌을 받은 인상을 그릴 수도 있고,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중심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중심을 이루는 인상을 ‘支配的 印象’(dominant impression)이라 한다. 말하자면 사물의 특징이 있는 그대로 다 나타내는 것은 아니므로 지배적인 인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특징을 선택하여 묘사해야 한다.
 
○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요소가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과 관계되는 것인지는 쉽게 설명할 수 없다. 대상을 보는 입장, 곧 관찰자의 시점․위치․태도․개성․분위기 등이 이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다만, 치밀한 관찰이 언제나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2) 묘사하는 글을 잘 쓰려면
 
 
○ 묘사를 잘 해야 글을 잘 쓸 수가 있다. 마치 화가가 뎃쌍을 수없이 연습해 오듯 글쓰기에서 묘사는 문장 표현의 기초가 된다.
 
 
(1) 지배적 인상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구성하라
(2) 감각적 인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라.
(3) 자신의 느낌을 창의적으로 명료하게 나타내라.
 
 
○ 예를 들어 “그날 밤은 매우 조용했다.”라고 표현했을 경우, 과연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나타냈다고 볼 수 있는가. 얼마나 조용했다는 걸까? 조용한 밤의 정적을 명백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조용한 밤에 들을 수 있었거나 없었던 소리를 쓸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Shakespeare)는 그의 작품 ‘햄릿’의 서두에서 이 문제에 부닥쳤는데, 그는“쥐가 움직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이라고 씀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너무나 조용하기에 야행성 동물인 아주 작은 쥐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확한 묘사로써 셰익스피어는 밤의 고요함을 명확하게 나타냈다.
 
○ 자신의 느낌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반응의 결과가 아닌 반응의 원인에 대해 써야 한다.“나는 두려움을 느꼈다.”라고 쓰는 대신 자신의 두려움을 명백히 해서 독자로 하여금 역시 같은 공포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이 가졌던 느낌을 독자들도 똑같이 가질 수 있게 할 때, 자신의 느낌을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것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재창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이외수의 고정 관념의 틀 깨기 <만물의 영혼과 함께 보기>
 
 
나는 소설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을 함락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정신을 강화시킬까를 모색해 보았다. 밥이 떠올랐다. 일찍이 밥만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존재는 이 세상에 없었다. 나는 한솥 가득 밥을 지어서 바깥에 내다 놓았다. 얼음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는 얼음밥으로 끼니를 연명하면서 묘사적 문체를 획득하는 일에 골몰해 있었다. 더럽게 눈물겨운 겨울이었다. 얼음밥은 도저히 수저로는 먹을 수가 없었다. 망치와 못을 이용해서 깨뜨린 다음 으적으적 씹어먹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뿐만이 아니라 내장까지도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한 솥 가득 밥을 지어서 바깥에 내다 놓으면 1주일은 족히 정신과 내장을 투명하게 유지시킬 수가 있었다.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방문을 열어 놓고 흩날리는 눈보라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 때 문득 글 한 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습관적으로 원고지에다 옮겨 보았다.
 
수천만 마리의 나비떼가 어지러이 허공을 날고
 
단 한 줄이었다. 더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너무 추워서 방문을 닫고 방금 원고지에 옮겨 놓은 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게 만약 한 줄짜리 시라면 어떤 제목이 어울릴까. 눈보라로 정한다면 역시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못한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터. 나는 왜 그때 화장터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혹시 얼음밥을 먹어가면서까지 묘사적 문체를 얻어내려고 발버둥치는 내게 하나님이 영감이라도 내려주신 것이나 아닐까.
화장터라는 제목을 붙이자, 나비떼는 놀랍게도 사자의 소지품을 태울 때 날아오르는 연소물의 사해조각을 연상시키더니 이내 영혼의 편린으로 변하고 있었다. 제목을 제지공장으로 붙인다면, 나비떼는 종이조각으로 변해 버릴 것이 분명했다. 내가 원고지에 써넣은 나비떼는 곤충이 아닐 수도 있었다. 눈보라가 될 수도 있었고, 사해조각이 될 수도 있었고, 종이조각이 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혼의 편린까지 될 수 있었다. 관측자의 위치가 어딘가에 따라 내가 빌려오는 사물들은 판이하게 다른 상징성으로 되살아날 수가 있었다. 알았다. 불시에 막혀 있던 시야가 환하게 밝아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마침내 고정관념의 껍질을 탈피하고 있었다.
배반자로부터 보내온 설탕은 달지 않다. 결핵에 걸린 태양은 눈부실 수가 없다. 발가락이 자라는 조랑말의 당혹감. 구걸을 중단한 거지의 허영. 쥐를 보면 도망치는 고양이의 비야. 목이 짧은 기린의 절망.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순간 나는 만물들의 외형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면서 상징성을 부여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제 사물의 외형이 주는 고정관념 때문에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 보지 못하는 난관은 극복되어 있었다. 세 솥째의 얼음밥이 비어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사물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앙상한 모습으로 겨울을 지키고 있는 굴참나무의 간절한 소망이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가 있었고, 끊임없이 얼음 밑으로 흐르고 있는 개울물의 도란거림도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찌푸린 표정으로 낮게 내려앉아 있는 회색 하늘의 음모도 간파할 수가 있었고, 폭설을 뒤집어쓰고 묵상에 잠겨 있는 산들의 자비심도 읽어낼 수가 있었다. 나는 고정관념의 껍질을 탈피하면서 만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게 되었고, 만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서 만물의 영혼과 합일하게 되었다. 어느새 개떡 같은 세상에 대한 증오심조차 모조리 소멸되어 있었다. 아무리 개떡 같은 세상이라도 눈물겹게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외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서
 
 
 
4) 대화적 묘사문단 쓰기를 통한 시 쓰기
 
 
o 질문 : 여러분들이 가장 아끼는 물건 하나씩 있지요? 골동품 가운데, 혹은 주방 용품, 혹은 누구로부터 받은 선물, 내가 만든 것 , 오랫동안 보관해 오던 장신구, 혹은 가구 등 하나만 적어 봅시다.
 
답 : “오지항아리요!”                                                                            답-------------------------------
 
 
o 질문 : 그 오지 항아리는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입니까? 받은 인상대로
펼쳐보이세요. 앙증맞고 똑똑해 보이나요? 바보스럽게 보이나요?
아니면 슬프게 보이나요? 고독해보이나요? ---------- 형용적 표현
 
답 : “바보스럽게 보이는데요”                                                               답--------------------------------
 
o 질문 : 바보스럽게 보인다구요? 바보스럽게 보이는 부분은 무엇을
떠올리게 하나요? 비유로 표현한다면, 무엇처럼 보이는 가요?
---------------------> 시각적 비유 표현, 혹은
 
답 : 어깨로부터 둥글 넙적한 몸통은 마치 풋고추 된장에 보리밥을           답--------------------------------
실컷 먹고 낮잠을 자는 머슴의 배같이 튀어나와 있네요.
아니에요, 마치 만삭이 된 시골 누님의 배와 같으네요.
 
o 질문 : 왜, 그런 표현을 하고 싶은 데요?
                      ----------------------> 상상적 진술
 
 
답 : 항아리의 생리가 아무 것이나 주는 대로 먹을 수 있기                       답-------------------------------
때문이지요.
                                                                                                             
 
o 질문 : 주는 대로 다 받아먹고 만 마는가요? 그 가치를 인생의
의미에 두고 한번 간파(看破)해 볼까요?
-------------------------> 간파, 통찰, 의미부여하기
 
답: 아니지요. 다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간수할 뿐이지요. 배고픈 자의  답-------------------------------
굶주림을 구원하기 위해 고이 간직하는 것이지요.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항아리지요.
 
 
o 질문 : :오지항아리를 보면 자꾸 누가 떠오르나요?
 
 
답 : 어머님이요                                                                                    답 ------------------------------
 
 
 
 
● 대화에서 얻은 내용을 묘사문장(문단)으로 나타내기
 
                                                      오지 항아리
20여년 이사 갈 때마다 갖고 다니는 오지항아리는 못난 듯 바보스럽다. 그 어깨로부터 흘러내린 둥글넙적한 몸통은 마치 풋고추 된장에 보리를 실컷 먹고 낮잠을 자는 머슴의 배 같이 튀어나왔다. 아니 만삭이 된 시골 누님의 배 같다. 그런 뱃속에다 아무 것이나 주는 대로 먹는 항아리, 그런 항아리의 생리가 바보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 바보스러움은 어리석고 못난 바보스러움이 아니다. 오히려 바보의 멋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깃들어 있다. 주는 대로 먹는 바보스러움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지 항아리는 그것을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다. 오직 간수할 뿐이다. 배고픈 자의 굶주림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항아리, 그것이 곧 항아리의 사상이요. 돌아가신 어머님의 철학이다
 
 
 
● 묘사문단 내용을 바탕으로 시로 써보기
                  오지 항아리
 
 
20여년 이사 갈 때마다 따라다니는
못난 듯 바보스러운 오지항아리
 
어깨로부터 흘러내린
둥글 넙적한 몸통, 마치
풋고추 된장에 보리를 실컷 먹고
낮잠을 자는 머슴의 배 같은
만삭이 된 시골 누님의 배 같은
 
아무 것이나 주는 대로 먹는
어리석은 항아리의 생리
바보스러운 멋, 오직 간수만 할 뿐
그러나, 배고픈 자의 굶주림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항아리의 사상
 
돌아가신 어머님의 철학
 
 
 
 
 
 
2. 묘사시(descriptive poetry) 쓰기
 
1) 비유적 묘사지향의 시 : 사물(풍경)의 감각적 묘사, 이미지, 비유적으로 나타내기
 
 
마량진
                                                          김 윤
 
 
            갈메기떼가
썰물을 끌고 간다
가다가 저만큼 부리의 힘을 탁 놓아버린다
뻘 건너 수평선이 팽팽해진다
발바닥이 드러난 어선들이
스크류를 이빨처럼 간다
뻘밭이 수천 개의 흡반을 들이댄다
박하지 새끼가
구멍마다 집게발 하나씩을 내밀고
노을을 섬득 베어문다
뻘이 번득이며 붉게 물든다
아직도 흙탕인 바다가 지는 해를 한 번 더 울컥 떠 올린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이
뻘이 깊이깊이 가라앉는다
작은 횟집 몇이 불을 켜들고
흡반 속으로 빨려든다
                                                                       (《현대시학》2006년 10월호)
 
 
 
 
○ 마량진은 충남 서천군에 있는 어촌 포구이다. 우선 이 시는 개펄 바닷가의 노을을 그림 그리듯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갈메기떼가 썰물을 끌고 간다”든가, “수평선이 팽팽해진다”든가, “어선들이 / 스크류를 이빨처럼 간다”든가, “박하지 새끼가 … 노을을 섬득 베어문다” 등의 이미지들이 섬뜩할 정도로 신선하고 생동감이 있다.
 
 
○ 경험시가 서사의 양식을 지향한다면, 묘사시는 묘사 양식을 지향한다. 묘사란 사물의 감각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범이다. 묘사시란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시라고 할 수 있다.
 
○ 화가의 경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쉽지만, 시인의 경우에는 비록 언어로 그린다고 해도 그리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시인의 매체인 언어는 화자의 색이나 선과는 다른 특성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무엇보다도 개념(관념)을 소유한다. 그만큼 추상적이고 일반적이다. 이를테면 푸른 하늘을 보고 ‘하늘은 푸르다.’고 해도 이 때의 ‘푸르다’는 말은 개념적이고 일반적인 의미를 나타낼 뿐이다. 우리가 푸른 하늘을 보고 느끼는 감각성 특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 그렇기 때문에 시인들은 언어로 그림을 그릴 때, 언어의 이러한 특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특수한 기법을 사용한다. 언어가 감각적 특성을 그대로 드러낼 때 우리는 그것을 흔히 심상 혹은 이미지라고 부른다. 이미지 표현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언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다”에서 알 수 있듯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대한 감각을 보자.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은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봄은 고양이로다> (1924) 전문
 
○ 1연과 2연에서 시인은 시적 사물을 다른 사물에 비유하고 있다. 곧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은 ‘꽃가루’에 비유되며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은 금방울에 비유된다. 전자는 촉각, 후자는 시각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그리하여 '봄=고양이' 이라는 은유법을 구사(권도현, 「이장희론」, 현대문학11, 1976. 참고)하여 고양이를 객관적으로 이미지화하면서 대상의 감각적 측면만을 묘사하고 있다. 즉 1연에서는 고양이의 털에서 봄의 향기를, 2연에서는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서 봄의 생명적 불길을, 3연에서는 고양이의 입술에서 나른한 졸음을, 4연에서는 고양이의 수염에서 푸른 생기를 각각 예리한 관찰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연들은 고양이를 객관적으로 시각화시켜 한 마리의 완벽한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 이장희의 특이성은 ‘객관적인 감성’으로 요약된다. 이런 감각성은 1920년대 우리 시의 전통적 요소 말하자면 주관의 범람, 감상적 낭만주의에 대한 변증법적 비판으로 당시의 시 흐름에서「봄은 고양이로다」는 감상적 낭만성을 극복하고 현대성을 획득한다(이승훈, 『한국 모더니즘 시사』, 문예출판사, 2000. 참고). 비록 그의 모든 작품에서 이런 면모가 보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시를 당시에 쓸 수 있었던 것은 이장희의 독특한 시세계로 보여진다.
 
○ 직유는 대체로 사물의 감각적 묘사보다는 사물을 산문적으로 설명하는 폐단이 있다. 따라서 같은 비유의 방법이라 하여도 은유의 방법이 시로서는 더욱 적절하다.
 
○ 은유의 방법에 따라 하나의 사물을 묘사하는 전봉건의 <한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를 보자.
 
○ 언어를 감각적으로 시의 형식을 빌어 쓸 때, 시는 묘사적 양식을 지향한다. 말하자면 언어가 사물의 감각성을 드러낼 때 그것을 우리는 심상(이미지)이라 부르는데, 언어가 운율적으로 이미지를 생산하거나, 언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한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
흩날리는 눈발을 본다.
 
흩날리는 눈발에 섞여 흩날리는
작은 나비들을 본다.
 
한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
흩날리는 눈발은 이내 그치고
작은 나비들도 꿈처럼 사라진다.
 
 
 
○ 이 시에서 시인이 보는 것은 겨울 저녁의 눈발이다. 1연에서 시인은 ‘흩날리는 눈발을’을 본다. 2연에서는 ‘작은 나비들’로 변용된다. 시인은 눈발을 나비들에 비유함으로써 눈발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보여준다.
 
○ 은유는 소박하게 정의하면 표면적으로 다른 두 사물 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가하면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으로는 이렇게 비유의 방법에 기대지 않고 사물의 구체적 감각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법이 있다.
 
○ 김춘수의 의하면 사물을 비유적으로 묘사할 때는 묘사적 이미지, 사물을 어떤 비유에도 기대지 않고 묘사할 때는 사물적 이미지가 드러난다. 전자는 이미지가 어떤 관념을 말하기 위한 도구가 되며 , 후자는 이미지 자체를 위한 이미지가 된다.
○ 이런 유형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로 김춘수의 <인동잎>을 들 수 있다.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 사물의 감각적 특성
서울 근교에서는 보지 못한         --- 시인의 관념 진술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 사물의 감각적 특성
월동하는 인동잎의 빛깔이           --- 시인의 관념 진술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        --- 시인의 관념 진술
더욱 슬프다                                 --- 시인의 관념 진술
 
 
 
 
 
○ 어떤 관념도 드러내지 않고 사물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묘사시에서는 보여주기라는 묘사와 관념적 진술이 함께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화자의 반응, 심리, 생각 - 주관적 정서가 꼭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위 시의 경우, 3행과 6,7,8행에서는 사물의 감각적 특성이 아니라 시인의 관념이 드러나고 있다. 나머지 시행들에서는 초겨울의 붉은 인동초의 열매에 대한 감각성, 특히 시각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한 시각적 ‘한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에서 읽을 수 있었던 비유의 방법에 기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사물의 사물성을 드러내는 시를 ‘사물시’(physical poetry)라 한다.
 
 
3. 이미지(image)시 쓰기
 
 
 
○ 비유적 묘사를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미지시로 발전한다. 이미지시는 시의 구체성을 확보하고, 환기력을 높여주며, 신선감을 가져다 준다.
 
○ 이미시의 대두 배경
 
 
이미지시 ---감각적 정서를 환기
관념시-----지적 사유를 매개로 하여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독자들에게 인식
 
 
(1) 관념의 횡포를 증오하는 새로운 독자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현대시에서 시의 회화성이 지배적인 요소가 됨.
(2) 현대시에서 시의 이미지가 강조되는 것은 현대 과학문명 자체가 가시적인 실증성을 바탕으로 한 시각형의 문화가 창출한 데서 비롯됨.
(3) 주관적인 사상과 감정을 재구성하면서 시의 대상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회화적 이미지를 주로 사용함.
(4) 이미지는 언어에 의해 조직화한 그림이며 , 대상에 대한 감각적, 지각적 체험을 신선하고 강렬하게 환기시키면서 비유와 상징을 결합하는 것
(5) 이미지의 시적 기능은 크게 의미의 전달과 정서 환기로 나누어질 수 있다.
 
 
(1) 심리적 이미지(정신적 이미지, 지각이미지)
 
○ 심리적 이미지는 시인이나 독자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감각적 체험과 인상을 중시한다.
 
 
① 시각적 이미지
 
 
나의 심장 앞에서
나의 불을 지키는 피의 사냥개
내 비참의 교외(郊外)에서
쓰거운 콩팥을 먹고 사는 새 
 
                  너의 혀의 젖은 불꽃으로
내 땀의 소금을 핥아라
내 죽음의 설탕을 핥아라                               -    Ivan Goil <피의 사냥개> 부분
 
 
 
 
○ 시각적 이미지는 가시적 대상이나 추상적 관념을 재생하고 묘사하는 기능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체험을 독자들이 볼 수 있게 바꾸어 놓는다.
 
○ 시인은 백혈병에 대한 자신의 절망감을 ‘피의 사냥개’로 가시화시켜 다른 이들에게는 막연하고 모호한 것을 명확하게 그려냄으로써 생생한 고통의 체험을 독자들에게 환기시켜 예술적 감동을 느끼게 한다.
 
 
 
② 청각적 이미지
 
明明한 明明한 매미가 우네                             박재삼 <매미 울름에> 부분
 
 
○ 이도령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춘향이의 시점에 선 화자가 한 여름 숲에서 매미 우는 소리를 ‘明明한’ 소리를 들음으로써, 반가운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대님 푸는 소리 등으로 자연스럽게 연상시켜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 특히 의성어를 구사한 ‘明明한’ 이미지는 의미적 요소와 결합되어 기다리는 이의 어두운 마음을 스스로 밝은 마음으로 바꾸어내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한다.
 
 
③ 후각적 이미지
 
 
혼자 몰래 마신 고량주 냄새 조금 몰아내려
거실 창을 여니 바로 봄밤
하늘에 달무리가 선연하고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비릿한 비 냄새
겨울난 화초들이 심호흡하며
냄새 맡기 분주하다
                                                                                 황동규 <봄밤>부분
 
 
 
○ 고량주의 냄새를 조금 내보내려던 화자가 창을 여니, 오히려 봄밤의 비릿한 비 냄새가 코 끝에 스쳐오고, 겨울을 난 화초들도 심호흡하여 봄냄새 맡기에 분주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인은 후각적 이미지를 통해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사물들이 서로의 체취를 맡으며 왕성한 생명력을 새롭게 교감하는 미적 체험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④ 미각적 이미지
 
 
메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에 올라
새 사돈을 접대하는 것                                              박목월 <적막한 식욕>
 
 
 
 
○ ‘싱겁고 구수한’ 메밀묵 맛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오히려 아름다운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화자의 인간미를 돋보이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각적 감각은 감각 자체로 끝나지 않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전통적인 인간미로까지 확장한다.
 
 
 
 
⑤ 촉각적 이미지
 
 
 
                  젖은 안개와 혀와
街燈의 하염없는 혀가
서로의 가장 작은 소리까지도
빨아들이고 있는
눈물겨운 욕정의 親和                                                 정현종 <交感>부분
 
 
 
 
 
○ 사물인 안개와 街燈의 관계를 시인 나름의 느낌으로 그리고 있다. 안개와 가등의 존재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젖은 안개의 혀'와 ’ 가등의 하염없는 혀‘처럼 촉각적 느낌으로 구체화시키면서, 그 교감의 밀도 있는 흐름을 감지하기 위해 ’작은 소리까지도 빨아들이고 있는‘ 청각적 이미지와 근육감각적 이미지를 아울러 구사하고 있다.
 
 
 
⑥ 역동적 이미지
 
 
어떤 놈은 화분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되어
빛깔의 어기찬 흐름을 흐르고
어떤 놈은 하늘이라도 받들었는가
하나의 발족한 소반이 되어 하늘의 이슬을 받고 있다
                                                                                                박남수 <국화> 부분
 
 
 
○ 역동적 이미지는 정지적 이미지의 대립적 개념이다. 이 시에서는 국화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폭포를 방불케 하는 ‘빛깔의 어기찬 흐름’으로 보고, 또 하늘을 떠받들기라도 할 듯 ‘발족한 소반’처럼 오뚝이 서서 하늘의 이슬을 받고 있다고 표현한다.
 
○ 시인의 개성적인 시각은 진부한 우아함이 아니라 꽃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곧고 강인한 생명력과 힘찬 순수성을 발견함으로써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를 찾아낸 것이다.
 
 
⑦ 공감각적 이미지
 
 
물에서 갓나온 여인이
옷 입기 전 한 때를 잠깐
돌아선 모습
 
달빛에 젖은 塔이여!
 
온 몸에 흐르는 윤기는
상긋한 풀내음새라                                               조지훈< 여운> 부분
 
 
 
 
○ 이 시의 중심 소재는 탑이다. 달빛 아래 서 있는 탑의 모습은 시인과의 상상력 속에서 ‘물에서 갓나온 여인’으로 바뀌면서, 종교적 심상인 성(性)스러움이 스스럼없이 생생하게 교감되고 있다.
 
 
○ 달빛을 물의 이미지로 치환한 것은 시각의 촉각화이며, ‘온몸에 흐르는 윤기’를 ‘상긋한 풀냄새’로 옮기는 것도 시각적 이미지에서 후각적 이미지로 전환된 것이다.
이 시는 공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성,속의 미적 경지를 훌륭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2) 비유적 이미지
 
 
○ 이 세상은 실제로 무수한 비유가 서로 엉켜 존재한다. 시의 비유적 이미지는 시의 내포성과 더불어 비유의 개념이 새롭게 인식되면서 심리적 이미지보다 현대시의 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게 되었다.
 
○ 이질적인 두 사물을 극적으로 결합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비유적 이미지인데, 비유적 이미지의 일반 유형은 직유, 은유, 제유, 환유, 의인화, 풍유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① 은유적 이미지
 
 
○ 두 이미지(언어) 사이의 역동성과 긴장성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역동성과 긴장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두 언어가 고정됨 관념으로 환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바로 창의적 이미지가 요구되는데, 창의적 이미지는 은유적 이미지의 역동성에 의해 산출된다. 이 역동적 은유는 내포의 동질성과 외연의 이질성 사이의 긴장관계에 의해 설립된다.
 
 
물로 되어 있는 바다
물로 되어 있는 구름
물로 되어 있는 사랑
건너가는 젖은 목소리
건너오는 젖은 목소리                                      정현종 <술노래> 부분
 
 
 
○ 이 시에서 ‘술’의 이미지와 ‘바다’,‘구름‘,’사랑‘의 이미지는 서로 이질적인 존재로 병치되고 있지만, 시인의 의식 속에서 그것은 일차적으로 물을 매개로 결합되고, 이차적으로 물과 술이 매개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술에 취해 주고 받는 사랑의 대화 속에서 젖은 목소리가 연역된다.
 
○ 시인은 이제 무수한 수평과 수직을 가로지는 바다와 구름의 거대한 존재가 사랑이라는 젖은 감정 속에 하나로 통합되는 원리를 독자들에게 환기시켜 준다.
 
 
② 환유적 이미지
 
○ 은유적 이미지가 정서, 사상, 윤리 등의 주관적 요소를 개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객관화하는 구조를 지닌 반면에 환유적 이미지는 언어의 지시성을 통해 외부 대상을 형상화하기 때문에 객관적 대상, 배경, 사건을 내면적으로 자기인식화하는 구조를 드러낸다.
 
○ 정서 중심의 은유적인 이미지의 시는 객관적 상관물을 배경으로 자기 인식을 환기시키며 인식 중심의 환유적 이미지의 시는 어떤 배경, 사건에 대한 인식 및 자기 인식이 중심이 된다.
 
 
눈 덮힌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한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 듯
차창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어뜯으며 몸부리친다.                                   오장환 <북방의 길>
 
 
 
○ 이 시에서 ‘눈 덮인 철로’, ‘소반 귀퉁이’의 ‘농군‘, ’어린애‘의 울음 등의 이미지는 내포적 문맥이 아니라 지시적 문맥 속에서 결합된 환유적 이미지이다. 시인은 배경과 사건을 전경화함으로써 현장감을 환기시키면서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궁핍하고 참담한 이농민의 전형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3) 상징적 이미지
 
 
○ 상징은 비유와 함께 시의 내용을 이미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비유는 두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반면, 상징은 하나의 이미지만을 표면에 내세운다. 곧 상징은 매재(보조관념)의 이미지만을 사용하여 본의(원관념)를 연상시키는데, 상징적 이미지가 본의를 연상시키는 힘은 시의 전체 문맥 속에 퍼져 있다. 그래서 시인이 유사한 비유적 이미지만들을 반복해 서 사용할 때 취의를 생략하고 매재만 사용해도 우리는 숨겨진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 반복 양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의 다발은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로 회귀하면서 상징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비유적 이미지를 이미지의 사용이 전제된다는 점에서 상징은 “확장된 비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상징적 이미지의 본의는 비유적 이미지의 본의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암시적인 성격을 띤다.
 
○ 상징적 이미지의 효과는 매재의 이미지가 얼마나 생생한가. 혹은 그 이미지가 본의를 얼마나 강력하게 환기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보편적 상징, 곧 인습적인 상징은 본의를 환기시키는 힘은 크지만, 창의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개인적 상징은 독창적이지만 본의를 환기시키는 힘이 미약해 난해한 이미지를 종종 산출해 나쁜 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 따라서 시적 상징은 이미지가 독창적이면서도 본의를 환기시키는 힘이 큰 보편성을 띠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
 
 
○ 사랑을 잃은 화자는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 등 비유적 이미지들을 구사하면서 사랑의 열망을 떠나 보내고 난 후의 절망감과 허무를 “빈 집”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 대화를 활용한 비유적(감각적, 상상력, 이미지시를 위한)인 시 쓰기 훈련
 
① ______________________를(가) 보고 싶으면(싶을 때)
① “누군가(무엇인가)를 보고(먹고,) 싶을 때 ( 누구 / 무엇 )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유롭게 떠올려봅시다”
(시간을 두고 나서)
 
대답 :“민정이요”, 혹은 “조카의 웃음이요”
 
② 내 몸은 ___________________같이 ___________________ 다. ② “떠올렸더니, 그럼 보고싶을 때 몸이 어떠니? (비유) (온도-촉각적 표현) 따뜻하니? 뜨겁니?”
 
대답 : “뜨거워요” 혹은 “따뜻해요”
 
“ 무엇처럼 뜨겁니(따뜻하니)?”
 
대답 :“ 끓는 주전자 같아요.” 혹은 “아랫목에 묻어둔 밥그릇 처럼요.”
 
③ 내 마음은 __________________같은 __________________ 인데, ③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보자. 보고싶은 마음 (소리-청각적 표현) (색깔-시각적 표현) 은 무슨 색이지?”
 
대답 : “빨강이요.” 혹은 “은빛색이요”
 
“잘 들어 봐! 빨강, 빨강.”
“들었지? 빨강(은빛색)은 무슨 소리와 같지?”
 
대답 : “빨강은 달리는 기차소리요.” 혹은 은빛색은 출렁거리는 바닷물소리요.“
 
④ 그것은 -------------- 이다
④ “또다시 새로 시작해 보자. 보고 싶은 마음 (맛-미각적 표현) 은 무슨 맛이지?”
 
대답 “맛있는 햄버거맛이요.” “달콤한 박하 사탕맛이요.”
 
⑤ _________________는 ______________________이다.
⑤ “ 하나만 더 해보자. 그 보고싶은 마음
(누구 / 무엇) (냄새-후각적 표현) 무슨 냄새지?“
 
대답 : “피자 냄새요.” “고기 굽는 냄새요.” “갓 구워낸 버터빵 냄새요.”
 
* 반전 혹은 비약으로 연(聯)을 준다.  
 
⑥ _________________는 ____________________을 떠올리게 한다.
⑥ 마지막으로 연상을 해보까요? 누군가(무
(누구 / 무엇) (사물, 풍경, 기억) 엇인가)는 무엇을 떠올리게 하나요?
 
대답 : “예술의 전당의 음악분수요.”
         “ 내 삶의 비타민이요.”
 
 
 
● “그러면, 지금까지 적은 것을 활용하여 다음 빈 칸에 짧은 시로 만들어 볼까요?”
 
 
 
                  예시 (1)
 
민정이가 보고 싶을 때
 
내 몸은 끓는 주전자같이 뜨겁다.
내 마음은 달리는 기차소리 같은 빨강색이 된다
그 보고 싶은 마음은 맛있는 햄버거 맛이고, 피자 냄새다.
 
민정이는 예술의 전당의 음악분수다.
 
 
 
    예시 (2)
 
 
조카의 웃음이 보고 싶으면
 
내 몸은 아랫목에 묻어둔 밥그릇처럼 따뜻해진다
내 마음은 아침바닷물처럼 은빛색깔로 출렁거린다
그 맛은 달콤한 박하사탕맛이다.
조카의 웃음은 갓 구워낸 버터빵 냄새다.
 
조카의 웃음은 내 삶의 비타민이다.
 
 
 
 
4. 사물시(physical poetry) 쓰기
 
 
 
(1) 사물시 : 사물에 대한 느낌의 미학(aesthetics) : 감성적 느낌(feeling) - 감각(sensation) - 감동(感動)
 
○ 美 : 자연 • 인생 • 예술에 담긴 아름다움의 현상이나 가치 그리고 체험 따위
 
○ 미적사실(美的事實) : 심리학•사회학•철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시도할 수 있으며, 또한 미적 사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미학의 성격도 달라진다. 미적 사실을 아름다움을 가능케 한 창조적 심리로 본다면, 우리는 미학이 창조적 심리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산출된 아름다움 자체.
 
○ 미학은 플라톤에서 비롯되었지만, 미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한 자는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이며, ‘감성적 인식의 학문(Scientia Cognitionis Sensitivae)’이라는 의미로서 에스테티카(aesthetica : 그리스어의 감성적 aisthetikos라는 말에서 유래)라는 명칭을 사용한데서 기인한다. 그는 볼프와 라이프니츠가 이성적 인식이론을 체계화하여 논리학을 수립한 것에 대하여 감성적 인식 이론을 확립하려고 했다.
 
○ 이후 미학은 대체로 관념론적 미학과 경험주의 내지 심리학적 미학 등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 관념론적 미학의 창시자는 칸트인데, 그는 미와 예술에 있어서 관념을 넘어선 경험적 판단을 인간의 정신능력 가운데 중요한 측면으로 파악하며, 이것을 미적 판단력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또한 미적 판단력이 오성(悟性) • 이성(理性) 등과 병치(竝置)되는 상태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정신 능력이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미적 판단력은 특수한 인식능력이다. 칸트 이후 이러한 선험적•비판주의적 미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철학자로 쉘링 • 헤겔 • 쇼펜하우어 등이 있다.
 
● 경험주의 내지 심리학적 미학은 19세기 말 실증주의(Positivism)의 전개에 힘입어 형성된 미학이다. 이 미학은 특히 실험적 방법에 의지한다. 특히 립스나 폴켈트 등이 내세운 감정이입설(感情移入說, Empathy)은 경험 및 심리 작용을 잘 설명해준다. 한편으로 미적 규범의 문제를 다루는가 하면,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미적 형식의 문제를 다루며 미적 관조의 구조도 파헤치고자 시도한다. 이와 같은 경험주의의 입장은 프랑스 역사학자인 텐느와 기요 등에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사회학적인 방법을 활용한 미학을 성립시켰는가 하면 예술학의 토대를 닦기도 했다.
 
● 20세기 독일 철학자 후설은 현상학(現象學)을 도입한 현상학적 미학을 성립한다. 그밖에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형에 속하는 미학,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미학 등이 있다.
 
 
(2) 사물의 속성을 살려 쓰기, <거미> 시 비교해 보기
 
 
 
 
           불빛 나가는 창가에 줄을 쳐 놓았다
새소리와 꽃향기를 가로 막고
내 집을 기둥 하나로 삼아
농부가 논두렁에 쪼그려 앉아 있다                                         함민복 <거미> 전문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개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 만에 유령거미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딘가로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박성우 <거미>전문
 
 
 
 
 
그는 목수다 그가 먹줄을 튕기면 허공에 집이 생겨난다 그는 잠자리가 지나쳐 간 붉은 흔적들을 살핀다 가을 비린내를 코끝에 저울질해 본다 그는 간간이 부는 동남쪽 토막바람이 불안하다 그는 혹시 내릴 빗방울의 크기와 각도를 계산해 놓는다 새털구름의 무게도 유심히 관찰한다 그가 허공을 걷기 시작한다 누군가 떠난 허름한 집을 걷어내고 있다 버려진 날개와 하루살이 떼 돌돌 말아 던져버린다 그는 솔잎에 못을 박고 몇 가닥의 새 길을 놓는다 그는 가늘고 부드러운 발톱으로 허공에 밑그림을 그려넣는다 무늬 같은 집은 비바람에도 펄럭여야 한다 파닥거리는 가위질에도 질기게 버텨내야 한다 하루 끼니가 걸린 문제다 그는 신중히 가장자리부터 시계방향으로 길을 역고 있다 앞발로 허공을 자르고 뒷발로 길 하나 튕겨붙인다 끈적한 길들은 벌레의 떨림까지 중앙 로터리에 전달할 것이다 그가 완성된 집 한 채 흔들어 본다 바람이 두부처럼 잘려 나가고 거미집이 숨을 쉰다
 
                                                                          김두안 <거미집> 전문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물을 짠다 잡는 즉시 단단히 포박한 채
 
투명한 유혹의 은실을 풀어 고문하듯 뒤틀고 뒤집고 까봐야 한다
끈끈한 욕망의 신경을 늘여 실컷 두들겨 혐의가 풀린 다음
그물을 친다 꼭꼭 씹어 먹어야 좋은 실이 뽑히듯
씨줄과 날줄을 걸어 오늘도 나는 그물을 짠다
사방팔방 짜 늘인 레이스 빈방에 홀로 웅크린 거미처럼
경계가 삼엄한 레이더망이다 은빛 투명한 그리움 풀어
지난 과오를 줄줄이 실토하듯 막막한 허공에 그물을 친다
감히 공중에 내건 죄가 온 하루 날파리를 기다리다 지치면
저토록 길고 아름다울 줄이야 내가 친 그물에 매달려
속셈이 교활한 자의 언어는 늘 대롱대롱 그네나 타고, 때로는
현란하고 멋지고 향기롭다지? 가장 팽팽한 현을 골라
그러니까 머리만 큰 짐승이 뱉어낸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탄주한다.
달변과 혀를 조심하도록
그건 대개 사람 잡는 덫이 아니면
어디서 슬쩍 해온 장물이므로
저런! 그새 또 걸려들었군                                                   임영조 <거미> 전문
 
 
 
○ 위의 <거미> 시들은 같은 소재의 ‘거미’지만 소재에 대해 접근 방식들이 모두 다르다. 특히 시인마다 사물의 감각적 특성과 그 사물에 대한 관념의 진술이 시마다 각기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 사물 중심의 시는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시, 일반적으로 물질현상을 노래하는 시, 순수시 등을 포함한다. 이미지스트 시인들은 사물을 사물성 속에서 제시한다. 순수시는 사물시의 변주이며, 죠지 무어처럼 이미지의 구성을 통한 순수한 재현ㆍ관조의 세계를 창조한다.
 
○ 사물시는 이미지스트의 시이든, 일반적 개념으로서의 시이든, 순수시이든 한결같이 관념을 죽임으로써 관념의 허위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미지스트의 경우, 체계적인 추상화의 세계, 곧 과학의 세계에 대한 혐오가 시적 동기를 이룬다.
 
(3) 내가 사물로서 주인공 되어보기
 
 
 
 
 
           너의 좁은 아파트 한 구석
           시든 꽃잎 하나 헉! 소리를 내며
           우글쭈글해진 모노륨 마루 위에 눕는 소리 들린다.
            - 땅에 내려가고 싶다
            누가 흑흑 흐느끼기 시작한다 .                                         강은교 <꽃잎> 전문
 
 
 
 
 
○ 리모콘, 휴대폰, 연필, 스탠드, 화분, 시계, 거울 - 주위에서 온갖 사물 중 시의 소재로 삼을 만한 것들을 많이 발견해 내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그 능력은 달리 말하면 관찰력과 상상력이다.
 
○ 유심히 주변을 관찰하면 쓸거리, 글 쓸 꼬투리는 무궁무진하다. 쓸거리가 많으면 글 (시)을 자꾸 쓰고 싶어지고, 마땅한 소재를 찾지 못하면 글(시) 이 잘 안 씌어진다. 글감 선택의 능력과 관찰력, 상상력, 통찰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연습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 어떤 사물을 보고 고정관념에 얽매인,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따분하고 재미없는 접근은 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1) 끊임없이 사물의 속성을 재해석하고,
2) 확장시켜나가고
3) 부정하고 거꾸로 생각해보고
4)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5) 낯설게 보는 곳에서
6) 남과 달리 보는 데서 시는 탄생한다.
7) 그래서 사물의 본래 모습, 혹은 또다른 모습을 찾아준다.
 
 
 
(4) 사물의 속성에 의미를 부여하기
( 본 것(사물 현상, 속성)을 정신(관념)으로 진술하기)
 
 
○ 본 것의 현상, 속성을 + 새롭게 발견된 사실이나 삶(존재)의 의미, 깨달음으로 진술해 나가는 방법이다. 문학은 인간의 지각과 상상력을 넓혀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낙엽도 방금 떨어진 낙엽은
            살아 있는 것 같다
            웃는 것 같다
            말하는 것 같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주면
            다시 나무랑 살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생진<새로운 낙엽> 전문(2012.11.7)
 
 
 
 
 
이놈을 잡는 일은 너무 쉽다
줄에 소라껍질을 매달아놓으면
은신처로 알고 들어가 걸려드는데
문제는 문단속을 잘한다는 것
혹시 남에게 들켜 잡아먹힐까봐
펄을 뭉쳐 입구를 꽉 틀어막다보니
퇴로도 없이 잡히고 만다 바보같이
‘나 여기 들어 있소’ 자수하거나
‘눈 가리고 야옹’인 셈이다 하여
입구가 막힌 소라껍질 속에는
틀림없이 쭈꾸미가 들어있다
어부는 옛날 처녀 보쌈해오 듯
그냥 걷어오기만 하면 된다.
 
세상에는 지나치게 문단속 잘해
폐가망신당한 사람들이 있다.                                                         김선태 <쭈꾸미> 부분
 
 
 
 
 
○ 시인에게 있어 자연과 사물이란 우주의 섭리, 비밀을 풀어가는 열쇠요, 인간의 지각과 상상력을 넓혀가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김선태의 시 <쭈꾸미>에서는 쭈꾸미의 생리를 통하여 인간의 어리석음을 발견해 낸다. 그는 남도의 목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시간만 나면 섬으로, 바닷가로, 갯벌로 시 사냥을 나간다.
그의 시에는 연체동물이나 꽃게, 숭어, 우럭, 홍어, 말미잘, 개불 등 물고기만을 엮어 올리는 것이 아니다. 한층 더 파고들어 물고기를 통해서 보는 인간 세상의 모습이라든가, 남도 바닷가 사람들과 풍경과 그윽한 향수를 수거하여 시편들 속에 담아낸다. 섬마을의 이팝나무를 조상들의 유산인 ‘쌀밥’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해안선을 어머니의 치맛자락으로 묘사하거나, 갯벌을 ‘넉넉하고 깊은 그늘’을 드리운 ‘진창의 노래판’으로 인식해 ‘잘 삭은 적막’과 ‘절창’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또 진주조개에서 ‘찬란한 중심에 스며 있는 고통’의 삶을 통찰해 내기도 한다.
 
 
 
 
            처마 끝에 매달린 옥수수
봄볕에 슬몃슬몃 눈을 뜬다
질끈 머리를 틀어 올리고
알몸으로 겨울을 버틴 씨옥수수
따순 바람에 발이 가렵다
알알이 쟁여둔 욕망들
웃자란 몸 속의 뿌리들
우르르 봄을 향해 발을 뻗는다
세상으로 뛰쳐나갈 신호를 기다린다
딱딱한 알갱이 속,
저 푸른 풀씨들
 
            들판에 확, 불이 붙겠다                                                         마경덕 <씨옥수수> 전문
 
 
 
 
 
            구르는 것이 일생인 삶도 있다
구르다가 마침내 가루가 되는 삶도 있다
가루가 되지 않고는 온몸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뜨겁게 살 수 있는 길이야 알몸밖에 더 있느냐
알몸으로 굴러가서 기어코 핏빛 사랑 한번 할 수 있는 것이야
맨살밖에 더 있느냐
맨살로 굴러가도 아프지 않은 게
돌멩이밖에 더 있느냐
이 세상 모든 것, 기다리다 지친다 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지치지 않는 게 돌밖에 더 있느냐
 
빛나는 생이란 높은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치열한 삶은 가장 낮은 데 있다고
깨어져서야 비로소 삶을 완성하는
돌은 말한다
구르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삶이 뿌리 가까이에 있다고
깨어지면서 더욱 뭉쳐지는 돌은 말한다                                       이기철 <돌에 대하여>전문
 
 
 
 
○ 사물시는 하나의 사물을 글감으로 삼아 특징, 성질, 속성을 꼼꼼하게 묘사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시이다.
 
○ 우리 주위의 흔한 사물을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시인이고 작가다. 여기에서 글쓰기는 출발한다. 주위의 사물을 잘 관찰하고 관심을 갖고 몰입하고, 상상력을 부여하여 속성을 깊이 들여다보면 통찰의 세계가 발견된다. , 관계짓기를 잘 발휘하면,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나가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이른 아침 거울을 보며  
 
스스로 목을 맨 올가미가  
 
 
온종일 나를 끌고 다닌다  
 
 
사무실로 거리로  
 
 
찻집으로 술집으로  
 
 
또 무슨 식장으로 끌고 다닌다  
 
 
서투른 근엄을 위장해 주고  
 
 
더러는 나를 비굴하게 만들고  
 
 
갖가지 자유를 결박하는 끈  
 
 
도대체 누굴까?  
 
 
이 견고한 줄로  
 
 
내 목을 거뜬히 옭아 쥔 者는...  
 
 
답답해라  
 
 
어머니의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이후  
 
 
나는 아무런 줄도 잡지 못하고  
 
 
불안한 도시 안개 속을 헤매는 羊  
 
 
제발 정신 좀 차려야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면서  
 
 
뒤틀린 넥타이를 고쳐 매지만  
 
 
나는 다시 고분고분 길들여진다  
 
 
 
 
 
낯선 시간 속으로  
 
 
 
      바쁘게 끌려가는 서러운 노예처럼                                      임영조 <넥타이>전문
 
 
 
 
 
(5) 사물의 속성에 따른 비유적 관계짓기
 
 
 
○ 이 세상의 사물들은 다 연관되어 있다. 사물들은 서로 다르지만 연상과 상상을 통하여 같은 속성, 곧 유사성을 발견해 나가는 비유적 관계짓기가 곧 시의 세계다. 그래서 시는 비유덩어리가 아닌가.
 
 
 
            모두들 못생겼다고 하지만
모과는 얼굴이 아니고
주먹이다
돌덩이만큼 단단한
주먹이다                                                                           이 안<모과>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출옥하면 또
무슨 일을 저질을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다 
 
            오랜 연금으로
흰 뼈만 앙상한 체구에
표정까지 굳어버린 돌대가리를
언제나 남의 손 끝에 잡혀
머리부터 돌진하는 下手人이다.
 
            어둠 속에 갖히면
누구나 오히려 대범해지듯
저마다 뜨거운 敵意를 품고 있어
언제든 부딪치면 당장
焚身을 각오한 요시찰 인물들
그들은 지금 숨을 죽인 채
어두운 棺 속에 누워있지만
한 순간 화려하게 데뷔할
절호의 챤스를 노리고 있다
빛나는 출세를 꿈꾸고 있다 임영조 <성냥> 전문
 
이 시대에 희한한 聖者
親水性 체질인 그는
성품이 워낙 미끄럽고 쾌활해
누구와도 빈말 없이 친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온몸을 풀어 우리 죄를 사하듯
더러운 손을 씻어주었다
밖에서 묻혀오는 온갖 불순을
잊고 싶은 기억을 지워주었다                                          임영조 <비누> 전반부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곱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 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나희덕 <누에>전문
 
 
 
 
○ 우리 주위의 흔한 사물을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시인이고 작가다. 여기에서 글쓰기는 출발한다. 주위의 사물을 잘 관찰하고 관심을 갖고 몰입하고, 상상력과 통찰, 관계짓기를 잘 발휘하면, 그리고 나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나가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 우리말의 ‘짓다’라는 단어를 다시금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 단어는 ‘집을 짓다’, ‘밥을 짓다’, ‘옷을 짓다’, ‘다리를 짓다’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만든다’는 것이 기본적인 의미자질이다. 이러한 기본의미에서 전이되어 ‘글을 짓다’, ‘시를 짓다’, ‘소설을 짓다’ 등으로 쓰인다. ‘만들기’는 ‘형성하기’이기도 하다. 이는 독일어의 ‘만든다’는 의미의 동사 빌덴(bilden)과 그 명사형 빌둥(Building)에 상응한다. 독일어에서 교양소설을 ‘빌둥스로만(Bildungsroman)’이라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의 형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조어법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상상력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만들고 형성하는 능력을 뜻한다.
 
 
○ 사물의 겉모습을 보여주는 묘사에서 그치지 않고, 상투성의 껍질을 벗겨가다 보면 맛깔스런 과육, 속살이 보인다. 과일에게서 속살의 의미(정신)는 무엇인가? 이것을 나의 일상사에 비춰본다면 여기에서 발견하는 그 어떤 관념이 존재한다.
 
○ 마중물을 아는가. 양질의 생명수를 얻으려면, 사물의 또다른 본질, 의미를 찾아내려면 한 바가지, 두 바가지 마중물을 넣고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탁한 물이 나오게 마련, 사물의 관조와 몰입- 상호텍스트의 관계짓기, 스키마, 연상, 상상, 비유적 상상 등에 매진하다 보면 나중에는 맑고 차가운 생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 시란 생수와 같은 대상의 비밀을 캐내는 작업이다. 현실적, 실용적, 일상적, 논리적 관찰을 거부하고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려고 하는 노력에서 비로소 그 대상은 자신의 비밀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6) 사물 수필의 예
 
                                                     명품
 
                                                                                                          홍경희 (수필가, 경인문학회)
 
 주책스럽게도 백발에 어울리지 않게 나는 쓰는 도구들을 좋아한다. 뾰족한 모양을 내서 예쁘게 깎을 수 있는 연필,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써지는 볼펜, 꼭지만 누르면 심 조절이 가능해서 편리한 샤프, 시끄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는 데는 제일인 붓, 정봉 중봉 세필 등의 필기구이다.
 연필에 대한 욕심은 국민학교 때부터인 것 같다. 공부는 지질하게 하면서도 내 함석필통은 키가 제각각인 연필들이 잘 깎여진 채로 올망졸망 가득 차 있곤 했다. 어쩌다 친구가 가진 연필이 욕심 날 때는 만화책을 빌려주거나 물물교환으로 기어코 내 것을 만들고야 마는 집념까지 있었다.
 나는 또 만화책을 동무들이 부러워 할 만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아버지가 근무하던 은행이 학교 담과 붙어 있는지라 쉬는 시간이라도 달려가 떼를 쓰면 용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사고 싶거나 보고 싶은 물건을 학교 앞 문구점이나 서점을 통해 곧잘 구할 수 있는 때문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해진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사무실로 불숙불숙 찾아오는 딸이 귀여워서라기 보다 창피해서 선뜻 돈을 쥐여 주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제일 예뻐한다는 착각 속에 철없는 유년을 그렇게 보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연필회사인 독일의 ‘파버카스텔’ 에는 백 만원이 넘는 연필이 있다고 한다. 대 문호 궤테를 비롯해서 화가 빈센트, 반고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그라스 ,영국 수상 처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애용하던 연필이 이 회사 제품이라고 한다. 이렇게 유럽의 귀족이나 국제적 명망가들의 애장품이 된 것은 우연히 그들이 먼저 쓰게 되서 유명해진 것인지 아니면 유명회사의 연필이어서 그들이 쓰게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명품브랜드의 값을 높이는 데는 그들의 공이 크다고 볼 수 있겠다.
 볼펜에 욕심이 많은 내게 손녀는 빈번이 제 필통을 열고 갖고 싶은 걸 고르라고 한다. 그리고 아들은 출장길에 기내에서 받는 볼펜과 호텔에서 색다른 모양의 볼펜이나 연필이 눈에 띄면 챙겨다 준다. 이렇게 출신지가 각각 다른 심이 가늘고 굵고, 여러 색을 내는, 이름도 가지가지의 볼펜들로 문구점에 가는 번거로움 없이도 내가 가진 네 개의 필통은 늘 배가 부르다.
 이번에 새 식구가 늘었다. 아들이 작년에 박사학위 받을 때 들어온 선물이라며 까만 몸통에 은테를 두르고 뚜껑에는 흰 꽃을 얹은 중후한 모습의 볼펜 하나를 가져왔다.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거야 말로 명품이란다. 나는 눈물날 것같이 감격했고 기뻤다. 명품이라서? 아니 그건 절대 아니고 짜-ㄴ 한 안스러움과 대견함에서 오는 에미의 마음에서였다.
직장 다니며 자식들 가르치며 남보다 곱절의 고생으로 일궈낸 형설지공(螢雪之功). 조금의 뒷받침도 못 해 준 부모의 미안함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의미를 지니고 내게로 온 그 까만 볼펜은 명품중의 명품임은 물론이고 대대로 소장(所藏)하는 가보(家寶)로 삼을 작정이다. 자랑할 기회가 있을 때 언제 어디서나 꺼내 자랑하려고 핸드백 속에 늘 넣고 다닌다. 희망사항 일 뿐이지만 내가 언젠가 그럴듯한 책을 쓴다면 이 볼펜으로 싸인을 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꿈은 항상 착각 속에 꾸는 것일까.
 대학생인 손녀는 요즘도 필통을 열고 내게 자유 선택권을 준다. 할머니에 대한 최대의 사랑 표현 방법이다. 이렇게 모여든 사랑 때문에 가슴은 늘 훈훈하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 볼펜들 하나 하나가 내겐 소중한 명품이 아닐까 생각하며 불룩한 네 개의 필통을 어루만져 본다
 
 
 
  
                                                      아주 특별한 만년필 문화
 
                                                                                                                              류종호(인천문협 이사. 시인)
 
 내게 좋은 만년필을 꼽으라면 파카(Parker), 파이롯트(PILOT), 몽블랑(montblanc), 쉐퍼(Sheaffer), 워터맨(waterman)을 말하고 싶다. 가격은 변론으로 한다. 파카는 오랜 세월 우리의 인식에 뿌리박힌 만년필이다. 파카21, 파카29, 파카45, 파카51 등 다양한 모델에 관해 들었을 것이다.
 파카 만년필 한 자루 갖고 싶던 학창시절이 엊그제 같다. 파이롯트 만년필도 파카 못지않게 익숙한 이름이다. 지금은 대중적인 국산 모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종각에 파이로트 대형 매점이 있긴 하나 과거와는 많이 다른 양상이다. 몽블랑은 독일 브랜드로 수제품임을 강조하고 있다. -대개의 전통 깊은 외국 브랜드는 거의 수제품이다- 아무래도 유럽 쪽에서 인기가 높은 것 같다. 몽블랑산이 4개국에 걸쳐있는 광대한 산세라 그런지는 몰라도 'montblanc' 이라 하면 받아들이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참고로 몽블랑 산의 높이가 4,810m인 바 몽블랑 만년필 닙(nib)에 각인된 '4810' 로고가 몽블랑 마운틴의 높이를, 뚜껑의 흰색 문양이 몽블랑 정상의 만년설(萬年雪)을 의미한다. 쉐파는 미국 브랜드로 아주 오래 전부터 생산되었다. 이베이(ebay) 사이트를 뒤지다 보면 빈티지 제품으로 40-50년 전에 생산된 민트급 제품들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당시의 주조방식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쉐파 제품의 대다수는 강성(强性)의 닙(nib)을 토대로 한다. 워터맨은 프랑스 제품으로 에드슨 모델을 비롯하여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
 쉐퍼와 워터맨 두 브랜드의 역사 역시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다. 국내엔 쉐퍼보다 워터맨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외국에 나가서도 만년필 만년필을 뒤지고 다닌 적이 있는데 좋은 예로, 홍콩의 골동품 거리에선 파카가 단연 압권이었다. 의외인 점은 국내에서 인식했던 몽블랑 만년필에 대한 눈높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홍콩의 마니아들은 몽블랑 만년필을 빈티지 펠리칸 제품보다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몽블랑의 단점(?)은 절대 바겐세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모델이라 해도 롯데 본점에서 보는 가격과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만나는 가격 차이는 현저하다. 이런 현상을 두고 업자들은 A/S같은 혜택에서 ‘정품’을 구입하는 게 유리하다 말하지만 몽블랑 수입업체인 강남의 '유로통상'에선 모든 몽블랑 제품을 차별 없이 대한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만년필을 점검 받거나 수리하러 갈 경우 제품의 구입처를 확인하고 A/S에 임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몽블랑의 트레이드마크인 만년설 문양만 정확하면 균등히 접수하여 처리해준다. 하긴 만년필은 치명적인 결함만 아니라면 수리할 게 없다.
 만년필 매장에선 반드시 몽블랑 만년필에 무게를 두고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몽블랑 만년필은 브랜드 가치는 뛰어날지 몰라도 한글이나 한문체엔 어울리지 않는 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글이나 한문체엔 파카 혹은 파이롯트(일제) 제품이 훨씬 잘 어울린다. 닙의 재질이 약간 탄력적이어야 한글체와 한문체에 적합하다. 한글체와 한문체는 글씨의 획을 긋는데 있어 알파벳 필기체처럼 지속적이지 않고 그때그때 유연하고 날렵하게 처리해야하는 특성을 띠기 때문이다.
 
 다음은 만년필 펜촉(nib)의 사이즈에 대한 설명이다. 만년필 펜촉은 회사별 제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글체엔 F(fine) 사이즈가 적당하다. 일제 파이롯트나 세일러 같은 제품은 사이즈가 정교한데 일제 만년필 대부분이 펜촉에 민감하다. 일본인들의 정신을 보는 것 같다. 수제품의 경우도 돋보기나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양쪽의 닙 균형이 아주 정확하다. 사실 만년필의 펜촉은 그 자체가 생명이나 다름없다. 비싼 만년필을 사서 잉크 흐름이 좋지 않거나 글씨 써지는 감촉이 매끄럽지 못하다면 스트레스 쌓일 일이다. 물론 몇 달을 꾸준히 연습하면 익숙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왜 비싼 제품을 구입해서 몇 달씩이나 길들여야 하는가? 독일제 몽블랑의 경우 수제품으로 만든다는 명목하에 닙의 구조가 제품에 따라 각기 다른 걸 볼 수 있다. 꼼꼼한 일제에 비하면 다소 엉성한 인상마저 띤다. 과거 미제 쉐퍼 만년필을 보아도 몽블랑처럼 펜촉을 함부로 깎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몽블랑 만년필은 세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숭례문 지하 수입상가에 가면 신품 기준 백화점 가격의 60% 정도로 구입 가능한 제품도 있다.
 만년필은 처음 살 때 진열장 형광등 불빛을 통해서 혹은 기타의 방식으로 닙의 균형이 정확한지부터 면밀히 살펴야 한다. 또한 몸통이 지나치게 가늘거나 굵은 제품은 피하는 게 좋다. 손에 쥐어 아담히 쥐어지는 굵기가 적당하다. 지나치게 가늘거나 굵은 몸통의 제품은 오랜 필기시 피로감이 따른다. 펜촉의 사이즈는 F(fine) 사이즈 닙의 만년필을 구입하시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세필(EF) 촉은 가늘어서 그렇고, -남성적인 필체와는 동떨어진- 미드움(M) 촉은 서류 결재 시 사인으로나 어울린다. 따라서 원고용 필기에 어울리는 사이즈는 F촉이다. 컨버터나 카트리지, 플린저 방식은 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므로 언급을 하지 않겠다.
 내가 소장한 워터맨 중에서 에드슨 모델을 보면 몸통의 굵기가 동양인 손아귀로선 다소 벅찬 느낌이 있어 오랜 시간 글을 쓸 경우 피로가 따른다는 약점이 있다. 물론 워터맨 중에도 몸통이 가느다란 제품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몽블랑이나 쉐퍼 혹은 파카 제품에 비해 전체적으로 무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주 가벼워도 경박한 느낌이 따르겠지만 무게감 지나치면 날렵하게 흘려 쓰는 필발에 제약으로 작용함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원고용이 아닌 결재(사인) 전용이라면 오히려 무게감이 있는 게 엄숙히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모 사이트에서 아주 오래된 쉐퍼 만년필을 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사람이 내놓은 만년필인데 모두 하나같이 쉐퍼 제품이었다. 펜촉 형태가 이미 내게 있는 것과 흡사한 것들이지만 오래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끌렸다. 열 자루의 만년필을 모두 구입해도 100달러가 넘지 않는 것이었다. 국제 배송료를 따져도 10자루라는 점을 감안하면 행운이나 다름없다. 언제 어떤 경로로 저런 만년필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디지털화 돼 가는 세상에 만년필의 정서를 고집한다는 게 뒤떨어진 발상인지 몰라도 '만년필만의 필감(筆感)'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면 컴퓨터를 접고 오직 만년필만으로 글을 쓰는 자세를 고집하고 싶다. 더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오랜 세월 만년필을 애용해온 나로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아담한 만년필 한 자루 선물하는 건 어떨까? 각별한 사람의 정이 느껴지는 만년필을 와이셔츠 주머니에 꽂고 다니면 그가 멀리 있어도 항상 그의 체취가 느껴질 것이다. 진정 만년필을 아끼고 사랑한다.
[출처] 묘사시, 이미지시, 사물시 유형의 시 쓰기(문광영문창5)|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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