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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은유를 기다리며 / 양병호
2019년 02월 01일 20시 40분  조회:1024  추천:0  작성자: 강려
폭력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은유를 기다리며 / 양병호
 
어찌 보면 세상은 그렇고 그런 일이 반복되는 곳이다. 일견 복잡다단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을 본질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요약 압축하면 더욱 그렇다. 자연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지니고 있다. 인생 역시 원형적 패턴에 따라 일정한 단계를 밟아 진행된다 하루 일과 역시 시간에 따라 동일하고 반복적인 노동과 휴식으로 이루어진다. 세계나 존재 모두 동일하고 반복적인 행동패턴에 따라 안도감을 느끼며 흘러간다. 이처럼 동일한 것의 반복을 통해 생성되는 일상의 낯익음은 안락이나 편안함과 더불어 권태와 지루함을 제공한다. 그래서 세상은 따분하고 인생은 지리멸렬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유발되는 답답한 권태와 지독한 환멸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그 중의 하나가 예술과 접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신기하고 낯설은 감각과 인식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예술 중에서 시 역시 마찬가지 소명과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 시는 존재와 세계에 대한 느낌과 관념을 형상화한다. 사물과 관념을 형상화람에 있어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 창발적인 정신은 필수적이다. 시인은 고유하고 독자적인 시선을 통해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세계와 존재에게 특수하고 창의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시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일탈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고정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적 존재와 세계를 참신하고 창발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물론 시에 관여하는 모든 언어학적 자질의 활용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계를 응시하는 시인의 은유적 사유체계가 중요하다. 은유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사물들을 유사한 다른 사물이나 관념을 통하여 인식하려는 사유방식이다. 사물 A를 사물 B를 통해 인지하면 사물 B의 속성이나 이미지가 결합되어 독창적인 사물 A의 의미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은유적 사유체계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세계를 전복함으로써 낯설음과 일탈의 재미를 제공한다. 은유는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재현하여 우리의 감각과 인식을 활성화시킨다.
  이번 달 [시문학]에 이러한 은유의 사유체계를 통해 존재와 세계를 새롭게 응시하고 있는 작품들을 살펴본다.
 
   붉은 심장들 깃발처럼 내걸렸다
   그 중 가장 뜨거운 심장
   손가락 인장 찍어
   푸른 하늘에 걸어두고,
   마지막 감동
   나뭇잎의 유장한 번지점프
   심장들 폭탄처럼 터지자
   새빨간 파편 조각들
   사람들 가슴에 일직선으로 날아가
   박힌 그대로
   천년 심장 화석이 된다
   그, 때, 부, 터,
   가을이 되면
   가로수 밑을
   복건 두른 신라인들도 서성거리고
   대한민국 넥타이부대도 서성거리고
 
                                                 -이옥교, [단풍낙엽]
 
  이 작품은 '단풍낙엽'을 통해 가을의 정취를 형상화하고 있다. 가을 나무의 이파리들이 단풍으로 물들고 낙하하는 과정을 은유적 상상력을 통해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첫행 "붉은 심장들 깃발처럼 내걸렸다"는 단풍잎을 '심장'과 '깃발'로 이중 은유하고 있다. 이 은유를 통해 단풍잎은 단순한 이파리에서 '심장'의 살아 있는 생명선을 함축하고, 나아가 '깃발'처럼 나부낌을 예비한 활력으로 의미가 변전된다.
  이어서 단풍잎은 '손가락 인장'으로 또 다시 은유화된다. 이는 단풍잎이 물드는 것이 이미 굳게 계약된 약속에 의한 것이라는 기호로 의미가 부여된다 이 단풍잎은 계속하여 '감동, 폭탄, 파편, 화석'으로 변주되어 은유화된다. 단풍은 가을이 되어 엽록소의 색깔이 변한다는 단순한 자연과학적 사실로부터 은유적 상상력을 통해 새롭고 낯선 의미를 획득한다. 하여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관찰과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의미의 창발에 이른다.
  위에서 다양하게 은유화된 '심장, 깃발, 감동, 폭탄, 파편, 화석'의 내포적 의미를 지닌 단풍잎이 지는 가을날, 현재의 대한민국 사람들이 과거 신라인들이 그랬듯이 가로수 밑을 서성거린다. 이는 단풍과 교감하는 정서가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반복 지속되는 속성임을 통시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는 단풍을 시적 대상으로 하여 가을날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시적 대상과 정서가 다양한 은유적 상상력으로 인해 의미심장한  함축과 내포를 획득한다. 하여 시의 의미 질량이 농후해지면서 신선하고 낯설은 세계와 조우할 수 있도록 충격을 준다. ....(중략).....
 
  지금까지 은유적 상상력이 활달하고 독창적인 작품 몇 편을 은유의 분석으로 살펴보았다. 은유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굳어지고 딱딱해져서 관습화, 상투화된 시적 대사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도록 한다. 즉 시적 대상의 새로운 모습이나 의미를 드러내어 세계를 낯설게 하고 나아가 삶과 존재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견인한다. 이러한 은유의 기능으로 인해 세계는 새로운 모습으로 갱신을 계속하고, 존재는 새로운 모습으로 신선해지고 삶에의 탄력을 받는다. 더욱 창의적이고 창발적인 은유적 상상력을 통해 시와 세계가 새롭게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언제나 반복과 상투로 다가오는 권태와 환멸의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도록.
 
                                          (2008, 시문학 12월호)
[출처] 폭력적인 그러나 아름다운 은유를 기다리며 / 양병호|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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