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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하이퍼시론

내 시의 하이퍼시 구조와 창작기법 /이선
2019년 02월 04일 20시 18분  조회:1306  추천:0  작성자: 강려
내 시의 하이퍼시 구조와 창작기법
이 선(시인)
 
 
<나의 하이퍼시 쓰기 기법>을 요약하면 다음 11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각각 시를 예로 들어서 역으로 하이퍼시 쓰기 방법론을 유추하여 보고자 한다.
 
 
 
 
 
 
1. 사물시- 객관화
 
 
 
 
 
 
이선의 하이퍼시의 특징은 사물시에서 출발한다. 단일구성보다는 복합구성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하이퍼시를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객관화’다. 시적 논리에 맞지 않는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나의 시는 ‘사물시’가 대부분이다.
 
또한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외국어로 번역이 되는 문장이다. 세계인이 모두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그날까지, 필자는 번역할 수 있는 객관화된 문장을 쓸 것이다. 번역이 가능한 문장은 ‘객관화’가 실현된 문장이다.
 
 
 
그 밤, 성경의 <아가서>를 읽었지
 
생선 비린내가 베어 있는 작은 다락방에서
 
잃어버린 내 청춘, 116페이지 원고를 넘겼지
 
혁명을 외치는 낡고 더러운 붉은 양탄자 위로
 
검정 도둑고양이가 먼저 지나갔지
 
앞집 길고양이와, 내 집 길고양이가
 
네 팔, 네 다리 서로 껴안고, 한데 엉겨붙어
 
가파른 언덕을 데굴데굴 굴렀지,
 
 
붉은 단풍나무 그림자가 누워있는
 
내 의식의 흐름을 흔드는, 개울물소리
 
자갈 밟히는, 소리
 
 
냇물 속으로 뛰어든 단풍잎들은
 
계절을 순환하며,
 
흰돌을 암갈색으로 물들였지
 
구름발바닥에서는 풀꽃향기가 났지
 
똑바로 걸어오던 바람이 뒤돌아섰지
 
 
‘서다’라는 이미지를 잡고
 
치타가 긴 꼬리를 돌려, 방향을 바꾸는 밤에
 
―「서론」 전문
 
 
위의 시「서론」의 제목을 주목하여 보자. ‘서론’은 질문적인 제목이다. ‘서론’이라는 제목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아도 되는 확장형 제목이다. ‘결론’이 안 나도 그만인 질문 같은 제목이다. 제목은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시에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위의 시 1연을 살펴보자. 1연의 중심어는 ‘아가서- 생선 비린내- 다락방- 잃어버린 청춘 116페이지- 혁명- 붉은 양탄자- 검정 도둑고양이’까지 혁명적이고 도발적이다. 전시적 긴장감이 있다. 독자는 반전을 기대하며 다음 연에 집중한다.
 
2연은 청춘이 ‘의식화’되는 과정을 은유하였다.
 
3연은 단풍잎이 돌을 의식화하는 과정이다. 연약한 단풍잎도, 자신의 몸을 반복적으로 던짐으로써 단단한 돌을 착색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구름발바닥에서는 풀꽃향기가 났지’(3연 4행) 부분은 감각적이고 예민한 청춘의 순수와 이상주의를 녹여내었다. ‘똑바로 걸어오던 바람이 뒤돌아섰지’(3연 5행)는 청춘의 불안정과 애증의 관계를 묘사하였다. 표현주의 문학을 지향하는 하이퍼시의 주요 포인트는 ‘감각적 미의식’을 지닌 문장표현이다.
 
청춘은 혁명을 갈구한다. ‘서론’이라는 제목은 얼핏 객관화된 문장이 아닌, 미래적이고 허구적인 뉘앙스의 제목이다. 그러나 논문에서 언급되는 ‘서론-본론- 결론’ 중 하나인 그 ‘서론’이 맞다. ‘객관화’된 제목이다. 시에서 웅변하거나 설교하지 말라, 표현하라. 필자의 시 쓰기의 근본원리다. 내용은 진지하고 깊게, 그러나 표현은 감각적이고 유연할 것.
 
 
 
 
 
 
 
 
2. 링크- 각 행과 연의 자립성과 독립성
 
 
 
 
하이퍼시의 구성요소에서 ‘링크’의 기능은 대단히 중요한 기본요소이다. 필자의 하이퍼시 쓰기에서도 ‘링크’는 거의 모든 시에 사용되고 있다. 링크 기능은 ‘제목- 행- 연’을 연결시키는 구도를 갖는다. 그러나 각 연은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다. 필자의 하이퍼시는 어떤 행을 빼거나 더하여도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필자의 시「북극에서 온 편지」를 살펴보자.
 
 
“툰드라의 아침밥상은 눈꽃 천지인 걸요…”
 
북극여우가 긴 꼬리로 허공을 흔들며, 빗줄기의 허리를 자릅니다
 
 
번식기 북극곰의 간식을 만들기 위해서
 
신은 고요라는 이름으로, 흰눈을 빙하 위에 내려놓으십니다
 
조용히
 
 
내 아버지는 툰드라가 되지 못한, 어둠
 
겨울을 낳다가, 바다로 침몰한 내 어미의 눈빛은
 
북극성
 
 
나는 얼음조각 유리바다에서 표류 중입니다
 
바다 거품과 “안녕!” 입맞춤을 하기엔 나는 아직 늙지 않았소
 
―내 고향 그린란드,
 
 
내 털들이 하늘로 곤두섭니다
 
얼음판을 놓쳐서 -40℃ 얼음바다로 미끄러졌습니다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수컷의 향기를 뽐내며
 
눈향나무 언덕 향해 달리는, 어린 순록의
 
맑고 유순한 눈빛을 나도 지닌 적 있는데
 
(중략)
 
보름달 저주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까?
 
얼음을 녹이는 것은, 내 원죄를 지우는 일
 
 
나는 퇴화한 꼬리를 치켜세우고, 어둠을 힘껏 문지릅니다
 
-흰색이거나 얼룩무늬거나
 
 
툰드라의 밤이 녹고 있습니다
 
순록의 뿔에 찔린, 달웅덩이
 
 
눈향나무 향기로
 
추위를 녹이며, 나의 젖은 몸을 말립니다
 
길은 추울수록, 달빛 투명하고 향기로와서
 
―「북극에서 온 편지」1-6연, 8-11행
 
 
 
위의 시 「북극에서 온 편지」의 화자는 ‘북극곰’이다. 위의 시의 각 ‘행’과 ‘연’은 ‘제목’과 ‘링크’된다. 위에 제시한 시에서 7연이 빠졌지만 시의 전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각 행과 연은 제목인 북극에서 온 편지와 연결되지만, 각 행과 연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하이퍼시에서 링크 기능은 가장 기본적인 주요 요소이다. 컴퓨터의 링크 기능과 같다.
 
 
3. 리좀- 중첩 이미지, 낯설게하기
 
 
 
필자의 시「소금꽃을 꺾다」는 하이퍼시의 ‘리좀’ 기능을 적용한 시 쓰기다. 또한 중첩이미지와 단어충돌, 이질적이고 먼 단어의 합성을 통하여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행과 행의 낯설게하기,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 제목과 내용의 낯설게하기를 통하여 신선한 감각을 주고 있다. 아래 제시한「소금꽃을 꺾다」에서 하이퍼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보자.
 
 
모래고양이 발톱과 사막의 낙타 발자국은 푸른색인가요, 신이여
 
그래, 새끼낙타를 삼켜버린 밤도 푸른색이지
 
어미낙타 눈동자가 점점 줄무늬하이애나를 닮아가요
 
괜찮아 곧 나이를 먹을 테니까,
 
뱀의 푸른 눈이 살아 있어요
 
그래 파푸아뉴기니로 날아가는 8천 피트 상공에서도 살아 있더구나
 
모래고양이가 파 놓은 토굴에 숨어
 
새끼를 낳는 도마뱀 빨간 엉덩이를 보았지?
 
오늘을 부정하면서, 벌써 내일을 초대한 거니?
 
이 거리에서 입양에 대하여 말하는 건 금기어예요
 
그 아이들은 곧 자기의 성이나 이름을 버리게 될 거다
 
14세 여중생이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신이여, 날기를 거부한 새가 새벽 공원에는 많아요
 
밤새 도둑고양이를 피해 잠을 설쳤나보다
 
그래 삭제할 게 많은 서울거리는 참 부지런하구나
 
경계경보를 울릴까요, 지금?
 
땅! 총을 쏘기 전에 선을 넘으면 아웃이라고
 
―「소금꽃을 꺾다」 전문
 
 
위의 시의 배경은 현재와 과거, 미래가 한 공간 안에서 거미줄처럼 합성되어 있다. 하이퍼시의 ‘리좀 기능’을 장치한 것이다. ‘그물망’처럼 서로 엇갈려 엉기며, 상황극처럼 각각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젝슨 플록의 페인팅 기법처럼 한 공간에 마구 던져 재구성하고 있다. 필자의 하이퍼시 쓰기는 상투어와 일상적 문장을 거부한다.
 
위의 시는 제목에서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소금’은 잎도 줄기도 없는 몸통만 있는 사물이다. ‘소금’과 ‘꽃’을 합성한 ‘소금꽃’도 꽃만 있지 줄기나 뿌리가 없다. 꽃받침도 없다. ‘소금꽃을 꺾다’라고 행위를 강조한 제목에 주목하여 보자. 제목이 아이러닉하며 역설적이다. 소금꽃은 꺾을 ‘무엇’이 없다. 그 ‘무엇’이라는 현대문명의 부조리한 현실을 상황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작품이다.
 
위의 시는 ‘신’과 ‘인간’의 ‘질문과 대답’ 형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대화는 혼돈스럽고 탁구공을 치듯이, ‘핑’하고 질문하면 ‘퐁’하고 낯선 대답을 한다. 질문과 대답이 모두 엉뚱하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멀리 날아간다.
 
‘소금꽃을 꺾는 행위’로 표현되는 부조리한 현재는 다음과 같이 시의 중심어로 표현되고 있다. 시의 중심어는 ‘사막의 낙타- 파푸아뉴기니 상공의 뱀- 모래고양이-도마뱀-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은 여중생-도둑고양이와 공원’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적으로 이동한다. 상상력의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이다. 필자는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상상력의 시간이동’이라고 여러 평론에서 명명하였다.
 
 
 
 
 
4. 환타지 영상기법
 
 
 
 
 
필자의 많은 시에서 ‘환타지 영상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이사도라 덩컨」「까미유 끌로델」「셀룰러 메모리」「빨간 손바닥의자」등의 시에서 보여주는 환타지 영상기법은 극적 긴장감을 주며 드라마틱하고 동적이다. 아래 시 「겨울,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본TV풍경」을 살펴보자.
 
 
“당신의 연애는 언제부터 해빙을 시작한 것일까요?”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나는 그녀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파랑색 벽을 칠한다
 
그녀 눈빛은, 비의 얼룩 같은 것이어서
 
 
네모난 탁자 위에선 레몬차 식어가고
 
 
그녀의 툰드라 언덕에, 나는 야생 히아신스 꽃밭 향기를 내려놓는다
 
두꺼운 스웨터처럼, 내 몸은 그녀의 향기로 체온이 급상승한다
 
여자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허공을 흔들며, 어둠을 자른다
 
 
흰 망사장갑은, 여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조용히 빠져나간다
 
북극곰 발톱처럼 뾰족한 그녀 손가락이, 움켜 쥔 공허
 
 
해빙기, 그녀 심장은 더 이상 얼지 않아서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노을빛 구름을 뱉어내는
 
북극양귀비꽃 언덕을 지향하고 있다
 
 
-40°C 빙하기 옷을 벗고
 
다시 사랑을 시작할까? 예감하는 저녁에
 
 
백야의 푸른 들판을 건너가는 순록 떼,
 
툰드라가 녹고 있다
 
 
그녀의 눈꼬리가 내 눈을 어루만진다
 
 
“빙하는, 빗방울의 힘을 버틸 수 있을까요?”
 
―「겨울,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본 TV풍경」 전문
 
 
 
위의 시는 몽환적 환타지를 그림처럼 그리고 있다. 겨울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본 우수에 잠긴 ‘그녀’와 해빙기의 ‘북극 툰드라’의 모습이 오버랩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낯선 ‘그녀’는 시의 환타지다. 시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타지한 ‘그녀’다.
 
사랑의 갈등을 겪는 한 여자인 ‘그녀’와 해빙기를 맞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툰드라의 ‘북극양귀비꽃’의 극한상황을 그녀와 한 공간에 배치하였다.
 
시의 분위기는 감각적이며 연애적이다. 그러나 내용은 인간과 환경을 다루는 깊이를 갖는다. 나의 시의 매력은 하이퍼시를 무의미한 언어유희로 전락시키지 않고, 의미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유미주의적 감각으로 시를 쓴다. 감각적 미의식과 상상력의 공간이 크다.인간의 DNA는 남의 연애에 민감하며, 이성에게 호기심이 많다. 카페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인간 군상의 한 장면을 잘라내어 TV화면처럼 보여주기 한 것이다. 그녀와 TV 화면의 툰드라의 한 장면을 오버랩 영상기법으로 그려, 드라마틱한 상상력을 전개한 것이다. 김용오 시인은 「물고기의 레이스 전봇대 위를 날다」에서, 이선 시의 특징을 ‘환타지’라고 표현한 바 있다.
 
 
 
 
 
 
 
5. 무의미시- 열린 문장
 
 
 
 
하이퍼시는 열린 문장이다. 각 행과 연은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시의 내용을 한정적이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내용의 해석은 지시적이거나 명령적이지 않다. 문장은 확장적이며 상상력의 공간이 넓다.
 
무의미 시는 불확정적이며 무제한적 상상력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필자의 아래 시「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서」를 살펴보자.
 
 
 
눈썹연필을 깎는데 심이 자꾸 부러집니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는
 
푸른 침대와 흰구름, 부러진 연필심이 있습니다
 
(2연 앞 중략)
 
사랑에도 면허증이 필요합니까?
 
파도가 나선형을 그리며 밀려오는 긴 밤입니다
 
⊂거나 ∪∩거나
 
 
달빛은 어둑어둑 춥습니다
 
허공을 밀어내는 바람에서 두-둥 빈소리가 납니다
 
 
젖은 낙엽 어디쯤에선가
 
살모사, 풀잎 위로 소리 없이 헤엄치던 밤
 
바람이 방향을 잃고, 내 속눈썹에 눕던 그 밤
 
당신은 첫눈처럼 어둠 속에서 빛났습니다
 
 
지느러미를 흔들며, 당신이 떠난 뒤
 
나는 미장원에서 긴 파마머리를 자릅니다
 
곧 “보라색으로 염색할 걸” 후회합니다
 
 
랭보는 베를렌느의 마침표가 됩니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서」 1-6행
 
 
위의 시는 랭보와 베를렌느의 동성애를 다루었다. 랭보와 베를렌느의 부적절한 사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어디에도 그 사랑을 구구절절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하이퍼시는 내용을 중시하는 시 형식이 아니다. 서정시의 지시적이고 명령적인 해석을 거부한다.
 
필자의 하이퍼시의 문장은 확장적이며 무의미 시에 가깝다. 그러나 김춘수의 무의미시와는 전혀 다르다. 김춘수의 대표적인 무의미 시「처용단장」2부-5는 무의미시라기보다는 의미없는 문장의 나열이다. 김춘수 시에서는 두 개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한 행마다 엇갈려삽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무의미 하이퍼시는 각각 다른 ‘이미지’의 삽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충돌’로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위의 시 1연은 현재 상황제시- 2연은 배경제시/ 물고기의 비유- 3연은 시의 배경 구성요소- 4연 사랑의 대상재연- 5연 이별 후 상황- 6연 제목과 연결시킨 구도를 가지고 있다. 랭보와 베를렌느의 관계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상황만 암시하고 있다. 하이퍼시는 비유로 극적 요소를 중계하는 ‘상황 시’다.
 
 
 
 
 
 
 
6. 예언적, 계시적 문장
 
 
 
필자의 시에는 주술적이며 예언적인 문장이 있다. 거시적 우주나 태고의 신비를 나타낼 때 사용된다. 아래 두 편의 시를 살펴보자.
 
 
태양이 달의 입술에 엄지발가락을 집어넣는 날,
 
“지진과 전쟁의 소문이 무성하리라”
 
(중략)
 
나는 미네르바 여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은 올빼미 눈이
 
머무는 곳마다, 두려움에 떨며 초록 세콰이어 나무를 심었네
 
―「세 개의 이미지」 1, 2행 부분
 
 
신들이 잠들어 있는 도시, 족자카르타에는
 
보름달 뜨는 밤에, 북극성을 찾아 산을 넘는 표범이 살고 있다
 
 
그믐밤엔, 특히 꿈을 조심하라
 
꿈 조각 틈새로, 악마의 날갯짓소리 범람하리라
 
 
아담의 얼굴은 불의 고리- 환태평양 지진대 불의 왕국
 
손이 뭉툭한 어머니 지구는, 고막이 터지도록 열병을 앓고 있다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
 
―「기억의 초상(肖像)」1-3행
 
 
 
위의 시 「세 개의 이미지」는 지진과 전쟁의 이야기다. 지구의 종말의 예언서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기억의 초상(肖像)」은 피카디리 극장에서 숨진 기형도에 대한 시다. 동성애자로 오인받으며 요절한 천재시인 추모시다. 반신불수가 된 부끄러운 아버지, 한글도 모르던 야채장수를 하던 어머니, 자신을 엄마처럼 돌보던 둘째 누나의 갑작스런 죽음, 기형도의 입장에서 보면 쓰나미처럼 견디기 힘든 사건의 연속이었다. 가족의 영웅이었던 기형도의 죽음은 가족에게도 충격이었을 것. 기형도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형도와 어머니의 삶을, 지구의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으로 묘사하였다. 족자카르타의 표범으로 기형도의 혁혁한 기상을 예언적 문체로 쓴 시다. 
 
 
 
 
 
 
 
7. 상상력의 확장- 상상력의 공간이동, 시간이동, 순간이동
 
 
 
 
필자가 최초로 하이퍼시에서 주장하는 기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법의 하나는 상상력의 확장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 상상력의 시간이동, 상상력의 순간이동’이 이루어지는 하이퍼시 쓰기 기법에는 생동감과 운동감이 있다. 또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공간과 시간에서 ‘순간이동’ 한다. 그 효과는 감각적 미의식과 운동감이다. 문장 표현이 신선하고 젊다.
 
상상력의 공간이동, 시간이동을 통한 순간이동의 시는 대비효과가 크다. -색상대비, 문명대비, 시적거리가 먼 것끼리 대비. 확장성, 연상작용의 폭이 넓다. 필자의 아래 시를 살펴보자.
 
 
내 아버지는 툰드라가 되지 못한, 어둠
 
겨울을 낳다가, 바다로 침몰한 내 어머니의 눈빛은
 
북극성
 
―「북극에서 온 편지」 3연 1-3행
 
이질적인 것들이 한 공간에서 조우한다. -툰드라와 북극성은 먼 이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와 매치시켜서 가까이 한 공간에 놓고 있다. 상상력이 만들어낸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이 거리를 초월한다.
 
 
 
바람이 꽃씨의 발화점을 외우는 동안
 
바다는 구름을 잉태하지
 
늙은 토인여자의 자궁은, 그린파파야 향기
 
―「탁상공론 문명일지」 부분
 
‘바람과 꽃씨, 바다와 구름, 늙은 토인여자와 그린파파야 향기’는 사실 이질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한 공간에 놓음으로써 친화적 관계를 지닌다. 하이퍼시 쓰기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공간이동’과 ‘시간이동’ 기법이다.
 
 
 
꽃잎 문을 닫는, 저녁입니까?
 
별빛 부엉이 항문을 닦는, 저녁입니까?
 
 
고비사막, 켜켜이 쌓인 주름살커튼을, 펼치는 저녁
 
두물머리에는, 황사비, 초미세먼지 자욱자욱,
 
물결을 지우는 데 말입니다
 
 
맨드라미 꼬불꼬불, 꽃길에 갇혀
 
별빛에 몸을 적시며 잠들어도 좋은 저녁인데 말입니다
 
-쉿,
 
꽁지 붉은 어미 새,
 
대문 우편함에, 새끼 일곱 마리를 부화시키고 있습니다
 
―「저녁입니까?」 1, 5, 8행
 
같은 저녁이지만 각각의 저녁은 의미가 다르다. ‘환경파괴’와 ‘생명의 잉태’라는 각각의 주요 메시지를 지닌 ‘저녁’을 대비시켜 보았다. ‘저녁’을 주제로 한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이 만들어낸 여러 상황들이다. 상상력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은 환타지성과 운동감, 상황의 전이와 반전의 매력을 연출한다.
 
 
 
 
 
 
 
8.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는 서정시에서도 사용되지만, 필자의 하이퍼시에서는 자주 쓰인다. 필자의 아래 시를 살펴보자.
 
 
레몬 유카리(Eucalyptus citriodora) 향기가
 
화장대 거울 위로 흘러내린다
 
(상큼한 유칼립투스 향수)
 
 
당신이 ‘망상중독’이라고 말하는-
 
유칼립투스 꽃을 채취하던, 푸른 달빛을
 
흰 샴 고양이, 어깨 위에 올려놓는다
 
(당신의 웃음소리거나, 나의 울음소리거나)
 
― 「자서전」 1, 2행
 
위의 시 1연은 몽상적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연도 환타지처럼 뿌옇다. ‘당신의 웃음소리거나, 나의 울음소리거나’ 부분은 주목하여 보자. 이상의 시처럼 한정하거나 지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석되어도 좋다는 허용이며 놓음의 미학이다.
 
 
0, 또는 Oh~ Henry
 
 
교도소에서 탈옥한 바람은 조금 홀쭉하거나 눈매가 어둡습니다
 
풋사과 꽃, 수정하기 좋은 날 당신 회색눈동자는 출소했습니다만
 
 
“O. Henry~"
 
당신이 잃어버린 미래는 무엇입니까?
 
감탄사 O든지, 또는 아라비아 숫자 O든지
 
(중략)
 
O는 큰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눈을 감아버린다
 
(실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을 꺼버린 거지만)
 
연일 번성하는 ‘O' 왕국을 지지합니다만,
 
유행이란 변덕스럽고, 외도가 심한 법인걸요.
 
―「O, 또는 Oh~ Henry」 1, 2, 8행
 
위의 시 2연은 감탄사든지, 아라비아 숫자든지 한정하지 않는다. 8행도 원인이나 인과를 따지지 않는다. 하이퍼시는 자유방임적 문장이다. 애매모호함이 주는 미학이다.
 
 
 
 
 
 
 
 
9. 확장성- 이미지의 확장
 
 
 
필자의 하이퍼시는 이미지 확장성이 크다. 아래 시를 살펴보자.
 
 
이사벨라섬 항문을 간질이며, 춘분점이 지나간다
 
축축하고 비릿한 땅거미를 삼키는
 
갈라파고스 거북,
 
 
용암(Lava)을 삼킨 ‘아술산’ 입술, 석양에 붉다
 
―「갈라파고스Galάpagos 섬에서」 4행
 
 
“ 내 안의 시가 날 잠재우지 않아”
 
내 춤의 날개인, 우주의 긴 푸른 스카프에
 
소리와 빛을 담고, 나는 뜬 눈으로 그의 꿈을 지킨다
 
―「이사도라 덩컨」 끝행
 
 
나의 젖가슴은 보름이면 살이 오르고
 
조금 때는 살이 빠진다
 
해와 달과 별이 내 줄기세포를 키우는가보다
 
(중략)
 
하늘은 초록색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무들 밑둥 잡고 오늘도 땅에다 열심히 글씨를 쓴다
 
제 생각을 뿌리 채 땅속에다 모두 이식하고 싶은 거다
 
― 「셀룰러 메모리」부분
 
 
 
위의 밑줄친 부분을 눈여겨 보라. 시공간으로 이미지가 확장되어 있다. 확장된 이미지는 마음과 눈을 시원하게 한다.
 
 
 
 
 
 
 
 
10. 감각적 미의식
 
 
 
유미주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감각적 미의식이다. 예술성의 근본이다. 필자의 문장은 예민하고 감각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래 시를 살펴보자.
 
 
 
날지 못하는, 남자의 깃털은 부드럽지
 
아담의 이마엽 향기를 맡아봤니?
 
지구에서 사라진 새들은, 여자의 심장에 부리를 모아놓은 걸까?
 
수다의 색깔은, 늘 친절한 빨간색이지
 
―「이브의 예언」 4행
 
위의 시는 부드럽고 고요하게 미세한 음성으로 여자의 수다와 뒷담화를 꼬집는다. 감각적 미의식에 묻혀 있는 의미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도 독자들이 시를 읽는 재미다.
 
 
 
 
 
 
 
 
11. 연상작용-파장효과
 
 
연상작용은 시의 파장효과와 확장효과가 크다. 필자의 아래 시를 살펴보자.
 
 
 
나뭇잎의 떨림을 이식받아
 
바람 앞에 내 줄기가 떨리듯
 
내 굴절된 파장이
 
혹, 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당신 심장 한쪽을 떼어내
 
내 할딱이는 심장에 마저 붙여주고 갔듯이,
 
 
지금, 나는 누구의 푸른 눈동자로 응고되어 가는 너를 보는가?
 
― 「셀룰러 메모리」 부분
 
‘나뭇잎-떨다’라는 문장은 ‘내 굴절된 파장-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다’와 연상작용을 한다. 시의 비유는 연상작용의 좋은 예다.
 
 
 
내 꿈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
 
내 과거가 나를 협박하는 이상한 날이었지
 
 
그날 내 전생의 남자가 나를 방문하였지
 
오늘 내가 탄 파랑색 택시는
 
2년 전, 대학로 연극이 끝나고 자정에 탔던 택시였어
 
“아직도 배우세요?”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게 아는 척을 했어
 
八자 콧수염, 방점처럼 찍힌 미간의 사마귀, 그가 분명해
 
―「이브의 예언」1연, 2연
 
필자는 가끔 ‘꿈’을 꾸고 나면, 이 꿈이 과거 언젠가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또 현실의 극한 상황이 꿈을 꾸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예감처럼 꿈은 현실과 연계되어 연상작용을 한다. 위의 시는 그 상황을 이미지로 형상화해 본 작품이다.
 
 
 
 
 
 
 
위에서 11가지 <나의 하이퍼시 쓰기 기법>을 살펴보았다. ‘사물시- 링크- 리좀’은 하이퍼시의 기본구조론이다. 그 구조론에 입각한 필자의 시를 제시하여 역으로 하이퍼시 쓰기 방법론을 유추하여 보았다. ‘상상력의 확장- 무의미시-감각적 미의식- 확장성- 연상작용’은 하이퍼시의 효과적인 시창작 방법론으로 여러 차례 필자의 시에서 증명된 시창작 기법이다.
 
시에서 ‘감각적 미의식’과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는 서정시 창작기법에서도 주요한 요소이다. 다만 하이퍼시에서는 초월적이며 현대적 감각으로 더욱 젊은 시를 생산하다는 점이 다르다. 필자의 하이퍼시 창작론을 총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평론가와 독자에게 ‘하이퍼시’가 더욱 주목받고 연구될 것을 기대해 본다. 필자의 하이퍼시 창작도 더욱 풍성하고 독창적으로 발전될 것이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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