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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세계 명시 모음]]]
2019년 02월 05일 18시 04분  조회:1999  추천:0  작성자: 강려
출처 천명(天命;인생의 의미) | 영원속으로
원문 http://blog.naver.com/hanjun105300/221304113260

 
양치식물이 자라는 언덕  - 딜런 토마스
 
 
풀이 푸르렀던 만큼, 쾌활한 집 주변의 
사과나무 가지 아래에서 내가 어렸고 편안했기 때문에, 
별처럼 빛나는 골짜기 위로 밤이 올 때, 
시간은 내게 인사하게 했고, 
시간의 눈의 전성기 속으로 즐겁게 오르게 했다. 
그리고 사륜차 사이에서 존경받으며 나는 사과 마을의 군주가 되었고, 
그 전에 이미 바람에 날려 떨어진 등불의 강 아래로 
보리와 데이지를 이끌어 가는 
나뭇잎들과 나무들을 나는 당당하게 가지게 되었다.
집이 농가였던 만큼, 나는 생기가 넘쳤고 걱정이 없었으며 
행복한 마당 주변의 헛간들 사이에선 유명했으며 노래를 불렀었기 때문에, 
아직 이른 태양 속에서 단 한 번, 
시간은 내가 장난치게끔 하였고, 시간의 의도된 자비 속에서 나를 매우 즐겁게 하였다. 
푸르게 빛났던 나는 사냥꾼이었으며 목동이었다. 
송아지들은 내 뿔에 노래했고 언덕 위의 여우들은 맑지만 냉담하게 짖어댔다.     
신성한 개울의 조약돌 속에서 
안식일은 천천히 지나갔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내내, 그것은 쫓겨 나갔고, 사랑스러웠다. 
집 같이 높은 건초 밭, 굴뚝으로부터 나오는 선율,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장난치며, 
사랑스럽고 물 같으며 풀처럼 푸른 불이었다. 
그리고 밤에는 소박한 별들 아래서, 
내가 잠을 잘 때, 부엉이들은 농가에서 멀어져가고, 
달이 떠있는 내내, 나는 들었다. 건초가리와 함께 날아가는 쏙독새와 
어둠 속으로 휙~하고 움직이는 말들이 
마구간에서 신의 은총을 입는 소리를.
그리고 깨어나서는 이슬에 젖은 하얀 방랑자와도 같은 농가가 
돌아온다, 수탉을 그의 어깨 위에 올린 채. 그것은 매우 빛났다. 
그것은 애덤과 아가씨였다. 
하늘이 다시 모였다. 
그리고 해는 바로 그날 둥글어졌다. 
소박한 빛의 탄생 이후에 있었으리라, 
처음에 맴돌던 곳에서, 히힝 울어대는 녹색 마구간으로부터 
찬송의 밭을 향해 따뜻하게 주문에 걸린 
말들이 걸어 간 것은.
마음이 넉넉했던 것처럼, 새로 만들어진 구름들 아래 있는 
즐거운 집 옆에 있는 여우와 꿩들 사이에서 존경 받으며 행복한, 
계속에서 태어나는 태양 속에서 
나는 경솔한 길을 내달렸었다. 
내 희망들은 집처럼 높은 건초 밭을 달려 나아갔고, 
내가 파란 하늘을 가지고 거래를 하고 있었을 때, 
생기 넘치고 즐거운 아이들이 기품과는 동떨어진 그를 따라가기 전에 
그의 아름다운 변화 속에서 시간은 그토록 많은 아침 노래들을 허락했지만 
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양같이 하얀 날에, 시간은 내 손의 그림자 옆의 다락에 밀어닥친 
제비에게 까지 나를 데려갔지만,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나 떠오르는 달빛 속에서, 
나는 높은 밭들과 함께 그가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그리고 아이가 없는 땅으로부터 
영원히 달아나버리는 농가를 깨워야 되서 잠들지 않았다. 
오 나는 시간의 의도된 자비 속에서 어렸고 편안했었지만, 
내가 그 바다와 같이 내 사슬 안에서 노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나를 푸르른 채 죽어가게 했다.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서    -다시사시
 
만개한 벚꽃나무에 기대어 있을 때
해체된 말의 앞다리가 달려왔다
뒤이어 뒷다리도 달려왔다
그 뒤를 이어 하늘에서 떨어진 몸통이
네 다리 위에 올라 앉았고
머리가 없는 채로 말은 잠자코 서 있다
이윽고 짐수레를 끌고 노파가 다가와서
짐받이에 싣고 온 말의 머리를
나의 발 아래에 내려놓고 갔다
나는 말의 머리를
제자리에 붙연호고
다시 말을 보았다
그 말은 내가 소년이었을 적에
사산으로 해체된
모태에서 끌려 나온 말이었다
말은 이제야 처음으로
보는 걸 허락 받은 자와 같았다
나는 침으로 상처를 닦아 주고
손을 번쩍 들어 말의 엉덩이를 쳤다
말은 우렁차게 울고 나서 들판 끝으로 달려갔다
그때
봄 폭풍으로 한꺼번에 지던 벚꽃 꽃잎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는 벚꽃나무가 문득 비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화살과 노래  - H.W.롱펠로우
 
나는 공중에 화살을 하나 쏘았다
그것이 땅으로 떨어졌고, 
나는 그 행방을 몰랐다
그것이 너무 빨리 날아서, 눈으로
그것이 날아가는 것을 좇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공중에 노래 하나를 불러 보냈다
그것이 땅으로 떨어졌고, 나는 그 행방을 몰랐다
누가 그토록 예민하고 우수한 시력이 있어,
그 노래의 날아가는 것을 좇을 수 있겠느냐
 
오래 오래 뒤에,한 참나무에서
나는 아직 꺾이지 않은 화살을 찾았고,
노래는 첫 구절에서 끝까지, 
한 친구의 가슴 속에 들어 있음을 알았다
 
수선화  -윌리암 워즈워드
 
 
골짜기와 산 위에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니다
나는 문득 떼지어 활짝 펴 있는
황금빛 수선화를 보았나니,
 
호숫가 줄지어 선 나무 아래서
미풍에 한들한들 춤을 추누나.
 
 
은하에서 반짝이며 깜빡거리는
별들처럼 총총히 연달아 서서
수선화는 샛강 기슭 가장자리에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나니!
 
흥겨워 춤추는 꽃송이들은
천 송인지 만 송인지 끝이 없구나!
 
 
그 옆에서 물살도 춤을 추지만
수선화의 흥보다야 나을 것이랴.
이토록 즐거운 무리에 어울릴 때
시인의 유쾌함은 더해지나니,
 
나는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볼 뿐
내가 정말 얻은 것을 알지 못했다.
 
 
하염없이 있거나, 시름에 잠겨
나 홀로 자리에 누워 있을 때
내 마음에 그 모습 떠오르나니,
이는 바로 고독의 축복 아니랴,
 
그럴 때면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수선화와 더불어 춤을 추노라.
                                                                    
 
추수하는 아가씨  - 윌리암  워즈워드
 
 
보아라 혼자 넓은 들에서 일하는
저 아일랜드 처녀를,
 
혼자 낫질하고 혼자 묶고
처량한 노래 혼자서 부르는 저 처녀를
 
여기에서 잠시 쉬든지 가만히 지나가라
오 들으라! 깊은 골짜기 넘쳐흐르는 저 소리를
 
 
아라비아 사막
어느 그늘에서 쉬고 있는 나그네
나이팅게일 소리 저리도 반가우리,
 
멀리 헤브리디즈 바다
적막을 깨뜨리는
봄철 뻐꾸기 소리
이리도 마음 설레리
 
 
저 처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말해 주는 이 없는가
 
저 슬픈 노래는
오래된 아득한 불행
그리고 옛날의 전쟁들
 
아니면 오늘 흔히 있는 것에 대한
소박한 노래인가
 
 
아직껏 있었고 또다시 있을
자연적인 상실 또는 아픔인가
 
무엇을 읊조리든
그 노래는 끝이 없는 듯
처녀가 낫 위에 허리 굽히고
노래하는 것을 보았네
 
나는 고요히 서서 들었네
그리고 나 언덕 위로 올라갔을 때
 
그 노래 들은 지 오랜 뒤에도
음악은 가슴 깊이 남아 있네
 
 
 
가여운 수잔의 환상 - 워어즈워드 
 
 
우드가 모퉁이에, 해가 떠오를 때면
목청 돋우어 우는 한 마리 티티새,
지난 3년 동안 한결같았다.
 
가여운 수잔이 이곳을 지나다 고요한 아침에 그 노랠 들었었다.
황홀한 그 노랫소리; 무슨 번민이라도 있단 말인가?
 
수잔은 본다
솟아 오르는 산, 나무들의 환영을;
 
뭉개뭉개 떠오르는 빛나는 안개는 로드 버리를 지나 미끄러져 가고,
한 줄기 강이 치잎사이드의 골짜기를 흘러내린다.
 
푸른 목장을 그녀는 본다. 작은 골짜기의 한복판에서,
양동이 하나 들고 그녀가 자주 오르내렸던 그 골짜기,
 
그리고 비둘기장 같은 한 채의 오두막집을 본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단 하나의 집을,
 
이 모두를 보고 그녀의 마음은 천국에 잠긴다,
그러나 그 모두는 사라진다.
 
안개도 강물도 언덕도 그늘도,
시냇물은 흐르려 하지 않고, 언덕도 솟아나려 들지 않는다.
온갖 아롱진 빛이 모두 다 그녀의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바벨론 강가에서 앉아서 우리는 울었도다.  - 바이런
 
 
우리는 바벨의 물가에 앉아서 울었도다.
 
우리 원수들이 살육의 고함을 지르며 
 
예루살렘의 지성소를 약탈하던 그 날을 생각하였도다.
 
그리고 오 예루살렘의 슬픈 딸들이여!
 
모두가 흩어져서 울면서 살았구나.
 
 
우리가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볼 때에
 
그들은 노래를 강요하였지만, 
 
우리 승리하는 노래는 아니었도다.
 
우리의 오른 손, 영원히 말라버릴지어다!
 
원수를 위하여 우리의 고귀한 하프를 연주하기 전에
 
 
버드나무에 하프는 걸려있고
 
그 소리는 울리지 않는구나. 오 예루살렘아! 
 
너의 영광이 끝나던 시간에
 
하지만 너는 징조를 남겼다.
 
나는 결코 그 부드러운 곡조를 
 
약탈자의 노래에 맞추지 않겠노라고.
 
 
 
그날은 지나갔다  - 죤 키츠 
 
 
그날은 지나갔다
달콤함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감미로운 목소리, 향긋한 입술, 보드라운 손, 그리고
한결 부드러운 가슴
 
따사로운 숨결, 상냥한 속삭임, 매혹적인 반음
빛나는 눈, 균형잡힌 자태, 그리고 곧게 뻗은 허리!
 
살졌도다 꽃과 그 모든 꽃봉오리의 매력들은 사라졌도다 
내 눈으로부터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졌도다
 
목소리가, 따뜻함이, 하얀 낙원이
향기로운 커튼을 친 사랑의 아늑한 축제의 밤낮이 
은밀한 환희를 위해 
 
두터운 암흑의 씨줄을 찌는
저녁녘 일시에 자취를 감추었도다
 
그러나 내가 오늘 온종일 사랑의 미사책을 읽었을 때
사랑의 신은 나를 잠들게 하리라
 
내가 단식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고서.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 죤 키츠
 
 
너는 더럽혀지지 않은 그대로인 정적의 신부
너는 침묵과 기나긴 세월 속에 자라난 양자
너는 숲속의 역사가.
 
우리 시인의 노래보다 더 멋있게 꽃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이렇듯 전해 줄 수 있다니-. 
 
네 둘레에 감도는 것은 어떤 전설인가?
 
죽음에 관해선가, 영원한 것인가? 그 모두에 관해선가?
템페 골짜기인가, 아카디아 언덕의 일인가?
사람들의 일인가, 신들의 일인가, 신과 인간 모두의 일인가?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신들일까? 도망치려는 것은 어떤 소녀일까?
이 얼마나 미친듯한 구애인가, 도망치려는 몸부림인가?
어떤 피리이며 어떤 북인가?  얼마나 미친듯한 환희인가?
 
 
귀에 들리는 선율 아름다우나 귀에 울리지 않는 선율은 더욱 아름답다.
자, 네 부드러운 피리를 계속 불어라.
 
육신의 귀에다 불지 말고 더욱 친밀히
영혼을 향해 소리없는 노래를 불러라.
 
나무 그늘에 있는 젊은이여, 네 노래는 멈추는 일이 없고
이 나무들의 잎도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아, 너는 결코 입맞출 수 없으리라.
목표 가까이에 닿긴 해도-.
 
그러나 슬퍼 말아라. 너 비록 크나큰 기쁨을 얻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빛바래는 일 없으매
영원히 사랑하라, 그녀는 영원히 아름다우리라.  
 
 
아아 너무나도 행복겨운 나뭇가지들이여!
잎은 지는 일 없고, 봄에 작별을 고하는 일도 없다.
 
또한 행복겨운 연주자여, 피곤할 줄 모르고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영원히 연주할지니
 
더욱 행복스런 사랑이여! 너무나 행복겨운 사랑이여!
언제나 따스하고 영원히 즐거워라.
 
언제까지나 불타듯 추구하고 언제까지나 젊도다.
살아있는 인간의 정열이란
끊임없이 추구하여 가슴은 슬픔이 넘치고
이마는 불타며 혀는 타올라 네 사랑에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 희생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오오! 신비로운 사제여, 명주와 같은 몸에다 화환을 장식하고
하늘을 우러러 우는 송아지를 어떤 초록빛 제단으로 데려가는가?
 
이 거룩한 아침, 여기 모인 사람들이 남겨두고 온 것은
강변의 작은 마을이던가, 바닷가의 마을이던가?
 
아니면 평화로운 성채로 둘러싸인 산위의 마을이던가?
조그만 마을이여, 네 거리는 영원히 조용해질 것이리라.
그리고 황폐해질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오오 아티카의 형체여! 아름다운 모습이여! 
대리석 남자와 여자가 조각되어 있고
숲의 나뭇가지들과 밟혀진 갈대도 있구나.
 
너는 침묵의 모습, 차가운 전원이여!
우리를 생각하지 못하게 하고 영원하구나.
 
사람이 나이들어 한 세대를 마감할 때도 너는 남아서 이렇게 말하리라.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 이것이 너희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아는 것 전부이고, 알아야 할 것은 이 뿐이다. 
 
 
부숴져라, 부숴져라, 부숴져라  - 앨프리드 테니슨
 
  
부숴져라, 부숴져라, 부숴져라,
  네 차디찬 잿빛 바위에, 오 바다여!
 
그리고 나도 내 혀가 심중에 솟아오르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오, 어부의 아들은 좋겠구나,
   누이와 고함지르며 놀고 있네! 
 
오, 젊은 뱃사람은 좋겠구나,
   포구에 배 띄우고 노래 부르네!
 
 
우아한 기선들도 갈 길을 가는구나,
   언덕 아래 항구를 향해.
 
오, 그리워라, 사라진 손길의 감촉이여,
   소리 없는 목소리여!
 
 
부숴져라, 부숴져라. 부숴져라,
   네 벼랑 기슭에, 오 바다여!
 
하지만 가 버린 날의 다정한 행복은
   내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눈물, 덧없는 눈물 - "공주"에서 - 앨프리드 로드 테니슨 
 
 
눈물, 덧없는 눈물, 까닭 모를
눈물이 거룩한 절망의 바닥에서
가슴에 솟아올라 눈에 고이네.
 
행복한 가을 들녘 바라보며
가 버린 날들을 생각하노라니.
 
 
저승에서 벗님네들 싣고 오는 돛배 
그 돛배에 반짝이는 첫 햇살처럼 새롭고
사랑하는 이들 모두 싣고 수평선 넘는 돛배
 
그 돛배 빨갛게 물들이는 마지막 햇살처럼 슬퍼라.
그처럼 슬프고 새로워라, 가 버린 날들은.
 
 
아, 슬프고 야릇하여라. 어둑한 여름날 동틀 녘
 
죽어 가는 이의 눈에 창문의 네모꼴이
차츰 흐릿해 보일 무렵 그의 귀에 들려오는 
잠 덜 깬 새들의 첫 지저귐처럼.
 
그처럼 슬프고 야릇하여라, 가 버린 날들은.
 
 
죽은 뒤 생각나는 키스처럼 다정하고
딴 이에게만 허락된 입술에 헛되이 해보는 
 
상상의 키스처럼 감미로워라. 사랑처럼 깊고
첫사랑처럼 깊어라. 오만가지 회한으로 미칠 것 같아
 
오, 삶 가운데 죽음이어라, 가 버린 날들은.
 
 
평생의 사랑  - 로버트 브라우닝            
 
 
방에서 방으로
나는 그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을
빠짐없이 찾아 헤맨다.
 
내 마음이여 걱정하지 말지니, 너는 꼭 찾으리라-
이번에야말로 그이 자신을- 커텐에 남겨진
그이가 지나간 흔적이라든가 벤취에 남은 향내가 아닌
그이 자신을
 
지나가면서 그이가 닿기만 했을 뿐으로 허리판에 새겨진
꽃은 새로이 피고
맞은 편의 거울도 모자의 깃털에 반짝이었네.
 
 
그런데 이 하루도 점차 남은 때가 얼마 안 되고
문 저쪽에 다시 문이 이어진다.
 
나는 다시 그 운세를 시험해 본다-
넓은 집을 거기에서 중앙에로
먼저와 같은 결과로다, 내가 들어가면 그이는 이미 나간 뒤여라.
 
이렇게 꼬박 하루를 탐색에 허비한다 치고 그것이 대체 무슨
일이랴.
 
이제 이미 해거름의 때, 그러나 조사해야 할 방은 멀리까지
이어져 있고
찾아야 할 방, 있고 싶은 방은 끝없다. 
 
이니스프리 호수섬 - 예이츠
 
 
나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가지 얽고 진흙 발라 조그만 초가집 지어,
 
아홉 이랑 콩밭 일구어, 꿀벌 치면서
벌들 잉잉 우는 숲에 나 홀로 살리.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
귀뚜라미 우는 아침 노을 타고 평화는 오리.
 
밤중조차 환하고, 낮엔 보랏빛 어리는 곳, 
저녁에는 방울새 날개 소리 들리는 거기,
 
 
나 일어나 지금 가리, 밤에나 또 낮에나
호수물 찰랑이는 그윽한 소리 듣노니
 
맨길에서나, 회색 포장 도로에 서있는 동안에도
가슴에 사무치는 물결 소리 듣노라.
 
하늘의 융단  - 예이츠
 
 
금빛과 은빛으로 무늬를 놓은
하늘의 수놓은 옷감이라든가
 
밤과 낮과 어스름한 저녁 때의 
푸른 옷감 검은 옷감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드리오리다만
내 가난하여 가진 것 오직 꿈 뿐이라
 
그대 발 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이 밟으소서, 내 꿈을 밟고 가시는 이여!
 
훔쳐 온 아이- 예이츠
 
 
스루스 숲 바위산이
호수 속에 잠긴 곳에
나뭇잎 우거진 섬 하나 떠 있다.
 
푸드득 나래치는 왜가리들이
잠자는 물쥐들을 깨우는 그 곳
 
우리들 요정의 통 속엔
딸기를 가득
훔쳐 온 빨간 버찌를 가득 숨겨 두었다.
 
 
"자 아이야, 어서 오너라!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
요정과 함께 오너라.
 
세상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은 곳이니."
 
 
어두운 잿빛 모래밭
달빛 물결이 빛나는 
 
먼 로시즈 해변에서
우리는 밤새도록 춤을 춘다.
 
손에 손을 잡고서
서로 마주보며
 
저 달이 사라져 버릴 때까지
옛 춤을 엮어낸다.
 
 
우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끓어오르는 물거품을 쫓지만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차고
잠 속에서도 근심에 싸여 있다.
 
 
"자 아이야, 어서 오너라!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
요정과 함께 오너라.
 
세상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은 곳이니."
 
 
그렌 카 언덕 사이로 굽이치는 시냇물 쏟아지는 곳
별 하나 목욕할 수 없는 등심초 우거진 웅덩이 속에
 
우리는 잠자는 송어들을 찾아내어
그들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불길한 꿈을 안겨 준다.
 
작은 시냇물 위에 
눈물방울 떨어뜨리는 고사리들 사이
살짝 몸을 내밀고서,
 
 
"자 아이야, 어서 오너라!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
요정과 함께 오너라.
 
세상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은 곳이니."
 
 
이 아이는 우리와 함께 가고 있다.
진지한 눈을 하고서.
 
이제 다시는 듣지 못하리라,
따뜻한 언덕 위 송아지 우는 소리를,
난롯가 주전자의 평화로운 노래를.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갈색 새앙쥐가 귀리통을 돌고 도는 것을.
 
 
"사람의 아이 그가 오는구나.
거친 들판 물가로 손에 손을 잡고서
요정과 함께 오는구나.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눈물로 가득 찬 곳이니." 
 
쿨 호수의 백조를 보며 - 예이츠 
 
 
나무들은 가을의 아름다움으로 단장하고
숲 속의 길들은 메말라 있다.
 
10월의 황혼녘 물은고요한 하늘을 비치고
돌 사이로 넘쳐흐르는 물 위에는
쉰 아홉 마리의 백조가 떠 있다.
 
 
내가 처음 백조의 수를 헤아린 이래
열 아홉 번째의 가을이 찾아왔다.
 
그땐 미처 다 헤아리기도 전에
백조들은 갑자기 날아올라
 
요란스런 날개 소리를 내면서
끊어진 커다란 원을 그리며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지금껏 저 찬란한 새들을 보아 왔건만
지금 나의 가슴은 쓰리다. 맨처음 이 호숫가
 
황혼녘에 저 영롱한 날개 소리를 들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던 그때 이래
모든 것은 변해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피곤을 모른 채
짝을 지으며 차가운 물 속을
 
정답게 헤엄치거나,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들의 가슴은 늙을 줄 모르고
 
어디를 헤매든 정열과 정복심이
여전히 그들을 따른다.
 
 
지금 백조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요한 물 위에 떠 있지만
 
어느날 내가 눈을 뜨고
그들이 날아가 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어느 등심초 사이에 집을 짓고
어느 호숫가나 웅덩이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인가?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 하우스먼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어느 어진 이가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돈이야 금화이건 은화이건 주어 버릴지라도
네 마음만은 결코 주어서는 안되고,
 
보석이야 진주건 루비건 주어 버릴지라도
네 생각만은 자유분방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으니
나에겐 소용없는 말이 되었지.
 
 
내 나이 하나 하고 스물이었을 때
또 그가 하는 말을 나는 들었다.
 
"가슴 속으로부터 우러나는 마음은
결코 헛되어 주어지진 않는다.
 
그것은 많은 한숨으로 보답되고
끝없는 연민으로 팔리게 된다."
 
 
이제 내 나이 둘 하고 스물이 되니
오, 그것은 진실, 참다운 진실. 
 
팔리지 않는 꽃  - 하우스먼
 
 
나는 땅을 갈아 도랑을 파고 잡초를 뽑고
그리고 활짝 핀 꽃을 시장에 가져 갔다.
 
그러나 아무도 사는 이 없어 집으로 가져왔지만
그 빛깔 너무 찬란하여 몸에 치장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꽃씨를 뿌렸나니
내가 죽어 그 아래 묻히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까마득히 잊혀지고 말았을 때
나와 같은 젊은이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씨앗은 새가 쪼아 먹었고
어떤 것은 계절의 매움에 상처받았으나
 
그래도 이윽고 여기저기에
고독한 별들을 피우게 될 것이다.
 
 
바람 부는 밤의 광시곡 - 엘리어트
 
 
열두 시. 
달의 종합 속에 들어있는
쭉 뻗은 거리를 따라 
속삭이는 날의 주문은
기억의 심층과 
그 모든 뚜렷한 관계와 
그 구분과 정밀성을 용해하고,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은 저마다
숙명적인 북처럼 울리고, 
어둠의 공간을 통하여
한밤은 기억을 뒤흔든다,
광인이 죽은 제라늄을 흔들듯이.
 
 
한 시 반.
가로등은 침을 튀겨대고,
가로등은 중얼대고,
가로등은 말했다. "저 여자를 보라
방긋 웃는 듯이 열려 있는 문간의 
불빛 아래서 그대를 향해 망설이고 있는 저 여자를,
 
그녀의 옷자락이 찢겨져 
모래로 더렵혀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눈꼬리가 
구부러진 핀처럼 비틀린 것도 볼 수 있다.
 
 
추억은 많은 뒤틀린 것들을
높이 밀어올려 마르게 하고,
해변의 비틀린 가지는 
매끈히 벌레에 먹히고 반들반들 닳아
마치 세계가 희고 빳빳한
그 뼈대의 비밀을 
내던져 버린 것 같다.
 
공장 마당의 부서진 용수철,
힘이 빠져 막막하게 구부러지고
꺾일 지경이 된 그 형체에 달라붙은 녹.
 
 
두시 반,
가로등이 말했다.
 
"보라 도랑에 납작 업디어
혀를 쑥 내밀고
한 조각의 썩을 버터를 탐식하는 저 고양이를"
 
그렇게 어린 아이의 손이 자동적으로
쑥 나와 부두를 따라 달리는 장난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그 아이의 눈 뒤에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나는 거리에서,불켜진 덧문 사이로 
들여다보려고 하는 눈들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날 오후 웅덩이 속에서 게 한 마리가,
등에 조개삿갓이 붙은 늙은 게 한 마리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막대기 끝을 움켜잡았다.
 
 
세시 반.
가로등은 침을 튀겨대며,
가로등은 어둠속에서 중얼댔다.
가로등은 흥얼거렸다--
 
"저 달을 보라,
달은 아무런 원한도 품질 않는다,
그녀는 약한 눈을 깜박이며 
구석구석에 미소를 보낸다.
그녀는 풀의 머리털을 쓰다듬는다.
 
달은 기억을 잃었다.
색이 바랜 천연두로 그녀의 얼굴은 금이 가고
그녀의 손은 먼지와 오 드 꼴로뉴의 냄새를 풍기는
종이 장미를 비튼다.
 
그녀는 다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오랜 밤의 온갖 냄새와 더불어 있도다"
 
추억이 밀려온다
햇빛 받지 못하는 마른 제라늄과 
갈라진 틈바구니의 흙과 
 
거리의 밤 냄새와 
덧문 닫힌 방의 여자의 냄새와
복도와 담배와 
술집과 캐테일 냄새 등의 추억이.
 
 
가로등은 말했다.
지금은 네 시,
여기 문 위엔 번호가 있다.
추억이라고!
 
열쇠를 가진 것은 그대,
작은 등불이 계단에 원을 펼쳤으니,
올라오라.
침대는 비었고,칫솔은 벽에 걸려 있다
신일랑 문간에 놓고,잠자라,그리고 내일의 삶에 대비하라 
 
 
나이프의 마지막 비틀림
 
 
버언트 노오튼 I. - '4중주곡'에서 - 엘리어트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된다. 
 
모든 시간이 끊임없이 존재한다면 
모든 시간은 보상할 수 없는 것이다. 
 
있을 수 있었던 일은 하나의 추상으로서 
다만 사색의 세계에서만
영원한 가능성으로서 남는 것이다.
 
있을 수 있었던 일과 있은 일은 
한 점을 향하여, 그 점은 항상 현존한다. 
 
발자국 소리는 기억 속에서 반향하여
우리가 걷지 않은 통로로 내려가 
우리가 한 번도 열지 않은 문을 향하여 
장미원薔薇園속으로 사라진다. 내 말들도 
이같이 그대의 마음속에 반향反響한다.
 
그러나 무슨 목적으로 
장미 꽃잎에 앉은 먼지를 뒤흔드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 밖에도 메아리들이
장미원에 산다. 우리 따라가 볼까? 
 
빨리, 그걸 찾아요, 찾아요, 모퉁이를 돌아서. 
새가 말한다. 첫째문을 빠져,
우리들의 최초의 세계로 들어가, 우리 따라가 볼까
 
믿을 순 없지만 지빡새를? 우리들의 최초의 세계로 들어가.
아 있구나. 위엄스럽게, 눈에도 안 보이게,
죽은 잎 위에 가을 볕을 받으며,
하늘거리는 대기 속에 가벼이 움직인다. 
 
그러나 새는 노래한다, 관목 숲속에 잠긴 
들리지 않는 음악에 호응하여.
보이지 않는 시선이 오고간다. 장미는
우리가 보는 꽃들의 모습이었다. 
 
그건 영접받고 영접하는 우리의 빈객이다. 
우리들이 다가서자 그들도 하나의 정형의 패턴으로 
텅 빈 소로小路를 따라 변두리 황양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물마른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못은 마르고, 콘크리트는 마르고, 변두리는 갈색
햇빛이 비치자 연못은 뮬로 가득차, 
연꽃이 가벼이 가벼이 솟아오르며,
수면은 광심光心에 부딪쳐 번쩍인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등 뒤에서 염못에 비치고 있었다.
그러자 한 가닥 구름이 지나니 연못은 텅 빈다. 
가라, 새가 말했다. 나뭇잎 밑에 아이들이 가득
소란하게 웃음을 지니고 숨어 있다.
 
가라, 가라, 가라, 새가 말한다. 인간이란 
너무 벅찬 현실에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니.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 
있을 수 있었던 일과 있었던 일은
한 끝을 지향하는 것이고, 그 끝은 언제나 현존한다.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에서   - 쉐익스피어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 속으로 참는 것이 더 고상한가, 
 
아니면 고난의 물결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워 
이를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것은 잠자는 것- 
오직 그뿐, 만일 잠자는 것으로 육체가 상속받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피치 못할 괴로움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심으로 바라는 바 극치로다.
 
죽음은 잠드는 것! 잠들면 꿈을 꾸겠지? 아, 그게 곤란해. 
죽음이란 잠으로 해서 육체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어떤 꿈들이 찾아올 것인지 그게 문제지. 
 
이것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고, 또한 그것 때문에  
이 무참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과  
권력자의 횡포와 세도가의 멸시와 
변함 없는 사랑의 쓰라림과 끝없는 소송 상태, 
 
관리들의 오만함과 참을성 있는 유력자가 
천한 자로부터 받는 모욕을 한 자루의 단검으로  
모두 해방시킬 수 있다면 그 누가 참겠는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지루한 인생고에 신음하며 
진땀 빼려 하겠는가. 
 
사후(死後)의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면  
나그네 한번 가서 돌아온 일 없는 
미지의 나라가 의지를 흐르게 하고 
 
그 미지의 나라로 날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겪어야 할 저 환란을 참게 하지 않는다면-. 
 
하여 미혹은 늘 우리를 겁장이로 만들고  
그래서 선명한 우리 본래의 결단은 
사색의 창백한 우울증으로 해서 병들어 버리고 
 
하늘이라도 찌를 듯 웅대했던 대망도  
잡념에 사로잡혀 가던 길이 어긋나고 
행동이란 이름을 잃고 말게 되는 것이다. 
 
 
 
 
화살과 노래   - 롱펠로우
 
 
     나는 공중을 향해 화살을 쏘았으나,
     화살은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재빨리도 날아가는 화살의 그 자취,
     누가 그 빠름을 뒤따를 수 있으랴.
 
 
     나는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불렀으나,
     노래는 땅에 떨어져 간 곳이 없었다.
 
     그 누가 날카롭고 강한 눈이 있어
     날아가는 그 노래를 따를 것이랴.
 
 
     세월이 흐른 뒤 참나무 밑둥에
     그 화살은 성한 채 꽂혀 있었고,
 
     그 노래는 처음에서 끝 구절까지
     친구의 가슴 속에 숨어 있었다.
 
 
애너벨 리  - 애드가 앨런 포우
 
 
     아주 오랜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 
     애너벨 리가 살고 있었지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밖엔 
     소녀는 아무 다른 생각이 없었지. 
 
 
     바닷가 그 왕국에선 
     그녀도 나도 어린 아이였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그것 때문에, 오랜 옛날 
     바닷가 이 왕국에는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왔고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했네. 
 
     그녀의 고귀한 친척들은 그렇게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갔지. 
 
     바닷가 왕국 
     무덤 속에 가두기 위해. 
 
 
     우리의 절반도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우리를 시샘한 것. 
 
     바로! 그것이 이유였지(바닷가 왕국 사람들이 모두 알지). 
     한밤중 구름에서 바람이 불어와 
 
     그녀를 싸늘하게 하고 
     나의 애너벨 리를 숨지게 한 것이지.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우리보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훨씬 더 강하여 천상의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내지는 못했네. 
 
 
     달이 비추면 나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고. 
     별이 떠오르면 나는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느끼네. 
 
     그러면서,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 곁에 누워있나니.
 
     거기 바닷가 무덤 안에
     물결치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 곁에.
 
 
짐승 - 휘트먼
 
 
나는 모습을 바꾸어 짐승들과 함께 살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들은 평온하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
 
나는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땀흘려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환경을 불평하지 않는다.
 
그들은 밤 늦도록 잠 못 이루지도 않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 따위를 토론하느라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불만족해 하는 자도 없고, 소유욕에 눈이 먼 자도 없다.
 
다른 자에게, 또는 수천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 끓는 자도 없으며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잘난 체하거나 불행해 하는 자도 없다.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다 - 에밀리 딕킨슨
 
 
나는 고뇌의 표정이 좋아.
그것이 진실임을 알기에-
 
사람은 경련을 피하거나
고통을 흉내낼 수 없다.
 
 
눈빛이 일단 흐려지면-그것이 죽음이다.
꾸밈없는 고뇌가
 
이마 위에 구슬땀을
꿰는 척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에밀리 디킨슨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었다.
 
마차는 바로 우리 자신과
불멸을 실었다.
 
 
우리는 서서히 달렸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가 너무 정중하여
 
나는 일과 여가도
제쳐놓았다.
 
 
아이들이 휴식 시간에 
원을 만들어 뛰노는 학교를 지났다.
 
응시하는 곡식 들판도 지났고
저무는 태양도 지나갔다.
 
 
아니 오히려 해가 우리를 지나갔다.
이슬이 스며들어
 
얇은 명주, 나의 겉옷과
명주 망사-숄로는 떨리고 차가웠다.
 
 
부푼 둔덕처럼 
보이는 집 앞에 우리는 멈추었다.
 
지붕은 거의 볼 수 없고
박공은 땅 속에 묻혀 있었다.
 
 
그 후 수 세기가 흘렀으나
말 머리가 영원을
 
향한듯 짐작되던 
바로 그 날보다 더 짧게 느껴진다.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 로버트 프로스트
 
 
이것이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겠다 
물론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그는 재가 여기 서서 눈이 가득 쌓이는
자기 숲을 보고 있음을 못 볼 것이다.
 
 
내 작은 말은, 근처에 농가도 없고
숲이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한 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에
서 있음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내 작은 말은 방울을 흔들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느냐고 묻는다
 
다른 소리라고는 다만 스쳐가는
조용한 바람과 솜털 같은 눈송이뿐,
 
 
아름답고 어둡고 아늑한 숲 속.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자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밤에 익숙헤지며  - 로버트 프로스트
 
 
나는 어느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빗속을 홀로 거닐다 빗속에 되돌아왔다.
거리 끝 불빛 없는 곳까지 거닐다 왔다.
 
 
쓸쓸한 느낌이 드는 길거리를 바라보았다.
 
저녁 순시를 하는 경관이 곁을 스쳐 지나쳐도
얼굴을 숙이고 모르는 채 했다.
 
 
잠시 멈추어 서서 발소리를 죽이고
멀리서부터 들려와 다른 길거리를 통해 
집들을 건너서 그 어떤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은 나를 부르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이별을 알리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멀리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높다란 곳에
빛나는 큰 시계가 하늘에 걸려 있어
 
 
지금 시대가 나쁘지도 또 좋지도 않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밤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창가의 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내 창가에 서 잇는 나무, 창가의 나무여 
밤이 오면 창틀은 내리게 마련이지만
 
나와 나 사이의
커튼은 결코 치지 않으련다.
 
 
대지에서 치솟은 몽롱한 꿈의 머리
구름에 이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
 
네가 소리내어 말하는 가벼운 말이
모두 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나무여, 바람에 흔들리는 네 모습을 보았다.
만일 너도 잠든 내 모습을 보았다면
 
내가 자유를 잃고 밀려 흘러가 
거의 절망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리라.
 
 
운명의 여신이 우리 머리를 마주 보게 한 그 날
그녀의 그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네 머리는 바깥 날씨에 많이 관련되고
내 머리는 마음 속 날씨에 관련되어 있으니.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 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 찬란하게 빛난다
 
어느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에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버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 번 휜 채 오래 있으면
다시 꼿꼿이 서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머리 감은 아가씨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무릎꿇고 엎드려 머리를 풀어던지듯
잎을 땅에 끌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음 사태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사실로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휘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시골 구석에 살기 때문에 야구도 못 배우고      
스스로 만들어낸 장난을 할 뿐이며
 
여름이나 겨울이나 혼자 노는 어떤 소년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 하나씩 타고 오르며
 
가지가 다 휠 때까지
나무들이 모두 축 늘어질 때까지
 
되풀이 오르내리며 정복하는 소년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성급히 기어오르지 않는 법을
 
그래서 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무 꼭대기로 기어 오를 자세를 취하고
 
우리가 잔을 찰찰 넘치게 채울 때 그렇듯
조심스럽게 기어 오른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닿도록 하면서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 내린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던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도 돌아가고 싶어한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 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고의로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주면서 나를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 버리지는 않겠지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 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자작나무 흔드는 이보다 훨씬 못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 
 
 
각자와 모두 
 
 
 저 들판의 붉은 코트 어릿광대는 
그대가 산꼭대기에서 보고 있는 걸 생각지도 못하며; 
 
저 멀리 고원목장 어린 암소의 아득한 울음소리
그대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 아니고; 
 
교회종지기가 울리는 정오의 종소리 또한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온과 그의 군대  
 
말을 멈춰 그 소리에 귀기울여 
즐겁게 들을 거라 생각지도 않으며; 
 
그대 인생이 그대 이웃 읊조리는 사도신경에 
어떤 도움을 줄 건지 알지 못할지라도 
 
모든 것은 각각에게 필요한 것이며 
제 홀로 유익하거나 정당한 것 아무것도 없나니  
 
 
나는 새벽 오리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 
참새 소리를 천국의 것으로 여겼도다. 
 
저녁때 참새 둥지 채 옮겨 집에 두었는데;
녀석은 노래 부르지만 즐겁지가 않네, 
 
강과 하늘을 가져오지 않아서 그런가봐
새는 내 귀에, 모두는 내 눈에 노래했던 거라네. 
 
 
깨질 듯 아름다운 조개들 바닷가에 있어,
파도의 거품들이 금방 밀려와  
 
그 속 진주들 화려한 광택 빛나게 하고
사나운 바다는 포효하는 굉음을 내면서 
 
나로부터 벗어나며 인사를 하네 
나는 해초와 거품을 걷어내어 
 
바다의 보물들을 집으로 가져왔지만
초라하고 보기 싫은 하찮은 것들이 되었네 
 
태양과 모래와 파도소리의 아름다움을
바닷가에 두고 와서 그런가봐.. 
 
 
연인은 그 우아한 소녀를 눈여겨 보며 
처녀들의 행렬에서 뒤 처지기를 기다렸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백설' 성가대에 계속 묶여있을 것같았네   
 
마침내 그녀를 그의 외딴집에 데려왔는데 
숲속 새를 새장 속에 넣은 것 처럼 
 
얌전한 아내 되었지만 우아한 멋 없어지고 
쾌활하고 황홀한 매력 또한 사라졌네  
 
 
그래서 난 진리를 갈망한다고 말했는데 
아름다움은 미숙한 어린애의 속임수며  
 
청춘의 유희로 끝나버린다고;
또 난 말했네, 내 발 밑 땅바닥의 소나무는 
 
화환처럼 둥근 원을 그리며
이끼 낀 돌 막대 위로 뻗어 있고   
 
나는 제비꽃 향기를 마시네;
내 주위에 참나무와 전나무들이 둘러 서있고  
 
솔방울과 도토리들은 땅바닥에 구르고;
빛과 신성이 가득차고 충만한 영원한 하늘은 
 
내 머리 위 높이 솟아 있네;
나는 다시 보았고, 다시 듣게 되었다네. 
 
출렁이는 강물과, 새벽녘 새의 노래를. 
 
아름다움이 몰래 내 감각 속으로 파고들어
나는 그 완벽한 조화에 굴복하고 말았다네. 
 
 
가을   - 라마르틴
 
 
아직 변색하지 않은 녹음에 덮인 숲이여,
잔디 위에 마구 흩어져 있는 노릇한 낙엽들이여,
 
아름다운 가을의 날들이여 ! 안녕 !
자연의 슬픔은 내 괴로움과 어울려 내 눈길에 정다웁다
 
 
나는 명상에 잠겨 한적한 오솔길을 따른다.
약한 햇살로 내 발밑의 어두운 숲을 희미하게 밝혀주는
 
이 창백해 가는 해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구나.
 
 
그렇다. 자연이 숨져 가는 이 가을날,
베일에 싸인 듯 몽롱한 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더 한층 매력을 느낀다.
 
가을은 사랑하는 친구의 이별이며
죽음으로 영원히 닫혀지려는 입술에 떠도는 미소이다.
 
 
이처럼 인생의 지평선을 떠날 준비를 갖추고,
내 오랜 생애에 품었던 희망이 이제 스러져감을 한탄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돌려 선망의 눈초리로
내가 즐겨보지 못한 인생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본다.
 
 
천지여,태양이여,계곡이여, 아름답고 다정스런 자연이여,
나는 그대들로 인해 죽음에 임해 눈물을 흘린다.
 
대기는 너무도 향기롭고 빛은 너무도 맑다.
숨져가는 이의 시선엔 태양은 진정 아름답고나.
 
 
나는 이제 단맛 쓴맛이 함께 뒤섞인 이 술잔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몽땅 비우련다.
 
내가 생명을 들이마시던 이 잔 밑바닥에
어쩌면 한 방울의 굴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어쩌면 아직도 미래가 
희망이 다 없어졌던 행복을 내게 다시 돌려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군중 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한 영혼
내 영혼을 이해해주고 그리고 내게 응답해줄지도 모른다.
 
 
미풍에 향내를 풍기며 꽃잎이 떨어진다.
그것은 바로 생과 태양에 대한 이별.
 
내가 여기 죽어가는데 숨이지는 그 순간에
슬프고도 가락진 음향처럼 내 영혼이 퍼진다. 
 
  호  수    - 라마르틴                           
 
 
이렇게 항상 새로운 여울을 향해 밀리고,
돌아올 길도 없이 끝없는 어둠에 휩쓸려
 
넓은 세월의 바다 위에
단 하루만이라도 닻을 내려 정박할 수가 없을까?
 
 
오, 호수여 ! 이제 겨우 한 해가 지나 갔는데,
그이가 다시 와야 할 이 사랑스런 물가에
 
일찍이 그이가 앉았던 바로 그 바위 위에 
보라, 이젠 이렇게 나만 홀로 와서 앉았다.
 
 
너는 지금처럼 깊숙한 바위 밑에서 울부짖었고
지금처럼 그 울퉁불퉁한 바위에 마구 부딪쳤었지.
 
그 날도 지금처럼 바람은 네 물결을 튕겨
사랑스런 그이의 발 위에 거품을 끼얹었었지.
 
 
호수여, 그 밤을 너는 기억하는가 우리는 말없이
노를 젖고 있었다.
 
위로 하늘, 아래로 물결, 그 사이엔
가락맞춰 조화롭게 물결을 헤쳐 나가는 노소리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었지.
 
 
그때 갑자기 지상의 소리 같지 않은 음성이
매혹된 호수가에 메아리쳐 울렸었다.
 
물결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내게 지극히 사랑스런
그 음성이
이런 말들을 남겼다.
 
 
시간이여, 날음을 멈추어라.
그리고 너 행복된 시절이여, 운행을 중지하라.
 
우리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의
이 덧없는 희열이나마 우리 좀 맛보게 해다오.
 
 
이 세상의 많은 불행한 이들은 너를 애원하노니,
그들을 위해 어디 흘러가거라.
 
그들을 괴롭히는 근심들까지 그 시간과 더불어 가져가거라
그리고는 행복한 사람들을 잊어다오.
 
 
아직 몇 분 더 머물기를 바래도 소용없구나!
시간은 나를 빠져나가 자꾸 도망쳐 간다.
 
이 밤이 제발 느리게 지나가라 간청하지만
새벽이 와서 어둠을 흐트러 놓으리라.
 
 
그러니 우리 서로서로 사랑하며
서둘러 이 덧 없는 세월을 즐겨 보자구나.
 
인간에겐 항구가 없고 시간엔 기슭이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인간은 사라지고!
 
 
시기에 찬 시간들이여,
사랑의 행복에 함뿍 취한 이 기쁜 순간을
 
불행한 날들과 그렇게 똑같은 속도로
우리 한테서 앗아갈 수 있단 말인가?
 
 
진정 우리는 행복된 순간의 흔적조차 남길 수가
없단 말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만단
말인가.
 
즐거움을 주었다가, 그리고 그것을 앗아간 시간이
이제 다시는 그 즐거움을 돌려줄 수 없단 말인가.
 
 
영원이여, 허무여, 과거여, 너희들의 심연이여!
너희들이 사켜 버린 그 시간은 무엇에 쓰려느냐?
 
우리에게서 앗아간 그 숭고한 도취를
언제 돌려주려하느냐?
 
 
오, 호수여, 말없는 동굴이여, 어두운 숲이여!
시간이 아껴두고 또다시 젊게도 해줄 수 있는
 
너희들, 아름다운 자연이여,
이 밤의 추억만이라도 간직해다오.
 
 
아름다운 호수여, 네 휴식 속에, 네 폭풍 속에
그리고 물 위로 불쑥 솟은
험한 바위 사이에 그 추억을 간직해다오!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네 물결가에 연방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보드라운 빛으로 수면을 희게 비추는 은빛 별들 속에 
그 추억을 간직해다오!
 
 
탄식하는 바람, 한숨짓는 갈대,
향기로운 대기의 가벼운 향기,
 
들리고, 보이고, 숨쉬는 그 모든 것이 다같이 말해주길,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라고.
 
 
모래언덕 위에서 하는 말
 
                   - 위고
 
 
나의 인생이 햇불처럼 옴츠러 들어간 지금,
나의 임무가 끝난 지금,
 
애상과 나이를 먹는 동안
어느샌가 무덤 앞에 이르게 된 지금,
 
 
그리고 마치 사라진 과거의 소용돌이처럼
꿈의 날개를 펴던 저 하늘 속에서
 
희망에 부풀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어둠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 지금,
 
 
어느 날인가 우리는 승리를 하지만
그 다음날은 모든 것이 거짓이 되고 만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슬픔을 안고 꿈에 취한 사람모양 몸을 구부린 체,
 
 
나는 바라본다.
뭉게구름이 산과 계곡,
 
그리고 끝없이 물결짓는 바다 저 위에서
욕심장이 북풍의 부리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하늘의 바람소리가 ,암초에 부딪치는 물결소리가,
익은 곡식단을 묶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 기울인다. 그리고는
속삭이는 것과 말하는 것을 내 생각 깊은 마음속
에서 비교해 본다.
 
 
나는 때때로 모래언덕 위 듬성듬성 난 풀 위에
몸을 던진체, 꼼짝 않고 시간을 보낸다.
 
그러노라면 흉조를 띤 달이 떠올라와
꿈을 펴는 것이 보인다.
 
 
달은 높이 떠올라 가만스런 긴 빛을 던진다.
공간과 신비와 심연 위에,
 
광채를 발하는 달과 괴로움에 떠는 나,
우린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사라진 내 날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를 알아주는 이, 하나라도 있을까?
 
이 노곤한 눈동자 속에
젊은 날의 빛 한 오라기라도 남아 있는가?
 
 
모든 것이 달아난 걸까? 나는 외롭고 이젠 지쳤다.
대답없는 부름만을 하고 있구나.
 
바람아! 물결아! 그래 난 한가닥 입김과 같은
존재였단 말이냐?
 
아 슬프게도! 그래 난 한줄기 물결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냐? 
 
 
사랑했던 그 어느 것도 다시 볼 수 없단 말이냐?
나의 마음속 깊숙이 저녁이 내린다.
 
대지야, 네 안개가 산봉우리를 가리웠구나,
그래 난 유령이고 넌 무덤이란 말인가?
 
 
인생과 사랑과 환희와 희망을 모두 살라 먹었을까?
막연히 기대를 건다. 그러다간 애원하는 마음이 되어
 
한줌이라도 혹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단지마다 기울여 본다.
 
 
추억이란 회한과 같은 것인가,
모든 것은 우리에게 울음만을 밀어다 주는구나!
 
죽음, 너 인간의 문의 검은 빗장아,
너의 감촉이 이리도 차냐!
 
 
나는 생각에 잠긴다. 씁쓰레한 바람이 일어오는걸,
물결이 붉게 주름지어 밀려오는 걸 느끼면서,
 
여름은 웃고, 바닷가 모래밭에는
파아란 엉겅퀴꽃이 피어나는구나.
 
 
떠나가는 집시들
                     - 보들레르
 
어제 길을 떠났네,
미래를 점치며 불타는 눈동자를 한 부족
 
아이들을 등에 업지 않았으면,
혹은 축 늘어진 유방의 준비된 보물을
그들의 엄쳐흐르는 식욕에 내맡긴 체.
 
 
번들거리는 무기를 어깨에 멘 사나이들,
식구들이 옹기종기 탄 수레를 따라 걸어가네.
 
침울하게 미련을 갖고 이미 사라진 환상에 
무거워진 눈으로 허공을 들러보며.
 
 
귀뚜라미는 감추어져 있는 모래 구멍 속에 숨어
그들의 행렬을 보며 한층 크게 노래 부르네.
 
대지의 신은 그들을 사랑하여
푸른 초목을 번창시키고.
 
 
그 길손들 앞에는 바위에서 샘이 솟고
사막이 꽃을 피우니,
 
그들을 맞기 위해
다가올 짙은 어둠의 왕국은 열려 있었네.
 
 
 
끝간 데 없이 늘어선 생울타리
 
                       - 베를렌
 
 
끝간 데 없이 늘어선 생울타리
거품 인 맑은 바다 같네.
 
그 위로 맑은 안개, 향긋한
햇장과 내음 풍기고.
 
 
날렵한 망아지들이
와서 뛰놀며 흩어지는
 
부드러운 초원, 그 위로
가볍게 보이는 나무들과 풍차들.
 
 
일요일의 이 허허한 벌판 속에
다 큰 양떼들도
 
장난치며 놀겠다네,
저들의 흰 양모같이 부드러운.
 
 
그 위로 젖빛 하늘 속에서
방금 피리 소리 같은 종소리의
 
파장이 소용돌리처럼
궁글며 퍼져 나갔다. 
 
  
캄캄한 깊은 잠이 
 
             - 베를렌
 
                                               
캄캄한 깊은 잠이
내 삶 위에 떨어지네.
 
잠자거라, 모든 희망아.
잠자거라, 모든 욕망아 !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선과 악의
 
기억마저 사라진다......
오, 내 슬픈 이력아 !
 
 
나는 어느
지하실 허공속에서 어느 손에 
 
흔들리는 요람.
침묵, 침묵 !
 
 
 
*랭보를 권총으로 쏜 사건의 초심 판결 언도를 받은 날
절망속에서 쓴 시.
 
 
 
감각
 
                     - 랭보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 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지옥에서 보낸 한 철
 
                             - 랭보
 
 
1.서시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어느날 저녁 나는 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그러고보니 지독한 치였다-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나는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 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 팍 쓸어졌다.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 나를 향해 백치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라에,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慈愛)가 그 열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보다.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으리라....."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귀비 꽃을 나에게 씌어준 악마가 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드렸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하찮은 몇 가지 뒤늦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 결핍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나의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흉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죄종(罪宗)  기독교에서 말하는 7개의 주된 죄 
               교만, 탐욕, 邪淫, 질투, 탐심, 분노, 태만 
 
 
나의 방랑 생활
 
                       - 랭보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 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발을 가슴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낙엽   - 구르몽         
 
 
시몬.. 나뭇잎이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은 너무나도 부드러운 빛깔, 
너무나도 나지막한 목소리..
 
낙엽은 너무나도 연약한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황혼 무렵 낙엽의 모습은 너무나도 서글프다.
바람이 불면 낙엽은 속삭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 여자의 옷자락 소리.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오라.. 우리도언젠가 낙엽이 되리라.
오라..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은 우리를 휩쓴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시몬, 나무 잎이 저버린 숲으로 가자.
이끼며 돌이며 오솔길을 덮은 낙엽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낙엽 빛깔은 상냥하고, 모습은 쓸쓸해
덧없이 낙엽은 버려져 땅 위에 딩군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저녁 나절 낙엽의 모습은 쓸쓸해
바람에 불릴 때, 낙엽은 속삭이듯 소리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서로 몸을 의지하리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
서로 몸을 의지하리 이미 밤은 깊고 바람이 몸에 차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눈  - 구르몽                
 
 
시몬, 눈은 그대 목처럼 희다.
시몬, 눈은 그대 무릎처럼 희다.
 
시몬, 그대 손은 눈처럼 차갑다.
시몬, 그대 마음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불꽃의 입맞춤으로 받아 녹는다.
그대 마음은 이별의 입맞춤에 녹는다.
 
눈은 소나무 가지 위에 쌓여서 슬프다.
그대 이마는 밤색 머리칼 아래 슬프다.
 
시몬, 그대 동생인 눈은 안뜰에서 잠잔다.
시몬, 그대는 나의 눈, 또한 내 사랑이다.
 
 
 
 
순박한 아내를 위한 기도 - 프란시스 잠                      
 
 
주여, 내 아내감이 될 여인은
겸손하고 온화하며, 정다운 친구가 될 사람으로 해 주소서
 
우리 잠잘 때에는 서로 손 맞잡고 잠들도록 해 주소서
 
메달이 달린 은 목걸이를 그녀 가슴 사이에
보일듯 말듯 목에 걸도록 해 주소서
 
그녀의 살갗은 늦여름, 조는듯한 자두보다
한결 매끄럽고 상냥하며 보다 더한 금빛으로 빛나게 해 주소서
 
그녀의 마음 속에는 부드러운 순결이 간직되어
서로 포옹하며 말없이 미소짓도록 해 주소서
 
그녀는 튼튼하여 꿀벌이 잠자는 꽃을 돌보듯
내 영혼을 돌보도록 해 주소서
 
그리하여 내 죽는 날 그녀는 내 눈을 감기고
내 침대를 움켜 잡고
흐느낌에 가슴 메이게 하며
 
무릎을 꿇는 그 밖의 어떤 기도도
내게 주지 않도록 해 주소서.. 
 
 
식당방 - 프란시스 잠                      
 
 
우리 집 식당방에는 윤이 날 듯 말 듯한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 대고모들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었고 
우리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은 것이다. 
 
그들의 추억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장롱. 
그게 암 말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그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까. 
 
 
거기엔 또 나무로 된 뻐꾹시계도 하나 있는데, 
왜  그런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난 그것에 그 까닭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부서져 버린 거겠지, 
태엽 속의 그 소리도. 
그냥 우리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의 목소리처럼. 
 
 
또 거기엔 밀랍 냄새와 잼 냄새, 고기 냄새와 빵 냄새 
그리고 다 익은 배 냄새가 나는 
 
오래된 찬장도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한테서 아무 것도 훔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충직한 하인이다. 
 
 
우리 집에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이 
왔지만, 아무도 이 조그만 영혼들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나는 빙그레 웃는 것이다. 
 
방문객이 우리 집에 들어오며, 거기에 살고 있는 것이 
나  혼자인 듯 이렇게 말할 때에는 
-- 안녕하신지요, 잠 씨? 
 
 
애정의 숲  - 발레리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었다.
나란히 길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았다. 
말도 없이......이름 모를 꽃 사이에서;
 
 
우리는 약혼자처럼 걸었다.
단둘이, 목장의 푸른 밤 속을;
 
그리고 나눠 먹었다 저 선경의 열매,
광인들이 좋아하는 달을.
 
 
그리고, 우리는 죽었다 이끼 위에서
단둘이 아주 머얼리, 소곤거리는 친밀한
 
그리고 저 하늘 높이, 무한한 빛 속에서
저 숲의 부드러운 그늘 사이에서;
 
 
우리는 울고 있었다.
오 나의 사랑스런 말없는 반려여!
 
 
클로틸드에게  - 아뽈리네르           
 
사랑과 경멸 사이
우수가 잠든 정원에
 
아네모네와 노방초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곳에 우리들의 그림자도 스며든다
밤이 흩어버릴 그림자이지만
 
그림자를 거두는 태양도
언젠가는 그림자와 함께 사라지리라
 
 
맑은 물의 이 신기한 힘
그것은 머리털을 적시며 흐르나니
 
가라 네가 찾는 이 아름다운 그림자를
너는 찾아가야만 한다
 
 
시인의 죽음   - 쟝 꼭토                
 
 
나는 죽소, 프랑스여! 내가 말할 수 있게 가까이 와요,
 
좀더 가까이. 난 그대 때문에 죽는다오. 그대 날 욕했고
우스꽝스럽게 만들었고 속였고 망하게 했지. 
 
이젠 상관없는 일이오. 프랑스여, 나 이제 그대에게 입맞추어 야겠소. 
 
마지막 이별의 입맞춤을. 외설스런 세느강에,
보기 싫은 포도밭에, 밑살스런 밭에, 너그러운 섬들에,
 
부패한 파리에, 죽이는 입상에 마지막 입맞춤을 보내야겠소.
좀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 좀 보게 해주오. 
 
아! 이젠 나 그댈 붙잡았오. 소릴질러도 누굴 불러도 소용없지.
 
죽는 자의 손가락을 펼 수는 없는 것. 황홀히 나 그대
목을 조르오. 이제 난 외롭게 죽지 않으리니.
 
 
 
한 순간의 거울    - 폴 엘뤼아르         
 
그것은 빛을 분산시키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외모와는 다른 섬세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방심할 여유를 앗아가버린다.
그것은 돌처럼 단단하다,
 
형태가 없는 돌,
움직임이 있고 시각이 있는 돌처럼,
 
그리고 그것의 섬광은 그 어떤 갑옷이나 그 어떤 가면도
일그러질 만큼 찬란하다.
 
손에 잡혀 있었던 그것은 손과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이해되었던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새는 바람과 뒤섞이고,
하늘은 진리와
 
사람은 현실과 뒤섞인다.
 
 
 
그리고 미소를  - 폴 엘뤼아르      
 
 
밤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슬픔의 끝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창이 있고
 
불켜진 창이 있다.
 
언제나 꿈은 깨어나듯이
충족시켜야 할 욕망과 채워야 할 배고픔이 있고
 
관대한 마음과
내미는 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함께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
 
 
 
자유   - 폴 엘뤼아르
 
            
 
국민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로움 위에
일상의 흰 빵 위에
 
결합된 계절 위에
나는 어늬 이름을 쓴다
 
 
누더기가 된 하늘의 옷자락 위에
태양이 곰팡 슬은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방앗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무미한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깨어난 오솔길 위에
뻗어나간 큰 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있는 내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내 방 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우리 집 강아지 위에
그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받은 불의 흐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화합한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넘어선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댓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되찾은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성냥개비 사랑 - 밤의 파리  - 프레베르                     
 
 
고요한 어둠이 깔리는 시간
성냥개비 세 개에
 
하나씩 하나씩 
불을 붙인다
 
 
첫째 개피는 너의 얼굴을 보려고
둘째 개피는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개피는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송두리째 어둠은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려고.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 탄금시인(1)  - 괴테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
 
슬픈 밤을 한 번이라도
침상에서 울며 지새운 적이 없는 자,
 
그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니, 하늘의 권능이시여.
 
 
당신을 통하여 삶의 길을 우리는 얻었고
 
불쌍한 죽을 자들 타락케 하시어
고통 속에 버리셨으되,
 
그럼에도 저희는 죄값을 치르게 됩니다.
 
 
 
마왕   - 괴테            
 
 
이 늦은 밤 어둠 속, 바람 속에 말타고 가는 이 누군가?
그건 사랑하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아버지다.
 
아들을 팔로 꼭 껴안고,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다.
 
 
"뭣 때문에 얼굴을 가리고 무서워 하느냐?"
"보세요, 아버지, 바로 옆에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왕관을 쓰고 옷자락을 끄는 마왕이 안 보이세요?"
"아이야, 그건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란다."
 
 
"오, 귀여운 아이야, 너는 나와 함께 가자!  
거기서 아주 예쁜 장남감을 많이 갖고 나와 함께 놀자.
 
거기에는 예쁜 꽃이 많이 피어있고
우리 엄마한테는 황금 옷이 많단다."
 
 
"아버지, 아버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지금 제 귀에 말하고 있어요."
 
"조용히 해라 내 아가야, 너의 상상이란다.
그건 슬픈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란다."
 
 
 "귀여운 아이야, 자, 나와 함께 가자꾸나.
나의 딸들이 널 예쁘게 돌봐주게 하겠다.
 
나의 달들은 밤마다 즐거운 잔치를 열고
춤추고 노래하고 너를 얼러서 잠들게 해줄거다."
 
 
"아버지, 아버지, 저기에 보이지 않으세요?
마왕의 딸들이 내 곁에 와 있어요."
 
"보이지, 아주 잘 보인단다.
오래된 회색 빛 버드나무가 그렇게 보이는 거다."
 
 
"귀여운 아이야 나는 네가 좋단다. 네 귀여운 모습이 좋단다.
네가 싫다고 한다면 억지로 끌고 가겠다."
 
"아버지, 아버지, 마왕이 나를 꼭꼭 묶어요!
마왕이 나를 잡아가요!" 
 
 
이제 아버지는 무서움에 질려 황급하게 말을 몬다.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아이를 안고서.
 
가까스로 집마당에 도착했으나
팔 안의 아이는 움직이지 않고 죽어 있다.
 
 
 
미뇽에게  - 괴테            
 
 
골짜기와 강물 위를 아주 높이,
눈부신 태양 마차는 지나간다.
 
아아! 태양은 그의 길을 가면서, 
그대와 나의 슬픔을 불러 내나니,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언제나 아침마다 또 다시.
 
 
내겐 밤이 와도 소용이 없나니 
내가 꾸는 꿈마저도 
슬픈 모습으로 오기 때문이라.
 
나 슬픔을 느끼나니,
가슴 속에서 조용히
새롭게 솟아나는 힘과 함께.
 
 
오래 전부터
저 밑을 지나는 배를 보았나니
 
정박지를 찾아가는 것이라.
하지만 아아, 멈춰버린 슬픔은
 
마음 속에서
뜨질 않고 흘러가지 못하네. 
 
 
예쁜 나들이 옷, 오랜만에 
장롱에서 꺼내 입어야 하네.
 
오늘이 축제날이라.
아무도 모르리니
 
쓰디쓴 슬픔에 젖은 내 가슴 
무섭게 찢끼운 것을.
 
 
남 몰래 울면서도
혈색 좋은 건강한 얼굴로
 
즐거운 모습 보일 수 밖에 없으니
이 슬픔이 죽어서 
 
내마음 속에서 사라졌다고 한다면
아아, 오래전에 난 죽었어야 하기 때문이니.
 
 
장갑  - 쉴러
                      
 
사자 우리 앞에서
격투 경기를 기다리며
프란츠 왕이 앉아 있다.
 
주위에는 귀족들이 둘러 앉아 있고
높은 발코니에는 귀부인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둘러 앉아있다.
 
 
왕이 손가락으로 신호하자,
사자우리의 문이 열리고
 
육중한 발걸음으로 
사자 한 마리가 밖으로 나와,
 
주위를 
천천히 둘러 보더니,
 
입을 크게 한 번 벌리고,
갈기 털을 부르르 떨더니만,
 
그 자리에 몸을 눞혔다.
 
 
다시 왕이 신호를 하자 
두 번째 우리의 문이 열리고
 
거기서 호랑이 한 마리가
사납게 뛰쳐 나오더니
 
사자가 앞에 있음을 보고
커다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꼬리를 흔들면서
둥그렇게 한바퀴 돌더니
 
불타는 혀를 드러내고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사자 주위를 빙빙 돌더니만,
으렁거리면서 사자옆에 몸을 눞혔다.
 
 
왕이 또 신호를 내리자
우리문이 두 개가 열리고
표범 두 마리가 뛰쳐 나왔다.
 
살기찬 표범들은 호랑이에게 달겨들었다.
호랑이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표범을 붙들자,
 
사자가 위엄있는 모습으로 일어나
울부짖었고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맹수들은 살기를 품은 채 
원을 그리더니 
모두들 자리에 누웠다.
 
 
그 때 발코니 윗자리에서
장갑 한 짝이 아름다운 손에서 떠나
 
호랑이와 사자가 있는 
한 가운데 떨어졌다.
 
쿠니쿤트 공주는 비웃는 듯이
기사 델로게스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기사님, 당신의 사랑이 열렬하고
늘 내게 맹세한 말씀이 참말이라면
 
저 장갑을 주워 올 수 있겠지요?"
 
 
그러자 기사는 즉시 일어나
힘찬 걸음으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맹수들 한가운데에서
겁 없이 장갑을 주워들었다.
 
놀람과 몸서림을 치면서
모든 기사와 귀부인들이 그걸 보았다.
 
태연히 장갑을 가져오는 그에게
모든 사람들은 칭송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참다운 행복을 기대하는
쿠니쿤트 공주는
 
부드러운 사랑의 눈동자로써 그를 맞이하였다.
기사는 공주의 얼굴에 장갑을 던지며,
 
"공주여, 나는 감사의 말을 바라지 않소."
기사는 그 자리에서 공주를 버렸다.
 
 
원망하지 않으리 - 하이네                 
 
 
원망하지 않으리, 이 가슴 찢어져도.
가버린 사람아! 원망하지 않으리.
 
수많은 다이아먼드로 몸을 꾸며도
그대의 마음은 캄캄한 밤이어라.
 
 
나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노라.
그대를 꿈꾼 그 때 그대 마음의 어두움도 보았다.
 
그대 마음을 갉고 있는 뱀도 보았다.
연인이여, 너는 정말 불행한 사람이었다.
 
 
 
  [사랑고백] -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 하이네[노래의 책]중, 북해(1825~1826)편에서
   첫번째 연작시 6번
  
 
저녁이 되어 어둠이 찾아 드니 
바다는 더한층 거세게 파도 쳤다.
 
바닷가에 앉아 하얗게 부숴지는
파도의 춤을 바라보며
내 가슴은 바다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때 그대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사로잡혔다.
아름다운 모습, 그대의 모습은
내 주위에서 맴돌고 어디에서나 나를 부른다.
세찬 바람속에서도, 
거친 파도 속에서도,
내 가슴의 한숨 속에서도, 
어디에서나... 
어디에서나...
 
나는 가느다란 갈대를 꺾어 모래 위에 썼다.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지만 심술궂은 파도가 
이 달콤한 고백 위를 덮쳐가며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약한 갈대여, 먼지처럼 흩어지는 모래여,
사라지는 파도여, 난 이제 너희를 믿지 않으리!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내 마음은 더욱 날뛴다.
이제, 
나 저 노르웨이의 숲에서 
가장 크고 푸른 전나무를 찾아
그 뿌리채 뽑아
 
저 애트나의 불타오르는 
샛빨간 분화구에 담갔다가
 
그 불이 붙은 거대한 붓으로 
나 저 어두운 하늘을 바탕삼아 쓰겠노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고
 
 
이렇게 하면 저녘마다 하늘에는 영겁의 필적이 타올라
 
뒤에 오는 후손들은 모두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하늘에 쓰인 말을 읽으리라.
 
 
"아그네스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고독  - 릴케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
 
저녁을 찾아 바다에서 오른다.
멀고 먼 외진 들녘에서 오른다.
 
늘상 고적하기만 한 하늘로 옮겨갔다가
하늘에서 비로소 도시에 내린다.
 
 
아침을 향해 골목골목이 몸을 일으키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육신들이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 떠나갈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들어야 할 때,
 
낮과 밤이 뒤엉킨 시각, 비가 되어 내리면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지키는 사람처럼 - 릴케          
 
 
포도밭에 원두막을 짓고서
지키는 사람처럼
 
주여, 저는 당신 안에 있는 원두막입니다.
오오 주여, 저는 당신의 밤에 싸인 밤입니다.
 
 
포도밭, 목장, 오래 된 사과밭
봄의 계절을 건너뛸 줄 모르는 밭
 
대리석처럼 단단한 땅에서도
많은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
 
 
당신의 둥근 가지에서 향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지키고 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진액에 거침없이 녹아 들어
당신의 깊은 뜻이 제 곁을 고이 타오릅니다. 
 
 
 
방랑    - 헷세                         
 
 
슬퍼하지 말아라, 멀지 않아 밤이다.
 
그러면 우리는 창백한 들판 너머
 
싸늘한 달님이 미소지으면
 
손과 손을 맞잡고 휴식하리니.
 
슬퍼하지 말아라, 멀지 않아 때가 온다.
 
우리는 안식하리니 우리의 십자가가
 
환한 길섶에 두 개 나란히 내리리라,
 
그리고 바람 또한 불어오고 불어가리라.
 
 
낙엽    - 헷세                   
 
 
꽃마다 열매가 되려고 합니다. 
아침은 저녁이 되려고 합니다.
 
변화하고 없어지는 것 외에는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여름까지도
가을이 되어 조락을 느끼려고 합니다.
 
나뭇잎이여, 바람이 그대를 유혹하거든
가만히 끈기 있게 매달려 있으십시오.
 
그대의 유희를 계속하고 거역하지 마십시오.
조용히 내 버려 두십시오.
 
바람이 그대를 떨어뜨려서
집으로 불어가게 하십시오.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 푸쉬킨          
 
 
신이여, 저를 미치지 않게 하소서.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보따리와 지팡이가 나아요
아니, 고생스럽고 배고픈 게 차라리 더 나아요.
 
그것은 내가 나의 이성을
존중해서도 아니고
이성과 헤어지는 것이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나 자유로이 둔다면
그 얼마나 활개치며
어두운 숲으로 달려가리!
 
열병에 걸린 것처럼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그 얼마나 자유로이 멋진 꿈에 도취되어
나를 잊으리.
 
 
그리고 나의 파도소리에 귀기울이고
행복에 가득차서
빈 하늘을 바라보리니
 
나 그 얼마나 힘차고 자유로우리
들판을 파헤치고
숲을 휘어뜨리는 회오리처럼.
 
 
그런데 불행히도 : 미친다는 것은
페스트보다 더 두려운 일,
 
곧 갇히고
사슬에 묶이리니,
 
사람들은 창살 사이로 짐승을 찌르듯
찌르러 올 것이고,
 
 
그리고 밤에는 들을 것이다.
꾀꼬리의 울 리는 낭랑한 목소리도 아니고
 
빽빽한 참나무숲의 웅성거림도 아니고
울리는 것은
 
친구들의 외침소리, 밤의 파수꾼의 욕설,
사슬이 쩔렁이고 삐걱이는 소리뿐
 
 
시베리아 깊은 광맥속에 제까브리스트 12월 혁명이후 유형간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    - 푸쉬킨
 
               
 
 
시베리아 깊은 광맥 속에
그대들의 드높은 자존심의 인내를 보존하소서
 
그대들의 비통한 노력과 높은 정신의 지향은
사라지지 않으리니.
 
 
불행의 신실한 누이,
희망은 암흑의 지하 속에서
 
용기와 기쁨을 일깨우리니
그 날은 오리니:
 
 
사랑과 우정이 그대들에게 닿으리니
깜깜하게 닫힌 곳 빗장을 열고
 
지금 그대들의 감방 그 굴 속으로
나의 자유의 소리가 다다르듯이.
 
 
무거운 사슬이 풀어지고
암흑의 방은 허물어지고 - 자유는
 
기쁨으로 그대들을 마중나오리니
그리고 형제들은 그대들에게 검은 건네리니. 
 
 
나 혼자 만나러 가는 밤   - 타골
 
                         
 
 
사랑하는 이 만나러 나 홀로 가는 밤
새들 조용하고 바람이 불지 않네
 
길가의 집들도 고요히 서있어서
내 발걸음 소리만 점점 커져 부끄럽구나
 
 
발코니에 앉아서 그이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릴 제,
나뭇잎들 멈춰 있고 강물 소리도 조용하네
 
잠든 보초의 무릎에 놓인 칼처럼.
거칠게 뛰는 나의 가슴은 
 
어이해야 진정될까.
 
 
사랑하는 이 오시어 내 곁에 앉으시어
내몸 떨리고 내 눈 감길 때면 
 
밤 어두어지고 바람은 등불을 끄고
구름은 별을 가리우는구나
 
내 가슴의 보석은 반짝이며 빛을 발하는데
어이해야 감출 수 있을까
 
 
 
유적(遺謫)의 땅(The Land of Exile)    - 타고르                           
 
 
어머니, 하늘에 햇빛이 어스레해졌습니다. 때가 어찌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놀아도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왔습니다. 때는 토요일, 우리의 주일입니다.
일은 그만 두셔요, 어머니. 여기 창가에 오셔서 옛날 이야기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비의 그림자가 끝에서 끝까지 햇빛을 가리웠습니다.
사나운 번개가 손톱으로 하늘을 찢습니다.
 
구름이 우르렁거리고 천둥이 울리면 가슴이 뛰어 어머니 
품에 매달리고 싶습니다.
 
굵은 비가 대나무 잎을 몇 시간이나 때리고 우리 집 창문이 바람 
불 때마다 흔들리고 소리를 낼 때면, 
 
어머니, 나는 어머니와 방에 단둘이 앉아 
옛날 테판타르 사막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머니, 그 사막은 어디 있는가요? 어느 바닷가, 어느 산모통이, 
어느 왕의 영토인가요?
 
거기에는 들판을 표시하는 울타리도 없고, 해가 떨어지면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갈 발자국 조차 없습니다. 뿐입니까? 
 
숲 속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줍던 아주머니가 짐을 저자로 가져간 
발자국도 없답니다. 
 
모래밭에 몇 조각의 노란 잔디풀과 약빠른 늙은 새 한 쌍이
보금자리를 마련한 나무 한 그루만 있을 뿐, 
 
테판타르 사막은 그냥 누워 있습니다.
 
바로 이런 흐린 날이면 임금의 어린 아들이 혼자 회색 말을 타고 
사막을 지나 알지 못하는 강 건너 거인의 궁전에 갇혀 있는 공주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먼 하늘에 비안개가 내리고 번갯불이 괴로운 병에 걸린 듯 
미쳐 날뛸 때에, 옛날 이야기의 테판 타르 사막에 말을 타고 가면서, 
 
왕자는 홀로 떨어진 가엾은 자기 어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외양간 
쓰레질만 하고 있는 것을 잊겠습니까?-
 
어머니, 보셔요, 해가 지기 전에 벌써 날이 거의 어두워 갑니다. 
그리고 마을길 너머에는 이미 길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목동은 벌써 목장에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도 이미 들에서 
돌아와 오막살이 처마밑 자리에 앉아 거친 구름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머니, 나는 책을 다 선반에 꽂았습니다 - 이제는 나보고 공부하라고 
말씀을 하지 마셔요.
 
내가 자라서 아버지만큼 되면 배울 것을 모두 배우겠지요.
그렇지만 오늘만은 어머니, 옛날 이야기의 테판타르 사막이 
어디 있는지 말씀해 주셔요.
 
 
거지  - 뚜르게네프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늙어빠진 거지 하나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눈물어린 충혈된 눈, 파리한 입술, 다 헤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오오, 가난은 어쩌면 이다지도 처참히 
이 불행한 인간을 갉아먹는 것일까!
 
그는 빨갛게 부푼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한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는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지갑도 없다. 시계도 없다, 손수건마저 없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지는 기다리고 있다.......나에게 내민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리고 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그 더러운 손을 덥석 움켜 잡았다......
 
"용서하시오, 형제, 아무 것도 가진게 없구려"
거지는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쳤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습니다, 형제여" 하고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깨달았다....나도 이 형제에게서 적선을 받았다는 것을.

개  - 뚜르게네프                            
 
 
방 안에서 우리 둘....개와 나. 
밖에는 사나운 폭풍이 무섭게 울부짖고 있다.
 
개는 내 앞에 앉아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개를 바라보고 있다.
 
개는 무슨 말인가를 나에게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개는 벙어리라 말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개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는 알고 있다.....지금 이 순간, 개도 나도 똑같은 감정에 
젖어 있다는 것을, 우리 둘 사이에는 어떠한 간격도 없다는 것을. 
 
우리 둘은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똑같이 전율에 떠는 불꽃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불타며 빛나고 있다.
 
이윽고 죽음이 다가와서 이 불길을 향해 
그 싸늘한 넓은 날개를 퍼덕거리리라......
 
그러면 끝장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알랴, 우리 저마다의 가슴 속에 
어떤 불길이 타고 있었는가를?
 
그렇다! 지금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 것은 
동물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서로 응시하고 있는 것은 동일한 두 쌍의 눈.
동물과 인간, 이 두 쌍의 어느 눈에도 동일한 생명이 
 
서로를 의지하며 겁먹은 듯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출처] 세계 명시 모음 |작성자 은유
 
[출처] [[[세계 명시 모음]]]|작성자 영원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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