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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구조> 후고 프리드리히
2019년 02월 25일 15시 34분  조회:1315  추천:0  작성자: 강려
장희창(동의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교수)
 
 
이 책은 보들레르 이후 약 100년간의 서구시의 흐름에 있어서 주도적으로 나타났던 시의 경향의 통일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등의 전통과 결별하고 광범위한 의미에서 소위 모더니즘으로 지칭될 수 있는 현대성의 시인들, 이를테면 릴케, 트라클 및 벤과 같은 독일 시인들, 아폴리네르에서 생존 페르스에 이르는 프랑스 시인들, 가르시아 로르카에서 기옌에 이르는 스페인 시인들, 팔라체스키에서 웅가레티에 이르는 이탈리아 시인들, 예이츠에서 엘리엇까지의 영국 시인들을 서로 연결하는 문체 원리 및 정신적 상황의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그 본질을 보들레르, 랭보, 말라르메와 같은 선구자들의 시와 시론에 대한 집중적 해명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해 나가는 것이 이 책의 대략적인 윤곽이다. 우선 지은이는 이러한 현대시인들의 보편적 특성을 ‘불협화와 비규범성’으로 규정하면서, 그 배경을 이루는 이론적 단서들을 루소, 디드로, 노발리스, 그리고 프랑스 낭만주의에서 확인한다.
 
 
인간존재의 해석에 있어서 모든 역사적 전제 조건들을 거부하며 현대적 전통 단절이라는 과격한 사상을 최초로 구체화시킨 루소는 자아와 세계의 필연적인 화해 불가능을 확신하고 비규범성을 자기 해석의 도식으로 삼는다. 특히 노년의 저작인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그는 기계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과거와 순간, 상상력과 현실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내면의 시간 속으로 침잠한다. 그에게 있어서 기술 문명의 산물인 기계적인 시간개념은 가장 혐오스런 대상이다. 반면에 내면의 시간은 억압적인 현실과 문명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시의 성곽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면성의 자기 전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상상력이며, 이것은 19세기 시인들에게서 절대적 상상력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디드로도 상상력에 독자적인 지위를 부여하며 심미적인 능력을 지적, 윤리적 능력보다 우위에 둔다. 그에게 있어서 상상력은 천재만의 것으로서 이념, 선과 악, 진리와 오류 사이의 구분을 뛰어넘어 더 이상 내용적으로 구속되지 않는 순수한 동력에 따라 평가해야 하는 정신적인 힘들의 자기운동이다. 그러므로 시란 애초부터 대상에 대한 진술이 아니며, 자유자재한 은유의 창작과 아울러 극단적 음향을 사용하여 자신을 극단 속으로 내던질 수 있도록 허용받은 감정의 운동이다. 이러한 견해는 보들레르의 시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되며 흔히 추상시라고 부르는 시의 현대성의 근거가 된다.
 
 
루소와 디드로가 말하는바 상상력과 시에 대한 개념들은 독일, 프랑스 및 영국의 낭만주의에서 더욱 강화되며, 낭만주의 시에 대한 해석을 목표로 미래의 시문학이라는 개념을 구상한 노발리스가 그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일상의 삶에 대항하는 방벽이며 예감과 마술을 그 본질로 하는 시적 인간들이 관습의 세계에 맞서서 노래하는 저항이다. 아울러 상상력은 모든 형상을 구성과 대수학적 방식에 의해 서로 뒤섞어 놓는 자유를 누린다. 그러므로 시어는 전달이라는 목표가 없는 자족적인 언어가 되며 수학의 공식과 같이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고 그 자신으로서만 작용한다. 여기에서 현대시의 주요한 특징인 공작성(工作性)의 개념이 생긴다. 정감이 아니라 중성적인 내면성, 현실이 아닌 상상력, 세계의 통일성이 아닌 파편성, 이질적인 것들의 혼합, 혼돈, 모호함과 언어 마술에 의한 매혹,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수학에 비견할 만한 냉철한 작업 방식, 이러한 것들이 보들레르의 시론, 랭보, 말라르메와 현대시인들의 시의 토대를 이루는 바로 그 구조다.
 
 
프랑스 낭만주의를 매개로 하여 루소, 디드로, 노발리스 등으로부터 시와 상상력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여 유럽 최초로 현대시와 예술 개념의 이론을 정립하고 동시에 현대성을 체화한 시인 보들레르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시와 개인의 심정을 철저하게 분리시켰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이후 엘리엇과 여타 시인들에 의해 시 창작의 엄밀성과 타당성의 전제 조건으로 선언된 탈개성화라는 미래의 발전 방향은 보들레르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악의 꽃≫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들의 주체는 결코 보들레르 자신의 경험적 자아가 아니며, 현대성을 대표하는 중성적인 자아가 시 창작의 주체가 된다. 즉 개성이라는 우연이 제거되고 현대성이 창작의 주체가 되며, 아울러 정신적인 엄격성과 청명한 예술가 의식이 이러한 창작 방식의 불가결한 전제 조건이 된다. 그러므로 그는 방법상의 끈질김과 철두철미함으로써 현대성의 필연적 산물인 불안, 무출구성, 이상성 앞에서의 좌절과 같은 자신의 내면에 투영된 생의 국면들에로 진입해 들어가서 시인으로서의 운명을 감내하며 자신의 창작 방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천착함으로써 개인적인 심정의 도취에 빠지지 않으려는 의도를 철저하게 관철시킨다. ≪악의 꽃≫은 이러한 방식에 따라 건축공학적으로 구축되었으며, 현대시에 있어서의 형식의 힘을 극도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형식의 힘은 장식 내지는 관행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며, 극단적으로 불안한 정신적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추구되는 구제의 수단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고도로 형식화된 언어로의 변형을 통한 고통의 정화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현대성이란 무엇보다도 황량한 대도시의 뒷골목, 창녀, 돈의 추악함, 아스팔트, 인공조명, 범죄, 소란한 군중 속의 고독이며 증기와 전기로 작동되는 기술과 진보의 시대다. 하지만 불협화음적인 대도시의 형상은 그에게 오히려 강렬한 자극이 된다. 그것들은 가스등과 황혼, 타르 냄새와 꽃향기를 결합시키며 또한 욕망과 비탄으로 가득 차 있는 역설의 세계다. 그러나 대도시의 범속성에서 생겨난 그러한 형상들은 시적인 변용을 통해 범속성이라는 죄악을 치유받게 되며, 여기에서 추의 미학이라는 현대시의 한 특성이 확인된다.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한 대도시 문명에 둘러싸인 시인 존재의 저항 의식과 그 표출 방식에서 생겨난 이러한 추의 개념과 더불어 불협화의 미, 주체로부터 심정을 배제시킴, 비규범적 의식 상태, 공허한 이상성, 탈사물화, 언어의 마술적인 힘과 절대적인 상상력에서 생겨나서 수학적 추상성과 음악의 운동 곡선에 접근하는 신비로움. 이런 것들에 의해서 보들레르는 미래의 시에서 실현될 방향을 예비했다.
 
 
현대 문명에 대한 저주 가운데서도 체계를 만들 수 있었던 보들레르와는 달리 랭보에게 있어서 저주는 혼돈이 되었고 마침내는 침묵이 되었다. 무어라 해명할 수 없긴 하지만 질서 정연하고 엄격한 형식에 따라 구축되었던 ≪악의 꽃≫의 긴장들이 랭보에게서는 절대적인 불협화가 된다. 그의 시의 목표는 미지의 것에 도달함이며, 불가시적인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음이다. 그의 시의 현실을 넘어서는 폭발적인 돌진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폭발적인 욕구 자체의 방출이며, 그 결과 현실을 탈형상화해서 내용 없는 긴장의 극만을 남긴다. 시적 직관은 의도적으로 파괴시켜 버린 현실을 꿰뚫고 공허한 비밀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무의식의 혼돈에 내맡기는 이러한 경험은 20세기의 초현실주의자들이 랭보를 그들의 선구자로 보는 이유다. 종교적, 철학적, 신화적으로는 더 이상 해명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은 그 공허함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충격을 가하는−보들레르의 경우보다 더욱 강력한−긴장의 극이다. 현실은 그 불충분함으로 인해 공허한 초월과 대비되어 경험되기 때문에 초월에의 열정은 현실성에 대한 무목적적인 파괴를 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파괴된 현실성은 이제 현실 전체의 불충분성과 아울러 미지의 것에로의 도달 불가능에 대한 혼돈의 표지가 된다. 현대성의 변증법이라 불릴 수 있는 이러한 경향은 랭보를 훨씬 넘어 유럽의 문학과 예술을 규정한다. 피카소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그림이란 파괴의 총합이다”라고 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미지를 향한 채울 수 없는 열정으로 기지의 것을 파헤치고 낯설게 만드는 방식을 일관되게 고수하는 이러한 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굳이 대답하자면 그러한 시는 과학적인 계몽, 기술적ㆍ경제적 힘의 장치들이 자유를 조직화하고 집단화시킴으로써 자유의 본질을 죽여버린 역사적인 상황에서 비규범적인 언술과 상상력의 독재를 통하여 정신의 자유를 구출하려는 극단적인 시도로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말라르메는 예술적 상상력의 본질은 현실의 탈형상화에 있다는 보들레르 이후 정립된 견해를 완결 지음으로써 예술적 상상력에 존재론적 토대를 부여한다. 아울러 시 자체의 모호함뿐 아니라 시에 대한 협소한 이해로부터의 탈피와 관련해서도 그는 존재론적으로 입증한다. 왜냐하면 예술가 존재와 예술에 대한 성찰 사이의 통일은 이제 그가 절대적 존재와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해 사색함으로써 드높은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절대의 영역과 언어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고자 한다. 하지만 그곳은 결코 행복의 장소는 아니다. 거기에는 진정한 초월도, 신들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창작과 사색은 경험적인 세계에서 존재론적 보편성에로의 방향이 아니라 그 역으로 진행된다. 그의 시는 꽃병, 까치발 테이블, 부채, 거울 같은 단순한 사물을 소재로 한다. 이것들은 탈사물화되고 부재 속으로 밀려 들어가 불가시적인 긴장의 흐름을 담는 그릇이 되는 한편 이들을 지칭하는 말을 통하여 그 어떤 표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에 의해서 사물의 의미는 예기치 않게 증대된다. 왜냐하면 저 불가시적인 긴장의 흐름이 그것들 속으로 매우 깊숙이 스며들어 단순한 사물은 온통 비밀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물에 적용된다.
 
 
이와 같이 말라르메는 개념적인 설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절대 존재, 무를 가장 단순한 사물들에 각인시켜 수수께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친숙한 것에 근원적인 불가사의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비록 낯선 영역으로 빠져든다 할지라도 영혼이 그 앞에서 전율하게 되는 말과 형상에 의한 비밀의 노래인 시가 탄생한다. 낯설기는 하지만 말없이 끌어당기는 울림 속에서 그의 시는 정신이 현실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주목하고 자신의 추상적인 긴장의 유희 속에서 마치 수학 공식들을 대할 때와 유사한 지배의 만족을 경험하는 자리, 즉 무형의 고독한 내부 공간으로부터 진술하는 것이다.
 
 
정신 내지는 그 어떤 중심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이러한 내부 공간은 세세하게 구분될 수 있는 감정들이 아니라 이성 이전의 것인 동시에 이성적인 힘들이며 꿈과 같은 정취일 뿐 아니라 냉정한 추상성을 동시에 포괄하며 또한 그 통일성이 시적 언어의 진동의 흐름 속에서 인지되는 총체적 내면성을 말한다. 이와 같이 말라르메는 노발리스와 포가 개척했던 길, 시의 주체가 초개인적인 중립성으로 나아가는 길을 계속 이어간 것이다. 모든 실재를 절멸시키는 그의 시는 그만큼 더 강력하게 언어의 형식화된 미를 환기시킨다. 형식에 대한 말라르메의 이러한 견해는 18세기 이래로 시작되었던바, 진리로부터의 미의 분리가 완결되었음을 확증하고 있다. 이러한 절대 형식의 미는 무의 순간에서조차도 로고스, 즉 인간존재의 위엄의 광휘가 꺼지지 않음을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시를 지배하는 기본 유형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성립되었다. 이러한 유형은 독일인 노발리스와 미국인 포로부터 예감을 전해 받았던 보들레르 이후 그 윤곽이 드러났으며, 랭보와 말라르메에 의해서 시가 도달할 수 있는 극한의 경계 지점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징후들은 프랑스를 비롯하여 스페인,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후계자들에게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이들 시인들의 정신적 상황을 관통하는 것은 기술 문명, 상품 시장, 노동 소외, 집단적 강요에 의해 지배되고 산업혁명과 더불어 인간적 영역을 최소한으로 축소시켜 버리는 시대의 부자유로부터 오는 고통이다. 시대의 경향에 맞서서 극단적인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이러한 시는 또한 그 시대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들 시인들의 창작 행위는 근대화 과정의 모순에 대항하는 개인적인 생산양식, 즉 물량화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의 질의 회복이고, 합리화된 시장 체계 속에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감정의 피난처를 마련함이며, 삶의 파편화와 개인의 단자화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과정의 내면화이기도 한 것이다.
 
 
지금까지 ≪현대시의 구조≫의 윤곽을 개괄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모더니즘 시학의 고전인 이 책에서 옮긴이는 무엇보다도 모더니즘의 기본 개념을 거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산문이라기보다는 운문에 가까운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그만큼 더 생생하게 현대시의 본질에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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