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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신구문화사(5)
2019년 02월 27일 13시 21분  조회:1277  추천:0  작성자: 강려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신구문화사(5)
 
미국편 / 공동번역: 이태주 성찬경 민재식 김수영 (1965년)
 
데오도오 뢰스케(Theodore Roethke) 
 
 
비가(悲歌)  
 
상자 속에 깨끗하게 들어 있는, 연필들의
   냉혹한 슬픔을,
편전지(便箋紙)1)와 문진(文鎭)의 비애를, 마닐라식(式) 서첩(書帖)
   과
고무풀의 모든 비애를,
말쑥한 공동장소(公同場所),
쓸쓸한 응접실, 실험실, 교환대(交換臺)의 적막을,
대야와 물병의 변함없는 비창(悲愴)을,
식자인쇄기(植字印刷機) 종이집게, 구점(句點)의 예배식(禮拜式)을,
생명과 물체들의 끊임없는 중첩(重疊)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공공건물의 벽에서, 밀가루보다도
   곱고,
규토(珪土)2)보다도 위험한 먼지가, 살아서,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지루한 기나긴 오후를 두고, 체로 치듯이
   떨어져서,
못과 가냘픈 눈썹 위에 고운 박사(薄紗)를 늘어
   뜨리며,
옅은 머리카락과, 이중(二重)의 백발(白髮) 섞인 권위
   있는 얼굴에  명반수(明礬水)3)를 바르는 것을 나
   는 보았다.
 
1) 편전지: 편지지  2) 규토: 석영을 주성분으로 하는 흙. 유리나 도자기를 만드는 재료
3) 명반수: 백반을 풀어 녹인 물. 살충제로 쓰인다.
(김수영 번역) 
 
 
불의 형상
 
1
이것이 무엇인가? 살찐 입을 위
  한 요리접시.
누가 말하고 있는가? 이름 없는
  낯설은 사람.
그는 새인가 나무인가? 누구나
  가 다 말할 수는 없다.
 
물은 멀어져 가서는 거미들의 명
   인(嗚咽)1)이 된다.
낡은 대형평저선(大型平底船)은 검은 바위를
   넘어서 덜컥거리며 간다.
목쉰 고래떼가 부르고 있다.
                                                1) 명인(嗚咽): 우는 목구멍
 
 
 
 
 
 
여기서부터 나를 낳게 하라. 골
  격(骨骼)들은 더 이상 무엇을 허락할
  것인가?
바다는 바람에게 젖을 줄 것인
  가? 두꺼비가 들에 싸인다
이 꽃들은 모두가 독치(毒齒)2)다. 격분(激憤)
  아, 나를 위로해 다오.
무당이여, 나를 잠에서 깨우라,
  우리들은 썩은 지팡이의 춤을
  출 것이다.
                                     2) 독치: 썩은 이
 
니판암(泥板岩)3)이 풀어진다. 니회(泥灰)4)가 벌판
   에까지 퍼진다. 조그마한 새들
   이 물 위를 지나간다.
정신이여, 좀더 가까이 오라.
   이것은 다만 하양이(?)의 모서리일 뿐
   이다.
나는 개들의 행렬을 보고 웃을
   수가 있다.
             3)이판암: 점토가 굳어져 이루어진 수성암(水成巖) 4) 니회:물에 갠 석회
 
성숙의 시간에는,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
알콜은 언덕 밑에서 마음이 뒤숭
  숭하다.
어머니, 어머니, 당신은 비애의
  동굴로부터 분기(奮起)하시오.
 
미천한 입이 물을 핥고 있다. 잡
   초야, 잡초야, 나는 너를 얼마
   나 사랑하고 있는가.
정자(亭子)는 한층 더 서늘하다. 잘 있
   거라, 잘 있거라, 귀여운 벌레
   야.
따스함이 소리 없이 온다.
 
2
눈이 어디 있는가?
눈이 다래끼 속에 있다.
귀는 여기
머리카락 밑에는 없다.
코를 찾으려고
내가 옷을 벗었을 때,
거기에는 다만
한 줌의 장소,
지점(止點)의 월츠를 위한
한 짝의 구두만이 있었다.
 
편형두(扁形頭)5)의 사나이를 위한 시간. 나
   는 그 경청자(傾聽者),
상투어(常套語)와 고무 도오나스를 가진
   사람,
무릎에서 녹아 버리는, 정맥류(靜脈瘤)6)의
   공포를 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경애하는 젊은이여,
   나의 신경은 당신을 알고 있어
   요.
당신은 나의 그림자를 떼어 놓으
   려고 왔나요?
어제 밤에는 나는 혓바닥의 홈 속
   에서 잤다.
은빛 물고기가 나의 특별한 속박
   물 속으로 뛰어들고 뛰어 나오
   고 하였다.
나는 성명(姓名)의 예배식(禮拜式)과 연체동물
   의 조간수(助看守) 노릇에는 싫증이 났
   다.
육교를 넘어서 나는, 또 하나의
   겨울의 뱀과 벽지(僻地)까지 왔
   다.
두 다리를 한 개의 새로운 노호(怒號)
   의 지평선을 찾고 있었다.
바람은 바위 위에서 스스로를 날
   카롭게 하였다.
한 소리가 노래하였다,
                      5) 편형두: 널고 평평한 머리 6) 정맥류: 정맥 자루(정맥이 혹처럼 확장된 상태)
 
땅 위의 쾌락은
음성을 갖지 않고,
불안한 사람을
쉽사리 발광시킨다.
소용돌이같이 잠긴 연니(軟泥)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부주의한,
  사람은
입에 발이 감겨서,
구두보다 더한 것을 버리게 되는
  사람은,
 
배와 코 위의
개구리 모양으로
빨아들이는
니회지(泥灰地)에서 퉁겨 나오려면
옷을 잡아당기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고기는 나를 먹는다. 누가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는가?
석영(石英)의 어머니여, 당신의 말은
  나의 귀속으로 몸주림치며 들
  어온다.
음탕한 속삭임이여, 불빛을 새롭
  게 하라.
 
3
 
쌍살벌이 기다리고 있다.
   모서리는 중심을 먹을 수는 없다.
포도가 반짝인다.
   길은 뱀에게는 거의 아무 말도 안
   한다.
눈(眼)이 파도에서 나온다.
   살로부터의 여행이 제일 멀다.
장미는 거의 동요하지 않는다.
   신분후견인이 어두운 길로 온다.
 
4
 
해맑은 도랑이여, 잡초와 도랑의
작은 고기들의 세계로 나를 따라 더 멀리
   되돌아오라,
때마침 창로(蒼鷺)7)는 하얀 집 위에 높이 떠 있
   었고,
조그마한 개들은 은빛 분화구(噴火口) 속으로 미
   끄러져 들어갔다.
때마침 나를 위한 태양이 모래알의 각면(各面)
   을 반사시켰다.
그리고 나의 의지는 처음으로 몸을 떨고 있
   는 꽃봉오리를 넘어서 펼쳐졌다.
                                                                  7) 창로: 왜가리
 
그 대기와 햇빛. 희고 반짝거리는 빛의
   격렬한 여름의 외침.
시내 속의 가시랭이8) 붙은 널판들과 모든
   능금들,
언덕 위의 아름다운 암탉,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는 격자(格子)담.
죽음은 아니었다. 나는 단순한 졸음 속에
   살고 있었다..
손과 머리카락은 깨어나는 꽃들의 꿈을
   뚫고 움직이고 있었다.
비는 동굴을 향기롭게 하였고 비둘기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꽃들은, 도랑 속의 꽃들은, 스스로 고개 
   를 숙이고 있었고,
사랑은 사랑을 향해서 노래를 불렀다.
                            8) 가시랭이: 풀이나 나무의 가시 부스러기
 
5
 
전체의 공기(空氣)를 가질 것!
빛, 꽃 머리 위로
내려오는 넘쳐흐르는 듯한 태양,
천천히 돌아가는 덩쿨,
액화(液化)해 버릴 듯한 느릿느릿 고개를 드는
   달팽이.
최초의 적막 속에서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천천히 침상에서 일어나는
장미꽃 옆에 있을 것.
이른 아침의 햇빛 속에서 점점 뚜렷해지
   는 시크라멘의 엽맥(葉脈)을 볼 것,
그리고 다갈색 부들에서, 솟아오르는 안개
   를,
잔광(殘光), 호수의 수면 위에 남은 광채(光彩)를 응
   시할 것.
태양이 수목이 덮인 섬 뒤로 멀어졌을 때,
배 젓는 이들은 숨을 쉬고, 조그마한 배
   는 조용히 뚝 쪽으로 흘러가는 동안에,
우뚝 세워진 노(櫓)에서 미끄러지는 물방울을
   지켜볼 것.
흡사 갑자기 물을 부어서 변죽까지 가득
   찬 불투명한 꽃병이,
모서리까지 꽉 차서 떨고 있기는 하지만
   넘쳐 흐르지는 않고,
여전히 속에 들은 꽃을 간직하고 살리고
   있는 것처럼,
그 빛이, 흔히 우리들이 알지 못하고 있
   는데도, 떨어져서 충만되어 있는 것을
   알 것.
 
(김수영 번역) 
 
 
죽어가는 사람
 
1
 
    그의 말
     (사람이 죽음을 창조하였다.)
                      - W.B. 예이츠
 
죽어가는 사람이 쭈글쭈글해진 피부를
바라보면서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나의 영혼은 가제 소금간을 한
가죽 모양으로 달리기 위해서 걸려져
   있다.
내가 다시 그것을 쓸 수 있을지 의심스럽
   다.>
 
<이미 행하여진 일은 다시 닥쳐오게 마련
   이다,
살은 뼈를 돌보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의 입맞춤이 장미꽃을 활짝
   벌린다.
나는 죽어 가는 사람이 알고 있듯이
영원이 지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은 그가 죽을 때, 죽음의
   가능성을 안다,
나의 심장은 세계와 더불어 요동한다.
나는 그런 마지막 물건,
노래를 배우고 있는 사람이다.>
 
2
 
   지금은 무엇
 
죽어가는 불빛 속에 잠겨서
나는 내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
   였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한다.
나는 입어 본 일이 없는
납(鉛)의 무게를 입는다.
 
죽음을 내포(內包)한 장소를,
진흙, 함뿍 젖은 숲은,
내가 살아 남아 있는 것을 생각나게 한
   다.
나는 무재주한 사람
바야흐로 순간이 늙어 간다.
 
나는 살을 태워 버린다,
사랑 속에서, 활기에 찬 오월 속에서.
지금, 창문이 흐려지자,
나는 나의 눈길을 그녀의 것과는
다른 형상(形象) 위에 돌린다.
 
나의 의지가 가장 악화된 밤에
나는 감히 모든 것에 질문을 던져 보았
   다.
그러면 그에 응해서 같은 대답이 나온다.
문을 두들기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찾아온 사람은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3
 
    벽(壁)
 
의식적인 마음에서 나온 어떠한 유령이
문지방에서 신음하고 있는가? 다시 태어
   나려고 갈망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등 뒤에 있는 자태(姿態)는 나의 친구가
   아니다.
나의 어깨 위에 놓인 손은 뿔로 변한다.
나는 나의 일을 하고 있을 때, 다만 이
   조그마한 어둠에 열중하기 위해서
나의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피견물(披見物)의 메마른 테두리를 거절하
   지만,
어떠한 감각적인 눈이,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서
문지방 건너에 기대고 있는 순수한 형상
   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완만한 성장은 참아 내기 힘든 일이다.
거슴츠레한 그림자 속에서 나오는 자태(姿態)들
   이 와글거릴 때,
모든 감각적인 사랑은 무덤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벽(壁)이 들어섰다, 너는 벽을 사랑하지 않
   으면 아니 된다,
끝없는 밤을 노려보고 있는 광인(狂人),
육안에 보이는 것을 격노(激怒)하는 정신은.
나의 어둠이 밝아질 때까지 나는 홀로 숨
   쉬고 있다.
새벽은 하얀 것이 있는 곳이다. 허나 태
   양(太陽)의 뒤에 눈부신 어둠이 있을 때
누가 새벽을 알 수 있겠는가?
 
4
 
    광희(狂喜)
 
지난날 나는 단 한 그루의 나무에 환희(歡喜)를
   느꼈다.
풀어진 대기는 어린아이처럼 나를 뛰어
   놀도록 하였다-
나는 세상을 사랑한다, 세상보다는 더한
   것을 나는 원한다,
혹은 내면의 눈의 잔상(殘像)을.
살은 살에다 소리를 지르고, 또 뼈는 뼈
   에다 대고 고함을 친다.
나는 이 생명 속으로 절명(絶命)한다, 혼자이
   면서도 혼자가 아닌 나는.
 
그것은 신을 부활시킨 그의 고통이었던
   가?
나는 아버지의 살가죽이 움츠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얼굴을 돌렸다, 거기에는 딴 사람이
   있었다,
모서리를 타고 걸어가면서, 수다스럽고,
   무서움을 안 타는 다른 사람이.
그는 새가 날지 않는 대기 속에서 새처럼
   떨었지만,
굳이 어느 곳에서나 그의 시력을 고착시키
   려고 하였다.
 
물고기는, 그들의 필요에 따라 물고기를
   먹고 산다.
나의 적(敵)들은  나를 갱생(更生)시키고, 그러면 나
   의 피는
마음 편한 고독 속에서 보다 더 천천히
   고동(鼓動)한다.
나는 상처를 드러내고 굳이 피를 흘리려
   고 든다.
한 마리의 새를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그것은 날기 시작한다.
매일 매일의 죽음을 통해서, 나는 이처럼
   살아났다.
 
모든 광희(狂喜)는 위험한 일이다.
나는 너를 본다, 사랑아, 나는 너를 꿈
   속에서 본다,
나는 꿀벌 소리를 듣는다, 격자(格子)담의 윙윙
   소리를,
그러면 그 게으른 윙윙소리는 노래가 된
   다.
숨소리는 다만 숨소리다, 나는 대지를 가
   졌다.
나는 나의 죽음으로써 죽어가는 모든 것
   을 벗어 버리게 될 것이다.
 
(김수영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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