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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8)
2019년 02월 27일 15시 04분  조회:890  추천:0  작성자: 강려
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8) 
 
 
첫번째 노래(8)
 
(8) 달빛 아래서, 바닷가에서, 벌판의 외진 곳에서, 쓰라린 상념에 잠겨 있으면, 모든 사물들이 노랗고, 아리송하고, 환상적인 형태를 띠어 보인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오고 다시 오며, 모양도 가지가지로, 납작하게 땅에 붙어 달린다. 그 시절, 내가 젊음의 날개에 실려갈 때는, 그것이 나를 꿈꾸게 했고, 기묘하게만 보였는데, 이제는 길이 들었다. 바람은 나뭇잎들 사이로 빠져나오며 나른한 음으로 신음하고, 부엉이는 그 장중한 한탄가를 노래하며, 듣는 자들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한다. 그때, 개들이 발광을 하며, 사슬을 끊고, 먼 농가에서 도망쳐나온다.1) 놈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벌판을 내달린다. 갑자기, 놈들은 멈춰 서서, 불덩이 같은 눈으로, 사납게 파고드는 불안에 싸여, 사방을 둘러보고는, 마치 코끼리들이 죽기 전에 사막에서 그 긴 코를 절망적으로 들어올리고, 무기력한 귀를 내려뜨리며, 마지막 시선을 하늘에 던지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개들은 무기력한 귀를 내려뜨리고, 고개를 쳐들고, 무서운 목구멍을 부풀리며, 때로는 배고파 울어대는 아이처럼, 때로는 배에 상처 입은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때로는 아이를 낳으려는 여인처럼, 때로는 페스트에 걸려 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처럼, 때로는 숭고한 곡조를 노래하는 처녀처럼, 번갈아가며 짖기 시작한다. 북쪽의 별들을 향하여, 동쪽의 별들을 향하여, 남쪽의 별들을 향하여, 서쪽의 별들을 향하여, 달을 향하여, 멀리서 보면 거대한 바위들과 비숫한, 어둠 속에 누워 있는 산들을 향하여, 저희들이 폐부 가득 들이마시는, 저희들의 콧구멍 내부를 붉게 타오르게 하는 차가운 대기를 향하여, 밤의 정적을 향하여, 부리에 쥐나 개구리들, 새끼들에게 줄 맛있는 산 먹이를 물고, 비스듬히 날아 저희들의 콧등을 스치는 올빼미들을 향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산토끼들을 향하여, 범죄를 저지르고 말을 달려 달아나는 도둑을 향하여,2) 히스 덤불를 휘저으며, 저희들의 피부를 떨게 하고 이빨을 갈게 하는 뱀들을 향하여, 저희들 자신마저 두렵게 하는 저희들의 짖음 소리를 향하여, 저희들이 턱을 한 번 거칠게 눌러 으스러뜨리는 두꺼비들을 향하여(왜 두꺼비들은 늪에서 멀리 나왔을까?). 부드럽게 흔들리는 이파리 하나하나가 모두 저희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그 영리한 눈을 고정시켜 알아내고 싶은 신비일 뿐인 나무들을 향하여, 그 긴 다리 사이의 줄에 매달린, 달아나려고 나무 위로 기어오르는 거미들을 향하여, 낮 동안 먹을 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지친 날개로 둥지로 돌아오는 까마귀들을 향하여, 바닷가의 바위들을 향하여, 보이지 않는 선박들의 돛대에서 비치는 불빛을 향하여, 어렴풋한 파도소리를 향하여, 헤엄을 치며 그 검은 등을 보이고는 이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커다란 물고기들을 향하여, 그리고 저희들을 노예로 만드는 인간을 향하여, 그러고 나서, 놈들은 저희들의 피투성이 다리로, 도랑을, 길을, 발을, 풀과 가파른 돌무더기를 뛰어넘어, 다시 벌판을 달리기 시작한다. 마치 공수병에 걸려, 그 목마름을 가라앉히려고 드넓은 못을 찾는 것만 같다. 놈들의 깊어지는 울부짖음은 자연을 무섭게 한다. 지체된 여행자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묘지의 친구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찢고, 피가 흘러내리는 그 입으로 그를 먹을 것이다. 왜냐하면 놈들은 이빨이 망가지지 않았으니까. 야생동물들은 감히 놈들에게 다가가 그 인육의 식사에 끼어들지 못하고, 몸을 떨며, 까마득하게 달아난다. 몇 시간 후,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기진맥진한, 초주검이 된 개들은, 혀를 입 밖으로 늘어뜨리고,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이놈 저놈이 서로 덮쳐들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서로 천 조각으로 찢어발긴다. 놈들은 잔인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흐릿한 눈으로,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네가 침대에 누웠을 때 벌판에서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 이불 속에 몸을 숨기고, 녀석들이 하는 것을 가소롭게 여기지 말라. 너처럼, 나처럼, 얼굴이 창백하고 길쭉한 그 밖의 다른 인간들처럼, 녀석들한테도 무한에의 채울 길 없는 갈증이 있단다. 그렇더라도, 네가 창 앞에 서서, 제법 장엄한 그 광경을 관상하는 것은 허락하마." 그 시간 이후, 나는 죽은 여인의 소망을 존중한다. 이 욕구를 채울 길이 없구나! 들은 바에 따르면, 나는 남자와 여자의 아들이다. 놀라운 일이다 --- 그 이상이라고 믿었건만. 그런데, 내가 어디서 왔건,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게 내 뜻대로 되는 일이었다면, 나로서는 차라리 그 배고픔이 태풍에 버금하는 상어 암컷과, 잔인성을 인정받은 호랑이 수컷의 아들이 되고 싶었으리라. 이렇게 악독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를 바라보는 너희들아, 나에게서 멀어지라. 내 숨결은 독기 서린 입김을 발산한다. 내 이마의 초록빛 주름을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어떤 큰 물고기의 등 가시와 비슷한, 또는 해안을 덮은 바위와 비슷한, 또는 내가 머리에 다른 색깔의 머리칼을 이고 있었을 때, 내가 자주 훑고 다녔던 알프스의 가파른 산악과 비슷한, 내 앙상한 얼굴의 불거진 뼈를 본 사람도 없다. 그리고 나는 뇌우가 치는 밤중에, 두 눈을 이글거리며, 머리칼에 폭풍의 채찍을 맞으며, 길 한복판의 돌맹이처럼 외톨이가 되어, 인간들의 거주지 주위를 배회할 때, 굴뚝의 내부를 가득 채운 그을름처럼 새까만 비로드 한 조각으로, 내 낙인 찍힌 얼굴을 가린다. 지고의 존재가 강력한 증오의 미소를 띠며 나에게 썩은 그 추악함을 눈들이 목격하게 할 수는 없다. 매일 아침, 태양이 온 누리 자연에 건강에 좋은 환희와 열기를 퍼뜨리며, 남들을 위해 떠오를 때, 내 표정은 미동도 없는데 나는 사랑하는 내 동굴의 안쪽을 향해 쭈그리고 앉아, 어둠이 가득한 공간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포도주처럼 나를 취하게 하는 절망에 빠져, 내 강한 손으로 내 가슴을 해하며 갈기갈기 찢는다. 그렇지만, 나는 느끼겠다. 내가 공수병에 걸린 것이 아니구나! 그렇지만, 나는 느끼겠다, 나만 유일하게 고통받는 자가 아니구나! 그렇지만, 나는 느끼겠다. 내가 숨을 쉬고 있구나! 제 근육들을 시험하며, 그것들의 운명을 생각하다, 이윽고 단두대에 오를 사형수처럼, 나는 내 밀짚 침대 위에 서서 눈을 감고는, 몇 시간을 고스란히 바쳐, 고개를 천천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린다. 나는 곧장 꺼꾸러져 죽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나의 목이 같은 방향으로 더는 계속해서 돌아갈 수 없을 때,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려고 멈출 때, 나는 동굴 입구를 덮고 있는 두터운 가시덤불이 어쩌다 드물게 남겨놓은 틈 사이로 삽시간에 지평선을 바라본다.3)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아무것도 --- 나무들이랑, 길게 줄지어 공중을 지나가는 새들이랑 소용돌이치며 춤추는 벌판 말고는 그것이 나를 어지럽게 한다. 피와 뇌수를 ---도대체 누가, 모루를 치는 망치처럼, 내 머리 위에 쇠막대를 박아대는가?
 
1) 뒤카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에는 당시 또돌아다니는 개떼들이 많았다고 한다
 
2) 이 말 탄 도둑들 역시 우루과이의 추억과 연결될 것이다. '가우초 모테로'라고 불리는 원래 산악지대의 목동들이었던 이 도둑들은 미국의 서부극에도 자주 등장한다.
 
3) 동굴 속에 갇힌 '나'의 행태는 플라톤이 동굴 신화로 표현하는 인간의 지적 조건에 대한 알레고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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