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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심상운 시론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심상운
2019년 03월 01일 21시 00분  조회:1018  추천:0  작성자: 강려
사단법인 <한국 현대시인협회> 2008년 여름 세미나 주제발표 원고 (수정보완)
  
단선구조(單線構造)의 세계에서 다선구조(多線構造)의 세계로
- 21세기 ‘하이퍼 시’의 이해를 위하여
  
 
                                                        심 상 운 (시인)
  
 
1.
2008년은 한국현대시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해다. 1908년 잡지 <소년>에 발표된 최남선의‘해(海)에게서 소년에게’를 시발점으로 출발한 한국의 현대시는 10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일제 강점기, 해방, 남북분단, 6,25전쟁, 경제건설,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를 거치면서 시의 영역에서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현대시는 시대적 이념의 시, 개인적 서정시에서 전통적 서정시, 사회계층에 대한 시, 모더니즘의 예술적 감각의 시, 주지적 관념의 시, 언어실험 시 등 시대적 사회적 예술적인 변화에 대응하여 시의 공간을 대폭 확장시켜 왔다. 그리고 민조시(신세훈), 디지털 시와 하이퍼 시(김규화, 심상운, 오남구), 공연시(신규호), 디카시(이상옥) 등 새로운 시의 형태를 정립하고 있다. 현대시의 이런 변화 속에는‘전통 언어의 계승과 변화’(민조시),‘언어와 실체의 관계’,‘시와 독자의 소통문제’(디지털 시, 공연시, 디카시) 등이 들어있다. 따라서 시에 대한 고정관념의 해체와‘시의 구조(構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설정은 중요성을 더 한다. 
20세기 한국 현대시들은 시의 구조에서 공통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한국 현대시의 구조가 대부분 단선구조(單線構造)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 단선구조의 시는 시의 길이에 관계없이 한 편의 시에 하나의 시점(단일 시점)만 존재하면서 하나의 이미지 또는 하나의 메시지(의미)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 시를 말한다. 아래의 시를 읽어보자.
  
 
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이고
엿듣고 있다. 
- 박목월 <윤사월> 전문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언 먼 젊음의 뒤안 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국화 옆에서> 전문
 
이 두 편의 시 속에는 인물(눈먼 처녀, 내 누님)이 들어 있지만 그 인물들은 시의 시점을 변화시키는 인물이 아니다. 박목월의 <윤사월> 속의 눈먼 처녀는 시적 화자(詩的 話者)의 관찰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눈 먼 처녀의 행위 속에 들어 있는 정서는 화자(시인)의 주관적 인식과 감성의 표출일 수밖에 없다. 만약 화자와 처녀가 독립적인 존재로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연출 된다면 단일시점에서 다시점으로 시점의 변화가 가능해 질 것 같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속의‘내 누님’은 비유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단일시점으로 고정된 화자의 사유와 감성에 더 밀접해 있다. 따라서 이미지의 독립적인 면이 박목월의 <윤사월>의 눈 먼 처녀보다 약하다. 작품 예시는 안했지만“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맨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이라고 시 속에‘그’라는 인물을 삽입하여 정서를 객관화시키고자 했던 유치환의 <깃발>도 단일시점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이런 단선구조는 선명한 메시지와 이미지의 전달, 주제의 제시이라는 면에서 독자들에게 현대시의 고정된 틀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시의 정체(正體)도 시인의 주관적인 정서 표현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게 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조향의 <바다의 층계>나 문덕수의 <철원 노동당 당사>와 <마릴린 몬로>는 선명한 메시지와 이미지의 전달, 주제의 제시라는 단선구조의 틀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거기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낡은 아코오딩은 對話를 관 뒀습니다.
  
----여보세요! 
  
<뽄뽄다리아> 
<마주르카>
<디젤․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受話器 
여인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란 기폭들. 
  
나비는 
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조향<바다의 층계(層階)>전문 
 
남쪽 북쪽의 불벼락을 맞아
지붕 기왓장 문짝 모두 휴지처럼 날려가버린 유령이네
반세기를 앓는 벽은 3층 윤곽만 남았네
태극기 인공기 번갈아 내걸려 펄럭이었을
그날의 불먼지, 벽귀퉁에서 시나브로 날려 떨어지는 문틈에는
바람에 실려 남북을 넘나드는 자잘한 잡초의 씨알들만 걸려
꽃 피네
  
부석사 무량수전*에 박힌 의상대사 지팡이에서 움튼 선비화에
나비 앉네 
----문덕수 < 철원군 노동당 당사> 전문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선비화禪扉花로 피었다는 설화가 있음
 
마릴린 몬로가 호텔을 노크한다
제 유방 하나를 떼어 벽에 걸어 놓는다
  
마릴린 몬로의 떼가 몰려 온다
제 혼자 혹은 손잡고 어깨동무하고
혹은 휴대폰을 걸면서
종로에서 브로드웨이에서 인천국제공항에서
메뚜기처럼 뛰면서
금방 부화한 바닷가 모래밭의 자라새기처럼
  
마릴린 몬로의 노란 버스
마릴린 몬로의 빨간비행기
마릴린 몬로의 분홍 SST
마릴린 몬로의 파란 자전거
마릴린 몬로의 녹색 트럭
  
유방이 없는 마릴린 몬로가
고층빌딩 한 개 씩 들고 몰려온다
-----문덕수 <마릴린 몬로> 전문
 
 
조향과 문덕수 시의 공통점은‘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다. 그들은 이질적 이미지의 과감한 결합 즉 하이브리드(hybrid)를 통해서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조향의 <바다의 층계>는 연결고리(링크)의 기능이 형성되지 않은 단순 이미지의 병렬적 결합을 통해서 주관적 정서와 의미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하고 있으며, 문덕수의 <철원군 노동당 당사>는 이질적인 이미지의 결합 (사실적 이미지 + 난해한 이미지) 즉 의식의 중층구조를 통해서 다선구조의 세계를 형성하려고 한다. 의식의 중층구조는 이 시의 끝부분 <바람에 실려 남북을 넘나드는 자잘한 잡초의 씨알들만 걸려/꽃 피네//부석사 무량수전*에 박힌 의상대사 지팡이에서 움튼 선비화에/나비 앉네>에서“꽃 피네”와 “선비화에 나비 앉네”의 링크(link)가 만들어주는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으로 형성된다.“꽃 피네”에 링크하여 “선비화에 나비 앉네”로 건너뛰는 의식의 비약이 현실을 초월하는 하이퍼(hyper)인 것이다. <마릴린 몬로>에서는 마릴린 몬로의 다양한 이미지의 집합을 통해서 현대인의 내면에 들어있는 다양한 욕망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마릴린 몬로는 여성 이미지의 환유(換喩)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집합된 이미지들은 서로 논리적 맥락이나 인과를 맺지 않는 당돌한 결합이라는 점에서 독립성을 갖는다. 이 시에서도 “마릴린 몬로”는 연결고리(링크)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시 속에 수평적 네트워크(network)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이 시가 단선구조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드러낸다.
조향과 문덕수가 시도한 단선구조의 세계에서의 탈출은 그들의 시에서 의미의 단절 또는 의미로부터 해방과 함께 시의 공간이동을 보여준다. 이 공간이동은 그들의 시를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형이하의 세계에서 형이상의 세계로, 의미의 세계에서 영상(이미지)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그들의 이미지 결합 방식은 김춘수의‘무의미 시’의 기법과는 다른‘시의 무의미화 기법’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대시가 지향하여야 하는 시의 정체(正體)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기법의 제시다. 따라서 언어의 링크 기능을 통한 하이퍼(의식의 건너뛰기, 초월)의 구현을 보여주고 있는 문덕수의 <철원군 노동당 당사> 는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출구를 여는‘디지털 시 또는 하이퍼 시’의 선구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평가된다.
  
 
2. 
21세기의 한국현대시의 대표적인 시운동‘디지털 시’또는‘ 하이퍼 시’는 현대시의 구조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 변화는 현대시의 정체에까지 영향을 주는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는 급격한 생활환경의 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21세기는 20세기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어려웠던 공간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다. 그 공간 변화의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 발달과 개인 소유에 의해서 확산되는‘사이버(cyber) 세계’라는 또 하나의 생활공간이다. 이 사이버공간은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형성한 개인간의 의사소통, 여론의 수집과 확산, 사무처리, 상업적 거래, 오락 등으로 말미암아 실생활의 공간과 개념상 구분이 되지 않는 공간으로 전위되었다. 따라서 사이버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허상만이 아닌 실제성을 갖는다. 이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TV와 컴퓨터의 공간에 젖어 든 젊은 세대들은 관념적이고 설득적인 현대시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현실과 같은 차원에서 인식하면서, 시를‘의미의 예술’에서‘영상(이미지)의 예술’로 전환하는데 공감하고 있다. 이때의 영상은 시에서 언어영상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20세기의 단선구조의 틀에서 벗어나서 21세기적인 다선구조의 틀을 세우려는 ‘하이퍼 시 운동’은 한국 현대시에서 시대적 조류에 부합하는 시 형태로 부상하고 있다. 이 다선구조는 논리적(인과적)이고 공리적인 선명한 주제의식의 단선구조에서 벗어나 현실과 가상현실의 복합구조를 시에 도입하여 상상의 영역을 넓히고 이미지의 독자성을 시의 중점에 두고자 하는 시의 방법이다. 따라서 이 다선구조에는 엉뚱한 이야기, 돌출 이미지 등이 뒤섞이어서 시의 기본 줄기가 무엇인지 모호해지고 난해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단선구조의 시보다 풍부한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고, 가상현실의 공간, 영상성과 공연성, 자유연상의 이미지 세계를 다양하게 펼쳐준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의 예술적 공간을 담고 있는 시라고 말할 수 있다. 
1965년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테드 넬슨(Ted Nelson)은“하이퍼텍스트는 종이 위에는 손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방법으로 상호 연결된 글이나 그림 자료들의 조직체”라고 했다. 이 조직체들은 컴퓨터 속에서 연결(link)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서로 결속된다. 따라서 하이퍼 시는 기존의 인과적, 순차적, 논리적, 선형적 전개를 거부하고 비인과적, 비순차적, 비논리적 비선형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하이퍼링크가 만들어내는 불연속적인 상상의 가지치기 또는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 전시형태(展示形態)로 작성된 여러 텍스트가 모여서 형성되는 시가 된다. 하이퍼링크의 불연속적인 상상의 가지치기는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땅 밑 줄기인 리좀은 뿌리나 곁뿌리와 다르다. 구근(球根, bulbs)이나 덩이줄기(tubers)가 리좀이다. 이 리좀은 수평형(水平形)이라는 점에서 현대철학(포스트구조주의)에서 중심의 집중에 반대되는 중심의 다양화 또는 탈-중심 체계를 의미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현대 사회학에서는 이런 형태의 사회를 구성상으로는 씨줄/날줄이 복잡하게 얽혀있는‘망상사회’(網狀社會 grid society), 주도적 노선이 아닌 임의적 진전경로로 특징되는‘리좀 사회’(rhizome society)라고 한다. 따라서 리좀은 구조상 위계적이지 않다. 선후(先後)가 없으며, 어떤 점은 다른 어떤 점과만 연결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리좀의 연결은 이질적인 것들 간의 연결이다. 
이런 네트워크 체계를 현대시의 무한상상에 접합하여 응용한 것이 하이퍼 시다. 그러나 전자 하이퍼 시가 아닌 종이에 문자로 표시되는‘문자 하이퍼 시’에는 컴퓨터 속에서 실현되는 하이퍼링크와 같은 기능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종이에 표시되는 문자의 시는 하이퍼 시로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숨어있는 부분이 없는, 텍스트 전제가 노출된 문자 하이퍼텍스트의 시에서는 링크의 역할을 텍스트 속에 들어 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이나 기표의 흐름, 장면의 변화, 소리, 유사한 단어, 구문 등의 반복 그리고 자유연상, 현실과 환상의 교차,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의 넘나듦 등의 다양한 상상과 이미지의 표현방법으로 구현하게 된다. 이런 기능의 확대는 의미(관념)에서 해방된 언어의 자유스러운 쓰임과 가상공간의 무한한 허용이라는 상상의 확산에 의해서 시적인 언어공간으로 구현된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의 시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허구, 즉 기존의 시적 공간을 허물어버림으로써 작품의 주제나 목적성을 지워버린다. 다만 작품의 내면에 숨어서 흐르는 시인의 의식이 시적 생명력의 바탕이 된다. 
 문덕수는 「종이 하이퍼텍스트와 전자 하이퍼텍스트」(월간『시문학』 2008년 4월호)에서 “컴퓨터의 인공언어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은 지향대상(작품의 바깥에 있는 현실의 어떤 세계나 사물)을 시뮬레이트해서, 즉 허구적으로 구성해서 우리에게 보고 듣게 해주는 것과 같이, 우리가 쓰는 언어도 컴퓨터의 인공언어처럼 가상현실을 창조하고, 그리고 그 ‘가상현실’은흔히 우리는 ‘이미지’라고 부르고 있는 그런 세계를 우리에게 체험하도록 해줍니다.” 라고  이미지 세계(시)와 가상현실 세계(컴퓨터)의 동일성을 논증하면서,'종이 하이퍼텍스트 시(하이퍼시) 이론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컴퓨터에서 하이퍼텍스트는 ‘여러 가지 텍스트를 서로 관련시켜 하나의 데이터로 다루는 복합 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텍스트의 특정 부분으로부터 다른 별개의 텍스트를 관련시킬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에서는, 컴퓨터 화면과 유서(user)의 메시지를 접속시키는 ‘시프터’(shifter)라는 이동장치가 있음은 여러분들께서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장치를 이용하여 어떤 한 시행(詩行)이나 센텐스의 임의의 부분에 다른 어구나 시행 또는 텍스트가 연결되어(링크되어), 복수의 텍스트가 상호간에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됩니다. 기존의 시 텍스트나 산문 텍스트는 그 문맥이 선조적(線條的), 일방적 순서로 진행됩니다만, 이동장치인 시프트를 이용함으로써 사용자가 맥락을 자기 시점에서 자유롭게 접속하여 전환하게 됩니다. 시간적, 선조적, 앞뒤의 순서로 진행되는 한 맥락이, 중간에서 전혀 다른 맥락이 가지처럼 붙어서 갈라지고, 다시 그 가지에서 또 다른 맥락의 가지로 갈라져, 이리하여 맥락을 달리하는 많은 복수의 텍스트가 얽혀 하나의 커다란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됩니다. 
  
 
①여자의눈은北極에서邂逅하였다.②北極은초겨울이다.③여자의눈에는白夜가나타났다. 
― 이상(李箱), 「興行物天使」에서 
  
 
‘여자의 눈은 北極에서 邂逅하였다’의 1문 다음에, ‘北極은 초겨울이다’의 2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2문은 1문의 “北極”이라는 맥락의 한 부분에서 갈라져나간 또 다른 맥락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3문은 1문의 “여자의 눈”이라는 주어에 링크됨으로써 원래 문맥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보입니다.(엄밀한 의미에서 제2문도 맥락에서 완전히 일탈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1문의 “여자, 여자의 눈, 북극, 해후” 등의 부분에서 갈라져 또 다른 맥락의 텍스트가 증식되어 하나의 복잡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하이퍼텍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단선구조에서 다선구조로 바꾸는 방법에서 1차적인 방법은 시 속에 제2 제3 화자의 등장이다. 제1의 화자가‘나’라면 제2 제 3의 화자는‘너‘와‘그’가 된다. 소설에서 1인층 시점에서 3인층 시점으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 화자의 변화는 시점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점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를 수반한다. 그러나 단선구조에서 다선구조로 이동하는 방법에는 화자의 시점 변화가 아닌 하이브리드 (hybrid)적인 리좀(이미지)의 연결이나 화자의‘의식의 변화’도 가능하다. 의식의 변화는 실세계와 가상세계의 만남과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의식의 다선구조’라고 한다. 위에 예시한 <바다의 층계>와 <마린몬로>는 하이브리드 적 다선구조의 시이고, <철원군 노동당 당사>는 의식의 중층구조로 이루어진 다선구조의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시 속에 ‘나’만이 아닌 ‘너’나 ‘그’가 들어가서 시상을 전개하는 다선구조의 시는 서정시의 표현형식을 주관적인 독백 형식에서 벗어나게 하고, 화자는 시 속에서 리포터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를 평면적인 구조에서 입체적인 구조로 바뀌게 한다. 따라서 시의 구조는 자연스럽게 서사구조(敍事構造)가 된다. 인물과 환경과 행위가 결합할 때 서사는 발생되기 때문이다. 이때 시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은 시의 캐릭터(character)가 된다. 그리고 시의 이미지는 움직이는 이미지 즉 동영상이 된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 시에 등장하는‘나’와 일반 서정시의‘나’는 입장이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일반 서정시의 나는 시인 자신일 경우가 많지만, 하이퍼텍스트 시의 나는 ‘상상 속의 나’가 되어 시의 캐릭터로서의 나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하이퍼텍스트의 시의 중심이 되는 상상에 대한 고찰(考察)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시인의 목적의식, 의도성과 연관되어서 비유적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상상보다 콜리지(Coleridge 영국의 문예비평가)의 말처럼‘시간과 장소의 서열에서 해방되어서’자유롭게 펼쳐지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공상(Fancy)에 더 비중을 두게 된다. 공상은 어떤 목적의식이 없이 공상의 가지치기를 보여 주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공상의 가지치기는 어떤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가상공간을 제공한다. 공상은 목적의식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난 무목적의 넓은 공간 속으로 시인과 독자를 안내한다. 이것이 순수한 하이퍼텍스트의 세계다. 그러나 삶의 현실을 외면할 때, 시는 관념 쪽으로 끌려들어가게 되고 박제(剝製) 같은 이미지의 그림만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삶의 현실과 하이퍼텍스트의 상상이 어떻게 조화로운 화합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로운 상상과 현실의 조화 속에서 시의 싱싱한 감각이 생동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시를 읽어보자.
 
어두컴컴한 매립지埋立地에서는 새벽안개가 흰 광목처럼 펼쳐져서 나뭇가지를 흐늘쩍흐쩍 먹고 있다. 나무들은 뿌연 안개의 입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아우성치듯 수십 개의 팔과 손 가락을 뻗고 있다.
  
 
그는 봄비 내리는 대학로 큰길에서 시위대들이 장대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끌려가다가 그가 찍어온‘안개 속의 나무들’을 벽에 붙여놓고 식탁에 앉아 푸른 야채野菜를 먹는다. 마른 벽이 축축한 물기에 젖어들고 깊은 잠속에 잠겨 있던 실내의 가구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거린다.
  
 
그때 TV에서는 파도 위 작은 동력선動力船의 퉁퉁대는 소리가 지워지고, 지느러미를 번쩍이던 은빛 갈치의 회膾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싱싱해서 좋다고 떠드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 
----- 심상운 <안개 속의 나무 또는 봄비> 전문
 
 
           자연풍경+사회와 정치적 사건+실내의 식탁 광경+TV 화면’으로 구성된 이 시는 
            1,이미지의 집합적 결합 2,동영상과 공연시 지향 3,영화의 몽타주(montage) 기법 
            4,  가상현실의 구현 등의 기법을 시에 도입하여 제작된 시다. 그래서 네트워크  
            가 형성된 하이퍼텍스트 적인 공간의 시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시의 
            장면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심리적인 이미지로 링크(연결)된다. 따라서 이 시의 맥
            락을 추적해 보면, 시의 내면에 생명의 본능적인 움직임과 갈구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먹는다’라는 행위와‘아우성’으로 표현된다. 안개는 나무를 
            먹고, 나는 야채를 먹고, 여자 리포터는 갈치 회를 먹는다. 안개 속의 나무들도 
            또한 안개의 입 속에서 아우성치듯 팔과 손가락을 뻗고 있고, 시위대들은 구호를 
            외치고(아우성치고) 있다. 
            이 시는 이런 생명현상의 움직임을‘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라는 디지털적 기법
            으로표현한다.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설득적으로 표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법이다. 그래서 영화의 몽타주 기법도 사용된다. 이 시에 나오‘나’와‘그’는 
            시 속의 캐릭터다. 끝부분 <은빛 갈치의 회膾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서 싱싱해서 
            좋다고 떠드는 여자 리포터의 붉은 입이 화면 가득 확대되었다.>는 사이버 공간의 
            장면이지만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이 21세기의 현실감각이다. 그리고 이 장
                    면은 시에서 TV도 등장인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매체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시는 하나의 경로만을 고집하지 않다. 이 시는 하나의 독립된 공간을 보여주고 있
                   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세계를 모사한다거나 어떤 정리된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이
                   루어져 있지 않다. 시 속에 존재하는 것은 실세계와 맞닿아 있는 가상공간이다. 그래서 이 
                   공간은 실세계와의 관계에서 리좀을 형성한다. 이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복제하거나 
                   또는 다른 하나의 의미가 되기를 거부하는 하이퍼텍스트의 공간이다.
         
            4.
다각적인 면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동시적인 배열은 디지털 시대의 감각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 편의 시에서 최소 2,3개의 다른 리좀(이미지)이 들어가는 것을 시의 기본구조로 삼는 하이퍼 시는현대의 생활구조를 반영하는 시형태가 된다. 이 구조변화의 핵심에는 위계적 구조가 내포하고 있는 고정된 관념의 틀을 거부하는 수평적인 다양한 선(線)들(이미지, 사유, 정서)이 들어 있다. 이 선들은 새로운 영토(reterritorialization)를 만들어 내고, 의미작용을 수행하려는 선들도 있지만 자신의 영토에서 탈출하여 미지의 세계로 달아나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하려는 선들도 있다. 이 선들의 움직임으로 인해서 하이퍼 시에는 의미의 연결과 단절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 수평적인 다양한 선들의 움직임은‘가상현실의 보여주기(showing)’라는 디지털 시의 특성과 결합하여 독자와의 새로운 소통형식이라는 측면에서 독창성을 갖는다. 이 하이퍼 시의 소통은 정서와 의미(관념)를 소통의 중심에 놓는 아날로그의 논리적 소통에서 이미지(상상력)와 감성의 소통이라는 디지털적 방식으로 확장된다. 디지털적 소통은 아날로그의‘선택과 집중’‘설득’의 세계에서 탈출하여‘다양한 상상의 집합과 연결’‘가상현실의 세계’라는 디지털 세계의 문을 여는 21세기적 소통이다. 따라서 디지털의 가상현실의 보여주기와 하이브리드(hybrid)를 중심축으로 삼는 하이퍼 시의 다선구조(多線構造)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뿐 만이 아니라 열린 세계의 다양성을 보여주게 된다는 점에서 시적 생명력을 얻는다. 
앞의 서술 내용을 요약하면 단선구조의 세계에서 다선구조의 세계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다음에 열거한 9가지 방법이 유효할 것으로 생각된다.
 
1,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하이브리드의 구현)을 기본으로 한다.
2, 시어의 링크 또는 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를 형성한다.
3, 다시점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캐릭터는 사물도 될 수 있다.
4, 가상현실의 보여주기는 소설적인 서사(敍事)를 활용한다.
5,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현실을 초월한 상상 또는 공상의 세계로 시의 영역을 확장한다.
6, 정지된 이미지를 동영상의 이미지로 변환(變換)시킨다. 
7, 시인의 의식이 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게 한다.
 
8,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가 들어가게 한다.
9, 시인은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를 제작한다.
  
 
이 9가지 방법은 하이퍼 시의 창작방법이 되기도 한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의 하이퍼(hyper)에는 불가시적인 세계를 가시적인 세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무한한 상상의 변화와 에너지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다선구조는 시대적 성향변화에 대한 현대시인의 적극적이며 창조적 대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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