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irony)의 효과
심 상 운
아이러니는 에이로네이아(eironeia)에서 파생된 말로 "은폐" 즉 감추는 것을 뜻 한다. 이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희곡에서 재치를 발휘하여 허풍선이 알라존(alazōn)을 패배시키는 영리한 인물 에이론(eirōn)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를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언어 아이러니’와 ‘상황 아이러니’로 크게 나누어진다. 언어 아이러니는 수사적 아이러니, 반어적 아이러니, 풍자적 아이러니로 분류되고, 상황 아이러니는 극적 아이러니와 일반적 아이러니로 분류할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는 언어 아이러니 중 수사적 아이러니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무지와 겸손을 가장한 소크라테스가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아테네의 여러 사람과 토론할 때, 토론의 끝 부분에서 어리석은 듯한 말로 반박할 수 없는 의미의 질문을 함으로써 상대편이 무지(無知)하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성공한다. 이런 사례에 의해 아이러니에는 '아닌 척 하는', '모른 척 하는"이라는 의미가 더 붙었다고 한다.
반어적 아이러니를 반어법(反語法)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을 엉터리로 하거나,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오히려 "아주 잘 났어"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말 속에는 ‘잘 났다’는 의미와는 정반대가 되는 ‘못났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렇게 겉으로 나타나는 표현(외연)과 실제 속내의 의미(내포)가 정반대인 경우를 반어법이라고 한다.
이런 반어적 아이러니는 1920년대 한용운의「님의 침묵」의 끝 부분에서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송혁(宋赫)은『현대불교시의 이해』에서 이 구절을 “객관적인 현실로는 님은 갔다.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결코 보내지 않았다는 아이러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 님은 없는 것이 아니라 님은 실제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의 해설을 인정하면서 시의 끝부분을 음미하면 이 시의 핵심어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사랑의 노래가 절실하게 다가오고 의미가 확대되는 근원이 반어적 아이러니에 있음을 알게 된다.
김춘수는「시와 아이러니」에서 “소월의 시 「진달래 꽃」의 끝 행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는 아이러니가 되고 있다. 외연과 내포(감추어진 의도)의 긴장상태가 시적밀도를 빚어내고 있다. 이 대목이 이 시의 전체 내용에도 뉘앙스를 주고 있다.”라고 했다. 김춘수의 지적대로 이 끝 구절의 외연과 내포가 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반어적 아이러니를 통해서 시적효과를 상승시키고 있다고 해석된다.
풍자적(諷刺的) 아이러니는 어떤 현상이나 사실에 대한 발언을 슬며시 돌려서 말하는 조소적인 표현. 직설적인 화법이 아닌 기지 넘치는 우회(迂廻)로 현상을 분해하는 특성을 가진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는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일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일부
이 시에는 시인 자신이 스스로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독자들에게 소시민적(小市民的)인 사고방식의 생활에 대한 반성을 유도하고 있다. 사회적인 강자들(땅주인, 구청직원)에게는 한 마디 저항의 말을 못하면서 약자인 이발쟁이나 야경꾼에게 돈 몇 푼에 반항하고 있는 화자 자신의 옹졸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진술이 풍자시의 아이러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극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는 언어보다는 작품의 구조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이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희곡「아가멤논 Agamemnon」에서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면서 자신의 수의(壽衣)가 될 자줏빛 융단 위를 걸어가는 주인공 아가멤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장면은 등장인물은 알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관객들이 알고 있을 때 생기는 극적구조의 아이러니이다. 이런 극적 아이러니는 미국의 소설가 O. 헨리의 단편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기치 않은 결말로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살리기 위한 무명화가의 숭고한 예술혼이 아름답게 그려진「마지막 잎새」의 구성은 극적 아이러니의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일반적 아이러니에는 평범한 독자들의 눈에는 잘 발견되지 않는 진리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숨은 의도가 들어있다. 그 예가 김소월의 「금잔디」에서 발견되는 아이러니이다.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김소월 「금잔디」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가신님과 봄이 되어 소생하는 금잔디를 대립시킴으로써 가신님의 ‘부활의 불가능’을 드러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시인의 의도성이 보이지 않지만 부활의 불가능은 생동하는 봄의 이미지 속에 숨어서 가신님에 대한 그리움을 더 절실하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진실을 표출하고 있다. 그래서 숨어있는 것과 겉으로 드러난 것의 대립적 관계로 구성된 이 시의 구조는 진리나 진실을 드러내는 일반적 아이러니로 인식된다. 이 대립적 구조 속에는 독자들의 사고력을 확장시키는 에너지가 들어있다.
영국 낭만주의 시대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워즈워드의 시「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서」에도 대립적인 구조의 일반적 아이러니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이 어디 있으랴:
그냥 지나쳐가는 자의 영혼은 무디어라
이처럼 감동적인 장관을 두고:
이 도시는 지금 옷을 입고 있구나
아침의 아름다움을; 말없이, 드러내놓고,
선박, 탑, 원형지붕, 극장, 교회들이 누워 있다
들판과 하늘을 향해,
모두들 매연 없는 대기 속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태양은 일찍이 이보다 더 아름답게
첫 햇살로, 골짜기, 바위 혹은 언덕을 비춘 적 없고;
나는 이같이 깊은 정적을 보지도 느낀 적도 없나니!
강물은 제멋에 유유히 흘러간다;
오 하나님! 집들마저 잠든 듯 하네요;
그리고 저 힘찬 심장은 고요히 누워 있고!
----- 워즈워드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서」전문 , 김철교 번역
이 시의 화자(워즈워드)는 이른 아침 템즈 강의 웨스트민스트 다리 위에서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 전의 도시를 보고 “모두들 매연 없는 대기 속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고 낭만적인 영탄의 언어를 터뜨리고 있다. 그 영탄의 언어 속에는 문명과 대립되는 자연에 대한 예찬이 들어 있다. 그래서 C. 브룩스는 해설에서 “이 시는 아이러니를 내장하고 있다”고 했다. 깨어나서 활발하게 북적대는 도시가 실은 가장 죽은 상태이고 오히려 죽은 듯 고요한 순간의 도시야말로 가장 아름답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C. 브룩스의 해설을 받아들일 때 이 시는 문명비판의 시로 읽힌다. 그리고 이 시의 아이러니는 문명(죽음)과 자연(삶)의 대립적인 구조가 들어있는 진실추구의 일반적 아이러니로 인식된다.
아이러니와 유사성이 있는 역설(paradox)은 넓은 의미의 반어적 아이러니에 포함된다. 모순구조의 언어는 표면적인 부조리한 진술 속에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실을 강렬한 인상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역설의 수사법이다. 역설은 언어적 역설과 구조적 역설로 나누어진다. 언어적 역설은 ‘소리 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의 봄’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어둠의 빛’ 등 수사의 언어로 표현되는 역설이다. 이 역설의 수사법은 외연의 표현이 서로 모순되고 상충되는 언어를 보인다는 점에서, 겉과 속의 의미가 정반대이지만 언어표현에서는 모순구조가 없는 반어법과 차이가 있다. 구조적 역설은 작품 내부의 구조가 형성하는 역설이다. 대립적인 사건이나 사물을 영화의 몽타주 방식으로 결합시켜서 거기서 발생하는 이미지가 삶의 진실과 연결될 때 구조적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일반적인 서술형식에서 벗어난 극적인 연출의 역설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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