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함(Ambiguity)
애매함이란 어느 한 가지 의미를 다른 의미들보다 뚜렷하게 하지 않거나, 여러 가지 의미를 암시하도록 함으로써, 신비를 창조하려는 시도이다. 시인은 독자를 시험하기 위하여 애매하게 무언가를 이야기함으로써 독자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에 다소의 어려움을 겪는다. 여러 가지 의미를 암시함으로써 이 과정은 불가피하게 확대된다. 이것이 의도적 애매함이다. 우연한 애매함도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시인이 부주의하게 작문을 함으로써 어떤 시행이나 이미지의 자격을 한정하지 않으면 혼동이나 애매함이 생긴다. 이것은 물론 비난받을 만하다. 그러나 의도적 애매함은 종종 칭찬거리가 된다. 과학논문에서 애매함은 결점으로 생각되지만 문학에서 애매함은 유모어를 만들어내거나 의미를 풍부하게 하거나 인생의 복잡성을 작가가 파악하고 있음으로 보여준다. “말장난”도 우리에게 친숙한 종류의 애매함이다. 다시 말하여 한 가지 이상의 의미가 가능한 단어들을 희극적 효과를 위하여 사용하는 종류의 애매함이다. 말장난은 소리의 유사성을 이용하는 것에서부터 동일한 단어가 다른 경우에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을 이용하는 것, 어원의 관계를 이용하거나 비유적인 관계를 이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많다. 그러므로 적어도 두 가지 다른 의미가 가능할 때나 의미가 매우 혼동스럽고 전혀 불확실할 때 애매함이 생긴다.
서정적(Lyrical)
서정적이라는 말은 원래 서정시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서정시라는 말이 외적인 사건이나 태도보다는 개인의 감정과 정서의 표현을 강조하는 길이가 짧은 시편을 가리키는 용어로 변하였으므로 서정적이라는 용어도 역시 시인의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는 작품을 말할 때 사용된다. 다시 말하여 시인이 홀로 노래하며 우리가 그것을 엿듣도록 허용된 것 같을 때 그 작품이 서정적이라고 한다. 서정시는 여러 가지 형식으로 창작되지만 어느 경우든 자기표현의 강력한 감정을 포함한다. 서정적인 시편들이 반드시 노래로 불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음악적 요소를 지닌다.
발라드(Ballad)
전통적인 발라드는 약 20행에서 150행에 이르는 짧은 서사적 민요이다. 다른 민요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구전으로 전해져 왔는데, 때때로 글로 적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것은 초기의 것부터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통적 발라드는 13세기의 것이고, 15세기의 것은 거의 없으나 그 후의 것은 많다.
내포(Connotation)
내포란 어떤 단어가 전달하는 다양한 암시나 연상 중의 하나를 가리킨다. 대부분의 단어들은 많은 암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가정(home)이라는 말은 단지 집이라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모이는 장소라는 개념을 지닌다. 시인은 자기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위하여 단어가 지닌 암시적 의미를 사용한다. 시인이 독자들의 관심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기를 원하면 그는 적합한 암시적 의미를 지닌 단어를 사용하여 그렇게 할 수 있다. 어떤 암시적 의미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다시 말하여 어떤 사람이 특정한 단어를 볼 때 그는 다른 사람이 갖지 않은 어떤 사적인 감정과 연상을 갖는다. 반면에 어떤 암시적 의미들은 대중적이어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공통된 감정과 연상을 갖는다. “그녀는 데이지 같다”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그녀가 아름답고, 신선하고,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모든 꽃에 대하여 병적인 두려움을 지녔던 독자는 그것을 두렵고 혐오스럽게 생각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암시적 의미를 그의 마음에서 몰아낼 것이다. 물론 어떤 독자도 시인이 사용한 사적인 암시적 의미를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는 단지 일반적인 암시적 의미만을 다룬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신의 사적인 암시적 의미를 배경으로 사용한다. 어떤 단어의 암시적인 의미는 문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암시적 의미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와는 별도로 존재한다.
심상(Image)
심상은 “정신적 그림”을 가리키는 말이다. 심상은 시각화될 수 있는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상은 사물의 외면적 모습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제시된 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포함된 감정과 연상되는 양식을 통하여 인도한다. 실제로 심상의 배후에 있는 의미나 감정의 무게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언어로 제시되는 그림은 사라지고 의미가 주된 요소로 되는 경우도 있다. 추상적인 개념에도 특정한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부여할 수 있다. 시인은 그 심상을 임의로 사용하지만 독자들이, 예를 들면 붉은 십자가로 성스러움을 나타내도록 하는 것과 같이, 그것에 관하여 알도록 한다. 심상의 추상적 의미와 그것의 구체적인 그림 사이의 관계는 보다 애매하고 약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시인이 공작을 언급한다 하더라도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불멸에 관하여 생각하도록 의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공작이 꼬리를 펼치거나 눈을 뜨는 것은 전통적으로 사후의 영혼의 재생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심상은 상징(symbol)일 수 있다. 또한 시인이 물고기를 언급할 때 그는 독자들이 그리스도를 생각하도록 의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물고기와 그리스도가 어떤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을 동일시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그리스어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추상적 의미와 구체적 그림 사이의 연결이 임의적이거나 수수께끼를 포함할 때 그 심상은 상징(emblem)이라고 한다. 16, 17세기에 상징은 종종 수수께끼 같은 작은 도안의 형태를 취했다.
반어법(Irony)
반어법은 단어나 진술의 실제의 의미와 다른 의미의 암시가 대조될 때 생긴다. 의도된 암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 즉 축어적으로 말해지는 내용의 조롱인 경우가 많다. 빈정댐(sarcasm)은 가혹한 반어법으로 대개는 냉혹하고 신랄하다. 반면에 반어법은 가볍고, 희극적이며 장난스럽다. 시인이 반어법을 사용할 때 그는 독자들과 사적인 농담을 하는 것이다. 그 시인은 잘 알고 있는 어떤 일을 다른 것을 말하는 것처럼 읽혀지도록 이야기한다. 이것은 잠시 동안 우리가 시인과 직접적인 동반자 관계에 놓이게 하므로 우리를 기쁘게 하고 심신을 상쾌하게 한다. 이러한 효과는 말로 하는 반어법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나 조직, 또는 전체적인 작품에도 반어법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술 중의 하나이다.
반어법과 빈정댐은 어느 하나를 말함으로써 다른 것을 의미하는 방법이지만 뚜렷이 구별된다. 빈정댐은 그 의미를 반전시키는 데 있어서 보다 폭넓고 보다 의도적이다. 반면에 반어법은 일반적으로 매우 정교하다. 반어법은 초연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극적 반어법에 있어서 등장인물은 자신에게 있는 의미와 선택된 청중에게 주는 의미가 다른 무언가를 말한다. 풍자(satire)는 주체를 우습게 만듦으로써 그것을 축소시키는 여러 가지 문학상의 방법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반어법도 풍자에 속한다.
은유(Metaphor)
은유는 한 사물을 다른 사물에 직접적으로 비유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대체로 비유는 “--이다”(be)라는 동사의 형태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삶은 굶주린 동물이다”라고 말할 때 굶주린 동물은 삶에 대한 은유이다. 만일 어떤 시인이 “내 사랑은 삼지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새다”라고 말하면 그 새는 시인의 사랑에 대한 은유이다. 시인이 은유를 사용할 때 그는 한 대상의 특징이나 연상되는 내용을 다른 사물로 옮겨서 후자를 보다 생생하게 기억하도록 한다. 달리 말하면 은유는 이와 같은 대조를 이룬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으면서 대상들 사이의 유사성을 확립한다. 이와는 반대로 직유(simile)는 “같은”(like)이나 “처럼”(as)이라는 단어들을 사용하여 비유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시인이 “나는 종달새처럼 행복하다”라고 말하면 그는 직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그의 행복을 종달새의 행복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행복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종달새의 행복에 비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간단히 말하여 직유는 어느 것이 다른 것과 “같다”고 말하는 반면에 은유는 어떤 것이 다른 무엇 “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유를 사용하는 비유가 직유를 사용하는 비유보다 대체로 더 미묘하다.
운율(Metre)
영시는 행으로 구성되는데 이 행들은 일종의 운율 양식을 지닌다. 워즈워드의 루시 시편에서는 네 개의 주된 강세와 세 개의 주된 강세를 갖는 시행들이 교차하고 각 행에서도 강세를 받는 음절과 강세를 받지 않는 음절이 교대로 나온다. 어떤 행은 규칙적인 강세의 배열에서 벗어나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작품이든 전체적으로 어떤 운율적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쉽게 파악된다. 그러한 운율적 양식을 운율이라고 하는데 어떤 운율적 양식은 모든 시에 기본인 것으로 생각된다.
운율의 효과는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운율적인 박자의 반복은 듣는 사람의 지각능력을 강화시키고 이해를 용이하게 한다. 운율은 그 시편에서 말해지고 있는 내용에 대한 저항을 줄이기도 한다. 운율은 특정한 단어들을 강조하기도 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기대를 품게 했다가 그 기대가 충족되거나 좌절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하기도 한다. 운율은 시편에서 정서적 통제감, 즉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기분(Mood)
기분이란 어떤 공통된 정서가 만연함으로써 생겨나는 분위기(atmosphere)를 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시편에서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거나 자신의 슬픔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 시의 세계, 즉 분위기를 지배하는 슬픈 기분이 있다. 기분은 시편에 있는 지배적인 색조이며 이 색조는 일련의 정서들의 축적에 의하여 달성된다. 우리는 즐거운 기분이나 슬픈 기분 또는 사랑하는 기분을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하여 모든 종류의 일반화된 정서에는 기분이 있다.
운(Rhyme)
초기의 영시인 앵글로색슨 두운시는 운을 사용하지 않았다. 두운의 전통은 중세 말까지 계속되었다. 12세기부터 운을 사용하고 음절수나 강세에 토대를 둔 운율이 있는 다른 종류의 영시가 나타났다. 이러한 발전은 중세 라틴 찬송가와 프랑스 및 이태리 시의 영향 때문이다. 14세기 이후에는 운이 영시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이 되었다. 완전한 운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단어가 강세를 받는 음절에 동일한 모음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 모음 뒤에 자음이나 강세를 받지 않는 모음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강세를 받는 모음 앞에 오는 자음은 반드시 달라야 한다. 동일하거나 다르다는 것은 철자가 아니라 발음이다. 예를 들어 flee/agree, hand/stand, mother/brother, trippingly/skippingly, great/mate 등은 완전한 운을 이룬다. 그러나 great와 grate는 모음 앞에 오는 자음도 동일하기 때문에 운을 이루지 않는다. 운은 두 개 이상의 단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make it/take it, Bacchus/lack us는 운을 이룬다.
영시에서 가장 많은 운은 소위 남성운으로 이것은 강세를 받는 모음 뒤에 강세를 받지 않는 모음이 따라오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flee/agree, hand/stand 등과 같은 경우이다. 이와 대조되는 것은 여성운으로 이것은 강세를 받는 모음 뒤에 강세를 받지 않는 모음이 따라오는 경우다. 예를 들어 ringing/singing, leather/together 등과 같은 경우이다. 강세를 받는 모음 뒤에 강세를 받지 않는 음절이 두 개 이상 따라 나오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이러한 운은 희극적으로 들리고 실제로 익살스러운 효과를 위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sincerity/prosperity, intellectual/henpecked you all 등과 같은 경우이다.
리듬(Rhythm)
시의 운율은 추상적인 것으로 잠재해 있는 이론적인 양식이다. 운율과 리듬은 구별된다. 리듬은 운율적 양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말로 말해진 단어들의 실제의 움직임이다. 어떤 시편의 리듬이 그 운율과 처음부터 끝까지 같을 수 있지만, 그러한 시는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단조롭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시의 리듬은 이론적인 운율에서 항상 벗어나고, 청중은 그 둘 사이의 대조를 알고 있다. 실제의 영어의 진행과 고정된 잠재해 있는 양식 사이에는 일종의 대조에 의한 강조 효과가 있다.
풍자(Satire)
풍자는 인간의 악덕, 어리석음, 우둔함 등을 경멸하기 위하여 제시하는 기술로서 대개는 교정할 목적을 지니고 있다. 대체로 풍자는 개인보다는 개념이나 제도 또는 정부 등에 대하여 행해진다. 풍자가는 대상을 익살스럽게 취급함으로써 결점을 지적하려고 노력한다.
직유(Simile)
직유는 그들의 본질이 특별히 유사하지는 않은 사물들을 직접 비유하는 것이다. 시인은 주로 “같은”(like)이나 “처럼”(as)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비유하고 있음을 밝히지만 때로는 “보다”(than)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만일 어떤 시인이 “그녀는 새벽 바다보다 사랑스럽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직유이다. 이는 “그녀는 새벽 바다 같다”, 또는 “그녀는 새벽 바다만큼 예쁘다”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제시한 세 가지 경우가 모두 다루어지고 있는 사물이나 사람의 본질을 강화하는 비유로 독자의 주의를 이끄는 직유를 사용한다. 우리는 새벽 바다의 사랑스러움에 함축되어 있는 뜻을 파악함으로써 그 여인의 사랑스러움을 보다 쉽게 느낄 수 있다. 만일 그 시인이 “처럼”이나 “같은”, “보다”와 같은 연결어를 사용하지 않고 비유한다면 그는 은유를 사용하는 것이다.
주제(Theme)
주제는 시편에 전개된 주된 개념이다. 그것은 시인이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이미저리가 향하도록 허용하는 기본 개념이다. 달리 말하여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그 시편의 중심 주제, 즉 주된 개념을 제시하도록 의도된다. 그러므로 주제는 시인이 그 시편을 쓰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주제는 관용어구와 이미저리를 통하여 구체화되는 추상적인 개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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