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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시인 호르헤 우루띠아(Jorge Urrutia), 고독과 고독의 대화
2019년 03월 09일 21시 14분  조회:1763  추천:0  작성자: 강려
스페인 시인 호르헤 우루띠아(Jorge Urrutia), 고독과 고독의 대화
민 용 태
 
오늘 스페인 시는 어느때보다도 다양하고 풍성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바야흐로 스페인의 시의 르네상스가 오는 것처럼 들린다. 사실은 그 반대다. 다양하다는 말은 그렇게 두드러진 목소리가 없다는 말이고, 풍성하다는 말은 시의 대중성보다는 내적인 깊이가 좋아졌다는 말이 된다. 문학의 시장가치는 떨어진 반면 형이상학적 깊이나 내적 진솔성이 신비주의에 가까울만큼 돈독해졌다는 뜻이다.
 
오늘 스페인 문학이나 시를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도 여러가지 시도들이 창작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스페인 내란 이후 20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스페인 현대시는 이데올로기적 좌우 갈등구조에서 시적 체험의 내부화로 색깔을 달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전후 스페인 시는 기독교적 종교시, 르네상스 시대의 목가적 서정시가 유행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후 스페인 시 풍조는 소위 “사회참여시” 혹은 “사회시(la poesía sicial)"가 주류를 이루었다.
 
스페인 전쟁은 프랑코파와 공화당파의 전쟁이었으니까, 프랑코가 승리하고 난 뒤에는 마르크스주의나 민주파가 맥을 못추었다. “프랑코 만세!”를 외치는 극우파의 세상이었으니까. 그런 시인들은 시잡지 “가르실라소(Garcilaso)를 중심으로 16세기 스페인 제국과 황금세기의 문학의 부활을 꿈꾸었다. 프랑코가 16,17세기의 스페인 황금세기(Siglo de oro)를 꿈꾸며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 스페인을 재건하겠다고 큰소리쳤으니까. 거기에 발을 맞춰, 그 황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 가르실라소의 사랑시, 목가시를 모방한 소네트나 신비주의적 시를 흉내냈다.겉으로 보면 사회 정치 도피적 시들로 보였으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프랑코 아부파들이라고 좌파들은 꼬집었고, 정확이 말하면 호세 가르시아 니에또(José García Nieto)가 주동이 된 이들 극우파 시인들은 복고주의 서정시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스페인 시단에 등단한 것도 1970년도 “마차도 시인 형제 문학상(Certámen poético de los hermanos Machado)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우화(Fábula)“라는 시로 시상을 준 심사위원은 좌파라고 할수 있는 레오뽈도 데 루이스(Leopoldo de Luis)시인이었고, 잡지에 내 시를 소개하고 나를 키워준 시인은 금방 말한 우파 시인 가르시아 니에또였다. 그리고 지금 말하는 호르헤 우루띠아(Jorge Urrutia) 시인은 다름 아닌 레오뽈도 시인의 아들인 것. 어떻게 보면 우루띠아 시인과 나는 같은 한 분을 詩의 아버지로 섬긴 자식들이라 할 수 있으리라.
 
사실 우루띠아 시인은 1991년 “불가사의不可思議의 발명(Invención del enigma)”으로 시단에 발을 들여놓았으니까, 나이 40이 넘어 늦둥이로 詩作에 손을 댄 셈이다. 그 동안 기호학이나 문학교수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마드리드에 있는 “까를로스 3세 대학교”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1996년 “항해 허가증으로 준 늑대 대가리(Cabeza de lobo para un pasavante), 2000년에 ”미지의 발음(Una pronunciación desconocida)” 에 이어 오늘 소개하는 “바다, 혹은 사기(詐欺)(El mar o la impostura)”로 유명한 “14회 하이메 힐 데 비에드마 시상 (XIV Premio de poesía Jaime Gil de Biedma)을 수상한다. 2004년 출간된 이 시집은 벌써 3판에 들어갈 정도로 시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시집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디 오딧세이”의 율리시즈의 모험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르띠아에게 산다는 것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바다가 죽음과 고통의 상징이라면 산다는 것은 죽음 위에 떠 있는 위대한 물거품이거나 부질없는 영광 혹은 사기 당하기이다.
율리시즈 같은 위대한 영웅의 항해도 인생도 결국 사라져가는 울부짖음의 기억이나 우울증을 위한 밑밥들이었을 뿐. 다만 거기 유일한 희망은 그 속에서 노래와 말의 금광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나는 내가 죽음의 잿더미 속 곰팡이에서
다시 태어난 불사조임을 고백한다.
거울에서 나를 보면 나에게는 주검 냄새가 난다
나는 끝없이 내 속에 침몰하며 죽어가고 있었기에.
 
새벽의 꽃이며, 네가 나와 함께 왔었지.
그리고 강가 사원의 기둥들 앞에서
나에게 해질 무렵의 색깔을 보여주었지.
나는 오직 그것을 피로 보았지.
최소한도 너는 나에게 활을 당기는 법을 가르쳐주었지.
나는 이따까로 돌아왔다.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평상 일과로 돌아왔다. 나를 씻어주고 향를 뿌려준다.
깨끗한 까운을 걸치고 다닌다. 동이 트면
업무로 생긴 일들을 해결하러 나간다.
 
밤이 되어 눈을 감을 때
사랑스런 페네로페가 나를 껴안을 때
나는 여자들의 얼굴을 본다, 허우적거리는 남자들의 긴 팔을 본다
파도 속에 죽어가며 작별하는 몸짓들을 본다,
이마에 불타는 눈먼 눈길들.
 
"나는 노래와 말의 광맥을 찾기를 갈망한다“
 
우루띠아의 인생은 여행한다는 것. 그것이 율리시즈와 같은 항해여도 모험이어도 여행은 여행이고 여수(旅愁)가 남는다. 그러나 여행이나 여수는 그 자체로서는 체험일 뿐 무명이고 무가치이고 금방 사라진다. 그 삶과 여행이 쓰여졌을 때 비로소 존재가치를 갖게 되는 것. 시인은 논술조에 가까운 서시에서, “나는 오직 동사라는 말일 뿐” 이라고 말한다. 여러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말은 유태인 “레비 사촌”의 기록적인 말에서 영감을 찾는다. 그는 말한다: “안나 프랑크라는 한 소녀의 기록이 그녀처럼 고통을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보다 더욱 우리를 감동 시킨다. 어쩌면 그게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다른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거나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때, 우리 모두는 계속 숨쉬고 살아갈 수가 없을 테니까.”
 
이 말은 기호학적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고 시인은 말한다. 소녀 안나는 그녀의 일기를 통해서 인간의 사악함의 기호가 되었다. 안나는 그 고통을 글로 씀으로서 인간의 사악함과 고통의 상징이 되었다. 안나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안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안나가 없었다면 그녀를 고통에 빠뜨린 사회의 불의나 고통은 인간에게 고발되지 않았을 것. 따라서 시인은 말한다:
 
“그러므로, 소름끼치지만(이 “소름끼치다”는 나의 표현이 맞다), 오직 쓴다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 종국에 남는 것은 오직 쓴 글 뿐이다. 글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루띠아의 “바다,혹은 사기”라는 시집에서는 인생과 여행, 글쓰기가 모두 동의어이다. 거의 이야기투로 쓰여진 이 시집은 모험가, 영웅 율리시즈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똑같은 평범한 생할인의 우울과 무의미가 무체색으로 그려진다. 우울한 것은 우리 모두 행복하기 위해 싸웠고, 행복하고 싶었고, 지금도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존주의가 말하듯 우리는 인생이라는 우연의 사고 많은 길에 내던져진 소경들이다. 우리 인생은 알 수 없는 일들이다. 오랜 세월 기다림 끝에 돌아온 율리시즈를 맞은 페네로페는 말한다:
 
“나는 행복해야 해, 내가 잘 아는 이 모르는 사람이 내게 왔으니까.”
 
우루띠아의 “시의 진리”는 삶의 씁쓸함을 깊은 맛으로 반추한다. “율리시즈처럼 아름다운 여행을 한 자는 행복할지어다 / 로마에 가서 로마를 찾았고,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으니까”라는 아이러니한 말을 자꾸 반복한다. 돈 끼호떼 속에 나오는 산초도 자기 이름이 책 속에 나온 것을 보고 신기해 한다. 또한 행복해 한다. 그러나 율리시즈나 영웅들, 아니면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항상 인생의 결사대인 모든 우리들의 좌절된 꿈과 불안과 공포 쓰라림들, 그것이 행복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진실들이다. 그러나 모든 고통은 끝났다. 이제 그것은 하나의 시, 한 권의 노래집. 우리의 율리시즈는 서사시가 되어 돌아온다. 자신은 “자기 자신의 책의 책이”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이 바로 이따까임을 / 모르고 있었으니까.”
“율리시즈는 어두운 방에 있다
피부에 윤기가 없고 머리칼이 백발이다.
그러나 누가 저것을 알았던가? 누가 그의 인생을 묘사했던가?
그리고 율리시즈는 무엇을 아는가?
그가 한 것은 오직 우울과 우수의 여행이었을 뿐.”
 
호르헤 우루띠아는 오늘 스페인 시의 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동서의 문학과 시의 구분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다른 외국문학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해야 하니까.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의사 감정 소통 부재(incomunicación), 기계화 속에서의 인간 소외, 고독과 우울, 시 쓰기에서 있어서 문학적 텍스트와 나의 실존과의 관계, 이런 것들이 현대시의 화두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진솔한 내면 세계 속에서의 대화.  밤새 누구에겐가 썼던 편지를 아침이면 다 태워버리듯이, 시 쓰기는 구태어 읽어주는 사람을 위한 거라기보다는 자기와 자기의 대화, 그런 위안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의 내면과의 진솔한 대화가 오늘 우루띠아의 시다.
 
사실 요즘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그것은 모든 지구를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수작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이 밥만 잘 먹으면 사는 것은 아니고 그래서 내 속의 그 인간은 더욱 왕따 당하고 그러나 왕따 당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자유일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곳에서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명상하고 생각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즐기는 즐거움이 오늘 시인의 낙樂이 아닐까.
 
1
시인의 역사 / 호르헤 우루띠아
그냥 돌아오려고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처음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 떠나지 않았던 그 집으로.
절름발이가 다 된 불쌍한 신천옹, 새가 다 알 듯이
모든 새의 비상의 둘레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돌아오려고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먼저
꿈의 불룩한 내부의 오목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쳐본 뒤
꿈꾸며 꿈의 길을 왔다.
 
그냥 돌아오려고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온통
살과 눈길, 촉감과 애무가 되어
돌아 온 것.
영웅주의와 결별했다. 그리고
비상의 신천옹은 그냥 나비가 되었다.
그는 말로부터 침묵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조금씩 죽어간다, 다 부서지고 사라져 살아날 때까지.
 
2
역사학
 
다시 한 번 추억을 거리를 밟는다
현재를 찾는 자의 따스한 정성으로.
모퉁이들, 빛들을 찾는다
멀어져간 목소리의 메아리,
그 컵에 남은 진홍빛 입술 자국,
쓰레기통 속 구겨진 종이들을.
 
세월과 함께 쌓여 갈
실낱 같은 사랑 하나
기다리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마침내 모든 쓰레기로 시 하나를 만들기로 한다
잃어버린 모든 시간을 되찾기 위해.

 
3
정복자
 
너의 몸을 만졌다, 몸은 자라나고 있었다.
너의 몸을 만졌다, 몸은 미끌어지듯 빠져나갔다,
서서히 그의 손가락 사이를, 절대 굴하지 않는
손에 쥐려고 하는 물의 저항처럼
물의 밑바닥과 비밀은 끝내 잡히지 않는다.
물의 칼은 물고기 몸이 되어 그의 피를 말렸다.
 
그렇게 빠져나가던 그 먼 너의 물을 뚫고,
액체로 에워싸인 너의 몸에 다달았다.
너의 손을 너에게 놓고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소유란 아무런 행복도 아니라는 것을.
 
4
호텔 방
 
누가 문을 노크했다. 잠에 취해, 벌거숭이로
침대에 있는 그를 급습했다,
그는 제 정신이 아닌 채로, 빠져들었다
그 손의 부드러운 추억 속으로,
그 입술의 따스한 구름 속으로,
그 눈의 물끼 젖은 파닥거림 속으로.
문을 노크했다. 그리고 불분명하던 것이
이제 분명해진다. 시가 벌떡 일어나
우뚝 선다. 그리고 문턱에 서니
여명 저 너머로, 한한 대낮.
 
문을 연다는 것은 참 쉬웠다! 열쇠를 돌리고
손잡이를 돌리고, 그 전에 옷은 반쯤 입고
(시가 새벽의 벌거숭이 모습을 다 드러낸다는 것은
절대 좋은 게 아니다)
 
 
5
외부
 
길을 밟는다. 부질없이 바라본다는 것이
결코 깨달음의 눈을 뜨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안다.
오직 상처만이 여명을 알게 하리라.

손이 더 안다. 너의 살결이 안다
확실한 두 가슴의 둥그런 부피
입술의 한계, 등에 와 닿는
불타는 듯한 손가락들의 깊은 자국들.
 
보지 않고 안다. 하지만
보려고 한다, 눈먼 사람의 포옹 밖에는
다른 눈길이 없다,
안개가 방향을 잃게 한
뱃고동 소리.
 
네가 한 말 하나, 아니면 침묵 하나.
피는 달콤하게 그의 셔츠를 적신다,
그의 왼쪽 옆구리에 혈관이 하나 터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의 맑은 풍경이 있다, 하나의 평원:
노란 선이 지지 않는 해를 향하여
꼬불꼬불 기어간다, 자유롭게, 아주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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