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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옥타비오파스 시론

현대시의 고전, 옥따비아 빠스
2019년 03월 10일 13시 11분  조회:1385  추천:0  작성자: 강려
현대시의 고전, 옥따비아 빠스
 
초현실주의와 동양문학
 
옥따비오 빠스는 현대시의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다. 
 
초현실주의가 사실상 중요한 시인을 산출하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지금의 서양시 일반에 미친 역할은 너무나도 큰 것이다. 일차대전 이후 전위문학의 물결에서 하나의 종합 명제로 나타난 초현실주의 문학운동은 앙드레 브르똥을 비롯한 몇 명의 정치광신자들을 산출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의 전위 문학운동이 다다이즘이나 미래주의, 창조주의, 울트라이즘, 이미지즘을 비롯 어떤 정치 및 사회 위기의식을 도외시하고는 이해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과 함께 서구문학 전통의 뿌리를 흔들어 놓은 계기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때를 틈타 동양문학은 서구문인들의 마음과 글에 주요한 자양분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1913년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의 정의는 퍽 흥미있는 자료가 아닐 수 없다.
 
'하나의 이미지한 한순간의 지적이며 정서적인 일종의 종합체를 제시하는 것이다....그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순간 갑자기 순간적으로 어떤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종합적인 것을 의미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해방된 듯한 그런 순간적인 느낌. 갑자기 우리 자신이 한순간에 부쩍 자라버린 것 같은 느낌을 체험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 말한다.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에 대한 이런 설명은 우리에게 흡사 불교의 선(禪)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선이 그토록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하는 일본의 하이꾸 시인 바쇼는 '일생에 서너 편의 하이꾸를 쓰면 시인이고 열편을 쓴 자는 대가'라는 말을 한 일이 있다. 파운드는 윗 설명의 끝에 이렇게 역설한다.
 
'일생에 커다란 책들을 많이 쓰는 것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더 낫다'고.... 또한 1916년 막스 자콥은 '300페이지나 되는 뻬기Peguy의 에바Eva보다는 일본의 석 줄 시가 나을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한다. 이상 앞뒤 없이 인용한 말들이 별다른 증거가 된다기보다는 그 당시부터 이들 권위문학가들이 얼마만큼 동양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가를 보여주는 짤막한 예라고 하겠다.
 
중략
 
언어해방과 비논리성의 가치
 
빠스의 초기 작품, <언어 밑에서의 자유>를 보면 신낭만주의와 앙가쥬망 사이에서 바장이는 일련의 시들과 함께 인간의 실존과 시간의 문제에 눈을 돌리는 소위 형이상학적인 작품이 흔히 눈에 띈다. 그러나 그가 쉬얼리얼리즘과 접촉이 있던 순간으로부터 그의 시는 언어의 해방과 비논리성의 시적인 가치의 재발견 등 새로운 국면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독수리 혹은 태양' (1949~1950)이나 장시(長詩) '태양의 돌'(1957)에는 아즈텍 문명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초현실주의 수법이 시적인 긴장감을 유지한다.
 
예를 들어 '태양의 돌'의 일절을 옮겨보자.
 
아무 일도 없다. 다만 태양의 눈짓 하나, 거의 움직임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그런 거,
구제할 길은 없다. 시간은 되돌아서지 않는다.
죽은 자는 죽음 속에 응고되어 이젠 다시 죽을 수가 없다.
그대로 그 몸짓 그대로 못박혀 다시 어쩔 수가 없다.
그 고독 속에서, 그 죽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죽음은 이제 그들 일생의 조상.
항상 그대로 있다는 것은 이제 영원히 뜻이 없다.
순간 순간이 지나가도 이제 그것은 영원히 뜻이 없다.
어느 유령이, 왕이 너의 맥박을 지배한다.
너의 마지막 몸짓을 지킨다. 너의 그 두꺼운 탈은
시시로 변하는 너의 얼굴 위에 씌워져 있다.
우리는 어떤 남의, 우리가 살지 않는, 어쩌면 우리와 상관 없는
어떤 삶의 기념물일 뿐. 
(488행부터 503행까지) 
 
시간과 영원과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니면 우리가 죽은 후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아 있는 지금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 하나의 우주의 맥박일 뿐 지금의 이 ''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기념비 같은 것을 시인은 상상한다. 그것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이 시에서 자아에 대한 사고는 짙은 관념의 세계이면서 어떤 인간 실존의 절박한 현실, 즉 타인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자아의 모습을 긴박감 속에 고조시키고 있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남이 되어야 한다.
내게서 뛰쳐나와 남들 사이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내가 없으면 남들도 없는
남들은 내게 완전한 실존감을 준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없다.
항상 우리가 있을 뿐이다.
삶이란 어떤 남의 것, 항상 저 멀리, 아주 멀리
너를 떠나서, 나를 떠나서, 항상 지평선 같은 것
우리에게서 삶을 빼앗고 우리를 남이 되도록 만드는
우리에게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 주고 또 그것을 낡게 닳아지게 하는 그
런 것.
뭔가 되고 싶은 갈증, 오 죽음이여, 우리 모두의 양식이여.
(515행으로부터 524행까지)
 
공기는 공기가 아니다
팔도 손도 없이
목을 조른다
여명은 커튼을 찢는다
도시
부서진 언어 무더기
-<귀향>의 일절
 
항상 우수에 젖은 그의 언어는 동시에 깊은 사념을 깔고 있다. 다음은 시인의 역사 앞에서의 사색을 들어 보자.
 
나의 역사,
그건 하나의 과오의 역사인가?
역사는 과오다
진리는 저것
날짜를 넘어서
보다 그 이름들 가까이,
역사가 미워하는 그 이름들
진리는
역사가 없는 시간의 밑바닥이다
무게가 없는
순간의 그 무게.
 
 
중국시와 일본시의 모방
 
1944년 빠스의 <구름의 조건>의 한 구절은 전위시인 따블라다의 ‘하이꾸’를 모방한 것이 분명하다.
 
시계가 나의 가슴을
갉아 먹고 있다.
독수리는 아니다. 생쥐다.
 
그러나 빠스는 그후 이미지 사용법을 보다 비약시켜서 완전히 서구적인 것으로 둔갑시킨다. 가령 ‘대낮’이라는 <언어 밑에서의 자유>속에 나온 싯귀를 보자.
 
빛은 눈을 깜박이지 않는다.
시간은 分으로 비어간다
공중에 머물은 새 한 마리.
뜰의 나무들 파란 불길
마지막 불이 타면서 튀는 소리가
풀섶에 들린다. 끈질긴 곤충들.
 
이상의 이미지들은 관념어를 쓴다든가 지나치게 먼 비유를 끌어온 점에서 동양시의 전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빠스는 동양시의 병치법 내지 대조법에서 이미지의 비약에 자신을 갖게 된다. 따라서 모든 이미지는 접근만 시켜 놓으면 서로 끌어당기는 자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 페이지에 떨어진

혼돈의 바다 속.
(.......)
헝겊 한 조각에
유령이 나타나는 곳.
몸과 몸을 맞대고:
행동이 된 사념
사랑하는 자는 믿는다:
가득한 그림 복수의 단수의 남의 그림 빈
이것이 스스로의 모습 속에 숨쉰다:
복구한 공간
-<세계의 피부>에서
 
1971년 빠스가 출판한 연가(聯歌)식 연작시 방법은 일본의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4인의 합작시였다. 옥타비오 빠스가 작스 로보, 이태리의 에도아르도 상기네띠, 그리고 찰스 톰 린슨이 1969년 파리 어느 호텔에 묵으면서 즉흥적으로 소네트처럼 각각 한 연씩 써내려간다. 언어는 물론 각자 영어, 불어, 스페인어, 이태리어로 자유롭게 구사한 것으로 이런 시작 방식에서 ‘언어는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보다 더욱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배울 수가 있다고 한다.
 
옥따비오 빠스는 동양에서 옛날처럼 신기한 것을 발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는 ‘우리와 다른 세계상을 알아보자는 것이요, 동양이 하나의 거울이 아니라 다른 인간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창문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빠스가 동양문학에서 찾고 있었던 그 다른 점이란 우리가 빠스의 문학을 대비하면서 느끼는 바로 그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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