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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미국문학 강의 <초월주의>
2019년 03월 10일 13시 23분  조회:2368  추천:0  작성자: 강려
초월주의
 
미대륙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지적 사건 중의 하나는 초월주의다. 그것은 제한된 학파를 넘어서, 하나의 개혁운동을 형성했다. 작가들, 농장지기, 수공업자, 상인, 기혼 및 미혼여성들도 참여했다. 그 정신운동은 1836년부터 약 25년 동안 꽃을 피웠다. 근거지는 뉴잉글랜드의 콩코드 시였다. 그것은 18세기의 이성주의, 로크의 심리학, 유니테리언교에 대한 반발이었다. 정통 청교도주의의 계승자인 유니테리언교는 유일신교라는 이름 그대로 삼위일체설을 부정했다. 하지만 예수가 행한 기적들의 역사적 진실은 인정했다. 
 
초월주의의 근원은 다양하다. 힌두교의 범신론, 신플라톤주의, 페르시아의 신비가들, 스베덴보라(스웨덴의 성서학자이자 과학자로 서구 신비주의의 정상으로 평가된다.)의 신지학神知學(보통의 신앙이나 추론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심오한 본질이나 행위에 관한 지식을, 신비적인 체험이나 특별한 계시에 의하여 알게 되는 철학적, 종교적 지혜), 독일 관념론, 콜리지(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자 사회비평가. 문학평론가로 특히 이름이 높다.) 와 역사학자 칼라일의 저작물 등이 그것이다. 또한 청교도의 윤리적 관심을 계승했다. 신은 선민들의 영혼에 초자연적인 빛을 비추어준다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가르쳤다. 스베덴보리와 유대 카발라주의(중세 유대교 신비주의)는, 외부세계는 정신계의 반영이라고 믿었다. 이런 사상들이 콩코드의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우주에 내재하는 신의 속성이라는 개념이 아마도 그 중심이론을 이룰 것이다. 초월주의 시인 에머슨은 소우주, 즉 축소세계가 아닌 존재는 없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영혼은 세계의 영혼과 일치한다. 물리법칙은 도덕법칙과 맞물린다. 만일 각각의 영혼마다 신이 계시다면, 외부의 모든 권위는 무의미해진다. 한 사람 산 사람마다 내면 깊은 곳에 깃든 비밀스런 신성이면 족하다. 에머슨과 소로는 이런 초월주의 운동의 가장 저명한 인사가 되었다. 이 초월주의의 영향은 롱펠로, 멜빌과 휘트먼에까지 미쳤다. 
 
우리가 살펴볼 이 운동의 대표적 인물은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이다. 보스턴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개신교 목사였다. 그도 선조가 걸어간 길을 따랐고, 1829년 안수를 받고는 유니테리언 교회에 부임했다. 그리고 같은 해 결혼했다. 1832년 그는 아내와 형제들의 죽음에서 촉발된 정신적 위기 끝에 목사직을 버렸다. "형식적 종교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얼마후 첫 영국 여행을 떠났다. 그는 영국에서 워즈워스, 급진파 시인 랜더, 콜리지, 그리고 칼라일과 친분을 나누었는데, 특히 칼라일을 스승으로 모셨다. 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인간형이었다. 에머슨은 일관되게 노예제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칼라일은 지지자였다.
 
고향 보스턴으로 돌아온 뒤, 에머슨은 전국 순회강연에 나섰다. 덕분에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알게 되었다. 강연장은 사람들로 꽉 찼다. 그의 명성은 점점 퍼져나가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까지 알려졌다. 니체는 편지를 보내오길, 자신은 에머슨이 너무나 친숙하게 느껴져서 감히 칭송을 삼간다고 했다. 왜냐면, 니체의 입장에서는 에머슨을 칭송하는 것이 곧 자기를 칭송하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행을 제외하곤 에머슨은 줄곧 콩코드에 머물렀다. 그는 1853년 재혼했고, 1882년 4월 27일에 죽었다.
 
논리는 어느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으며, 진실은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에는 상대를 감복시킨다고 에머슨은 말했다. 이런 그의 신념은 그의 글이 논리적 일관성 대신 단상의 성격을 띠도록 만들었다. 지혜가 깃든 인상적인 문장들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기에, 앞의 글 또는 뒤의 글과 연결되지 않는게 많다. 그의 전기 작가들이 전하는바에 의하면, 연성을 하거나 에세이를 쓸 때 그는 단상들을 메모했는데, 막상 그 순서는 우연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초월주의에 관한 우리들의 탐색도 그런 단상적 성격을 띨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인도인들의 무위로 이끈 범신론이 에머슨에게는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행동을 촉구하는 근거라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의 중심에 신성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믿으면, 그런 힘이 나게 되는가 보다. "당신은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모든 가능성을 시도해야 한다." 그의 정신에 깃든 자비심은 놀랍다. 1845년에 행한 여섯 강연들의 제목을 보라. <플라톤 혹은 철학자>, <스베덴보리 혹은 신비주의자>,<세익스피어 혹은 시인>, <나폴레옹 혹은 세계인>, <괴테 혹은 작가>, <몽테뉴 혹은 회의주의자>, 열두 권에 이르는 그의 전집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의 시집이다. 에머슨은 위대한 지성의 시인이었다.
 
그는 포를, 약간 경멸조로, '수다쟁이'라 부르며 경원시했다. 그의 시 <브라마>(유럽의 낭만주의와 마찬가지로 에머슨을 포함한 초월주의자들 역시 인도철학의 영향을 받았다.)를 읽어보자.
 
만일 붉은 살해자가 자기가 살해했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피살자가 살해당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나의 미묘한 길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지나가고 돌아온다.
 
내게는 먼 것과 잊혀진 것이 가까이 있다.
그들과 햇볕은 동일하다.
사라진 신들이 나타나고,
수치와 명예는 같은 것이다.   
 
나를 도외시하는 자들은 오산이다.
만일 내게서 도망치면 나는 날개이다.
나는 의심하는 자이고,
내가 의심이다.
나는 브라만이 노래하는 찬가이다.
 
강한 신들이 내 집을 동경하고,
일곱 성스러운 자들도 헛되이 동경한다.
그러나 너, 선을 사랑하는 겸허한 자여
나를 찾고, 하늘에는 등을 돌려라.   
 
자연주의 작가이자 시인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했으며, 역사와 동양과 인디언들의 생태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장시간의 계약직에 얽매이는 대신 자급자족의 독자적인 생활을 선호했다. 직접 배와 울타리를 만들었고, 측량기사이기도 했다. 에머슨의 집에서 2년을 살았는데, 그와 외모도 흡사하게 닮아갔다. 1845년, 그는 월든의 인적 드문 호숫가의 통나무집에 은거했다. 거기서 그는 고전을 읽고, 글을 쓰고, 자연을 정밀하게 관찰하며 살았다. 그는 고독을 즐겼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그들이 깨뜨린 침묵보다 더 나은 교훈을 내게 주지 못했다."
그 어떤 전기도 에머슨의 다음의 간명한 언급보다 그를 더 잘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처럼 탈속적인 삶을 산 사람은 보기 어렵다. 직업도 없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고, 투표도 하지 않았고, 납세를 거부했으며, 육식을 하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또한 자연주의자였기에 덫을 놓지도 않았고, 총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색욕, 색욕, 명예욕의 유혹에 넘어가지도 않았고, 소시민의 경박한 행복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의 저서는 서른 권이 넘는다. 가장 유명한 책은 1854년에 출판된 <윌든 혹은 숲속의 생활>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나온 후인 1849년, 소로는 <시민불복종>을 발표했다. 이 책은 간디의 사상과 생애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서두에 말하길, 최고의 정부는 가급적 통치하지 않는 정부로서, 간섭이 적을수록 좋은 정부가 된다고 했다. 따라서 직업 군대와 상설 정부라는 개념을 거부했다. 그는 미국민의 자연스런 발전을 정부가 오히려 방해한다고 믿었다. 그가 받아들인 유일한 의무는 매순간 양심이 명하는 바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법률보다는 자연법에 복종하는 것을 선호했다. 신문을 읽는 것도 의미 없는 짓인데, 왜냐하면 화재나 범죄 소식은 하나만 읽어도 나머지는 모두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사건들을 낱낱이 죄다 알려주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언젠가 토끼 사냥개 한 마리, 털복숭이 말 한 마리, 멧비둘기 한 마리를 잃어버렸는데, 아직도 찾고 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묻곤 한다. 개 짖는 소리를 들은 사람, 말 달리는 소리를 들은 사람, 멧비둘기가 나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내 걱정을 마치 자기 일처럼 나누어주었다."
 
마치 동양의 우화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 같은 이런 글에서 소로의 감성이 짙게 배어 있다. 무정부주의 역사가들은 흔히 소로의 이름을 빠뜨린다. 그 이유는 아마도 평생 동안 일관되게 간직한 그의 신념이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저항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좀 잊혀진 감이 드는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살아생전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시인이었다. 그는 메인 주의 포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 어문학과에서 강의를 했다. 그의 정신활동은 지칠 줄을 몰랐다. 영어로 스페인의 중세 시인 호르헤 만리케(15세기 스페인의 시인, 이 세상의 무상함을 통렬하게 읊은 "아버지의 죽음에 부치는 노래"는 스페인의 시 중에서도 걸작의 하나로 꼽힌다.), 스웨덴의 시인 에사야스 텡네르, 프로방스와 독일의 음유시인들, 앵글로색슨 무명시인들의 시를 번역했으며, 스노리 스툴루손의 <노르웨이 왕가의 역사>의 일부를 시로 지었다. 남북전쟁의 불안한 나날을 지내며 스스로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착수한 <신곡>의 번역은 최고의 영역본으로 꼽힌다. 특히 상세한 주석에는 그의 지적 호기심이 잘 나타나 있다. 1847년에는 육운각의 장시 <에반젤린>를 발표했다. 또한 핀란드 서사시 칼레발리 풍으로 백인들의 도래를 예감하는 인디언들을 노래한 <인디언 영웅 히어와서>도 출판했다. <인생찬가>를 비롯해 <밤의 소리>에 수록된 수많은 시들은 동시대인들의 애정과 존경을 불러일으켰으며, 오늘날에도 여러 시선집에 실려 있다. 지금도 다시 읽어보면, 단지 마지막 손질만 더하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헨리 팀로드(1828-1867)는 초월주의와는 동떨어져서 남부의 희망, 승리, 부침과 최후의 패배를 노래했다. 그는 뉴캐롤라이나의 찰스턴에서, 독일 출신 제본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남부 동맹군 편에 서서 전선에 뛰어들고 싶어했지만, 패결핵 때문에 군인으로 입신하려는 자신의 열망을 접어야 했다. 그의 시에는 열정이 넘치고, 고전적인 형식에 대한 감각이 엿보인다. 그는 38세에 죽었다.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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