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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하이퍼시론

"낯설게 하기 자체가 하이퍼텍스트 "
2019년 03월 15일 13시 45분  조회:1538  추천:0  작성자: 강려
낯설게 하기(하이퍼텍스트)와 분절 



서설 지나 텅 빈다



         오남구



창은 플라타너스 잎을 가만가만 비운다.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북서쪽에서 빌딩의 틈새로 소리가 흘러
조용한 흐름이 느껴져서 깊숙이 손 찔러서 넣은
주머니 속의 만져지는 감촉
매끄러운 동전 한 닢이 따뜻하다.
쨍그랑,
깡통에 한 닢의 소리 던져 넣는 손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서설이 지났다 첫 눈이라도 내릴까
올려다보는 빌딩 사이로 조각난 허공이
찬바람에 김을 불어 넣어 뿌옇다
깊숙이 손 찔러서 넣은 주머니 속의
움켜 쥔 빈손이 텅 빈다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플라타너스 잎이 툭 치고 조용히 흐른다






서론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이미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슈클로브스키가 주장한 용어, 예술은 경험적 감각을 새롭게 하는 것 "시의 효과는 언어를 삐딱하게, 어렵고 날카롭게 ,뒤틀린 것으로 만드는데 있다 " 문학성, 전경화, 문제점 을 차례로 풀어본다.



본론:"서설 지나 텅 빈다".작품을 통해 본 낯설게 하기



1)문학성: 문학을 언어의 특수한 예술 영역 지시적 언어로 본다면 . 이 작품은 화자가 충분히 언어를 손아귀에서 휘두르고 있으며 자유자제로 가지고 논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분절, 행갈이 자체를 파괴하고 있음도 우리는 쉽게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전혀 말이 안 되는 듯 그러면서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문장 전체가 링크되고 있다고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가령 "뿌연 허공"이 지난 초겨울의 첫 눈을 떠오르게 하여(링크되어)두 마디가 그 마디 사이에는 상상하는 공간이 있고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면 과거 현재의 시점이 같이 있다. 이것을 하이퍼텍스트의 비선조적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2)전경화(foregrounding):티냐토프와 무카로브스키가 슈클로브스키의 낯설게 하기를 변용한 이론으로 작품은 여러 가지의 상호작용인데 그 가운데 지배적인 요소를 앞으로 내세워 체계화하는 것 (시에 따른 종속 관계의 재배치)이 작품에서는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는 "서설 지나 텅 빈다"는 문장이 될 수 있겠다. "서설瑞雪"은 상서로운 눈으로 봄이 시작되는 입춘이 지나 내리는 눈으로 경사스러운 길조의 눈으로도 봐도 무난할 것이다. 첫눈이 겨울의 시작 이라면 서설은 겨울이 끝나는 눈인 것이다. 즉 새로운 생성을 기다리는 구도자의 내면을 우리는 읽어 낼 수가 있다. 잎이 다 떨어진 플라타너스의 앙상한 가지에 서설이 내리고 봄을 준비하는 텅 빈 자리를 화자는 빌딩 사이로 난 조각난 허공(하늘을 )보면서 첫눈이라도 내릴까? 첫눈이 내리기를 바란다. (막내 딸 시집보내면서 쓴 작품 )무의식 적으로 화자는 지난겨울 아니 힘겹게 예까지 온(작품세계) 을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서설 지나 텅 빈다 " 이 한 문장이 전경화 되어 화자의 외로움 아니면 앞으로의 더 긴 고독한 여정을 말해 주고 있을지도…….



3)문제점: 감정적 요소의 경시(미학적 근거가 약함)가 자체를 다시 뒤집어 본다. 이 작품에서 보여 주고 있는 화자는 솔직한 개인감정을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전혀 낯설게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미학적 근거가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움켜 쥔 빈손이 텅 빈다
비우며 바람이 분다 가만가만
플라타너스 잎이 툭 치고 조용히 흐른다



마지막 세연에서 화자는 모든 것을 다 놔버린다. 손이 텅 비우고, 그 비운 손을 바람이 가만가만 불어 스쳐가고, 플라타나스 잎이 툭 치고 조용히 흐른다. 이 표현은 불교의 윤회설을 통해 절대자처럼 이 화자는 초월적인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는 구도자 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말하고 싶다.






결론 :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기만 한 날씨가 겨울을 다시 맞는 것 같은 뿌연 하늘을 쳐다보는 그의 우울한 내면을 들어다보면서 그가 40여 년의 세월을 힘들게 걸어 온 여정을 함께 반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면했던 그의 외로운 작품 활동 투쟁의 결과는 지금에서야 빛을 바라고 글 좀 쓴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앞에서 치세우고 뒤에서 짓밟고 닮아 가고자 하는 심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배반하고…….나는 그의 작품을 더 알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그의 "낯설기 하기의 텍스트"를 빠져 나온다. 아니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해서 그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봐야 겠다. 결론적으로 "낯설게 하기"를 통해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들이 이 작품에 다 녹아들어 있지는 않지만 하이퍼텍스트 글쓰기 자체가 낯설게 하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조건이 성립 된다고 본다. 그의 작품을 다루면서 작품이나 그분에 대한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분의 앞날에 서광이 있기를 …….






2



하이퍼텍스트



서론 : 무의미시 뒤집기, 즉 무의미 시는 화자의 관념이 내포해 있다.



본론 : 상대적 심상과 무의미시



1. 상대적 심상



1) allegory,`축자적 심상



, 우언-(寓話) 즉 인격화한 동식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 
. fable-교훈을 내포한 짧은 이야기, 꾸며낸 이야기(거짓말),전설, 설화, 신화
. parable-비유 담, 비유,(성경말씀)
. allegory
a.사전적 의미 allegory -비유 우언 법, 우의소설, 비유 담, 상징
b.실재로 쓰고 있는 allegory-<천로역경>,<페어리퀸>처럼 몇 십 만자, 혹은 몇 만자적인 긴 소설을 얘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교재 "시론" 166p에서 보여주고 있는 -조병화의 의자에서 보여주는 의자 이미지가 allegory(회화)적인 반면 단지 회화성을 만을 강조 했다면 오히려 fable의 더 가까운 해석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fable-산문 혹은 짧은 시가 체로써 아주 짧음과 정갈 함을 강조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위의 사전적 의미로써의 세 가지를 통틀어 우언이라는 공통적인 부분으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나 차이점으로 본다면 parable은 (종교)적인 특색을 가미하고 있기 때문에 allegory 또한 서로 다른 부분으로 해석함이고자 한다.   



2)축자적 심상



축자적(묘사)―서술 하거나 그림, 서술-사물의 생각이나 차례를 쫓아 서술하는 것
allegory(회화)―그림, 그럼 조병화의 의자는 축자적이며,allegory 라는 공통된 부분 즉 "회화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그럼 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의자는  allegory 보다는 fable로 해석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2. 탈 관념으로 가기위한 무의미 시 와 하이퍼텍스트(접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전문



"그"의 이름을 불러 준 명명행위를 통해 '그'의미가 '꽃'으로 확립 되었다. 고 생각하는 관점은 1연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표현과 대비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면 사실 이러한 관점의 근거는 들뢰즈가 지시 작용이라 지칭한 전통적인 의미론 즉 실증주의적인 의미론을 따른 해석이 다고 [함종호]는 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미 김춘수는 프랑스의 상징주의나 미국의 낭만주의로 부터 무의식의 세계를 모방해온 것이라고 본다면 김춘수의 작품세계를 초기 중기 말기로 봤을 때 '꽃'은 초기 시 세계와 중기 시 세계를 잇는 매개체 역할로 봐야 할 것이며 '꽃'이라는 대상물을 통해서 구체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인 관념을 그대로 노출 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아직은 무의미 시로 넘어가지 못했다는 점을 밝히는 부분이다. 김춘수의 말대로 불손함을 보여주고 있는 시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즉 완전한 의식이 없는 순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볼 때 무의미 시로 가기는 아직도 길이 멀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접으면서 단국대학교 국어교육전공 유경진 석사논문에서는 <타령조 기타>를 전후로 전기 시와 후기 시로 나누고 있기도 하다 <타령조 기타>이전의 시들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들인데 반해<타령조  기타>이후의 시들은 관념과 의미가 배제된 무의미 시로 하이데거와 릴케의 존재론을 바탕으로 그 존재탐구 방식을 설명한 논의와 후기시의 경우 전기시가 존재론적 탐구를 통해 추구해온 의미를 해체한다고 보면서 전기 시는"존재탐구의 시"라고 비교적 일관된 평가가 내려지지만 후기시의 논의는 천차 만별이여서 다음 기회가 온다면 계속 공부를 해 보고 싶다는 여지를 남겨 두면서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한다. 또한 유강진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 죽음>(1959)을 끝으로 무의미 시 이전의 시가 청산되고 새로운 무의미 시로의 세계를 열기 위한 실험과 모색을 시작한다고 보고 있다.
시가 바로 <나의 하나님>이라는 시 다.



나의 하나님 -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비,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부드러운 선들이 팔딱팔딱 숨을
쉰다. 에워싸 나를 가둔다. 금시 차다. 단단하다.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수직으로 솟으면서 수평으로 퍼지면서 나무들이 솟아
오르고 녹색이 번지고 빗물이 번지고 속도가 날을 세운다. 빨간 신
호등이 켜지자, 모두 갇혀 버린 빗길, 팔딱팔딱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부러져 떨어진다.
흘깃 보는 ,조각 허공에서 뿌리는 부스러기 무지개



          -오남구吳南球의 [부드러움의 단상] 전문



비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상징화 시켜서 사진 찍듯 접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팔딱팔딱"이란 의성어만을 보더라도 생명이 느껴지고 싱싱한 생선이 살아 뛰는 모습이 그려 질 것이다. 이 빗줄기는 칼날이 되어 날을 세워 수평 수직으로 마구 제멋대로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직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날 안에 시적 화자는 물론 보이는 모든 일상들이 빗길이 휘두르는 날 안에 똑 같이 갇혀있다. 결국 그 화자가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은 팔딱팔딱 수직으로 선 선들이 곡선을 그리다가 제풀에 겨워 결국은 부러지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따끔한 꾸짖음을 느낄 수 있다. 늘 자기 잘난 맛에 자기가 최고라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방방 뛰는 사람들 ,위세 당당한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러는 시인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는 소리 죽여 시인들의 의식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결론



작품을 통해서 무의 시와 하이퍼텍스트 시를 감상해 봤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단지 내 생각은 무의미시는 하이퍼텍스트의 시로 가기위한 어떤 한 가교 역할을 했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전혀 방향이 맞지 않거나 동떨어지지는 않고 공통된 부분을 통해서 업그레이드 된 시론이 하이퍼텍스트시라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는 맞닿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 길만을 고집하며 걸어온 그분들의 문학사적인 체면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시험적인 시작 활동에 있어 무수한 번뇌, 유혹, 모든 것을 뿌리치고 지금 이 자리에 선 것은 문학사적으로 대단한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와 보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오남구의[부드러움의 단상]에서 빗줄기를 통해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비가 갠 허공 속에서 조각난 무지개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화자의 이상은 아니 그의 외로운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음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칼날을 세울 만큼 그의 시 세계에 있어서는 강하고 꼿꼿한 분이지만 그의 심성은 제목이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아주 부드럽고 정이 많은 분이란 걸 밝혀둔다. 인생은 결코 부질없다는 것을 빗줄기를 통해 말해 주고 싶었을까? 어려운 작업을 누군가는 계속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다 지쳐 힘들 때 오아시스 같은 시인을 만나길 기대하면서 급히 길을 빠져 나온다.
 






3
아방가르드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서론
일류역사의 발전과정을 서술하면서 근대에서 탈현대 아방가르드에서 포스트 모더니 즘까지를 서술, 분석 하면서 작품 분석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본론 



1. 시대적 구분 



1)근대 일반 적으로 고대, 중세와 더불어 역사 전개의 한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 넓은 의미의 근대를 18세기 후-르네상스의 (이성 중심)세계관에서 원인이 경제적(자본의), 정치적(민주주의)라는 과정 즉 근대화 과정 역시 마찬가지로 보고 있다.
. 좁은 의미의 근대를 1920년 이후-실제로 역사학자들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15-16세기에 싹터서,17-18세기의 성장과정 거친 후 ,19세기 산업 혁명 시대에 꽃 피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기 이후로 좁은 의미의 그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넓은 의미의 근대만큼은 르네상스 15세기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다른 견해로 보는 근대
. 제1기-19세기 산업혁명에서 완성되는 시기(자유 시장 경제  자본주의)
. 제2기-19세기 말 독점 자본주의 국가 경영에서 비롯된 시기(제국주의 자본주의)
. 제3기-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1940년대부터)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기술발전에
    의 이루어진 시기(다국적 자본주의)



2)현대- 1930년 이후 (19세기말에서 제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3)탈현대-1980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오늘에 이르기 까지를 일컫는다.
2. 작품의 구분 (문예사조)



 1) 아방가르드-아방가르드 운동이 넓게는 낭만주의적 세계관에 토대하여 보들레르와 같은 세기말 사상을 계승한 반이성적, 해체적 예술 운동   
 2) 모더니즘- 고전주의적 세계관에 토대하여 흄의 철학을 계승한 이성적, 구조 지향적 예술 운동
 가. 미국 모더니즘 란 (신학에서 이미 중세부터 시작 )한바 있으나 영미의 문예 이론가들이 20세기에 들어 그들의 특별한 문학 사조 흄(T.E.hulme)의 철학에 영향을 받아 이미지즘, 네오클래식(주지주의.NEO-classic)`을 가리킨다. 엄밀히 말하면 영미의 모더니즘은 유럽의 문학 사조와는 다른 것이다. 
 나.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아방가르드라 부르는 문학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미래파, 표현주의 영미의 모더니즘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3) 포스트모더니즘-유럽의 아방가르드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뒤늦게 미국으로 수입되어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삶을 미학적으로 반영한 문예사조, 즉 미국 화된 아방가르드이기 때문이다.



  가. 포스트모더니즘은 영미 모더니즘을 부정했다는 측면에선 -모더니즘을 부정했다는 논       리
  나. 아방가르드를 계승했다는 측면에선 -영미 모더니즘을 계승했다는 논리가 성립 될 수       있다.
  다. 우리 현대사회에서는 영미 문화적 패권주의자들의 논리를 좇아'모더니즘'이라는      용어에 아방가르드까지 포함 시켜 사용한 것은 잘못이다. 아래와 같이 정리를 해 본다.
.모더니니스트 시인
   해방 전-정지용, 김광균, 김기림
   해방 후 -박인환, 김경린
.아방가르드 시인
   해방 전-이상, 임화, 고한용(삼사문학)
   해방 후- 조향, 김수영(초기),김춘수, 김구용, 이승훈, 오규원
.포스트모더니스트
   1980-황지우, 박남철, 김영승, 장정일, 김혜순 자생적 포스트 모더니니스트
   21세기-문덕수, 이승훈, 오남구



3.작품 분석



1) 탈 관념의‘디지탈리즘시’ 쓰기 " 병치은유



깊은 밤,
몸은 몇 칼로리의 짐승이
불을 켠다.
빗소리가 깊게
몸속을 지나가면서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깜박 깜박이는 신경 어디쯤일까
새파란 의식이 불을 켜고 선
큰 미루나무가 선
밤비
짐승, 환하게 떠올랐다가 캄캄하고
바람 몇 칼로리의 그리움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흔든다.



         -吳南球의<밤비>전문



짐승이 불을 키고, 빗소리가 몸속을 적시고, 짐승이 비를 맞고, 신경이 불을 키고 선미루나무가 있고. 짐승의 환하게 떠올랐다 캄캄하고, 몇 칼로리 바람이 그리움 되어 미루나무 이파리를 흔든다고 문장 전체를 아주 멀리 병치 시켜서 말하고 있으므로 시적 묘미를 더해 주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화자는 깊은 밤중에 혼자서 빗소리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갇혀 있는 몸속으로 빗소리가 흘러 짐승(이성)이 살아나 새파란 의식의 불을 키고 빗소리를 더 가까이로 받아 드리는 것이다. 그 짐승은 때로 환하게 불을 키다가 캄캄한 암흑 속에서 몇 칼로리의 그리움 바람으로 살아나 미루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있는 것이다. 깜빡깜빡 하다가도 그의 의식을 뭔가가 깨우고 있는 것이다. 때로 지쳐 안위하고 싶다가도 차가운 빗물을 통해 의식은 끝까지 살아 저 깊은 내면으로 부터 알 수 그리움이 그의 여정을 여전히 밟아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리라. 미루나무가 비를 맞는 풍경과 바람에 이는 이파리들이 내 힘든 나날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깝게 클로즈업되어 접사되고 있다.



결론



1.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미의 문화론자들이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에 자신들의 문학 사조,즉 이미니즘, 네오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이 유럽 아방가르드까지도 포함시켜 부르기 시작,미국이 세계 중심국으로 부상하면서 그 울타리를 넘어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를 추종한 한국의 논자들까지 풀 수 없는 혼란의 개념 속에서 허우적이며 학계나 문단에서 '모더니즘'론이 끝없는 말장난과 공허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2. 이른바'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도 후자가 전자를 계승하고 있다는 일면에서는 부정하고 있는 입장이다. 예컨대1950년대에 등장하여 미국 포스트모더니즘의 1세대라 불리는'뉴욕파'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초현실주의를 수입한 화가들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지양, 극복하고 그 대신 아방가르드를 계승한 문예사도들인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모더니즘이란 단어 앞에 포스트란 접두사를 붙여 사용하게 된 것이다
3. 국문학을 배우면서 혼란스러운 것은 이렇다 하는 정설, 즉 결론을 내려 주지 못한 부분에 참으로 혼란을 느낀다. 이쪽으로 생각하면 그럴듯하고 저쪽으로 생각하면 그것도 맞는 것 같고 논문을 읽어 가면서도 어떤 사람들 것을 참고 해야 하나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공통적인 부분도 있지만 모든 논문이 그 앞사람들의 책을 참고하고 본인의 생각을 가미 한 거라 혼란스러움만 더 초래 할 뿐이다.



*참고문헌 -오세영 외 지음 [한국현대 詩 사]민음사



*          오남구[이상의 디지털리즘]범우사






4



즉물환타지



서론



융의 원형-인간의 정신 의식 속에 내재한 원형 적인 시적화자를 끄집어내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본론



1.Shadow-무의식적인 자아의 어둡고 열등한 측면 악마적인 것을 얘기한다.



2. Soul
(1) anima-남성의 무의식 내에 존재하는 여성적 측면
(2) animus -특히 여성의 억압된 남성적인 특성(적의, 악의, 악감, 적개심)



3 Persona-인간의 외적 인격이 외부세계와 맺은 자아양상(이성의 능력) 문학 작품의 내레이터(반드시 저자와 동일일 필요는 없다) 즉 가면






해넘이의 부신 해 하나가
서해의 수 천 수 만
물고기 떼의 물속에 빠지자
선명한 분계선을 긋는다.
일시에 선 아래
꿈의 물고기 떼가
눈에다 수 천 수 만
환희 불을 켜고서
동으로 동으로 흐른다.
위에서는 다만
파르르르......,화사한 물고기 떼의
노을 지느러미가 떨고 있다.



      -오남구吳南球의 <해넘이>전문



오남구는 수평선은 의식의 분계선으로서 직관하는 시점이다. 해가지고 나서 동해로 향하는 물고기 떼는 판타지이며, 독자에게 사진을 찍듯이 염사 하여 내면의식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러한 판타지는 시각에 의에 인식한 사물의 영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맹인은 촉각에 의해서, 처음부터 빛을 보지 못한 사람과 빛을 보았던 사람이 서로 달랐다고 말하며 죽은 사람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꿈을 꾸게 되면 빛을 보지 목한 맹인은'캄캄한 허공' 빛을 본 사람은 '하얀 허공'속에서 서로에 대한 어머니의 목소리를 손으로 잡으려고 한다고 그의 시집<첫 나비, 아름다운 의미의 비행>에서 말하고 있다. 꼭 즉물환타지라 일컫지 않는 시라 할지라도 모든 시에는 Persona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탈 관념화된 시는 더 그렇겠고 객관적 대상물을 통한 시는 모두 가면 또 다른 자아를 노래한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시적 화자를 넘어가는 해 A 로 본다면 이 물고기 떼를 독자 혹은 사람들로 본다. 그 분계선은 중립을 지키는 A'해로 보고 싶다. 그 많은 독자 혹은 인간들이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드는 모습은 눈에다 불을 키고 수 천 수만의 물고기 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가 봤을 때 그 물고기 떼들은 다만 선 위에서 파르르 떨고 있을 뿐이다. 시적 화자처럼 중립적이지도 , 인간 이상의 초월적인 것이지도 못한다고 본다.
 
결론



분명한 것은 감히 누구도 쉽게 쳐다 볼 수 없는 그의 시세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면 되는 것이다. 라고 나 또한 감히 건방을 떨어본다. 그는 여러 시세계를 넘나들며 실험하고, 아파하고, 고통 받고, 상처받으며 오늘에 이르러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수제자 이었음을 아는 이는 알고모르는 이는 모른다. 그의 책 "꽃의 문답법" 에 보면 서정주 시인과의 재미 난 얘기가 실려 있다. 다음 기회로 미루고, 여기서 강조 하고 싶은 부분은 모든 시가 또 다른 Persona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싶다. 넓게는 어떤 시인이던 Shadow, Soul(anima, animus) 이런 심상들을 내포한 작품들을 다 가지고 있으며 쓰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작품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과 공간을 매 꾸어 본다.



5



패러디



 Ⅰ 서론



시의 구성 원리를 리듬, 심상, 비유, 상징, 인유, 패러디로 봤을 때, 패러디는 맨 마지막에 시의 묘미를 한층 살려주는 인유와 혈연관계에 놓인 문학 장치라 본다. 패러디가 가지고 있는 시의 매력과 원리, 정의를 제시해 보기로 한다.



 Ⅱ 본론



1. 패러디의 원리(원전)



환한 대낮
활활 옷을 벗고 뛴다.



큰 내가 뛴다.
작은 내가 뛴다.
적당한 내가 뛴다.



어우러졌다가
일렬로 서서 뛴다.



푸른 밀밭



      -오남구吳南球<푸른 밀밭>전문






1)모방(인유)
화자는 밀밭을 인유하고 있다. 키가 작은 밀과 키가 큰 밀이 있다. 또 표준의 키를 가지고 밀이 있다. 그들과 결코 어울리지 못한 것 같지만 그들과 화자는 나란히 어우러져 더불어 크고 있는 것이다.



2)비판, 골계(모순)
화자는 키가 제일 작은 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표준인 밀과 키큰 밀에 결코 뒤지지 않는 당당하고 꼿꼿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당당하게 그들과 맞서 일렬로 뛰고 있는 것이다. 
  
3)변용(창조)
환한 대낮 그것도 활활 옷을 벗고 뛰는 모습에서 이 시의 최상의 부분으로 본다. 그는 결코 음습한 곳이 아닌 환한 대 낮에도 옷을 벗고 뛸 수 있는 당당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단연코 그는 실력 면에 있어서 뒤처지지 않는 면을  읽어 낼 수가 있다. 결론 부분에서 더 얘기를 하기로 한다.



2. 정의
1)인유와 혈연관계
2)Parodia:다른 것에 반대 입장에서 불려 진 노래
 Parodi :모방하는 것, 모방하는 가수
3)적대감과 친밀감을 동시에 지님
4)모방과 변용이 패러디의 기본 개념
5)고유한 문체를 저급하게 주제에 적용
6)풍자적 목적을 위한 채용
7)골계적인 것, 희극적인 것의 강조



*<푸른 밀밭>을 보면 원초적인 '나'가 생명력의 본질이 발동하여 통제와 질서로 부터 일탈하려는 무의식의 '질주'가 일어난다. 이 질주는 감정의 정화로써 관념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탈 관념된 알몸이 막 달리는 본질이다. 화자의 유년기는 아버지로 부터 '-하지마라' '-하라'하고 나 스스로를 통제하고 길들이고 있었다. 내 속에 성장하고 있는 아름다운 사회 관념으로 자리한 '나의 아버지'는 순수 본질의 아버지와 함께 1975년에 쓴 <푸른 밀밭>은 질주하는 성장기의 이런 잠재한 의식이 그대로 나타난다. '적당한'내면의 질서가 '일렬로 서서 뛴다'. 고 화자는 말하고 있다.



                               -오남구吳南球<이상의 디지털리즘>                    






3. 시의 매력



앞에 보여주는 정의 여러 가지 내용들은 시를 한층 돋보이게 혹은 잘 못 사용하면 저급 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몇 가지들은 시의 활력과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또한 시의매력이 숨어 있기도 한다고 본다. 
 



결론



: 이 화자는 <푸른 밀밭>전문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가장 키가 작은 밀에 속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화자에게 누가 되겠지만 외형적으로는 아주 외소하고 볼품없는 모습이다. 이 분의 작품으로 3학점 3학년 전공과목임에도 굳이 이분을 끝까지 고수 하는데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다.
화자를 만난 것은 학기 초에 들어가기 직전 이었다. 원고 청탁을 했었고 우연찮게 나와 절친한 분이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함께 하는 자리에서 별거 아니라고 내미는 시집을 받고, 또 범우사에서 출간한 "이상의 디지털리즘"이라는 이론 집을 받고나서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우다 시피 읽고 또 읽고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하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이론 집을 읽고 난 이후에 그의 시집 <빈자리 X>라는 시집을 대하고 보니 탁 무릎은 칠 수 밖에 없는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왔다. 아 바로 이거 구나, 바로 이 분이구나 하는 나의 시에 대한 부끄러움과 절실함이 움트기 시작했다. 여태 내가 찾던 그런 시었으며 절로 재미가 나서 글이 쓰고 싶어져 미칠 지경이었다. 시간은 내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틈을 주지 않았고 글 또한 만만찮은 그분 눈에 찰 리가 만무했다. 단지 희미한 희망의 실가 닥 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아마도 그분은 기억하시지 못 하겠지만 기초가 탄탄하고 정시인은 오히려 서정적인 시 보다는 모던한 시가 더 어울리는 분입니다. 그 말끝을 놓칠 수 없는지라 틈만 나면 열심히 그분의 시론을 읽고 시를 읽고 나름대로 여기까지 오면서 감히 그분에게 도전이라면 한없이 건방진 거고 그 분을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 분의 시를 대하면서 우습게도 속된말로 신문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잘 나간다는 분들의 시가 넋두리란 생각에 싱겁기까지 했다. 처음에 그분을 전혀 모르고 있을 때 내게 4년여 전에 인터넷상에서 내 글을 보고 프러포즈를 했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고 자신감과 함께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왜 선생님은 세상 밖으로 나오시지 않느냐고 동석한 시인이 말했지만 본래 시인이란 숨어서 글만 쓰는 거라는 말과 함께 정시인도 그러려면 아예 시 쓰기를 집어 치우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걸을라치면 내 어깨정도 밖에는 안 차는 그런 분이었지만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는 넓은 마음과 아버지 같은 다정다감한 마음 씀씀이와 다르게 그의 시 세계는 아주 매섭고 이성적인 번뜩임이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하게 파닥인다. 감히 그 분 앞에서 시라는 표현을 쓰지도 못 한다. 작은 밀(A) 큰 밀 (A')표준의 밀(C)라고 볼 때, 가장 큰 밀을 훨씬 웃자란 밀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고 그들과 더불어 일렬로 서서 뛰는 그분의 심상에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얼마 남지 않는 학기지만 끝까지 이분의 작품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내 마음이 그렇게 시켜서도 아니고 그 분과 또 다른 친분이 있어서도 아니다 단지 여태 방황하던 나이 시세계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차 하는 말이지만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한 얄팍한 내 지식이 그분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늘 부족하고 배우는 입장임으로 많은 도움을 요 하면서 이만 내 생각을 접는다. 
 
 
 
 



6
 
어조와 화자






서론



시적 장치에 있어서 어느 한 쪽 만으로 치우쳐 그 작품을 감상하고 논하기 보다는 개괄적인 감상과 비평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제시해 본다.






본론: 어조와 화자



1)담화 양식으로서의 시
2)개성과 태도
3)풍자
4)어조창조와 시적 장치
5)어조와 시의 양식



이처럼 여러 단계를 통해서 우리는 시를 감상하고 평 할 수 있는 시적 장치'가 있다면 어느 한쪽만으로 치우쳐 그 작품을 감상하고 논하는 것 보다는 개괄적인 감상과 평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본다. 굳이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읽은 다는 건 물론 독자의 몫이라 탓 할 것은 아니지만 배우는 입장에서 내 소신을 밝힐 뿐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어조 부분에서 그것도  <경운동88번지로 간다.>전문을 통해 풍자만을 설명하고자 한다.
 
  461120-10675**오진현吳鎭賢
2002년 12월 29일 57시로 살아 있음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가 파란 신호등이 켜졌다. 뇌세포의 신경
체계가 잘 유지된다. 오늘 경운동 88번지에 도착할 시간 10분 남았
. 잠깐 내 모습의 환영, 팔순 노구가 앞을 멈칫멈칫 가다 쉰다.
말없이 손을 내밀어 잡는다. 이때 번쩍 뇌세포에 녹화된 화면이
켜진다. 2002년 12월24일 밤, 행렬이 거리를 넘친다. 징그러 징그러
노랫소리 질퍽하고, 한 목사가 돈뭉치를 하늘에서 뿌린다. 파
만 원짜리 지폐들 낙엽처럼 날리고 한 무리 병들고 나약한 노구
들이 돈을 향해 허우적허우적 아우성친다.
  띵……, 붉은 전등이 켜진다. 다시 '복제인간 아기탄생!'화면이 겹
친다. 몸이 떨린다. 쾅! 쾅! 쾅! 맥박이 가슴 친다 숨이 가빠지고 정신
없다 인내천 인내천 소리치고 숨을 고르면서 경운동88번지로
가는 탈출구를 찾는다. 쏴아-, 싸늘한 바람, 번쩍,5번 출구의
표시등이 켜졌다. 침략으로 점멸하기 시작하는 신호, -5번 출
,<5번수운회관이 깜빡5수협중앙회로 바뀌었다가 깜빡 5번 수운
회관으로 바뀌었다가 깜빡5아랍문화원으로>바뀐다.
  시련의 점멸하는 동학 수운, 화살표를 바라보며 내 신호 체
게가 경운동88번지로 간다.



            -오남구吳南球<경운동88번지로 간다> 전문



개인적, 역사적, 민족적 심장이었던 상징적인 곳으로 나는 거의30 년 동안을 88번지를 향해가며 보고 느꼈다.<지하철의 길 안내 표가>깜박이며 바뀌어 가는데, 30여 년 전의 세월이 간단히 압축 표현된다. 시인의 시점은 민족 영욕의 역사를 보는 시점이다. 그 이름이 깜박이며 바뀌는 것은 지각없는 민족의식 때문이다. 천도교의 이름이 사라지고 아랍문화원의 이름이 표기되는 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큰 문제이다. 침략 당하고 있는 민족의 상징이다. 오남구의 -이상의 디지털리즘- 중에서



시를 1.2.3연으로 봤을 때 1연에서 이 시인은 경운동88번지가 어떠한 장소였는지 보여 주고 있으며, 경운동88번지로 향해 가다가 신호등 앞에서 팔순의 노구를 통해 문득 30여 년 전의 시간을 만난다. 1978년을 만난다. 그는 역사적인 굴욕을 보게 된다. 그 굴욕 앞에서 2002년 12월 24일 밤, “12월 24일 밤 행렬이 거리를 넘친다. 징그러 징그러 노랫소리 질퍽하고, 한목사가 돈뭉치를 하늘에서 뿌린다. 파란 만 원짜리 지폐들 낙엽처럼 날리고 한 무리 병들고 나약한 노구들이 돈을 향해 허우적허우적 아우성친다”. 모습을 풍자하고 있으며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연에서 다시 깜박이가 켜지면서 '복제인간 아기탄생' 즉 시인의 진짜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30여년을 걸었던 경운동88번지의 탈출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부단하게 이 현실이 싫어서 도망쳐 버리고 싶다가도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익숙한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돌아오는 시간동안 몸이 떨리고, 맥박이 가슴을 치며 숨이 가빠짐을 느낀다. 탈출구를 찾음과 동시에 쏴-바람을 통해서 혼미해졌던 정신에 다시 신호등이 들어 온 것이다. 신호등이 들어 왔음에도 화자는 머뭇거린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긴 하되 시련의 점멸을 동학 수운 화살표를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는 화자의 귀향은 돌아오는 그 자리가 어쩐지 꺼림칙하고 화자가 안식할 수 있는 예전의 천도교의 이름이 사라지고 이국적인 즉 침략을 일삼든 민족의 상징인 아랍문화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결론



여기서 분명하게 이 화자는 지금의 경제 식민지, 문화식민지, 종교 식민지가 되어 가고 있는 아득한 현실 앞에서 다시 한 번 머뭇거렸던 것이다. 이 아이러니하고 풍자적인 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각성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넓게는 자아와 또 다른 자아와의 담화가 들어있기도 하고 독백이 들어 있기도 하고 시인의 개성이 들어 나있기도 하고 시적 장치에서 보여주는 논리적 가치와 심리적 가치도 함께 드러나 있기도 하다. 단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제각기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겠지만 나는 아이러니와 풍자 쪽으로 이글을 바라봄으로써 더욱 시적 가치와 매력을 느끼고 나온다.    
 
 
 7
 
어조와 화자 중에서 퍼소나



서론 : 퍼소나의 다섯 가지 분류와 그에 따른 "화자의 두 가지 주체"를 대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본론



1. 퍼소나



1)개성론과 몰개성론
2)시점 선택
3)시점의 유형(체험시, 배역시, 논증시)
4)객체와 자기풍자
5)화자의 두 가지 주체
(1)화자는 기호에 지나지 않음
(2)포스트 모더니즘의 시각



외진 등산길도 호젓이 걸어 보았고요. 땅굴이며 기지촌 색시
굴이며......들여다보고 또 보고 와서는 ,한강변을 거닐어 보고 두
주먹으로 눈물만 훔치고 또 시골로 가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찾아 냉이도 캐어보고 전봉준이 집도 가보고, 또 보고
끝내는 여치에게 찾아가고 골방 같은 데까지 누구 얼굴을 찾아
보았지요.



나는 5호라는 기호 위를 날아갑니다.



누구 이 얼굴 아십니까<전문>
          -<독자에게>.1



시에 앞서 시詩는 어떠한 것이란 말인가? 빠져 어느 다방에 쪼그려 앉아 성냥개비 다섯 개를 가지고 망수()의 기호를 탁자위에 만들어보고 이 다섯 개의 성냥개비를 쓸어 모아 뿌렸다. 그리고 중얼 거린다.



번 백 번, 수 천 번을 뿌렷을 때에 이런 비슷한 모양도 저절로 나타 날 게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리고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모양이 뿌려질 게야. 기상천외한 수많은 가치 있는 모양도 뿌리칠 게야. 우리는 이 모양을 발견하기만 하면 되겠어



그는 여기서 '시의 발견'시를 쓰는 것만이 아닌 '발견 할 수도 있는 것'으로 못을
박는다. 이 발견은 곧 <시인 자신의 발견이며, 가치의 발견이며, 질서의 발견>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영감을 얻어 디지털리즘에서 사진 찍듯이 시를 찍는다.
                                                -오남구의 이상의 디지털리즘 중에서-



-<독자에게>.1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본인 스스로가 독자가 되어 또 다른 자아에게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외지고 호젓한 등산로 길을 통해서 화자는 혼자 쓸쓸히 외길만을 위해 걸어 온 길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으며 질펀한 기지촌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그 기지촌은 잘 난 시인 들이 득실거리는 현 글 판을 풍자 하고 있기도 하다. 함축적인 시인과 화자가 구별 되거나 일치 할 수도 있는 부분을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자 역시 시인은 많은데 "시다운 시"가 없는 글 판을 질퍽질벅 함께 걸어도 보고 들여다보고 와서는 한강변을 거닐며 두 눈을 훔치기도 한다. 하지만 한강역시 역시 오염됨을 인식한 그는 사계절이 뚜렷한 아직은 깨끗한 시골을 찾아 냉이도 캐어보고 전봉준도 만나보고 골방 같은 데서 <누구 이 얼굴 아십니까> 즉 화자의 또 다른 자아를 찾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한 이 시적 화자는 만족하지 못하고 공간을 훨훨 날아 있는 3차원 아니 그 이상의 세계를 찾아 5호라는 기호를 달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시란 기호에 불과 한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 포스트모더니즘 시 쓰기 맥로한, 델리다를 이어 '하이퍼텍스트'까지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본론에서 말하고 있는 퍼소나의 조건을 모두 함축하고도 남은 작품이라 하겠다. 앞전에도 말했듯이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양상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 인의 많은 제자들은 그를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최근에 잘 나가는 시인들은 모두 이 분의 제자 인 것으로 안다.  그러면서 시인은 외로운 것이다. 진정 이분만이 느끼는 제자가 없어서 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쩜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우렁을 까먹다가 칵 씹히는 게 있어 보니 그 새끼가 벌써 그 우렁 안에서 집을 짓고 살아보지도 못 하고 함께 잡혀서 가족이 몰살당한 그 상황을 봤다. 어쩜 이 시인은 모던 시 쪽에 있어서는 어미 우렁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은 내리사랑은 해도치사랑은 어렵다고 한다.  얄팍한 내 지식이 정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만 내 생각을 접는다.
 
 
8. 미적 거리



거리와 표현 기법



서론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서열화 시키는 걸 좋아한다. 인간-샘물-무기
무기물-샘물-인간 역이든 순차적이든 몇 가지 방법을 제시 해 보기로 한다.



본론



1. 서열의 역전
2. 소외기법
3. 구조와 반구조
4. 환유 시와 비 유기적 형식
5. 불확실성과 새로운 서사 구조



1   
시장 정육점 갈고리에 생고기와 나란히 걸린
가죽,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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