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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분열의 논리 ▲ 무의식의 주체와 시니피앙의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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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타자 ㅡ분석가는 대타자와 소타자의 차이를 철저하게 인식해야 한다. ㅡ소타자는 주체상호간의 관계에서 유사자로 다가오는 타자적 차원으로 상상계에 속함. 반면에 대타자는 언어와 법의 심급으로 상징계에 속함. 대타자는 주체를 상상계적 예속에서 구원시킨다. · “무의식은 언어적으로 구조화 되어 있다”. 은유와 환유는 시니피앙 사슬이 작동하는 기본 방식이자 구조 = 부성은유 = S (I/Φ) · 대타자는 인격적인 심급이 아닌 하나의 장소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말이 구성되는 장소. 장소로서 대타자는 주체상호관계에서 어머니, 분석가, 아버지에 의해 구현되고 점유될 수 있다. · 시니피앙의 보고 ( E, p. 818). ‘아버지의 이름’: 욕망은 여기에 정착하면서 언어화의 가능근거를 얻음 = 상징화의 대가는 억압. · 법의 대리자 : 시저의 이름 (시저가 암살당하면서 이름은 권력화 됨 = 죽은 아버지와 유사) · 주체가 생성되는 공간이자 진리가 확정되는 곳 (E, p. 839). · 대타자역시 결여되고 빗금쳐진 존재. “대타자의 대타자는 없다”. → 대타자의 결여가 욕망을 영속화시키는 원인. 시니피앙은 주체의 실존에 답을 줄 수 없다.1) 상징적 질서의 중심에는 외상적인 요소 (실재)가 자리잡고 있다. · 여성은 절대적인 대타자 (E, p. 565). ※ 남근적 주이상스 (남성)와 대타자의 주이상스 (여성)의 구별 : 세미나 20. “성관계는 없다”. ▲ 정신분석의 윤리 라캉은 욕망을 윤리의 전면에 위치시키면서 그것의 예화로 안티고네를 든다. 정신분석의 윤리는 보편성이나 선에 대한 윤리가 아니라 전복의 윤리. <안티고네의 예> 오이디푸스가 죽은 후 안티고네는 테베로 돌아왔지만 두 오빠는 왕위 계승을 놓고 싸우다 죽고 외삼촌 크레온이 왕위에 오른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만 치뤄 주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왕명으로 장례를 금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그 명을 어기고 몰래 장례를 치러 주다가 감옥(무덤)에 갇히게 된다. 결국 안티고네는 자신이 처형당하기 전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안티고네의 연인인 하이몬-안티고네와 외사촌, 즉, 크레온의 아들입니다-도 자결한다. 또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된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자신의 침대에서 자결하는 걸로 끝난다. ※ 분석쟁점 · 아버지의 이름 (법)에 충실. 크레온이 선포한 국가의 선 (애국심)보다는 죽은 자를 장례지내라는 신의 법에 충실. 라캉의 욕망의 윤리는 선의 윤리가 아니라 선과 대립되는 의미에서 욕망의 윤리이다. · 욕망의 윤리 (안티고네)와 선의 윤리 (크레온)의 대립 : 욕망이 개별적 차원을 강조하고 전복의 미를 중시한다면 선은 보편성과 배제에 기초. · 쾌락원리 (금지와 제한)을 넘어서 주이상스 (죽음)를 향하는 행동. 안티고네의 오빠에 대한 태도. ·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 안티고네의 동생 이스메네는 크레온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타협하며 여성적인 향유 (주이상스)를 포기한다. ㅡ상징계는 욕망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면서 동시에 욕망을 영속시키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욕망은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상징계의 이면, 즉 죽음의 충동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ㅡ욕망은 법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그 너머로 나아가려고 한다. 여기서 법은 순수 금지가 아니라 주체에게 욕망을 부과하는 향락의 형식일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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