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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영혼과 꿈 / 알베르 베겡 저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2019년 06월 30일 20시 28분  조회:1883  추천:0  작성자: 강려
낭만적 영혼과 꿈
알베르 베겡 저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독일낭만주의와 프랑스 시에관한 시론
 
 
 
서문
 
 
 
꿈의 개화 현상
 
밤의 꿈들, 표면에 너무 근접해서 조그만 충격에도 표면으로 드러날 것같은, 낮에도 줄곧 나를 따라다니는 더욱 신비로운 꿈들, 거기에는 여러가지 기호들을 통해 자신의 영속성과 풍성함을 나타내는 또하나의 현실이 있다.
 
 
내가 소홀히 한 것, 망각속으로 사라져버린 것들이 어느날, 뜻하지 않게, 땅속에 묻힌 씨앗이 꽃이나 나무로 자라듯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자양으로 성장하여 변용된 모습으로 거기서 다시 솟아오른다.
 
 
그것은 나 자신보다 훨씬 더 먼곳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져오는 무의식적인 기억 속에, 또는 개체로서의 내 존재의 영역과는 다른 어떤 영역에서 오는 것만 같다.
 
 
 
 
상상력의 세계
 
상상을 통해 표출되는 이미지들은 바로 나의 내부에 있는 꿈을 자극하고 표면에 떠오르게 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에 투사하는 능력을 갖고있다. 또는 사물들이 나의 외부에 존재하기를 멈추고
 
마술적인 그들의 진정한 이름으로 부름받고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위해 생동한다고도 말 할 수있다.
 
 
사상이나 예술작품은 실제로 우리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에 관계한다. 외관상의 개체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 자신에게로 향해진 그부분에 이르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근심밖에 남지 않는다.
 
 
징조와 신호들에 우리자신을 열고, 그럼으로써 한순간 완전히 생소하게 응시된 인간조건이, 그것이 가지는 위험과 전반적인 불안, 아름다움과 실망스런 한계들과 함께 불러일으키는 혼미함을 깨닫는 것이 바로 그 근심이다.
 
 
 
 
 
꿈 신화의 황금시대의 유적인 우리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성인이 된 인간은 사물들, 종이 조각들, 예전에 친숙했던 풍경들과 같은 마술적 잔해의 힘을 빌어, 자신 속 어딘엔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위해 끓어오를 순간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을 일깨우려한다.
 
 
우리의 자애심 자체가 우리에게 깊이 감추려드는 가장 독특한 우리 존재에 대한 인식은, 거울이나 사진이 제공해 줄 수 있는 죽어버린 우리의 초상에서 우리의 얼굴 혹은 어깨에 대한 미지의 이미지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러한 조화 혹은 특수한 법칙을 포착하려면, 시간에 대한 관조를 통해 시간에서 벗어나거나, 귀를 귀울여 모든 것 가운데서 우리의 운명인 이 멜로디를 식별해 내는 방법밖에는 없다.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류가 행하는 , 각 개인의 멜로디가 귀결되는 인류 자신의 멜로디에 대한 탐구이기때문이다.
 
 
꿈이란 말은 한편에서는 미학적이거나 특이한 형이상학적 성격을 띠는 밤의 꿈을 지칭하고, 또한편에서는 관념의 세계보다는 감성으로 채워진 , 안락처를 찾아 나선 정신을 이끄는 변함없는 이미지들의 세계를 뜻한다.
 
 
또 달리는 시인과 신화적 상상력이 한결같이 그들의 부를 길어오는, 먼 과거에서 대대로 이어져오는 무의식적 기억이라는 보물창고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때로는 유령들이 살고있는 위험한 장소이기도하고, 또 때로는 천국을 향해 열려있는 휘황찬란한 현관이기도 하다. 신 자신이 꿈을 통해 우리에게 엄숙한 경고를 전하기도 하고, 대지에 밖혀있는 우리의 뿌리가 꿈에 의해 자연의 풍요로운 품으로 뛰어 들기도 한다.
 
 
예술의 리듬에 영감을 불어넣는 몽환적 삶의 리듬은 별들의 영원한 운행과도, 원죄를 짓기 전에 우리 영혼이 가지고 있었던 원초적인 박동과도 일치한다.
 
 
낭만주의자들은 무의식적 이미지들 속에서, 그것이 비록 병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영혼을 미지의 영역으로 이끄는 길을 찾으려 한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병적 이미지를 정화시켜 지상의 삶에 유용한 것으로 만들려는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 시공 속에서 우리를 우리 너머로 연장시켜 현재의 우리존재를 무한한 운명의 선 위에 찍힌 한점으로 만드는 모든것의 비밀을 거기에서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제1장 낮에서 밤으로
 
낭만주의자들은 꿈이나 또다른 주관적인 상태들을 통해 자신 속에 침잠함으로써 우리의 의식보다 '더 우리자신인' 우리의 부분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일한 앎은 내적 심연으로의 침잠을 통한 앎, 개별적인 우리의 리듬과 전 우주적 리듬의 일치를 통한 앎,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닌 어떤 실재에 대한 유추적인 앎이다.
 
 
1. 켜진 촛불
우리의 무의식적 기억과 향수는 우리가 육체화되어 생리적으로 개인이 되는 탄생의 신비에 앞서는 어떤 존재의 무엇인가가 우리 속에 계속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2. 지상의 미로
이중적 충동- 광활한 공간에 대한 갈망과 칩거생활에 대한 욕망, 감옥처럼 느껴지는 한계 밖으로의 도피와 그 울타리 안으로 되돌아 오게 만드는 현기증- 모리츠는 일찌감치 자신의 내부에서 그것을 발견한다.
그 충동은 그의 내적 삶의 원초적이고 심원한 리듬, 그존재의 풍부함과 비극성을 형성한다.
 
 
팽창에서 자기 내부로의 귀환, 신비주의적 내적일치에서 행동의지의 고갈로 이행되는 동일한 리듬이 각운을 이룬다.
 
 
내적 숙명의 자각
 
모리츠는 인간이 다른 능력을 가지게 될 미래에 대한 '마술적'이고 낭만적 생각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개인의 저주로 여기는 신비적 염세주의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신비학자들 그리고 이어 낭만적 사상가들은 원초적 통일성이 죄로 인해 깨어졌다는 것을 인정한다.
 
 
자연에서 발효되어 요동치는 모든 생명과 모든 사랑을 자신 속으로 들여마신다고 믿을 정도로 그 생각을 밀고 나갈 수만 있다면, 자신을 동시에 꽃이자 초목이자 새이자 노래이고 신선함이자 유연함이며 쾌락이자 평온으로 느낄수만 있다면!
수축에 '활짝 피어남'이 대응한다. 최상의 순간은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모리츠에게도 무한속에서 자아가 완전히 망실되는 순간이 아니라, 팽창과 한정이 실재감 속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 존재의 팽창과 수축의 감정은 한순간 안으로 집약되며, 거기서 유래되는 혼합한 느낌에서 바로 그와같은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이상한 종류의 우울이 탄생된다.
 
 
그의 정신적 진화의 본질적인 문제는 두 세계,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실제 세계와 그가 안식처로 삼으려 했던 꿈의 '이상적인' 세계의 분열이었다. 거친 현실에 의해 손상을 입은 자아가 활짝 피어날 수잇는 자의적 세계를 창조하는 것, 그것은 낭만적 영혼의 첫 움직임이다.
 
 
이러한 믿음을 획득한 영혼이 삶으로 되돌아와 새로운 빛으로 그 삶을 변모시키고, 무덤너머에 있는 고등한 삶의 '여기와 지금'을 살아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움직임 말이다. 꿈은 그에게 사람들이 은신처로 삼으려하는 하나의 다른 세계이다. 그것은 가시적 현실에 아직 마술적인 색깔들을 퍼뜨리지는 않는다.
 
 
그는 꿈이 의식적인 삶에 의해 망각된 기억의 수문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그 기억들을 거대한 전체속의 혼돈이었던 이전의 삶과 연관시키고, 기억의 고리를 끝까지 거슬러 올라갈 능력을 가진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어렴풋이 예감한다.
 
제2장 꿈, 자연 그리고 복귀
 
 
한개인이나 한 세기의 우주는 우리 정신의 이미지에 속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것의 통일성은 자신의 통일성을 믿는 자에게만 존재한다.
 
'영혼'이라는 낱말에 그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전체적인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중심의 개념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통일성은 무한대로 분열한다.
 
 
합리주의자들의 오만은 가장 명백하지만 가장 깊이가 없는 우리의 능력에 집착하는데 있고, 신비주의자들과 시인들의 오만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면, 자신이 자신을 한없이 초월하는 어떤 신비한 실재와 유사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이 오만은 결국 최고의 겸손이다. 그것은 인간조건의 불안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끊임없이 우리자신의 신비에 놀라움을 나타내며, 피조물은 알 수없는 운명에 따른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그운명이 자신의 존재에 관해 우리에게 보내는 모든 신호들을 포착 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
 
 
18세기 리히텐베르크와 모리츠, 하만과 헤르더, 젊은 괴테와 장 파울, 게다가 장 자크와 디드로까지, 그리고 경건주의자들과 신비론자들...
그들의 사고와 정서에 있어서도 그들 자신의 전 존재를 몰입시키는 일에만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앞선 경험적 시대와 뒤이어 오는 과학적 시대에 반하여 그들은 어떤 감정적 충격에 의해 강화되는 직관만을 믿는다.
......거대한 반항과 신비적 겸허함이 언제나처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낭만주의가 모든 위험과 난파를 무릎쓰고, 또한 모든 운을 걸고 그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편적 통일성, 세계의 영혼, 절대적 수와 같은 대신화들을 부활시키고 보물창고와 수호신인 밤- 우리가 지고한 실재와 성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성소인 무의식- 모든 광경이 변모하고, 모든 이미지가 상징과 신비적 언어가 되는 꿈과 같은 대신화들을 창조해낼 것이다.
 
3. 르네상스의 재발견
 
자신에 대한 앎만이, 이 지옥으로의 탐방만이 우리에게 신으로 이르는 길을 열어준다 - 하만
 
19세기초 자연철학자: 사변가,실험가,신비론자,최면술사, 연금술사
 
비이성주의의 태동- 독일 르레상스의 신플라톤 학파: 낭만적 물리학자: 케플러/파라겔수스/쿠자/아글파/브루노/ 등에게서 우주는 영혼을 지닌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
 
 
본질적인 하나의 정체성이 전체의 발현에 불과한 모든 개별자들을 연결시킨다. 보편적 친화의 관계가 삶의 모든 발현들을 지배하고, 르네상스의 모든 사상가들이 왜 마술을 믿었는지 설명해준다.
그의 울림들이 단계적으로 만물전체로 퍼져나간다. 그래서 마술적 작용은 머나먼 곳에 있는 사물이나 존재들에게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자연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유사는 각각의 운명이 별들과 성좌들의 흐름에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사고할 수 있고 의식이 있는 피조물이라는 긍지, 우주가 스스로를 비추어 보고 자신을 알게되는 거울이라는 긍지 덕분에 인간은 만물의 중심에서도 특별한 자리를 점한다. 또한 거꾸로 인간은 자신의 중심에서 만물의 전체를 되찾는다. 안다는 것, 그것은 내부를 탐방하는 일이다.
 
 
신비의 길은 내부로 향한다. 영원이 그의 세계들 과거와 미래와 함께 있는 곳은 우리의 내부이지 그외의 어느 곳도 아니다.
 
 
자연을 창조한 신은 자신의 이미지를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 바로 거기에 인간적 운명의 모든 비밀이 있다.창조주와 인간의 주요한 유사점은 둘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갑자기 만물이 완전히 새롭게, 그들의 완전한 의미를 갖춘채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들은 특별한 순간에만 우리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바로 이순간들을 포착한다.
 
 
내부의 인간은 하나이다. 그의 모든 열정은 보이지 않는 관계들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한결같이 단 하나의 불꽃에 의해 생기를 얻는다.
 
 
헤르더의 생기론적 개념
 
합리주의에 반대하여 내적 감각의 직관, 혹은 모든 존재와 그가 속한 유기체 전체 사이의 교감 뿐만 아니라, 자연은 살아있기때문에 그것을 포착하기위해서는 이성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이다.
 
 
생물학적 생성의 법칙
 
모든 존재들의 진화와 정련의 대신비이고 증오와 사랑, 매혹 변모의 심연이다. 신은 자연과 역사라는 평행적인 두진화 속에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영원히 생성중인 하니의 힘으로 이해된다. 그 두 움직임 속에서, 끊임없는 투쟁은 앞선 형태들 보다는 항상 더 우월한 형태들의 탄생과 변모를 야기 시킨다.
 
 
전체 사이의 교감
 
만물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에 따른 리듬적 의미 - 인간의 본성과 신의 본성 사이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자연의 진화 사이에도 존재한다.
 
 
우주와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주 자체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예술작품의 법칙은 바로 영원을 포착하되 그러나 순간 속에서 포착하고, 무한을 인식하되 그러나 대상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다.
 
 
괴테는 사물을 통해 그들이 상징하는 것을 생각하기를 거부했고, 인간의 행위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행위는 최상의 비전으로 사물들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라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포착된 각 순간 속에서, 파악된 각 사물안에서 그가 도달하는 것은 영원이라고, 영구불변하는 본질이 아니라 살아 있는 , 생기에 찬 하나의 실재인 영원 자체라고 확신 하고 있다.
 
 
경험주의자들에 대한 신비주의자 낭만주의자들의 반발: 자연의 상징적 가치 그리고 감각적인 세계를 초월하는 실재하는 세계의 우의성. 그것은 즉각적인 우주의 기계적인 힘이 아니라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실재들에 대해 발휘되는 권능이다.
 
 
자연에 대해 진실인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해서도 진실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둘 사이에는 단순한 유사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동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유기체의 구조와 우주의 구조 사이에 무한히 많은 유사성이 설정된다.
 
 
4. 우주적 통일
 
 
고로 자연은 다양한 요소들로 분해될 수 있는 하나의 기계장치가 아니라 생기에 찬 하나의 유기체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동물적 삶과의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외적 현상들의 다양성에서 하나의 기본적인 통일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에 따랐던 모든 이에게 공통된 본질적 직관이다. 자연을 시간 속에서 바라볼때, 그것은 모든 개별적인 존재가 태어나고 죽으며, 총체에의 복종을 통해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순환으로 보인다.
 
 
공간 속에서의 자연은 모든 현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현상들 각각은 전체적인 삶을 반영하고 재생산 할 뿐이다.
 
 
오직 전체(절대)만이 살아 있다. 각 개인은 전체에 얼마나 가까이에 있느냐에 비례해서만, 다시 말해 엑스터시가 그를 그자신의 개체성에서 분리 시키는 한에 있어서만 살아있다: 바아더
 
 
그러므로 생명만이 유일한 실재이고 영원한 움직임은 신적인 것과 동일시된다. 하지만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유동은 방향이 있으며 맹목적인 힘과는 구별된다.
 
 
"각자의 종에서 완벽한 모든 것은 자신의 종을 넘어 다른 무엇,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 괴테
 
 
생성 과정은 일정한 방향을 따라 진행되고, 개별적인 생명들의 진보는 생명 전체가 최초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게 해준다.
 
 
신비주의자들의 출발점
 
원초적으로 주어진 것은 신적인 통일성이고, 자신들은 그로부터 추방당했다고 느끼며, 신비한 결합을 통해 그것으로 되돌아 가고자 열망한다,
또한 낭만적 사상가들은 우주의 생성과정 자체를 상실된 통일성으로 돌아가는 도정으로 설명하려함.
 
 
분리된 존재는 악이다. 모든 개별적 존재는 전체의 불완전한 반영일 뿐이며, 자연이 그 전체성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는 생명의 절대적 관념을 표현하고자하는 미완성의 시도일 뿐이다.
 
 
모든 것 속에는 개별화와 분리의 근원과 상실되었지만 미래에 되찾을 통일성의 씨앗이 함께 비밀스럽게 살고 있다. 하지만 오직 통일성 만이 실재하기 때문에 복귀를 향한 삶은 불가피한 것이다.
 
 
생명을 구성하는 모든 쌍들의 성향들 사이에서 하나의 방대한 유사체계가 세워진다. 낮과 밤의 리듬에 여러가지 층위의 성의 대립, 중력과 빛, 힘, 물질등의 원리들이 상응한다.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힘이 모든 존재를 서로 서로 그리고 전체와 연결시키며 전 우주적 생명을 관통한다. 자기에 대한 발견들에 영향을 받아 이힘은 친화력이라 명명한다.
 
 
우주-동물이라는 신플라톤 학파적인 인식과 더불어, 개별적인 영혼들을 통해 발현되거나,한 양상을 드러내는 , 모든 사물의 정신적 근원이고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보편적 영혼의 개념이 다시 태어난다. 이 영혼은 정신적 실재와 우주가 발현하는 근원이다. 관념들의 초월적 차원과 자연의 차원사이에는 더이상 심연은 없고 공통된 관계만 있을 뿐이다.자연은 인간 정신 속에서 의식적인 것이되는 , 그리고 창조의 측면에서 볼때는 분리될 수없는 통일성인 이 영혼의 어떤 무의식적인 행위와 동일시된다.
 
 
신이 모든 것안에 있다면, 그는 동시에 결코 우주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명원리, 그의 중심, 그의 영혼으로서 우주안에 현존해 있는 진정하고 유일한 존재라고 그들은 말한다.
 
 
인간은 '모든 순간에 살아있고 그 내부에 있는 그 무엇도 결코 우주에서 고립되거나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이고 모든 것은 하나의 내부에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간은 자신 속에서 자연의 전체성을 반영하고 거기서 신을 발견한다. 분리된 각각 의 존재를 유기체 전체의 상징으로 만드는 유추에 우리의 정신을 우주의 완전한 상징으로 삼는 유추가 응답한다.
 
 
자연의 신비는 인간의 형태속에 전체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인간은 지구의 멀고 먼 과거의 심연 속에서 만들졌다. 인간은 지구의 전 운명 그리고 무한한 우주의 운명을 자기자신의 운명처럼 그내부에 지니고 있다- 우주의 전역사가 우리 각자 속에 잠들어 있다. (슈터펜스)
 
 
인간은 자신의 내부로 내려가, 사랑과 언어, 시 그리고 무의식의 모든 이미지 속에서 그에게 아직 그의 기원들을 기억나게 할 수있는 다양한 모든 잔해들을 찾아야 한다. 그는 영혼 깊은 곳에서 신과의 유사점에 대한 감명을 모호하게라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자연 속에서 재발견 해야만 한다. 잠들어 있는 이 씨앗들을 취해 경작해야만 한다.
 
 
신비한 현존을 드러내주는 꿈의 씨앗들
 
5. 삶, 그 밤의 양상들
 
 
인간 -소우주는 내적 감각 혹은 보편적 감각이라 명명된 단 하나의 인식방법을 갖춘 완벽한 유기체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신비신학의 교리에 따르면, 이 감각은 유추를 통해 우주를 알고 있다. 인간이 조화로운 자연과 유사하기때문에 그자신이 그대로 반영되는 현실에 도달하기위해서는 자기자신의 관조 속에 침잠하기만 하면 되었다.
 
 
현상태에 이르기까지 이감각은 지위지고 조각나기는 햇지만 우리 내부에 살아 남아 있다. 진정한 앎에 이르고자 한다면 그감각까지 내려가야한다. 그감각은 자연을 지배하는 역동적인 힘 -자기작용 같은 것-과 유사한데, 최면, 몽유, 시적 고양의 모든 상태들, 다시말해 엑스터시라 불릴 수 있는 자연의 리듬 자체에 자신을 유기하는 상태들 속에서 나타난다.
 
 
엑스터시 ekstase 우리를 평상적인 상태 밖으로 데리고 가서 일시적으로 다른 존재로 복원시켜 놓는다.
 
 
랭보: 시인은 본질적으로 견자다. 시는 예언이며 과거, 미래, 전체성에 대한 엑스터시 상태의 비전이다.
 
 
프시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생명원리, 영혼을 나타냄. 심리학적으로는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 모든 정신현상의 총체를 가리킴.
 
 
영혼: 우리 마음 속의 현존, 우리를 한없이 초월하는 무엇인가의 신성하고 강력한 현존이다. - 마음 속에 현존하는 신
 
 
깨어있음과 잠의 교대는 우리가 우주적 생명에 속해있고 리듬의 유사가 보편적 관계라는 가장 뚜렷한 표현이다.
 
 
온갖종류의 '대지의 영향'에 의해 물리적 우주에 뿌리를 박고있는 우리는 모두 포로들이다. 하지만 이 포로들에게 는 그들을 묶고있는 사슬자체가 미래의 자유와 조화의 약속이다.
 
 
잠은 대지의 산물이며 깨어있음은 태양의 산물이다.
 
 
영혼은 잠에 빠져 있을때, 자연이라는 전체적인 유기체와, 그리고 동시에 바로 자신의 육체적인 생명과 보다 밀접한 공생관계를 이룬다. 인간은 주기적으로 두뇌가 지배하는 활동에서 벗어나 대지의 영향을 받던 최초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고로 꿈은 생리학적 성장의 모든 무의식적 과정이 모호하게나마 예감되는 희미한 의식상태로, 전 우주에 생기를 불러넣는 생명의 유기적 존재로서의 행위와 가장 즉각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순간으로 인식된다.
 
 

 
꿈을 통해 우주적 실재에 참여
꿈은 아직 인간이 자연의 말씀이었던 황금시대에 인간이 처해있던 최초의 상태였고, 신화적 시간에 대한 이 무의식적 생각은 자연의 완전한 계시다.
꿈을 통해 우리는 신호들에 귀 기울이고, 우리 존재의 밤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유적들을 재발견해야만 한다.
 
6. 꿈의 형이상학
 
 
마음과 관능은 둘다 존재의 중심을 지칭하는데, '진정한 실재 속에서'사느냐 아니면 무의 변경에 있는 감각적인 현상의 세계즉 maya에 사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신을 지각하고 자신의 관능 속에서 우주를 지각한다.
 
 
트록슬러: 인간의 물질적인 본성은 우주 안에 스스로를 드러낸 신의 발현인 반면에, 그의 정신적 본성은 신에게로 회귀하려는 성향
 
 
최초의 통일성이 우주와 인간이라는 자연의 창조 속으로 전개되었다면, 자연의 모든 진화는 최초의 상태에 다시 도달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회귀성향의 최고의 표현은 본질적인 갈망들로 목말라하는 인간의 영혼이다.
 
 
깨어있음은 삶의 밝은 면이고 잠은 어두운 면이다. 하나는 신 속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속의 삶이다. 이 교대의 삶은 죽음에 의해 해방되고 불멸에 이르러우주의 삶 속에서 새로이 자리잡을 때까지 계속된다.
 
 
꿈, 그것은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실재의 중심 자체이다. 원초적이고 영원한 인간 내부의 심원이며 '생명의 행위 그자체'이다.
 
 
정신이 물질 속으로 내려오면, 상상력은 신에게서 나오는 모든 생성에 동반되는, 그리고 앎이라고 불리우는 그 꿈을 꾼다. 하지만 거꾸로 물질이 정신을 향해 상승하면, 앎은 자신의 '심연' 혹은 그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엑스터시라는 이름을 가진 상상력의 두번째 꿈이다.
 
그러므로 밤의 꿈은 영원한 꿈과 '유사한 것' 이상이다. 즉 그것은 영원한 꿈의 잔존물이고 우리 마음속, 우리내부 깊은 곳의, 최초의 통일성의 실제적 현존이다. 그것은 '깊이를 알수없고 탄생전과 죽음 후에나 그의 완전한 실재성을 가지게 되는 원초적 상태에 대한 암시'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부터 이심연들은 우리 모든 삶의 근원이 된다.
 
7. 꿈의 상징 체계
 
 
1814년 슈베르트 : <꿈의 상징 체계> 발간 바아더 를 통해 신비주의적 사상에 입문
 
 
사랑의 법칙은 아무리 미세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연적인 모든 과정을 지배한다. 금속은 공기와 결합하려는 욕망에 의해 녹슨다. 빛은 생명이 없는 존재들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형태이고 소리는 동성의 사물들 사이의 우정이다.
 
 
우주적 순간들에서 사물들은 자기를 통해 보다 발달된 종류의 존재 속으로 통합시켜주는 활발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성질을 얻게 된다.
 
 
왜냐하면 생명은 어디에서나 하나이고 동일하기 때문이다. 식물과 동물의 삶은 자연의 대주기, 즉 연 일 시를 주재하는 동일한 리듬에 따라 조직된다.
 
 
'생명은 서로 대립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보편적인 거대한 힘들과의 일치에 다름아니다.' 식물들에 있어서 '죽음의 순간이기도 한 개화의 순간은 동물적 존재에 대한 예감이다.' 이처럼 단계에서 단계로 모든 자연적 생성은 존재의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인간을 지향한다.
 
 
시적 리듬은 그자체로서 마법적 주문의 역할을 하고, 일깨어진 어떤 조화, 우리와 우리가 속하는 우주 사이에서 복원된 보다 심원한 어떤 교감을 나타내는 행복감을 발생시킨다. 노래는 낮의 기능들을 '잠들게 함'으로써 무의식적인 삶의 내적인 탄생을 촉진 시킨다.
 
 
운명은 어떤 신성에 의해 계산된 길을 따라 우리의 삶을 이끄는 숙명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 생애를 구성하는 모든 순간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이다.
 
 
현 세계는 반대되는 두 힘에 의해 지배된다. 하나는 개별화를 지향하고, 다른 하나는 자석처럼 작용하여 모든 사물들 사이의 유대와 모든 사물과 신 사이의 유대를 창조한다. 인간의 영혼은 사랑을 통해 화해하게 되는 이 두경향의 포로이다.
 
8 무의식의 신화
 
 
 
프리드리히의 위대한 풍경화; '그는 풍경의 비극을 발견했다' -다비르당제르.
 
자신의 내적비극 , '황혼은 그의 기본요소였다' -카루스
 
 
인간의 본성을 찢어놓는 화해할수없는 이중성들에서 오는 번민에 사로잡혀 있는 그는 자신의 신앙심과 예술관이 동시에 표현되는 통일성의 획득을 통해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자연을 앞두고 있는 인간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
 
화가가 우주적 유기체의 생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앎.
 
이 두야망을 밀접하게 일치시켜야 했고 만물 속에 있는 신의 존재를 짐작하게 해주기위해 그토록 생생한 인상을 우리의 인상을 결합시켜야 한다.
 
 
이상적인 풍경은 만물의 배면에 있는 무한을 우리에게드러내는 영혼의 주관적 상태들과 유한한 세계를 향해 있고 형태에 주의를 기울이는 객관적 비전을 동시에 일깨워준다.
 
카루스의 <자연의 관념>
 
 
전 자연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로 부터, "영원한 법칙들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는 우주를 전체적으로 창조하는 영원한 생성, 모든 삶의 근원"에 의해 생기를 얻는다.
 
"이생명의 원동력이 우주의 변화 뿐만 아니라 아주 미세한 유기적 성장 속에서도 표출된다."
 
전체와 부분 사이에는 카루스가 리듬의 일치라는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 유사의 관계가 존재한다. 천체들의 삶을 특징짓는 주기들의 광대한 리듬이 '신적인' 항구성을 가지고, "우리 자신의 내적 삶의 극도로 작은 입자들의 존재 속에도 반영된다."
 
 
유기체의 각 부분은 그의 내적 구조에 있어서 전체적 유기체와 흡사하다. 모든 부분들은 서로 동일하고, "생체의 각부분의 성장은 아주 단순한 하나의 동일한 원초적 형태의 극히 다양한 증식에 의해 결정된다." 이 형태는 바로 완벽한 원형, "전체라는 관념을 표현하고, 그결과로 일종의 자율을 누리는 " 세포이다.
 
 
하지만 생명의 무한한 흐름은 방향이 없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 무궁한 상승, 극에 도달하는 완벽은 끊임없이 태어나는 형태들에 그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물리학과 우주발생론의 중심에 가치의 개념 재도입.
 
식물에서 동물 ,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함에 따라, 이 존재들과 이에 생기를 불어 넣는 신과의 관계는 밀접.
 
" 자신의 종에서 완벽한 모든 것은 그 종을 초월하여 다른 , 비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는 괴테의 생물학적인 원칙, 카루스의 사상에도 낯설지 않은 개별적 진보를 통한 분화와 향상의 원칙인 것만은 아니다.
 
신적인 것은 모든 것 속에 존재하지만, 신은 동시에 세계의 중심이고 영혼, 혹은 생명과 그부분들의 원동력이다.
 
무의식
 
 
의식적인 정신적 삶에 대한 앎의 열쇠는 무의식이라는 영역속에 있다.
 
 
관념, 영혼은 모든 피조물에 형태와 생명을 부여하는 제1원인이다. 하지만 개인의 전 형성과정은 그 개인 자신의 의식에서 벗어난다. 유기적 진전과정, 성장, 생리적 형성은 무의식이라는 생기에 찬 거대한 실재속에 속한다.
 
 
"무의식은 우리가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지칭하는 주관적 표현이다."
 
 
그로므로 무의식은 그의 심원한 본질 속에서는 비개인적인 실재, 영원하고 끊임없는 생성, '신의 창조적 활동' 같은 것이다.
 
 
유기체적 통일
 
의식 속에서 기억과 예견이라고 부르게 될 시간들의 상관관계의 깊은 이유.
 
 
무의식은 의식의 본질적인 형태들에 대한 예시를 자신 속에 지니고 있다.
 
식물의 씨앗과 동물의 태아는 미래에 있을 성장들을 모조리 그안에 내포하고 있다.
 
카루스는 이러한 유기적 무의식의 예견에 프로메테우스의 원리라는 이름 부여.
 
 
다른 한편으로 유전은 과거가 현재의 진화 속에서 살아남아 활동하고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 증명 이것이 기억의 무의식적인 형태 , 에피메테우스적 원리이다.
 
 
그러므로 삶을 이루는 모든 순간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이러한 유기적 기억은 그 내용물이 개인적 삶의 틀을 넘어서 존재의 근원들 자체에 이르는 일종의 무의지적 기억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상극을 이루는 형제임.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반면, 에피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손쉽게 사용할 수있는 도구와 같은 인물로, 인간을 벌하려는 제우스의 의도대로 인간에게 판도라의 상자를 가져다 준다.>
 
 
개인적인 삶은 '인류'라는 유기체의, 더나아가서 우주적 유기체의 한 부분이다.
 
인류의 영혼 그리고 세계 영혼의 모든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각각의 개별적 영혼을 거쳐 지나가야만 하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의 형상을 만들어야한다.
 
 
따라서 절대적 무의식은 우리 모든 삶에 있어서 극히 중요. 그것은 우리 모두의 본능적 삶과 내부에 있는 , 개별적 진화와 개인적 독창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닌, 우리 종 전체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지휘한다.( 카알 융 과 일치)
 
 
본능의 형태로 각자의 삶 속에 잔존해 있는 무의식적 과정의 에피메테우스적 원리는 인간의 전 역사를 통한 경험을 영속화 시킨다. 유리환 정화들 속에서 투여된 개인들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피조물 자격으로 우리가 우주와 관게를 맺는 모든 순간에 있어서,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이 보물에서 방어수단과 삶의 창조적 근거를 빌어온다.
 
 
시적 창조와 사고의 일례, 직관- 가장 심원한 창조력은 개인의 의식적인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조상 대대로 경험을 통해 축적해온 것을 간직하고있는 무의식의 집단적 저장소안에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그 과정의 절대적 필연, 어떠한 학습도 필요로 하지 않은 즉각성, 우주적 생명 그리고 과거와 미래와의 법촉으로 특징지어진다.
 
 
감정은 무의식적 삶에 섞어들고 그 모든 특성을 함께하는 '의식적 영혼의 어떤 특수한 색조'이다.
 
 
 
감정을 통해, 영혼은 모든 영혼들의 공통된 통일성과 관계하고 있는 심원한 영역에 가 닿는다.
 
감정중 최고의 형태인 사랑은 "분리된 존재로 부터의 최초의 해방이고 전체로 되돌아가는 첫걸음이다."
 
꿈의 귀환적 상상력
 
 
꿈을 통한 이미지의 순환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귀환은 서로 다른 두가지 양상
 
혈액의 순환과 유사한 첫번째 순환은 어떤 특수한 이미지나 감정을 망각속에 잠기게 하고, 이 이미지와 감정은 의식적인 삶 속에 새로이 작용하기 위해 변화하고 풍성해져 망각에서 다시 솟아오른다. 그사이 그것들은 발아되기 이전의 식물의 씨앗의 삶과 비교되는 잠재적 삶을 산다.
 
 
하지만 이런 분리된 이미지들과의 순환과는 별도로 보다 본질적인 또다른 리듬이 의식전체를 주기적으로 무의식의 밤 속에 잠기게 한다.
 
이 리듬은 "관념이라는 영원한 존재의 대 주기들, 우리의 삶과 죽음이라고 부르는 주기들을 재현"할 뿐이다. 꿈으로의 귀환은 식물적 삶 혹은 "아직 이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유아의 무의식적 삶"과 유사한 하나의 의식없는 잠이었던 태초의 상태로의 귀환이다.
 
 
"영혼이 의식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이중의 삶을 끊임없이 영위하고" 이 양극사이를 영원히 오갈수있도록 잠은 그에 앞선 깨어있음을 통합한다.
 
그래서 카루스에 따르면 "표면적인 비존재 속의 존재의 연속성"이야말로 심리적 삶의 가장 큰 신비들 중 하나이다.
 
 
잠은 외부세계에 대한 감각과 의식의 부분적인 퇴거에 의해 유발된다. 이처럼 식물적인 삶 속에 침잠함으로써 '영혼의 자연적인 부분들'은 새로운 활력을 취하고, 동시에 '자연 전체와의 보다 활발한 관계'가 무의식 속에 생겨난다.
 
 
일단 나라는 경계들이 무너지면, 존재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위대한 무의식과 보다 즉각적인 방법으로 소통하게되고, 한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달된 기억들의 불분명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험은 의식의 세계에 우주에 대한 모호하고 심원한 인식을 가져다 준다.
 
 
그에게 있어 의식적 영역은 여전히 자율성을 지닌 이물질처럼 잠속에서 잔존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내밀한 결합이 이루어지고 그 결합에서 꿈이 생겨난다.
 
 
유기체의 어떤 내적 불균형들은 실제로 어떤 특별한 감정들을 발생시키고, 이감정은 다시 어떤 내적 이미지, 어떤 시적 상징을 일깨워 그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자연 속에서 발현된 신적인 관념인 영혼은 스스로는 시간과 공간을 알지 못한다.
 
영혼이 자연에서 퇴거함에 따라, 발현된 세계에 대한 의식이 흐려짐에 따라 영혼은 "생각들의 연속, 즉 식간과 그것들의 병렬, 즉 공간이 사라지고, 그자리에 이제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는 모든 존재의 통일성이 들어서는 것"을 보게된다.
 
 
전체 유기체의 의식적 부분이 인격 개성 그리고 자유가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유기체의 무의식적 부분은 그 유기체를 일반적 생명과 밀접하게 연관시키는 것, 요컨데 그를 보편화 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무의식이기때문에 우주의 모든 움직임에 의해 관통되고 그것에 참여한다. 더 나아가서 가가운 것과 먼것, 그리고 공간에 속하는 모든 것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 그리고 시간에 석하는 모든 것도 그안에서 서로 만나고 섞인다.
 
 
"영혼의 건강한 성숙에 적합한 우리의 습관적 한계"속에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가 실제로 모든 현순간에 존재하고, 멀리 떨어져 공간들이 서로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 보편적인 생명의 얼마되지 않는 부분이외에는 우리의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다.
 
하지만 '정상적'인 우리 상태의 어떤 변모에 힘입어 우리는 보편적인 생명의 다른 양상들 , "우리로 하여금 멀고 먼 곳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와도 접촉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양상들"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예외적으로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무의식 속에 깊이 침잠해 있기때문에 영혼이 바로 무의식에 고유한 특성인, 만물을 연결하는 그물망 속에, 공간적인 모든 것과 시간적인 모든 것의 상호침투에 속에 더 깊이 침잠하게 되는 " 예외적인 상태들 속에 신비롭거나 불가사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ㅜ여기서 유기적 참여와 의식적 참여를 구분해야한다.
 
예감과 통찰력
 
 
 
예감
 
우주적 감각의 조건인 우리의 무의식적인 삶은 자신의 자율성을 유기함으로써 보편적 생명의 순환 속으로 삼켜진다.
 
그리고 그때그것은 인체의 변모와 동일하게 보편적 생명의 변모들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이처럼 인류 혹은 자연의 생명의 순환 속에 침잠하여, 일반인은 전혀 느낄 수 없는 ,
 
멀리 발생한 혹은 미래에 발생할 어떤 사건들이나 다른 작용들에 영향을 받아 이상한 불안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이러한 예외적인 사실의 설명할 수 없는 지각은 그들의 정신상태를 완전히 변모해 놓는다.
 
바로 이것이 흔히들 예감이라 칭하는 것이다.
 
 
통찰력
 
다른 한편으로 우주와 인류의 모든 생명과 가지는 이 관계가 인간의 의식적인 영혼 속에 드러나 새로운 종류의 민감한 지각의 형태를 취한다. 그때 그빛이 항상 우리 각자를 관통하고 있지만, 우리가 평상시에는 지각하지 못하는 보편적 생명의 양상들이 의식에 도달하는 것은 더이상 모호한 감정들로서가 아니라 분명하게 한정된 생각들로나타나는데 이것을 통찰력이라 부른다.
 
 
무의식을 통해 옛시대의 인류, 우리시대의 인류 그리고 우리 종의 미래적 운명들도 매순간 우리를 변모시킨다.
 
그리고 꿈의 이미지들 속에서 모호하게나마 의식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이 변모들이다.
 
 
카알 융은 이러한 낭만적 철학자 카루스의 직관을 이어간다.
 
'무의식 본래의 언어'인 이미지들에 말할때, 카루스는 슈베르트의 직계상속인이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천재성이 최초의 직관 속에 있었다면, 카루스의 힘은 이러한 각각의 통찰력을 정신적이고 자연적인 삶에대한 전체적 비전에 연결시켜주는 일관된 구성에 있다.
 
명상
 
신의 의식에 그의 전능함을 되돌려주는 이 명상은 "사랑의 힘과 깊이로 심연을 메우고 극복하기위해" 열심인 우리의 노력이 도달할 수있는 최고의 진보이다.하지만 일단 이 정상에 도달하게되면 정신은 인간적인 삶 그자체로 되돌아 올수있다. 정신은 자신의 엑스터시로 인해 아름답게 변모된 인간의 삶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고귀한 종교적, 시적 영감들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이 변모이다.
 
 
이 각성된 영혼은 눈먼 유기적 생명의 심연 뿐만 아니라 신의 생명의 무한 속에서 '제2의 눈'을 담고 있을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우리안에 불멸하는 것은 관념, 영혼, 우리의 생성의 법칙이지 생성 중에 획득된 모든 특성들이 아니다. 개인적인 삶에서 진보는 연속되는 모든 경험들, 감정들,사상들,관념이 신에게로 회귀하는 데에 소용이 되게하는데 있다. 유기적인 무의식은 생성의 모든 단계를 결합시키고, 그것들과 일치되며, 영원히 변함으로서 그 경계가 이동하는 과거와 미래로 나뉠 수밖에 없는 반면, 정신은 현재를 포착하기에, 다시말해 그본질에 있어 영구불변하는 관념 그자체를 응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것의 발현을 통해서만 관념을 알 수 있다.
 
 
< 우리 영혼의 관념은 지고의 존재의 이중적 빛의 방사를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속에 함축하고 있다. 이 발현 중 하나는 무의식적으로 창조하는 신적인 원동력으로 우리 외양의 끊임없는 변모를 결정한다. 다른 하나는 지속되는 하나의 내적 현재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정신으로, 우리의 자유로운 반쪽이고, 다른 반쪽의 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신과 맺고있는 이중적 관계가 설명된다. 만물에 속하는 우주적 존재들로서 우리는 무의식에 의해 신의 실재속에 뛰어든다
 
9. 순수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낭만주의 사상가들의 첫번째 공리는 오직 전체만이 존재를 절대적으로 부여받았다고 단언하는 것이다.
 
 
분리된 존재는 악이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잃어버린 통일성에 이르는 길을 되찾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의 매개체는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 그 설명이 의식 속에서 찾아질 개인적 영역으로 귀착하지 않고
 
- 우리의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근원이 있는 초-개인적인 실재이고,
 
우리가 보편적 유기체와 접촉을 가지는 지점이다.
 
 
꿈과 다양한 열광들, 언어에서 인칭의 변화와 같은 사고들과 시적인 번득임들, 광기의 창조들과 유아기의 상상력들, 이모두가 태초에 자연의 생명과 함께한 협화음의 소중한 유물인 동시에, 결국에는 우리를 태초의 조화의 품으로 되돌려줄 근원들이다.
 
 
독일 낭만주의 시인들은 사상가들에 앞서 제각기 독특하지만 모두 밤의 가장자리에 이르는 다양한 길을 따라 무의식의 모습들을 포착하고자 시도했다.
 
이러한 무의식의 양상들을 일깨우는 도구인 그들의 예술을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과 동일시했다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그들은 영웅적인 정열을 가지고 그일에 달려 들었다.
 
 
정신속에 내재해 있는 집단적 무의식(신화) , 즉 우주적 통일성과 개인적 이미지 (직관) 즉 보이지 않는 세계의 상징적 발현이 낭만주의의 근원적 미학이다.
 
이는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인바 무의식과 의식의 조화로 나타난다.
 
이는 자연과 영혼의 합일에 이른다.
 
10 성운과 혜성
 
 
낭만주의의 핵심적소재(근원) -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 - 꿈의 미학
 
1) 집단적 무의식 (신화)
 
2) 개인적 이미지(직관)
 
 
우리의 상상력은 세계를 형성시킨 거대한 창조력의 알 수 없는 하나의 응답이다.
 
그의 활동이 우리에게 아주 생생한 행복감을 부여해 주는 것은 '정신이 창조한 이미지들이 바로 정신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휠더린
 
그가 전력을 다해 지향하는 소유는 낭만주의가 획득하고자 할 그 마술적 권능이 아니다.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관조적이고 미학적인 소유이다.
 
세계를 소유한다는 것은 만물이 갑자기 완벽하고 은혜로운 조화의 관계속에서 드러나 보일정도로 순수한 관조와 아름다운 비전을 되 찾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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