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29)
두번째 노래(15)
(15) 살다보면 머리털에 이가 들끓는 인간이 고착된 눈으로 허공의 초록빛 막 위에 야수의 시선을 던지는 그런 시간이 있다. 그에게는 어떤 유령의 야유 어린 고함소리가 제 앞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는 비틀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그가 들은 것, 그것은 양심의 소리다. 이때, 그는 미치광이의 속력으로 집에서 뛰쳐나와서는, 제 혼미상태에 제시된 첫번째 방향으로 달려나가, 농촌의 거친 들판을 휩쓴다. 그러나, 저 노란 유령은 시야에서 그를 놓치지 않고, 같은 속도로 그를 뒤쫓는다. 어떤 때는, 뇌우가 몰아치는 밤에, 날개 돋친 낙지의 군단이, 멀리서 보면 까마귀떼와 방불하게, 구름 위로 날며, 품행을 바꾸도록 경고하는 사명을 띠고 인간들의 도시를 향하여 꼿꼿한 노로 방향을 트는 동안, 눈이 침침한 조약돌은 두 중생이 쫓고 쫓기며 지나가는 것을 번개 불빛으로 보고는, 얼어붙은 눈꺼풀에서 남몰래 흐르는 동정심의 눈물을 닦으면서 외친다. "분명코 그는 저럴 자격이 있으며, 그것은 정의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다시 그 완강한 태도로 되돌아아, 신경질적으로 몸을 떨며, 줄곧 인간 사냥을 지켜보고, 움울한 에테르 속으로 날아오르며 제 박쥐 날개를 넓게 펼쳐 온 자연을 덮어 가릴 저 거대하고 컴컴한 정충떼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어둠의 불두덩의 대음순을 지켜보고, 또한 이들 둔탁하고 설명할 수 없는 섬광의 품새에 활기를 잃은 저 낙지떼의 고독한 군단을 지켜본다. 그러나 이 시간에도, 지칠 줄 모르는 두 주자 간에 장애물경주는 계속되고, 유령은 인간산양을 쫓아가며 입으로 불의 격류를 내뿜어 그 등을 검게 태운다. 이 의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유령이 제 길을 가로막는 연민과 만나게 되면, 그자는 마지못해 그 애원을 받아들이고 인간을 도망치게 놓아둔다. 유령은 추격을 포기하겠노라고 자신에게 말하려는 양으로 혀를 차고, 새로운 지시가 내리기를 기다려 제 개집으로 돌아간다. 유죄 선고를 받은 자로서의 그의 목소리가 우주공간의 가장 먼 층에까지 들리는데, 그 소름끼치는 울부짖음이 인간들의 심정에 파고들 때, 그 심정은, 흔히 말하듯이, 자식에게 회한을 안기기보다 어머니에게 죽음을 안기는 편이 차라리 더 낫다고 여길 것이다. 그는 어느 구덩이의 진흙 뒤범벅 속에 머리를 어깨까지 쳐박건만, 양심은 이 타조의 속임수를 흩날려버린다. 구멍은 에테르의 방울처럼 증발하고, 빛이 그 광선의 행렬을 거느리고 라벤더 위로 날아드는 마도요의 비상처럼 나타나니, 그 사람은 창백하게 눈을 뜨고 자기 자신과 다시 마주한다. 나는 그가 바다 쪽으로 몸을 끌고 나가, 물거품의 눈썹에 들쑥날쑥 깎이고 패인 곶 벼랑 의에 올라서더니, 화살처럼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날 그 시체가 해면에 다시 나타났으니, 바다가 이 육신 표류들을 해안으로 실어온 것이다. 그 사람은 제몸뚱이가 모래 속에 파놓았던 거푸집에서 풀려나와, 젖은 머리에서 물을 짜내고, 말없는 이마를 숙이고, 다시 인생 행로에 접들었다. 양심은 가장 은밀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행동거지를 엄격하게 판단하며, 실수하지 않는다. 양심은 악을 예고하기에 무력한 경우가 많아서, 인간을 여우처럼 끊임없이 몰아세우는데, 특히 어두운 밤에 그렇다. 무식한 과학이 유성이라 부르는 징벌의 눈들이 창백한 불꽃을 흩뿌리고 자전하여 지나가며 신비의 말들을 또박또박 발음하고--- 인간은 그 말을 이해한다! 이때 그의 베개는 불면의 무게에 눌린 그 육체의 요동으로 망가지고, 그는 밤의 희미한 웅성거림에서 불길한 숨소리를 듣는다. 잠의 천사마저도 알지 못하는 돌에 맞아 이마에 치명상을 입은 나머지, 제 임무를 단념하고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 그래서 인간을 변호하기 위해 내가 나선다. 이번에는 일체의 미덕을 경멸하는 자인 내가, 그 영광의 날 이래로 창조주가 잊을 수 없었던 자인 내가, 그날 나는 그의 권능과 그의 영원함이 무언지 모를 비열한 조작을 통해 기록된 저 하늘의 연대기를 그 초석에서 뒤집어엎으며, 놈의 겨드랑이 아래에 내 흡반의 사백 개를 압착하여, 놈으로 하여금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게 했고---- 놈의 비명은 그 입에서 나오면서 살모사로 변해, 가시덤불에, 무너진 성벽에 들어가 몸을 숨기고, 밤에도 망을 보고 낮에도 망을 본다. 그 비명은 기어가는 짐승이 되어 무수한 둥근 고리를, 납작하고 작은 대가리에 교활한 눈을 얻고는, 인간의 순진무구함을 만나면 멈춰 서기로 맹세하였으니, 그래서 그 순진무구함이 잡목 엉클어진 숲속을, 또는 비탈진 둑의 뒤쪽을, 또는 사구의 모래 위를 산책할 때는, 늦기 전에 생각을 바꾼다. 하나 아직 그럴 시간이 있을까. 사람은 가던 길을 되짚어서 훤한 자리로 나갈 틈을 얻기도 전에, 거의 감지할 수도 없을 물린 상처를 타고 독이 제 다리의 정맥에 스며드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여러 번이다. 이와 같이 창조주는 가장 지독한 고통 속에서까지 찬탄할만한 냉혈을 유지하여, 지상의 거주민들에게 해로운 맹아를 바로 그들 자신의 가슴에서 끄집어낼 줄 안다. 녀석이 놀라움이 얼마나 컸을까. 말도로르가 낙지로 둔갑해, 하나하나가 질긴 가죽끈이어서 행성 하나쯤은 어렵잖게 둘러감을 수 있을 그 흉물스러운 여덟 개의 다리를 제 몸뚱이 쪽으로 뻗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으니, 불시에 사로잡힌 녀석은 점점 더 조여드는 이 점착성 포옹에 저항하여 얼마 동안 발버둥을 쳤고---- 나는 녀석의 쪽에서 무슨 위험한 반격을 펼칠까봐 두려웠다. 그 거룩한 피의 혈구를 듬뿍 섭취한 뒤에, 나는 녀석의 위엄 어린 몸에서 거칠게 떨어져나와, 어느 동굴에 숨었으니, 그 동굴은 그때부터 나의 거처가 되었다. 거듭된 수색도 헛일이 되어, 녀석은 거기서 나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일이 오래되었으나, 이제는 녀석도 내 거처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녀석은 내 거처에 다시 발 들여놓지 않도록 조심하며, 우리 둘은 양쪽 모두 상호 간의 힘을 알고 있고 어느 쪽도 승리할 수 없고 지난날의 쓸데없는 싸움으로 지쳐있는 두 인접국의 군주들처럼 살고 있다. 녀석은 나를 두려워하고, 나는 녀석을 두려워하거니와, 어느 쪽도 패배하지는 않았으나 적의 맹렬한 공격을 체험한 뒤라서, 어디까지나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렇더라도, 녀석이 원한다면, 나도 싸움을 재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녀석이 감추어둔 제 계략을 펼치기에 유리한 어떤 기회를 노리는 것이 아니기를, 나는 늘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고 녀석을 주시할 것이다. 그가 더는 지상에 양심과 그 고뇌를 파견하는 일이 없기를, 양심을 쳐부술 때 유리하게 쓸 수 있는 무기를 나는 인간들에게 가르쳤다. 그들에게는 아직 양심이 낯설지만, 그대도 알다시피 나에게 양심이란 바람에 실려오는 지푸라기나 다름없다. 나는 양심을 그만큼은 존중한다. 내가 지금 일어나는 기회를 이용해서 이 시적 토론을 세밀하게 꾸밀 작정이라면, 나는 내가 양심보다는 지푸라기를 더 존중한다는 말까지 덧붙이게 될 것이다. 지푸라기는 지푸라기를 새김질하는 소에게 유익한 반면에, 양심은 오직 강철 발톱 몇 개밖에는 보여줄 줄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들 발톱이 내 앞에 놓였던 날, 그 물건들은 비통한 패배를 감수하였다. 양심은 창조주가 파견한 년이기에, 나는 그년 때문에 내 행로가 가로막히도록 놔두지 않는 것이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그년이 제 지위에 어울릴뿐더러 결코 포기하지 말았어야 할 겸허하고 공손한 태도로 나타났더라면, 나는 그년에게 귀를 기울렸을 것이다. 나는 그년의 오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한쪽 손을 뻗어 그 발톱들을 손가락으로 눌러 박살내자, 그것들은 이 신종 절구의 가중 압력에 티끌이 되어 흩어졌다. 다른 손을 뻗어 그년의 머리를 잡아 뽑았다. 이어서 그 여자를 채찍질하여 내 집 밖으로 쫓아냈고, 그년은 두번 다시 내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내 승리를 기념하여 그년의 머리를 간직했다--- 나는 머리 하나를 손에 들고 그 두개골을 감으며, 산허리의 깍아지른 벼랑 끝에 왜가리처럼 한 발로 서 있었다. 내가 골짜기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는 눈이 있었으니, 그때 내 가슴의 피부는 내내 미동도 없이 고요하여, 무덤의 덮개와 같았더라! 나는 머리 하나를 손에 들고 그 두개골을 갉으며, 더없이 위험한 심연 속으로 헤엄치며, 치명적인 암초를 옆에 끼고 나아가, 바다 괴물들의 싸움을 한 사람의 이방인으로 참관하려고 해류보다 더 깊이 잠수하였다. 해안이 내 예리한 시선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연안에서 멀리 벗어나고 있는데, 그때 끔찍한 훙물들이 근육을 마비시키는 그 자기(磁氣)를 뽐내며, 억센 동작으로 파도를 가르며, 내 수족을 노리고 배회하였으나, 감히 접근하지는 못했다. 내가 무사히 해변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는 눈이 있었으니, 그때 내 가슴의 피부는 내내 미동도 없이 고요하여, 무덤의 덮개와 같았더라! 나는 머리 하나를 손에 들고 그 두개골을 갉으며, 높이 세운 탑에 이르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나는 피곤한 다리로 현기증나는 옥상에 이르렀다. 나는 평원을, 바다를 바라보고, 나는 태양을, 창공을 바라보고, 물러나지 않는 화강암을 발로 밀어뜨리고, 나는 드높은 함성을 내질러 죽음과 신의 징벌에 도전하였으며, 포장도로를 달리듯 허공의 아가리로 돌진하였다. 인간들은 내가 추락하면서 버렸던 양심의 머리와 땅의 만남으로 일어난 고통스럽고 우렁찬 충격음을 들었다. 내가 보이지 않는 구름에 실려 새의 느린 속력으로 내려와서, 그 머리를 그러모아 이것으로 그날 하루에 저질렀음이 틀림없는 내 삼중 죄악의 증인으로 삼으려고 강압하는 모습을 보는 눈이 있었으니, 그때 내 가슴의피부는 내내 미동도 없이 고요하여, 무덤의 덮개와 같았더라! 나는 머리 하나를 손에 들고 그 두개골을 갉으며, 기둥들이 솟아올라 단두대를 지탱하는 장소를 향해 나아갔다. 나는 그 칼날 아래로 세 처녀들의 목을, 그 감미로운 아리따움을 밀어넣었다. 사형집행인 내가 전 생애 걸친 확실한 경험으로 밧줄을 놓아버리자. 삼각형 강편이 비스듬히 내리떨어져, 나를 다정하게 쳐다보는 머리 셋을 잘랐다. 나는 이어서 내 머리를 그 육중한 면도칼 아래에 놓았으며, 사형집행인은 자신의 임무 수행을 준비하였다. 세 번, 칼날은 새로운 힘을 얻어 홈 사이로 떨어져 내렸으며, 세 번, 나의 물질 골격은, 특히 목이 붙은 자리에서, 그 토대까지 흔들렸으니, 꿈속에서 무너지는 집에 깔린 듯싶을 때와 같았다. 아연실색한 사람들은 내게 길을 내주어 그 초상난 장소에서 나를 벗어나게 했다. 그들은 내가 팔꿈치로 물결치는 인과를 헤치고, 생명으로 가득차 움직이며, 머리를 곧추 세우고, 앞으로나아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때 내 가슴의 피부는 내내 미동도 없이 고요하여, 무덤의 덮개와 같았더라! 나는 말한 바 있다. 인간을 변호하기 위해 내가 나선다고, 이번에는 그러나, 나는 내 변호가 진실의 표현이 아닐까봐 두렵다. 따라서 침묵하는 편이 더 낫겠다. 인류는 이 방책에 감사한 마음으로 박수갈채를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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