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로르의 노래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40)
네번째 노래(5)
(5) 내 방의 벽에 도대체 어떤 망령이 제 딱딱한 실루엣의 몽환적 투영을 유레없이 강력하게 그리는 것이냐? 내가 이 착란의 소리 없는 질문을 가슴에 품을 때, 이와 같이 문체의 간결함이 이루어짐은 형식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서다. 네가 누구든, 너를 지켜라. 내 너에게 무시무시한 고발의 투석기를 몰아갈 테니. 그 두 눈은 네 것이 아니다--- 어디서 그걸 탈취했느냐? 어느 날, 나는 내 앞으로 지나가는 금발의 여인을 보았는데, 네 눈과 똑같은 눈을 가졌더구나. 그 여자에게서 너는 두 눈을 빼앗았다. 네 아름다움을 믿게 하려는 속셈이 보인다마는, 아무도 속지 않으며, 나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더 속지는 않는다. 타자의 살을 먹기 좋아하고 추격의 유용성을 옹호하는 자들이며, 아칸소주의 파노코코1) 잎을 스치는 해골들처럼 아름다운 맹금류 한 무리 전체가 순종하고 공인된 하인들처럼 네 이마를 둘러싸고 파닥거린다. 그런데 이마인가? 그렇다고 믿기에는 여러 번 머뭇거리지 않기 어렵다. 그 이마란 것이 매우 낮은지라, 있는지 없는지 싶은 그 존재에 대한 수적으로 매우 빈약한 그 증거를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너에게 이마가 없기에, 너는 몽환적인 춤의 흐릿하게 비친 상징처럼 벽에다 네 요추의 열띤 흔들림을 데려올 것이다. 도대체 누가 네 머리가죽을 벗겼느냐? 그게 한 인간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 네가 그를 스무 해 동안, 한 감옥에 가두었더니. 그가 달아나 제 앙심에 알맞은 복수를 준비한지라. 그는 제 할 일을 한 것이며, 나는 그를 칭찬하긴 했으나. 다만, 오직 다만 한 가지, 그는 충분히 가혹하지 않았다. 이제 너는 적어도(이 점에 미리 주목하자), 머리칼의 명백한 결여로, 포로로 잡힌 아메리칸인디언을 닮았다. 동물들에게서 제거된 뇌수조차도 결국은 다시 돋아난다는 것을 생리학자들이 발견하였으니 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은, 내가 방금 깨달은 사소한 것에 따르면 거대한 쾌락이 없는 것은 아닌 단순한 사실 확인에 머물러, 가장 대담한 추론으로도 네 자유에 대한 소망의 경계에까지는 못 미치고, 그와 반대로, 매우 의심스러운 그 중립성을 가동하여, 어디까지나 네 머리를 덮고 있는 피부의 일시적 상실밖에는 네게 가능한 것이 없음을 한결 거대한 불행의 전조처럼 여기는(또는 최소한 희망하는) 데에 근거를 둔다. 나는 네가 내 말을 이해했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네가 우연의 허락을 얻어, 터무니없지만 때로는 이치에 얽매이는 것은 아닌 어떤 기적에 의해, 네 적의 세심한 감사가 제 승리의 감동스러운 기념물로 간직해온 그 귀중한 두피를 되찾는다면, 부분적이거나 전체적인 체온 저하에 대한 너의 정당한, 그러나 약간 과장된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만큼 당연히 너의 소유일 뿐만 아니라 네 머리에 줄곧 얹어두는 것이 너에게 허락될(내가 그걸 부정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터) 쓰개머리에 의해서, 기초적인 예의의 가장 단순한 규칙들을 어긴다는 항상 불쾌한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네 뇌수의 다양한 부분을, 특히 겨울철에, 대기와의 접촉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하고 유일하기도 한 기회를, 비록 갑작스럽긴 하지만 운좋게 나타날 기회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 확률법칙을 수학적 관점에서만 검토했어도(그런데, 주저하다시피 이 법칙은 유추에 의해 지성의 다른 분야에도 쉽사리 옮겨 적용할 수 있다) 거의 절대적으로 가능하다는 점도 아울러 이해했기를 희망한다. 네가 내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는 게 진실이 아니냐? 네가 내 말을 더욱 깊이 새겨듣더라도, 네 슬픔이 그 붉은 콧구멍 내부에서 멀어져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주 불편부당하고, 응당 너를 증오해야 하는 만큼 증오하지도 않는 만큼(내 말이 틀렸으면, 그렇다고 말을 해라). 네 뜻이야 어떻든, 우월한 힘에 밀린 것처럼, 너는 내 연설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너만큼 사악하지 않다. 왜 너의 재능이 내 재능 앞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겠느냐--- 사실, 나는 너만큼 사악하지 않다! 네가 방금 이 산허리에 세워진 도시에 시선을 한 번 던졌다. 그런데 지금 내가 무얼 보고 있는가? ---- 주민들이 모두 죽어버렸구나! 나는 다른 사람만큼 자존심을 지녔으며, 아마도 더 지닌다는 것은 그만큼 더 악덕이다. 좋다. 들어보라--- 들어보라,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흐르는 해저 조류 속에서 상어의 모습으로 반세기를 살아왔던 기억을 떠올리는 한 사내의 고백이 너에게 아주 생생하게 흥미로워 주의를 기울일 만하다면 말이다. 쓰라린 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가 너에게 불러일으키는 혐오감을 내비치려는 그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저지르지 말고 들어보라. 내가 네 발끝에 미덕의 가면을 벗어던져, 있는 그대로의 나를 네 눈에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가면을 한 번도 쓴 적이 없기 때문이며(그렇긴하지만, 이 말로 변명이 된다면),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네가 내 용모를 찬찬히 살펴본다면, 너는 내가 패덕이라는 점에서는 너의 무시무시한 적수가 아니라, 너를 존경하는 제자인 것을 알아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와 악덕의 종려수관을 다투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이 그러리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 사람은 먼저 나와 겨루어야 할 터인데, 그게 쉽지 않고--- 들어보라, 네가 안개의 허약한 응결이 아니라면(너는 어딘가 네 몸을 감추니, 나는 그 몸을 만날 수 없다). 어느 날 아침, 장미색 연꽃을 꺾으려고 호수에 몸을 기울인 어린 소녀를 보았는데, 그애가 조숙한 경험으로 발을 확고하게 딛고 물에 몸을 숙였을 때, 그 눈이 내 눈과 마주쳤다(정말이지 내 편에서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에, 그 애는 바위 근처에서 조수가 일으키는 소용돌이처럼 비틀거렸고, 그애의 다리가 휘청거렸으니, 보기에 경이로운 사건이자 내가 너와 이야기하는 것만큼의 진실성으로 이룩된 현상으로, 그애는 호수의 바닥에까지 떨어졌다. 기묘한 결말로, 그애는 더 이상 어떤 수련도 꺾지 않았다. 그애는 물밑에서 무엇을 할까?--- 나는 알아보지 않았다. 필경, 해방의 기치 아래 정렬되는 그애의 의지는 부패와 악착스러운 싸움을 벌이리라! 그러나 너, 내 스승, 네 시선을 맞고, 이 도시 저 도시의 주민들이, 코끼리의 발꿈치에 부서지는 개미 둥지처럼, 일시에 파멸한다. 나는 그 증명의 한 예를 방금 목격하지 않았던가? 보라 --- 산은 더이상 즐거워하지 않는다--- 산은 늙은이처럼 고립되었다. 집들은 존재한다. 사실이다. 그러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네가 똑같이 말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낮은 목소리로 단언하더라도, 이것은 역설이 아니다. 벌써, 시체들이 발산하는 냄새가 나에게까지 왔다. 너는 맡지 못하느냐? 저 맹금들을 보라. 거창한 식사를 시작하려고 우리가 멀리 떠나기를 기다린다. 그 끊임없는 구름떼가 지평선 네 구석에서 몰려온다. 아아! 놈들은 벌써 와 있다. 그 맹렬한 날개가. 범죄를 서두르라고 너를 재촉하기라도 하듯이, 네 위에 나선형 건축물을 그리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너의 후각은 가장 미미한 악취도 맡지 못하는가? 사기꾼이란 게 별다른 것이 아니다--- 너의 다리를 안고 싶지만, 내 팔은 투명한 안개만 그러잡는다. 나로서는, 그것에 진지한 감탄의 표지를 가장 많이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유령은 나를 조롱한다. 놈은 저 자신의 육체를 찾도록 나를 돕는다. 내가 놈에게 제자리에 있으라고 신호를 하면, 놈도 내게 똑같은 신호를 보내고--- 비밀이 밝혀졌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건대, 내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큰 세목과 가장 작은 세목이. 이런 세목들은, 예를 들어, 금발 여인에게서 갈취한 두 눈처럼, 다시 마음 속에 떠올릴 가치가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나 다름없고!--- 그러니까 나도 내 머리가죽이 벗겨졌음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그가 나 같은 존재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우정을 나에게 당당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인간 존재가 느끼는 고통의 모습을 목격하려고, 내가 그를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 고작 오 년간이지만(하마터면 정확한 연수를 잊을 뻔했다). 내 시선이 허공에 도는 행성들에게까지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는 체했기에, 내가 기억능력을 지니지 못했다고 그가 주장하더라도, 틀린 것은 아니리라. 네가 해야 할 남은 일은, 돌맹이의 도움을 얻어, 이 거울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리는 것--- 일시적 기억상실의 악몽이 내 상상력 속에 거처를 마련하는 일은 처음이 아니어서, 그때마다 확고한 광학법칙에 의해, 나 자신의 상을 잘못 보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는구나!
1) 파노코코는 흑단의 일종으로 미국 중남부 서부의 아칸소주가 아니라 남미의 가이아나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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