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작법 강의>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
이관희
저녁 먹는 자리였다. 낙지볶음이 먹음직스럽다. 수저를 들기 전에,
“소주 한 잔 할까…….”
했더니 일행 중 한 사람이,
“선생님도 술 생각나실 때가 있으세요?”
그런다.
“글쎄, 나도 뜻밖이네. 그러니까 이 현상이 무슨 의미냐……,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소주 생각이 났다……. 그래 요놈이 범인이었던 거야. 요 먹음직스러운 낙지볶음. 술꾼 쳐놓고 요놈 앞에서 소주 한 잔 유혹에 안 넘어갈 자 있는가? 술꾼이 아닌 나도 소주 생각이 나는데……. 이게 바로 작법인 게야.”
“선생님 또 18번 나오시네요.”
그래서 좌중이 한바탕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신간 호 지상 작법은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예작법은 본능에서 시작된다.
<이것>을 보면 [저것]이 생각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본능이다. 저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은 전혀 천재적 발명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다 가지고 있는 <모방본능>에 근거한 이론이다.
모방론뿐만 아니다. 문학개론서를 펼치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것이 문학 발생설이다. 모방(模倣)본능설, 유희(遊戲)본능설, 흡인(吸引)본능설, 자기표현본능설 등 이 네 가지 기본 문학발생설 모두가 <본능설>에 근거한다.
오늘 이 짧은 <지상 작법강의>에서 다른 것은 다 옆으로 밀쳐두고 딱 한마디만 기억하도록 하자.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는 말이다.
문학 발생설이 모두 본능에 근거한다는 것은 ‘본능이 곧 작법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 해 준다.
본능 : ①생물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동작이나 운동 ②동물이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외부의 변화에 따라서 나타내는 통일적인 심신의 반응형식(에센스국어사전)
이 낱말의 뜻에서 작법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라는 말이다.
내가 지난 14년 동안 조사하고 실제 맞부딪치며 경험한 수필가들은 불행하게도 <현대문학> 공부를 할 기회를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긴 사람들이었다. 수필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아무 글이나 한 편 써 가지고 돈 백만 원만 들고 가면 신인 당선작으로 발표해 주었으니 문학을 學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수필가가 만약에 자신의 본능만이라도 일깨운다면 ‘신변잡기’는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 국어사전의 <본능> 낱말 뜻이다.
다시 한 번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국어사전을 들여다보자.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라고 했다. 수필계 지도자들이 아무리 문학공부를 안 한 신인장사 장사꾼들이라 해도 그 밑에서 수필공부를 한 수필가가 본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후천적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도 적어도 ‘신변잡기’는 안 쓰게 된다는 뜻 아닌가? 금호에 작품이 게재된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 함민복 시인의 어머니, 이어령 교수의 어머니……, 이분들을 필자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정록 시인은 어머니 말을 그대로 詩로 썼다고 한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도 모른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견물생심이 무슨 뜻인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
물건 <이것>을 보면
가지고 싶다 [저것] 생각이 난다】
이것이 바로 작법인 것이다.
수필가들도 <멋진 옷을 보면> [
입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멋진 핸드백>을 보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금은방 <반지를 보면> [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수필가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멋진 옷을 보면 입고 싶고, 멋진 핸드백을 보면 사고 싶고, 다이야반지를 보면 끼고 싶다면, 진정으로 그런 ‘견물생심’이 저절로 생기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것>이라는 소재를 보고 [저것]이라는 다른 생각이 안 날 수 있는가?
더 이상 수필교실 선생이 가르쳐 준 일 없다고 하지 말라. 더 이상 문학이 어렵다는 말도 하지 말라. 예술창작의 기본은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본능대로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이 강의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그날 술 마실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저녁식사를 할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낙지볶음>을 보자 저절로 [소주] 생각이 났던 것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반응이었다. 이것은 순전히 <견물생심>의 본능에 의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라는 ‘낙지볶음’을 보자
[저것]이라는 ‘소주’】생각이 났던 것이다. 바로 창작에세이의 대표적 기본 작법인 소재에 대한 비유창작, <낙지볶음은 소주다>가 되지 않는가.(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소주는 낙지볶음이다>가 될 수도 있다.)
隨筆이 망한 까닭은 처음부터 <이것>만 썼기 때문이다.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백날 <낙지볶음은 낙지볶음이다> 라고 써도 문학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중얼거리면 ‘저 사람 미쳤나보다’ 한다. 실제로 <이것>만 썼더니 ‘신변잡기’라고 하지 않는가!
‘낙지볶음은 소주다’라고 써야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고! 이것이 문학이고 예술이다.
<이것>만 쓰는 것은 문학(창작)도 아니고, 예술(창조)도 아니다. <이것>에서 [저것]을 발견하여 그 [저것]을 써야 비로소 문학도 되고 예술도 된다.
그런데 <이것>에서 [저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능만 발동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 같은 본능설이 최초의 문학이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인 것이다.
필자가 작법강의를 시작한 첫 시간부터 모든 예술의 기본 작법은【<이것>을 [저것]으로 발견】하는 데에 있다고 한 말은 무슨 굉장한 이론 연구 결과가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견물생심>의 본능론일 뿐이다.
작법 :
소재 <이것> ‘낙지볶음’ ➜ 작품 [저것] ‘소주’
본능대로만 써도 ‘신변잡기’는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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