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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홍문표 시창작 강의 노트 3
2019년 10월 24일 20시 17분  조회:940  추천:0  작성자: 강려
시와 제목
홍문표
(1) 제목의 의미
① 이름 놀이의 세계
모든 존재는 이름이 있다. 인간도 그렇다.(국적, 호적)
이름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명명.
명명되지 않은 존재는 존재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 지상의 조건 ― 세계내 존재(하이데거)
그러기에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
학술적인 제목 ― 연구 주제를 나타냄 「소월 시의 민요성에 대한 연구」
문학작품의 제목 ― 제목을 본문과 함께 작품의 구성요건(작품 = 제목 + 본문)
중국의 시인 왕유는 「녹시(鹿柴)」라는 제목의 시를 쓴 일이 있다. 사슴 울타리라는 뜻이다. 매우 호기심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그러나 작품 내용은 예상밖이다.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近景入深林(근경입심림)
復照靑苔上(복조청태상)
텅빈 산 속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두런두런 말소리만 들려올 뿐
석양볕만 깊은 숲에 스며들어
어제처럼 이끼 위를 비추고 있네
② 넥타이와 스카프
내용과 조화- 바람직한 시의 제목이라면 우선 시의 내용과 조화와 통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시는 각 부분들이 생물체의 기관들처럼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어서 통일체를 형성하는 것이므로 시의 제목은 시의 주제나 의미, 정서, 분위기, 이미지 등과 서로 부합되어야만 한다.
신선한 제목- 그러나 시의 제목은 참신하고 매력이 있어야 한다. 시의 제목은 넥타이와 같다. 여인의 스카프라고 할 수도 있다. 넥타이와 스카프는 분명 외모를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과 교양과 매력을 동반한다.
(2) 소재를 드러낸 제목
① 중심소재와 부분소재
소재라는 말에는 하나의 작품을 이루기 위한 중심적인 재료, 즉 제재(題材)와 부분적인 재료를 소재(素材)라고 한다. 그러나 제재를 포함하여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재료를 소재라고 하기도 한다.
② 중심소재를 제목으로 한 경우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 노천명 「사슴」
제목
주제
중심소재(제재)
소재
사슴
향수
사슴
긴 모가지, 관(뿔), 물 속, 그림자, 전설, 향수, 산
 
③ 부분소재를 제목으로 한 경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사람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낙엽들이 걸어간다
낙엽이 다니는 눈길 위로
누더기가 된 사람들이 걸어간다
그 뒤를 쓸쓸히 개미 한 마리 따른다
그 뒤를 쓸쓸히 내가 따른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내 인생이 편안해졌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비로소 별이 보인다
개미들도 누더기별이 되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
- 정호승 「누더기별」
④ 이미지화 된 제목
결국 시의 제목은 시의 본질이 창조성에 있듯이 제목도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 창조적이란 바로 제목부터 상상력이 구사된 제목이며 이는 이미지화 된 제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온몸이 몇천만 도로 타면 시체의
기억을 태워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아닌, 순금의
기억, 아 기억만을 후대도 아닌,
손닿지 않고 느껴지기만 하는
느껴지지 않고 간직되기만 하는
간직되지 않고, 있는
그런 순금의 보통명사를
남겨줄 수 있을까?
- 김정환 「純金의 기억」
(3) 주제를 드러낸 제목
① 명사형 주제를 제목으로 한 경우
주신 것
잎새.
꽃.
때 이르러 열매이더니
오늘은
땡볕에 달궈 낸
금빛 씨앗.
- 김남조 「선물」에서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단단하게 마른
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단 하나의 손발.
모든 神들의 거대한 정의 앞엔
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
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
이 마른 떡을 하룻밤
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結晶된 빛의 눈물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
견고한 칼날 ― 발 딛지 않는
피와 살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더 휘지 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씁쓸한 자양
에 스며드는
에 스며드는
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 김현승 「堅固한 고독」
제목
주제
이미지
견고한 고독
고독
1연 ― 흰 얼굴
2연 ― 손발
3연 ― 창끝
마른 떡
칼날
4연 ― 목관악기
굳은 열매
 
② 주제문(theme sentence)을 제목으로 한 경우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별빛이 쓸고 가는 먼 길을 걸어 당신께 갑니다.
모든 것을 다 거두어간 벌판이 되어
길의 끝에서 몇 번이고 빈 몸으로 넘어질 때
풀뿌리 하나로 내 안을 뚫고 오는
당신께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이 땅의 일로 가슴을 아파할 때
별빛으로 또렷이 내 위에 떠서 눈을 깜빡이는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동짓달 개울물 소리가 또랑또랑 살얼음 녹이며 들려오고
구름 사이로 당신은 보입니다.
바람도 없이 구름은 흐르고
떠나간 것들 다시 오지 않아도
내 가는 길 앞에 이렇게 당신은 있지 않습니까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 도종환 「당신과 가는 길」
(4) 내용과 무관한 제목
남자와 여자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밤에 보는 오갈피나무,
오갈피나무의 아랫도리가 젖어 있다.
맨발로 바다를 밟고 간 사람은
새가 되었다고 한다.
발바닥만 젖어 있었다고 한다.
- 김춘수 「눈물」
 
시의 행 가르기
홍문표
(1) 행과 연의 원리
① 시와 산문의 구성단위
일반문장- 단어 → 단문 → 단락 - 문장
모든 존재- 부분 + 부분 = 전체
시- 행 + 행 = 연 + 연 = 작품
바람은
발기발기 찢어진
기폭
어두운 산정에서
하늘 높은 곳에서
비장하게 휘날리다가
절규하다가
지금은
그 남루한 자락으로
땅을 쓸며
경사진 나의 밤을
거슬러 오른다.
- 정한모 「바람 속에서」
4연 12행의 시인데 산문으로 표기하면 “바람은 발기발기 찢어진 기폭, 어두운 산정에서, 하늘 높은 곳에서 비장하게 휘날리다가, 절규하다가 지금은 그 남루한 자락으로 땅을 쓸며 나의 발을 거슬러 오른다.” 단일문장이 된다.
② 행갈이의 본질
왜 시는 이처럼 행과 연을 갈라 문장을 도막치는가. 바로 여기에 산문과 구별되는 시의 원리가 있다. 산문은 이야기 문장이기 때문에, 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완결된 문장이기 때문에 연속성이 생명이다. 그러나 시는 이야기 문장이 아니라 마디마디로 느낌을 토해내는 감정적인 문장이고, 충동적인 문장이기 때문에 리듬이 있고, 호흡이 있고, 행마다, 연마다 독립된 단절이 있어야 한다. 이는 시가 음악성이나 회화성을 추구하는 예술이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③ 행과 연의 등가성
등가성(等價性)의 원리- 그렇다면 행과 연은 어떻게 가르는가. 마음대로 가르는가. 물론 과거의 시는 행과 연에도 일정한 규칙, 즉 자수율이나 운율이 있었지만 현대시는 이러한 규칙이 없으니 당연히 마음대로 가른다는 것이겠지만 여기에 엄연히 내적인 규칙이 있다. 전통적인 우리 시가의 행은 3음보나 4음보의 규칙적인 반복이고, 음보의 원리는 읊조릴 때 시간의 등장성(等長性)을 단위로 한다. 이에 대하여 현대시는 행과 연 구분의 원리를 주관적인 등가성(等價性)으로 한다.
눈이
오는데
옛날의 나직한 종이 우는데
아아
여기는
명동
성 니콜라이 사원 가까이
- 박목월 「폐원」에서
행구분의 원리는 리듬, 즉 감동을 조성하는데 있다.
리듬은 일정한 것의 반복적 형식이다.
시는 행갈이와 연갈이의 문학장르다.
구분의 원리는 시인의 주관적인 등가성이다.
(ㄱ) 눈이
오는데
(ㄴ) 눈이 오는데
(ㄱ)은 ‘눈이’와 ‘오는데’가 대등한 단계다.
(ㄴ)은 ‘눈이’가 주고 ‘오는데’는 종속이다.
행과 연은 시인의 사물에 대한 주관적, 예술적, 창조적 관심을 말한다. 이를 수치로 말하면 ‘눈이’가 10g일 경우 ‘오는데’도 10g, ‘옛날의 나직한 종이 우는데’도 10g이고, ‘아아’는 따라서 30g이어야 한다. 물론 ‘여기는’도 10g, ‘명동’도 10g, ‘성 니콜라이 사원 가까이’도 10g이어야 한다.
④ 이미지 마디와 행갈이
과거엔 자수나 음성적 리듬이 행갈이와 연갈이의 규칙이었지만 현대시의 행갈이는 이미지를 단위를 행갈이로 하여 보다 감각적인 효과를 노린다.
푸드득
푸나무 서리
푸르름 하나
이파리 이파리
이파리 파도
이파리의 바다
여름
푸석이는 가을 녘
푸르뎅뎅한
눈두덩이며 엉덩이며 풍년을 모아놓고
푸닥거리나 한다
날 때는 우리 모두 푸르렇고
날 때는 우리 모두 조그마 했고
이제 우리 모두
푸석푸석한 푸나무 몇 단
- 민용태 「푸닥거리」에서
하낫 둘
하낫 둘
일요일로 나아가는 「엇둘」소리……
자연의 학대에서
너를 놓아라
역사의 여백(餘白)……
영혼의 위생(衛生)데이……
일요일의 들로
바다로……
- 김기림 「일요일의 행진곡」
⑤ 의미마디와 행갈이
행과 연을 가르는 또 하나의 기준은 의미를 단위로 하는 경우이다. 이는 한 행에 하나의 의미, 한 연에 독립된 의미를 표현할 수도 있고, 전체적인 작품에서 의미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의미를 중요시하는 관념시나 목적시의 경우 행 갈이나 연 갈이의 비중을 덜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도의 시적 기교를 통한 문학성보다 주제의 설득이나 의미의 전달에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해가 지기 전에 산 일 번지에는
바람이 찾아온다.
집집마다 지붕을 덮은 루핑을 날리고
문을 바른 신문지를 찢고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
돌모래를 끼어 얹는다.
해가 지면 산 일번지에는
청솔가지 타는 연기가 깔린다.
- 신경림 「산 1번지」에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면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에서
⑥ 현대시와 내재율
고시가의 정형성과 등장성- 과거의 시는 리듬을 들어내기 위하여 정형적, 외형적, 자수율, 음보율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음보나 자수는 등장성(等長性), 즉 길이가 일정한 음성적 형식의 반복으로 하였다.
오 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 「회고가」
장르
음수율
음보율
의미마디
시조
1
2
3
3 4 3 4
3 4 3 4
3 5 4 3
4음보
4음보
4음보
도착
상태
회고
 
현대시의 내재율- 현대시도 리듬은 절대적인 조건이다. 웰렉은 현대시의 특징을 리듬(rhythm)과 메타퍼(metaphor)라고 하였다. 다만 현대시에서 리듬을 들어내는 방식이 과거의 외형적 정형적 등장성이 아니라 주관적, 내면적, 창조적 등가성의 리듬을 활용한다. 앞서 ① 행과 연의 구분방법에서 음수나 음보의 등장성이 아니라 주관적 가치의 등가성으로 행과 연이 구분됨을 밝혔다. ② 이미지 마디를 통한 반복적 리듬을 시도하기도 하였고, ③ 의미마디를 반복적 리듬으로 하여 행과 연을 가르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리듬의 방식을 내재율이라 한다.
⑦ 전통적 리듬과 현대시
시행의 일정한 규칙성은 한국 고대시가나 한시, 그리고 영시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이는 시의 리듬감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민요나 노래를 위한 가사의 경우 필수적인 조건이 되고 있으며 현대시에서도 과거 시가의 운율을 답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전통적 리듬이라고 말한다.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긴 날을/ 문 밖에/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무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드도록/ 귀에 들려요//
- 김소월 「님의 노래」에서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 박목월 「윤사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조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 한용운 「복종」에서
말많은놈 엮어엮어 뒷골큰놈 엮어엮어
눈깔큰놈 엮어엮어 귀밝은놈 엮어엮어
이리 엮고 저리 치고
요리 얼렁 조리 뚱땅
돈 발라 탈 섹스 발라
분 발라 탈 디올 발라
- 김지하 「탈」에서
 
현대시의 연 가르기
홍문표
(1) 연의 의미
원래 연을 영어로는 스탠자(stanza)라 하여 방(房)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하나의 집은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지듯이 한 편의 시도 여러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다는 논리다. 따라서 연 구분의 원리도 행 구분이 논리를 확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행들이 작은 리듬의 단위, 이미지의 단위, 감정의 단위로 설명된다면 연은 그보다 확대된 리듬이나 이미지나 의미나 감정의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현대시의 바람직한 연 구분
현대시를 리처즈와 테이트는 충돌과 긴장이라고 했다. 무카로브시키는 낯설음이라 했다. 이는 외형적 규칙성에서 주관적이고 내면적이고 창조적인 행갈이와 연갈이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라.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낙엽이요
잠간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 같이, 외로히
그대를 떠나오리라.
- 김동명 「내마음」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는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김현승 「눈물」
(3) 시의 연과 내면 구성
① 시의 내면적(주관적) 논리성
시의 행이나 연들의 경우 객관적인 논리성을 요구하는 산문의 구성방식과 동일할 수는 없지만 시도 일차적으로는 의미나 메시지가 독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언어 행위이며 여기에 정서적 환기나 시학적 미학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인 만큼 행과 연의 구성방식은 시인의 시적 창조성과 더불어 의미와 정서를 표출하는 의식적 행위로 추정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한 편의 작품을 의미상 단일구성, 2분 구성, 3분 구성, 4분 구성, 기타 잡다한 열거식 구성을 하는데 이들은 결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적 필연성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② 2분 구성법
확대와 축소의 2분 구성
요즈음은
詩 몇 줄 쓰기 바쁘게
지워 버리기 일쑤입니다
   
5
   
개나리
진달래
木蓮
   
 
   
이런 것들이 책상머리에 와서
빤히 눈을 뜨고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간신히 잡은
詩 한 줄을 뭉개 버립니다
   
 
   
錦江
洛東江
漢灘江
   
 
   
그리고 南漢江의
돌밭에서 만나
함께 내 집에 와서 살게 된
   
 
   
 
- 전봉건 「요즈음의 시」에서
③ 3분 구성법
외형과 내면의 일치된 3분 구성(초중종형)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김성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내면적 3분 구성
아내는 두 번이나
마굿간에서 아이를 낳고
지금 아내의 毛髮은 구름 위에 있다.
   
5
   
봄은 가고
바람은 평양에서도 동경에서도
불어오지 않는다.
바람은 울면서 지금
西歸浦의 남쪽을 불고 있다.
   
 
   
西歸浦의 남쪽
아내가 두고 간 바다,
게 한 마리 눈물 흘리며, 마굿간에서 난
두 아이를 달래고 있다.
   
 
   
 
- 김춘수 「이중섭 2」
④ 4분 구성
외형과 내면의 일치된 4분 구성(기승전결형)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산유화」
내면의 4분 구성
황아장수 황아짐 따라
장길 골목을 기웃대다
얻었구나 잡동사니
온 주머니 가득 얻었구나
   
5
   
피리 소리 꽹과리 소리
초라니 따라 떠돌다가
잃었구나 다 잃었구나
   
 
   
털털 빈 손 남았구나
풀밭에 무릅 꿇으면
보이느니 핏빛 노을
돌밭에 턱 괴이면
들리느니 설은 설움
   
 
   
빗소리 바람소리에 몰려
밤길 진흙길 허둥대다
찾았구나 잃은 세월
그 잃었던 모든 것들
   
 
   
 
- 신경림 「길」
⑤ 열거식 구성
난초 잎은
차라리 수묵색
난초 잎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 잎에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난초 잎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 눕다
난초 잎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쩌지 못한다
난초 잎은
작은 바람이 오다
난초 잎은
춥다
- 정지용 「난초」
무연의 열거행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이야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 살이 간 분이는
아이를 뱃다더라. 어떻할거나.
술에라도 취해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를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
- 신경림 「겨울밤」
 
시적 표현의 네 단계
홍문표
(1) 묘사와 표현
① 산문문장의 서술방법
목적
서술방법
알려주기
서술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설명)
주장하기
주장의 타당성을 증명하고 설득한다(논증)
그려내기
느낌과 인상을 잘 표현한다(묘사)
이야기하기
내용의 줄거리를 늘어놓는다(서사)
 
② 묘사와 산문문학
묘사의 방법- 묘사란 사물의 현상을 관찰하여 그 인상을 감각적으로 언술하는 양식이다. 여기서 현상이란 사물의 형태, 색채, 감촉, 향기, 소리, 다른 사물과의 관계 장소 등 주로 감각적이고 표면적인 인상을 말한다. 물론 인상이란 객관적일 수도 있고, 주관적일 수도 있다. 인식의 정도, 관찰의 각도, 관심 등에 따라 차이가 드러날 수도 있다.
① 비가 유리창을 적시고 있다.
② 빗방울이 유리창을 흔들어대고 있다.
③ 빗방울은 유리창에 날벌레처럼 매달리고 미끄러지고 엉키고 또르르 뒹굴고 흠이 지고 한다.
①은 비교적 사실적인 문장이다. ② 비가 유리창을 흔들어댄다는 표현을 통해 그 묘사가 좀 구체적이다. ③은 묘사가 세부적이고 비유적이어서 훨씬 실감나는 언술이 되었다.
③ 주관적 묘사와 개관적 묘사
- 주관적 묘사
만추는 햇살이 만든다. 햇볕이 나면 풀과 나무가 활짝 꽃피며 웃다가 해만 구름에 가리면 금방 시무룩하니 몸을 움츠린다. 코를 찌르던 여름의 풀 냄새는 없고 산에서는 마른풀 향기가 희미하게 떠돈다. 잎이 성긴 나무들이 서 있는, 아무도 없는 과수원에 들어선다. 한쪽 양지바른 풀밭, 버려진 묘 위에 털썩 드러누우니, 참 억새며 다 자란 풀들이 눈앞을 가리고 해에 비쳐 반짝인다. 눈을 감고 사지를 뻗으면 한가한 즐거움이 나른하게 몸에 와서 잠긴다. 나는 마른풀에 볼을 비비며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 진동기의 「가을 풀」에서
- 객관적 묘사
사십이 가까운 처녀인 그는 주근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훌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맘대로 쪽지거나 들어올리지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겨 넘긴 머리꼬리가 뒤통수에 염소 똥만 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 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악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놀랠 때에는 기숙사생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 현진건 「B사감과 러브레터」에서
④ 시의 표현과 현현
묘사와 표현- 묘사는 어떤 사물이나 인물의 실상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언술방법이지, 시에서처럼 사물의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전복적 언술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①의 첫 문장은 꽤 암시적이다. 그러나 그 의도는 햇볕과 풀과 나무의 불가분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언술하고자 한 것이며, ②의 언술도 주인공 노처녀의 인상을 보다 실감 있게 설명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그러나 시의 경우는 보다 효과적인 설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질적으로 다른 사물로 개조하는데 있다. 이 말은 기존의 의미에서 완전히 깨닫지 못했던 존재성을 발견하고 새롭게 명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나 예술에서는 묘사란 말보다 표현(表現)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시와 표현- 표현(expression)이라는 말은 내면적, 정신적, 심적인 상태를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불가시의한 세계를 가시의 세계로, 무형의 세계를 유형의 세계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인상주의가 외부적인 사물의 형상을 내면에 각인시킨 다음 이를 다시 나타내는 것이라면 표현주의는 처음부터 내면의 세계를 외형화 한다는 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처럼 표현은 철저히 무형의 유형화다. 이 말은 표현(表現)이라는 뜻과 일치한다.
시와 현현- 한편, 시는 자신의 내면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내면, 즉 숨겨진,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를 들어낼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를 현현(顯現)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시는 묘사적 언술이 아니라 표현적 언술이고 현현적 언술이다.
참 맑은 물살
발가락 새 헤적이네
애기 고사리순 좀 봐
사랑해야 할 날들
지천으로 솟았네
어디까지 가나
부르면 부를수록
더 뜨거워지는 너의 이름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출렁거리는 산들의
부신 허벅지 좀 봐
아무 때나 만나서
한몸되어 흐르는
눈물나는 저들 연분홍 사랑 좀 봐.
- 곽재구 「참 맑은 물살」
(2) 시적표현의 네 단계
① 이토 케이치의 나무를 보는 방법
(1)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객관적인 나무)
(2)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동적인 나무)
(4) 나무의 이파리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5) 나무속에 승화된 생명력을 본다.(내면의 나무)
(6)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7)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 그 자체를 생각해 본다.(나무 저편의 세계)
(8) 나무를 매개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② 객관적인 나무
먹구름 뚫고
파아란 하늘만 우러러
폐원의 石塔처럼
겨우내 앙다문 裸木
오늘도 不動이다.
사나운 눈보라에 시달린 胴體
사지는 바람에 찢기우고
여름을 여윈 가슴은
밤마다 무서운 객혈이어도
선채로 억 년을 지켜
동결된 계절의 이랑 끝에
저리도 오만하게 버틴
겨울 哨兵이여!
- 홍문표의 「裸木」
③ 동적인 나무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 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 유시화의 「새와 나무」
④ 내면의 나무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 정현종 「사물의 꿈 1」
길이 없다면
내 몸을 비틀어
너에게로 가리
세상의 모든 길은
뿌리부터 헝클어져 있는 것,
네 마음의 처마끝에 닿을 때까지
아아, 그리하여 너를 꽃피울 때까지
내 삶이 꼬이고 또 꼬여
오장육부가 뒤틀려도
나는 나를 친친 감으리
너에게로 가는
길이 없다면
- 안도현 「등나무 그늘 아래에서」
⑤ 나무 저편의 세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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