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34
시의 종류와 서정시
홍문표
1. 시의 종류
(1) 형식상
① 정형시: 일정한 형식(틀)에 맞추어 쓴 시. 시조가 대표적인 형식
일본 하이꾸. 중국 한시. 서구 소네트. 한국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멀리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이순신
② 자유시 : 정형시가 지니고 있는 운율적, 형식적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 현대의 대부분 시
③ 산문시 : 시의 내용을 행의 구분 없이 연 단위로 산문처럼 표현한 시.
구름은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따먹고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구름은 흰 보자기를 펴더니, 양털 같기도 하고 무슨 헝겊쪽 같기도 한 그런 들을 늘어놓고, 혼자서 히죽이 웃어보기도 하고 혼자서 깔깔깔 웃어보기도 하고……
어디로 갈까? 냇물로 내려가서 목욕이나 하고 화장이나 할까보다. 저 뭐라 는 높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서 휘파람이나 불까보다…… 그러나 구름은 딸 기를 몇 개 더 따먹고 이런 청명한 날에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는 듯이, ' 아직 맛이 덜 들었군!' 하는 얼굴을 한다. - 김춘수의 「구름」
(2) 내용상
① 서정시 : 개인의 주관적인 정서와 감정을 표현한 시, 과거와 현대의 대표적 인 시
② 서사시 : 일정한 사건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노래한 시, 과거 영웅시, 소설 의 원류
[1]
(아아,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 밤에 남편은
두만강(豆滿江)을 탈 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강안(國境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경(巡警)이
왔다 갔다
오르며 내리며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마차(密輸出馬車)를 띄워놓고
밤 새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脈)이 풀려서
파아 하고 붙는 어유(漁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서
③ 극 시 : 극적인 내용을 시적 언어로 표현한 시, 공연을 고려하지 않을 때 극시(dramatic poetry) 공연을 고려할 때는 시극(poetic drama)이라 함.
※시를 내용상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나누는데 이는 다분히 고전적 구분이다. 원래 문학은 언어의 음악성이 서정시로 사건이 서사시로 행동이 드라마로 발전한 것이라면 서정시는 오늘의 시로 서사시는 오늘의 소설로 극시는 오 늘의 연극으로 분화 발전된 것이기에 시의 주류는 서정시이고 오늘의 서사 시 극시는 시에 소설과 드라마 의 형식을 혼합한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3) 목적상
① 순수시 : 예술성을 추구한 시, 비정치 비이념의 시, 사물시
깊고 그윽한 저녁으로 빠진다./ 물의 근원 속엔/ 내가 빠져 있고,/
나는 몇 개의/돌로 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삽질을 한다./
묻힌 나를 캐어낼 수록/ 어린 날의 혼돈은 뛰쳐나와/ 시름겨운 정열을/
옛 사랑을, 보여준다 – 마종하 「한여름날」
② 참여시 : 역사와 현실의 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이를 개선하겠다는 목적의 식의 시 계몽시 정치시 이념시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 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김수영의 「푸른하늘은」
(4) 경향상
① 주정시(主情詩) : 개인의 정감과 정서를 노래한 시, 서정시가 대표적 ② 주지시(主知詩) : 감정보다 이성과 심상을 중시한 시, 이미지즘시 모더니즘 시
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정부(亡命政府)의 지폐(紙幣)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瀑布)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홀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 김광균의 「추일서정」
③ 주의시(主意詩) : 인간의 의지의 측면을 중시한 시,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 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의 「절정」
2. 서정시(抒情詩)의 어의
1) 악기에 맞춘 가사
서정시(lyric poetry)는 원래 리라lyra라는 현악기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서정시는 본래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가사를 뜻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에는 주로 읽기 위해 쓰여진,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짧은 시를 뜻하게 되었다. 여기서 개인적인 감정이란 개인의 정서, 상상 또는 사상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다.
2) 마음의 드러냄
한자어의 抒情은 마음을 끄집어 냄, 털어냄의 뜻으로 내면, 감정, 마음, 주관 등을 밖으로 드러내는 시라는 말이다.
3) 서사시(敍事詩)와 서정시
서사시는 敍事, 즉 사건을 펼침. 사건의 전말을 서술하는 시라는 데서 서정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 천상병 「강물」
3. 서정시의 연원
1) 서양의 서정시
서양에서는 서정시의 장르가 여러 가지로 변화 발전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오우드ode, 소네트sonnet, 엘레지elegy, 패스토럴pastoral, 쌔타이어satire, 에피그램 epigram 등이다. 오우드는 음악과 같이 노래를 불렀던 시형식으로서 그리이스 시대부터 신과 영웅찬양, 소네트는 14행의 소곡, 엘레지는 비가, 만가, 패스토럴은 목가, 쌔타이어는 풍자시, 에페그램은 경구시.
2) 한국의 서정시
우리나라에서 서정시의 전통은 오래된다고 보겠는데 고대의 경우, 고구려 시대 유리왕의 작이라고 하는「황조가」, 곽리자고의 처가 불렀다는「공무도하가」를 비롯하여 향가, 고려가요, 시조, 가사 등에도 수많은 서정시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시의 경우 90%가 모두 서정시다.
③ 서정시와 리듬
1) 서정시와 음악
서정시(lyric poetry)는 악기의 명칭에서 유래될 만큼 음악과 밀접하다. 그러나 시의 본질을 이해하는 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나 시나 근본적으로 감동을 위한 표현양식. 모든 것을 지적으로만 전달하지 않고 감동적으로 전하려는 어법이라는 사실이다.
2) 고대시가의 음악적 리듬
따라서 고대시가는 음악적 리듬(음성율, 음위율, 음수율)을 최대한 활용한 운율, 율격을 사용하였다. 또한 감동의 언어적 기능을 신비롭게 생각하여 신과 영웅의 찬양, 집단의 소망, 기쁨의 표현 양식 등으로 활용하였다.
3) 노래시의 보편적 형식과 민요
노래와 어울린 고대시는 개인적이기 보다 집단적이다. 모두가 공유해야하는 노래시는 낱말과 수사법이 선율과 어울려야 할 뿐 아니라 노래를 부르면서 동시에 쉽게 가사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노래의 호흡, 리듬, 선율 등 음악적 조건에 맞도록 말의 음성적 요소들을 선택하고 배열한 결과 이른바 율격(meter)이 라는 것이 발생하였다.
우이와라 우이와라
아랫논에 메베 비고 웃논에 참베 훑어
우리 오빠 장가갈 때
메쌀일랑 밥을 하고 찹쌀일랑 떡을 찧어
너두 한 상 채려 주께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우이와라 우이와라
- 부여 지방 민요
민요의 특성은 공동성, 단순성, 보편성, 민중성, 민족성, 개인성이라고 장덕순은 지적한 바가 있다. 인용한 민요를 보면 전통적인 2음보의 반복형식이다.
4) 개인적 서정시
문자언어의 활발한 발달은 노래시가 갖는 음악적 리듬보다 언어가 갖는 감각적 이미지, 의미의 반복적 강조 등을 통하여 내면적인 리듬을 통한 감동의 형식으로 현대에는 서정시가 변모되기에 이르렀다.
내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의 「동천」
서정시의 본질, 세계의 주관화
홍문표
(1) 공간세계의 주관화
① 과학과 시의 공간
과학 - 모든 사물의 분리, 차별성의 확인, 개체적 존재확인, 물리적 공간
분리 - 소외 - 고독 - 절망 (에덴의 상실)
시 - 주체와 객체의 통합, 모든 사물의 동일성, 융합과 조화 주관적 공간
평화공존 - 충만함 - 시적 구원 (에덴의 회복)
② 물리적 거리의 초월, 객관적 공간의 주관화
서정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아의 내적인 세계와 외적인 세계가 철저히 결합하거나 충돌하는 관계다. 이를 주관적인 정서와 객관적인 사물의 교감에 의하여 빚어지는 창조라고도 말한다. 또한 주관과 객관, 자연과 인간, 세계와 자아, 객체와 주체 등의 대응관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시인의 내면적인 의지와 외부적인 세계와의 긴장이나 충돌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조망하는 아름다운 노력인 것이다. 이것은 일상적이고 물리적인 거리의 초월이며 객관적 공간의 주관화다.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 떼를 날려 보냈고
흰 새 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트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③ 내 마음의 공간
듀이 - 마음이란 동사(verb)다.
마음은 외부세계와 끝임 없이 교섭하고자 한다.
훗설 - 의식의 지향성, 노에시스(noesis)
슈타이거 - 서정시란 자아에의 회귀
④ 동일성의 세계
듀이는 자아와 세계의 만남이 동일성으로 이루어질 때 이를 미적 체험이라고 하였다. 유기체와 환경의 각각 특성이 소멸된 완전한 결합, 즉 자아와 세계가 각각 특수한 성격을 상실하고 하나의 새로운 동일성의 차원에서 융합된 주객일체의 경지,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론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 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박두진 「하늘」
저 안에 천둥 몇게
저 안에 벼락 몇 게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 장석주 「대추한알」
(2) 시간의 주관화
① 물리적 시간과 시적 시간
물리적 시간 - 물리적 시간은 화살처럼 가는 시간, 과거 - 현재 - 미래
불가역의 시간, 일회적 시간, 실존의 시간, 절망의 시간
시적시간 - 원형적 시간, 수직적 시간, 초월의 시간, 구원의 시간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 김남주 「사랑은」
② 시간의 동일성
1) 비동일성의 세계
플라톤 - 인간은 한 순간도 동일할 수 없다.
만물은 계속 변한다. 자기정체성 불가
2) 자기동일성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물리적인 논리로 볼 때 결코 같을 수 없지만 이를 같은 것으로 동일시하려는 몽상, 그리하여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연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고정적인 존재라는 생각이나 느낌이 바로 자아 동일성의 한 단서가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과거 - 현재 - 미래 라는 선조적 수평적 시간관을 파괴하고 수직적, 또는 혼합적 시간의 질서를 새롭게 구축한다.
훠이훠이
산을 넘고
엉겅퀴 어우러진 골짝을 지나
억만 년 숨어 사는
넓적바위 아래 옹달샘 하나
낮에는 푸른 하늘
가슴에 품고
밤에는 은하수 한줄기로
목을 축이고는
졸졸졸
찬송가 78장을 연거푸 불러대는
저 태고의 청아한 목청
- 홍문표 「생수를 마시며」에서
③ 영원한 현재
서정시에 있어서의 시간은 과거를 현재화하고 미래도 현재화한다. 이것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한순간도 동일할 수 없는 삶이지만 그러한 변화 속에 불변의 영원함을 찾으려는 플라톤적 이상이기도 하며 불변하는 자아의 동일성을 지속적인 시간 속에서 발견하려는 통시적 인생관이기도 하다. 또한 인과관계나 객관적인 논리를 통하여 인생의 리얼리티를 표현하려는 서사시나 소설과는 달리 순간의 감정과 정서와 관념을 표현하려는 것이 서정시이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물리적 시간의 순서를 초월하여 과거와 미래도 현재로 허구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에서 서정시는 영원한 현재가 되는 것이다.
에밀레가 운다
에밀레가 운다.
시간조차 스며들 수 없는
무쇠성 속에
갇히어 어린 슬픔이 운다.
목이 타서 목이타서
호소할 곳 없는 기막힘이 운다.
- 이원섭 「에밀레」에서
(3) 세계의 주관화 의미와 정서의 동일성
① 객관적 세계의 비극
객관적 세계는 존재들을 한결 같이 사전적 개념, 인습적 개념의 울타리 속에 감금하고 있다. 따라서 객관적 세계 인식에서는 인간과 물질, 정서와 사상, 사물과 사물 모두가 개별화 고립화 되어 있다. 여기에 객관적 세계의 소외가 있고, 고독이란 비극이 있다.
② 시정신, 그리고 서정시 - 새 하늘과 새 땅
따라서 시의 본질은 바로 객관적 세계인식의 고립화, 소외현상을 극복하고 세계의 통합, 감금된 개념의 철폐, 모든 존재들의 숨겨진 가치를 발견, 이질적인 의미와 정서의 동일성을 찾아가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끝없는 탐험이다.
낙엽은 나비가 되고
나비는 가난한 불꽃
새벽이슬
비탈진 언덕의 개나리
빙하기의 공룡 발자국
여자의 아린 눈물
가시 돋힌 흑장미
에덴의 처음남자
- 자작시 「낙엽은 나비가 되고」에서
의식은
한 마리 작은 산새
톱니 같은 부리와
羽毛의 날개를 단
무색투명한 어둠 속의 새
무성한 여름 날엔
나무가지 잎새 속에 숨어 살면서
까칫까칫 잎새마다 구멍을 뚫다가
목말라,
목말라,
구멍을 뚫다가
- 홍윤숙 「한 마리 작은 새」에서
한국서정시의 전통
홍문표
(1) 사랑과 한의 노래
과거 서정시의 중심은 역시 사랑의 노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부재(不在)한 님에 대한 연민의 노래가 주류를 이룬다. 현재는 님이 없는 그래서 님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의 정이 시로 표출된다. 떠나간 님에 대한 그리움이나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여인의 안타까운 감정이 심화된 상태를 우리는 한(恨)이라고 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이별을 경험한 민족이기에 부재한 님에 대한 연민과 한이 많다.
펄펄나는 꾀꼬리는
쌍쌍이 즐기는데
외로운 이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거나
- 유리왕 「황조가」
가시리 가시리 잇고 나난
바리고 가시리 잇고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 잇고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잡사와 두어리 마나난
선하면 아니욜셰라.
위증즐가 태평성대
셜온님 보내압노니 나난
가시는 듯 도셔오셔쇼 나난
위증즐가 태평성대
- 「가시리」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버혀내어
춘풍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 황진이 시조
(2) 현대시의 서정적 전통
① 서정적 전통의 의미
한국시의 서정적 전통이라면 한국적 정서,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시를 말하는 것인데 정서적으로 보면 앞서 본 것처럼 부재한 님을 노래하는 사랑의 시와 민중성을 지니고 있는 민요적 가락, 한국적 특징을 나타내는 자연미의 표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② 근대시에 나타난 서정적 전통
개화기 이후 근대시에 나타난 전통적 서정은 한과 애상(哀傷)을 기조로 하고 역시 전통적 형식인 민요적 율격을 사용하여 독특한 시의 세계를 개척한 것이 김소월이다. 또한 서구사조를 수용하면서도 전통적인 가락과 정서를 표현했던 김억, 일제라는 현실에서 부재한 님을 노래했던 한용운 등은 소월의 유교적 의식, 김억의 서구적 의식, 한용운의 불교적 의식이라는 편차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정서와 가락에 접맥된 서정시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시문학파, 1940년대 청록파 등에서도 전통적 서정을 발견할 수 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 나라
먼 뒤쪽의
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 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 김소월 「접동새」에서
내 마음의 어딘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와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 저고리
호장 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발고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면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밤에 옛날에 살아 눈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 조지훈「고풍의상」
③ 현대시에 나타난 전통적 서정
1950년대 이후 전통적 서정의 모습은 구자운, 박재삼, 박성룡 등에서 볼 수 있고 1970년대를 넘으면서도 전통적 서정의 맥락은 여전하다. 송수권, 민용태 등의 시는 향토적인 자연을 소재로 하여 그 안에 살고 있는 한국의 서민 의식을 재치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질정(質定)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 박재삼 「밤 바다에서」에서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爭爭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는 苦惱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山茶色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 송수권 「山門에 기대어」에서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
산골로 찾아갔더니 때 아닌
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
마음속 캄캄한 자물쇠로
점점 더 한밤중을 느꼈습니다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 조정권 「벼랑끝」에서
난 물이 좋아
맑디맑은 물이면 더욱 좋지만
진흙탕 물이라도 좋아
더러운 것도 좋아
물로 사는 나의 식욕은
뭘 먹어도 곰삭아
날마다 순수를 배설하고
시퍼런 결백으로
푸르른 깃대 하나 세우고
하늘만을 바라보며
널 기다리는 그리움이 되거든
난 뜨거운 것도 좋아
활활 타는 햇살이면 더욱 좋아
널 먹고 서야
봄부터 기다려온
여린 꽃봉오리
붉디붉은 가슴 활짝 열고
네가 오는 소부리 길목에서
청사초롱 불꽃으로 태어나거든
-홍문표“연꽃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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