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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적 이미지 - 홍문표
2019년 12월 14일 19시 10분  조회:1434  추천:0  작성자: 강려
상징의 의미 1.
홍문표
상징(symbol)이란 원래 짜 맞추다, 비교하다 등의 어원을 갖고 있으며 명사형은 표시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두 사람이 만나 헤어질 때 약속의 징표로 동전 따위를 둘로 나누었다가 후일에 만나 이를 맞추어 보는 절차가 있다. 우리의 설화 중 고구려의 시조 주몽과 그의 아들 유리와의 부러진 칼에 대한 이야기도 그러한 예가 된다. 주몽이 부여국에서 왕자들의 시기로 먼저 떠나면서 어린 아들 유리와 칼을 잘라 서로 징표로 삼고 후일을 약속한다.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왕이 된 뒤 유리는 갖은 고난 끝에 주몽을 만나게 되는데 부러진 칼을 맞추어 보고는 부자의 관계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칼이란 두 사람의 약속, 두 사람의 관계를 표시하는 기호(mark)나 징표(token) 또는 부호(sign)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부러진 칼은 어느 하나만으로는 온전하지 못하고 반드시 둘이 결합해야만 온전할 수 있다. 따라서 상징이란 어떤 진술이나 이미지가 어느 한 쪽, 특히 나타난 반쪽으로 의미가 없고 나타나지 않은 타면과의 결합을 통하여 완성되는 표현 방식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흥미 있는 일은 상징(象徵)이란 한자어의 풀이를 주역에서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을 상(在天成象)이라 하고 땅에서 이루어진 것을 형(在地成形)이라 하였는데 그렇다면 상징이란 하늘의 징조, 하늘이라는 형이상학적 본질이나 근본적인 원리를 표상하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상징은 지상적인 것이 아니라 천상적인 것, 즉 불가시적인 관념의 세계를 가시적인 사물, 감각적인 이미지로 드러내는 것이 상징의 근본적인 속성임을 알 수 있다.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그래서 이러한 상징화의 기능은 오직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지만 좀 더 깊게 해석을 한다면 신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신들은 자기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으로서는 그의 무궁한 능력과 섭리를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신은 언제나 징조나 조짐을 통하여 그의 모습과 의지가 계시(啓示)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이 계시하고 있는 계시물, 즉 상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신을 파악하기 마련이다. 일찍이 플라톤은 궁극적인 본질의 세계를 이데아(Idea)라 하였고 표면의 세계를 현상이라 하여 본질의 그림자로 취급하였다. 말하자면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물질의 세계, 지상의 세계, 관념의 세계와 사물의 세계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에서 상징이란 바로 이러한 두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신이나 본질이나 관념의 형이상 세계가 형이하의 세계로 다가오는 방식이 바로 상징이 된다는 말이다.
자연은 하나의 사원, 그 살아 있는 기둥들
때로 혼돈한 말을 새어 보내니
사람은 친밀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간다.
暗夜처럼, 광명처럼 광활하며
컴컴하고도 심오한 통합統合속에
머얼리서 혼합되는 긴 메아리인 양
香과 色과 음(音)이 서로 화답한다.
어린이 살결처럼 신선한 향기, 木笛처럼
은은한 향기, 草原처럼 푸른 향기 있고,
- 그 밖에도 썩은 냄새, 풍성하고 기승한 냄새들
정신과 감각의 앙양을 노래하는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들의 확산력을 지닌 향기도 있다.
- 보를레르「만상조웅」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시인 보를레르의 시집「악의 꽃」중에 나오는 작품으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란 바로 신의 상징이며 그러기에 인간이란 신의 상징인 숲을 거니는 존재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자연은 하나의 사원’이라고 할 대 그 사원의 주체는 바로 신일 것이다. 따라서 신은 자연이라는 우주적 사원에 계시는 존재가 되며 달리 말하자면 자연이란 신의 상징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감각적인 교류를 한다는 것이 둘째 연이겠고 셋째 연에서는 후각적인 이미지를 통하여 보다 신비로운 신의 상징들이 감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문예사조에서는 상징주의를 사실주의 다음에 등장한 것으로, 낭만주의의 연장으로 본다. 그러나 상징주의 근원은 이 세상의 사물을 관념의 희미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플라톤 사상에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낭만주의는 일반적으로 플라톤 사상과 관계가 깊지만 감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실들에 쾌감을 느꼈다는 점에서 도덕이나 철학을 강조한 플라톤 사상에 위배 된다. 한편 상징주의자들은 감각과 정서와 상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낭만주의자들임에 틀림없었으나 감각의 대상이 되는 실제의 사물을 그대로 즐기려 하지 않고 그것이 희미하게 암시한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세계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 특징이다. 현실적인 사물들이 암시하는 영원히 아름다운 세계는 아무나 볼 수 없고 단지 섬세한 감각과 영감이 부여된 사람만이 직관할 수 있는 신비로운 세계라는 것이다.
후기 낭만주의자들은 단지 감각적인 세계에 대하여는 흥미를 잃었고 루소 등이 가르친 인간성의 아름다움, 그에 기초한 발전 사상, 낙관주의를 깊이 의심하게 되었고 더욱이 당시 새로운 실증주의에 자극 받아 생긴 사실주의에 반감을 느껴 그들 스스로를 퇴폐파(decadanist)라고 자칭할 만큼 다소 절망적, 비관적, 조소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보를레르는 전원이 아닌 현대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 향유할 수 있는 신비의 세계를 암시하려고 하였다. 그 세계를 암시함에 있어 그는 세상의 사물과 정신적 세계의 상호 대응관계를 말하고 모든 사물은 다 정신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상적 자아를 비꼬는 태도를 보이고 의미를 배제하면서까지 음악성을 강조한 포우와 무한한 신비의 화음을 만든 음악가 바그너의 예술에 경탄을 보냈다. 그리하여 시의 음악성과 암시성을 통하여 완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한편 말라르메는 시의 음악성을 극단화하기 위하여 말의 외연적 의미나 문법마저 파괴하는 작업을 하였다.
상징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 주지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인 엘리어트로 이어지고 독일의 표현주의나 프랑스의 초현실에도 접맥이 되고 있다. 우리의 시사에 상징주의가 등장한 것은 1920년대 소위 퇴폐적인 낭만주의였으며 특히 황석우의 시와 시론을 많이 지적하기도 한다. 또한 한용운이나, 이육사, 윤동주 등에서도 상징적 시법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날 내 영혼의
낮잠터 되는
사막의 수풀 그늘로서
파란 털의
고양이가 내 고적한
마음을 바라다보면서
- 이 애, 너의
온갖 오뇌, 운명을
나의 끓는 삶 같은
애(愛)에 살짝 삶아 주마.
만일에 네 마음이
우리들의 세계의
태양이 되기만 하면
기독(基督)이 되기만 하면.
- 황석우「벽모(碧毛)의 묘(猫)」
이 시가 발표될 당시만 해도 난해시니 몽롱체 시니 하면서 논쟁을 벌였던 상징적 수법의 시다. 난삽한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여 더욱 관념적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이 시에서 나와 고양이는 모두가 자아의 두 얼굴, 즉 선과 악, 순수와 비순수, 기독과 악마라는 양극적 의식의 상징일 수가 있다.
하략-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상징이 무엇인가를 대신하고 어떤 가치 개념을 표상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능력을 가진 것은 오직 인간뿐이며 그런 점에서 인간은 상징력을 지닌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것도 상징력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상상력의 최고 형식일 수가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보더라도 그것은 일정한 의미를 지닌 음성 기호로서 음성 기호란 의미의 상징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상징을 통하여 사고하는 존재라는 말이 된다. 이 세상에 우주 만물이나 우주 조화가 신의 상징, 조물주의 상징이라면 그러한 만물이나 우주의 신비와 인간의 의식까지를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는 바로 인간의 상징이 되는 셈이다.
카시러는 상징성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니는 특성이라 하였다. 동물들은 본능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으로 살지만 인간은 그 위에 상징 체계를 더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을 영위한다. 그 구체적인 실제가 언어, 신화, 예술, 역사, 과학이다. 인간은 어떤 사물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다른 어떤 체계 속에 사고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물을 추상화하고 다른 어떤 체계를 연상하여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바로 상징 능력이며 동시에 생과 시간의 지각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우선 공간, 즉 환경의 지각은 모든 생물들의 공통된 속성이다. 그들은 모두 공간과 자신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산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들처럼 유기적 공간을 형성하면서도 또 다른 세계를 전망한다. 카시러는 이러한 공간의 지각을 상징의 공간, 즉 추상적 공간이라고 한다. 기하학적 공간이나 예술가가 창조하는 미적 공간이 바로 그런 것이다.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그런데 그 자체로서 다른 것을 대표하는 사물 일체를 상징이라고 할 때 여기서 대신함의 논리는 기호(sign)의 경우나 은유(metaphor)의 경우나 알레고리의 경우도 같은 논리가 되기 때문에 이들의 한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과학에서는 물은 H₂O라는 기호로 사용하고 독약이 있는 약품의 표지에는 해골을 그려 놓는다. 그래서 카시러는 신호는 물리적인 존재 세계의 일부요 상징은 의미 세계의 일부라고 하였는데 가로등의 빨간 표시나 교통안내 표지판은 비록 의미의 세계이지만 상징이라 하지 않고 기호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호는 확정적인 것이지만 상징은 암시적인 것이다. ‘고양이’란 말이 있을 때 이는 고양이라는 동물을 대신하는 음성 기호를 생각할 수도 있고 그 눈은 신비롭고 어떤 매력을 지닌 존재로 생각할 수 있는데 전자는 기호적 사고요, 후자는 상징적 사고라 할 수 있다. 기호는 그 지시 내용이 정확하고 직선적이다. 거기에는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상징은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이중성을 지닌다. 그러나 최근 기호론이 발달하면서 상징은 기호의 일부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모든 언어는 의미를 상징하는 기호라는 것이다.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상징과 은유, 즉 상징과 비유에 있어서도 다같이 사물의 의미나 정신을 대신한다는 점은 일치하지만 몇 가지 구별되는 점이 있다.
첫째로 상징은 관념만을 사물 이미지로 표현하지만 은유는 사물을 다른 사물 이미지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상징의 경우는 본의는 생략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비유는 본의와 유의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1) 그의 머리는 최상의 순금이며
그의 머리는 텁수룩하고 까마귀처럼 검구나.
(2) 그들이 포도원지기로 삼았구나
나는 내 포도원을 지키지 못하였구나.
구약성서 ‘아가서’에 나오는 구절들인데 (1)의 인용에서는 ‘머리는 순금’이라든지 ‘머리는 까마귀처럼’이란 문장으로 사물과 비유적인 이미지가 공존하는 은유와 직유의 방식이지만 (2)의 문장에 나타난 ‘포도원’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즉 포도원은 보조적 이미지일 뿐 원관념이 없다. 그러나 ‘포도원’은 서구적 관례로는 처녀성을 뜻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처녀성의 상실이란 의미를 대신하는 상징적 수법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은유에 유사성이나 비교와 대조의 관계로 대각선이 그어지는 것이지만 상징은 그러한 연결선이 없거나 회피한다. 따라서 은유보다 더욱 상상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웰렉과 워렌이「문학의 이론」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상징은 반복적이라는 사실이다. 은유가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것이라면 상징은 은유가 여러 차례 되풀이되고 관례화 되어 원관념이 생략되는 상징어만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상징이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휠라이트도 일반적으로 상징이란 우리의 지각 경험 가운데 비교적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요소를 말하며 지각 경험 자체만으로 전달되지 않거나 충분히 전달될 수 없는 더욱 평범한 어떤 한 의미 혹은 일련의 의미를 뜻한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존 던의 설교집에 나오는 은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구절을 훼밍웨이가 소설의 제목으로 하면서 당초에는 은유였던 것이 상징으로 된 경우가 그것이다.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알레고리(allegory)란 다른 것(allos)과 말하다(agoreuein)의 의미가 합쳐진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문제에다 다른 사건의 예를 들어 빗대어서 말하는 비유법이다. 따라서 본래의 뜻을 숨긴다는 점에서 상징과 유사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로 수사적 측면에서 알레고리는 주로 의인화와 문답법의 기법을 나타내고 있다. 의인화가 나타나게 되는 원인은 글을 쓸 때 작가가 개념보다는 술어에 구속되어 글을 쓰기 때문이며 또한 언어란 사람에 의해 지배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개념에 관계된 명사보다는 사고, 행위, 감정과 관계된 술어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의인화가 나타나며, 또한 사람에 지배된 언어는 본질적으로 인격성을 띠게 되어 의인화가 나타나게 됨을 의미한다. 이솝의 우화(fable)나 우리의 고전 중 별주부전이나 장끼전 등도 그렇다. 한편 문답법은 사건이나 사리를 추상적인 데에서 구체적으로 명백하게 서술하기 위하여 문답의 형식을 취하는 수사법이다. 이는 지식이 낮은 사람에게 교리나 이론을 전달하는 방법으로서 기독교에서 특히 예수와 그 제자들, 불교의 화두,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등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알레고리는 교훈적 입장을 가지므로 문답법의 형식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의인화와 함께 의동물화(擬動物化)도 일반적으로 우세하게 나타난다.
둘째로 알레고리를 의미론적 측면에서 볼 때 현세성과 교훈성을 특질로 갖는다. 알레고리의 현세성은 이원론적 세계인식에서 비롯된다.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파악하는 입장은 현실과 이상을 명백히 구분하는 태도로서, 현실적 인식에 근거되어 있다. 반면 상징은 일원론적 입장이며 현실과 이상을 통합한 실체는 현세성 보다는 신비성을 특질로 갖는다. 따라서 알레고리의 현세성은 분리적인 명백성을 갖게 되고, 상징의 신비성은 다의적이고 통합론적인 모호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알레고리의 명백한 현실인식은 우리들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덕, 진리 등의 추상개념을 교훈적으로 지시한다. 왜냐하면 모든 교훈이란 현세의 행위를 그 적용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테이트는 시를 양분하여 의지의 시와 상상력의 시로 나눠 전자를 알레고리 시와 동일시하였다. 또한 유럽 문학에 나타난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것을 순수한 알레고리라 하였고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는 낭만적 아이러니의 알레고리가 필요하게 된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말했다.
보아라 이 그림을
썰매가 나는 듯이 쫓고 있는 것을
마부는 죽어라고 토나카이에 채찍을 하고
나그네는 짐 뒤에서 돌아보며
쉴새없이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시방 총구에서 샛빨간 불이 번뜩이는 것을.
아들이 말했다.
한 마리 맞았어요.
아아 또 한 마리 달겨 들었는데
그것도 피투성이로 나뒹굴어졌어요.
밤이군요. 끝없는 광야(曠野)가 눈에 덮혀 있네요.
그런데 나그네는 잡히지 않았을까?
썰매는 어디까지 달려가는 것일까?
아버지가 말했다.
이렇게 밤이 샐 때까지
어제의 뉘우침을 하나하나 사살(射殺)하고
시간처럼 내일로 달리는거야
이윽고 해가 솟는 길 저편에
빛나는 미래와 거리가 나타나는 거야
보아라
언덕 위의 하늘이 벌써 희부옇게 밝아오고 있지 않니.
- 마루야마 카오루「미래에」
인용한 시는 아버지와 아들이 그림책을 보면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두운 밤, 눈 쌓인 광야에서 이리떼와 썰매를 탄 마부와의 싸움이 전반부에 서술되고 마지막에는 인생에게 있어서도 어제의 뉘우침과 싸우면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내일을 향해 간다는 교훈을 암시하고 있는 알레고리다.
하략-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상징의 유형은 크게 제도적 상징과 개인적 상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제도적 상징 또는 인습적 상징을 보다 역사적으로 소급하면 원형상징에 이른다. 우선 문자나 기호같은 것은 어느 개인에 의하여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의 문화적 약속이나 오랜 인습으로 형성된 것이다. 아라비아 숫자는 어떤 수량을, 한글 자모는 각각 어떤 소리를 대표한다. 화학에 있어서 분자식이나 기하학의 도표나 도형 등도 다 어떤 관념, 생각, 형상 등을 대표한다. 이러한 종류의 상징은 기호라고 해도 된다. 국기, 상표, 학교나 단체의 뺏지, 십자가 같은 종교의 표지 등은 일반적 기호와는 구별하여 제도적 상징이라고 부른다. 집단 공유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제도적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에게 제도적 상징은 큰 의미가 있으나 그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의 무의미하다. 이러한 제도적 상징을 프롬은 인습적 상징(conventional symbol)이라 했다.
그런데 인습적 상징이란 상징과 상징되는 대상 사이에 어떤 내재적 연관성도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책상’이란 말과 이 말이 지시하는 ‘대상으로서의 책상’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오직 인습적으로 우리는 그 상징을 수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습적 상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징은 그 상징과 감정 사이에 내재적 연관 관계를 갖는다. 즉 ‘십자가’는 기독교의 인습적 상징이지만 십자가의 특수 내용은 예수의 죽음을 의미하고 또한 정신과 육체의 상호 관련성까지를 의미한다. 곧 단순한 인습을 초월하여 대상과 상징 사이에 연결 관계가 놓이게 된다.
하나님, 시험에 들게 하옵소서
조그마한 미끼라도 저는 물겠나이다
날파리나 날빛 하나 놓치지 않고
이것저것 덥석덥석 물겠나이다.
(그리하여 저 스스로 죄를 사하겠나이다)
- 황인숙「기도」에서
인용한 시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물론 종교적 상징이겠지만 넓게는 문화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종교적 상징이든 문화적 상징이든 그것은 개인적인 표시의 대상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관습적이고 그래서 제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한편 상징은 인습이나 제도에 의해서 굳어진 문화적 상징도 있지만 시인이 창조하는 상징은 인습적인 관계와 무관한 전혀 개인의 상상력을 통하여 상징을 시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상징을 문화적 상징, 우연적 상징, 긴장의 상징이라고도 말한다. 휠라이트는 개인적 상징의 특성은 긴장성에 있음을 강조한다. 사실 시에서 십자가나 비둘기 등의 이미지를 사용한다면 관습적으로 이미 그 의미를 알아차린다. 이것은 대단히 반복적이고 자동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미지는 이미 그 의미가 고정적이어서 정서나 의미의 낯설음을 경험하기 어렵다. 따라서 시의 창조적 어법은 상징의 낯설음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표면적인 일상성에서의 문제이지 개인적인 상징도 엄격히 말하면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적 원형과의 관련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눈보다도 먼저
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
바다는 가라앉고
바다가 없는 海岸線을
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
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 김춘수「처용단장 제1부」
인용한 시는 제목을 보아 처용을 소재로 한 시다. 용왕의 아들인 처용이 달밤에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 보니 아내가 역신과 동침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처용의 단장은 여기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용한 시를 보면 한 사나이가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죽은 바다란 무엇일까. 우리는 상징의 특징을 다의성, 신비성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죽은 바다의 본의는 난해한 신비감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은 김춘수의 전혀 개인적인 상상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다. 이러한 상징을 개인적 상징이라고 한다. 따라서 개인적 상징의 특징은 암시성, 다의성, 입체성, 문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상징적 이미지의 한 유형으로 원형적 상징을 들 수 있다. 원형(原型)이란 원래 근본적인 틀이라든지 어떤 제품의 기본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신발을 만들 때는 신발의 기본 틀에 맞추고 버선을 만들 때는 버선의 본에 맞춰 천을 재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모양의 물건을 만드는 데는 기본적인 틀이 필요하다. 이러한 틀에 의해서 계속 동일한 물건은 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건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생각도 이러한 기본 틀에 의해서 사고 작용을 할 수 있다는 추리가 가능하다. 인습적 상징이나 제도적 상징의 개념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비둘기가 평화를 상징한다든지 무궁화가 한국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비둘기와 평화, 무궁화와 한국이라는 사고의 도식은 지역적 역사적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결정된 제한된 약속에 속하는 것이지만 원형(archetype)상징은 그러한 특수한 상황에서의 약속이 아니라 자연 속에 존재하면서 그들이 오랜 세월 자연과의 교섭 가운데 무의식 적으로 체득된 사고유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인간과 물의 관계를 보면 물은 모든 생물들의 필수적 요소다. 세척의 기능도 있고, 성장의 기능도 있고, 재생의 기능도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물이라는 이미지에서 본능적으로 창조의 힘이나 정화의 기능, 풍요와 성장의 의미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인식은 어느 일부의 인간만의 사고가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보편적인 것이다. 이처럼 자연과의 오랜 교섭 속에 무의식적으로 체득된 자연에 대한 보편적 의미를 원형적 상징, 또는 보편적 상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보편적 상징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물질이 서양에서는 물, 불, 공기, 흙이다. 우주가 이 네 가지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4원소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기본적인 물질을 물(水), 불(火), 흙(土), 금속(金), 나무(木)라 하고 이를 오행(五行)이라 하였으며 이들의 상승 작용에 의하여 만물은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음(陰)과 양(陽)의 기(氣)에 의해서 더욱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우주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리나 심리나 운명까지도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하략-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시인 예이츠(Yeats)는 4원소설을 자기의 시에 적용하고 있는데 물은 이슬, 파도, 피, 공기는 바람, 불은 별, 불꽃, 대지는 숲으로 확대하여 이미지를 사용하였고 이들은 다음과 같은 경로로 시적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하였다.
1. 대지의 두려움→밤 그리고 잠과 연관→어두움의 내포 때문에 惡意
→사탄→사탄의 위치→北
2. 물→눈물, 슬픔, 상실, 죽음→西(해가 지는 곳)
3. 불→정열의 불꽃→사랑의 상징→南(열 때문에)
4. 공기→공기, 떠오르는 해→희망→東
이 점은 바슐라르의 경우도 유사한데 바슐라르가 설명하는 이들 4원소의 상징적 의미는 물은 죽음과 상실을, 대지는 의지와 휴식을, 불은 정열을, 공기는 움직임과 초월을 표상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늙은 사람이란 정말 보잘 것 없는 것,
막대기에 걸친 누더기 옷가지일 뿐이다.
육체의 옷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을
영혼이 손뼉치며 노래하지 않고, 소리 높이 노래하지 않는다면
또한 영혼의 장엄한 기념비를 배우지 않는다면
노래를 배울 곳은 아무 데도 없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건너
이 곳 聖市의 「비잔티움」에 왔다.
- 예이츠「비잔티움 항해」에서
인용한 시에서 시인은 노인이 영혼의 세계의 가치를 모르고 육체적인 쇠퇴만 슬퍼한다면 그것은 한낱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육체란 영혼을 감싸는 보잘 것 없는 누더기와 같은 것, 오히려 그러한 육체를 벗어 던지는 영혼만이 참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인데 문제는 마지막에서 바다를 건너 성시 비잔티움으로 왔다는 말에서 그의 상상력의 뿌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는 앞서 지적했듯이 바다는 물의 변형이고 물은 눈물, 슬픔, 상실, 죽음의 상징이다. 따라서 바다를 건너는 것은 그러한 절망의 극복이며 비잔티움은 영원히 성화가 타는 신성한 세계, 사랑과 희망이 있는 이상적인 세계, 바로 불과 대지의 원형에 대한 상징이 되는 셈이다.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인류학자 프레이저는 세계 각 민족의 신화와 종교제식을 비교 연구한 결과 신화 및 의식의 근본적인 양식이 공통된 것을 발견하였다. 심리학자 융은 우리 조상들이 수만 년 동안 살아오면서 반복하여 겪은 원천적인 경험들이 인간 정신의 구조적 요소로 고착되어 집단적 또는 민족적 무의식을 통하여 유전된다고 하였으며 그것이 신화, 종교, 꿈, 환상, 상징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따라서 시인들이 시를 쓰면서 이미지를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를 분석해 보면 결국 원형적 의미로 환원될 수 있다는 이론이기도 하다. 원형상징에 대한 휠라이트, 궤린, 프로이드, 융, 프라이 등의 해석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⓵ 휠라이트와 궤린의 원형상징
휠라이트와 궤린은 공간적인 상하 우리와 밀접한 피, 빛, 물, 말, 원, 바다, 강물, 태양 등의 원형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상- 성위, 탁월함, 왕권, 지배, 소망, 선, 하늘, 아버지
하- 하강, 심연, 지옥, 무질서, 공허, 대지, 어머니
피- 선과 악, 긍정, 불길, 힘, 금기, 죽음, 처녀성, 탄생, 형벌, 맹세,
전쟁, 재생
빛- 정신, 영혼, 지적, 공간, 불, 공포, 상승, 원, 하늘
물- 정화, 생명, 순수, 속죄, 창조, 신비, 탄생, 죽음, 부활
말- 충동, 이성, 윤리, 정상성
원- 태양, 완전, 진리, 운명의 장난, 윤회, 남녀 결합
바다- 생의 어머니, 죽음과 재생, 영원성, 무의식
강물- 죽음과 재생, 세례, 시간의 영원, 생의 순환, 신의 화신
태양- 힘, 자연의 이치, 의식, 부성의 원리, 시간과 생의 추의
아침해- 탄생, 창조, 각성
저녁해- 죽음
검정- 혼돈, 신비, 미지, 죽음, 무의식, 사악, 우울
빨간- 피, 희생, 격렬, 무질서
초록- 성장, 감동, 희망
훌륭한 어머니- 인자함
땅의 어머니- 탄생, 포근함, 보호, 비옥함, 성장, 풍요
공포의 어머니- 무녀, 여자, 마법사, 마녀, 두려움, 죽음
공주, 숙녀- 영혼의 동반자, 정신적인 완성의 화신
배- 소우주, 항해
정원- 낙원, 천진무구, 순결미, 풍요
사막- 황폐, 죽음, 니힐리즘, 절망
(1)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시 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랄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펼려고 한다
- 김윤성「나무」에서
(2) 바다 위에서 눈은
부드럽게 죽는다.
죽음을 덮으려
눈은 내리지만
눈은 다시
부드럽게 죽는다.
부드럽게 감겨 있는
눈시울의 바다.
얼굴 위에 쌓인
눈의 무게는
보지 못하지만
그의 內面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 허만하「데스마스크」
(1)의 시는 나무의 성장하는 속성을 통하여 인간의 상승 지향적 욕망을 보여 주고 있다. 나무는 늘 수직으로 상승한다. 이는 무한히 상승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원형적 상징으로 충분한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성장이나 발전을 소망하는 인간의 꿈은 하늘로 뻗어가는 나무들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2)의 시는 물의 원형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다. 물은 문학 작품에 반복해서 많이 나타나는 원형적 상징의 하나다. 이 물은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소생, 정화와 속죄, 풍요와 성장의 상징이며, 융에 의하면 무의식이 가장 일반적 상징이다. 여기에 바다와 강이 포함된다. 바다는 모든 생의 어머니, 영혼의 신비와 무한성, 죽음과 재생, 무궁과 영원, 무의식 등을 상징한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바다에 눈이 내려 소멸되는 장면의 연속을 통해 허무, 비애, 공포와 같은 죽음에 대한 일상적 반응은 전혀 유발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 그리고 영혼의 신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⓶ 프로이드의 성적 상징
프로이드는 그의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성적 욕망이라고 보고 특히 남성과 여성의 욕망이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된다고 하였다.
남성- 지팡이, 양산, 막대기, 나무, 모자, 칼, 총, 수도꼭지, 연필,
넥타이, 뱀, 열쇠, 산, 하늘 등
여성- 구멍, 웅덩이, 동굴, 항아리, 병, 트렁크, 상자, 방, 호주머니, 배,
종이, 책, 테이블, 달팽이, 조개, 교회, 사원, 숲, 사과, 복숭아,
구두, 마당, 셔츠, 물, 바다 등
⓷ 융의 집단적 원형상징
융에 의하면 인류의 조상들이 계속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체득된 반복되는 의식의 유형을 원형이라 하였고, 이러한 원형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즉 민족의 전통에 계승되어 문학, 신화, 종교 등에 반영된다고 하였다.
하략-
홍문표시학이론총서22 「시창작 원리」(창조문학사, 교보e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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