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시의 탈구조
이인선(시인, 평론가)
하이퍼시는 기존의 서정시와 현대시의 구조를 변형하여 새로운 시 형태와 구조로 창작된다.
아래 제시한 시는 하이퍼시의 구조변형을 실현한 시다. 각각 시의 구조를 살펴보고 하이퍼시 시창작 기법의 차별화된 방법을 논의하여 보자.
하이퍼시는 현대시의 서정과 회화적 이미지를 굴절하거나 단절, 삭제하여 새로운 감각적 자극을 시도한다. 비약적 상상력은 SF 공상영화처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재현된다.
1. 하이퍼시의 추상화 기법
아래 시는 심상운의 「사각형과 삼각형과 원」 전문이다. 심상운의 시는 하이퍼시의 여러 구성요소를 지니고 있다. 심상운의 시는 사건이 네트워크로 구성되며 시간의 공간이동과 시간이동을 한다. 심상운의 시에서 보여주는 서사는 단일구조를 배제하고 다선구조를 보여준다.
사각형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면 수없이 많은 각종 스크린이 보인다. 아침 7 시. 사각 침대 위에서 기지갤 켜며 일어난 삼각형이 사각문을 열고 나오고, 원이 통통통통 튀면서 그 뒤를 따라온다 삼각형은 원의 손을 잡고 파랗게 출렁이는 바닷가로 뛰어간다 사각형의 바다 위에서 삼각형의 돛배가 하얀 물보랄 날리며 신나게 달린다.
몇몇 삼각형이 무어라고 소리치며 사각형의 오래된 집의 창문과 벽을 부수고 있다 사이렌을 울리며 사각형의 경찰차들이 몰려오고, 100 여 명의 삼각형과 원이 둘러서서 응원을 한다 그들은 손뼉을 치며 응원가를 부르다가 가슴팍 속주머니에서 노랑 풍선을 꺼내서 하늘로 날린다. 그 풍선들은 허공에서 서로 손을 잡고 얼굴을 비비고 입맞춤을 한다 입맞춤을 할 때마다 풍선의 입 속에서 또 노랑 풍선들이 나와서 파란 하늘을 가득 채운다 대도시의 봄 하늘에 유채꽃이 만발한다.
밤 12 시 20 분.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육각형 빙산 벽이 철썩철썩 무너져 내려 새파란 육각수의 바다 속으로 떨어진다 수천만 톤의 새 육각수가 바다를 넘어 사각형의 도시건축물 都市建築物 들을 우르릉우르릉 흔들며 밀려오고 있는 밤이다.
― 심상운 , 「사각형과 삼각형과 원」 전문
위의 시는 제목부터 도형을 활용하고 있다. 3차원, 4차원의 기하학 그림 같다. 하이퍼시는 분리와 삭제가 가능한 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사각형이나 삼각형, 또는 원의 어떤 개체 한 개를 빼도 시의 형태를 잃지 않고 사각형의 틀을 유지한다.
위의 시는 ‘네모, 세모, 동그라미’라는 도형언어를 사용하여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네모는 확장되어 <사각 스크린– 사각 침대– 삼각형- 동그라미>와 결합과 분리를 한다. 사각형은 창문과 벽으로 대별되는 현대사회의 소외문제와 사각형 경찰차로 대별되는 대형사건을 링크한다.
<100명의 삼각형- 원– 응원가– 풍선>은 도형들의 무형질의 데몬스트레이션 (Demonstration)이다. 노랑풍선은 사고로 죽은 ‘세월호’ 학생들을 암시한다. 심상운은 교사출신이라 학생들을 보는 마음이 더 애틋할 것이다. 풍선들은 서로 입을 맞추고 얼굴을 부빈다. 무의식에 내재된 불만을 폭로하는 도형들의 무언극이다. 노란풍선들의 물결은 대도시 봄 하늘에 유채꽃이 만발한 판타지를 그린다.
아이슬란드의 육각형 빙산과 육각수 바다가 사각형의 도시건축물을 파괴하는 장면은 심각한 인류의 재앙을 암시한다.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현장감이 있다. 극대화된 상상력이 의미확장을 한다.
2. 하이퍼시의 자동기술기법
자동기술기법 시창작 기법은 임의성과 우연성을 통한 다양한 의미확장과 탈개념을 추구한다. 무의식의 의식화는 ‘낯설게하기’를 실현하며 정서를 환기시킨다. 아래 시는 박서영의 「홀수의 방」 1연이다. 자동기술기법 문장기법의 의식의 흐름을 좇는 탈구조의 시다.
잊겠다는 말 너머는 환하다. 그 말은 화물열차를 타고 왔고 꽃나무도 한 그루 따라왔다. 꿈이었나봐. 흩어지는 기억들. 슬픈 단어들은 흩어진 방을 가진다. 너는. 나를 . 그녀를. 누군가를. 사랑은 없고 사랑의 소재만 남은 방에서 너는 긴 팔을 뻗어 현관문에 걸린 전단지를 만진다. 잊겠다는 말은 벼랑 끝에 매달린 손. 이미 그곳에 있었지만 도대체 그곳은 어디인가. 떠나면서 허공에 던져놓은 너의 단어들. 흩어져 있는 너의 단어들이 흰 배를 드러내놓고 날아가는 걸 본다.
위의 시에서는 앞의 문장을 뒤의 문장이 이어받는다. 받은 문장은 파생적으로 갈라지며 다음 문장과 이미지 분산을 하며 연결된다.
<잊겠다는 말– 그 말은 화물열차를 타고- 꿈이었나봐- 흩어지는 기억들- 흩어진 방>으로 이미지 파생을 하며 같은 낱말과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단어조합을 하며 의미가 확산된다.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꿈이었나봐’라는 독백체 문장을 삽입하여 상황을 꿈으로 설정해 버린다.
위의 시는 의식의 흐름기법을 사용한 자동기술기법의 시다. ‘잊겠다는 말’은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의식의 소리다.
일반적으로 사랑의 행위는 빨리 끝난다. 그러나 이별 후의 감정의 잔재는 길게 남는다. 자아를 냉정하게 분철한 연애 이별 시다. 애인과 이별을 한 순간부터 사랑의 감정은 시작된다. 한쪽은 연애를 끝냈지만, 다른 한 쪽은 연애기억을 삭제하지 못하고 대상을 그리워한다.
다음 문장은 <너– 나– 그녀– 누군가>로 확장된다. 그 다음 문장은 <사랑은 없고– 사랑의 소재만 남은– 긴 팔– 매달린 손>으로 자유연상법을 사용하였다.
그 다음 문장 ‘그곳은 어디인가 ?’라는 물음은 <떠나다– 허공– 던지다- 흩어지다 - 흰배- 드러내다- 날아가다- 보다 >로 연상작용을 하며 명사와 동사로 단어가 이동하여 연결된다. 연상작용으로 무의식의 흐름기법이 상황을 바꾸면서 장면전환이 된다.
의식의 흐름 기법은 시에서 문장을 세련되게 한다. 고백적 장면전환과 상황제시를 하며 초현실주의 시작품을 만들어낸다. 자동기술기법은 무의식의 흐름 기법을 실현하는 하이퍼시 시 창작 기법이다.
3. 하이퍼시의 통합구조
하이퍼시는 통합구조를 지니고 있다. 기존의 시 개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 형태를 구축한다. 시의 탈 영토화를 실현한다.
아래 시는 필자의 졸시 필명 이선으로 발표한 시다. 아래 「이혼 견적서 」 전문을 읽고 하이퍼시 방법론을 논의하여 보자.
S# 3
상담 대기실에서 , 나는 행복지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대기 중이다
시간과 욕망의 간극 사이, 퇴락한 문장의 절취선에서 쾌속냉동과 쾌락냉동의 빙하점에서, 부부의 비극과 응징은 시작되었다ㅡ 무대 전등이 꺼지고, 감독의 Q 사인. 그녀의 구겨진 실크블라우스, 3번째 단추가 풀어진다. “감독님! 여배우의 왼쪽 볼에 마릴린 먼로 섹시점을 찍을까요?”
그래요, 순수와 열정 따위, 자극과 감각 따위는… 잊었어요. 자정의 감정분기점을 지나 05:38 지하철이 개통되면 세상은 곧 문명한 이성을 회복할 테니까
침실문 밖에서 서성대는 그. 침실문 안에서 망설이는 나. “여전히 대치 중”이라는 말로 치환되는 21 세기 결혼공화국
“본능과 애욕의 나침반 좌표축을 흔드는 당신은 누구세요?” ― 어제는 내 행복의 시작점이었던, 당신. 오늘은 또 내 스트레스의 꼭지점인, 당신
구겨진 실크블라우스가 펴지고, 그녀의 3 번째 단추가 잠겨진다
(슬로우 모션으로 ). F.O(Fade Out)
― 이선 , 「이혼 견적서 」 전문
위의 시는 시나리오 용어 ‘
S# 3– 감독의 Q 사인- (슬로우 모션으로 ). F.O(Fade Out)’를 차용하고 있다. 시의 각 연들은 대사와 장면전환 등 시나리오 요소를 삽입한 탈 구조를 실현한다.
필자의 하이퍼시는 난해시로 단정하면 안 된다. 하이퍼시는 상황시다. 내용을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절대상황을 이해하여야 한다. 단어의 뜻을 해석하여 스토리를 연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필자의 졸시 「이혼 견적서」는 권태와 매너리즘에 빠진 21 세기형 부부의 위기인 매너리즘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생은 연극이다. 감독의 Q 사인에 따라 부부는 일생 동안 드라마를 찍는다고 해석하였다. 신혼 때의 짜릿한 성생활도 권태기에는 서로 데면데면해진다. 파국을 맞아서 이혼 직전 상담심리치료를 받는 부부가 요즘 늘고 있다. 행복지수도 낮다. 성격차이라는 말은 성, 기호, 생활패턴에서 부부 쌍방이 불통함을 의미한다.
위의 시는 시나리오 형식의 추리극을 형식을 차용하였다. 추리영화처럼 장면전환이 될 때마다 또 다른 위기가 펼쳐진다. 읽지 못한 영화자막처럼 틈새가 주는 미학적 요소가 숨어 있다. 하이퍼시는 ‘보여주기’만하는 시다.
위의 시는 시나리오 기법의 시에 영상시의 색채감과 운동감을 합한 통합성을 보여 준다. 탈구조를 하여 시의 형태를 변형하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3편의 하이퍼시의 형태는 탈 구조를 실현하고 있다. 기존의 서정시의 형태를 변형하여 비약적 상상력을 통한 가상현실세계를 추구한다.
또한 미술, 무용, 연극, 영화의 여러 요소를 시에 차용하여 새로운 시 형태를 모색하고 있다. 직접적, 고백적 문체로 독자에게 강렬하게 말걸기를 시도한다.
하이퍼시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21세기 현대의 젊은 의식을 지닌 독자와 소통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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