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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27세기의 발명왕 / 휴고 건즈백 Hugo Gernsback 지음
2021년 03월 19일 15시 53분  조회:624  추천:0  작성자: 강려
27세기의 발명왕
Ralph 124C41+
 
휴고 건즈백 Hugo Gernsback 지음

<차 례>
 
랄프 플러스··················· 3
텔레비전 전화의 혼선··············· 8
눈사태····················· 15
빛으로 된 탑·················· 21
방문객····················· 25
27세기의 뉴욕················· 30
축 제······················ 39
유 괴······················ 46
대추적····················· 54
페르난은 어디로················· 57
함정에 빠지다·················· 65
우주에서···················· 69
악마의 술책··················· 82
아리스, 죽다·················· 97
 
 
랄프 플러스
 
젊고 재기에 넘쳐있는 청년 랄프는 기쁨에 넘친 눈으로 유리 용기 안에 들어있는 한 마리의 모르모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귀여운 눈을 반짝이면서, 완전히 죽어있던 그 모르모트가 24시간만에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청년 랄프는 실험대 위에 놓여있는 둥근 유리 용기를 바라보면서 기쁨의 함성을 올렸습니다.
놀랄만한 대성공을 이룩한 것입니다. 오늘, 2660년 9월 1일, 달력이 가리키는 이 날은 인류를 위하여 하나의 획기적인 기념일이 될 것입니다.
랄프는 넓은 방의 모퉁이에 있는 대형 텔레비전 전화 앞에 우뚝 멈추었습니다.
복잡한 버튼과 스위치가 빽빽하게 장치되어 있는 텔레비전 전화 앞의 조종대에는 또 미터 자동계기와 신호등이 붙어 있었습니다.
랄프는 재빠른 솜씨로 스위치들을 조작하고는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 순간 벽 중앙에 있는 가로 세로 1미터의 정사각형 모양을 가진 스크린이 환해지면서 밝게 웃는 한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랄프는 명랑하게 그 청년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잘 있었나? 에드워드.”
“물론 잘 있었지. 자네는 어떤가, 랄프.”
랄프는 에드워드라고 불린 청년에게 연구실에 꼭 들러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가 궁금해하는 에드워드에게 랄프는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실험대 위의 유리 용기를 가리켰습니다.
입체 텔레비전이기 때문에 몸을 내밀어 용기를 보려고 하는 에드워드의 몸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것같이 보였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용기를 바라보던 에드워드는 감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오, 랄프! 자네는 기어이 그것을 완성하고 말았군.”
“그렇다네.”
랄프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난 죽은 것을 다시 살려냈네.”
에드워드는 들뜬 목소리로 축하를 했습니다.
“과연 랄프. 자네는 훌륭한 천재야. 아니 어떻게 죽은 것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을 거야. 자넨 인류를 위해 훌륭한 발명을 했어! 어쨌든 축하하네. 자네야말로 우리들의 랄프 124C41 플러스군 그래.”
“고맙네, 에드워드 350B11.”
랄프는 기쁨에 찬 얼굴로 말했습니다.
지구에는 전쟁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각국의 국민들은 세계 정부를 세우고, 그 지배하에 세계 전체가 평화스럽게 살고 있는 서기 2600년대는 그 옛날에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아주 놀라운 시대로 접어든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쟁이 없어지자 어떤 군비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한 나라 국민처럼 서로를 사랑하며 인류를 위하여 과학을 발달시키고 기술을 연구하여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없어졌으므로 군비에 소요되던 지금까지의 엄청난 돈과 연구, 그것들을 위해 일하고 있던 많은 과학자들이 이제는 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편리해진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단 한 가지의 곤란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 각국의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람의 이름도 나라마다 달랐습니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을 없애기 위해 200년 전부터 세계 각국의 언어를 통일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에게도 알맞은 공통 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오랜 시일을 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노력의 힘은 위대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한결같이 먼저 ‘랄프’라든가 ‘에드워드’라든가, ‘민수’ ‘영수’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그 밑에 살고 있는 땅이나 자기의 직업 등으로 서로 다른 번호와 기호를 붙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랄프 C41’이라든가 ‘에드워드 11’이라는 이름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단, 이름 맨 끝에 붙어있는 +(플러스)라는 기호는 아무에게나 붙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 기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계 정부의 수상을 비롯하여 단 10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호는 인류를 위하여 아주 특별히 위대한 공적을 남긴 사람에게만 내리는 영광스러운 기호이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여러 가지 위대한 발명을 함으로써 인류에게 봉사했으므로 그 명예로운 +기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텔레비전 전화의 혼선
 
에드워드는 아직 흥분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네는 정말 훌륭해. 이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게 아닌가. 앓고 있는 사람, 그 모든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거네.”
랄프는 에드워드에게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너무 그러지 말게. 아직은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야. 이제 겨우 동물을 실험해서 성공한 것 뿐이야. 사람에게 적용시키려면 많은 실험과 연구를 거듭해야 돼.”
“난 자네를 믿어. 빠른 시일 내로 성공하고 말 거야.”
대화 도중 갑자기 텔레비전 스크린이 마구 흔들리다가 곧 어두워지면서 꺼져 버렸습니다.
이 텔레비전 전화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통화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혼선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랄프는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고장이 난 것입니다.
랄프는 고장난 곳을 고치기 위해 스위치를 이리 저리로 돌려보기도 하고 버튼을 눌러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사리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랄프가 중계소의 교환수를 부르기 위해 스위치에 손을 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스크린이 밝아졌습니다. 랄프는 스크린을 바라보았습니다. 순간 랄프는 깜짝 놀랐습니다. 스크린 속에는 에드워드가 아닌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랄프보다 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가씨는 프랑스 투의 말씨로 랄프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세요, 당신은……?”
어딘지 알 수 없는 시골의 어느 집에 아가씨는 혼자서 있었습니다. 랄프는 정중하게 그 아가씨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텔레비전 전화가 혼선이 된 모양입니다. 친구와 함께 얘기를 하다 도중에 갑자기 끊어져 버렸어요.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곧 중계소에 연락을 해 고치도록 해야겠어요.”
아가씨는 의외로 상냥하게 질문을 했습니다.
“아니에요. 당신은 뭐하는 사람인가요? 당신 방은 온통 기계로 꽉 차 있군요. 무슨 연구실 아니면 우주선의 조종실 같아 보여요. 거기 어디죠?”
“아, 여기는 뉴욕입니다. 그쪽은 프랑스인가요?”
“아니에요. 여기는 스위스에요. 알프스 산 중턱이랍니다.”
아가씨는 랄프를 자세히 바라보고는 이상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어디서였을까요?”
“텔레비젼에서 보셨겠죠!”
라고 랄프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가씨는 손뼉을 쳤습니다. 그 아가씨는 지금 텔레비젼 전화에 비치고 있는 사람이 그 유명한 발명왕 ‘랄프 124C플러스’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랄프는 그 아가씨를 향해 겸손하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가씨는 귀여운 눈을 반짝이면서 훌륭한 분과 이야기를 직접 나누게 된 것이 꿈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기쁜 얼굴을 하며 자기를 소개하였습니다.
“전 아리스 212B423이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아리스.”
랄프 역시 아가씨와 알게 된 것이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아리스는 알프스의 로잔산 중턱에 아버지, 언니와 같이 살고있는 아가씨였습니다. 5일 전에 가족들이 반중력 비행차로 파리에 가고 없었기 때문에 아리스는 5일 만에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셈입니다.
아버지와 언니는 곧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심한 눈보라로 인하여 도저히 로잔산 근처까지 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리스는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더군다나 그 유명한 랄프 124C41플러스라는 것에 흥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좀처럼 흥분은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아리스가 있는 곳에는 눈 때문에 텔레비젼 전화 안테나까지 부러질 정도였습니다.
안테나를 간신히 응급 수리하여 파리와 연락을 취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혼선이 되는 바람에 랄프의 텔레비젼 전화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아리스는 계속 예쁘게 웃었습니다. 아리스는 의지가 대단히 강한 아가씨였습니다. 알프스 산중에서 5일 동안이나 눈 속에 갇혀 있었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직접 자기 손으로 안테나를 수리할 정도였습니다.
랄프는 조금 화가 났습니다. 이 시대는 세계의 기후도 과학의 힘으로 완전히 조종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비나 눈을 필요로 할 때는 그것들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리게 할 수 있었고, 필요 이상의 큰 눈, 비는 보통 때에는 내리지 않게 하고 있었는데 아리스가 그런 일을 당하다니. 그럼 스위스의 기상 조정 센터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랄프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스위스의 기상 조정 센터는 낮잠을 자고 있는 건가요? 5일 동안이나 눈보라가 계속 되고 있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요.”
“그것은 기상 조정 센터의 기사들이 스위스 지사와의 불화 때문에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아리스가 랄프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자 랄프는 몹시 노했습니다.
남들이 당하는 피해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를 랄프는 무척 싫어합니다. 사람의 안전을 지켜야 되는 기상 조정 센터의 기사들이 파업을 했다는 것은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괘씸한 일이었습니다.
“잠깐 기다려요, 아리스. 제가 파리에 연락하여 눈이 멈출 수 있도록 해보죠.”
랄프가 그렇게 말한 순간이었습니다.
‘리리리리리리. 리리리링. 리리리리링’
하는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아리스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그 벨 소리는 사태를 알리는 경보였던 것입니다.
 
눈사태
 
로잔산에서는 무시무시한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리스, 내 말에 침착하게 대답해요. 안테나를 이동할 수 있겠어요?”
“예, 할 수 있어요.”
“됐습니다. 그럼 빨리 지붕으로 올라가서 안테나를 정확히 눈사태가 일어난 방향으로 돌려놓아요.”
아리스는 침착한 모습으로 웃음까지 웃어 보였습니다. 아리스는 미소를 머금은 채 방에서 나갔습니다.
아리스의 뒷모습이 텔레비젼 전화에서 사라지자 랄프는 곧 다음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자기의 책상에 돌아가서 라디오의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긴급 연락, 긴급 연락! 랄프 연구소 부근의 10 킬로미터 안에 있는 사람은 지금 급히 금속성의 물건에서 떨어져 주시기 바랍니다. 3분 후에 약 15분간 강력한 전파가 연구소에서 흘러나갈 것이므로 금속 옆에 있으면 감전될 위험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랄프는 세 번을 연달아 방송하고 난 후 다시 텔레비젼 전화 옆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리스도 돌아와 있었습니다. 아리스에게도 랄프는 유리로 만든 의자에 앉아 감전을 피하도록 일렀습니다.
“감전이라뇨? 그게 무슨 소리죠?”
의아해서 묻는 아리스에게 랄프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유리로 만든 의자에 아리스가 앉자 아리스 방 창으로부터 대단한 눈사태가 엄청난 힘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큰일이었습니다.
랄프는 벽에 있는 조정대의 버튼을 재빨리 눌렀습니다. 그리고 핸들을 돌렸습니다. 연구소의 초발전기를 움직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순간에 우레와 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조종대에서는 번쩍번쩍하는 파란 불꽃들이 튀어 올랐습니다. 연구소 지붕 위의 거대한 원형 로우프 안테나에서 불꽃이 마구 튀어 올랐습니다.
그러다가 달아오른 안테나는 번갯불처럼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 커다란 소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뚝 그쳐 버렸습니다.
소리에는 사람의 귀에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무섭도록 큰 소리라도 사람의 귀에 들릴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면 초음파가 되기 때문에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안테나로부터 파란빛이 도는 흰 번갯불이 스위스의 로잔산 방향으로 소리도 없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랄프는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텔레비젼 전화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리스는 파랑게 질린 얼굴로 계속 떨고 있었습니다.
“아리스, 나를 믿어요. 안심해요.”
랄프는 아리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눈사태가 밀어닥치면 집과 아리스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파묻혀 떠내려갈 것입니다. 그 죽음의 그림자가 바로 눈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무서운 진동 소리가 귀를 울렸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눈사태가 흰김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랄프가 보낸 강한 전파가 열의 파동으로 바뀌어져 눈사태를 녹인 것입니다. 눈은 증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증발하기 시작하자 눈은 뜨거운 물로 변하여 산 아래로 폭포같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그 끓는 듯한 물도 눈 깜짝할 사이에 흰 연기로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으로 그 무서운 눈사태는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리스는 일어섰지만 비틀거렸습니다. 아리스는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휘청거리며 창문을 붙잡았습니다.
아리스는 눈사태가 깨끗이 없어진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랄프를 바라보았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그 눈사태가 깨끗이 없어지다니?”
아리스는 중얼거렸습니다. 랄프는 발전을 정지시키기 위해 스위치에 손을 대며 아리스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습니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리스!”
그때 마침 아리스의 방문이 후닥닥 열렸습니다. 동시에 머리가 하얀 백발 노인이 뛰어들어왔습니다. 노인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아리스를 부르며 아리스를 품에 안았습니다
“아리스, 어디 보자. 네가 살아있다니!”
“예, 아버지. 살았어요. 제가 살았어요!”
부녀의 기쁨에 찬 모습을 보고 랄프는 가슴이 뿌듯해 졌습니다. 랄프는 텔레비젼 스위치를 껐습니다.
그는 피로를 느꼈지만 우연히 알게 된 소녀의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웠습니다. 모처럼 즐거운 기분이 되었습니다.
랄프는 쉬기 위해서 연구실에서 나와 계단 바로 밑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방은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는 곳으로서 밖의 경치를 환하게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밖에는 뉴욕 시가가 펼쳐져 있고, 높고 큰 빌딩들이 바로 눈앞에까지 우뚝우뚝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빛으로 된 탑
 
랄프의 집은 지름 10미터, 높이 20미터의 바늘 같은 뾰족한 탑으로서, 수정 유리와 스틸 알루미늄이라는 특수 금속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햇빛을 받으면 번쩍번쩍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랄프의 집은 이 도시의 명물로서 뉴욕 사람들은 이 집을 빛의 탑이라고 불렀습니다.
랄프는 미국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자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몇 년에 걸쳐 완성한 몇 가지 발명들은 모두가 인류를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생활을 풍요하게 하고 세계 문명을 빛내는 데 이바지한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전 인류에게 그는 존경을 받았습니다. 돈도 발명의 대가로 받은 것들이 남아 돌만큼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유명한 사람이면 다 그렇듯이 랄프도 너무 유명했기 때문에 조금의 자유도 없었습니다.
자기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항상 곁에는 누군가가 붙어 있었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연구실에 틀어박혀 일에 몰두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편했습니다.
발명왕 랄프! 그것은 언제나 사람들이 랄프 곁에 몰려들 듯이, 항상 랄프에게 붙어 다니는 칭호였습니다.
랄프는 자동조리기의 버튼을 눌러 커피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그가 발명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천천히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심부름하던 피트의 모습이 벽의 텔레비젼이 켜지면서 나타났습니다.
“박사님, 텔레비젼국의 직원이 텔레비젼에 좀 나와 주셨으면 하고 부탁해 왔습니다. 어떻게 하죠?”
잠시 동안의 휴식의 즐거움이 또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난 쉬고 싶어, 피트. 도대체 무엇 때문이야?”
“전 세계 사람들은 방금 박사님께서 생명을 구하신 훌륭한 일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자 박사님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랄프는 유리 용기 안에 들어있던 한 마리의 모르모트의 귀여운 눈을 생각해냈습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것은 ‘플러스’라는 명예로운 기호를 받은 사람의 의무이기도 하였습니다.
“좋아, 면회실로 가겠어.”
랄프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방 모퉁이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잠시 후에 48층에 있는 면회실 앞에서 멈췄습니다.
방에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지만 랄프가 면회실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습니다.
둥근 방에는 사방 벽에 수십 개의 텔레비젼 스크린이 장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텔레비젼국 스튜디오가 비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랄프의 모습은 그 텔레비젼국의 전파를 타고 전 세계 가정의 텔레비젼에 비쳐질 것입니다.
“랄프 124C41플러스. 랄프는 우리들의 발명왕, 발명왕 만세!”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외쳤습니다. 랄프는 손을 번쩍 들고는 환호에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찬사를 해주시다니 오히려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그저 위험에 직면한 한 사람의 생명을 과학의 힘으로 구조했을 뿐인데 이렇게 환영을 해주시다니……. 그렇지만 여러분의 찬사를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랄프가 이렇게 인사에 답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방문객
 
그러나 이런 랄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그림자가 지구상에 두 곳이 있었습니다.
발명왕 랄프도 그런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랄프와 비슷한 나이에 키가 훤칠하게 큰 청년으로서, 대단히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컬러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그의 눈길은 사나왔습니다.
개다가 그 청년은 야릇한 미소까지 띠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엔 화성으로부터 지구에 유학 온 화성인이 많았는데, 화성에서 온 유학생 한 사람이 또 랄프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2미터가 넘었고, 얼굴은 초록빛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소처럼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던 도깨비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이 유학생은 왜 랄프를 미워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잠시 후에 랄프는 연구실로 되돌아 왔습니다. 이내 랄프는 연구에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연구에 열중하고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방해받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피트가 연구실의 텔레비젼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랄프 박사님이세요?”
“피트, 자넨 잘 알고 있으면서 일 도중에 방해를 하는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던가.”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일 도중에는 어떤 손님도 면회 사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하지만 특별한 손님 같아서요.”
“괜찮으니까 적당히 돌려보내도록 해요.”
피트는 먼 곳에서 오신 손님을 어떻게 돌려보내냐는 얼굴로 난처한 듯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랄프는 더 이상 말하는 것이 귀찮아졌으므로 그대로 텔레비젼 스위치를 꺼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피트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스위스에서 일부러 이곳까지 오신 분들을 돌려보내도록 하지요.”
피트 쪽에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랄프는 놀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가려는 피트를 불러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뭐라고 했지. 피트? 스위스에서 오신 손님이라고?”
“그렇다니까요. 이름은 아리스, 아버지와 함께예요. 그러나 박사님 연구에 방해가 될 테니까 되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피트는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피트는 일부러 비꼬듯이 말하고는 또 나가려고 했습니다.
“잠깐, 피트!”
랄프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만약에 그 손님을 돌려보내면 넌 파면이다!”
피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벌써 짐작을 하고 응접실에 모셔 놓았습니다.”
랄프는 하던 모든 일을 중지하고 급히 응접실로 내려갔습니다. 응접실의 창 옆 의자에 아리스와 그의 아버지가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랄프를 보자 반가운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나 랄프를 맞았습니다. 아리스의 아버지는 랄프를 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랄프 124C41플러스 씨, 반가워요. 저는 제임스 B42라고 합니다. 제 딸의 생명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 그런데 스위스에서 무척 빨리 오셨는데, 대륙간 로켓으로 오셨나요?”
“아니에요. 새로 건설된 대서양 해저 전자 지하철로 왔어요. 실은 제가 그 지하철의 설계 기사랍니다.”
전자 지하철이란 새로운 교통 기관으로, 땅 밑 수백 킬로미터에서 통하고 있습니다. 터널 안은 완전한 진공 상태로 되어 있고, 땅 밑의 높은 열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은 강한 전자석의 힘으로 운전되는데 시속 1000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을 냅니다.
따라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에도 불과 2,3시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과학 기술이 낳은 훌륭한 교통 기관인 것입니다.
랄프는 4,5일을 예정하고 모처럼의 미국 여행을 온 아리스와 그 아버지에게 빛의 탑에 머물면서 뉴욕을 구경하도록 권했습니다. 랄프는 그 안내역을 자청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임스 212B42’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습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요. 박사님처럼 바쁘신 분에게 그런 수고를 끼치다니,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그러나 랄프는 귀한 손님을 다른 사람에게 접대시키는 것이 무척 싫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접대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제임스와 아리스 부녀의 기쁨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랄프는 아리스를 데리고 뉴욕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아리스와 랄프는 빛의 탑을 나섰습니다.
아리스의 아버지는 급한 볼일이 생겨 같이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랄프는 비서 피트에게 모터코스터를 두 켤레 가져오게 하여 아리스에게도 신겼습니다.
 
27세기의 뉴욕
 
모터코스터는 마치 롤러스케이트와 같이 바퀴가 달려있는 신인데, 신의 바닥에는 전기 모터 장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속도도 마음대로 조종하면서 달릴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물건이었습니다.
도로는 절대로 갈라지거나 떨어지지 않는 스틸알루미늄 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뉴욕의 넓고 아름다운 거리를 시속 40킬로미터, 아주 기분 좋은 속력으로 달렸습니다.
길에는 모터코스터로 달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교통 규칙을 잘 지키면서 달리고 있었고, 그 가벼운 소리는 마치 벌들이 윙윙하며 나르는 소리처럼 부드러웠습니다.
시가에는 자동차의 운행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사고 같은 것은 일어날 염려가 없었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차는 전기 에너지로 달리는 버스뿐이었습니다.
아리스는 보는 것마다 신기하여 여러 가지를 랄프에게 물어 왔습니다.
도로 위에는 코일 같은 전선이 있는데, 그것은 야간 조명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그것은 흰빛을 발해 마치 낮과 같이 거리를 환하게 했습니다.
뉴욕의 기상 조정 센터에서는 하루 한 번씩 공기 중의 먼지를 완전히 빨아들이는 시설이 되어 있어, 뉴욕은 무척 큰 도시인데도 먼지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리스에게는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한 것 투성이었습니다.
랄프는 아리스의 질문에 정성껏, 즐거운 마음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랄프, 저쪽 둥근 건물은 뭐지요?”
“그게 과학 식당이지요, 마침 잘 됐군요. 그리로 가서 점심을 들도록 해요.”
아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습니다.
“저는 아직 배가 고프지 않은 걸요.”
“염려 말아요. 곧 배가 고파질 겁니다.”
아리스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과학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부드럽고 기분 좋은 공기가 풍겨 나왔습니다.
빈 의자에 두 사람은 앉았습니다. 테이블도 보통 것과는 달라 마치 전자 계산기의 조종대와 같이 앞으로 많은 버튼이 죽 장치되어 있었습니다.
테이블의 중앙에는 미끄럼대 같은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앉았을 때, 옆벽에 아름다운 컬러슬라이드 신문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은 전부 읽고 나면 저절로 페이지가 바뀌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있는 동안 아리스는 조금씩 배가 고프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에는 배가 몹시 고파졌습니다. 아리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갑자기 배가 몹시 고파졌어요. 조금 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는데…….”
“아, 그건 들어올 때 마신 공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재미있다는 듯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식당의 출입문에는 식욕을 북돋우는 특수 가스가 섞여있는 공기가 흐르고 있지요.”
“어쩜!”
순간 아리스의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그러면 식사도 매우 다르겠군요.”
“물론입니다. 그 메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눌러 보도록 해요!”
아리스는 랄프가 시키는 대로 메뉴라고 쓰여진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자 테이블의 일부가 갈라지는 동시에 여러 가지 요리의 입체 사진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머, 아주 신기해요!”
아리스는 감탄을 하였지만 요리가 모두 마시는 것뿐이었으므로 곧 눈을 찌푸렸습니다.
과학 식당의 요리는 모두가 액체로 되어 있습니다. 채소, 육류, 비타민, 칼슘 등 여러 가지의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맛있고 영양가 있는 액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또 온도나 분량이나 시간을 맞추어 그 사람의 성미에 따라 버튼으로도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액체 식사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누구나 액체 식사는 씹을 맛이 없어서 처음에는 싫어했습니다.
식사라고 하기보다는 음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화가 잘 되고, 위나 장의 탈이 없을뿐더러, 영양이 잘 흡수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사람들은 즐겨 액체 식사를 찾곤 했습니다.
아리스는 맛있게 마셨습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모터코스터를 신은 채 거리를 달렸습니다.
여러 곳의 건물과 공원을 두루두루 구경한 다음 거리에 나왔을 때입니다.
키가 대단히 큰 한 청년이 그들의 뒤에 나타나더니 랄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아리스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비웃는 듯한 냉소를 머금은 얼굴로 아리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리스 양, 뉴욕 구경 재미있어요?”
이 사나이는 어제 랄프의 세계 텔레비젼 방송 도중에 사나운 눈초리로 쏘아보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아리스는 그를 돌아보며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예, 물론이죠 페르난 씨.”
그러자 페르난이라고 불린 청년은 갑자기 사나운 얼굴로 변하였습니다.
“물론 재미있었겠지, 아리스. 좋아. 난 끝까지 따라다니며 골탕을 먹여줄 테다.”
말을 마치고도 페르난은 오랫동안 아리스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이라는 사내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순간 아리스는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습니다.
아리스는 물론 그 사내가 무척 못마땅했지만 랄프를 말렸습니다.
상대할만한 가치를 가진 사내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둬요, 랄프. 상대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걸어갔습니다.
“좋아, 어디 두고 보자.”
사나이는 위협적인 목소리로 뒤에서 소리쳤습니다.
그 사람은 전부터 아리스에게 결혼하자고 조르고 있는 프랑스의 과학자 ‘페르난 600D10’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아리스는 그 사람을 무척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페르난은 아리스가 피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끈질긴 사람이었습니다.
랄프는 아리스가 하는 말을 듣고 몹시 불쾌하였지만, 아리스는 이미 그런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리스는 랄프를 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런 일은 잊어 버려요. 뉴욕이나 좀 더 안내해 주세요.”
두 사람은 모터코스터의 속력을 더욱 내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축 제
 
이윽고 랄프와 아리스는 반중력 비행차를 타고 국립 스포츠 센터로 갔습니다.
국립 스포츠 센터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할 수 있는 넓고도 훌륭한 곳이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놀 수 있는 스포츠 시설과 도구가 갖추어져 있고, 밤과 낮이 구별되어 있지 않습니다.
밤에 야구나 축구, 그리고 테니스 경기를 할 때는 큰 태양등을 비추었으므로 전혀 그늘이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낮보다 경기하기가 편할 정도였습니다.
랄프는 아리스에게 국립 스포츠 센터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어때요, 아리스. 테니스를 해볼까요?”
“좋아요.”
아리스는 원래 테니스를 좋아했고, 스위스에서는 선수였습니다.
두 사람은 테니스 코트로 가서 라켓을 집어들었습니다. 아리스는 랄프에게 2회전을 거뜬히 이겨버렸습니다. 랄프는 유쾌해진 기분으로 아리스를 칭찬했습니다.
테니스를 끝내고 두 사람은 또 다시 반중력 비행차로 뉴욕의 중앙에 위치한 태양 발전소로 갔습니다.
여기는 낮 동안에 태양열을 전기 에너지로 변하게 하는 발전소였습니다. 뉴욕의 동력은 모두 이 발전소가 맡고 있습니다.
그날 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랄프는 아리스의 아버지인 제임스를 빛의 탑 밑에 있는 텔레비젼 극장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입체 컬러 텔레비젼의 발달은 일부러 극장까지 가지 않아도 될 만큼 편리했습니다.
다이얼만 돌리면 어떤 극장의 오페라도 집에 앉아서 마음대로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텔레비젼에서는 국립 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를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입체 칼라 텔레비젼은 진짜 사람이 눈앞에서 연극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같이 생생하게 보였습니다.
“정말 굉장해요. 유럽에도 컬러 텔레비젼은 있지만 색깔이 이렇게 아름답지 못할뿐더러 채널도 적어요. 뉴스가 많아서 오페라를 구경하는 것은 힘들지요.”
아리스가 말했습니다. 랄프는 시계를 보며,
“뉴욕의 명물인 공중 축제를 보여 드리죠. 그걸 안 본다면 뉴욕에 온 보람이 없어요. 자, 빛의 탑 위로 돌아가시죠.”
아리스 부녀는 랄프의 뒤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눈 깜짝할 사이에 200미터 높이의 빛의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200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27세기 뉴욕 밤 경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빛의 홍수와도 같았습니다. 갑자기 그 빛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뉴욕은 암흑의 도시로 탈바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리스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전인가 봐요! 어찌된 일이죠?”
랄프가 대답도 하기 전에 제임스가 멀리 지평선의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아니……, 저것은 또 무엇입니까?”
밤하늘에 엄청난 크기의 미국 국기가 펄럭이면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중 축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국기는 600대의 반중력 비행차 편대에 실려오고 있었습니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반중력 비행차의 대집단이었습니다.
반중력 비행차는 각기 동체 밑에서 푸르고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 빛들이 서로 어울려 멋지고 큰 미국 국기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제임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미국 국기가 밤하늘에서 한 바퀴 빙글 돌고 난 뒤, 색색으로 바뀌면서 빛의 쇼가 계속 이어져 나갔습니다.
그 빛은 아름다운 오색 빛깔이 아로새겨진 레코드처럼 하늘을 빙빙 돌기도 했습니다.
붉은 빛을 중앙으로 하여 태양의 형태를 취하고 그 둘레에 흰빛의 수성, 금빛의 금성, 초록색의 지구, 오렌지색의 화성, 푸른색의 목성, 보라색의 토성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태양계의 형태를 보는 것처럼 실로 놀라운 장면이었습니다.
제임스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굉장해요, 정말. 이렇게 훌륭한 쇼는 이제까지 본 일이 없어요.”
 
 
 
유 괴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랄프는 여러 곳을 안내해 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바시토라늄에 관해서도 랄프는 자세한 설명을 했습니다. 바시토라늄이란 25세기에 완성한 일종의 만능치료기입니다. 이것도 또한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전자기계인데, 이것으로 치료하면 몸의 안팎에 있는 모든 해로운 박테리아를 송두리째 살균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미국 국민은 반드시 한 달에 한 번씩은 이 바시토라늄 병원에 가기로 되어 있어요. 그 결과 전염병이란 전염병은 모조리 전멸되었지요.”
모든 것이 아리스 부녀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또 랄프는 아리스 부녀를 과학 농원으로 안내했습니다.
과학 농원은 아주 크고 넓은 유리의 온실로 되어 있어 그 내부는 항상 따뜻했습니다.
특별히 만든 과학 비료를 사용하고 있어 채소나 곡식이나 과일 등을 보통 것보다 몇 갑절 빠른 속도로 재배할 수 있습니다.
과학 농원의 혜택으로 식료품을 지금까지의 몇 배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무섭게 늘어나는 세계 인구 때문에 식료품 부족 현상이 심각했을 것입니다.
그 곳에서는 채소나 밀뿐 아니라 콩, 담배 등의 농산물로 인하여 놀라운 수확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아리스 부녀는 과학 농원에서 금방 익은 포도와 사과를 대접받았습니다. 그것들은 싱싱했고, 대단히 맛이 좋았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랄프와 아리스는 빛의 탑 가까운 고속도로로 나가서 모터코스터를 타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아주 좋은 날씨였습니다.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상쾌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신나게 달렸습니다.
이때 랄프는 바로 뒤에서 모터코스터로 씽씽 바람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따라오는 듯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뒤돌아보았으나 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낮이었으므로 고속도로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한데!”
랄프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나 잘못 들은 것이려니 생각하며 계속 달렸습니다.
곧 빛의 탑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고팠으므로 빨리 돌아가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의 모터코스터 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달렸습니다.
고속도로의 갈림길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랄프는 아리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뒤돌아본 순간, 너무 놀라 발의 중심을 잃고 길 위에 쓰러질 뻔했습니다.
아리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에 따라오는 줄 알고 있었는데, 아리스가 행방불명이 된 것입니다.
“아리스, 아리스! 어디 있어요?”
외치며 랄프는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랄프는 쭈뼛 머리끝이 곤두섰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어디로 갑자기 사라졌단 말인가!’
조금 전까지도 들려 오던 모터코스터 소리는 이미 들려 오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아리스는 사람의 힘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악마의 마법에 의하여 납치 당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랄프는 과학자로서, 악마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냉정한 과학자의 자세로 되돌아왔습니다. 악마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27세기의 뉴욕에 악마라니,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리스는 조금 전까지도 랄프의 곁에 있었는데, 돌연 사라져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누군가 사람의 짓이 틀림없어!’
그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증거다. 유리가 그렇지 않는가! 잘 닦은 유리를 통해서 보면, 마치 유리가 없는 것같이 느껴진다. 유리는 빛을 반사하지 않고 모두 통과시키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보이던 물체를 갑자기 투명하게, 보이지 않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 그 물체를 유리와 같은 성질의 것으로 바꾼다면, 될 수도 있을 지 모릅니다.
랄프는 그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파는 빛과 같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파가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파와 같이 심하게 진동시키면 어떤 물체도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리스는 높은 주파수의 전파를 내는 기계에 의해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어, 유괴를 당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조금 전까지 바로 뒤에서 들려오던 씽씽 소리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특수 전파 발생기로 모습을 감춘 범인이 모터코스터를 타고 뒤따라오던 소리였습니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인은 틀림없이 기회를 노렸을 겁니다. 아리스가 조금 뒤떨어졌을 때, 전파 발생기로써, 아리스의 모습을 투명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랄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범인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르난! 페르난 600D10이 아리스를 유괴한 범인일 거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랄프는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한시가 급했습니다. 전 속력으로 빛의 탑에 돌아왔습니다.
랄프는 범인이 가지고 있는 고주파 전파가 발생한 곳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기 위해, 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범인의 기계에서 발생하는 전파는 특별히 높은 주파수를 발생시킬 것입니다.
그 주파수의 전파를 발견해서 따라가면, 범인과 아리스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전부터 이 ‘투명 이론’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습니다.
그 연구가 지금에 와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1시간 가량 걸려서 그 장치를 완성했습니다.
그 장치는 한 개의 로프 안테나와 리시버가 달려있는, 휴대용 무전기 같은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그 안테나를 돌리면 고주파 전파가 발생하는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안테나가 그 전파를 발생하는 장소로 가까이 갈수록 소리는 크게 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기계가 있는 곳을 알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랄프는 탐지기를 손에 들고 급히 두 조수를 불러 자기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랄프는 달리면서 탐지기의 스위치를 누르고 안테나를 돌렸습니다.
색다른 소리가 리시버를 통하여 들려 왔습니다.
 
대추적
 
‘뿌, 뿌, 뿌뿌, 뿌.’
세 사람은 들려오는 방향을 쫓아, 바람처럼 거리를 전 속력으로 질주했습니다. 랄프는 계속 리시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은 유명한 과학자가 두 조수를 데리고 무섭게 달리자, 무슨 큰일이 난 것으로 알고 한결같이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잠시 후, 세 사람은 뉴욕의 시가를 벗어났습니다.
어느 양복점 앞에서 소리가 멈추었습니다. 리시버의 소리는 고막이 터질 정도로 크게 울렸습니다.
“여기다! 이 가게가 틀림없어!”
랄프 일행은 가게로 뛰어들어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양복점 주인은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해 있었습니다. 랄프 일행은 이유를 설명할 틈도 없이 수색에만 열중했습니다. 양복점 주인은 그대로 멍청하게 서 있었습니다.
랄프가 가게 구석 쪽에 있는 마네킹 인형 뒤를 살폈을 때였습니다.
“아앗!”
그는 깜짝 놀라며 가느다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의 두 손목이 마치 잘려나간 것처럼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떨리는 손을 서서히 끄집어 내 보았습니다. 그러자 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자기에서 빠져 나오는 것처럼,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랄프는 짐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랄프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모든 걸 알게 됐어!”
랄프는 마네킹 인형을 넘어뜨리고 그 뒤를 손으로 더듬었습니다.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어떤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더듬었습니다. 그것은 발에서 머리끝까지 보자기를 덮어쓰고 단단한 끈으로 칭칭 감겨져 있었습니다.
끈을 풀기 위해 랄프는 노력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노끈을 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조수는 기계 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랄프는 스위치를 끊으려고 손을 더듬어, 보이지 않는 스위치를 돌렸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아무 곳에도 없던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희미한 모습은 말할 것도 없이, 머리에 보자기를 덮어 쓴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보자기에서 조금 삐져 나온 발은, 분명 여자의 것이었습니다.
랄프는 끈을 풀고 보자기를 벗겼습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아리스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습니다.
“아리스, 정신 차려요!”
아리스는 겨우 눈을 떴습니다. 랄프는 아리스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리스는 힘없는 눈으로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이 랄프를 쳐다보았습니다. 랄프는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나쁜 놈에게 유괴 당한 거요. 그렇지만 이제 안심해요. 이대로 갈 수 있겠어요?”
아리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갈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랄프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안도의 숨을 쉬었습니다.
 
페르난은 어디로
 
랄프 일행은 빛의 탑으로 돌아왔습니다. 랄프는 오자마자, 그 초고주파 전파 발생기를 조사했습니다. 그것은 놀랄 만한 솜씨로 만들어진, 아주 훌륭한 장치였습니다.
“대단합니다. 이렇게 정밀하고 교묘한 기계는 나도 본 적이 없어요. 지구상에 이런 기계를 만들어낼 인간이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오.”
감탄을 연발하며, 랄프는 아리스에게 물었습니다.
“혹, 당신을 유괴한 사람이 페르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틀림없어요. 유괴 당할 때, 몸부림치며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가슴을 마구 떠밀었는데, 그때 이 쇠줄이 끊어졌나 봐요. 이 엷은 녹색 메달은 페르난의 가슴에 달려 있는 것이에요. 한 번도 이것을 뗀 적이 없어요. 그땐 정신이 없어서 이것이 손에 왜 있었는지 몰랐지만 나중에야 알았어요.”
랄프는 이상했습니다. 페르난에게 그렇게 훌륭한 기계를 만들어낼 재간이 있을 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화성인밖에 없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이 지구에 있는 화성인에게서 입수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제임스는,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증거품이 있잖아요. 이 메달이 훌륭한 증거품이 될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귀중한 기계를 손에 넣은 페르난이, 경찰에 붙잡힐 정도로 허술하진 않을 거예요.”
랄프의 생각은 들어맞았습니다.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까지 동원된 세계의 경찰이 눈을 부릅뜨고 찾았지만 일 주일이 지나도록 페르난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랄프와 아리스 두 사람에겐 평화롭고 즐거운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랄프는 바쁜 중에도 아리스에게 여러 곳을 안내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리스를 감동시킨 것은 랄프가 건설한 공중 도시였습니다.
사실 이 공중 도시야말로 랄프의 그 많은 발명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것이었습니다.
반중력 장치에 의한, 지상 6,000미터의 하늘에 떠 있는 도시였습니다. 멀리서 보면 그 공중 도시는 푸른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한 톨의 콩알 같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2 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반구형이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반구형 밑에는 아담한 집들이 죽 들어서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위는 밝고 투명한 특수 유리로 만들어진 반구형의 지붕이 덮여 있었습니다.
반중력 비행차는 이 공중섬의 둘레에 모자의 차양처럼 나와 있는 플랫폼에 착륙했습니다. 사람들은 도움의 여러 곳에 있는 출입문을 통하여 왕래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윽고 출입문을 통하여 도시의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마을 안에서는 일체 기계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스위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 들어선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주는, 평화롭기가 그지없는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모터코스터나 비행차의 소리뿐만 아니라, 그 밖의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서는 걷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신바닥은 모두 고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공중 도시는 사람들의 휴양처로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현대 사람은 항상 바쁘고, 더구나 어떤 일에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늘 신경이 피로해 있었습니다.
안정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바다나 산을 찾았습니다. 그건 옛사람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요즈음은 그런 곳도 이미 휴식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구상된 곳이 이 마을입니다. 마을에서는 일체 동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몇 천년 전, 옛날의 평화로운 마을처럼 조용합니다. 지상의 대도시 소음도 랄프가 발명한 이 마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 마을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기계라는 것을 잊게 됩니다. 여기서는 어디를 가든지 자기 자신의 발로 걷고 있으며, 공기는 말할 수 없이 신선합니다.
며칠 동안만 휴양하면 피로한 신경과 몸은 회복되어 버립니다. 새 힘이 솟아납니다.
랄프는 이러한 공중 도시를 세계의 대도시 상공 여러 곳에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과연 랄프의 발명은 위대했습니다. 아리스는 지금까지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긴장도 풀려 아주 상쾌한 기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상으로 되돌아와, 랄프는 명물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무중력 서커스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공중도시를 띄울 반중력 장치와 다른 사용 방법이었습니다. 무중력 서커스는 뉴욕 중앙 공원의 특별한 건물 안에서 열립니다.
그 건물의 한가운데 무대 밑에는 무중력 장치가 되어 있어, 스위치를 누르면 무대 위는 완전히 무중력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무게가 없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할 재미있는 서커스였습니다. 서커스의 곡예사는 공중에서 옆으로 드러눕기도 하고, 조금만 뛰어올라도 천장까지 도달하는가 하면, 몸을 돌리면 무대까지 천천히 내려옵니다.
마치 한 마리의 조그만 새처럼, 무대에서 뛰고 놉니다.
맨 밑에 한 사람이 서고, 그 위에 두 사람, 그 위에 세 사람……, 연달아서 거꾸로 된 인간 사다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리스는 너무 즐거웠습니다. 랄프와 매일매일 재미있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랄프와 아리스는 마치 옛날부터 사귀어온 친구처럼 다정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랄프는 결심했습니다. 아리스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임스에게 아리스와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제임스는 물론 찬성했습니다.
“아리스만 좋다면 나는 물론 찬성이지요. 아리스, 네 생각은 어떠냐?”
아리스는 부끄러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했습니다.
그 길로 세 사람은 신문사로 찾아가서 약혼을 발표했습니다. 신문사에서는 대소동이 일었습니다. 슬라이드 신문은 제 1면에 가장 큰 활자로 이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세계 제일의 발명가 랄프는, 세계 제일의 미녀 아리스와 약혼하다!’
세계는 이 기사로 떠들썩했습니다. 또한 입체 텔레비젼은 랄프와 아리스가 회견실에서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중계 방송했습니다.
세계 정부의 수상도 몸소 와서 랄프에게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단 두 사람만이 그 뉴스를 듣고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그 한 사람은 페르난, 또 한 사람은 지구인이 아닌, 무섭게 큰 키에 눈이 툭 불거진, 녹색의 얼굴을 한 유학생 화성인이었습니다.
 
함정에 빠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습니다.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 환한 달밤이었습니다.
랄프와 아리스는 공중 택시를 타고, 유쾌한 밤하늘의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밤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눈 아래에는 끝없는 대서양의 바닷물이 출렁거렸습니다.
랄프와 아리스는 이 세계에 둘만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두 사람은 정답게 속삭였습니다.
그때 조종석의 운전사가 통화기로 알려 왔습니다.
“가까운 하늘에서 고장난 비행차가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떡하죠?‘
이 말을 듣고 랄프는 라디오를 돌려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운전사는 라디오를 좌석 쪽으로 돌려놓았습니다.
당황한 남자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들려 왔습니다.
“엔진이 고장이 났어요. 이대로 가면 바다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곧 좀 구조해 주십시오!”
랄프는 마이크를 쥐고 대답했습니다.
“알았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고장은 어느 정도입니까?”
“예비품만 있으면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지의 고장입니다.”
운전사는 전속력을 내어, 그 쪽으로 갔습니다. 2,3분쯤 후, 한 대의 비행차가 위험하게 바다 위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운전사는 비행차를 향하여 접근하였습니다.
“어서 이쪽으로 가까이 오시오!”
운전사는 그쪽 비행차의 남자에게 소리쳤습니다. 그 남자는 비행차를 움직여 다가왔습니다. 두 대의 비행차는 공중에서 나란히 섰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랄프는 아리스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을 죄며 걱정하고 있던 아리스도,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빙긋 웃어 보였습니다.
그 순간, 랄프는 갑자기 가슴이 벅차 오르고, 달콤한 냄새가 강하게 풍겨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현기증이 나고 목이 막혀 오면서,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잃어 가면서도 함정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랄프는 있는 힘을 다해 아리스 쪽으로 몸을 돌려, 아리스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아리스의 손은 벌써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치려 했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랄프는 잠시 후에 완전히 정신을 잃고 좌석에 쓰러졌습니다.
 
우주에서
 
의식을 잃고서 얼마쯤이나 되었을까? 랄프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달이 벌써 수평선 저 너머로 기울어지고, 사방은 캄캄하였습니다.
몸은 무겁고 손발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쓰러진 채 창 밖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바다가 보였습니다. 넓은 바다에는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순간, 아리스가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는 겨우 몸을 일으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운전사도 핸들 위에 엎드려 있었지만, 비행차는 자동 조정 장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추락을 면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리스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랄프는 창 밖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바다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리스는 이미 바다에 떨어져 가라앉았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랄프는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도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리스는 바다에 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리스는 다시 유괴된 것입니다. 랄프는 꼼짝없이 적의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을 알았습니다. 그 고장난 비행차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비행차를 옆에 갖다 대었을 때, 강력한 마취제 같은 것을 던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을 때, 페르난은 아리스를 유괴한 것입니다.
‘좋아, 페르난 녀석! 두고 봐라!’
랄프는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한시 빨리 페르난의 뒤를 추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랄프는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막상 어디로 추격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빛의 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랄프는 있는 힘을 다해, 마비된 몸을 이끌고 조종석으로 다가갔습니다. 쓰러진 운전사를 조수석으로 옮기고는 핸들을 잡았습니다.
그로부터 약 10분 후, 랄프는 빛의 탑 꼭대기에 비행차를 착륙시켰습니다. 그는 맨 먼저 경찰에 이 사건을 알렸습니다. 경찰은 전력을 다하여 페르난과 아리스의 행방을 찾아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곧 텔레비젼 방송을 통하여 전 세계의 항공 관제탑으로 하여금, 현재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차를 조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찾고자 하는 페르난의 비행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지상에 착륙했을 지도 모른다는 판단으로 지상까지 샅샅이 조사해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페르난은 아리스를 납치하여 안전한 장소를 향해 가고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습니다. 문득 한 생각이 번갯불처럼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랄프는 이제 무엇인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곧 우주 교통 관제 본부에 물었습니다.
“현재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을 향해서 날아가고 있는 우주선이 없는지요?”
약 한 시간 전에 ‘리자놀 AK42’라는 이름의 화성인이 우주선을 타고 화성을 향해 날아갔다는 것입니다. 랄프의 추리는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습니다.
1시간 전이라면 랄프가 그 고장난 비행차를 만나기 30분전이 됩니다. 페르난은 화성인 리자놀 AK42의 우주선을 우주 공간에서 기다리게 하고, 아리스를 유괴한 즉시, 그 우주선으로 달려가서 화성을 향해 날아갔을 것입니다.
랄프는 급히 빛의 탑 천체 관측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이것도 그가 발명한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랄프는 곧 운석 발견용의 레이더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레이더는 우주 공간을 샅샅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리자놀의 우주선 같은 것을 지구로부터 약 60만 킬로미터 떨어진 우주공간에서 찾아냈습니다.
“됐어. 페르난, 기다리고 있거라. 곧 붙들어서 목을 비틀어 주마.”
그는 이렇게 외치고 나서, 빛의 탑을 나와 곧장 뉴욕 우주 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뉴욕 우주 공항에는 랄프의 전용 우주선 카시오페이아 호가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카시오페이아 호를 발사장으로 옮기게 하였습니다.
랄프가 카시오페이아 호의 조종석에 앉아 조종탑 출발 허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한 대의 지상차가 질주해 왔습니다. 그것은 세계 정부 수상의 승용차였습니다.
일 초가 아까운 시간이어서, 랄프는 초조해진 눈으로 지상차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우주선의 트랩까지 나와, 지상차에서 뛰어내리는 젊은 세계 정부군 장교 한 사람을 맞았습니다.
장교는 랄프에게 경레를 하면서,
‘수상 각하로부터의 연락입니다. 박사님.“
하면서 한 장의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친애하는 랄프 124C41플러스씨. 이번 사건은 참으로 불행한 일로써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제 6 우주 경비대를 당신의 명령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출동시켰습니다. 뭐든지 명령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나는 세계 정보의 수상으로서, 당신이 그런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인류를 위하여 꼭 있어야 되는 귀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신변에 어떤 위험이 생긴다면 큰일입니다. 범인의 추격은 우주 경비대에 맡기십시오. 나는 당신이 지구를 떠나는 것을 막겠습니다.
 
제 18대 세계 정부 수상
켄트리지 K4플러스
 
랄프는 그 편지를 계속해서 두 번이나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장교를 바라보았습니다.
랄프는 생각했습니다. 수상의 명령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랄프는 장교에게 말했습니다.
“수상의 명령이라면 할 수 없지요. 그만두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장교가 랄프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우주선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랄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주사를 놓아 잠재웠던 것입니다. 한 15분이 지나면 일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리자놀과 페르난을 추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염려하지 마시고 이분을 데리고 떠나 주십시오. 잠시 후에는 깨어날 테니까요. 전 지금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놀라면서 쓰러져 있는 장교를 안아 일으켰습니다.
드디어 랄프는 우주로 향했습니다. 랄프는 사람들이 안전 지대까지 물러서는 것을 본 후에 발사 버튼을 눌렀습니다.
우주선 카시오페이아 호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우주 공간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카시오페이아 호는 시속 12만 킬로미터의 속력으로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서 진공의 우주 공간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리자놀과 페르난이 탄 우주선은 이미 70만 킬로미터 저쪽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우주선의 속력은 카시오페이아 호보다 느렸습니다. 카시오페이아 호는 12시간 정도만 달리면 충분히 그들을 뒤쫓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진로를 정한 후 우주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력을 내어 날았습니다.
우주 비행에서 일단 진로만 정해 놓으면 별로 할 일은 없습니다.
랄프는 초조한 마음으로 레이더를 바라보며, 스크린 속에 하얗게 빛나는 리자놀의 우주선 모습만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이 혹시나 아리스를 괴롭히지나 않나 하여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페르난을 돕고있는 리자놀이라는 화성인 역시 나쁜 놈임에 틀림없을 것이었습니다.
랄프는 아리스가 무사하기를 빌었습니다. 초조한 가운데 시간은 흘렀습니다. 랄프의 우주선과 리자놀의 우주선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접근하는 몇 시간 전에 랄프는 라디오로 페르난을 불렀습니다.
“페르난, 순순히 항복하는 것이 어떠냐? 나의 뒤에는 우주 경비대의 우주정이 수십 척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 도망쳐도 넌 곧 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라. 그리고 아리스를 돌려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세계 정부 수상에게 부탁해서 처벌은 받지 않도록 해주겠다. 어떠냐? 페르난, 알아들었다면 대꾸를 하라!”
그렇지만 페르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랄프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페르난의 우주선을 뒤쫓을 도리 밖에 없었습니다.
카시오페이아 호의 망원경에 페르난이 타고있는 우주선의 모습이 10시간이 흐른 후에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후면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입니다. 랄프는 정확하게 우주선을 추격했습니다.
이윽고 페르난의 우주선은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습니다.
랄프는 카시오페이아 호에 장치되어 있는 강력한 자석 장치를 가동시킬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기가 막힌 멋진 솜씨로 조종하여 페르난의 우주선 진로를 가로막아 가면서 거리를 좁혀 갔습니다.
마침내 가까워진 적의 우주선 모습을 응시하면서 랄프는 자석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강력한 자석의 힘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두 척의 우주선은 서로 당겨져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맞붙어 버렸습니다.
그때 이미 랄프는 우주복을 입고 있었으며, 손에는 권총을 들고 적의 우주선에 뛰어들어갈 태세를 갖추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창문을 통하여 페르난의 떨고있는 모습이 또렷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권총을 쏘았습니다. 권총 광선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고 있었습니다.
녹색의 광선이 번쩍였습니다. 페르난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성공이었습니다. 랄프는 우주모를 쓴 채, 급히 우주선의 문을 열어 젖히고 적의 우주선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적 우주선의 문에 손을 댔을 때, 그것은 이상하게도 잠겨 있지 않았으며, 쉽게 열렸습니다. 이상스럽기까지 하였습니다.
랄프는 긴장을 풀지 않고 권총을 바로 잡았습니다. 그런 다음 랄프는 얼른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리자놀이라는 화성인이 우주선의 어딘가에 있으리라. 아마 조종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아리스도 틀림없이 함께 있을 것입니다. 랄프는 발소리를 죽이고 조종실로 다가갔습니다.
와락 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페르난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인력이 없는 세계이므로 바닥에 쓰러져 있지 않고 공중에 붕 떠 있었습니다.
랄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당황해서 다른 방들을 차례차례 뒤져보았습니다.
오랜 시간을 뒤졌지만 어느 방에서도 화성인과 아리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분명 이 우주선 안에는 없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악마의 술책
 
랄프는 일그러진 얼굴로 페르난을 쏘아보고 있었습니다. 랄프는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광선이 나오도록 권총을 조절하고 페르난의 얼굴을 쏘아댔습니다.
그러자 페르난은 눈을 뜨고 랄프를 바라보았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의 목덜미를 잡고 아리스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페르난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나도 모... 모르겠습니다.”
페르난 역시 화성인 리자놀에게 이용당했던 것입니다. 리자놀은 페르난을 기절시킨 다음 아리스를 유괴해 갔습니다. 리자놀도 아리스와 결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화성인은 페르난이 아리스를 우주선으로 데리고 오기 전부터 흉계를 꾸미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랄프는 페르난에게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는 날에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소리쳤습니다.
페르난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유괴는 모두 리자놀의 음모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최초로 행했던 그 초고주파 전파 발생기를 빌려준 것도 리자놀이었습니다. 이번의 유괴 계획도 그가 꾸민 것이었습니다.
페르난이 랄프를 교묘히 속이고 기절시킨 다음, 아리스를 유괴하는데 성공하자 리자놀은 그 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는 페르난을 광선 권총으로 쓰러뜨린 다음 아리스를 납치하여 다른 우주선으로 갈아타고 그대로 달렸던 것입니다.
페르난은 랄프의 우주선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비로소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페르난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랄프는 분하여 몸을 떨었습니다. 페르난의 우주선은 속임수였던 것입니다.
이 우주선에 랄프가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 리자놀은 아리스를 데리고 여유 있게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랄프는 또다시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리자놀은 도대체 아리스를 어디로 데려간 것일까?
“페르난, 리자놀이라는 놈 아리스를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저어……, 아마 화성일 거예요. 틀림없을 거요. 그가 최후로 중얼거린 말이 희미하게 기억이 나요. 아무리 랄프가 추격해 온다 해도 화성에 먼저 도착해서 아리스와 결혼해 버리면 그만일 거라고요. 잘은 모르지만 아리스는 화성의 시민이 되고 말 거에요.”
“뭐? 화성의 시민이? 결혼을 한다고?”
랄프는 노여움에 불타는 눈으로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창밖에는 하나의 별이 특히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화성은 우주 공간에서 이상한 붉은 빛을 띠고 있는 별이었습니다.
랄프는 리자놀이 화성에 도착하기 전에 추격해서 붙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랄프는 화성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랄프가 카시오페이아 호로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페르난이 붙잡았습니다.
“랄프, 부탁이오. 나를 이대로 두고 간다면 나는 곧장 우주 끝까지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리자놀이란 놈은 아리스를 데리고 갈 때, 이 우주선의 조정 장치를 파괴해 버렸어요. 단지 일직선으로 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내버리고 가지 말아요. 제발 살려 주시오.”
페르난은 부들부들 떨며 애원했습니다. 페르난의 괘씸한 소행을 생각하면 용서해 줄 생각이 없지만, 랄프는 그가 다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랄프는 그를 살려주기로 했습니다.
랄프의 뒤에는 우주 경비대의 우주정이 따라오고 있었으므로 카시오페이아 호로 돌아와 연락을 해주었습니다. 페르난은 곧 체포될 것이지만, 생명은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성을 향하여 날아가면서 랄프는 리자놀의 우주선과 카시오페이아 호와의 거리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레이다로 보니 리자놀의 우주선은 10만 킬로미터 정도 앞서 있었는데, 1시간에 13만 6천 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랄프의 우주선은 최고 속력을 내면 14만 4천 킬로미터의 속력을 낼 수 있습니다. 즉 1시간에 8천 킬로미터를 더 따라붙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 결과, 따라붙을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화성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리자놀의 우주선을 붙잡을 수가 있습니다.
랄프는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자동 조정 장치를 갖추고 우주 미사일의 발사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물론 적의 우주선에는 아리스가 붙잡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미사일을 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리자놀을 위협하기 위해서는 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미사일 준비를 끝내고, 랄프는 레이다와 전자 계산기를 사용하여 리자놀의 우주선과 카시오페이아 호의 거리를 측정했습니다.
랄프는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거리가 좁혀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급히 계산을 다시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리자놀의 우주선은 현재 1시간에 14만 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속력차는 불과 4천 킬로미터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래서는 화성 영공에 들어가기 전까지 추격할 수가 없겠는데…….”
랄프는 혼자 외쳤습니다.
화성의 영공으로 들어서면 랄프는 리자놀의 우주선을 공격할 수 없게 됩니다. 그곳은 화성인의 영토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화성 정부의 우주경비대에 붙잡히게 됩니다.
랄프는 정신없이 우주선의 엔진을 조절해 보았지만 속력을 더 낸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랄프는 2,3일 동안 힘없이 조종석에 앉아,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생각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습니다.
랄프는 힘없이 조종석 옆의 창문을 통하여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마녀의 지팡이 같은, 빛나는 긴 꼬리를 가진 천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혜성이었습니다. 그 순간 랄프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오, 그렇지!”너무 기뻐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혜성이다! 카시오페이아 호를 마치 혜성처럼 보이게 하여, 화성을 향하여 날아가는 거다. 화성에 충돌할 것 같은 각도로 날아가는 거다.”
랄프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리자놀은 화성을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혜성이 화성에 충돌한다고 생각하면 일단 화성으로 가는 것을 중단하고, 혜성의 방향을 돌리려는 노력을 할 게 틀림없습니다.
혜성은 대체로 얼음과 가스로 되어있는 가벼운 기체입니다. 우주미사일을 혜성의 머리부분에 2,3발 쏜다면 산산조각이 나거나, 아니면 진로가 바뀔 것입니다. 틀림없이 리자놀은 그렇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방법은 단 한 가지일 뿐입니다.
리자놀의 우주선을 붙잡아서 아리스를 구할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방법뿐이었습니다.
“이젠 됐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걸.”
랄프는 급히 인공 혜성을 만드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곧 카시오페이아 호는 흰 가스로 뒤덮였습니다. 연료 탱크에 가득 차있는 수소를 우주 공간에 조금씩 뿜어냈습니다.
진공의 우주 공간에 내 뿜어진 수소는 즉시 맹렬하게 증발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흰 가스는 카시오페이아 호가 날아가고 있었으므로 그 뒤를 흰 꼬리처럼 되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카시오페이아 호 안에 있는 종이와 다른 재료를 잘게 만들어서 수소와 함께 우주 공간에 뿌렸습니다.
그것들은 태양 광선을 반사하면서 번쩍번쩍 빛이 났습니다.
먼데서 보자면 카시오페이아 호는 진짜 혜성처럼 보일 것입니다. 빛나는 긴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만하면 대 성공이었습니다.
남은 일은 단지 이 인공혜성이 리자놀의 눈에 띄어 자신의 우주선 방향을 돌리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랄프는 기다렸습니다.
그는 초조한 마음으로 리자놀의 우주선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랄프의 인공 혜성과 리자놀의 우주선은 서로의 레이다에 나타날 만큼 가까워 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리자놀이 화성을 향해 방송하는 것이 들려 왔습니다.
“화성으로 향해 날아가는 혜성 발견. 폭파하겠음.”
여태까지 최고 속력으로 가던 리자놀의 우주선이 속력을 늦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혜성을 폭파하기 위해 이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혜성처럼 꾸민 랄프의 우주선을 향하여 그 방향을 바꾸어 질주해 오고 있었습니다.
랄프가 파 놓은 함정에 마침내 걸려든 것입니다. 랄프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리자놀의 우주선은 랄프의 우주선 카시오페이아 호로 점점 접근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인공 혜성의 머리 부분을 향하여 미사일을 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혜성은 머리 부분만 폭파시켜 버리면 소멸되어 버립니다. 혜성의 머리 부분은 무겁지만 그 바깥은 대개가 가스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랄프는 재빨리 카시오페이아 호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맞으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미사일이 날아왔습니다. 그러더니 미사일은 저 넓은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리자놀은 쉬지 않고 계속 미사일을 발사시켰습니다.
랄프는 그때마다 재빨리 피했습니다.
리자놀은 그 순간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습니다. 혜성이 스스로의 진로를 바꾸다니……. 리자놀의 미사일을 잘 피하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아마 중력의 법칙이 잘못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모양입니다. 리자놀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약간 틈을 두었다가 계속해서 미사일을 쏘아댔습니다.
리자놀의 미사일은 한 발도 적중하지 못했습니다. 리자놀은 미사일을 한 개도 남기지 않고 다 발사시켰습니다.
그러는 사이 혜성은 점점 화성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리자놀은 혜성을 파괴시키기 전에는 화성에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리자놀은 전기포를 발사하기 위해 랄프에게로 30킬로미터까지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를 위해 랄프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안전거리까지 다가왔을 때, 준비해 두었던 특별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 순간, 우주 공간은 별빛도 보이지 않고, 마치 빛이 어둠에 삼켜져 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카시오페이아 호를 중심으로 지름 60킬로미터의 우주 공간은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암흑의 세계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장치는 빛과 같은 주파수의 전파를 내어 빛을 중화시킨 후에,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랄프가 리자놀의 초고주파 전파 발생기에서 암시를 받아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다. 리자놀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에 기절할 듯이 놀랐습니다.
그러나 랄프에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습니다. 랄프는 날카로운 육감을 발휘하여 리자놀의 우주선으로 접근해 갔습니다. 거의 가까이 까지 다가갔을 때 중화기의 스위치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깜깜하던 우주 공간은 갑자기 밝은 빛으로 빛나 눈이 부시어 뜨지 못할 정도로 되어 버렸습니다.
조종석의 창을 통하여 무슨 일인가 내다보던 리자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랄프는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광선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무서운 보랏빛 광선이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리자놀의 우주선 상으로 스며들어갔습니다. 순간 리자놀의 모습은 창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주선에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으므로 아리스는 안전할 것입니다. 리자놀을 기어코 쓰러뜨린 랄프는 기쁨에 들떠 있었습니다.
 
아리스, 죽다
 
급히 카시오페이아 호를 리자놀의 우주선에 갖다대었습니다. 랄프는 우주모를 쓰고, 리자놀의 우주선으로 뛰어들어가 조종실 문을 열었습니다. 거기에는 2미터가 넘는 리자놀의 큰 몸집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리자놀은 죽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랄프는 너무 놀라 기절할 뻔했습니다. 아무 일 없으리라고 믿었던 아리스가 피투성이가 되어, 가슴에는 화성인의 단검이 꽂혀 있는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리스, 눈을 떠 보아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리스!”
랄프는 부르짖었습니다. 랄프는 아리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너무 늦어 있었습니다. 아리스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아름답던 눈은 다시 뜨지 않겠다는 듯이 꼬옥 감고서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고생은 보람도 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랄프는 온몸의 힘이 송두리째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리자놀은 무서운 복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져 들어갔음을 느꼈을 때, 최후의 안간힘을 써서 아리스를 단검으로 찌른 것이 틀림없습니다.
랄프는 절망했습니다.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어졌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이제 랄프에게는 없습니다.
그 빛나던 희망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발명도, 인간도, 그리고 세계를 위한 봉사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리스가 없는 세상을 살아서 무엇한단 말입니까?
랄프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랄프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아리스를 안았습니다. 아리스의 시체를 안고 카시오페이아 호로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아리스를 자기의 침대에 눕혀 놓았습니다. 죽은 사람이 슬퍼한다고 다시 살아날 리는 없습니다.
랄프는 생각했습니다. 아리스는 죽었지만 아직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닙니다. 상처는 단지 단검에 의한 것뿐이었습니다.
아리스가 죽은 이유는 단지 그 상처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에는 모르모트의 실험으로 성공한 그 수술이 효력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아리스는 살아날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랄프는 흥분이 되었습니다.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렇지만 곧 냉정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단지 실험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첫 실험이었고, 실험 상대는 모르모트였습니다.
사람에게 성공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습니다. 그렇지만 랄프는 실망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해보는 것이 우선은 제일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랄프에게는 결코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랄프는 모든 슬픔을 뿌리치고 서둘렀습니다.
랄프는 카시오페이아 호를 지구 방향으로 향하도록 자동 조종 장치를 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리스의 몸이 부패하지 않도록, 그리고 변화하지 않도록 보존 처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음같이 차가와진 아리스의 몸을 전기 보온기로 따뜻하게 했습니다. 그런 후에는 아리스의 대동맥을 끊었습니다. 피를 완전히 뽑아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피가 혈액 안에서 응고되어 버리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대동맥의 피를 완전히 뽑아내고는 방부제가 들어있는 특별한 링겔 액을 혈관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몸이 썩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허파에는 그가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완성한 미르마가톨이라는 가스를 집어넣었습니다. 그 가스는 호흡조직을 파괴시키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수술은 극히 작은 실패만 따르더라도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므로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많은 시간이 소리 없이 흘러갔지만 랄프는 시간 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수술을 하고 있는 동안 붉은 화성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그 대신 녹색의 보석처럼 아름다운 지구에 카시오페이아 호는 점점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3일, 5일, 그리고 일 주일, 또 10일. 날짜는 점점 흘러갔습니다. 랄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아리스의 시체는 썩지도 변화하지도 않았습니다.
일단 거기까지는 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랄프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행이란 예고도 없이 뜻밖에 나타나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드디어 2주일 째에 들어섰습니다. 랄프는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긴장하고 과로했었기 때문에 우주병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처럼 훌륭한 발명가도 병에는 어쩔 수 없이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그는 아리스의 침대 옆에 쓰러진 채로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며칠이나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니 이제는 절망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뜬 랄프는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우주선 안에는 많은 의사들이 랄프와 아리스의 시체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카시오페이아 호가 되돌아오는 것을 본 세계 정부의 우주선이 의사와 약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가벼운 치료로 랄프의 우주병은 곧 완쾌되었습니다. 창밖에는 아름다운 달을 거느린 지구의 모습이 바로 옆 가까이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지구에 돌아온 것입니다. 랄프는 용기를 되찾았습니다.
잠시 후에 카시오페이아 호는 뉴욕의 빛의 탑 지붕 위에 착륙했습니다.
빛의 탑 수술실에는 이미 수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세계의 이름난 의사들이 수없이 랄프의 조수가 되기를 희망하고 달려 왔습니다.
아리스의 시체는 곧 수술대로 옮겨져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동맥을 다시 열어서 링겔 액을 뽑아 내고는 따뜻한 증류수로 씻어 냈습니다. 그러자 전국에서는 피를 바치겠다는 지원자가 속출했습니다. 그들이 바친 소중한 피가 곧 아리스의 혈관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와 동시에 산소 흡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뇌에는 자극을 주기 위하여 특수 전류를 보내 주었습니다.
수술을 하는 동안 랄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길고 긴 시간이 말없이 흘렀지만 아리스는 다시 살아날 가망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랄프는 심혈을 기울여 아리스의 생명을 되찾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징조도 나타나 주지 않았습니다.
“아아, 나는 결국 실패하고 마는구나!”
절망감이 랄프의 마음을 괴롭혔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져 옴을 느꼈습니다. 랄프는 그만 어지러움을 느끼고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떨어뜨렸습니다.
아무것도 랄프는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랄프는 힘없이 옆의 조수에게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한 조수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조수의 목소리가 랄프의 귀를 울렸습니다.
“랄프, 이것을 봐요. 아리스의 심장이 점차 뛰기 시작했어요.”
쓰러져 있던 랄프는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번쩍 떴습니다. 그리고 번쩍 뜬 눈으로 아리스를 바라보았습니다. 기적이 아리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끝내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아리스의 심장이 가냘프게 뛰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록 가냘펐지만 아주 규칙적인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예쁜 입술에서는 숨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랄프는 기쁨에 넘쳐 쓰러졌습니다. 이제 안심해도 좋습니다. 랄프 124C41플러스는 드디어 과학의 힘으로 아리스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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