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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행성에서 온 소년- 패트리샤 라이트슨 지음
2021년 03월 20일 14시 38분  조회:718  추천:0  작성자: 강려
행성에서 온 소년
DOWN TO EARTH
 
패트리샤 라이트슨 PATRICIA WRIGHTSON 지음
 
패트리샤 라이트슨
1920년 오스트레일리아 태생. 뉴사우드웨일즈 주 아동문학상 수상. 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동문학가로 불리고 있다. "꼬부라진 뱀", "깃으로 꾸민 뱀", "나의 경마장", "꿀 바위" 등.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 원수․박 홍근/문학박사 최 인학
공학박사 양 옥룡/이학박사 김 희규
전교육감 김 성묵
 
<차 례>
 
버릇없는 소년·················· 5
유령의 집 탐험················· 10
수수께끼의 거주자················ 14
그림이 사라졌다················· 20
무서운 고양이 할멈··············· 26
나는 우주인··················· 32
지구인은 저능아다················ 39
고양이 할멈을 쫓아라 !············· 48
이상한 푸른 광선의 수수께끼··········· 61
기발한 장식··················· 73
지구 멸망의 폭력················ 79
생명의 불의 비밀················ 83
그 누가 보고 있다················ 91
위험한 쇼핑광·················· 95
드디어 해 버린 일················ 99
백주의 도주·················· 107
우주 스파이 마틴················ 122
마틴 그림을 그리다··············· 131
남아 있는 암호················· 136
저 소년을 잡아라!··············· 149
마술이냐, 최면술이냐············· 156
빛나는 침대 속에서··············· 166
터널 호텔··················· 171
위험한 일요일················· 188
네 사람의 괴인의 정체············· 194
 
작품 해설··················· 209
 
등장 인물
 
마틴 :혹성에서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에 온 초능력을 가진 우주 소년. 지구에 머무는 동안 유령의 집으로 불리는 빈집에 살며 갖가지의 흥미진진한 사건에 부닥친다.
조지 애덤스 :모험과 의협심이 강한 다정다감한 소년. 그의 이러한 성격은 우주소년 마틴에게도 작용하여 마틴과 우정은 깊어만 간다.
루크 디 :약간은 심술궂고 남 앞에 나서 뽐내기를 좋아하는 흥분 잘 하는 조지의 친구.
데이비드 게이트 :어느 날 조지와 거리에서 20센트를 걸고 눈싸움을 하는데, 여기에 마틴이 등장하여 조지와 함께 제일 먼저 우주인을 목격하게 된다.
캐시 브린불 :호기심 많은 13살의 소녀. 유령의 집에서 조지와 만나 친구가 된다.
고양이 할멈 :이상하리만큼 고양이에 대하여 극진한 애정을 가진 할멈.
에번스 :자칭 에스 디(S.D.) 통신의 조사원.
이상한 레이스 모자의 여자 :원예용품점에서 쇼핑하며 만난 마틴에게 돈을 주어 마틴은 경찰서에 붙들려가게 된다.
 
버릇없는 소년
 
"아무리 도시를 새롭게 한다는 이유가 있다고 해도 말야. 그렇게 오랜 역사가 새겨진 탑이 있는 건물까지 깨뜨려 버리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말야."
올해 13살인 조지 애덤스는 옆에 서 있는 친구 루크 디에게 불만을 쏟아 놓듯이 소리쳤다.
"너는 그렇게 말하지만, 예외를 인정해 주다가는 여기저기에 낡은 건물들이 벌레 먹은 이빨처럼 남아 있게 되어서, 도시의 근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거야."
루크 디는 같은 나이의 조지가 감상적이라는 듯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소리는 와르르 하고 무너져 쏟아지는 탑의 벽돌 소리에 묻혀서 조지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여기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첫째 가는 상업 도시, 인구 약 2백 7십 2만의 시드니다. 조지가 말한 대로 시드니에서는 지금 새로운 도시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뿐만 아니라, 시내 여러 곳에서 낡은 건물이 파괴되고 근대적인 그러나 살풍경한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파괴 작업은 크레인(기중기)과 파괴용 쇳덩어리를 사용하여 행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노무자들은 머리에서부터 뿌연 먼지를 눈처럼 뒤집어쓰고 있었다. 몸이 먼지에 뒤덮이니 피로도 더해지는 듯하여 해가 아직 높은데도 작업을 끝냈다. 그리고, 영국인의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이 뽐내고 있을 적의 관습에 따라, 맥주를 마시러 돌아가 버린 것이다.
크레인은 큰 철제 창틀을 떼어 낸 상태에서 중단되어 있었다. 창틀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창문은 20퍼센트나 더 넓어져서, 집안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루크 디는 혼자 기운이 나서,
"좋아! 내가 탐험을 좀 하고 와야지."
하고는, 철거 작업중인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벽돌더미를 넘어 가서는 벽에 붙어 날쌔게 기어올랐다.
이 광경을 본 어른들이 모두 "저런 ! 저런 ! " 하며 놀랐다. 루크는 그걸 눈치챘는지 보란 듯이 포즈를 취하며 조지를 돌아보았다.
(쳇! 또 시작했구나.)
조지는 속으로 혀를 찼다. 루크는 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인 데서는 별나게 흥분하며, 레인저 부대(특별 공격대 ․결사대) 같은 짓을 해 보이는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루크는 점점 기세가 올라, 계속 벽을 오르고 있다. 조지는 시시한 생각이 들어 휙 돌아서서 그곳을 떠나려 했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에 한 소년이 나타났다. 야위고 검은 피부에 앞니가 쑥 내민 것이 유달리 눈에 띈다. 친구의 하나인 데이비드 게이트였다.
데이비드는 조지의 얼굴을 보자,
"야, 조지, 내기는 아무래도 내가 이긴 거지? 자, 20센트 내 놔."
하며, 때묻은 손을 내밀었다.
"내기라니, 무슨 내기야?"
"얼빠진 소리 마. 왜 3일 전에 여기서 내기하지 않았어?"
"......."
"그때 넌 분명히 말했어. 크레인을 쓰면 3일 동안에 바로 오늘까지 건물도 탑도 깨끗이 철거시키고 땅바닥이 평평하게 정리된다고 했지? 그 때 난 말했어. 반도 파괴하기 어려울 거라고. 그래 우린 20센트 걸고 내기를 하지 않았느냐 말이야. 저것 봐 건물은 저렇게 남아 있지. 그래서 루크 디가 언제나처럼 저 건물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단 말야."
데이비드는 루크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포오지는 쳇! 하고 혀를 차고는 주머니에서 20센트 짜리 동전 2개를 꺼내어 그 중 하나를 데이비드에게 주면서 말했다.
"데이비드, 1개 더 갖고 싶지?"
"그야 싫을 리 있나?"
"그럼 한 번 더 내기를 하자. 이번에는 철거 날짜 같은 것 말고 눈싸움으로 하자. 마주 노려보기 말이다. 먼저 웃는 쪽이 20센트 내는 거야."
"좋아, 해 보자.'
두 소년은 20센트를 위해, 온몸의 힘을 얼굴과 눈에 모아 가지고 상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먼저 내기를 걸어온 조지의 눈싸움은 대단한 실력이었다.
그렇다 해도 무슨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얼굴에서 핏기를 싹 없애 가지고는 창백한 데드 마스크(죽은 사람의 얼굴에서 본을 떠서 만든 가면) 같이 되어 눈을 부릅뜨기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편인 데이비드도 만만치는 않았다. 온통 얼굴이 주름투성이가 되어 조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1분, 2분, 눈싸움은 계속되었다.
3분쯤 됐을 때, 조지는 목덜미에 무언지 뜨거운 것이 닿는 걸 느꼈다.
그와 함께 찬 기운이 몸에 소름을 끼치게 했다.
'이건 데이비드가 아닌 또 다른 누가 우리들을 노려보고 있는 거야. 왜? 왜 그런 짓을 하지?'
조지는 오른손을 들어 타임을 요구했다. 데이비드가 화를 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데이비드도
"조지, 누군가가 우리를 노려보는 것 같지 않아?"
하고, 소리쳤다.
두 소년은 동시에 오른쪽을 돌아다보다가 앗! 하고 숨을 죽였다.
10미터 가량 떨어진 보도에 12, 3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서 있었다. 이 근방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조지와 데이비드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저놈이다. 저놈이 우리들 눈싸움을 방해했어. 건방진 녀석이다."
조지는 시비를 걸려고 그 소년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두세 걸음 나아가자, 그 소년은 방향을 바꾸어 돌아섰다. 그러더니 금새 가랑잎처럼 몸을 훌쩍 날려 바람에 날려 가는 것 같은 속력으로 바다 쪽을 향해 달아났다. 그건 꼭 경관에게 들킨 범인과 같은 거동이었다.
"뭐야, 그 자식, 별난 놈이군. 야, 조지, 이번 내기는 무승부다."
데이비드는 휘파람을 불며 가 버렸다.
 
 
유령의 집 탐험
 
조지는 웬일인지 그 버릇없는 소년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마침 저녁밥 때까지는 시간이 넉넉히 있었으므로, 그 버릇없는 소년이 달아난 바다 쪽을 향해 내리막길을 걸어갔다.
2, 3번 길모퉁이를 돌아서 길에서 5, 6미터나 낮은 곳에 백동백나무와 녹나무에 둘러싸인 큰 고옥(지은 지 오래 된 집)이 있었다. 터가 넓어 여기저기에 정원수들이 있고, 클로버의 연분홍색 꽃이 융단을 펴놓은 듯 가득 피어 있었다.
건물을 적어도 2백 년을 지난 것 같았다. 녹이 슨 철판 지붕이 저녁 햇볕에 둔하게 빛나고 있었다.
2층은 주택이지만 1층은 철문이 내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차고인 듯했다.
2충에는 널찍한 베란다가 있고 아래에서 층계를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유령이 사는 집인가 보다. 얼마 안 가서 철거되고 새로운 빌딩이 서게 되겠지."
조지는 혼자 중얼거리며 지나치려 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서양 협죽도(늘푸른 딸기나무)의 화분이 있는 베란다에 허연 주발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들개인지 희고 야윈 개가 베란다의 층계를 재빠르게 뛰어올라가더니 주발에 머리를 처박고 무언지 맛있게 먹고 있지 않는가.
"이상한데……. 그렇다면 저 유령의 집에 누군가가 살고 있으면서 저 들개를 기르는 모양이군."
조지는 더욱 주의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2층 베란다에 가까운 유리창이 약 30센티쯤 열려 있는 걸 알았다.
(틀림없이 누군가가 저 집에 살고 있어.)
호기심에 사로잡힌 조지는 유령의 집 탐험을 계획했다.
유령의 집의 집터는 높이 1미터 가량의 쇠그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곳곳에 부서진 데가 있어서 조지는 손쉽게 울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무성한 잡초를 헤치며 건물을 향해 들어가자, 아까 본 흰 개가 달려와서 조지의 냄새를 킁킁 맡았다.
"이 봐, 그러지 말고 안내를 해 줘."
조지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개는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2충 베란다를 오르는 층계를 앞서서 올라갔다.
조지도 뒤따라 계단을 오르려했지만 그 층계가 보기보다 훨씬 낡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건 위험한데……. 조심해서 올라가야지 까딱 잘못하면 무너지겠어. 역시 이 집은 오래 동안 비어 있던 게 틀림없군."
조지는 조심조심 층계를 올라 베란다에서 열려 있는 창문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매캐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루에는 잿빛먼지가 2센티나 수북히 쌓여 있어서 흰 개가 꼬리를 흔들 때마다 뿌옇게 먼지가 일었다.
조심조심 방안에 들어간 조지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층계를 찾아 사방을 살폈다.
그러나 어떻게 된 건물인지 층계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마루 한 구석에 네모난 뚜껑 같은 것이 있어 아래층 방을 내려다 볼 수가 있었다.
채광(햇볕을 받아들임)을 위한 창이 있기는 했지만, 아래층은 위층에 비해 훨씬 어두웠다. 바닥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데 곳곳에 웅덩이처럼 파인 데가 보였다.
"하하, 알겠다. 저건 욕실이었어. 어떤 놈이 들어와서 타일을 몽땅 벗겨다가 팔아먹은 거야."
조지는 아래층 한 귀퉁이에 도어가 있는 걸 발견했다.
조지는 조심스레 쇠 계단을 내려가서 도어를 열고 보잘 것 없는 1층으로 들어갔다.
셔터가 내려져 있는 곳은 역시 차고였다. 기름이 들었던 엠(M)표 석유 깡통과 낡은 스토브, 이미 풍화해서 못 쓰게 된 타이어가 3개 쌓여 있었다.
"적어도 한 3년은 비워 둔 모양이야."
조지는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퍼뜩, 차고 바닥에 식료품 전문의 슈퍼마켓의 포장지가 버려져 있는걸 발견했다.
"슈퍼마켓의 포장지가 있는 걸 보면, 필경 누가 여기 살면서 개까지 기르고 있는 게 틀림없는데……."
조지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른일까? 아니면 혹시라도 자활(자기 능력으로 독립하여 살아감)생활을 즐기는 아이들일까?"
조지는 수수께끼의 거주자의 정체를 밝히려고 마음을 크게 먹고 차고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5, 6장의 그림이 버려져 있었다.
조지는 그 그림들이 너무나 엉터리인 것을 보고 놀랐다.
노랑, 파랑, 빨강, 초록들의 원색을 써서 기묘한 동물과 나비를 그린 것인데, 어느 것이나 데생이 되어 있지 않았다.
'유치원 애들이라도 이보다는 잘 그릴 거야. 아니 어쩌면 머리가 돈 사람이 그린 건지도 몰라. 하지만 이런 것이 천재의 걸작인지도 모를 일이지. 아무튼 이건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그림일 텐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조지는 왠지 무서움을 느껴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그림을 버리려고 했을 때, 갑자기 뒤쪽에서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덮어씌우듯 들려 왔다.
 
 
수수께끼의 거주자
 
"이거 봐요.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조지가 놀라 획 돌아보니, 도어에서 쏘아 들어온 광선을 옆얼굴에 받으며, 12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서 있었다.
갸름한 얼굴로 머리카락은 붉고 곱슬곱슬했다. 제 어머니가 입던 옷인 듯 핑크 색 공단의 블라우스와 연보라색의 장미꽃 모양의 짧은 스커트를 깜찍하게 차려 입고 있었다.
소녀는 조지를 갈색 눈으로 나무라듯 노려보면서 말했다.
"왜, 무엇 하러 여기서 머뭇거리고 있는 거죠?“
조지는 소녀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얼 하거나 화낼 것 없지 않아?"
소녀는 곱슬머리를 힘있게 저으며 말했다.
“난 당신을 벌써 열흘동안이나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에요."
조지는 웃으며,
"열흘이나? 우리 집은 여기서 2킬로나 떨어져 있어. 옳아, 알겠어. 지붕 위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나를 지켜봤단 말이지."
조지의 빈정거림은 소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놀리지 말아요. 우리 집은 저기란 말야."
소녀는 한 구역 저편에 있는 붉은 이층집을 가리키고는 자신 만만한 어조로 소리쳤다.
"저기 커튼이 쳐져 있는 방이 우리 방이야. 난 매일 저기서 이곳을 감시하고 있었어. 넌 하루 종일 이 집을 돌아다니지 않았어?"
조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소녀도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네가 아니면 도대체 누구였단 말이니?"
"아무튼 나는 오늘,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여기 들어와 봤어. 네가 감시하고 있던 사람은 딴 사람이란 말야."
"그래?"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멋쩍은 듯이 조지가 손에 들고 있는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어머, 이상한 그림이야."
"이건 어린애가 그린 그림일 거야. 차고 구석에 버려져 있었어."
소녀가 그 그림을 받아들더니,
"어린애가 그렸다는 증거가 어디 있어? 너 미술 점수는 C겠지. 만일 A라면 이 그림을 그리는데 대단한 솜씨가 있었다는 걸 단박 알아봤을 거야."
하고, 조지를 여지없이 몰아붙인다. 그러는데도 조지는 웬일인지 화가 나지 않았다. 그 소녀에게 호감이 가는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조지는 다시 한 번 그림을 들여다보는데 소녀가 또 물었다.
"너. 정말 여기 한 번도 온 일이 없었니? 맹세한다고 말할 수 있어?"
이 말에는 조지도 울컥해서,
"맹세고 뭐고 그런 소리할 필요도 없어. 온 일이 없으니까 없다고 한 거야. 네가 그렇게도 끈질긴 걸 보니 아마 꿈을 꾸기라도 한 모양이구나."
"꿈을 꾸었다고? 실례의 소리를 하네."
붉은 곱슬머리 소녀는 여자답지 않게 힘 센 손으로 조지의 팔을 잡더니,
"이리 와봐, 내가 증거를 보여 줄게."
하며, 앞서서 밖으로 나갔다.
아까 본 흰 개가 어디서 불쑥 나타나 뒤따라왔다.
건물 뒤쪽에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소녀는 뜰 한 구석에 반이나 썩은 채 서 있는 목조 오두막으로 조지를 데리고 가서는, 그 안에서 커다란 통조림통을 꺼냈다
"이거 봐, 아직 상하지 않은 고기가 반이나 남아 있잖아?"
조지도 들여다보고는,
"맞아, 이건 베란다에 놓여 있는 그릇에 남아 있던 고기와 꼭 같은 거다. 말하자면, 여기서 살고 있는 수수께끼의 사람은, 이 정어리 고기로 흰 개를 기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돼."
하고, 궁금한 걸 알아냈다는 듯 말했다.
소녀도 그제야 조지가 그 수수께끼의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 흰둥이 들개를 10일 전부터 여기 살고 있는 사람 엑스(X)가 기르고 있는 거로구나. 개가 말을 할 줄 안다면 가르쳐 주련만……."
소녀는 허리를 굽혀 흰둥이에게 얘기라도 할 듯이 말했다.
그러자 흰둥이는 휙 돌아서서 차고 있는 데로 향해 뛰어갔다. 차고에는 튼튼한 철문의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흰둥이가 무섭게 짖어대며 셔터에 몸을 마구 부딪쳐댔다. 그러자 안에서 야단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니까 흰둥이는 잠잠해졌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여자아이가 갑자기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나, 캐시 브린블이라고 해. 13살이야."
조지도 그 인사에 끌려들어,
"난 조지 애덤스, 너와 동갑이다."
"조지, 너 저금 무슨 소리 나는 것 들었지?"
"들었다."
"쥐나 고양이나 개소리는 아니었지?"
"그래, 물론 내 목소리도 아니었고……."
"이제 네가 여기를 돌아다니지 않았다는 건 확실해졌어."
"고맙다."
캐시 브린블은 장난기 있는 눈을 반짝 빛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 조금 의심스러워."
"뭐, 무엇이?"
"그건 네가 개척자들 자손다운 용기의 주인공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야. 자, 어떡할 테야."
조지는 조금은 두려웠지만 곧 허세를 부리며 대답했다.
"캐시,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 혼자 이 차고 속을 탐험해 볼께."
그리고는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자세를 갖추면서 차고 쪽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뜻밖에 캐시도 뒤따라 왔다.
두 아이는 어두컴컴한 차고에서 천재적인 그림이 내 버려져 있던 구석 쪽까지 샅샅이 조사해 보았으나, 사람은커녕 쥐새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무슨 소리가 났는데……."
조지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벽 쪽에서 덜커덕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놀란 캐시가 조지에게 달려와서,
"조지, 그 소리는 말야, 그 소리는 저기서 났어."
하며, 구속에 놓여 있는, 1세기 전의 쇠난로를 손가락질했다.
"저 난로 속에 누가 숨어 있는 거야.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거야."
조지는 난로를 돌아다보고는 큰 소리로 웃어댔다.
"캐시, 이번에야말로 꿈을 꾸고 있구나. 저 난로는 주둥이가 작아서 강아지도 들어갈 수 없어. 무슨 백설 공주 얘기에 나오는 난쟁이란 말이야?"
그러면서도 조지는 속으로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눈의 착각이었는지는 몰라도 조지는 난로 안에서 조그만 석탄이 파랗게 타다가 확 꺼지는 걸 확실히 보았던 것이다.
조금 전에 차고 안쪽에는 분명히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출입구는 지금 조지들이 들어온 한 군데 밖에 없다. 이를테면 밀실과 같은 곳이다. 수상한 자는 이 밀실 속에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림이 사라졌다
 
조지는 캐시를 따라 유령의 집을 나왔다. 사방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안 되겠다. 벌써 6시인 걸. 빨리 가지 않으면 저녁 식사시간에 늦겠다.'
조지는 화난 때의 어머니 얼굴을 생각했다. 그래서 캐시와 다음 토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는 급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 아주 다 부셔 놓은 집터가 있었다. 수복이 쌓여 있는 잡동사니 위에 하얀 것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타일의 한 조각이었다.
초록색의 나뭇잎 무늬가 아주 선명했다. 조지는 그걸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돌아온 조지에게 어머니는, 어째서 10분이나 늦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조지는 탑이 있는 옛 건물을 철거하는 데서 2시간 이상이나 견학을 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현장 근처에서 주운 것이라고 하면서 가지고 온 타일 조각을 내보였다. 어머니는 손에 들고 보다가,
"내력이 있을 것 같은 거로구나."
하고, 싱긋이 웃고는 그걸 맨틀피스(벽난로의 장식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덕택으로 조지는 저녁밥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 주 금요일, 캐시와 약속한 전날, 신문 지국에 소년 신문 대금을 주러 간 조지는 역시 신문 대금을 내러 온 데이비드를 만났다.
데이비드는 여자 친구인 엘리자베스 브라운을 데리고 와 있었다.
"여어, 조지 왔구나."
데이비드는 자랑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체크 무늬 자수가 붙은 무명 드레스를 입고 윤이 나는 긴 밤색 머리칼을 하얀 댕기로 묶은 엘리자베스가 유난히 눈에 띄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데이비드는 좀체 안 하던 소리까지 한 것이다.
"이 봐, 조지. 차가운 소다수라도 한 잔 사 줄까?"
조지는 눈을 동그랗게 했지만 데이비드가 엘리자베스에게 좋게 보이려는 생각에서라 알아채고 순순히 응했다.
"그래? 어디서?"
"스코트 할아버지의 구석 다방은 어때?"
"응, 좋지."
스코트 할아버지의 구석 다방이라는 건, 그 이름대로 프로즈 거리 변두리의 길모퉁이에 있었다.
테이블은 단 3개뿐이고, 열 사람도 들어앉을 수 없는 작은 찻집이었다. 그렇지만 거기서 파는 소다수의 맛으로 말한다면 시드니에서 첫 손가락을 꼽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세 아이들은 삐꺽거리는 의자에 앉아서 주인 스코트 할아버지가 날라다 준 소다수에 스트로(빨대)를 넣었다.
목구멍이 탁 트이는 것 같았을 때, 도어를 열고 한 소녀가 들어와서 소리쳤다.
"할아버지, 아이스크림 있어요?"
그 소녀의 얼굴을 본 조지는 '아아'하고 짧게 소리쳤다. 며칠 전의 빨간 곱슬머리의 캐시 브린블이었던 것이다.
캐시도 눈이 둥그래져서 조지 곁으로 다가와서는, 데이비드와 엘리자베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이 말했다.
"유령의 집 사건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니?"
조지는 데이비드 일행의 눈치를 보면서도,
"무슨 사건 해결에 관계 있는 실마리라도 잡았니7"
하고, 물었다.
"실마리라고 할 수 있을지 그건 모르지만, 어제 가보니까 차고 구석에 버려져 있던 그림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어 "
"그래? 그러니까 그 그림이 엉터리인 걸 알고 치워 버린 건가 봐. 아무튼 쥐들이 한 짓이 아닌 것만은 사실인 것 같구나."
조지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모습을 데이비드가 놓칠 리 없었다.
"조지, 도대체 어떻게 봤니? 유령의 집이니 이상한 그림이니 하는 것 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겠니?"
데이비드는 조지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조지는 요즘 생긴 일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해 주었다.
듣고 난 데이비드는,
"그거 재미있구나. 드릴과 서스펜스에 가득 찬 얘기 같은데. 그렇지만 아까운 짓을 했구나. 나 같으면 그 그림을 1장이라도 가지고 있었을 텐데…."
그러자 캐시가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네가 아니라도 그만한 지혜는 누구나 가지고 있단 말이야."
"뭐? 그럼 지금 그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 어디 좀 보여 줘."
"너는 참 주의력이 없구나. 내 옷에는 그림은커녕 그림 염서 1장 넣을 포켓도 없단 말야. 그림은 그 유령의 집이 있는 곳에 숨겨 두었어. 보고 싶거든 날 따라와. 내가 안내해 줄 테니까……."
조지는 데이비드와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체면도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두 아이는 눈을 빛내면서 같이 따라가게 해 달라고 졸라댔다.
이렇게 해서 조지 일행은 전날의 그 유령의 집을 향해 바닷가 둑 위를 나란히 걸어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루크 디를 만났다.
"너희들 어디 가는 거야?"
하고, 루크 디가 입을 뾰족이 해 가지고 물었다. 조지는,
'또 귀찮은 녀석이 붙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니, 좀 볼일이 있어서……."
조지는 얼버무리고 가려는데, 루크 디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다 알고 있어. 잡초가 잔뜩 난 빈집에 가는 거지?"
"루크, 너도 그 유령의 집을 알고 있었어?"
"그 유명한 집을 내가 모를 줄 알았니? 난 벌써 1주일 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었어. 그 증거를 보여 줄까?"
루크는 휘이휘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한 마리의 흰 개가 총알같이 달려와 루크에게 좋아란 듯 덤빈다.
유령의 집에 있던 그 흰둥이였다.
"루크, 너 참 빠르구나. 어느 새 그 흰둥이를 길들였지?"
조지는 탄복을 하며 물었지만 루크는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 어제 차고 셔터 안쪽에서 흰둥이를 야단친 것이 어쩌면 이 루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는 다른 비밀 문으로 도망친 것이다.'
조지의 머릿속에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무서운 고양이 할멈
 
캐시는 나는 모른다는 듯이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지 않고 정면에 있는 다 부서져 가는 대문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전이나 다름없이 잡초가 우거져 있고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건물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세 소년과 두 소녀를 맞이했다. 조지가 캐시에게 물었다.
"그 그림은 어디 숨겨 뒀어? 차라리 너희 집으로 옮겨 버렸다면 좋았을 걸……."
"어머, 그럴 순 없지. 그걸 집으로 가져가면 나는 도둑이 되잖아? 이 집안에서 옮겨 놓는 건 정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캐시의 말에 데이비드와 엘리자베스는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따지기 잘 하는 루크는 심각한 얼굴을 하면서,
"그야 어느 편이든 간에 우리는 지금 가택 침입을 하고 있는 거다. 일기장에는 쓸 수 없겠는걸."
하여, 기분을 잡쳐 놓았다.
캐시는 화난 얼굴로 루크를 쏘아보았지만, 그러면서도 정원 한쪽 구석에 있는 다 무너져 가는 광으로 일동을 안내했다.
"이제 봐. 여기다 감춰 뒀거든."
캐시는 숯섬 속에서 요전번에 본 그림들을 꺼냈다. 그것은 몇 장이나 되던 것들 중에서 눈에 띄던 그림들이었다.
캐시가 소중히 먼지를 턴 듯, 그림의 색채는 전날 보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찬란했다.
커다란 나비가 푸른 하늘을 향해 금빛 날개를 펴고, 여태껏 그 누구도 보지 못하고 상상도 하지 못한 기묘한 동물 두 마리가 에메랄드 색의 들판에서 춤추는 듯 뛰고 있었다.
"이건 아주 별난 그림이다. 어느 미술관에도 없을 거야."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은 데이비드는 옆에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자신 만만한 얼굴로, 조지가 들어보지도 못한 외국 사람 이름을 서넛 들어가며 얘기를 했다.
엘리자베스는 알지도 못하면서 감동하는 체 데이비드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조지가 지지 않으려는 듯, 캐시에게 질문을 했다.
"달리 변한 일은 없었니?"
"있어 "
캐시는 광 한 구석에서 요전날 본 고기 통조림통을 들고 나왔다.
"모두들 봐 줘. 이렇게 정어리 고기가 가득 들어 있지?"
"흠, 새 깡통이군."
루크 디는 깡통 속을 들여다보다가 깡통에 붙어있는 회색 털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햇볕에 비춰 보고는 두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뭘 발견했니?"
하고, 엘리자베스가 묻자, 루크는 득의 만면하여,
"너희들은 이 집에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이 흰 개를 기르고 있다고 믿겠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인 모양이야."
"그래? 그럼 누가 기르고 있다는 거야. 설마 괴물이 기르는 건 아닐 테지?"
캐시가 놀려대는 소리를 하자, 루크는 바지를 추켜올리고 넓은 뜰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녀석이 무얼 하려는 걸까?"
데이비드가 조지에게 속삭였다.
루크는 휘파람을 불어 흰둥이를 불러서 잡동사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금새 검은빛과 회색의 고양이 두 마리가 잡동사니 무더기 저편에서 후다닥 뛰어나왔다. 흰둥이가 덤벼들어 한 마리 대 두 마리의 싸움이 벌어졌다. 루크는 본 체도 하지 않고 조지에게로 돌아와서 말했다.
"지금 본 대로 수수께끼의 인물은 여기서 저 고양이들을 기르고 있는 거다. 그것도 저 고양이들에게 깡통 채 먹게 해 주면서 말야."
"그러는 걸 봤어, 루크?"
"보지 않아도 그런 것쯤 알 수 있어. 깡통 안 쪽에 고양이털이 붙어 있었으니까 말야."
루크의 의기양양한 말에 여자아이들은 감동을 한 것 같았다.
"마치 '셜록 홈즈' 같구나. 이왕이면 그 수수께끼의 인물이 누구인가 그 정체도 밝혀 주었으면 좋겠어."
하고, 엘리자베스가 루크를 치켜올렸다.
"아, 좋아."
루크는 점점 더 우쭐대며,
"수수께끼의 인물은 고양이 할멈이야."
하고, 말했다.
"뭐, 고양이 할멈?"
여자아이들은 무섭다는 듯이 움츠렸다.
고양이 할멈이란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전설에 나오는 마녀를 말하는 것이다. 몇 백 마리나 되는 도둑고양이를 길들여 길러서 그 고양이들을 가지고 온갖 장난을 하여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맨 나중에 가서는 자기 자신의 입이 귀까지 찢어진 둔갑 고양이가 되어 버렸다는, 어린이들이 무서워하는 얘기이다.
엘리자베스도 캐시도 그런 마녀가 살아 있다거나 하는 일은 이 우주 시대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고양이와 싸움을 끝낸 흰둥이가 돌아왔다.
루크는 휘파람을 불어 개를 불렀다. 그러나 흰둥이는 기분이 나빠졌는지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화를 잘 내는 루크는 금새 뾰로통해 가지고 데이비드와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기세 좋게 걸어서 문을 나가 버렸다.
뒤에는 캐시와 조지가 남아 있었다. 루크 일행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흰둥이는 갑자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리고는 차고 쪽으로 가서 그 안에 적이 있기라도 한 듯이 자세를 취하며 꼬리를 뒤로 감추고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캐시가 와들와들 떨면서,
"저것 봐, 저 개 하는 짓을 봐. 고양이 할멈이 저 차고 셔터 뒤에 숨어 있는 거야."
하고, 말하였다.
흰둥이는 계속 으르렁거리면서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더니 몇 미터 떨어져 나와서 그냥 뒤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쳐 버렸다.
'역시 저 차고 안에는 정체 불명의 무엇이 숨어 있는 거다. 괴물은 아니더라도 어쩌면 탈옥수일지도 몰라. 경찰에 알려 주어야지.'
조지는 캐시를 감싸며 대문 쪽으로 달려나가려 했다.
그때 뒤에서,
"거기서 기다려 줘."
하는, 말투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획 돌아다보니 1층 출입문에서 한 소년이 나오고 있었다.
나이와 체격은 조지 또래로 보였고 키는 1, 2센티 작은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있어 가까이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태도도 어른스러웠다. 그는 천천히 조지에게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오는 소년을 바라보던 조지는 퍼뜩 생각이 나서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놈이다. 나하고 데이비드가 눈싸움을 할 때 옆에서 강한 눈길을 보내서 방해를 했기 때문에 내게 20센트 손해를 보게 한 그놈이야."
 
 
나는 우주인
 
잠시 동안 노려보는 상태가 어색하게 계속되었다. 조지는 강렬한 시선을 가진 소년이, 조지 일행의 불법 침입을 탓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소년은 입을 떼지 않는다. 그래서 선수를 치기로 했다.
"여기가 너의 집이냐?"
"아니, 아니야."
소년은 선명하게 머리를 저었다.
"그럼 너는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무의식중에 심문하는 말투가 되었다. 소년은 잠시 생각하더니,
"네가 듣고 싶은 건 지금 일이냐, 아니면 일상적인 일이냐?"
조지는 마음속으로 '이 녀석, 마치 루크처럼 이치만 따지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좀 부루퉁해 가지고 물었다.
"잔소리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 줘. 여기서, 이 자리에서 뭘 하고 있었는가 묻지 않니?"
"바로 조금 전에는."
소년은 화를 내지도 않고,
"너희들을 관찰하고 있었어. 그리고 고양이와 저 흰 개도……."
하고,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어? 다시 말하면 숨어서 보고 있었다는 거로 구나, 그런 짓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니?"
"자랑스럽게? 나는 그다지 자랑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소년은 상대하려 들지 않았다.
아까부터 조지와 이상한 소년의 주고받는 얘기를 듣고 있던 캐시 브린블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두 소년 사이에 끼어 들었다.
소년의 눈은 빛나고 붉은 곱슬머리는 흥분한 나머지 전기를 일으킨 것처럼 직직 소리를 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 봐. 넌 전부터 여기에 있었지. 그러고 밤에도 여기서 자고 그러는 거지?"
캐시의 질문에 소년은 당연한 일이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캐시는 자신 있게 조지를 돌아보며,
"어때, 내가 말한 대로지? 누군가가 이 집에 살고 있다고 했잖아."
"그렇구나! "
조지의 가슴에는 기분 좋은 우월감이 뜨거운 조수처럼 넘쳤다.
'루크 녀석, 이런 멋진 특종을 모르고 여기서 나가 버렸지. 재수 없는 놈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는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기운을 내어 또 물었다.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낡은 빈집에 혼자 살고 있는 거야?"
"그건 공해가 없고 조용하고 살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야."
"조용해서라고? 그럼 너희 집은 훨씬 소란하고 복잡한 동네인가 보구나."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림 산동네?"
"아니야, 훨씬 더 높은 데야."
"훨씬 더 높은 데?"
"그럼."
소년은 하늘을 손가락질하며 똑같은 어조로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집은 다른 행성에 있어, 물론 여기서는 보이지도 않지만."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그럼 너는 우주인이란 말이야?"
"그래."
조지는 픽 웃음을 터뜨렸으나 캐시는,
"농담은 그만 해."
하고, 새빨개진 얼굴로 화난 소리를 했다.
"난 네가 이 집에서 어정거리는 걸 10일 전부터 보고 있었단 말야. 그래도 나는 이 조지 애덤스밖에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있어 준거야. 그런데도 넌 그런 엉터리 소리를 해서 우리를 속이려는 거니? 정직하게 말 해. 뭘 하려고 이 집에 들어와 있었는지. 보물이라도 찾아보려는 거니? 아니면 집을 쫓겨 나오기라도 해서 그랬니?"
이상한 소년은 난처한 얼굴로 되풀이해 말했다.
"알아주지 못하겠니? 난 우주인이야. 우주선을 타고 이 지구에 온 사람이란 말이야……."
조지는 웃음을 참으며 ,
"너, 다음 번에는 비행접시로 왔다고 할 것 아니야?"
소년은 조지와 캐시에게서 놀림을 받고 있는 걸 알았는지, 성난 표정을 짓고는 획 돌아서서 어두컴컴한 차고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지는 캐시의 팔을 잡고 문 있는 데로 데리고 갔다. 캐시는 몸을 떨면서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을 무시하고 있지 뭐니. 도대체 그 애 정신이 돈 것 아냐."
조지는 위로해 주는 어조로,
"말하자면 그 애는 자존심이 강한 거야. 그러니까 그런 소리라도 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아마도 불쌍한 환경에서 자란 모양이다."
"제 자존심을 갖는 건 좋다고 해도, 우리 자존심은 어떡하라는 거지? 돼먹지 않게 우리를 바보 취급 한 거야."
조지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캐시, 나는 그 녀석 말고, 또 하나 다른 괴상한 인물이 뒤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면 저 애는 그 자의 앞잡이란 말야. 방금도 우리들의 사정을 살피러 왔던 거야."
“조지, 네 머리가 정말 비상하구나. 그래, 그러고 보니 또 한 사람 더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에이, 믿을 수 없는 목격자구만."
조지는 이렇게 말하고 잔걸음으로 차고 문 있는 데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은 여전히 컴컴했다. 그러나 잠시 후 어둠에 눈이 익어지자 안의 광경이 드러났다. 조지는 아무도 있는 건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여어, 우주인! 어디 있니?"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래 다시 큰 소리로 불렀다.
"여어, 화성인 마틴 군. 중요한 얘기가 있다. 숨어 있지 말고 이리 나와 줘."
그러자 그 묘한 억양(악센트)을 띤 소리의 대답이 들려 왔다.
"숨어 있는 게 아니야. 난 아까부터 너희 눈앞에 있는 거야."
"뭐, 눈앞에?"
"그럼. 차고 차문 셔터 바로 뒤를 보아."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조지와 캐시는 셔터를 뒤로하고 그 이상한 소년이 서 있는 걸 똑똑히 보았다. 조지는 섬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마틴 군, 아까는 실례했다. 하긴 네가 지구인이 상상하고 있는 우주인의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았던 거야. 말하자면 네가 너무나 우리들과 닮았기 때문이야. 내가 하는 말 알겠지?"
그러자 소년의 안색이 변하고, 아까 와는 아주 다른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설마 너희들은 지구인의 그 쩨쩨하고 열등한 눈으로 우리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겠지. 설마 거기까지 자만하고 있진 않겠지?"
"뭐라고?"
조지는 정말 화가 나서 반문했다.
"그럼 너는, 우주인의 쩨쩨하고 열등한 눈으로 우리들이 낱낱이 보인다는 말이야."
우주인은 한 10초 동안 망설이다가,
"아니야, 사실대로 말하면, 내게도 보이지 않아 "
하고, 실토를 했다.
그제야 조지도 솔직하게 말했다.
"무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들은 서로서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더구나 여기는 어두워서 말이야. 밝은 데로 나가지 않겠니?"
"좋아, 그렇게 하자."
 
 
지구인은 저능아다
 
조지와 우주 소년은 차고에서 볕이 밝은 뜰로 나왔다. 조지는 햇볕이 부시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우리는 피차 상대방의 본모습을 보고 있지 못했다는 너의 학설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해 주지 않겠니?"
"좋아, 설명을 하겠어."
우주 소년은 기품 있게 대답하고는,
"아무리 세세하게 설명을 해도 지구 소년의 머리로서는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되지만, 아무튼 답부터 먼저 말한다면, 너희들은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거야."
"어째서? 이렇게 보이는데도?"
"보이는 게 아니야. 너희들이 그렇게 착각을 하고 있는 거지.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허상을 보고 있는 거야."
"그럴까?"
"어디 내가 어떤 모습과 얼굴을 하고 있는지 말해 봐. 그래, 저기 있는 여자아이도……."
우주 소년은 캐시에게도 가까이 오려고 했다. 캐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조지는 우주 소년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글쎄, 나이는 12, 3살, 우리들과 같은 또래. 키는 150센티쯤 되겠지, 머리칼은 밤색이고……."
캐시도 옆에서 거들었다.
"입술은 새빨갛고, 약간 주근깨가 있어. 약간 건방져 보이고 다소 위엄이 있어."
그러자 끝까지 듣지도 않고 우주 소년은 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놀랐다. 나이는 맞았지만, 내 몸의 실제 모습과는 영 틀린 얘기들을 하고 있어."
"………."
"그래도, 이걸로 지구인의 머리와 그 상상력의 한계를 알겠다. 그만하면 안심해도 괜찮겠지."
"상상력과 네 참모습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야?"
"간단히 말하자면 너는 지금 내가 보인다고 믿고 있지만, 그건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 거야. 내 본모습은 알지 못하고 있어. 왜 그런가 하면, 그건 우리들 우주인이 너희들 지구인의 상상의 한계를 훨씬 넘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야."
"그런가? 내 마음대로 환상을 그려 가지고 그걸 너라고 믿고 있단 말이지?"
조지는 반쯤은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옆에서 캐시가 우주 소년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럼 상상력이 풍부한 네 눈에는 우리 두 사람의 참 모습이 보인다는 거야?"
"물론이지."
"그럼 자세히 묘사해 봐."
"할 수 있어. 한 마디로 말해서, 너의 두 사람은 우리 우주인과 똑같다."
"어럽쇼."
조지는 얼빠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머리에 손을 얹고,
"그럼 피부가 자줏빛이고 뿔이 2개 쑤욱 나 있니?"
"아니야, 그런 건 나 있지 않아. 저 아가씨는 귀엽게 생겼고, 너도 가까스로 귀여운 축에는 들겠지. 그렇지만 학교 성적은 중간쯤이겠군. 내 컴퓨터에는 아까 여기 있던 흰 개를 부르던 아이가 제일 지능지수가 높다고 나와 있었어."
조지는 뾰로통해 가지고 말했다.
"전연 맞지 않는걸. 루크보다 내 성적이 훨씬 위란 말야."
그러나 그 말소리는 별로 힘이 없었다. 우주 소년은 빙긋 웃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피차 실제 모습을 알기 못한다는 걸 알겠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는데 있어서는 별 지장이 없는 것 아니겠니?"
"그야 그렇지.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기만 한다면……."
"그건 가능할 것 같아. 나는 특수 능력으로 네 마음을 알 수 있어. 년 나에게 어떤 적의도 갖고 있지 않아."
"나도 지구인의 특수 능력으로써 네가 나쁜 아이가 아니란 걸 알았어."
그러자 잠자코 있어도 좋을 것을, 캐시가 참견을 했다.
"그렇지, 널 착실한 아이야. 머리가 좀 이상해졌을 뿐이지."
그러나 이 말에 우주 소년은 화내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희 쪽의 차원이 낮기 때문이야, 이 계집애야!"
"계집애라고 부르는 건 좀 삼가해 줘. 내게는 어엿이 캐시 브린불이라는 훌륭한 이름이 있으니까 말야."
"알았다. 그럴 앞으로는 캐시라고 부르겠어."
우주 소년은 순순히 응해 주었다. 기분이 좀 좋아진 캐시가 다시 물었다.
"넌 어째서 많은 도시 중에서 이 시드니를, 그리고 이 장소를 택했는지 그 까닭을 얘기해 봐."
"여기가 특히 맘에 들어서가 아니야. 단지 혼자서 마음 편히 잘 수 있는 곳을 찾고 있다가 우연히 이 빈집을 발견했기 때문이야. 시험삼아 하룻밤 자 보니까 마음에 들었지. 그래서 아주 계속 여기 있었던 거야."
"넌 여기서 어떻게 생활을 하니? 먹을 것은 어디서 가져오는지……. 저 통조림 깡통은……?"
"아아, 그건 고양이와 개가 먹는 거야. 나는 저런 것 일체 먹지 않아."
조지와 캐시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일시에 떠올랐다.
'어쩌면 이 소년은 산 고양이고기를 먹고 있는 거나 아닐까?'
그러자 소년은 두 아이의 마음속을 알아챘는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몹시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구나."
그러자 캐시가 물었다.
"이 집엔 너 외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니? 이를테면, 고양이를 닮은 여자라든가……."
"아, 네가 말하는 것은 가끔 여기 드나드는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고양이 할머니 말인가 보구나."
"그래, 그래."
캐시는 저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대고 소리쳤다.
"고양이 할머니라면 자주 보기도 했고 드나드는 소리도 들었어. 그렇지만 그쪽에서는 내가 여기 살고 있는 줄 아마 모를 거야."
"고양이 할멈은 어떻게 생긴 여자니? 어디 좀 말해 줘."
"내 눈에 비치는 고양이 할머니 모습과 너희들 눈에 비치는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을 거야. 차라리 너희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어때?"
조지는 또 하나 특종을 얻게 되는 기쁨에 가슴을 부풀리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해 줘. 대체 몇 시쯤 오면 볼 수 있니?"
"글쎄……. 오늘밤은 그 여자가 안 오는 날이야. 내일 밤 8시가 어떻겠니?"
"내일은 마침 토요일인데, 좋아!"
조지는 캐시에게 형편을 물었다. 캐시도 좋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조지가 우주 소년에게 질문했다.
"넌 언제까지 이 지구에 머물러 있을 예정이냐?"
"글쎄, 다음 초생달이 뜰 때까지나 있게 될 거야. 나로서는 처음 하는 우주 여행이라서 너무 오래 있으면 사고가 나기 쉬워."
"처음 하는 우주 여행이라면서도 꽤 즐기고 있는 모양인걸. 영어도 잘 하고……."
그러자 우주 소년은 불끈 화라도 난 듯이 말했다.
"난 영어 같은 건 한 마디도 모른단 말야.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내가 태어난 별나라의 말인걸."
"그래? 그렇다면 어떻게 내게 말이 통하니?"
"넌 참 모르는구나. 난 너와 캐시를 만났을 때, 텔레파시(마음과 마음으로 하는 말) 회선을 설치한 거야. 너도 알겠지만 사람이 말을 할 때는 그 말의 내용이 우선 뇌에서 만들어져 목구멍을 통해 음파로 되지 않니? 텔레파시 회선은 네가 하려는 말의 내용을 네가 소리로 내기도 전에 벌써 내 뇌에 전해준다. 그리고 나는 텔레파시 회선으로 대답을 하는 거란다. 내가 영어를 잘 지껄이고 있는 듯이 느낀 것은 네 뇌의 상상력의 장난이야."
"또 상상력이라……."
조지는 정말이지 화가 났다. 그러나 우주 소년은 히죽 웃고,
"그런데 상상력이 필요 이상으로 활동할 때도 있어. 아까 너희 둘은 같은 시간에 이런 생각을 했었지? '이 괴상한 녀석이 어쩌면 산 고양이고기를 먹고사는 거나 아닐까' 하고. 하하하, 나는 무엇이나 다 알고 있는 거야."
조지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이 아이는 머리가 돈 게 아니다. 정말 우주에서 온 것이다.'
조지는 캐시에게 돌아가자는 눈짓을 했다. 캐시도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너는 참 기발한 그림을 그리더구나. 너희 화성 사람들은 모두 그림을 좋아하니?"
하고, 물었다.
소년은 처음엔 무슨 얘기인지 알지 못해 하다가 곧 깨달은 듯,
"아, 그것 말이야? 그건 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굴러다니던 그립이야. 그 고양이 할멈의 작품이 아닐까?"
그림에 대한 얘기는 그걸로 끝내고, 조지는 캐시를 데리고 유령의 집을 나왔다.
우주 소년은 문 앞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는 가스 불이라도 끄는 걸 잊고 있다가 생각난 것처럼 부리나케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지와 캐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부두 쪽을 향해 걸어갔다.
바닷가 공원에 이르러 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쉬었다.
"이봐."
조지가 뭘 생각하면서 말했다.
"이 시드니의 평화를 교란하는 두 괴인물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건 우리 둘 뿐이야. 이대로 비밀을 갖고만 있어도 괜찮겠니?"
"아니, 조지, 넌 그 소년을 정말 우주에서 온 괴인이라고 믿고 있니? 너 참 이상하구나. 그 앤 머리가 좀 돈 아이에 지나지 않아."
"정말 그럴까?"
"그렇지. 지구인의 두뇌는 저급하다는 등, 텔레파시가 어떻다는 등, 엉터리 소리뿐인걸.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은 으레 남을 저급하다고 하는 거야."
"그래도 이치에 맞는 말이었어."
"그런 것이 우주인일 것 같아? 우주인이라면 레이저 광선총을 가지고 있기나,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아무튼 초능력을 우리한테 보여줬을 거란 말야"
"캐시, 그런 무기를 가지고 겁주는 건 저급한 우주인이다. 실력 있는 자는 뽐내지 않는다지 않아? 그런 것이 진짜 우주인이지."
"어쩜 넌 그 미친 아이한테 완전히 정복을 당했어. 그래 넌 내일 밤 8시에 고양이 할멈을 조사하러 갈 작정이니?"
"암, 가고 말고."
"맙소사!"
"그럼 너는 그 시간에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겠다는 거야?"
"지금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행중이야. 언니하고 둘뿐이니 외출은 자유로와. 같이 가 주어도 좋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그럼 잘 가."
캐시는 손을 흔들며 가 버렸다.
"에그, 정말은 같이 가고싶어 못 견뎌 하면서도…."
조지는 한숨을 쉬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 할멈을 쫓아라 !
 
조지는 빌로드가에 있는 5층 건물인 분양아파트 5층에 양친과 같이 살고 있다. 방이 일곱이고 주위가 조용한 주택지라 시드니에서는 중류 이상이라 할 가정이었다.
약속한 토요일, 조지는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밤 어떻게 해야 외출 허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우주 소년이니 유령의 집이니 하는 얘기를 꺼냈다가는 보내 주지 않을 것이 뻔한 일이다.
아니 더욱 곤란한 상태, 즉 아버지까지 '어디 나도 같이 가보자' 하고 나선다면 그건 야단이다.
그래서 조지는 우주 소년 이야기는 비밀로 해 두기로 작정했다.
조지는 아버지 쪽은 보지도 않고 어머니께 말했다.
"어머니, 나, 고양이 할멈 같아 보이는 여자를 쫓고 있는 중이에요."
"뭐? 그 전설에 나오는 고양이 할멈을……."
이런 얘기를 몹시 좋아하는 어머니는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래 조지는 자세히 그 얘기를 해 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의외로 허락해 주었다.
"좋아 가보고 오너라. 그래도 9시 반까지는 꼭 돌아와야 한다."
조지는 좀 뾰로통해 가지고,
"어머닌 이상해. 요전 날 마술쇼를 보러갈 때는 11시까지 허락해 주시지 않았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건 목적이 달랐지. 쇼 구경이라면 10시 반이면 정확히 끝이 난다는 걸 알지만, 고양이 할멈이 나타날지 어떨지는 미리 정확한 예정이 서 있지 않기 때문이야. 9시 반을 절대 엄수해야 돼!"
"알았어요, 아버지."
조지는 그 이상 얘기해도 시간 연장은 어려울 것 같아 부모님의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 어머니는 조지의 솔직함을 기쁘게 생각하여,
"얘, 이것, 고양이 할멈의 고양이들에게 선물로 주어라."
하시며, 1킬로의 쇠고기를 비닐 봉지에 넣어 주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조지는 비닐 봉지를 옆에 끼고 1분의 시간이라도 아끼려는 듯 계단을 빠르게 내려 밖으로 나왔다.
항구로 가는 평평하지 못한 길 여기저기에는 토요일 밤다운 번잡과, 주말의 여유를 느끼게 하는 분위기가 서리어 있었다.
바닷가 고가도로를 몇 백대나 되는 자동차들이 밝은 눈망울을 가진 곤충들처럼 윙윙 소리를 내며 주말의 놀이 장소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조지는 흘낏 시계를 보았다.
오후 7시 반. 그 이상한 소년과 약속한 8시까지는 꼭 30분이 남아 있다.
조지는 조금 이르다는 생각을 했지만 밤의 유령의 집을 잘 관찰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문을 들어서니 베란다가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그 기묘한 모습을 쑤욱 내밀고 있었다.
조지의 호기심은 회충 벌레처럼 아까부터 요동을 하고 있었다. 이재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이상한 소년과 고양이 할멈의 정체는 과연 밝혀질 것인가.
사방은 조용하여 풀잎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다만 풀벌레들이 찌륵찌륵 소리를 계속해 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거야 마치 무인도야. 그러면 그 소년은 로빈슨 크루소란 말인가."
이렇게 꿍얼거리고 있을 때, 건물 옆쪽 그늘진 곳으로부터 허연 것이 쑤욱 나타나서, 소리도 없이 가까이 다가왔다.
"고, 고양이 할멈 아냐?"
조지는 긴장하여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였다. 그러자 고양이 할멈이 말했다.
"조지, 기다리고 있었어. 역시 왔구나."
"이거 캐시 아냐. 사람 놀라게 하지 말아 줘."
조지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계속하여 말했다.
"대체 언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니?"
"어둡기 전부터야."
"왜 왔지? 어제는 기다리지 말라고 해 놓고서……."
"조지, 너도 좀 바보스럽구나. 특종을 찾고 싶어 할 때는 친구들을 떼어버리는 게 신문 기자의 정신인 걸 몰라?"
"네 말이 맞아. 그래 무슨 수확이라도 있었니?"
"그런데 실패야. 고양이 할멈도, 그 머리가 돈 아이도 나타나지 않는 걸. 어젯밤에 어디 딴 데로 이사해 갔는지도 모르겠어."
캐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때 조지의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웃고 있는 캐시의 등이 잠깐 동안 청백색으로 훤히 빛나 보였던 것이다.
"캐시, 네 뒤에 누가……."
하고, 일러주는데, 마치 캐시의 등에서 벗겨져 나온 것처럼 그 우주 소년이 나타났다.
"여어, 왔구나 난 아까부터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
캐시는 조지의 팔에 매달렸다. 그 손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여자가 떨고 있는 걸 보면 남자들은 도리어 용기가 나는 법이다. 조지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가서,
"이 봐, 남의 뒤에 숨어 있는 건 그다지 좋은 취미가 아니잖아?"
"숨어 있는 게 아니야. 캐시가 우연히도 내 앞에 와서 섰을 뿐이지."
"그러면 말이라도 걸어 줄 것이지……."
"그렇구나, 잘못했다."
우주 소년은 솔직하게 사과하고는 작은 소리로 조지에게 속삭였다.
"온다. 고양이 할멈이……."
조지와 캐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모습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기미도 없었다.
"너, 잘못 본 거 아니니?"
"아니야. 틀림없어. 앞으로 5분만 지나면 나타나. 지금 내 레이더가 잡은 거야."
"5분이나 먼저 알 수 있니?"
조지는 이 소년은 틀림없이 다른 천체로부터 온 거라 생각했다. 그래 존경하는 마음으로,
"전부터 물어 보고 싶어 한 일인데, 너의 본래 이름은 뭐라고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겠니?"
"우리들의 별에서는 컴퓨터로 정리하기 때문에 모든 우주인은 번호로 등록이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식 이름은 숫자야. 물론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지만."
"그럼 그 이름이 뭐냐?"
"으응."
하고, 우주 소년은 웬일인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조지는,
"뭐 굳이 듣지 않아도 좋아. 그 대신 우주 소년, 우주에서 온 아이라고만 해서는 어쩐지 친근감이 가지 않으니까 '마틴'이라고 하면 어떻겠니?"
"마틴, 극히 평범하지만, 그것도 좋아. 너희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
우주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 '쉬잇!'하며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고양이 할멈이 지금 대문을 들어섰다. 여기서 잘 관찰하기로 하자."
조지는 캐시의 손을 잡고, 차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문 뒤에 도마뱀처럼 착 달라붙었다.
조지들은 문에서 머리만 내밀어 밖을 살펴보기로 했다.
날씬하게 야윈 여자가 슈퍼마켓에 있는 두 바퀴의 쇼핑 카 같은 걸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고양이 할멈이었다. 그가 밀고 오는 쇼핑카는 기름이 떨어졌는지 굴대와 차바퀴에 끼익끼익 소리가 나고 있었다.
고양이 할멈은 조지들이 엿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차고 앞을 지나갔다.
초여름인데도 얼굴을 푸른 스카프로 푹 싸매고 있었다. 스카프는 헐렁헐렁해서 바닷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조지는 그의 몸집과 걸음걸이로 보아 고양이 할멈의 나이를 40세쯤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양이 할멈은 광 앞에서 쇼핑 카를 멈추고 비닐 봉지를 꺼내더니 속의 것을 깡통에 탁 털어 부었다.
캐시는 조지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속삭였다.
"정어리 고기야. 저건……."
고양이 할멈은 엿보고 있는 줄은 모르는 듯 '쯧쯧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러자 이웃 건물과 빈터, 풀숲 뒤에서 검정과 하양과 회색 등 삽색 얼룩이와 갖가지 고양이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앞발을 깡통에 집어넣고 서로 다투어 고양이 할멈이 주는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고양이 할멈은 다 먹고 난 고양이를 차례차례 안아 올렸다. 그리고 얼굴을 비벼대며, 무언지 얘기를 하였다. 그 광경을 본 조지는 왠지 김이 빠져버리는 젓 같았다.
"저 사람 마녀가 아니잖아. 고양이를 좋아하는 예사 사람인걸."
30분 가량 걸려서 먹이는 말짱히 치워졌다. 고양이할멈은 모여든 고양이들에게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들고는 다시 쇼핑 카를 밀며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조지들은 들켜선 안 된다 하고 목을 움츠렸다.
그러나 고양이 할멈은 딱 멈춰 섰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숨어 있는 문 쪽을 향해 목 쉰 듯한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얘들아, 우리 고양이를 해치면 안 돼. 알았지?"
고양이 할멈은 바퀴를 털털거리며 유유히 대문을 지나 거리로 나갔다.
"그 여자, 고양이 눈을 가졌어. 들어올 때부터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눈치 채고 있었던 거야. 역시 저건 마녀다."
조지는 캐시에게 이렇게 말했다. 캐시는 턱을 덜덜 떨면서도,
"조지, 만일 마녀라면 뒤쫓아가서 숨어사는 집을 확인해야 하지 않니?"
하고, 말했다.
"그래."
조지와 캐시는 고양이 할멈의 뒤를 쫓아 급히 달려갔다.
그러나 그 여자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조지는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노인에게,
"말씀 좀 묻겠습니다. 지금 여기로 쇼핑 카를 밀고 가는 부인을 못 보셨어요?"
하고, 물었다.
노인은 산동네 쪽을 가리켰다.
"그 여자는 저 길로 올라갔다. 빨리 가면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고맙습니다."
두 아이는 열심히 뛰었다. 가다 보니 노란 색 가로등 불빛에 고양이 할멈이 두른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면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 할멈은 빌로드 가에 이르자 걸음걸이를 늦추었다. 그리고 2백 미터쯤 가서는 옆으로 꺾인 골목길로 들어섰다.
조지와 캐시는 풀이 우거진 사잇길을 달려갔다.
써늘한 밤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구두로 밟는 풀이 스적거리는 우아한 추적이었다.
"참, 마틴은 어떻게 됐을까?"
조지는 어깨 너머로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마틴은 바로 조지의 뒤 1미터쯤 떨어진 곳에 바싹 붙어서 달려오고 있었다.
어쩌면 마틴은 거리 감각을 잃은 것 같았다. 지구인이라면 남의 등 뒤 1미터쯤에 붙어서 뛰어올 수 있을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마틴이 마치 고양이처럼 발자국 소리 하나 없이 따라오는 것이었다. 달려온다기보다 공중을 날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마틴은 고양이 할멈의 추적을 즐기고 있는 거야.'
조지가 이렇게 중얼거렸을 때, 고양이 할멈이 딱 멈춰 섰다.
오른쪽에는 돌담이 있고 왼쪽에는 1미터 간격으로 말뚝이 서 있고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 저편에 시드니 항만의 아름다운 밤 경치가 펼쳐져 있었다.
고양이 할멈은 오른쪽 돌담에 붙어 있는 작은 문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더니 착 돌렸다. 작은 문이 끼익 하고 열렸다.
고양이 할멈은 한번 뒤돌아보았다. 조지들은 들키지 않으려고 전신주 뒤에 숨었다. 고양이 할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쇼핑 카를 밀며 오른쪽 담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저, 저쪽이 고양이 할멈의 집이다."
조지 일행은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사실 마틴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작은 문 가까이까지 가서 저편의 사정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수십 마리의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캐시는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조지, 지금 그 박력 있는 소릴 들었니? 그건 고양이가 아니야. 타이거 카브나 아니면 살쾡이인지도 몰라."
그러자 마틴이 웃으며,
"지금 우는 소릴 내는 건 보통 고양이야. 수상한 사람들이 왔으니 주인님 조심해 주세요, 하고 고양이 할멈에게 알려 주는 거야."
"아, 마틴, 너는 고양이의 말도 알아듣니?"
마틴은 어둠 속에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대답했다.
"전에도 설명한 대로 텔레파시의 능력 때문에 우리들은 우주의 모든 생물의 말을 이해한단 말이야."
조지는 마틴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 고양이 할멈의 추적(뒤쫓아 봄) 같은 것쯤 바보 같은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사해야 할 것은 고양이 할멈에 대한 일이 아니지, 저 마틴의 비밀이다. 오냐! 내일은 나 혼자서 저 유령의 집에 뛰어들어가 볼 테다'
조지는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다.
시계를 보니 시계 바늘은 이미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약속한 귀가 시간까지는 앞으로 30분밖에 없다. 조지는 다음날 밤의 활약을 위해서라도 오늘밤은 기어이 시간을 지켜 신용을 얻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더 고양이 할멈에 대해 조사를 하고 싶어하는 캐시를 재촉하여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는 부랴부랴 뛰어 돌아왔다.
그렇게 했는데도 약속한 9시 반은 15분이나 지나 있었다.
아버지는 조지의 얼굴을 보자,
"오, 빨리 왔구나, 뭐 10시까지만 오면 되는 거였는데 ……."
아마 30분은 에누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고양이 할멈에 대한 얘기를 들으러 왔다.
조지는 간단히 설명하고 나서,
"다음 번에는 꼭 고양이 할멈의 정체를 밝혀 보이겠어요. 모처럼 주신 거지만 이건 줄 기회가 없었어요."
조지는 어머니가 선물로 주라고 한 고기를 내놓았다.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시는 어머니였다. 그러니 그 고기는 아마 근처에 있는 도둑고양이들에게라도 주실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고양이 할멈의 소질이 있어!'
조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침대에 들어갔다.
 
 
이상한 푸른 광선의 수수께끼
 
다음날, 일요일 오전 10시가 지나서, 조지는 혼자 유령의 집으로 갔다.
'오늘은 기어코 마틴의 비밀을 캐내고 말 테다. 아무리 초능력의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24시간 계속 긴장 상태를 계속하지는 못하겠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는 정체를 드러내고 있을 거야.'
조지는 처음 유령의 집에 왔을 때처럼 부서진 울타리를 통해 건물에 다가갔다. 주위를 살펴보고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베란다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갔다.
요전번의 그 문은 역시 한 30센티쯤 열려 있었다. 자신 만만한 마틴은 문단속 같은 건 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조지는 이층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헌 의자에도, 매트리스(침대용 요) 위에도 마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조지는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어두운 방들을 일일이 조사해 보았으나, 역시 허사였다.
"이상하다. 어디로 갔을까?"
돌아서려고 마음을 먹은 조지는 요전번에 본 옛날식 석탄 스토브에서 반딧불 같은 희푸른 불빛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요전에 캐시도 스토브에 푸른 불빛을 보았다고 했었는데……."
조지는 허리를 굽혀 스토브를 들여다보았다.
스토브 자체의 덩치는 컸지만 불을 때는 아궁이는 의외로 작아서 높이가 45, 6센티, 깊이가 30센티쯤이었다.
조지는 아궁이 문을 열고 속을 들여다보았다. 차갑고 섬뜩했다. 아마도 여러 날, 아니 녹이 슬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몇 년 동안 불을 피우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잘 못 보았나?"
조지는 손을 떼려다가 마치 뜨거운 불에 데기라도 한 듯이,
"앗!"
하고, 소리치며 손을 움츠렸다. 아궁이 안에서 다시금 그 희푸른 빛이 도깨비불처럼 아롱거린 것이다. 그러나 그 빛은 깜박할 사이에 형광등처럼 확 꺼져 버렸다. 이번만은 눈의 착각도 잘 못 본 것도 아니었다. 가까이서 확실히 본 것이다.
조지는 무서워져서 허둥지둥 문을 향해 도망을 쳤다.
이 때 뒤에서 틀림없는,
"아아아……."
하는, 하품하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밖으로 뛰어나온 조지는 그것이 마틴의 하품 소리이리라 생각했다.
조지는 꽥 돌아서서 쭈핏쭈핏 문간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마틴, 어디 있는 거야. 말 좀 해봐."
마틴은 안 쪽에서 눈을 비비며 나오고 있었다.
"마틴, 미안해 내가 네 낮잠을 깨웠구나."
"그랬어. 고양이처럼 발소리도 안 내고 살금살금 들어 와서 말야."
마틴은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
조지는 얼굴의 땀을 훔치며,
"대체 넌 어디서 자고 있었니? 내가 여기저기 찾아 다녔는데……."
"찾기도 하고 몸을 건드리기도 했어."
"뭐? 건드렸다고? 손으로 말이야, 발로 말이야?"
마틴이 대답을 하려 할 때, 뜰에서 소란스런 아이들 소리가 들려 왔다. 그 가운데 루크 디의 목소리도 섞여서 들려 왔다.
'좋지 않은 때에, 제일 좋지 않은 사람이 나타났군.'
조지는 혀를 찼다.
밖으로 나와 보니, 과연 루크 디가 데이비드 게이트와 같이,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곳의 고양이를 놀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캐시가 애써 말리고 있었다.
루크 디는 조지를 보자 히죽히죽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야, 조지구나, 어럽쇼. 이건 가짜 우주인 씨도 같이 있구만."
루크 디는 마틴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어보고는,
"과연 별나게 생겼다. 이러니까 조지나 캐시가 속아넘어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안 그래, 데이비드?"
"음!"
데이비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틴은 놀림을 당한다는 걸 알고 소년답게 화를 냈다.
"나는 가짜 우주인이 아니야. 먼 행성에서 우주선을 타고 이 지구에 온 거야. 우주 패스포트도 가지고 있어."
루크는 점점 짓궂어져서,
"이건 참 재미있는데. 나는 전부터 우주의 푸른 귀신을 보고 싶어했어. 어떠냐, 그 옷을 벗고 네 푸른 살을 보여 주지 않겠어?"
조지는 마틴의 이마에 점점 핏대가 서는 걸 보았다. 그래서 달려가서 그의 팔을 잡으며,
"마틴, 화 내지 마. 저 두 아이는 본심으로 그러는 게 아니야."
"본심이 아니라면 더구나 용서할 수 없어."
마틴은 조지를 밀치고 루크 디의 코앞에 바짝 다가갔다. 조지는 틀림없이 마틴이 루크를 때릴 줄 알았다.
그러나, 마틴은 잡동사니 더미에서 놀고 있는 여러 마리 고양이들을 손가락질하며 루크와 데이비드를 쏘아보고 소리쳤다.
"너희들의 머리는 저 고양이와 마찬가지야. 더구나 에티켓(예의)은 저 고양이보다도 못해."
그러고는 루크가 소리치기도 전에 재빨리 돌아서서 위엄 있는 걸음걸이로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루크와 데이비드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마틴이 사라져 버린 차고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루크의 까만 석탄 같은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쳐들며 루크는 데이비드에게 소리쳤다.
"저 사기꾼이 우리를 고양이보다 못하다고 해서 참을 수 없다. 결투를 하는 거다. 땅바닥에 메다 처박아 줘야 해."
"그렇다. 적어도 우리가 고양이보다 강하다는 걸 보여 주자."
캐시 브린블이 황급히 달려가서,
"그만 둬. 그 애는 머리가 이상해. 괜히 그러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거야."
하고 말렸다. 그러나 사내아이들이란 여자아이가 말리면 더욱 용감한 걸 보여 주고 싶어하는 것이다.
두 소년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놀랍게도 두 아이는 회중전등을 준비해 갖고 있었다.
"출입구는 여기 뿐이야. 그놈이 아무리 날쌔다 해도 이젠 독 안에 든 쥐다."
둘은 차고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캐시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괜찮을지 모르겠네."
"괜찮겠느냐고? 누구 말이야, 우주인? 아니면 지구인들?"
"양쪽 다 말야."
조지는 웃으며 말했다.
"마틴에 대해서라면 걱정할 것 없다. 그 애는 푸른 빛 투명 인간이니까 절대로 루크들에게는 발견되지 않아."
"아니 조지, 너까지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니니?"
캐시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듯 조지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조지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까 스토브 안에 파랗게 타고 있던 괴이한 광선을 생각했다.
'그것이 우주인 마틴의 정체다. 마틴의 생명의 불이다. 마틴은 루크들이 찾아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내가 찾을 때처럼 확 꺼져 버릴 것이다.'
10분쯤 지났다. 과연 루크와 데이비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차고에서 나왔다.
"아무리 뒤져도 없어. 어쩌면 이 건물에는 비밀 지하실이 있는지도 몰라. 그놈은 그 지하실에 숨은 거야."
루크가 말하자 데이비드도 옆에서,
"그러고 보니 차고 한 구석에 맨홀(땅구멍) 같은 것이 있었어. 그게 지하실로 내려가는 입구야. 곡괭이를 가져와서 열어 보자."
조지는 괴상한 광선에 대한 얘기를 일러줄까 생각도 했지만, 루크들이 부지깽이로 스토브 아궁이를 쑤시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싶어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마틴도 피로해 있을 거야, 여기를 한시 바삐 조용하게 해 주지 않으면……"
조지는 루크들과 같이 대문 밖으로 나왔다.
루크와 데이비드는 곡괭이를 찾으러 나섰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캐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조지, 루크는 곡괭이니 뭐니 했지만 정말 지하실을 찾을 셈일까?"
"아니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루크는 눈치 빠른 소년이야. 마틴이 지구인 이상의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란 걸 이미 알았을 거라고 생각해."
"꽤 확신을 하는구나. 무슨 새로운 증거라도 잡았니?"
"그럼."
조지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조지는 스토브 속에서 타고 있던 푸른 괴광선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캐시는 그 얘기를 듣자,
"그래 전에 나도 말하지 않았니? 그 때 그 스토브 안에 누가 있다고……."
"그랬었지."
조지는 대답하면서 열심히 생각해 보고 있었다.
'마틴은 전에, 우리들에게 '너희들이 지금 보고 있는 내 모습은 실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라고 했었다. 그 마틴의 실제 모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망원경을 가지고 볼까. 확대경을 가지고 볼까. 아니 그런 걸로는 안 되겠지.'
캐시는 조지의 태도를 보고,
"멍청한 머리, 아니 멍청한 상상력으로 무얼 생각하고 있니?"
하고 물었다.
조지는 화를 내지도 않고 캐시에게 의논을 했다.
캐시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잡동사니 더미 위에 버려져 있는 깨진 마네킹 인형을 바라보자 눈을 빛내고,
"야, 좋은 방법이 있어!"
하고, 소리쳤다.
"뭐야, 큰 소리를 지르면서……?"
"아주 신통한 방법이란 말야. 조지, 너 혹시 몸에 좀 끼이는 화려한 푸른색의 알로하 셔츠를 갖고 있니?"
"알로하는 아니지만, 아주 눈에 잘 띄는 초록색 셔츠는 하나 있어."
"그래? 그럼 그걸 마틴에게 선사해 줄 수 없겠니?"
"그럴 수야 있지만, 그 애도 셔츠를 입고 있지 않았어?"
"넌 참 둔하구나. 그럼 내가 자세히 설명을 해 줄게. 푸른 광선이 되는 정도라면 마틴은 정녕 푸른색을 좋아할 거야. 만일 네가 화려한 푸른색 셔츠를 선물로 주면, 지금 입고 있는 걸 버리고 즐겨 바꿔 입을 거란 말이야."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거냐?"
"또 설명을 하라는 거니? 네 몸에 좀 작은 옷이면 마틴에게도 꽉 끼게 될 거 아니니? 끼는 옷을 입게 되면 몸의 형태가 또렷이 나타난단 말이야."
"그래 그래. 옷을 입을 때의 움직임으로 손이 둘이고, 몸뚱이가 둥근가, 아니면 세모꼴인가, 야위었는가, 진짜 스타일을 알 수 있다는 거지. 이건 좋은 방법이다."
캐시는 다리가 부러진 인형을 집어들고는 그 스커트를 잡아당겼다. 아마도 고쳐 가지고 제 애완용으로 하려는 모양이었다.
캐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조지, 너 마틴이 어떤 구두를 신고 있었는지 생각나?"
"글쎄, 목걸이 구두라든가. 아냐 캔버스 슈즈다. 아니 그게 아니야. 그 애는 뛰어갈 때도 고양이처럼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어. 맨발이야."
캐시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우리들의 기억이란 것 정말 믿을 수 없는 거로구나. 나도 어쩐지 생각이 나지 않아. 혹시 네게 구두가 여분이 있거든 한 켤레 갖다 주렴."
"알았다. 그럼 점심 먹고 2시안에 돌아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조지는 집으로 달려와 옷장 안에서 노랑과 갈색 무늬가 있는 초록색 셔츠를 꺼냈다
그 셔츠는 지나치게 화려해서 루크들에게 흉을 잡힌 일도 있어, 가장 입기 싫어한 옷이었다.
들고 나오려니까 어머니가 문간에 서 있었다. 조지는 재빨리 그 셔츠를 제 옷 속에 숨겨 가지고, 현관에서 헌 운동화 한 켤레를 집어들었다.
눈치 빠른 어머니가,
"조지, 그 신발은 왜 집어드니?"
하고, 물었다.
조지는 아차 했다.
"사실은요, 제 동무 중에 발가락이 나오는 구두를 신고 있는 애가 있어요. 그 애한테 주고 싶어서요."
조지는 재빨리 우주 비행접시의 주인을 가난한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지, 그런 일은 좀 당당하게 하는 거야."
하고는, 부엌에 가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자, 이거 그 애하고 같이 먹어라."
어머니는 오렌지까지 넣어 주었다.
"네."
조지는 안심하고 땀을 닦았다. 조지의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와는 다른 데가 있는 것 같았다.
조지를 하루에 한 번은 꼭꼭 나무라지만,
"그런 짓은 하지 마라. 그런 애하고는 같이 놀지 마라……."
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어머니에 비하면 아버지는 대조적이었다.
"안 된다면 안 돼!"
하고, 야단을 치기만 하는 것이다.
조지는 어머니의 교육 방침이 훨씬 현대적인 것 같이 생각되었다.
 
 
기발한 장식
 
조지는 캐시와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유령의 집에 도착했다. 마틴은 베란다에 놓여 있는 낡은 의자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는 몹시 피로해 보였는데 지금은 딴 사람 같이 생기가 있어 보였다.
조지는 계단을 올라가서 말을 걸었다.
"마틴, 1시간쯤 낮잠이라도 잤니?"
"1시간? 천만의 말씀. 15분쯤 잤어. 우리 우주인들은 지구인과는 달라 체력 회복이 빠르단다."
마틴은 또 오만한 소리를 했다.
"그럼 남은 시간 동안 뭘 했어?"
"음, 이층 내 방을 장식했지. 보겠니?"
"그래."
마틴을 따라 방에 들어간 조지는 앗! 하고 놀랐다.
창의 커튼 레일에 전선줄이 여러 가닥 매어 있는데, 그 줄 끝에 사과, 바나나, 소시지 등이 매달려 공중에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틴은 자랑스러운 듯 뽐내며 말했다.
"어때, 나의 실내 장식 솜씨가……?"
"훌륭하다. 사과와 소시지를 사용한 것은 확실히 천재적이다."
조지는 모처럼 가져온 샌드위치를 방 가운데 매달기라도 하면 안 되겠다 싶어 가만히 의자 위에 놓고는 말했다.
"마틴, 네게 선물로 가져온 게 있는데 받아 주겠니?"
"아, 좋아, 받고 말고. 뭐니?"
조지는 그 화려한 푸른색 셔츠를 내놓았다. 마틴은 반가운 얼굴로 그걸 받아들고,
"멋진 빛깔이다. 감촉도 좋은데. 입어 볼까?"
"그럼, 입어 봐."
조지는 마틴이 제 앞에서 그걸 입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티켓을 아는 마틴은 "잠깐 실례" 하고는 옆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3분도 지나지 않아서 마틴은 조지의 그 푸른색 셔츠로 갈아입고 나왔다.
예상한 대로 허리 부분이 약간 느슨한 느낌이 있을 뿐, 어깨 너비나 목둘레가 모두 꼭 맞았다.
'네모꼴도 육모꼴도 아니잖아? 우리와 같은 체격이구나.'
조금 실망하여 조지가 속으로 중얼거리자 마틴이 또 가슴이 덜컹 하는 소리를 했다.
"조지, 기대에 어긋나게 해서 미안해, 두뇌와는 달리 우리들의 체격은 지구인과 별 차이가 없단다. 우리들의 관광국에서 발행하고 있는 우주 여행 안내의 지구 편에는, '갈아입을 셔츠는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 품질이 좀 낮은 것으로 견딜 수 있다면 현지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단다."
이 때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캐시 브린블이 들어왔다. 캐시는 눈을 동그랗게 하면서,
"어머! 마틴, 아주 잘 어울리는데……."
하고, 먼저 조지가 선사한 셔츠를 칭찬한 다음에 실내 장식을 바라보았다.
"마틴, 넌 정말 천재적이야. 하지만 저건 오래가지 못하니까 곧 먹어 버리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캐시는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소시지를 가리키며 충고를 했다. 그러자 마틴은,
"아, 그거라면 염려 없어. 보존액을 칠해 놓았으니까."
"보존액? 그거 효과가 확실해?"
"그야 우리별에서 만든 거니까 틀림없이. 그리고 또 나는 저걸 먹을 필요도 없어."
조지는 전부터 먹는 것에 대해서 물어 보고 싶던 참이라,
"넌 매일 무얼 먹고 있니? 설마 여행 중의 양식을 모두 너희별에서 가지고 오지는 않았겠지?"
하고, 물었다.
"이 지구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박테리아가 수없이 많기 때문에, 나는 여행 중에 먹을 도시락을 모두 준비해 가지고 온 거야."
"야아! 그건 놀라운 일인데, 몇 달 치의 음식을 가져왔다면 너희 비행접시 속은 음식으로 가득 찼겠구나."
"아니야. 농축(진하게 바짝 졸임)시켜 놓은 것이라 부피는 아주 작은 걸."
마틴은 조지와 캐시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가서 차고 스토브 속에 손을 넣어 조그만 흰 봉지를 꺼내어 보란 듯이 조지의 눈앞에 펴 보였다. 그 속에는 비스킷이 여남은 개 들어 있었다.
조지는 목을 빼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꼭 개 먹이 비스킷 같은데. 그래 이걸 하루에 몇 개나 먹니?"
"그야 하루 1개지."
"뭐라고? 단 1개라고? 가엾어라!"
"가엾긴 뭐가 가엾니? 영양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한 개로 충분하다."
옆에 있던 캐시도 끼여들며,
"그렇지만 마시는 건 충분히 마시겠지?"
하고, 말했다.
"아니야, 물은 한 방울도 먹지 않는다."
"어째서? 네 몸의 성분에는 수분이 없다는 말이야?"
"지구인의 몸에 있는 수분 비율은 70 몇 퍼센트라지만 우리들은 그 10분의 1 쯤이야. 게다가 출발 전에 소비할 만큼의 수분은 의사가 완전히 보급해 주었으니까."
"그래? 그럼 먹고 마시고 하는 즐거움이란 건 전혀 없겠구나."
가엾어하는 표정으로 조지가 말하자 마틴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먹는 일이 즐거움이라고? 그건 무슨 뜻이니?"
"뭐라고 말할까……. 식도락이라는 것 말이야."
"점점 더 모를 소리를 하는구나. 아무튼 우리는 식사나 마시는 일에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실험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편이 더 유익하지 않겠니?"
"그렇긴 하겠다."
조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약간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이제 알겠다."
"무얼?"
"네가 모처럼의 휴가를 이 유령의 집, 아니 철거직전의 집 속에서 빈둥빈둥하고 있는 까닭을 말야."
"…………."
"다시 말하면 너는 산책 같은 걸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산책, 정처 없이 이것저것을 보면서 돌아다니는 것 말이지? 그건 좋은 거야."
"그럼 왜 산책은 하지 않니?"
그러자 마틴은 비로소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나도 이 동네 곳곳을 탐험해 보고 싶었어. 하지만 그럴 만한 안내자가 없이는 어쩐지 불안해서야. 고양이 할멈을 뒤쫓을 때는 너희들과 같이 갔기 때문에 안심이 됐지만…."
조지는 기가 나서,
"그럼 우리가 안내인이 돼 줄 테니 같이 바닷가로 가보겠니?"
"아! 좋아, 좋아."
마틴은 정말 즐거운 듯했다.
조지는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우주 소년인 마틴도 우리들 지구 소년과 다르지 않구나. 아무리 뛰어난 과학의 힘을 가지고 있어도 모르는 곳에 혼자 가 있으면 불안한 게지.'
그리고 조지는 친근감을 느끼면서 말했다.
"마틴, 나 네게 주려고 구두도 가져왔는데 신겠니? 지구 위를 걸을 때는 지구 제품이 더 편할 것 같은데."
조지는 집에서 가져온 운동화를 내주었다.
마틴은 자기 신발과 견주어 보았다. 마틴의 구두는 베인지 가죽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천으로 되어 있고, 퍽 불편해 보였다. 마틴은 가볍게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말했다.
"이 구두, 벌써 3년이나 신었다."
"뭐, 3년이나 ! 그런데도 닳지 않았구나. 어째서 그러냐, 너희 별에서는 걸어다니지도 않니?"
"아니 걸어다니긴 해도……."
마틴은 두 켤레의 신발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오늘은 내 구두로 갈게. 이 다음에 빌려 줘."
"그럼, 그렇게 해."
조지도 억지로 권하지 않고 마틴과 캐시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지구 멸망의 폭력
 
역시 마틴의 걸음걸이는 우주인답게 별났다. 마치 무중력의 달세계를 걷고 있는 듯한 걸음걸이였다.
'저러니까 구두를 3년이나 신을 수 있겠구나.'
조지는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그 비밀을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문을 나와 공원을 향해 걷고 있을 때 어젯밤 조지들이 고양이 할멈의 행방을 물었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가고 있었다.
마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훨훨 그 노인에게 가까이 가서
"할아버지 어젯밤에는 고마왔어요."
하고, 인사를 하고는 노인을 부축해 주려고 팔을 붙들었다.
그러자 노인은 자동차에라도 부딪친 듯 깜짝 놀라며, 서둘러 말했다.
"얘야, 괜찮다. 아직은 혼자 걸을 수 있으니까 염려 마라."
"그래도……."
마틴은 '왜 사양을 하세요?' 하고 묻는 듯이 노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노인도 마틴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오오, 너는 저 폐가(버려 둔 집) 베란다에서 곧잘 낮잠을 자던 아이로구나. 거기가 네가 살던 집이냐?"
하고, 말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어쩐 일인지 마틴은 조지들과 얘기할 때와는 전혀 다른, 공손한 말씨로 대답했다.
"그럼 이 시드니 태생이 아닌 게로구나. 그러고 보니 알겠다. 요즘 도회지 아이들은 모두 이기주의라서 남이야 어떻든 돌보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 어디서 왔는고?"
"저는 머나먼 별에서 왔어요."
"뭐, 뭐라고? 나는 귀가 멀어서……. 다시 한 번 말해 봐라."
마틴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머나먼 별에서 이 지구에 시찰 여행을 온 거예요."
"그럼, 너는……."
노인의 얼굴빛이 변해 갔다. 이 때 옆에서,
"와하하하……."
하고,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소리의 주인은 언제 나타났는지 루크 디였다.
루크 디는 일부러 바지를 추켜올려 깔끔하게 몸단장을 하고서 마틴을 향해 첫말부터 난폭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 봐, 정신 이상자 놈아. 얼빠진 소리는 그만 해두지 못하겠어? 그 따위 거짓말이 통할 줄 알고 있나?"
여기 대해서 마틴은 불쾌한 얼굴로, 그러나 정중하게 대꾸했다.
"당신은 남을 믿을 줄 모르는 가엾은 분이시군요. 잘 알고 있지요."
루크는 놀림을 받았다고 느끼자, 노여움으로 얼굴이 시뻘개졌다.
"임마, 잘 들어! 이 거짓말쟁이 놈아, 도대체 넌 새로 온 주제에 이 동네의 우두머리인 나한테 경의도 표하지 않고 뭐냔 말야? 이 시드니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내 허가가 필요해.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지 말란 말야."
루크 디는 불량배 같은 익숙한 태도와 말씨로 마틴을 위협했다. 조지는 마틴에게 달려가서, 귀 가까이 속삭였다.
"마틴, 부탁이다. 제발 화내지 말아 줘."
이와 동시에 캐시는 루크 디에게 달려가서,
"루크, 이 분은 우리들 지구인에게는 손님인 거야. 실례의 말은 하지 말아 줘."
그러나 이런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루크를 차디찬 눈길로 노려보며, 마틴은 또렷이 말했다.
"나는 너 같은, 열등 문명이 낳은 불량품과 얘기하고 싶지 않아. 나는 여기 있는, 보다 훌륭한 지능을 가진 생물하고만 사귀기로 하고 있단 말이야."
마틴은 조지와 캐시를 손으로 가리켰다.
루크 디는 만일 마틴이 자기를 나쁘게만 말했어도 어쩌면 참을 수가 있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마틴이, 저에게 적수(경쟁 상대)인 조지를 치켜세우는 데에는 분함이 열 배나 더 커져 폭발하였다.
"이 새끼가 잘도 지껄여."
루크 디는 두세 발 다가가서 오른손을 들어 힘껏 마틴의 왼쪽 뺨을 쳤다.
"앗!"
조지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번뜩 스쳤다.
'크, 큰일났다. 마틴은 급히 저희 별로 날아가서 보고를 하겠지. 그러면 마틴의 별에 있는 주민들이 화가 나서 비행접시로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 아, 루크의 무지한 폭력이 지구를 멸망시키게 하는 것이다.'
 
 
생명의 불의 비밀
 
다음 순간, 마틴은 마치 슬로 비디오에 나온 한 권투 선수의 케이 오(KO) 장면처럼 천천히 넘어졌다.
뒤이어 기묘한 광경이 나타났다.
마틴의 몸이 온통 고무로 되어 있는 것 같이 1미터 이상이나 아래위로 두세 번 퉁겨 올랐다 내렸다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캐시의 발목을 두 손으로 붙잡고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어디를 다친 것일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지가 달려가서 일으키려고 하자, 마틴은 낮은 소리로,
"괜찮아, 가만 둬 줘."
했다.
1분쯤 지나자, 마틴은 거센 물결에 시달린 배를 탄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그 모양을 본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개구쟁이 녀석의 펀치가 너무 세었던가, 아니면 이 애의 중력 조절이 잘못됐던 모양인데……."
한편 가해자인 루크도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화석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 않고 서서,
"다들 보았지 않아? 난 정말 조금 건드렸을 뿐이야. 저렇게 바운드(뛰는 일)까지 하다니, 어떻게 된 셈일까?"
하며, 도움을 청하는 듯 조지와 캐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지는 마틴이 성낼까 두려웠다.
그런데 마틴은 의외로 조용한 말씨로,
"틀림없이 넌 루크란 이름이었지? 네가 만일 다시 한번 내게 그런 짓을 하겠다면 미리 예고를 하고 때려 줘."
하고, 루크를 쳐다보았다.
"…………."
"예고만 해 준다면 나는 중력 조정 장치를 조절해서 지금 같은 창피한 꼴은 안 보일 거다. 자, 다시 한 번 해 봐. 어디서든지 덤벼들어 봐."
마틴은 오른쪽 발을 반쯤 앞으로 내밀고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은 일류 권투 선수처럼 한 치의 빈틈도 없어, 땅에 뿌리가 박힌 것 같아 보였다.
루크 디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는지, 휙 뒤돌아 서서는 앞만 보고 달아나 버렸다.
마틴은 경멸의 웃음을 띠며 조지에게 말했다.
"저 애의 태도는 완전히 소수점 이하다. 지능지수는 너보다 좋지만 뇌 속에 결함이 있는 것 같다."
조지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게 지능지수 지능지수하고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 줘, 마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마틴이 솔직하게 사과를 하고, 또 루크의 머리에 결함이 있다는 결론을 내려 주었기 때문에, 조지는 기분이 나아져서 물었다.
"마틴, 넌 아까 몇 번이나 땅바닥에서 위로 퉁겨 올랐는데, 왜 그랬니?"
"아. 그건 우리별과 이 지구의 중력의 차이 때문이야. 지구의 중력은 우리별의 3분의 1이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뛰어오른다.
보통 때는 조정으로 견디지만 심한 충격을 받으면 그렇게 돼 버려."
"음, 그러니까 우리가 달이 갔을 때와 같은 현상이 일어 난 거로구나."
조지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다시 물었다.
"마틴, 너희 별나라는 우리 지구보다 훨씬 과학이 발달돼 있나보구나."
"물론이지."
"그렇다면 어째 너는 루크의 기습을 미리 알지 못했니? 다시 말하자면, 너희별도 외적의 공격에 대해서, 지금의 너처럼 항상 무방비 상태란 말이냐?"
"그야 물론 우리는 외적의 기습에 대해서 항상 경계 태세를 취하여, 우리들의 중력권 안에 돌입해 오기 전에 자동적으로 격퇴하는 장치를 갖춰 놓고 있는 거야. 그렇지만 그건 과학적 병기에 의한 공격에 대해서만 그러는 거란다. 그리고 지금처럼 나 자신도 야만이나 저능, 비열, 그리고 원시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전혀 무력해. 그런 면을 루크한테 당한 거지. 그 애는 그걸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설마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하고, 조지는 머리를 저었다.
그러자 캐시가 명랑한 목소리로,
"이 봐, 우리 바닷가에 가는 건 그만 두고 저기 저 언덕에 올라가 보는 게 어때?"
하며, 1킬로쯤 떨어진 곳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을 가리켰다.
그 언덕은 아래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보드라운 풀로 뒤덮인 여성적인 모습으로, '미술관 뒷산'이라 불리고 있었다. 조지가 동의를 하고 마틴에게 설명을 했다.
"마틴, 저 언덕에 올라가면, 시드니 항만의 전부가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단다."
"아, 그래?"
마틴은 좋아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30분 후에 세 아이들은 미술관 뒷산 꼭대기의 풀밭에 누워 있었다.
발 아래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빨강, 하양, 파랑의 색색의 돛을 단 요트가 물매미처럼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아, 여기는 공기가 참 맑구나."
마틴은 엎드리고 있던 몸을 뒤척여 반듯이 누우며 말했다. 조지도 캐시도 마틴을 따라 하늘을 보고 누웠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 풀 향기, 따스한 햇볕, 낮잠을 자기에는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곳이었다.
조지는 어느 새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지는 누군가가 몸을 흔드는 것 같아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바로 코앞에 캐시의 얼굴이 다가와 있었다.
캐시는 조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지, 마틴을 봐. 큰 소리 지르지 말고 봐"
"으응?"
조지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캐시의 충고도 잊고,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마틴은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의 몸은 커다란 형광등이기라도 한 듯, 훤하게 빛을 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 엷은 불빛은 느린 물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캐, 캐시,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을까?"
조지의 말소리가 떨렸다. 그러자 마틴이 번쩍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불빛은 확 꺼져 버렸다.
"조지 왜 그러니? 네 얼굴이 심상치 않은데. 아! 알겠다. 내 몸이 훤하게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지?"
"그랬어. 정말 놀랐어."
"놀랄 것 없어. 아까 너희들도 잤겠지?"
"응, 조금은……."
캐시가 대답했다.
"그 때 나는 우연히 눈을 떴었어. 그런데 캐시는 주황빛으로, 조지는 연분홍 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어."
"그럴 리가 있어? 난 여태까지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는 걸 들은 일이 없단 말야."
"그야 지구인끼리니까 그래."
"지구인끼리는 왜 불빛을 못 본단 말이니?"
"그건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알겠니?"
"반쯤은 알고 반쯤은 모르는 상태야. 그런데 왜 너는 깨어있을 때는 불빛이 안 나고 잘 때만 빛이 나는 거야?"
"간단하게 설명을 한다면 이런 거야. 나뿐 아니라, 우리 우주의 생물은 태어날 적에 조물주로부터 제각기 자기의 생명의 불을 받아 가지는 거야. 그건 사람에 따라서, 어떤 이는 초록색이기도 하고 빨간색 혹은 노란색이기도 해. 그렇지만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체면이라든가 허세라든가, 수치심이라든가 하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거야. 그래서 아까도 말한 대로 여러 가지 선입관이 방해를 해서 생명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거란다."
"그러고 보면 자고 있을 때일망정 우리가 생명의 불빛을 서로 보았다는 건, 우리 서로가 이상한 선입관이나, 허세나 체면을 앞세우지 않고 알몸으로 사귀고 있었다는 증거가 되겠구나."
"그래, 바로 그런 거야. 앞으로도 서로 믿고 지내기로 하자. 그래 우리 별과 너희들의 지구와의 친선에 도움이 되는 일일 테니까."
"마틴, 네 말은 마치 우주대사의 메시지 같구나."
"하하하, 그러냐."
마틴은 유쾌하게 웃더니, 곧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우주인이란 걸 밝히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 너희들, 미안하지만 나와 사귀고 있다는 걸 이 이상 남에게 말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알겠다."
"비록 너희 집안 사람에게도 말야. 정말 약속해 주겠니?"
"그래, 지구인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어."
조지와 캐시는 굳게 약속을 해 주었다. 그러나 약속을 한 때문에 두 아이는 다같이 괴로운 처지에 서게 된 것이다.
조지와 캐시는 마틴을 유령의 집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마틴은 손을 흔들어 보이고, 저녁볕에 빛나고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캐시는 저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조지에게 물었다.
"조지, 넌 마틴의 그 이치인지 이론인지 하는 걸 잘 알고 있니?"
"난 과학자가 아니라서 마틴이 말하는 것이 바른 건지 틀린 것인지 단언하지는 못해. 그렇지만 그 애가 말하는 것은 일종의 철학이고, 인생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건 사실이야. 깊이 생각해 보면,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래, 서로가 믿고 지내면 알몸뚱이가 보이고 생명의 불이 환하게 보인다고도 했었지. 조지, 네 생명의 불은 무슨 빛깔이라고 했더라?"
조지는 시간이 이미 6시 가까이된 걸 알자 안색이 달라졌다.
"캐시, 나도 마틴이 말한 네 생명의 불 빛깔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저녁 식탁 옆에서 얼굴을 시뻘겋게 하고 화내고 있을 것만은 틀림없구나. 그럼 잘 가."
조지는 멍하게 서 있는 캐시를 남겨 두고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 돌아왔다.
 
 
그 누가 보고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조지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다음 초승달까지는 며칠이나 남았어요?"
하고, 물어보았다.
"글쎄."
어머니는 달력을 뒤적여 조사해 보고 나서,
"두 주일 남았구나. 그런데 그건 왜 묻지?"
"그저……."
조지가 대답에 궁해 하자 어머니가 도리어 도와주었다.
"알겠다. 고양이 할멈과 관계 있는 일이겠지. 고양이 할멈은 초승달 때 잘 나오니까. 하지만 초승달을 보면서 우는 고양이는 사납다고 하니 제발 조심해라."
"예, 어머니."
조지는 안심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갔다.
월요일 조지는 학교에서 돌아와 쉬고 있다가 오후 3시가 지나 마틴을 찾아갔다.
마틴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은 미안했어."
인사가 끝나자, 마틴은 자랑거리인 실내 장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존액을 칠했는데도 이 꼴이란다."
과연 바나나는 시꺼멓게 되었고, 소시지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지구의 박테리아는 마틴의 별나라 약으로서도, 그 번식을 중지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다 버릴 수밖에 없겠구나, 마틴?"
"그래도 그렇게 하면 집안이 살풍경해지니까 말야."
마틴이 아까운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캐시가 들어왔다. 아마도 캐시는 저희 집 창에서 조지가 마틴을 찾아온 걸 바라다보았던 모양이었다. 지기를 싫어하는 말괄량이 같아 보이는 캐시도, 우주 소년인 마틴과 단 둘이 만나는 것은 절대로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캐시는 광주리에서 새 바나나를 꺼내더니 검어진 바나나를 철사에서 뽑아 내고 대신 매달았다.
마틴이 몹시 좋아하며,
"고마와 덕택에 방안이 환해진 것 같다."
고, 말했다.
'캐시라는 아이, 보기와는 달리 섬세한 신경을 가지고 있구나.'
조지도 새로운 발견을 한 듯한 기분이었다.
마틴은 캐시가 뽑아 놓은 검은 바나나와 소시지의 배때기를 손가락으로 자꾸 누르고 있더니,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창 밖을 노려보았다.
"마틴 뭘 보는 거야?"
조지도 밖을 내다봤다. 3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빌딩 베란다에 서너 사람의 여자아이들이 이쪽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틴, 저 애들, 네 동무들이냐?"
캐시가 물었다.
"아니야, 한 번도 얘기해 본 일이 없는 아이들인데 곧잘 저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나도 가끔 바라봐 주지."
마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베란다로 나가서 가볍게 훌쩍훌쩍 2미터 가량 높이로 뜀질을 해 보였다. 꼭 몸 전체가 용수철로 되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여자아이들이 와르르 박수를 쳤다.
마틴은 박수 소리에 신이 나서 이번에는 몸을 비틀어 뒤쪽으로 공중제비를 하는 등 초인적인 곡예까지 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아이들을 향해 과장된 몸짓으로 절을 하기까지 하였다.
조지는 득의 만면해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온 마틴에게 말했다.
"마틴 정말 멋진 곡예였어. 루크도 제법 했지만 네가 훨씬 멋진 곡예였어."
"그래?"
"그렇지만 조금은 경솔한 짓 같기도 해."
"어째서?"
"지금 네 곡예를 보고 있는 사람은 어린애들 뿐이 아니야. 저 빌딩에 사는 어른들도 보았단 말이야. 그 중에는 신문 기자랑 방송 기자들도 있었는지 몰라. 만일 그들이 있었다면 네 얘기는 이 시드니 시민들이 금방 다 알게 될 거야."
"그래? 정말 네 말대로 그럴 것 같구나."
마틴은 솔직하게 자기의 경솔했음을 시인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이재부터는 너한테 허락을 받지 않고는 절대로 모험 같은 건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
 
 
위험한 쇼핑광
 
화요일서부터 금요일까지 마틴은 집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이 되자, 적이 갑갑했던지 조지에게 부탁해 왔다.
"조지, 오늘은 시장 구경이라도 시켜 주지 않겠니? 나 앞으로 열흘도 못 가서, 이 지구와 이별을 해야 하게 되니까……."
조지는 캐시에게 의논을 했다. 캐시는 잠깐 생각하다가,
"난 오늘 언니한테서 여러 가지 시장을 봐 오란 부탁을 받았단 말야. 마틴도 같이 가자고 하면 어떨까?"
하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은 같이 상점이 많은 킹스 크로스 가로 나갔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거리는 쇼핑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캐시는 리스트를 들여다보면서 빵과 과일 같은 것을 사서 가방에 넣었다.
마틴은 캐시가 값을 치르고 물건을 받을 때마다 가게 주인이 그걸 저한테 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같이 간 개처럼 눈알을 빛내면서 물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더욱이 마틴의 흥미를 끈 것은 상품과의 교환으로 캐시가 점원에게 주는 지폐와 동전이었다.
"너희들은 어째서 물건을 살 때마다 네모난 종이와 동그란 쇠붙이를 주는 거냐?"
그는 상점 거리 한가운데서 큰 소리로 이런 질문을 했다.
조지는 전혀 뜻하지 않은 질문에 당장은 무슨 말로 설명을 해 주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조금 후에는,
"글쎄,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들은 자기가 한 일에 따라서 그 네모난 종이와 동전을 받게 되는 거란다. 일을 잘 하는 사람은 많이 받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맛난 음식을 실컷 먹게 되는 거야."
"그렇겠다. 그건 게으름뱅이를 없애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일 뿐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겠구나. 내가 우리별에 돌아가면 맨 먼저 이 얘기부터 해 줄 테다."
마틴은 감탄을 하면서 지폐와 동그란 동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네모난 종이와 동그란 쇠붙이는 어느 쪽이 더 강하니?"
"종이쪽이 10배나 20배쯤 더 강하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조지는 돈의 단위를 설명해 주었다. 마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나도 기회가 있기만 하면 종이돈을 듬뿍 갖기로 하겠다."
"그래 좋아, 그렇게 해 봐."
조지는 무심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런 얘기로 해서 얼마 후에 큰 사건이 생길 줄은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캐시의 시장보기는 30분쯤으로 대략 끝이 났는데, 제법 부피가 컸다.
우주 소년 마틴은 상점의 진열장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특히 마틴이 흥미를 느낀 것은 도자기와 미술품들이었다. 하나를 보고 으음! 또 하나를 보고는 야아 ! 하며 감탄의 소리와 환성을 연발했다. 그러다가는,
"아, 나도 종이돈과 동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저것들을 모두 내 손에 넣을 수 있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조지는 캐시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캐시, 마틴은 아마도 쇼핑광이 됐나 봐. 이곳에 너무 오래 있다가는 엉뚱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빨리 돌아가는 게 좋겠다."
하고,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캐시도 즉시 찬성을 했지만, 길 저편 쪽에 원예용품점이 있는 걸 보고는,
"조지, 우리 아빠가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개장을 만드신다고 하셨어. 저기서 빨강 페인트를 좀 사가고 싶은데……."
하였다.
"좋아, 내가 들어다 줄께."
조지는 횡단보도를 건너기로 하고, 마틴을 찾았다. 마틴은 옆 골목길에 조금 들어가 있는 운동구점 앞에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진열장 안의 축구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틴, 이리 와."
하고, 조지가 소리를 치자, 마틴은 휙 돌아다보고는 부리나케 달려오다가 갑자기 체격이 좋은 젊은 선원(뱃사람)과 정면으로 딱 부딪쳐 버렸다.
다음 순간 루크 디와의 사건 때와 똑같은 광경이 일어났다.
마틴은 2미터 가량 훌쩍 뛰어오르고는 두 번 세 번, 크게 되튕겨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가로등 기둥을 붙들고 네 번째 퉁기기를 면했다.
"미안해, 미안해, 괜찮니?"
젊은 선원이 놀란 얼굴로 마틴에게 사과를 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잘못했던 거예요."
마틴도 그 선원에게 사과를 했다. 선원은 마틴이 다치지 않은 걸 확인하고 나서, 마치 에스에프(SF)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보고 난 뒤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어져 갔다.
'마틴의 몸은 풍선과 같다. 조금만 밀어도 몇 미터나 날아간다. 만일 자동차에라도 부딪친다면 이거야말로 큰일이 나겠는데.'
조지는 조심조심 마틴을 데리고 횡단보도를 건너 원예용품점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해 버린 일
 
점포 안은 주말 수리에 쓰는 못이며 철사, 드라이버 등을 사러 온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휴일 목수들은 강력한 전기 드릴(나사송곳)과 톱의 실연(실제로 보여줌) 판매 코너에 모여 서 있었다.
캐시는 조지를 페인트 코너로 데리고 가서 두 파운드 짜리를 살 것인지 세 파운드 짜리를 살 것인지 의견을 물었다.
그러는 동안 마틴은 복잡한 가게 안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레이스 모자를 쓴 뚱뚱한 부인이 빨간색 쓰레받기를 고르고 있는 걸 보자, 눈을 빛내며 다가갔다.
아무 것도 모르는 부인은 돈 무늬를 그린 장식이 붙은 핸드백에서 지갑을 꺼내어 점원에게 물건값을 치르려 헸다. 그러자 구경을 하고 있던 마틴이,
"갖고 싶은 걸 이렇게 살 수 있다니, 정말 부럽군요, 내게는……."
부인이 깜짝 놀라,
"어머,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 애로군. 너, 이 시드니에 사는 애냐?"
하고, 물었다.
마틴은 친절하게 대꾸를 해 주는 걸 보고는,
"아니에요, 먼 곳에서 왔어요. 그래서, 나는 이 때까지 돈을 가져 보지도 못했고 본 적도 없어요."
"아니, 그림 먼 곳에서 어떻게 예까지 왔지? 히치하이크(차를 얻어 타며 하는 도보 여행)로?"
부인은 뚫어지게 마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 광경을 본 조지는,
'이거 야단났다. 이러다가는 마틴이 또 엉뚱한 짓을 하겠는데……'
하고, 마틴의 부인과의 대화를 막기 위해 달려갔다.
그러나 그때 조지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마틴과 얘기를 하고 있는 부인의 레이스 붙은 큰 모자 뒤에 다른 상점의 가격표가 달려 있는 것이었다.
"저건 이상한데, 어쩐 일일까?"
캐시에게 물어보려고 뒤돌아보자, 그 부인은 웬일인지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틴에게,
"한 번도 돈을 가져보지 못했다면 어디 한 움큼 쥐어 보렴."
하며, 핸드백을 열고 한 움큼의 돈을 꺼내어 마틴의 손에 쥐어 주었다.
마틴은 뛸 듯이 좋아하면서 고개를 꾸뻑였다.
"고맙습니다. 이제 이걸로 나도 갖고 싶은 걸 많이 사겠어요."
"그렇게 해라."
그리고 부인은 웬일인지 도망치듯 가게에서 나가 버렸다.
조지는 마틴의 팔을 꽉 잡으며 타일렀다.
"마틴,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너의 지금 행동은 거지와 같아, 어서 따라가서 돈을 도로 주어. 나도 같이 따라가 줄께."
그러나 마틴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건 내가 쓰레받기를 들고 있어 주니까 그 대신 준거야. 너희들이 말하는 정당한 보수라는 것과 다르다는 말이야?"
"마틴, 정상적인 사람은, 한 번 만났을 뿐인 남의 조그마한 친절에 대해서 돈 같은 걸 주는 게 아니야. 그 사람, 좀 이상하단 말이야. 게다가……."
조지는 마틴에게 돈을 쥐어 준 그 부인이 가격표가 붙은 모자를 쓰고 있었던 걸 생각했다.
'알았다. 그 여자는 어디서 몽태치기(물건을 사는 척 하며 훔침)를 했을 거다. 마틴이 얻은 돈도 도둑질한 것이거나, 혹은 소매치기한 것이 틀림없어.'
조지는 마틴의 소매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래도 마틴은 아직 이 일의 중대함을 모르는 듯, 이상한 부인으로부터 받은 돈을 꼭 쥐고,
"만일 내가 받아서 안 되는 것이라면 너하고 캐시에게 줄께."
고, 했다.
"또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니?"
조지는 성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그 돈을 한시 바삐 돌려주지 않으면 큰일 난단 말이야."
조지는 둘레둘레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수상한 부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조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언짢은 일은 곧잘 뒤이어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
조지는 길 반대쪽에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 걸 보았다.
그 인물은 조지와 마틴 쪽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는 방송국 기자인 듯한 사람이 검은 빛 작은 테이프 레코드를 갖고 있었다.
라이벌(경쟁 상대 )인 루크 디 였다.
'루크 디 녀석, 유령의 집을 나을 때부터 죽 뒤를 밟았는지도 모르겠군.'
조지는 하는 수없이, 지금 당장 가장 믿음직한 친구인 캐시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마틴, 넌 여기에 서 있어. 한 발도 움직이면 안 돼 알겠니?"
마틴이 수긍하는 걸 보고 나서야 조지는 원예용품 가게로 뛰어들어갔다.
캐시는 페인트 깡통을 손에 들고 골이 잔뜩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지, 어디 갔더랬어? 나는 네가 가 버린 줄 알고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
"캐시, 난처한 일이 생겼어."
조지가 더듬거리는 소리로 사건의 대강을 얘기해 주었다.
캐시는 얼굴빛이 달라지며,
"조지는, 큰 소리로 '거기 서요!' 하고 소리치면서 그 수상한 여자를 뒤쫓아갔어야 했어. 그러면 사람들이 협력을 해서 잡아줬을 거 아냐?"
"그런 소리를 하지만, 캐시, 큰 소동이 벌어지면 마틴의 정체가 탄로되어 버리지 않느냐 말이야."
조지는 뛰는 가슴을 누르며,
"게다가 캐시, 그 귀찮은 녀석 루크가 방송 기자일 성싶은 사람과 같이, 마틴의 비밀을 캐내어 특종으로 하려 하고 있단 말야."
"그래?"
캐시는 심문을 하는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조지, 넌 마틴이 수상한 그 여자한테서 돈을 받는 걸 목격했다는 거지?"
"암."
"그 때 말릴 걸 그랬구나."
"응, 그런데 마틴은 눈 깜짝할 동안에 돈을 감아쥐어 버렸어."
"데리고 나온 똥개가 모르는 사람이 주는 먹이를 왈칵 집어먹듯이 말이지? 그럼 이렇게 하자. 아무튼 마틴을 데리고 경찰서로 가자. 거기 가서 까닭을 말하고 경찰에 돈을 넘겨주는 거야. 증인은 네가 서면 돼. 달리 좋은 방법은 없어. 더구나 경찰은 우리 지구의 평화에 관계없는 이상, 마틴을 지켜 줄 거라고 믿어."
"알았다. 그렇게 해 보자."
조지가 가게에서 나와 보니, 마틴은 아까 있던 자리에 돈을 꼭 쥔 채 서 있었다.
마틴은 캐시를 보자,
"캐시, 이 돈, 정말 쓰면 안 되는 거니?"
하고, 물었다.
캐시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곧 험상궂은 얼굴을 하며, 타이르듯 말했다.
"마틴, 조금쯤은 반성을 해 줘. 네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돈을 받은 때문에 우리는 대단한 골치를 앓게 됐단 말이야."
"왜?"
"우리 나라에서는 까닭 모를 돈을 받든지 줍든지 했을 때는 곧 갖다 바치기로 돼 있어."
"그러냐?"
마틴은 쥐고 있는 지폐와 동전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그렇게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거라면 우리 이렇게 하자."
하며, 대뜸 돈을 킹스 크로스 거리 한가운데를 향해 휙 집어 던졌다.
지폐들은 바람에 날려 사방으로 날아가고 동전들은 햇볕에 반짝반짝 깜박이며 사방으로 굴러갔다.
"야아앗!"
킹스 크로스 큰길에는 금새 큰 소동이 벌어졌다. 야윈 한 사나이가 지폐를 주워 재빨리 포켓에 쑤셔 넣었다.
뒤이어 두 소년이 20 센트 짜리 동전을 주우려고 길 복판으로 달려가 서로 머리를 맞부딪쳤다.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지팡이로 한 장의 돈을 꼭 찌르듯이 하여 집어들었다.
그러나 돈을 주워 든 사람들의 한 반쯤은,
'그렇다고 내 것으로 할 수는 없겠지.'
하는 표정으로 마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소동은 점점 커져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동차도 지나갈 수 없게 되어 경적을 시끄럽게 울려 댔다. 뒤따라 제복 제모의 경관이 두 사람 달려왔다. 한 사람이 익숙한 솜씨로 교통 정리를 시작하자, 한 사람은 지폐와 동전을 주운 사람들에게서 돈을 모두 회수했다.
 
 
백주의 도주
 
회수한 자리에서 계산해 본 돈은 모두 110달러였다.
경관은 연필과 수첩을 꺼내어 마틴을 향해, 봉고드럼(얼룩양의 가죽으로 만든 북)처럼 부드럽고 다정스런 소리로 물었다.
"네가 떨어뜨린 돈은 이보다 더 많지 않았니?"
"많았는지 적었는지 모릅니다. 전 얼마였는지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기억하지 못해? 자기가 가진 돈을……?"
그 때까지 상냥하던 경관의 눈이 갑자기 험상궂어졌다. 직업상의 육감에서 범죄 냄새를 맡은 게 틀림없었다.
그 경관은 같이 온 경관과 무언지 의논을 하더니 조지와 캐시에게,
"너희들 셋이 다같이 파출소까지 가 주어야겠다."
고 말했다.
"예."
마틴의 주위에는 벌써 사람들이 삥 둘러서 있었으므로, 조지는 그렇게 된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했다.
1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파출소에 조지 일행을 데리고 간 경관은 입구 도어를 닫고는 마틴을 향해 물었다.
"무슨 까닭이 있는 것 같다마는 그건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선 대금 분실계를 내야 하겠지. 이름은 무어라고 하지?"
"저어, 그건 저어, 마틴입니다.
"마틴이라, 그럼 성은 뭐지?"
"아, 화성인 마틴이에요."
경관은 손에 들었던 수첩을 책상 위에 놓고 마틴을 쏘아보았다.
"제 이름을 얼른 대지 못하는 걸 보니, 마틴이란 건 여기서 얼른 생각해 낸 이름이거나 아니면 별명이겠지. 너, 경찰관을 놀리다가는 벌을 받게 되는 수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해."
조지가 황급히 구원 작업을 시작했다.
"화성인이라고 하는 건 경관 아저씨 말대로 우리가 이 애한테 붙여준 별명이에요. 그렇지만 마틴이란 건 본명이랍니다. 성은 스미스라고 해요. 그렇지, 마틴?"
마틴 스미스는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자세히 조사하기로 하고 우선 네 말대로 그렇다고 하자. 다음은 주소다."
"지금은 빈집에 혼자 살고 있어요. 가까운 데 바다가 있어요. 아 참, 공원도……."
"빈집에서 혼자 산다고? 두말할 것 없는 부랑아로군. 그래 그 동네 이름은? 그리고 번지는?"
마틴은 대답을 못했다.
경관은 다시 의심을 품고 마틴을 향해 날카로운 소리로 말했다.
"마틴 스미스 군, 너는 어째서 소중한 많은 돈을 길바닥에다 내던졌지? 그런 장난을 하면 큰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을 몰랐단 말이냐?"
"…………."
그러나 마틴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으므로 조지가 대신 대답을 했다.
"마틴은 돈이란 걸 이날까지 전연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오늘 처음으로 손에 돈을 쥐어 본 거예요."
"110달러라면 큰 돈이야. 그 돈은 어디서 났나? 설마 네가 준 돈은 아닐 테지."
"물론입니다. 저희들은 단 10달러도 가지지 않았어요. 마틴은 저기 저 가게에서 모르는 사람한테서 얻은 거예요."
"허스프 원예용품점 안에서 말이냐? 넌 마틴 군이 받는 걸 보고 있었나?"
"네."
"그럼 그 사람의 나이와 인상을 말해 봐."
"레이스 달린 모자를 쓴 중년 부인이었어요."
"으음."
경관은 캐시를 보고,
"어떤 옷을 입고 있었나 기억하고 있니?"
하고, 물었다.
"사실 저는 그때 가게 안 쪽에 있었기 때문에 마틴이 돈을 받는 건 못 봤어요. 나중에 조지가 얘기를 해 주기에 곧 되돌려주라고 권했는데, 그 부인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경찰에 갖다드리려고 했을 때, 마틴이 돈을 길에다 뿌려 버린 거예요."
"오냐, 알겠다. 미안하지만 증인인 너희들은 잠시 입을 열지 말고 기다려 줘. 내가 직접 이 소년 마틴 스미스군의 입으로 들어봐야 겠으니까."
경관은 마틴을 무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물었다.
"자, 그럼 그 돈을 어떻게 해서 손에 넣었나 얘기 해 봐."
"그건 지금, 내가 존경하고 있는 두 친구가 말한 대로 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인이 있기에 나는 그게 부러워서 바라보고 있었어요. 사실이지 나는 돈이라곤 하나도 갖지 않았었으니까요. 그렇게 보고 있으니까 그 여자가 내게 한 움큼 돈을 쥐어 준 거예요. 아마도 쓸데가 없었나 보죠. 아니 무거워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군요."
경관은 정색을 하며,
"돈이 무거워 남에게 주는 거라면, 그 여자는 대단한 큰 부자겠군. 그래 그 사람의 이름은?"
"…………."
마틴은 도움을 청하는 듯, 조지 쪽을 돌아보고 물었다.
"조지, 그 사람의 이름은 무어라고 해?"
조지는 마틴이 너무 자주 도움을 청하는데 화가 났다.
"이름을 물어볼 틈이나 있었어? 그럴 겨를이 없지 않았어? 게다가 그 때 나는 야단났다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 마구 뛰고 있었단 말이야."
경관은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조지의 말을 입 속으로 되풀이했다. 그의 눈은 점점 직업적으로 되어갔다. 그리고 판결문이라도 읽는 듯한 소리로 마틴에게 말했다.
"마틴 스미스 군, 아무튼 너는 처음 만난 여자로부터 110달러 이상의 많은 돈을 얻었다. 그러나 뒤에 두려워져서 급히 길에다 뿌려 버린 것이다. 그렇지?"
그건 일종의 유도 심문 같았다. 그러나 우주인 마틴에게는 통하지 않는 일이었다.
"두려운 건 없습니다. 다만 그 돈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여기 있는 캐시와 조지에게도 귀찮은 폐가 끼쳐질까 싶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아, 그러더니 결국 귀찮은 일이 생겼군요."
"뭐?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귀찮아졌다고?"
경관은 매우 기분이 나빠진 듯한 말투로,
"그러고 보니 너는 나보다도 훨씬 부자로군. 그렇지 않으면 110달러나 되는 돈을 그리 손쉽게 내버릴 수는 없을 것 아니냐!"
마틴은 냉정한 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결론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저는 당신이 얼마큼 돈을 가진 분인지 모르는 터이고, 더구나 저희 별에는 돈이란 것이 전연 없으니까요."
경관은 드디어 화를 냈다.
"너, 아까부터 잠자코 있으니까 안하무인이로구나.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어야 해."
"제가 무얼 무시했나요?"
마틴도 큰 소리로 대꾸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조지는 마틴의 손가락이 분노에 벌벌 떨고 있는걸 보았다.
마틴과 경관과의 사이에 긴장이 점점 고조되어 갔다.
'이렇게 되면 마틴이 지구인이 아니란 걸 성실하게 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조지는 흘낏 캐시를 건너다보았다. 캐시도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하고, 조지가 바야흐로 마틴의 신분을 경관에게 털어놓으려고 할 때였다. 파출소의 문을 왈칵 열고 한 사나이가 뛰어들어 왔다.
아까 루크 디와 같이 길 건너편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어깨에 매고 있는 건 역시 테이프 레코드였다.
"실례합니다. 물어 볼 말이 있어서 왔는데요……."
그 사나이는 경관에게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경관은 노크도 하지 않고 뛰어든 사나이를 수상쩍게 노려보며,
"여보세요, 나는 지금 바빠요. 길을 물으려면 길에서 있는 경관에게 물어 보세요."
그러자 사나이는 고개를 저으며,
"아뇨, 내가 묻고 싶은 건 당신에게 미성년자의 인격과 명예를 지키려는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것이요."
"아까부터 보아하니, 당신의 취조는 미성년인 소년에 대해서 좀 가혹한 것 같군요."
경관의 얼굴에 일순 귀찮은 놈이 뛰어들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뛰어든 사나이는 그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사나이는 얼굴을 마틴에게로 돌리더니,
"자네는 확실히 마틴이라고 했지? 나를 알아보겠나?"
뜻밖에도 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가 놀라,
"마틴, 너 이분을 알고 있어?"
"아, 2, 3일 전에 공원을 산보하고 있을 때 이분이, '나는 루크 디의 친구요. 에스 디(SD) 통신의 조사원을 하고 있는데, 시드니의 소년 생활에 대해 몇 마디 얘기해 줘요.' 하고 부탁했었어.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일을 몇 마디 얘기했었어."
조지에게는 그 때의 광경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이 에스 디 (SD) 통신의 조사원이란 건 정말 수완 있는 사람이야. 마틴한테서 여러 가지 일을 조사해 냈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이 여기 뛰어들어 왔을까. 사건이 더 복잡하게 되지나 말았으면 좋겠건만…….'
조사원은 테이프 레코드의 스위치를 딸가닥 소리가 나게 넣고는, 또 마틴을 향해 물었다.
"대체 당신은 뭣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마틴은 조사원을 실력 있는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지 단박 기운이 나서 대답했다.
"그건 정말 시시한 일 때문이었어요. 상냥한 부인이 제게 돈을 주었기 때문에 여기 있는 조지와 캐시가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댔던 거예요. 그래서 나는 재수 없는 물건이라 생각하고 그 돈을 길바닥에 내던졌는데, 그게 더 큰 소동을 일으키게 된 거예요."
"하하하, 그만한 일로 여기로 끌려왔단 말이야?"
에스 디(SD) 통신의 조사원이라는 사나이는 이번에는 경관을 향해 비난했다.
"당신의 행동은 완전히 불공평했군요."
경관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자네는 이 마틴인가 하는 아이의 보호자요? 어째서 나를 비난하는 거요? 정말 에스 디 (SD)통신의 조사원이면 신분 증명서를 보여 줘요."
경관은 마틴은 제쳐놓고 에스 디(SD) 통신의 조사원에게 날카로운 눈길을 보냈다.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조지가 입 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팔을 잡아당겼다.
루크 디였다. 루크는 눈으로 조지에게 도망치자는 신호를 보내고 턱으로 바깥을 가리키고는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조지는 곧 그 뜻을 알아차렸다.
'때는 지금이다. 도망치자!'
조사원은 어떡하다 보니, 경관을 향해 어려운 과학용어를 줏어대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현상이 있소……."
조사원과 루크 디는 확실히 공동 작전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지는 캐시에게 기대어, 초록색 멕시칸 모자 무늬가 있는 스커트를 잡아당겼다. 캐시도 루크가 온 걸 알고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곤란한 것은,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얼빠진 데가 있는 마틴에게 도망가자는 뜻을 전하는 일이었다
조지는 마틴이 선원에게 부딪쳤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 했다.
'그렇다. 중력 관계로 마틴의 몸은 풋볼 같이 가벼울 것이다. 좋아, 어디 해 보자!'
조지는 마틴의 줄무늬 있는 초록 셔츠를 거머쥐고 파출소에서 로켓 같이 뛰어나왔다. 예상한 대로 마틴의 몸뚱이는 믿을 수 없을 만치 가벼웠다.
"거, 거기 섯!"
경관의 외치는 소리를 뒤로 듣는 순간, 조지는 '아! 큰일 났다'하고, 양심이 저리도록 아팠다. 그러나 이제 뒤돌아 설 수는 없었다.
남은 방범은 단 하나, 마틴을 데리고 끝까지 도망치는 길밖엔 없었다.
조지도 캐시도, 공중 전화 박스 뒤에서 뛰어나온 루크도 모두 죽어라 하고 달렸다. 캐시의 스커트에 붙어 있는 초록색 모자 그림의 자수는 큰 물결을 만난 조각배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낮의 도주였다.
월리엄 거리에서 칼턴 거리를 향하는 급하지 않은 내리막길을 달렸다.
숨 가빠하면서 루크가 소리쳤다.
"마틴, 넌 공중을 날 수 있구나."
"아냐, 날고 있는 건 아냐.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는 것으로 보이는 거야."
그냥 그렇다고 해 두어도 좋을 것을, 마틴은 또 이러니저러니 해서 루크의 기분을 상하게 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루크 디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조지는 루크 디가 어째서 구조를 하러 왔는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두 아이의 사이는 결코 좋지는 않았지 않는가.
'결국 루크 디는 마틴과 친구가 되고 싶은 거야. 그리고 호기심 때문일 거야.'
조지는 계속 달리면서도 이런 해답을 찾아내고 있었다.
이 때, 뒤에서 순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아마도 그건 조지 일행을 잡으러 온 차는 아닌 거 같았다. 그러나 도망치는 사람은 교회당의 평화스런 종소리에도 겁을 내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곧 붙잡히겠다."
조지는 왼쪽으로 꼬부라져서는 좁은 돌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돌층계 아래는 마틴이 숨어사는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 거리였다. 경관의 모습은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조지 일행은 겨우 안심을 하고 마틴이 숨어사는 집으로 걸어갔다.
그 집 문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조지는 중대한 단서를 파출소에 남겨 놓고 온 것을 생각했다. 그는 캐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캐시, 야단났다. 마틴이 사는 집 부근 지리를 아까 그 경관에게 가르쳐 줘 버렸구나."
"참, 그랬어."
캐시도 얼굴빛이 변했다. 그러나 곧 빙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만일 경관이 찾아와서 마틴을 체포하려들면, 마틴은 이상한 푸른빛으로 변해 가지고 스토브 속에 들어가 버리겠지 뭐."
"음, 그렇구나."
조지는 웃으며 말했으나, 그 웃음 속에는 무겁고 석연찮은 것이 섞여 있었다.
'마틴에게는 비밀의 방법이 있으니까 좋지만, 우리들은 아까 그 경관에게 들키면 어떻게 해야하나?'
"잘 가, 다음에 또 만나!"
선선히 손을 흔들며 유령의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마틴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조지는 마음을 돌려 먹고 루크 디에게 말했다.
"네 덕분에 우선 위기는 면했다만 오늘 사건으로 마틴은 수배인이 되어 버렸어. 앞으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글세……."
루크 디는 바지를 추켜올려 외모를 갖추고는,
"사실 나는 저 에스 디(SD) 통신의 조사원과 아침부터 여기 잠복(숨어서 감시함)해 있었던 거야. 그러다가 너희들의 뒤를 밟아 갔었어."
"그랬어? 우린 전연 눈치채지 못했어."
"나는 너희들이 마틴을 행인이 많은 킹스 크로스로 데리고 가는 걸 보고, '이건 서투른데……, 까딱 잘못하면 엉뚱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거야' 하고 걱정을 했었어."
"네 말대로야. 킹스 크로스 같은 번화한 곳에 마틴을 데리고 간 건 나의 큰 실수였어. 그렇지만 지난 일을 갖고 이러쿵저러쿵해도 별 수 없는 일이고 문제는 이제부터야. 너와 같이 있는 에스 디(SD)통신의 조사원이란 사람, 믿을 수 있는 분이냐?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마틴에게 사건의 대강 얘기를 듣는 걸로 보아, 여간내기가 아닐 것 같은데……."
"나도 2, 3번 만났을 뿐이라 잘은 모르지만, 머리가 퍽 좋은 사람인 건 틀림없어. 아마 마틴과도 몇 번 만나서 얘기를 녹음해 놓은 것 같아."
"그럼 마틴이 우주에서 온 아이란 것도 알고 있겠구나."
"그야 물론 알고 있어."
"비밀을 지켜 줄까?"
"그 사람은 특종 기사에 목숨을 걸고 있다. 경관이 물어 봐도 뻔들뻔들 얘기를 주고받을 뿐이야. 하지만 경찰이 만일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면 마틴이나 너희들이나 또 고양이 할멈의 일까지도 모조리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거야."
"…………."
조지의 불안은 점점 더해 갔다.
캐시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마도 이제 와서는 경찰서에서 도망쳐 온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같은 형편인 조지가 말했다.
"캐시, 걱정할 것 없어. 우리들은 아무런 부끄러운 일도 하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다만 마틴에게 돈을 쥐어 준 그 몽태치기 여자 뿐이야. 더구나 우리는 그 돈을 단 1센트도 받지 않았지 않아?"
"그건 그래."
캐시가 고개를 끄덕였으므로 조지도 다소 마음이 놓였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가까웠다. 점심 시간이다. 조지는 언제나처럼 전속력으로 자기 집으로 달려갔다.
 
 
우주 스파이 마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조지의 눈에 뜨인 것은 마루에 가득 펼쳐져 있는 빨랫감들이었다.
어머니는 그 한가운데서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서서 무언지 생각하고 있다가, 조지가 들어오는 걸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조지야, 네 노란색, 갈색 무늬가 있는 초록 셔츠, 어디 있는지 모르겠니? 빨래를 하려는데 통 보이지를 않는구나."
'이크, 탄로가 났나보다.'
조지는 놀라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셔츠는 지금 마틴이 입고 있는 것이다. 만일 사실대로 얘기를 했다가는 마틴의 일이 탄로가 나고 말 것이다.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조지는 세면실로 들어가 수도꼭지를 비틀어 물이 좔좔 나오게 해놓고 푸우푸우 얼굴을 씻으면서 어머니에게 둘러댈 꾀를 이것저것 궁리해 보고 있었다.
"얘, 어디다 뒀니?"
어머니가 방에서 소리쳤다. 조지는 손으로 무릎을 탁 치며,
"어머니, 생각났어요. 그 셔츠 내가 어디다 벗어 두고 잊어버리고 왔어요."
"벗어 두고 잊다니, 그럴 리가 있어? 셔츠는 모자와는 다르지 않아?"
조지는 잠시 궁리하다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정말은요 어머니, 한 20일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멜버른에 간 날, 친구들하고 같이 셔츠를 벗어 놓고 부두 근처 바다에서 헤엄을 쳤었어요."
"재는, 20일 전엔 아직 추웠을 텐데. 감기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랬니?"
"그래도 난 감기 같은 것 들지 않았단 말이에요."
조지는 가슴을 좍 펴고 말했다. 어머니는 대견한 듯이 조지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는 감기를 잘도 앓더니 이젠 건강해진 거로구나."
'됐다! 이제 화제를 딴 데로 돌릴 수 있겠다.'
조지는 안심하고 희망을 가졌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다시 추궁한 것이다.
"그런데 셔츠는?"
"아, 셔츠 말이죠. 헤엄을 치고 나와 보니까 벗어 둔 곳에 없지 않아요? 누군가가 내가 헤엄치고 있는 동안에 가져가 버린 거예요."
"그렇게 함부로 벗어 두었으니까 그렇지, 그건 값비싼 셔츠였으니까."
"난 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을 것 같아 부두 가까운 곳에 사는 동무 아이한테서 흰 셔츠를 빌어 입고 집에 와서 그 다음 날 아침에 돌려보냈어요."
"그랬어? 그런데 조지야. 너 앞으로 어떡한 테냐? 그 셔츠를 찾아 올 가망이 있니?"
"누군가가 몰래 가져 가 버렸으니까 찾긴 어려울 것 같아요."
"알았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만일 앞으로 10일이 지나도 셔츠가 발견되지 않으면 네가 셔츠 값을 내는 거다. 다음 달치 용돈 속에서 말이다."
"그, 그건 너무 심해요, 어머니."
"그러니까 네가 탐정이 된 셈치고 이 시드니 시내를 돌아다니며 찾아 봐."
"알았어요, 어머니. 그럼 제가 기회를 봐서 찾아올게요."
"조지, 지금 뭐라고 했지?"
어머니가 눈을 번쩍였다.
'이크, 말을 잘못했구나!'
조지가 입술을 꼭 물었을 때, 때마침 조지 이상으로 말썽 많은 아버지가 돌아왔다.
덕택으로 조지는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렇지, 오후에 마틴에게 가서 셔츠를 도로 받아 오기로 하자. 그리고 마틴이 그의 행성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 사실대로 얘기하면 될 거야.'
점심을 먹고 난 조지는,
'마틴도 낮잠을 깼을 때다.'
하고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와 조심조심 유령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마틴은 스토브 안에도 뒤꼍 광에도 없었다.
"에잇, 남의 속도 모르고 어디를 어정어정 돌아다니고 있다니!"
이층 창문으로부터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공원 쪽으로부터 마틴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조지는 계단을 뛰어내려가서, 뜰 한복판에서 마틴을 맞았다. 마틴은 싱글벙글 하면서,
"야아, 조지 오늘 아침엔 참 재미있었어. 그런데 오후엔 어디를 구경시켜 줄 테야?"
"마틴, 구경이라니, 그런 태평스런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넌 지명 수배자가 되어 있어. 언제 여기로 경관이 들이닥칠지 모른단 말이야."
"그래도 아까 그 경관이 가까이 온다면 난 곧 알 수 있어. 슬쩍 숨어 버리면 될 것 아냐?"
"마틴, 지구의 경찰력은 거미줄처럼 쳐 있는 거야. 그 경관은 전화로 네 일을 본서에 연락했을 거야. 지금 시드니 시내의 몇 천 명이나 되는 경관이 눈을 까뒤집고 수상한 소년의 행방을 찾고 있을 거란 말이다."
"그래? 열이나 백이라면 어떻게 피할 수 있지만 상대가 몇 천 명이나 된다면 이건 좀 곤란한데."
마틴은 비로소 사건의 중대함을 어느 정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거기에 캐시도 나타났다. 캐시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지, 우리가 이 빈집이 바닷가 공원 근처에 있다는 걸 말했지? 지금쯤 경찰서 사람들이 시드니 시의 지도를 보면서 그린 집을 낱낱이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몰라 곧 여기에도 올 거야."
"그래? 그럼 한시 바삐, 다같이 어디로 피해 가서 숨자."
조지가 이렇게 말하자 마틴은,
"너희들에게 그런 폐를 끼치는 건 안 될 일이다. 내가 자진해서 경찰서에 가겠어. 그래서 경찰관 중에 제일 지위가 높고 이해심이 있는 사람을 찾아, 사실을 얘기하겠어."
조지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냐, 그건 서투른 일이야. 아무튼 경찰관이란 사람들은, 아까 취조하는 걸 봐도 알겠지만 위에서 아래까지 완고한 돌대가리들이야. 네가 지껄이면 지껄이는 만큼, '이 녀석 머리가 돈 거 아냐? 정신 병원에 진찰을 받게 해 보자'고 할지도 몰라. 네가 혹시 초록색 뿔이라도 머리에 나 있다면 몰라도……. 요컨대 경관이란 건, 자기 눈으로 환히 보이는 것 이외의 것은 믿으려 하지 않는 인종들이야."
"그럼 그자들한테 내가 우주인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면 되겠지. 그러면 얘기는 간단해. 경찰의 우두머리를 찾아가서, 그 방에서 펄쩍펄쩍 천장까지 뛰어 올라 보일 테다."
조지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다고 생각했으나, 곧 다른 걱정이 먹구름처럼 피어났다.
"그렇게 해 보이면 확실히 그들도 네가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겠지. 하지만 경관은 타이어가 펑크가 나도, 총을 쏜 것이라고 오해를 할만큼 겁내기를 잘 하는 인간들만 모여 있는 거야. 네가 지구인이 아닌 걸 알았다 하면, 당장 우주 스파이라고 의심을 하게 된 거 란 말이다."
"나를 우주 스파이라고?"
"그래. 지구 정복과 점령을 노리는 너희별의 권력자들이 보낸 솜씨 좋은 소년 스파이라고 말야."
마틴은 어처구니없는 듯, 눈을 깜박였다.
"지구를 탈취하려 한다고?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벌써 다른 행성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또 다른 하나를 갖고 싶어 할 까닭이 없잖아?"
"하지만 너희들 별에서도 새로운 영토를 갖고 싶겠지.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몇 십 년이 지나면 땅과 양식이 모자라게 되겠지. 너희별은 우리 지구보다도 문명이 발달해 있으니까 대기오염과 여러 가지 공해로 골치를 앓고 있을 거야. 그런 이유만으로도 새로운 깨끗한 땅을 갖고 싶어 할 것인데 말이야…."
얘기를 하는 중에 조지는 화가 났다. 마틴이 허리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었던 것이다. 아니 웃는다기보다 차라리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숨 가쁘게 얘기를 했다.
"조지, 네가 말한 대로, 우리별은 방사능과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로 더럽혀져 있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다른 새로운 별이나 행성을 갖고 싶어하다 우주인은 하나도 없어. 생각해 봐. 남의 것을 뺏느니보다는 자기네 별을 좋게 해 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니? 어때, 내 말이 틀렸니?"
"정말 네 말대로야. 그렇지만 그걸 경관에게 말한다 해서, 경찰관들이 믿어 주겠니?"
아까부터 잠자코 마틴과 조지의 얘기를 듣고 있던 캐시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마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마틴, 나도 조지와 마찬가지로 네가 하는 말이 정당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조지가 말한 대로 경찰의 눈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는다면 네 지구 여행은 정말 불유쾌한 것이 되어 버릴 거야."
마틴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이 지구에서는 권력에 반항한다는 것이 때로는 미덕이 되고 있구나. 그럼 어디 잘 해 보자."
조지가,
"캐시, 우리 시드니에서 경관이 찾아올 가능성이 적은 곳이 어딜까?"
하고, 물었다.
"글쎄, 해군기지 아닐까."
"천만에! 그곳에는 경관들보다 더 침략에 떨고 있는 군인들이 우글우글해."
"그렇구나. 아참! 동물원은 어떨까? 조지는 동물원에서 경관을 본 일 있어?"
"동물원? 참 그걸 생각 못했군. 거기서 경찰을 만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 게다가 아이들이 많이 와 있고, 신기한 동물도 많으니까, 마틴도 필시 좋아할 거야."
조지와 캐시는 마틴을 데리고 부두로 가서, 거기서 타롱거 항의 연락선을 타고 1시간쯤 지나 타롱거 동물원에 도착했다.
정문을 들어서자 이내 조지는 마틴을 동물원으로 데리고 온 짓이 크게 잘한 일임을 깨달았다.
왜냐 하면, 마침 토요일이었으므로, 동물원에는 가족 동반의 입장자들로 붐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 소년 마틴은 다른 구경군들과는 달라서 우리 밖의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물론 우리 안의 동물들, 게으름뱅이 사자, 사방을 둘레둘레 보고 있는 기린, 벼룩을 잡고 있는 원숭이들에게도 대단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속의 식구들은 과연 대단한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몇 천 명이나 되는 입장자 중에 섞여 있는 단 한 사람의 딴 세상 사람인 마틴을 보자, 그의 정체를 알아채고 이빨을 드러내거나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소란을 피웠다.
"저놈들, 무엇 때문에 저렇게 긴장해 가지고 야단들이야?"
마틴은 저를 싫어하는 건 줄은 모르고 있는 듯했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우리의 철망 가까이 다가가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지의 일행은 맨 끝으로 코끼리 우리 앞에 이르렀다. 그 코끼리는 온순하기로 이름난 동물이었는데 마틴을 보자 꽤액 하고 기묘한 울음을 울며 앞발을 높이 쳐들었다가 쾅 내리짚었다.
담당 계원이 놀라 달래려 했으나, 코끼리는 그 쪼끄만 눈에 벌겋게 핏발을 세우며 마틴을 쏘아보고 있었다.
조지는 황급히 마틴을 데리고 수족관으로 갔다.
오후 5시의 마감 시간까지 거기서 지낸 조지 일행은 연락선을 타고 부두로 돌아왔다.
헤어질 때 마틴은 조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별에는 동물원 같은 건 없다. 오늘은 정말 즐거웠어. 내일은 또 어디로 데리고 가 주겠니?"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또 어디든 가야지."
조지는 저도 모르게 끌려들어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마틴 그림을 그리다
 
다음날인 일요일, 조지는 어머니에게 친구들하고 낚시하러 가기로 했으니 샌드위치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마틴, 캐시, 데이비드, 거기다 엘리자베스까지 불러내어, 시드니 바다에 보트를 타고 나갔다.
루크에게도 같이 가기를 청했지만 마침 가족끼리 드라이브를 하게 되어 있어서 동행이 되지 못했다.
고기는 재미나게 잘 잡혔다. 특히 마틴에게 있어서 낚시는 세상에 나서 처음 해 보는 것이었다. 마틴의 별에서는 고기를 잡을 땐, 아쿠아렁(물속 호흡기)을 달고 바닷 속에 들어가 수중총(물 속에서 쓸 수 있도록 된 총)을 쏘아 잡던가, 아니면 폭탄을 쓴다고 했다.
오후 2시가 지나서 유령의 집에 돌아오자, 마틴은 좀 쓸쓸한 얼굴로 말했다.
"아, 이 즐거운 지구 생활도 앞으로 1주일밖에 안 남았구나."
조지는 마틴이 다음 초승달 때 일요일 밤이면 지구와 이별하게 된다고 한 얘기를 생각해 냈다.
"그렇구나. 그런데 타고 갈 기계는 어떻게 되었니?"
조지는 유령의 집 안 어느 곳에, 일인용의 반투명 우주선이라도 숨겨 두고 있지 않나 생각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마틴은,
"다음 일요일 오후 8시에 나를 데려 갈 우주 비행 접시가 오기로 되어 있어. 사실은 어젯밤에 연락이 왔었어."
하고, 대답했다.
"그래? 아, 네가 가고 나면 쓸쓸해지겠는데…."
이렇게 중얼거린 조지는 언뜻 생각이 나서,
"마틴, 그 후로 고양이 할멈 여기 왔었니?"
하고, 물었다.
"아, 그 때 우리들이 뒤쫓아가서 돌담 저편으로 몰아넣은 일이 있었지. 그 때부터 두 번쯤 나타났더랬어. 그래도 내가 있는 걸 알고는 부랴부랴 도망쳐 버렸단다. 내가 이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귀여운 고양이들을 못 만나게 되어 버린 거야. 필시 나를 원망하고 있으리라 생각해."
"그러니?"
조지 생각에는 어쩌면 고양이 할멈이 마틴이 여기 살고 있다는 걸 경찰에 밀고하지나 않았을까 의심치 들었다. 그러나 곧,
'고양이 할멈은 마틴이 수배 인물인 줄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경찰이 여기로 찾아오게 되는 날에는 고양이 할멈 자신의 비밀까지도 드러나 버리게 될 것이니까 어리석은 밀고 같은 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좀더 엄중히 마틴에게 주의를 주어 놓았더라면 다음에 일어난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날 오후 4시쯤, 조지는 캐시와 같이 또 유령의 집으로 갔었다.
그러나 마틴은 집에 없었다. 캐시는 불안스레 사방을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외출을 할 때는 메모라도 적어놓고 가면 될 텐데, 약삭빠르지 못한 애야."
마틴은 한 30분 후에 돌아왔다.
캐시가 불평을 하자 마틴은 대꾸했다
"글쎄, 그랬으면 좋겠지만 나는 지구인의 글자를 쓸 줄 모르는 걸 어떡해?"
이 말을 들은 캐시는,
"그렇구나. 그럼 좋은 방법이 있다. 내가 집에 가서 가져올게."
하고, 나가더니 10분쯤 지나 돌아왔다. 캐시는 12가지색 크레용과 조그만 스케치북을 마틴 앞에 내놓았다.
"마틴, 너희별에도 이런 것 있니?"
"아냐, 처음 보는 거야, 이 빛깔 있는 막대기는 먹는 거냐?"
"어머, 먹는 거냐고?"
캐시는 웃으며, 크레용으로 스케치북에 꽃과 나무를 그렸다.
마틴은 그야말로 두 눈을 별처럼 반짝이며 보고 있다가,
"나는 이 때까지 그림이란 걸 한 번도 그려본 일이 없다. 캐시처럼 잘 그려질지는 모르지만 어디 나도 한 번 그려보자."
마틴은 크레용을 상자에서 모조리 꺼내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서투르기 짝이 없는 손놀림을 보고, 조지는 유령의 집에 있었던 그림은 마틴이 그린 것이 아니란 걸 확실히 알았다.
마틴이 그린 것은 코끼리와 표범의 그림이었다. 마틴에게 있어서는, 그 동물원에서의 한 때가 가장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조지는 마틴이 제 고향인 별의 풍경이라도 그려 주었으면 하고 기대했었지만 1시간이 지나도 동물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마틴, 다음 외출할 때는 네가 산보하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 놓아줘."
하고, 조지가 말했다. 사실 이건 조지가 일부러 꾸민 계략이었다.
마틴 자신은 자기의 모습이 조지 같은 지구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 지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만일 마틴이 자화상을 그린다면 마틴의 진짜 모습을 아는 데 큰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대는 보기 좋게 묵살되고 말았다. 다음 월요일, 드디어 두려워하고 있던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남아 있는 암호
 
월요일 날, 조지와 캐시는 하룻밤 사이에 마틴이 어떤 그림을 그려 놓았나 큰 기대를 가지고 그의 집으로 갔다.
그날도 마틴은 집에 없었다.
"어제 그렇게까지 일러두었으니까 아마 편지가 아닌 그림 메모를 그려 놓고 나갔을 거야."
캐시는 이렇게 말하며 마틴의 방에 들어가다가,
"앗!"
하고, 소리쳤다.
방 한가운데에 어제 선물로 준 크레용과 스케치북이 내동댕이쳐져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스케치북은 펼쳐진 채였고 크레용은 상자에서 쏟아진 채였다.
"마틴에게 무슨 일이……"
무거운 불안감에 휩싸인 조지는 스케치북을 집어들고 들여다보았다.
왼쪽 페이지에는 고양이 할멈 같아 보이는 여자와 레이스의 모자를 쓴 여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캐시도 그걸 들여다보고는,
"조지, 이 레이스 모자를 쓴 여자, 누굴까?"
하고, 물었다.
"캐시, 이 사람이 요전날 소동을 일으킨 주인공이란다. 이 봐, 원예용품점에서 마틴에게 110달러를 준 사람이야.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그린 그림치고는 특징을 잘 잡아 그렸는데……."
오른쪽 페이지에는 경관의 얼굴과 고삐와 안장을 한 말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캐시가 묻자, 조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캐시, 큰일났다. 이건 마틴의 그림 편지야. 암호로 그린 에스 오 에스(SOS)야!"
"뭐? 이게 어째서?"
"모르겠니? 우선 첫 페이지부터 차례차례 생각해 봐. 고양이 할멈, 이건 고양이 할멈이 오늘 여기 나타났다는 걸 알려 주고 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런데 레이스 모자의 여자는?"
"마틴은 레이스 모자의 여자와 고양이 할멈이 서로 관계가 있다는 걸 육감으로 안 모양이야. 아니 어쩌면, 고양이 할멈과 저 레이스 모자의 부인이 한사람이라고 의심했는지도 모르지. 이렇게 비교해 보면, 두 여자는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지 않니?"
"조지, 그건 너무나 대담한 상상이야."
"그럼 그건 잠시 접어 두고, 다음은 이 안장을 얹은 말과 경찰관의 얼굴이다. 왜 마틴이 말의 그림을 그렸겠니? 동물원에는 말이라곤 없었고, 더구나 안장과 고삐를 가진 건 좀처럼 보기도 어려운 거 아니야. 그렇지만 지금도 말을 부리는 단체는 있어."
캐시도 앗! 하고 소리쳤다.
"조지, 알겠어. 이건 시드니 시의 기마 경관이야. 기마 경관이 몇 사람 여기에 온 거야."
"그렇지. 이제 순서대로 그 광경을 생각해 보자. 먼저 고양이 할멈이 여길 왔다. 그리고 마틴이 있는 걸 확인하고서는 비겁하게도 경찰에 밀고를 한 거야. 마틴의 걸음이 빠른 걸 알고 있는 경찰에서는 곧 기마 경관을 이 집으로 보냈어. 마틴은 초능력을 써서 피했으면 될 텐데 우리들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편지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붙들려 버린 게 틀림없어!"
"가엾어라, 마틴!"
캐시는 슬픈 소리로 말했다.
조지는 황급히 ,
"캐시, 지금 말한 것은 우리들의 추리야. 그대로 맞는지 어떤지는 모르는 거야. 하지만 마틴이 사라져 버린 것만은 확실해. 루크와 의논해서 행방을 찾아보자꾸나."
조지는 공중 전화로 루크에게 전화를 결었다. 루크는 얘기를 듣고 나서,
"조지, 그 이상한 아이는 제 말로는 몇 살이라고 했냐?"
"확실히 12살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경찰에 붙잡혀 가서도 12살이라고 하겠지.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에스 디(SD) 통신의 에번스씨에게 의논해 보겠어. 10분 후에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줘."
조지는 10분 후에 또 한 번 전화를 걸었다. 루크는,
"조지, 에번스씨는 이러는구나. 만일 경찰이 그 마틴을 보호했을 경우에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청소년 복지 위원회에 넘기게 된대. 복지 위원회의 험상궂은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은 모두 마틴을 심문해서 부모님에게로 보내거나, 부모님을 호출하거나 둘 중의 한 가지 조처를 한대."
"잠깐 기다려, 루크. 마틴의 부모님은 아마도 몇 천 광년(천문학에서 쓰이는 거리 단위)이나 떨어진 별에 있단 말야."
"그래, 그러니까 마틴은 의지할 데 없는 아이들을 수용하고 있는, 보호 센터로 보내지게 되는 게 아닐까 말이야."
"루크, 마틴은 제 나라에서 가지고 온 비스킷밖엔 없지 않아? 보호 센터의 식사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아. 어디 있는지 그 장소를 알아 내 가지고 그 애 먹을 걸 차입해 주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될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건 정말 야단났는데. 에번스 씨 얘기는, 이 시드니에는 소년 보호 센터가 2군데 있대. 중심 지구의 센터에는 내가 가 볼게. 조지 너는 교외의 세인트 클리에 쪽을 찾아가 봐."
"좋아, 그러겠어."
"에번스 씨 말로는, 아마도 그쪽에 수용되는 건 오늘 밥8시 지나서일 거라고 했어. 지금 가 봐도 헛일일 테니 내일 오후 방과후에 가기로 해."
"그래, 그렇게 하자."
화요일 오후까지의 20시간은 조지에게는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조지는 마틴과의 약속을 지켜 어머니에게는 교외의 친구들을 찾아간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만일을 염려해서 다시 한번 마틴의 집에 가 보았지만 마틴은 역시 없었다.
스토브 안을 찾아보니, 비스킷이 10개 든 조그만 봉지가 있었다.
"마틴의 10일치 식량이다. 좋아, 이걸 선물로 가지고 가야지!"
조지는 그걸 포켓에 넣고 울무울에서 교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조지의 초조한 마음은 아랑곳없이 천천히 달렸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갑자기 나무들이 많아졌다. 목조와 벽돌로 된 옛날의 낡은 집도 눈에 많이 띄었다. 천천히 걸어가는 노인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주위의 풍경과 잘 어울려 보였다.
조지는 '세인트 클리어'라고 써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중년 부인에게,
"이 근처에 소년 보호 센터라는 게 있습니까?"
하고, 물어 봤다. 그리자 그 부인은 수상쩍어 하는 눈으로 조지를 살피면서,
"너도 거기 들어가는 길이니?"
하고, 물었다.
조지는 세차게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전 조금 일이 있어서 가는 길이에요."
"그래? 그럼 다행이다. 거기엔 부랑아들이랑 히피도 제대로 못 된 아이들이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조지는 그 부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가슴속으로 외쳤다.
'부랑아도 아닌 마틴이 만일 그런 곳에 갇혀 있다면, 난 경찰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을 찾아가서 한바탕 야단을 쳐 줄 테다.'
그 부인이 가르쳐 준 센터는 언뜻 봐서는 학교와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 집의 대지는 1만 평방미터 가량 되어 보였다. 대문에 '세인트 클리어 소년 보호소'라 새긴 놋쇠 간판이 걸려 있었다. 정문 앞을 지나치며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중앙에 체육관 같은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100평방미터 가량의 넓은 장소에 주택이 10채쯤 줄지어 서 있었다. 보기에는 학교와 비슷했지만, 다른 점은 집터 주위가 높이 3미터 가량의 철판으로 엄중하게 둘러쳐져 있는 것이 수용되어 있는 아이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임에 틀림없었다. 조지는 정문 옆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여기 저희 동무 마틴 스미스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하고, 물으려다가, 그러면 마틴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어 물을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했다.
"마틴 스미스는 사실은 우주에서 온 소년입니다."
하고, 아무리 설령을 해도 완고한 수위는 믿어 주지를 않을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조지마저 보호를 받게 될 우려조차 있었다. 그래서, 조지는 철판 벽을 따라 뒤쪽으로 돌아가 보았다.
마침 안성맞춤으로 철판 벽 한가운데 직경 5센티 가량의 구멍이 뚫려 있었으므로 거기다 눈을 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아까 본 그 조그만 집의 뒤쪽이 환히 보였다. 회색 셔츠를 입은 소년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오라, 회색 셔츠가 이곳의 제복이구나. 소년들은 저 작은 집에 여남은 명씩 수용되어 있는 거다."
조지는 가까운 집으로부터 일제히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 오는 걸 알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였다.
'아하! 여기서는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매일 오후 4시엔 전원이 샤워를 하는 모양이다. 우리 마틴은 어떡하고 있을까?'
그러자 가까운 집 뒷문에서 한 소년이 도망치듯 뛰어 나왔다. 소년은 누군가를 피하는 듯 옆에 있는 느릅나무 뒤에 숨었다.
'옳아, 저 애도 샤워를 싫어하는 모양이지. 나하고 똑같이.'
쓴웃음을 띤 조지는 갑자기 숨을 죽였다. 그 소년의 뒷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기억이 났던 것이다.
"앗! 마틴이다. 저게 바로 마틴이야."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은 마틴이 그 초록색 셔츠가 아닌, 다른 소년들과 같은, 여기서 입는 회색 셔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지는 가슴속에 불같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복지 위원회의 아저씨들, 내가 선물로 준 고급 초록 셔츠를 벗기고 저 따위를 입혀 놨어? 재판소에 고소를 해서라도 초록 셔츠를 꼭 찾아내고야 말 테니 어디 두고 봐!'
조지의 노여움은 셔츠를 찾아 내지 않으면 다음 달치 용돈이 줄어들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셔츠 같은 것보다도 마틴에 대한 일이 더 급했다.
조지는 철판 구멍에 입을 대고,
"마틴, 마틴!"
하고, 작은 소리로, 그러나 야무지게 불렀다.
마틴은 곧 알아듣고 사방을 들러보았다. 조지는 재빨리 철판 구멍에 손가락 셋을 밀어 넣고 오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마틴이 쑤욱 달려왔다.
마틴이 가까이 오자, 구멍에서 보는 좁은 시야는 회색 셔츠로 가득 차 버렸다.
마틴은 구멍 저편에서 내다보고 눈알을 굴리며 반갑게 소리쳤다.
"역시 조지로구나. 잘 와 줬다.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찾아 왔니?"
"네가 그려 놓은 그림을 보고, 또 루크가 얘기해 준 덕택이야. 너 그 그림처럼 기마 경관에게 붙들려 왔지?"
"응."
마틴의 목소리에는 기운이 없었다. 얼굴빛도 좋지 않았다. 조지는 언뜻 생각이 나서,
"마틴, 너 배고프지? 여기 식사는 어때?"
"분량도 많고 여러 가지 음식이야, 그렇지만 내 입에는 맞질 않아."
"그래?"
조지는 스토브 안에서 꺼내 온 비스킷을 철판 구멍으로 들이밀어 마틴에게 주었다.
"이거 정말 고맙다. 조지 너 참 눈치 빠르구나."
마틴은 곧 맛있는 듯이 이틀 분인 2개나 먹어치웠다. 그리자 곧 안색이 좋아진 것 같았다. 조지는,
"마틴, 너도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게 싫지?"
"그야 말할 것도 없지. 내가 있던 집만큼 좋지가 않아."
"그럼 왜 도망치지 않았니? 너는 부랑아도 아니고 남에게 해를 끼친 일도 없는데 말야. 더구나 너는 지구인도 아니니까 지구 사람들의 법을 따라야 할 필요도 없는 거야."
그러나 마틴은 세게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설령 이 지구의 주민이 아니라 해도 지구에 온 이상 지구의 법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게다가 나는 우리별을 대표해서 이 지구에 온 거야. 만일 내가 탈주를 한다면 우리별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되는 거야. 그래서 절대로 도망치지는 않을 거야. 가령 내가 사형을 당하게 된다 해도……."
조지는 기가 막혔다.
"마틴, 옛날에는 너 같은 행동이 영웅적이라고 칭찬 받았어. 그렇지만 지금은 완고한 사람이란 말을 들을 뿐이야."
마틴은 점점 얼굴빛이 붉어지더니,
"뭐라고 해도 좋아. 나는 절대로 여기서 견디어 낼 테니까.'
"그래, 맘대로 해."
조지는 탈주를 권하는 건 단념하기로 하고,
"마틴, 넌 경찰에서 네가 지구인이 아니고 다른 행성에서 온 소년이란 걸 명백히 말했니?"
하고, 물었다.
"응, 경찰관 말고, 재판관 같아 보이는 위엄 있는 사람이 있길래 말해 버렸어.'
"재판관 같이 뵈는 사람? 아, 알겠다. 소년 보호사일거야. 그러니까 그분이 뭐라고 하던?"
"내 얼굴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어. 아마도 나를 정신이 이상해 진 아이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렇다면 네가 잘 하는 뛰어오르기라도 해서 천장까지 올랐다 내렸다 해 보였음 좋았을 걸 그랬구나."
"물론 몇 번이나 해 보였지. 하마터면 천장에 있는 샹델리아까지 깨뜨릴 뻔했어."
"…………."
"몇 번이나 되풀이했기 때문에 나도 좀 피곤해서 의자에 앉아 쉬고 있노라니까 그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지 않겠어? '이건 훌륭한 곡예사로군. 이애는 아마도 서커스나 마술단에서 맹훈련을 받은 게 틀림없어.' 그러고는 기어이 이곳으로 보내 버리더라구."
마틴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줄지어 있는 작은 집들이 일제히 댕그랑댕그랑 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마틴이 황급히 조지에게 말했다.
"조지, 저건 집합하라는 종이다. 곧 가봐야겠어."
"알겠다. 어서 가 봐."
마틴은 달려가려다가 곧 뒤돌아 섰다. 그리고는 철판 구멍에 입을 대고 빠르게 말했다.
"조지, 너한테서 빌린 초록 셔츠 말야. 이곳에 있는 여자한테 뺏겼어. 하지만 꼭 도로 찾을 테다."
마틴은 말을 끝내자 나는 듯이 집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구멍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조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셔츠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건데, 저 녀석이 성실한데는 정말 놀랐어."
그리고 내일은 2년만에 처음으로 학교를 결석하더라도 다시 문안을 오리라 생각했다.
 
 
저 소년을 잡아라!
 
수요일.
물론 조지는 마지막 시간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부엌 식당 탁자 위에 있는 신문을 펼쳐, 마틴에 대한 기사가 나 있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우선 마틴이 살던 집으로 가 보았다.
뜰에는 몇 십 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이 놀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고양이 할멈이 먹이를 주고 있었다. 고양이 할멈은 조지를 보자,
"얘, 너 여기 살고 있는 이상한 사내아이와 친구냐?"
하고, 물었다.
"네에. 그래요."
"그 애가 그저께 저녁부터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다뇨?"
조지는 무척 아주머니가 경찰에 밀고하지 않았어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혹시 그렇지 않았으면 더욱 난처하게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러자 고양이 할멈은,
"그 애도 적당한 때 이 집을 잘 나갔어. 이 집도 이젠 곧 철거된다니까 말야. 나와 이 집의 고양이들과의 교제도 인제 곧 끝장이란다."
고양이 할멈은 속상하다는 듯 고기들을 휙휙 내둘러 던졌다.
조지는 고양이 할멈과 얘기하고 있다가는 시간만 허비된다 싶어, 캐시를 부르러 가기로 했다. 그러나 대문간에서 갈색 보자기를 들고 부리나케 들어오는 캐시와 마주쳤다.
캐시는 조지의 얼굴을 보자 대뜸 말했다.
"저어, 지금 막 루크한테서 전화가 왔었어."
"아, 뭐라고?"
"루크는 에스 디 통신의 에번스씨하고 의논을 했는데, 에번스씨는 만일 마틴의 비밀을 지키고 싶다면, 보호센터에 넣어두는 건 위험하니 마틴에게 탈주를 권하는 것이 좋겠다는 거야."
"그래?"
조지는 손톱을 씹었다. 사실 조지는 어제 보호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공중 전화로 루크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세인트 클리어로 가는 버스 안에서 조지는 언뜻 이런 생각이 났다.
'마틴은 잠을 잘 때엔 자연히 몸에서 푸른빛을 낸다. 만일 같은 방의 소년들이 그걸 알게 되면 큰 소동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어젯밤에는 무사히 지냈는지 모르겠군. 옆에 앉아 있는 캐시에게 그런 얘기를 하자 캐시도,
"그래. 그리고 혹시 누가 마틴의 몸을 조금이라도 밀거나 하면……."
걱정거리는 계속해 생기고 있었다.
그런 걱정 속에 버스 정류장에 내렸을 때, 조지와 캐시는 자연히 걸음을 빨리 하고 있었다.
조지들이 서둘러 걸어가고 있을 때 뒤에는 긴급 자동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앗! 구급차 아냐?"
뒤돌아 본 조지는 사다리 소방차였으므로 놀랐다. 사다리 소방차는 무서운 속력으로 두 아이 곁을 지나갔다. 조지는 가는 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연기 나는 곳도 없는데 대체 어디서 불이 났을까?"
소방차는 끼익 하고 바퀴를 삐걱거리며 좌회전을 하더니 그냥 보호 센터의 넓은 구내로 들어갔다.
"소방차가 왜 보호 센터로 갈까?"
소방차를 따라 보호 센터를 바라다보던 조지가 놀란 소리를 냈다.
"야? 저것 봐라."
보호 센터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3층 건물의 집회실, 그 집회실에서 공중 높이 서 있는 기를 다는 긴 장대 꼭대기에 한 소년이, 마치 의자에 걸터앉은 듯이 오뚝하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캐시도 그걸 쳐다보고는,
"조지, 야단났어. 저건 마틴이야."
"그래, 그런데 어떻게 저런 곳에 올라갔을까?"
"아마도 같은 방에 있는 아이들이 훼방을 놓은 모양이야. 조지, 어떻게 해야 하지? 만일 손을 놓기라도 하는 날엔 저렇게 높은 데서 떨어져 단박 죽게 될 거야."
조지가 달음박질해 갔다. 보호 센터의 철문은 열려 있었다. 구경꾼들이 꾸역꾸역 들어가고 있었다.
구내로 들어가니 더욱 자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틴이 걸터앉아 있는 깃대는, 담쟁이가 엉키어 있는 콘크리트 건물인 집회실의 2층 발코니에서 솟아 있는 것이었다.
10미터 높이는 족히 될 것 같았고,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센터의 소장인 듯한 50세 가량의 남자가 메가폰을 가지고 나와서 깃대 위에 있는 마틴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어어이, 마틴 스미스, 언제까지 거기서 버티고 있을 테냐. 곧 내려와라. 내려오면 난폭한 짓을 한 죄는 용서해 주겠다."
캐시는 조지의 손을 꼭 잡고,
"마틴이 난폭한 짓을 했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요전번처럼 무슨 오해를 받은 걸 거야."
조지는 옆에 서 있는 30세 가량의 구경꾼에게 시치미를 떼고 물어 보았다.
"왜 저 애는 저런 데로 올라갔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다만, 저 애는 새로 들어온 아이인 모양이야. 그것도 의사조차 없는 두메산골에서 온 아이인 모양이구나."
"두메에서요? 어떻게 그걸 아셨어요?"
"오늘 아침에 보호 센터의 의사가 진찰을 하려고 청진기를 꺼내자 소년은 단박 사람 살리라고 소리 치면서 청진기를 빼앗아 갖고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는구나. 그러고는 의사를 밀어내 버리고 방에서 뛰쳐나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말을 들은 조지는 마틴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틴은 아마도 청진기를 본 적이 없었던 거야. 검은 뱀 같아 보이는 것이 쑤욱 나오니까 누구나 처음 보는 사람은 놀랄만하지.'
조지가 마틴과 친구인 줄 모르는 그 사람은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했다.
"저 애 때문에 센터 안은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이 법석이 났지. 그런데 그 애의 모습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밖으로 도망칠 거라 생각하고 경찰에 연락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건조실에 나타났다는구나."
"건조실에요?"
"그렇지. 거기서 발견되어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고는 여러 사람에게 쫓겨 드디어는 숨을 곳이 없어지니 저 높은 깃대로 슬슬 기어올라 갔다는구나. 마술단에 있었던 아이라 아주 몸 가볍게 잘 올라간 모양이야."
그 사람은 구경거리를 재미있어 하는 듯이, 깃대 위에 마틴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지에게는 그런 한가로움이 화가 나 못 견딜 지경이었다.
캐시는 떨리는 소리로,
"조지, 저대로 있다가는 우주 비행접시가 마틴을 데리러 오기도 전에 마틴은 굶어 죽게 돼. 내가 불러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보호 센터 소장이 또 메가폰을 가지고 소리쳤다.
"어어이, 마틴. 앞으로 1분만 더 기다리겠다. 네가 스스로 내려오지 않으면 소방수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널 잡아올 수밖에 없다. 알겠나?"
그러나 마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깃대 끝에 걸터앉은 채로 무언지 곰곰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조지는 마틴에게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누르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1분이 지나갔다. 소장이 소방대 대장과 의논을 했다.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깃대 아래에 구조 그물이 쳐졌다. 소방자동차의 쇠사다리가 슬슬 길어져서 그 끝이 깃대 꼭대기 가까이까지 올라갔다.
소방수가 굵은 밧줄을 메고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마틴은 그쪽에 엉덩이를 둔 채 돌아다보려 하지도 않는다.
소방수가 사다리를 한 칸 한 칸 오를 때마다 조지의 심장은 고동이 높아져 갔다.
'마틴은 휙 뒤돌아보고 소방수를 밀어 떨구려 하지 않을까. 만일 그런 짓이라도 하는 날에는…….'
드디어 소방수는 마틴에게 손이 닿을 만한 곳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 내려다 줄께. 우선 이 밧줄 끝을 네 허리에 둘러매고, 그리고 이쪽으로 손을 내밀어."
"……."
그래도 마틴은 들은 체하지 않았다. 소방수는 화가 나서 손을 쑥 내 밀었다.
그런데 이 때,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마틴의 몸뚱이가 사진 찍을 때의 플래시 전구처럼 청백색으로 확 빛난 것이다.
그리고 마틴의 모습은 순식간에 공중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마술이냐, 최면술이냐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던 사람들은 한동안 멍하니, 아무 것도 없는 깃대 꼭대기만 쳐다보고 있다가 뒤늦게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다.
"이건 고등 마술이다."
"우리가 모두 최면술에 걸려 있었던 거야."
"이건 범죄일지도 모르겠군. 우리들의 주의를 깃대 위에 집중시켜 놀고 한편에서 끔찍한 범행을 한 놈이 있었을 것 같아."
마틴의 초능력을 알고 있는 조지에게조차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최면술이라고 하면 그런 것도 같고, 고등 마술이라고 하면 또 그렇게도 생각이 들었다. 만일 고등 마술이라면 마틴은 그 청백색 광선으로 구경꾼들의 눈을 어지럽게 해 놓고, 깃대를 스르르 타고 내려 도망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마틴은 곧 바로 유령의 집으로 돌아갈 텐데."
이렇게 생각하자 조지는 캐시를 재촉하여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대학 교수 같아 보이는 신사와, 학생 같은 청년의 주고받는 얘기가 귀에 들려왔다.
"교수님, 의견을 들려주십시오. 교수님은 지금 깃대 꼭대기에 오뚝하니 앉아 있던 소년을, 이곳 의사 선생 말대로 과대망상광(자기를 엉뚱하게 위대한 사람이라고 믿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수라고 불린 신사는 낮은 목소리로 또렷이 부정했다.
"하워드 군, 사실은 나는 아까 이 보호 센터의 의무실 옆방에서 그 소년을 넌지시 관찰하고 있었네. 나는 30년 동안의 정신의학 연구의 경험과 명예를 걸고서 명백히 말하네. 그 소년은 과대망상광은 커녕 엄청난 능력과 지능지수의 소유자일세. 나는 그 소년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대단한 흥미를 느끼고 있다네."
"교수님, 교수님은 그 소년이, 그 초능력을 써서 저 높다란 깃대 꼭대기에서 땅 위로 뛰어내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 그러나 아마도 그 소년은 그런 모험은 하지 않았을 걸세. 청백색 섬광으로 우리들의 눈을 어둡게 해 놓고, 그 순간에 집회실 3층의 지붕으로 내려와서, 지붕의 창에서 3층 안으로 숨어 들어가 구경꾼들 틈에 끼여 슬그머니 달아난 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교수님, 그렇다면 그 사실을 한시 바삐 보호 센터의 사무원에게 알려 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냐. 이젠 이미 늦었어. 소란을 크게 할뿐이지."
"그래도……."
아직도 주저하고 있는 하워드에게 교수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워드 군, 조급해 할 것 없네. 사실 나는 4차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그 소년을 다시 한 번 만날 가망이 있다네.
"네, 어디서요?"
이 때 교수라는 신사는 조지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걸 비로소 눈치채고 깜짝 놀라며 황급히 다음 얘기를 삼켜 버렸다.
신사는 이내 기다리고 있는 초록색 고급 승용차에 올라타고 시내 쪽으로 가 버렸다.
조지는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캐시, 지금 그 교수도 마틴은 섬광(번쩍 빛남)으로 구경군의 눈을 어둡게 해 놓고, 집회실 지붕에 뛰어내렸을지 모른다고 했지?"
"그래. 빗물 홈통을 타고 미끄러져 내린 것이 아니냐고 한 네 의견과 좀 비슷한데."
"그렇지. 하지만 이 두 가지 설은 어느 쪽도 맞지 않았을 것 같아. 제 아무리 눈부신 광선으로 남의 눈을 어둡게 했다 하더라도 수십 명의 눈을 오래도록 속일 수는 없지 않겠어?"
조지는 집회실 건물을 다시 한번 노려보았다.
"캐시, 역시 내 생각은 맞지 않았어. 빗물 홈통을 따라 내려오면 아무래도 남의 눈에 띠었을 거야."
"그렇겠어."
캐시도 맞장구를 쳤다. 이 때 조지는 엉뚱한 말을 했다.
"빗물 홈통 바깥쪽을 따라 내려오면 발견될지도 모르지만 만일 빗물처럼 홈통 속을 내려온다면 아무도 모를 거야."
캐시는 픽 웃으며, 말했다.
"조지, 너 정신 있니7"
"그야 정신없이 한 말이 아냐. 캐시 너는 마틴이 초능력의 소유자라는 걸 잊고 있어. 그 애는 필요하다면 제 몸을 조그만 반딧불로 변하게 할 수도 있어. 반딧벌레의 작은 불이 되어 저 빗물 홈통을 한달음에 미끄러져 내려온다. 그리고는 하수도에라도 숨어 버리면 절대로 발견되지는 않아."
캐시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조지, 멋지다! 굉장한 추리야. 그래 지금부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니?"
보호 센터 안은 아직도 사람들이 있었다.
선생의 명령을 받은 것이리라. 보호 센터에 수용돼 있는 소년들은 테이블 밑과 광 같은, 아무튼 사람이 숨을 수 있을 만한 곳이면 모조리 뒤지고 있었다. 구경꾼들도 2, 30명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뜰의 여기 저기 구석진 곳을 뒤지고 있었다.
"캐시, 우리도 저 사람들 틈에 끼여 찾아보자."
조지는 용기를 내어 건물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우선 깃대에 가장 가까운 빗물 홈통을 조사했다. 홈통을 통해 내려오는 물은 배수구에 흘러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조지는 배수구에 얼굴을 갖다대고 소리를 죽여 가며,
"마틴, 마틴, 어디 숨어 있니?"
하고, 불러 보았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어 낙담하고 있는데 캐시가 말했다.
"마틴은 여간 깨끗한 걸 좋아하지 않았어. 이런 곳에 숨어 있을 리가 없어요."
"그럼 어디 있을 것 같니?"
조지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사나와졌다.
그러자 캐시는 건물에 붙어 있는 쇠로 된 가스 미터 박스를 가리키며,
"조지, 마틴은 유령의 집에 있을 때 이것 비슷한 모양의 스토브 안에 숨어 있지 않았어? 어쩌면 이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조지는 손뼉을 탁 쳤다.
"캐시, 좋은 생각을 했다. 어디 들여다 봐."
캐시가 가스 미터 박스의 열쇠 구멍에 눈을 바싹 갖다 대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등뒤로 돌려 빠르게 조지에게 신호를 보냈다.
조지가 캐시를 대신하여 들여다보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 희미하게 청백의 빛이 어려 있었다. 그건 틀림없는 마틴이다. 마틴은 푸른 불빛으로 변해 가지고 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조지는 사방을 둘러보고 난 뒤에 열쇠 구멍에 입을 대고, 기뻐서 소리쳤다
"마틴, 나야. 조지야. 지금 곁에 아무도 없으니 어서 나와."
그러자 이내 마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 돼. 열이 식을 때까지 2, 3일 여기 숨어 있고 싶어. 또 그런 소동이 일어나면 정말 싫으니까."
"네 기분은 잘 알겠다. 그렇지만 만일 가스 미터의 검침원(미터 바늘을 조사하는 사람)이 와서 미터가 희푸르게 빛나고 있는 겉 보는 날이면 반드시 서비스 차를 부를 거야. 그렇게 되면 또 야단법석이 나고 말 거 아니야?"
"알겠어. 그럼 탈출을 해 볼까. 하지만 예사 때의 몸뚱이로선 안 돼. 내 몸이 들어갈 만한 무슨 조그만 깡통 같은 게 없겠니?"
"깡통으로 어떡하려고?"
"푸른 불빛 그대로 그 속에 숨는 거지."
"여긴 깡통이 없는데."
조지가 사방을 둘러보고 있을 때 캐시가 손에 들고 있던 갈색 두 겹 종이 봉지를 내밀었다.
"조지, 여기 오기 전에 마틴의 집에 가 봤었어. 그러니까 이층 한 구석에 마틴의 비스킷이 5, 6개 남아 있길래 이 봉지에 넣어 가지고 왔었어. 이 봉지 속에 들어갈 순 없을까?"
조지가 그걸 마틴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자 마틴이 ,
"깡통이 없으면 봉지라도 좋아. 되도록 주둥이를 크게 벌려 놔 줘. 자, 들어간다. 하나, 둘, 셋……."
희푸른 빛이 가스 미터 박스의 열쇠 구멍에서 뛰어나와 순식간에 캐시가 들고 있는 갈색 봉지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캐시는 급히 봉지 주둥이를 막았다.
이미 사방은 저녁 어둠이 서리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봉지 전체가 형광등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이 때, 조지는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캐시의 손을 잡고
"자, 어서 밖으로!"
하고, 재촉했다.
두 아이는 마치 범죄 현장에서 도망치는 범인처럼 숨을 할딱이며 보호 센터의 구내에서 빠져 나왔다.
재수 좋게 시내행 버스가 이내 왔다. 캐시는 마틴이 들어 있는 종이 봉지를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버스 창과 제 몸 사이에 놓았다.
그러자 종이 봉지가 부스럭거렸다. 조지는 금방 알아채고 주의를 주었다.
"캐시, 파랑 벌레가 숨이 막히겠다. 봉지에 숨구멍을 조금만 뚫어 줘."
"그렇겠구나."
캐시는 곱슬머리를 묶은 머리핀으로 종이 봉지를 찔러 구멍을 내 주었다. 그러자 1분도 채 안 가서 마틴은 조용해졌다.
30분 가량 걸려 집에서 가까운 울무울에 도착했다.
조지 일행은 공원의 사람 기척이 없는 숲 속에 들어가서 종이 봉지를 열었다.
희푸른 빛이 뛰어나오더니 확 빛나는 순간 사람으로 변했다.
"고맙다. 너희들 덕택으로 살았다."
마틴은 싱글벙글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조지와 캐시는 마치 굉장한 마술을 구경한 것처럼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마틴은 회색 셔츠 밑에 손을 넣더니 차곡차곡 개진 베 같은 것을 꺼내어 조지에게 주었다.
"마틴, 이건 내가 네게 빌려 준 셔츠 아냐?"
"그래. 찾아 가지고 온다고 약속했잖아."
"그래서 년 건조실에 뛰어들어갔구나. 그런 어려운 짓은 안 해도 좋았는데……."
그러면서도 조지는 몹시 반가웠다. 왜냐 하면 셔츠 값을 어머니에게 내면 용돈은 거의 다 없어지기 때문이다.
마틴은 캐시로부터 조금 전까지 제가 들어가 있던 비스킷 봉지를 받아들고,
"그럼 내일 다시 만나자. 난 이틀 밤이나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몹시 고단하거든."
하며, 유령의 집을 향해 나는 듯이 걸어갔다.
"앗, 잠깐 기다려."
조지가 뒤따라가서, 교수라고 하는 검은 옷의 신사가 아마도 마틴의 정체를 알아 낸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어쩌면 오늘밤에라도 빈집을 조사하러 올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일렀다.
그러자 마틴은,
"아, 내가 보호 센터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있을 때 옆방에서 살그머니 나를 살펴보고 있었던 사람이다. 걱정 마. 조심할게."
하고는, 정말 피곤한 듯한 걸음걸이로 숨어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지는 감탄한 듯이 중얼거렸다.
"파란 불이 되기도 하고 봉지 속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이웃 방의 사정까지 알다니, 과연 마틴은 초능력의 주인공이야!"
그러나 캐시는 무심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런 만큼 나는 앞으로의 일이 무서워졌어. 만일 마틴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러 봐. 그 때는 마틴의 별나라 사람들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마틴을 데리러 오는 비행접시가 오는 일요일 밤까지는 앞으로 나흘, 아무튼 이런 대로 무사히 지냈으면 좋겠지만……."
두 아이의 모습을 공원에서 그 때 그 노인이 유심히 보고 있었건만, 조지나 캐시는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다.
 
 
빛나는 침대 속에서
 
다음 날 토요일 오후 3시, 조지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마틴의 집으로 달려갔다. 마틴은 이층 방에서 조지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틴, 검은 양복의 교수가 오지 않았었니?"
"왔었어. 오후 1시 좀 지나서, 경관 한 사람과 조수인 듯한 사람을 데리고 녹색 차를 타고 왔었어. 나는 네가 일러준 대로 곧 푸른 광선이 되어 환기통속에 숨어 있었어."
"그거 잘 했다. 그래 그 사람들은 이 방에까지 올라 왔었니?"
"그래.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들어와서 구석구석 돌아보며 찾고 있었어. 아주 끈질기게 말야."
"그랬어?"
"경관이 먼저 단념을 하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에게 '박사님, 그 소년은 여기 돌아오지 않았군요. 다른 빈집을 찾아 숨은 것 같습니다' 하고 말했어. 그래도 검은 양복은 "여기 있는 것 같은데……." 하며 버티더라. 조금 전에야 겨우 떠났는데 들키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하고 있었단다."
얘기를 들은 조지는, 마틴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한시 바삐 딴 곳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또 다시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이 확실했다. 그래서 마틴에게 남아 있는 비스킷을 모두 갖게 하고 같이 방을 나왔다.
캐시를 불러내어 의논을 하니 캐시도,
"그렇구나. 나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더구나 나는 여기 자주 오기도 어렵게 됐어. 아빠와 엄마가 오늘밤에 여행에서 돌아오시니까 말야."
둘은 궁리를 하였지만 어디로 옮겨야 할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루크 디에게 전화를 걸어 봤다. 루크 디는 긴장해 가지고,
"어디 의논을 해 보자. 어디서 만날까? 그렇군, 울무울에 그린 컵이라는 커피집이 있지?"
"아, 커피잔의 모양을 딴 네온사인이 현관 밖에 걸려 있는 그 커피집 말이지?"
조지는 캐시와 마틴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공원 앞을 지날 때, 전날 마틴이 도와 드린 노인이 언제나처럼 쓸쓸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조지 일행을 보고는 얼굴을 들어 눈으로 인사를 했다. 조지들도 '안녕하셔요'하고 인사를 했다. 30 걸음쯤 가다가 캐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지금 그 할아버지 눈에서 푸른빛이 나지 않았니?"
"아냐. 보통 눈이었어. 캐시 네 기분 때문일 거야."
조지는 상대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린 컵이라는 커피집에 닿은 조지는 방 안쪽 칸막이 자리에 앉아서 루크 디를 기다렸다.
루크 디는 10 분쯤 지나서 들어왔다.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일요일 오후까지 마틴을 어디에 숨겨 두어야 하는가에 대해 의논했다. 그러나 좋은 생각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애가 탄 조지가 루크 디에게,
"에스 디 통신의 에번스씨한테 의논해 보면 어떻겠니? 그 사람, 요전번 사고 때도 경관을 놀려주기까지 했으니까 필시 좋은 의견을 내주리라 믿어."
그러나 루크 디는 머리를 저으며,
"그건 안 돼."
하고, 냉담하게 대답했다
"왜? 어째서?"
"어제 내가 그의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더라. 그래 하는 수없이 에스 디 통신사로 걸어 보니까, 에번스라는 사람은 없다지 않아?"
"이상하구나."
캐시는 마틴을 돌아다보고 바짝 긴장했다.
어쩌면 저렇게도 태평일까! 모두가 마틴의 일로 궁리하기에 골몰해 있는데 자기는 꾸벅꾸벅 졸고 있지 않는가. 그뿐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서 마틴의 몸뚱이는 희푸르게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마틴, 자지 마!"
캐시가 흔들어 깨웠다. 마틴은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내가 숨을 집은 정해졌어?"
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쉬잇, 가만가만 얘기 해."
조지가 화난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점원이 놀란 얼굴로 보고 있었다. 조지는 황급히 마틴의 손을 끌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시간은 벌써 6시를 지나 사방에 어둠이 서리기 시작하고 커다란 그린 컵의 네온이 빛나고 있었다. 이때 조지의 머리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네온사인처럼 번쩍였다.
"그렇다. 좋은 생각이 하나 났다. 마틴, 저 네온등 간판 속에 숨는 거야. 저 속에 라면 청백색으로 네 몸이 빛을 발해도 같은 불빛, 즉 보호색이니까 아무 염려도 없는 거야."
"조지, 과연 멋진 아이디어다. 그런데 저 네온등, 가게가 문을 닫을 땐 꺼 버리지 않을까?"
"아니야. 걱정 없어. 저기 봐. 철야 영업 연중 무휴라고 써 있지 않니. 즉 이 네온사인은 손님을 부르기 위해 밤새도록 켜 있을 거야."
조지는 마틴에게 다시 물었다.
"어때, 마틴. 멋진 장소지?"
"그래 그래."
마틴은 대답은 했지만 정말 맘에 드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난 아무 데나 다 좋으니까."
"그럼 이곳으로 정하자. 내일은 금요일이지만 우리 학교 창립 기념일이기 때문에 오전 10 시부터 시작이야. 7시 반에는 형편을 살피러 올 테니까 그때쯤 해서 저 네온사인에서 내려와 저기 있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어 줘."
마틴은 어지간히 졸리운 듯 희푸르게 빛을 내더니, 그냥 쑤욱 날아올라 커피잔 모양의 커다란 네온사인 등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네온 빛이 밝기 때문에 밖에서는 마틴의 불빛은 전혀 알아 볼 수 없었다.
조지와 루크는 안심하고 돌아오려는데 캐시가 한 마디 했다.
"저런 데서 자다가 마틴이 감전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터널 호텔
 
다음날은, 금요일. 조지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늦게 들어오는 것은 걱정하고 화도 내며,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지만, 일찍 나가는 것은 그다지 관심 두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습성을 이용한 조지의 작전 승리였다.
약속한 7시 반보다 약간 일찍, 그린 컵 커피점에 도착한 조지는 깜짝 놀랐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마틴이 전날 본 교수와 무언지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꽤 중요한 얘기인 것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진지한 얼굴이었다.
5분쯤 지나서 교수는 조지의 얼굴을 흘낏 보더니 급한 듯이 가 버렸다.
조지가 달려가서 물었다.
"마틴, 뭘 했어?"
"염려할 것 없어. 어젯밤에는 광선 침대 안에서 푹 잘 잤어. 좋은 장소를 구해 주어서 고마왔어."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교수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니?"
"뭐, 별로……."
"마틴, 우리는 친한 친구야. 말해 줘."
"응, 사실은 그 교수가 어제부터 우리들의 뒤를 쫓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내가 네온사인 안에 숨는 것을 보고 밤새도록 이 근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아. 나는 아침에 네온사인에서 내려와 가지고 이 버스 정류장에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7시가 지나자, 어디선가 그 신사가 저 앞길에 나타나더니 내 곁으로 와서 내게 불쑥 한마디 질문을 했어."
"뭐라고?"
"'넌 행성에서 왔지?‘ 하고."
"그래 넌 바른 대로 대답했니?"
"아, 했지. 그러니까 그 사람이 또 물었어. 데리러 오는 비행접시는 언제 도착하느냐고. 그래서 나는 가르쳐 줬어. 오는 일요일 오후 8시라고.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러냐. 그 여자가 한 말과 같군' 하고 중얼거리더니 그냥 가 버렸어."
"마틴, 너는 정말 우리들의 마음을 몰라주는구나. 그 사람은 경찰과 정보를 주고받고 있는 거야. 지금쯤 필시 경찰 본부에 연락을 하고 있을 거란 말이야. 여기 있다가는 단박 붙잡힐 테니 아무튼 어디로든 피해 가자."
조지가 마틴의 팔을 잡고 다른 곳으로 가려할 때 캐시가 왔다.
캐시는 조지로부터 방금 있었던 얘기를 듣고,
"아무 데나 한 곳에 있으면 발견되니까 교통 기관을 이용하는 게 어떻겠니?"
"캐시, 교통 기관이라 하지만 그것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 버스, 기차, 택시……."
"버스는 금방 종점에 닿아 버리니까 좋지 않아. 기차라면 먼 데까지 갈 수 있어. 택시는 비싸고……. 참 지하철은 어떻겠니? 거기라면 밖에 나오지만 않으면 오래오래 타고 있을 수 있으니까."
"지하철! 그게 좋겠다. 마침 내게 회수권도 있고."
조지 일행은 곧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전차를 탔다. 마틴은 빠르고 시원하고 게다가 좌석이 많이 비어 있는 지하철이 제일 맘에 드는 것 같았다. 둘레둘레 차안을 돌아보기도 하고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기도 하며, 아주 분주하게 굴었다.
5분쯤 걸려 전차는 세인트 제임스 역에 도착했다.
그 때 조지의 머리에 또 좋은 생각이 번개처럼 번뜩였다.
"캐시, 마틴, 여기서 내리자."
조지는 마틴의 손을 끌고 플랫폼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전차의 도어가 닫히고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캐시가 숨가쁜 소리로
"웬일이니? 차안에 경관이라도 타고 있어서 꽁무니를 뺀 거니?"
"아냐. 그게 아니고, 아주 좋은 피신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지는 선로 건너편 플랫폼의 통근객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걸 알자, 일부러 유유히 벤치에 걸터앉았다.
전차가 들어와서 통근객들을 싣고 가 버린 후엔 양쪽 폼 모두 다른 손님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다음 전차가 올 때까지는 10분의 시간이 있다.
"캐시, 너 3년 가량 전에 이 세인트 제임스 역에서 지선(갈려나간 철도선)이 벗어나 있었던 것 생각나니?"
"알고 있어. 식물원 행이었지."
"그래. 그런데 고속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자 손님이 줄어들어 지하철국에서는 그 지선을 폐지해 버렸어. 지금은 선로도 뜯어내고 길고 긴 광이 되어 있을 거야. 사람도 좀체 들어가지 않는 곳이지."
"알았다. 조지. 넌 터널 속에 마틴을 숨겨 두려는 거지?"
"그래. 좋은 생각이지?"
조지는 캐시와 마틴을 데리고 폼의 끝으로 달려갔다. 그러니까 갈아탈 때 쓰던 통로가 있었다. 벽의 하얀 타일 위에 '식물원 행 폼'이란 안내 표지가 표를 덧불인 채 남아 있었다. 더욱이 통로 한 가운데에는 목척까지 세워져 있었다.
조지 일행은 목척을 넘어 들어갔다.
그러자 휑한 플랫폼이 나왔다. 3년 전까지는 거기 전차가 와서 많은 손님을 토해 놓기도 하고 들이마시기도 한 데건만 이제는 텅 빈 자리가 되어 침침한 등불이 켜 있을 뿐이었다.
선로였던 곳에는 레일도 침목도 없고 배수구의 물만 조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저 안쪽에는 어두운 터널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창고로 쓰이고 있다는 얘기였지만, 부서진 연결기와 고물이 된 탄차가 뒹굴어져 있을 뿐이었다.
"마틴, 미안하지만 이 터널 호텔 속에서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밤만 견디어 보지 않겠니? 물론 매일 우리가 찾아와 줄 테니까."
조지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마틴에게 지하철 회수권을 주고는 연민(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의 정을 느끼면서 세인트 제임스 역으로 돌아왔다.
그 날, 조지는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마틴을 찾아가지 못한다. 이번 2주일 가량을 마틴과 사귀느라고 학교 숙제가 산더미 같이 밀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으므로 조지의 학교도, 애덤스씨의 회사도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애덤스씨네 아침 식사는 다른 날과 달리 8시에 시작되어 30분이나 걸렸다.
식사를 마치자 애덤스씨는 신문을 펴 보다가 갑자기
"이거 대단한 뉴스로군!"
하고, 그 나이답지 않게 큰 소리로 말했다.
비밀을 가지고 있는 조지는 깜짝 놀라며,
"아버지, 세인트 클리어 소년 보호 센터에 나타난 우주인에 대한 거예요?"
하고, 물었다.
아버지 애덤스씨는 눈을 깜박이며,
"뭐랬니, 지금? 우주인이 나타났다고 했냐?"
조지는 황급히 손을 저으며 ,
"아뇨, 그런 말이 아네요."
이 때 어머니가 부엌에서 에이프런에 손을 닦으며 들어 와서 말했다.
"조지, 너 요새 좀 이상하구나. 어제도 네 책상 위를 치우다 보니 없어졌던 초록색 셔츠가 있었어. 그건 분명히 바닷가에서 도둑맞았다고 하지 않았니?"
조지는 움쭉달싹할 수 없는 위기에 부닥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때 애덤스씨가 무의식적으로 구원을 해주었다.
애덤스씨는 신문을 두 손으로 펴들고,
"시드니 항구 밖 바다에서 긴급 대합동 연습이라, 이건 좀 수상한데.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군."
어머니는 이번엔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여보, 내가 아이들과 얘기할 때는 방해하지 말아 줘요."
"그런가, 이거 잘못했구려. 그렇지만 이건 중대한 사건이야. 당신도 조금쯤은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리라 믿는데……."
"그래야 하나요?"
듣고 있던 조지는 '됐다!' 하고 마음을 놓았다.
아마도 형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논쟁 쪽으로 발전 할 것처럼 보였다.
애덤스씨는 신문의 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걸 보오. 어찌 세기의 대사건이 아닌가7"
애덤스 부인이 소리내어 기사를 읽었다.
"국제 안전 위원회는 지난 밤, 긴급 이사회를 열고 시드니 항구 밖 바다에서 각국 해공군(해군과 공군)에 의한 임시 대연습을 행하기로 결정했다. 참가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아세안의 여러 나라,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예(알짜로 골라 뽑아서 날쌔고 용맹한 부대)이다. 그 일부는 이미 시드니 남쪽 바다로 급거 출동중이며 다음 일요일에는 줄잡아 50척의 군함과 1천대의 신예(새롭게 출현해서 기세나 힘이 빼어남) 비행기가 정해진 지점에 도착할 예정이다."
어머니는 남편 애덤스씨에게 신문을 돌려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만 연습이죠.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잖아요."
"여보, 이런 뉴스는 활자로 나와 있지 않은 곳에 진상이 감춰져 있는 거요. 평소에 발걸음이 맞지 않던 여러 나라가 갑자기 모인다는 건, 긴급 이사회가 중대하고 위험한 뉴스를 얻었기 때문인거요."
"이를테면 어떤……."
"말하자면 우리 오스트레일리아에 유사 이래(역사가 생긴 그 뒤)의 위험한 일이 닥쳐와 있는 걸거요."
"알겠어요. 어떤 나라가 이 시드니를 공격해 오는 건가 보죠. 대체 어떤 나라일까요?"
어머니의 손이 약간 떨리는 것 같았다. 애덤스씨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지금 이 지구상에는 남의 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해도 좋겠지."
"그럼 다른 행성으로부터의 공격인가요?"
"그렇소.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지 않소?"
그러자 어머니는 한숨 놓으면서 말했다.
"그런 예상이랄까 상상이랄까 하는 것은 대개 안 맞기 일쑤예요. 난 안심했어요."
조지를 캐어묻는 것도 잊어버리고 어머니는 부엌으로 가 버렸다. 그러나 새로운 걱정에 조지의 가슴은 점점 크게 뛸 뿐이었다.
'아버지 말씀 대로다. 아마도 그 교수가 국제연합의 안전 위원회에 일요일 밤 8시 마틴의 별에서 비행접시가 시드니로 온다고 보고를 한 것이리라. 그래서 안전 위원회는 국제연합에 긴급 출동을 명령한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건 정말 큰일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마틴을 데리러 오는 비행접시는 국제연합의 손에 격추되어 버릴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마틴의 행성은 지구를 응징(잘못을 깨우쳐 뉘우치도록 징계함)하려고 비행접시 함대를 파견해서 쳐들어오게 될지도 모른다.
마틴의 말에 의하면 그의 행성의 과학은 지구보다 적어도 몇 천 년은 진보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과학력으로 본격적인 공격을 해 온다면 지구는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 버린다. 당장 마틴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엉덩이가 들썩들썩 좀이 쑤신 조지는 아침밥을 먹기가 바쁘게,
"저, 잘 아는 과학자한테 가서 행성으로부터 공격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떤지 알아보고 오겠어요."
하고는, 총알같이 집을 뛰쳐나왔다.
세인트 제임스 역에 도착한 조지는 캄캄한 터널을 향해 작은 소리로,
"마틴! 마틴!"
하고, 불렀다.
이윽고 마틴이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조지는 마틴이 피곤해 보이므로,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하고, 물었다.
"아니, 별일 없었어. 아참, 이걸 돌려주어야지."
마틴은 단 한 장 남은 지하철 회수권을 조지 앞에 내밀었다.
조지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마틴, 넌 이 차표를 쓰면서 시드니 시내를 돌아 다녔니?"
"그랬지. 네 회수권을 많이 써서 미안하다."
"그거야 좋지만 위험한 일을 당하진 않았니?"
"아니, 정말 즐거웠어."
"그건 어제 낮이겠구나. 그래 어디 어딜 가 봤어?"
"숲과 못이 있는 공원이 차창에서 내다보이기에 내렸지."
"알겠다. 하이드 파크다. 거기선 또 어디로 갔었니?"
"다음은 높이 10미터나 뿜어 올리는 분수가 있길래 한참 구경을 했지 누런색 피부의 사나이가 내 사진을 정면에서 몇 장이나 찍었단다."
"아치형의 둥근 분수였겠군. 누런 색 피부라면 아마 아시아 사람일 거야. 그 사람이 비밀 첩보부원, 다시 말하면 스파이 같아 보이진 않았니?"
"아니야. 그 사람은 단순한 여행자였어."
"그래? 정말 스파이라면 사진도 살짝 찍을 테니까, 그러니까 수상한 사람은 안 만난 셈이구나."
"아, 수상한 사람 대신 옛적 친구를 만났어."
"옛적 친구?"
"그래. 내가 전차를 타고 있으니까 그 사나이가 올라와서 바로 내 앞자리에 앉았어."
"누구야. 공원에서 자주 본 그 노인?"
"아냐. 그 검은 상자를 가슴에 달고 파출소에서 내가 위험했을 때 구해 준 사람 말야."
"뭐? 그 사람에게 들켰구나. 그래 무슨 얘기라도 했었니?"
"응, 언제까지 지구에 있을 거냐고 묻기에 바른 대로 대답해 줬어."
"마틴, 너 같은 사람을 이 지구에서는 너무 고지식한 바보라고 해. 알겠니? 내 말을 잘 들어 줘. 그 사람은 에스 디(SD) 통신의 조사원이라고 하고 다니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아무튼 그 자는 검은 양복의 교수 이상으로 정체불명의 사나이야. 네 비밀을 전문적으로 캐고 있는 국제 안전 위원회의 비밀 공작원인지도 모른다."
조지가 이렇게 말하자 마틴은 배를 움켜쥐고 웃어댔다.
"그 사람이 말이야? 이건 재미있는 얘기구나. 하지만 그건 오해야. 조지, 안심해. 그 사람은 그런 큰 인물이 아니야. 너한테만 살짝 털어놓으마……."
그러나 조지는 마틴의 얘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소리쳤다.
"마틴, 좌우간 지금 굉장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내일 일요일 밤, 너의 비행접시가 너를 데리러 지구에 나타나면, 지구의 해군과 공군은 전력을 다해 비행접시를 쏘아 떨어뜨리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조지가 이렇게 말하자 그 대단한 마틴도 안색이 싹 달라졌다.
"뭐라고? 나를 데리러 오는 비행접시를?"
그리고는 좀 떨리는 소리로,
"그래, 지구의 군대는 어떤 병기로 우리 비행접시를 공격하는 거니?"
"글쎄, 우선 제트기가 로켓탄으로 전쟁을 시작하겠지. 다음에 군함이 곡사포. 아, 그리고 만일 미국의 신예군함이 오면 살인 레이저 광선으로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뭐,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마틴."
마틴은 그제야 후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지금 네가 말한 것 같은 병기는 우리별에서는 고대 박물관에서밖에 볼 수 없어. 우리들 행성의 비행접시는 레이저 광선을 받아도, 로켓탄을 맞아도 꼼짝도 안 하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또 그 공격을 손쉽게 피하는 장치도 가지고 있고, 때로는 적의 병기를 거꾸로 이용해서 공격자를 전멸시킬 수도 있다."
이번에는 조지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마틴, 부탁이다. 대지급으로 너를 데리러 오는 비행접시에 연락을 해줘. 그래서 어떨 일이 있더라도 지구 군대와 싸우지 않도록 네가 엄중히 주의를 시켜다오."
마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지금은 전파 상태가 나빠서 안 되겠지만 오늘밤에 꼭 터널 안에서 연락할 테니 안심해. 그건 그렇고, 내가 지구에 있는 것도 앞으로 하루 반밖에 안 남았구나. 오늘은 어디로 데리고 가 주겠어?"
태평스런 마틴의 태도와 명랑한 목소리에 조지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날 하루, 조지는 마틴에게 시드니 시내의 박물관과 오페라 하우스, 미술관 등을 안내해 주었다.
어디에서나 마틴은 대단한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조지도 안내해 준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미술관에 있는 프랑스의 유명한 대가의 작품 앞에서,
"흥, 이건 근사한데. 하지만 나라도 앞으로 석 달만 공부하면 이런 것쯤은 그릴 수 있어."
하고 말했을 때는 누가 알아챘을까 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나 다행히 경관에게 눈치 채이지 않고 오후 6시경 세인트 제임스 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럼 안녕!"
마틴은 조지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어두컴컴한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조지는 저런 곳에서 자야만 하는 마틴이 가엾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만약 오늘밤을 우리 집에서 재워 준다면 마틴은 얼마나 좋아할까?'
이런 생각을 하니 뒤쫓아가서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이 불 일 듯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아무래도 양친에게 모조리 얘기를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조지의 아버지 애덤스씨는 비교적 완고한 분이었다. 조지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마틴이 우주인이란 걸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마틴에게 바로 그 수직 뜀뛰기를 시켜 보이면 단번에 알아 줄 테지만, 그 때는 크게 놀라서 경찰에 연락할 것이 뻔했다.
'역시 안 되겠어.'
조지는 발길을 돌려 세인트 제임스 역의 플랫폼을 향해 걸어갔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조지, 과학자는 행성으로부터의 내습(습격해 옴)에 대해서 뭐라고 하니?"
하고, 물었다.
조지는 잠시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곧 아침의 일이 생각났다.
"과학자는 이렇게 말하던데요. 몇 천 광년이나 되는 먼 행성에서 이 지구까지 날아온다면, 그들이 가진 과학의 힘은 지구와 비교해서 몇 천년 앞서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요."
"흠, 우리는 아직 화성에도 못 갔으니까 말이지. 그 말이 옳아."
"그 과학자는 이런 얘기도 했어요. 그런 방문객은 만일 지구의 군대가 대항해 싸운다 해도 가볍게 피하며, 상대를 하지도 않을 거라고요. 마치 큰 어른이 아기가 달라붙어도 웃고만 있듯이 말예요."
조지가 생각해 낸 얘기가 아니고 행성인인 마틴의 얘기를 바탕으로 해서 한 말이라 훌륭한 대답이 되었다. 과연 애덤스씨는 감탄하여,
"그 과학자의 머리는 대단한 거다. 대체 어디 살고 있는 사람이니?"
하고, 물었다.
"저어 터널…… 아니, 그게 아니고, 세인트 제임스 역 근처에요."
"그러냐, 언제 한 번 아버지에게도 소개시켜 주지 않겠니?"
"네, 될 수 있으면요."
조지는 이것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므로 건성으로 대답했다.
 
 
위험한 일요일
 
행성에서 온 소년 마틴이 지구를 떠나는 일요일 아침은 제트기의 폭음과 함께 밝았다.
애덤스씨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며,
"연습치고는 엄청나기도 하고, 역시 강력한 외적이 쳐들어오는 것인가. 오늘은 위험한 일요일이 될지도 모르겠군."
하며, 연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어머니도 조지도 무관심하니까,
"그럼 교외로 드라이브나 갈까?"
하고, 말했다.
조지는 무슨 핑계를 대고 빠져나가나 걱정이 되었다. 그 때 마침 캐시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아, 조지니? 오늘은 기어코 최후의 날이지?"
"그래."
"루크와 데이비드도 불러서 같이 어디 안 가겠니?"
"글세, 잠깐 기다려 줘."
조지는 어머니에게 의논을 했다. 어머니는 교외 드라이브는 생각이 없었던 듯, 간단히 허락을 해 주었다.
조지는 캐시에게 세인트 제임스 역으로 오라고 하고는 이달치 남은 용돈을 가지고 현관을 나섰다.
그러자 어머니가 부엌과 복도 사이의 칸막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조지, 오늘은 바다로 가선 안 돼."
"왜요?"
"오늘부터 시드니 항구 밖 바다에서 대연습을 하게 되어 많은 군함이 들어와, 어느 거나 민간 선박보다는 빠른 스피드로 바다를 달릴 테니까 민간 선박과의 사이에 니어미스(이상 접근)가 생길지도 모르는 거야. 배 같은 것 타선 안 돼."
"네 , 알았습니다."
대답하면서도 조지는 어머니의 세심한 염려에 놀랐다. 확실히 오늘은 시드니 항구 밖 바다에 위험이 가득 찰 것이다. 더구나 위험을 크게 폭발시킬 핵(사물이나 현상의 중심이 되는 것)이라고도 할 마틴과 동행이다.
조지는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아무쪼록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떨며 지하철역을 향하여 갔다.
세인트 제임스 역 플랫폼 끝 쪽에서 캐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캐시, 용케 잘 나왔구나."
조지가 말하자 캐시는,
"엄마 아빠가 돌아오셨기 때문에 나오기가 어려웠지만, 뭐라 해도 오늘이 마지막 날인걸……."
캐시의 목소리에도 마틴을 무사히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둘은 나란히, 폐지된 터널로 들어가서 작은 소리로 마틴을 불렀다.
마틴은 비스킷을 씹으면서 나왔다.
"여어, 조지, 캐시, 갈 잤니? 지금 막 식사를 하던 중이야. 잃어버리고 떨어뜨리고 해서 준비해 온 비스킷은 꼭 1개가 남았을 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밤 비행접시로 돌아가지 않으면 굶어죽게 되는 거야."
그러면서 마틴은 밝은 얼굴로,
"그런데 오늘은 어디로 데려가 줄거니?"
하고, 물었다.
"마지막 날이니까 네가 가보고 싶은 곳으로 안내해줄게."
"그래? 그럼 요전에 갔던 동물원에 같이 가 줘."
"또 코끼리랑 표범들이 으르렁대는 꼴을 보고 싶니?"
"그놈들은 으르렁거리는 게 아니야. 사실은 나를 환영해 주는 거란다."
뛰어난 텔레파시(정신 감응)의 소유자인 마틴에게도 자기가 동물들의 눈에는 수상한 놈으로 보인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기도 어렵고, 마틴이 굳이 바라는 것이라 조지도 그의 청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요전번처럼 울무울의 부두에서 연락선을 타고 동물원을 향해 갔다.
어머니가 말해 준 대로 끊임없이 해군 함정이 바다를 오가고 있었다. 조지는 어머니의 주의를 듣지 않고 바다로 나온 것이 양심에 걸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틴은 연락 보트 갑판 난간에 기대서서 사방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다가 본토(여기서는 시드니를 말함)와 매단 다리로 이어져 있는 반도(세 면은 바다에 싸이고 한 면은 육지에 잇달린 땅)가 보이자,
"조지, 저건 뭐냐?"
하고, 물었다.
"아, 저건 반도인데도 가든 섬이라고 부른다."
"그래? 저게 가든 섬이라? 알았다."
"왜 그런 건 묻니?"
"응, 오늘 아침 일찍, 나를 데리러 오고 있는 비행접시로부터 연락이 왔었어. 오후 8시 예정대로 가든 섬과 본토를 잇는 매단 다리 가까운 바다에 착수(물에 내림) 한다고."
"마틴, 그런. 중요한 일을 어째 이제껏 물어보지도 않고 있었지? 보아서 알겠지만 이 근방에는 해군 함정이 우글우글 하지 않니? 그 가운데 착수한다면, 놈들은 먹이를 발견한 범고래 같이, 일제히 달려들 거야."
"아무리 모여들어도 염려 없다. 우리별의 비행접시는 그 속을 휙휙 빠져나가 버릴 테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너는 어떻게 오늘밤에 가든 섬 근처 바다에 갈 작정이냐?"
"그렇구나. 보트로 갈까. 조지, 네가 데려다 주지 않겠니?"
"그야 널 위해서니까 가 주겠다만, 만일 보트에서 비행접시로 옮아 타려고 할 때 군함이 덤벼들면 우리들까지 바닷 속 고기밥이 되어 버릴 텐데."
그러자 마틴은 자신 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의 안전은 내가 보장한다. 안심해라."
조지는 마틴의 별의 과학력을 믿기로 하고 그 얘기는 그걸로 끝마쳤다.
동물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맹수들은 요전번과 다름없이 마틴을 보고는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12시가 됐을 때, 조지와 캐시는 동물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 샌드위치와 주스로 가벼운 식사를 했다. 아침에 하루치의 영양을 보급한 마틴은 언제나처럼 남이 먹는 걸 보고만 있었다.
'마틴의 별의 사람들은 먹는 즐거움이란 걸 모르는 것이다. 서글픈 일이다.'
특히 먹보인 조지는 그들이 불쌍히 생각되었다.
오후 2시, 조지 일행 동물원을 출발하여 울무울로 향했다.
페리의 큰 부두에 도착했을 때, 조지가 마틴에게 말했다.
"인제 너무 어정어정 돌아다니지 말고 공원 나무 밑 벤치에서 쉬기로 하자."
그러자 마틴은 크게 하품을 하고 나서 물었다.
"조지, 가든 섬에는 보트로 몇 분쯤 걸릴까?"
"저긴 보이는 보트 부두에서 20분쯤으로 생각하면 넉넉할 거야."
"그래? 그럼 보트 부두에는 7시 반에 오면 되겠구나."
조지는 깜짝 놀라 물었다.
"마틴, 그 새 어디 갈 데라도 있니?"
"응, 아침부터 활동을 했기 때문에 좀 피곤해. 요전의 그 집 스토브 안에서 잠시 낮잠을 잘까 해서. 게다가……."
그리고 좀 말하기 어려운 듯이,
"사실은 나, 거기에 귀중한 물건을 두고 온 걸 생각 해 냈단다."
"그 집 근처에는 스파이와 경찰관이 득시글거릴 텐데. 어디 나하고 같이 가보자."
그러나 이 때 캐시가 조지를 눈짓으로 말렸다.
조지는 위험하다고 느꼈지만 마지못해 단념을 했다. 마틴은 그야말로 연실이 끊어진 연처럼 줄달음쳐 달려가 버렸다.
보고 있던 조지는 루크 디와 데이비드, 그리고 엘리자베스에게 전화를 걸어 마틴이 드디어 오늘 밤 7시 반에 울무울의 보트 부두에서 행성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렸다. 루크의 데이비드, 엘리자베스는 모두 한결같이 배웅을 하러 나오겠다고 했다.
캐시와 헤어진 조지는 전세 보트 가게에 가서 두 사람이 젓는 대형 보트를 7시에서 9시까지 빌리기로 예약을 했다.
그런데 그 때 조지는, 한 사나이가 보트 표를 파는 곳 뒤쪽에서 조지의 거동을 살피고 있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네 사람의 괴인의 정체
 
오후 6시 반, 집에서 일찍 저녁을 먹은 조지는 공원에서 보트 부두를 향해 걷고 있었다.
이미 해는 졌지만 바다에서 하고 있는 합동 연습의 서치라이트(탐조등) 불빛으로 바다와 항구가 대낮같이 밝았다.
이 때 문을 닫은 선물용품 가게 그늘 쪽에서 캐시가 뛰어나와 조지의 손을 잡고는 가게의 그늘진 곳으로 끌어들였다.
캐시는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조지, 야단났어."
"왜? 무슨 일이 났니?"
"저걸 좀 봐."
캐시는 부두 끝 쪽을 가리켰다. 바라다 본 조지는 저도 모르게 앗! 하고 소리쳤다.
그곳에 네 사람의 그림자가 멈춰 서 있었던 것이다
서치라이트의 불빛에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이 환히 보였다. 고양이 할멈과 레이스의 모자를 쓴 몽태치기 여자, 통신사의 조사원 그리고 공원에서 늘 앉아 쉬고 있던 노인이었다.
루크는 조지 귀에 입을 갖다대고
"내가 6시 반에 여기 오니까, 저 사람들은 벌써 저기 와 있었어."
"루크, 저 네 사람은 모두 마틴에게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고양이 할멈과 레이스 모자의 여자는 마틴에게 폐를 끼쳤고, 에스 디 통신의 조사원은 한 번 위험한 데서 마틴을 구해 주었어. 노인은 언제나 공원에서 마틴을 감시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중요한 시간에 여기 나타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옆에서 캐시도 말참견을 했다.
"그 사람들, 틀림없이 스파이야. 아니 어쩌면 우주인 마틴을 잡아 볼모로 해 가지고 몸값을 뜯어내려는 악한의 끄나풀일 거야."
"캐시, 마틴이 여기 돌아올 때까지 아직 40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우리들의 힘으로 저 사람들로부터 마틴을 지키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우선 우리 세 남자가 저 자들을 심문해 볼께. 만일 큰 싸움이 되거든, 저 공중 전화로 경찰에 연락을 해 줘."
"알았어. 조심해서 해."
"염려 말어."
조지와 루크, 데이비드의 세 사내아이는 수상한 네 사람에게로 가까이 갔다.
"여어!"
조사원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뒤이어 고양이 할멈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하얀 레이스의 모자를 쓴 여자는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었다. 노인은 허리를 펴고 똑바로 자세를 고쳤다.
조지는 캐묻는 어조로 말했다.
"당신들 거기서 뭘 하고 있어요?"
"우리말이냐? 마틴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조지는 태연히 말했다.
"마틴은 오늘 밤 8시에 데리러 오는 비행접시를 타고 그 애의 행성으로 돌아간단 말예요, 시간이 없으니까 제발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자 고양이 할멈이 입을 열었다.
"방해를 놀 까닭이 있니? 우리도 같은 비행접시로 고향 별로 돌아가는 길인데……."
조지는 제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고향 별로 가신다고요? 그럼 당신들도 마틴과 같은 우주인이란 말씀입니까?"
"아아, 그렇고 말고!"
조지는 깜짝 놀라면서도 눈앞의 안개가 개어져 가는 걸 느꼈다. 이 기묘한 네 사람이 모두 우주인이라면, 번번이 일어났던 수수께끼 같은 행동들은 모두 마음에 집히는 것들이었다.
고양이 할멈의 이상하리만큼 극진한 고양이에 대한 애정, 갑자기 마틴에게 돈을 준 레이스 모자의 여자, 더구나 파출소에서 묘한 이론을 들고 나와 마틴의 위기를 모면케 해 준 조사원, 하루 종일 공원에서 멍하니 쉬고만 있던 노인.
그들의 행동은 모두가 지구인의 상식으로서는 생각 할 수 없는 일뿐이었다.
"그렇지만……."
조지는 새로운 의문이 생겨 조사원에게 질문을 했다.
"당신들은 같은 별에서 왔다면서 어찌 서로 처음 보았을 때 알아보지 못했지요?"
노인이 나서서 대답해 주었다.
"우리들은 약 3년 동안, 한 사람씩 따로따로 이 지구에 왔단다. 이 지구에 오자마자 우리들은 자동적으로 지구인의 모습으로 변신되도록 조정되어 있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끼리도 처음 만났을 때는 같은 별의 주민인 걸 알지 못한 거야. 그러니까 지구인인 줄만 아는 거지. 그러나 2번 3번 만나는 가운데 무언지 모르게 알게 되는 거야. 그리고 우리들 다섯 사람은 서로가 같은 행성인이란 걸 알았지만, 특별히 친해질 시간이 없었어. 그리고 우리 별 나라 여행사 사정으로 오늘밤 같은 비행선을 타고 고향별로 돌아가게 된 것이란다."
"아아! 그랬었습니까?"
조지는 네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조금도 우주인다운 데는 발견할 수 없었다.
루크도 같은 기분이었던지, 조사원을 보고 말했다.
"에번스 씨, 그럼 아직도 지구에는 당신들 외에 당신 같은 행성인이 지구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요?"
"아마 한 10명쯤 있으리라 생각해. 하지만 한 번 만나보는 정도로서는 알아보지 못하지."
조지는 그 검은 옷 입은 교수의 빈틈없는 눈초리를 생각했다.
"그럼 검은 양복의 교수라는 사람도 당신과 같은 별의 사람인가요?"
그러자 네 사람은 일제히 머리를 저었다
"아냐. 그렇지 않아. 그 사람은 틀림없는 지구인이야. 그러나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빨리 우리들의 정체를 알아냈어. 방심할 수 없는 사나이야."
그러자 고양이 할멈이 걱정스런 태도로 말했다.
"그래요. 그 사람, 10일 전에도 나를 붙들고 여러 가지 얘기를 물었어요. 그리고, 아까 내가 고양이들한테 이별을 하려고 마틴이 숨어살던 집에 갔더니 그 사람이 어슬렁거리고 있던걸요. 어쩌면 마틴과 얘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난 좀 걱정이 되는데……."
이 말을 듣자 조지는 루크 디의 팔을 붙들고 말했다.
"루크, 마틴이 위태롭게 됐어. 지금 당장 구하러 가자."
"그래, 알았다."
루크도 찬성했다.
캐시에게 말하니 저도 같이 가겠다고 졸랐다. 그래서 조지는 데이비드와 엘리자베스에게 보트 준비를 해 놓도록 부탁을 하고, 캐시와 루크를 데리고 마틴이 숨어살던 집으로 달려갔다.
그 집 문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이층에는 모처럼 이라기보다 처음으로 등불이 켜져 있었다.
"교수가 왔나보다."
조지는, 루크와 캐시를 아래에서 기다리게 하고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다 무너져 가는 베란다의 층계를 올라갔다. 문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의자엔 앉아 있는 교수의 등이 보였다. 그의 앞에는 역시 마틴이 앉아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은 조용히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교수님, 몇 번이나 말씀 드리지만, 지구인의 상상력은 약하고, 신경 조직도 거칠어서 당신들은 우리들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러길래 아까부터 몇 번이나 청하는 게 아닙니까?"
교수는 12살 짜리 소년에게 마치 윗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정중한 말씨로 얘기했다.
"적어도 앞으로 한 달 동안이나마 이 지구에 머물러 있어 줄 수 없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식량이 없어요. 저의 비스킷은 단 1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일치에요."
"1개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걸 영양 연구소에서 분석하면 그 성분을 알 수 있으니까 그와 같은 걸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미스 씨, 만일 당신에게 지구인을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지구인이 먹는 걸 먹어야 합니다. 현재 당신과 같은 행성의 사람이 고양이 할멈도 날고기까지도 먹고 있지 않습니까? 같은 음식을 먹는 데서만이 비로소 우정이 싹트고, 단절(끊음)이 메워지는 것 아닐까요?"
그러자 마틴은 불쾌한 표정을 얼굴에 띠고,
"교수님, 먹는 음식의 기호란 건 사람마다 다릅니다. 제가 지구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더구나……."
마틴은 눈동자를 빛내며 계속했다.
"같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서로의 참모습을 볼 수 없어도, 마음과 마음은 서로 통할 수 있습니다. 조지 애덤스, 캐시 브린불, 루크 디, 데이비드 게이트,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다섯 사람은 모두 진심으로 저를 환영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저를 보호했고, 저의 비밀을 지켜주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친절과 우정을 일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듣고 있던 조지는 가슴속이 찡 하니 뜨거워 왔다. 마틴은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조지 친구들에게 감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저는 이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틴이 휙 뒤돌아 서더니 선반 위에 있는 종이 봉지를 내려 옆에 끼고 나섰다. 그러자 교수가 어조를 달리하며 급히 말했다.
"그럼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기의 오른쪽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마틴 스미스여, 내 눈을 잘 보라. 절대로 한눈 팔지 말고."
마틴이 무심코 교수를 노려봤다.
10초, 20초, 무엇에 끌리는 듯 마틴이 교수에게로 다가간다. 눈이 희미해져 있었다.
조지는 이 때 비로소 교수의 계략을 눈치챘다.
'큰일났다. 교수는 최면술을 써서 마틴을 포로로 만들어 연구를 하려는 것이다!'
조지의 결단은 빨랐다. 허리를 굽히고 와락 달려가 교수를 뒤에서 쾅 들이받았다.
"으악!"
교수는 벽에까지 밀려가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와 함께 최면술이 깨져 마틴은 언뜻 정신을 차렸다.
"마틴, 큰일났어. 빨리 서들지 않으면 비행접시를 놓치겠어."
"응!"
조지는 마틴의 손을 끌고 베란다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베란다로 통하는 층계는 너무나 오래 된 것이라 조심조심 걸어 내려갔다. 그러자 교수도 뒤쫓아 베란다 위에 나타났다.
"기다려!"
교수는 소리치며 층계를 뛰어내리려 했다.
그러나 교수는 마틴들보다 훨씬 몸이 무거웠다. 더구나 조심스레 밟지도 않았기 때문에 베란다는 우지끈 뚝딱……,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으아악!"
교수는 땅에 떨어져 심하게 허리를 다쳤다,
"이때다 빨리 빨리!"
새 아이들은 쏜살같이 보트 부두를 향해 달렸다. 이미 시간은 7시 40분이 되어 있었다.
데이비드는 보트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네 사람의 우주인 어른들은 벌써 보트에 앉아 있었다.
보트의 정원 관계상, 가든 섬까지 배웅을 갈 수 있는 건 보트를 저을 조지와 데이비드 두 사람만이었다.
마틴은,
"그럼……."
하며 캐시, 루크, 엘리자베스, 세 아이들 손을 차례차례 잡았다.
캐시는 잘 가라는 인사말을 하려다 그만 엉엉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루크는 마틴의 옆구리에 끼고 있는 종이 봉지를 보고,
"그건 뭐냐?"
고, 물었다.
"아, 이거 말이냐?"
마틴은 캐시한테서 받은 스케치북을 꺼냈다.
"나 우리 고향에 돌아가서도 매일 그림 공부를 할 작정이다."
마틴에게 그림을 가르쳐 준 캐시는 울던 얼굴에 빙긋 웃음을 띠었다. 마틴은 보트에 올라탔다. 체중이 가벼웠으므로 배가 흔들리지도 않았다.
조지와 데이비드는 가든 섬을 향해 힘차게 노를 저었다.
시드니 만의 안팎은 구축함, 프리깃함(경무장을 한 소형 군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치라이트는 하늘을 빙빙 돌고 있는 제트기의 모습을 은빛 날개처럼 비쳐 주고 있었다.
조지와 데이비드는 아무 말 없이 배만 저었다.
이윽고 앞쪽에 가든 섬의 검고 긴 그림자가 보였다.
본토와 이어져 있는 길다란 매단 다리의 일루미네이션(전등 장식)은 바닷물에 활 모양으로 굽어져 비치어 쉴 새 없이 깜박이고 있었다.
이 때 마틴이 불쑥 말했다.
"됐다. 여기서 배를 멈춰 줘. 한 곳을 빙빙 돌면서 ……."
데이비드와 조지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무섭게 강한 압력이 느껴져왔다.
시꺼먼 그림자가 마귀같이 지나갔다. 마틴은 반가운 듯이,
"우리 비행접시다!"
하고, 소리쳤다.
"아니, 여기 내려앉는 거니? 파도가 일어 보트가 뒤집힐 틴데."
마틴이 싱긋 웃으며,
"물에 내리진 않아. 바다 위 100미터와 공중에 정지해 가지고 우리들을 빨아올려 줄 거야."
"빨아올리다니? 그러면 이 시드니만의 바닷물이 마구 빨려 올라가게 될 것 아냐?"
조지는 정말 걱정스레 말했다.
그러자 슈웃 하는 전기 소제기 같은 소리가 들리고 잔잔한 바람이 불더니, 주위가 어두컴컴해졌다.
쳐다보니 머리 위에 검은 그림자가 구름같이 뒤덮여 있었다. 마틴의 별에서 온 비행접시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고양이 할멈이, 레이스 모자의 여자가, 지구의 기록을 담은 레코드를 가슴에 드리운 조사원이, 노인이, 차례로 일어섰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쳐들고 한 사람 또 한사람 하늘로 올라가서 검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틴은 조지의 손을 잡고 마지막 이별의 인사를 했다.
"조지, 정말 여러 가지로 고마왔다. 그리고 너에게 끝으로 한 마디 충고하고 싶은데……."
"뭔데?"
"너는 남의 일을 너무 돌보는 것 같아. 앞으로는 적당히 하도록 해."
'핏? 실컷 남의 보살핌을 받고 나서…….'
조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가슴이 벅차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틴은 손을 흔들며 검은 그림자를 향해 수직으로 떠올라 갔다.
3초 후, 살랑 바람과 함께 검은 그림자는 사라졌다.
그리고는 다시 사방이 훤히 밝아왔다.
서치라이트는 미친 듯 밤하늘을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다.
조지와 데이비드는 흔들리는 보트 안에서 잠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모두가 꿈 같은 생각이 들었다.
5분 후 조지와 데이비드는 노를 저어 울무울로 향했다.
조지는 마틴에 대해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걸 아버지, 어머니에게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하나,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야단을 맞을 것이다. 용돈을 감액(액수를 줄임)당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나는 귀중한, 실로 귀중한 경험을 했는걸. 더구나 마틴과의 약속도 지켜 주었고…….'
조지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고는 힘차게 노를 저었다.
바로 그 시간에 시드니 만 상공을 돌고 있던 제트 전투기의 파일롯이 대연습 본부에 무전 송화기를 통해 보고를 하고 있었다.
"정체 불명의 유성(별똥별) 같은 물체가 시드니 만에서 상승했습니다. 그러나 본 기(비행기)는 연료부족으로 추격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시드니 항구 밖 바다에는 다시 몇 갑절의 군함과 항공기가 모여들어 외계로부터의 적을 맞아 싸울 태세를 갖춘 것이었다.
 
 
 
 
 
작품 해설
 
물질 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
 
"행성에서 온 소년"은 라이트슨의 대표 작품이다.
라이트슨 부인은 1920년 인구가 아주 적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중앙부 벽지에서 태어났다. 중앙부는 면적이 넓지만, 좋은 땅은 목축지이고 대부분이 사막이었다. 때문에 학교가 있는 시가지는 수백 킬로나 떨어져 있어서 돈 많은 목축가는 자가용이나 비행기로 아이들을 통학시켜 교육하였다. 자가용이 없는 집 아이들이 매일 통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벽지에 사는 아이들을 위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문교부 당국은 통신 교육을 실시해 왔는데, 최근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한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러나 라이트슨 부인의 어린 시절에는 이런 시설도 없었다.
그러므로 라이트슨 부인은 아버지가 한 달에 한 번씩 시가지에 나가 부쳐 온 많은 교재와 출판사에서 직접 부쳐온 책들을 받으러 우체국으로 나갔다. 이런 방법으로 책을 구하여 열심히 독서에 열중한 라이트슨 부인은 새로운 지식을 많이 쌓아 갔으며, 중학 과정을 수료할 무렵에는 장차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드니로 나가 고등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졸업하자 곧 라이트슨 씨와 결혼하여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니 매일 바빠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라 창작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었다.
1954년 어느 날 라이트슨 부인은 이러한 불만을 친구에게 쏟아 놓았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창작이라는 것은 바쁜 중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면 발명왕 에디슨의 발명은 모두 잠자는 시간을 4시간으로 단축하고 빚쟁이에게 쫓기는 고통스런 생활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라이트슨 부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깨우쳐 곧 창작에 착수하였다. 남편과 자녀들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었다. 그리하여 1956년 처음으로 소년 소녀 소설 "꼬부라진 뱀"을 발표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소년 소녀들에게 크게 인기를 얻었다. 또한 뉴 사우스 웨일즈 주의 아동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이에 자신을 갖게 된 라이트슨 부인은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1963년에는 "새털이 장식되어 있는 한 별"을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은 미국 도서관 협회 우량 도서로 지정되었다.
라이트슨 부인의 작품은 대부분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해안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대자연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으며, 사춘기를 맞이하는 15세 소녀의 미묘한 심리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동시에 모성애적인 따뜻한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라이트슨 부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여 계속 소년 소설을 써 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부인은 많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척 정신의 소유자였다.
부인은 지금까지 자기가 손대지 않은 분야인 SF 세계에 진출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부인에겐 과학적 지식과 스릴 등 많은 문제점이 따르고 있었다.
친구들과 가족들은 위태롭다고 충고하였으나, 라이트슨 부인은 뜻을 굽히지 않고 노력하여 마침내 마음먹은 대로 SF계에 뛰어드는 데 성공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자라난 만큼, "행성에서 온 소년"을 쓸 무렵의 시드니 시가의 개조는 라이트슨 부인에게 큰 문제였던 것 같다. 그 증거로 라이트슨 부인은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 조지에게 “오래된 탑이 있는 성까지 뜯어 없애지 않아도……." 라고 감상적인 말을 하게 하고 있다. 행성에서 온 소년 마틴을 통해서도 '우리 행성에도 건설로 말미암은 환경 오염으로 두통을 앓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그렇다고 하여 우리들은 다른 새롭고 아름다운 일을 찾고 있지도 않다'라고 명확히 선언하고 있다.
이 말은 현재를 살고 있는 지구인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무턱대고 생산성 향상과 풍부한 문화 생활을 꿈꾸어 온 많은 사람들은 초음속 비행기와 큰 공장과 고속도로를 완성하는 대신에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아 온 아름다운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이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하였을까? 조금이라도 옛날 상태로 되돌아갈 노력은커녕 주말을 이용하는 별장과 집단 휴양소, 문화설비를 완비한 대형 시가를 따로 건설하여 오염 지대를 더욱더 확대해 가고 있다.
장래 이 지구 모든 곳이 오염되고 말았을 때 지구인은 별장지를 찾듯이 우주선이라도 타고 다른 행성에 이주하게 될 것이니, 행성의 주민을 무력을 써서 몰아내고 토지를 확보할 것이다. 이것이 대다수 지구인의 사고 방식이다. 지구인은 그렇기 때문에 다른 우주인이 지구에 왔다고만 하면 곧 공격과 침략을 결부시키고 있다.
상대가 어떤 목적으로 지구에 왔을까를 과학적으로 재조사하기도 전에, 본격적인 요격 태세를 취하는 것은 지구의 파멸을 자초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이트슨 부인은 이러한 것을 우려하여 이 작품 속에서 여러 번 경고하고 있다.
라이트슨 부인은 이 책을 통하여 과학 평론가와 미래 학자에게 이렇게 질문하였다.
"지구인들은 이대로 환경 파멸을 계속해도 좋을까요?"
"만약 우주인이 실제로 지구에 왔을 때 이 책의 내용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지구는 완전할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교수와 과학자는 대답하고 있다.
"이대로 필경 오염과 건설을 계속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또 지구인보다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우주인이 지구에 오는 일은 절대로 없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면 라이트슨 부인도 안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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