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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 인간-베리야에프 작 -이 인석 역
2021년 09월 20일 17시 22분
조회:585
추천:0
작성자: 강려
합성 인간-베리야에프 작 -
이 인석 역
< 차 례 >
첫 대면 ··············· 3
열리지 않는 마개의 비밀 ······· 11
머리와의 대화 ············ 16
실험실의 새로운 손님 ········ 24
빌케의 명안 ············· 30
케룬의 실험 ············· 35
시체 안치소의 밤 ·········· 40
합성 인간 ·············· 47
괴상한 미녀 ············· 53
케룬 교수의 희생자 ········· 61
라비노 정신 병원 ·········· 68
악마의 음악 ············· 71
미쳐버린 사람들 ··········· 77
삶과 죽음 ·············· 83
역 습 ················ 88
빌케의 비극 ············· 93
강적 나타나다 ············ 99
케룬 교수의 전대미문의 대 발견 ··· 102
대 혼 란 ·············· 108
최후의 회견 ············ 109
작품 해설 ············· 115
첫 대면
지난날 그것도 훨씬 전에 죽은 사람이 살아있다는 , 더욱이 동체는 없이 머리만이 살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 아무도 참말로 여기지는 않으리라 . 그러나 로랑은 그것을 , 그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다 . 그것도 이 번화한 파리의 한복판에서 말이다 . 그 날 , 로랑은 학교 선생님의 소개장을 가지고 케룬 교수에게 취직을 부탁하러 갔던 것이다 . 케룬은 소개장을 다 읽고 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
" 당신은 여의사로군요 . 그건 참 다행한 일입니다 . 마침 내 연구실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던 참인데 . 좋아요 . 곧 일해 보시도록 해요 ."
이 말을 듣고 로랑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지금까지 그토록 취직할 곳을 찾아다녔지만 , 파리 안에서는 학교를 갓 졸업한 햇병아리 여의사를 써 줄만한 데라고는 아무 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 이제야 앓아 누워 계신 어머니를 제대로 보살펴 드릴 수가 있게 되었구나 하고 , 로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그런데 당신의 신경은 강하겠지요 ? 혹시 가족 가운데 정신병이나 알코올 중독자는 없겠지요 ?"
하고 케룬이 물었다 .
" 아뇨 , 없어요 ."
" 그럼 좋아요 .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 당신은 비밀을 지킬 수 있는지요 ? 나의 실험실에서 본 일을 결코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할 수 있나요 ? 아니 , 뭐 그렇게 두려워할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겠고 , 절대로 당신께 폐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
로랑은 그 말을 듣자 다소 불안했지만 , 범죄하고는 관계가 없다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약속하겠어요 . 비밀을 지키겠다고요 ."
그러자 케룬은 벨을 울려 흑인 하인을 불러서는 이렇게 일렀다 .
" 존 , 로랑 양을 안내해서 실험실 안을 보여드리지 ."
로랑은 존을 따라 옆방으로 들어갔다 . 방안에 있는 장 속에는 금속제의 기구들이 꽉 차 있었으며 , 테이블 위에는 유리제의 기구들인 가득 진열되어 밝은 전등 불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 방 한가운데는 해부대가 놓여 있었다 . 로랑이 해부대 옆에 있는 유리 상자를 들여다보았을 때였다 . 로랑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 유리 상자 안에 있는 사람의 심장이 팔딱팔딱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심장에는 굵은 파이프가 달려 있었으며 , 유리 상자 밖에 있는 플라스크와 연결되어 있었다 .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로랑을 놀라게 한 것은 그 머리였다 . 금속으로 된 4 개의 발이 달린 유리판 위에 있는 머리의 동맥과 정맥에는 관이 연결되어 , 그것이 각각 한 쌍이 되어 유리판을 뚫고 그 옆에 있는 플라스크에 연결되어 있다 .
목에는 그것보다도 더 굵은 관으로 실린더하고 연결되어 있다 .
실린더나 플라스크에는 압력계며 온도계 등 , 그밖에도 로랑에게는 무엇에 쓰이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기구들이 장치되어 있었다 .
죽은 사람의 머리 ? 아니 , 죽은 사람의 머리가 아니다 . 머리는 틀림없이 살아 있으니까 , 깜박깜박 눈을 떴다 감았다 했던 거다 .
로랑은 온 몸이 오싹해서 부들부들 떨었다 . 문득 로랑은 이 머리를 틀림없이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 그렇다 ! 이 머리는 얼마 전에 급환으로 세상을 떠난 유명한 외과 의사 도우엘 박사의 머리임에 틀림없다 . 박사는 시체에서 떼어낸 심장이나 그 밖의 기관들을 소생시키는 실험을 하여 ,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대학자였다 .
박사의 머리는 생전과는 판이하게 모습이 변해있었다 . 눈은 움푹 패이고 볼은 살이 다 빠졌으며 , 피부는 미라처럼 누렇게 변해 있었다 . 이따금 박사의 강연을 들으러 다닌 로랑이 잘못 보았을 리는 만무하다 . 그 박사의 머리가 어째서 이런 실험실에 , 그것도 살아서 말이다 !
그때 마침 , 머리가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술을 조금 움직였다 . 로랑은 너무나 격심한 공포에 악 ! 하고 외치며 그 자리에 쓰러질 뻔했다 . 존이 재빨리 로랑의 몸을 안듯이 붙들었다 . 그리고는 케룬의 서재 쪽으로 데리고 나왔다 . 로랑은 무서움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케룬에게 물었다 .
" 저 머리는 혹시 .."
" 도우엘 박사의 머리가 아니냐는 말씀이시군 . 맞아요 , 저 머리는 내가 소생시킨 박사의 머리랍니다 ."
" 왜 그런 무서운 일을 하시는 거여요 ?
" 그렇지 않아요 . 절대로 무서운 일도 나쁜 일도 아니고 말고 . 나와 박사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답니다 . 그런데 애석하게도 박사께서는 도중에 지병인 천식의 발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 그래서 지금은 내가 혼자서 그 연구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어요 . 박사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의 시체를 이 연구를 위해 써 달라고 유언하셨습니다 . 박사께서는 일생을 과학을 위하여 몸을 바쳐오셨기 때문에 , 죽은 뒤에까지도 자기의 몸을 학문을 위해 바치리라고 생각한 겁니다 . 그래서 그렇게 유언하셨을 겁니다 . 그러므로 나는 그 유언에 따라 박사의 유체를 실험 재료로 해서 , 박사의 머리를 소생시킨 것입니다 . 나는 유감스럽게도 박사의 머리밖에 소생시킬 수 없었지만 , 아무튼 이건 과학의 대 승리입니다 ."
" 무서운 일이군요 . 무서운 범죄입니다 ."
" 아니 , 범죄라니 ? 죽음에서 해방시켜 목숨을 다시 소생시키는 일은 , 우리 인류가 오랜 옛날부터 바라온 꿈이었단 말이오 . 나는 그것을 이룩해 냈습니다 . 인류는 이 나에게 감사를 표해야 마땅합니다 . 하지만 아직 이 실험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요 , 완전한 것으로 해서 학계에 발표할 때까지는 절대로 비밀로 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오 . 당신도 학문을 위해 이 비밀을 꼭 지켜 줘야겠어요 . 만일에 이 약속을 어긴다면 당신에게 이로울 것은 없을 거요 ."
하고 케룬은 위협하듯 말했다 . 로랑은 선뜻 약속해 버린 것을 후회했다 . 그러나 만일 케룬의 말이 사실이라면 , 이것은 범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 더욱이 모처럼 얻게 된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 지금의 경우 로랑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 그럼 , 내일 아침 9 시에 출근하도록 해요 ."
이렇게 말하며 , 케룬은 로랑을 전송했다 . 로랑은 그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 물끄러미 로랑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박사의 머리가 갑자기 유리 테이블에서 쑥 올라오더니 , 로랑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 로랑은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도망치려고 했다 . 그러나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 머리는 바로 뒤에서 달려드는데 마침 그때 , 어디선지 모르게 매의 모양을 한 케룬이 박사 머리에 달려들어 서로 맞붙었다 . 로랑은 그 틈에 겨우 문을 열고 다음 방으로 뛰어들었다 . 그런데 이건 또 박사의 머리가 뒤따라 뛰어드는가 하면 , 그 뒤를 매 모양의 케룬이 따라온다 . 로랑은 차례차례 문을 열고 도망치려고 하지만 문은 끝없이 계속되고 , 박사의 머리는 점점 가까워지며 그 목에서 씩씩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귀밑까지 따라왔다 .
" 로랑 , 왜 그래 ? 몹시 괴로운 모양이구나 ."
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로랑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 그러나 아직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 로랑은 내일부터 자기가 나가야 할 실험실을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 과연 그 무서운 일에 자기의 신경이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는지 , 어쩌면 얼마 안 가서 미쳐버리지나 않을는지 하고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
열리지 않는 마개의 비밀
그 다음 날부터 로랑은 케룬의 실험실에 다니게 되었다 . 머리는 먼저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 . 머리는 로랑이 방안에 들어오는 기척을 알아차리면 눈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 로랑은 이제 어제와 같은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다 . 그녀는 방긋 웃으며 머리에게 인사를 했다 . 머리도 그것에 대답하듯 눈인사를 보냈다 . 머리는 말을 할 수 없는 모양이다 . 박사의 머리는 코에 체온계가 꽂혀 있었다 . 일정한 시간이 되면 체온기를 뽑아 체온을 조사한다 . 목의 동맥과 정맥에 이어져 있는 플라스크에는 머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제와 산소가 들어 있는 액체가 있으므로 , 이 플라스크에도 온도계며 압력계가 부착되어 있다 . 머리의 체온에 맞추어 플라스크 속의 액체 온도나 압력을 조절하는 것이 , 주로 로랑이 하는 일이었다 . 로랑의 일은 낮뿐이고 , 밤은 존이 대신 기계 당번을 했다 . 맨 첫날에 케룬은 로랑에게 기계를 취급하는 방법을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 그러나 머리의 목과 이어진 실린더의 취급 방법만은 설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
" 이 실린더의 마개는 결코 열어선 안 돼요 . 이것을 열면 이 머리는 당장 죽어버리니까 ."
아무튼 로랑이 새로운 일거리를 얻은 지 2 주일이 지났다 . 로랑은 이미 기분 나쁜 머리하고도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 오히려 조금은 친밀감까지 가지게 되었다 . 머리 쪽에서도 로랑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듯 아침마다 로랑이 실험실에 들어가면 , 다소 미소를 지으며 인사 표시로 눈을 깜박거렸다 . 머리는 여전히 말은 못했지만 , 어느 사이엔가 머리와 로랑간에는 두 사람만이 통하는 ' 말 ' 이 형성되어 있었다 .
예를 들면 머리는 " 그렇습니다 ." 라는 말 대신에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 " 아닙니다 ." 라고 할 때는 눈을 위로 떠 보였다 . " 안녕하셔요 ?" 하고 로랑이 물으면 , 머리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아래로 내리깐다 . 그것은 , " 고맙습니다 . 아주 건강합니다 ." 라는 뜻인 것이다 . 이제 로랑은 실험실에 나가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다 . 로랑의 일은 일자로 정해져 있었다 . 아침 실험실에 들어서면 우선 민첩하게 기계들을 조사하고 , 그 다음은 머리의 체온을 재어 일기에 기록한다 . 그리고 나면 알코올에 적신 해면으로 머리의 얼굴이나 귀 , 눈과 코를 깨끗이 씻고 빗으로 머리카락을 곱게 빗겨 준다 . 로랑의 부드러운 손이 닿으면 박사의 머리는 아주 기분이 좋은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 이렇듯 날마다 머리의 시중을 들고 있는 동안에 , 어느 사이엔가 로랑은 머리에 대해서 마치 불구의 자식을 불쌍히 여기고 두둔하는 어머니와 같은 심정을 가지게 되었다 . 아무튼 아침 일과가 끝나면 로랑은 박사의 머리와 독서를 시작한다 . 우선 로랑은 새로 나온 의학 잡지나 의학에 관한 책들을 안고 와서 머리에게 보여 준다 . 머리는 일일이 그것을 눈으로 보고 , 읽고 싶은 논문이 있으면 신호를 한다 . 로랑은 박사의 머리가 읽고 싶다는 잡지나 책을 받침대 위에 기대 놓고 , 머리의 움직임에 주의하면서 책장을 넘기며 읽게 한다 . 머리는 다만 책을 읽는 것뿐이 아니고 , 중요한 사항이 써 있는 곳이면 붉은 선을 그을 것을 로랑에게 부탁했다 . 로랑은 연필로 한 자 한 자 확인하면서 머리가 원하는 대로 붉은 선을 쳐주었다 . 로랑에게는 박사의 머리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아마 머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거나 , 또 옛날의 하던 습관대로 중요한 곳에 밑줄을 긋거나 하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 그러던 어느 날 , 로랑은 자기 집에서 의학 잡지를 읽고 있던 중 케룬 교수의 새로운 논문을 발견했다 . 그 논문에는 다른 학자들의 논문도 많이 인용되어 있었지만 , 그것은 모두가 도우엘 박사에게 부탁을 받아 자기가 붉은 줄을 쳐 준 곳뿐이었다 .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케룬은 박사의 머리가 연구한 것을 자기 이름으로 잡지에 발표하고 있다 . 이런 비겁한 일도 있을까 하고 로랑은 화가 치밀었다 . 그 다음날 , 로랑은 실험실 안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머리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
" 선생님 , 선생님은 즐겨 논문에 붉은 줄을 긋고 계십니다만 , 그것은 무엇 때문이죠 ? 케룬 교수는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 이름으로 논문을 쓰고 있어요 . 그걸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시는지요 .?"
물론 로랑은 머리가 말을 할 수 없으니까 대답할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그러나 케룬의 그 비겁한 행위가 얄미워 로랑은 이렇게 물어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 그러자 박사의 머리는 갑자기 슬픈 표정으로 되면서 , 심각한 눈초리로 로랑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 그리고서 머리는 눈을 실린더의 마개를 향해 크게 두 번 위쪽으로 치떴다 . 머리의 표정에 따라 박사의 생각을 대개 알 수 있게 된 로랑이다 . 그것을 보자 머리가 그 마개를 열어 달라고 부탁하고 있음을 알았다 .
" 안 돼요 , 박사님 . 그걸 열면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시게 돼요 ."
하고 로랑은 외쳤다 . 그러자 박사의 머리는 마치 머리를 흔들 듯이 얼굴의 근육을 씰룩거리며 입술을 자꾸만 움직였다 . 그것은 , < 아니 , 나는 죽지 않아요 . 그러니 꼭 좀 저 마개를 열어 줘요 .>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나중에는 머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로랑을 바라보았다 . 그러자 로랑은 필시 여기에는 무슨 까닭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 케룬은 믿을 수 없는 인간이다 . 어쩌면 저 마개를 열어도 박사의 머리는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 그렇게 생각한 로랑은 결심하고 실린더의 마개를 비틀기 시작했다 . 그때였다 . 머리의 목에서 씨익 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
" 고 , 맙 , 소 ,"
라는 , 고장난 축음기 같은 목쉰 듯한 떨리는 목소리가 끊길 것처럼 들려왔다 .
머리와의 대화
역시 케룬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 실린더 속에는 압축된 공기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 실린더의 마개가 열림으로써 박사의 머리는 이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실린더 속의 공기가 목을 통하여 머리의 성대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 하지만 박사의 머리는 이미 보통 사람과 같은 목소리는 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 목덜미의 신경이 끊어져 있기 때문에 , 완전히 쉰 듯한 떨리고 억눌린 것 같은 목소리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 거기에 목 주위의 근육이나 성대도 망가져 있어서 , 머리가 말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공기가 씨익 씨익 하는 소리를 내며 목에서 새나갔다 .
" 로랑 양 , 언제나 친절히 대해 주어서 고맙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 케룬 군이 그 실린더의 마개를 막아버렸기 때문에 말할 수가 없었소 ."
하고 도우엘 박사의 머리는 말했다 . 로랑은 머리가 말하게 된 사실에 놀라기에 앞서 , 박사에게 물어 보고 싶었던 일이 너무나 많았으므로 서둘러 이렇게 말했다 .
" 아뇨 , 인사는 하지 않으셔도 좋아요 . 선생님 , 케룬이란 사람은 참 나쁜 사람이군요 , 도대체 그 분은 선생님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
" 케룬 군은 나의 조수였다오 . 나는 죽은 사람의 머리를 잘라내어 그것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오 . 실험은 잘 진행되었소 . 개의 머리를 소생시키는 일에도 성공을 거두고 , 이제 막 사람의 머리를 소생시키는 실험에 착수하려고 하던 순간 , 갑자기 내 자신이 보는 바와 같이 유리 테이블 위에서 머리만으로 살아 있는 신세가 돼 버렸다오 ."
" 그건 어떻게 된 영문인가요 ? 케룬 씨는 박사님이 급환으로 돌아가셨다더군요 . 그리고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박사님 자신의 시체를 실험용으로 써 달라고 유언하셨다고 그랬어요 . 그게 사실인가요 ?"
" 글쎄 , 참말이라고도 할 수 있고 ,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 나는 항상 지병인 천식으로 고생을 했소 . 그러나 천식의 발작 때문에 정신을 잃은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소 . 그런데 그때는 마침 케룬 군이 옆에 있었어요 . 그는 내가 발작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서 내게 약을 먹여 주었지요 . 그리고서 나는 곧 정신이 희미해졌지 . 내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나는 머리뿐이 되어서 , 유리 테이블 위에 있었으며 옆에 케룬 군이 있었어요 . 지금 생각해 보아도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다오 . 내가 정말로 천식이 발작해서 죽은 것인지 , 아니면 케룬 군이 약의 분량을 틀려서인지 , 흑은 일부러 틀리게 해서 그 때문에 죽은 건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 그런데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어요 . 그것은 나의 논문 말이오 . 나는 죽기 조금 전에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를 정리해서 논문을 작성하고 그걸 인쇄에 돌리려고 케룬 군에게 맡겼지요 . 그 논문에는 인간의 머리를 되살려내는 실험 방법이 자세히 씌어 있었지요 . 케룬 군은 훌륭한 학자이고 , 또한 뛰어난 의사이기도 해요 . 그러나 매우 공명심이 강한 사나이지요 . 언제나 무엇인가 큰 연구 결과를 발표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일만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 그러한 케룬 군이 이 나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대 실험의 논문을 손에 넣게 되었을 때 , 순간적으로 그 실험을 자기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싶었었는지 .... 아니 ,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이지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어요 . 그런데 나는 내가 죽거든 내 몸을 학문을 위해 써달라고는 했지만 , 이렇듯 내 머리를 다시 소생시켜 달라고는 유언한 일은 없어요 ."
" 그러한데 어째서 박사님께서는 케룬을 도와 새로운 논문을 쓰게 하시나요 ?"
박사의 머리는 그 말을 듣자 , 슬픈 듯이 로랑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
" 그렇게 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 케룬 군은 나의 뒤를 이어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 그렇지만 그는 유능한 학자이긴 하지만 , 아직 자기 혼자의 힘으로 이 실험을 완성시킬 수는 없어요 . 그래서 그는 이 비참한 나의 머리에게 가르쳐 주십사 하며 온답니다 . 나는 일생을 과학만을 위해 몸바쳐 온 사람입니다 . 사람의 머리를 또 다시 소생시키는 일은 나의 학자로서의 마지막 목적이었단 말이오 .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목적만은 완성시키고 싶소 .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 일도 나 자신이 할 수가 없지요 . 실험을 하는 일도 , 어려운 수술을 하는 일도 모든 것이 말이오 . 그래서 내게는 케룬 군이 필요한 거요 . 나는 로랑 양이 돌아가 버리고 나면 , 여기서 케룬 군과 같이 실험을 하고 있소 . 말하자면 내게 케룬 군이 필요하듯이 케룬군도 역시 내가 필요한 거요 . 그가 머리만의 나를 살려 둔 것도 그 때문이오 ."
" 선생님은 정말 불쌍하신 분이군요 ."
" 나도 내 자신의 일을 스스로 불쌍하고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나도 정신이 들어 머리만 절단된 채 유리판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았을 때 , 죽어 버릴 까도 생각해 봤어요 . 그러나 내게는 자살조차 할 수가 없다오 . 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는 무엇하나 할 수 없단 말이오 .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는 이렇듯 머리만 잘린 인간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요 ."
박사의 머리는 눈을 감고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 문득 무엇인가를 생각해 전 듯 눈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
" 로랑 양 , 내게는 당신과 나이가 비슷한 아들이 있소 . 지금은 영국에 살고 있는데 , 난 그 아들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못 견디겠소 . 허나 만약 내 아들이 이렇게 비참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변한 나를 본다면 얼마나 슬퍼하고 통탄하겠소 ."
" 선생님은 케룬에게서 이런 몹쓸 일을 당하시면서 어째서 그를 용서하시는 건가요 ?"
" 이 나에게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오 . 지금의 이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일이 아니면 , 입술을 움직이는 일뿐인걸 ."
" 그렇지 않아요 . 선생님은 케룬보다 강하십니다 . 그 나쁜 남자를 위해 논문이나 실험 지도를 그만두시면 되잖아요 ."
" 나도 그만둘까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해 봤소 . 하지만 이 실험은 내게 있어서 목숨보다 더 소중한 일이라오 . 그래서 어떻게든 케룬을 도와 이 실험을 성공시켜야 하는 거요 ."
" 저는 참을 수가 없어요 . 저는 그 남자를 법에 고발하겠어요 ."
" 아가씨가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오 . 따라서 케룬을 고발하는 것은 당신의 자유지요 . 그러나 지금은 이 상태로 눈감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 이 실험이 성공할 때까지는 모든 것을 비밀로 해 두지 않으면 안 되오 ."
마침 그때 , 다음 방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 로랑은 황급히 실린더의 마개를 비틀었다 . 박사의 머리의 목소리는 뚝 끊어지고 , 입으로 씨익 하고 공기가 새는 소리가 났다 .
실험실의 새로운 손님
케룬은 실험실로 들어서자 , 의심스러운 듯 로랑의 얼굴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
" 무슨 일이 있었어요 , 로랑 양 ? 안색이 몹시 나쁜데 ......"
로랑은 하마터면 , " 이 살인마 !" 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 아뇨 , 아무렇지도 않아요 "
" 어디 맥을 좀 짚어 볼까요 . 오오 , 왜 맥이 고르지 못하군 그래 . 몹시 신경이 흥분된 모양이지 . 하긴 그렇기도 하겠지 , 이 일은 신경이 약한 사람에게는 힘드는 일이지 . 하지만 나는 아가씨가 열심히 일해 줘서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 그래서 당신의 월급을 지금 당장 2 배로 올려 주기로 하지요 ."
케룬의 갑작스런 말에 로랑은 그저 어안이 벙벙해서 다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그러나 케룬은 무엇인가 대단히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으로 싱글벙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 지금부터 아가씨가 하는 일도 바빠질 거요 . 드디어 내 실험을 발표하기로 했다오 . 이미 신문에서도 아주 떠들어대고 있으니까 .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리를 공개한다고 하니까 , 세상은 온통 야단법석이오 ."
" 박사의 머리를 공개하실 셈인가요 ?"
" 원 천만에 , 박사의 머리라니 . 딴 시체에서 잘라 올 머리지 . 그 시체는 아마 내일쯤 여기에 운반되어 올 거요 . 그래서 박사의 머리를 다음 방으로 옮기고 , 그밖에 이것저것 준비를 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소 ,"
" 대체 그건 누구의 시체인가요 ?"
" 글쎄 , 그건 나도 알 수 없소 . 다만 확실한 것은 오늘은 아직 시체가 아닌 아주 건강하고 원기 발랄한 살아 있는 인간이란 말이오 ."
이 말을 듣곤 로랑은 너무나 무서워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저 케룬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그 모습을 보자 케룬은 우스워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
" 뭘 그렇게 놀랄 것 없어요 . 파리에는 교통사고나 그 밖의 사고로 죽어간 , 그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만을 안치해 두는 시체 안치소라는 게 있지 않소 . 난 거기에 시체를 하나 부탁해 두었어요 . 대도시에서는 매일매일 몇 십 명 , 아니 몇 백 명이라는 사람이 자동차에 치거나 공장 사고 등으로 죽어가고 있어요 . 아침까지도 팔팔하게 살아 있던 사람이 저녁이면 자동차에 치거나 , 그 밖의 사고로 안 죽으리라고 누가 보장을 하겠소 . 그래서 시체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 그러나 내게는 신선한 시체가 필요한 거요 . 죽은 지 한 시간 이내에 여기로 운반되지 않으면 안 되오 ."
로랑은 케룬이 무서웠다 . 정말 무서운 인간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 이렇게까지 무서운 인간일 줄은 몰랐다 . ( 언젠가 나는 반드시 케룬을 고발하리라 .) 하고 로랑은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다 . 그 다음날 , 참말로 실험실 해부대 위에는 시체가 하나 놓여 있었다 . 그것은 아직 젊은 여자의 시체였다 . 얼굴은 곱게 화장을 한 채로 였으며 , 눈은 놀란 듯이 크게 뜨고 있었다 .
" 이 밖에도 아직 시체는 많았지만 , 머리를 부딪쳐서 뇌를 상했거나 독약을 먹고 죽은 시체뿐이어서 찾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지요 . 그러다가 겨우 하나 마음에 드는 걸 찾아 왔어요 . 이건 카페의 댄서였던 여자요 . 손님들끼리 서로 싸움이 벌어져 권총을 잘못 맞고 죽은 거라오 . 탄환이 심장을 꿰뚫었지요 ."
이렇게 말한 다음 , 케룬은 익숙한 솜씨로 단번에 여자의 머리를 동체에서 댕강 잘라냈다 . 그리고는 동체는 밖으로 운반해 보내고 , 머리는 유리판 위에 올려놓았다 . 그리고는 재빨리 혈관이며 목구멍에 관을 연결시켰다 .
" 자 , 모두 잘 됐어 . 이젠 전부의 마개를 열기만 하면 이 머리는 다시 소생하는 거요 . 로랑 양 , 플라스크의 마개와 실린더의 마개를 전부 열어요 ."
하고는 잠시 로랑 쪽을 보면서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
" 그 실린더 속에 들어 있는 건 독물이 아니오 . 머리가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공기가 들어 있는 거요 . 자 , 시원하게 마개를 열어 줘요 ."
로랑은 곧 전부의 마개를 옅었다 . 최초에는 여자의 얼굴에 붉은 빛이 돌았다 . 그리고 눈꺼풀이 약간 보일 듯 말 듯 움직였다 .
" 피가 돌기 시작했군 . 성공이다 ."
여자의 눈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빛 쪽으로 향했다 .
" 정신이 들었군 . 좀더 공기를 세게 해요 ?"
로랑이 실린더의 마개를 활짝 열어제치자 목구멍에서 씨익 하는 소리가 났다
" 어머 , 여기가 어디죠 ?"
하고 불쑥 여자의 머리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
" 여기는 병원이라오 , 아가씨 ."
라고 케룬이 대답했다 . 여자의 머리는 눈을 움직여 사방을 둘러보더니 눈이 아래쪽으로 갔을 때 ,
" 앗 ! 내 몸뚱이가 없어요 ! 발도 손도 없어 !" 하고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
" 그래요 아가씨 . 당신은 머리만이 살아 있는 거요 ."
" 어쩌면 이런 무참한 짓을 한단 말예요 ? 난 몸뚱이가 없이 살아갈 수 없단 말예요 . 이런 꼴로는 춤도 출 수 없단 말야 . 어서 내 몸뚱이를 돌려 줘요 . 이 강도 , 이 살인자 !"
" 아가씨 , 침착해요 . 당신은 권총에 맞아 죽었던 거요 . 그걸 내가 과학의 힘으로 소생시켜준 거요 . 당신은 감사해야 마땅하다오 . 하긴 머리만을 소생시킨 것은 안됐지만 말이요 ."
" 싫어요 , 싫단 말예요 . 머리만 살아 있음 뭘 해요 . 이게 무슨 꼴이어요 . 아무라도 좋으니까 딴 여자의 몸뚱이라도 붙여 줘요 . 선생님은 아까 과학의 힘으로 저를 살려냈다고 하셨죠 . 과학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내 머리에 딴 사람의 몸을 갖다 붙일 수는 없나요 ?"
"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 글쎄 , 얌전히 하고 있으라니까 . 머지않아 멋진 동체를 골라다가 붙여줄 테니까 ."
이렇게 말하고 나서 , 케룬은 로랑에게 눈짓을 하고 실린더의 마개를 막게 했다 . 그리하여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여자의 입을 봉해버렸다 .
" 로랑 양 , 당신의 일이 이제부터 바빠지겠군 ."
하고 케룬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
빌케의 명안
케룬이 로랑의 일이 바빠지겠다고 한 말은 사실이었다 . 머리를 다시 살려 받은 여자의 이름은 빌케라고 했다 . 그 여자의 머리는 박사의 머리와는 달리 , 유리 테이블 위에서 얌전하게 하고 있지 않았다 . 박사는 학자이니까 육체가 완벽하게 있었을 때도 , 책을 읽거나 무엇을 생각하거나 하는 일이 생활의 전부였다 . 박사는 지금은 머리 뿐으로 돼 버렸지만 , 여전히 두뇌를 써서 과학 연구를 하고 있으므로 어쩌면 예전과 같은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 그러므로 박사는 생각보다는 별로 심심해하지는 않았다 . 그러나 빌케는 그렇지가 않았다 . 카페의 댄서였던 빌케는 다리를 들고뛰고 떠들썩하며 춤을 추는 일이 직업이었기 때문에 , 육체가 없이 살아 있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래서 그 여자는 심심해서 큰 소리로 떠들어대거나 , 아니면 갑자기 우울해져 시무룩해지곤 했다 . 케룬은 빌케의 머리가 심심한 나머지 아주 약해져서 공개할 수 없게 될까 봐 걱정이었다 . 그래서 빌케가 심심해하지 않도록 이것저것 신경을 썼다 . 로랑은 빌케를 위해서 영화 기사가 되어 실험실 안에서 영화를 보여 주었다 . 처음에는 빌케도 재미있게 보고 있었지만 곧 싫증이 나서 ,
" 다른 여자들이 고운 옷을 입고 , 즐겁게 걸어가고 있는 따위는 보기도 싫어 ."
하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 라디오도 그리 오래는 계속되지 못했다 . 음악을 들으면 ,
" 아아 , 나도 춤을 추고 싶어 . 난 아주 춤의 명수였단 말야 . 얼마나 멋지게 추었는데 . 그런데 이게 뭐람 ."
하며 아주 슬프게 울어대는 것이었다 . 그래서 로랑은 빌케를 위해 새롭고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차례로 이것저것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 거기에다 빌케는 제멋 대로였으며 , 매우 멋을 부렸다 . 아침에 로랑이 실험실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빌케가 먼저 말을 걸어 왔다 .
" 로랑 양 , 미안하지만 거울 좀 빌려 줘요 ."
그래서 로랑이 거울을 보여 주면 ,
" 미안하지만 머리 좀 빗겨 줄 수 없을까요 ? 난 아무 일도 할 수 없지 않수 . 그러니 얼굴에 크림도 발라 주고 , 입술 연지도 발라 줘요 ."
하는 식이다 . 그날도 아침부터 빌케의 머리는 로랑을 붙들고 ,
" 저어 , 부탁이 있는데 코 좀 긁어 줘요 . 가려워서 죽겠단 말야 . 좀더 오른쪽으로 , 좀더 세게 , 아니 조금 더 위쪽 , 아이 안타까와 ."
그러고 있을 때 , 케룬이 마침 지나치다가 명랑하게 인사말을 걸었다 .
" 오오 아가씨 , 안녕하시오 ?"
그러자 빌케는 기다리고 있은 듯이 막 지껄이기 시작했다 .
" 예 , 선생님 . 그런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 선생님은 언젠가 내게 딴 사람의 동체를 붙여주시겠다고 말씀했잖아요 . 저는 하루 발리 새로운 동체를 달고 춤추고 싶단 말이어요 . 그러니 선생님 , 어서 젊고 아름다운 여자의 몸을 찾아다가 붙여 주셔요 ."
" 그래 , 그러지요 . 하지만 왜 여자의 동체가 아니면 안 되는 거지 . 남자의 몸이라도 괜찮을 텐데 ......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제 여자가 아닌 , 코밑에는 수염이 돋고 턱에도 수염이 날 테고 목소리까지 변해버릴텐데 , 그럼 좋지 않을는지 ."
" 싫어요 , 싫어요 . 저는 절대로 여자가 아니면 싫어요 ."
"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 어디 열심히 젊고 아름다운 미인의 몸집을 찾아다 주지 ."
" 어머 , 선생님 감사해요 . 선생님이라면 틀림없이 제 머리에 동체를 달아 주실 수 있을 거여요 . 저는 꼭 그렇게 믿어요 ."
" 그렇고말고 . 그 정도의 일은 내게 있어선 아무 것도 아니지 ."
이렇게 말하면서 케룬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 이건 멋진 생각이군 . 두 사람의 시체에서 한 사람의 산 인간을 만들어낸다 ! 이건 도우엘 박사도 생각 못한 훌륭한 명안이야 . 죽은 인간의 머리를 살려낸 것도 , 이 실험을 성공시킨 것도 도우엘 박사였지 . 그러니까 가령 이 실험을 내 이름으로 발표한다고 해도 그건 내게 있어서 진정한 명예는 못돼 . 그러나 죽은 사람의 머리하고 동체를 각각 맞붙여서 산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내 것이며 , 그것을 자기 손으로 성공시킬 수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게 있어서 진정한 명예가 되는 거다 . 난 이 실험으로 인해서 단번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학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 ) 그리고서 케룬은 , ' 좋아 ,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성공시켜 볼 테다 ! ‘ , 하고 소리내어 말했다 .
케룬의 실험
케룬은 자신 만만하게 , " 그런 건 나에게 문제도 안 되는 일이야 ." 라고 했지만 천만의 말씀 , 그것은 참으로 어렵고 복잡한 실험이었다 . 케룬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 이 실험을 자기 혼자 힘으로 성공시키고 싶었지만 ,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 아무래도 도우엘 박사의 머리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케룬은 마침내 박사의 머리 앞에서 자기의 새로운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아무쪼록 힘을 빌려 주십사고 머리를 숙여 부탁했다 . 박사는 케룬의 설명을 듣자 , 그 실험에 대해서 케룬보다 더 흥미를 나타냈다 . 박사의 열성은 케룬 이상이었다 . 박사는 매일 밤 케룬에게 실험에 대한 도움의 말을 해주었으며 지도를 계속했다 . 케룬이 전연 생각지도 못한 중대한 문제를 생각해 내는가 하면 , 크게 틀린 것을 발견해서는 주의를 주곤 했다 . 모든 준비가 끝나자 , 드디어 동물 실험으로 들어갔다 . 2 마리의 개의 머리와 동체를 이어 붙이는 실험이다 . 이 실험을 실제로 한 것은 물론 케룬이었지만 , 그는 실패만 거듭하여 개를 여러 마리 죽였으므로 그때마다 박사의 머리에게 몹시 꾸중을 들었다 . 그러나 마침내 어느 날 . 케룬은 머리는 검고 동체는 흰 한 마리의 개를 끌고 의기 양양해서 박사의 머리가 있는 방에 나타났다 .
" 박사님 , 어떻습니까 ? 이걸 보십시오 . 이건 검은 개의 머리와 횐 개의 동체를 이어 붙인 합성 개입니다 . 훌륭히 살아 있죠 . 실험은 대성공입니다 ."
하고 자랑을 했다 . 개는 박사의 머리를 보자 , 갑자기 털을 곤두세우고 몹시 짖어대면서 박사 머리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 괴상한 것을 보고 놀란 모양이다 .
" 케룬 군 , 그 개를 좀 걷게 해 보게나 ."
하고 박사가 말했다 .
케룬은 개를 데리고 박사의 머리 주위를 두세 번 돌았다 . 개의 걷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던 도우엘 박사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케룬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
" 그 개는 뒷다리를 질질 끄는군 . 처음부터 다리를 절었던가 ?"
" 아뇨 , 그렇지 않았습니다 ."
" 그렇다면 틀림없이 수술할 때 시간이 걸려 , 심장의 활동과 호흡을 너무 길게 멈추어서 그렇군 . 그래서 개는 신경 계통이 잘못 되어 다리를 저는 거야 . 앞으로는 좀더 세심히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 돼 . 빌케양의 수술에 실패해서 그 여자를 절름발이로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게 ."
이 말을 듣고 케룬은 몹시 못마땅했다 . 도우엘 박사가 머리뿐인 지금도 옛날처럼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꾸짖듯이 용서 없이 꾸중하기 때문이다 . 체 , 제까짓 것이 ! 저 공기 구멍의 마개를 조금만 비틀면 펑크 난 타이어처럼 김이 빠져 숨통이 끊어질 것이라고 마음속으로는 생각했지만 , 케룬은 꾹 참고 그와는 정반대로 박사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 여러 가지로 지도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
그리고는 개를 끌고 방에서 나왔다 . 밖으로 나오자 케룬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 곧 개를 끌고 휘파람까지 불며 , 빌케의 머리가 있는 실험실로 들어갔다 .
" 아가씨 , 안녕하시오 ? 드디어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날이 왔소 . 나는 마침내 실험에 성공했단 말이오 . 이 개를 좀 봐요 . 이 개도 당신처럼 동체는 없이 머리뿐이었소 . 자 , 보다시피 틀림없이 완전한 한 마리의 개의 모습이 되어 살아 있지요 . 더욱이 이렇게 건강하게 말이오 ."
하고 케룬은 빌케에게 개를 자랑하면서 말했다 . 그 말을 듣고 빌케는 볼이 잔뜩 부어 가지고 ,
" 저는 개가 아니란 말이어요 . 선생님 , 그런 개 따위만 상대하지 말고 빨리 나를 소생시켜 주셔요 ."
" 그래 , 그래야지 . 하지만 너무 서둘건 없어요 . 적당한 시체 , 아니 마땅한 육체가 발견되기만 하면 곧 아가씨를 옛날처럼 손발을 갖춘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 그러니까 아가씨는 하느님께 아무쪼록 하루 빨리 멋진 미인이 죽어서 당신을 위해 훌륭한 육체를 남겨놓고 가도록 기도나 드리고 있어요 ."
" 아이 , 무서워라 ! 내 육체를 얻기 위해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나 죽어야 하다니 .... 그러나 선생님 , 그건 물론 죽은 사람의 육체죠 . 만일 그 사람이 찾아와 자기 동체를 돌려달라면 어쩌나요 ?"
" 그 사람이라니 , 누구 말인가 ? 죽은 사람 말이지 , 그렇다면 걱정 없어 . 이미 그 죽은 사람은 육체가 없으니까 여기까지 걸어올 리가 만무해 . 마음 푹 놓고 기다리고 나 있어요 . 나는 몹시 바쁜 몸이야 . 지금부터 시체 안치소에 당신 육체를 찾으러 가야 하니까 ."
그러면서 케룬은 바쁜 듯이 방을 나갔다 . 그날 밤 , 케룬은 검은 안경을 끼고 모자는 깊이 눌러쓰고 외투 깃을 세우고서 , 마치 괴상한 도둑 같은 모양을 하고 집을 나섰다 .
시체 안치소의 밤
시체 안치소란 교통 사고나 그 밖의 사고로 죽은 ,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를 그 가족이 찾아올 때까지 맡아 두는 곳을 말한다 . 시체들은 넓은 방안 가득히 나란히 열을 지은 대리석 침대 위에 벌거벗긴 채로 뉘이고 , 그 위를 시트로 덮어놓았다 . 시체 안치소의 방안은 어둡고 침침하며 , 높은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 희미한 불빛으로 시체들 위를 비치고 있다 . 마치 묘지처럼 으스스하고 기분 나쁘다 . 케룬은 벌써부터 이 길게 줄 이은 시체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이따금 시트를 들쳐서 시체를 들여다보곤 했다 . 그는 실험용 시체를 언제나 여기서 구했다 . 시체는 3 일 동안만 여기 놓아두고 , 그 동안에 찾아가는 사람이 없으면 공동묘지나 병원 해부실로 옮겨가게 되어 있었다 . 그러나 3 일이나 지난 시체는 이미 썩기 시작해서 케룬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 그래서 그는 항상 시체 안치소의 직원에게 돈을 집어주고 새 시체하고
오래 된 시체의 날짜를 바꿔치기 해서 아직 죽은지 얼마 안 되는 새 시체를 손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오늘의 케룬은 시체에 특별 주문이 있었다 . 얼굴은 어떻든 , 신체에 상처가 없고 특별히 뛰어난 훌륭한 육체를 가진 시체라야 했다 . 그런데 시체 안치소의 시체들은 대개는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 그리고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들은 거의가 자동차를 가지고 있을 만한 부자가 아니라 , 육체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육체가 부드럽고 미끈하지가 못하다 . 억세고 거칠어서 빌케가 바라는 것 같은 멋진 육체의 소유자는 별로 없다 . 그러므로 케룬이 아무리 눈이 벌개서 찾아도 쉽게 만족할 만한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 그러는 동안에 아주 밤중이 되고 말았단 . 케룬은 시계를 보며 ,
" 오늘은 글렀군 . 단념해야겠다 ."
하고 중얼거리며 천천히 돌아가려고 했다 . 그때 , 뜻하지 않는 대 사건이 일어났다 . 파리 근방에서 열차의 충돌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 몇 십 명이라는 사람이 죽고 , 다친 사람은 몇 백 명이나 되었다 . 시체 안치소에는 줄을 이어 새로운 시체가 운반되어 왔다 . 대리석 침대는 금방 꽉 차버렸고 , 콘크리트 바닥에 직접 눕혀놓은 시체들도 많았다 . 케룬은 눈이 번쩍 띄어 .
" 이건 대성황이군 . 마치 시체 전람회 같다 ."
하고 몹시 기뻐하며 , 주저 없이 시체들 사이를 누비며 하나하나 조사하고 다녔다 . 그러나 원래 열차의 충돌 사고라서 어느 시체나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 멋진 육체도 몇 개는 있었지만 , 아깝게도 팔이 부러졌거나 발이 잘렸거나 해서 소용이 되지 않는다 . 그러다가 문득 한 시체가 눈을 끌었다 . 그것은 아름답고 젊은 여자의 시체였다 . 상류 계급의 여자인 듯 훌륭한 옷을 입은 그 시체에는 상처가 없었다 . 머리를 부딪혀서 죽은 모양이다 . 케룬은 그 시체로 다가갔다 . 그리고 주머니에서 줄자를 꺼내 시체의 목둘레를 재어 보았다 . 꼭 36 센티다 .
" 됐어 , 빌케의 목둘레하고 꼭 같군 ."
하고 케룬은 돌연 시체의 목에서 값진 목걸이를 벗기고 , 그것을 옆에 있던 시체 운반하는 사람의 손에 쥐어 주었다 .
" 여보게 , 이 시체를 전처럼 운반해 놓아요 ."
인부들은 묵묵히 그 시체를 들것에 올려놓고 시트를 덮어 씌웠다 . 그리고 낡은 시체의 하나인 카드로 바꿔 달고서는 밖으로 운반해 냈다 . 시체는 자동차로 케룬의 집에 운반되어 왔다 . 수술 준비는 이미 완전히 되어 있었다 . 시체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 케룬은 로랑과 존의 도움을 받으며 재빨리 시체의 목을 잘라냈다 . 머리는 존이 흰 헝겊으로 싸서 어디론가 운반해갔다 . 케룬은 다시 한번 시체를 세밀히 조사해 보았다 . 오른쪽 발 밑에 조그만 상처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 별 대수로운 일이 없을 테지 하면서 약으로 그 상처를 지져놓았다 .
" 그렇군 . 빌케 양에게 이 시체를 보여 주기로 하자 ."
하고 커튼을 열어 빌케에게 시체가 보이게 해 주었다 .
" 자 , 어떻소 ? 이 멋진 육체는 마음에 드시겠지 ."
그러자 빌케는 목 없는 시체를 보고 너무나 무서워서 눈을 있는 대로 뜨고 소리질렀다 .
" 싫어요 , 싫단 말이어요 . 전 이렇게 끔찍한 짓인 줄은 몰랐어요 . 난 안할래요 , 그만둬요 . 이 살인마 !"
" 로랑 양 , 마개를 비틀어 빌케의 입을 틀어막아 버려요 ."
" 그런데 빌케 양이 저렇게 싫어하는데 수술을 해도 괜찮을까요 ?"
하고 로랑은 케룬에게 물어보았다 .
" 이 마당에 와서 무슨 소리야 . 로랑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으면 돼요 ."
하면서 케룬은 곧 수술을 시작했다 . 그것은 참으로 무섭고도 복잡한 수술이었다 . 머리와 동체를 이어 붙이는 수술이라 해도 단지 그뿐이 아니다 . 머리와 동체의 혈관이며 신경 , 그리고 숨관을 하나도 빠짐없이 빈틈없게 꼭 이어 붙여야 하는 것이다 . 그러나 케룬은 이 어렵고도 복잡한 수술을 훌륭히 해치웠다 . 그것은 직접 눈으로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 마음속으로 케룬을 증오하고 있는 로랑조차 그만 감탄해 버렸을 정도였다 . 수술은 한 시간만에 끝났다 . 케룬은 한숨을 돌리고 로랑에게 ,
" 자 , 이젠 심장을 움직여서 피를 돌게 하기만 하면 빌케는 살아나는 거야 . 그러나 이건 비밀이니까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어 . 나중의 일은 내 혼자서 할 테니까 로랑은 그만 쉬어요 ."
하면서 로랑을 옆방으로 물러가게 했다 . 로랑이 케룬에게 불려간 것은 그로부터 약 1 시간쯤 지나서였다 . 빌케의 목에는 붕대가 감겨지고 , 그 위로 깁스가 되어 있었다 .
" 맥박을 세어 봐요 ."
로랑은 살며시 빌케의 손을 잡았다 . 그러자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 조금 전만 해도 차디찬 시체의 손이던 것이 지금은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며 , 약하기는 하나 맥박이 뛰고 있지 않은가 .
" 빌케는 숨도 쉬고 있어 . 거울을 얼굴에 갖다대어 보라구 . 그것 봐 , 거울이 흐렸지 . 그러나 정신이 들려면 며칠 걸릴 테니까 그때까지는 절대로 안정시켜야 돼 . 그러니 로랑은 오늘부터는 우리 집에서 묵으면서 빌케를 돌봐 줘야겠어 ."
" 만약 그 부탁을 거절한다면 어떡하시겠어요 ?"
" 거절한다면 도우엘 박사의 머리를 약물로 녹여버릴 뿐이지 . 로랑이 아무리 고발해 봐도 이미 증거물이 없거든 . 넌 도우엘 박사 머리와 말을 했지 ? 아니 숨겨도 별수 없어 . 존이 죄다 엿듣고 있으니까 . 너는 내 비밀을 알고 있고 , 또 고발하려고도 하고 있어 . 그러니까 너를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단 말야 ."
이렇게 말하고 케룬은 방에서 나가버렸다 .
" 케룬은 어쩌면 이렇게도 무서운 인간일까 ?
로랑은 그만 몸서리가 쳐졌다 .
합성 인간
빌케가 ' 되살아난 것 ' 은 그로부터 3 일째 되는 날 오후 4 시경이었다 . 창문을 통하여 들어온 햇빛이 빌케의 얼굴을 비치고 있었다 . 빌케는 조금 눈을 뜨고 빛이 들어오고 있는 창문 쪽을 보았다 . 정신이 든 것이다 . 곧 빌케는 눈동자를 움직여 로랑의 얼굴을 이상한 듯 바라보고 나서 , 또 눈을 돌려 아래쪽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 육체가 있었던 것이다 ! 지금까지 머리뿐이었던 자기에게 틀림없이 동체도 팔도 다리도 모두 붙어 있다 . 빌케는 기쁜 듯이 방긋 웃었다 .
" 아직 말을 해선 안 돼요 . 조용히 자고 있어요 . 얌전히 자고 있을수록 빨리 일어날 수 있어요 ."
하고 옆에서 로랑이 주의를 주었다 . 빌케의 목에 감겼던 붕대와 깁스를 떼버린 것은 그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
" 기분이 어때 ? 어디 자기 몸 같은 기분이 들어요 ? 발가락을 좀 움직여 봐요 ."
라고 케룬이 말했다 . 빌케는 열심히 발가락을 움직여 보려고 했다 . 그러나 꼼짝도 하지 않는다 .
" 아직 신경 계통의 활동이 회복되지 않아서 그래요 . 계속 열심히 발가락 운동을 해요 ."
그리하여 빌케는 매일 몇 시간씩 발가락 운동을 계속했다 . 드디어 그러던 어느 날 , 빌케의 왼쪽 엄지발가락이 움직였던 것이다 . 죽었던 인간이 진짜 되살아나고 , 마침내 움직이게 되었던 것이다 ! 그 다음부터서 빌케는 순조롭게 회복이 되어 갔다 . 발가락뿐만 아니라 손과 발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 이윽고는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 빌케가 자유롭게 걸어다니게 되자 케룬은 빌케를 도우엘 박사에게 보이기 위해 데리고 갔다 . 빌케는 화장을 하고 새로 맞춘 회색 옷을 입고 , 케룬과 팔짱을 낀 채 박사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 케룬 군 , 장하네 . 자네의 수술은 훌륭히 성공했어 ."
도우엘 박사는 진심으로 케룬을 칭찬하고 축복했다 . 케룬은 득의 양양해서 빌케를 데리고 자기 서재로 돌아왔다 . 빌케는 케룬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서 말했다 .
" 선생님 , 정말 고맙습니다 .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 하지만 저는 돈도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아서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가진 것이라는 없으니 어떡하죠 ?
"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
" 아이 , 좋아라 . 그럼 선생님 , 이젠 저를 집에 보내 주시는 거죠 ."
" 뭣이 , 돌아간다고 ?"
" 네 , 퇴원시켜 주셔요 . 저는 이제부터 제가 있던 카페로 돌아가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 줄 테여요 ."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케룬 쪽이다 . 그처럼 고생을 해서 빌케를 되살린 것은 다름이 아니다 . 이 실험을 학계에 발표해서 세계적인 대학자가 되고 싶어서였는데 .
" 그건 안 돼 . 당신은 아직 여기 있으면서 나의 감독을 받아야 돼 . 언제 퇴원 시켜주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
하고 케룬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 그 말을 듣자 빌케는 볼이 부어 가지고 후닥닥 이층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그 다음날 , 빌케는 10 시가 되도록 일어나서 나오지 않았다 . 불안해진 케룬은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보았다 . 앗 , 방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 창문께로 달려가서 아래를 보니 , 시트와 수건을 찢어서 이어 만든 줄이 걸려 있었으며 , 그 밑의 화단이 엉망으로 밟혀 있었다 .
" 아차 , 놓쳐버렸구나 ,"
케룬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분해했다 . 중요한 공개 학술 보고회를 위한 ' 실물 견본 ' 이 도망가 버린 것이다 . 그러나 그뿐인가 , 만일 빌케가 여기서 본 일을 퍼뜨린다면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이 벌어지리라 .
" 빌케에게 박사의 머리를 보여준 건 큰 실수였어 ",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다 . 그렇다고 경찰에 빌케를 찾아달라고 할 처지도 못 된다 . 그래서 케룬은 사립 탐정에게 빌케를 수색해 달라고 부탁했다 . 사립의 명탐정은 곧 수색에 나섰다 . 그리하여 어렵지 않게 쉽사리 찾아냈다 . 빌케가 그날 밤 회색 옷을 입고 케룬 집의 높은 담을 넘어 택시를 잡아타고 전에 일하고 있던 카페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 빌케가 , 틀림없이 죽어버린 빌케가 다시 카페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 그의 친구들이나 손님들은 기절해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 그러나 빌케는 사실대로 얘기하지는 않았다 . 시체 안치소에 운반되었지만 ,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 그리하여 거기서 오래 치료를 받은 끝에 돌아온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 빌케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 시체의 여자 가족들이 달려와서 육체를 돌려내라고 야단을 칠는지도 모르겠고 , 또 케룬이 자기를 다시 끌어가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 많은 손님들에게 완쾌 축하의 갈채를 받은 빌케는 그날 밤으로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 붉은 머리의 안나라는 여자 친구와 그 친구와 남편인 금고 뚫기의 명수인 존이라는 사나이 셋이었다 . 사립 탐정이 조사해서 알아낸 바로는 거기까지 뿐이었으며 , 그 뒤의 빌케의 행동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
괴상한 미녀
여기는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해변가 . 바다 가까이 있는 어느 호텔에 두 사람의 청년이 머물고 있었다 . 한 사람은 에셔 도우엘이라는 대학생으로서 , 최근 병으로 세상을 떠난 도우엘 박사의 외아들이다 . 또 한 사람은 아르망 라아레라는 젊은 화가 . 라아레도 바로 얼마 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잃어버렸다 . 유명한 여배우였던 동생 안젤리카가 파리의 열차 사고 때 행방 불명이 되어 , 아직까지 생사조차도 알 수가 없다 . 두 사람은 각기 아버지를 여읜 슬픔과 동생을 잃어버린 슬픔을 달래기 위하여 경치가 좋은 이 해안을 찾아왔던 것이다 . 라아레는 이 해변가에 와서도 , 밤이 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화려한 장소로 찾아가서 쓸쓸함을 달래었다 . 그 날도 라아레는 초저녁부터 기차를 타고 몬테카를로로 달려갔다 . 그가 호텔에 돌아온 것은 그 다음날 오전 4 시가 다 되어서였다 . 방안으로 뛰어든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몹시 흥분해 있었다 . 라아레는 억지로 에셔를 일으키고는 이렇게 말했다 .
" 에셔 , 세상에 이런 이상한 일도 있을까 ? 나는 오늘 안젤리카를 봤어 ."
" 뭐 , 그럼 동생이 살아 있단 말인가 ?"
" 아니 , 그게 이상하단 말야 . 그 여자의 얼굴은 내게 전혀 기억이 없는데 , 그 여자의 몸집은 분명히 내 동생이란 말야 ."
" 잘못 본 것일 테지 . 아마 꼭 같이 닳은 여자일거야 ."
" 아니야 , 난 화가야 . 내 눈이 틀릴 리가 없어 . 그리고 나는 몇 번이나 동생을 모델로 해 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단 말야 , 틀림없어 .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여자의 목소리야 . 그 여자는 일행인 붉은 머리의 여자와 인상이 나쁜 사나이와 함께 카페에 와 있었는데 노래를 불렀어 .
난 그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버렸다네 . 왜냐구 ? 그 여자가 높은음으로 노래를 부를 때는 좋은 목소리가 아닌데 , 낮은음으로 부르면 아주 멋있는 음성이 돼 . 그런데 그게 안젤리카의 목소리 그대로란 말야 . 나는 마치 그 여자의 목에서 다른 두 여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생각되어 못 견디었네 . 그리고 또 이상한 것은 아직도 많아 . 그 여자는 회색의 옷을 어깨를 들어내고 입고 있었는데 그 어깨에 점이 있어 . 우리 안젤리카도 바로 그곳에 점이 있었거든 . 그리고 안젤리카는 팔을 이렇게 올릴 때 아주 고상한 동작을 쓰는 버릇이 있었는데 , 그 여자도 꼭 그대로의 동작을 하더군 . 틀림없이 그건 우리 안젤리카야 ."
" 하지만 자네는 그 여자의 얼굴은 전혀 모르는 얼굴이라고 했잖아 ."
"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하는 거지 . 그 여자는 폭이 약 4 센티 되는 보석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었는데 , 내게는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 수술한 흔적을 감추려고 일부러 한 것 같이만 생각되 ."
" 하하 라아레 , 그 목걸이 위쪽은 자네간 알지 못하는 여자의 얼굴이고 , 아래는 자네 동생의 몸이 틀림없다고 말하고 싶단 말이지 . 말하자면 합성인간이라 이 말인가 . 그런 엉뚱한 일은 지금의 의학으로는 할 수가 없어요 . 아니 , 잠깐만 ......"
하면서 에셔는 도중에서 무엇인가 생각이 떠오르는 듯 입을 다물고 말았다 . 그는 아버지인 도우엘 박사의 일을 생각해 낸 것이다 . 에셔는 언젠가 자기의 아버지가 행한 절단한 개의 머리를 되살려내는 실험에 입회한 일이 있었다 . 그때 아버지는 죽은 사람의 머리를 되살려내는 일도 머지않아 할 수 있다 . 그리고 또 나는 장차 죽은 사람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이런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 아버지라면 죽은 사람의 머리와 몸을 이어 붙여 다시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그 아버지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는 것이다 . 그러나 잠깐만 , 아버지에게는 훌륭한 조수들이 있었을 것이다 . 어쩌면 어느 조수인가가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받아서 합성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나 아닐까 ?
" 내게도 좀 마음에 걸리는 데가 있어 . 자네는 그 여자에게 접근하며 좀더 자세히 알아보게 ."
그러자 라아레는 그 말에 기운을 얻고서 그대로 했다 . 그 뒤로 끈기 있게 몬테카를로에 다니며 그 수수께끼 같은 회색 옷의 여자와 친해졌다 . 그러던 어느 날 , 라아레는 에셔와 함께 그 여자에게 부탁해서 바다로 요트놀이를 갔다 . 요트가 바다로 나아갔을 때 ,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라아레가 여자 옆으로 다가가서 ,
" 그 목걸이 참 멋집니다 . 잠깐만 보여 줘요 ."
하면서 번개같이 목걸이를 획 잡아챘다 . 그 여자의 목에는 삥 돌려 장미 빛의 흉터 자국이 있었다 .
" 이 상처는 어떻게 된 거요 ?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
여자는 바로 빌케였다 . 빌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 그러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채셔와 라아레는 놀라 급히 간호를 했다 . 빌케는 정신이 들자 , 두 사람 앞에 고개를 숙이고 이렇게 말했다 .
" 제발 저를 죽이지 말아 주셔요 . 몸을 뺏지 말아 주셔요 . 저는 아무 죄도 없단 말이어요 .
그러면서 모든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
" 저는 이런 무서운 수술은 그만둬 달라고 사정했어요 . 그런데 케룬 선생님이 억지로 수술을 해버린 거여요 ."
" 뭣이 , 케룬 ?"
하고 에셔는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 아버지에게 케룬이 조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 그렇다면 역시 케룬이 아버지의 연구를 빼앗아 합성 인간을 만들어낸 것임에 틀림없다 .
" 빌케 양 , 당신은 아까 케룬의 집에서 남자의 머리를 보았다고 했지요 . 그건 이 사람이 아닙디까 ?"
하며 에셔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서 빌케에게 보여 주었다 .
" 맞아요 , 이분이 틀림없어요 ."
하고 빌케는 대답했다 . 이 말을 들은 에셔는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 비실비실 쓰러지며 기절해 버렸다 . 이번에는 라아레와 빌케가 놀라서 에셔를 간호했다 . 에셔는 이윽고 정신이 들자 이렇게 말했다 .
" 라아레 , 이건 보통 범죄가 아냐 . 케룬은 우리 아버지가 죽었다고 속이고 , 몰래 아버지의 머리를 소생시켜 그걸 이용해서 뭔가 흉계를 꾸미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 빌케 양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 걸 잘 알았소 . 빌케 양 , 아무쪼록 우리와 힘을 합해서 아버지의 머리를 빼내는 일에 협력해 주시오 "
" 좋아요 . 기꺼이 도와 드리겠어요 . 그 대신 당신들께서 제 몸뚱이를 달라고는 안 하시겠죠 ."
그러자 라아레가 처음으로 웃으며 말했다 .
" 안심하십시오 . 당신이 우리의 일을 지켜만 준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요 . 자 , 지금부터 파리의 우리 집으로 가서 , 케룬의 비밀을 세상에 폭로시킬 계획을 세웁시다 ."
케룬 교수의 희생자
파리에 도착하자 , 라아레는 빌케를 자기 집의 제일 좋은 방에서 거처하도록 했다 . 그런데 그날부터 빌케의 발이 몹시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다 . 케룬은 빌케에게 얼마동안 얌전히 있을 것이며 , 절대로 춤을 추거나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 그러나 빌케는 케룬의 집을 빠져나가자 곧장 카페로 가서 춤을 추었고 , 남프랑스의 해안에서는 라아레에게 이끌려 테니스를 치곤 했다 . 빌케는 새 육체를 받고 다시 살아났을 때부터 오른쪽 발바닥에 약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 발바닥의 조그만 상처부터 시작한 아픔이 점점 번져서 더욱 세게 아픈 것이다 . 그래서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몸을 가눌 수도 없을 만큼 중태가 되어 , 빌케는 진종일 침대에 드러누워 신음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 라아레는 몹시 놀라서 의사를 부르곤 , 옆에 꼭 붙어서 간호했다 . 라아레에게 있어서 빌케는 동생 안젤리카의 재생이었다 . 그 빌케가 괴로워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 라아레는 정성을 다해서 간호했다 . 빌케는 그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했다 . 빌케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까지 남에게서 이처럼 친절한 대우를 받은 일이 없다 . 마치 라아레가 자기의 친오빠처럼 생각되었다 . 빌케의 얼굴은 점점 변했다 . 빌케는 사실은 이미 서른 살에 가까운 카페의 댄서인데도 , 얼굴의 주름살도 어느 새 없어지고 얼굴빛도 아주 젊고 싱싱하게 되었다 . 그것은 빌케의 새로운 육신 , 즉 안젤리카의 젊은 육체가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 안젤리카는 이제 겨우 20 살이 되었을 뿐이었다 . 그 안젤리카의 몸 속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빌케의 머리에 영향을 주어 , 그녀를 젊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마음씨마저 소녀처럼 깨끗하고 상냥하게 만들은 것이었다 . 한편 라아레가 빌케를 간호하느라고 시간을 뺏기고 있을 동안 , 에셔는 케룬의 비밀을 탐지하기 위해서 대 활약을 하고 있었다 . ( 케룬의 비밀을 탐지하기 위해서는 그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로랑을 만나야 한다 .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 라고 생각한 에셔는 로랑을 찾았다 . 로랑의 집은 곧 알 수가 있었다 . 그러나 그는 거기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
" 로랑은 이미 케룬 교수 댁에도 없습니다 . 그리고 집에도 없어요 ."
하며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오른 로랑의 어머니는 말했던 것이다 .
" 뭐라고요 , 어디 갔나요 ?"
" 병원이어요 . 정신 병원에 들어갔답니다 ."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로랑은 , ' 일이 바빠서 당분간 교수 댁에서 머물게 되었으니 걱정하지 마셔요 .' 라는 편지를
보낸 후 , 죽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 어머니는 걱정이 돼서 몇 차례나 케룬의 연구실로 찾아가 보았지만 , 끝내 로랑을 만나게 해 주지 않았다 . 그러는 동안에 케룬에게서 ,
「 로랑양은 일 관계로 매우 신경이 날카롭게 되었으므로 ,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습니다 . 」
라는 편지가 날아왔다 . 깜짝 놀란 어머니는 곧 파리 교외에 있는 그 라비노 정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 병원에서는 규칙이라면서 일체 면회를 시켜 주지 않았다 . 늙고 병든 어머니는 어찌할 줄을 몰라 , 그저 딸의 건강만을 생각하며 매일 울면서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 그 말을 들은 에셔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
" 케룬이란 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잔인한 놈이오 . 로랑 양이 그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정신병원에 감금시킨 것이 틀림없습니다 . 저는 로랑 양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는데 , 이젠 오히려 , 우리들이 로랑 양을 구하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러나 마음을 크게 잡수시고 안심하십시오 . 반드시 로랑 양을 구해 가지고 올 테니까요 ."
이렇게 말하고 에셔는 날듯이 라아레의 집으로 돌아왔다 . 그런데 거기서도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
" 큰일 났어 . 그녀가 도망쳤다 ."
하며 라아레는 꼭 미친 사람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
" 뭐 , 누가 도망쳤다고 ?"
" 바로 빌케 양이 도망가 버렸단 말야 ,"
" 왜 도망쳤는지 차근차근히 얘기해 봐 ."
" 빌케양은 아침부터 발이 몹시 아프다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있기에 의사를 불렀지 . 발이 보라색으로 퉁퉁 부어 , 의사는 곧 입원시키고 수술을 받으라고 했어 ."
" 그렇다면 입원시켰으면 좋았을걸 ."
" 그런데 빌케 양이 죽어도 병원에는 안 가겠다는 거야 . 병원에 가면 목의 흉터를 보고 , 자기 정체가 탄로 날 테니까 싫다는 거야 ."
" 그래서 어떻게 되어 도망갔나 ?"
" 내가 겨우 빌케 양을 설득시켜 놓고 , 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하는 동안이었어 . 빌케양은 집안 사람들에게 , 내가 병원에서 곧 오란다는 거짓말로 감쪽같이 속이고 자동차로 도망가 버렸대 . 자 , 이런 편지를 써 놓고 말야 ."
하며 한 장의 편지를 에셔에게 건네주었다 .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
「 라아레 씨 , 아무쪼록 저를 용서해 주셔요 . 제가 나쁜 거여요 . 제가 케룬 선생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받은 거여요 . 저는 지금부터 케룬 선생의 연구실로 가겠어요 . 케룬 선생님은 나를 되살려낸 정도의 명의사시니까 틀림없이 발을 고쳐 줄 수 있을 거여요 . 그러니 제발 저를 찾지 말아 주셔요 . 하루 속히 나아서 또 다시 뵐 수 있도록 빌겠어요 . 」
전지를 읽고 난 에셔의 얼굴이 싹 변했다 .
" 역시 케룬에게 돌아간 거로군 . 그렇다면 이건 큰일인데 . 빌케 양이 우리의 일을 얘기하면 , 케룬은 틀림없이 우리의 복수가 두려워서 아버지의 머리나 빌케 양을 약물로 없애버릴 거야 . 틀림없어 ."
" 아니 , 빌케양은 절대로 얘기하지 않을 거야 . 요트께서도 그렇게 굳게 맹세했고 , 또 무엇보다 나를 친오빠처럼 따르고 있으니까 ."
" 그럼 ,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해 보세 . 빌케 양이 도망쳐버린 지금 , 별수 없이 더욱 로랑양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네 . 어떻게든 빨리 로랑 양을 구출하고 싶지만 , 라비노 병원은 대단히 경계가 심하다니까 섣불리 손을 쓸 수 없어 . 만약 실수해서 우리들의 일을 적이 알게 되면 , 그야말로 후회해 봐도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이야 . 그러니까 이 일은 아무튼 우리 이외의 사람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
" 그렇지 . 이런 모험적인 일에는 안성맞춤인 사나이가 있어 ."
" 그게 누군데 ?"
" 내 친구인 샤우프 군이야 ."
라비노 정신 병원
쾌남아 , 이름은 샤프 , 나이는 23 세 . 모든 운동의 챔피언이며 , 모험적인 일이라면 세끼 밥보다도 좋다는 사나이다 . 샤프는 라아레에게서 사건의 전모를 듣고 , 곧 로랑을 구출해 내는 일을 쾌히 승낙했다 . 그리고 3 일 후에는 반드시 로랑을 구출해 오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 용감하게 출발했다 . 그런데 3 일은커녕 , 샤프는 바로 그 다음날 아침 일찍이 옷은 너덜너덜 , 온 몸에는 할퀸 상처투성이가 되어 풀이 죽어 돌아왔다 .
" 도저히 안 되겠어 . 거긴 병원이 아니라 감옥이야 ."
라고 말하면서 , 샤프는 라아레들에게 그의 1 일 모험에 대해 이렇게 보고했다 . 용감하게 나서서 라비노 정신 병원으로 뚫고 들어가려던 그는 , 병원은 그만두고라도 문안에도 한 발 들여놓지 못했던 것이다 . 병원 주위는 마치 성벽처럼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 정문에는 보기에도 무섭고 험상궂게 생긴 문지기가 턱 버티고 서서 누구도 문안에는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게 한다 . 병원을 출입하는 상인조차도 문 밖에서 일을 끝내고 , 안에는 일체 들여보내지 않는다 . 샤프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서 돌 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 그런데 아직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몇 마리의 맹견이 물고 늘어 졌다 . 놀란 샤프는 서둘러 돌담을 기어올라 밖으로 뛰어 내렸다 . 그러자 이번에는 또 손에 방망이를 든 장정들이 맹견과 함께 쫓아왔다 . 샤프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리기 선수인 실력을 발휘해서 정신없이 뛰었다 . 그러다가 마침 옆을 달리고 있던 차에 뛰어올라 간신히 도망쳐 온 것이었다 . 만일 샤프가 육상 선수의 실력이 없었다면 이마도 맹견에게 물려죽었을는지도 모른다 .
" 그렇지만 나는 소득 없이는 돌아오진 않았지 . 나는 라비노 병원 옆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그 병원에 대해 이것저것 듣고 왔어 . 그 병원의 원장인 라비노라는 사나이는 아주 악인이라는 거야 . 그 병원에는 진짜 정신병자 외에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많이 수감되어 있다는 거야 . 남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악인들이 자기에게 방해되는 사람을 억지로 미친 듯이 만들어 , 병원에 돈을 많이 내고 입원시키러 온다는 거다 . 그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개는 전과자며 , 원장하고 한패가 되어 병원의 비밀을 지키고 있다는 거야 . 아무튼 라비노는 환자를 부탁하는 사람으로부터 많은 돈을 가로채고 있어 . 그 돈으로 경찰에 뇌물을 바치니까 경찰도 그 병원의 부정을 알면서도 눈감아 준다는 거다 ."
" 지금 샤프 군이 한 얘기는 정말일세 . 나도 이것저것 병원 일을 물었지만 , 그 병원에는 보통 방법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것 같애 . 이거 어떡하면 좋겠나 ?"
하고 에셔도 머리를 싸안으며 생각에 잠겼다 . 그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
" 그래 , 좋은 생각이 있다 !"
악마의 음악
이 옷은 라비노 정신 병원의 로랑이 있는 병실이다 . 회색의 벽에 회색 침대 , 그리고 회색의 모포 . 모두가 회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 로랑은 뜰이 바라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 어떻게 해서 내가 여기로 오게 되었을까 ? 빌케가 도망친 날 , 로랑과 케룬은 몹시 말다툼을 했다 . 그때 케룬은 보통 때와는 달리 부드럽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
" 로랑 양 , 당신은 처음으로 이 곳에 찼을 때 , 여기서보고 들은
것은 결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요 ?"
" 네 , 그때는 그렇게 말씀드렸지요 .
" 그러면 여기서 그 약속을 다시 한 번 되풀이 약속해 주시오 . 그렇게 하면 나는 당신을 집으로 돌려보내겠소 . 당신은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 나는 당신의 약속을 신용합니다 ."
" 싫습니다 . 당신은 나를 속였어요 . 나는 이렇게 무서운 비밀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 알았다면 그런 약속은 하지 않았을 거여요 ."
" 그렇다면 당신은 여기를 나가면 나를 고발할 작정인가요 ?"
" 물론이죠 . 꼭 그럴 거여요 ."
그렇게 말하고 , 로랑은 돌아서서 재빨리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 그날 밤 , 로랑은 발소리를 죽이며 몰래 들어온 케룬으로부터 마취를 당하고 , 이 무서운 병원으로 끌려왔던 것이다 . 라비노 정신 병원에는 처음부터 미쳐서 들어오는 광인은 10 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 그 외의 사람들은 이 곳에 억지로 끌려온 정상적인 사람들인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은 억울한 일을 호소할 길도 없었으며 , 이 병원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었다 . 만일 반항을 하는 날에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정말로 미쳐 버리던가 , 아니면 일부러 미친 척하여 목숨을 이어가는 도리밖에 딴 길이 없었다 . 더욱이 이 병원은 정상적인 사람조차도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장치가 잘 되어 있었다 . 방안이 온통 회색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 복도를 지나면 양쪽의 철창을 통해 진짜 미치광이와 가짜 광인들이 짐승처럼 울부짖고 소리지르는 고함 소리 , 히히 히히 하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온종일 들려온다 . 대개의 사람은 그런 소리를 듣기만 해도 정신이 이상해진다 . 또한 이 병원의 뜰처럼 기분 나쁜 곳도 세상에 드물 것이다 . 어디서 모아 왔는지는 모르지만 검은 잎의 나무만 심어 놓았기 때문에 ,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흔들리게 되면 마치 유령이 손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더욱 기분이 나쁜 것은 뜰 안의 화단이다 . 일부러 관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 검은 나비 꽃만을 심고 주위를 카밀레 꽃으로 불길한 리본처럼 둘러쳤다 . 이 뜰을 산책하면 어느 누구라도 기분이 으스스 해지고 만다 . 정상적인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드는 이 병원 특유의 뛰어난 수법으로서 ' 악마의 음악 ' 이라는 것이 있다 .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기분 나쁜 괴상한 음악이었다 . 그것은 처음에는 첼로를 켜는 듯한 부드러운 멜로디로 시작되었다가 , 점차로 미친 듯이 높은 바이올린의 소리처럼 광기 서린 멜로디로 변하는가 하면 , 돌연 사람이 우는 것 같은 음으로 변한다 . 이 기분 나쁜 음악이 어디선지 모르게 온종일 들려오기 때문에 , 그것이 아주 머리 속에 배어버려서 나중에는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것 같아 밖으로 도망쳐 나와도 뒤따라 들려온다 . 이 음악에 시달려서 미친 사람도 많이 있다 . 원장인 라비노도 또한 정상적인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명수였다 . 라비노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그는 환자의 경력이나 성질을 세밀하게 조사해서 , 그 사람의 약점을 잡아 여러 가지의 함정을 만들어서는 그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에 못 견디도록 해서 , 마침내는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 로랑의 ' 약점 ' 이란 그가 정직한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 라비노는 로랑이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 매일 그녀를 방문하고는 여러 가지 교묘한 수단을 써서 그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려고 했다 . 그래서 로랑이 그의 교묘한 수단에 걸려들어 그 실수로 거짓말을 하게 되면 , ' 그것 봐 , 당신은 거짓말쟁이야 . 당신은 아주 정직한 척하고 있지만 , 사실은 거짓말쟁이지 . 큰 악인이야 ." 하고 공격을 했다 . 로랑은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으므로 , 그런 공격에도 끄떡 않고 잘 참고 있었다 . 그러나 로랑은 이미 케룬의 연구실에서의 무서운 경험으로 인해서 ,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 그 위에 이 병원에서 악마의 음악으로 , 또한 라비노에게 밤낮으로 시달림을 받아 의지가 강한 로랑의 신경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 로랑은 지금 얼굴은 핏기가 없이 창백하고 몸은 여윌 대로 여위어서 , 기력 약해져 이때까지 몇 번이나 , " 난 미칠 것만 같다 . 이젠 안 되겠다 ." 하고 극한에 달한 일도 있다 .
미쳐버린 사람들
라비노 정신 병원의 환자들은 죄수처럼 산책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 하루 종일 회색 방에 쳐 박혀 있는 환자에게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겠는데 ,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기 뜰 안을 산책하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 하지만 이 사람들 중에도 미치광이가 아닌 보통 사람이 있을 텐데 하고 둘러보아도 , 어느 쪽이 진짜이고 어느 편이 가짜인지 로랑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그러나 얼마만큼 지나자 , 진짜 미치광이는 로랑 같은 새로운 환자와 마주쳐도 전혀 무관심하다는 것을 알았다 . 그리고 조금이라도 제정신인 사람은 새로운 환자를 자세히 본다는 것을 알았다 . 로랑은 키가 크고 턱에 수염이 있는 노인을 만났던 일이 있었다 . 그 노인은 로랑에게 다가오자 불쑥 이렇게 말했다 .
" 나는 벌써 20 년 동안이나 이 뜰의 오솔길을 거닐고 있지 . 아니 어쩌면 2 천년이었는지도 몰라 . 아무튼 여기선 달력이란 것이 없으니까 . 아가씨도 이 길을 20 년 동안이나 오락가락하게 될 것 같군 ."
그리고 나서 노인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
" 아가씨는 나를 미치광이로 생각하나 ? 난 일부러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하고 있는 것뿐이지 . 어떻든 여기서는 미친놈만이 살 권리가 있으니 말일세 ."
그리고는 갑자기 또 큰 소리로 ,
" 나는 나폴레옹님이시다 ."
라고 외치며 멀어져 갔다 . 그 뒷모습을 간호인이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 이 곳에서의 간호인은 의심스러운 환자를 감시하는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것이다 . 또한 로랑은 젊은 남자 환자에게 붙들렸던 일이 있다 . 그 환자는 수학 공식 같은 것을 줄줄 외어 나가다가 갑자기 화가 난 듯이 , " 어이 , 넌 내 얘기를 곧이듣고 있는 거야 ?" 하고 고함지르며 , 로랑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 로랑은 깜짝 놀라 사나이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 간호인은 그것을 보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있었다 . 미루어 생각건대 , 그 환자는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없는 진짜 미치광이였던 모양이다 . 오늘도 로랑은 우울한 기분으로 혼자 생각에 잠겨서 , 뜰의 오솔길을 거닐고 있었다 . 로랑의 신경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다만 의지의 힘만으로 버티어 나가고 있었다 . 그녀는 정말로 자살할 궁리마저 하게 되었다 . 로랑은 깊이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 한 광인이 그의 앞에 막고 서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
" 알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는 복이 있을 지어다 ."
라고 그 광인은 돌연 뜻도 모를 소리를 외쳐댔다 . 로랑은 흠칫 놀라 상대편 얼굴을 보았다 . 그는 품위 있는 얼굴 모습이었고 , 키가 크긴 잘생긴 청년이었다 . 다른 환자처럼 회색 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는지 수염이 아직 자라 있지 않았었다 . 로랑에게는 그 청년의 얼굴이 어디서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젊은 광인은 바싹 로랑 옆에 다가서더니 ,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이렇게 말했다 .
" 당신이 로랑 양이죠 . 나는 당신 어머니에게서 당신 사진을 보았습니다 ."
" 당신은 누구신가요 ?"
" 나는 도우엘 박사의 아들 에셔입니다 . 난 미친 것이 아닙니다 .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 일부러 미친 척하고 들어온 겁니다 . 오늘 밤 ,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으십시오 ."
이때 , 감시인 한 사람이 그쪽으로 다가왔다 . 에셔는 돌연 달려가서 옆에 있던 할머니 환자의 주위를 춤을 추며 빙빙 돌다가 , 아주 춤에 지친 듯이 힘없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의 미치광이 연기가 아주 그럴 듯했으므로 , 그가 진짜 미치광이인지 아니면 미친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인지 로랑은 분간할 수가 없었다 . 그러나 에셔가 도우엘 박사의 아들이란 것만은 틀림없다 . 무엇보다 두 사람의 얼굴이 꼭 닳은 것이 그 증거이다 . 에셔가 박사의 아들이라면 로랑을 구출하러 올 이유가 충분하다 . 그러므로 에셔가 이야기한 것은 사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로랑은 갑자기 기운이 솟아올랐다 . 에셔는 반드시 오늘 밤 나를 구출하러 올 것이 분명하다 . 나는 구출되는 것이다 ! 로랑은 아주 기분이 명랑해져서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 그러나 라비노에게 일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 . 라비노는 사람의 마음속을 잘 알아내는 명수이다 . 그러니 기쁜 얼굴이라도 한다면 당장에 알아차리고 말 것이다 . 그래서 로랑은 언제나처럼 어두운 얼굴을 하고 병원 쪽으로 되돌아갔다 . 로랑은 마음속에서 오늘 하룻밤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 악마의 음악 ' 이나 라비노의 시달림에도 참고 견디어 , 정신이 도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
삶과 죽음
로랑에게 있어서 그것은 라비노 정신 병원에서 지낸 수많은 밤중에서도 , 가장 고통스럽고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 밤이었다 . 로랑은 옷을 입은 채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자는 척하고 있었다 . 방안에는 5 백 와트의 전등이 밤새 켜진 그대로 있어서 , 당직 간호원이 때때로 문에 달린 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볼 수가 있게 되어 있다 . 로랑은 어느 새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 그 때 , 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 로랑은 번쩍 눈을 뜨고 침대를 빠져 살며시 문께로 다가갔다 . 문 밖에는 에셔가 서 있었다 .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
" 지금 방금 당직 간호원이 순시를 끝낸 참이오 . 이 틈에 도망칩시다 ."
두 사람은 살금살금 복도를 빠져 나와 현관으로 나왔다 . 뜰 안은 캄캄했다 . 그러나 돌담 주위에는 일정한 간격마다 전등불이 줄줄이 켜져 있었다 . 두 사람이 간신히 돌담 옆에까지 왔을 때 , 뚜벅뚜벅 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 두 사람은 얼른 풀섶 사이로 몸을 엎드렸다 . 한 경비원이 두 사람의 옆을 지나갔다 . 경비원의 모습이 멀어 지자 , 두 사람은 일어나서 돌담 밑으로 갔다 .
" 자 , 내가 도와드릴 테니까 당신이 먼저 이 돌담을 넘어가요 . 밖에는 우리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
라고 말하며 , 에셔는 로랑을 안아서 돌담 위로 기어오르게 했다 . 그 때 , 경비원이 전등불에 비친 로랑의 모습을 발견했다 . 경비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 그러자 병원 안의 전등이 모조리 켜지면서 , 주위는 대낮같이 밝아졌다 . 저쪽에서도 이쪽에서도 경비원들이 개와 함께 달려왔다 .
"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뛰어내려요 ."
에셔는 명령하듯 외쳤다 . 로랑은 훌쩍 돌담 밖으로 몸을 날렸다 . 뒤따라서 에셔도 돌담을 기어오르려고 했다 . 그 순간 , 두 경비원이 달려들어 에셔를 끌어내렸다 . 동시에 많은 경비원들이 달려와서 에셔의 위를 덮쳤다 . 돌담 밖에서 자동차의 엔진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 내 걱정은 말고 빨리 출발해 줘 . 전속력으로 !"
라고 에셔는 경비원들과 격투를 벌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 자동차는 빵 , 빵 그것에 대답하고 이윽고 멀어져 갔다 .
" 이 손을 놓아라 . 나는 내 발로 걸어가 주겠다 . 그러니까 손들을 놓으란 말야 ."
에셔는 저항을 그치고 이렇게 말했다 . 그러나 경비원들은 그를 빙 둘러싸고 붙들다시피 하고서는 병원 쪽으로 끌고 갔다 . 문 출입구에는 라비노가 담배를 피우며 버티고 서있었다 .
" 그놈을 묶어서 격리실에 처넣어 둬 . “
하고 그는 명령했다 . 에셔를 집어넣은 곳은 난폭한 환자를 가두어 두는 창문도 없는 조그만 방이었다 . 뒤따라 곧 라비노가 들어왔다 . 그는 경비원들을 물리치고 나서 , 큰 눈알을 굴리면서 에셔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 아주 대단한 배짱이군 . 그렇지만 난 속지 않아 . 네놈이 듀발리란 이름으로 우리 병원에 들어왔을 때부터 수상한 녀석이라고 점을 찍고 눈여겨보고 있었지 . 그건 그렇다 치고 , 무슨 목적으로 그 따위 일을 저질렀지 ? 누구에게 부탁 받았어 ? 네 본명을 대어 봐 ."
" 에셔 도우엘이다 . 도우엘 박사의 아들이다 ."
" 뭣이 , 도우엘 박사의 아들이라고 ?"
라비노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소리를 질렀다 . 그리고는 갑자기 밖으로 나가더니 , 찰칵 하고 문에 열쇠를 채워버렸다 . 에셔는 방에 혼자 남게 되었다 . 그러나 그는 조금도 불안해하거나 걱정이 되지 않았다 . 반드시 친구들이 구출하러 올 것을 튼튼히 믿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 하지만 그는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 손목을 요리조리 움직여서 묶인 새끼줄을 조금씩 늦추려고 했다 . 손목의 새끼줄이 조금 늦추어졌을 때 , 불쑥 문이 열리며 경비원들이 뛰어들었다 . 문구멍 사이로 경비원들은 감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경비원들은 새끼줄을 다시 잘 매어 놓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 방에는 창문도 없고 전등불은 켜진 채였기 때문에 , 아침이 되었는지 어쩐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 그러자 에셔는 몹시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 아무도 물도 갖다 주지 않고 , 식사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 라비노는 에셔를 굶겨 죽일 심보란 말인가 . 에셔는 자기도 모르게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 그러다가 강한 찌는 듯한 냄새에 에셔는 눈을 떴다 . 눈을 떠보니까 눈이 따끔따끔 아프다 . 무슨 냄새인지 이상한 냄새가 난다 . 어디선지 씨익 하는 가스가 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 에셔는 온 몸에 물을 끼얹는 듯 오싹했다 .
" 가스다 !"
아무리 배짱이 든든한 에셔도 침착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다 . 새끼줄을 잡아 끊어버리려고 몸부림치기도 하고 , 방바닥 위를 데굴데굴 굴러보기도 했다 . 냄새는 더욱 강해지고 숨이 칵칵 막혀 온다 . 그러다가 정신이 희미해져서 , 에셔는 어딘지 모를 깊은 곳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
역 습
라아레가 막대한 입원비를 지불하고 광인이라고 속이고서 에셔를 라비노 정신 병원에 들여보낸 계획은 , 절반은 성공해서 로랑을 구출할 수는 있었다 . 그러나 에셔가 적의 포로가 되는 것은 최초의 계획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 그를 구출해 내는 계획을 서둘러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 그래서 로랑을 일단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고 , 곧 병원으로 되돌아가서 에셔를 구출할 작정이었다 . 그러나 그처럼 경계가 심한 병원에 라아레와 , 샤프 단 두 사람만으로 쳐들어간다는 것은 도저히 승산이 서지 않았다 . 경찰도 라비노에게 매수되었을지도 모르므로 믿을 수가 없다 . 그래서 두 사람은 머리를 짜내고 짜내서 다시 기발한 계획을 세웠다 . 우선 두 사람은 각각 분담해서 , 경찰관의 제복과 가짜 경찰 수첩을 손에 넣었다 . 완전히 경찰관으로 변장한 라아레와 샤프는 당당하게 라비노 정신 병원의 정문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 수위에게 , " 경찰서에서 위생 검사를 왔다 ." 하고 가슴을 쭉 펴고 들어갔다 . 현관문에도 역시 또 수위가 있었다 . 라아레가 경찰 수첩을 보이면서 , " 중대한 용건으로 원장을 면회하고 싶으니 곧 연락토록 ." 라고 명령을 했다 . 그러나 나타난 것은 푸시라고 하는 뚱뚱보인 라비노의 조수였다 .
" 원장 선생님께서는 지금 중환자의 치료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면회할 수 없습니다 . 용건이 있으시다면 제가 상대해 드리지요 ."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 순간 라아레와 샤프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 지금은 1 초가 급한 때다 . 에셔의 생사조차 위태로운 이때 , 이 따위 인간을 상대로 해서 시간을 끌 수는 없다 . 샤프는 갑자기 그 튼튼한 주먹으로 푸시를 그 자리에 때려눕히고 ,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 라아레는 전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었으므로 원장실을 알고 있었다 . 그래서 기세 좋게 문을 열고 원장실로 뛰어들었다 . 라비노는 경찰 모습의 두 사람을 보자 , 예의 그 큰 눈알을 부라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
" 당신들은 무슨 용건으로 남의 방에 마구 들어오는 거요 ."
이렇게 된 마당에 무슨 말이 소용 있으랴 싶어 , 라아레와 샤프는 재빨리 허리의 권총을 빼들었다 . 양쪽에서 라비노의 머리통에 총구를 바짝 갖다댔다 .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했다 . 조금 전에 샤프의 일격으로 때려눕혔던 푸시가 돌연 뒤로부터 뛰어들어 , 샤프의 손에 든 권총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 그러자 용기를 얻은 라비노가 라아레의 권총을 든 손에 매달렸다 . 곧 대 난투극이 벌어졌다 . 이 소동을 듣고 많은 경비원과 간호원이 달려왔다 . 그러나 라아레들의 경찰복 모습을 보자 모두 멈칫하고 서버렸다 . 그 사이에 샤프가 발끝으로 권총을 끌어당겨 재빨리 주워들었다 .
" 이놈들은 가짜 경찰관이다 . 빨리 잡아랏 !"
간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한 샤프가 순간 권총을 발사했다 . 간호원의 한 명이 악 ! 하고 비명을 지르며 , 피가 흐르는 어깨를 잡고 비틀거렸다 . 그것을 보고 나머지 패들이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
" 뭣들 하는 거야 . 빨리 무기를 가져오지 못해 !"
라비노는 이마에 총구도 아랑곳없이 고함쳤다 . 몇 명의 간호원들이 후닥닥 달려갔다 . 무기를 가지러 간 것이다 . 사태는 더욱더 험악해져 간다 . 머뭇거리고 있을 수가 없다 . 샤프는 순간 라비노의 손을 비틀었다 . 힘이 대단한 샤프가 있는 힘을 다해 비틀었으니 , 그 아픔은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 라비노는 숨이 넘어가는 듯 비명을 질렀다 .
" 아이쿠 , 나 죽는다 . 이 손 좀 놓아라 . 도대체 너희들은 무슨 용건이냐 ?"
" 에셔 도우엘이 어디 있지 ? 어서 그 곳으로 안내해라 ."
하고 라아레가 소리 쳤다 .
" 역시 그랬었구나 . 어쩐지 네놈 얼굴이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 아이구 아파 , 제발 손 좀 비틀지 마라 . 내가 안내할 테니까 ."
이제 라비노는 정신까지 희미해져 갔다 . 샤프가 손독을 약간 풀어 주자 , 라비노는 비틀거리며 두 사람을 에셔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 라아레와 샤프는 방안으로 뛰어들자 앗 ! 하고 외쳤다 . 에셔는 칭칭 묶여서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으며 , 방안에는 가득히 염산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 샤프는 갑자기 라비노를 그 자리에 때려눕히고 , 라아레와 함께 에셔를 맞들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 곧 에셔를 자동차에 실어 올리고 , 뒤따라오는 간호원들에게 빵 , 빵 위협사격을 가하면서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
빌케의 비극
케룬은 뜻밖에 빌케가 돌아오자 , 노여워하기에 앞서 아주 기뻐했다 . 그러나 빌케는 아파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 그래서 끙끙 신음하는 그를 존이 안아서 간신히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
" 선생님 , 미안해요 . 발이 이렇게 돼서 걸을 수가 없게 됐어요 ."
" 내 말을 듣지 않아서 벌을 받은 거야 ."
하며 케룬은 빌케의 외투를 벗기고 , 침대 위에 눕혀주었다 .
" 자 , 발을 좀 보자구 ."
" 저어 , 춤을 추었어요 . 그래서 이렇게 발 밑에 흉터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
" 아픈데도 계속 춤을 추었는가 ?"
" 아뇨 , 춤을 추면 아파서 추지 못했어요 . 나 대신 테니스를 쳤어요 . 테니스는 참 근사해요 ."
케룬은 빌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발을 살펴보았다 . 그런 케룬의 얼굴은 점점 흐려 왔다 .
빌케의 발은 무릎까지 검푸르게 부어 있었던 것이다 .
" 열은 있는지 ?"
" 엊저녁부터 나기 시작했어요 ."
" 그랬었군 , 꽤 나빠진 모양인데 . 빌케는 테니스를 했다고 했는데 , 그 상대는 누구였지 ?"
" 라아레라는 그냥 친구인 청년이어요 ."
" 그 사람에게 나의 일이나 또 하나의 머리에 대해서 얘기를 했나 ?"
"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해요 . 창피하잖아요 . 또 그런 말을 하면 저를 미친 여자라고 생각할 거여요 ."
이 말을 듣고 케룬은 적이 안심했다 .
" 선생님 , 제 발은 어떻게 될까요 ?"
" 어쩌면 잘라버려야 할지도 몰라 ."
" 발을 자른다고요 ? 내 발을 , 저를 병신으로 만들 작정이셔요 ?"
케룬도 그토록 고생을 해서 소생시킨 육체를 병신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 그리고 병신이 되면 , 그의 공개 강연회의 효과도 떨어지리라 . 가능한 한 발은 자르고 싶지 않았다 . 그러나 그 희망은 거의 없을 것만 같다 .
" 너무 걱정할 것 없어 . 아무튼 내일까지 경과를 보기로 하지 ."
오후 9 시 무렵부터 빌케의 열이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 . 헛소리까지 한다 . 빌케는 무서운 꿈을 꾸고 비명을 질렀다 . 자신의 비명소리에 눈을 뜬 빌케는 , 자기의 맥을 재고 있는 케룬을 보았다 . 케룬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
" 발을 자를 수밖에 없어 ."
" 언제 자르죠 ?"
" 지금 곧 , 한 시간도 늦출 수 없어 . 또 빨리 하지 않으면 온 몸에 독이 퍼져버린다 ."
" 자르지 마셔요 . 자르는 건 싫어요 ."
" 그럼 죽어버린다 . 죽어도 좋은가 ?"
" 살고 싶어요 . 살고 싶단 말이어요 . 그리하여 다시 한 번 라아레 씨를 만나 보고 싶어요 . 그런데 선생님은 저를 병신으로 만들려고 해요 . 제게서 모든 것을 뺏으려고 해요 . 나쁜 사람이어요 . 무서운 사람이란 말이어요 . 살려 주셔요 선생님 , 저를 살려 줘요 !"
빌케는 또 다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 그 동안에 케룬은 옆방으로 들어가 수술 준비를 했다 . 정각 오전 2 시에 빌케는 수술대 위에 놓여졌다 . 빌케는 케룬을 지긋이 쳐다보며 , 모기 소리 마냥 가냘픈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 용서하셔요 , 살려 주셔요 ."
그러자 존이 얼른 마취용 마스크를 빌케에게 덮어 씌웠다 . 빌케는 정신을 잃었다 .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 빌케는 아까 수술한 생각이 들어 , 후닥닥 놀라며 머리를 들고 다리 쪽을 보았다 . 그만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 다리는 무릎 조금 위에서부터 절단되어 , 붕대에 칭칭 감겨 있었다 . 수술 후 , 빌케의 기분은 나아졌으나 열은 내리지 않았다 . 케룬은 그것을 걱정해서 거의 한 시간마다 다리의 상태를 보러 왔다 . 다리는 자꾸 나빠질 뿐이었다 . 절단해 버린 위까지 발갛게 부어 올랐다 . 좀더 절단했어야 하는 것을 , 절단이 부족했던 것이다 . 저녁때부터 열이 심해져서 , 마침내 46 도가 되었다 . 빌케의 온 몸에 독이 퍼진 것이 틀림없었다 . 케룬은 각오했다 . 이렇게 된 바에는 신체보다는 어떻게든 머리만이라도 살려야겠다고 . 빌케는 또 다시 수술대 위에 올려놓아졌다 . 의식이 없어진 빌케의 목에 , 먼젓번 수술의 상처 자리보다 약간 위쪽에 케룬의 메스가 푹 꽂혔다 . 이리하여 빌케는 새로운 자신의 젊은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갔으며 , 그와 함께 모든 기쁨도 희망도 절단되어 버렸던 것이다 .
강적 나타나다
다음날 아침 , 또 다시 동체를 잘라버린 빌케의 머리는 다시 먼젓번의 유리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 케룬은 독에 더러워진 피를 깨끗이 씻어내고 , 그 다음 36 도로 따뜻하게 한 신선하고 건강한 피를 부어 넣었다 . 그러자 빌케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 . 그리고 나서 몇 분이 지나자 반짝 눈을 떴다 . 빌케는 케룬의 얼굴을 이상한 듯 바라보고 있다가 , 흘낏 아래쪽으로 눈이 가자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버리고 말았다 .
" 또 몸이 없어져 버렸네 !".
라는 , 공기가 새나가는 것 같은 목소리로 가냘프게 중얼거리고는 눈에 가득히 눈물이 고였다 . 성대를 먼저보다 더 위로 잘라냈기 때문에 , 빌케는 이제는 치익치익 하는 소리밖에 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
" 울지 말아요 . 이것도 다 내 말을 듣지 않은 죄야 . 그렇지만 이젠 먼저보다 더 멋진 육체를 줄 테니까 , 얼마 동안만 참고 기다리면 돼 ."
라고 하면서 케룬은 빌케의 곁을 떠났다 . 그때 , 한 통의 속달이 그에게 전달되었다 . 라비노 원장에게서 온 편지다 . 케룬은 서둘러 편지를 뜯었다 . 읽어 내려가는 동안에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 마침내는 비틀거렸다 .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
도우엘 박사의 아들인 에셔가 미친 사람으로 가장해서 병원으로 들어와 로랑을 훔쳐냄 . 생각건대 에셔의 일당은 케룬의 복수를 모의하고 있음이 분명함 .
도우엘 박사의 아들 ! 그것은 케룬에게 있어 생각지도 않은 강적의 출현이었다 . 필경 에셔는 로랑에게서 모든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 틀림없이 자기를 고발하던가 , 아니면 세상에 이 일을 발표할지도 모른다 . 이렇게 되면 빌케의 머리를 한시바삐 학회에 공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 인간의 머리를 소생시킨다는 이 엄청난 사실의 공개 강연을 해서 ,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버리면 되는 거다 . 그러면 에셔 같은 무명의 청년이 뭐라고 하든 세상은 상대를 하지 않을 거다 , 라고 케룬은 생각했다 . 그는 곧 학회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 바로 공개 강연을 열고 싶다고 신청했다 . 그리고 모든 신문사에도 전화해서 기자 회견을 하겠다고 통지했다 . 이것으로 모든 것은 잘 되었으니 , 이제 남은 문제는 박사의 머리를 없애버리는 일뿐이다 . 그러나 박사의 머리는 이제부터도 필요할지 모르는 일이다 . 없애는 것은 아무 때라도 할 수 있지만 ,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박사의 머리라는 것을 알 수 없게 해 두면 된다 . 케룬은 이렇게 생각하고 , 실험실에서 ' 파라핀 ' 이라고 쐬어 있는 병을 들고서는 박사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케룬 교수의 전대미문의 대 발견
그 다음날 온 파리의 신문에는 , [ 케룬 교수의 전대미문의 대 발견 ] 이라는 커다란 활자의 제목이 붙은 기사가 일제히 발표되었다 . 그 기사에는 드디어 내일 밤 , 케룬 교수의 연구 보고가 있을 것이고 , 그와 동시에 머리만 살아 있는 여자가 공개될 것이라고 쐬어 있었다 . 그리고 그 다음에는 케룬 교수의 긴 논문이 실려 있었다 . 이 신문 기사는 온 파리의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고 , 케룬 교수의 이름은 일약 유명해졌다 . 드디어 그날이 되자 , 케룬은 아침부터 매우 분주했다 . 빌케의 머리를 조사하고 , 또 안전하게 회장까지 운반할 준비도 하며 , 빌케의 얼굴에 화장까지 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 모든 준비가 끝나자 , 케룬은 빌케를 보고 말했다 .
" 자 , 오늘 밤 너는 파리의 훌륭한 분들 앞에서 인사를 드려야 된다 . 거기서 너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 . 그때 , 묻는 말에만 간단하게 대답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면 못써 ."
" 선생님 , 부탁이어요 . 저를 많은 사람들 앞에만은 내놓지 말아 주셔요 . 이런 꼴로 너무하잖아요 ."
하고 빌케는 빌었다 . 그러나 케룬은 들은 척도 않고 오후 7 시에 출발했다 . 회장은 이미 대만원이었다 . 아래층 좌석은 대부분 백발이나 대머리의 늙은 학자들로 가득 찼다 . 그래서 마치 학술 회합다웠으나 , 2 층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신사 숙녀들이 줄줄이 앉아서 꼭 음악회 같은 광경이었다 . 신문 기자와 사진 기자도 많이 연단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 오후 8 시 정각에 케룬은 연단 위에 나타났다 . 회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로 환영했다 . 뉴스 사진 기자가 찰칵 , 찰칵하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 케룬의 보고 연설은 실로 훌륭한 것이었다 . 그는 죽은 인간을 되살리는 데 얼마나 고생이 막심했는가를 열을 올리면 이야기를 했다 . 그러나 도우엘 박사에 관한 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연설은 대성공이었다 . 박수 소리 때문에 도중에 몇 번이나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 보고 연설이 끝나자 , 케룬은 연단 오른쪽에 세워 놓았던 칸막이를 치웠다 . 회장 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금속다리가 달린 높은 유리 테이블 위에 , 여자의 머리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
케룬은 빌케를 향하여 ,
" 아가씨 , 안녕 하셔요 ?"
하고 물었다 .
" 감사합니다 , 선생님 덕분에 ."
빌케의 얌전한 대답이었다 . 목소리는 씨익씨익 하는 타이어의 공기가 빠지는 것 같았지만 , 그래도 머리뿐인 인간이 말을 한 것을 듣고 , 사람들은 놀람을 금치 못하며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 케룬은 의기 양양했다 . 완전히 승리자가 된 기분에 도취되어 , 에셔의 일도 로랑의 일도 모두 잊어버렸다 . 그 뒤로 학회를 대표해서 , 백발의 늙은 교수가 연단에 올라가 축사를 했다 . 교수는 케룬의 성공을 최대로 칭찬하여 ,
"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과학의 승리입니다 . 인간은 마침내 죽음을 이겨냈습니다 . 온 인류는 마땅히 케룬 교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될 줄 압니다 ."
하며 감격해 했다 . 바로 그때 , 맨 앞자리에 쓴 모자로 얼굴을 가리듯이 쓰고 앉아 있던 한 여자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연단으로 뛰어올랐다 . 여자는 늙은 교수를 연단에서 밀어내고 , 대신 자기가 테이블 앞에 서서 케룬을 손가락질하며 ,
" 이 사나이는 도둑놈입니다 . 도우엘 박사의 연구를 훔친 것입니다 . 그뿐만이 아닙니다 . 이 사나이는 또한 살인자입니다 . 도우엘 박사를 독살했습니다 . 이 사나이는 그 도우엘 박사의 머리를 소생시켜 , 억지로 박사에게 연구를 계속시키고 그 결과를 가로챘던 것입니다 . 나는 박사에게서 , 아니 자세히 말하면 박사님의 머리에게서 모든 사실을 들었습니다 . 박사님의 머리는 지금도 아직 케룬의 집 어디엔가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
하고 외쳤다 . 회장 안은 금방 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
대 혼 란
에셔 등은 신문에서 케룬의 공개 강연 기사를 읽고 , 회장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죄를 폭로하려고 결심했다 . 그래서 에셔 , 라아레 , 샤프 , 로랑 등 4 명은 각기 변장을 하고 , 회장의 가장 앞좌석에 앉아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 로랑은 케룬이 신이 나서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 몇 번이나 연단으로 뛰어올라 그의 죄를 폭로시키려고 했는지 모른다 . 그러나 적당한 순간이 오기를 꾹 참고 기다리고 있었다 . 때는 왔다 . 교수가 케룬을 최대로 칭찬하자 케룬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를 때 , 갑자기 연단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 케룬은 로랑을 보자 얼굴 색이 획 변했다 .
" 마침내 나타났군 ."
하며 그는 이런 일 정도로 놀랄 사나이가 아닌 듯 , 정신을 가다듬고 장내 정리원 쪽을 향해 고함쳤다 .
" 이 여자를 밖으로 끌어내요 . 당신들은 저 여자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겠소 ."
그러자 정리원들은 사람들을 헤치고 로랑 옆으로 달려갔다 . 그와 동시에 에셔 , 라아레 , 샤프 세 사람이 후닥닥 연단으로 뛰어올랐다 . 그리고는 정리원을 밀치고 로랑을 감싸듯이 하며 재빨리 비상구로 빠져나갔다 . 회장은 더욱 소란해졌다 . 케룬은 황급히 테이블 앞으로 나가 사과 인사를 했다 .
" 저 로랑이라는 여자애는 내 조수였습니다만 처음부터 신경질적이고 히스테리의 경향이 있었습니다 . 거기에다 제가 재생시킨 빌케의 머리와 한동안 같이 있더니 마침내 정신 이상이 된 것입니다 ."
그러나 이미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 사람들은 빌케의 머리를 기분 나쁜 표정으로 흘낏흘낏 보며 , 한 사람 두 사람 빠져나갔다 . 이윽고 회장 안은 텅 비었다 . 빌케의 머리는 이 소동으로 놀란 모양이다 . 얼굴은 새파래지고 , 갑자기 나이를 먹은 것처럼 야위어 보였다 .
최후의 회견
케룬 교수가 가택 수색을 받은 것은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 예심 판사가 사복경찰을 한 사람 데리고 , 입회인으로서 로랑 , 에셔 , 라아레 , 샤프의 4 명도 함께 갔다 . 케룬은 배짱 좋게도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맞이했다 .
" 어서 오십시오 ."
하며 그는 실험실로 안내하면서 , 로랑을 뱀 같은 독기 서린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 실험실 안에는 빌케의 머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 빌케의 머리는 아주 야위어져서 마치 미라처럼 흙빛이 되어 있었다 . 빌케는 라아레를 보자 그리운 듯이 가는 미소를 띠었다 .
" 아아 , 빌케 양 "
하고 라아레는 외쳤지만 , 너무나 변해버린 빌케의 모습에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 곧 일행은 옆방으로 들어갔다 . 그 곳에는 한 사나이의 머리가 유리 테이블 위에 있었다 . 머리를 박박 밀고 퉁퉁 부어오른 듯한 큰 코를 한 , 꽤 나이가 든 남자의 머리였다 . 그것은 검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
" 이것도 빌케와 마찬가지로 실험용 머리입니다 .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게 했지요 . 이 밖에는 아무 것도 보여 드릴 게 없습니다 ."
하고 케룬은 비웃듯이 말했다 . 일행은 지하실 , 다락방까지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 다시 남자의 머리가 있는 방으로 되돌아왔다 . 이때 , 로랑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듯 싶더니 , 머리의 목에다 공기를 보내주는 실린더 옆으로 다가갔다 . 그리고는 마개를 뽑고 머리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
" 당신은 누구신가요 ?"
그러자 머리의 입술에서 씨익 씨익 하는 공기가 새나가는 듯한 소리가 난 다음 ,
" 앞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 나는 귀에 마개를 해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
라고 머리가 말을 했다
로랑은 재빨리 머리의 귀를 틀어막은 솜을 빼내고 , 다시 한번 물었다 .
" 당신은 누구신가요 ?"
" 나는 본디 도우엘 박사였습니다 ."
" 뭐라고요 , 역시 선생님이셨군요 . 하지만 어떻게 이런 얼굴로 ......
" 케룬 군이 나를 이런 꼴로 만들어 버렸지요 . 코에다 파라핀을 넣고 말이오 . 케룬 군은 내게서 모든 것을 뺏아버렸어 . 나와 몸은 물론 내 얼굴마저도 ....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것은 뇌뿐이지 . 그러나 그 뇌도 곧 아무 소용이 없게 돼버려 . 왜냐고 ?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 . 내가 오늘 안으로 죽지 않으면 케룬 군이 나를 죽여주겠다고 했으니까 . 로랑 양 , 내 이 안경을 좀 벗겨줘요 , 케룬 군은 내가 볼 수 없게 이런 색안경까지 쓰게 해 주었지 . 이 안경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
로랑은 얼른 안경을 벗겨 주었다 .
" 오오 , 로랑 양이었군 . 아가씨를 만나서 이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
하고 박사의 머리는 기쁜 듯이 말했다 . 그리고 옆에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서 있는 에셔를 보자 ,
" 오오 에셔야 ! 너도 거기 있었구나 ."
하고 부르짖었다 .
" 아버지 , 불쌍하신 아버지 !"
에셔는 흙빛 얼굴의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
" 이젠 됐다 . 너를 만나 보게 돼서 아무 한도 없다 . 내게 묻고 싶은 일이 있으면 로랑에게 물어 보아라 . 모든 것을 로랑 양에게 말해두었으니까 ."
그러고 박사의 머리는 기운을 다한 듯 ,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다 .
" 임종이십니다 ."
하고 로랑이 조용히 말했다 .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 이윽고 먼저 말을 연 것은 예심판사였다 .
" 케룬교수 , 조사할 일이 있으니 같이 좀 가실까요 ?"
라고 말하고 , 케룬을 재촉해서 일행보다 앞서서 방을 나갔다 . 마침 그 무렵 , 빌케도 숨을 거두었다 . 넓고 차가운 실험실 안에 , 혼자 남겨진 빌케의 야윌 대로 야윈 머리는 , 생기를 잃어버린 눈에서 한 줄기의 눈물을 흘리며 죽어간 것이다 .
< 끝 >
작품 해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과학
「 도우엘 박사는 인간의 심장이라든가 뇌 같은 기관의 연구를 하고 있었다 . 그리고 절단한 개의 머리를 소생시키는 동물 실험에 성공하여 , 마침내 인간의 머리를 되살려내는 실험에 착수하려고 할 때 병사하고 말았다 . 」 라는 데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 도대체 도우엘 박사는 무엇 때문에 그러한 실험을 했을까요 ? 도우엘 박사는 외과 의사입니다 . 의사는 병이나 상처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 질병을 예방하거나 더욱 나아가서 인간의 생명을 보다 길게 연장시키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죽음을 정복해서 인간을 죽음의 공포에서부터 해방시켜 주는 일은 , 의학의 가장 큰 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 죽음 ' 이라는 것의 원인을 철저히 연구하여 그것을 예방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 나아가서는 어떤 원인으로 죽은 인간의 기관을 되살려내어 그 인간을 본디의 신체로 되돌려보내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 도우엘 박사는 이 의학의 첫 번째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 세상에도 드문 이상한 실험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 이것은 현재의 의학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그렇다면 이것은 비과학적인 이야기일까요 ? 아니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 거기에는 과학적인 뒷받침이 있는 것입니다 . 태너토우르키라고 하는 별로 듣지도 못한 과학이 있습니다 . 이것은 죽음 그 자체를 연구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서 죽음을 예방하고 , 더욱 목숨을 되살려내는 길을 연구하는 과학인 것입니다 . 태너토우르키는 아주 최근에 태어난 과학이지만 , 역사는 꽤 오래된 것입니다 . 그리고 이 과학은 도우엘 박사가 행한 실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17 세기에 파토마 대학에서 살아 있는 개를 죽여서 , 다시 되살리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그러나 고등 동물을 되살려내는 방법이 조직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은 1874 년경부터입니다 . 이 시기에 심장을 마찰해서 동물을 소생시키거나 , 클로로포름으로 동물을 죽여 놓고 다시 되살려내는 실험을 했습니다 . 그래서 마침내 19 세기말에 프랑스의 브라운 세칼이라는 학자가 , 절단한 개의 머리를 소생시키는 실험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 브라운 세칼은 개의 머리를 동체에서 절단하고 나서 , 수분 후에 그 개의 뇌에 새로운 혈액을 주입했던 것입니다 . 그러자 개의 머리는 귀를 약간 움직이거나 눈을 깜박거리며 , 눈동자가 빛에 대해서 반응을 나타내는 등 개가 머리만으로 소생한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쳐 이 ' 죽음 ' 과 싸우는 방법에 대한 학문은 차츰 진보해 왔습니다 . 그리고 1913 년에는 아도레프라는 학자가 이 지식을 이용해서 , 실제로 다량 출혈이나 중독으로 죽은 개를 되살려내는 일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 아도레프는 이미 심장의 활동이 멎은 개의 동맥에 심장 쪽을 ( 즉 혈액 순환과는 반대 방향 ) 향해 아드레날린을 더한 혈액 , 또는 링게르액이라는 대용 혈액을 주입해서 죽은 개를 소생시켰던 것입니다 . 이렇게 해서 오랜 세월 동안 믿은 학자들이 실험을 쌓아올려서 얻은 지식은 , 제 2 차 세계대전 때 매우 빛을 보았습니다 . 그 덕택에 많은 군인들이 ' 죽음 ' 의 세계에서 다시 되살아날 수가 있었습니다 . 태너토우르키라는 새로운 과학은 이렇게 해서 많은 학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생겨나고 , 현재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 ( 태너토우르키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1961 년부터라는 것입니다 . ) 도우엘 박사가 어째서 그런 기분이 언짢은 실험을 했는가 ,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 그러나 태너토우르키가 발달된 현재도 아직 인간의 머리를 절단해서 다시 소생시켰다는 예는 없으며 , 또한 합성 인간을 만드는 일도 할 수 없습니다 . 그런 의미로서는 이 소설은 가공 소설이지만 , 이제까지의 여러 가지 실험의 예에 따라 앞으로 그러한 일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 그러나 여기서 신중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 도우엘 박사는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실험을 하고 있었지만 , 케룬 교수는 자기의 이익과 명예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박사의 연구를 이용해서 무서운 발명을 하여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 자기자신도 파멸시켜 버렸던 것입니다 . 인류를 위한 어떤 학문이나 발명도 그것이 악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 악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면 , 그것은 인류에게 불행을 안겨 주는 악마의 발명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 베리야에프는 이 「 합성 인간 」 이란 소설을 통해 그러한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 소설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아무쪼록 베리야에프가 호소하는 뜻을 깊이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합성 인간
베리야에프 작 / 이 인석 역
아이디어회관 과학문고
172p 19cm (SF 세 계 명 작 3)
인 쇄 1975 년 5 월 1 일
발 행 1975 년 5 월 5 일
역 자 이인석
제 판 명림 정판사
오프셋 장원 정판사
인 쇄 일신사
제 본 영지 제책사
발행인 박 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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