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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쟁-허버트 웰즈 H. G. Wells 지음-윤 용성 옮김
2021년 09월 22일 20시 39분  조회:622  추천:0  작성자: 강려
 우주전쟁
 
허버트 웰즈 H. G. Wells 지음
윤 용성 옮김/권 오웅 그림
 
<차 례>
 
지구를 노리는 화성인··············· 4
지구에 떨어진 별똥별·············· 12
떨어진 로켓··················· 18
열 선······················ 26
사람의 불기둥·················· 31
꿈이었을까?·················· 34
금요일 밤···················· 39
공격 개시!··················· 42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50
세 다리를 가진 기계··············· 55
병사의 이야기·················· 65
다시 도망치다·················· 70
피난민의 행렬·················· 74
뜨거워진 강물·················· 79
템즈 강을 따라················· 87
미쳐 버린 목사················· 91
런던의 동생··················· 97
서두르는 런던 사람들·············· 101
검은 가스··················· 107
화성인의 신무기················ 110
런던에 피난 명령················ 116
선더 차일드 호················· 127
해 전····················· 131
다섯 번째의 로켓················ 136
화성인의 구조················· 145
인간과의 차이················· 151
생피를 빨아먹는 화성인············· 155
목사의 죽음·················· 160
인류는 멸망하고················ 164
포병을 다시 만나다··············· 171
포병의 계획·················· 178
트럼프 놀이·················· 184
화성인의 최후················· 187
런던에서 집으로················ 196
마지막으로·················· 201
 
작품 해설··················· 204
 
지구를 노리는 화성인
 
마치 사람이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하는 것처럼 다른 별에 사는 생물이 우리 인간을 관찰하며 연구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아마 아무도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지능이 훨씬 발달한 생물이 오래 전부터 우리 인간을 열심히, 그리고 자세하게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성과 같은 별에 생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러한 생물이 있다 해도 인간보다는 훨씬 뒤떨어졌을 것이라고만 믿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각과는 달리, 우주의 한 곳에는 사람보다 지능이 훨씬 발달하고 성질이 잔인한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더욱이, 이 생물들은 시샘하는 마음으로 인간을 세밀히 관찰하면서 지구를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착착 세워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 알고 있다시피, 화성은 태양으로부터 2억 3천만 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궤도를 돌고 있는 행성의 하나이다. 천문학자들이 말하는 성운설에 의하면, 화성은 지구보다 먼저 우주에 나타났다고 한다.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생명체도 지구보다는 화성에 먼저 생겨났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먼저, 화성의 부피는 지구의 7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더 빨리 생명체가 생겨날 수 있는 온도까지 식었을 것이리라.
또한 화성에는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공기라든가 물, 그 밖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이렇게 보면 지구가 아직 불덩어리와 같은 상태에 있었을 때, 화성에는 이미 생명체가 탄생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의 화성은 지구에 비해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 조건이 여러 가지로 나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화성은 지구보다 훨씬 오래 된 행성이다. 또한, 지구보다 태양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있어서 태양에서 받는 빛과 열이 지구에 비하면 절반도 채 못 된다. 게다가 표면적은 지구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체가 나타난 것도 지구보다 빨랐다.
이 모든 조건으로 볼 때, 화성의 생물은 지구의 생물보다 먼저 종말이 다가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지구인 가운데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화성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화성이 점점 식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화성의 물리적 조건의 대부분이 우리 인간에게는 아직 수수께끼였다. 하지만 화성에서는 그 적도 지대에서조차 한낮의 기온이 지구의 가장 추운 한겨울의 기온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기 또한 지구보다 희박하며, 바다도 계속 줄어들어서 화성의 전 표면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화성에서는 계절의 변화가 지극히 완만하다. 화성의 남극과 북극에는 계절이 변함에 따라 거대한 극관이 생겼다가는 녹아 버리고 해서 정기적으로 홍수가 일어나고 있다.
하기야, 지구도 차차 식어 가서 마침내는 멸망하리라. 그러나, 그러한 일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아득히 먼 미래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화성인에게 있어서 화성의 멸망은 당장 눈앞에 다가온 중대한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들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해 보지 못한 뛰어난 도구를 사용해서 이 넓은 우주를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태양 쪽으로 5천 6백만 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 행성을 발견하였다. 그 행성이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였다. 이 곳에는 식물이 무성하고 물도 풍부하며, 구름이 떠 있는 대기가 있었다. 지구의 육지는 컸으며, 넓은 바다에는 많은 배가 떠다니고 있었다.
화성인들이 보기에는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하등동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하등 동물이 살고 있는 지구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화성보다도 따뜻하고 살기에 알맞은 행성이었던 것이다.
화성인들은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몇 대에 걸친 긴 세월 동안 지구를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해 왔던 것이다.
1894년, 화성이 지구를 가운데 두고 태양과 정반대의 방향에 왔을 때, 화성의 표면에서 강력한 광선이 나타났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릭 천문대가 제일 먼저 그 빛을 관측하였다.
계속해서 세계 각지의 천체 관측가들도 그 광선을 관측했다고 보고하였다. 영국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 일을 알게 된 것은 유명한 과학 잡지 <네이쳐>의 8월 2일 호에 보고 기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화성의 강렬한 빛은 그 뒤에도 두 번이나 나타났다. 두 번 다 빛은 화성의 같은 지점에서 솟았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더욱 이상한 일이 일어났었다.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왔을 때 백열광을 내뿜는 가스의 대폭발이 화성에서 일어났다는 정보를 자바 섬의 천문대가 발표했다. 가스의 대폭발은 12일의 한밤중에 일어났다. 자바 섬의 천문대는 분광기로 그 가스 모양의 발광체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주로 수소로 이루어진 거대한 불기둥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욱이 그 커다란 불기둥이 매우 빠른 스피드로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제트 분사의 불기둥은 한밤중인 12시 15분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이상한, 아니 두렵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는 그 현상에 관해, 다음 날 신문은 아무 보고 기사도 싣지 않았다. 단지 하나, 런던의 데일리 텔레그래프 신문만이 아주 간단한 기사로 보도했을 뿐이다.
나도 오글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화성에서 일어난 이 기분 나쁜 폭발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리고 말았으리라.
오글비는 유명한 천문학자로서 오터셔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자바 섬 천문대의 보고를 받자 대단히 흥분하여 나를 그의 천체 관측소로 불렀다.
나는 밤새도록 화성을 관측했던 그 때의 일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둡고 조용한 관측실. 덮개에 가린 불빛이 방의 한쪽 구석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천체 망원경에 달린 크로노미터의 바늘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관측실의 도움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곳을 통해 어두운 밤하늘이 보였다.
방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오글비의 발소리만 이따금씩 들릴 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것 좀 보게."
오글비의 말을 듣고 나는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조그만 행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작지만 무척 밝은 빛이 나는 별이었다. 자세히 보니, 희미하게 줄무늬가 있었다. 별의 모양은 길쭉한 둥근 통과 비슷했다.
"어때, 잘 보이지? 그게 바로 화성일세."
어쩐지 그 화성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뿐 아니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의 눈이 피로해서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화성은 6천만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별이다.
그 화성 가까이에 세 개의 조그만 빛처럼 보이는 광점이 보였다.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고, 나머지는 암흑 세계였다.
"앗!"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화성의 표면에서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빨간 불꽃이 솟아올랐기 때문이었다.
시각은 정확하게 한밤중인 12시였다.
"왜 그러나?"
오글비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화성에서 큰 폭발 같은 것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면서 망원경에서 눈을 떼었다.
오글비는 재빨리 망원경을 들여다보더니, 그도 역시 깜짝 놀란 소리를 질렀다.
그 날 밤에도 화성에서 또 한 차례 로켓이 발사되었던 것이다. 어젯밤 12시에 로켓이 발사된 지 꼭 24 시간 만이었다.
물론 그 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으며, 오글비의 관측실에서 한가로이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오전 한 시가 되자 오글비는 관측을 중단하고 그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어떤 사람은 화성에도 우리와 같은 화성인이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네. 바로 그 화성인이 지구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거야. 터무니없는 얘기지."
이렇게 말하면서 오글비는 웃었다.
"내 생각으로는 화성에 별똥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던가, 아니면 화산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 아무튼 지구와 가장 가까운 화성에 생물이 있다 해도 우리처럼 진화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거든."
그 날 밤의 화성에서 일어난 폭발을 관측한 것은 우리 뿐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관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 밤에도, 또 그 다음 날 밤에도 화성의 폭발은 관측되었다.
10일 동안 계속해서 언제나 한밤중 12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만일 폭발이라고 한다면-열 번으로 끝났다. 어째서 열 번만으로 끝나 버렸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신문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모든 신문이 화성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써 댔다. 화산의 폭발설을
 지지하는 기사가 가장 많았다.
화성에서 쏘아 올려진 로켓이 무서운 속력으로 우주 공간을 날고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이 물체에 대해 우려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 인간은 눈앞의 손해나 이득 관계에만 관심을 쏟을 뿐, 우주 저 멀리서 일어나는 일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나 자신도 <문명의 진보와 도덕관>이란 문제에 관해 신문에 연재할 논문을 쓰는 일에 바빴다.
어느 날 밤, 나는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별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저 빨갛게 빛나고 있는 별이, 지금 온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성이오."
조용한 밤이었다.
차트시, 아일워즈 등지에서 온 소풍객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 옆을 지나쳐 갔다.
멀리 떨어진 역에서 기적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왔다.
 
지구에 떨어진 별똥별
 
어느 날 새벽녘.
런던에서 가까운 윈체스터의 상공에 한 줄기의 초록색 불빛이 나타났다.
그 불빛은 꼬리를 길게 끌면서 땅에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불빛을 보았으나, 모두가 흔히 보는 별똥별이려니 하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 때, 서재에서 원고를 쓰고 있었다. 커다란 창문의 커튼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나는 그 별똥별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별똥별을 본 사람들은 '또 별똥이 떨어졌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뿐, 그것을 찾아보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천문학자 오글비는 달랐다. 별똥별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별똥이 어디쯤 떨어졌을 것이라고 짐작을 했다. 그는 별똥을 찾아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별똥은 틀림없이 호셀과 오터셔 마을 중간에 있는 벌판에 떨어졌을 것이다.'
벌판 가까이 가니 과연 커다란 구덩이가 보였다. 물체가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생긴 구덩이 둘레에는 흙모래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주위의 무성한 초목이 불타고 있었고, 푸르스름한 연기가 아침 하늘에 솟아오르고 있었다.
오글비는 구덩이 가까이 가 보았다.
구덩이 안 모래 속에 괴상한 물체가 파묻혀 있었으며, 땅 위로 드러난 부분은 둥근 통처럼 생겼다.
'이상한데! 이런 별똥은 못 봤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오글비는 좀더 그 물체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나, 대기권을 무서운 속도로 날아온 그 물체는 공기와 마찰하면서 생긴 열 때문에 뜨겁게 달아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둥근 통의 지름은 27미터쯤 되어 보였다. 그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속이 텅 비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오글비는 구덩이 가장자리에 서서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아침해가 동쪽 소나무 군락지 위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넓은 벌판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아침이었다.
그 때, 둥근 통의 표면을 뒤덮고 있던 잿빛의 녹 같은 것이 갑자기 우수수 떨어졌다.
오글비는 흠칫했다.
이윽고 둥근 통 끝에 붙어 있던 표면에서 커다란 조각 하
 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오글비는 심장이 멎을 만큼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것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구덩이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뜨거운 열기를 무릅쓰고 접근하였다.
둥근 통의 대부분은 땅 속에 파묻혀 있었다.
땅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는 둥근 통의 꼭대기 부분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마치 둥그런 뚜껑을 돌리면서 열고 있는 것처럼!
금속성의 소리를 내면서 뚜껑은 천천히 돌고 있었다.
오글비의 머리에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큰일이다. 이 속에 사람이 들어 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속에서 타 죽을 것 같으니까 뚜껑을 열고 도망쳐 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오글비는 뚜껑을 열려고 하는 사람을 도와주려고 둥근 통으로 접근했다.
금속제인 둥근 통의 열기는 손을 댔다가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너무 뜨거웠다.
오글비는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나 곧 구덩이에서 올라와서 워킹 마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침 6 시경이었다.
도중에서 짐마차를 끌고 가던 사나이를 만났다.
오글비는 하늘에서 떨어진 괴상한 물체며, 그 속에 사람이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헐떡거리며 이야기하는 오글비를 보고, 그 사나이는 조금 놀라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야기가 너무 황당 무계해서 틀림없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한 듯 아무 말도 않고 가 버렸다.
호셀 다리에 이르렀을 때, 다리목에 있는 술집에서 점원이 가게 문을 열고 있었다.
오글비는 그 점원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점원도 역시 오글비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한 듯 가게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 버렸다.
"좀 침착해야 되겠는걸. 이런 식으로는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거야. 아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해야겠어."
오글비는 혼잣말을 하며 길을 재촉했다.
핸더슨의 집까지 오니, 마침 핸더슨이 뜰에 나와 있었다. 핸더슨은 런던에서 신문기자로 있었다.
"핸더슨!"
오글비는 뜰의 담장 너머에서 소리쳤다.
"자네, 어젯밤 별똥별을 보았나?"
"봤지. 그게 어쨌단 말인가?"
"그것이 호셀 들판에 떨어져 있다네."
"정말인가? 별똥이 떨어졌다고! 그거 재미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보통 별똥이 아니라네. 둥근 통인데, 더욱이 사람이 만든 둥근 통이라네. 여보게! 더구나 그 속에 무엇인가 들어 있다네."
"뭐라고?"
오글비는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럼, 당장 가 보세."
핸더슨은 벗어 놓았던 윗도리를 집어들고 길로 뛰어 나왔다.
두 사람은 들판으로 곧장 달려갔다.
커다란 둥근 통은 아직 같은 장소에 있었다. 다만 얇은 금속의 고리 같은 것이 둥근 통의 팔 부분과 몸통 사이에 나와 있었다.
공기가 새어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들어가는 것인지 둥근 통의 뚜껑 가장자리에서 슈슈 하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오글비와 핸더슨은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았지만 속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팡이로 둥근 통을 두들겨 보았으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우리 둘만으로 안 되겠는데, 좀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두 사람은 다시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철도변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다 일어나 있었다.
핸더슨은 역으로 달려갔다. 역에서 런던의 신문사로 전보를 쳤다. 일대 뉴스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여덟 시경이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들판에 떨어진 물체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죽은 화성인'이라는 말이 금방 소문으로 퍼진 모양이었다.
내가 그 소문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데일리 크로니클 신문을 사러 나갔다가 만난 신문팔이로부터였다.
나는 깜짝 놀라 곧장 들판으로 달려갔다.
 
떨어진 로켓
 
들판에 도착해서 보니, 구덩이 둘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주변의 풀과 자갈들은 거대한 둥근 통이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퉁겨지면서 검게 탄 것 같았다.
핸더슨과 오글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소년들이 걸터앉아 있었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다리를 흔들거리며 둥근 통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돌을 던지면 안 돼. 위험하니까 뒤로 물러나거라."
내가 주의를 주자 소년들은 뒤쪽에 서 있는 구경꾼들 사이로 들어가 숨었다.
구경꾼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 젊은 남녀, 안면이 있는 정원사, 아기를 안은 젊은 여자, 골프장의 캐디 등등……
모두들 잠자코 이 이상한 물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당시의 영국인들은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까맣게 타 죽은 화성인의 시체가 들판에 뒹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왔던 것 같다.
그런데, 거대한 둥근 통이 땅 속에 박힌 채 꼼짝도 않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실망한 모양이었다.
나는 마음을 크게 먹고 구덩이 속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둥근 통 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둥근 통의 뚜껑은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둥근 통의 표면은 잿빛의 물고기 비늘처럼 녹슬어 있었다.
그러나 둥근 통과 뚜껑의 틈서리에서는 지금까지 보지도 못한 빛깔의 금속이 빛나고 있었다. 황백색의 금속이었다. 그 때 이미, 이 물체는 지구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 생물이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 할 수 없었다.
둥근 통의 뚜껑이 돌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개폐 장치 같은 것이 아닐까? 오글비는 화성에 인간과 같은 생물이 절대로 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화성에는 인간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어쩌면 이 둥근 통에는 화성인으로부터 보내 온 통신문이라도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 둥근 통이 너무 컸다. 나는 둥근 통의 뚜껑이 열리는 것을 보고 싶었다.
11시까지 기다려 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가서 점심이라도 먹고 오기로 했다.
나는 메이베리의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오후에 다시 들판으로 가 보았더니, 그 상황은 전혀 다르게 변해 있었다. 일찍 나오는 석간 신문이 대대적인 뉴스를 보도했던 것이다. 신문에는,
 
화성에서 보내 온 통신
워킹의 놀라운 사건
 
이라는 큼직한 표제를 단 기사가 실려 있었다.
거기다가 우주 정보 센터에 보낸 오글비의 경고가 영국의 모든 천문대에 전해져서 더욱 떠들썩해졌다.
들판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밀어닥쳤다. 먼 곳에서 마차를 몰고 온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였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늘이라고는 드문드문 서있는 소나무 그늘 밖에 없었다.
구덩이 가까이 가보니까 대여섯 사람이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핸더슨과 오글비, 나중에야 알았지만 왕실 천문대에 있는 스텐트, 그리고 둥근 통을 파 올리고 있는 인부들이었다.
스텐트가 둥근 통 위에 서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둥근 통은 아까보다도 훨씬 식은 모양이었다.
스텐트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땀을 흘리며 작업하고 있었다. 왠지 몹시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둥근 통의 대부분이 파내어졌다. 아랫 부분만이 흙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었다.
오글비가 군중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여보게, 자네도 내려오게."
하고 오글비는 소리 쳤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려들어 작업하기가 곤란하네. 구덩이 둘레에 울타리라도 만들어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어. 미안하지만 자네가 땅 임자인 힐튼 경을 만나서 협조를 구해 보지 않겠나?"
오글비의 설명에 의하면 둥근 통 속에서 이따금 희미하나마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인부들에게 뚜껑을 열어 보도록 해 보았으나 꼼짝도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힐튼 경은 런던으로 가고 집에 없었다.
그러나 여섯 시 기차로 돌아올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 시각이 5시 15분이었으므로, 나는 집으로 돌아와 가벼운 식사를 하고는 역으로 나갔다.
들판으로 되돌아왔을 때는 마침 해가 질 무렵이었다.
군중은 더욱 많이 모여 있었다.
와아! 하는 사람들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 걸음을 빨리 했다.
"가까이 오지 말아요. 비켜요, 비켜!"
스텐트의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여보게! 이 사람들을 뒤로 물러나게 해 주게. 이 괴상한 둥근 통에서 무엇이 뛰쳐나올지 모르니까."
오글비가 나를 향해 밑에서 소리쳤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많은 사람들을 저로 물러서게 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보다도 나는 둥근 통 쪽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둥근 통의 뚜껑이 안으로부터 천천히 돌려지는 것 같더니 차차 위로 솟아 올라왔다.
뚜껑이 60센티미터 가량 위로 올라가자 나사 부분은 다 돌아간 모양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뚜껑은 땅에 떨어졌다.
둥근 통에 둥그런 구멍이 뻥 뚫렸다. 구멍 속은 시커멓게 보였다.
구경꾼들은 모두 인간이 나오리라고 기대하였다.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생물이 나올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하였던 것이다.
사실은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숨을 죽이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둥근 통의 어두운 구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나타났다.
잿빛의 뱀처럼 생긴 것이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차례로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빛을 발하는 두 개의 원반이 나타났다. 눈인 모양이다.
이윽고 지팡이 굵기 만한 몇 개의 촉수가 꿈틀거리며 내가 있는 쪽으로 뻗쳐 왔다.
나는 너무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름이 쪽 끼쳤다. 뒤에 있는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너무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들판의 구덩이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스텐트까지도 도망쳐 버렸다.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다리가 막대기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둥근 통 속에서 공 만한 크기의 덩어리가 기어 나왔다. 석양에 비쳐서 그것은 마치 물에 젖은 가죽처럼 번들번들 빛나 보였다. 두 개의 커다랗고 검은 눈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눈 밑에 입이 있었다. 그런데 입술은 없었다. 입은 부들부들 떨리면서 질질 침을 흘리고 있다.
입 아래에는 턱이 없었다. 머리인지 몸통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덩어리 전체가 경련을 하듯이 꾸물럭꾸물럭 움직이고 있다.
살아 있는 화성인을 직접 본 사람이 아니면, 그 생김새는 상상도 하기 어려우리라.
지구의 대기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탓인지, 폐에서 기분 나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싫은 것은 이상하리만큼 빛나는 눈이었다.
뱀처럼 생긴 촉수 하나는 둥근 통의 가장자리를 잡고 있다. 다른 또 하나는 허공에서 꿈틀거렸다.
나는 이 징그러운 모습에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괴물은 둥근 통의 끝 부분에서 나와 철썩 소리를 내며 땅 위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기묘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둥근 통의 구멍에서 또 다른 화성인이 천천히 기어 나왔다.

나는 정신 없이 도망쳤다. 가까이에 있는 나무 숲 사이로 도망쳤다.
소나무와 관목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이제부터 일어날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들판의 구덩이 가장자리에서 사람의 머리가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고 있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구덩이 속에 떨어졌던 모양이다.
그 남자는 필사적으로 구덩이 속에서 기어 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겨우 머리가 올라왔는가 싶자 또다시 쏙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무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뛰쳐나가 그 사람을 구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공포에 질린 나머지 온몸이 굳어 버린 듯했다.
구경꾼들은 너무나 큰 두려움으로 인해 혼이 나간 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열 선
 
화성인이 타고 온 둥근 통에서 그들이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 징그러운 모습들을 본 나는 너무 질려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청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덤불 속에 몸을 숨긴 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마음 속에서는 공포와 호기심이 다투고 있었다. 너무 두려워서 구덩이로 다가가서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구덩이에서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화성인 쪽에 계속 눈을 주시하면서 먼 길을 돌아 안전한 장소를 찾았다.
마치 문어 다리 같은 촉수가 구덩이 속에서 꿈틀거리며 나왔다. 그러나 살펴볼 새도 없이 곧 들어가 버렸다.
그 뒤에 바로 막대기처럼 생긴 물체가, 카메라의 삼각대처럼 생긴 세 개의 긴 다리가 차례로 벋쳐 나왔다. 세 다리의 위쪽에는 원반이 붙어 있는데 그것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일까?
구경꾼들은 여기저기 몇 사람씩 모여 있었다.
석양이 지면서 주위는 점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구경꾼들은 또다시 늘어났다. 워킹 마을에서 많이 온 모양이었다.
사람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용기가 생겼는지, 두세 사람씩 무리를 지어 구덩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조금 가다가는 멈추어 서서 형편을 살피고는, 다시 또 살금살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 때, 다른 방향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구덩이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앞장서서 나가는 사나이가 횐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대표단이었다. 서둘러 회의를 한 결과 화성인들이 징그럽게 생겼지만 지성을 가진 생물임에 틀림없을 테니, 우리도 지성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결정을 보았던 것이다.
흰 깃발을 계속 흔드는 것이 보였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꽤 먼 거리였으므로 대표단에 어떤 사람들이 끼여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속에는 오글비, 스텐트, 핸더슨도 끼여 있었다.
대표단은 천천히 조심하면서 나아갔다.
조금 떨어져서 구경꾼들이 천천히 그들을 뒤따라가고 있었다.
갑자기 번쩍 하고 광선이 빛났다. 그 순간, 초록빛을 띈 많은 양의 연기가 구멍에서 뿜어져 나와 곧장 하늘로 치솟았다.
그 연기는 연기라기보다는 차라리 불꽃이라고 하는 편이 좋았다. 마치 불꽃이 치솟은 것처럼 주변 일대가 환하게 밝아졌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슈우! 하고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이윽고 우르릉 하는 기계의 소리로 바뀌었다. 곧이어 구덩이 속에서 기묘하게 생긴 물체가 솟아올랐다. 그와 함께 강렬한 광선이 번쩍 빛났다.
강렬한 광선은 마치 사냥감을 쫓듯이 뛰어다녔다.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는 사람들 가운데로 그 강렬한 광선이 뛰어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람들이 뻘건 불덩어리로 변했는가 싶자 턱턱 쓰러져 갔다.
나는 혼비백산해서 우뚝 멈추어 섰다.
강렬한 광선이 죽음의 광선이라고 깨닫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거의 소리도 없이 눈부신 섬광이 번쩍이면, 그 광선에 쏘인 사람은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어 타서 쓰러지고 만다.
사람뿐이 아니었다. 소나무도 불타 버렸다. 낮은 관목들도 잿더미로 변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집도 울타리도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열선은 눈 깜작할 사이에 부근 일대를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내가 있는 쪽으로 불길이 번져 왔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발이 땅에 붙어 버린 듯했다.
갑자기 비명 같은 말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곧 잠잠해졌다. 주위는 쥐죽은듯이 조용해져 버렸다. 기계의 낮은 떨림 소리도 멈추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죽음의 광선이 한 순간에 사람도, 나무도, 건물도 쓸어버리고 불태워 버렸던 것이다.
만일 죽음의 광선이 내가 있는 쪽으로도 비췄다면 나도 영락없이 불타 죽고 말았을 것이다.
주위는 어둠 속에 싸여 있었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다만 서쪽 하늘에만 아직 희미한 빛이 남아 있었다.
먼 곳에 있는 타다 남은 소나무가 자욱한 연기에 싸여 있었다. 워킹 역 쪽에 있는 집들이 불길 속에 싸여 타고 있었다. 흰 깃발을 들고 나아가던 대표단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들판에 남아 있는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렇게 생각되자,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화성인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것이 두려워졌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빨리 도망쳐야 한다. 저 죽음의 광선이 뒤에서 쫓아올지도 모른다. 빨리! 빨리!' 나는 뒤돌아볼 용기도 없이 오로지 달리기만 했다.
 
사람의 불기둥
 
화성인이 어떻게 해서 일순간에 소리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지금도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이다. 아마도 화성인은 강렬한 열을 발생시켜서 그것을 매우 빠른 속도로 발사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의 파라볼라 경을 사용해서, 그 강렬한 열을 목포를 향해 반사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파라볼라 경이라는 것은 등대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빛을 한 점에 모아서 반사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화성인이 특수한 열선을 사용한 것만은 분명 하였다.
그 열선에 닿기만 하면 어떤 물체도 일순간에 섬광을 내뿜으며 불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납덩이는 금방 녹아서 물처럼 되어 버린다. 쇠도 당장 물렁물렁해지고, 유리는 녹아서 없어진다. 물은 순식간에 증기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그 날 밤 수십 구의 시체가 까맣게 탄 채 들판에 뒹굴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시체들이었다.
이 대 사건의 뉴스는 초범, 워킹, 오터셔 등의 마을에 금방 전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들판으로 와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구덩이를 구경했다.
호기심이 강한 일부 사람들이 구덩이 가까이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빙글빙글 도는 기묘한 거울을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이미 경찰관들도 와 있었다. 경찰관들은 군중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가까이 오면 위험해요. 멀리 떨어져 있으시오!"
이것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스텐트와 오글비는 대표단에 참가하기 전에 가장 가까운 군부대에 전보를 쳤던 것이다.
화성인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험으로부터 화성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대표단에 참가했는데, 결국 어제 저녁 8시 반경에 내가 본 대로 열선에 맞아 죽고 말았던 것이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구사 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섬광이 번쩍이자 관목이 불타고 사람이 불기둥이 되었다.
그 순간, 대부분의 구경꾼은 모래 언덕 밑에 엎드렸기 때문에 겨우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열선은 그들의 머리 위로 뻗어 나가, 멀리 있는 가로수의 나뭇가지에 불을 당겼다.
가로수는 차례차례 불타 쓰러지고 연기에 휩싸였다.
길모퉁이 가까운 집의 벽돌이 무너지고 창유리가 깨지고, 추녀가 불을 뿜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불타고 있는 나뭇잎이 불꽃처럼 날아 떨어졌다. 모자나 옷에 불이 옮아 붙기도 했다. 길이 가득 메워졌다. 군중이 저마다 밀고 당기며 먼저 도망치려고 아우성이었다. 군중은 넘어진 사람을 그대로 밟고 타 넘으며 달려갔다.
군중이 도망쳐 버린 뒤 밟혀서 죽은 몇 구의 시체가 밤길에 뒹굴고 있었다.
 
꿈이었을까?
 
나는 어떻게 해서 도망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언제 그 죽음의 열선을 맞을는지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숨이 멈출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렸다.
마침내 정신도 육체도 감각이 없을 정도로 지쳐서 길가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곳은 가스 공장 부근에 있는 운하에 걸린 다리 근처였다. 나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진 채 길에 쓰러져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쓰러져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머리가 묘하게 이상스러웠다.
공포심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쓰고 있던 모자도 어디로 가고 없었다. 와이셔츠의 칼라도 떨어져 나가 버렸다.
소나무가 불타고, 사람이 불덩어리가 되고, 집이 불타 오르던 광경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 본 광경처럼 생각되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간신히 일어나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몸을 똑바로 가눌 수가 없었다.
다리 위에서 한 노동자와 만났다. 그는 어린 사내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그 낯선 사나이는 내게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말이, 아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밤의 어둠 속을 열차가 횐 증기를 뿜으며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열차의 밝은 창이 어둠 속을 달려가는 것이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군.'
유유히 달리고 있는 열차를 보고 있노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눈에 익은 우리 집 근처에 다다랐다. 대문 앞에서 몇몇 사람이 모여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어쩐지 나 혼자만이 저 무서운 경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그것은 꿈이었단 말인가?'
가스 공장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활기에 찬 작업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전등도 밝게 켜져 있었다. 나는 그 집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 쪽 들판에서 무슨 뉴스가 없었습니까?"
"뭐라고요?"
문 옆에 있는 남자가 이상한 얼굴을 했다."
"무슨 뉴스가 없었느냐고요?"
"당신은 지금 그 들판 쪽에서 오는 길이 아닙니까?"
하고 남자는 말을 이었다.
"모두가 들판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던데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 사나이 곁에는 여자가 있었다.
"화성에서 온 사람의 이야기를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까? 화성의 생물 말입니다."
"그야 듣기만 했겠어요? 이젠 지긋지긋할 정도여요."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 옆에 있던 사나이들도 웃어댔다.
나는 차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사람에게 더 이상 이야기해 봤자 통할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나의 초췌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만큼 나의 얼굴은 형편없이 찌들었던 것이다.
나는 식당으로 가서 포도주를 마셨다.
그러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래서 나는 보고 겪은 것들을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아내는 몹시 불안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불안해할 것 없어요. 그놈들은 동작이 워낙 느려서, 구덩이 속에만 처박혀 있을 게 뻔해요. 다만, 사람이 가까이 가면 죽이지만 구덩이 밖으로 나오지는 않을 거요."
"하지만 어쩐지 무서운걸요."
"오글비도 죽었소! 불쌍하게도 그 곳에서 죽은 모양이오."
이 말을 듣자 아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놈들이 여기까지 올지도 모르잖아요."
"아니, 놈들은 움직이지 못하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요. 아무 염려 말아요."
나는 겁을 먹고 있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오글비가 얘기해 주던 의견을 들려주었다.
"오글비의 말로는, 화성인은 절대로 지구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거요. 지구 표면에서는 중력이 화성의 표면보다 세 배나 크다는 것이오. 따라서 화성인은 지구에서는 몸무게가 세 배가 되는 거요. 그렇게 되면 화성인은 마치 납으로 만든 옷을 입은 것처럼 몸이 무거워져서 생각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는 말이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중대한 점을 간과하고 한 것이다. 지구의 대기는 화성의 대기보다도 훨씬 많은 산소를 포함하고 있다.
산소가 많으면 화성인은 그만큼 더 기운을 얻어 체중이 무거워지더라도 견딜 수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화성인들은 뛰어난 기계 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몸을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이 그 기계를 조종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오글비를 비롯해서 모두가 그 점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더더구나 알 리가 없었다.
아내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나에게 점점 용기가 생겼다.
"놈들도 썩 어리석은 짓을 한 셈이지."
식사를 마치고 난 나는 담배를 피워 물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화성인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위험한 놈들이오. 아마도 이 지구에 지성을 가진 생물이, 이를테면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던 것 같소.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 구덩이에 대포 한 방만 먹이면 모조리 죽어 버릴 거요."
그 때의 나는 후에 얼마나 무서운 사태가 닥쳐올 것인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금요일 밤
 
세상일이란 것이 어쩌면 이토록 야릇하고 괴상한 것일까!
금요일에 그렇게 큰 사건이 있었는데도, 대다수의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언제나처럼 변함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기괴한 로켓에 관한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세상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 이야기를 하였으며, 사람들은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핸더슨이 런던의 신문사로 보낸 전보도 가짜 전보일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신문사에서는 핸더슨에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라는 전보를 쳤으나 이미 핸더슨은 죽은 뒤였으므로, 회답 전보를 받지 못했다.
워킹 역에서는 여느 때처럼 기차가 도착하고, 떠나고 하였다.
화물차를 연결한 기관차의 기적 소리도 들렸다.
9시경에 죽음의 열선에 대한 소식으로 인해 흥분한 사람들이 역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는 열선의 이야기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던지, 술주정꾼의 말쯤으로 생각하였다.
런던 행 기차의 승객들은 밤의 어둠 속으로 호셀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떨어진 들판의 관목이 타고 있는 듯 불 가루가 휘날렸다. 마을 가장자리에 있는 대여섯 채의 집이 불타고 있었다.
한편,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길가로 나와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색다른 일이라도 생기지 않나 하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두세 사람이 어둠을 틈타 화성인들 바로 곁에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때때로 섬광이 번쩍이는가 하면 열선이 방사되었으며, 그 때마다 무엇인가 불타올랐다. 그리고 로켓이 떨어진 구덩이 속에서는 무엇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나왔다. 때때로 초록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화성인들은 밤새도록 기계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
11시경, 1개 중대의 병사들이 도착해서 들판 주변에 비상선을 폈다.
그 뒤, 또 다른 1개 중대의 군대가 와서 들판 북쪽을 수비했다. 군 당국도 그제야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데 그 이유는 그 날 아침 일찍이 잉커맨 연대에서 수명의 장교가 파견되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인 이든 소령이 행방 불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의 조간을 보고 안 사실이지만, 11시에는 올더숏 부대에 출동 명령이 내려졌다. 기마병이 1개 대대, 속사 기관총대, 거기에 병사가 4백 명이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자정이 조금 지나, 워킹 마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북서쪽 솔밭에 또 하나의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여름밤 하늘을 달리는 번갯불처럼 빛을 발하며 떨어졌다. 두 번째의 로켓이었던 것이다.
 
공격 개시!
 
다음 날인 토요일은 몹시 더운 날이었다.
그리고 유달리 나른한 날이기도 했다.
어제의 피로가 풀리지 않은 데다가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인 것 같다.
새벽에 잠이 깼다. 아내는 잘 자고 있었지만, 잠이 더 이상 올 것 같지 않아서 일어나 뜰로 나갔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별다른 소리는 들려 오지 않았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우유 배달부가 우유를 배달하고 다녔다.
"무슨 이상한 일은 없던가?"
"밤 사이에 화성인은 군대에 포위되었답니다. 대포도 도착한다고 그러더군요. 하지만 군대는 가능한 한 화성인을 죽이지 않을 모양입니다."
우유 배달부는 이렇게 대답하고 가 버렸다.
때마침 이웃집 주인이 정원을 손질하고 있기에 말을 걸었다.
"군대라면 이제 곧 화성인을 포로로 잡던가, 없애 버리던가 하겠지요. 놈들이 우리 같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것은 애석한 일입니다. 놈들이 다른 행성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내면 퍽 재미있을 텐데요."
옆집 주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울타리까지 와서 지금 막 다른 딸기를 한 움큼 주었다.
"바이프리트 골프장 부근의 소나무 밭이 불타고 있다더군요. 사람들의 얘기로는 그 소나무 숲 사이에 또 떨어졌다는 겁니다. 두 번째의 둥근 통이 말입니다."
하며 그는 안개처럼 보이는 연기를 가리켰다.
"저것 봐요. 아직도 타고 있군요, 하기야 거기엔 낙엽이 잔뜩 깔려 있으니 며칠 동안 계속 탈 겁니다."
옆집 주인과 헤어져서 나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원고 쓰는 일을 그만두고, 들판 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철교 아래의 몇 명의 병사가 모여 있었다. 공병대의 병사 같았다.
"이 운하에서부터 저쪽으로는 가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며 한 병사가 나를 막았다.
다리로 이어진 도로에는 보초병이 서 있었다.
나는 공병대 병사들과 잠시 이야기를 했다. 특히 어제 저녁에 본 그 화성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병사들 중에는 아직 아무도 화성인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러 가지 자세한 질문을 해 왔다. 그들은 무슨 이유로 출동 명령이 내렸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공병은 보통 보병보다도 기계에 대해 특수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만약 화성인과 전투가 벌어졌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하고 공병답게 기술적인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였다. 그래서 나는 화성인이 사용하던 무서운 열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자기들끼리 여러 가지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렇다면 몸을 가리고 다가가서 뛰어들면 되지."
"무슨 소리야. 무서운 열을 막을 수 있는 물건이 있을 리 없어. 방법은 한 가지뿐, 지형을 이용해서 가까이 접근한 뒤, 호를 파면서 다가가는 거야."
"제기랄! 참호 파기는 지긋지긋해. 너는 두더지로나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화성인들은 목이 없단 말입니까?"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다른 병사가 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문어로군. 꼭 문어처럼 생긴 모양이군."
"그런 괴물이라면 죽여 버리더라도 살인에 해당되지는 않겠군."
"무엇 때문에 대포를 쏴서 해치우지 않지? 그놈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단 말이야."
공병들은 토론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헤어져 역으로 갔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신문을 사서 자세한 것을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에는 스텐트와 오글비, 그리고 핸더슨이 살해된 사건에 대해서 너무나 부정확한 기사밖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들판의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교회의 높은 탑에 올라가 보면 혹시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셀의 교회도, 초범에 있는 교회도 모두가 군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으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병사들에게 말을 해 보아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장교들에게 물어도 바쁜 듯이 뛰어다니느라고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군대가 와 있으므로 완전히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셀 마을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안전을 위해서 집을 비우고 피난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2시경에 집으로 돌아왔다.
날이 몹시 무더웠기 때문에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기운을 되찾기 위해 냉수욕을 했다.
3시쯤 차트시 방향에서 은은한 포성이 들려 왔다.
두 번째 로켓이 떨어진, 불타고 있는 소나무 숲을 향해서 포격을 개시했다는 것을 알았다. 로켓의 뚜껑이 열리기 전에 파괴시켜 버릴 작정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로켓을 공격하기 위한 대포가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였다.
6시 무렵, 나는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별안간 들판 쪽에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땅이 흔들렸다.
나는 즉시 뜰로 뛰어나갔다.
오리엔틀 칼리지 주위에 있는 나무숲이 시뻘건 불길에 싸여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옆의 조그만 교회 탑도 무너져 내렸다.
오리엔틀 칼리지의 커다란 지붕도 마치 백 톤 짜리 폭탄을 퍼부은 것처럼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집 굴뚝 하나도 포탄에 맞은 듯 박살이 나서 그 파편이 꽃밭에 쏟아져 내렸다.
나도 아내도 멍해지고 말았다.
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오리엔틀 칼리지가 저렇게 부서진 것으로 보아, 이 곳도 화성인의 광선이 미치는 사정권 내에 있다!
나는 아내의 팔을 잡아끌고 급히 한길로 뛰쳐나갔다.
"빨리 도망가야 해. 여긴 위험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대포 소리가 울렸다.
"어디로 가죠?“
아내의 질문을 받고 잠시 망설였지만, 곧 아내의 사촌 오빠가 레더헤드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레더헤드로 갑시다!"
길 양편 집집에서 포성에 놀란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레더헤드로 가죠?“
아내는 그런 소동을 보자 근심스럽게 물었다.
그 때, 기병대의 한 무리가 철도의 육교 밑을 빠져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 기병 중의 세 사람이 오리엔틀 칼리지 교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또 다른 두 사람의 기병은 말에서 내리자, 집들 사이로 달리며 주민들에게 위험이 닥쳤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나무숲에서 솟아오르는 연기 사이로 바라다 보이는 태양은 핏빛처럼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요. 여기는 안전할 테니까."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는 곧 목로 주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가게 주인이 말과 이륜 마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목로 주점에 도착했을 때, 주인은 아직 밖에서 일어난 소동을 모르고 있는지 한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1파운드는 받아야 합니다. 더는 못 깎아요."
"나는 2파운드 내겠소."
나는 그 남자가 나보다 앞서서 마차를 빌리러 온 줄만 알고 크게 소리쳤다.
"무슨 얘기요?"
목로 주점 주인은 얼떨떨해했다.
"밤중까지는 돌려보내 주겠소."
"뭐라고요? 나는 돼지 값을 얘기하고 있는 중이오. 2파운드나 내겠다느니, 돌려보내겠다느니, 대체 무슨 소리요?"
나는 갑자기 집을 비우게 되어서 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 때까지는 이 가게 주인도 피난을 가야 할 만큼 큰 위험이 닥쳐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주인한테 마차를 빌리자 나는 급히 집으로 향했다.
아내를 마차에 태우고 집으로 들어가서 약간의 귀중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집 근처에 있는 너도밤나무가 불탔고, 도로의 목책도 벌겋게 타올랐다.
그 때 기병 한 사람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빨리 피난을 가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내가 현관으로 나가자, 기병은 마침 우리 집 앞에 와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소?“
내가 묻자, 기병은 큰 소리로 말했다.
"쟁반같이 생긴 것을 뒤집어쓴 놈들이 기어 나오고 있어요!"
기병은 이렇게 소리치고 언덕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옆집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옆집의 부부가 이미 런던으로 피난 갔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걱정스러운 나머지 다시 한 번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짐을 마차에 던져 올리고 마부석에 앉아 있는 아내 옆에 뛰어올랐다.
우리 부부는 포성을 뒤로하고 메이베리의 반대쪽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 앞쪽에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길 양쪽은 밀밭이었다.
메이베리 여관이 보였고 앞쪽으로 의사를 태운 마차가 달려가고 있었다.
언덕 밑에 이르렀을 때, 나는 방금 내려온 언덕을 돌아다보았다.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하늘로 솟아오르고, 그 연기 사이로 빨간 불길이 보였다.
길을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이 보였다. 모두가 도망해 오는 사람들이었다. 이따금 기관총 소리가 주위의 조용한 공기를 뒤흔들었다. 거기에 섞여서 라이플 총의 총 소리도 들려 왔다.
나는 마차를 힘껏 몰았다.
마침내 의사를 태운 마차를 따라붙었으며, 그 마차를 앞질러 계속 달렸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레더헤드는 메이베리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목초지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달려가노라니 싱그러운 풀 냄새가 풍겨 왔다.
생나무 울타리에는 들장미 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우리는 9시가 다 되어서야 레더헤드의 사촌 집에 다다랐다.
지쳐 있는 말을 한 시간 가량 쉬게 했다.
그 사이에 아내와 나는 사촌 부부와 함께 늦은 저녁을 들었다.
아내는 몹시 우울해 보였다. 마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말 한 마디 없이 잠잠하기만 했는데, 무엇인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리라는 예감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했다.
"화성인은 체중이 무거워서 구덩이에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어요. 글쎄, 기껏해야 조금 기어 나오는 게 고작 일거요."
"하지만 걱정이 되요."
"내가 있지 않소. 그리고 군대도 출동해 있잖소. 화성인은 그 수가 적고, 이 쪽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요."
목로 주점 주인에게 한 약속이 없었다면, 아내는 내가 머물러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물론 나도 아내 옆에 있어 주고 싶었지만, 약속을 어길 수는 없었다.
아내는 새파랗게 질린 채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나를 전송했다.
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밤 11시였다.
그 날 밤은 유난히도 캄캄했다. 밝은 집에서 밖으로 나온 탓도 있겠지만, 너무나 캄캄하게 느껴졌다.
낮과 다름없이 몹시 무더웠다.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이 계속 흘러가는데도 숲에는 바람 한 점 없고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하인이 마차의 램프에 불을 켰다.
아내는 현관 불 밑에 서서 내가 마차에 올라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마차를 출발시켰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내가 너무나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까지도 우울해져 버렸다. 그러나 나의 우울은 오래 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차차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날은 하루 종일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싸여 있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나는 그 때 메이베리로 돌아가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아내를 데리고 우리 집을 떠날 때 들은 포성과 기관총 소리를 생각해 내고서 어쩌면 화성인은 전멸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묘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나는 화성인이 죽는 장면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화성인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뒤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째서 갑자기 전투 개시를 하게 되었는지 물론 그 때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지름길을 택해 가기로 했다.
서쪽 지평선 위의 하늘이 새빨간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검은 구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폭풍우가 닥칠 것 같은 징조였다.
길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었다. 불이 켜져 있는 창이 단 하나 보일 뿐이었다.
길모퉁이에서 하마터면 나는 사람을 칠 뻔했다. 컴컴한 길모퉁이에 사람이 몇 명 서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은 길 옆에서, 내 쪽에 등을 돌리고 서 있었는데, 내가 지나쳐 가도 말 한 마디 건네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길을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마차를 몰았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걸까? 역시 피난을 가는 사람들일까? '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까 지나쳐 온 집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 안심하고 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들은 전등불을 끄는 것도 잊고 어디론가 도망친 것일까?'
물론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마차는 완만한 언덕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조그만 언덕 위로 올라가자, 또다시 시뻘겋게 타고 있는 하늘이 보였다.
주위의 나무들이 우수수 흔들리기 시작했다. 폭풍우를 몰고 오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 한밤중인 12시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메이베리 마을의 집들이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자처럼 꺼멓게 보였다.
그러나 그 때, 기분 나쁜 초록빛 광채가 하늘에 나타났다. 초록빛 광채는 멀리 있는 숲까지 비췄다.
나는 멍하니 그 광선이 뻗치는 쪽을 바라보았다.

초록빛 광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멀리 떨어진 왼쪽 들판에 떨어졌다.
그것은 세 번째의 별똥별, 저 화성인의 로켓이었던 것이다.
로켓이 떨어진 바로 뒤에 눈이 부실 듯한 번갯불이 번쩍이고, 로켓의 폭발음과도 같은 천둥소리가 울렸다. 말은 깜짝 놀라 한번 크게 울부짖더니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메이베리 마을까지는 가파르지 않은 언덕길이 이어져 있었다. 마차는 이 언덕길을 쏜살같이 달려 내려갔다.
번갯불이 쉴 새 없이 번쩍거리고, 천둥소리는 땅을 뒤흔들 듯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그만 눈앞이 캄캄해지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몰랐다. 차가운 비가 폭풍과 함께 사정없이 나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세 다리를 가진 기계
 
처음 한동안은 앞으로 트인 길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문득 보니 언덕의 비탈을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오는 물체가 눈에 띄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비에 젖은 지붕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침 번갯불이 번쩍여서 그 물체가 빠른 속력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순간 또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계로 변했다. 그러나 이 때 다시 대낮 같은 밝은 번갯불이 번쩍거렸다. 그러자 붉은 건물의 고아원이 보였다. 푸른 소나무도 보였다. 동시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또렷하게 보였다.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세 다리를 가진 괴물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것은 어느 집보다도 높았으며, 소나무도 한 걸음에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 것은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제의 걷는 기계였다. 관절이 있는 금속 로프 같은 것이 몇 개나 달려 있었다. 그것이 절그럭 절그럭 쇳소리를 내며 전진하고 있었다. 또 번갯불이 번쩍 한다.
그 순간, 걷는 기계는 두 다리를 들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 번갯불이 번쩍였을 때에는 그것은 벌써 90미터쯤 떨어진 앞쪽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 앞쪽의 숲이, 마치 사람이 풀밭을 헤치고 지나가듯 계속 양쪽으로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숲의 나무들이 뚝뚝 부러져 나가고 넘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나타난 것은 두 번째의 거대한 세 다리를 가진 기계다. 더욱이 그놈은 나를 향해 곧바로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나는 놈에게서 도망치려고 정신 없이 말머리를 오른쪽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그 순간, 조그만 이륜 마차는 나동그라지면서 엎어졌다. 마차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그리고 나는 마차에서 내던져지면서 웅덩이에 곤두박혔다.
나는 정신 없이 웅덩이에서 기어 나와, 길가에 있는 관목 숲 속으로 숨어들었다. 말은 넘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쌍하게도 목이 부러져서 죽고 만 것이다.
그 때 다시 번갯불이 번쩍였다. 그 빛으로, 뒤집혀진 마차와 아직 빙글빙글 돌고 있는 마차 바퀴가 보였다.
다음 순간, 거대한 기계는 내 곁을 큰 걸음으로 지나 언덕 쪽으로 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그 기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기괴한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계에 지나지 않았으나, 아무리 보아도 보통 기계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놈은 절그렁절그렁 금속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더욱이 기다랗고 부드럽고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제의 촉수 몇 개가 괴상한 몸통에 달려서 절그렁절그렁 흔들렸다. 그 촉수 한 개가 소나무를 움켜잡고 있었다.
그놈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그놈의 꼭대기에는 놋쇠로 된 둥근 통 같은 것이 있었는데, 마치 머리가 좌우로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는 것만 같았다.
세 개의 다리와 여러 개의 촉수에는 몇 개씩 관절이 있었다. 그 관절에서 초록빛 연기를 풀썩풀썩 내뿜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괴물 같은 것이 내 옆을 성큼성큼 지나쳐 갔던 것이다.
다음 순간에는 이미 그 모습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본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눈이 멀 듯한 번쩍이는 번갯불로 보았으니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그놈은 천둥소리보다도 더 커다란, 마치 승자의 환성 같은 소리를 질러 댔었다.
"우라! 우라!“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8백 미터나 떨어진 저 쪽 들판에 있는 다른 괴물과 함께 있었다. 그 두 개의 괴물이 벌판 위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 때는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화성에서 지구로 쏘아 보낸 세 번째의 로켓 위에 엎드리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거기에 누워 있었다. 비를 맞으며, 생나무 울타리 사이로 그 금속제의 괴물들이 활동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번갯불이 번쩍 빛나고는 다시 암흑 세계로 되었다.
나는 계속 비를 맞고 있었다.
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고 너무나 놀라 머리는 텅 빈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도 얼마 뒤 정신을 차리고 언덕을 기어올라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 조그만 헛간이 있었다. 둘레는 감자밭이었다. 나는 일어서자 될 수 있는 대로 몸을 숨기면서 헛간 속으로 달려갔다. 헛간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다.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데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또다시 그 화성인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나는 되도록 도랑을 따라 걸으며, 메이베리 쪽에 있는 소나무 숲 속에 숨어들었다. 추위 때문에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아무튼 집으로 가 보자.'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소나무 숲은 칠흑 같았다. 진눈깨비가 섞인 차가운 비가 무성한 나뭇잎을 사정없이 때려서 잎이 떨어졌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메이베리에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레더헤드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그 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마차가 나둥그러졌을 때 부딪힌 탓인지 온몸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다. 소나무 사이를 헤치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언덕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어둠 속에서 한 사나이와 부딪혔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나는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 사나이는 공포에 질린 소리를 지르고는 정신 없이 도망쳐 갔으므로 말을 건네 볼 겨를도 없었다.
비는 더욱 억세게 퍼부었다. 길은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길가의 목책을 의지하며 간신히 올라가고 있었다.
언덕 위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무엇인가 뭉클한 물체에 걸려 넘어졌다.
번쩍 하는 번갯불로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검은 옷과 구두가 보였다.
그러나 짧은 순간의 빛이어서 그것밖에 알 수 없었다.
또다시 번쩍 하고 푸른빛이 빛났다.
자세히 보니 남자였는데 마치 굉장한 힘에 의하여 내던져진 듯 목책 옆에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웅크리고 앉아 그 사나이를 바로 누이고 심장에 손을 대어 보았다. 그러나 심장은 멈춘 지 이미 오래인 것 같았고, 몸도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목이 부러져서 죽은 모양이었다.
다시 번갯불이 번쩍이고 그 사나이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나는 심장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 사나이는 바로 내가 마차를 빌렸던 저 목로 주점의 주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황급히 시체 옆을 도망쳐서 정신 없이 언덕을 올라갔다.
들판 쪽을 바라보자,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불꽃과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번갯불 빛으로 보니 우리 집 부근은 무사한 것 같았다.
메이베리 다리로 이어지는 길 쪽에서 사람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그 사람들한테 가서 말을 건네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다행히 집은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다.
나는 현관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계단으로 걸어가다가, 그대로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머릿속에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그 금속 괴물과 목책에 내동댕이쳐진 채 죽은 술집 주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공포와 추위 때문에 온몸이 덜덜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이나 주저앉아 있었을까?
내 주위에 물이 흥건히 괴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흠뻑 젖은 옷에서 떨어진 물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서는 식당으로 가서 위스키를 몇 모금 마셨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우선 이층 서재로 올라가 보았다. 이층 서재의 창에서라면 멀리까지 내다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천둥을 몰고 온 폭풍우는 그쳐 있었다. 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처참했다. 오리엔틀 칼리지의 모습은 타 버리고 없었고, 그 둘레의 소나무 숲도 사라져 버리고 없다. 저 멀리 붉게 타오르는 불길에 비춰서 모래 채취장이 보였으며 그 둘레의 들판도 보였다.
그 붉은 불빛 속에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바쁜 듯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화성인이다!
아니, 화성인이 아니라 화성인이 그 안에 들어가서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금속제의 괴물들이었다. 들판 쪽은 온통 불길에 싸여 있는 것 같았고, 때때로 붉은 불길이 바람을 타고 날름거리는 혓바닥처럼 타오르곤 했다. 검은 연기도 뿜어져 나오므로 화성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곤 하였다.
'저놈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무슨 일로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창가에 바짝 다가섰다.
화성인들은 무엇인가 검은 물체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그 검은 물체가 무엇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철도역이 보였다. 역 부근에는 아직 집도 있었다.
그러나 언덕의 아래쪽으로 보이는 선로에는 열차가 뒤집혀져 있었는데 열차의 앞부분 절반은 파괴되어 불타버리고 없었다.
먼 곳에서는 불길이 아직 타오르고 있었다.
역 부근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들은 기찻길을 넘어 구르듯 도망치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오랫동안 살아온 이 마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일까? 저 들판에 있는 로켓 속에서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며 기어 나온 것이, 세 다리가 달린 커다란 기계 속에 들어가 그것을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저 세 다리의 기계 자체가 우리 인간과 똑같은 지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그 기계는 들판에서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나는 창가로 의자를 끌고 와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놓고 앉았다. 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이에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뜰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나는 흠칫 놀라 눈을 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 병사가 안으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아직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여보시오!"
내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자 그 병사는 깜짝 놀라며 위를 쳐다보았다.
"누구요?"
그 병사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오?"
"나도 모르겠소.“
"숨을 곳을 찾고 있소?"
"그렇소.“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오시오."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문을 열고 병사를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다시 문을 굳게 잠갔다.
"어떻게 된 일이오?"
"말 마시오. 놈들에게 당했지요. 놈들은 닥치는 대로 한순간에 쓸어버리더군요. 우린 전멸했소."
나는 병사를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자, 위스키를 마시고 기운을 좀 내시오."
병사는 위스키를 마시고 나더니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한동안 울고 나자 병사는 흥분이 좀 가라앉는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떠듬떠듬 내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병사의 이야기
 
병사의 대답으로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일들을 알게 되었다.
이 병사는 포병대 소속으로 포차를 싣는 말의 담당이었다. 그래서 7시경에 전투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포격은 최초로 들판에 떨어진 로켓을 향해서 가해졌다. 최초의 화성인 부대는 금속으로 만든 방패로 몸을 가리고, 두 번째로 떨어진 로켓 쪽으로 천천히 이동해 갔다. 그런데 그 금속의 방패가 삼각대 같은 세 개의 다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본, 성큼성큼 걸어다니던 거대한 괴물 같은 기계였던 것이다.
포병대가 도착하자 작전 활동은 활발해졌다.
이 병사도 포차를 모는 말을 타고 방향을 바꾸려고 했는데 그 때 말의 발이 구덩이에 빠지면서 넘어졌다. 그 바람에 병사는 구덩이 속으로 나가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대포가 폭발하고 탄약도 흐트러져 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는 온통 피바다가 되어 있고, 병사는 새까맣게 타 버린 병사들과 말들 밑에 깔려 있었다.
"나는 그대로 있었지요. 너무 무서워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어요. 주위에는 죽은 사람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린 전멸 당한 거죠. 살아 남은 것은 겨우 나뿐인 것 같았어요.
나는 오래도록 말의 사체 밑에 숨은 채 죽은 듯이 있었지요. 그래도 주위의 사태가 궁금해서 고개를 들고 들판 쪽을 쏘았지요. 카디건 연대에서 온 병사들이 돌격을 시도하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순식간에 전멸 당하고 말았습니다.
세 다리의 괴물들이 일어서서 천천히 걸어다니고 있었어요. 놈들의 머리, 아니 머리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두건을 쓴 머리 같은 것이 빙글빙글 돌며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었어요. 그 금속제의 거대한 괴물들은, 도망치려고 허둥거리고 있는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괴물들은 팔처럼 생긴 것으로 금속제 상자 같은 것을 안고 있었는데, 그 상자에서 쉴 새 없이 초록빛 광선이 뻗쳐 나왔어요. 틀림없이 열선을 방사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병사는 이야기에 열중해서 차차 흥분했다.
몇 분 뒤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도 하나 남김 없이 불타고 있었다. 그 중에는 벌써 다 타서 숯이 되어 버린 것도 있었다. 기관총을 쏘아 대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도 금방 침묵해 버렸다. 모두 열선에 당한 것 같았다.
화성인의 거대한 기계는 이번에는 마을의 집들을 노렸고 마을은 순식간에 불을 뿜으며 타올랐다. 그리고 그것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것이다.
화성인은 열선의 방사를 그치자, 두 번째의 로켓이 떨어진 곳으로 옮겨갔다. 그 동안에 들판의 구덩이 속에서 세 개의 다리가 달린 기계가 나왔다.
그것도 먼저 옮겨간 기계를 뒤따라 멀어져 갔다.
그 틈에 말 사체 밑에 숨어 있던 병사는 살그머니 기어 나와 아직도 뜨거운 땅 위를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병사는 간신히 마을로 올 수가 있었다. 마을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도 대부분이 화상을 입고 있었다.
병사는 불을 피해서 옆길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 때 화성인 하나가 되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병사는 황급히 부서져 떨어진 벽돌 더미 뒤에 숨었다.
화성인은 한 남자를 쫓아가서는 그 강철같은 촉수로 남자를 움켜잡더니 소나무에다 내동댕이쳤다. 병사는 공포에 떨었다.
겨우 밤이 되었다. 밤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병사는 정신
 없이 달려서 도망쳤다.'어쨌든 런던 쪽으로만 가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병사는 그렇게 생각하고 메이베리를 향해 갔다.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이었다.
도중에서 수도관이 터져 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그 물로 겨우 목을 축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병사는 우리 집까지 도망쳐 왔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병사의 마음은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병사가 낮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빵과 양고기를 가져와 함께 먹었다.
화성인에게 들키면 끝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계속하며 음식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 새 날이 밝기 시작했다. 창 밖의 관목들이 똑똑히 보였다.
병사의 얼굴은 숯검정이나 흙탕물로 얼룩져 아주 초췌해 보였다. 나도 틀림없이 그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리라.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이층 서재로 올라갔다.
밖을 내다보니, 단 하룻밤 사이에 주위는 온통 타 버린 벌판뿐이었다. 불은 꺼졌으나, 아직도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집들은 불타서 무너지고, 나무들은 불에 타서 검게 변하여 을씨년스러웠다.
어쩌면 이토록 무참하게 변해 버렸단 말인가!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이토록 무차별하고 철저하게 파괴된 일이 또 있었던가!
동쪽 하늘이 밝아짐에 따라, 세 개의 거대한 금속제 기계가 들판 가운데 우뚝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그들은 마치 그들이 해치운 파괴의 흔적을 조사하고 있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놈들은 때때로 초록빛 기체를 풀썩풀썩 뿜어내고 있었다.
 
다시 도망치다
 
밖은 완전히 환해졌다. 우리는 가만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화성인이 저 들판에 있는 이상 여기 있는 것은 아주 험한 일이오. 당신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 작정이오?"
하고 나는 병사에게 물었다.
"나는 런던 쪽으로 가서, 내가 속해 있는 포병대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나는 아내가 있는 레더헤드로 돌아가서, 아내를 데리고 외국으로 떠날 생각이오."
"그러나 여기서 레더헤드로 가는 도중에는 세 번째의 로켓이 떨어져 있고 거기서는 화성인들이 망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여기서 곧바로 레더헤드로 간다는 건 마치 죽으러 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리하여 서로 의논을 한 결과, 나는 병사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숲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 초범 마을까지 가리라. 거기서 병사와 헤어진 다음, 나는 멀리 돌아서 레더헤드로 가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결정하자 나는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도중에 어떤 경우가 닥칠지도 모르니까, 무엇이든 먹을 걸 가지고 가는 게 좋을 거요. 그리고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위스키도 가져갑시다."
우리는 물통에 위스키를 넣고, 또 서로의 주머니 속에는 비스킷을 잔뜩 넣었다.
우리는 조심조심 집을 나왔다.
내가 어젯밤 지나온 길을 서둘러 달려 내려갔다.
어느 집도 전부 피난을 가 버려서 인기척이 없었다. 길에는 열선에 맞아 새까맣게 타 죽은 세 구의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시계라든가 슬리퍼, 은 숟가락 따위의 물건들이 떨어져 있었다. 우체국 가까운 길모퉁이에 우유를 실은 작은 짐마차가 엎어져 있었는데 말은 보이지 않았다.
고아원 건물만이 아직 타고 있었다. 다행히 그 밖의 집들은 이렇다 할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집들의 굴뚝 일부분만이 부서져 있었는데, 열선이 싸악 쓸고 지나갔기 때문인 것 같았다.
메이베리에 있는 인간이라고는 오로지 이 병사와 나뿐인 모양이었다.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덕길을 내려가자, 숲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다시 선로 쪽으로 향해 갔다.
선로 건너편에 있는 숲은 모두 불타 버리고 벌거숭이 들판으로 변했다. 단지 일부만 불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선로 이 쪽의 숲은 피해를 입지 않고 남아 있었다.
바람 한 점 없고, 사방은 이상한 기분이 들만큼 고요하였다. 새들도 울지 않았다. 우리는 길을 재촉했다. 대화도 속삭이듯 조용조용 나누었다. 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경계를 했다.
얼마 동안 가자 길이 나타났다.
저 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나무 사이로 세 사람의 기병이 워킹 마을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큰 소리로 세 사람을 부르며 세 사람 옆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제 8 기병대 소속으로, 한 사람은 중위였고, 두 사람은 사병이었다.
"아침부터 사람을 만난 건 당신들이 처음이오. 어떻게 되었소?“
하고 중위가 물었다.
나와 함께 가던 포병이 경례를 하고 대답했다.
"어젯밤 대포가 파괴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숨어 있다가, 포병 중대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이 길을 1킬로미터쯤 곧장 가면 화성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놈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
중위가 물었다.
"마치 갑옷을 입은 거인 같았습니다, 중위님. 키는 30미터쯤 되고, 다리는 셋, 몸통은 알루미늄으로 된 것 같았습니다. 굉장히 큰 머리에 두건 같은 것을 쓰고 있었습니다."
포병이 대답했다.
"뭐라고?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이제 곧 아시게 될 겁니다. 놈들은 상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내뿜는 것에 맞으면 모두 죽어 버립니다."
"그건 총이 아닌가?"
"아닙니다. 전혀 다릅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포병은 눈에 보이듯이 열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중위는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도 보았소?“
"예, 이 포병이 한 말은 모두가 사실입니다."
"좋아요. 그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나의 임무지요."
중위는 이렇게 말하고 또다시 포병 쪽을 향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주민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이 곳에 파견되었다. 너는 이제부터 마빈 사단장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보고하도록 해라. 사단장은 웨이브리지에 계시다. 길은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하고 포병은 대답했다.
중위는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리며 나에게 물었다.
"1킬로미터쯤 가면 화성인이 보일 거라고 하셨죠?“
"그렇소.“
나는 대답하면서 남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중위는 인사를 하고는 부하와 함께 말을 몰았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이들을 보지 못했다.
 
피난민의 행렬
 
우리는 길을 재촉했다.
도중에 피난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세 명의 여인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유모차에 약간의 소지품을 싣고 있었다. 바이프리트 역 근처에서 우리는 나무숲을 벗어났다.
이 부근은 화성인의 열선 사정권 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아침 햇빛 속에서 아직 평화스러웠다.
그런데도 벌써 피난 가 버려서 빈집들이 있었으며, 피난 보따리를 싸느라고 한창인 집도 있었다. 철교에는 경계병이 몇 명 서 있었다.
몇 대의 짐마차가 피난길을 서두르고 있었는데 널따란 목장 저 편에 6문의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포구는 모두 워킹 마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포 옆에는 명령만 내리면 언제라도 사격할 수 있는 자세로 포수가 서 있고, 포탄 차들도 줄지어 있었다.
"됐어! 저 정도면 한 방쯤은 맞을 테지."
하고, 나는 말했다. 함께 가던 포병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더니,
"그대로 갑시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길을 서둘렀다.
웨이브리지에 이르자 많은 사병들이 긴 보루를 쌓고 있었다. 보루 뒤에 많은 대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저 따위 일을 해 보았자 번갯불을 화살로 쏘려는 것과 마찬가지요. 저 친구들은 열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하고 포병이 내뱉었다.
보루 옆에 서 있는 장교들은 줄곧 워킹 마을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바이프리트 마을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피난 짐을 꾸리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20명 가량의 기병들이 말에서 내리거나 혹은 말을 탄 채로 마을 사람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마을의 큰길에는 한 대의 낡은 합승 마차와 면사무소의 검은 짐마차가 서너 대 멈추어 서서, 피난 가는 사람들의 짐과 사람들을 실어 주고 있었다. 크고 작은 짐수레들이 늘어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화성인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며 서두르고 있다기보다는 어쩐지 오히려 축제 기분으로 들떠 있는 것 같았다. 병사들은 눈앞에 닥친 일의 중대성을 마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고 열심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별로 실감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한 노인이, 소중히 여기고 있는 스무 개쯤 되는 화분을 꼭 가져가겠다고 우기고 있었다. 병사가 그런 것은 내버리고 가라고 아무리 권해도, 노인은 듣지 않고 버티고 서서는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보다못해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쪽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나 계십니까?"
그러면서 나는 화성인들이 숨어 있는 소나무 숲 쪽을 가리켰다.
"무슨 소릴! 내겐 이 화분이 목숨만큼이나 소중하단 말이야."
하고 노인은 발끈해서 소리쳤다.
"죽게 된단 말입니다. 어물거리다간 죽어요!"
나는 이런 고집 불통인 노인을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노인을 내버려 둔 채로 포병과 함께 길을 재촉했다.
웨이브리지에 도착해 보니 사령부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리에는 사륜 마차와 이륜 마차, 그리고 짐마차 따위로 사방에서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을의 부잣집에서는 골프복을 입은 신사들이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숙녀들이 짐을 꾸리고 있었다. 누추한 옷을 입은 부랑자들은 부지런히 그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보통 때의 조용한 일요일과는 전혀 다른 마을의 분위기에 들떠 흥분하고 재미있어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마을의 소동에는 아랑곳없이, 교회에서는 아침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와 포병은 마을의 공동 펌프 옆에 앉아서 밑에서 가지고 온 음식을 먹었다.
병사가 순찰을 돌며 마을 사람들에게 빨리 피난을 가든가, 아니면 포격이 시작되면 지하실로 피난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우리는 정오 무렵까지 웨이브리지에서 머물렀다. 얼마 뒤에는 웨이 강과 템즈 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세퍼튼 수문이 있는 곳까지 왔다.
웨이 강의 주변은 피난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보트가 쉴 새 없이 강을 왕래하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피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화성인이라는 것은 단지 좀 무서운 정도의 인간쯤으로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화성인이 이 곳을 습격해 올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우리 지구인에게 궤멸 당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차트시 쪽을 불안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향에서는 아무 변화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템즈 강 저 편 기슭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피난민들이 상륙하는 지점만이 북적거렸지만, 다른 곳은 왠지 한가하기만 했다.
강을 사이에 둔 이쪽은 안전 지역으로, 여기까지는 화성인이 쳐들어 올 리 없다고 모두들 안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내 옆에 있던 사나이가 외쳤다.
그 때, 요란한 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차트시 쪽에서 들려 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틀림없는 대포 소리였다.
 
뜨거워진 강물
 
마침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저 쪽 강변의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포병 진지에서도 차트시 방면에서 들려 온 소리에 맞추어서 대포를 쏘아 댔다.
포성에 겁을 먹은 여인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수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난 대포 소리에 놀라 숨을 죽였다. 그러나 목초지에서는 암소들이 포성에 놀라지도 않고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나 있는 버드나무들은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조용히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군대가 막아 주겠지요?"
곁에 있던 한 여자가 근심스러운 듯 내게 물었다.
그 때, 갑자기 강의 훨씬 상류에서 시커먼 연기가 맹렬한 기세로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연기는 하늘에서 멈추는 것처럼 보이더니, 마치 버섯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다음 순간, 발 밑의 땅이 솟는 것처럼 크게 흔들리며 동시에 굉장한 폭음이 귀를 때렸다.
집집마다 유리창이 모조리 깨져서 박살이 났다.
우리들은 그저 멍해져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놈들이 온다!"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저 쪽이야, 저 쪽을 봐요!"
차트시 쪽으로 걸쳐져 있는 목초지 저 쪽에서 하나, 둘, 셋, 넷, 그 거대한 금속 기계 속에 들어 있는 화성인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하늘을 나는 새처럼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들의 금속 몸통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놈들은 포병 진지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거대한 기계가 점점 더 커다랗게 보였다. 가장 왼쪽에 있는 놈이, 즉 우리들에게서 제일 멀리 있는 놈이 커다란 상자 같은 것을 휘둘렀다. 그러자 내가 이미 금요일 밤에 본 그 무서운 열선이 차트시 마을을 습격했다.
그 때, 다섯 번째의 화성인이 우리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화성인의 모습을 본 강변에 있는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듯, 한순간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한 채 꼿꼿이 서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비명 소리가 터지고 풍덩 하고 물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놀란 나머지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강물 속에 떨어뜨렸던 것이다.
한 여인이 나를 밀어젖히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신호로 다른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달리기 시작했지만, 그 사람들처럼 겁을 먹지는 않았다. 생각할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무서운 열선의 위력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물 속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 속으로 뛰어들어요!"
나는 당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급히 돌아서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화성인 쪽으로 달려갔다. 자갈 투성이의 강가로 달려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나를 따라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보트를 타고 있던 사람들도 황급히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강은 뜻밖에도 얕아서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강 밑바닥이 흙탕이어서 몹시 미끄러웠다.
20미터쯤 앞으로 나아갔을 때, 2백 미터 정도 떨어진 저 쪽 육지에 화성인이 높은 철탑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황급히 물 속에 몸을 숨겼다. 화성인의 기계는 도망치고 있는 사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이 보였다. 숨이 막힐 것 같아 얼굴을 물 위로 내밀고서 보니, 화성인은 다만 포병 진지에만 정신을 쏟고 있는 듯싶었다. 열선 발생 장치 상자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화성인은 강가에 이르자, 한걸음에 강의 절반을 건너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다리의 무릎을 구부렸다가 저 쪽 강변에 발을 올려놓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에는 저 쪽 강변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러자 오른쪽 강 언덕에 숨겨져 있던 6문의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갑자기 일어난 대포 소리에 나는 그만 심장이 멈출 것 같이 놀랐다.
최초의 포탄은 화성인의 머리 바로 옆에서 터졌다. 그러나 이미 화성인은 열선 발생 장치 상자를 들고 있었다. 계속해서 두 발, 세 발의 포탄이 화성인의 기계 몸통 옆에서 터졌다. 그러나 화성인은 잽싸게 몸을 날려서 그 포탄들을 피했다.
네 발째의 포탄이 마침내 화성인의 얼굴에 명중했다. 머리가 팽창해서 섬광을 발하는가 싶더니, 붉은 살덩어리와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맞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외쳤다. 그 목소리는 슬픈 비명 같기도 했고, 또한 기쁨의 소리 같기도 하였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와아 하고 환성을 올렸다. 나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순간 물 속에서 뛰쳐나오려고 했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거대한 화성인의 기계는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그렇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화성인은 겨우 몸을 가누고 세퍼튼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화성인이 아니었다. 포탄을 맞고 비틀거리며 전진하고 있는 것은 다만 복잡한 기계 장치가 움직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고장난 기계는 유턴을 컨트롤할 수 없어 다만 일직선으로만 나아갔다.
그러다가 기계는 전방에 있던 세퍼튼 교회의 높은 탑에 부딪쳤다.
교회는 단박에 부서졌고, 기계도 옆으로 휘청하더니 강속에 쓰러져, 마침내 물 속에 잠겨 버렸다.
그 순간 요란한 폭발 소리가 일어났다.
화산이 폭발하듯 강물이 뿜어 오르며, 수증기와 흙탕과 금속 파편 등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열선 발생 장치 상자가 물에 닿는 순간, 물은 당장 뜨거워져서 증기를 내뿜었다. 그와 동시에 뜨거워진 강물이 해일처럼 진흙을 휩쓸며 밀어닥쳤다.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하여 언덕으로 기어오르려고 했다.
나는 물이 뜨거운 것도 위험한 것도 잊고, 물을 헤치며 강이 꺾어지는 곳까지 갔다. 5, 6척의 보트가 파도치는 강물 위에서 기우뚱거리고 있었다.
쓰러진 화성인이 강물을 가로막다시피 하고 누워 있었다. 부서진 기계 주위에서는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때때로 커다란 촉수가 살아 있는 팔처럼 꿈틀거리며 강물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상처 입은 자가 구원을 바라며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부서진 금속제의 기계에서는 마치 피를 흘리듯 검붉은 갈색의 액체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때, 사이렌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무릎까지밖에 차지 않는 강물 속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나를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외치며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남자가 가리키는 쪽을 돌아다본 나는 심장이 멈출 만큼 놀랐다.
다른 화성인들이 차트시 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삼각대와 비슷한 금속의 세 다리로 강변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겁을 하여 또다시 물 속에 숨었다. 숨이 막히는 것을 겨우 참으면서 물 속을 기어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갔다. 주위의 물은 크게 물결치면서 더욱 뜨거워져 가고 있었다.
숨을 쉬려고 물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수증기가 자욱해서 얼마 동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포 소리가 계속 들려 오고 있었지만, 멀리서 쏘아 대기 때문인지 한방도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자욱하던 수증기가 조금 걷히자, 화성인들의 커다란 모습이 보였다.
두 화성인이 물 속에 쓰러져 있는 동료 화성인 위에 엎드려 있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화성인은 그 옆의 강물 속에 우뚝 서 있었다. 그 중의 하나는 내게서 2백 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었다. 또 하나의 화성인은 저 쪽을 향해서 열선 발생 장치 상자를 높이 휘두르며 열선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주위는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음으로 귀가 멍멍 할 지경이었다. 갖가지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 왔다.
화성인들의 기계가 쾅쾅 부딪히는 소리, 열선에 불타버린 집들이 무너지는 소리,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 울타리나 헛간들이 활활 불타 오르는 소리 등 온갖 소리가 뒤섞인 소음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열선이 주위를 쓸어버릴 듯 날뛰었다. 한번 열선이 닿는가 하면, 순간 번쩍 하고 흰 섬광이 빛난다. 그리고 곧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며 시뻘건 불꽃을 뿜어 올린다.
나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가슴께 까지 차는 강물은 펄펄 끓는 물처럼 뜨거워져 있었다. 수면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증기를 통해서, 나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뜨거운 물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몇인가 보였다
그러나 곧 그들은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강 언덕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 때 갑자기 열선의 흰 섬광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열선에 닿은 집들은 확 하고 불을 뿜고 커다란 불기둥이 되어 무너져 내렸다. 열선은 또한 도망쳐 다니는 사람들을 휩쓸고, 내가 서 있는 곳에서 50미터도 안 되는 수면을 휩쓸고 지나갔다.
열선이 지나간 수면에서는 자욱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금방 물이 펄펄 끓어올랐다. 나는 강가를 향해 비틀거리면서 죽을힘을 다해 나아갔다. 다음 순간, 끓는 강물이 커다란 물결이 기어 내가 가는 쪽으로 밀려 왔다.
나는 그만 비명을 질렀다.
'여기서 쓰러지면 끝장이다. 정신 차려라!'
나는 자신에게 타이르며, 정신 없이 비틀거리며 모래 위를 달렸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힘이 빠져 푹 쓰러졌다. 그 모래밭은 화성인에게서 아주 잘 보이는 장소였다.
'지금 화성인에게 발견되기만 하면, 저 열선에 타 죽고 말 텐데……!'
그러나 나는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때의 일을 지금에 와서 확실하게 생각해 내려고 해도 잘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아무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화성인의 다리가, 그 사진기의 삼각대 같은 금속의 다리가 내게서 2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을 지나쳐 갔다는 사실뿐이다. 다리 하나가 모래 바닥에 힘껏 박히더니, 이윽고 모래를 차며 앞으로 걸어갔다.
문득 눈을 뜨자 네 명의 화성인이, 포탄을 맞고 물 속에 넘어진 동료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강을 건너 널따란 목초지 저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흐리멍덩한 상태에서 조금씩 깨달을 수가 있었다.
 
템즈 강을 따라
 
동료가 지구인의 무기에 쓰러지자, 일단 호셀 들판 외각으로 후퇴한 것 같았다. 내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화성인들이 서두르고 있었던 것과, 동료의 시체를 운반하느라고 정신이 거기에 쏠려 있어 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화성인들이 쓰러진 동료 따위는 내버려두고 계속 전진하였더라면, 틀림없이 런던은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과 런던 사이에는 12파운드 포를 설치해 놓은 포병대가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한 포병대쯤은 포탄을 쏘기도 전에 그 열선에 의해 단번에 부서져 버렸을 것이다.
화성인들은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화성에서 쏘아 올린 로켓이 잇달아 지구를 향해 우주 공간을 날아오고 있었다. 24시간마다 한 대씩 도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육․해군 당국은 비로소 적의 가공할 만한 저력을 깨닫고, 손을 쓰기 시작했다. 포병대는 여러 곳에 출동하여 수많은 포병 진지를 만들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윈스턴과 리치먼드 부근 언덕의 모든 숲과 보이지 않는 곳에 많은 대포가 배치되었다. 대포의 검고 기분 나쁜 포구는 화성인이 올 만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척후병들은 반사 신호기를 가지고 여기저기에 숨어 있었다. 화성인의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재빨리 포병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성인들도 지구인의 대포의 위력을 알았기 때문에 섣불리 공격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지구인 쪽도 개죽음을 하고 싶지 않는 한, 로켓으로부터 2킬로미터 이내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거대한 화성인의 기계는 제 2의 로켓과 제 3의 로켓 사이를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기재를 호셀 들판의 구덩이 속으로 운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재를 모두 운반하고 나자, 화성인들은 구덩이 속으로 내려가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성인 중 하나가 망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화성인들이 다음의 공격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나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 웨이브리지에서 도망쳐 나와 런던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보트 한 척이 멀리 강 아래쪽에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다. 나는 물에 흠뻑 젖은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그 보트를 잡아탔다.
그 보트에는 노가 없었다. 그래서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손으로 물을 저으며 강을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느리고 힘이 들었다. 나는 쉴 새 없이 뒤를 돌아보며 화성인이 오지나 않나 하고 경계했다. 만약 화성인이 온다면 물 속에 뛰어드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직도 뜨거운 강물은 나와 함께 하류 쪽으로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양쪽 강기슭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해리 포드 마을을 통과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집을 버리고 마을을 도망쳐 나간 것 같았다.
강기슭에 있는 몇 채의 집이 불타고 있었다.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으며, 하늘은 푸르렀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집을 불태우고 있는 광경은 형언할 수 없이 기분 나빴다.

얼마쯤 갔을 때, 강가의 갈대 잎이 활활 불붙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손으로 물을 저을 힘조차 없었으며, 다만 강물이 흐르는 대로 강을 내려갔다.
태양은 쨍쨍 내리쬐었다.
몸은 더욱 지치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강의 구부러진 모퉁이에 이르자 겨우 월튼 다리가 보였다. 나는 보트를 기슭에 갖다 대고 강가로 기어올라가 풀밭 숱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때 시각은 4시 아니면 5시쯤이었다고 생각한다.
얼마 후 나는 일어서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1킬로미터나 걸어갔으나 사람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고, 나는 너무나 지친 나머지 생나무 울타리 밑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목이 타는 듯이 말랐다. 물을 실컷 마셔두지 못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 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미쳐 버린 목사
 
문득 눈을 뜨니, 검정 투성이의 와이셔츠를 입은 낯선 남자가 내 옆에 앓아 있었다.
사나이는 물끄러미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하늘은 저녁놀에 붉게 물들어 있었고, 찢어서 붙인 듯한 횐 구름이 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힘없이 나를 돌아보았다
"물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고 나는 물었다.
남자는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당신은 벌써 한 시간 전부터 물을 달라는 헛소리를 하고 있더군요."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 상대편의 눈치를 살피며 잠자코 있었다.
나는 얼굴도 어깨도 온통 시꺼멓고 옷조차도 아직 물에 젖은 상태 그대로였다. 사나이는 틀림없이 나를 수상한 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나이는 얼굴색이 희고 매우 허약해 보였다. 눈은 커다랗고 초점이 없어 흐리멍덩한 느낌이었다.
"대체 이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뭐가 어떻게 되어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사나이는 내게 호소하듯 말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만 상대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러한 일이 용서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오늘 아침 나는 교회에서 예배를 끝내고, 오후의 설교를 위해서 머리를 식히려고 산책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화재와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대체 그 화성인이란 어떤 놈들입니까?"
나는 이 사나이가 목사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났습니다. 주일 학교도 모든 것이 말입니다. 웨이브리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이런 몹쓸 벌을 받다니! 교회는 겨우 3년 전에 지은 것입니다. 그 교회가 불타 버리다니, 이럴 수가!"
목사는 한동안 음산스러울 정도로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흐리멍덩한 눈으로 지껄이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연기가 영원히 언제까지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목사는 눈을 번뜩이면서 웨이브리지 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목사가, 웨이브리지에 화성인의 공격이 가해지자 그 곳을 정신 없이 빠져 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지나친 공포로 인해서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것임에 틀림없었다.
"여긴 선베리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입니까?"
나는 일부러 냉정하게 물었다.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그 화성인은 어디를 가나 대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지구는 그놈들에게 완전히 정복당한 것일까요?"
목사는 중얼중얼 혼잣말만 하고 있었다.
"여기는 선베리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입니까?"
하고 나는 또다시 물었다.
"바로 오늘 아침에 나는 예배를 끝내고……"
"모든 게 다 변해 버렸어요.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희망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목사님.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어떤 파괴가 따를지라도 말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우리들이 지금 어떤 사태에 처해있는가를 천천히,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목사는 얼마 동안 듣고 있는 듯했으나, 곧 그의 눈길은 다른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것은 이 세상의 종말입니다. 그 종말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오, 신이여!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
나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에게 아무리 말해봤자 아무 효과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목사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고 말했다.
"당신은 남자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은 겁에 질려서 제정신을 잃고 있습니다. 커다란 재앙을 만났을 때, 신앙을 잃어버린대서야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재해를 받았을 때 하느님이 보호해 주신다고 생각한다면 하느님이란 보험 회사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는 거요. 하느님은 보험 회사가 아니란 말이오."
나의 심한 말에 목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들은 피할 수 있단 말이오. 화성인은 불사신인걸요."
"화성인이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들은 냉정하게, 그리 조심성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바로 세 시간 전에 화성인 중의 한 놈이 죽었단 말이오."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고 말고요. 난 그 곳에서 똑똑히 보았어요."
"하늘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것은 포병대끼리 보내는 반사 신호입니다. 저렇게 해서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포병 진지에 신호를 보내고 있답니다. 아마 화성인을 발견한 것인지도 몰라요. 리치먼드나 킹스턴 언덕 부근, 런던 방면에는 포대를 쌓고 대포를 설치해 놓았으니까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목사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저것은 무슨 소리요?"
귀를 기울이자, 강 너머에 있는 언덕 저 편에서 포성이 기분 나쁘게 울려 왔다.
그러나 우리가 있는 곳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생나무 울타리 위를 날아가는 작은 벌레의 날개 소리조차 들릴 정도였다.
저녁놀로 붉게 물든 하늘에 웨이브리지와 세퍼튼 방면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소."
하고 나는 말했다.
 

런던의 동생
 
내게는 동생이 있는데 런던에 있는 의과 대학 학생이었다. 화성인의 로켓이 워킹의 들판에 떨어졌을 때, 동생은 시험 공부에 쫓기고 있었으므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토요일의 런던 조간 신문에 화성과 화성의 생물에 관한 긴 논설이 실려 있고, 그와 동시에 짧은 기사가 나 있었다.
 
화성인들은 많은 군중이 모여들자 겁을 먹고, 속사포를 쏘아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화성인은 무서운 것 같지만, 착륙한 구덩이 속에서 나오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니 나오지 않는다기보다 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어쩌면, 지구와 화성과의 중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된다.
 
신문의 기사는 이런 투로 씌어 있었다. 그리고 기사의 끝에 가서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한가한 소리를 덧붙이고 있었다.
그 날, 동생은 시험을 치러 학교로 갔다. 시가의 모습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학교에 도착하자, 학생들은 신문의 기사에 흥미를 느끼고 화성인에 대해 열심히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 날의 석간은 워킹에 출동한 군대의 이야기며, 워킹과 웨이브리지 사이에 있는 소나무 숲이 불에 탔다는 것만을 보도하고 있었다. 밤 8시경에 한 신문만이 호외를 냈다. 워킹과 웨이브리지에서의 전신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소나무 숲이 불탈 때 전선이 끊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날 밤, 런던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이 날 밤이 바로 내가 마차로 아내를 레더헤드까지 데려다 주고, 또다시 워킹 마을로 되돌아갔던 날이었다.
동생은 우리 부부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로켓이 떨어진 곳은 우리 집에서 3킬로미터 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지점이라는 것을 신문 기사를 보고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생은 화성인이라는 것을 꼭 한 번보고 싶었고, 그 날 밤 우리 집으로 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동생은 저녁 4시에 내게로 전보를 쳤다.
물론 그 전보가 내게 전달될 리는 없었다.
런던에서도 토요일 밤은 굉장한 폭풍우가 쏟아졌다.
동생은 마차로 워털루 역에 내려 대합실에서 얼마 동안 기다렸다. 한밤중인 12시에 떠나는 워킹 행의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 플랫폼에 나가서 기다렸지만, 전혀 떠나려는 기색이 없었다. 플랫폼은 꽤 혼잡했지만, 토요일 밤이라서 그런지 모두 한가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12시가 훨씬 지나서야 사고로 열차는 출발하지 않는다는 발표가 있었다. 어떤 사고인지 동생은 역원에게 확인해 보려고 했지만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워킹 역과 바이프리트 사이에서 고장이 생긴 것 같다는 얘기뿐, 그 이상은 역장조차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의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었다.
 
어젯밤 7시경, 화성인들은 로켓에서 나와 금속제의 방호물 속에 들어가서 이동해 다니며 워킹 역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더욱이 역 주변의 집들도 파괴했으며, 카디건 연대의 일개 대대를 전멸시켰으나, 상세한 것은 아직 모른다.
화성인의 금속제의 장갑에 대해서는 속사 기관총도 전혀 쓸모가 없었으며, 대포도 힘을 쓰지 못했다.
현재 기병대가 차트시로 긴급 출동하고 있다. 화성인들은 차트시나 혹은 윈저 방면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샐리 지방의 서부 방면은 불안에 싸여 있고, 런던을 향해 진격해 오는 것을 저지시키기 위해 서둘러 보루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신문 기사를 읽고도 런던 시민들은 당황해하지 않았다. 화성인이란 어떤 것인지 런던 시민들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런던의 신문들은 화성인에 대해서 '느릿느릿 기어다닌다.‘ 라든지 '꾸물꾸물 기어다니고 있다.' 라든가 하는 식으로 아주 느린 것처럼 쓰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동생은 파운들링 병원 안에 있는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다.
교회의 목사가 화성인이 지구를 습격해 온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특별 기도를 올렸다.
동생은 교회를 나오자마자 신문을 샀다.
신문 기사를 보고 동생은 깜짝 놀라서 곧바로 워털루 역으로 달려갔다.
역은 수많은 사람들로 혼잡하기 짝이 없었지만, 특별히 서두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윈저 방면으로 가는 철도도, 차트시 방면으로 가는 철도도 모두 불통이었다.
동생은 좀더 자세한 정보를 알기 위해 역원에게 물어 보았지만, 웨이브리지 부근에서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고만 말할 뿐, 전혀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열차의 운행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역 부근에는 근심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남서 철도의 연변에 사는 친척들이 혹시나 런던으로 피난 오지나 않나 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내 동생도 그 사람들의 틈에 끼여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때 열차가 한 대 들어왔다. 일요일 하루를 보트놀이로 보내기 위해서 떠났던 관광객들을 싣고 가던 기차가 운하의 수문이 닫혀서 되돌아왔다는 것이었다.
푸른 코트를 입은 젊은 사람이 흥분한 얼굴로 동생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킹스턴 마을까지 갔었는데, 그 이상은 열차가 가지 못한다는 바람에 되돌아와 버렸답니다. 그런데, 킹스턴 마을은 온통 야단법석이었어요. 피난해 오는 이륜 마차며 짐마차로 마을은 완전히 수라장이었어요. 모두 웨이브리지나 월튼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차트시에서는 대포 소리가 들렸다는 얘기고, 말을 탄 군인이 화성인들이 공격해 오니까 빨리 피난을 하라고 소리치고 다녔답니다. 우리들도 햄프턴코트 역에서 대포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처음엔 천둥소리로 알았어요.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어요. 화성인은 구덩이 속에서 나오지 못할 거라고 하더니만, 원."
그 젊은이는 이렇게 지껄이고는 훌쩍 가 버렸다.
 
서두르는 런던 사람들
 
저녁 5시쯤 남동생과 남서선 사이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군대 수송을 위한 것이었다.
굉장히 큰 대포를 실은 화물차와 군인을 가득 실은 객차가 통과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역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차차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그래서 경찰관들이 와서 사람들을 플랫폼에서 모두 내쫓아 버렸다. 동생도 할 수 없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저녁 기도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무리의 구세군이 워털루 거리를 찬송가를 부르며 지나갔다.
태양은 서산 너머로 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저녁놀에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국회 의사당과 의사당의 시계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의사당 옆을 흐르고 있는 템즈 강에 시체가 하나 떠내려왔다는 소문이 퍼졌다.
동생이 웰링턴 거리에 들어섰을 때, 지금 막 나온 신문을 안은 두 남자가 고함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무서운 대 사건이오! 웨이브리지에서 전투가 시작되었소 ! 런던에도 위험 박두!“
동생도 신문을 샀다.
화성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동생은 그 때 처음으로 신문을 보고 알았다. 화성인은 결코 천천히 기어다니는 느리광이 생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기계를 조작할 수 있는 두뇌를 가지고 있으며, 행동도 굉장히 빠르고 어떤 큰 대포도 대항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모양을 한 기계로서, 그 높이는 30미터 이상이나 되며, 급행 열차와 같은 속력을 낼 수도 있다. 거기에다 무서운 열선을 방사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대포를 주로 한 포병 진지가 호셀 벌판 부근과 특히 워킹 지구와 런던 사이에 구축되었다.
화성인의 커다란 기계 다섯이 템즈 강 쪽으로 이동해 갔는데 그 중 하나는 운 좋게 포탄이 명중하여 파괴되었다. 그러나 다른 넷은 포탄이 단 한 방도 명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포병 진지는 열선에 맞아 일순간에 전멸되었다. 그리고 화성인들은 동료 하나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일단 로켓이 떨어진 구덩이 부근으로 퇴각했다. 반사 신호기를 가진 신호병이 그들을 멀리 포위하면서 차차 포위망을 죄어 가고 있다. 지금 계속하여 윈저, 올더숏, 울리지의 각 방면에서 대포가 수송되고 있다.
그 중엔 울리지에서 보낸 95톤 짜리 거포도 있다.
대포는 모두가 116문에 달하며, 주로 런던을 방비할 지점에 배치되었다. 이처럼 대량의 병기가 이처럼 빠른 시간 내에 모여진 것은 영국 역사상 틀림없이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화성인의 로켓이 수를 더하여 습격해 온다고 해도 우리 쪽의 고성능 폭약은 지금 대지급으로 생산되어 수송되고 있다.
정부 당국은 사태의 중대함을 인정하고 있으며, 만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모두 침착하게 행동하여 주길 바라고 있다.
로켓의 크기로 보아 한 개의 로켓에 다섯 명이 탈 수 있다고 한다면, 화성인은 모두 합쳐 보아도 열 다섯 명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로켓 한 개는 이미 파괴되었으며, 그밖에도 손상을 입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위험이 박두하면 당국은 신속히 경고를 발할 것이며, 런던의
 안전은 당국이 보증할 것이니 시민 여러분은 부정확한 정보나 소문에 현혹되지 말기를 바란다. 이러한 기사가 큰 활자로 인쇄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신문을 사서 열심히 기사를 읽고 있었다.
신문팔이들도 다른 날보다 많이 쏟아져 나와 큰 소리로 외치면서 뛰어다녔다.
동생은 손에 신문을 든 채 템즈 강을 끼고 있는 스트랜드 거리에서 트라팔가 광장 쪽으로 향했다. 샐리 지방 서부에서 피난 온 사람들의 무리와 마주쳤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조그만 짐차에 가재 도구를 가득 실은 사나이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채 수레를 끌고 있었다.
아름다운 옷을 차려 입은 런던의 갑부처럼 보이는 부부가, 타고 있는 마차의 창으로 그러한 피난민을 내다보고 있었다.
동생은 빅토리아 거리 쪽으로 갔다. 거기에서도 수많은 피난민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형님도 왔을지 모른다.'
동생은 이렇게 생각하고 호셀 방면에서 온 피난민이 없는가 하고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길에는 보통 때보다도 많은 경찰관들이 나서서 교통 정리를 하고 있었다.
피난민 중에는 화성인을 보았다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대나무로 만든 말에다 보일러를 올려놓은 꼴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 놈들이 우리 사람처럼 성큼성큼 걸어 다닌다니까요."
그 사나이는 흥분해서 지껄였다.
거리에서는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서서, 신문을 읽는가 하면 흥분해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보통 때는 침착하기 이를 데 없는 런던 사람들도, 화성인이 습격해 온 대 사건에는 침착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밤이 가까워지자, 런던으로 밀려드는 피난민의 수는 자꾸만 늘어갔다.
어느 거리나 피난민으로 들끓고 있었다.
동생은 피난민을 붙잡고 호셀이나 워킹 방면의 상황을 물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자세한 것은 몰랐다.
단지 한 사람, 워킹 마을은 어젯밤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말해 주는 사나이가 있었다.
"나는 바이프리트에서 왔어요. 아침 일찍이 자전거를 탄 남자가 한 집 한 집 뛰어다니며 빨리 도망가라고 알려 주더군요. 그러자마자 곧 군대가 왔죠. 우리들이 집에서 뛰쳐나와 보니, 남쪽 하늘에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지요. 보이는 건 연기뿐이고, 남쪽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차트시 쪽에서 대포 소리가 났는가 싶자 웨이브리지 쪽에서 사람들이 물밀듯이 도망쳐 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집의 문을 잠그고 이렇게 도망쳐 온 거 랍니다."
8시쯤 런던의 남쪽에서 육중한 포성이 들려 왔다.
 
검은 가스
 
동생은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다가, 불안한 생각을 안은 채 리젠트 가의 가까이에 있는 자기 아파트로 일단 돌아왔다. 리젠트 공원은 런던의 훨씬 북쪽에 있기 때문에 조용했다. 조용하다기보다 평소와 다름없이 한가로웠다. 공원 안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손을 마주 잡은 채 산책을 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밤이었다.
동생은 아파트로 돌아와서도 형인 나의 일이 걱정되어서 몇 번이고 신문을 읽어보았다. 그러나 저녁을 먹고 난 뒤에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또다시 밖으로 나왔다.
불안한 마음은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곧 다시 아파트로 되돌아와 시험 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주의가 집중되지 않았다.
12시쯤 잠자리에 들었으나 이상한 꿈만 꾸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문득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떠졌다.
밖에서 한길을 뛰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났다. 요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동생은 침대에 누운 채로, 날이 새었나 보다 생각했으나 어쩐지 밖의 기색이 여느 때와는 다른 것 같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달려갔다.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고 내려다보니, 집집의 창문에서도 똑같이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동생은 옆집 창문의 사람에게 물었다.
옆집 사람이 대답도 하기 전에 경찰관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화성인이 쳐들어옵니다. 빨리 피난을 하시오!"
경찰관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멀리 있는 병영에서 북 소리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저기 교회에서는 비상을 알기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우려고 한층 요란하게 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와 집집의 어둡던 창이 차례로 밝아졌다.
마차 한 대가 요란한 수레바퀴 소리를 내며 동생의 아파트 앞을 달려갔다.
그 뒤를 수많은 마차가 꼬리를 물었다. 모두 휴스턴 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동생은 얼마 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청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앞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사나이가 동생 방으로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오? 불이라도 났나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동생과 나란히 서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황급히 일어난 듯, 와이셔츠와 바지만 입고 슬리퍼도 신은 채였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화성인이 쳐들어온답니다."
동생은 이렇게 대꾸하며 잠옷을 벗고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사나이는 급히 방을 뛰어나갔다.
여느 때보다 빨리 신문팔이가 호외를 들고 달려왔다.
"호외요, 호외! 런던은 질식의 위험! 킹스턴과 리치먼드의 방위 진지가 파괴되었다! 템즈 강 연변의 주민들은 전멸!“
동생은 황급히 계단을 달려 내려가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늘이 장밋빛으로 물들며 날이 밝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런던에 무서운 위험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었던 것이다.
길에는 사람과 마차가 장사진을 이루었다.
"검은 연기다!"
"시꺼먼 연기다!"
사람들은 저마다 떠들어댔다.
또 신문팔이가 뛰어왔다. 동생은 또 한 장을 샀다.
신문에는 총사령관의 절망적인 보고가 실려 있었다. 화성인은 로켓을 사용하여 대량의 검은 독가스를 발사하고 있다. 그들은 아군 포병대를 전멸하였으며, 리치먼드, 킹스턴, 윔블던의 각 방위선을 파괴하였고, 도중의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런던을 향하여 쉬지 않고 진격 중이다.
화성인의 공격력을 저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검은 독가스로부터 목숨을 지키는 길은 오직 빨리 도망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보고는 그것뿐이었으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였다. 인구 6백만의 대도시 런던이 지금이야말로 전멸의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 총사령관의 보고를 읽은 사람들은 속속 런던에서 도망해 나갈 것이다. 모든 런던 시민들은 화성인이 쳐들어오는 반대 방향인 북쪽을 향해 밀물처럼 밀려나갈 것이다.
"검은 연기다!"
"불이다!"
사람들이 외쳤다.
교회의 종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차차 하늘이 밝아 오고 있었다.
동생은 사태의 중대함을 깨닫고 급히 아파트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있는 대로 돈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다음, 다시 밖으로 나갔다.
 
화성인의 신무기
 
내가 해리 포드에서 그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목사와 이야기하고 있을 무렵, 그리고 런던에 있는 동생이 템즈 강 연변과 스트랜드 거리에서 피난민의 무리들을 만났을 때, 화성인은 공격을 재개했다.
어떻게 해서 그들이 다시 공격을 재개하였는가?
내가 들은 여러 가지 얘기로 판단하면 다음과 같다.
화성인들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단 호셀의 구덩이로 후퇴해서는 다음의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중 세 명의 화성인-즉 다리가 셋 달린 거대한 기계 장치-이 조심스럽게 천천히 구덩이에서 나와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이프리트를 지나 웨이브리지 쪽으로 전진해 왔다.
이윽고 세 명의 화성인들은 저녁 해를 등지고 포병 부대 전방에 나타났다.
그들은 절대로 한 덩어리가 되는 일이 없이, 서로 2킬로미터 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일렬로 서 있었다. 그리고 소리를 높이거나 낮추어 사이렌 같은 소리를 내면서 서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나와 목사가 들은 것은 바로 이 사이렌 같은 소리와 포병 진지에서 일어난 대포 소리였던 것이다.
그 곳의 포병 부대는 풋내기 지원병들이어서 그들은 겁을 집어먹고 당황해 무턱대고 대포를 쏘아 댔으므로 화성인에게는 한 방도 맞지 않았다.
그들은 거침없이 전진해 왔다.
혼비백산한 포병들은 대포를 내버리고 도망쳤다.
화성인들은 열선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그 포병 진지를 넘어 다음의 포병 진지에 불의의 타격을 주어 전멸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진지의 포병대는 훈련도 제대로 받았고 용기도 있었다. 더구나 그 진지는 소나무 숲을 이용해서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맨 먼저 다가온 화성인은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
이 포병대는 9백 미터 거리까지 화성인을 유인하여 대포로 쏘았다.
포탄은 화성인의 옆에서 터졌다. 화성인은 두 서너 걸음 비틀거리더니 털썩 땅 위에 쓰러졌다.
포병들은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 재빨리 두 번째 포탄을 쟀다.
넘어진 화성인이 길고 슬픈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러자 다음 화성인이 소나무 숲 쪽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포병 진지에서는 두 번째 일제 포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모두 빗나가 버렸고, 그와 동시에 화성인들이 포병 진지에 열선을 방사했다.
순식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포탄이 대폭발을 일으켰으며 주위의 소나무 숲은 불을 뿜었다.
재빨리 도망쳤던 병사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을 뿐, 나머지는 전멸해 버렸다.
땅 위에 쓰러진 화성인은 세 다리 중의 한 다리가 부서진 모양이었다.
거대한 기계의 머리 부분에서 조그만 갈색 생물이 엉금엉금 기어 나와. 그 생물은 다른 두 화성인과 함께 자기가 기어 나온 기계의 다리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밤 9시가 되어서야 수리가 끝났다.
9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네 명의 다른 화성인이 그들 옆에 나타났다. 이 화성인들은 굵다란 검은 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똑같은 검은 통을 먼저 있던 세 명의 화성인에게도 건네주었다.
일곱 명의 화성인은 커다란 금속제의 기계에 올라타자 한 줄로 늘어서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아군 척후병은 곧 신호를 보내 디튼과 이셔 방면에서 대기하고 있는 포병 진지에 알렸다.
검은 통을 가진 화성인들의 커다란 전투 기계는 세 다리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 중의 두 개를 우리가 본 것이었다.
그 때, 나와 목사는 지칠 대로 지쳐서 북쪽으로 뻗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화성인을 보고 놀란 목사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길가의 도랑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목사가 뒤돌아보더니, 내가 숨은 것을 눈치채고 얼른 되돌아와서 내 옆으로 기어 들어왔다.
두 명의 화성인은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아마도 화성인의 일곱 개의 전투 기계는 반원형으로 늘어서서, 전투대형을 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도 지금은 들리지 않았다. 주위는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다.
반원형으로 늘어선 화성인들의 앞쪽에는 수많은 포병 진지가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저 숲 뒤, 언덕 뒤, 마을의 집 뒤 등 모든 것을 이용해서 포병대가 숨어 있으리라. 그리고 화성인이 사정 거리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대포는 일제히 불을 뿜을 것이다.
몇 천 명, 몇 만 명의 훈련받은 군대가 화성인이 가는 곳마다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화성인들은 그것을 알고 있을까? 인간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온갖 생각을 하면서 나는 생울타리 뒤에 몸을 숨긴 채 살펴보고 있었다.
우리 가까이에 있던 화성인이 검은 통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땅이 뒤흔들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 검은 통이 발사되었다. 먼 곳에 있던 화성인들도 거기에 맞추어 검은 통을 발사하였다.
섬광이 번쩍이지도 않았고 연기도 나지 않았다. 다만 폭발음만이 울려 퍼졌다.
나는 재빨리 생울타리 위로 기어올라가서, 포탄처럼 날아간 물체의 행방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옆에서 목사가 물었다.
"글쎄요, 알 수 없군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포병대에서 포격해 오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리고 화성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바라보니까, 점점 멀어지더니 마침내 짙어 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목사와 나는 좀더 자세히 보려고 높은 곳으로 기어올라갔다. 그러자 저 멀리 선베리 방면에서 갑자기 조그만 산 모양의 검은 덩어리가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것이 강 건너 좀더 먼 곳에서도 검은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보면 볼수록 그 검은 덩어리는 구름처럼 자꾸만 퍼져가는 것이었다.
북쪽에도 검은 구름 같은 것이 퍼져 갔다.
어딘가 멀리서 화성인들이 서로 불러 대는 괴상한 소리만이 들렸다. 이것은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검은 산더미처럼 솟아올라 구름처럼 퍼져 나간 것은 화성인이 사용한 일종의 독가스였던 것이다.
 
런던에 피난 명령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무기였던가!
화성인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굵은 통으로 포병대가 숨어 있을 만한 앞쪽의 나무숲이며 건물이며 모든 것을 겨냥해서는 독가스탄을 발사했다.
독가스탄은 지면에 떨어지면 부서지기만 하였다. 보통의 포탄처럼 폭발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검은 잉크처럼 새까만 기체가 내뿜어지면서, 그것이 금새 조그만 산과 같은 검은 구름이 되어 솟아오르는 것이다.
이윽고 이 검은 독가스는 기체라기보다 오히려 액체처럼 가라앉으며 퍼져 나간다. 그리고 이 가스에 닿거나, 조금이라도 들이마시면 어떤 생물이라도 즉사해 버리는 것이다.
검은 독가스는 계곡에도 도랑에도 흘러들었다. 독가스는 물에 닿기만 하면 화학작용을 일으켜 물 표면에 곧 가루와 같은 찌꺼기가 되어 덮이고 만다. 찌꺼기는 물에 녹지 않고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면 수면은 다시 새로운 가스의 찌꺼기가 덮어 버린다. 이상한 것은 그 독가스에 닿으면 당장 죽어 버리는데도, 그 가스를 걸러 낸 물은 마셔도 아무 해가 없다는 것이다.
검은 독가스는 보통 가스처럼 흩어지지 않는다. 퍼질 대로 퍼지고 나면 바람에 불려서 땅을 기듯이 흘러간다.
그러므로 지붕 위라든가, 높은 건물의 위층이라든가, 커다란 나무 꼭대기라든가, 아무튼 땅에서 15미터 이상 높은 곳에 있으면 독가스에 닿지 않아 위험을 면할 수가 있었다.
사실 교회의 높은 탑에 있었던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 사나이는 온통 검은 잉크 같은 기분 나쁜 기체 속에 가라앉아 있는 마을과 들판을 보고, 너무나 무서워서 죽을힘을 다해 탑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로 하루 반이나 그 곳에 버티고 있었다.
화성인들은 숨어 있는 포병 부대를 모조리 해치웠다고 판단하고 나면, 그 독가스 속으로 들어가 수증기를 내뿜어 독가스를 없애 버리고 깨끗한 공기로 만들곤 했다.
우리는 화성인들이 독가스를 발사하고 멀리 물러가자, 어느 빈집으로 들어갔다. 빈집의 다락방에서 내다보니, 화성인이 수증기를 내뿜었는지 검은 독가스는 완전히 없어져 있었다.
저 멀리 런던 쪽에 서치라이트가 빛나고 있었다. 이것도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마침 그 무렵 네 번째로 화성에서 쏘아보낸 로켓이 부시 공원에 떨어졌다.
화성인들은, 마치 벌집에서 벌떼를 몰아내듯 검은 독가스를 발사하면서 런던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포병대는 단 한 발의 포격을 해 볼 기회조차 없었다.
화성인은 포병 진지가 숨어 있을 만한 곳에는 독가스탄을 쏘아 댔다. 대포가 드러나 보이는 곳에는 열선을 쏘아 대어 완전히 파괴시켰다.
한밤중에는 템즈 강의 양안 일대는 나무도 집도 모두 불타고 있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검은 독가스가 연막처럼 뒤덮고 있었다.
이미 인간의 힘으로는 화성인의 공격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속사포를 싣고 템즈 강을 거슬러 올라온 수뢰정과 구축함의 승무원조차 머물러 있기를 거절하고, 상관에게 반항하며 하류로 되돌아가 버렸다.
최후의 방위 작전은 지뢰를 묻거나 함정을 파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작전도 면밀한 계획을 세워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 성과도 기대할 수 없었다.
새벽녘이 되자 그 검은 가스는 런던 교외의 리치먼드 마을까지 덮쳐 오고 있었다.
마침내 런던 시민에게 피난 명령이 내려졌다. 이렇게 해서 일요일 밤이 밝으면서부터 대도시 런던은 공포와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시내의 철도역은 밀려든 피난민들 때문에 대 혼잡을 일으키고 있었고, 템즈 강의 선창으로도 인파가 끊임없이 밀어 닥쳤다.
아침 10시 무렵에는 이미 경찰 조직도 무너져서 군중을 지도할 힘을 잃고 있었다.
정오에는 철도도 망가졌다. 각 역에 밀어닥친 군중은 기차를 단념하고 북으로 북으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화성인 하나가 런던을 흐르는 템즈 강가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검은 잉크 같은 기체가 그 일대를 뒤덮었다.
동생은 북서행 기차를 타고 런던을 떠나려고 생각하고는 역까지 가 보았으나, 밀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밀고 당기며 아우성치는 바람에 도저히 탈 수가 없었다.
동생은 하는 수 없이 초크팜 거리로 나왔다. 수많은 차가 서로 충돌할 것만 같은 기세로 달리고 있었다.
어떤 자전거 가게에서 사람들이 제멋대로 자전거를 빼앗아서는 그것을 타고 도망치고 있었다.
동생은 그 곳을 지나다가 사람들에게 밀리어 자전거 가게 안으로 떼밀려 들어갔다.
운 좋게 자전거를 손에 넣게 되자 그것을 타고 달렸다.
동생은 걸어서 가는 피난민들을 앞질렀다.
그래도 말을 탄 사람과 많은 자전거, 그리고 두 대의 자동차가 동생을 앞질러 갔다.
북쪽을 향해 런던을 멀리 벗어남에 따라, 연도의 마을 사람들 중에는 집 앞에 서서 멍청히 피난민들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도중에서 동생의 자전거가 고장이 나 걸어서 길가에 있는 작은 여관에 도착했다.
동생은 거기서 밥을 먹었다.
화성인에 대한 새로운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동생은 어쨌든 헬름즈포드로 가 보려고 마음먹었다. 거기는 런던의 북동쪽에 붙어 있는 마을로 친구가 몇 명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피난민들이 밀물처럼 밀려가는 큰 길을 피해 조용한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목초지를 넘고 농장을 지나,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마을을 몇 개나 지나쳤다. 피난민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
 다. 도중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동생은 두 여자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 사건이라는 것은 이러했다. 들길을 걸어가노라니까, 울창한 나무가 우거진 저 쪽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동생이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이륜 마차에 타고 있는 두 여자를 두 사나이가 마차에서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또 한 사나이는 놀라서 날뛰는 말을 붙들려고 하고 있었다.
젊어 보이는 부인은 손에 든 채찍으로 사나이를 연방 후려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부인은 마차에 매달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동생은 곧 알아차렸다. 3인조 강도가 그 이륜 마차를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동생은 큰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다짜고짜 한 사나이를 한 방 먹여 마차 바퀴에 처박았다. 그리고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서 완전히 기절시켰다.
그리고 또 한 사나이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그 순간 말을 잡고 있던 힘이 세어 보이는 사나이가 동생에게 달려들었다.
그 사이에 말고삐를 쥐고 있던 부인은 재빨리 마차를 몰았다.
동생은 셋째 번의 그 힘세어 보이는 사나이의 얼굴에 일격을 가하고, 사나이가 멈칫하는 틈을 타서 마차 뒤를 쫓아 달렸다. 젊은 부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차를 세우고는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손에 든 권총으로 동생을 뒤쫓아오는 그 힘세어 보이는 사나이를 겨누어 쏘았다. 탄환은 빗나갔지만, 겁을 먹은 두 사나이는 쓰러져 있는 동료를 둘러메고 도망쳐 버렸다.
"이것을 가지셔요."
하며 동생을 구해 준 그 여인이 권총을 동생에게 건네 주었다.
"마차로 돌아가시죠. 저도 함께 태워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뜻밖의 일로 동생은 두 부인을 구해 주고 이륜 마차에 타게 된 것이었다.
연상의 흰 옷을 입은 부인은 스탠모어에 살고 있는 의사의 아내였고, 젊은 쪽의 부인은 그녀의 시누이였다.
의사인 엘핀스턴 박사는 환자의 왕진을 가던 길에, 화성인이 습격해 온다는 말을 듣고 곧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아내와 여동생에게 먹을 것과 권총을 가지고 이륜 마차로 먼저 피난 가게 했다. 자기는 뒤따라 곧 가겠다고 하면서 만날 장소를 정했다.
두 여인은 에디웨어 역에서 뒤쫓아오기로 되어 있는 박사를 기다렸다. 네다섯 시간 가까이나 기다렸어도 박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길은 피난민으로 들끓어서 마차를 멈추어 놓고 있는 것도 위험했다. 할 수 없이 에디웨어를 떠나 그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동생도 자기가 어째서 런던을 피해 도망쳐 나왔는가를 이야기하고, 화성인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대로 설명해 주었다.
"저희들은 돈을 좀 가지고 있어요. 모두 합치면 35파운드는 될 거여요. 그 정도면 세인트올번즈나 뉴버넷에서 기차를 탈 수 있겠지요."
강인해 보이는 여동생 쪽이 말했다.
"돈이라면 나도 조금은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있어도 기차를 타기는 어려울 겁니다."
동생은 런던 시민이 죽기를 무릅쓰고 기차에 타려고 아우성치던 혼잡을 이야기해 주었다.
"내 생각으로는 얼마 동안 외국으로 피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에섹스를 가로질러서 동해안에 있는 해리지 항으로 가서, 거기서 어떻게든 배를 구해 타고 프랑스나 네덜란드로 가는 겁니다. 이것이 내 계획입니다. 당신들도 그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엘핀스턴 부인은 남편의 신상을 걱정해서 좀처럼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동생 쪽은 냉정했다. 지금으로서는 동생의 말대로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판단으로 생각된다고 언니를 설득했다.
이렇게 해서 동생의 계획대로 해리지 항으로 가기로 했다. 해가 쨍쨍 내리쬐어 타는 듯이 뜨거웠다.
버넷이 가까워지자 길은 온통 피난민들로 가득하였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지쳐 있었다.
먼지투성이가 된 훌륭한 야회복을 입은 한 신사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을 쥐어뜯기도 하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 대기도 했다. 정신이 돌아 버렸던 것이다.
갓난아이를 안고 거기에다 두 어린아이까지 딸린 부인이 헉헉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고함 소리, 외치는 소리, 울음소리, 말의 울음소리, 거기에 차바퀴 소리.
피난민은 점점 불어났다. 밀고 당기며 모두가 북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커다란 상자 모양의 마차가 있는가 하면, 조그만 이륜 마차, 짐마차, 손수레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차가 인파 속에 파묻혀 있었다.
"비켜라!“
"길을 비켜, 빨리 가지 못해!"
"왜 서 있는 거야?"
모두가 살기 등등하고, 목이 쉬도록 아우성쳤다.
동생은 마차에서 내려, 말고삐를 잡고 걷기로 했다.
힘깨나 쓸 것 같은 노동자가 난폭하게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가고 있다. 부상한 병사도, 넝마를 입은 부랑자도 있었다. 우편 마차, 합승 마차, 상점 이름을 써 붙인 배달차, 도로 청소차, 커다란 재목 운반차. 어느 마차도 사람과 가재 도구를 가득 싣고 꼼짝을 못 하고 있었다.
여덟 살이나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길가 생나무 울타리 밑에 쓰러져 울고 있었다.
"못 걷겠어. 이젠 더 못 걷겠어."
동생은 부모를 잃은 아이인 줄 알고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을 걸면서 마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엘핀스턴 부인 옆으로 데려왔다.
소녀는 겁을 먹은 모양인지 얌전히 있었다.
"앨런!"
피난민 속에서 한 여인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불렀다.
"엄마!"
하고 외치며, 소녀는 동생의 손을 뿌리치고 여인에게로 달려 가 버렸다.
"마차를 세워 놓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어서 비키지 못해!"
동생들의 뒤에서 누가 호통을 쳤다
세 사람은 밀고 당기고 아우성치는 피난민과 마차의 물결 속으로 또다시 휘말려 들어갔다.
엘핀스턴 부인과 여동생은 너무나 무서워 얼굴이 굳어 있었다.
"옆길로 나가 봅시다."
동생은 이렇게 말하며, 이번에는 마차에 올라타서 말고삐를 잡았다.
동생은 옆길로 나갈 기회를 살폈으나 다른 마차나 피난민들도 큰길을 피해 옆길로 가려는 사람이 많아서 옆으로 가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도 거리를 벗어나자 세 사람은 간신히 옆길로 끼어 들 수가 있었다.
길은 동쪽으로 나 있었다.
사람이나 마차도 훨씬 적었다.
도중에 날이 저물었다. 동생은 들판에 있는 나무 그늘에 마차를 멈추고 하루 밤을 새우기로 했다. 세 사람은 모두 지칠 대로 지쳤으며 배도 고팠다.
이들 외에도 휴식을 취하고 있는 피난민들이 있었으나 화성인을 두려워한 나머지 밤인데도 사람이나 마차는 앞을 다투어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선더 차일드 호
 
만일 화성인들이 파괴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면, 월요일 안으로 런던 시민을 몰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런던의 주요 도로는 정신 없이 허둥거리는 피난민으로 넘쳐흘렀다. 수많은 피난민의 물결은 마치 커다란 강의 흐름처럼 느렸다.
만약 그 유월의 아침, 런던 상공에서 기구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면, 미로처럼 얼키고설킨 길을 꽉 메운 수많은 피난민의 물결이 북쪽이나 동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세계 역사상 이처럼 많은 대대적인 인간의 집단이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며, 같은 괴로움을 맛본 일이 또 있었을까? 질서나 목적도 없이 6백만이나 되는 인간이 그냥 무턱대고 앞으로 가기만 했던 것이다.
다시 기구에서 내려다보면, 그물처럼 달리고 있는 런던의 도로며 집, 교회, 광장, 공원 등이 커다란 지도처럼 보이고 그 지도의 남쪽 부분은 검은 잉크로 칠해 버린 것처럼 보인다. 마치 큰 병의 잉크를 엎지른 것같이, 그 검은 부분은 점점 퍼져 엎지른 잉크의 얼룩이 흡인지에 번지는 것처럼 흩어져서 커졌다.
화성인들이 템즈 강의 남쪽 연안을 왔다 갔다 하며 검은 독가스를 발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화약고를 하나도 남김없이 폭파해 버리고, 전선줄을 절단하고, 철도를 파괴했다.
그러나 별로 서두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날은 런던의 중심부에서 더 앞으로는 진격하지 않았다.
정오 무렵 템즈 강가의 선창은 그야말로 수라장이었다. 돈은 얼마든지 내겠다는 피난민들을 상대로, 기선이나 요트 할 것 없이 온갖 종류의 배가 떼를 지어 모여 있었다.
돈 많은 사람들은 엄청난 액수의 돈을 내고 배에 올라탔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승선을 거절당하고 있었다.
강으로 뛰어들어 배에 기어오르려는 사람을 도로 떠밀어 떨어뜨렸다. 뱃사람들은 밀려드는 피난민을 막느라고 난투극까지 벌이는 것이었다.
1시경, 국회 의사당 부근에 화성인이 나타나자 강 아래 선창에는 한 척의 배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만 부서진 배의 파편만이 강에 떠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제 5, 제 6의 둥근 통이 화성에서 내려왔다.
다섯 번째의 로켓이 떨어졌을 때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여섯 번째의 로켓은 윔블던에 떨어졌다. 그것이 녹색의 강렬한 빛을 발하며 떨어지는 것을 내 동생은 본 것이다. 마침 두 여인하고 언덕 위에서 야영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화요일에도 동생을 비롯한 세 사람은 외국으로 피난 갈 생각으로 해안을 향해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동생들과 같이 동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피난민 중에는 식량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배가 고파 참을 수 없게 되면 농장의 가축이나 곡식을 쌓아 둔 창고 속에 숨어들어 도둑질을 했다.
세 사람은 조금이라도 빨리 외국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동쪽을 향해 하루 종일 마차를 달렸다.
화요일 밤에는 일곱 번째의 로켓이 런던 북부에 있는 공원인 프림로즈 힐에 떨어졌다.
그 날 밤에도 세 사람은 노숙을 하였는데, 엘핀스턴 부인이 파수 당번일 때, 떨어지는 푸른 섬광을 보았다.
수요일, 세 사람은 간신히 헬름즈포드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교회의 높은 탑에는 망보는 사람이 서서 화성인이 접근해 오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는 '공공 보급 위원회'라는 단체에서 식량을 배급해 주겠다는 구실로 말을 징수해 가 버렸다. 그래서 세 사람도 말을 내주고 말았다.
"내일 식량을 배급해 주겠다니,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그것보다도 어서 해안으로 갑시다. 그렇지 않으면 피난민들이 밀어닥쳐서 서로 먼저 배를 타려고 난리가 날지도 모를 테니까요."
동생의 의견에 두 여자도 찬성했다. 세 사람은 곧 바다를 향해 떠났다.
정오에는 티링검이라는 마을을 지났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그 곳을 지나자, 마침내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의 바다에는 여러 종류의 배가 여기저기에 떼지어 떠 있었다.
커다란 화물선이며 상선, 더러운 석탄 운반선, 가축 수송선, 유조선, 해협 연락선 등이 깜짝 놀랄 만큼 많이 모여 있었다.
해안 가까이에는 어선도 무수히 떠 있었다. 영국 배는 물론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배들도 보였다.
선창가에서는 피난민과 선원들이 뱃삯 때문에 서로 다투고 있었다.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앞바다에는 강철로 만든 군함이 한 척 떠 있었는데, 그것은 만일의 경우 적함에게 직접 부딪혀 때려부수려고 군함 머리에 강철로 뿔처럼 만든 것을 붙이고 있는 '선더 차일드 호'였다.
훨씬 오른쪽 좀더 먼바다에는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해협 함대가 늘어서 있었다.
화성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한바탕 싸워 볼 작정인 모양이지만, 화성인의 열선에 맞으면 그런 것쯤 단박에 파괴되어 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동생은 선창가에서 선원과 흥정을 했다. 벨기에의 오스탕드 항으로 간다는 배였는데, 뱃삯을 세 사람분으로 36 파운드나 받았다.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동생은 두 여인과 간신히 배에 올라탈 수가 있었다.
배 안에서는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값이 비싸긴 했지만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해 전
 
배 안에는 벌써 40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도 선장은 다섯 시 무렵까지 배를 대 놓고는 갑판이 꽉 찰 때까지 손님을 가득 실었다.
그 때 갑자기 육지에서 포성이 울려 왔다.
군함에서도 포성이 터졌다.
선장은 혼비백산해서 배를 출발시켰다. 작은 기선은 많은 배들 사이를 누비며 동쪽으로 달렸다. 에섹스 해안이 저 멀리 푸르스름하게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화성인의 거대한 금속 기계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멀리 떨어져 있어 작게 보였으나, 해안을 따라 점점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선장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기관사에게 스피드를 올리도록 명령했다. 손님들은 모두 뱃전에 늘어서서 겁먹은 눈으로 괴물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어떤 나무보다도, 교회의 탑보다도 높은, 다리가 셋 달린 전투 기계는 바닷속으로 텀벙텀벙 들어왔다.
그것이 내 동생이 본 최초의 화성인이었다.
이어서 또 다른 화성인이 나타났다.
그보다도 멀리에 또 하나의 화성인이 나타났다.
세 명의 화성인은 일제히 바닷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항구에 모여 있는 배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모양이었다. 많은 크고 작은 배들은 대혼란을 일으켰다. 기적을 울리고, 증기를 내뿜고,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동생이 탄 배가 다른 배하고 부딪힐 것 같아 급선회했다. 그 바람에 동생은 서 있던 좌석에서 그만 갑판 위로 나동그라졌다.
주위에 있던 손님들이 와아 하고 환성을 질렀다.
동생은 급히 일어서자 오른쪽을 보았다.
1백 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쇳덩어리 같은 군함 선더 차일드 호가 놀라운 속력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선더 차일드 호는 피난민들을 가득 실은 많은 배들을 구하기 위해, 화성인에게 맞부딪치려고 돌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동생은 세 명의 화성인 쪽을 바라보았다. 세 화성인은 어느 새 한 군데 모여 있었다. 세 개의 긴 다리가 완전히 물 속에 잠길 만큼 바닷속 깊이 들어와 있었다.
화성인들은 깜짝 놀란 듯 우뚝 서서 선더 차일드 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더 차일드 호는 한 발의 대포도 쏘지 않고, 다만 전속력으로 화성인들을 향해서 돌진했다. 대포를 쏘지 않은 것은 화성인 가까이까지 돌진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한 발이라도 쏘았다면, 놈들이 뿜어 대는 열선을 맞아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선더 차일드 호는 계속 굉장한 속력으로 돌진해 갔다.
돌연 맨 앞에 있던 화성인이 검은 통을 쳐들더니 독가스탄을 발사했다.
가스탄은 선더 차일드 호의 왼쪽 뱃전에 명중되어, 잉크 같은 검은 기체를 뿜어냈다. 검은 연기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곧 그 검은 연기에 싸여 보이지 않던 선더 차일드 호가, 늠름한 모습을 나타냈다.
세 명의 화성인은 뿔뿔이 흩어져 해안 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 중의 하나가 열선 방사기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비스듬히 아래쪽을 향해 열선을 방사했다.
열선을 맞은 바닷물에서 뜨거운 증기가 솟아올랐다. 열선은 새빨갛게 단 쇠막대가 종이를 꿰뚫듯 선더 차일드 호의 두꺼운 철판을 꿰뚫었을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선더 차일드 호는 그대로 돌진하여 화성인의 거대한 기계에 맞부딪쳤다.
화성인이 휘청 하고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바다 속으로 쓰러지면서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바닷물이 수증기와 함께 화산이 폭발하듯 하늘 높이 치솟았다
뱃사람들도, 손님들도 일제히 환성을 올렸다.
그리고 선더 차일드 호가 수증기 속에서 강철의 거대한 모습을 나타내자, 모두는 또 한 번 기뻐했다. 선더 차일드 호는 아직 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화성인을 향해서 돌진했다. 조금만 더 가면 충돌하리라 여긴 순간 열선을 맞았다. 굉장한 폭발이 일어났다.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선더 차일드 호의 갑판도, 굴뚝도 하늘 높이 날아갔다. 그 굉장한 폭풍에 화성인이 비틀거렸다. 선더 차일드 호의 고장난 거대한 몸체가 그대로 화성인에게 부딪혔다. 화성인은 마분지로
 만든 종이상자처럼 힘없이 부서져 버렸다. "해치웠다!"
동생은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두 놈을 해치웠다!"
하고 선장도 외쳤다.
모든 사람들은 미친 듯이 환성들 올렸다. 주위에 있던 모든 배에서도 환성이 일어났다.
수증기가 온통 주위를 덮어 세 번째 화성인도 해안도 보이지 않았다. 동생이 탄 배는 그 사이에 바다 한가운데로 빠져나갔다.
얼마 뒤, 수증기가 걷혔다. 선더 차일드 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세 번째 화성인의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피난민들을 태운 많은 배들은 저녁 어둠 속을 헤치고 제각기 흩어져 갔다.
태양이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저녁놀에 물들었던 하늘도 점점 어두워졌다.
선장이 뭐라고 커다란 소리로 고함을 치며 하늘을 가리켰다. 동생은 눈을 비비고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굉장히 크고 넓적한 물체였다.
그 물체는 무서운 속력으로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리고 점점 작아지더니 끝내는 밤하늘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섯 번째의 로켓
 
여기서 이야기를 나 자신의 일로 돌리기로 하자. 먼저도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목사와 함께 해리포드 마을의 빈집에 숨어 있었다.
일요일 밤과 다음 날 종일토록 그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그 검은 독가스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내의 일이 몹시 걱정되었다. 아내는 레더헤드의 사촌네 집에서 내가 죽었을 것으로 여기고 슬퍼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아내의 사촌오빠는 용기 있는 사나이였다. 그러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재빨리 대책을 세우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나이는 못 되었다.
지금은 용기보다도 세밀한 주의가 필요했다. 용기만 믿고 행동하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뿐이었다.
다만 내게 있어서 요행이었던 것은, 화성인들이 런던으로 진격해 올라가서 레더헤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검은 독가스는 월요일 오전 중 줄곧 강 쪽에서 천천히 이 부근까지 번져 와 이윽고 우리가 숨어 있는 집 앞의 길까지 휩싸 버리고 말았다.
정오 무렵이 되자, 화성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수증기를 내뿜어서 독가스를 없애 버렸다. 굉장히 높은 열을 가진 수증기는 슈웃슈웃 하며 집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창문 유리를 모두 부수어 버리기도 하였다.
주위는 또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살그머니 바깥을 내다보았다 북쪽 일대는 마치 검은 눈보라가 지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목초 지대는 시꺼멓게 불타 있었다. 나는 검은 독가스가 사라졌기 때문에 이젠 이 집에서 도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목사는 반대했다.
"여기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여기에 있어야만 합니다."
나는 목사를 남겨두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언젠가 포병에게 배운 대로 집 안을 뒤져 약간의 음식과 마실 것을 준비했다. 침실에서 와이셔츠와 모자를 찾아냈다. 이렇게 혼자서 출발 준비를 끝내자 목사도 같이 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저녁 5시가 되어, 이제는 밖으로 나가도 안전하다고 판단한 우리는 출발했다. 불에 탄 길바닥에는 사람들과 말의 시체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마차는 뒤집히고 짐짝들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햄프턴코트에 도착했다. 여기서 템즈 강은 샐리 지방을 벗어나 미들섹스 지방으로 흐르고 있다.
트위크넘에 오니, 그 곳은 열선이나 독가스의 세례를 받지 않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우리는 처음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으면 알고 싶어서,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 보았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모두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조용해진 지금,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8시 반경, 우리는 리치먼드 다리를 건넜다. 샐리 지방의 강 속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려 있었다. 큐우 근방까지 왔을 때, 돌연 저 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달려 왔다. 그러자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집의 지붕 위로 화성인의 그 커다란 전투 기계가 불쑥 나타났다.
우리는 그만 너무나 놀라서, 그 자리에 발이 붙어 버리고 말았다. 만약 화성인에게 발견된다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운 좋게도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집 헛간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숨을 죽인 채 숨어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아내가 있는 레더헤드로 돌아가고 싶었다.
주위가 꽤 어두워졌을 때, 나는 결심하고 헛간을 나왔다. 목사가 또 뒤따라 나왔다.
얼마 가지 않아 목초지 건너 저 쪽에 화성인이 보였다. 그 앞을 너댓 사람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화성인은 불과 세 걸음만에 한 사람 한 사람씩을 집어 올려, 등에 매단 커다란 금속 상자 속에 모조리 집어넣었다.
화성인은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잡아다가 어떻게 하는 모양이다. 이런 생각이 문득 내 머리를 스쳐갔다.
우리 두 사람은 얼른 뒷문으로 빠져, 담으로 둘러싸인 뜰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옆에 있는 도랑 속으로 뛰어들어 엎드렸다.
이미 깜깜한 밤이 되어,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간신히 움직일 용기가 생긴 것은 밤 11시가 되어서였다.
길로 나가는 것은 위험했다. 생나무 울타리나 나무 그늘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화성인이 아직 이 근처에 있을 것이 틀림없으므로 목사는 오른쪽을, 나는 왼쪽을 조심조심 살피면서 나아갔다.
이윽고 우리는 온통 불타 버린 벌판으로 나갔다. 네 개의 대포와 포차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목과 손발이 찢긴 채 뒹굴고 있었으며, 말의 시체도 뒹굴고 있었다.
시인 마을은 파괴당한 흔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조용하기만 하고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목사는 목이 타서 견딜 수가 없다면서 물을 찾았다.
우리는 빈 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먹을 것은 없고 물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허겁지겁 마셨다. 우선 그것으로 목이 타는 것은 면했다.
거기서 좀더 가노라니까, 이번에는 커다란 정원이 돌담에 둘러싸여 있는 훌륭한 흰 집이 나타났다.
우리는 이 집의 식당에서 먹을 것을 많이 발견했다.
빵, 쇠고기, 햄, 강낭콩 등이 있었다. 그밖에도 맥주, 포도주, 연어 통조림, 비스킷이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왜 일부러 이런 먹을 것에 관해 일일이 쓰는가 하면, 우리는 그로부터 일 주일 동안 이 집 속에 갇혀 있는 운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식당 옆에 달린 부엌 의자에 걸터앉아, 빵과 햄을 먹고 맥주를 한 병씩 마셨다.
그 때, 우리가 이 집 속에 갇히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아직 12시는 되지 않았을 테지."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갑자기 눈부신 초록빛 광채가 빛났다. 순간 부엌 안이 환해졌다가 다시 캄캄해졌다.
곧이어 온 집 안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와장창 하며 창유리가 깨지고, 벽이 무너져 벽돌이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천장의 시멘트 조각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나는 부엌 바닥에 내던져지면서 무엇엔가 머리를 부딪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이 들어서 보니, 목사가 나의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축여 주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좀 괜찮아졌소?“
하고 목사가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목사가 얼른 주의를 주었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천장에서 떨어져 깨진 그릇들의 파편이 바닥에 가득합니다. 움직이면 소리가 납니다. 밖에 놈들이 있는 게 틀림없어요."
우리 두 사람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있었다.
사방은 쥐죽은듯이 고요한데, 바로 곁에서 시멘트 부스러기 같은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집 밖 가까운 곳에서 금속이 맞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가 때때로 들려 왔다.
"바로 저 소리입니다."
"그렇군요. 저게 무슨 소리일까요?"
"화성인일 겁니다!"
목사는 굳어진 얼굴로 속삭였다.
나는 귀를 곤두세웠다. 날이 밝기까지의 서너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아침 햇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그러나 그 빛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갈라진 벽 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부엌의 창문은 뜰의 흙이 산더미처럼 솟구쳐 오르는 바람에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 그 흙은 부엌 바닥에까지 밀려들었다.
집 밖이 산더미 같은 흙에 덮여 버렸던 것이다.
부엌 구석 부분이 갈라져서, 거기서 햇빛이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이 집의 대부분이 망가져 버린 것임에 틀림없었다.
밖은 완전히 밝았다.
벽 틈 사이로 번들번들 빛나고 있는 로켓 저 쪽에 화성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빛이 새어드는 부엌에서 살그머니 어두운 세탁장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 순간 나는 모든 상황을 짐작했다.
"그렇소! 다섯 번째의 로켓이오. 화성에서 발사한 다섯 번째의 로켓이 저기 떨어진 거요. 그 충격으로 이 집이 부서지고, 하마터면 우리는 생매장될 뻔했어요."
나는 가만히 목사에게 속삭였다.
목사는 잠시 멍하고 있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화성인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양인지 해머로 금속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요란한 기적 같은 소리가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동안 조용하더니, 이번에는 기관차가 수증기를 내뿜을 때처럼 씨익씨익 하는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 소리인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소리는 들렸다가는 끊어지고, 끊어졌다가는 다시 들리곤 하면서 차차 여러 가지 소리로 늘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규칙적으로 파당파당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가 울릴 때마다 집채가 흔들흔들 하여서, 식당의 사기 그릇들이 부딪혀 소리를 냈다.
우리는 두려움에 떨며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너무 긴장한 탓인지, 몹시 지쳐 버려 어느 사이에 두 사람 모두 잠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우리가 겨우 눈을 떴을 때는 몹시 배가 고팠다.
나는 허기를 참을 수가 없어서 목사에게 소곤거렸다.
"내가 먹을 것을 찾아오겠어요."
나는 살그머니 식당으로 기어 들어갔다. 뒤이어 목사도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화성인의 구조
 
음식을 먹고 나서, 우리는 다시 세탁장으로 되돌아갔다. 어느 틈엔가 나는 또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득 눈을 떠보니, 목사가 보이지 않았다. 요란한 소리는 계속 들려 오고 있었다.
작은 소리로 목사를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나는 바닥을 더듬으면서 부엌으로 가 보았다.
목사는 부엌에 있었다. 그는 벽에 착 달라붙어서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는 여전히 들려 오고 있었다. 마치 기관차의 차고 속에 있는 것처럼 요란하고 정신이 멍할 지경이었다.
나는 부엌 바닥에 흩어져 있는 사기 그릇 조각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목사의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목사의 발을 살짝 건드리자, 목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뒤로 물러섰다.
우리는 무너진 벽 사이로 살며시 밖을 내다보았다. 어제까지는 조용하기만 했던 교외의 길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주위는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다섯 번째의 로켓이 떨어진 곳은 어제 우리가 이 집에 오기 전에 들어갔던 집의 한복판인 것 같았다. 그 집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로켓은 집터 깊숙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내가 워킹 마을에서 본 구덩이보다 훨씬 크고 깊었다.
로켓이 땅에 박힐 때의 충격으로 엄청난 양의 흙이 날려서 부근의 집들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있는 집은 뒤로 쓰러져서 완전히 파괴되었는데 부엌과 세탁장만이 우연하게도 파괴를 면한 것이었다. 그리고 몇 백 톤의 흙 속에 파묻히면서도 로켓이 있는 방향으로 면한 쪽만 흙을 뒤집어쓰지 않았다.
쿵쿵 하고 규칙적으로 울려오는 소리는 바로 우리 뒤에서 들려 왔다. 내다보고 있는 벽 틈의 저 쪽에 때때로 초록빛 수증기가 솟아올랐다.
로켓의 뚜껑은 이미 열려 있었다.
구덩이의 훨씬 저 쪽으로 화성인의 거대한 전투 기계 한 대가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었고, 구덩이 속에서는 번쩍번쩍 빛나는, 세상에서 처음 보는 이상한 기계 장치가 한창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가까이 솟아오른 흙 위를 이상한 생물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우선 그 기계 장치부터 설명하기로 하자. 그것은 아주 복잡하게 되어 있는 장치며, 일종의 공작용 기계 같았는데 금속으로 된 커다란 거미와 같았다. 다섯 개의 다리가 있고, 다리에는 관절이 있어서 민첩하게 움직였다. 더욱이 많은 레버와 바도 달려 있어 마음대로 뻗쳤다 오므렸다 할 수도 있으며, 물건을 잡을 수도 있는 촉수가 몇 개나 있었다.
촉수의 대부분은 오므리고 있었지만, 세 개의 기다란 촉수가 로켓에 무엇인지 한창 공작을 하고 있었다.
그 동작은 아주 빠르고 복잡했다. 아무리 보아도 보통 기계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것은 번쩍번쩍 빛나는 강철 갑옷을 입은 생물, 말하자면 게와 꼭 닮았다.
그것을 조종하고 있는 것은 화성인이다. 화성인과 이 괴기한 공작 기계와는 어딘지 모르게 닮은 것 같았다.
나는 쌓아올린 흙더미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는 화성인에게 눈을 돌렸다. 이미 화성인을 본 일이 있었으므로, 워킹에서 처음 화성인을 보았을 때보다는 징그러움을 덜 느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상한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하였다.
화성인은 이 지구상에 있는 생물과는 비슷한 데가 없는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커다랗고 둥근 몸통-아니, 머리통은 지름이 1미터 반 정도나 되었으며, 그 정면에는 얼굴이 있다. 그 얼굴에는 콧구멍이 없고, 아주 커다랗고 시커먼 눈이 두 개 있었으며, 그 바로 밑에 입이 있다. 입이라기보다는 살로 된 부리가 붙어 있다는 편이 좋겠다.
뒤통수에는 북에 씌운 가죽 같은 팽팽한 가죽 한 장이 달려 있었는데 나중에야 귀라는 것을 알았다.
새의 부리와 같은 입 주위에는, 열 여섯 개의 가느다란 회초리
 같은 촉수가 여덟 개씩 두 다발로 돋아 있었다. 이 촉수는 저 유명한 해부학자인 하우즈 박사에 의해 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 뒤에 학자들이 해부해 본 결과 알게 된 것을 덧붙여 적어 놓기로 한다.
화성인의 신체 구조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신체의 대부분은 거의 뇌로 되어 있으며 눈, 귀, 촉수에 많은 신경이 뻗쳐 있었다. 그 가운데 크고 복잡한 폐가 있어서, 그것이 심장이나 입, 혈관 등으로 이어져 있었다.
화성인의 내장 기관은 이것이 전부였다.
사람 쪽에서 본다면 이상히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인간에게 있는 것 같은 복잡한 소화 기관은 전혀 없었다.
화성인은 머리뿐인 것이다.
화성인은 위와 장이 없었다.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소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 대신 다른 생물의 신선한 피를 뽑아, 그것을 자기 혈관에 주사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나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나, 그 일은 그 때 이야기하기로 하자.
음식을 먹고 그것을 소화시킨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대단한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임에 틀림없다. 주사해서 영양분을 충분히 취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지 모른다.
인간 신체의 절반은 여러 가지 내장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고, 소화가 잘 되고 안 되는 데에 따라 몸의 컨디션이 달라진다. 즉, 간장이 좋으냐 나쁘냐 또는 위장이 튼튼하냐 약하냐에 따라 사람의 기분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화성인에게는 그러한 기관이 없기 때문에 감정의 변화 같은 것이 없다.
인간과 화성인이 틀리는 점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우리들 인간의 심장은 잠시도 쉬는 일이 없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 화성인은 인간의 심장처럼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다.
화성인에게는 인간과 같은 근육이 없기 때문에, 자던가 쉬던가 하여 피로를 풀 필요가 없는 것이다. 24시간이면 24시간만큼의 일을 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추리 소설가로서 꽤 이름이 알려진 어느 작가가, 화성인이 습격해 오기 훨씬 전에 써 낸 소설이 있었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인간에 대한 예언에 관한 것이었다.
장차 갖가지 기계 장치가 완전히 발달해서, 인간의 손과 발이 하는 일을 모두 해내게 될 것이다. 또, 머리카락, 코, 이, 귀와 같은 불필요한 것은 차차 퇴화할 것이다. 그 대신에 가장 필요한 것, 즉 뇌만은 더욱 발달할 것이며, 그와 동시에 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손도 발달할 것이다.
먼 미래의 인간은 머리와 손만이 남을 것이라고 그 추리 작가는 예언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으로 쓴 것이었지만, 화성인을 본 나는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성인도 몇 천 년이나 몇 만 년 전에는 지구인과 비슷한 생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뇌와 손만이 발달해서, 손만은 마침내 두 다발의 촉수로 발달되었으며, 그밖에 필요 없는 기관은 점차 퇴화해 버려 마침내 소멸해 버렸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이 아닐지 .
 
인간과의 차이
 
화성인에 대해 여기에 좀더 써 두고 싶다.
화성인에게는 병이 없다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들 인간은 수많은 병의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아 왔던가.
그런데 화성에는 처음부터 박테리아가 존재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화성인들이 박테리아를 정복해 버렸든지 그 둘 중의 어느 한쪽이리라. 아무튼 그들에게는 전염병이니 폐병이니 암이니 하는, 수많은 병균에 의해 병에 걸린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화성의 생물은 우리 지구처럼 초록색이 아니라, 핏빛처럼 붉은빛을 띠고 있는 모양이다. 화성의 식물 모두가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로켓에 실려 온 씨앗에서 붉은빛의 식물이 성장했던 것이다. 그 붉은 풀은 순식간에 무서운 번식력으로 무성해졌다.
우리가 이 집에 갇혀 버린 사흘인가 나흘 동안에, 벌써 그 로켓이 떨어진 구덩이 둘레에는 붉은 덩굴이 놀라운 기세로 자라 쫙 깔려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붉은 풀은 여기뿐만 아니라 이 지방 일대에 퍼져 무성했다. 특히 물이 흐르는 곳은 더욱 무성했다.
화성인은 동체 -즉 머리- 뒤에 북의 가죽처럼 팽팽한 가죽이 있는데, 그것이 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소리와 촉수의 놀림으로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달랐다.
살아 남은 사람 중에서 나만큼 화성인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은 없으리라. 또한 나처럼 여러 번 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대여섯 명의 화성인이 모여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몸짓도 없이 함께 복잡한 작업을 느릿느릿 하고 있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들의 그 기묘한 소리는 꼭 식사 전에, 즉 피를 빨아들이기 전에 지르곤 하였다. 그 소리는 아주 단조로운 소리였다. 필경 어떤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를 빨아들이기 전에 숨을 내쉴 때 내는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화성인은 자기의 생각을 전달할 때는 목소리라든가 몸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전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화성인들은 또한 옷이라는 것을 전혀 입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기온이나 기압의 변화도 그리 느끼지 않으며, 건강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본 바로는, 화성인들의 기계 장치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바퀴'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바퀴를 쓴 흔적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기계나 장치는 대개의 경우 바퀴가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보다 지능이 높은 화성인이 바퀴라는 것을 몰랐다고 볼 수는 없다. 아마 일부러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화성인의 공작 기계를 살폈다. 특히 다섯 개의 다리가 자유 자재로 늘어났다 오므라졌다 하는 촉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것들의 동작은 너무나 정확하고 민첩했던 것이다.
목사가 갑자기 내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나는 그를 잊고 벽에 달라붙어 너무 오랫동안 화성인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돌아보니, 목사는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기도 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관찰을 중단했다.
한참만에 다시 내다보았다. 화성인의 괴물이 로켓에서 가지고 나온 부분품을 맞추어, 또 하나의 괴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왼쪽에서는 흙을 파내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초록빛 수증기를 내뿜으면서 규칙적으로 땅을 파내어, 그 흙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쿵쿵 하고 규칙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기계였던 것이다.


생피를 빨아먹는 화성인
 
두 개째의 전투 기계가 만들어졌을 때, 우리는 재빨리 세탁장으로 몸을 숨겼다. 혹시나 화성인에게 발견되지나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자, 무서움보다도 밖을 내다보고 싶은 유혹 쪽이 더 강했다.
나와 목사는 서로 뜻이 잘 맞지 않았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성격이 거의 정반대였다.
그렇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 함께 갇혀 있다가 보니 피차 짜증만 났고, 하찮은 일을 가지고도 티격태격했다.
목사는 마치 어리석은 여자 같았다. 조그만 일에도 신경질을 부리는가 하면, 몇 시간씩 훌쩍거리기도 했다.
내가 껌껌한 곳에 앉아서 앞날의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고 울먹이면서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게다가, 목사는 나보다도 음식을 많이 먹었다.
화성인이 이 곳을 떠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까지 갇혀 있을지 모르는 처지가 아닌가? 그러니 우리는 무엇보다도 식량을 아껴야 했던 것이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우리는 굶어 죽습니다. 먹을 게 없으면 이 곳을 뛰쳐나가다가 화성인에게 붙잡혀 죽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괜찮단 말이오?"
내가 아무리 타일러 보아도 막무가내였다.
목사는 얼마 안 되는 식량을 마구 먹어치울 뿐만 아니라, 경계하는 마음마저 없어져 버려 커다란 소리를 내는가 하면 큰 소리로 울어댔다.
참다못해 목사를 때려서라도 말릴 수밖에 없었는데 잠시 그때 뿐이고 곧 또 발작을 하는 것이었다.
목사만큼 이기주의적이고, 겁이 많으며, 간사하고 음흉스러우며, 남을 잘 속이는 인간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가 어두컴컴한 폐허 속에서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동안에, 밖에서는 화성인들의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벽 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거기에는 화성인의 거대한 전투 기계가 세 대 이상이나 완성되어 있었으며, 로켓 주위에는 새로운 장치가 늘어서 있었다.
두 번째의 공작용 기계가 이미 완성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장치를 자꾸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장치는 커다란 우유통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위에 서양배 모양을 한 용기가 계속해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공작용 기계에 달린 두 개의 촉수가 흙을 파서는 그 용기 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또 다른 촉수가 나선형으로 된 회전 장치에서 나오는 가루를 다른 용기로 보내고 있었다. 그 용기는 내가 있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초록빛 연기가 곧바로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얼마 뒤 공작용 기계의 촉수가 아래쪽으로 뻗치는가 싶자, 다음 순간 하얀 알루미늄 막대기를 집어 올려 그것을 곁에다 놓았다. 그렇게 해서 알루미늄 막대기를 자꾸만 쌓아올렸다. 교묘하게 생긴 공작용 기계는 놀랍게도 진흙에서 눈이 부실 듯이 반짝반짝 빛나는 알루미늄 막대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있는 동안에, 공작용 기계는 마치 정말 생명이 깃든 살아 있는 생물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느릿느릿 기어다니고 있는 문어 괴물 같은 화성인이 무서우리만큼 훌륭한 지성을 가진 생물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목사가 내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흠칫 하며 물러나더니 내게로 엉금엉금 기어왔다. 목사는 온몸을 덜덜 떨며 벽 틈을 손가락질했다.
나도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벽 틈 사이로 다가갔다.
밖은 이미 저녁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구덩이 근처는 알루미늄을 만드는 초록빛 불꽃 때문에 대낮처럼 환했다.
거대한 전투 기계 하나가 세 개의 다리를 오므리고 구덩이 구석에 서 있었다.
공작용 기계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이 들려 왔다. 혹시 잘못 들은 것이나 아닌가 했으나 유심히 괴물 기계를 지켜보았다. 그러자 비로소 그 괴물 기계의 모자 같은 머리 속에 화성인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징그럽게 번들거리는 몸과 검은 눈이 빛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비명 소리가 났다.
화성인의 긴 촉수 하나가 어깨 뒤로 뻗쳤는가 싶자, 뒤에 붙어 있는 상자 속에서 무언지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끄집어 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었다. 붙잡힌 촉수 속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얼굴이 불그레하고 뚱뚱한 중년 남자였는데, 옷차림도 훌륭했으며 금시계 줄이 번쩍 빛났다. 사나이는 공포에 질려 튀어나올 듯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나이의 모습은 곧 흙더미 뒤로 사라지고, 곧이어 소름이 끼칠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뒤이어 화성인의 기쁨에 찬 웃음 소리가 울려 왔다. 나는 소름이 끼쳐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 날 밤, 나는 탈출 방법을 생각했다.
여기에 이대로 머물러 있다가 만약 화성인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 사나이처럼 생피를 빨리게 되고 만다.
목사는 이미 의논할 상대조차 못 되었다. 너무나 무서운 나머지, 머리가 완전히 돌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화성인이 있는 구덩이와 반대 방향으로 굴을 파서 달아나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굴을 판다고 해도 이젠 목사는 도움이 되지 않아 나 혼자 파야 할 형편이었다.
나는 손도끼를 구해서, 세탁장의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나 걸려 겨우 10센티미터 가량 팠을 때, 땅굴 벽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나는 다시 한 번 해 볼 기력조차 잃고, 그대로 땅바닥에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땅굴을 파고 도망치려는 생각은 단념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화성인의 눈에 띄지 않고 도망갈 수는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사흘째인가 나흘째의 밤에는 멀리서 육중한 대포 소리 같은 것이 들려 왔다. 벽 틈 사이로 내다보니 달이 환하게 비치고 있었다. 구덩이를 파는 기계는 어디론가 운반해 갔는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구덩이의 건너편에 커다란 전투 기계가 한 대 우뚝 서 있었고, 공작용 기계 한 대가 내가 내다보고 있는 갈라진 벽 틈 바로 밑에 놓여 있어, 그 일부분이 보였다. 그 기계의 덜컹덜컹 하는 금속음이 들릴 뿐, 주위는 이상하게 고요하기 만 했다.
어디선지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자 분명히 대포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그것은 여섯 발 잇달아 울려 왔다. 그리고 한참 사이를 두고 또다시 여섯 발이 울렸다.
 
목사의 죽음
 
내가 마지막으로 벽 틈 사이로 밖을 내다본 것은 이 집에 갇힌 지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벽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내가 내다보면 반드시 뒤따라와서 떠밀고는 했는데, 그날따라 목사가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구석진 방으로 슬며시 가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목사는 혼자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내는 포도주 병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러나 목사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싸움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포도주 병이 바닥에 떨어져서 깨져 버렸다.
나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식량을 날마다 정해진 분량만 먹기로 하겠소. 서로 그것을 지키기로 합시다."
나는 부엌에 남아 있는 식량을 10일분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목사는 틈만 나면 음식을 훔치려고 했다. 나는 그것을 감시하느라고 마음놓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낮이고 밤이고 서로 노려보며 앉아 있어야만 했고, 때로는 맞붙어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목사는 훔친 먹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큰 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나는 '화성인에게 들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겁이 나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8일째와 9일째가 되자, 목사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제발 부탁이니 좀 조용히 해 주시오."
하고, 나는 그에게 사정했다.
그러면 목사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서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느님 앞에 증인이 될 것이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 런던에 천벌이 내릴 것이다! 천벌이!"
"그만두지 못해!"
나는 화성인이 그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아서 겁이 덜컥 났다.
목사는 구석방의 문을 열고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옆에 있던 몽둥이를 들고 그를 뒤쫓아갔다. 그리고는 힘껏 후려쳤다. 목사는 고꾸라지듯 앞으로 쓰러지더니 꿈틀하지도 않았다.
바로 그 때 갑자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벽이 허물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갈라진 벽 틈으로 공작용 기계의 금속 촉수 하나가 쑥 들어왔다.
그것에 이어 또 하나의 촉수가 여기저기를 더듬으며 슬슬 뻗어 왔다.
갈라진 벽 틈 사이로 공작 기계의 동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얼굴의 유리판 같은 것을 통해 화성인의 검은 두 눈이 이 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세탁장으로 숨어 버렸다. 그리고 세탁장 구석에 있는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지하실은 석탄 창고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문간에 서서 얼마 동안 형편을 살폈다.
금속의 촉수가 부엌을 더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엇인가 무거운 물건을 끌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
'목사가 끌려간다!'
하고 생각했지만, 나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문을 닫아 걸고 지하실로 내려왔다.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장작과 석탄 뒤에 몸을 숨겼다.
촉수는 다시 들어와서 이리저리 더듬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지하실의 바로 윗방을 더듬고 있었다.
이윽고 금속의 촉수는 지하실 문고리를 더듬더니, 얼마 안 가서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코끼리의 코처럼 촉수가 꿈틀거리면서 내가 있는 쪽으로 뻗쳐 왔다.
내 구두 뒤축을 스쳐갔다.
그러나 다행히 촉수는 석탄만을 움켜잡고 나아갔다. 아마 조사하기 위해서이리라.
얼마 후, 또다시 촉수가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식료품이 있는 곳이었다. 비스킷 통이 와르르 떨어지고,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가 버린 것일까?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 날 하루 동안 나는 석탄과 장작더미 속에 숨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목이 타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밖으로 나가면 끝장날 것만 같았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석탄 창고에서 나왔다.
 
인류는 멸망하고
 
나는 우선 음식이 있는 식당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굶어죽을 때를 기다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절망 상태에 빠졌다.
나는 세탁장의 어둠 속에서 완전히 지친 채 비참한 마음으로 털썩 다리를 뻗고 주저앉아 버렸다. 목은 말라서 타는 듯했다. 오직 먹을 생각만이 머리에 떠올랐다.
귀까지 먹어 버렸는지, 항상 들려 오던 구덩이 속의 기계 소리마저 전혀 들려 오지 않았다.
그러나 벽 틈까지 기어갈 기운도 없었고, 그런 용기도 나지 않았다.
이 집에 갇히고 나서 12일째, 나는 목이 말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세탁장의 펌프를 눌렀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면서 물이 나왔다. 뿌옇게 흐린 물이나마 두 컵 가량 단숨에 마셨다.
그것만으로도 한결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펌프가 삐걱거렸는데도 촉수가 나타나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조금 용기가 났다.
13일째, 나는 또 물을 퍼마시고 세탁장의 벽에 기대어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졸았다. 14일째, 혹시나 먹을 것이라도 있는가 싶어 부엌으로 가 보았다. 핏빛 같은 붉은 풀이 벽 틈을 메우다시피 가득 자라 있는 데 놀랐다.
15일째 아침 일찍, 부엌 쪽에서 개가 코를 끙끙거리며 발톱으로 벽을 긁어 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부엌으로 얼른 가 보았다. 새빨간 풀잎 사이로 한 마리의 개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사람 냄새를 맡아서 그런지 멍멍 짖어 댔다.
"이리 온."
하고 살그머니 부르자 개는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귀를 기울여 보니, 밖은 조용하기만 했다. 새 소리와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귀가 먹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벽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화성인들의 기계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쪽 구석의 알루미늄을 만들고 남은 회색 가루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알루미늄 막대기가 몇 개 뒹굴고 있었다.
까마귀 떼가 모여들어 무엇인가를 쪼아먹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화성인에게 피를 빨려 죽은 사람들의 시체였다.
나는 붉은 풀을 헤치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무너진 집의 벽돌 더미 위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화성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화성인이 습격해 오기 전의 그 아름답던 마을과는 너무나 달랐다. 불에 탄 집은 한 채도 없었으나, 로켓이 떨어진 부근 창유리는 깨어져 나가고 문은 떨어져 버렸다.
더욱이 무릎 위까지 덮을 만큼 무성한 붉은 풀이 온통 둘레를 덮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붉은 바다를 바라다보는 느낌이었다. 부근에 자라고 있던 나무란 나무는 모조리 말라죽은 듯했다.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나무들은 아직 푸른 잎을 달고 있었지만, 그 나무에도 붉은 덩굴이 친친 감겨 있었다. 까마귀 떼가 하늘을 맴돌고 있었다. 무너져 내려앉은 벽돌 담장 위를 말라 버린 고양이 한 마리가 살금살금 기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 모습은 아무 곳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여러 날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었으므로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눈이 부셨다. 하늘은 끝없이 맑고 푸르렀다. 산들바람이 불자, 새빨간 풀들이 가렵게 흔들렸다. 한동안 위험도 잊어버린 채,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컴컴한 곳에 앉아서, 어떻게 하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던 자신이 우스워졌다, 마을이 폐허가 되었으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처참하게 되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황폐한 거리에 서서, 아니 죽음의 거리에서 나무도 변해 버린 주위 환경에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돌연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우리들 인간은 이미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생물이 아니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지구의 주인으로서 지구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지금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 인간이 아니라 화성인인 것이다.
이제 인간은 화성인의 지배를 받고 있는 보잘것없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말이나 소나 개와 같은 동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참을 수 없는 비참한 감정도, 오랫동안 굶어서 심한 허기를 느끼는 감정 앞에는 단번에 사라져 버렸다. 붉은 풀에 뒤덮인 담 저 편에 새파란 채소밭이 보였다. 나는 붉은 풀이 무성한 속을 헤치고 들어갔다. 붉은 풀은 때로는 내 목께 까지 높게 자라 있었다. 간신히 담까지 걸어갔다. 담의 높이는 2미터 가량밖에 안 되었으나, 그것을 기어오르려고 해도 힘이 없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굶었기 때문에 도저히 다리를 들어올릴 기력조차 없었다.
담을 따라 걸어가자 돌을 쌓아올린 발판이 있었다.
그 발판을 디디고 기어올라 간신히 채소밭으로 굴러 떨어 졌다. 거기서 어린 양파나 글라디올러스의 구근, 그리고 당근을 찾아서 그대로 먹었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지금은 다만 어떻게든 이 무서운 죽음의 거리에서 멀리 떠나가 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얼마를 걸어가자, 길가 풀밭에 버섯이 한 곳에 뭉쳐 돋아나 있었다. 나는 정신 없이 달려가 그 버섯까지도 게걸스럽게 마구 뜯어먹었다.
다시 더 걸어가니, 화성인이 습격해 오기 전에는 그 아름답던 목장이었던 곳이 지금은 목초가 모두 말라죽어 버리고, 온통 흙탕물로 덮여 있었다.
가뭄이 계속된 뜨거운 여름인데, 어떻게 되어 이렇게 물에 잠겨 버렸을까?
그 원인은 곧 알 수 있었다.
핏빛처럼 붉은 풀은 굉장한 번식력을 가지고 무섭게 퍼져 나갔다. 더욱이 물이 있는 곳이라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래서 그 붉은 풀의 종자가 웨이 강과 템즈 강가에 떨어지자, 붉은 풀은 마구 무성해서 강물을 가로막아 버렸기 때문에 물이 다른 데로 넘쳐흘렀던 것이었다.
나중에 보았지만, 패트니 마을에서는 붉은 풀이 잔뜩 엉겨붙어서 다리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붉은 풀은 퍼져 나가는 것도 빨랐지만, 그만큼 시들어 죽어 버리는 속도도 빨랐다.
필경 어떤 종류의 박테리아 때문에 말라죽은 모양이었다.
붉은 풀은 금방 시들어 버렸다. 잎은 하얘지고 줄어들어 푸슬푸슬 부스러졌다. 조금 어디에 스치기만 해도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이 붉은 풀의 찌꺼기는 강물에 실려 깨끗이 바다로 떠내려가 버렸다.
내가 강기슭까지 간 것은 물을 마시고 싶어서였는데, 마음껏 물을 마시고 나서 시험삼아 붉은 풀잎을 하나 뜯어 씹어 보았다. 그것은 금속처럼 언짢은 맛이었다. 나는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무너진 별장이며 울타리, 가로등과 같은 것을 목표 삼아 길을 찾아 걸어갔다.
패트니 가까이까지 오니, 붉은 풀의 기세도 한결 꺾여서 그리 많지가 않았다.
파괴되지 않은 집이 두서너 채 남아 있기에, 행여나 먹을 것이라도 있을까 싶어 들어가 찾아보았다. 그러나 벌써 다른 사람이 뒤져 간 뒤라 아무것도 없었다.
몸이 몹시 쇠약해져서 기운이 없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 얼마 동안 길가의 나무 숲 속에 들어가 쉬어 가기로 했다.
날이 저물자, 다시 일어나서 패트니 마을로 통하는 길을 또다시 터덜터덜 걸어갔다.
마을에 들어서니, 화성인들이 열선을 쏘아 댄 때문인지 온통 불타 버려 시커멓게 탄 잿더미뿐이었다. 마을을 지나 조금 앞으로 가자 채소밭이 눈에 띄었다.
조그만 감자가 많이 있어, 빈 배를 채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날감자나마 실컷 먹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채소밭에서 내려다보니, 패트니 마을과 템즈 강이 한눈에 들어 왔다.
검게 타 버린 나무들, 불타 무너져 버린 집, 어둠 속으로 저물어 가는 저녁 무렵의 그런 광경은 완전히 황폐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저 편에는 흙탕물에 잠긴 땅이 화성인이 가져온 붉은 풀에 덮여 있었다.
오직 죽음을 연상시키는 깊은 침묵만이 감돌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허망함에 사로잡혔다.
'이제 지구는 멸망하고 말았구나. 이 멸망해 버린 지구 위에 오직 나 혼자만이 살아 남았단 말인가?'
한동안 나는 무섭고 절망적인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화성인들은 어디론가 멀리 가 버린 것이 아닌가? 이렇게 폐허가 된 영국을 버리고 다른 새로운 목표물을 찾아, 지금쯤은 베를린이나 프랑스의 파리를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는지.
 
포병을 다시 만나다
 
그날 밤, 나는 패트니 언덕 위에 있는 아무도 없는 여관에 들어가서 밤을 새웠다.
침대에서 제대로 잠을 자 보기는, 내가 집을 떠난 뒤 그 날이 처음이었다.
물론 나는 자기 전에 혹시나 먹을 것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방마다 뒤져보았지만, 마지막으로 들어간 하녀 방에서 쥐가 먹다 남긴 빵 조각과 파인애플 통조림 두 개를 찾아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끽연실에서 비스킷과 샌드위치를 찾아냈는데 샌드위치는 상해서 먹을 수 없었지만, 비스킷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분량도 많아 배부르게 먹었을 뿐 아니라, 양쪽 주머니에 가득 채우기까지 했다.
밤이 되어도 나는 램프를 켜지 않았다. 화성인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끝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오락가락할 뿐이었다.
죽은 목사의 일이며, 화성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아내에 대한 생각들이었다.
목사를 몽둥이로 후려친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언짢기는 했으나, 결코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때의 나로서는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고비가 아니었던가? 두 사람이 어떻게 하든 힘을 합쳤어야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포드에서 헤어질 것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화성인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가지로 상상은 해 보지만, 사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전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내 생각을 했다.
'아내는 무사할까? 아니, 죽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진심으로 아내를 위해서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날이 새자, 나는 쥐가 쥐구멍에서 기어 나오듯 조심스럽게 여관에서 나왔다. 화성인에게 정복당하고 만 이상, 우리 인간은 이제 하등동물이라는 점에서 쥐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쥐들이 인간에게서 얼마나 많은 학대를 당해 왔던가!
아침 공기는 매우 맑고 상쾌했다.
나는 패트니 언덕으로부터 윔블던으로 통하는 길을 걸어갔다. 저 일요일 밤에 허둥지둥 떠나간 피난민들이 남겨 놓은 자취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바퀴가 부서진 이륜 마차가 트렁크와 함께 길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뒤집힌 어항 주위에 피묻은 유리 조각이 흩어져 있기도 했다. 나의 발길은 무거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나는 레더헤드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결코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내나 아내의 사촌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막연했다. 윔블던 벌판에 이르니 노란 금잔화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화성인이 번식시킨 새빨간 풀은 하나도 없었다. 나무가 우거진 연못가에 다다르자 개구리들이 원기 왕성하게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개구리들을 지켜보았다. 이 하찮은 생물이 끈질기게 사는 것을 보고 나는 한가지 교훈을 얻었다.
'그렇다. 비록 나 혼자 살아 남는다고 하더라도 꿋꿋하게 살아가야겠다!'
그 때였다. 문득 누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척에 후딱 고개를 돌렸다.
덩굴 속에 무엇인가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그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자, 상대편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시퍼런 단도를 손에 쥔 사나이였다.
사나이는 흙투성이의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도 시커멓고 지저분하며 턱에는 칼자국이 나 있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하고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시인에서 오는 길이오. 화성인의 로켓이 떨어진 구덩이 바로 옆에 갇혀 있다가, 지금 가까스로 빠져 나오는 길이라오."
"이 근방엔 먹을 것이 없소. 여기는 모두 내 영토요. 고작 한 사람이나 살아갈 수 있을까 말까 하오. 그런데 당신은 지금부터 어디로 갈 작정이오?"
"나도 모르겠소. 무너진 집 속에 13일인가 14일이나 갇혀 있었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구려. 그러나 여기 머물 생각은 없소. 우선 래더헤드로 가 볼 생각이오. 아내가 거기 있었으니까요……
"아아, 당신이었구려. 당신은 워킹에서 온 분이 아니오? 웨이브리지에서 무사하셨군요!"
그 말을 들은 나는 곧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당신은 바로 우리 집에 들어왔던 포병이군요…… 당신도 살아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우린 피차에 운이 좋았던 모양이오. 정말 반갑습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곽 붙잡으며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그 때 도랑에 들어가 숨어 있었죠. 화성인이 가버린 뒤, 난 월튼 쪽으로 도망쳤지요."
"그럼, 그 뒤 화성인을 본 일이 있소?“
"놈들은 런던으로 가 버렸소. 보나마나 거기에 좀더 대대적인 진지를 구축하고 있을 겁니다.“
밤이 되면 저 쪽 햄스티드 일대와 놈들이 밝히는 불빛으로 대낮같이 환해지곤 한답니다. 그 밖은 불빛으로 놈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하죠.
아, 그렇군. 닷새 전이던가 괴물 두 놈이 무언가 큼직한 것을 운반해 가는 것이 보였답니다. 그리고 그저께 밤에는 공중에 무언가가 떠 있는 것을 보았어요. 틀림없이 놈들은 비행기를 만들어서 날아다니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늘을 난다고요?"
"그래요.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제 인류는 끝장이오. 날 수 있다면 놈들은 세계 어느 곳이나 손쉽게 날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인류는 이젠 막바지이지요. 우리들 인간은 완전히 놈들에게 졌으니까요."
포병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젠 모든 것이 끝장이란 말입니다. 그렇지만 놈들도 하나는 잃어버렸죠. 단 한 개 말이오. 단 한 개를 잃었을 뿐, 놈들은 탄탄한 발판을 만들어 세계에서도 가장 강한 나라를 정복해 버린 거요. 웨이브리지에서 파괴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죠. 그리고 지금 있는 화성인들은 먼저 온 자들일 거요. 이제 자꾸만 날아올 거요. 하긴 이 대엿새 동안은 그 초록빛 별은 웬일인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매일 밤 어디엔가 떨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된 이상 우리들 인간은 어절 도리가 없소. 안 그렇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이것은 전쟁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전쟁이 아니고말고요. 마치 사람과 개미가 싸우는 것을 전쟁이라고 할 수 없듯이, 처음부터 전쟁이라고 할 수가 없었지요."
문득 그 때, 나는 오글비의 천체 관측소에서 화성을 관측하였던 밤이 생각났다.
"화성인은 로켓을 열 개만 발사했을 뿐이고, 그 뒤는 중단해 버렸소.“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이오?"
나는 천체 관측소에서 본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포병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더니,
"아마 놈들의 장치가 고장났던가 보죠.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뭐, 곧 고장난 걸 수리해 가지고 또다시 밀려올 게 틀림없을 거요."
"화성인들은 우리를 어쩔 셈일까요?"
"나도 그것을 생각해 보았지요. 웨이브리지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나는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울고 떠들어 댈 뿐이더군요. 나는 그렇게 무턱대고 울고불고 하는 건 딱 질색입니다. 그 동안에 얻은 결론은 머리를 잘 쓰는 사람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오. 그래서 나도 머리를 썼죠. 사람들이 모두 남쪽으로만 피난해 가는 것을 보고 생각했지요. 저 쪽으로 가면 안 된다. 곧 먹을 것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이오. 그래서 난 그들과는 정반대로, 즉 화성인들이 있는 곳으로 온 것이오."
그러고 나서 포병은 잠시 말을 그치고 잠자코 있다가,
"저 쪽에서는 모두 먹을 것이 없어서 떼죽음이 나고 있지요. 서로 밀고 짓밟고 야단입니다."
포병은 잠시 말을 끊고 숨을 돌렸다.
 
포병의 계획
 
포병은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실 이 근방에는 먹을 것이 있답니다. 가게에는 통조림도 있고, 포도주와 위스키도 있단 말입니다. 자, 그건 그렇고 내가 생각했던 일에 이야기를 돌리겠습니다.
화성인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놈들이 인간을 먹이로 삼을 생각이기 때문이오. 놈들은 처음엔 배나 대포, 교회, 철도, 그리고 군대와 경찰 등을 모조리 때려 부술 테죠. 그러면 그런 건 곧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엔 무슨 짓을 하겠소? 놈들은 이번엔 계획적으로 인간들을 사로잡을 거요. 그리고 그 가운데 제일 맛있어 보이는 인간만을 골라 우리 같은 데 저장해 둘 겁니다. 아직은 그런 짓을 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오."
"그 따위 짓을 하다니!“
나는 나도 모르게 외쳤다.
"아직은 하지 않고 있소. 지금은 놈들이 인간에게까지 관심을 쏟을 겨를이 없어서 그렇지요. 놈들은 지금 여러 가지 기계를 만드느라고 정신이 없단 말입니다. 뒤따라 올 한패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거죠. 얼마 동안 로켓이 날아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거요. 우리 인간이 제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거요. 뭐, 다이너마이트 같은 것으로 놈들을 때려부숴 보겠다고 날뛰어 봐도 이미 때가 늦었어요. 따라서, 울고불고 피해 다니거나 또는 맞서 볼 생각만 하지말고, 이 새로운 정세에 자기를 적응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인간의 사고 방식, 즉 도시며 국가며 문명이며 진보 따위는 이제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소. 우리 인간은 완전히 지고 말았으니까요."
"만일 그렇다면 인간은 살아갈 보람이 없지 않소?“
포병은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군요. 고상하신 양반님네들은 살 맛이 없을 테죠. 음악회 같은 것도 없을 테고, 예술원도 없어질 테고, 극장도 없어질 거요. 그리고 멋진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일도 없어지겠지요."
"그렇다면 결국……"
"결국 나 같은 사람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단 말이오.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말이오. 나는 인류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갈 생각이오. 인간이 몰살될 수는 없소. 나는 화성인 따위에게 붙잡힐 수는 없소! 소나 돼지처럼 우리 안에 갇혀서 주는 거나 받아먹으며 놈들을 위해 살고…… 놈들에게 잡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설마……!"
"물론이죠! 나는 합니다. 난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웠소. 분명히 우리들 인간은 졌소. 그것은 우리에게 지식이 모자랐기 때문이오. 그러니까 때가 올 때까지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악착같이 살아 남아야 한단 말이오."
나는 이 사나이의 정의에 놀라고, 또 감동했다.
"훌륭하오! 당신이야말로 굉장한 사람이오!"
포병은 한층 더 눈을 빛내며, 열기를 더했다.
"놈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지요. 나는 이미 그 준비를 하고 있소. 지금부터 필요한 건 야생 동물 같은 강인한 생활입니다. 우리 주변에 흔해 빠진, 안일한 생활만을 해 온 친구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단 말이오. 날마다 통근 전차를 놓칠까 봐 마구 뛰어가는 그런 친구들, 혹시나 쫓겨나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작자들, 그리고 근무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오는 그런 자들, 일요일이 되면 뚜렷한 신앙도 없으면서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가거나, 오락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떠들어대는 친구들 말입니다. 그런 친구들이야말로 화성인에게는 안성맞춤인 먹이죠. 일 주일만 들판을 헤매면서 굶주리면 손을 들어 버리고, 차라리 화성인에게 붙들리는 편이 낫겠다고 자기 스스로 붙잡혀 줄 겁니다. 화성인들은 그들을 깨끗하고 널직한 우리 안에 넣어서 배불리 먹여 주고 모든 일을 보살펴 줄 테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산 채로 그들에게 피를 빨아 먹힐 겁니다."
어느 새 나는 포병의 열변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포병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옳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을 반박할 만한 자신도 없었다.
화성인이 침입하기 전에는 나의 지능 정도가 이 포병보다도 훨씬 낫다는 사실을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으리라. 나는 철학적인 논문을 쓰는 학자로서 조금은 유명하였으며, 상대방은 평범한 한낱 사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나이는 나도 아직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는 이 상황을, 이미 명확하게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소?“
하고 나는 물었다.
포병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렇지요. 우리들은 살아 남아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편안한 것만 바라는 그런 인간들은 화성인에게 사육되는 동안 동물과 다름없이 되어 버릴 뿐이오. 몇 대가 지나면 그것들은 몸집이 크고 피를 듬뿍 가진 바보가 되어 화성인의 먹이가 되겠지요.
그러나 한편 우리들처럼 화성인에게 붙잡히지 않은 야생 인간은 야만인으로 되돌아갈 염려가 있죠. 말하자면 야생의 큼직한 쥐처럼 퇴화해 버린단 말씀이오. 그러니까 우리들이 화성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자면, 땅 속에서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요, 제 말 아시겠어요? 그래서 나는 하수도를 생각했지요.
런던의 지하에는 몇 십 킬로미터, 아니 몇 백 킬로미터나 되는 하수도가 있어요. 하수도를 잘 모르는 사람은 더러운 곳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런던은 텅텅 비어 있으니까 2 , 3일쯤 비가 내리면 더러운 것이 깨끗이 씻겨 버릴 거요.
하수도의 본관은 훌륭히 살아갈 만큼 넓기도 하고, 통풍도 잘 되니 걱정 없습니다. 게다가 지하실도 지하철도 있소.
어떻습니까? 제 생각을 알 만한가요? 그러고선 우리는 단체를 만듭니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끼리 말이오. 쓸모 없는 쓰레기 같은 친구들은 조금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 인간은 죽어 버리는 편이 좋지요.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의 단체를 만든다는 밀이죠. 그리고 우리들의 단체는 여기저기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보초를 두어 화성인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하는 거요.
이렇게 해서 안전한 생활을 하면서 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저 먹고 자고 하는 것만으론 쥐나 별다른 데가 없으니까 지금까지 얻은 지식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연구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상이나 과학에 관한 책을 모아서 공부를 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화성인들을 잘 관찰하고 있다가 적당한 시기가 오면 스파이를 내보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나가서 일부러 놈들에게 붙잡혀 주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놈들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놈들이 안심하여 방심하는 사이에 그 전투 기계에 올라타는 겁니다. 조종법을 배운 인간이 그것을 움직여서 놈들에게 열선을 마구 퍼붓는 겁니다.
그 무서운 기계를 빼앗아 타고, 닥치는 대로 열선을 퍼부으면서 한바탕 설치고 다니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오! 그러면 화성인들은 아주 깜짝 놀랄 테지요. 놈들이 다른 기계를 타고 그 전투 기계를 움직이려고 해도 기계는 고장이 나서 꼼짝도 하지 않지요. 그러면 놈들은 당황해서 기계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 우리편에서 열선을 퍼부어 댄단 말이오. 그러면 놈들은 불기둥을 올리며 타오를 거요. 자, 어떻소, 통쾌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해서 마침내 인간은 또다시 이 지구를 도로 뺏는단 말씀입니다!"
나는 포병의 훌륭한 상상력과 확신에 넘쳐흐르는 용기와 놀라운 지혜에, 그저 감탄해 마지않았다.
우리는 이렇듯 인류의 앞날에 대하여 오랫동안 덩굴 속에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혹시나 화성인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조심하며 포병이 살고 있다는 패트니 언덕의 집으로 갔다.
 
트럼프 놀이
 
포병의 집이라는 것은, 그 집의 지하실에 있는 석탄 창고였다.
그 지하실에 내려가 보니, 그가 하수도의 본관과 이으려고 팠다는 땅굴이 있었다. 그것은 일 주일이나 걸려서 판 것이라는데도 깊이가 10미터도 채 안 되었다.
그 땅굴을 보는 순간, 이 정도의 땅굴이라면 나는 하루에도 팔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의 말과 능력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이어서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도 나는 아직 포병을 신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낮 무렵까지 그와 함께 땅굴을 팠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하면서 그의 계획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로 의문이 생겼다. 가령, 여기서 하수도 본관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또한 이 땅굴의 방향이 하수도 쪽으로 나 있을 것인가 하는 따위의 의문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맨홀에서 직접 하수도로 들어가도 좋을 텐데, 어째서 이런 기다란 터널을 팔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불편한 곳에 있는 집을 선택함으로써 쓸데없이 기다란 터널을 파는 헛수고를 하고 있지나 않나 하는 등의 것이었다.
내가 이러한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포병이 일손을 멈추고 말했다.
"오늘은 꽤 많이 파 들어간 것 같군요. 좀 쉬고 점심이나 먹고 합시다."
나는 어쩐지 이 일에 신이 나지 않던 때라 아주 잘됐다 싶어 곧 찬성했다.
포병은 갑자기 너그러워졌다. 식사가 끝나자, 밖에 나가더니 값비싼 담배를 들고 들어왔다.
"여기엔 샴페인도 있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해야 할 일이니까 그렇게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오. 그러니까 어디 오늘은 좀 푹 쉬기로 합시다. 당신이 여기 온 것을 축하하는 뜻으로 말이오."
하며 포병은 호기 좋게 샴페인을 땄다.
그리고 배불리 먹고 마신 후, 이번에는 트럼프 놀이를 하자고 제안해 왔다.
나도 어느 사이엔가 트럼프 놀이에 열중했다.
트럼프 놀이가 끝난 다음에는 체스를 두었다. 나는 세 번이나 크게 이겼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위급한 이 마당에 트럼프 놀이에 열중하다니,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어이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 때의 트럼프 놀이처럼 재미있었던 일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내기를 했다.
밤이 으슥해서야 간신히 저녁 식사를 들었다. 포병은 혼자서 샴페인 한 병을 다 마셨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밤마다 하이게이트 언덕에 초록빛 불빛이 보인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북쪽 언덕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켄싱턴 부근에서는 빨간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밖의 곳은 캄캄하기 만 했다.
그보다 가까운 곳에 이상한 빛이 눈에 띄었다. 엷은 보랏빛 광선인데, 그것이 바람에 불려 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얼마 동안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윽고 그것은 저 붉은 풀이 발사하고 있는 빛에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느끼자, 나는 새삼스럽게 자연의 기묘한 섭리에 다시금 놀랐다.
화성이 서쪽 하늘 높이 붉게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오늘 하루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관 침대에서 하느님께 기도한 일에서부터 트럼프 놀이를 한 일까지 얼마나 어리석게 처신했던가!
나는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내에 대한 일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녀가 죽었다고 속단하는 것은 아내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배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실행할 수도 없는 야릇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포병 따위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샴페인이나 마시고 혼자 떠들도록 내버려두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포병과 헤어져서 런던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곳에 가면 화성인에 대한 소식이나 그 밖의 일들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성인의 최후
 
나는 포병과 작별하고 언덕을 내려왔다. 템즈 강을 건너 남쪽 강기슭으로 나왔다. 붉은 풀이 무성해 있었으나, 이미 잎마다 흰 점이 군데군데 나 있었다.
프럼 거리로 오니, 길거리에는 여기저기 수많은 시체가 뒹굴고 있었는데, 죽은 지가 오래 되어 역한 냄새가 났다.
주위는 너무나 조용했다.
모든 가게나 집의 문은 닫혀 있었다. 식료품점이나 술집은 모두 유리 창문이 부서지고, 가게 안은 많은 사람들이 뒤져 가서 어수선했다. 런던의 중심부로 들어감에 따라, 고요하다 못해 괴괴할 정도였다.
사우스 켄싱턴에 들어서니 시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어렴풋이 들릴까 말까 한 소리였다.
"우라, 우라, 우라……"
마치 흐느껴 우는 듯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있다. 북쪽으로 걸어감에 따라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엑시비션 로드에 다다르니, 목소리는 한층 더 크게 들려 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켄싱턴 공원 쪽을 바라보며, 대체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생각했다.
"우라, 우라, 우라."
사람의 목소리는 아닌, 슬프디 슬픈 목소리였다.
나는 하이드 파크의 철문 쪽으로 걸어갔다.
양쪽 길가의 커다란 저택들은 모두가 텅텅 비어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발자국 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공원 철문 가까이까지 오니, 합승 마차가 뒹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는 말의 해골이 흩어져 있었다. 살은 거의 다 쪼아 먹히다시피 해서 앙상하게 뼈만 남아 있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 서펜타인 연못에 이르자 이상한 소리는 한층 더 크고 구슬프게 들렸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구슬퍼 울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까 나마저 기분이 서글퍼지며, 동시에 새삼스럽게 피로가 몰려와 허기와 갈증을 느꼈다.
시간은 어느덧 한낮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 죽음의 거리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외로움을 참을 길이 없었다.
공원의 출입구인 마블 아치를 나와 옥스퍼드 거리로 들어섰다. 시체가 몇 구 뒹굴고 있었다.
어느 한 건물의 지하실 창문에서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썩은 냄새가 풍겨 왔다.
계속 걸음을 옮겼다. 갈증은 더욱 심해져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얼마 뒤, 나는 무척 애쓴 끝에 목로 주점을 발견하여, 문을 간신히 뜯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마실 것과 먹을 것이 있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이번에는 지금까지 쌓이고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옆에 있는 긴 의자에 쓰러져 어느 틈엔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문득 눈을 떴다. 그 음산한 울음소리는 아직도 들려오고 있었다.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나는 목로 주점에 있는 비스킷과 치즈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밖으로 나왔다.
파커 거리의 조용한 주택 지구를 지나 곧장 리젠트 공원까지 왔다.
저 멀리 우뚝우뚝 솟아 있는 나무들 사이로, 저녁놀에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그 거대한 화성인의 머리가 보였다. 음산한 그 목소리는 바로 거기서 들려 왔던 것이다.
나는 별로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무서운 일에 부딪쳐, 인제는 익숙해졌다기보다 화성인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 싶었다.
화성인의 전투 기계는 웬일인지 움직이지 않고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왜 저렇게 울부짖고 있는 것일까?
"우라, 우라, 우라……"
단조롭게 되풀이되고만 있는 구슬픈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나마저 머리가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에 이젠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어서, 별로 무서움도 느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무서움보다도 어째서 저렇게 울고 있는지, 그 원인을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앞섰다.
나는 뒤돌아서 공원을 나왔다. 그리고 그 공원을 따라 걸어갔다.
얼마쯤 갔을 때, 수많은 개들이 짖어 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의 한 마리가 썩어 가는 불그스름한 고기를 입에 물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들개 떼가 그 개를 뒤쫓아 달려왔다.
지하철역 부근에서 화성인의 부서진 공작용 기계와 마주쳤다.
처음에 나는 건물이 무너져 내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을 넘어서 지나가려고 기어올라갔더니, 촉수가 망가지고 비틀어져 버렸으며, 동체는 엉망으로 파괴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필경 그 공작용 기계가 커다란 건물에 함부로 돌진하다가, 그만 집에 부딪쳐서 파괴된 모양이었다.
이미 어두워졌기 때문에 피투성이가 된 좌석이며 개가 물어뜯다만 화성인의 물렁뼈는 미처 보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사태가 벌어졌단 말인가?' 나는 뜻하지 않은 이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공원 안 동물원 쪽을 향해 두 번째 화성인이 나뭇가지 사이로 우뚝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 그것도 먼저 본 고물처럼 꼼짝도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리마저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좀더 가자, 핏빛처럼 붉은 풀과 마주치게 되었다. 리젠트 운하는 온통 붉은 풀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다리를 건너자 '우라, 우라, 우라.' 하는 소리가 뚝 그쳐 버렸다.
사방은 쥐 죽은 고요했다.
어두컴컴한 높은 집들이 어렴풋이 서 있었다. 공원의 나무들도 검게 물들어 있었다.
밤이 다가왔다.
이렇게 말하면 우스운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 이상한 화성인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동안은 마음에 스며드는 쓸쓸함을 참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 목소리가 들려옴에 따라 아직 런던 거리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들려 오지 않게 된 지금, 오히려 이 쥐 죽은 고요한 것이 더욱 두려워 못 견딜 지경이었다. 런던 거리가 유령처럼 나를 에워싸는 것 같고, 희끄무레한 집들의 창문들이 쾡 하니 뚫린 해골의 눈구멍같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리젠트 쪽을 향해 정신 없이 달렸다. 도중에 마구간 같은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날이 채 새기 전에 용기를 되찾았다. 나는 또다시 리젠트 공원을 향해 걸어갔다.
날이 점점 밝기 시작했다. 낮은 언덕 위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도 세 번째의 화성인의 괴물 기계가 다른 기계들과 마찬가지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순간, 나는 거의 미치광이와 같은 결심을 했다.
'차라리 단숨에 죽어 버리자!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이 해결될 것이 아니냐!'
그런 마음을 먹고, 나는 화성인의 전투 기계를 향해 무턱대고 다가갔다. 그러자 화성인의 전투 기계 주위에 수많은 까마귀 떼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미친 듯이 달려갔다.
언덕 위에는 높직하게 흙더미가 쌓여 있었는데, 그것은 화성인들이 만든 마지막 보루였다.
쌓아올린 보루 저 편에서 가느다란 한 줄기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개가 한 마리 거기서 뛰쳐나와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역시 아까 나의 머리를 스쳐간 예감이 맞았구나.'
전투 기계의 머리 같은 데서 촉수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까마귀들이 쪼아먹고 있었다.
나는 보루 위로 올라가 네모난 보루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그 속은 놀랄 만큼 넓었다. 그 속에 화성인들의 거대한 기계와 재료 따위가 흩어져 있었다. 부서진 전투 기계와 공작용 기계 사이에 문어 괴물 같은 화성인이 열 명 이상이나 말라죽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화성인들은 지구의 부패성 박테리아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 그 붉은 풀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박테리아에 대한 저항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유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 버린 것이었다!
우리들 인간은 지구의 역사가 시작된 몇 십억 년 전부터 박테리아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해 왔으며, 수많은 목숨을 빼앗겨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에게는 차차 박테리아에 대한 저항력이 자연히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화성에는 박테리아가 없었다. 그래서 화성인이 지구에 오자마자 지구의 박테리아가 들러붙었다.
박테리아에 대한 저항력이 전혀 없는 화성인은 박테리아에 의한 병에 맥없이 죽어 갔던 것이다
화성인들이 쌓아올린 보루 속에는 50명에 가까운 그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침 햇살이 구덩이 속을 비추었다. 구덩이 속에는 많은 개들이 죽은 화성인의 시체를 서로 뜯어먹으려고 다투고 있었다.
커다란 구덩이 저 쪽 가장자리에는 납작하게 생긴 기묘한 모양의 비행기가 있었다. 하지만 화성인들은 그 기계를 사용해 보지도 못한 채, 죽어 버렸던 것이다.
까마귀의 울음소리에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전투 기계가 언덕 위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곳에서 축 늘어져 있는 화성인들의 촉수를 까마귀들이 뜯어먹고 있었다.
언덕의 비탈진 곳을 내려다보니, 어제 본 두 대의 기계가 역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금속으로 된 세 다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기계 속의 화성인도 죽어 있었다. 그 중의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구슬픈 목소리로 울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내려다보니, 런던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심하게 파괴된 지역은 시커먼 폐허로 변해 있었으나, 더러는 파괴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큰 건물이며 집들이 있었다.
'런던은 이제 이 이상 파괴되는 일은 없으리라. 대도시 런던은 다시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머지 않아 피난 갔던 사람들이 런던으로 되돌아오리라. 그리고 모두가 열심히 런던 부흥에 힘을 기울이리라. 나는 두 팔을 높이 쳐들고, 하느님께 감사하였다.
 
런던에서 집으로
 
그 날, 언덕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일까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사흘 동안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화성인이 전멸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이미 전날 밤에 다른 몇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마구간에 숨어 있을 무렵,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애써서 파리에 전보를 쳤다.
그리하여 이 기쁜 뉴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온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화성인의 공격에 떨고 있던 온 세상 사람들은 몹시 기뻐했다.
내가 화성인의 마지막 보루 위에 서 있을 때는 더블린, 에딘버러, 맨체스터, 버밍검 등에서는 이미 이 기쁜 소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주일 동안이나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는 교회의 종소리가 온 영국 안에 울려 퍼졌고, 피난해 온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영국 해협과 아이리시 해를 건너서, 혹은 대서양을 건너서 식량이며 원조 물자가 영국으로 보내져 왔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사실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사흘 동안 미친 사람처럼 뜻도 모를 소리를 지껄여 대면서 런던 거리를 헤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정신이 든 다음에야 어떤 친절한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들의 일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 집 사람들은 마치 형제처럼 나를 따뜻하게 간호해 주었다.
내가 정신을 되찾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그 집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자기들이 알고 있는 레더헤드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곳은 화성인의 공격을 받아 주민은 몰살당했으며, 마을은 송두리째 파괴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몸이 회복된 뒤에도, 나흘 동안이나 더 집에 머물러 있었다. 행복했던 아내와의 지난날이 눈앞에 선히 떠올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정든 집을, 아니 파괴되고 없어졌을지라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러나 친절한 그 집 사람들은 홀로 남은 나를 동정해서 내가 떠나는 것을 간곡하게 말렸다. 그러나 한번 먹은 내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나는 친절한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메이베리의 집을 향해 슬픈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런던 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로 붐벼서 온통 활기에 넘쳐 있었다. 가게문을 연 곳조차 있었다.
태양은 밝게 빛나고, 어느 거리나 사람들로 붐벼서 활기에 넘쳐흐르는 런던을 보면, 인구의 몇 할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면 안색이 누렇게 뜨고, 눈이 움푹 들어갔는가 하면, 넝마 같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교구 위원들이 프랑스 정부에서 보내온 원조용 빵을 모두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거리 모퉁이마다 하얀 배지를 단 임시 경찰관들이 말라빠진 몸으로 교통 정리를 하고 있었다.
워털루 다리의 난간에는 아직도 붉은 풀 덩굴이 얽혀 있었다. 다리 목에 한 장의 종이 쪽지가 바람에 날려 가지 않도록 막대기에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데일리 메일 신문이 다시 발행된다는 것을 알 리 는 광고였다.
나는 그 신문을 사서 보았다. 지면의 거의가 백지로, 기사가 적은 엉성한 신문이었다. 일 주일에 걸친 화성인에 대한 조사 결과가 간단하게 실려 있었다.
워털루 역으로 와 보니, 무료 열차가 많은 피난민들을 고향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역을 출발하자, 기차는 임시로 가설된 선로 위를 덜컹덜컹 흔들리며 달렸다. 양쪽으로 보이는 집들은 시커멓게 타 버린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
윔블던의 피해는 특히 심한 것 같았다. 한참 가니까, 밭 가운데에 여섯 번째의 로켓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둘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며, 공병들이 분주하게 무슨 작업을 하고 있었다.
워킹 역은 아직 수리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바이프리트 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곧장 메이베리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포병과 내가 세 사람의 기마병을 만나서 얘기했던 장소를 지났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에 화성인을 처음 본 장소도 지났다.
호기심에 이끌려, 일부러 가던 길을 벗어나 덩굴 속으로 가 보았다. 부서진 이륜 마차가 뒹굴고 있었으며, 거의 백골만 남은 말의 시체가 굴러 있었다.
이윽고 솔밭을 지나 집이 보이자, 순간 말할 수 없는 희망이 치솟는 것을 느꼈으나 그것은 금새 사라져 버렸다. 문은 억지로 비틀어 연 듯 열려 있었다.
누군가가 뜯고 들어간 것이리라. 2층 서재의 창문은 그 당시 포병과 내다본 그 때 그대로 열려 있었으며,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에 깔린 양탄자는 비바람이 휘몰아치던 날 밤, 비에 젖은 내가 주저앉았던 곳만이 구겨지고 퇴색되어 있었다.
2층 서재로 올라가 보니, 책상 위에 첫 번째 로켓의 뚜껑이 열리던 날 쓰다만 원고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2층에서 내려와 식당으로 갔다. 고기와 빵이 있었으나, 모두 썩어 버려서 먹을 수가 없었다. 맥주병이 하나 쓰러진 채로 있었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어 찾아온 내 집인데, 이 쓸쓸함을 무엇에다 비기랴!
지금까지 품어 온 한 가닥의 희망도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 때 어디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소용없는 일이야. 이 집은 아무도 없는 빈 집이란 말이야. 지난 10일 동안 아무도 찾아온 흔적이 없지 않아. 여기 있어 보았자, 괴로움만 더할 뿐이지."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내 가슴 속의 생각이 목소리가 되어 들려 올 리는 없다.
나는 재빨리 창문으로 달려가 보았다.
아내와 아내의 사촌 오빠가 거기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새파란 얼굴이 되어 약하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 와락 아내를 껴안았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끝내면서, 화성인들에 대한 학자들의 조사 결과와 나의 생각을 좀더 설명해 두고 싶다.
화성인들의 시체를 세밀히 조사해 본 결과 그들의 몸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는 모두가 이 지구의 것이며, 새로운 박테리아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토록 무서운 효력을 지니고 있는 검은 연기, 즉 검은 독가스의 성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검은 독가스가 분사된 뒤에 지상에 남아 있던 검은 가루를 분광기로 분석해 본 결과, 초록빛 부분에서 세 개의 강한 광선이 나타났다. 그것은 지구에는 없는 미지의 원소였다. 열선의 발생 장치에 관해서도 수수께끼를 풀 길이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욱 중대하고 관심을 끄는 문제는, 화성인들이 또다시 지구를 습격해 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아직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화성인들은 반드시 지구를 공격하는 모험을 되풀이하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천문학자는 화성인들이 금성 착륙에 성공하였을 것이라는 설을 발표했다.
지금부터 7개월 전에 금성과 화성이 태양과 일직선상에 들어섰을 때, 금성 표면에 특별한 광채를 띤 점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성을 찍은 사진에도 검은 점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행성에 나타난 현상은 그 형태나 성질이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들어 화성인이 금성에 착륙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성인은 지구에 선발대를 보내서 실패했다. 그래서 그들은 계획을 다시 고쳐서 지구보다도 안전한 식민지를 금성에 발견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이번의 화성과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지구는 절대로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들이 듣도 보도 못한 생물이, 그것이 선량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간에 넓은 우주에서 갑자기 지구로 침공해 오는 일이 없으란 법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의 비참한 사건으로 인해, 우리들의 눈은 우주를 향해 크게 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지금까지 우주에 지구 외에는 모순이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다른 행성에도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화성인이 금성에 도달할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이라고 못 할 리 없을 것이다.
태양은 먼 장래 언젠가는 식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은 이 지구에서도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들 인간도 화성인이 시험해 보았듯이, 다른 행성에 살 곳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작품 해설
 
우주인이 지구에 오다? 화성의 생물 존재설
 
웰즈는 이 소설 끝에 화성인이 금성 착륙에 성공했을 것이라는 학자의 관측 결과를 전하고 있습니다. 지구 침입에 실패한 화성인이 이번에는 금성에서 자기들의 안정된 식민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1972년 3월 27일 소련이 쏘아 올린 무인 관측기 금성 8호가 7월 22일 금성에 착륙했다고 발로했습니다.
3억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117일간 비행한 긴 여행이었습니다.
1970년 12월 15일 금성 7호도 연착륙에 성공하였으므로, 이것으로 두 번째 성공을 거둔 것이었습니다.
금성이나 화성에 대하여 대체적인 것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화성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약간 피력해 두고자 합니다.
화성에는 지금도 생물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최근의 신문들이 크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화성의 생물 존재설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있습니다. 미국의 마리너 9호와 소련의 화성 2호, 3호가 화성의 주위를 돌면서 3개월 간 송신한 관측 결과를 분석하여 새로운 사실이 많이 발견된 것입니다.
마리너 9호는 화성의 남극 상공에 수증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것은 화성에도 물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물이 있으면 생물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지질학자 중에 '화성에는 옛날에 바다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리너 9호는 화성의 사진을 송신해 왔습니다. 그 중에는 화성의 '치토누스의 호'에서 찍은 큰 계곡의 사진이 있습니다. 몇 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큰 계곡 양측은 마치 지네 다리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 지네 다리는 계곡으로 흘러나온 지류 같습니다. 그리고 기괴한 여러 가지 형태는 물의 침식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물의 침식이 있었다면 바다도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그러나 화성에 물이 있다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화성에 옛날에 물이나 바다가 있었다면 생물도 있었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은 물이 적어졌다고 하지만 물이 점점 적어지는 상태에 적응하여 생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화성이 생물이 살기에 적합한 곳인가의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화성인의 인공 위성
 
화성에는 두 개의 작은 위성이 있습니다. 포보스와 데이모스가 그것입니다. 마리너 9호가 관측한 바에 의하면 큰 위성 포보스의 지름(동서)이 약 40킬로미터였고, 데이모스는 약 21킬로미터였습니다. 마라톤 코스 거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위성입니다. 이 두 개의 위성은 1877년 미국인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세기 반 전에 이미 이 위성에 관하여 글을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스위프트, 저 유명한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스위프트입니다. 그는 고대의 학문인 고대의 서적이나 사본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옛 문헌을 연구하다가 화성에는 두 개의 위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발표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입니까!
스위프트는 18세기 전반의 영국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스위프트 이전에 이 위성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최근에 와서는 십여 년 전에 소련의 한 천문학자가 위성 포보스에 대하여 비로소 공상 과학 소설과 같은 추리를 발표했었습니다.
'포보스는 몇 백만 년 전에 고도의 문화를 가진 화성인이 만든 인공 위성으로 그 속은 비어 있다. 화성인들은 언젠가는 자기들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도서관이나 박물관으로 쓸 수 있도록 인공 위성을 한 두 개 만들어, 그 속에 그들의 빛나는 문화와 역사의 산물을 담아, 후세의 탐험가들에게 남겨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리고 이것은 공상 과학 소설가가 생각하듯이 우리들의 공상을 추리한 것이 아닐는지요. 이 소련 천문학자의 견해에 대해 미국의 권위 있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과학 저널리스트 레너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소설다운 상상이어서 논리적으로 파고들 만한 것은 못 된다. 그래도 가볍게 웃어넘길 공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화성에도 먼 옛날 생명이 탄생되고 진화를 거듭하여 몇 억 년 전에 이미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을 것이라는 상상은 결코 소설가 같은 공상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보면, 지금으로부터 몇 천 년 전, 아니 그보다 먼 옛날에 화성인이나 우주인이 지구에 왔으리라는 얘기는 공상적인 얘기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지구인은 최근에 달을 정복하는 등의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지구인이 우주 공간을 날아 다른 별에 갈 수 있다면, 지구인보다 더 빨리 진화되어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우주인이 지구를 찾아오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주인의 비행 접시?
 
고대 인도의 전설이나 고대 아일랜드의 신화 등에는 오늘날의 달 로케트나 인공 위성, 또는 비행기를 연상케 하는 것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기원전에 만들어진 고대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에 사람을 태운 <차>가 무척 빠른 속도로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치솟았다든지, 그것이 날 때에는 하늘 전체가 밝아졌다든지, 또는 혜성처럼 날아갔다든지 하는 말들이 나옵니다.
이러한 것은, 저 케이프 케네디에서 쏘아 올리는 달 로켓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공중을 날아가는 기계는 검은 쇠로 만들어졌고, 코끼리 만한 크기의 장치로 움직여진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공중을 나는 비행 접시를 보았다고 하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1972년 7월 26일 밤, 리오데자네이로의 부근 상공을 비행 접시 편대가 날았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날 밤, 교외에 있는 축구장에 2천 명이 운집해 있었는데, 상공을 나는 모선 같은 비행 접시가 뒤에 일곱 개의 비행 접시를 거느리고 소리도 없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관중들은 놀랐고, 라디오 방송국의 아나운서는 경기 중계를 중지하고 비행 접시의 출현을 방송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 접시에 관한 것은 옛 기록에도 나옵니다. 13세기 때의 영국의 한 수도원의 기록에는 거대한 물체가 천천히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17세기의 프랑스 기록에는 '하늘을 나는 배'라고 씌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리용 마을에 '하늘을 나는 배'가 착륙하여 세 사람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내렸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그 네 사람을 요술쟁이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그들은 모두 프랑스 사람으로서 이상한 사람에 의하여 하늘에 올라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지 못하던 여러 가지 기술을 배워 그것을 지구의 인간에게 전하기 위해 다시 지구로 보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꾸며낸 공상적인 이야기로 여기겠지요,
 
작가와 작품
 
허버트 조지 웰즈는 1866년 영국의 켄트 주의 런던에 가까운 브롬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사기 그릇 장사를 하였으며 생활은 그리 넉넉한 편이 못 되었습니다. 웰즈는 여덟 살 때부터 열 세 살 때까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남의 가게에서 일하여 돈벌이를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특히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게 일이 싫어져서 약국에서 일하기도 하고 중학교의 조교사 등을 하면서 자기 공부를 계속 하였습니다.
그 후 런던의 이과 사범 학교에 입학하여 거기에서 유명한 생물학자 헉슬리로부터 교육을 받으며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웰즈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같은 명문 대학을 나오지는 못했으나, 뛰어난 재능과 머리로 열심히 노력하여 작가로서 위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는 스무 살 때 결핵에 걸려 요양 생활을 할 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공상 과학 소설을 썼습니다. 타임 머신이라는 기계를 발명한 사나이가 미래의 세계나 과거의 세계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작품 <타임 머신> (1895년)으로 웰즈의 이름은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계속 기발한 착상의 공상 과학 소설을 발표했으며, 그 중에는 <투명 인간> <우주 전쟁> 등이 있습니다. <우주 전쟁>에 나오는 워킹 마을은 실제로 웰즈가 살았던 곳으로, 소나무가 우거진 조용한 마을입니다. 이곳에서 <우주 전쟁>과 <투명 인간>을 썼습니다.
웰즈는 그 뒤 많은 소설을 썼으며, 그 외에도 사회, 정치, 교육, 과학, 역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무려 백 권이 넘는 책을 써냈습니다.
웰즈는 사회 개혁을 염두에 두고 세계 정부라는 이상 사회를 부르짖었고, 인류의 진보에 대하여 낙천적인 희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세계의 현실적인 움직임을 보고 비관적이 되었으며, 제 2차 세계 대전 때 원자 폭탄을 사용한 사실을 알자 완전히 희망을 잃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 여든 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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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지구의 마지막 날-필립 와일리 PHILIP WYLIE 지음 2021-09-22 0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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