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와일리
1920년 미국 태생. SF작가로서의 유명한 지위를 확보했으며 SF에서 처음으로 슈퍼맨(초인)을 등장시켰다. "투사" "소실" "지구가 없어지고 난 후" 등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원수 박홍근/문학박사 최인학
공학박사 양옥룡/이학박사 김희규
전교육감 김성묵
책머리에
우리 인류는 드디어 우주 여행의 시대가 왔다고 크게 떠들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겨우 가까운 달나라에 갔다 올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 백년 후가 되면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소풍가는 기분으로 화성이나 금성 등으로 여행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주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면 여러분들의 세대에서 그 우주 여행의 꿈이 이루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도 우주의 돌발적인 변화가 없다고 전혀 예측할 수 없으며 우리 지구는 어느 때 어떤 원인으로 인해서 멸망하게 되지 않는다고 절대 단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우리 인류는 멸망해 버린 지구를 버리고 저 광대한 우주로 탈출 여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러한 만약의 경우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가정하고 그 때 벌어질 여러 가지 변화를 사실화해서 쓴 작품입니다. 어떤 위험에 부딪혀도 최후 순간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학자들의 인내와 지혜는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킬 것입니다.
<차 례>
무서운 사자··················· 6
마지막 날의 모임················ 12
우주에서의 손님················· 17
멸망 뒤에 새벽이················ 20
세계는 마지막인가?··············· 23
많은 용기가 필요················ 29
인류의 대 이동················· 33
지구상은 대 혼란················ 35
이 주······················ 41
뉴욕 마지막 밤················· 46
헨드론 기지··················· 52
괴성의 접근··················· 57
최초의 통과··················· 61
정 찰······················ 72
모험담····················· 82
공 격····················· 100
마지막 수비·················· 103
탈 출····················· 108
기쁨의 환성·················· 112
일 기····················· 118
만세 그리고 안녕················ 125
지구 마지막 밤················· 131
출 발····················· 136
우주 여행··················· 141
두 세계의 충돌················· 146
새 지구···················· 152
열려라, 참깨!
가아네의 약점················· 167
믿을 수 없다·················· 171
요한의 근심·················· 181
심부름하는 로봇················ 187
무서운 밤··················· 195
작품 해설··················· 203
등장 인물
토니 오엔 : 용감한 청년으로 헨드론 박사를 도와 우주선을 만들어 브론슨 베타로 출발한다. 증권 회사의 직원이나, 베타에서 살기 위한 기초 과학과 농업 기술을 익히고 우주선 건설을 위한 젊은 과학자들을 찾으러 다닌다.
헨드론 박사 : 브론슨 교수가 지구를 향해 오고 있는 이상한 별을 발견한 때부터 우주선 건설을 계획한다. 드디어 우주선을 완성해 베타로 가게 된다.
이브 : 헨드론 박사의 딸이며 토니의 약혼자로 수학자이다. 브론슨별의 접근을 계산한다.
브론슨 교수 : 브론슨별을 발견한 케이프타운의 천문대장.
론진 경 : 케이프타운의 수상으로 데이브를 헨드론 박사에게 보낸다. 우주선을 만드나 성공했는지는 결국 알 수 없다.
데이브 란스텔 : 비행사로 브론슨 교수가 준 마이크로 필름을 헨드론 박사에게 전달하고 그대로 헨드론 박사의 계획에 적극 참가한다.
반더빌트 : 돈 많은 노총각으로 소탈한 사람. 헨드론 박사의 계획에 참가해서 많은 공을 세운다.
잭 테일러 :토니가 찾아낸 젊은 과학자. 헨드론 기지에서 충실하게 일한다.
무서운 사자
"전보입니다."
라고 말을 한 예쁜 스튜어디스는 무척 놀란 표정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삼십 분 동안에 한 사람에게 무려 일곱 통의 전보가 오고 있었으니....... 주위의 승객들도 이상한 눈초리로 데이브를 힐끔힐끔 쳐다보곤 하는 것이었다. 데이브는 전보를 뜯어보았다.
"데이브 란스텔 씨, 당신이 운반하고 있는 가방 속에 든 비밀에 1만 달러를 지불하겠습니다. 여섯 시간만 딴 신문사보다 먼저 가르쳐 주실 수 없습니까?"
신문사들 사이의 경쟁으로 30분 동안에 천 달러에서 무려 1만 달러로 껑충 뛰게 되었다. 데이브가 운반하고 있는 검정 색 가방에 무엇인가 중대한 비밀이 있다는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데이브 자신도 자기가 운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운반은 여객기의 조종사가 하는 것이고 자기는 단지 보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이상한 일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놀러 갔을 때 그는 그 곳의 천문대 대장으로부터 그 검정 색 가방을 미국까지 운반해 달라고 하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데이브는 그날 낮에 케이프타운에 있는 론진 경의 큰 저택에 초청되었다. 론진 경은 데이브에게 날카롭게 생긴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브론슨 교수님이시다. 여기 천문대의 책임을 맡고 계시지."
교수는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데이브의 손을 힘차게 쥘 뿐이었다.
"앉아라, 데이브."
론진 경의 말에 데이브와 교수는 자리에 앉았으나 여전히 교수는 입을 열지 않고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론진 경은 사냥이 유일한 취미이며 특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벽에는 사자의 머리와 들소, 코끼리의 머리 등이 잔뜩 걸려 있었다.
"데이브를 여기에 오라고 한 것은 극히 중대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라고 론진 경은 말을 시작했다.
"지구에 대해서 이 이상 중대한 발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네에게 그걸 가르쳐 줄 수가 없네."
"왜요?"
데이브가 그렇게 물었을 때 교수는 시선을 론진 경에서 데이브를 거쳐 벽의 사자에게로 옮기더니,
"저 사자가 없어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무의식중에 나오는 말인 듯했다. 론진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 침묵을 깨고 데이브는 교수에게 물었다.
"왜 사자가 없어진다는 겁니까?"
브론슨 교수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딴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들이 당신을 부르게 된 것은 당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중대한 발견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뉴욕으로 보내야 합니다. 이 일을 맡아 주신다면 당신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프랑스로 갈 수 있게 제트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중대한 일이라면 그 물건이 무엇인가를 알지 않고는......?"
"필름입니다."
"필름이라고요?"
론진 경은 옆 책상에 덮어놓은 표범 가죽을 들쳤다. 문제의 검정 색 가방이 놓여 있었다.
"물건은 그 가방 속에 들어 있네. 브론슨 교수가 천문대 대장이니까 대강은 짐작할 수 있겠지. 이 필름은 남반구에 있는 최대의 천체 망원경으로 찍은 것으로, 북반구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이네. 이것을 뉴욕 시의 헨드론 박사를 만나서 직접 전달해 주면 되는 것이다."
브론슨 교수가 말했다.
"우리들이 발견한 사실이 조금이라도 세상 사람에게 흘러 나간다면 무서운 일이 벌어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 필름이 지니고 있는 비밀에 대해서는 당신에게도 가르쳐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헨드론 박사는 지금 윌슨 천문대에 계시지만 당신이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는 돌아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론진 경은 지도를 펼쳤다.
"안전하게 비밀을 지키고 빠르게 전달하려면 자네는 제트 여객기로 프랑스에 가서, 거기에서 다시 미국으로 가는 제트 여객기를 갈아타도록 하게. 필름을 전달한 다음엔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 뉴욕에 머물고 있든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든지 아니면 지구상의 어디든지......."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구상 어디에라도....... 란스텔 씨, 사실은 내가 직접 운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천문대를 비워 놓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내가 발견한 중요한 것을 운반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 눈치 챌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체 하십시오. 누가 물어도 그저 모르는 체 해야 합니다."
란스텔이 두 사람이 부탁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또 스튜어디스가 전보를 가지고 왔다.
"브론슨 교수가 발견한 것에 대해 당신과 독점 인터뷰를 하고 싶다. 2만 달러를 드리겠소."
이 전보는 최초 천 달러 주겠다는 사나이에게서 온 것이었다. 만약 그 비밀을 안다면 돈 같은 것을 산더미같이 쌓아 놓아도 조금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것인데.......
그 날 저녁 뉴욕은 날이 따뜻하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헨드론 박사가 살고 있는 높은 아파트까지 들려왔다. 박사의 딸 이브 헨드론은 테라스에서 안개가 자욱한 맨해튼을 바라보다가 공항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는 그녀의 약혼자 토니가 있었다. 아파트 안에서는 유쾌한 음악이 흐르고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창에 비치고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이브......."
"아무 것도 아니에요."
"당신과 당신 아버님은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게 분명해. 신문 기자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이 무엇인가 계획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과학의 세계에는 항상 무언가 일어나고 있어요."
이브는 말을 딴 곳으로 돌렸다. 그러자, 문이 왈칵 열려서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방안에서는 여섯 사람이 춤을 추고 있었다.
"토니!"
"왜?"
"저 사람들을 어떻게 내보낼 수가 없을까요?"
"할 수 있지. 나는 남아도 좋겠지?"
토니는 즐겁게 말했다.
"안돼요. 일이 있어요. 토니, 당신께만 비밀을 말씀해 드리죠. 란스텔이라는 사람이 지금 막 남아프리카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서재에 와 있어요."
"란스텔이라니, 누구지?"
"나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바쁘다는 일은 도대체 뭐지?"
"토니, 사실 란스텔 씨는 요 몇 개월 동안 남아프리카 천문대에서 이상한 별의 움직임을 계속 관측한 결과를 가지고 왔어요. 지금은 그것밖에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확실하게 밝혀지면 전 세계에 발표하게 될 거예요. 부탁이에요, 토니! 저 사람들을 보내 주세요."
토니는 이브가 떨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를 안심시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알았어, 이브! 내보내도록 하지."
얼마 후 손님을 보내고 나서 토니는 남아프리카에서 온 데이브와 인사를 나눈 후 자기 아파트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의 모임
토니가 항상 다니는 클럽에는 일없는 사람들이 모여 체스(서양 장기)를 두거나 신문을 읽고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제복을 입은 보이가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심부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니는 클럽이 오늘 따라 활기에 차 있는 것을 느꼈다. 모두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통 때와는 달리 왜 이렇게 떠들썩한가를 토니는 알고 있었다.
"야, 토니......!"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존! 이 소동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네게 물어보고 싶다. 너는 헨드론 박사를 잘 알고 있지?"
열 사람쯤이 토니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 중에는 며칠 전에 이브의 집에서 쫓겨 나온 사람도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물었다.
"과학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7"
"난 전혀 몰라."
"그러면 그 마지막 날의 모임이라는 것은 도대체 뭔가?"
"마지막 날의 모임인가 뭔가는 전 세계의 유명한 과학자들의 모임이라더군. 수개월 전부터 모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
"전 세계?"
"암, 최고의 과학자들뿐이래. 헨드론 박사가 그 회장이라는 소문이야."
"누구에게 그런 소릴 들었나?"
"오늘 오후 어떤 신문 기자에게 들었어. 수개월 전 어느 유명한 과학자가 중대한 발견인가 뭔가를 한 모양인데 너무나 놀라운 것이어서 과학자들도 겁을 내고 있다는군. 그리고 수개월 동안 모임을 갖고 의논을 계속해 온 모양이야. 처음에는 별로 주의를 끌지 않았으나 모이는 과학자가 거물급인데다가 아무런 발표도 없자,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
"그런데, 그렇게 중대하다고 할 수 있는 증거라도 있는가?"
"하여튼 그들은 암호로 서로 통신하고 있다는군."
"암호?"
"글쎄, 편지나 전보나 모두 암호로 하기 때문에 그 사본을 손에 넣은 신문사도 그것을 해독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
"마지막 날 모임의 회원과 그 일과는 무슨 관계라도 있는가?"
"암호로 통신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마지막 날 모임의 회원이라는 것이 밝혀졌어."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토니는 클럽을 나왔다. 그를 태운 택시가 큰 거리 모퉁이에 섰을 때 신문을 파는 소년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차안에서 몸을 내밀어 신문을 샀다. "과학자들이 비밀리에 마지막 날의 모임을 결성함!" 이라는 큰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에 돌아오니 가정부인 셀리 아줌마가 맞아 주었다. 의자에 앉은 토니는 이브의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줌마, 하이볼 좀 갖다 줘요."
토니는 가정부에게 그렇게 말하고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놀랄 만한 중대한 발견에 전 세계의 과학계는 크게 흥분하고 있다. 미합중국을 위시하여 각 국의 과학자는 모두가 부정을 하고 있지만 본사는 10통 이상의 전보의 사본을 입수했다. 그것은 미국의 물리학자나 천문학자 등이 독일의 에른스트 교수와 프랑스의 삐엘 두갱 교수와의 사이에 교환된 것이었다. 본사에서 그 과학자들을 조사해 보니 예일대학의 레밍 교수, 콜롬비아 대학의 벨디스 박사, 유니버셜 전력의 헨드론 박사, 프린스턴 대학의 카터 교수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 사람들은 암호 통신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지만 몇 사람은 전보의 사본을 보이자 할 수 없이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리나, 그것은 몇 개의 연구 단체가 공동으로 하고 있는 순수한 과학적 연구라고만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그 연구가 일반 대중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 연구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모두가 거절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가는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케이프타운의 론진 경과 브론슨 교수가 보낸 밀사가 수수께끼의 검정 색 가방을 가지고 미국에 도착한 즉시 헨드론 박사의 아파트로 직행했다. 헨드론 박사도 밀사의 도착 시간에 맞추어 윌슨 천문대에서 아파트로 돌아와 수수께끼의 검정 색 가방을 전달받았다. 이 불가사의한 비밀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서 짐작할 수 있다. 즉 이 비밀 때문에 마지막 날의 모임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도대체 그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토니는 신문을 던지고 의자에다 몸을 푹 파묻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신문에 난 그 정도로는 확실한 것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마지막 날의 모임? 그것도 신문에서 만들어 내서 공연히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여튼 신문에서 무엇인가 확신이 있으니까 떠드는 것이겠지.>
마침 그 때 셀리 아줌마가 하이볼을 가지고 왔다. 그는 컵을 입에 대면서도 계속 생각에 잠겼다. 하여간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거든 내가 감기에 걸려 자고 있다고 말해 줘요. 옷을 따뜻하게 입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아, 졸려....... 내일은 정말 바쁘겠다."
그는 하이볼을 단숨에 마셔버리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브에게 전화를 두 번이나 걸어 봤으나 계속 통화 중이어서 단념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우주에서의 손님
다음 날 아침 토니는 뉴욕타임스를 보고 놀랐다. 그 일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크게 실려 있었다.
「다른 항성계의 별이 지구에 접근! 헨드론 박사는 드디어 중대한 사실을 발표! 물리학, 천문학의 거물급들 모두 여기에 참가하다.」
가정부는 그 기사를 보고 무언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보통 때보다 빨리 침실에 커피와 신문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로 알려진 헨드론 박사는 오늘 오전 1시에 기자 회견을 갖고 전 세계 60명의 과학자를 대표하여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토니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남아프리카,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유명한 과학자 60명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똑같은 성명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발표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케이프타운 천문대의 브론슨 교수가 발견한 우주의 이변에 대해서 우리들은 모든 진상을 밝히기로 결정했다. 11개월 전 남쪽 하늘의 에리다누스 자리를 찍은 필름을 조사하고 있던 브론슨 교수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두 개의 별이 아케루나별에 가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두 별은 최근에 와서 갑작스럽게 빛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 광선이라고 생각했으나 교수는 두 장의 필름을 비교해서 조사해 본 결과 그 두 개의 별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문학적 거리에 있던 별이 짧은 기간 동안에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은하계 밖에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행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들은 그 두 별을 브론슨 알파와 브론슨 베타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두 별은 같은 속도로 지구를 향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며 현재는 천왕성의 옆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알파의 크기는 천왕성과 비슷하고 베타는 지구와 같은 정도의 크기라고 예측된다. 베타는 알파의 주위를 돌면서 태양계에 가까이 다가오고 그 위치는 항상 변동되고 있다.
이 은하계 우주에는 무수한 항성이 있고 그 중 적어도 수 백만 개의 항성은 지구와 같은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행성이 어떤 원인으로 본래의 항성에서 떨어져 나와 우주를 돌아다니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끝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행성이 지금에 와서는 태양의 인력으로 인하여 끌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헨드론 박사가 발표한 성명문은 여기서 끝나고 그 다음에는 신문 기자의 질문과 박사의 대답이 실려있었다.
「"지구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아직은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향은 있겠지요?"
"아마 지구상의 생활 조건을 많이 변화시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변화입니까?"
"아직 발표할 정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는가에 대해서는 그것을 담당하는 연구 부서에서 연구 중입니다. 명확한 결론이 나오는 대로 발표하겠습니다."
"다음 발표는 언제쯤 예정하십니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하고 싶지만......."
"내일입니까? 아니면 일주일 이내?"
"한 달 이내라고 생각합니다."」
토니는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았다. 이 발표는 지구가 멸망한다던가 혹은 멸망하는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멸망 뒤에 새벽이
토니는 곧 헨드론 박사의 아파트로 달려갔다. 경찰관이 지키고 있었고 사람들이 길을 온통 메우고 있었다. 뉴스 영화사와 텔레비전 방송국의 자동차도 있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절당한 기자와 아나운서가 사람들 사이를 누비면서 취재하고 있었다. 토니는 경찰 책임자를 만나서 물었다.
"헨드론 박사나 미스 헨드론이 내가 오면 만나자고 전해 두었을 텐데....... 나는 토니 오엔이라고 합니다."
그 경찰관은 그를 통과시켜 주었다. 박사는 아직 자고 있었으며 이브가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니, 토니! 어서 들어오세요."
그녀의 뺨은 흥분으로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토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신문 보셨죠? 토니, 우리들은 한 시에 기자회견을 하고 세 시에 겨우 자유롭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아직 주무시고 계셔요."
"당신도 좀 잤소? "
"아뇨.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
"예, 그러나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어요. 당신을 만나고 싶었어요."
"발표한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
"물론이죠."
"틀림없이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모양이군. 혹시 멸망의 날이라도 온다는 건가?"
"그래요. 그러나 멸망의 날 뒤에는 새 아침이 준비되어 있대요. 이 지구는 파괴되고 말아요, 그러나 이 지구에 있는 사람 중에 몇 사람인가는 살아남을 수가 있을 거래요."
"도대체 무슨 소리야?"
"두 개의 별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죠? 그리고 지구의 궤도에 들어와 지구와 충돌해서......."
토니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틀림없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건가?"
"처음에는 충돌하지 않아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지구의 바로 옆을 지나가는 거래요. 그러나 두 번째는 충돌해요. 지구와 같은 크기의 브론슨 베타는 지구의 옆을 스쳐 지나가지만 큰 쪽인 알파는 이 지구와 충돌하게 되는 거래요."
"음....... 확실해?"
"아무리 계산해봐도 틀림없어요. 현재의 천문학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알고 계시죠?"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마지막 날의 모임이 연구하고 있는 게 바로 그거예요. 토니, 베타에 바꿔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베타에 바꿔 탄다? 무슨 소리야?"
"제 얘기를 더 들어보세요. 물론 비행기나 자동차를 바꿔 타듯이 쉽지는 않겠죠. 그러나 우리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술과 정신이 있다면 가능할 거예요. 브론슨 베타는 지구와 같은 크기고 공기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그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그곳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될 게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지구는 없어지고 새로운 지구가 생긴다는 소리군. 그래서 자동차를 바꿔 타듯이 바꿔 탄다....? 그건 그렇고, 그 별은 우리가 살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그 별은 지구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어요. 아마 몇 백만 년 동안 얼음에 쌓여 있었겠죠. 그러나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태양열을 받아서....... 생각해 보세요. 토니, 그 별도 옛날에는 지구가 주위를 돌 듯이 어떤 항성의 주위를 돌고 있었어요. 지구처럼 사람들도 살고 있었겠죠. 문명이 발달되고, 문화가 지구 이상으로 발달했었겠죠. 본래의 궤도를 떠나게 되자 바다나 강이나 공기가 모두 얼어 버렸겠죠. 그러나, 태양 가까이 다가오게 되니까 계속해서 녹고 있을 거예요. 다시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해 가고 있는 거예요."
지구의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하더라도 토니에게는 계속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는 이윽고 이브와 헤어져서 지하철로 향했다.
그는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어할까? 오늘은 어제보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단 말인가?>
지하철 옆에 있는 신문 보급소에는 신문사의 트럭이 도착해 신문 뭉치를 내려놓고 있었다. 사람들이 신문을 읽고 있었다. 담배를 물고 있는 신사도, 밍크 코트를 입은 여배우도, 더럽혀진 작업복의 노동차 등 모두가 초조한 표정으로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소리내어 웃고있는 사람도 있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상하고 재미난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세계는 마지막인가?
월가(뉴욕 시에 있는 세계의 금융․증권 시장의 중심지)는 휴업이나 다름이 없었다. 모든 주식의 가격이 떨어졌다. 브론슨별의 움직임이 확실하게 알려질 때까지는 무역도 정지될 것 같았다. 토니는 자기 책상 서랍에서 위스키 병을 꺼내 들고 마치 우유를 마시는 것처럼 마셔 버렸다. 그리고 모자를 쓰고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아주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들, 행상인, 중년 신사, 잘 차려 입은 여자, 주부, 노동자, 학생, 사무원 등 어느 곳이나 모여들어 와글와글 떠들어 대고 있었다. 토니는 어떤 술집으로 들어갔다. 아직 대낮인데도 안에서는 이미 한밤중같이 웅성대고 있었다. 근무 복장 그대로인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토니가 알고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은 몇 번인가 계속 건배를 했다.
"브론슨 영감님에게 건배! 곧 끝장이 날 지구를 위해 건배!"
방안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은 불안과 흥분으로 아우성치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본 토니는 한쪽 모퉁이에 반더빌트 씨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40살이 다 됐는데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큰 부자였다.
"토니? 누구보다도 만나서 반갑다. 앉게나. 자네는 지금부터 어떻게 할건가? 우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겠지? 헨드론과 친하니까!"
"아......."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내게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좋다. 나는 딴 사람들보다 먼저 알아야 될 인간은 못되니까.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것 전부가 이제 와서 끝장이 나다니....... 그런데 아무래도 오늘 아침 발표는 이상하다.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계속 발표하리라고 생각은 하지만 왜 사실을 감추고 있을까?"
반더빌트는 돌연 일어나더니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밖에 나와서 신문을 사 보니 대통령의 성명이 실려 있었다. 대통령은 모든 국민에게 생업에 종사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토니는 택시를 타고 핸드론 박사의 아파트로 갔다. 군중과 경찰대가 아파트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어서 토니는 좀 먼 곳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겨우 안에 들어가 보니 헨드론 박사의 서재에서 격렬하게 논쟁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듯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이브가 응접실에서 토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큰 소리가 울려 나오는 서재 쪽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누가 왔어?"
"여섯 사람이 왔어요. 국무 장관, 주지사, 대재벌인 보강 씨, 신문사 사장 그리고 또 두 사람......."
"아버님이 그 사람들에게 진상을 얘기한 모양이지?"
"아버님은 최초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를 말씀하셨어요. 최초에는 브론슨 알파도 베타도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지나가서 태양 저쪽을 돌지만, 그러나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무서운 일?"
"그 중 한 가지는 해일(강풍이나 지진 등으로 인하여 갑자기 육지를 휩쓰는 높은 파도)이에요. 아시겠죠? 달은 지구의 80분의 1정도 무게지만 곳에 따라서는 10~20미터의 높은 조수를 들이닥치게 하죠?"
"알고 있어."
"브론슨 베타는 지구와 같은 크기일거예요. 토니, 게다가 알파는 3, 4배 정도로 계산이 나왔어요. 어떻게 될는지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뉴욕의 건물은 모두 물밑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고, 또 파도 높이는 어느 정도나 될지 계산할 수도 없어요. 전 세계의 해안에 있는 도시는 모두 떠내려가고 말겠죠. 파도가 애팔래치아 산맥 기슭까지 도달할 거예요. 그런 일이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일어나죠. 네덜란드의 전부, 프랑스와 독일의 반, 인도와 중국의 반이 물 속에 가라앉을 거예요. 해일 외에도 지진이 일어나게 되죠."
"지진?"
"땅 표면이 갈라지고 심한 지진 및 화산이 폭발하게 되죠. 몇 사람의 과학자는 아버지에게 '알파의 통과만으로도 지구는 조각조각으로 파괴되고 말 것 같다'라는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지구가 이그러질지는 몰라도 파괴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버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지7"
"처음 통과할 때는 지구가 파괴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인구의 5분의 1밖에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물론 상상이지만요."
토니는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5분의 1......? 전 인류의 5분의 1?"
닫혀있는 문 저쪽의 이야기 소리는 또 크게 들려 왔다. 누군가가 크게 화를 내며 떠들고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당신 아버님에게 화를 내고 있는 모양이군."
"누구일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헨드론 박사가 나왔다. 박사는 두 사람을 한참 쳐다보았다. 서재 안에서 또 큰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언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그 사람들이 나가고 토니는 박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남아프리카에서 보내온 필름이 놓여 있었다.
"토니! 오늘 거리에 나가 봤나?"
"예! 소동이 대단했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조용해지겠지. 지금 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군. 브론슨 알파가 지구와 충돌하게 된다는 것을 믿지 않아. 그 이유는 이러한 일이 지금까지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과 또 그런 것을 믿기 싫어하는데 있겠지. 토니, 내일부터는 세상은 옛날같이 되돌아 갈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던 일이지만 곤란한 것이 있네."
"무슨 뜻인가요?"
"즉 세상 사람들은 현미경의 10분의 1만큼도 천체망원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여기에 왔던 사람들도 현미경으로 발견된 것이라면 자기 자신이 보지 않거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고 믿어 버렸을 것이다. 즉, 의사가 사람 몸에서 살을 조금 잘라내서 현미경으로 조사해 보고는 '안됐습니다만 당신은 얼마 오래 못사시겠군요.' 라고 말을 하면 무조건 믿어버릴 것이며 자기가 직접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확인하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네."
"들여다봐도 모를 테니까요."
"물론 그렇지. 하여튼 그 사람들은 브론슨 교수의 천체 사진을 보겠다고 해서 필름을 보여 주었다. '자, 보시오. 이 둥근 점이 모두 항성이오. 그러나 이 희미한 빛은 다릅니다. 이 두 개는 이동하고 있습니다. 태양계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그 중 한 개는 지구에 충돌하게 됩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그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알았습니다.'라고 말하더군. 마치 축제가 있어서 적극적으로 그 날은 즐거운 휴일 정도의 느낌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난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이 두개의 별은 지구의 옆을 스쳐 지나가게 되는데, 그 때에는 200미터 정도의 해일이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 런던 등 지구의 모든 곳을 뒤덮어 버릴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어. 그러자, 그들은 완강하게 반대하기 시작했네. 그런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머리를 갖고있는 거야."
"해일뿐만이 아니라고 이브에게 들었습니다만......."
"그래, 대단한 지진이 일어난다. 도시의 반이 파괴되고 지구가 생긴 후 처음인 엄청난 화산 활동이 일어날 거야. 인류의 5분의 1정도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네.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를 몇 군데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뉴욕과 워싱턴은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말해 줬지. 그랬더니 그들은, 내일은 더 안심할 수 있도록 발표해 달라고 하더군."
"지구의 마지막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제 1회의 통과까지 2년, 그리고 그 8개월 후에는 브론슨 알파가 태양의 반대쪽을 돌아 지구로 다가온다. 그것으로서 인류는 끝장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인간은 지구를 탈출하면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토니, 브론슨 베타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 되거든. 그래서 그 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인류는 삶을 계속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용기가 필요
토니는 란스텔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남아프리카 사람은 뉴욕을 구경하고 싶어하므로 두 사람은 밤늦도록 거리를 돌아다녔다. 이튿날 아침 깼을 때에는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다. 토니는 가정부인 셀리 아줌마를 불러서 물었다.
"란스텔 씨는 일어나셨나요?"
"한 시간쯤 되었어요. 아침 식사를 같이 하시겠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그래요......?"
토니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란스텔은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신문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란스텔 씨, 이 세상이 끝장난다는데 그렇게 일찍 일어나셨군요."
"아, 마지막 날의 모임에 가입하려면 좋은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러면 이미 결심했군요."
"예, 결심했습니다."
"케이프타운에는 가지 않을 작정입니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여기가 본부가 될 모양이고 헨드론 박사가 계시니까요."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도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지막 날의 모임은 어떤 목적으로 결성되었는지 아십니까?"
"예, 베타에 가기 위한 우주선을 만드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라더군요. 두 개의 별을 계속 관측하면서 우주선을 만들어 브론슨 베타로 인간을 옮길 계획이라고 합니다."
"일은 어느 정도나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십니까?"
"이제 겨우 착수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신문에는 대통령의 기자 회견이 실려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도 현재 60명의 과학자들이 염려하고 있는 것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국민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 토니가 회사에 출근하니 헨드론 박사의 친구인 케플러 교수가 찾아 왔다.
"이 증권을 팔려고 벨기에에서 방금 도착했네."
그렇게 말하면서 교수는 증권이 가득 든 가방을 토니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거긴 어떻습니까?"
"마찬가질세."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케플러 교수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사과에다 대포를 쓰는 거나 다름없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럴 거야. 우리 부부는 장래를 위해 증권을 사느라고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했었네. 그리나 지금에 와서는 장래라는 것이 없어졌으니 이 증권을 팔아서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볼까 생각하고 있네."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어제보다 증권의 값이 올랐습니다. 내일은 더 오르겠지요. 이 세상이 마지막이 된다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팔리지 않겠지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네. 그러나 대단한 충격을 받은 것만은 틀림없을 걸세, 지금까지 애써 쌓아놓은 것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는 데 어떻게 쉽게 믿어지겠나? 그러나 언젠가는 믿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되겠지. 30억의 인류 전체가......."
그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토니가 타고 있는 자동차는 주정꾼들의 방해로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팔짱을 낀 채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온통 휩쓸고 있었다. 가까스로 집에 돌아오니 란스텔은 헨드론 박사의 일로 비행장에 갔다고 했다. 토니는 헨드론 박사의 아파트로 갔다. 마침 헨드론 박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헨드론 박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토니, 우리들은 계획대로 일을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자네도 참석해야겠네."
"제가 무슨 일을 하겠어요?"
토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과학자가 아닌 자기 같은 사람은 아무 쓸모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승무원의 한 사람이 되는 거야. 자네는 건강하고 또 용기도 있잖아. 그 별로 간다는 것은 이 지구에 남아있는 것보다 더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네. 지구가 브론슨 알파와 충돌하기 직전에 우리들은 우주선을 타고 탈출한다. 사람들은 그 순간까지도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틀림없이 대단한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 때 자네와 같이 침착한 사람들이 꼭 필요하게 된다. 알겠나?"
"감사합니다, 박사님!"
"그렇다면 자네도 뭔가 실제로 필요한 것을 배워 두게. 증권을 팔고 사는 기술 같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네. 거기에서는 농업, 수공업, 기초적인 공업, 광물 제련 같은 지식이 필요하게 된다. 아직 2년 정도 남았으니까 천천히 배우도록 하게."
인류의 대 이동
2년 동안에 일어난 변화를 모두 기록할 수는 없다. 인간의 생활이 모두 변하고 말았으니까.......
브론슨별의 발견을 알리고 난지 1년이 지나서야 겨우 공포의 별이 보이게 되었다. 두 개의 별이 차츰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확실히 육안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에 확실한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그 후 1년 정도 지난 다음부터였다. 그래서 헨드론 박사가 발표한 것은 간단했다.
「브론슨별이 접근해 오면 지구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를 아직까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도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건 틀림없다. 해일로 인해서 해안에 있는 모든 도시는 물론, 해발 200미터 이하의 모든 마을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큰 해일은 지구가 생기고 나서 처음일 것이다.
해일의 높이는 최소한 100미터가 넘게 될 것이 예상되며, 평지에 있는 모든 것을 휩쓸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화산 활동과 지진이다. 브론슨 볕은 지구에 2회 접근할 것으로 계산되고 있으며, 두 번째 접근할 때는 지구와 스치거나 혹은 정면 충돌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처음 접근할 때 일어나는 해일, 지진, 화산 폭발의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첫째로 전 지구상의 해안 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화산이 없는 높은 고지로 피난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들을 위한 식료품, 의복, 주택의 준비가 필요하다. 브론슨별의 접근으로 인하여 해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마 내년 8월 이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며, 따라서 인류의 이동은 급히 서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발표가 있고 난 어느 날, 토니는 뉴욕 중앙 역에 갔었다. 대합실에는 사람이 발 들여놓을 틈도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날은 인류의 2분의 1인 15억 명에게 이동 명령이 내려진 날이었다. 그러나 지구가 끝장이 난다는 것을 믿고 있는 사람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다. 토니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야, 헨리. 정말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나? 머리가 흰 선생 몇 사람이 혜성이 가까이 온다고 한들 어떻단 말인가! 우리들을 뉴욕에서 쫓아낸다는 건 너무 심하잖아. 정신이 돌아버린 과학자의 헛소리를 정말로 믿다니!"
"지구의 마지막이라지? 그 끝장을 살아서 구경하게 됐으니 감사하지 뭔가. 정말 바다가 말라붙어 버리고 땅이 갈라진다면 나는 웃어 줄 테다. 세금을 아직 못 냈다고 말이야."
"일기 예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서 지구가 무엇과 충돌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리야?"
토니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인간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지구가 끝장이 난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피난 명령에 따르고 있지 않는 사람도 수십만 명이나 되었다.
지구상은 대 혼란
토니는 젊은 학생을 쳐다보았다. 붉은 색의 머리와 주근깨가 많고, 후리후리하게 키가 큰 청년은 아직 어려 보였다.
"나는 헨드론 박사의 심부름을 왔습니다. 여기의 주임 교수님이 당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당신이 연구한 빛에 관한 논문은 이 대학원에서는 처음이고 정말 훌륭하다고요."
청년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착상이 좋았을 뿐입니다."
"무척 겸손하시군요. 사실 지금 헨드론 박사가 필요한 사람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일이라서 아직 당신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전부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박사가 당신을 합격시킬지 혹은 불합격시킬지 저로선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박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 이렇게 여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급료에 대해서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처할 곳과 식사는 제공합니다."
청년은 빙그레 웃었다.
"제게 헨드론 박사 같은 분과 함께 일하라고 하시는 것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왜 헨드론 박사 같이 훌륭하신 분이 나같이 젊은 사람을 구하려고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브론슨별의 접근에 대비해서 과학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계획이시라면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수천 명 이상 있을 텐데요."
토니는 청년의 빛나는 눈을 쳐다보면서 이 청년 같으면 헨드론 박사와 그 위원회가 틀림없이 합격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청년, 잭 테일러는 아직 20세 밖에 안 된 천재적인 과학자이며 대학 보트 부의 선수라고 했다.
"테일러 씨, 만약 박사가 몇 명의 사람들을 안전한 장소에 옮길 계획으로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면 당신은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테일러는 생각에 잠겼다.
"글쎄요. 그런데 정말 안전할 만큼 좋은 장소가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는 없습니다."
토니는 지구상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테일러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얼굴이 퍼렇게 되어서 주근깨가 더 드러나 보였다.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러면 당신은......?"
토니는 그 말을 막았다.
"헨드론 박사를 면회할 수 있는 증명서를 드리겠습니다. 가서 만나 보시겠습니까?"
한참동안 테일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눈에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별안간 벌떡 일어서서 창가로 갔다.
"뉴욕에서 만납시다. 곧 출발하는 게 좋을 겁니다. 또 만납시다."
대학의 교정엔 거의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테일러와 같이 진정으로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아무래도 죽게 될 바에야 연구실에서 죽겠다고 남아 있었다.
토니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유능한 화학 조교수가 있는 곳으로 급히 갔다. 그는 헨드론과 그 위원회가 작성한 긴 일람표에 콜로이드(기체, 액체, 고체 중에 분산 상태로 있는 입자) 화학의 연구자로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토니는 농업 기술 공부를 시작하는 동안에 언젠가 모르게 헨드론 박사의 인사 참모가 되어 버렸다. 토니에게는 사람을 정확히 분별하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되어 우주선에 탈 사람들을 선택하는 중대한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토니는 출발한 지 3주일이 지나서 뉴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헨드론은 몇 군데 지방에 공장과 연구소를 만들었지만 뉴욕에 있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편리하기 때문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칠월이 거의 지나간 어느 날 오후, 토니가 뉴욕에 도착해서 곧 바로 헨드론 박사와 이브가 있는 곳으로 급히 갔다. 거리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그가 출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잡해서 택시는 전보다 더 천천히 달렸다. 연구실 입구에는 경찰관이 지키고 있었다. 헨드론 박사가 직접 마중을 나왔다.
"야, 토니! 잘 돌아왔어. 자네에게 증명서를 받은 후보자가 계속 도착하고 있네. 그 사람들에게 모두 일을 시키고 있지. 정말 수고가 많았어. 시장할 텐데 우리 함께 저녁이나 들면서 얘길 계속하기로 하지."
횐 테이블 위에는 붉은 장미꽃을 꽂은 푸른 꽃병이 놓여 있었다.
"어때요? 이 장미. 대단히 아름답죠?"
이브는 유쾌하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토니는 꿈꾸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데도 평상시와 다름없는 이브의 태연한 행동이 이상하게 생각됐다. 헨드론 박사의 소리가 그를 제 정신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토니, 뉴스를 들려다오. 자네가 떠난 이후 우리들은 계속 연구실에서만 살고 있었어. 이브도 나도 오늘 저녁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연구실에서 식사를 하고 잠도 그 곳에서 잤네. 세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던가? 우리들은 신문을 보지 않고 있지. 거짓말만 써 놓고 있으니까."
이브도 고개를 끄덕였다.
"토니, 이야기해 줘요. 보스턴은 어때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외국의 소식은 어때요?"
토니는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했다.
"두 분이 생각하신 것과 거의 같은 형편입니다. 정부는 해안 지대에서 피난 가는 것보다 파업이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시카고에서 큰 파업이 일어나 전기, 수도, 가스 등 모두 정지되고 말았습니다. 버밍햄에서도 큰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대통령을 상대로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군대 안에서도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죠. 지금 50만 이상의 군인이 인구 이동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폭동이 일어나면 군인은 군중을 무조건 학살하고 있습니다.
멤피스에서 폭동을 구경했습니다만 30분도 안돼 끝나고 말았습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24시간 쉬지 않고 방송을 계속하고 있고, 신문도 새로운 뉴스가 있을 때마다 발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날이 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서 집을 만들고 새로운 농원을 만들고 있으며, 모든 공업 지대는 전속력으로 생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통조림, 의류, 약품들을 미시시피의 북부 지방에다 모으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합중국은 지금까지의 큰 전쟁에서 배웠던 인간과 물자를 총동원하는 방법을 지금에 와서 유효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곤란한 것은 위험이 틀림없이 닥친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헨드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곤란한 일이야. 그러나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덕분에 혼란이 그렇게 심하지 않은 모양이니....... 사실 나는 더 굉장한 혼란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었지. 언젠가는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는 날엔 더 큰 혼란이 시작되겠지. 그때가 더 무서울 거야. 그래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토니는 빵에다 버터를 바르면서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정보는 들어와도 대부분이 삭제되거나 고쳐진 것 같습니다. 국제법이나 조약 같은 것은 소용이 없어져 유럽에서는 또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하더군요. 회교와 힌두교의 국가들은 전혀 믿지 않고 안정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고 하는 소문이 떠도는데, 누가 지어낸 소리 같습니다."
"좀 더 이야기해다오, 토니!"
"토니, 우리들은 뉴스에 굶주리고 있어요."
"호주와 캐나다의 상황은 미국과 같은 모양입니다. 프랑스는 정부가 확고한 방침을 세우지 못해 국민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는 나치스와 같은 독재 정권이 다시 나타나 독재 정치를 써서 국민들에게 사실을 감추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소련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남아메리카에는 군사 혁명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알고있는 것은 대개 이 정도뿐입니다."
이브와 박사는 토니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이 주
밤이나 낮이나 남쪽 하늘에 떠 있는 브론슨별은 점점 더 빛나고 있었다. 브론슨 알파는 이미 별 같지도 않고 달같이 보이며, 베타 쪽도 둥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위치는 계속해서 변동되었다. 지구의 둘레를 도는 달같이 베타는 알파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동부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온 토니는 또 서부를 살펴보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은 아주 힘든 것이었다. 어디를 가나 철도역은 혼잡을 이루고 도로는 짐을 실은 자동차로 꽉 차 있었다. 정부는 이주하는 국민에게 지도를 돌리고 있었다. 해일의 높이를 500미터로 가정해서 그 이상 되는 곳으로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를 표시해 놓았다. 그 어려운 여행을 계속하면서 토니는 헨드론 박사에게 보낼 과학자를 찾아 돌아다녔다. 박사는 이미 두 곳의 우주선 발사장을 정해 놓고 그곳으로 계속 물자를 운반하고 있었다. 그 두 곳으로 모집한 과학자를 보냈다.
시험용 로켓을 베타에 쏘아 올리는 것은 성공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수십 명 내지 수백 명을 태울 수 있는 원자력 우주선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곤란한 것은 엔진과 분사관의 재료였다. 선체는 만들 수 있지만 엔진의 높은 온도에 견디어 낼 수 있는 금속 재료는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토니는 박사가 건설한 두 개의 우주선 발사 기지를 찾아가 보았다. 하나는 미시간 주에 있었고 또 하나는 뉴멕시코 주에 있었다. 그는 그 곳에서 우주선 건조 공장, 발사대, 기숙사 등에 관한 보고자료를 가지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대통령의 연설이 방송되는 것을 들었다.
"하느님은 지금 인간의 용기를 시험해 보시려고 하십니다. 우리들은 이 고통을 참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전 국민이 서로 죽이지 않고 서로 도와 나가기를 권합니다. 인간적인 삶이 이 나라에서 없어지지 않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여러분에게 부탁할 것은 단 한가지 용기, 그것뿐입니다."
아파트에 도착해 보니 셀리 아줌마는 여전히 그를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었다.
"셀리 아줌마는 왜 이주하지 않았습니까?"
셀리 아줌마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주인을 여기에 두고 달아날 수는 없잖아요."
전화는 아직 통할 수 있어서 토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침착했으나 매우 걱정스러운 음성이었다.
"아니, 토니? 몇 번 전화를 걸어도 없어서 혹시 무슨 일이나 생긴 게 아닌가 하고 무척 걱정했단다."
"미안해요, 어머니! 무척 바빴어요."
"알고 있다, 셀리한테 들어서. 그런데 토니야, 정말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냐?"
토니는 잠자코 있었다. 대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답할 수 없단 말이니?"
"예!"
지구를 탈출하는 우주선이 완성된다고 해도 거기에 토니의 어머니를 태울 좌석은 없었다.
"올 수 있다면 곧 와 주겠지?"
"예."
"잘 있거라, 토니야!"
어머니는 슬픈 목소리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연구소에서 토니를 맞이하는 자동차가 왔다. 자동차는 한길을 지나서 헨드론 연구소가 있는 큰 빌딩을 향해서 달렸다. 이곳 저곳 군인과 경찰관이 드문드문 서 있었고 일반 시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브론슨 알파는 드디어 달보다 커졌다. 베타도 똑똑하게 보였다. 그 밝기는 도로를 비치고 있는 가로등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고층빌딩은 모두가 캄캄했다. 시민의 거의 전부가 이미 시가를 빠져나갔다. 허드슨 강의 뭍은 지금이라도 곧 도로로 넘쳐 흘러 들어올 것 같았다. 연구소 안은 아주 혼잡하였다. 뉴욕 본부에는 꼭 필요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연구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헨드론 박사가 이야기했다.
"여러분, 오늘 저녁은 이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서 쉬십시오. 내일 우리들은 미시간 우주 기지를 향해서 출발합니다. 오늘 저녁은 누구든지 이 건물에서 나가지 말도록 하십시오. 최후의 이주자는 오늘 저녁 뉴욕을 떠납니다. 그 뒤에 남아 있는 사람은 경찰관이거나 강도들이니까 거리에 나가면 위험합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토니와 테일러는 옥상으로 향했다.
뉴욕 마지막 밤
"거리를 봐라!"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젊고 침착한 사나이의 소리였으나 약간 떨리고 있었다. 토니는 브론슨별의 빛으로 그 사나이를 보았다. 헨드론 박사가 모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이상한 직업을 가진 젊은 사나이였다. 엘리엇 제임스라는 이름의 소설가이며 시인이었다. 옥상에 있는 사람들은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이다......!"
"야, 굉장한 파도다! 거리에 넘쳐흐르고 있다!"
"오늘 저녁 얼마만한 높이로 물이 들어올까?"
"다리 위까지는 오지 않을 거야."
한 천문학자가 대답했다.
"거리에 사람이 많이 나와 있네! 경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브론슨별을 쳐다보고 있다. 물이 발끝까지 와 있는데도......."
"오늘 저녁은 빌딩 안에 들어가면 무사하리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래서 달을 보고 있을 거야."
"도대체 어떻게 보이나? 망원경으로 보면......."
시인이 물었다. 테일러가 대답했다.
"큰 쪽인 브론슨 알파는 가스의 덩어리같이 보인다. 그러나, 아주 큰 핵이 있고 그 둘레를 두터운 대기가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이 보이네."
"작은 쪽은?"
"지구와 그렇게 틀리지 않다고 생각되네. 베타의 표면에는 공기와 구름이 있고, 태양 광선으로 따뜻해져서 바다는 차차 녹고 있는 듯 하다."
"바다가 있는 것은 확실한가?"
"바다라고 생각되는 큰 부분이 있다. 스펙트럼 분석 결과 틀림없다."
시인은 계속 물었다.
"도시 같은 것은 보이지 않던가?"
"도시라고?"
"음 도시의 폐허라고 말할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녹고 있는 얼음뿐이다."
옆에 있던 이브가 돌연 말했다.
"보세요....... 불빛이 꺼져 가고 있어."
지금까지 켜 있던 거리의 가로등이 차츰차츰 꺼지기 시작했다. 조수가 밀려 와서 전등 높이까지 들이닥친 것이었다. 빌딩 사이로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이 높은 조수는 6시간 후에는 빠져나간다. 그러나 내일이 되면 더 높은 곳까지 밀려오고 그 다음 날은 더 높은 곳까지 밀려 올 것이다.
"오엔 씨! 토니 오엔 씨, 전보입니다."
비상 계단 아래쪽에서 토니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전보라니, 이 높은 조수 속에서?> 소리는 비상 계단에서 들려왔다. 토니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다, 여기야!"
전보 배달 소년은 헐떡거리면서 가까이 왔다. 1시간 전에 이 빌딩에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정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상 계단을 걸어 올라오며 토니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토니는 전보를 받아 펼쳐 보았다. <토니 오엔 씨의 모친이 오늘 오후 4시경 피난민들에 의해 살해 당하셨습니다.> 토니의 손에서 전보가 떨어졌다. 그는 의자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브의 손이 토니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머니가......."
"읽었어요, 토니!"
"집으로 돌아갔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나를 만나고 싶어 하셨는데......."
그는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어머니를 죽인 녀석을 찾아서 이 손으로 복수를 해야겠다!"
"그만 두세요. 찾을 수 없어요.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난 가야겠어."
그는 벌떡 일어나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기묘한 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물의 압력으로 건물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건물 안에서 공기가 빠지는 소리, 물이 소용돌이치며 들어가는 소리들이었다.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면서 빌딩 속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불을 꺼야할 물이 도리어 대화재를 일으킨 것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불길이 솟아올라 컴컴한 마천루를 덮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낮은 노래 소리도 들려 왔다. 대홍수를 바라보면서 찬미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토니, 좀 쉬셔야 해요. 꼭 가려면 내일 가도록 하세요. 지금은 안 돼요."
이브는 그를 억지로 끌어당겨 침실로 데리고 갔다.
한잠도 자지 못하고 밤을 꼬박 세웠다. 헨드론 박사가 방으로 들어왔다.
"들었다. 토니, 슬픈 일이야......."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토니는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가 아니었다. 헨드론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말한 대로다. 자네 어머니는 지금 돌아가시는 것이 오히려 좋을는지도 모르네. 단 나는 자네가 받은 충격을 언짢게 생각하고 있어. 오늘 이브가 같이 가겠다고 하는데 무리하지 않을 것을 부탁한다. 어제 저녁 브론슨별을 관측한 결과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박사는 토니의 슬픔을 제쳐놓고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놀랄 만한 사실이라니요?"
"토니, 도시를 발견했단다!"
"도시요?"
"브론슨 베타에 도시가 있었단다. 그 외에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지. 베타의 지리도 확실히 알았다. 자전 시간은 30시간으로 나타났다. 지표의 3분의 2가 바다이고, 육지는 네 개의 대륙으로 되어있고, 큰 섬도 보였다. 산맥과 계곡도 보였다. 수 백만 년 동안 그 별에서도 지구와 같이 생물이 있었다. 그 생물이 도시를 건설했었다."
"지금은 살고 있지 않겠지요?"
"물론이지. 중요한 것은 과거에 그 별에 생물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기와 바다가 녹고 있는 현재 우리들 인류는 그 별에서 살 수 있다. 거기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토니와 이브가 3층 차고까지 내려와 보니 바닷물이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방의 빌딩에서는 물이 폭포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마 안 돼서 빌딩 속에 찼던 물은 완전히 빠졌고, 도로도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토니가 자동차로 거리를 달리며 살펴보니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에 많은 오물이 쏟아져 나와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상점과 회사 안에 있던 것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있었다.
허드슨 강의 물도 빠져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뉴욕을 벗어 나와 달린 다음에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도중에 토니의 자동차는 두 사람의 사나이에게 습격을 당했다. 그는 권총을 하늘을 향해서 쏘아 그 두 사람을 쫓아 버렸다.
그의 집이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자란 집이며,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대대로 살고 있었던 그리운 집이었다. 자동차가 하얗고 조용한 큰 집 앞에서 섰다.
토니의 가슴은 심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얼마나 이 집을 좋아하셨던가! 입구에 허스킹스라는 늙은 정원사 부부가 나와 그를 맞아 주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토니가 물었다.
허스킹스 부인은 토니의 옆에 가까이 오더니 낮은 소리로 설명했다.
"어머니는 여기에 머무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을 사람은 물론 심부름꾼도 모두 도망쳐 버렸지요. 피난민이 와도 쫓으려 하시지 않고 들어오게 해서 음식들을 내주셨어요. 술을 마시는 사나이도 있었고요....... 그 중에 정신이 돌아버린 어떤 사나이가 어머니에게 권총을 쏘고 말았지요....... 단 한 발로....... 고통을 겪으시지는 않았습니다."
토니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몸을 낮추어 허스킹스 부인을 끌어안고 볼에 키스했다.
"고맙습니다. 두 분 다 고맙습니다....... 두 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남아 계셨군요. 우리들은 오늘 저녁 미시간 주의 고지로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같이 갑시다. 모시고 갈 테니까요."
허스킹스 부부는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들은 이 집에서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토니 도련님, 여기서 죽고 싶습니다."
허스킹스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헨드론 기지
비행기는 미시간 호와 슈피리어 호 사이에 있는 고지에 착륙했다. 놀랄 만큼 큰 달이 동쪽 지평선에 떠 있었다. 브론슨 알파였다.
천 명 정도의 남녀가 헨드론 박사를 맞이하였다. 박사는 뉴멕시코의 제 2 기지를 포기하고 이곳으로 과학자들을 모아들였던 것이다.
브론슨 베타는 지금에 와서는 달보다 커졌고 진주같이 아름다운 색깔로 빛나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덮여 있었고, 얼었던 대기가 모두 녹은 것은 확실했다.
토니는 캠프 안을 살피고 다녔다. 큰 식당이 두 개 있고 남녀가 따로따로 사는 아파트도 두 개 있었다. 캠프 끝 쪽에는 격납고 같은 건물이 있었고, 그 높이는 주위 숲의 꼭대기보다 100미터 이상 더 높았다. 그 옆에는 비행장과 비행기의 격납고와 커다란 각종 공장 건물이 10개 정도 계속되어 있었다. 마지막 건물은 제강소로 되어 있었다. 엘리엇 제임스는 토니와 이브를 기계 공장으로 데리고 갔다.
"당신 아버지가 설계해 놓은 우주선의 선체는 거의 완성되어 가고있습니다. 만약 건조하라 하면 군함이라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지요. 뉴욕 연구소에서 옮긴 것은 내일 저녁까지는 전부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단하군요. ......우리들이 여기 있을 동안 충분할 정도의 각종 식품도 저장되어 있어요."
그들은 하늘까지 닿을 듯한 높은 건물 안으로 안내되었다. 둘레의 벽에서 수백 개의 불이 건물 안을 비치고 있었다. 헨드론 박사가 모은 수많은 남녀의 꿈과 희망인 노아의 방주 호가 거대한 콘크리트 판 위에서 조립되고 있었다. 높이는 135미터, 직경 62 미터의 원통형을 하고 있었다. 토니는 오랫동안 보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우주선이다!"
곁에 다가온 헨드론 박사가 설명했다.
"선체는 이중이고 그 사이에는 열을 흡수하는 물질을 넣어 두었다. 안에는 원자로, 창고, 조정 장치, 냉온방 장치 등과 승객이 들어갈 선실이 있다."
토니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이 우주선은 몇 사람이나 태울 수 있습니까?"
헨드론 박사는 조금 주저하더니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백 명 정도."
토니는 더욱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이 캠프에는 우수한 젊은 과학자들이 900명이나 있는데요?"
"천 명이다."
"모두 이 우주선이 몇 사람이나 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조금은....... 여기에 있는 사람의 반쯤은 노아의 방주 호를 만드는 일이나, 거기에 관계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브론슨 베타까지의 우주 여행에 필요한 시간은?"
박사의 소리는 조금 떨렸다.
"90시간 정도. 로켓 분사관에 사용할 금속을 발견했다는 조건에서."
이브는 박사에게 말했다.
"아버지, 이제 좀 쉬세요. 너무 무리하시면 안 돼요. 그 금속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수한 사람들이 이만큼 많이 모여 있으니까 틀림없이 꼭 찾아낼 거예요."
헨드론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큰 공장에서 나가자 토니와 이브도 박사의 뒤를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바람이 불어 주위의 숲에서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폭풍우가 올 것 같은 미지근한 바람이었다. 제임스는, "일기를 써야겠는 걸." 하는 말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갔다.
토니는 이브를 여자 숙소로 데리고 갔다. 1층에서는 레코드 소리가 나고 한 여자가 노래 부르고 있었다. 편지를 쓰는 아가씨도 있었으나 사실 여기에 오는 우편 배달은 이미 끊어졌다.
토니는 혼자 가까운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 위에서 보니 헨드론 마을의 북쪽은 대학의 교정같이 보이고 남쪽은 공장 지대와 같았다. 그 둘레는 미시간의 광야가 멀리 퍼져 있었다. 여기를 기지로 선택한 것은 지질학적으로 보아서 지진과 화산 활동이 가장 적고 큰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큰 돌 위에 걸터앉았다. 뜨거운 밤 바람이 차차 강해지고, 두 개의 브론슨별이 비쳐서 모든 것의 그림자가 이중으로 보였다. 토니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생각을 계속했다. <여기에는 전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젊은 남녀가 천 명 있다. 그들은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헨드론 박사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며, 지구의 문명과 인류의 미래를 브론슨 베타에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선에 탈 수 있는 사람은 단지 백 명뿐이다. 내가 뉴욕에서 불러온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나 탈 수 있을까? 만약 이 노아의 방주 호가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그 때는 이 천 명의 훌륭한 사람들은 결국 보람없이 죽고 마는 것이다. 로켓 분사관을 만드는 금속을 찾아내지 못하면 이 지구를 탈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검은 구름이 브론슨별을 덮어 버렸는지 사방이 갑자기 캄캄해졌다. 그 중에서 공장과 숙소의 불빛만이 반딧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은 점점 강해지고 지면은 흔들렸다. 거대한 브론슨 알파가 지구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괴성의 접근
7월 25일 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해일이 지구상의 모든 해안을 덮었다. 강한 지진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 화산이 폭발하고 많은 섬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날 밤 브론슨 알파는 지구 옆을 최초로 통과했다. 그 때의 피해가 어느 정도로 큰 것인지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에는 250미터의 높은 파도를 동반한 해일이 일어나서 애팔래치아 산맥의 기슭까지 바닷물로 가득 찼다. 메인 주에서 플로리다 주에 이르는 모든 도시의 건물을 삽시간에 휩쓸고 지나갔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아마존 분지 전체가 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그 해일의 속도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중국 대륙은 거의 전부가 물에 잠겼다. 프랑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및 소련의 대부분도 휩쓸렸다. 반대로 서아시아, 아라비아, 남인도, 아프리카, 그리고 호주의 거의 전부는 건조한 땅으로 변했다.
세계 인구의 반 정도가 이 해일로 죽은 것으로 추산되었다. 지진은 48 시간 동안 강했다가 약해졌다 하더니 나중에는 완전히 정지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산들이 불을 뿜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섬들이 가라앉고 많은 섬들이 새로 나타났다.
지면에는 무섭게 갈라진 틈들이 도처에 생겨났다. 지구는 뜨거운 열로 폭탄처럼 폭발해 버린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한가운데는 큰 칼로 잘라버린 것 같이 두 개로 나뉘어졌고 무서운 용암이 그 사이에서 뿜어 올라왔다. 티벳 고원은 급행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것 같이 300미터로 낮아져 버렸다. 남아메리카는 남북 두 개의 섬으로 갈라졌다. 미국 서부는 로키 산맥이 파도같이 흔들려 옐로스톤 공원에서 수백 미터 사방으로 용암이 흘러 내렸다.
태평양 쪽의 해안의 평야는 없어지고 흘러 들어온 파도는 화산과 부딪혀서 굉장한 수증기로 증발했다. 수만 개의 구멍에서 가스와 증기와 재가 뿜어 올라왔다. 태양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열풍이 강하게 휘몰아쳐서 남극과 북극의 빙산을 녹여 버렸다. 용암의 흐름은 수천 만 명의 사람들을 삼켜 버렸고, 수천 만 명의 사람들은 독가스로 질식되어서, 파괴된 도시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빨라졌다가 늦어지기도 하고 하늘에서는 불덩이가 비오듯 쏟아지고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이 요란했다. 헨드론 마을도 지옥 같은 48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 곳은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장소 중의 하나가 틀림없었다. 토니가 본 최초의 검은 구름은 폭풍우의 시작이었고, 지면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 것은 지진의 시초였다. 급히 언덕을 내려온 토니는 기지에 있는 전원이 일어나 있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 있는 건물은 전부 이번에 일어나는 지진에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헨드론은 토니에게 말했다. 바람은 차츰 폭풍우로 변하고 지진이 강하게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건물에서 밖으로 나왔다. 토니는 이브를 찾아보았으나 사람들 속에서 분간할 수가 없었다.
빛이 비치는 곳 이외는 대부분 캄캄하였다. 지면은 흔들리고 걷기조차 곤란했다. 번갯불은 강하게 일어나고 천둥은 요란해서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토니는 6명의 사나이와 함께 여자 기숙사에 뛰어 들어가 떨고 있는 여자 대원들을 비가 심하게 내리고 있는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열 시간쯤 지나니 지진은 점점 강해지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모든 건물을 바람막이로 하여 양같이 뭉쳐서 앉아 있었다. 11시가 지났을 무렵 심한 충동과 동시에 남자 기숙사의 한 채가 뛰어오르는 것 같이 움직이고 벽에서는 시멘트가 뚝뚝 떨어졌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행장으로 모여들었다. 오전 1시가 지나자 심한 지진 속에서도 식당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나누어주었다.
비바람이 잠시 동안 멎더니 이윽고 방향을 바꾸어서 또 힘차게 불기 시작했다. 지구가 생긴 이래 가장 큰 폭풍이었다. 남녀 모두가 얼굴이 흙투성이가 되어서 옆으로 누웠다. 지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 이상이나 모두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엎어져 있었다. 심한 충격과 동시에 비행장은 두 개로 갈라지고 한 쪽은 다른 쪽보다 3미터쯤 높아졌다.
몇 사람인가는 그 사이로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들어갔다. 바람의 온도가 높았다가 낮았다가 변화가 심했다.
아침이 돌아 왔으나 날이 밝지도 않았고, 햇빛도 없었으며, 희미한 회색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그 회색 속을 검은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은 점점 뜨거워지고 유황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식사 준비를 하거나 그것을 운반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다.
오후가 되니 돌연 바람이 약해졌다. 50명쯤의 남자들이 식당으로 달려갔다. 이상하게도 식당 건물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식사 준비를 할 수 없었기에 모두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비행장으로 되돌아왔다. 바람이 다시 강하게 불기 전에 충분히 먹어두어야 계속 기운을 차리고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밤이 돌아왔다. 유황 냄새가 독하게 나는 바람, 가스, 열풍, 연기 및 뜨거운 비가 온통 지면을 두들겨 부수는 것 같았다. 지면은 몹시 흔들렸다.
최초의 통과
아침이 되니 지진은 멎고 바람은 약해져서 폭포같이 내리던 비도 점점 잦아들었다. 바람이 멎자 토니는 곧 일어섰다. 이 무서운 밤을 그는 이브와 떨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 혼잡한 가운데에서는 도저히 이브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에서 많은 재가 비와 같이 쏟아지고 모든 사람들은 초콜릿에 싸여 있는 듯 새까맣게 보이며 남녀의 구별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지금은 오직 기지 전체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당한 사람도 많을 것이고, 곧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토니는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리고 아직 부상을 입지 않은 30~40명의 사나이들을 모아 비행장을 떠났다.
"발전소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은 없소?"
토니는 큰 소리로 외쳤다.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빨리 발전소로 가서 불을 켜도록 해 주시오. 나머지 반은 여자 숙소를 고쳐 주시오. 그리고 침대를 안전한 곳으로 운반해서 병원도 만들어야겠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건물 안은 흙투성이였다. 토니는 잭 테일러를 불러서 말했다.
"테일러, 너는 여기 남아서 감독을 해라. 나는 반을 데리고 가서 의사를 찾겠다. 커피와 먹을 것을 빨리 만들도록 해라."
밖에 나와 보니 조금 밝았다. 목과 코가 아팠다. 공기 안에 아황산 가스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상 공기 속에 가스가 많아지면 질식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토니는 혼자 비행장으로 되돌아갔다. 조금 전보다 날이 훨씬 밝았다. 사람들은 비행장에서 건물 쪽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허기와, 갈증, 고통과 피로 때문에 모두가 허우적거렸다. 그 사람들 가운데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토니, 토니!"
이브의 소리였다. 그녀는 한 여자를 끌어안고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이브, 괜찮아?"
달려가 보니 이브는 토니의 귀에 입을 대고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좀 도와주세요, 정신을 잃었어요."
그는 그 아가씨를 끌어안고 여자 숙소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눕혔다. 침대마다 부상당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누군가가 촛불에 불을 켰고, 그 빛으로 두 명의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있었다. 애번즈라는 의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누가 물 좀 갖다 주시오. 아주 뜨거운 물을! 그 붕대에 손대지 마십쇼! 딴 의사들을 찾아 봐요!"
침대에는 흙투성이가 된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촛불을 통해서 토니는 그 몇 사람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여배우였던 대원이 발목을 다쳤다. 병리학자인 스턴 레논이 말했다.
"무사하셨군요, 토니 씨! 하늘에서 떨어진 화산탄 (용암의 한 조각)에 당했습니다."
식당 쪽에서 종이 울렸다. 48시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한 조각의 빵도 먹지 못한 토니는 식당 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굶주리고 혼이 나기는 처음이었다. 식당에는 샌드위치가 많이 쌓여 있었고, 커피가 끓고 있었다.
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 앞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커피는 흙 냄새가 나고, 샌드위치는 공기 속의 독가스 같은 맛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토니는 세 번만에 샌드위치를 씹어 삼키고 또 뒤에 가서 섰다. 바람이 멎어가고 온도가 갑자기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를 처음으로 귀담아 들었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훌륭한 회복력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내 드레스는 못 입게 되었어요! 흙투성이예요!"
제니 키엘 이라는 영양학과 출신의 젊은 여자였다. 누군가가 웃으면서 말했다.
"미스 키엘의 드레스가 정말 형편없이 되었네 저를 어쩌나, 쯧쯔쯔......."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웃어댔다.
"정말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지......."
한 과학자가 말했다.
"정말 놀랬다. 발전소와 공장은 파괴된 곳이 없는데, 마치 은행 금고같이 만든 모양이야. 헨드론 박사는 정말 천재다!"
다른 남자가 말했다.
"나는 제일 먼저 지진계를 조사해 보았다. 침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기압계도 파괴되어 버렸다. 얼마만한 인간이 살아 남았을까? 아직 지진이 계속되고 있는지 내 발이 떨리고 있는지 알 수 없네."
반더빌트가 둥근 나무 위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전신이 흙투성이고 한쪽 바지는 무릎 밑이 찢어져 나가고 없었다.
"토니, 여기 좀 앉아 쉬어야지."
"고맙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은 걸요."
그는 웃으면서 토니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우주선 건조 공장에서 헨드론 박사가 나오고 있었다. 흙투성이인 박사는 토니의 어깨를 잡더니 물었다.
"토니, 이브를 보았나?"
"보았습니다."
"괜찮던가?"
"괜찮습니다. 임시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헨드론 박사 뒤에는 많은 사나이들이 있었다. 박사는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먼저 가서 기계 공장을 조사해 주시오. 나도 곧 가겠소."
그리고 박사는 토니의 뒤에 서 있는 반더빌트를 발견했다.
"야, 반더빌트! 무사해서 반갑다."
그렇게 말하고는 박사는 또 토니 쪽을 보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다쳤나?"
토니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반더빌트가 입을 열었다.
"커피를 마시러 가기 전에 나는 임시 병원에 있으면서 저 나름대로 조사해 보았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폐렴에 걸릴 만한 사람이 세 명, 심한 충격을 받은 사람이 다섯 명, 발을 다친 사람이 두 명, 팔을 다친 사람이 두 명, 발목을 다친 사람이 한 명, 폭풍우가 부는데 커피를 끓이다 끓던 물에 덴 사람이 한 명, 경미한 상처와 타박상을 입은 사람이 4, 50명 정도로 전부 7, 80명 정도지요. 현재 의사들이 열심히 치료하고 있습니다."
헨드론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는 훨씬 심한 것 같다. 그러나 우주선은 아무 탈이 없으니 다행이다. 조금 쉬도록 해야겠다. 언제 정신을 잃게 될는지 모르겠다. 토니, 아직 12시간 정도 버틸 수 있다면 뒷일을 부탁하고 싶은데......."
"전 괜찮습니다."
"자, 그리면 네가 지휘관이다. 12시간 후에 나를 깨워다오."
토니는 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여자 숙소의 홀에서는 애번즈와 스미스가 열심히 치료하고 있었다. 환자들은 침대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었다. 마취약과 소독약의 냄새가 가득했다. 이브는 12명의 아가씨들과 함께 환자들을 간호하고 있었다. 이브는 이미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애번즈가 토니에게 말을 걸었다.
"헨드론 박사에게 여기는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해주게. 치료하지 못할 환자는 없다고......."
토니는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토니는 병원에서 기계 공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사내들이 엔진에 들어간 먼지를 털어 내고 마룻바닥에 쌓여있는 진흙을 닦아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많은 기술자들이 흩어져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일하고 있던 한 사나이가 설명했다.
"조금 자지 않으면 일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한 시간씩 교대로 자도록 했습니다. 괜찮지요? 토니 씨."
"잘한 일입니다."
발전실에서 누군가가 부르고 있었다.
"토니 씨, 마침 잘 오셨습니다."
"왜요?"
"들어오십시오."
토니는 발전실로 들어갔다. 그는 벽 있는 곳으로 데려가더니 스위치를 가리켰다.
"그것을 당겨 보십시오."
토니가 스위치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기지 전체의 전등이 커졌다.
"우선 보조 엔진부터 고쳤습니다. 전등의 4분의 1만 연결시켰습니다. 현재는 그것으로써 참아야 하겠습니다. 어두운 것보다는 낫겠지요."
토니는 그 사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 하셨습니다."
전기 계원이 다가와 물었다.
"저 위에도 몇 사람 있습니다. 곧 당신에게 보고하겠다고 합니다."
"만나고 싶으면 내가 가서 만나야지, 왜 그 쪽에서 와서 보고하겠다고 합니까?"
"그러나, 당신은 이 기지의 지휘관입니다."
"지휘관? 아니 제가 지휘관이란 말입니까?"
그 사나이는 이상스럽다는 듯이 토니를 쳐다보았다.
"왜라니요......? 우리들이 여기에 올 때에 받은 규칙서에 그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모두 한 권씩 가지고 있습니다. 긴급 사태에선 당신이 헨드론 박사님을 대신하는 부지휘관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긴급 사태가 분명하죠?"
토니는 이 새로운 이야기에 놀랐다.
"규칙서에 쓰여져 있다고요?"
"예,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여기 도착한 날 규칙서를 받았죠. 주머니에 넣어 두었었는데 어제 비행장에서 잃어 버렸습니다."
그 말을 듣자 토니는 깜짝 놀랐다. <헨드론 박사님은, 내게는 한 마디 말도 않고 날 부지휘관으로 만들어 놓았구나. 내가 알면 거절할 것을 미리 예상하신 모양이군. 어쩐지 사람들이 날 대하는 태도가 공손하다고 했더니.......>
그 곳을 나온 토니는 식당으로 갔다. 이미 식당에는 테일러의 지휘로 샌드위치와 수프를 충분하게 만들어 놓았고 커피도 끓여 놓았다. 테일러는 토니를 보더니 다가와 보고했다.
"큰 창고는 모두 반 지하실로 만들어져 있어서 거기에 들어 있었던 식료품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500미터쯤 떨어져 있는 숲 속으로 가축 무리가 도망쳐 나갔습니다. 가축 계원들을 그 곳으로 보냈습니다. 울타리가 파괴되었습니다만 양과 염소 등은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몇 사람이 지금 철조망을 치고 있습니다.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오고 있던 파이프는 전부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방용 호스로 가까운 곳에서 물을 끌어오도록 했습니다."
"정말 잘 했군. 테일러, 아직 서너 시간은 계속할 수 있겠는가?"
"예, 일주일이라도 계속할 수 있습니다."
토니는 테일러가 사내들에게 명령하고 일을 시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인류가 오래 살기 위한 일은 헨드론 박사가 그에게 모집케 한 젊은 청년들만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테일러 밑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10명 이상 있었다. 그 사람들은 지금 빗자루와 걸레와 삽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온 토니는 공기가 이젠 제법 시원해진 것을 느꼈다. 얼굴과 손의 진흙이 땀과 함께 흘러내리고 옷은 완전히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마침 비행장에 1미터 정도 움푹 들어간 곳에 물이 담겨있는 것을 보고 토니는 얼른 손을 담가 보았다. 물은 따뜻했다. 토니는 잘 됐다고 생각하고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옷을 입은 채 그대로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 속에서 나온 토니는 전에 브론슨별을 구경하던 작은 언덕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공기 중의 유황분과 가스는 상당히 줄어진 것 같았으나 여전히 목구멍을 자극했다. 그러나 어제와 같이 가슴이 답답하지는 않았다. 이상한 것은 공기가 희박해져 있는 것 같았다. 혹시 산소가 적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시험해 볼 수가 없었다.
언덕 위에는 몇 그루의 나무 외에는 폭풍으로 모두 넘어져 있었다. 비행장의 반은 3미터 정도 높아져 있었기 때문에 부피가 다른 책 두 권을 나란히 놓은 것처럼 보였다. 헨드론이 U자 형으로 세운 건물의 안쪽 공지는 먼지 투성이었다. 식당 한 쪽은 산산조각으로 파괴되었고, 남자 숙소는 수리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할 것 같았다.
모든 곳이 진흙 투성이로 변해 버렸다. 브론슨별은 이미 통과해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태양은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나, 소란스런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이 되자 가끔 하늘이 맑아 태양을 볼 수 있었다. 안개와 구름은 멀리 흩어져 버렸고, 먼지는 아직 떠돌아 다녔으나 밤이 되자 별이 보였다. 그런데, 달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보름달이 떴을 텐데 왜 별 밖에 보이지 않을까?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토니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하는 헨드론 박사의 소리가 들렸다.
"아, 박사님! 달이 보이질 않아서....... 달은 어디 있습니까? 왜 아직 뜨지 않았을까요?"
"브론슨 알파가 달을 가져가 버리고 말았다. 이 일에 대해서는 너도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두 번째 통과할 때에는 지구와 충돌한다는 것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첫 번 통과할 때 달을 가지고 가 버린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난 자네가 이미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우리가 계산한 대로라면 브론슨 알파는 달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이미 달은 조각조각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 큰 파편은 알파가 삼키고 말았을는지 모르지만 나머지는 조금 있으면 보이게 될 것이다. 우주 끝까지 날아가는 파편도 있을 것이고, 태양의 주위를 도는 파편, 그리고 토성 둘레의 테 같이, 지구 둘레의 테가 되는 것도 있겠지. 토니, 달은 영원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한 번 더 보고 싶지만......."
토니는 잠자코 있었다. 두 번 다시 이 하늘에 달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섭섭했다. 바다는 달이 없어진 지금은 잔잔할 뿐이리라.
"지구가 알파에 부딪혔을 때에는 보일 것이다."
"보이다뇨? 이 지상에서 말입니까?"
"우주에서다. 우주선을 완성하면...... 베타에 가는 도중 우주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우주에서 지구와 알파가 충돌하는 것을 구경하고 그 다음 도시가 있던 것처럼 보인 그 별에 착륙하는 것이다."
정 찰
헨드론 박사와 교대한 토니는 박사의 방에서 정신없이 잤다. 얼마 후 일어나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구름은 아직 두터웠으나 사방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방 모퉁이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한 사나이가 책상에서 무언가 쓰고 있었다. 토니가 그 쪽을 쳐다보니 그 사나이도 얼굴을 돌렸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검은 머리에 눈이 파란 사나이였다. 그는 토니에게 미소를 보내며 입을 열었다.
"토니 씨, 편히 주무셨습니까?"
토니는 마룻바닥에 발을 내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 잘 잤습니다. 아직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 그러나 당신의 이야기는 잘 듣고 있습니다. 당신도 내 이름은 알고 계실 줄 압니다만....... 나는 요한 브론슨입니다."
토니는 급히 교수에게 달려가서 손을 잡았다.
"아니, 선생님을 뵙다니......!"
브론슨 교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지요."
토니는 웃으면서 교수의 손을 꽉 잡았다.
"제가 자고 있는 동안 혹시 뭐 변화된 것은 없었습니까?"
교수는 책상에 연필을 톡톡 두들겨 가며 말했다.
"뭐 별로....... 병원에 남아 있는 환자는 열 사람 정도이고, 테일러군이 식당과 창고를 완전히 깨끗하게 정리시켜 놓았더군요. 무전실도 가동되었고."
토니는 큰 소리로 말했다.
"어제 저녁은 무전실의 일을 전혀 잊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며칠입니까?"
"29일이오. 뉴멕시코와 오하이오의 방송이 들어왔습니다만 중도에 끊어지곤 하더군요. 뉴멕시코에는 심한 화산 분화가 일어났던 모양이고 오하이오에선 구조를 요청할 뿐이었소."
"전 미국에서 단 두 개의 방송국뿐이었습니까?"
"그렇소, 물론 잡음이 심해서 외국의 전파는 들리지 않았지요. 아마 다른 방송국도 그렇겠지요."
토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옆방에 있는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에는 새 의복이 말끔히 준비되어 있었다.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오니 헨드론 박사가 와 있었다.
"아, 토니! 일어났구나. 식당에서 이브가 기다리고 있다."
식당에는 이브가 몇 사람의 아가씨들과 청소를 하고 있었다. 방안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와 토니는 같이 베란다로 나왔다.
"공기가 아주 깨끗해졌어요. 토니, 유황 냄새도 이젠 나지 않아요."
"그러나,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이 다시 알파가 다가올 때에는......."
"예!"
이브는 몸을 떨면서 대답했다.
이브는 토니를 쳐다보고 상냥하게 말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들었어요. 토니, 당신이 혼자서 이 기지 전체를 재건시켰다고요."
"나는 그저 돌아다니면서 무언가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잘한다, 꾸준히 일해다오'라고 말한 것뿐이지. 그것뿐이었어."
그녀는 웃었다. 토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당신은 여러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셨어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브론슨 교수가 와 계시는 건 알고 계세요?"
"아아...... 만나서 이이기도 했지. 그 이름을 들었을 땐 이상한 기분이 들더군. 그 분이 브론슨 알파와 베타를 만든 것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왜 여기에 오게 되었을까?"
"그 폭풍우가 일어났을 때 도착했어요. 교수께서는 세상이 어떻게 되는가를 누구보다도 빨리 생각하고 있었어요. 과학자 중에서는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신다고요. 발견했을 때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알린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교수와 아버지는 남아프리카보다는 여기에서 같이 일하는 것이 좋다고 의견이 일치되었어요. 우리들이 출발하게 된다면 교수는 정말 소중한 분이 되지요."
"출발한다는 건 지구를 벗어난다는 것이겠지?"
"그래요. 아버지는 처음부터 우주선만을 생각하셨어요. 그 노아의 방주 호 말이에요. 브론슨 베타에 도착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요."
"알파가 지구를 파괴시키기 전에?"
"예, 그래서 아버지는 우주선 이외의 것은 거의 생각도 않고 계세요. 베타에 도착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것도 생각할 시간이 없어요. 그러나 브론슨 교수는 그 일에 대해서 계속 연구해 오셨어요. 그 분은 거의 일 년 동안을 정신적으로 브론슨 베타에서 살아 온 셈이지요. 어떤 사람들이 가고,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이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오셨어요."
3일이 지나니 잡음이 없어지고 세계의 방송이 들리게 되었다. 그 방송을 토대로 해서 큰 지도가 만들어졌다. 완전할 수는 없지만 대충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호주는 몇 개의 섬으로 변했고, 남아메리카는 두 개의 큰 섬으로 변해 버렸다. 유럽은 중앙부, 아시아는 동부만이 남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방송이 들어오지 않아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영국은 몇 개의 도시가 겨우 남았을 뿐 형체조차 없어진 모양이었다. 오대호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기울어져서 마치 쟁반에 든 물을 엎지른 것 같이 물이 세인트 로렌스 계곡으로 흘러내리고 말았다. 동부 해안 지방에는 새로운 해안선이 생겨났다. 어디나 지구 중심에서 뿜어 나온 물질로 덮여 있었다. 그것은 용암뿐만이 아니고 금속이 섞여 있어서 해안에서는 그것이 벌써 녹슬기 시작하여 빨갛게 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의 수는 조사할 수가 없었다. 100만 명 이상은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되나 미리 준비되었던 곳 이외는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열흘이 지나자 다시 태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깐뿐이었고 곧 뽀얗게 일어난 안개 때문에 희미하게 보였다.
15일 째의 저녁 무렵, 푸른 하늘이 조금 나타나 세 시간 정도 별을 볼 수 있었다. 샛별(금성)같이 보이는 브론슨 알파와 베타를 천문학자들은 급히 관찰하고 그 결과를 계산했다. 그리고 브론슨 알파가 다음에 올 때에는 지구와 충돌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15일 동안 지진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강도는 점점 약해져 갔다. 무전실에서는 세계의 방송을 들을 뿐, 이곳에서는 발신하지 않았다. 이 기지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3주일 째 되는 날 폭풍에 피해를 받지 않는 비행기를 제임스와 란스텔이 타고 800킬로미터 정도의 정찰 비행에 나섰다. 그 젊은 시인이 되돌아오더니 식당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지평선 저 먼 쪽의 세계에 대해서 몹시 알고 싶어하는 천 명의 남녀가 침을 삼키고 제임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란스텔과 나는 오전 8시에 출발했습니다. 우리들은 우선 북쪽으로 120킬로미터를 날아가서 그만큼의 거리를 반경으로 하는 원으로 날면서 미시간 주와 위스콘신 주를 조사했습니다. 오대호는 없어졌다고 들었습니다만 전혀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슈피리어호의 3분의 1은 육지로 둘러싸여져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비행하던 지역은 이전에는 수목이 울창했던 곳이고 호수가 많고 광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말라버린 호수로 그 바닥은 금이 가고, 그 주위에는 넓은 광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숲은 불에 타 없어지고 기묘한 형태의 골짜기가 새로 생겼으며, 그곳에선 증기가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도시들은 거의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산과 언덕이 여러 곳에 생기고, 새 지면이 솟아오른 곳도 있었습니다. 흡사 달의 표면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지와 같이 완전하게 남아있는 곳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 남아 있었습니다. 구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호수에 남아있는 물 외에는 착륙할 곳이 없어서 구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 제임스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때 반더빌트가 홀에서 나가려는 란스텔을 따라가면서 말을 걸었다.
"란스텔, 물어 볼 말이 있는데......."
란스텔은 뒤돌아 서서 아무 말도 없이 상대방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헨드론 박사가 다음엔 어딜 조사하라고 하던가?"
"아뇨."
"지금부터 2-3일 동안은 국내를 날아다니게 될까."
"좋은 비행기가 있으면....... 수륙 양용의......."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직접 보았으면 좋겠는데....... 이 지구가 없어진다고 하니 더 자세히 보고싶군.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란스텔은 비로소 대답했다.
"그럼 헨드론 박사를 만나서 말씀드려 허락을 얻도록 하시죠."
"그래볼까. 그리고 제임스도 함께 가도록 하지. 그 친구도 이번으로 만족하진 않을 테니까."
"그렇고 말고요. 여행을 자세히 기록해 둬야 할 테니까요. 브론슨 베타에 가게 된다 하여도 지구의 마지막 역사를 몰라서야 말도 안되죠."
그들이 헨드론 박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박사는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말했다.
"물론 그 여행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죠? 도중에서 가솔린을 찾아내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거의 전부가 타버리고 말았을 것이니까요. 게다가 착륙할 때에는 항상 그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노릴 것입니다."
반더빌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그러나 필요한 일은 누군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란스텔은 짧게 말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박사는 확실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
란스텔과 반더빌트는 제임스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열심히 타이프 라이터의 키를 두드리고 있었다. 시인은 얼굴을 들면서 물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 사람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제임스는 흥분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물론 가야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베타에 가는 건 이미 운명에 맡긴 일. 누군가 써야할 게 아닙니까? 그걸 제가 하고 싶습니다."
토니 자신도 그 여행에 참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박사를 도와서 이 기지에서 일하고 있는 그에게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이틀 후 기지의 사람들은 출발하는 비행기를 전송했다. 비행기에는 가솔린, 식료품, 권총, 쌍안경 등이 실렸다. 세 사람 모두가 늠름하였다. 반더빌트는 토니에게 농담을 했다.
"엽서를 열심히 보낼게."
과학자들은 제임스에게 여러 가지 주문을 했다. 관측하고 발견해야 할 것이 산더미같이 있었다. 란스텔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지만 비행장 저쪽에는 대양의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자, 갑시다!"
그는 말했다. 큰 환성이 오르고 비행기는 긴 울퉁불퉁한 활주로를 달려서 천천히 날아오르고,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 위를 한 번 선회하고는 남쪽 하늘로 사라졌다. 이브는 토니에게 말했다.
"정말 용감한 분들이에요. 저렇게 늠름한 태도로 출발하시니 꼭 성공하실 거예요."
"성공하고 말고, 굉장히 위험한 모험이지."
"만약 저 사람들이 30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요? 저 사람들을 찾으러 누군가 또 떠날까요?"
"아니 무슨 소리야?"
"데이브 란스텔 씨가 최후에 부탁한 것이었어요. 만약 돌아오지 못하게 되더라도 찾지 말도록 해 달라고요."
모험담
그 30일이 천천히 지나갔다. 기지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사형의 날이 가까이 다가오는 사형수와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우주선 승무원에 선택될는지 안 될는지, 그리고 선택된다고 해도 그 거대한 우주선이 과연 지구를 벗어날 수 있을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결국 6개월이 지나면 브론슨별이 다시 다가와 지구와 충돌하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든 사람은 두뇌가 명석하고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전원은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기지 일은 5개 분야로 분리되었다. 첫째는 우주선의 건조, 둘째는 우주선에 실을 화물, 셋째는 브론슨 알파와 베타의 관측과 코스 결정, 넷째는 베타에서 살아갈 방법의 연구, 다섯째는 잔일이었다. 헨드론 박사는 첫 번 째 일을 담당하고 거대한 격납고와 연구소, 기계 공장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브론슨 교수는 두 번째 일의 책임자였다. 세 번째 일은 몇 사람의 천문학자가 담당하고 있었고, 이브는 그 계산 책임자였다. 네 번째 일, 베타에서 살아갈 방법을 애번즈가 연구하고 있었다. 애번즈 밑에는 테일러가 스포츠와 오락 등을 담당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그 날의 피로를 잊기 위해 각종 오락과 영화와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열리고 댄스 파티도 열렸다. 헨드론 기지는 일이 잘 진행되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밤 캘리포니아에서 온 한 아가씨는 갑자기 정신 이상을 일으켜 죽기 싫다고 발광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또 언젠가 천문학자의 한 사람이 침대에서 자살 시체로 발견됐다. 그는 수면제 약병 옆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 놓았다.
「존경하는 동지 여러분! 냉정하게 마지막 날을 맞이하기에는 젊음의 힘이 필요하다. 잘 있거라.」
이 천문학자의 장례식은 정중하고 엄숙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9월 13일, 우주선 건조를 위하여 기묘하게 건설된 헨드론 기지의 사람들은 비행기가 돌아오는 것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세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빨라도 14일 후가 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여 모든 사람은 하늘을 쳐다보고 비행기 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정된 날에는 아무도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그 날 14일은 하늘이 밝았다. 그렇다고 해도 때때로 어딘가 화산에서 연기가 치솟아 맑은 하늘을 어둡게 만들 때도 있었다. 기온은 28~33。C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었으나 때로는 25。C 정도로 내려갈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일하는 틈틈이 자주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곤 하였다. 그날 밤은 모든 사람들이 다른 날보다 훨씬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러나 내일 일을 생각해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근심스러운 듯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세 사람은 똑똑하고 용감한 사람들이니까 틀림없이 돌아올 거야."
"그러나 다른 곳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까......."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습격을 당했는지, 화산의 폭발로 튕겨 올라갔는지......."
새벽 3시, 토니는 이브와 같이 비행장의 한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헨드론 박사는, "돌아오거든 깨워다오." 라고 말하고 침실로 들어갔다. 토니는 아무 말 없이 귀를 기울이고 계속 앉아 있었다. 격납고에는 커피와 수프를 준비해 놓았으며, 의사 애번즈는 사고에 대비하여 격납고에서 자고 있었다. 4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날이 밝기 시작했다. 브론슨별이 통과한 후 날이 새는 것이 몇 분 빨라졌다.
"나도 돌아가서 자야겠어요. 정말 피곤해요."
그렇게 말하고 이브가 일어서는데 열 걸음도 채 못 옮기고 발을 멈추었다.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토니는 끄덕였다. 어디선가 개가 짖었다. 잠시 후 프로펠러 소리가 높은 곳에서 아주 작지만 똑똑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돌아 왔어요!"
그녀는 외치면서 토니 쪽으로 달려와 어깨를 잡았다. 소리는 마치 먼 곳에서 벌떼들이 웅성거리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하늘을 살펴보았다. 작은 점이 희미하게 보이더니 점점 크고 똑똑하게 보였다.
"토니!"
이브는 헐떡거리면서 외쳤다. 비행하는 모양이 좀 이상했다. 코스를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중심을 잃고 동요하고 있었다. 토니는 애번즈가 자고 있는 곳으로 달려와서 흔들어 깨웠다.
"선생님, 돌아 왔습니다. 아마 당신이 필요하게 된 것 같습니다."
비행기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코스가 이상하고 속도도 느렸다. 흡사 심하게 상처를 입은 집오리와 같이 흔들거리면서 비행하고 있었다. 선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비행장으로 착륙하는 것이 아닌가.
"추락하겠다!"
누군가가 외쳤다. 토니, 애번즈, 테일러 등 세 사람은 이미 트럭에 올라앉아 있었다. 소화기와 들것도 실려 있었다. 비행기는 착륙하자마자 한 번 튕기더니 다시 땅에 닿자 이윽고 천천히 기수를 숙이고 거꾸로 서는 것이었다. 토니는 트럭을 돌진시켰다. 화재는 일어나지 않았다. 토니가 비행기 옆에 트럭을 세우자, 곧 뛰어내려 비행기의 문을 힘껏 당겨 열었다. 란스텔은 핸들을 잡은 채 기절해 있었고, 바닥에는 제임스와 반더빌트가 쓰러져 있었다. 반더빌트는 눈을 떠서 토니를 보았다. 그의 얼굴빛은 새파랗고 옷은 피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는 겨우, "돌아왔다." 라고 말하고는 정신을 잃었다.
제임스도 의식이 없었다. 트럭은 천천히 되돌아 왔다. 이윽고 애번즈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세 사람은 지옥에 다녀온 것 같이 고생한 모양입니다. 무엇에 맞고, 부딪히고, 굶주렸으나 생명에는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핸들을 잡고 있는 토니에게 말했다.
"좀 더 속도를 내도 좋아. 치료실까지 빨리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네."
300여 명의 사람들이 1시간이나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실에서 한 사람이 나오더니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세 사람의 상태는 아침 식사시간에 식당에서 발표하겠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자리를 떴다.
1시간 후 식당에 모인 사람들 앞에 헨드론 박사가 나타나더니,
"세 사람은 모두 별 일이 없습니다."
라고 입을 열자 여러 사람들은 환성을 올렸다. 박사는 잠자코 지켜보고 있다가 환성이 조금 진정되자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임스는 팔을 다치고 뇌진탕을 일으켰으며, 반더빌트는 어깨에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란스텔은 팔을 많이 다쳤고 오른쪽 허벅다리에 기관총 탄알이 다섯 발 박혀 있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가 중태이긴 하나 곧 회복될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또 식당 안에는 기쁨의 회오리가 퍼지고 그것이 진정될 때까지 헨드론 박사는 잠자코 서 있었다.
"오늘 저녁 또 여기에 모이십시오. 그 때에 30일간 쓴 제임스의 일기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대강 읽어보았습니다만 실로 훌륭한 기록이었습니다. 미리 이야기해 둡니다만 살아남아 있는 다른 곳의 사람들은 거의 흉악한 야만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식당 안은 조용해졌다. 헨드론이 이야기를 마치고 내려오자 사방에서 이야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사는 서너 사람의 과학자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나더니 이브에게 말했다. 대단히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브, 토니와 같이 곧 내방으로 오너라."
두 사람이 박사 방으로 들어가니 브론슨 교수와 애번즈 의사가 이미 와 있었다. 열 사람의 과학자가 또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헨드론 박사가 모습을 나타냈다. 항상 냉정했던 눈매가 굉장히 빛나고 있었다. 두 볼은 발갛게 달아 있었다.
"여러분! 식당에서 발표한 것 이외에 아주 중대한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란스텔의 옷을 벗겨 보니 그는 몸에 자루를 감고 있었습니다. 지도와 편지와 금속 덩어리였습니다. 란스텔은 파일럿이 되기 전에 광산 기사였습니다......."
"발견했죠? 분명히 그가 발견한 것이죠?"
박사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화산의 대 폭발이 일어났을 때 지구 중심에 있던 많은 금속이 튀어 나왔습니다. 란스텔은 녹지 않는 금속을 찾아낸 것입니다. 매우 높은 온도에도 녹지 않는 금속을 발견하여, 그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금속이라고 생각돼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 견본을 가져 온 것입니다."
헨드론 박사의 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75분 동안 그 금속은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원자력 로켓 엔진의 열에 꼼짝도 않고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드디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연 박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여자 같이 눈물을 터뜨렸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는 박사를 존경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헨드론 박사는 얼굴을 들었다.
"미안합니다. 너무 흥분했습니다.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그만......, 이 발견의 중요성을......, 그 동안 염려했던 것을, 사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점점 더 초조하게 만들었던 그 금속....... 이제 우리는 살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헨드론 박사는 천 명 가까운 사람들 앞에 섰다.
"여러분, 오늘 저녁은 처음으로 여러분께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고통과 노력이 보람을 얻었습니다. 란스텔은 우리들의 최후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노아의 방주 호는 브론슨 베타를 향해서 확실히 날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라고 말하자, 왁자지껄한 높은 소리는 꼬리를 물고 꺼질 줄 몰랐다.
"그러나, 오늘 저녁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두겠습니다. 거기에 대한 시간은 충분히 있습니다. 용감한 세 사람의 여행일지가 있습니다. 이삼 일 내에 이 전부를 인쇄해서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제임스가 쓴 일곱 권의 노트 중 제일 첫째 것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노트를 펴서 읽기 시작했다.
「8월 16일 란스텔, 반더빌트, 나, 이 세 사람은 오후 6시 미시간 호의 바닥에 남은 물 위에 내렸다.
우리들은 시카고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저녁 무렵의 시카고는 전과 같이 많은 빌딩이 솟아 있었다. 우리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쁨을 느끼고 외쳤다. 나만이 비행기를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있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곧 비행기를 출발시키기로 하였다. 그리고 의논한 결과 반더빌트가 남기로 했다.
란스텔과 나는 곧 시가로 향해 출발했다. 우리들이 착륙했던 곳은 직경 2킬로미터 정도이고, 도시보다 70미터 정도 낮은 곳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호수의 바닥을 우리들은 걸어서 갔다. 진흙, 부서진 배 웅덩이, 갈라진 틈, 가파른 언덕, 이리한 것들이 가는 길 위에 흩어져 있어 걷기에 힘이 들었다.
마지막 절벽을 올라가니 시카고의 시가가 눈앞에 흩어져 있었다. 거리는 묘지 같이 조용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불빛도 없었고 연기도 올라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권총을 꽉 쥐고 있었다. 눈앞엔 마천루가 솟아 있었으며, 대부분의 빌딩들은 대포에 맞은 것 같이 큰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
거리에는 부서진 돌, 시멘트 그리고 유리 등으로 꽉 차 있었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마천루는 똑바로 서 있지 않고 조금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우리들은 시가 쪽으로 들어갔다. 철도를 지나기까지 사람의 시체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저쪽에는 무수한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란스텔은 나를 보며 떨리는 소리도 가만히 말했다.
"쥐새끼 한 마리도 없다......!"
나는 무의식중에 공포를 느꼈다. 이 시체의 무더기 속에는 쥐 한 마리도 없다는 것은 무언가 무서운 원인이 있을 것이다.
조금 가보니 길에 크게 갈라진 틈이 있었다. 지구의 중심까지 뚫어져 있는 것 같이 깊어 보이고, 바닥에서 흰 증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람이 바닥의 냄새를 풍겨 올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기침을 심하게 했다. 가슴이 타는 것 같고 눈알을 찌르는 것 같아서, 의식을 잃을까봐 우리들은 손을 잡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독가스다......!" 라고 란스텔은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시카고의 무서운 운명은 분명히 그 독가스 때문이었다. 화산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지진이 없는 곳으로 유명한 이 지방에 독가스가 풀어 올라와 시민을 몰살시켜 버린 것이었다.
브론슨별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도로가 갈라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도시를 벗어나려고 할 때 독가스가 풀어 나온 것이었다. 그 가스가 도로의 갈라진 곳에서 새어나온 것인지, 화산 분화구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공기보다 무거운 가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로 위의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도 건물 위에 있던 사람들은 무사했다. 그러나 가스가 점점 불어남에 따라 건물 위에까지 올라가서 안에 있는 사람들도 죽어갔을 것이다. 그것이, 도로 위에 시체가 얼마 없는 이유일 것이다. 시가를 벗어난 사람들도 그 독가스가 무서워서 되돌아올 수가 없었고, 쥐는 맨 먼저 죽고 말았을 것이다.
높은 빌딩에 올라가서 어느 정도 높이까지 가스가 올라왔는가,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지만 어둠이 다가와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반더빌트는 무사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까닭은 총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만 해도 시가의 한가운데에서 부랑자들이 기관총을 쏘아도 들리지 않았던 시카고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의 권총 소리도 충분히 들릴 것 같았다.
반더빌트는 비행기의 곁에 솟아 있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우리들은 고무 보트를 타고 되돌아가 그 바위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했다. 반더빌트가 우리들에게 말한 것은 시카고의 마지막을 전하는 기록의 매듭으로서 알맞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 혼자 여기 앉아서 자네들이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니 세계의 마지막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겨우 생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무서운 일은 처음이야....."」
헨드론 박사는 노트를 몇 페이지 넘기더니 얼굴을 들었다.
"여러분, 조금 건너뛰어서 읽겠습니다. 오대호의 조사와 그 곳이 지질학적으로 보아서 어떻게 변화되어 있는가하는 기록입니다. 그들은 시카고에서 디트로이트로 날아갔습니다. 디트로이트의 피해는 시카고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휴런 호의 물이 시가에 넘쳐서 모든 곳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그 가까이 비행기를 착륙시킬 수가 있었고 운 좋게 가솔린을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클리블랜드도 같은 운명이었습니다. 그들은 피츠버그로 다시 날아갔습니다. 다시 제임스씨의 기록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나의 기억엔 피츠버그는 밤낮으로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공업 도시였다. 폐허가 되어버린 오하이오 주 상공을 날아서 우리들은 피츠버그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도 연기가 하늘을 덮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강 근처로 날아가 보니 강물은 꽉 차서 시가로 넘쳐흐를 것 같이 되어 있었다.
연기와 증기는 워싱턴 산의 갈라진 곳에서 솟아오르고 있었으며, 강에 걸린 다리는 다 부서지고 시가의 건물은 반 이상이 파괴되어 있었다. 그리고 피츠버그는 거의가 불꽃에 싸여 있었다.
총소리가 들려왔다. 싸움이 벌어지고 가끔 수류탄의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비행기를 지키기 위하여 두 사람이 남고 나 혼자 시내로 들어갔다. 거리엔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 보이고 탄환이 머리 위를 스쳐갔다. 열 명의 군인들이 후퇴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먼 곳에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제대로 옷도 입지 못한 채 여러 종류의 무기를 들고 고함을 치면서 군인을 죽이려고 했다.
군인들은 내가 숨어있는 가까운 곳에 멈추어서 그들을 향해 총을 쏘고 있었다. 다가오던 군중의 몇 사람인가가 쓰러졌다. 여자의 비명 소리도 섞여 있었다. 한 군인이 소총을 떨어뜨리고 팔을 잡았다. 그리고 비틀거리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기관총을 갖고 있는 군인이 한참 동안은 폭도를 저지시켰다. 나는 팔에 부상을 입은 군인에게 달려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약으로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군인은 고맙다고 말하고 피츠버그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언젠가 나는 그 이야기 전부를 써놓겠지만 지금은 대강 줄거리만 기록해 둔다.
그 군인의 이름은 슈르스라고 했다. 그는 아내가 캔자스의 친척 있는 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피하려고 하는 것을 반대하고 시가에 남아 있었다. 26일 밤, 가깝게 다가오는 브론슨 알파의 커다란 모습에 놀라면서도 그는 거리로 담배를 사러 나왔다. 그 때 피츠버그에 일어난 최초의 지진으로 그의 집이 부서져 가족은 모두 죽고 말았다. 그로부터 48시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그는 기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피츠버그의 제철소는 끝까지 가동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 시가에까지는 해일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끝까지 철을 생산하고 있었다. 공장은 파괴되고 녹은 쇠가 흘러내려 수천 명이 그 안에서 죽고, 수만 명이 시가에서 죽어 갔다.
많은 건물은 땅 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지진 뒤에 시가를 지키는 의용군이 조직되어 은행원인 슈르스는 거기에 참가했다. 식량, 물, 약품을 모아서 부상당한 시민들 돕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식량은 부족하고 약은 떨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도리어 의용군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오기 3일 전 큰 폭동이 일어나 갱으로 변한 시민들은 의용군의 창고를 습격하여 그것을 점령했다. 그리고 3일 공안 전투가 계속되었다. 나는 슈르스와 이별하고 강가로 되돌아왔다.」
또 헨드론 박사는 얼굴을 들었다.
"이것으로 피츠버그의 기록은 끝입니다. 세 사람은 다음에는 애팔래치아 산맥 기슭으로 날아가 거기까지 푸른 물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워싱턴은 바다 밑으로 들어가 대서양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중간을 생략하고 아메리카 합중국의 수도로 된 캔자스 주 허친슨으로 향할 때의 기록을 읽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대로 우리들은 허친슨으로 날아갔다. 거기는 본래 해발 500미터나 되는 도시로, 곡물, 목축, 목재 등의 집산지였었다. 세 개의 철도가 통과하여 물자를 수송할 장소로서 이상적인 곳이었다. 여기에는 브론슨별이 통과하기 몇 주일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동해안에서 천 백만 명, 서해안에서 삼백 만 명이 미시시피 계곡으로 몰려들어왔었다. 그 반 이상은 강을 거슬러 올라온 해일에 죽고, 계곡은 이제 와서는 아메리카 합중국을 두 개로 나눠 버린 큰 바다로 변했다. 우리들의 비행기는 군인이 지켜 주고 나는 자동차로 백악관으로 갔다.
새로운 백악관은 금속으로 지은 건물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대통령과 장관들을 만나게 되었다. 대통령은 야위고 피로해서 그 손은 몹시 떨고 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대통령은 콩과 베이컨만 먹으며 살고 있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헨드론 박사가 성공할 것을 믿고 있다. 오직 그분만이 인류의 희망과 지구의 운명을 브론슨 베타에 옮길 수 있는 것이다......."」
헨드론 박사는 읽는 것을 잠시 중단했다.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제임스의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말씀하셨다....... '서부 평원의 이주는 해일에 대한 피난으로서는 옳았다. 그러나 지진과 폭풍에 대해서는 너무 가볍게 보았다. 우리들은 24일 워싱턴에서 여기에 왔다. 거처도 준비됐고, 식량도 충분히 저장되어 있어 여기에 모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내가 그 때 의문스럽게 여기고, 지금도 믿을 수 없는 것은 브론슨 알파와의 충돌로 정말 지구가 없어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과학자의 예언은 과연 맞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25일, 우리들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군중은 한 시간에 30만 명쯤 계속 도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여러 곳에서 용암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칸소 강은 용암으로 꽉 찼고, 수증기와 가스가 계속 솟아올라왔다. 북부 고원에서는 화산이 터져 나왔고, 약한 건물은 전부 쓰러졌다. 이 무서운 최초의 수 시간 사이에는 사람들은 살아남아 있었다. 사람들을 몰살시킨 것은 화산이 터지면서 일어난 강한 폭풍이었다. 이 평야는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 없어서 순식간에 사람들을 휩쓸어 버렸고, 바람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하호로 피해 갔던 사람들은 모두 지진으로 무너져 깔려 죽었다. 얼마나 바람이 셌던지 콘크리트 건물이 쓰러져 넘어갔다. 우리들이 들어갔던 지하호는 다행히도 무사했다. 그러나 우리들이 피난민을 위하여 애쓴 노력은 결국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헨드론 박사는 읽던 다섯 권 째의 일기를 옆에 놓고 말했다.
"여러분, 그들은 대통령과 이별하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들은 로키 산맥을 넘어 올라가려고 했으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용암이 끓어오르며 흘러내려서 산 사이를 메우고, 하늘에는 아황산 가스가 자욱히 퍼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3주일간 계속 비행하여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약속한 날까지 조사하다가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인트 폴과 밀워키를 돌아서 되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세인트 폴에 가는 도중 비행기의 고장으로 작은 호수에 불시착하게 되었는데 그 때, 란스텔은 용암이 끓으면서 솟구치는 그 속에서 녹지 않고 있는 금속을 발견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광물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막힌 가솔린 파이프를 고쳐서 겨우 세인트 폴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에도 피츠버그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2주일간이나 굶주림과 병에 시달리며 그들은 밤늦게 간신히 세인트 폴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미시시피 강에 착수할 순간 비행기의 고장으로 부상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임스가 쓴 일기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트가 우리 쪽을 향해서 오고 있었다. 뱃머리에 기관총을 장치하고 있었다. 란스텔은 엔진을 걸었으나 비행기는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탄환이 날개의 한 쪽을 뚫고 지나갔다. 순간 반더빌트는 비행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버리기 시작했다. 비행기의 속도는 너무 느려서 날아오를까 염려스러웠다. 그들을 처치하지 않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
헨드론 박사는 7권 째의 일기장을 내려놓았다.
"모터보트로 공격해온 사람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두 번째 보트가 따라오기 전에 비행기가 겨우 날아오르게 되었습니다. 란스텔은 밤새도록 고통을 참아 가며 비행기를 몰아 겨우 여기까지 되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의 모험담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공 격
가을이 되었으나 그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가을과는 전혀 달라서, 여름의 더위가 계속되었다. 하늘에는 아직 안개가 끼어 있었다. 태평양 쪽에 연이어 있는 큰 분화구에서 나오는 화산재가 기류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이 약간 줄어졌다고 느끼면 또 폭발이 계속되는 것이다.
화산학자는 브론슨별의 접근 이전에 있었던 활화산(현재 활동하고 있거나 가까운 과거에 분화한 화산)은 30개나 있고, 휴화산(오랫동안 분화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화산)은 수천 개라고 보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태양은 빨갛게 보였고, 화산재로 회색이 되어버린 비가 많이 내렸다. 세계 곳곳의 갈라진 틈에서 증기와 가스가 뿜어 오르기 시작했다.
박사는 세 사람이 원기가 회복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일기를 읽은 그날, 다른 조종사와 같이 비행기를 타고 이상한 광물이 있는 장소를 찾아갔다. 그 후 여러 번 왕복하여 노아의 방주 호가 필요로 하는 많은 양의 금속을 운반해왔다.
아무리 열을 가해도 그 광물은 녹지 않았으나 끊을 수는 있었다. 기계 공장에서 엔진과 분사관의 열에 닿는 부분에 사용할 수 있었다.
드디어 노아의 방주 호는 완성되어 언제든지 출발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 것으로 기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란스텔의 금속 발견으로 인류는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베타로 이주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즐거운 일에 따라서 곤란한 일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기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헨드론 기지의 일을 알고 몰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수가 적을 때는 식사와 의류를 지급하고 숙박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에는 식사를 주고 쫓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죽느냐 사느냐 하는 피난민과의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헨드론 박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준비를 갖춰 놓고 있었다. 토니는 건물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철조망을 쳤다. 네 곳에 출입구를 만들고 거기에는 감시원을 두어 오는 사람들을 쫓아냈다. 아무리 참혹하다고 해도 그 외에는 혼란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몰려오는 사람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싸움은 차차 심해져 갔다. 총을 들이대고 기관총으로 위협해서 쫓아 보내는 일은 하나의 일과에 불과했다.
토니는 피난민에게 식료품을 주는 것을 금지할 수밖에 없었다. 식료품을 주면 기지에 폭도를 끌어들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었다. 비행기를 사용하는 이외는 기지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위험하게 되었다. 란스텔은 주위를 비행기로 조사한 뒤 어둠을 틈타서 기지 밖으로 기어나가 모여있는 폭도들의 수가 얼마나 되나 살펴봤다. 기지에 있는 인원보다 폭도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박사에게 보고했다.
"지금 우리들이 공격을 당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밖에 사람들이 단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몇 패로 나뉘어져서 서로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들어와서 식량을 강탈하기 위해 우리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헨드론 박사는 대답했다.
"우리들에 대한 증오심을 없애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토니는 말했다.
"그들이 여기에 들어오면 우리가 죽든지 아니면 그들을 죽이든지 어느 하나를 택해야겠지요."
드디어 기지에 대한 공격은 그 이튿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철조망 밖에서 계속 탄환이 날아왔다. 발전소 옥상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스피커로 명령이 전달되었다.
"여자는 숨어라! 남자는 무기를 들어라!"
지평선에는 새로운 두 개의 크고 밝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태양을 돌고 곧 지구와 충돌하게 되는 코스로 계속 다가오고 있는 브론슨 알파와 베타였다. 한 개는 남아있는 사람들과 지구를 멸망시킬 물체였다.
마지막 수비
토니는 잃어버린 달을 그리워해도 이미 산산조각이 난 달이 기지의 둘레를 밝게 비춰 줄 수는 없었다. 건물 옥상에 장치해 둔 세 개의 서치라이트로 기지 둘레를 비출 수밖에 없었다. 밝은 광선이 휙 돌면서 밝게 비춰 주자, 숲 속에 있는 폭도들의 사격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 빛이 갑자기 꺼져 버렸다. 폭도들의 기관총이 서치라이트를 깨뜨려 버린 것이다. 폭도들의 기관총과 소총이 쉬지 않고 기지를 향해 쏘고 있었다.
토니는 회중전등으로 기지 안을 비추어 보았다. 위대한 과학자가 수십 명이나 사살되어 버렸다. 기지의 기관총도 밖의 폭도들을 향해서 불을 뿜고 있었다. 격분한 토니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달려가 그 옆에 엎드렸다.
"내가 쏘겠다!"
그는 폭도들을 쏘지 않고서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일단 방아쇠에 손을 대고는 그는 주저하였다. 적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철조망 밖은 조용했다. 이렇게 갑자기 공격을 중지하고 조용하다는 것은 미리 계획된 작전인 것이 분명했다. "라이트! 라이트!" 그는 외쳤다.
그 소리가 옥상까지 들릴 리가 없는데 옥상에 남아있는 두 개의 서치라이트 중 한 개가 토니가 있는 옆쪽 숲을 비췄다. 백 명 가량의 폭도들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토니는 방아쇠를 얼른 당겼다. 그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분노가 치밀어 올라 계속해서 쏘아댔다. 숲 속의 기관총이 또 불을 뿜어 옥상의 서치라이트 두 개 모두 깨뜨려 버리고 말았다. 신호탄이 노란 꼬리를 달면서 올라갔다. 뭔가의 신호이다!
토니는 숲을 향해 계속 쏘았다. 기지 안의 소총과 기관총도 계속 쏘고 있었다. 그러나 적은 여전히 공격해 오지 않았다. 또 신호탄이 오르고 불꽃이 온 하늘을 환하게 비췄다. 기지 안의 사람들은 잠시 사격을 중지하고 귀를 기울였다. 숲 속에서는 피리 소리만 들려왔다. 피리로 신호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 번째의 신호탄이 올랐다.
"공격해 온다!"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토니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어두운 숲을 살펴보았다. 조명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기지에서는 그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헨드론 박사는 폭도의 습격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으나 이렇게 대규모로 공격해 올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철조망으로 방비하지 못하고 결국 처참한 살육전을 벌이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숲 속의 기관총이 여러 곳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폭도들이 진격해 오는 것이었다. 토니는 그 근처를 쏘아댔다. 비명이 들려오고,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토니는 계속 총을 쏘았다. 천 명 이상의 폭도들이 철조망을 향해서 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광물을 운반하기 위한 몇 번의 비행이 이 기지를 그들에게 알려주게 된 것이었다. 이 지방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몇 주일 동안 정찰을 하고 공격 부대를 편성했던 것이다. 이미 살인을 해 본 사람들이 1만 명 이상 모여있는 것이었다. 토니가 있는 곳에 몇 사람이 응원하러 왔다.
"상처는? 토니 씨!"
하고 테일러가 물었다.
"괜찮아....... 건물 속에서 죽은 사람은?"
"헨드론 박사님은 무사하고 두 여자가 총에 맞았습니다. 이브는 그 간호를 하고 있습니다. 헨드론 박사님이 당신을 만나자고 합니다."
"지금 말인가?"
"예, 지금 곧."
"어디 계시는가?"
"우주선입니다. 내가 대신 쏠 테니 어서 가 보세요."
토니는 공장을 향해 힘껏 뛰어 갔다. 헨드론 박사는 우주선 속에 있었다.
"부상당한 인원은?"
토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너무 많아서 모르겠습니다."
"밖의 폭도들은 언제쯤 들어올 것 같으냐?"
토니는 손목 시계를 보았다. 11시였다.
"12시쯤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 이상 막을 수가 없다."
"예......? 그러나 놈들이 그런 줄 알면 언제든지 공격해 올 것입니다."
"이쪽 인원이 점점 줄뿐이다. 그들이 기지 안으로 들어오면 더 줄 것이다."
"예."
"그러나, 어떤 의미로선 그것이 좋을는지도 모르지."
토니는 놀랐다.
"무슨 뜻입니까?"
"토니, 가능한 한 방비는 하겠지만, 기지 안으로 폭도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살아 남은 사람들을 여기로 모아라."
"여기에?"
"우주선 안이다. 모르겠나?"
토니는 박사를 쳐다보고 전신이 긴장됨을 느꼈다. 희망이 솟아올랐다. 그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됐네, 그러면 흰 천을 나누어 줘라."
"천을?"
토니는 되물었으나 곧 그 이유를 알았다.
"팔에 감는 것이다. 그건, 폭도와 우리를 구별하기 위해서......."
"예."
"서둘러라. 빨리, 토니!"
"예, 그런데 이브는 괜찮습니까?"
"괜찮다. 붕대를 자르고 있을 것이다."
토니는 그녀를 찾아냈다. 한 20명의 아가씨와 같이 팔에 감을 붕대를 자르고 있었다. 그를 보더니 그녀는 그것을 넘겨주면서 외쳤다.
"토니! 조심하세요."
토니는 천을 갖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탄환이 핑핑 날고 있었다. 기관총 소리가 진동하고 비명 소리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기관총의 탄환을 어깨에 메고 달렸다. 테일러는 외쳤다.
"고맙소. 탄환이죠? 쳐들어옵니다!"
"테일러, 흰 천을 팔에 감아라. 놈들이 들어오거든 후퇴하는 것이다. 적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모일 곳은 우주선이다!"
탈 출
폭도들이 기지 안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후퇴다. 후퇴하라! 쏘아가면서!"
토니는 몇 번인가 외쳤다. 때마침 기관총 탄환이 떨어졌다.
"후퇴하라!"
몇 사람인가 그 명령에 따랐다. 다른 사람은 달아나려 하지 않았다. 토니는 알았다. 그들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부상을 당해 죽어가고 있었다. 그대로 두고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헨드론 박사도 인원이 줄게 되면 도리어 형편이 좋아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살아남는다고 해도 우주선으로 탈출할 수 있는 인간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테일러는 소총을 쏘아가면서 토니와 같이 후퇴했다. 기관총 진지에서 후퇴한 사람은 5명이었다. 어두움 속에서 적은 공격해 오고 테일러는 소총을 손에 들고 계속 쏘았다. 토니는 나이프로 적을 찌르면서 달아났다.
그들은 건물에 다다랐다. 사람들은 우주선의 둘레에 모여 있었다. 숙소가 밝아서 폭도들은 계속 전진하지 못했다.
"우주선으로 들어가시오!"
토니는 외쳤다.
"모두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시오!"
큰 격납고 밖에서는 비명과 총성이 그칠 사이가 없었다. 많은 우수한 과학자가 폭도들을 막으려고 계속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토니 곁에 비틀거리면서 가까이 오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회중 전등으로 그 얼굴을 비춰보고 크게 놀랐다. 그는 브론슨 교수였다. 교수는 팔을 부상당하고 있었다. 그 뒤에 애번즈 의사도 다리를 절면서 오고 있었다. 토니는 두 사람을 부축해 주었다.
"빨리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시오!"
탄환이 격납고 안에까지 벽을 뚫고 들어왔다. 고함소리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토니는 부상당한 두 사람을 부축하여 우주선 안으로 들어갔다. 헨드론 박사는 거대한 우주선의 입구에 서서 냉정한 얼굴을 하고 독촉했다.
"안으로 들어가거라, 모두!"
"이브는?"
"괜찮다!"
란스텔이 나타났다. 이 파일럿은 전신이 피투성이였으며, 의복은 거의 다 찢겨져 달아나고 이마와 어깨에 부상을 당하고 있었다.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제임스가 절뚝거리면서 들어왔다. 그 뒤에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우주선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살아남은 사람의 전부인 것 갈았다.
폭도들은 기지의 남녀가 우주선 안으로 달아난 것을 모르고 서로 죽이고 서로 찌르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차차 우주선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거기가 최후의 피난 장소라고 알았기 때문이었다.
출입문을 닫았다. 폭도는 우주선을 에워싸고 탄환을 쏘았으나 선체에 맞고서는 퉁겨져 나갔고, 수류탄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던졌다. 물론 우주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돌연 무서운 불꽃이 폭도를 습격했다. 처음에는 그들은 수류탄이나 가솔린의 드럼통이 폭발된 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대한 우주선은 분사관으로 무서운 불을 뿜으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굉장한 열이 그 둘레에 있는 인간을 태워 재로 만들고 말았다. 우주선이 건물 위까지 올라갈 동안에 수백 명이 죽었다.
헨드론 박사는 선체를 200미터까지 상승시켰고 불꽃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수천 명의 인간이 죽었다. 박사는 그 이상 상승시키지 않았다. 불꽃이 2천 톤이나 되는 선체를 공중에 띄우고, 밑에 있는 사람들을 계속 죽였다. 우주선에 장치한 텔레비전 스크린이 참혹한 지면을 비춰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타 죽었다. 30분 후 헨드론 박사는 노아의 방주 호를 다시 지면으로 내렸다. 조금 전까지 전쟁터였던 기지는 지금에 와서는 침묵의 묘지로 변하고 말았다.
기쁨의 환성
헨드론 박사의 주위에도 침묵에 잠겨 있었다. 박사는 파랗게 질려서 떨고 있었다. 토니는 바지와 양말만 신은 채, 자기도 몰랐던 부상을 치료받고 있었다. 박사는 겨우 숨을 쉬더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처음으로 할 일은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것입니다. 폭도 쪽은 생존자가 없을 것이니 이 이상 공격당할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스미스씨는 필요한 사람을 데리고 가서 부상자 치료를 지휘하십시오. 나머지 사람은 방사능 제거, 그 외의 일은 내가 지휘하겠습니다."
토니는 비틀거리며 맥없이 우주선을 나오고 있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남자보다 여자가 조금 더 많은 것 같았다. 수백 명의 남자들이 죽은 것이다. 이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한 사람도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2주일 동안 계속해서 기지는 무서울 정도로 침묵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 일에 시달리다 보니 슬퍼할 틈이 없는 듯 했다. 그 2주일간이 지나서야 겨우 시체 정리를 마친 토니는 시체를 버린 곳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구덩이를 메웠다.
일을 마치고 나서 작은 언덕에 올라가 기지를 내려다보았다. 우주선의 로켓 분사로 타버렸던 지면에 다시 파란 풀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건물은 그 전대로 깨끗해졌다. 페인트 냄새가 풍겨오고 가축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서 비행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윽고 비행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기지의 비행기가 아니었다. 비행장에 착륙한 비행기를 토니와 여러 사람들이 경계하면서 맞이했다.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내리더니 다리를 절면서 토니 있는 쪽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헨드론 씨에게 데리고 가다오!"
토니는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대답했다.
"나는 헨드론 박사의 조수입니다. 여기에서는 방문객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할 말씀이 계시거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자 그 노인은 날카롭게 말했다.
"헨드론을 만나자고 하지 않았나!"
토니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용무를 말씀하시면 만나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노인은 큰 소리로 호령했다.
"만나도록 해 준다고? 나는 헨드론을 만난다고 말했잖아? 자네가 바로 토니 오엔이지?"
갑작스럽게 토니는 그 노인을 기억해냈다.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아메리카의 대재벌인 나사니엘 보강이란 사람으로서 모든 실업가의 친구며 헨드론 박사의 친구이기도 했다.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나를 따라 오십시오."
보강은 헨드론 박사를 만나자 흥분한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여기에서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신을 경제적으로 원조하려고 하였으나 이 몇 주일 동안 바빠서 올 수 없었다. 당신이 출발할 때에 나를 데리고 가리라고 생각해서......."
노인은 테이블을 두들겼다.
"당신은 나를 데리고 가겠지? 내가 타고 온 비행기를 보아라. 그 안에 돈이 쌓여있다. 100달러 짜리, 1000달러 짜리, 10,000달러 짜리 지폐 다발이 산더미같이 있다. 수십 억 달러가 되는 엄청난 돈이다. 그것이 내 생명의 대가이다!"
헨드론 박사와 토니는 그 노인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한때는 그 노인의 손아귀에 미합중국의 경제가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한 미치광이로 변해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는 돈으로써 자기의 생명을 살려고 하는 노인을 바라다보며 두 사람은 슬픔을 느꼈다. 헨드론 박사가 거절하자 그 돈 많은 노인은 화를 내며 떠들어댔다.
"대통령에게 말해서 너희들을 형무소에 집어넣고 말겠다. 24시간 이내에 최고 재판소가 당신들을 체포할 것이다!"
비행기가 날아가고 난 다음 기지의 남녀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고 그 우울함을 잊으려고 했다. 건강한 여자가 209명, 건강한 남자가 182명, 부상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는 남녀가 80명, 아무래도 불구자가 될 남녀가 30명 정도 되었다. 5백여 명이 싸움으로 죽었거나 그 뒤에 사망했다.
일은 아직 산더미같이 있었으나 우주선은 3주일 후면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다. 출발할 날까지는 5개월이 남아 있었다. 최대의 손실은 많은 과학지식을 갖고 있던 학자들이 죽은 것이었다. 학교가 열리고 200명 이상의 남녀가 새로운 지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 어느 날 밤, 헨드론 박사는 전원을 식당으로 모았다. 모두들 처음에는 기운을 내라고 격려해 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연단에 선 헨드론 박사의 이야기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박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을 모이라고 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먼저 우리들이 습격 당한 비극을 잊어 주십시오. 오늘 저녁 여러분은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 자신의 일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류에 주어진 마지막 희망을 향해서 노력하고 있는 여러분 자신의 일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몇 분의 일은, 오늘 밤 우주선에 탈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초조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러분, 자, 생각해 주십시오. 여기에 있는 몇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걸고 그 희망의 달성을 위해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무슨 말로써 감사의 표현을 대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반더빌트, 제임스, 란스텔 등은 우리 지구의 운명에 대해서 최후의 기록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란스텔은 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을 지구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할 그 금속을 가지고 왔습니다."
박수와 함성이 일어나서 잠시 동안 박사의 이야기는 중단되었다.
"테일러와 토니의 용감한 행동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용감히 싸워 주어서 우리들이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또 함성이 올랐다.
"이러한 훌륭한 행동은 인류로서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나는 5개의 금메달을 만들었습니다. 한 면에는 '다수에의 통일'이라는 아메리카 합중국의 모토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밑에는 각기 이름과 그 용기를 칭찬하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쪽에는 브론슨 교수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메달의 수여는 브론슨 교수님이 하시겠습니다."
헨드론 박사는 한 사람씩 메달을 수영할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이 일어서서 앞으로 나가자, 박사는 메달을 수여하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브론슨 교수가 엄숙한 얼굴로 메달을 그들의 목에 걸어주고 악수를 했다.
반더빌트와 제임스는 아주 당황했다. 테일러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토니와 란스텔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메달을 받았다. 박수 갈채가 겨우 끝나자 헨드론 박사는 말을 계속했다.
"다음에는 여러분과 상의해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열심히 생각하고 주의 깊게 계산해 온 결과입니다. 그 결론을 일찍 결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여러분의 마음과 성격을 거의 몰랐던 까닭도 있었고, 우리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 설비에 자신이 없었던 까닭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대단히 용감하고 진실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기 때문에 나는 결론을 내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폭도들로 인해 많은 동료를 잃어 버려서 사람 수가 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내가 이 마을을 건설한 목적은 약 100명의 인간을 브론슨 베타에 보내고 거기에서 인류의 생존을 유지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100명을 태울 우주선을 만들려면 천 명의 인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베타로 보낼 인간은 젊고, 보다 건강하고, 보다 우수한 사람이 새로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적합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사는 머뭇거리더니 식당에 모인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숨소리도 크게 쉬지 않고 속삭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박사의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들의 수는 500명입니다. 여기에 있는 남녀 중 우주 여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브론슨 베타에 착륙하게 된다면 거기서 훌륭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베타에 안전하게 착륙하고 거기에서 살기 위해서는 인간 이외에 물자를 많이 옮겨 놓아야 합니다. 내 계산으로서는 노아의 방주 호로 운반할 수 있는 사람의 수효는 처음과 같이 백 명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의 힘찬 노력과 협력과 그리고 금속의 실험 성공으로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즉 남은 수개월 동안을 이용하여 더 큰 우주선을 만들어서 이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그 새로 만든 우주선을 타고 베타로 함께 가자고 말입니다."
헨드론은 의자에 앉았다. 함성도 박수도 일어나지 않았다.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돌 같이 굳어져 있었다. 생사의 제비뽑기는 이제 와서는 필요 없게 되었다. 그들은 잠자코 앉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는 것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냘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사내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눈물 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함성이 일어났다.
일 기
제임스의 일기에는 매일 매일 많은 사건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일기를 읽어보면 헨드론 기지가 흥분에 싸여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는 몇 주일 동안씩 정해 놓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12월 4일
오늘 우리들은 제 2호 우주선의 골격을 완성시켰다. 첫째 것은 이미 '노아의 방주 호'라고 명명했다. 제 2의 것에 붙일 좋은 이름을 생각해 낸 사람에게는 이젠 가치 없는 돈이지만 5천 달러의 상금을 걸고 현상 모집을 했다.
12월 7일
오늘 토니 오엔에게는 굉장한 일이 일어났다. 그가 뉴욕의 자기 집에서 수년간 가정부로 일하고 있었던 셀리 아줌마가 나타난 것이었다. 셀리 아줌마는 이 기지에 오는 도중에서 행방불명이 된 줄로 알고 있었으나 그 느린 걸음으로 용케도 기지를 찾아온 것이었다. 키가 작은 셀리 아줌마는 온순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옛날처럼 폐를 끼칠 수 있을까요?" 라고 이야기를 걸어오는 소리에 토니는 무심코 뒤돌아보고는 깜짝 놀랬다. 토니는 셀리 아줌마의 손을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 여자의 건강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셀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확실히 그 여자는 강철같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여자는 두 달 동안에 무려 1,30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 왔던 것이었다. 듣고 보니 그 여행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이브도 대단히 기뻐하면서 그 여자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12월 8일
네 마리의 사슴이 기지로 들어왔다. 모두 몰려 나와 둥그렇게 포위하여 우리로 몰아 넣고 기뻐했다.
12월 19일
헨드론 박사는 정말 대단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된 일이지만 그는 노아의 방주 호의 열을 막기 위한 이중 벽 사이에 책을 끼워 넣고 있었다. 책은 좋은 절연체가 되고 우리들이 미래의 집이 될 베타에 도착했을 때 소중한 도서관이 되는 것이다. 굉장한 사람이다. 헨드론 박사는!
12월 31일
오늘은 특식이 나왔는데 칠면조 고기만 없을 뿐이었다.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고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농장은 꽃이 만발했다.
1월 18일
란스텔이 금속을 싣고 세인트 폴과 미니애폴리스 위를 날아왔는데, 사람들이 모두 죽었는지 다른 곳으로 옮겨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기지가 밖에서의 공격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 위험은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다 죽어 가는 이 세계에 있어서도 이 헨드론 기지가 갖고 있는 무서운 무기의 소문은 널리 퍼졌겠지.
1월 20일
여자 숙소에서 댄스 파티가 열렸다. 많은 쌍의 연인들이 나와 있었다. 전원이 우주선에 탈 수 있게 됨을 알았을 때부터 사랑에 대한 희망도 싹튼 것이었다. 여자 쪽이 훨씬 많았으며, 그 누구라도 아름답고 훌륭한 여성들이었다.
2월 17일
한 달만 있으면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 운명의 낱이 가까이 다가오는 데도 우리들은 새 삶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들이 떠날 우주 여행은 대단히 위험할 것이라고 헨드론 박사는 여러 번 강조했다. 이론적으로는 지장이 없으나 브론슨 알파와 지구가 충돌할 때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는지 예상할 수 없었다. 우리들이 탄 우주선이 우주에 흩어져 있는 행성 파편에 맞아서 부서질는지도 모른다. 헨드론 박사가 보증하는 것은 우주선이 우주 공간을 날아서 베타의 대기권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면, 그 땅위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2월 22일
브론슨별이 다시 똑똑하게 모습을 나타냈다. 망원경으로 관측해 보니 브론슨 베타의 표면에 있었던 눈과 얼음은 태양열 때문에 완전히 녹아버렸다. 전에는 고체였던 공기는 기체로 변했고 구름이 꽉 덮여 있었다. 그 구름을 통해서 대륙과 바다가 보였다. 스펙트럼 분석 결과 그 공기는 인간이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신비적인 별 표면에 실제로 가 볼 때까지는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알 수 없을 것이다.
2월 28일
제 2호 우주선 건조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건조에 필요한 금속은 대단한 양으로, 헨드론 박사가 준비한 것은 최초의 작은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양밖에 없었다. 그러나 광석을 제련해서 만들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노아의 방주 호를 넣어 두었던 커다란 격납고를 분해해서 사용하고도 모자라서 가까운 강에 있는 두 개의 철교가 분해되어 운반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남녀가 하루 16시간씩 일하고 있다. 헨드론 기지는 완전히 공업 도시로 변했다. 용광로는 하루 종일 연기를 품어 올리고 도로는 무거운 짐을 실은 트럭이 왕래하고, 기계 공장에서는 쉴새 없이 기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우주선을 완성시키려면, 헨드론이 원자력 발전소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3월 6일
출발 날짜와 시간이 발표되었다. 우리들은 이 달 27일 오전 1시 45분 정각에 지구를 떠난다. 예정 비행 시간은 90시간으로 잡고 있으나 더 단축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3월 28일
일기를 쓰다 보니 기지 밖의 상황에 대해서 기록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우리들은 가끔 방송을 들을 수가 있었다. 잡음이 대단히 심하여 모르스 부호로 송신하는 것도 보통 방송하는 것도 모두 수신 상태가 아주 나빴다.
10월에 한 번, 1월에 또 한 번 아메리카 합중국 대통령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는 힘없는 소리로 그가 있는 장소에서의 생활을 단편적으로 말할 뿐이었다. 별다른 구조를 청하는 것은 아니었다.
4, 5회 외국 방송이 단편적으로 들려올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폭풍우 직후에 일시적으로 조용하게 되었을 때 이외에는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방송은 전혀 들려 오지 않았다. 그러나 12월 8일 밤만은 예외였다. 프랑스어의 연설이 간단하게 들려왔다. 프랑스 대통령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평화를 호소하고 있었다. 아마 유럽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3월 20일
나머지 일 주일만 지나면 출발이다. 모두가 꿈속에서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신경의 긴장이 대단한 것 같았다. 숙소의 계단에서 두 여자가 앉아서 30 분 이상 열심히 드레스를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 것을 듣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준비는 이미 다 끝났다. 상하기 쉬운 물건은 모두 출발 직전에 옮겨 싣기로 했다. 동물과 새도 모두 옮겼으나 로프로 고정시키지는 않았다.
나는 헨드론 박사에게서 옮겨 실은 물품의 목록표를 받았다. 두 개의 우주선은 거대하였으나 특히 두 번째의 것은 큰 가스 탱크를 세 개 포개놓은 것 같고, 그 외부는 번쩍번쩍 빛났다. 우주선에 옮겨놓은 것은 지구 문명의 견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들의 준비는 다 끝났다.
만세 그리고 안녕
토니와 이브는 언덕 위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저물어 가는 골짜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당신 아버님을 생각하니 무서운 기분이 들어."
"왜요, 그렇게 온화하신 분은 또 없을 텐데요."
"존경할 만한 분이야. 박사는 아마 지구에서의 탈출을 생각해 낸 최초의 사람일 거야. 나는 우주선의 출발 준비가 끝났을 때를 생각해 봤어. 이 기지에 있는 천 명의 사람들 중에서 백 명만 뽑아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무서운 일이었을 거야."
"그렇죠."
이브는 토니의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대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이 기지의 일을 알았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도 생각했지. 보강 같은 사람도 수천 명 나타날 것이야. 남편은 우주선에 탈 수 있다면 처자식도 내버릴 것이며, 사람들은 승선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싸우게 될 것이다. 박사님이 이 외딴 곳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 그리고 지금 우리들은 모두가 출발하게 된 거야."
"나는 아버지의 계획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었어요. 당신은 배에 타지 않을 작정이었지요?"
"나는...... 물론 그렇게 생각했지. 내가 가서 뭘 하겠어?"
이브는 빙긋이 웃었다.
"당신은 훌륭한 사람이에요. 당신의 매력은 그런 거지요. 들어보세요. 전에 나는 아버지의 리스트를 본 일이 있어요. 승선자로서 브론슨 교수를 첫째로, 애번즈를 두 번째, 란스텔을 세 번째, 그리고 당신은 네 번째, 그리고 나는 다섯 번째였어요. 토니......! 전 세계에서 아버지가 필요한 사람을 모아봤는데 그 중에서 당신은 네 번째가 되는 셈이에요."
"나를 리스트에 넣은 것은 아버지가 감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야."
두 사람은 잠시 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은 리스트에 없었어요. 100명을 뽑을 때 나이가 많은 자기는 필요가 없고 자기 임무는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 당신 아버님은 그런 분이야."
기지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근무 교대 시간을 알려 주는 소리였다. 식당과 숙소에는 밝은 전등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 테일러는 토니에게, "뉴스가 있습니다. 란스텔 씨가 지금 정찰 비행에서 돌아와 보고하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모여들어, 우리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군요." 하고 말했다. 가방에 자기 소지품을 정리하고 있던 토니는 얼굴을 들었다.
"그게 정말인가? 너무 조용한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두 번째 뉴스는, 승선자의 명단이 발표되었어요. 누가 어느 배에 타는......."
"그래......?"
"당신은 제 1호선입니다. 이브도 같이 타고, 선장은 헨드론 박사, 부선장은 당신입니다. 제임스도 같이 탑니다. 그런데 제 2호선의 선장은 누군지 짐작이 가십니까?"
"제사프?"
"아뇨."
"웨슬리?"
"아닙니다. 그 훌륭한 과학자 두 분은 최고 책임자입니다. 제 2호 우주선은 란스텔의 지휘를 받고 날게 됩니다."
"란스텔이? 그러나, 그가 그러한 능력이 있을까?"
"제사프와 웨슬리가 도울 겁니다. 그러나 박사는 란스텔의 결단력과 비행 경험을 보아서 그렇게 결정한 모양입니다."
"그러면 자네는?"
"제 2호선입니다."
"그래? 잠시 동안 떨어져 있게 됐군."
"정말 여러 가지로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베타에서도 많이 돌봐 주십시오."
토니는 에어 록까지의 긴 계단을 올라갔다. 우주선 안은 불빛이 밝게 비치고 있었다. 그 중심에 나선형 계단이 있고 2미터 반 간격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최상부에는 계기류, 맨 밑에는 기계와 원자로가 있고, 로켓 분사관이 튀어 나와 있으며, 자동차 바퀴의 스포크 같은 작은 분사관이 둘레에 붙어 있었다. 배의 방향을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비행 중에는 뱃머리를 앞으로 두고 날지만 착륙할 때는 이륙할 때의 모습 그대로, 즉 배꼬리부터 내려가는 것이다. 토니는 배 꼬리의 기관실에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 위에는 가축을 모아 놓은 우리였다. 그 위에는 식료품 창고가 있었고, 다음은 대원의 거주 구역으로 되어 있으며, 가속과 감속에 견딜 수 있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식료품 창고에는 4일 이상 우주 비행을 계속해도 충분할 만한 음료수와 식료품을 넣었다. 토니는 나선형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서 제일 위에까지 갔다. 거기에서는 헨드론 박사가 계기류를 조사하고 있었다.
"야, 토니......! 드디어 완성됐다. 이제는 언제든지 출발할 수가 있다. 그리고 브론슨 베타에 꼭 도착할 수가 있다."
유쾌하게 박사는 말했다.
"베타에 안전하게 착륙한다 해도 샅아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브론슨 베타에 식물이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아니 절대로 확실하다고 본다. 고등 동물은 추위에 사멸되었을는지 모르지만 식물의 홀씨(식물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식물을 만들기 위한 세포)는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위대한 과학자 알핼름은 수년 전에 식물의 홀씨는 어떠한 추위에도 사멸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액체 공기 안에 몇 개월 동안 넣어 두었던 홀씨가 번식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저온에 대한 저항력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지만 미생물 중 어떤 것과 홀씨는 저온에서도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브론슨 베타는 태양 광선으로 따뜻해져서 식물이 다시 숨을 쉬게 되었을 것이다. 그 동안 식물이 움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식물의 종자와 홀씨를 가지고 간다."
"어린 벌레도 말입니까? 개미와 지렁이까지."
"그렇다. 에머슨에게 들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에머슨에게 맡겼다. 우선 가장 필요한 것은 꽃가루를 옮겨 주는 별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든 생물 중에서 먼저 각종의 벌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개미도 필요하다. 흙 속의 통풍을 좋게 하고, 지렁이는 토질을 좋게 만들어 준다. 그 쪽의 강과 바다에 넣을 물고기와 그 알은 물론, 메뚜기도 가지고 간다."
"왜요?"
"이러한 곤충도 새로운 세계가 녹색의 식물로 덮여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번식하면 식물을 다 먹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너무 번식하지 않도록 메뚜기에 기생하는 파리와 버섯의 홀씨도 가지고 간다. 그런 것이 없으면 식물이 지면에 쓰러져도 썩지 않기 때문이지. 그밖에 음료수 외에 플랑크톤 등의 미생물을 넣은 물과 바닷물도 가지고 간다."
"동물은요?"
"넣을 장소가 한정되어 대단한 논쟁이 일어났었지. 너도 들었잖아? 조류는 좀 간단했지만."
"예, 나도 한 마디 했지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을 가지고 가자고 부탁했지요. 꾀꼬리와 종달새 같은 것을......."
"개와 고양이의 문제가 가장 곤란했어."
공기 밸브가 어디선가 윙윙거리고 발전기의 소리도 들려왔다. 우주선은 흡사 살아있는 물건 같았다. 토니는 우주선 밖으로 나왔다.
그날 밤, 전원이 또 식당에 모였다. 헨드론 박사는 마지막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떠한 일에도 거기에 대비할 주의서가 인쇄되어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졌다.
새로 만든 큰 우주선은 '노아의 방주 호'와 꼭 같은 모양으로, 작은 것보다 100미터나 더 높았다. 이야기가 끝난 다음 모두 식당에서 나와 브론슨 알파와 베타를 쳐다보았다. 이 두 별은 곧 하늘로 날아 올라갈 것 같았다. 알파는 그전의 달보다 더 컸으나 그 주위는 희미하게 보였다. 대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베타는 불규칙한 형인데 대륙의 모습이 보였으며, 더 밝은 부분은 큰 바다였다.
그날 밤, 이 두 별이 지평선에서 올라왔을 때 점점 커지는 것 같이 보였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상처가 나고 약해진 지구의 표면은 이 거대한 천체의 접근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은 지진이 때때로 일어나게 되고, 바람도 최후의 큰 충격을 예상하는 것 같이 점점 세게 불어오는 것 같았다. 바다는 달이 파괴되고 난 뒤는 조수의 이동은 없어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과 고원으로 피난 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지구의 마지막 날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구 마지막 밤
"산책하지 않겠어? 이브."
토니가 말했다.
"예,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기다리기만 한다는 것이 조금 지루한 것도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드네요. 몇 마리의 동물과 우리들이 타면 그것으로 끝나는 거예요."
"동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참 이상한 것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래요, 사자나 호랑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이상해요."
"육식 동물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곤란할 텐데....... 그 동물에 먹일 가축을 데리고 갈 수가 없는 데다가 브론슨 베타에는 먹일 고기가 없잖아. 기대되는 것이라곤 풀과 이끼뿐이고....... 그런데 미국 이외에서도 출발하는 우주선이 있다고 생각해."
"아버지는 모르세요. 그러나 몇 개월 전, 아직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을 때, 아버지는 란스텔 금속에 대해서 아는 대로 방송했지요. 그 금속을 다른 장소에서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명확한 것은 어떤 우주선이라도 베타에 도착하면 그 승무원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아무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캥거루를 데리고 왔으면 좋겠어. 우주선을 출발시킬 수 있는 나라는 어디 어디일까?"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한국이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남아프리카도 만들 수 있다고 아버지는 생각하고 계세요. 남아프리카에서는 론진 경이 지휘하고 있을 거라고요."
"그 외에는?"
"아르헨티나와 동남 아시아의 몇 나라도 할 수 있겠지요."
"우리들의 두 척과, 모두 열두 척쯤 되겠군."
"그 열두 척이 출발한 다음에 지구는 없어지고 만다. 브론슨 베타에 도착할 수 없으면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주를 헤매다가 굶주리고 질식하여 죽어갈 뿐인 것이겠지."
"그런 건 생각하지 말아요. 토니, 당신은 알아요? 란스텔 씨와 브론슨 교수가 사자를 꼭 데리고 가야한다고 버티던 것을?"
"왜 그럴까?"
"란스텔과 브론슨 교수가 처음 만났을 때, 브론슨 교수가 '이제는 사자가 없어지네' 라고 말했대요."
"베타에서 론진 경을 만나게 됐으면 좋겠는데......."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드디어 지구와 이별이네요, 토니!"
"아, 이것이 마지막 밤이다. 내일 밤은 우주에서 보내게 된다."
"아니에요. 토니, 우리들은 오늘 저녁 출발하는 거예요."
"오늘 저녁? 내일이 아니고?"
"틀려요, 토니. 아버지는 마지막 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셨어요. 만약 그 비밀이 다른 곳에 샌다면....... 그래서 내일 밤이라고 발표해 놓고 실은 오늘 저녁이에요."
"몇 시일까? 이브."
"두 시간쯤 남았어요. 나팔 소리로 신호할 거예요. 아버지는 당신에게까지 아무 말씀 않으셨군요?"
토니는 아무 말도 없었다.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울음소리였다. 이브도 그것을 느꼈다. 헨드론 기지에 아이가 있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아이의 울음 소리였다.
"누구일까?"
아이의 울음소리는 계속됐다. 이브는 아이를 계속 부르며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이가 철조망 저쪽에 있었다. 세 살과 네 살 정도의 아이였다. 아이들은 '아버지, 아버지'하고 부르며 울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아이들을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는 아이들을 그대로 두고 혼자 달아나 버린 것이리라. "여기에 있으면 누군가가 구해 줄 것이다." 라고 말하고 가버렸겠지.
이브가 철조망 사이로 손을 뻗치니 두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토니는 아이들을 철조망 위로 들어서 넘겨왔다. 그리고 이브는 두 아이를 끌어안았다. 작은 여자아이가, "어머니에요?" 라고 물었다. 아마 아이들의 어머니는 죽은 모양이었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는 이 기지와 우주선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여기에 데려다 놓고 자기는 달아나 버렸을 것이다.
"이름이 뭐지?"
사내아이가 대답했다.
"나는 댄이고, 얘는 도로시에요."
그 때,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토니와 이브는 댄과 도로시를 끌어안고 걷기 시작했다. 이브가 중얼거렸다.
"예정 시간보다 빠르네요. 위험이 빨리 닥쳐오는 지도 몰라요. 나에게도 정확한 시간을 가르쳐 주지 않았거나, 변경이 되었는지도....... 이 애들은 데리고 가야죠?"
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과 염소도 데리고 가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말란 법이 어디 있어!"
모든 건물은 눈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이브가 말한 대로 동물과 인간 이외는 모든 것을 우주선으로 옮겨 놓았고 지금은 남은 동물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삐 서둘러 서로 이름을 부르고 악수를 나누며, 포옹하고 있었다. 전원이 출발하게 되지만 두 척으로 갈라 타는 것이다. 그러나 브론슨 베타에서 다시 만나게 될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느 것이 출발 직후에 폭발할는지도 모르고, 또는 베타에서의 착륙에 실패할는지도 모른다.
토니와 이브는 댄과 도로시를 각각 가슴에 안고 제 1우주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헨드론 박사도 말리려 하지 않았다. 나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토니는 댄을 이브에게 넘기고 승무원의 점호를 시작했다.
출 발
토니는 승무원 점검을 전부 끝냈다. 모두들 다 타고 있었다. 그는 호각을 힘차게 불었다. 오른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제 2호 우주선에서도 호각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그 쪽에도 준비가 완료된 모양이었다. 지상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에어 록을 막 닫으려고 하는 데, 토니의 귀에 가냘픈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이들의 아버지일까? 그 사람을 데리고 갈 수 있을까? 한 사람 정도는 더 데리고 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소리는 먼데서 가냘프게 들리고 대단히 걱정스러운 것 같았다.
"누구요......?"
토니는 외쳤다. 희미하게 대답이 들려왔다.
"두갱이다. 기다려다오!"
비행장 저쪽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키가 작고 뚱뚱한 사내가 손을 흔들면서 쫓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걸음을 멈추고,
"두갱이다!"
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토니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프랑스 우주선 건조의 지휘자인 대 과학자다. 토니는 마이크를 쥐고 방송했다.
"헨드론 박사님! 에어 록까지 와 주십시오. 두갱 박사가 오셨습니다."
토니는 에어 록에서 지면으로 트랩을 내려놓았다. 작고 뚱뚱한 사내는 달려오다가는 서서 외쳤다.
"기다려다오! 두갱이다!"
그 사나이는 드디어 우주선의 밑바닥인 콘크리트로 만든 발사대까지 와서 그 계단을 오르고 트랩을 올라 에어 록에 다다랐다. 두갱은 숨이 차서 말할 수가 없었다.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벨트에는 권총을 차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숨을 헐떡이며 겨우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갱이라는 프랑스의 과학자입니다. 이것이 헨드론 박사의 우주선입니까? 나는 석달 전에 겨우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혼자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왔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밀워키에서 파괴되어......, 걸어서 왔습니다. 박사에게 전해 주십시오. 내가 왔다고....... 내가 계획한 것을 전혀 신용하지 않는 바보들과 이별하고 왔다고 말입니다. 프랑스의 우주선은 실패했다. 헨드론 박사는 성공했다. ......그래서 내가 오게 된 겁니다. 그들은 바보들입니다! 프랑스에 있는 우리들의 동료는 우주 비행사가 되기보다는 전차의 운전사가 되는 것이 더 알맞을 것입니다!"
그 때 나선형 계단 위에서 헨드론 박사가 내려왔다. 박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쫓아왔다.
"두갱! 반갑다. 두갱! 고맙다. 와 주어서......, 아주 알맞게 왔다!"
두갱은 박사의 손을 잡고 아이들같이 펄쩍펄쩍 뛰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멈추고는 헨드론 박사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박사를 향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토니와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나는 돌았어요!"
그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헨드론 박사는 물었다.
"유럽 각 나라에서 건조하고 있는 우주선은 어떻든가?"
"영국은 아마 성공했을 걸세, 그러나 나는 자네의 우주선이 더 좋아."
"독일은?"
"너무 앞섰지! 그들은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하여간 나는 자네를 신뢰하고 있었네!"
이렇게 하여 이 별난 프랑스의 위대한 물리학자 삐엘 두갱은 11시 59분에 제 1호 우주선의 승무원이 되었다. 그는 박사와 같이 사령실로 올라갔다. 토니는 에어 록을 닫고 계단을 올라가서 제 1객실로 들어갔다. 모두 누워 있었으나 안전 벨트를 걸지 않고 머리 위에 있는 큰 텔레비전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밝게 빛나고 있는 헨드론 기지와 반대쪽의 우주가 비치고 있었다.
"걱정했어요! 토니, 무슨 일이 있었어요?"
"프랑스의 물리학자 두갱 박사가 찾아왔어. 정말 소중한 분이 알맞게 찾아왔지."
이브는 물론 방안의 모든 사람들도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와 하며 박수를 쳤다.
사령실에서는 헨드론 박사가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그 스크린에는 한가운데 가는 십자의 선이 그어 있고 그 바로 옆에 작은 별이 보이고 있었다. 그 별이 중심에 왔을 때 두 척의 우주선은 불을 뿜고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조정 요원은 모두 좌석에 앉아 있고 두갱은 예비석에 앉아 있었다. 이 프랑스 과학자는 시계를 흘끔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다스러운 그도 지금은 잠자코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은 실내의 계기를 차례차례로 훑어보고는 기원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사령실의 전원은 긴장했다.
박사의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서 우주선 안에 퍼졌다.
"전원에게 말한다....... 벨트를 매어라. 30초 후에 출발한다! 30......29......28......27......"
원자로의 출력이 최대로 되었는지 선체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령실에 있는 다섯 사람의 손이 몇 초 몇 초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앞에 있는 스위치에 닿아 있다.
"5......4......3......2......1......0"
동시에 다섯 사람의 손이 스위치를 누르고 박사의 손은 레버를 끌어당겼다. 초읽기 소리는 제 2호 우주선에 전달되어 란스텔 선장의 손도 동시에 레버를 당겼을 것이다. 우주선은 굉장한 폭음에 휩싸이고, 전원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구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잘 있거라, 지구여!>
우주 여행
운명의 밤을 맞이하는 지상에서 헨드론 기지의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은 은색으로 밝게 빛나는 두 척의 우주선이 돌연 붉은 불꽃에 싸이는 것을 보았다. 아마 우주선이 폭발을 일으킨 줄로 생각했을 것이다. 굉장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많은 사람들의 고막을 파괴시켰을 것이다.
그 두 척은 차츰차츰 높이 올라가고 긴 불꽃의 꼬리를 끌면서 작아져갔다. 그러나 가까이 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 폭풍과 방사능을 갖고 있는 불꽃과 열로 인해 눈 깜짝할 사이에 타 죽었을 것이다.
텔레비전 스크린에는 지상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기지 둘레의 숲에는 큰 화재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저 먼 남서쪽 지방에서는 지진으로 계속 흔들리는 지면에 아메리카 합중국 대통령이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통령은 두 개의 유성이 지구를 떠나서 공중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을 인류의 장래를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우주선 안에서는 모든 승무원이 굉장한 압력에 눌려서 구토를 하게 되고, 귀가 먹먹해지며, 정신을 잃은 사람도 많았다. 아직 정신을 잃지 않고 있는 토니는 귀가 째질 듯한 폭음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실내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그러나 아직 가속은 계속되고 여전히 얼굴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브......!"
그는 보통 소리로 이야기를 걸었다. 그러나 자기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팔을 그녀 쪽으로 뻗으려고 하였으나 무거워서 도저히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토니, 괜찮아요? 대답해요!"
이브의 소리가 들려왔다. 큰 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큰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 아이들은 어때?"
"모르겠어요!"
"조금만 더 참아!"
돌연 실내의 조명이 꺼지고 텔레비전 스크린이 밝아졌다. 큰 쪽에 노란 불꽃이 비치고 있었다. 로켓의 분사였다. 그리고 스크린의 중앙에 둥근 물체의 일부가 보였다.
토니는 지구 북반구의 반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쪽 끝이 밝아져 가고 있었다. 미국의 서해안과 알래스카가 보였다. 빛의 점이 많이 보이는 그것은 도시의 빛이라고 토니는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것은 화산 활동이 다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또 다른 스크린에서는 캄캄한 우주에 무수한 별이 빛나고 있었고, 그 중심에 연분홍 색으로 보이는 별이 떠 있었는데, 화성 같았다. 텔레비전 스크린의 중앙에는 지구가 둥근 구슬같이 되어서 크게 비치고 있었다. 반 이상이 어두우나 여러 군데에서 붉은 빛의 점이 보였다.
미시시피 계곡을 덮은 큰 바다에 아침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두갱은 엄숙한 얼굴로 유럽을 손가락질했다. 유럽의 낮은 지대는 모두 바다로 되어 있었고, 형태가 전혀 달라져 있었다. 이 프랑스 과학자는 큰 소리로 헨드론 박사에게 말했다.
"파리가 바다의 밑으로 잠길 것을 알고 우리들은 알프스에서 다시 우주선을 만들기 시작했었네. 나는 바보들에게 말해 주었지. 그런 것으로는 녹아버리고 말 것이라고....... 그들은, '녹으면 끝장이지요'라고 대답하더군. 나는 '너희들은 녹아버려도 그만이겠지만 나는 싫다.'라고 쏘아 줬지."
두갱은 시계를 보고 외쳤다.
"그들이 출발할 시간은 1시간 남았다. 어디 한 번 보자. 그 바보들이 녹아버리는 것을!"
헨드론 박사는 아무 대답도 않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따라오게.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어야지."
그는 아래로 내려가서 선실 한가운데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나의 친구 삐엘 두갱 교수를 소개합니다. 최후의 순간에 도착했습니다."
"삐엘 두갱입니다."
두갱이 머리를 굽히자 모든 사람들은 우주선이 떠나갈 정도로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많은 과학자가 죽었기 때문에 정말 과학자가 아쉬웠었고, 두갱은 최고의 과학자였기 때문이었다. 헨드론 박사가 말을 계속했다.
"브론슨 베타에 접근할 때까지 이제는 고통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1시간 후에 프랑스에서 우주선이 출발할 것이니 스크린을 주의해 보십시오. 지금 제 2호 우주선의 위치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조금 떨어져서 쫓아오고 있습니다. 이 비행 도중에서 브론슨 알파와 지구의 충돌이 보일 것이니 꼭 보도록 하십시오. 현재 이 우주선의 비행 상태는 아주 좋습니다. 드디어 우리들은 지구 탈출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박사는 사령실로 되돌아갔다. 스크린에는 무수한 별을 배경으로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그 오른쪽에 브론슨 알파가 차차 커지면서 지구에 접근하고 있었다. 알파는 지구와 충돌하여 지구를 파괴시키고 그 충격으로 자신도 먼 곳으로 날아가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알파의 주위를 돌던 베타는 태양의 주위를 돌기 시작하여 새로운 지구로 변하는 것이다. 1시간 후 선실의 불은 꺼지고 스크린에는 똑똑하게 지구의 모습이 비춰졌다. 전보다 훨씬 작아져 보였다. 두갱은 그 광경을 보아가며 말했다.
"우리들은 지금 프랑스의 바보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나의 친구였던 그 바보들이 알프스의 서쪽에서 출발 준비를 끝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당신들이 발견한 금속을 끝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라고 내가 몇 번인가 충고했지만......."
두갱은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또 스크린으로 눈을 돌리더니 급히 허리를 폈다.
"보인다!"
그가 지적한 장소에는 돌연 환한 점이 나타났다. 대단히 밝고 차차 지구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두갱은 두 손으로 무릎을 쳐가며 프랑스어로 그 빛을 응원하고 잘 되도록 기원했다. 몇 초인가 시간이 흘렀다. 알프스에서 솟아오른 빛은 아직 보였다. 두갱은 일어서면서 주위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소리를 질렀다.
"잘 한다. 잘 한다. 틀림없이 녀석들이 문제를 해결한 모양이다. 부디 성공해라!"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똑바로 솟구쳐 오르던 빛이 수평으로 되면서 지구를 가로질러 알프스를 횡단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갑자기 번개 모양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그 빛은 희미하게 되다가 순간 크게 밝아지더니 곧 꺼지고 말았다.
두갱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졌다. 그러더니 커다란 눈물 방울이 두 눈에서 뚝뚝 떨어졌다. 프랑스의 우주선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다른 장소에서 출발한 세 개의 빛은 계속 솟아오르고 있었다. 영국,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발사에 성공한 것이겠지. 처음에는 이 광경을 보고 사람들이 주로 이야기를 하더니 이제 와서는 조용해지고 말았다. 정신과 육체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우주선은 아주 조용하게 날아가고, 사람들은 보통 소리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12시간은 꿈 같이 지나가 버렸다.
헨드론 박사가 가속을 줄이자 사람들은 이상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있었고,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큼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가 뭔가 먹을 수 없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벌떡 일어나자 그대로 천장을 향해서 날아가 머리가 천장에 부딪혔다. 다행히 천장은 폭신폭신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별 탈은 없었다. 모두가 이상하게 걷게 되었다. 춤을 추는 것 같이 공중에 높이 발을 올려서 껑충껑충 움직이고 있었다.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벨트로 몸을 고정시켰다. 헨드론 박사의 소리가 들려왔다.
"전원에게 말합니다. 이 여행을 하고 있는 이유를 눈으로 똑똑히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실내의 불은 꺼졌다. 스크린에는 지구가 보이고 있었다. 스크린 한 쪽에는 브론슨 알파의 모습을 나타내는 곡선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베타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두 세계의 충돌
그로부터 한 시간 동안 사람들은 계속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브론슨 알파는 무시무시하게 빛나고 지구의 몇 배나 더 컸다. 숨을 죽이고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의 귀에 또 헨드론 박사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달과의 충돌로 브론슨 알파의 방향이 조금 달라져 그 코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변동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알파와 지구는 차차 그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스크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흡사 대참사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작은 지구에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아직 수백만 명이 살아남아서 무서운 별의 접근을 보고 있을 것이다. 땅은 흔들리고, 해일이 일어나며, 용암이 넘쳐흐르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오며, 바다는 끓어오르고, 화재는 더욱 심해져 가겠지. 그리고 머리 위에는 하늘을 덮는 커다란 브론슨 알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토니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두 별을 보고 있었다. 우주선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얼어붙은 것 같았다. 대륙이 바다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크게 금이 가서 갈라진 그 곳에서는 불꽃이 뿜어 오르고 있었고, 수증기가 솟아올라 브론슨 알파 주위의 대기와 혼합되고 있었다. 그 순간 지구는 팽창했다. 그 형태는 점점 변해져서 계란형으로 일그러지고 지구 전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대륙이 솟아올라 알파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끌려가고 있었다. 드디어 두 개의 별이 충돌되는 것이었다. 두갱이 외쳤다.
"하나님 맙소사!"
수증기, 불꽃, 연기 그리고, 지구의 중심에서 솟아오르는 화염......! 브론슨 알파는 우주선과 지구 사이로 이동된 것 같았다. 그 반대쪽으로 가루가 된 지구의 파편이 나타났다. 셀리 아줌마는 무엇인가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엘리엇 제임스는 마룻바닥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울고 있다. 토니는 이브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몇 시간이 지나갔는지.......
"관측 결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관측 기사인 베이스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구는 가루가 되어 그 대부분은 브론슨 알파에 흡수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여러 형태의 큰 파편이 되어 태양 둘레를 돌고 있습니다. 알파의 코스는 계산 중입니다만 쌍곡선 궤도......, 즉 한쪽이 평평한 머리핀형의 궤도로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헨드론 박사는 큰 소리로 설명했다.
"브론슨 알파는 이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태양계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베이스! 브론슨 베타의 궤도는?"
"베타는 이제는 알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브론슨 베타는 독립된 행성으로서 지구가 옛날에 있던 궤도와 거의 같은 곳에 있으며 태양의 둘레를 돕니다."
몇 사람의 여자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지구가 없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다른 새 지구가 생긴 것이다. 한 시간 후 무중력 상태는 사라지고 거의 보통 때와 같았다.
머리 위의 스크린에는 브론슨 베타가 보였다. 큰 달 같이 밝았으나 구름에 싸이고 그 구름 사이로 육지와 바다가 보였다. 세 시간이 지나자 우주선의 스피드는 많이 줄어지게 되고 중력으로 몸이 무겁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헨드론 박사의 소리가 들려왔다.
"식사를 하고 벨트를 잠그시오. 감속율을 올리겠습니다. 고통스러워도 참아야 합니다!"
우주 비행에서 최후의 시련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사령실의 전원은 심한 중력에 허덕이며 몸을 거의 꼼짝도 할 수가 없는 상태에서도 정확하게 우주선을 조정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실수라고 그 동안의 노력을 순식간에 허사로 만들어 버리게 될 것이다.
헨드론 박사 앞에 즐비한 스크린에는 이미 알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을 쳐다보고 있었다. 헨드론 박사는 또 버튼을 눌렀다. 감속은 높아지고 대단한 힘이 전원을 점점 더 강하게 눌렀다. 굉장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갱은 레이더 고도계를 보았다. 138킬로미터이다. 우주선은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드디어 우주선은 대기권 안으로 들어갔다. 굉장한 소리가 났다. 지구를 출발할 때와 같이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헨드론 박사의 얼굴에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고도계는 점점 80킬로미터에서 40킬로미터로 떨어져가고, 이윽고 스피드를 떨어뜨려 16킬로미터로 되었다.
16킬로미터에서 8킬로미터까지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었고 우주선 안의 중력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헨드론 박사의 입술이 떨리더니 한 손을 스크린 쪽으로 뻗었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것은 크게 파도치는 바다였다. 우주선의 로켓이 그 표면에 불기둥을 내뿜자 증기가 무럭무럭 솟아 올라왔다.
헨드론 박사는 1,500미터 높이에서 우주선을 수평으로 고쳐 바다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게 했다. 전 승무원들은 하얗게 파도치는 바다를 보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드디어 브론슨 베타의 표면에 무사히 도착해서 그 넓은 바다를 횡단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두운 바다는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구에서 망원경으로 보았던 대륙과, 섬이며, 도시는 과연 어디 있을까? 그 대륙과 도시는 환상이었단 말인가?
모든 사람들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그 때 수평선 저쪽으로 육지라고 생각되는 것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함성이 우주선 속에서 힘차게 일어났다. 우주선은 천천히 그 육지를 항해서 다가가고 있었다. 언덕이 펼쳐져 있었고, 그 끝 쪽은 안개로 가로막혀 있었다. 검은흙과 바위의 해안이 보였다. 살만한 곳도 보이지 않고, 풀도 보이지 않았으며, 움직이고 있는 것도 물론 없었다.
우주선은 천천히 언덕 위를 날아갔다. 점점 속도를 줄이며 고원 같은 곳에 강하하고 있었다. 로켓은 몇 번인가 큰 소리를 내서 좌석에 있는 사람들을 심하게 흔들리게 했다. 사람들은 마치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우주선은 새 대지 위에 약간 비스듬하게 착륙했다. 그 순간 정신없이 외치는 함성이 울음소리에 뒤섞여 일어났다.
드디어 우주선은 브론슨 베타에 완전히 착륙한 것이었다.
새 지구
헨드론 박사는 두갱을 쳐다보았다. 아래쪽에서는 여러 사람의 환성이 계속 들려왔다. 스크린에는 바위와 흙이 있을 뿐 쓸쓸한 풍경과 안개가 자욱히 끼어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박사는 이 8개월 동안에 처음으로 안도의 숨을 크게 쉬고 천천히 일어났다. 두갱은 외쳤다.
"훌륭하다. 당신 앞에 엎드리겠소! 당신은 드디어 운명을 이겨냈소. 당신에 비교하면 콜롬부스나 마젤란도 어린아이에 불과하오. 보시오! 모두가 즐거워하고 있소. 당신의 힘으로 인류는 오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게 된 것이오. 고맙소. 축하하오."
그는 헨드론 박사를 끌고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헨드론 박사, 만세! 만세!"
라는 환호 소리가 일어났다. 그리고 남녀가 정신없이 박사 곁으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그를 향해서 박수를 치며 손을 흔들며 큰 소리를 질렀다. 토니는 이브가 아버지 있는 곳으로 애써 가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누군가가 사람들 사이를 헤쳐 주며 안으로 들어가도록 도와주었다. 모두가 포옹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이윽고 누가 창고를 열어 식료품을 꺼냈다. 4일 동안 거의 아무 것도 먹지 못했던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먹기 시작했다. 토니는 외쳤다.
"제 2호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7"
그 소리에 따라 다른 사람들도 떠들었다.
"어디에 있는가? 안 보이나? 독일의 것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국의 것은?"
그 소리가 잠잠해지자 헨드론 박사가 설명했다.
"제 2호선은 곧 도착할 겁니다. 연락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3일간 동안 다른 우주선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진로가 유일한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 우주선보다 먼저 와서 이 별의 저쪽 편에 도착했을는지도 모릅니다. 현재 여기는 해질 무렵이며, 이 별의 하루는 30시간입니다. 주위의 지면은 아직 뜨겁고 방사능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공기를 잘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물론 호흡할 수 없다면 우리들은 곧 죽고 말겠지요. 그러나 출발 전의 관측으로 본다면 그렇게 염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협조에 감사를 드립니다. 내일 아침에 이 별을 조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 까진 제 2호선도 도착할 겁니다."
이브와 토니는 팔짱을 끼고 배 안을 돌아다녔다. 인사의 말이 끊어지지 않고 모두가 무엇인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령실에서는 새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의 분석을 하고 있었으며 제 2호선과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곧 대기권에 돌입한다고 했다. 온 우주선 안은 밝게 빛나고 있으며, 가축들은 치료를 받았다. 양과 몇 마리의 새가 죽었지만 모든 동물들은 곧 기운을 되찾았다. 헨드론 박사의 조수인 화학 교수 보딘이 분석 결과를 헨드론 박사에게 보였다.
질소 47퍼센트
산소 24퍼센트
네온 13퍼센트
크립톤 6퍼센트
아르곤 5퍼센트
헬륨 4퍼센트
기타 1퍼센트
박사는 그 숫자를 들여다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스펙트럼 분석에 의한 것과 3퍼센트의 오차밖에 없었다.
"호흡할 수 있다."
"예, 나는 샘플(견본)을 많이 채취해서 분석한 끝에 5분 동안 호흡해 보았습니다. 극히 신선한 공기였습니다."
"반갑다, 보딘. 그리고 온도는?"
"우주선 꼭대기 쪽에는 섭씨 30도, 둘레의 지상은 대단히 뜨겁지만 조금 이곳을 벗어나면 25도 정도일 것입니다."
"물론 아직 경도와 위도를 모르니까 온도를 분간할 수 없겠지. 기압은?"
"미시건 근처와 같습니다."
"풍속은?"
"시속 30킬로미터입니다."
"습도는?"
"74퍼센트, 일기는 개이고 있습니다."
"좋아! 아침이 되면 나가 보자."
통신 기사가 중간보고를 했다.
"제 2호 선은 드디어 대기권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우주선들은 성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알았다. 제 2호 우주선과 계속 연락을 취해서 이 근처에 착륙하도록 하게. 그리고 누구라도 오늘 저녁은 우주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송하라. 우주선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하며, 해가 뜰 때까지 모두 기다리라고 말해 주게나."
이윽고 밤이 되었다. 하늘은 맑게 개어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 지친 대원들은 박사의 명령에 따라서 깊이 잠들어 버렸다. 헨드론 박사는 조용히 다니면서 잠들고 있는 사람들을 아버지 같은 심정으로 살펴보았다.
토니는 누웠으나 잠들지 않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누군가가 베타의 공기를 처음 호흡해볼 위험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대기 분석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 공기를 마셔 봐야겠다. 아무 탈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을 나오게 하자. 자칫하면 브론슨 교수나 헨드론 박사가 그 위험을.......>
이윽고 그는 일어나서 살며시 나선형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는 에어 록 앞에 서서 잠시동안 떨고 있었다. 그는 안쪽 문을 열고 에어 록 속으로 들어가 그 문을 닫았다. 캄캄해졌다. 드디어, 밖의 문을 열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무덥고 유황 냄새가 나는 김이 빨려 들어왔다. 그는 몸서리를 쳤다. 이것이 새 세계의 공기인가? 그는 우주선의 로켓 분사로 주위의 땅이 뜨거워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침을 하고 떨면서 쇠사다리를 내려갔다. 공기는 뜨겁고 땅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고 있었다. 우뚝 서 있는 선체에서 달려나갔다. 50미터 정도 내에는 목을 찌르는 듯한 고약한 냄새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시원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신선하고 시원한 공기였다! 나쁜 냄새는 전혀 없고 4월을 맞은 지구의 아침 공기 같았다. 그는 두 손을 번쩍 들면서 외쳤다.
"야, 정말 멋진 공기다!"
바로 옆에서 침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토니?"
돌덩어리가 맡을 하고, 미라가 관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토니는 그렇게 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얼어붙어 도저히 그쪽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그 목소리를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쪽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헨드론 박사님, 나는......나는......."
박사는 가까이 다가왔다.
"좋아. 자네가 왜 나왔는지 나는 알고 말고. 자네는 다른 동료를 위해 자신이 시험대가 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토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박사는 그의 손을 힘차게 잡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30분전에 여기에 와 있었다."
박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두갱도 조금 뒤에 나왔다. 나는 숨어버렸다. 그는 걸어가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로라를 보았나?"
"아뇨."
토니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머리 위의 하늘은 지구에서 보았던 밤하늘과는 무척 달랐다. 지평선에서 빨간 불꽃같은 빛이 하늘 중앙을 향해서 뻗치고 있었다. 계속 여러 가지 색채의 빛이 흐르고 그 형태도 여러 가지였다. 토니는 우주선을 뒤돌아보았다. 에어 록의 문이 열리며 빛이 새어 나왔다.
"저것은 누구일까?"
핸드론 박사는 속삭였다.
"모르겠습니다."
토니는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 사람이 뜨거운 선체를 열고 나와 달리더니, 이윽고 멈춰 서서 호흡하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감격한 소리를 지르며, 그리고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임스!"
헨드론 박사는 불렀다. 이윽고 제임스는 다가왔다.
"미안합니다. 누군가가 공기를 마셔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은 제일 먼저 밖에 나오고 싶었습니다."
헨드론은 웃었다.
"좋아! 용감한 행동이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너희들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 올 대원으로서 너희들을 선택했던 것이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이 판단할 수 있고, 더욱 모든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고 있다. 조금 더 걸어보자. 두갱은 벌써 저 멀리까지 갔으니까."
그들은 걷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과 오로라 밑에 우주선이 우뚝 서 있고 그 뒤에는 언덕이 줄지어 있으며, 파도 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왔다. 절벽에 걸터앉아 바다를 살피고 있던 두갱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일어서서 두 손을 치켜올렸다.
"너로구나......."
헨드론은 말을 걸었다.
"자네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뒹구는 것도......."
"나보다 먼저?"
"5분 정도."
두갱은 머리를 긁으면서 빙그레 웃었다.
"대단히 부끄럽다. 나쁜 짓을 했어. 나는 프랑스의 작은 국기까지 갖고 나왔다."
"응, 그랬군....... 그러나 여기에서는 국가는 필요 없다. 인간만 있는 것으로 하자."
"그 말이 옳아. 나는 바보였어. 나는 어린애 같았다. 우리들은 모두가 친구인데......."
헨드론 박사는 천천히,
"우리들뿐이다.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실패한 모양이다. 수일 동안 연락이 없으면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다른 사람도...... 모두가....... 그러나 지구 그 자체가 없어지고만 지금 그들의 죽음을 슬프게만 생각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하고 말했다. 두갱은 외쳤다.
"그렇다. 우리들은 인류를 대표하는 생존자로서 이 별에서 다시 한 번 지구의 문명을 새로 창조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시 냉정한 과학자로 되돌아가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토니는 거기서 빠져 나와 우주선으로 되돌아갔다. 별빛 아래 여성의 모습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곧 이브라는 것을 알았다.
"꼭 나오리라고 생각했었지."
그는 말을 걸었다.
"토니!"
두 사람은 와르르 달려들어 포옹하고 그리고 아이들처럼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오로라가 빛나고 있는 별 하늘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동안 지면이 갑자기 매끄러워졌다. 땅의 변화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들은 땅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길이다!"
"도로에요!"
길은 좌우로 뻗어있었다.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았으며 똑바른 길도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길이 틀림없었다. <어떤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으며 어떤 발이 여기를 걸었을까? 어디에서 어디까지 통하는 길일까? 수억 년 전의 옛날 길이겠지!>
"어디에 있었을까?"
토니는 이 별에서 아주 옛날에 죽어버린 사람들의 혼에 홀린 것 같이 말했다.
"이 별은 본래의 태양을 벗어났을 때 어디에 있었을까? 이 도로는 그들의 로마로 통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파리를 향해 달리는 자동차 도로였을까? 우리들이 앞으로 수백 년이 지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자동차가 달리고 있었던 건가?"
이브도 말했다.
"이 길의 저쪽에 뭔가 있겠지요? 피라미드일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일까요? 토니, 인간일까요? 우리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도 모습은 달랐을까요?"
"조금 더 걸어보자......." 두 사람은 그 도로를 걸어갔다. 조금 있다가 이브가 물었다.
"토니, 길은 오른쪽으로 굽어 있어요. 저건 무엇일까요?"
"어디?"
"저기 저거요."
그녀는 오른쪽으로 돌았다. 자연의 것으로서는 너무나 직사형으로 끝이 똑바른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숨을 죽이고 그것을 만져 보았다. 금속같이 매끄러운데, 눌러보니 쑥 들어가는 것이었다.
"기념비 같다!"
토니는 외치고 성냥을 그었다. 작은 불빛이 그 금속판에 새겨져있는 문자를 비쳤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지만 글자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지구에서 보지도 못했던 모양으로 그 둘레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주선으로 되돌아왔다. 두갱은 그날 밤을 땅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헨드론 박사와 제임스도 찬성했다. 그들은 우주선 안에서 담요를 꺼내와서 새 별의 땅에 누웠다.
그리고 날이 밝아지니 태양은 녹색 하늘에 빛나고 있었다. 황홀한 빛깔! 브론슨 베타의 하늘 빛깔은 정말 놀랄만했다.
그리고 녹색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녹색의 파도가 밀려와서 회색 절벽에 하얗게 부딪히는 것이었다. 토니는 우주선을 바라보았다. 녹색이 은은히 감돌며 은색으로 빛나는 그 거대한 우주선 뒤에는 초콜릿 빛의 산들이 끝없이 흩어져 있었다. 그의 바로 곁에 이브가 잠들고 있었다. 그러나 토니가 몸을 구부리니 눈을 살짝 뜨고 미소지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게 살며시 일어서며 부드럽게 그의 손을 잡고 도로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그들이 발견했던 도로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돌연 토니는 숨을 죽이고 이브의 손을 힘차게 쥐었다. 땅에서 주먹만한 것이 보였다. 그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몸을 굽히고 자세히 보았다. 작게 움푹 파인 곳에서 그의 손 만한 크기의 이끼가 끼여 있었다. 이브도 그 곁에서 몸을 굽히고 자세히 보았다. 지구의 이끼와 흡사한 것이었다. 태양 광선을 발아 이끼의 홀씨가 되살아난 것이다. 토니는 벌떡 일어나서 들판을 달러 갔다. 몇십 미터 뒤를 쫓아 따라가던 이브는 또 허리를 굽혔다. 다른 식물이 돋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사리와 같은 식물이 돋아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브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헨드론 박사는 두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나 벅찬 기쁨에 우주선을 향해서 외쳤다.
"히킨즈를 불러라! 머리가 돌지도 모른다. 새 식물이 이 별 안에 있으니! 그것은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우주선에 다다르기 전에 에어 록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차례차례로 지상으로 내려왔다. 모두가 언덕과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때 바다 저쪽에서 조그마한 점이 나타나더니 점점 커졌다. 란스텔 일행이 타고 있는 제 2호 우주선이 분명했다.
모든 사람들은 우주선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손을 흔들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새 지구에서의 첫 날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끝>
열려라, 참깨!
OPEN SESAME
베리야에프 A, BEREEB 지음
가아네의 약점
"요한, 너도 이젠 늙었구나!"
에드워드 가아네는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서더니 의자를 옆으로 밀었다. 심부름꾼인 요한은 한숨을 쉬며 꿇어앉은 채 쟁반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커피 주전자와 컵을 주섬주섬 주웠다.
"죄송합니다. 미끄러져서 그만......."
요한은 천천히 일어서며 무안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가아네는 입을 삐죽거리며 융단에 얼룩이 진 것을 힐끔 바라보면서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요한, 너도 이제는 늙었구나! 오늘 아침에는 옷을 입혀 주는데 팔도 제대로 끼워주지 못하고, 어제는 더운물을 엎지르기도 하고......."
수염을 말끔히 깎아 반들반들한 요한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요한은 요사이 어쩐지 갑자기 늙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벌써 75세가 되었으니 무리가 아니었다. 더욱이 55년 동안 자기보다 여섯 살 젊고 까다로운 가아네의 하인으로 일해 왔었다.
이제는 얼마간의 돈도 저축했고, 일하지 않아도 될만한 때가 되었다. 그 저축한 돈으로 죽을 때까지 그럭저럭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하여야 할까? 요한의 늙은 몸뚱이는 기계처럼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것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요한은 성미가 까다로운 가아네와 함께 생활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요한이 가아네에게 고용되었을 때에는 가아네가 아직 독일에 있을 때였다. 지금부터 50년 전에 가아네는 꿈을 찾아서 요한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가아네는 운이 좋았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되어 아무 불편 없이 떵떵거리고 살아왔다.
그는 10년 전에 가벼운 뇌출혈을 일으킨 후에는 가지고 있던 공장을 모두 팔고 필라델피아 교외에 독일식 별장을 짓고 거기에 들어앉았다. 가아네는 미국에서 50년이나 살았으나 미국인으로 변화하지 못했다. 취미도 습관도 독일 사람 그대로였다. 집에서 요한과 두 사람만이 있을 때에 가아네는 항상 독일어를 썼다. 일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가아네는 기묘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 집에는 절대로 낯선 사람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아네의 집은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가아네는 전등을 대단히 싫어했다. 전등을 사용하면 눈이 나빠진다고 생각해선지 방마다 골동품이 다 된 석유 램프를 켜고, 서재에는 초에 파란색의 갓을 씌워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라디오도 듣지 않았다.
"전파라는 놈은 공중을 날아와 내 몸통을 뚫고 나가기 때문에 내 신경통을 점점 약화시킬 것이 틀림없어.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집에는 전파가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시시한 경음악의 전파가 내 몸통을 뚫고 나간다고 생각하면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르거든."하고 가아네는 종종 중얼거렸다.
가아네는 자동차도 싫어하였다. 집 마구간에는 두 마리의 말을 기르면서 도시에 나갈 때는 마차를 타고 나가 도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도시에 나가는 일은 일 년에 두세 번 정도였다. 독일인답게 정확한 가아네는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요한의 손을 잡고 정원을 산책했다. 모래를 깔아 놓은 작은 길을 검은 지팡이를 짚고 서로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어떤 쪽이 주인이고 어떤 쪽이 하인인가를 곧 구별해내기 힘들 정도였다.
요한은 오랜 세월 같이 생활해오는 동안에 가아네의 손짓과 몸짓을 닮게 돼 가아네와 꼭 같았다. 거기에다가 요한이 더 의젓하게 보이고 나이도 많고 수염도 깨끗하게 깎고 있었다. 그 반대로 가아네는 수염이 덥수룩했다. 그러나 가아네의 의복이 훨씬 고급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주인인가를 곧 알게 될 것이다.
요한은 이 산책을 대단히 즐겼다. <그런데, 이 산책도 이제는 끝장이 나고 말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가아네의 습관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주인의 까다로운 성미를 감당해낼 사람도 나밖에는 또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바싹 마른 입술에 가냘픈 미소를 띠어가면서 요한은 말했다.
"저 대신에 젊은 사람을 고용하시면 어떨까요? 젊은 사람이 저보다 훨씬 더 일을 잘할 게 아니겠습니까?"
요한은 무릎을 떨면서 방을 나왔다. 방을 나와서는 하얀 틀니가 보이도록 크게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지 않고 웃었다. 요한은 가아네의 약점을 찌른 것이었다. 가아네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으며, 특히 젊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더 싫어했다. 그래서 고용인도 꼭 필요한 사람만 쓰고 있었는데 마부 노릇을 겸하는 정원사과 중국인 요리사밖에 쓰지 않았다. 그것도 모두가 50살 정도였다. 여자 심부름꾼은 한 사람도 없었다. 세탁과 집안의 청소는 가까이 있는 농가의 할머니에게 부탁하여 일을 맡겼다. 요리사와 정원사는 바깥채에서 살고 있고, 요한은 항상 주인을 돌봐주기 위하여 가아네의 침실 옆에 있는 작은 방에서 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
아침 커피를 마시고 나면 곧 가아네와 요한은 항상 습관인 산책을 나갔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정원의 여기저기를 천천히 걷다가 때때로 벤치에 앉아서 쉬곤 하는 것이었다.
"요한, 내게 젊은 사람을 고용하라고 했지? 그 일을 이미 1년 전에 시험해 보지 않았던가? 그 결과 어떻게 되었지? 나는 그 젊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쫓아낼 수 있을까 하고 얼마나 골똘히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 녀석은 쟁반을 씻지도 않는가 하면 옷을 입히는데도 너무 조급했어. 너같이 융단에 미끄러져서 고급 융단을 더럽힌 일은 한 번도 없었지만."
요한은 '그런데'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여튼 그 젊은 녀석은 무엇이든지 약삭빠르게 일을 잘 처리했다. 그러나, 요사이 젊은 녀석들은 쓸모가 없어. 아무렇지도 않는 이야기를 해도 저희들 맘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면서 엉뚱한 대답을 하니 선뜻 부를 수도 없질 않나. 밤중에 신경통이 심해서 큰맘 먹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 거야. 그러고도 일요일이 되면 언제나 '오늘은 쉬겠습니다'라고 말했어. 결국은 이러쿵저러쿵 자기 좋을 대로 이야기하고 나가버리고 말았거든. 물건을 훔치거나 나를 죽이지 않고 나간 것만으로도 큰 다행이야. 요한, 좀 쉬어야겠다. 다리가 떨린다. 아니, 비가 한바탕 쏟아질 것 같아."
가아네는 벤치에 걸터앉아 긴 한숨을 쉬었다.
"요한, 좋은 심부름꾼은 이젠 없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어졌다. 좋은 심부름꾼은 기계같이 잘 움직여 주어야 한다. 앉아라 하면 앉고, 서라 하면 서고....... 무엇이든지 아무 말 없이 또박또박 일을 해 주어야 되지. 자기 주장을 내세운다든지, 화를 내면 안 되지. 늙은이는 항상 어딘가 몸이 불편한 데가 있으니 순하고 부드러운 말로 대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요한, 나는 젊은 사내를 고용하는 건 정말 싫다."
"그러시다면 조금 나이 많은 50살쯤 되는 사람을 고용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신체도 건강하고, 젊은 사람같이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요한은 아주 주인을 잘 섬긴다는 뜻으로 말했다.
"어디 그런 사람이 있는가? 그런 사람은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자네가 50살쯤 되었을 때 어느 누가 너를 달라고 했어도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주인도 다 그런 것이다. 그리고 새 사람에게는 무언가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반드시 있다. 그것은 고용된 사람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좀 나이가 지긋한 여자를 고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요한, 내가 여자를 싫어한다는 것쯤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늙은 홀아비에게 올 만한 여자라면 옳은 인간일 수가 없다. 나를 빨리 죽도록 만들어 내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 생각만 할 것이 틀림없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요한, 여전히 너와 같이 살아가는 수밖에......."
요한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걱정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다. 길 저쪽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나서 요한과 가아네는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가아네는 방문객을 싫어했다. 더욱이 산책 중의 방문객은 더욱 싫어했다. 집안에 있을 때에는 면회 사절이라고 하면 되는데 여기서는 거절할 수도, 쫓아 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아네는 눈대중으로 집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보고 집으로 되돌아가려고 하였으나 길모퉁이에서 중절 모자를 쓴 사나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 사나이는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가아네의 앞에서 멈추었다. 40살쯤 되는 건장하고 옷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신사였다.
"에드워드 가아네 씨를 뵙고 싶은데요."
하고 그 사나이는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요한은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가아네는 난데, 무슨 용건이지?"
가아네는 상대편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 사나이는 아주 정중히 절을 하고 나서 대답했다.
"나는 웨스팅하우스 전기 기계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존 미첼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제가 당신에게 대단히 재미있는 것을 받아 주십사 하고 온 것입니다."
"당신이 포드(미국의 자동차 왕) 씨의 명령으로 왔다고 해도 나는 당신의 요청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사업에서 손을 뗀지가 이미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와서......."
"아닙니다. 나는 당신에게 다시 사업을 해 보시라고 권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으니 들어주십시오."
가아네는 곤란한 표정으로 눈을 장미 덩굴에서 등꽃 쪽으로 옮기더니 마침내는 벤치 끝을 옆 눈으로 흘끔 돌아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앉으시오. 자, 말씀해 보시지요."
미첼은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고 침착하게 벤치에 걸터앉았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미첼이 이야기를 시작하니 가아네와 요한은 그 이야기에 즉시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부잣집 늙은이는 심부름꾼이 없으면 불편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좋은 심부름꾼을 구하기가 아주 힘들게 되었습니다. 옛날처럼 충실한 심부름꾼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점점 늙어갑니다."
하고 말한 다음 미첼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요한을 쳐다보았다.
"그러므로 그 충실한 사람을 대신할 사람은 없습니다. 요사이의 젊은 사람들은 시대의 영향으로 건방지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늙은이가 말하는 것을 순순히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것뿐입니까? 젊은 사람을 잘못 고용하면 야밤중에 남이 모르게 주인을 슬쩍 죽여버리고 재산을 훔쳐 달아날 염려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점에는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늙은 여자라고 안심하고 있으면 어느 사이에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 예가 종종 있어서 소문거리가 되지 않습니까?"
<이것은 어떻게 된 셈일까?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은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라고 가아네는 생각했다. 미첼은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다는 듯이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새 심부름꾼을 고용하겠다는 생각은 포기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심부름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집안이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고 방구석에는 거미줄이 꽉 차서 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 같으면 참을 수도 있겠지요. 가아네 씨, 당신은 여기에 계시는 당신보다 나이 많은 요한 씨가 늙어서 병이 나 당신이 아무리 불러보아도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게 될 날이 언젠가는 꼭 오리라는 것을 생각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그렇게 되면 당신은 정말 홀로 남아 쓸쓸하고 허무하게 되고 맙니다."
가아네가 왜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겠는가! 요사이 가아네는 이 일에 대해서 머리를 앓고 밤에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는데....... 가아네는 때때로 밤중에 옆방에 자고 있는 요한을 별 일도 없으면서 불러서, 그가 한숨을 쉬면서 꾸물거리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이러한 것은 요한이 아직 움직일 수 있는 기운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물 한 모금도, 커피 한 잔도 마실 수가 없게 됩니다. 당신은 홀로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장에서는 밉살스런 큰 거미가 당신 얼굴 위로 쑥 내려오기도 하고, 얄미운 쥐새끼가 당신 이불 위를 뛰어다니기도 하겠지요."
가아네는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의 땀을 닦았다.
"도대체 당신의 용건은 무엇입니까? 왜 당신은 그러한 무서운 이야기밖에 하지 않습니까?"
하고 가아네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미첼은 옆 눈으로 힐끔 가아네를 돌아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걸려들었다!> 라고 생각했다. 미첼은 가아네의 질문을 못들은 척,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정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좋은 별장입니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죽는 날까지 아무 불편 없이 산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이겠지요."
"용건을 빨리 말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가아네는 무척 초조해 보였다.
"노예같이 당신이 말씀하시는 대로 무엇이든지 잘 들어주는 심부름꾼만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요. 나는 그것 때문에 온 것입니다. 당신에게 썩 마음에 드는 심부름꾼을 소개해 드리려고 찾아 온 것입니다."
정원사 집에서 갑자기 커다란 개 한 마리가 튀어나와서 이야기를 중단시켜 버렸다. 개는 가아네 곁으로 달려왔는데 낯선 사람이 있으므로 갑자기 짖어댔다. 미첼은 겁이 나는지 발을 오므렸다.
"지르시, 앉아라!"
하고 가아네가 호령을 하자, 개는 웅웅거리며 벤치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미첼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릴 때부터 개는 질색입니다. 한 번 개에게 물려서 큰 상처를 입은 일이 있지요. 댁에는 또 다른 개도 있습니까?"
하고 미첼이 물었다.
"이 개뿐입니다. 이 개는 물지 않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좋은 심부름꾼을 소개해 주신다고요? 그러나 당신은 웨스팅하우스 전기 기계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셨지요? 그럼 심부름꾼의 소개는 따로 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이것이 바로 우리 회사의 일입니다."
"웨스팅하우스 회사는 전기 기계 제작 회사인데 언제부터 심부름꾼의 알선도 하기 시작했습니까?"
"가장 이상적인 심부름꾼을 제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입니다."
<이놈은 머리가 좀 이상한 모양이군.>라고 생각한 가아네는 불안하게 미첼을 쳐다보았다. 미첼은 가아네의 불안한 얼굴을 보고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깜짝 놀라셨을 지도 모릅니다만 우리 회사는 로봇 심부름꾼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화와 무선 전신의 원리를 이용해 조립한 것인데 아주 간단한 기계입니다. 당신의 소리는 1초간에 900회에서 1400회의 진동으로 공기 안을 통과합니다. 로봇 심부름꾼은 그 진동을 잡아서 당신의 명령을 실행합니다. 이 로봇이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는가 등의 지루한 이야기는 빼고, 하여간 이 심부름꾼은 기계이므로 당신의 명령은 무엇이든지 충실하게 실행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 로봇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가요?"
하고 가아네가 물었다.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벽과 천장에 끼워 넣어서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기계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계는 당신이 명령만 하면 전깃불을 켜기도 하고, 선풍기를 돌리기도 하며, 방안을 밝게도 하고, 비상벨을 울리게도 하며, 전기 청소기를 가동시켜 주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문을 열게도 하고 닫게도 합니다. 흡사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이야기같이 당신은 그저 '열려라, 참깨!'하고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은 천천히 열리고, 당신이 지나가면 또 천천히 닫칩니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 같다고요? 그런데 당신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하고 가아네는 물었다.
"그 이야기는 기억이 잘 안 나는군요." 라고 미첼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 이야기는 한 사나이가 어떤 동굴 앞에서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니까 돌문이 저절로 열려 보물이 꽉 차 있는 동굴 속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는데, 나중에 그 마술의 말을 잊어버려 밖으로 나올 수가 없게 되어 결국 도적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였지요."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 웨스팅하우스 회사는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를 개량한 것밖에 안 되는군요. 만약 당신이 '열려라, 참깨!'라는 말을 잊어버리면 당신은 전기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문은 저절로 열립니다. 버튼을 누르는 것쯤은 아마 잊으시지 않겠지요? 우리 회사에서 만든 기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집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생기면 우리 회사에서는 책임지고 완전하게 수리해 드립니다. 자, 그러시면 주문해 주시겠습니까?"
"지금 곧 주문하라면 곤란한데....... 당신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을 수가 없군요."
"그러시다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당신이 승낙해 주시면 우리 회사의 로봇기계 몇 개를 실제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보시는 것은 무료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곤란한데......."
그러나 미첼은 이 이야기가 결정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일어서더니 인사를 하고 말했다.
"내일 아침 기계를 가지고 와서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벤치 밑에서 기어 나온 개가 미첼의 뒷모습을 향해 요란스럽게 짖어 대었다.
요한의 근심
그날 밤 하인인 요한이나 주인인 가아네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아네는 미첼의 이야기가 마음에는 들었으나 어쩐지 불안했다. 장차 홀로 외롭게 남을 것을 생각하니 그것이 더 두려웠다. 그날 밤 가아네는 요한이 방을 나가고 나서 홀로 누워 있는 머리 위에 천장에서 거미가 내려오고 이불 위에서 쥐새끼가 뛰어 다니는 꿈을 꾸었다.
요한은 더 무서운 꿈을 꾸었다. 갑자기 오른쪽 옆구리에 찬바람이 불고 어디서인지 전기로 장치된 빗자루가 나타나 요한을 방밖으로 쓸어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요한이 아무리 달아나려고 해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몸부림치며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는 바람에 잠을 깼다. 겨우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났는데 벌써 미첼이 작업할 사람을 데리고 왔다. 작업원들은 기계로 만든 심부름꾼이 들어있는 상자를 운반해 와서 일을 시작하였다.
"죄송하지만 집안의 방 구조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미첼이 가아네에게 물었다.
"이 거실에서 문을 열면 내 침실입니다. 침실 왼쪽 벽에 있는 문을 열면 서재입니다. 침실 오른쪽 벽에 두 개의 문이 있는데 하나는 요한의 방이고 또 하나는 욕실로 되어 있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그러면 우선 이 문에 전기 장치를 하겠습니다. 해질 무렵까지는 완성됩니다."
작업원들은 문을 떼어내고 기계를 장치할 동안에 미첼은 다른 기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작은 차바퀴와 둥근 솔이 달려있는 상자는 자동 전기 청소기입니다. 이것은 이렇게 놓고 이 핸들을 이렇게 돌리면 준비가 다 된 셈입니다. '청소!'라고 말씀하십시오."
'청소!'라고 가아네는 흥분하여 큰 소리로 말했다. 청소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기계는 좀 낮은 소리로 말하게 되어 있으니 조금 낮은 소리로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미첼이 부탁했다.
"청소!"
"좀더 낮게!"
"청소!"
가아네는 아주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말이 떨어지는 순간 기계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작은 바퀴와 동시에 솔이 움직이고, 청소기는 마치 밭을 가는 경운기처럼 넓은 방에서 장애물을 용케 피해가며 똑바로 나아가다가 벽에 부딪칠 것 같으면 천천히 방향을 바꾸어 조금씩 이동하면서 되돌아왔다.
"솔 밑의 구멍으로 먼지를 빨아 당깁니다. 그러므로 먼지는 모두 상자 안에 모이게 되니까 나중에 버리시면 됩니다."
하고 미첼은 설명을 계속했다.
자동 전기 청소기가 방을 반쯤 청소하고 있을 때 별안간 방안으로 뛰어 들어온 개가 청소기를 보고 짖어 대었다. 그 순간 청소기가 무서운 속도로 돌기 시작하더니 개를 피하려고 방안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방 한가운데 서 있던 요한과 가아네는 갑자기 날뛰는 청소기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청소기에 부딪히지 않게 좌우로 피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두 사람은 한 동안 용케 피했으나 끝내 요한이 갑자기 방향을 바꾼 청소기에 부딪쳐 마룻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청소기는 요한의 등에 올라가 요한의 등을 두드리고 머리카락을 형편없이 흩으려 놓고 나서 마룻바닥으로 내려왔다. 요한은 벌떡 일어서더니 소파 위로 기어올라갔다. 가아네도 소파 위에 올라가서 벌벌 떨고 있었다. 한편 미첼은 양손을 흔들면서 개를 쫓으며 계속 고함을 쳤다.
"이 개를 쫓아내 주십시오! 이 개를 밖으로 쫓아내 주십시오!"
개가 방밖으로 뛰어나간 순간 이 소동은 거짓말같이 끝났다. 미쳐 날뛰던 청소기는 방을 한 바퀴 돌고 딱 정지했다. 미첼은 이마의 땀을 씻으면서 가아네에게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모두 개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기계는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소리에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 짖는 소리로 기계의 회전이 빨라져서 이렇게 됐던 것입니다. 개는 좀 먼 곳에 매어 놓아야 되겠습니다. 청소기는 곧 수리시키겠습니다."
한 기술자가 와서 청소기의 상자 뚜껑을 열고 기계를 손질하더니 2,3분 뒤에 수리를 끝냈다. 요한은 개를 데리고 가서 가장 먼 방에 가두었다. 청소기는 안심된 듯 무사히 방의 청소를 끝냈다.
"어떻습니까? 편리하지요. 요한 씨는 이제부터는 이 기계들을 관리하시면 됩니다. 요한 씨의 일은 지금보다는 더욱 수월해지고, 오래도록 당신 곁에서 같이 사실 수 있게 될 겁니다."
미첼은 요한이 가아네에 대하여 큰 영향력이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에 요한에게도 이런 말을 했다.
가아네의 책상과 침대 위에는 선풍기를 장치했다. 이 선풍기는 '선풍기'라고 부르기만 해도 움직이는 것이었다.
해질 무렵까지 모든 작업이 끝났다. 가아네는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청소기의 불쾌한 사건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돌아갈 무렵 미첼은 이렇게 말했다.
"이 기계들을 천천히 잘 사용해 보십시오. 써 보시면 당신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될 것입니다. 아마 지금까지 왜 이렇게 좋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살아왔을까 하고 생각될 것입니다. 나는 2, 3일 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미첼은 방에서 나가다가 뒤돌아보면서 개만은 이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만약에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기계가 순조롭게 가동하지 않는데, 그것까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가아네의 성격도 이 기계들을 알고 나서는 사라져 버렸다. 정말로 훌륭한 기계였다. 미첼과 작업원들이 돌아가고 난 다음 가아네는 곧 시험해 보았다.
"청소!" 하고 가아네가 청소기에 명령하자 자동 청소기는 잘 움직이며 방안을 청소하기 시작하였다.
"선풍기!" 하고 가아네가 침대 위에 장치해 놓은 작은 선풍기에 명령하자 선풍기는 '윙'소리를 내며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아네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문이었다. 가아네는 어두워지자 방마다 돌아다니며 문 앞에 서서, "열려라, 참깨!" 하고 말하면 문은 가아네의 소리가 끝나자마자 소리도 없이 살며시 열리고, 가아네가 지나가면 곧 문이 닫히는 것이었다. 가아네는 공중으로 훨훨 날아갈 것 같이 기뻤다.
"정말 신기하구나. 미첼이 이야기한 그대로다. 요한,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무척 좋습니다!"
요한은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요한은 이제 와서는 심부름꾼의 대역을 하는 기계가 무섭지 않았다. 이 기계들은 요한의 일을 수월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요한을 이 집에서 쫓아내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커피를 나르고 주인의 의복을 갈아 입혀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여간 기계는 살아있는 인간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 라고 생각하고는 안심했다. 그날 밤 가아네는 침대에 누워서 선풍기를 돌리고 선선한 바람을 쐬어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하여간 이렇게 되고 보니 거미에게 놀라지 않게 된 건 틀림없구나."
심부름하는 로봇
3일째 아침 가아네가 식사를 마치자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요한이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니 미첼이 타고 있는 승용차와 한 대의 트럭이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트럭에는 크고 길다란 관 같은 상자가 실려 있었는데 요한은 어쩐지 그 상자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늙은 사람이란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런지 그 상자는 관을 연상시켰다.
"미첼이 왔습니다." 하고 요한은 보고했다.
미첼은 데리고 온 작업원들에게 무언가를 명령하더니 서슴없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어떻습니까? 기계의 성능은 좋습니까?"
"고맙습니다. 대단히 마음에 듭니다." 하고 가아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저로서는 그렇게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미첼은 말했다.
"미첼 씨,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그런데 당신이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가아네가 물었다.
"말씀드리자면 이런 것입니다. 가아네 씨, 이 기계들은 모두가 아주 한정된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요. 저 기계들은 당신의 옷을 갈아 입혀 준다든지 커피를 가지고 오지는 못합니다."
요한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정말로 미첼이라는 자는......?> 요한이 끝까지 생각하기 전에 미첼은 요한에게 놀랄만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당신들을 일부러 놀래 주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 자동문과 자동 선풍기 따위는 우리 회사가 발명한 최신 기계에 비하면 아이들 장난감 같습니다. 저는 오늘 로봇을 두 개 가지고 왔습니다. 이 로봇은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신음 소리를 올리고 손을 덜덜 떨더니 들고있던 쟁반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요한 씨, 그렇게 겁낼 것은 없습니다. 로봇이라도 사람이 돌봐 주어야 합니다. 당신은 로봇에게 명령하여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면 됩니다. 자, 구경이나 하십시오."
미첼, 가아네, 요한 등 세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작업원들은 관 같은 상자를 차에서 내려 땅에 놓고 뚜껑을 열었다. 가아네는 호기심에 끌려 그 속을 들여다보니 여러 가지 장치를 한 큰 인형이 누워 있었다. 작업원들은 그 로봇의 목덜미를 쥐어 올려 땅 위에 놓았다.
미첼이 로봇에 가까이 가 검은 지팡이로 얼굴을 두드리니 금속 소리가 났다. 그리고서 미첼은 로봇을 집 입구 돌계단까지 운반시키고 로봇의 머리 뒤에 붙어있는 작은 스위치를 돌렸다. 두 대의 로봇은 둔한 소리를 내며 몸을 앞으로 숙이며 천천히 돌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다시 지르시가 달려와서 큰 소리로 짖으면서 한 대의 로봇의 다리를 물었다. 로봇은 급히 발을 앞으로 당기고는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개를 딴 곳으로 쫓으십시오!"하고 미첼이 외쳤다.
정원사가 달려와서 짖는 개를 붙들고 자기 집으로 끌고 갔다. 개가 다른 곳으로 가자 로봇은 돌계단을 올라가서 객실로 들어갔다.
"정지!"
미첼이 뒤에서 소리치자 로봇은 그 자리에 서는 것이었다.
"열 발자국 앞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돌고 엎드려 책상 위에 있는 책을 가지고 되돌아와서 서라!"
하고 미첼이 명령했다. 로봇은 명령대로 움직였다. 방안을 똑바로 걸어가 오른쪽으로 돌고 책상 곁에 가서 몸을 구부리고 그 위에 있는 앨범을 천천히 쥐어 들고 미첼이 있는 곳까지 되돌아왔다. 가아네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지고, 요한은 입을 딱 벌린 채 굳어진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그럴 듯 하지요. 이 로봇은 명령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합니다. 주방에 가서 빵과 커피를 가지고 오도록 할 때에도 단지 '빵!'이라든지 '커피!'라고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요한 씨, 당신은 이 두 대의 로봇에게 명령하여 여러 가지 일을 시키고 가끔 기름만 쳐 주시면 됩니다."
미첼은 작업원에게 기름통을 가지고 오도록 하였다.
"요한 씨, 이리 오셔서 잘 보아주십시오."
미첼이 그렇게 말하고 로봇을 향해서,
"구부려라!"하고 명령하자 로봇은 몸을 구부렸다.
"머리 꼭대기에 작은 구멍이 있지요? 로봇도 영양이 필요합니다. 자, 기름을 쳐보십시오. 겁낼 것 없습니다. 왜 당신의 손은 그렇게 떨고 있습니까?"
요한의 손이 너무 떨려서 작은 구멍에 기름을 칠 수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차차 익숙해지겠지요."
미첼은 요한을 위로했다. 미첼은 로봇에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시켜 보았다. 로봇은 미첼의 겉옷을 벗기고 또 입혔다. 로봇은 어떤 일을 시켜도 명령대로 잘했다.
"이 로봇은 심부름은 물론 집 지키는 것으로도 쓸 수가 있습니다. 자, 서재로 들어가 봅시다."
하고 말하더니 가아네의 승낙도 없이 로봇들에게 명령했다.
"나를 따라 오너라!"
가아네는 너무 놀라 정신을 잃고 마치 로봇같이 미첼의 뒤를 따라갔다. 미첼은 로봇을 금고 앞에 세워 놓고 자기는 옆으로 피해 서더니, "도둑놈이다!" 하고 외쳤다. 그 순간 두 대의 로봇은 재빠르게 쇠로 된 팔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어떤 도둑이라도 이 쇠로 된 팔에 맞으면 쓰러질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정말 좋지요?"
하고 미첼은 가아네에게 물었다.
"훌륭하군요."
가아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 로봇은 비둘기같이 순합니다. 자, 가아네 씨가 스스로 명령해 보십시오."
"아니, 나는 이런 로봇은 필요가 없습니다."
가아네는 분명하게 말했다.
"만족할 정도로 잘 되어 있습니다만 이 로봇이 그 청소기와 같이 갑자기 날뛴다면 어떻게 되지요? 우리들은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아니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이 로봇은 '정지!'하고 명령하기만 하면 즉시로 동작을 정지하고 맙니다."
미첼은 황급히 대답했다.
창 밖에서는 트럭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아네는 불안스럽게 밖을 내다보다가,
"저 트럭은 어디로 갑니까? 나는 이런 로봇은 필요 없습니다. 빨리 불러서 운반해 가십시오."
하고 황급히 말했다.
"그렇습니까? 나는 로봇이 마음에 드실 줄 믿고 일이 끝나는 즉시 돌아가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시다면 하는 수 없지요.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미첼은 창가에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게들! 되돌아오게!"
그러나 트럭은 모퉁이를 돌아서 가버리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소리가 안 들렸던 모양이군요! 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걱정 마십시오. 내일 와서 운반해 가겠습니다. 만약 하루 써보시는 동안에 차차 익숙해져서 마음에 드시게 될는지도 모르지요. 자, 그러면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맨스필드씨의 별장에도 또 한 대의 로봇을 배달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 로봇은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미첼은 대답도 않고 머리를 숙이더니,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는 나가 버렸다.
"큰일났구나!"
가아네는 자기 소리를 로봇이 듣고 움직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가아네는 요한에게 손짓을 하고 살금살금 걸어서 문 쪽으로 가 작은 소리로, "열려라, 참깨!" 하고 말했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 가아네와 요한은 서재를 빠져 나와 침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뒤에서 문이 저절로 닫혀졌다. 두 사람은 '휴!'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로봇이 거기서 가만히 있다면 좋겠는데......." 하고 가아네는 로봇이 힘차게 내어 휘두르던 쇠로 된 팔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서 전신이 오싹해졌다.
"주인님, 그 로봇을 밖으로 쫓아내면 어떨까요?" 하고 요한이 말했다.
"어떤 방법으로?"
"주인님은 2층으로 가셔서 열쇠로 잠가 주십시오. 2층의 문은 전기 장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전과 같이 튼튼한 자물쇠가 달려 있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라고 명령하여 그 로봇을 내쫓아 보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보게."
가아네는 2층으로 올라가 자물쇠로 문을 잠갔다. 요한은 밖으로 나가서 창가에서 외쳤다.
"열려라, 참깨!"
서재에서 침실로 통하는 문이 열리니 요한은 또 외쳤다.
"10걸음 앞으로 가라! 전진! 거기서 나오너라!"
그러나, 로봇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빨리 움직여라! 빨리 나오너라!"
로봇은 쇠로 된 갑옷을 입은 기사같이 금고 앞에 선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동안에 열렸던 문도 스르르 닫혔다. 요한은 또 한번, "열려라, 참깨!" 하고 말해 다시 문을 열고는 '빨리 나오너라!'고 여러 번 되풀이하여 큰 소리를 지르고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말하기도 하였으나 허사였다. 여전히 로봇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친절하게 부탁하는 듯이 말하기도 하고 위협도 하였으나 로봇은 끝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요한은 결국 지쳐서 가아네가 있는 곳으로 갔다.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가아네는 안락 의자에 앉아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강도가 들어와서 갇힌 기분이었다. <로봇이 무슨 일이나 일으키지 않을까?> 가아네는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그렇다. 간단하다. 그럴 때는 미첼이 말하듯이 '정지!'라고 말하면 된다. 어쩌면 그 로봇은 위험한 물건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아네는 용기를 내서 아래층으로 내려와 서재로 가서 '정지!'하고 명령하고 나서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그런데도 잠들기 전에 요한을 시켜서 문 쪽에 소파와 테이블을 쌓아올려 놓았다.
"이렇게 해 두면 조금 안심이다. 요한, 만일을 생각해서 오늘 저녁은 이 방에서 같이 자자. 그 소파 위에서 자게."
요한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주인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밤
요한과 그 주인인 가아네로서는 이렇게 무서운 밤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옆 서재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새벽 무렵 요한은 잠들은 가아네를 깨웠다.
"주인님, 주인님, 서재 안이 아무래도 이상해요." 가아네는 벌떡 일어나 귀를 기울였다. 서재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금속이 융단에 떨어지는 소리, 계속 쉬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아났구나!"
요한은 등골이 오싹하여 중얼거렸다. 손이 덜덜 떨려서 담요도 들칠 수가 없었다.
두 늙은이는 공포에 떨려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웅크린 채 가만히 있었다. 옆방의 소리는 점점 커졌다. 뭔가가 큰 소리를 내면서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그 소리를 듣자 가아네는 정신없이 외쳤다.
"열려라, 참깨!"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열려라, 참깨!"
요한도 외쳤다. 두 사람은 높고 낮게 여러 가지로 외쳤다. 그러나 허사였다. 아라비안나이트의 무서운 이야기가 정말로 눈앞에 닥쳐온 것이었다. 서재에 문이 누군가가 밀어서 흔들리는 것 같았다. 40명의 도적들이 그 문을 부수고 쳐들어 와서 목에다 칼을 들이대지 않을까 하는 기분도 들었다. 요한의 귀에 마지막으로 들려온 것은 지르시의 깽깽거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나더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어느 사이에 요한과 가아네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두 사람이 정신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동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가아네와 요한은 자기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을 기뻐하였다.
서재의 문은 그대로 잠긴 채 였고, 소파와 책상으로 쌓아올린 것도 그대로였다. 요한은 객실로 통하는 문의 버튼을 눌렀다. 문이 저절로 열렸다. 요한은 정원사와 요리사를 흔들어 깨웠다. 다 모였으나 겁이 나서 서재로 선뜻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을 불러다오."
가아네가 말했다.
정원사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 난 30분 후에 요란스런 오토바이 소리를 내면서 경찰관들이 도착했다. 보통 때에는 그렇게 불유쾌하던 소리가 지금의 가아네에게는 천사의 음악처럼 들렸다.
경찰관이 서재의 문을 옅었다. 금속 로봇이 누군가에게 파괴되어 마룻바닥 위에 넘어져 있었다. 튼튼한 금고의 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고 그 속에 잔뜩 들어있던 돈과 보석은 말끔히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가아네는 넘어져 있는 로봇을 보고는 마치 죽은 사람을 동정하듯이 말했다.
"내가 잘못했다. 나는 이 두 로봇들을 겁내고 있었는데 이 두 로봇은 내 재산을 강도로부터 지켜 주려고 강도들과 싸우다가 용감하게 죽어간 것이다. 도둑은 창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정의 슬픔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경찰관은 난폭하게 부서진 로봇을 주워 올려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봇은 금속으로 껍데기를 만들고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 진상을 알게 되었다. 로봇의 금속 케이스 속에는 사람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 로봇 속에 들어가 있던 미첼의 일당이 밤중에 그 안에서 빠져 나와 금고 문에 열을 가해 녹여 구멍을 뚫고 가아네의 돈과 보석을 훔쳐 가지고 창으로 달아나 버렸던 것이었다. 그래서 미첼이 그렇게 개를 무서워하였던 것이었다.
"주인님, 웨스팅하우스 회사의 사람이 와서 만나자고 합니다."
요한이 서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뭐 미첼이?"
하고 가아네가 놀란 기색으로 문고 경찰관에게 빠른 소리로 말했다.
"그놈이 범인입니다. 곧 체포해 주십시오!"
경찰관과 가아네는 거실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젊은 사내가 서류를 가지고 서 있다가 이상한 눈초리로 경찰관을 힐끔 보더니 가아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가아네 씨, 주문해 주신 기계 대금을 받으러 왔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너와 미첼은 한 패가 되어서 내 재산을 훔쳐 갔잖아! 이 사나이를 체포해 주십시오!"
하고 가아네는 외쳤다.
"나는 미첼이라는 사람을 모릅니다. 잘못 아시는 것이겠지요. 댁의 관리인이 우리 회사에 와서 자동 청소기, 자동 선풍기, 자동문을 주문하셨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받고 이렇게 서명까지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자, 보십시오. 여기에 서류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것은 어떻게 된 셈이냐? 이쪽으로 와서 봐라."
가아네는 젊은 사나이를 서재로 데리고 가서 바닥에 흩어져 있는 로봇의 잔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웨스팅하우스 회사의 사내는 어깨를 움츠리더니 말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저러한 인형은 만들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아네로서는 도저히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경찰관이 두 사람 사이에 끼여 들어와 언쟁을 중지시켰다. 경찰관은 젊은 사나이를 상대로 이야기하고 계산서를 들여다보며, 또한 신분 증명서를 조사하고서 가아네에게 말했다.
"가아네 씨, 이 세들러 씨는 이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마 미첼은 당신 이름으로 웨스팅하우스 회사에 자동 청소기, 자동 선풍기, 자동문 등을 주문했지만 로봇처럼 생긴 이 인형은 자신이 만들어 그 안에 자기의 일당을 몰래 숨겨 넣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러한 것을 만들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겠지만 그들은 더 많은 돈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했겠죠. 당신의 금고 안에는 돈이 얼마나 들어 있었습니까?"
"보석까지 합쳐 십만 달러가 조금 넘을 것 같습니다."
"그것 보십시오. 굉장한 금액이 아닙니까? 도적들은 될 수 있으면 이 가짜 로봇도 가지고 달아나려고 했겠지만 뭔가 마음대로 안 된 모양이지요?"
"개가 짖었습니다."
하고 요한이 옆에서 말했다. 그러나 가아네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 하고 자동문도 범죄 수단에 이용했어요. 그 놈들이 돈을 훔치고 있을 때 자동문이 하나도 열리지 않은 것은 어떤 까닭일까요?"
"그것은 당신이 놀라서 너무 큰 소리로 '열려라, 참깨!'라고 하셨기 때문이 아닌지요? 아마, 그래서 기계가 고장난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들의 기계는 모두 일정한 높이와 일정한 강도의 소리에 알맞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듣고 나자 가아네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튼 당황해서 큰 소리로 외쳤기 때문이었다.
"세들러 씨!"
하고 경찰관은 청년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당신을 체포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증인으로서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으니 경찰서까지 좀 가주셔야 하겠습니다."
경찰관은 로봇의 잔해를 증거품으로 가지고 그 청년과 같이 돌아갔다. 가아네는 요한과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나는 아직 커피를 마시지 않았구나."
가아네는 아주 힘없는 소리로 말했다.
"곧 가져오겠습니다."
요한은 대답하고 주방으로 갔다.
어제 저녁부터 계속 흥분했기 때문에 요한의 손은 평상시보다 더 떨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설탕 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가아네는 평상시보다 부드러운 말투로, "괜찮아, 요한. 그런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라고 말하고는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웨스팅하우스 회사의 자동문과 자동 청소기와 자동 선풍기는 그대로 놓아두자. 필요하겠지. 네 일도 조금은 수월해질 테니까. 개가 짖든지 높은 소리로 명령하면 고장이 나는 것이 결점이지만 하는 수 없잖아. 기계가 점점 발달되어 편리한 세상이 되어 가는 중이니 기계 없이는 살 수 없겠지."
<끝>
작품 해설
지구파멸주제의대표작
원작자 필립 와일리(Philip Wylie)는 1902년에 미국 메사추세스 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도 잡지에 소설을 여러 번 발표한 일이 있고, 두 형도 몇 권의 책을 출판한 작가였습니다. 그런 가정 환경 속에서 태어난 와일리가 작가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12살 때 작품을 발표했지만 소년 시절의 그는 소설보다 과학을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수학과 물리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베르느와 웰즈의 SF소설을 애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나 학교가 싫어져서 3학년 때 중퇴했습니다.
그 후 그는 점원과 선원 등을 하였으나 23세 때 「뉴요커」라는 유명한 잡지의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 세계 최초의 SF잡지인 「어메이징 스토리즈(Amazing Stories)」가 발간되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고 자신도 SF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 근무하면서 1927년 「투사」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이 소설이 1930년에 출판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소설은 대단히 재미있고, SF에 처음으로 슈퍼맨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인기 있는 슈퍼맨(초인)도 이 「투사」라는 소설이 근원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 때까지 슈퍼맨은 SF에서 활약하고 있었지만 슈퍼맨으로서 태어난 사나이의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쓴 SF는 이것이 최초였습니다.
시골 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의 아들로서 태어난 아이가 굉장한 힘을 가진 슈퍼맨으로 성장되어 갑니다. 그런데, 될 수 있는 대로 이 사실을 숨기고 그 사회와 알맞게 살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세계대전이 일어나 그에게 드디어 자기의 모든 힘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나니 그에게는 힘을 쓸 장소와 기회가 없었습니다. 슈퍼맨은 또다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와일리는 계속 장편 소설을 썼습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배 안에서 9일 동안에 한편의 장편 소설을 쓴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1933년에 이르러 와일리는 SF작가로서의 완전한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한 잡지의 편집장이며,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에드윈 발머 (Edwin Balmer)가 「지구의 마지막 날」의 아이디어를 와일리에게 제공했습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물리학자들에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의논도 했습니다. 그리고 소설로 써서 잡지에 연재했습니다. 이 소설이 인기가 있어서 곧 단행본으로 내었더니 엄청나게 많이 팔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지구가 없어지고 난 후」라는 책을 「지구 마지막 날」과 같이 발머와 공동으로 썼습니다.
이 내용은 지구가 파괴되자 지구를 떠나 새로운 별 브론슨 베타에 이주한 뒤의 이야기가 줄거리입니다. 「지구의 마지막 날」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1951년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 각국에서 상영되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 와일러는 「소실」이라는 장편을 썼습니다. 지구상에서 남자가 없어지고 여자만이 사는 사회, 남자 편에서 보면 여자가 없고 남자만이 있는 사회를 쓴 소설인데 이것도 그의 대표작인 동시에 애독자도 많았습니다.
두 개의 별이 태양계에 뛰어 들어와 한 개는 지구와 충돌하고, 다른 한 개는 지구 대신 태양의 유성이 되어 그 얼어붙은 대기와 물이 녹아 지구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 과학자들은 우주선을 만들어 그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어떤 지구의 마지막 날이 오더라도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 만한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있는 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지혜와 용기를 현재의 세계에서 어떻게 잘 살려 나가고 있는가 하고 작자는 질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혜와 요기는 항상 칼과 같아서 좋은 일에도 쓰이고 나쁜 일에도 쓰이기 마련입니다.
소련의베르느
「열려라, 참깨!」는 베리야에프가 1928년에 쓴 단편입니다. 제 1집에서 「합성 인간」과 본 제 3집에서 「양서 인간」을 소개했습니다만 두 권 다 인체 개조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이 「열려라, 참깨!」를 싣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베리야에프 하면 인체 개조로 유명한 작가입니다만 그 외의 작품도 많습니다. 즉 「인공 위성」, 「금성 탐험」, 「지구의 밖에서」등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베리야에프는 생물학, 의학, 물리학, 기술의 문제, 우주 비행, 텔레파시, 합성 인간, 해저 생활, 원자력 이용 등 SF의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발표한 「소련의 베르느」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 「열려라, 참깨!」는 과학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인간들의 일상 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물론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범죄의 수단과 방법도 과학화되어 지금과는 또 달리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겠지요. 이제 SF는 단순히 신기하고 이상하고 공상적인 이야기만은 아니고 일반 소설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성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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