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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
2022년 06월 07일 14시 13분  조회:1576  추천:1  작성자: 강려
【 2022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모음 】


가루

       - 정준호 / 매일신문 당선작

 

 

할머니는 평생

밀가루 반죽을 빚으셨어

칼국수와 수제비를 잘 만드셨지

할머니는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듯

점점 구부정해지셨어

봄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기침을 하셨어

기침 소리에 놀라

작은 꽃잎들 떨어질까 봐

조용조용 입을 가리셨어

쪼끄만 땅 짐승 놀랄까봐

발 소리를 줄이다가

점점 가벼워지셨어

작아지고

조용해지고

가벼워져서

할머니는 이제

희고 둥근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셨어

무섭지만 나도

손을 넣어 만져보았어

흰 가루가 담긴

항아리 속에서

지금도 따뜻하셨어

박수를 치면서

가루 묻은 손을 털었어

하늘에서도 반기듯

밀가루 같은

할머니 가루 같은

눈이 내렸어

펑펑 내렸어

 

 

심사평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려"
심사위원: 박승우(동시인), 임수현(시인)

 

올해 동시 응모작은 941편이었다. 작년에 비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분이 동시 부문에 응모했다. 동시 창작가가 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응모작을 읽으며 동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지울 수 없었다. 소재의 빈곤, 발상의 신선함, 사유의 깊이를 갖지 못한 작품이 다수였다. 신춘문예는 새로운 목소리의 탄생을 기대하는 열망이 있다. 자기 목소리를 담으려는 치열함이 엿보이지 않고 '동시'라는 고정된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기본적으로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똑똑', '수학자의 탄생', '찾았다', '연못 배꼽이 작아질 때', '치치', '뒷면', '가루', '1+1', '갈매기', '마침표'까지 10편이었다. 최종적으로 '갈매기', '가루' 두 작품이 남았다.

'갈매기'는 발상과 시적 태도가 새로워서 좋게 읽었다. 다만 간결하고 힘 있는 전개에 비해 쉽게 결말에 닿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조나단 리빙스턴의 '갈매기의 꿈'의 기시감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도 지적되었다. 독창적인 시선으로 더 치열하게 시적 대상을 밀고 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좋은 시인으로 다시 만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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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날리기   

                 - 유인자 / 강원일보 당선 

 

 

꼼짝없이 공부를 했더니

귀에서 매미 소리가 난다.

맴맴맴맴맴맴, 맴맴맴맴맴맴,

농구대에 공을 넣으며

매미를 한 마리씩 꺼낸다.

맴,맴,맴,맴,맴,맴. 맴,맴,맴,맴,맴,맴.

귀에서 놀던 매미들이 다 날아간다.

귀가 뻥 뚫렸다.

 

 

 

 

심사평

 

코로나로 어려운 때임에도 응모작이 많았다. 아동문학에 대한 열정에 변함이 없어 기쁘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 끝까지 겨룬 작품은 이정희의 ‘손우물', 신영순의 ‘봄비', 이윤정의 ‘뿔', 유인자의 ‘매미 날리기'였다. ‘손우물'은 동심이 담겨 있는 귀엽고 깔끔한 작품이었으나 메시지가 약했고, ‘봄비'는 비슷한 이미지의 동시가 여럿 있어 낯익은 느낌이, ‘뿔'은 주제를 드러내 닫혀 있는 마무리가 아쉬웠다.

유인자의 ‘매미 날리기'는 청각적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고 시의 구조가 단단해 당선작으로 올리는 데 이견이 없었다. ‘매미 날리기' 외 다른 작품도 빼어나 시인의 역량을 가늠케 했다. 경쟁과 속도의 시대, 공부라는 짐에 꼼짝없이 붙잡혀 있는 어린이들을 위로하는 시인의 시심을 높이 평가했다. 단순 명쾌하며 절묘한 은유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어린이 정서에 밀착한 공감각적인 동시로 많은 생각과 웃음을 준다. 동시 단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리라 믿는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이창건·이화주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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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 조현미 / 경상일보 당선 
 

 

비행기가 지나간다
높푸른 하늘에 밑줄 좍 ── 그으며
멀리멀리 날아간다
고추 따던 식구들도 비행기를 따라간다
할머니는 제주도 고모 집으로
외숙모는 바다 건너 베트남으로
내 마음은 말레이시아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간다
비행기는 매일매일 바다를 건너는데
높고 넓은 하늘길을 쉬지 않고 나는데
코로나 19가 바닷길을 막았다
하늘길을 막았다
식구들 마음처럼 고추는 붉게 익고
외숙모 목은 한 뼘 더 길어졌다
혼자서만 가는 게 미안했는지
비행기도 …… 말 줄임표를 남긴다
잘 지내시나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식구들 마음에 밑줄 쫙 ── 긋고 간다

 



■심사평-전병호 / 힘든 시대에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작품은 8명의 28편이었다. 이름도 없고 번호로만 표시된 원고를 한 편 한 편 새겨가며 읽는데, 문득 그동안 응모자들이 당선의 영예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새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마다 응모자들의 열정과 갈망이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작품의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자기만의 목소리가 없거나 치열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성 시인들의 작품을 흉내 내는데 그치거나 뒷심 부족이 느껴지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놓칠까 까치는’은 시를 웬만큼 써본 분의 작품이었으나 이 작품의 소재, 주제 역시 많이 다루어 온 것이다. 소재는 같더라도 자기만의 시선으로 이미지와 메시지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엄지척’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으나 중심이 되는 시상은 기성 시인의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어서 가장 먼저 탈락시켰다.

최종적으로 151번의 ‘비행운’과 ‘괜찮아요, 라는 말’이 남게 되었다. 이 중에서 ‘비행운’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결혼 이민자인 외숙모는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혀 고향을 오고 갈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외숙모를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시적화자의 마음이 시대적 상황과 관련지어 많은 힘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며, 큰 동시 나무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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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 이경모 / 조선일보 당선

 

 

단풍잎 떨어진 길을

맨발로 걸으면

살짝살짝 달라붙는

단풍잎들.

 

내 발이 아플까 봐

나무들이 신겨주는

가을빛 가득 물든

단풍잎 신발.

 

걸으면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가 나는

아기 꽃신같이

 

걸으면 걸을수록

자꾸만 방글방글 웃음이 나는

누구나 딱 맞는 신발.

 

 

심사평

 

수많은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동시에 대한 뜨거운 열기와 사랑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수준은 향상되었으나 새롭고 참신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다. 신인에게 바라는 것은 신인다운 패기와 참신함이다. 기존의 소재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 새롭게 보인다. 동심의 눈으로 관찰하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세계를 단순 명쾌하면서도 신선한 시적 표현으로 담아내기를 당부한다.

‘꽃바구니 따라간 나비’는 봄날의 정경을 아름답게 형상화했다. 그러나 기존 동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비유라서 참신성이 떨어졌다. ‘눈물 한 방울’은 말 한마디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작품이었으나 결말이 밋밋하게 끝난 것이 단점이었다. ‘금속의 몸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금속활자의 탄생을 의인화하여 새롭고 참신하게 표현하였다. 그러나 조금 더 생략되고 함축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들꽃 교실’은 시골 학교의 아이들을 들꽃에 비유하여 정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하지만 너무 시상이 소박하고 단조로웠다.

‘단풍잎’은 소품이지만 빨간 단풍잎처럼 곱고 예쁜 작품이었다. 단풍잎 떨어진 길을 맨발로 걷는 감흥과 설렘을 산뜻한 비유와 경쾌한 리듬으로 표현하였다. 동심적인 생각을 잘 살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간결하고 단순 명쾌하게 표현한 점이 미덕이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신선한 비유와 의태어의 느낌을 살려 정감 있게 그려냈다. 오롯이 아이의 생각과 느낌으로 쓴 작품이라서 흐뭇하고 아름다운 동심에 젖게 하는 점도 좋았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도 수준작이라서 역량에 신뢰가 갔다.

 

이준관·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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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약 눈사람

                   - 전윤리숲 / 한국일보 당선

 

 

감기는 다 나았니

 

나는 녹지 않았어

 

발자국도 나지 않았어

 

아직 다정한 어른은 되지 못했지만

 

가끔은 아빠처럼 우체국 커다란 창문 앞에서 잠자고

 

엄마처럼 기념품 가게에서 일해

 

너의 청록색 엄지장갑을 심장 자리에

넣어두는 걸 깜빡했는데도, 오늘은 춥지 않더라

 

무려 스무 날 전 네가 내 볼에 붙여주었던

 

귤껍질에서는 보물상자 냄새가 나

 

가끔 크게 웃고 있어

 

네가 생각나면

 

 

심사평

 

눈이 내리자 SNS에 눈사람 사진들이 올라왔다. 큰 동그라미에 작은 동그라미를 얹은, 전통적인 눈사람뿐 아니라 이글루, 눈 토끼,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와 올라프 등 일상의 예술 작품이 속속 게시됐다. 아이스크림 스쿠프처럼 생긴 장난감으로 만든 ‘눈오리’의 행렬도 따듯하고 사랑스러웠다. 코끝이 얼어가며 만들었을 눈사람들로 세계는 잠시 ‘동화’의 나라가 됐다. ‘동화같다’고 흔히 표현되는 낭만성이 아동문학의 전부는 아니고 종종 아동문학을 왜곡하지만 아동문학의 한 조각인 건 분명 사실이다. 아동문학은, 동시는, 눈사람의 세계를 노래한다. 내가 굴려 쌓은 눈 뭉치가 눈 ‘사람’이 되어 나를 돌봐주고 지켜주는 세계, 양 볼에 귤껍질을 붙여준 다정하고 가난한 마음이 오래도록 서로에게 보물로 남는 세계.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역시 눈사람의 세계와는 달라서, SNS에는 누군가 일부러 발로 차고 손으로 뭉개 죽어버린 눈사람의 사진들이 곧이어 올라왔다. 그렇다면 동시는 이 세계를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동시는 생각할 게 많은 장르다. 단숨에 휘 읽을 수 있고 많이 애쓰지 않고도 쓸 수 있어 보이지만 장르 자체에 대해 늘 고민하게 된다고,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눈사람이 태어나는 세계와 눈사람이 죽는 세계, 어느 쪽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게 여러 생각거리 중 하나의 결론이기도 하다. 마치 “발자국도 나지 않았어”라는 짧은 문장에 눈사람이 죽는 세계를 알아채고 외면하지 않는 시선을 담아놓듯이. “다정한 어른은 되지 못했지만”이라는 시행이 ‘당신은 과연 다정한 어른인가요?’라고 어른 독자에게 넌지시, 종이에 베인 손끝에서 날카롭게 아려오는 통증처럼 묻고 있듯이.

올해도 높이 쌓인 응모작들을 읽으며 역시 가장 중요하게 발견되는 건 동시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과, 어린이가 살아가는 두 세계를 오롯이 살피는 시선이었다. 많은 작품이 동시의 익숙한 외양을 갖추고 있어 반가운 한편 그 생각과 시선이 뚜렷이 보이지 않을 때 또 한 번 한없이 내려앉기도 했다. 그중 '가루약 눈사람'에서는 엄지장갑 없이도 더 이상 춥지 않아 하고, 크게 웃으며 끝내 ‘약’이 되는 눈사람의 절망과 희망이 투명하게 빛났다. 툭툭 터뜨리며 자유로이 오가는 문장 사이 스며든, 바싹 마른 귤껍질의 잔향 또한 전에 없이 새로웠다. 가뿐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소개하는 만큼 좋은 동시를 오래 써 주시길 부탁드린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 김개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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