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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릴케
2022년 08월 31일 18시 38분  조회:892  추천:0  작성자: 강려

말테의 수기 (1)

··· 릴케

9월 11일 툴리에 거리.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온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밖에 나갔다왔다. 많은 병원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에 그 후의 일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임신한 여인을 보았다. 그 여인은 따사로운 높은 담을 따라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치 담이 아직 거기에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그녀는 여러 번 담을 만져보고는 했다. 물론 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도를 찾아보았다. 산부인과 병원. 그래. 그녀는 곧 해산을 하겠지-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좀더 가니 생 자크 거리가 나오고, 둥근 지붕의 커다란 건물이 나왔다. 지도에는 발 드 그라스 육군병원이라 나와 있었다. 사실 이런 것을 알 필요는 없었지만 안다고 나쁠 것도 없다. 골목길 사방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요오드포름, 감자 튀김 기름 그리고 불안의 냄새를 분간할 수 있었다. 여름이면 모든 도시에서 냄새가 난다. 그 다음 나는 백내장이 낀 듯한 야릇한 색의 집을 보았다.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은 그 집 현관문 위에는 아직는 제법 뚜렷하게 ‘간이 숙박소’라 씌어 있었다. 문 옆에 요금이 붙어 있었다. 읽어보았다. 별로 비싸지 않았다.

그리고 또 무엇을 보았던가? 세워놓은 유모차 안에 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통통했고 피부는 푸르스름했으며, 이마에는 오롯하게 종기가 나 있었다. 종기는 거의 다 나아서 이제 아프지 않아 보였다. 아이는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는 입을 벌린 채 요오드포름과 감자튀김, 그리고 불안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나는 보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 버릇을 나는 도저히 고칠 수가 없다. 전차가 미친 듯 경적을 울리며 내 방을 가로질러 달려간다. 자동차는 내 위를 지나간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선가 유리창이 깨져서 떨어진다. 큰 유리조각들은 걸껄거리고 작은 조각들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는 갑자기 집 안의 다른 쪽에서 둔중하고 무언가에 갇힌 듯한 소음이 들린다.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온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문 저쪽에 서 있다가, 한참을 서 있다가 지나가버린다. 다시금 거리의 소리. 처녀애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제발 입 다물어. 이제 충분해.” 전차가 잔뜩 흥분해서 달려와 그 소리를 덮치고, 모든 것을 덮치고 지나간다.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 사람들은 빠르게 움직이고 서로를 앞질러간다.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개가 있다니. 게다가 새벽녘에는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도 들린다. 그 소리는 내게 한없는 위안을 가져다준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불현듯 잠이 든다.

이것은 소리들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소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정적이다. 큰불이 났을 때 가끔 극도로 긴장되는 한 순간이 있다. 솟구치던 물줄기들이 사그라들고, 소방관들은 더 이상 사다리를 기어오르지 않고, 아무도 움직잊 않는 그런 순간 말이다. 소리없이 검은 추녀 끝이 위에서 앞으로 밀려나오고, 높은 담이, 뒤쪽에서 불길이 넘실대는 담이 소리없이 무너진다. 모두가 멈춰 서서 어깨를 움츠리고, 눈에다 온 신경을 모아서 끔찍한 일격을 기다린다. 이곳의 적막은 바로 그런 것이다.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모든 것이 내 안 깊숙이 들어와서, 여느 때 같으면 끝이었던 곳에 머물지 않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지금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내면을 지금 나는 가지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이 그 속으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오늘 나는 편지를 썼다. 그러면서 내가 여기에 이제 겨우 삼 주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다른 곳에서 삼 주라면, 가령 시골에서의 삼 주라면 하루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마치 몇 년 지난 것 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을 작정이다. 내가 변하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변한다면 나는 당연히 예전의 나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무엇이라면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낯선 사람들에게, 이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이미 말했던가?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그렇다. 나는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서투르지만 주어진 시간을 잘 이용하려고 한다.

가령 지금까지는 얼마나 많은 얼굴이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사람들의 수도 엄청나지만 얼굴은 그보다 훨씬 더 많다. 모두들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하나의 얼굴만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얼굴은 닳아버리고, 지저분해지고, 주름살이 잡히고, 여행 내내 끼고 다녔던 장갑처럼 헐거워진다. 이런 사람들은 검소하고 순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얼굴을 바꾸지도 않고, 한 번 깨끗하게 닦지도 않는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반증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들도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 나머지 얼굴을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다. 그들은 나머지 얼굴은 그냥 보관해둔다. 그들의 아이들이 쓰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개가 나머지 얼굴을 쓰고 다니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어떻든 얼굴은 얼굴이다.

다른 사람들은 끔찍하게도 빠르게 차례차례로 얼굴을 바꿔 금방 낡아버리게 만든다. 처음에는 영원히 바꿔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마흔 살도 안 되어 마지막 얼굴만 남는다. 물론 비극적인 일이다. 그들은 얼굴을 조심해서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얼굴도 여드레가 못 되어 구멍이 숭숭 나고, 여기저기가 종이처럼 얇아져서 급기야는 점점 밑바닥이, 그러니까 얼굴도 무엇도 아닌 것이 드러난다. 결국 그들은 그런 상태로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 여인은 몸을 숙인 채 두 손에 얼굴을 온통 파묻고 있었다. 노트르담 드 샹 거리의 모퉁이에서였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발소리를 죽여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불쌍한 사람들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면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혹시 그들에게 무슨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마침 심심해하던 거리의 공허가 내 발자국소리를 낚아채가서는 마치 나막신이라도 신은 듯 제멋대로 여기저기서 딸까닥 소리를 냈다. 그 여인은 깜짝 놀라서 몸을 을이켰는데, 너무 급하게 일으키는 바람에 그만 얼굴이 두 손에 남아버렸다. 나는 손 안에 놓여 있는, 움픅 들어간 얼굴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그 여인의 손에서 떨어져나온 맨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손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말할 수 없이 힘이 들었다. 얼굴을 안쪽에서 바라보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얼굴이 없는, 상처 난 맨 머리를 보는 것은 더욱 무서웠다.


나는 무서움을 느꼈다. 무서움을 느끼면 그에 맞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 여기서 병이 들면 정말 끔찍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디외 병원으로 데려가기라도 한다면 나는 거기서 틀림없이 죽고말 것이다. 그 병원은 안락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일각을 다투며 넓은 광장을 지나 병원으로 달려가는 그 많은 마차들에 치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노트르담 성당의 정면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다. 작은 합승마차들이 계속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누군가 죽어가고 있는 이가 이 병원으로 곧장 달려오기로 마음먹었다면 사강 공작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마차를 세워야 할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막무가내기 마련이라 마르티르 거리의 고물상 주인 러그랑의 마누라가 센 강의 시테 섬에 있는 이 병원으로 실려올 경우 파리 시 전체의 교통을 마비시킬 수 있다. 이 고약한 소형 마차의 창에는 몹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반투명 유리가 끼워져 있어서, 그 안에서 아주 화려한 단말마의 고통이 벌어지고 있다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을 상상하는 데는 수위의 상상력 정도면 충분하다. 상상력이 좀더 풍부해서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펼친다면 곧 그러한 추측은 한도 없이 뻗어나갈 것이다. 나는 지붕 없는 합승마차가 도착하는 것도 보았는데, 포장을 젖힌 이 마차는 규정된 요금으로 운행한다. 임종의 시간을 맞기 위해서는 2프랑이면 된다.

이 훌륭한 병원은 매우 오래 되었다. 이미 클로비스 왕 시절에도 이곳의 몇몇 침대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지금은 559개의 병상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공장에서처럼 대량 생산 방식이다. 이렇게 엄청난 대량생산이기에 각각의 죽음은 훌륭하게 치러지지 않지만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대량으로 죽어나가니 그렇게 되었다. 오늘날 훌륭하게 공들인 죽음을 위해 무언가 하려는 사람이 아직도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심지어는 세심하게 죽음을 치를 능력이 있는 부자들조차 무관심하고 냉담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만의 고유한 죽음을 가지려는 소망은 점점 희귀해진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런 죽음은 고유한 삶이나 마찬가지로 드물어질 것이다. 맙소사, 이게 전부라니. 사람들은 세상에 와서 기성품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삶을 찾아서 그냥 걸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죽으려 하거나 어쩔 수 없이 죽음으로 내몰릴 경우에도 문제가 없다. “자, 너무 애쓰지 마세요. 이것이 당신의 죽음입니다, 선생.” 이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막 닥쳐온 죽음을 맞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앓고 있는 병에 딸려 있는 죽음을 맞이한다(사람들이 모든 질병을 알게 된 이래로 여러 가지의 죽음은 인간이 아니라 질병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병자는 아무 할 일이 없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기꺼이 죽어가는 요양소에서 사람들은 그 시설에 걸맞는 죽음을 맞는다. 그런 죽음을 사람들은 좋다고 여긴다. 그러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당연히 훌륭한 계층에 어울리는 점잖은 죽음을 선택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면 죽음과 함께 상류계층의 장례 절차가 시작되고 그들의 매우 멋진 관습들이 뒤따라 이어진다. 가난한 이들은 그 집 앞에 서서 실컷 구경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격식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죽음은 보잘것없다. 그들은 자신에게 대충 들어맞는 죽음이면 기뻐한다. 죽음이 아주 커서 헐렁해도 상관없다. 사람들은 늘 조금씩 자라기 때문이다. 다만 죽음이 가슴을 여미지 못할 정도로 꽉 끼거나 숨막힐 정도로 옥죈다면 문제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없는 고향을 생각할 때면 예전에는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사람들은 열매 속에 씨가 들어 있듯 자신 안에 죽음을 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또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작은 죽음을, 어른들은 커다란 죽음을 자신 속에 지니고 있었다. 여자들은 뱃속에, 남자들은 가슴속에 죽음을 지니고 있었. 누구나 바로 그런 죽음을 갖고 있었고, 그 사실은 사람들에게 독특한 위엄과 조용한 자부심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할아버지, 늙은 시종관 브리게도 하나의 죽음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죽음이었던가. 두 달이나 계속되고, 외딴 농가까지도 들리는 그런 요란한 죽음이었다.

유서 깊은 이 널따란 저택도 그 죽음에게는 너무 작았다. 옆에다가 곁채를 하나 더 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시종관의 몸이 점점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주기를 바랐다. 그러다가 아직 하루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이제 누워보지 않은 방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으면 무섭게 화를 냈다. 결국 하인과 하녀, 그리고 할아버지가 항상 곁에 두셨던 개들이 하나의 무리가 되어 계단을 올라가, 집사가 앞장선 가운데 당신의 어머니께서 임종하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23년 전에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때의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제 모두가 무리를 지어 여느 때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그 방으로 밀려들어갔다. 커튼이 젖혀지자 여름날 오후의 강렬한 햇살이 깜 놀라고 겁먹은 모든 사물들을 샅샅이 비추고, 천이 젖혀진 거울에 부딪혀서 서투르게 몸을 돌렸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기심에 가득 찬 하녀들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했고, 젊은 하인들은 모든 것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나이든 시종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운 좋게도 마침내 들어와보게 된 이 폐쇄된 방에 대해 들었던 모든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개들이 모든 사물이 냄새를 풍기는 이 방에 들어오게 되어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호리호리하고 커다란 러시아산 그레이하운드들은 안락의자 뒤를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마치 춤이라도 추는 듯한 걸음걸이로 몸을 흔들며 방을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는 紋章에 새겨진 개처럼 일어서서 가느다란 앞발을 백금으로 된 문틀에 걸치고는, 뾰족한 얼굴로 바짝 긴장하여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당의 오른편 왼편을 둘러보았다. 누런 장갑 빛깔의 자그마한 닥스훈트는 모든 것이 잘 되어 있다는 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의 널찍한 비단 소파에 앉아 있었다. 털이 불그스름하고 뭔가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의 포인터는 금빛 책상다리의 모서리에 등을 비벼대고 있었다. 그 바람에 그림이 그려진 책상 위에 있던 세브르산 접시가 달가닥거렸다.

물론 이것은 맥놓고 잠 속에 푹 빠져 있던 사물들에게는 끔찍한 시간이엇다. 누군가가 성급한 손길로 거칠게 펼친 책갈피에서 장미꽃잎이 떨어져 짓밟혔다. 자그맣고 부서지기 쉬운 물건들은 누군가가 낚아채어 바로 망가뜨리고는 얼른 제자리에 놓았다. 여러 가지 망가진 물건들을 커튼 아래 숨겨놓거나, 벽난로의 금빛 격자망 뒤로 던져버리기까지 했다. 이따금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양탄자 위로 살며시, 혹은 마룻바닥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런데 언제나 소중하게 다뤄지는 데 익숙해 있던 이 물건들은 떨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어디에 떨어지든 쪼개지고, 날카롭게 부서지거나 소리없이 깨져버렸다.

누군가가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불안하게 지켜온 이 방의 몰락을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그 대답은 단 하나, 죽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울스가르 마을의 시종관 크리스토프 데트레프 보리게의 죽음이었다. 크리스토프 데트레프는 시종관의 감청색 제복 밖으로 미어져 나올 정도로 부풀어오른 채 방바닥 가운데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의 커다랗고 낯설기만 한, 아무도 더는 알아볼 수 없게 된 얼굴의 눈은 감겨져 있었다. 그는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를 침대 위에 눕히려 했다. 하지만 병이 자라기 시작했던 초기부터 침대를 싫어했던 그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다. 게다가 그 방에 있던 침대는 너무 작았기에 그를 양탄자 위에 눕히는 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래층으로는 내려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종관 데트레프는 누워 있었다. 이미 숨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개들은 하나씩 하나씩 문틈으로 빠져나가서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 털이 빳빳한 개 한 마리만이 주인 곁에 남았다. 넓적하고 털이 텁수룩한 앞발 하나를 그의 커다란 잿빛 손 위에 얹어놓고 있었다. 대부분의 하인들도 이제는 방보다는 한결 환한 바깥의 흰 복도에 나가 있었다. 방에 남아 있는 이들도 때때로 방 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랗고 시커먼 덩어리를 몰래 힐끔거리며 그것이 썩어버린 물체 위에 덮여 있는 커다란 옷에 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었다.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더 이상 시종관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 이미 7주 전부터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된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크리스토프 데트레프가 아니고 크리스토프 데트레프의 죽음이었다.

크리스토프 데트레프의 죽음은 이미 아주 오래 전부터 울스가르에 살면서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무엇인가를 요구했다.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고, 푸른 방으로 데려가라 요구했고, 자그마한 응접실로 그리고 넓은 홀로 가자고 요구했다. 개들을 요구했고, 사람들에게 웃어라, 이야기하라, 유희하라, 조용히 하라고 요구했고 때로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요구하기도 했다. 친구가 보고 싶다고, 여인들과 이미 죽은 이들이 보고 싶다고 했으며, 자신도 죽고 싶다고 했다. 요구하고 요구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밤이 와서 지쳐버려 파김치가 된 하인들이 먹 잠들려 할 때면 크리스토프 데트레프의 죽음은 조금도 쉬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한숨을 쉬고 울부짖었다. 그 바람에 처음에는 함께 짖어대던 개들도 결국 입을 다물고 감히 다시 몸을 눕힐 생각을 못 하고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서서는 무서움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덴마크의 광활한 은빛 여름밤을 뚫고 그 죽음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면 마을 사람들은 천둥번개라도 칠 때처럼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는 그 소리가 그칠 때까지 등잔 주위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해산 날짜가 가까워진 여인들은 가장 구석진 방에 두꺼운 칸막이를 한 잠자리로 옮겨졌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 마치 자신들의 몸 속에 있기라도 한 듯 여인들은 그 소리를 들었다. 여인들은 일으켜달라고 간청하여, 희고 품이 넓은 옷을 입은 채로 나와서는 흐릿한 얼굴을 하고 다른 사람들 곁에 앉았다. 이 시기에 송아지를 낳아야 할 암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을 닫아버렸다. 새끼가 영 나오려 하지 않자 사람들은 암소에서 죽은 새끼를 강제로 꺼냈는데 내장까지도 함께 끌려나왔다. 다가올 밤에 대한 두려움에 그리고 밤에 자꾸만 깜짝 놀라 깨어 있는 바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기 때문에 모두들 낮에도 일을 제대로 못 했고 건초를 들여놓는 일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일요일에 흰색의 평화로운 교회에 갈 때마다 사람들은 이제 울스가르에서 주인이 사라져 주기를 기도했다. 이 주인이 너무 금찍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가 가슴에 품고 기도한 것을 목사는 설교단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목사 역시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이러시는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종도 똑같이 외쳤다. 그 종은 밤새도록 시끄럽게 울려대는 경쟁자에 맞서 쇳소리를 힘차게 울렸지만 아무리 해도 대적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그 이야기를 했다.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저택에 들어가서 쇠스랑으로 나리를 찔러 죽이는 꿈을 꾼 이도 있었다. 모두들 매우 흥분했고, 인내의 한계를 느꼈고, 초조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젊은이의 꿈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 젊은이가 실제로 그런 일을 감행할 만한지 가늠해보는 것이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시종관을 사랑했고 걱정해주던 그 지방의 사람들은 모두들 이제 그 젊은이처럼 느끼고, 그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울스가르에 살고 있는 크리스토프 데트레프의 죽음은 물러가려 하지 않았다. 죽음은 10주 예정으로 와서 10주 동안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죽음은 이전의 크리스토프 데트레프보다 더욱 강력하게 군림했다. 죽음은 마치 후세 사람들이 나중까지 폭군이라 부르는 군주와 같았다.

그것은 수종증에 걸린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시종관이 일생 동안 품고 다니며 스스로 키워왔던 고약한 군주 같은 죽음이었다. 시종관 자신이 평온한 시절에 다 써버릴 수 없어 남아 있던 모든 자만과 의지, 지배력이 이제 그의 죽음 안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죽음은 울스가르에 눌러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것과는 다른 죽음을 가지라고 그에게 요구한다면 시종관 브리게는 그 사람을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았을까. 그는 자신만의 힘든 죽음을 맞은 것이었다.

내가 직접 알고 있었거나 전해들은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해 보아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자신만의 고유한 죽음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은 갑옷 깊숙이 죽음을 지니고 있었다. 죽음은 마치 포로와 같았다. 아주 늙어서 자그맣게 오그라든 여자들은 무대처럼 엄청나게 큰 침대에 누워 모든 가족과 하인과 개가 지켜보는 앞에서 분별 있고 주인다운 죽음을 맞았다. 아이들까지도, 아주 어린아이들까지도 마음을 가다듬어 아이들의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라온 자신과 앞으로 자라게 될 자신을 합해놓은 죽음을 맞았다.

아이를 가진 여인이 가만히 서 있을 때면 얼마나 우수에 찬 아름다움이 느껴지는지. 무의식적으로 가느다란 손을 올려놓고 있는 그녀의 커다란 몸 속에는 두 개의 열매가, 아이와 죽음이 들어 있다. 단아한 얼굴에 감도는 진지하고 거의 풍요롭기까지 한 미소는 그들이 자신 안에서 두 개의 열매가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두려움에 맞서서 무엇인가를 했다. 밤새 앉아서 글을 썼다. 이제 나는 울스가르의 들판을 건너 먼 길을 걸은 뒤처럼 피곤하다. 지금은 모든 것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으며, 그 오래된 저택에 이제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는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 아마 지금도 하얀 다락방에서는 하녀들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무겁고 축축한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아는 사람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달랑 가방 하나와 책이 든 상자 하나만 들고, 아무런 호기심도 없이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집도, 물려받은 물건도, 개도 없는 이런 삶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적어도 추억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데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이가 있을까? 어린 시절이 추억 속에 있지만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모든 추억에 다시 다다르기 위해서는 아마도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이를 먹는 것이 그래서 나는 좋다.

오늘 아침은 아름답고 가을 분위기가 났다. 나는 툴리에 공원을 거닐었다. 동쪽을 향해 서 있는 모든 것들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햇빛을 받고 있는 것들이 밝은 회색 커튼 같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아직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정원의 동상들은 밝아오는 희미한 빛 속에서 햇살을 쬐고 있었다. 기다란 화단의 꽃들이 잠에서 깨어나 깜짝 놀란 목소리로 ‘아아 붉은색’이라고 말햇다. 그때 저쪽 샹젤리제 쪽에서 키가 크고 비쩍 마른 남자가 모퉁이를 돌아 다가왔다. 그는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지 않고 가볍게 앞으로 내밀고 있었고, 이따금 마치 전령관의 지팡이라도 되는 듯 힘을 주어 소리나게 땅을 짚었다. 그 남자는 기쁨을 억누릴 수가 없는 듯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태양과 나무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어린아이처럼 조심스러웠지만 이상하리만치 가벼웠고 이전의 걸음걸이에 대한 추억에 가득 젖어 있었다.

이렇듯 자그마한 달이 못 하는 게 없다니. 달밤에는 주위의 모든 것이 투명하고 가벼우며, 밝은 공기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먼 빛을 띠고 시야에서 사라져 보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넓이와 관계 있는 것들, 즉 강과 다리와 길게 뻗은 길과 확 트인 광장은 그 거리감이 뒤로 사라져서 마치 비단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보인다. 그럴 때면 퐁네프 다리 위의 밝은 녹색 마차와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어떤 붉은 물체와 진주빛 빌딩의 방화벽에 붙은 포스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단순해져서 마치 마네의 초상화 속의 얼굴처럼 몇 개의 정확하고 밝은 선으로 그려져 있다.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센 강변의 헌책방에서 책이 들어 있는 상자들을 열어 놓는다. 새 책의 선명한 노란색이나 헌 책의 바랜 노란색, 전집 물의 붉은 빛이 도는 갈색, 대형 화첩의 초록색. 이 모두가 잘 어울리고 각자 의미를 지니며, 서로를 보완해 주어서 무엇 하나 빠진 것 없는 완전함을 만들어낸다.

창문 아래로 다음과 같은 풍경이 보인다. 여인이 작은 손수레를 밀고 간다. 손수레 위 앞쪽에 손으로 돌리는 오르간이 세로로 놓여 있다. 그 뒤에는 아기 바구니가 비스듬히 놓여 있고, 그 속에는 모자를 쓴 아주 작은 아이가 기쁜 듯이 두 다리를 버티고 서서 앉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끔 여인은 오르간 손잡이를 돌린다. 그러면 그 작은 아이는 곧바로 바구니에서 일어나 발을 구르고, 초록색 나들이옷을 입은 작은 소녀는 춤을 추면서 창문을 향해 탬버린을 흔든다.

보는 법을 배우고 있는 지금 나는 무엇인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물여덟인데 해 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서 카르파초에 관한 논문을 썼지만 형편없고, <결혼>이라는 희곡을 썼지만, 잘못된 내용을 모호한 수법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시를 썼다. 아아, 젊어서 쓴 시는 별로 대단치가 못하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평생을, 가능하다면 오래 살아서 삶의 의미와 달콤함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마지막에 열 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시란 사람들이 말하듯 감정이 아니라 (감정은 이미 젊어서부터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은가)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사물을 보아야 하며 동물들을 알아야 한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자그마한 꽃들이 아침이면 만들어내는 몸짓을 알아야 한다. 낯선 지방의 길들과 예상치 못한 만남 그리고 오래 전부터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던 이별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아직 해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어린 시절과,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 했으나 아이가 그것을 알지 못하여 부모가 마음 상한 일과 (다른 아이한테는 분명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아주 이상하게 시작되어 몇 번이나 매우 깊고 무겁게 변화해간 어린 날의 병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요하고 외진 방에서의 나날들과 바닷가에서 맞은 아침, 그리고 바다 그 자체, 이곳 저곳의 바다들, 하늘 높이 올라가 별과 함께 날아가버린 여행 중의 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하나하나가 각각 달랐던 사랑의 밤들에 대한 기억과 산고(産苦)의 외침 그리고 산후에 다시 몸을 닫고 가벼워져서 하얗게 잠든 산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죽어가는 사람 곁에 있어보아야 한다. 창문이 열려 있어 이따금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는 방에서 죽은 사람 곁에 앉아 보았어야 한다. 그러나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추억이 많아지면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커다란 인내심을 가지고 추억이 다시 솟아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추억 자체로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이 우리 몸 속에서 피가 되고 눈짓이 되고 몸짓이 되어 이름을 잃어버리고, 우리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될 때에야 비로소 아주 드물게 그 추억의 한가운데에서 시의 첫 단어가 솟아올라 걸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의 모든 시들은 이와는 다르게 생겨났다. 그러니 시라고 할 수가 없다. 희곡을 쓸 때에도 나는 얼마나 실수를 했는지. 서로를 힘들게 하는 두 사람의 운명을 이야기하기 위해 제삼자를 등장시켰으니 나는 모방자이고 바보가 아니었던가? 너무 쉽사리 함정에 빠진 것이다. 모든 삶과 모든 문학에 등장하는 이 제삼자는, 실제로는 존재한 적이 없는 이 제삼자라는 율령은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진작에 알았어야 했다. 이 제삼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장 심오한 비밀을 알리지 않기 위해 자연이 꾸민 술책 중의 하나다. 진행되고 있는 드라마를 가리고 있는 칸막이와 같다. 실제 갈등은 소리없는 고요 속에서 벌어지는데 그 입구에서 나는 소음이 바로 제삼자다. 문제가 되는 두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모두에게 너무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제삼자는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루기가 쉬웠다. 그래서 모두들 제삼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작가들의 희곡에서는 바로 첫머리부터 벌써 제삼자를 등장시키고 싶어하는 초조함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제삼자를 참고 기다릴 수가 없다. 그런데 제삼자가 등장하자마나 모든 것은 순조로워진다. 그가 조금 늦게 나오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지루한가. 제삼자 없이는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못하고, 모든 것이 정지되고, 정체되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정체 상태와 마냥 멈춰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을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대번에 극장이 예술적으로 공허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마치 위험한 구멍이라도 되는양 극장을 막아버릴 테고, 좀벌레 나방들만 특별석의 테두리에서 날아올라 텅 빈 공간에서 나부낄 것이다. 극작가들은 더 이상 고급 주택가에서 살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공공 첩보기관들은 극작가를 위해 그 제삼자를, 줄거리 그 자체이며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제삼자를 아주 멀리 떨어진 세계 구석구석까지 찾아나설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는 ‘제삼자’가 아니라 바로 그 부부다. 두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데도 아직 그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된 게 거의 없다. 그들은 괴로워하고, 행동하고, 서로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스운 일이다. 나는 여기 이 작은 방에 앉아 있다. 스물여덟이 되었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나. 브리게가 앉아 있다. 나는 여기 앉아 있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이제 생각하기 시작하여, 잔뜩 흐린 파리의 어느 날 오후에 5층 방에서 이러한 생각을 펼친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어떤 진실한 것, 중요한 것도 보지 못하고, 인식도 못하고, 말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가능할까? 관찰하고, 숙고하고, 기록할 몇천 년의 시간을 갖고 있엇는데도 사람들은 그 수천 년의 시간을 버터 바른 빵과 사과 하나 베어먹는 학교의 점심시간처럼 헛되이 흘려버렸다는 사실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수많은 발명과 진보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종교 그리고 세상의 지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만 삶의 표면에만 머물러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인가 의미 있을 수도 있는 이 삶의 표면을 형편없는 천으로 덧씌워놓고, 여름 휴가철의 응접실 가구처럼 보이게 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역사가 온통 잘못 이해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죽어가고 있는 낯선 사람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데,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모여든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역사는 항상 군중에 대해서만 말해왔기 때문에 과거는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을 되찾아야 한다고 믿는 일이 가능할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가 이전의 모든 조상들에게서 생겨나온 존재이며, 그것을 알게 되면 그와는 다르게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설득시키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결코 존재한 일이 없는 과거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모든 현실은 무의미하며, 그들의 삶은 마치 빈 방의 시계처럼 어떤 것과도 연관을 갖지 않고 다만 헛되이 흘러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현실에 살고 있는 처녀들에 대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게 가능할까? 사람들이 ‘여인들’ ‘아이들’ ‘소년들’이라고 말하지만 이 단어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복수형이 아니라 다만 수많은 단수형만이 있었음을 (아무리 교양 있더라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럴 수 있다.

‘신’이라는 말을 언급하면서, 그 말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두 명의 초등학생을 보라. 한 아이가 칼을 하나 사고, 옆자리의 아이도 같은 날 똑같은 것을 샀다고 하자. 그리고 일 주일 뒤에 두 아이가 그 칼을 서로에게 내보일 경우, 두 칼에는 비슷한 점이 아주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두 칼은 각기 다른 손 안에서 그렇듯 다르게 변한 것이다 (그걸 보고 한 아이의 어머니는 “너희들은 무엇이든 금방 망가뜨려버리지”라고 말할 테지만 말이다). 아아, 그렇다. 신(神)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다만 마음속에 품고 있을 수 있다고 믿는 일이 가능할까?

말테의 수기 (2)

··· 릴케


그 당시 나는 열두 살, 많아야 열세 살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우르네클로스터로 데려 가셨다. 아버지가 무슨 일로 외할아버지는 방문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두 분은 오랫동안 만난 적이 없었고, 아버지는 브라에 백작이 만년에 이르러 은거한 그 오래된 저택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 그 기이한 저택을 나는 그 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집을 떠올려보면 건물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내 기억 속에 그 집은 온통 분해되어 있다. 여기에 방 하나, 저기에 또 하나, 그리고 두 방을 연결시켜주지 않고 따로 떨어져 단편으로 남아 있는 복도가 있다. 내 머리 속에는 모두가 이런 식으로 흩어져 있다. 여러 개의 방들, 큰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뻗어 있는 계단, 그리고 어두컴컴한 속을 사람들이 혈관 속의 피처럼 지나야 했던 나선형의 좁은 계단이 있는가 하면, 탑 속의 방, 높게 매달려 있는 발코니, 조그만 문을 밀고 나가면 나오던 예상치 못했던 자그마한 발코니가 있다. 이 모든 것이 내 머리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마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마치 이 집의 모습이 헤아릴 수 없이 높은 곳에서부터 내 안으로 떨어져 내려와 내 속에 있는 밑바닥에 부딪혀 부서진 것과 같다.

내 마음 속에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매일 저녁 일곱 시면 저녁식사를 위해 모이곤 했던 그 커다란 방뿐이다. 나는 이 방을 낮에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창문이 있었는지, 어느 쪽으로 나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들이 그 방에 들어설 때면 언제나 묵직한 촛대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과 함께 밖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이 높다란, 지금 기억으로는 둥그런 아치형의 방은 그 어떤 방보다도 강렬했다. 그 방의 어두컴컴한 높은 천장과 한 번도 온전하게 빛이 비친 적이 없는 구석은 사람들에게서 모든 영상을 빨아들이고는 그것을 대신할 다른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아무런 의지도, 생각도, 의욕도, 저항할 생각도 없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빈 공간 같았다. 이처럼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상황이 처음에는 내게 배멀미와 같은 메스꺼움을 불러일으켰던 게 생각난다. 나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무릎에 내 발이 닿도록 다리를 쭉 뻗음으로써 이 기분을 극복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나 사이의 거의 냉담할 정도였던 당시 관계에 비추어보면 그러한 행동은 자연스럽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이 이상한 행동을 이해해 주었거나 어떻든 아주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접촉을 통해서 나는 길고 긴 식사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렇듯 안간힘을 다해서 견뎌낸 몇 주가 지나가 아이들 특유의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적응력에 힘입어 나는 이 모임의 몹시도 스산한 분위기에 아주 익숙해졌고, 두 시간 동안 식탁에 앉아 있는 것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식탁에 자리를 같이한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오히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는 이 모임을 가족이라 불렀고 다른 사람들도 이 표현을 썼는데 이 표현은 별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네 사람은 서로 먼 친척이기는 했지만 결코 한 집안에 속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당숙은 노인이었는데 단단하고 검게 탄 얼굴에는 몇 개의 반점이 있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화약이 폭발해서 난 상처라 했다. 투덜거리며 불만스러워했던 그 당숙은 소령으로 퇴역했는데, 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방에서 연금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인들에 따르면, 그는 1년에 한두 차례 시체를 보내오는 어떤 감옥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면 그는 그 방에 밤낮으로 틀어박혀서는 시체들을 해부하고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시체가 썩지 않도록 처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당숙의 맞은편은 노처녀인 마틸데 브라에의 바리였다. 그녀는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인물로 내 어머니의 먼 사촌 뻘이었다. 그녀에 대해서는 오스트리아의 한 심령술사와 매우 활발하게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없다. 놀데 남작이라는 이 심령술사에게 그녀는 완전히 빠져 있어서 사전에 그의 허락이나 더 나아가 축복을 받지 않고는 아무리 사소한 일도 하려 들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매우 뚱뚱했는데 부드럽고 느물느물한 덩어리가 밝고 헐렁한 옷 속에 아무럿게나 흘려 넣어져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동작은 피곤해 보였고 부정확했으며 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괴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나의 다감하고 날씬한 어머니를 기억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를 오래 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재대로 기억해낼 수 없었던 어머니의 섬세하고 조용한 특징들을 그녀의 얼굴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마틸데 브라에를 매일 보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 아마도 처음으로 어머니의 모습을 제대로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수백 가지 개별적인 인상들이 모여서 이제야 비로소 하나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그 모습은 그 후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않고 함께 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브라에의 얼굴에는 정말로 어머니의 얼굴과 모습을 특징지어주는 모든 세부적인 요소들이 깃들여 있었다. 다만 두 얼굴 사이로 낯선 얼굴이 끼어들기라도 한 듯, 두 얼굴이 서로 밀려나고 일그러지는 바람에 더 이상 관련을 갖지 않게 된 것 같았다.

이 부인 옆에는 사촌누이의 아들이 앉아 있었는데, 내 또래였지만 나보다 작고 허약했다. 주름 잡힌 옷깃 위로 가늘고 창백한 목이 솟아올랐다가 긴 턱 아래에서 사라졌다. 그 아이의 얇은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으며 콧등이 가볍게 떨리곤 했다. 아름다운 짙은 갈색의 두 눈 중에서 단지 한쪽 눈만이 움직였다. 그 눈은 이따금 구석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그 눈을 팔아버렸기에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식탁의 끝에는 아주 큼지막한 외할아버지의 팔걸이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일만을 맡아 하는 하인이 외할아버지가 앉을 때 의자를 밀어 넣어주곤 했는데, 외할아버지는 그 의자의 아주 작은 공간만을 차지하고 앉았다. 귀가 어둡고 무뚝뚝한 이 늙은 주인을 각하나 시종관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장군이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외할아버지는 그런 직함을 지닌 일이 있었지만 아주 오래 전의 일이어서 이러한 명칭이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는 말할 수 없이 예리하다가도 다시금 몽롱해지는 외할아버지 같은 인물에게는 어떠한 특정한 명칭을 붙일 수 없다는 생각이 내게는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때때로 내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더군다나 농담 석인 악센트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당신 곁으로 오라고 했지만 나는 한 번도 그를 외할아버지라 부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든 가족이 외할아버지에게 존경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태도를 보였지만, 꼬마 에릭만은 이 늙은 집주인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그의 움직이는 눈이 가끔 외할아버지에게 재빨리 동의를 구하는 눈짓을 보내면, 이 눈짓을 곧바로 외할아버지의 응답을 받곤 했다. 때로는 기나긴 오후 시간에 두 사람이 으슥한 화랑의 끝에 나타나 서로 손을 잡고 아무 말도 없이, 하지만 분명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면서 어두운 옛 초상화 옆을 지나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뜰이나 집 밖의 너도밤무 숲 또는 들판에서 지냈다. 다행히도 우르네클로스터에는 개들이 있어서 나를 따라다녔다. 여기저기 소작인들의 집이나 목장에서 우유나 빵, 과일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나중의 몇 주 동안은 저녁 모임에 대한 생각으로 불안해하지도 않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나의 자유를 누렸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있는 기쁨 때문에 나는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개들하고는 이따금 짤막하게 이야기를 했다. 개들하고는 아주 잘 통했다. 하기야 과묵함은 우리 집안의 특성이기도 했다. 나는 과묵함을 아버지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저녁식사 내내 한 마디 말이 없어도 별로 놀랍지 않았다.

우리들이 도착한 후 며칠 동안 마틸데 브라에는 말을 아주 많이 했다. 아버지에게 외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친지들에 대해 물어보았고, 아주 오래 전의 인상을 회상하기도 했으며, 죽은 친구들이나 어떤 젊은 남자를 생각해내고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했다. 그 남자는 자기를 사랑했지만 자신은 그의 간절하고 절망적인 애정에 응할 수가 없었노라고 암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정중하게 귀를 기울였고, 가끔 긍정의 표시로 머리를 끄떡였으며 꼭 필요한 대답만을 하였다. 위쪽에 앉아 있는 외할아버지는 아랫입술을 꽉 다물고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마치 가면이라도 쓰고 있는 듯 실제보다 더 커 보였다. 외할아버지도 이따금 말을 했지만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가 매우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홀의 어디서나 잘 들렸다. 그 목소리는 시계바늘의 규칙적이고 무관심한 진행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목소리를 둘러싼 적막은 일종의 공허한 반향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고 어느 음절이나 똑같이 울렸다.

브라에 백작은 나의 아버지의 죽은 처, 그러니까 나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는 지빌레 백작 영양이라 불렀고 무슨 말을 하든 어머니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럴 때면, 지금도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하얀 옷을 입은 젊은 처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처녀가 금방이라도 우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나는 또한 외할아버지가 같은 어조로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안나 소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외할아버지가 특별히 좋아했던 것처럼 보이는 이 소녀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콘라드 레벤트로우 재상의 딸로 나중에 프리드리히 4세의 배우자가 되었고 로스킬데에 묻힌 지 150년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에게는 시간의 흐름이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죽음은 작은 돌발 사건으로 외할아버지는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 한 번 자신의 기억에 받아들인 사람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어서 그들의 죽음 정도는 약간의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고 이 늙은 주인이 죽은 후에 사람들은 그가 미래 역시 제멋대로 현재의 일처럼 여겼다고 서로들 이야기했다. 언젠가 외할아버지가 어떤 젊은 여인에게 그녀의 아들들에 대해서, 특히 그 중의 한 아들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당시 첫 아이를 임신한 지 겨우 3개월인 상태였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를 하는 노인 옆에서 놀라움과 두려움에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한 채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 사건은 내가 웃음을 터뜨린 일이 발단이 되었다. 나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는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 마틸데 브라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거의 장님이 되다시피한 늙은 시종은 그녀의 자리에 멈춰 서서는 음식 그릇을 내밀었다. 그는 한동안 이런 자세로 기다리다가 만족한 듯, 그리고 모든 것이 제대로라는 듯 점잖게 다음 자리로 옮겨갔다. 나는 이 장면을 줄곧 관찰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에는 우습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막 음식을 한 입 입에 물었을 때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와 사레가 들렸고 한바탕 소동을 일으킨 것이었다. 내게도 이런 상황이 불쾌하게 여겨졌고 모든 수단을 다해서 점잖게 있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계속 웃음이 터져나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나의 행동을 감싸주려는 듯 넓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마틸데가 아픈가보지요?”라고 물었다. 외할아버지는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짤막하게 대답했는데, 나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주의해 듣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니, 단지 크리스티네를 만나고 싶지 않을 따름이야.”그래서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던, 갈색으로 그을린 소령이 일어나서는 백작에게 잘 알아들을 수 없게 중얼거리며 양해를 구하고 인사를 한 뒤 방을 떠난 것이 외할아버지의 말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집주인의 등 뒤에 있는 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몸을 돌려서는 갑자기 에릭과 내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지시하는 듯한 손짓과 고갯짓을 한 것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그것을 보고 나는 아주 놀랐다. 놀란 나머지 나를 괴롭히던 웃음이 뚝 그칠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 소령에게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에릭도 그를 무시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식사는 언제나처럼 천천히 진행되었고 막 후식이 나올 때쯤이었다. 그때 나는 방의 뒤편, 반쯤만 빛이 비치는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움직임에 눈이 끌려 숨을 죽이고 그것을 응시했다. 그곳의 늘 잠겨 있는 문이, 중간층으로 통한다고 사람들이 말해준 적이 있는 그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리고 내가 호기심과 놀라움이 섞인 아주 기묘한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밝은 옷을 입은 날씬한 여이니 문이 열린 어두운 공간에 나타나서는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어떤 몸짓을 했는지 아니면 소리를 질렀는지 잘 모르겠다.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나서 나는 그 이상한 여인의 모습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쳐다보니 아버지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주먹 쥔 손을 내려뜨리고는 그 여인에게로 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그 여인은 이런 광경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우리에게로 한 발 한 발 다가왔다. 그녀가 백작의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외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나더니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식탁으로 잡아당겼다. 그 동안 낯선 여인은 천천히 그리고 아주 무관심하게 한 반짝씩 걸음을 옮겨, 이제 방해물이 사라진 공간과 어디선가 유리잔이 떨리는 소리만이 들릴 따름인, 형언할 수 없는 적막을 지나서 방의 맞은편 벽에 달린 문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이 낯선 여인의 뒤에서 깊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이 에릭임을 알아보았다.

식탁에서 떠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의자에 붙박인 듯 앉아 있었기에 혼자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한참을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그 다음에야 아버지 생각이 나서 바라보니 외할아버지가 여전히 그의 팔을 붙잡고 있다. 아버지의 얼굴은 이제 화가 나서 벌게졌으나 외할아버지는 마치 맹수의 흰 발톱과 같은 손가락으로 아버지의 팔을 움켜쥐고 예의 가면과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외할아버지가 무슨 말인가를 한 음절 한 음절씩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말은 아주 깊숙이 내 귀에 박혔다. 2년 전인가 나는 그 말을 갑자기 내 기억의 저 밑바닥에서 찾아내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그 의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종관, 자네는 너무 흥분을 잘 하고 예의가 없네.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하도록 왜 내버려두지 않나?”

그러자 아버지가 말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기에 있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낯선 사람이 아니네. 크리스티네 브라에야.” 그때 다시금 저 이상야릇한 엷은 적막이 솟아올라 다시금 유리잔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몸을 휙 잡아빼서는 달리듯 홀에서 나가버렸다.

나는 아버지가 밤새도록 자신의 방에서 서성이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역시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는 선잠이 들었고 새벽녘에 갑자기 깨어났다. 그리고는 내 침대에 앉아 있는 하얀 물체를 보고는 심장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나는 겨우 힘을 내어 이불 속으로 머리를 숨기고는 무섭고 난감해져서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고 있는 내 눈 위쪽이 서늘하고 밝아졌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눈물 고인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 아주 가까이서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목소리가 부드럽고 달콤하게 얼굴에 다가왔다. 나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차렸다. 바로 마틸데의 목소리였다. 나는 곧 안정을 되찾았지만 완전히 울음을 그친 후에도 게속 그대로 위안을 받으며 누워 있었다. 이러한 친절이 너무 다정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것을 즐겼고 그럴 자경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 마침내 나는 그녀의 흐트러진 얼굴에서 어머니의 특징을 재구성해내려 애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그 부인이 누구였어요?”

“아”, 마틸데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는데 그 한숨이 내게는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어느 불쌍한 여자란다. 얘야, 어느 불쌍한 여자야.”

그날 아침 나는 몇 사람의 하인이 방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떠나는구나라고 나는 생각했고 이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버지도 아마 그럴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무엇이 아버지를 움직여서 그날 저녁 후에도 여전히 우르네클로스터에 머물도록 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는 떠나지 않고 그 후로도 8주인가 9주를 그 집에 머물면서 그 집이 주는 기이한 억누름을 참아내었다. 우리는 세 번 더 크리스티네 브라에를 보았다.

당시 나는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가 아주 오래 전에 두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것과 그때 태어난 사내 아이가 자라서 두렵고 끔찍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죽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열적이면서 매사에 논리적인 것과 분명함을 추구하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이 사건을 견뎌내려 생각했던 것일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아버지가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고, 역시 왜 그랬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굴격 자신을 억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우리가 크리스티네 브라에를 마지막으로 본 때였다. 이번에는 마틸데도 식탁에 자리해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우리가 도착한 뒤의 며칠 동안처럼 그녀는 쉬지 않고 아무 연관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하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 안에 자리잡은 무언가 육체적인 불안 때문인지 끊임없이 머리며 매무새를 매만졌다. 이것은 그녀가 예기치 않게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서는 뛰쳐나가버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순간 내 시선은 나도 모르게 그 문을 향했다. 정말로 거기에 크리스티네 브라에가 나타났다. 옆 자리의 소령은 짧고 격하게 몸서리를 쳤는데 그것은 내 몸까지 전달되어왔다. 그러나 그는 몸을 일으킬 힘은 더 이상 없는 듯했다. 그는 늙고 반점이 난 갈색 얼굴을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돌렸는데, 입은 벌어져 있었고 혀는 썩은 이빨 뒤에서 뒤틀려 있었다. 갑자기 그의 얼굴이 사라졌는가 싶더니 어느새 식탁 위에 희끗한 머리가 놓여 있었다. 팔은 토막이라도 난 듯 아래로 늘어져 있었고, 어디선가 시들고 반점투성이의 손 하나가 삐져나와 떨고 있었다.

크리스티네 브라에는 단지 늙은 개의 신음 같은 소리가 울릴 따름인 말할 수 없는 적막 속을 병자처럼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걸어서 지나갔다. 그때 수선화가 가득 꽂혀 있는 커다란 백조 모양의 은꽃병 옆으로 외할아버지의 커다란 가면 같은 얼굴이 암울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외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향해 자신의 포도주잔을 들어올렸다. 나는 크리스티네 브라에가 막 아버지의 의자 뒤를 지나가고 있을 때 아버지가 술잔을 잡고 아주 무거운 것이라도 되는 듯 식탁에서 한 뼘쯤 들어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밤에 우리는 바로 출발했다.
그렇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무언가 해야 한다. 이러한 불안한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지금까지 지나쳐버린 일을 되잡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설령 그가 그 일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다른 사람이라고는 없다. 그래서 이 젊고 보잘것없는 외국인인 브리게가 5층 꼭대기에 앉아서 밤낮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말테의 수기 (3)

··· 릴케


국립 도서관에서

나는 앉아서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도서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책에 몰두해 있다. 이따금씩 책장을 넘기느라 움직이는 것이 마치 잠자면서 꿈과 꿈 사이에 뒤척이는 사람들 같다. 아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사람들은 왜 언제나 이렇지 못할까? 어떤 사람한테 다가가 가만히 건드려 보라. 그 사람은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일어나다가 옆에 앉은 사람을 조금 건드려서 사과를 한다면 그는 당신의 목소리가 울린 쪽으로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그의 얼굴은 비록 당신을 향하고 있지만 당신을 보고 있지는 않고 그의 머리카락은 잠자고 있는 사람의 머리카락 같은 것이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는 여기 앉아서 한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운명인가. 도서관에서 지금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대충 삼백 명 정도가 된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시인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그들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삼백 명의 시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초라한 이인 내가, 외국인인 내가 어떤 운명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보라. 나는 시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 비록 가난하고, 매일 입고 다니는 옷은 한두 군데 해지기 시작하고, 내 신발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내 옷의 칼라는 깨끗하다. 속옷도 그렇다. 지금 이대로 큰 번화가의 아무 제과점에라도 들어가 이 손을 거리낌없이 과자접시에 내밀어 하나를 집어들 수도 있다. 그래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고 욕하거나 내쫓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 손은 좋은 가문 출신인데다가 매일 네다섯 번씩 씻고 있기 때문이다. 손톱 밑에는 때도 끼지 않았고 글을 쓰는 손가락에 잉크가 묻어 있지도 않다. 특히 손목이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거기까지 닦지는 않는다. 이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들은 깨끗한 내 손에서 무언가 추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도 한다. 가게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나 예를 들어 생 미셸 거리나 라신 거리에는 그런 것에 속지 않고 내 손목을 비웃는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고는 그것을 알아버린다. 사실은 내가 자신들과 같은 무리인데 약간의 희극을 연출하고 있을 따름임을 아는 것이다. 지금은 카니발 기간이어서 그들은 나의 즐거움을 망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히죽 웃으며 눈을 꿈벅이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밖의 사람들은 나를 신사처럼 대해준다. 게다가 그들은 누군가 옆에 있기라도 하면 하인처럼 굽실거린다. 내가 마치 모피옷을 입고 뒤에는 전용 마차가 따라오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 대해준다. 가끔 나는 그들에게 동전 두 닢을 주곤 하는데 그럴 때면 그들이 거절하면 어쩔까 하는 걱정으로 손이 떨린다. 그러나 그들은 동전을 받아준다. 그들이 다시금 히죽 웃거나 눈을 꿈벅이지만 않아준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텐데. 그들은 누구일까? 내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무엇을 보고 그들은 나를 알아보았을까? 내 수염이 약간은 손질이 안 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내 수염이 아주 조금은, 내게 언제나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그들의 병들고 노쇠하고 바랜 수염을 상기시켜주기는 한다. 그렇지만 수염을 그냥 내버려둘 권리도 내게는 없단 말인가? 일에 바쁜 많은 이들은 수염 손질을 등한시 하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아무도 바로 그들이 내던져진 자들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들은 거지일 뿐 아니라 내던져진 자들임이 분명하다. 아니, 원래는 거지가 아니다. 그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운명이 뱉어버린 인간의 찌꺼기이며 껍질이다. 그들은 운명의 침에 흥건히 젖어 벽과 가로등과 광고탑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아니면 어둡고 지저분한 흔적을 남기며 골목길을 천천히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노파는, 단추 몇 개와 바늘이 굴러다니는 침실 탁자의 서랍을 들고 어느 움막에서 기어나온 듯한 이 노파는 대체 내게 무엇을 원했던 걸까? 왜 그녀는 계속 내 곁에 붙어 따라오면서 나를 관찰한 것일까? 짓무른 눈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아내려 애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눈은 불그스레한 눈꺼풀에 병자가 뱉어놓은 녹색의 가래가 엉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어떻게 해서 그때 그 머리가 허연 작은 여인은 십오 분 동안이나 진열장 앞의 내 곁에 서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녀는 꼭 쥔 지저분한 두 손에서 아주 천천히 삐져나오던 그 기다란 낡은 연필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진열된 물건을 보면서 짐짓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행동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그녀를 보았고, 알아차렸으면,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필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어떤 신호라는 것을,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사람끼리의 신호이자 내던져진 자들만이 알고 있는 신호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어디론가 가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녀가 암시하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정말 무슨 사전 약속이 있으며, 이 신호는 미리 정해진 것이고 이 장면도 사실은 내가 기대했던 것이라는 느낌을 계속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주일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비슷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날이란 하루도 없다. 저녁 무렵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한낮의 거리에서도 갑자기 작은 남자가 늙은 여인이 나타나서는 고개를 끄떡이고 내게 무엇인가를 내보이고는 모든 임무를 다했다는 듯 다시 사라져버리곤 한다. 언젠가는 그들이 내 방으로 찾아올 작정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분명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관리인에게 저지당하지 않도록 일을 꾸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도서관에서는 나는 당신들로부터 안전하다. 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려면 특별한 입장권이 있어야 한다. 이 입장권을 가졌다는 점에서 나는 당신들보다 우월하다.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는 조금은 두려워하며 거리를 지나온다. 그리고는 마침내 여기 유리문 앞에 이르러서는 마치 집에라도 온 듯 그 문을 열고는 다음 문으로 가서 내 입장권을 제시한다(당신들이 내게 물건을 내미는 것처럼 말이다. 단지 차이점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내가 하는 행동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책들에 둘러싸여 있게 된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당신들한테서 떨어져 나와 나는 여기 앉아 안심하고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당신들은 시인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는가? 베를렌을 아는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무 기억도 없다고? 그럴 것이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과 그 시인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들이 아무런 구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읽고 있는 시인은 다른 사람이다. 파리에 살고 있지 않은 아주 다른 사람이다. 산 속의 조용한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시는 마치 투명한 공기 속에서 울리는 종소리 같다. 그는 자신의 창문과 깊은 생각에 잠겨 사랑스럽고 쓸쓸한 먼 풍경을 투영하고 있는 책장의 유리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행복한 시인이다. 그는 바로 내가 정말로 되고 싶었던 그런 시인이다. 소녀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소녀들에 대해 그렇듯 많이 알고 싶다. 그는 몇백 년 전에 살았던 소녀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그녀들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 그는 그녀들의 이름을 소리내어 말한다. 그는 옛날식으로 둥글게 멋을 부린 늘씬한 활자로 가늘게 씌어진 나직한 그녀들의 이름과, 자기보다 나이가 든 친구들의 결혼 후의 이름, 그 속에 벌써 조금은 운명과 약간의 실망과 죽음이 함께 울리는 그런 이름들을 부른다. 아마도 그 시인의 마호가니 책상 서랍에는 빛바랜 그녀들의 편지며 일기책에서 떨어져 나온 낱장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생일이며 여름날의 파티, 생일날의 일이 적혀 있을 것이다. 또는 그의 침실 뒤쪽에 놓여 있는 불룩한 옷장 서랍 안에는 그 소녀들의 봄옷이 간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부활절에 처음으로 입어본 얼룩무늬 망사로 만든 새하얀 옷은 원래는 여름철의 것이나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으리라.

아아, 물려받은 집의 조용한 방에 앉아서 아주 고요하고 안정된 물건들에 둘러싸여 바깥의 화창한 연녹색 정원에서 갓 자라난 박새들이 처음으로 내는 울음소리와 멀리서 울리는 마을 시계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운명인가. 그렇게 앉아서 오후의 따뜻한 한 줄기 태양을 바라보고 과거의 소녀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시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 세상 어딘가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런 숨겨진 시골집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도 그런 시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 하나면, 지붕 밑의 밝은 방이면 내게는 충분하다. 그곳에서 오래된 내 물건들과 가족사진과 책과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안락의자 하나와 꽃과 개, 그리고 돌길을 걸을 때 필요한 지팡이를 하나 갖고 싶다. 그 밖에는 더 필요한 게 없다. 다만 누런 상아빛 가죽으로 장정을 하고 꽃무늬를 새긴 공책 한 권이면 족하다. 거기에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나는 많은 생각과 많은 이들에 대한 추억을 지니고 있기에 거기에 그 모든 것을 써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와는 다르게 되어버렸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의 옛 가구들은 맡겨둔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고 나 자신은 세상이 몸뚱이 하나 가릴 집도 없다. 비가 내 눈 속으로 들이친다.

나는 때때로 센 강변의 작은 상점들 옆을 지나간다. 골동품 가게나 작은 고서점, 동판화 가게의 진열장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가 그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겉보기에 장사하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그들은 그렇게 앉아서 아무 근심 없이 무엇인가를 읽고 있다. 내일은 걱정하지도 않으며 성공하려고 초조해하지도 않는다. 그들 앞에는 기분 좋게 발을 뻗고 앉아 있는 개나 적막을 더욱 커다랗게 만드는 고양이가 한 마리쯤 있다. 고양이는 마치 책표지의 이름을 지우기라도 하는 듯 늘어선 책들을 따라 미끄러져간다.

아아, 이것으로 충분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때때로 이처럼 물건으로 가득 찬 진열장이 있는 가게나 하나 사서 개와 함께 한 이십 년쯤 앉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나면 좀 낫다. 다시 한 번 해 본다. “아무 일도 아니야.” 이러면 좀 도움이 될까?

난로에서 다시 연기가 나서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런 것쯤은 사실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다. 몹시 피곤하고 감기 기운이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다. 하루 종일 골목을 싸돌아다닌 것은 순전히 내 책임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앉아 있었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몸을 녹이러 들어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벨벳을 씌운 긴 의자에 앉아서 난방 장치의 격자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다. 그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그들의 발은 마치 벗어놓은 장화 같았다. 그들은 매우 겸손한 사람들로 주렁주렁 훈장을 단 검은 제복을 입은 관리인이 눈감아주기라도 하면 아주 고마워한다. 그러나 내가 들어서면 그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눈을 찌푸리고 살짝 고개를 끄떡인다. 내가 그림 앞을 이리저리 옮겨갈 때도 그들은 계속 나를 눈으로 뒤쫓는다. 탁하고 무른 눈으로 나를 지켜본다. 그러니 루브르 박물관에 가지 않기를 잘했다.

나는 계속 돌아다녔다. 얼마나 많은 시가지와 동네, 묘지, 다리, 골목을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어디에선가 나는 채소 수레를 밀고 가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꽃양배추우, 꽃양배추우”라고 외쳤는데, “우” 발음을 할 때 아주 독특하게 탁한 소리를 냈다. 그 남자 옆에는 몹시 뚱뚱하고 추한 여인이 걸어가면서 이따금씩 그를 쿡쿡 찔렀다. 여자가 찌를 때마다 그 남자는 외치는 것이었다. 때로는 혼자 알아서 외치기도 했는데 그래봐야 소용이 없었다. 물건을 사줄 만한 집 앞에 다다랐기 때문에 곧바로 다시 외쳐야 했다. 그 남자가 장님이라고 내가 말했던가? 아니라고? 그는 장님이었다. 그는 장님이었고 그리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만 말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남자가 밀고 가는 수레를 빼먹고 말하는 것이 되고, 꽃양배추라고 외치는 말을 내가 못 알아들은 듯 말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일일까? 설사 그게 중요하다 해도 그 일 전체가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가 문제되는 게 아닐까? 나는 늙은 남자를 보았는데 그는 장님이었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것을 나는 보았다. 내가 본 것은 그것이다.

그런 집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을까? 아니,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할 것이다. 이버네는 아무것도 빼지 않고, 더 보태지도 않은 사실 그대로다. 내가 어디서 보탤 것을 가져올 수 있겠는가.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그것을 다들 알고 있다. 집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더 이상 그 자리에는 없는 집이라고 해야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부서진 집 말이다. 아직 거기 남아 있는 것은 이 부서진 집 옆에 서 있던 다른 집, 이웃의 높은 건물들뿐이었다. 한쪽 측면을 모두 부숴버렸기 때문에 그 집들은 무너질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무너진 집의 바닥과 겉으로 드러난 이웃 건물의 외벽 사이에 타르를 칠한 긴 돛대 간은 기둥들을 비스듬히 걸쳐놓은 게 보였다. 내가 벽을 말하고 있다고 앞에서 이미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아직 남아 있는 이웃집의 맨 앞쪽 벽이 아니라(그렇게들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서진 집의 마지막 벽이다. 그 벽의 안쪽이 들여다보였다. 여러 층마다 아직 벽지가 붙어 있는 방 안의 벽이 들여다보였고 여기저기 천장과 방바닥의 이음새가 보였다. 이 방의 벽 옆으로 전체 외벽을 따라 지저분하고 희끗희끗한 공간이 남아 있었는데, 그 사이로 화장실의 녹슨 하수관이 벌레가 기어가거나 창자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모양으로 말할 수 없이 역겹게 뻗어 있었다. 전등에 연결된 가스가 지나갔던 자리로 찬장 가장자리에 뿌옇게 먼지 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흔적은 여기저기 예기치 못한 곳에서 휘어져서는 색칠한 벽 사이, 시커멓게 무참히 뚫린 구멍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나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벽 그 자체였다. 이 방들 속에서의 끈질긴 삶은 밟혀 없어지지 않았다. 삶은 아직 거기 남아 있었다. 삶은 아직도 박혀 있는 못에 매달려 있었고, 손바닥 넓이만큼 남은 방바닥에 붙어 있었고, 아직도 조금은 내부 모습이 남아 있는 방 모서리 틈새에 숨어 들어가 있었다. 이 삶은 또한 서서히 매년 변해간 색깔 속에도 들어 있었다. 푸른색이 우중충한 녹색으로, 녹색이 회색으로, 누런색이 낡고 퇴색한 흰색으로 변색되며 썩어가는 색깔 속에도 있었다. 그러나 삶은 또한 거울이나 그림, 장롱 뒤의 빛이 덜 바랜 부분에도 남아 있었다. 삶은 거기에다 그 물건들의 윤곽을 새기고 덧붙여놓고 이 숨겨진 곳에서 거미와 먼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제 그 부분이 밖으로 드러났다. 긁혀서 생긴 줄무늬에도, 벽지 아래 부분, 습기가 차서 부풀어오른 곳에도 삶은 있었다. 삶은 찢어진 조각에 붙어 나부끼고 있었고, 오래 전에 생긴 더러운 얼룩들에서도 배어나왔다. 무너진 칸막이 벽의 파편으로 둘러싸여 있는 푸르고, 녹색이며 누르스름한 색이었던 이 벽들에서는 삶의 공기가, 어떤 바람도 흩트려놓을 수 없었던 질기고 무거우며 곰팡내 나는 공기가 뿜어 나왔다. 그 속에는 한낮과 질병들, 내뱉은 입김과 여러 해 동안 쌓인 연기, 겨드랑이 밑에서 나와 옷을 축축이 적시는 땀, 입냄새, 썩어가는 발에서 나는 고린내가 들어 있었다. 또한 아주 강한 오줌 지린내와 그을음이 타는 냄새, 감자요리에서 나오는 뿌연 김, 변해가는 식용유의 미끈둥한 악취가 스며 있었다. 거기에는 내팽개쳐둔 젖먹이에게서 나는 달콤하고 긴 여운이 남는 냄새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불안의 냄새, 사춘기 사내애들의 침대에서 나는 끈적한 냄새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이 여기에 섞여들었다. 저 아래 골목 바닥에서 증발해 올라오는 냄새와 깨끗하지 못한 도시의 상공에서 빗물에 녹아 내려오는 냄새들이 섞였다. 언제나 같은 골목에 머물러 있도록 길들여진 약한 바람이 또한 많은 것을 날라왔고 그 밖에도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냄새들도 있었다.

마지막 것만 남겨놓고 다른 모든 벽들은 남김없이 부서졌다고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 마지막 벽에 대해 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맹세컨대 그 벽을 알아보자마자 나는 뛰기 시작했다. 그 벽을 알아본 것은 참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이 바로 내 안으로 들어와 내 안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 모든 일을 겪고 나는 지쳐버렸다. 기진맥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남자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던 것은 내게는 너무 가혹했다. 그 남자는 내가 계란 프라이를 먹으러 들어간 자그만 간이식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계란 프라이가 나오기도 전에 나는 거리로 뛰쳐나왔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빽빽한 물결이 내게로 밀려왔다. 카니발 저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시간이 넉넉해서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서로들 부대끼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가설 무대에서 비치는 빛을 받아 환했고, 벌어진 상처에서 고름이 흘러나오듯 웃음소리가 입에서 솟아나왔다. 내가 점점 초조해져서 앞으로 뚫고 나가려 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웃음을 터뜨렸고 더 빽빽하게 밀려들었다. 어쩌다가 한 여인의 숄이 내 옷에 걸렸다. 나는 그것을 질질 끌고 다닌 모양이었는지 사람들이 나를 붙들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웃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내 눈에다 콩페티를 한 주먹 던졌다. 마치 채찍으로 한 대 맞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거리 모퉁이는 온통 밀려드는 사람들로 꽉 막혀버렸다.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마치 선 채로 성교를 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미친 사람처럼 찻길가의 사람들 사이로 달려갔는데 사실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내가 가만히 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조금도 변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눈을 들어보니 여전히 한쪽에는 똑같은 집들이, 다른 쪽에는 가설 무대가 보였다. 아마도 모든 것이 꼼짝 않고 서 있는데 단지 나와 사람들 머리 속에서 현기증을 느껴서 모든 것이 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걸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내 피 속에 무언가 너무 커다란 것이 들어 있어서 혈관을 잡아늘이며 돌아다니는 것처럼,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동시에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공기가 바닥이 나서 이제는 내 폐가 뿜어낸 공기를 다시 들이미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견뎌낸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방의 등불 앞에 앉아 있다. 조금 춥다. 하지만 난로를 다시 피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난로에서 연기가 나서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어쩔 것인가? 나는 앉아서, 생각한다. 내가 가난하지만 않다면 전에 살던 사람들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고, 이처럼 낡아빠진 가구가 있는 방이 아닌 다른 방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처음에는 머리를 이 안락의자에 기대기가 참말이지 아주 힘들었다. 의자의 녹색 커버에는 누구의 머리든 다 들어맞을 것 같은, 기름에 전 잿빛의 움푹 파인 홈이 나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의자에 기댈 때면 머리 밑에 손수건을 놓는 조심성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제 너무 지쳤다. 그냥 앉아보니 그런대로 괜찮고 약간 들어간 부분이 마치 자로 잰 듯 내 뒷머리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내가 가난하지 않다면 무엇보다도 좋은 난로를 사고 싶다. 그리고 산간 지방에서 가져온 순수하고 화력이 좋은 장작을 쓸 것이다. 이 한심한 조개탄 같은 것은 절대 쓰지 않을 것이다. 조개탄이 뿜어대는 연기는 숨 막히고 머리를 아주 어지럽게 만든다. 다음으로는 거친 소리를 내지 않으며 난로를 치우고, 내가 필요한 만큼 불을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십오 분 동안이나 난로 앞에 꾸부리고 앉아서 들쑤석거리고 있다 보면, 가까이 있는 불기에 이마의 피부가 당겨지고 열기가 눈으로 들어와서 하루 종일 써야 할 힘을 온통 소진시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면 바로 지쳐버린다. 너무 혼잡할 때면 나는 가끔 마차를 불러 타고 그 옆을 지나갈 것이다. 나는 매일 뒤발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리라······ 더 이상 간이식당으로 기어들어가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그 남자가 뒤발에 가본 적이 있을까? 아니겠지. 그런 곳에서 그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들여보내지는 않으니까.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나는 지금 내 방에 앉아 있다. 그러니 조용히 내가 겪은 일을 잘 생각해볼 수가 있다. 아무것도 불분명하게 놔두지 않는 게 좋다.

간이식당 안으로 들어섰을 때 처음에는 내가 자주 앉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자그만 조리대 쪽에 인사를 하고 주문을 한 다음 옆자리에 앉았다. 그때 나는 그 남자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그의 존재를 느꼈다. 바로 그가 꼼짝달싹하지 않고 있음을 나는 느낀 것이다. 그 의미를 나는 대번에 알아차렸다. 우리들 사이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나는 그가 놀라움 때문에 굳어버렸음을 알았다. 몸 안에서 일어난 무엇인가에 깜짝 놀라 그의 온몸이 마비된 것을 알았다. 아마도 혈관이 터졌거나 오랫동안 두려워하던 독이 이제 막 심장에 이르렀거나, 세계를 변화시키는 태양과 같은 커다란 종기가 그의 뇌 속에서 부풀어오른 것 같았다. 그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말할 수 없이 힘든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모든 것이 단지 내 상상에 불과하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벌떡 일어나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그는 두꺼운 검정색 외투를 입고 긴장한 잿빛 얼굴을 모직 목도리 깊숙이 파묻고 앉아 있었다. 그의 입은 마치 커다란 힘에 눌린 듯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이 아직도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지는 말하기 어려웠다. 눈에는 김이 서린 회색 안경이 걸쳐 있고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콧방울은 잔뜩 부풀어 있었고 푹 꺼진 관자놀이 위의 기다란 머리카락은 무더우 l 속에서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귀는 길고 누르스름했으며 뒤에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렇다, 그 남자는 이제 자신이 지금 모든 것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뿐만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순간만 지나면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이 식탁, 이 찻잔 그리고 그가 꽉 붙들고 있는 이 의자, 모든 일상의 것들과그렇게도 가까운 것들이 이해할 수 없게 되고 낯설게 되고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듯 그 남자는 거기 앉아서 그런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아직 저항을 하고 있다. 나를 괴롭히는 이들이 나를 놓아준다고 해도, 나를 괴롭히는 이들이 나를 놓아준다고 해도, 나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으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저항하고 있다.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그렇지만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떼어놓기 시작하는 무엇인가가 내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이 이미 아무도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얼마나 섬뜩했던가. 그러면 내게는 고독한 얼굴이 떠올랐다. 베개에서 얼굴을 들어올려 무언가 친숙한 것을, 어디선가 한 번이라도 본 듯한 것을 찾아보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고독한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내 공포가 이렇게 크지만 않다면 모든 것을 다르게 보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그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자신을 위로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렵다. 이 변화가 말할 수 없이 두렵다. 멋지게 보이는 이 세상에 나는 아직 전혀 익숙해지지도 못했지 않은가. 그러니 다른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마음에 드는 의미들 사이에 나는 기꺼이 머물고 싶다. 만일 무언가 정히 변해야만 한다면 적어도 개들 사이에서라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친숙한 세계와 지금과 같은 물건이 있는 개들 사이에서라도 말이다.

아직 한동안은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손이 나에게서 멀어져서 내가 무언가를 쓰려고 하면 생각지도 않은 다른 말을 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석의 시대가 도래하여 말과 말 사이의 연결이 없어지고, 모든 의미는 구름처럼 흩어지고 물처럼 흘러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공포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위대한 것 앞에 서 있는 사람과 같은 심정을 느낀다. 전에도 종종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이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쓰는 게 아니다. 내가 씌어질 것이다. 나는 변화해가는 인상이다. 아아, 아직 조금 모자란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인정할 수 있을 텐데. 단지 한 발짝만 옮기면 나의 이 깊은 비참함이 지극한 기쁨이 될 텐데. 그러나 그 발걸음을 내딛을 수가 없다. 나는 무너졌고 더 이상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나는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어디선가에서 도움의 손길이 뻗어오리라 믿어왔다. 여기 내 앞에 내 손으로 쓴 기도의 말이, 내가 매일 밤마다 드린 기도의 말이 놓여 있다. 그것을 나는 여러 책에서 찾아내어 옮겨놓았다. 늘 내 옆에 두고, 내가 직접 쓴 내 말인 것처럼 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나는 이 문구들을 다시 한 번 옮겨 적어야겠다. 여기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옮겨 적으련다. 그렇게 하면 읽을 때보다 더 오래 음미할 수 있고, 다너 하나하나가 더 오래 지속되며, 사라지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리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에게 불만스럽고 내 자신에게도 불만스럽지만 나는 밤의 정적과 고독 속에서 나를 되찾고 조금이나마 기운을 얻으려 한다. 내가 사랑했던 이들의 영혼이여, 내가 노래했던 이들의 영혼이여, 나를 도와주고 내게 힘을 주오. 세상의 온갖 거짓과 나쁜 악취로부터 나를 지켜주오. 그리고 나의 주, 나의 신이여! 내가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인간이 아니며,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더 보잘것없는 인간이 아님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줄 아름다운 시 몇 줄을 쓸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소서.”

“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멸시받는 자의 자식으로 나라에서 가장 천한 자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들의 노래가 되었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 그들은 나의 앞에 저승길을 터놓았다.

······ 그들이 나를 망치기란 너무도 쉬워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았다.

······ 이제 나의 넋은 모두 쏟아졌고 괴로운 나날이 나를 사로잡았다.

밤이면 도려내듯이 내 뼈를 쑤셔대는데 나를 쫓는 자는 쉬지를 않는다.

내 질병의 힘은 커서, 옷은 더러워지고 속옷의 깃처럼 몸에 꼭 달라붙는다······

내 창자는 끓어올라 쉴 줄 모르고 환난의 날은 나를 엄습했나니······

내 비파는 탄식의 소리가 되었고, 내 피리는 통곡의 소리로 변했구나.”

 

출처 영혼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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