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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화 시론
2022년 10월 11일 13시 35분  조회:620  추천:0  작성자: 강려
<시론>
        전율, 그 감동의 이중적 거리
       -김규화 시인의 소통의 도구와 통로
                                         엄창섭(관동대 교수, 국제펜클럽한국본부고문)


         1. 삶의 구조와 빛나는 서정의 지평


  견고한 고독의 김현승 시인에 의해 1963년 <죽음의 서장>과 1964년 <無爲>, 그리고 1966년 <無心>이 『現代文學』에 추천됨으로써 우리 문단에 공인된 김규화는 1940년 2월, 전남 승주의 출신이다. 1960년대 초부터 「燈문학」, 「零度」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7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 땅의 ‘현대시의 길닦이·길잡기·길트기’를 이끄는 월간 『詩文學』의 발행인이다. 일찍이 첫 시집의 서문에서 구상이 ‘드라이 와인의 맛처럼 건조하다.’라고 그의 시를 지적한 것은, 세류의 시편들에 견주어 시인의 삶이나 세상에 놓여 진 갖가지 사물에 대한 인식의 독자적 진실과 정직성, 그리고 사회현상의 변이에 까닭 없이 분노하거나 거역하지 않으면서도 묵언의 교시를 추구한 시인의 품격(品格)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첫 시집 출간 직후부터 “그를 향해 흘리는/ 물 같은 애정/ 그를 향해 쏟는 향그런 미움(이상한 기도)”의 발성으로 따뜻한 정신기후를 조성하며 인간소외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열중한 김규화 시인의 시작 행위는 눈물겨웠다. 그 자신의 시편에 풀어낸 ‘삶의 구조와 빛나는 서정의 지평’은 “수억 년 우주 안에서 보니/ 인연 중의 인연이라,// 하느님이 내려다보시니/ 좋으시다(因緣)”라는 시적 상상력의 확대는 서정적 시학에서 연유한다. 까닭에 모두(冒頭)에서 전제할 사항이라면 그만의 상상과 추상에 의한 내면인식에 침잠되어 빛나는 시적 치유를 위한 고뇌야말로 갈증의 시혼(詩魂)을 적셔주는 감동의 회복이기에 엄숙한 생명외경과 결부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랜 날의 탐색과 각고의 노력으로 카타르시스를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그만의 개아적인 느낌, 색깔, 체취가 선명한 시적 형상화에 관해 ‘공간과 시각, 그리고 시적 기교성’을 해체하고 재창조하는 집념은 의미 있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모름지기 음울한 이기주의로 순수성이 매도되어 미적주권을 확립하기 힘겨운 혼돈(카오스)의 시간대에서도 김규화 시인은 절대 고독 앞에서도 삶의 순간을 ‘푸른 식물성 언어를 사용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갈등·구조 속에서 소통의 도구로 교신하는 그 나름의 비법을 터득하고 있다.

새삼스런 지론은 아니지만, 김규화 시인은 ‘생명의 기호로 공간을 미학적으로 장식하는 시적 기법’에 뛰어난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존재이다. 삶의 일상에서 그 자신이 틈틈이 정신적 부산물을 형상화한 시편들은 보다 엄격하게 유의미한 것으로 적확, 격렬, 구체적, 복합적일 뿐 아니라, 리듬과 형태의 표징을 기호화하고 있다. 특히 그의 시편에 수용된 정직성은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는 비법과 접목되어 그만의 저력과 독자의 관심을 끄는 역동성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의 생생한 일탈의 정신은 예술적인 질감과 터치의 대비로 수용된 시적 인자(因子)로 감성에서 배어나온 애련(哀憐)의 눈물이기에 신선한 감동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단, <김규화의 시세계 평설>을 통해 “일상의 관찰과 실존적 언어(김시태), 단절과 혼돈의 세계(김열규), 혼의 깊이, ‘안 보이는 나라’로의 여행길(홍신선), 존재의 심연 그 시간성과 공간성의 조응(이상옥), ‘無明을 밝히는 등불의 미학(신규호)” 등으로 다양하게 논의된 시적 이론에 접근할 수 있다.


   시집가는/ 죽음은// 곱기도 하지/ 꽃은/ 말라서// 채혈(採血)환자같이/ 부르르 떨고//
                -<꽃상여>에서


  여기서 생명의 모형이며 총합인 본래적인 본향(本鄕)의 개념은, “여위어 가는 눈짓들에/ 다시금 불을 지피는/ 상큿한 머언 고향의 내음새(가을의 햇볕에서)”를 통해 인식되는 자연회귀와 연계된 영원한 모성에서 비롯된 깊은 애정의 드러남에 의한 행복한 공간이다. 일상의 소재를 보편적 정서에 담아 형상화 시킨 김규화 시인은 이처럼 ‘죽음’을 삶의 새로운 이행인 ‘시집’으로, ‘상여’에 식물성의 극치인 ‘꽃’을 접목시킨 ‘꽃상여’로 그만의 시적 매력을 이채롭게 빚어내고 있다. 까닭에 그의 시혼은 너무 맑고 투명하게 빛나 항상 칙칙함에서 빗겨나 있다. 그의 서정적 미감이 가을 햇빛을 메타포 한 <가을 햇볕>에서도 ‘바알간 등불’로 인식되고 급기야는 ‘나의 하느님’으로 변형되어 한 순간 빛을 토해내기도 한다. 


   북극의 빙산을 쪼아서 만든/ 자잘한 얼음칼이다// 허공을 가르며 내려오는/ 따끈한 전열(電熱)이다// 건물에 부딪쳐 깨어지는/ 다이아몬드 속살이다// 땅위에 내려앉아 포르락  거리는/ 한 무리의 참새 떼다// 곱게 물든 단풍잎 갓을 단/ 바알간 등불이다// 고개를 치켜들고 맞이하는/ 단풍잎 사이 나의 하느님이다//
          -<가을 햇볕> 전문


서정시 쓰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간대에 한국현대시사에서 ‘가장 표준적인 서정시의 텍스트’가 되는 김규화 시인의 시집 『평균서정』(시문학사, 1992)은 혹자의 지적처럼 장정(裝幀)도 컬러풀하지만, "맑은 것 차가운 것들을 통해서 감각의 깊이 혹은 혼의 깊이를 더하려 한 가을 시편과 마찬가지로 김규화의 마음의 움직임은 이미 그 안 보이는 나라로의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대상화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앞서 말한 이야기 시들을 통하여 이웃까지 대상화되고 있기에."라는 홍신선의 ‘시상을 자르고 토막내고 확대한 적확한 시평’은 가희 가편(佳篇)이다.
  이 같은 시적 상황의 실제적인 해석으로 따뜻한 영혼을 지닌 사제로서 다정다감한 김규화 시인에 대한 시정신과 작품에 대한 분할과 통합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어두운 삶의 질곡 속에서도 가시적인 모든 물상이 끝내 소멸되지만 창의적인 예술가는 그의 이전 작품에 결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전통의 실타래를 다시 꼬아내면서 계속해서 다음 작품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을 부단한 몸짓으로 우리 앞에 명증해 보이는 성실함을 ‘감춤과 미끄러짐의 시학'이라는 담론을 통해 교시하고 있다. 모름지기 우리는 구조적으로 암울한 사회현상에서 존재의 가벼움을 체험해 왔다. 그러나 자명한 것은, 미래의 21세기를 구축하는 힘은, 예술문화에 대한 안목의 확장이며 시적 상상력의 자유로움이기에 거부할 까닭이 없다. 따라서 김규화 시인은 『관념여행』의 자서(自序) 격인 <책머리에>서 “나의 이런 의식은 안으로 둥지를 틀고 관념의 알을 낳는다. 나의 시는 주로 의식의 넓은 바다에 빠져버린 그 무엇을 찾는 작업이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 점에 비추어 시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밝은 그 자신이 ‘의식의 바다에 침몰하는 시’라는 부제는 그만의 체취와 느낌을 물씬 풍겨주어 이채로운 착각을 불러오기도 한다.


      철책문은 오늘도 열리지 않고/ 나를 구경하러 온 사람도 없다/ 나는 더욱 더 심심하여지고/ 얻어먹을 과자는 한 톨도 없구나//
              ―<기(氣)>에서


  특히 김규화 시인은 “조련사가 나의 힘을 조금 빼 버리고/ 나의 목젖도 수술해 버렸다./ 단지 나는 땅에다 배를 대고/ 날마다 졸리는 눈 감고 있다(기(氣)”를 통해 아직은 격리되고 닫혀 진 삶의 일상에서 졸리는 눈 감고 있는 현상에서 문득 기(氣)를 연상하고 발현시킨다. 때문에 정종진의 지적처럼 그에게 있어 시의 정체성(identity)은 “기가 응축되는 그릇”이거나 “절망 속에서 키운 꽃이고 열매”로 선명하게 밝혀지는 것들이다. 한편, 홍신선이 김규화 시인의 작품세계를 <혼의 깊이, 안 보이는 나라‘로의 여행길>로 해석하며, 전통적인 서정시만으로는 독자나 시인 모두가 성에 만족해하지 않는 것으로 거론하고 있다. 이점에 견주어 황동규의 극서정시, 일부 민중 시인들의 서정서사시, 서술시 등은 모두 이 같은 추세의 텍스트적인 모형에 해당한다. 물론『평균 서정』에 수록된 몇 편의 이야기 시편들은 평균인들에 관한 일종의 사적인 기록물이면서 이들이 생산한 우리사회의 결과물임은 수긍해야 할 타당성이 따른다.
  여기서 안철수의 기술을 빌리면 ‘의식의 바다를 항해하는’ 김규화 시인의 경우, 또 비록 시 선집에서는 제외된 또 다른 그의 시 “사는 것은 흙을 파는 것/ 죽는 것은 까마귀가 우는 것(죽음의 서장)”에서나 불교의 중도론 적인 관점에서 형상화 시킨 “나, 여기서/ 사소한 일로/ 기뻐도 슬퍼도/ 당신에게 모르는 일//...생략.../ 우리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 되는 것이다(永劫論)”를 통해 시인의 자아가 자기성찰에 도달할 즈음, 자아를 통렬하게 괴롭히는 현실의 곤혹을 응시하는 모순과 갈등의 구조를 접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한 편의 시는 존재 내면의 증상(症狀)이기에 사회학·심리학·음악학 등에 비판이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미학의 발전을 역사진화와 진리추구의 중요 요소로 역설한 아도르노(Adorno, Theodor Wiesengrund)는 서정시의 죽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질과는 상이하게도 양적 진화라는 측면에서 지금도 여전히 시의 모태(母胎)인 서정시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서정성은 시의 본질적인 인자(因子)로서 인간의 내면의식의 심층에서 다행스럽게도 공명된 삶의 비의(秘意)를 함축해 왔다. 기실 김규화 시인은 세 번째 시집 『관념여행』의 자서에서 한 사람의 충직한 독자인 우리들은 그의 시작품에서 허무와 회의, 방황과 모순, 고통과 불안을, 그리고 그 자신과 그의 삶, 그리고 그를 에워싼 세계 등 단절과 혼돈의 사슬로 엮어진 세계에 대해 투명하고 깨끗한 생명적 기호로 노래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손톱에도 까만 활자를 묻혀 오고/ 손가락은 노상 오물거리고/ 손가락은 노상/ 완강한     집게가 되고/ 엉거주춤 구부린 둥그런 모습,/ 어둑한 그의 생애를/ 똑바로 보려고 기지     개를 켠다/ 세상은 이렇게 정직하여서/ 그래서 성공한 눈물이라며......//
               -<활자 노인>에서


  위의 시편 <활자 노인>에서 피상적으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소외계층의 한숨이 묻어나는 음울하고 눅눅한 일상적 삶의 고통이다. 그러나 한 순간의 격정을 갈아 앉히고 물안개에 가려진 사물의 실상, 즉 본체를 탐색하고 응시하면 비록 세월의 인고 속에서도 늙은 인쇄공이 자신의 천직을 강직한 자아 의지에서 비롯된 정직한 삶을 반추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김규화 시인은 모처럼 네 번째의 시집 『평균서정』에서 평균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따뜻한 감성적 시선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특히 김규화 시인에게 고향이란 “이미 저승으로 가신/ 아주 옛날 광주의 어머니들이/ 그 품을 크게 열어 놓고/ 젖가슴같이 구부러져 있는/ 그 품을 크게 열어 놓고/ 높은 봉우리 낮은 봉우리 없이/ 너희들도 평등하여라 하고(무등산)”에서 확인되듯 어머니의 풀어놓은 젖가슴같이 언제든 안기면 포근함과 넉넉함으로 감싸주는 곳, 파랗게 유년이 자라는 처소이다. 비록 생득적 체험의 공간인 고향은 시대 상황으로 인해 상실한 공간이지만, 의식 속에 항시 살아 있고 자리해 있다. 일반적으로 고향의 서정적 양감(量感)은, 바로 모태이면서 미래를 꿈꾸는 자연 공간임은 물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국의 소중함을 환기(喚起)시켜주는 생명적인 원형으로 풀이된다. 까닭에 오늘의 우리가 공감하는 고향 회귀의 상징성은, 증오나 이기심이 자리하지 않는 처소, 세상적인 고뇌와 갈등을 말끔히 치유시키는 모성으로의 동질성을 의미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멀어가는 가을』 시집의 자서를 통해 때로는 살 저미는 시인의 참담함과 통분에 공감할 것이다. “시를 쓰면 무엇 하나 또한 시집을 내면 무엇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십 세기를 누려오던 활자 매체가 그 영향력을 잃고 그 자리에 영상 매체가 들어서고 있다. 이제,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인간 정신의 기본 에너지가 소멸되고 반면에 미술, 음악, 무용, 영화 같은 시각 예술, 무대 공연 예술이 판을 치면서, 사고하는 정신활동이 인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 ...중략... 그런데도 나는 시집을 낸다. 이런 때일수록 더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각오와 함께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은 나의 시가 정서적 구원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이와 같이 김규화 시인의 묵시적 항변처럼 세상의 흐름에 동조하지 말고 부단히 내적 충만인 사유(思惟)를 통해 ‘전통의 실타래를 다시 꼬며, 출어를 위해 찢어진 그물코를 다시 깁는 치열한 시인의 혼 불’을 통해 소통의 도구인 생명의 기호로 미적 주권이 확립된 시 쓰기에 몰두하여야 한다. 2%의 염분이 오염된 바다를 정화시키듯 날 푸른 시 정신을 지니고 ‘극소수의 창조자’로서 한 사람의 병든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엄숙하게 시대적 소임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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