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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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문제로서의 김 문학
2010년 10월 09일 19시 10분  조회:5406  추천:37  작성자: 김광림

 

                                             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                                                       

                         광림의 보스턴통신9

 

              벌거숭이 김문학-<김문학 解體新書>(5)                 

 

                   7. 우리 모두의 문제로서의 문학

 

  지금까지 4회에 걸친 연재를 통하여 김 문학 저서의 대체적인 내용과 그런 저서들의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였고, 그런 과정에서 김 문학의 인간적인을 모습을 불가피하게 많이 드러냈다. 또 김 문학에 대한 비판과 지지가 어떻게 나왔는가 하는 점도 어느 정도 짚어봤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 국경을 넘나들면서 문필활동하는 김 문학의 모습에서 관찰되는 조선족 사회와 관계되는 문제들을 분석해보고 싶다.

  필자가 이 연재의 첫 시작에서 김 문학은 조선족의 국제화의 제일 상징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다고 적었는데 이 점은 확실하다. 1991년에 일본에 유학하고 대체 97년 경부터 일본에서 왕성한 문필활동을 하면서 일본, 한국, 중국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이 세나라에서 적지 않은 책들을 출판했다. 그런 문필활동 외에 어떤 사회적 공헌을 했는지 필자도 잘 모르나 문필활동을 통하여 동아시아 국경을 비교적 자유롭게 넘나들었다는 것은 김 문학의 인간적인 재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고, 중한일 3개국어를 알고 있다는 점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것이다. 김 문학이 중일한 3개국어를 구사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에서 문필활동을 한 것은 조선족 전체에 잠재하고 있는 언어적인 가능성, 국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김 문학은 조선족이 동아시아의 국제사회에서 어떤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런 면에서의 김 문학의 선구적인 역할은 존중받아야 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할 점이다.

  그리고 김 문학이 문필활동에서 보여주고 있는 장인정신, 또는 프로정신,   본인이 얘기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글로서 승부한다는 것인데 그 때문에 그는 항상 글쓰기에 精進해왔고, 지금까지 다수의 저서를  동아시아 삼

국에서 출판했고, 내용의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수량상에서는 조선족 지식인중에서 누구도 초과하기 힘들 정도의  수십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이 점에서는 김 문학이 필자도 포함하는 조선족 지식인, 특히는 문필활동을 하는 분들이 본받을 점이라고 솔직히 말하고 싶다. 김 문학의 문필활동에서의 장인정신 또는 프로정신은 일본문인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기도 한데 김 문학이 일본에 유학하면서 배운 점이라 생각하며 조선족 문인들도 이런 점은 일본에서 배우자고 말하고 싶다.  

  김 문학의 장점을 더 들어보면 이 연재의 김 문학은 누구인가」의 장에서 이미 언급하다싶이벌거숭이3국지-일중한삼국비교문화론,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신동양삼국비교문화론, 섬나라근성 대륙근성 반도근성동아시아비교문화론 몇권은 동아시아 삼국에 대한 비교문화론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특이한 존재로서 주목받는 면이 있고 일부 유명한 문화인들이 평가해주기도 한다.  꼭 엄밀한 의미의 학술저서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김 문학의 지금까지의 문필활동에서 긍적적인 평가를 받고 문화인으로 명성을 남길수 있는 것도 이런 부류의 책들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장점을 말하던 김에 한마디 더 하면 김 문학은 동아시아 삼국에서 책을 내면서 이런 나라들의 출판계와 두루 인연을 맺어왔고 상업성적, 또는 문화적인 저서들은 어떻게 출판을 기획하고 상품판매를 하는지 이런 노하우를 많이 익혔고, 동아시아 삼국의 출판계, 문화계를 이어놓을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은 김 문학의 인간적인 귀중한 재산이라 평가하고 싶. 

  조선족 전체와 관련하여 김 문학에게서 어떤 점이 더 보이는가?

  여러가지가 더 보이는데 수선 김 문학이 여지껏 제일 자랑하고 다닌 동아시아 삼국에 정통했다는 점에 오히려 맹점이 보이고 이것은 조선족 전체가 반성해보아야 할 점이다. 김 문학은 본인이 쓰는 동아시아비교문화론 또 기타 부류의 책들에서 중국, 한국, 일본의 문화는 거의 다 정통하다 싶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책들을 잘 살펴보면 김 문학이 오히려 일본외에는 한국과 중국을 제대로 모르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김 문학의 한국비판서  한국국민에 고한다!-일본거주 한국계중국인의 통곡의조국비판,또 다시 한국국민에게 고한다! -반일이라는 어리광을 그만닥치라》등 책이 진짜 한국을 잘 알고 썼다고 보기 정말 힘들다. 책 속의 내용을 보아도 김 문학의 한국체험이란 입국심사때 불유쾌했다거나, 택시를 탔는데 대하는 태도가 거치르더라거나 하는 자기체험은 극히 제한된 것이고 그 다음은 일본속에서 한국꼬집기를 한 글이거나 한국내에서 한국의 이런 점을 고쳐야된다고 하는 글, 또는 어두운 면을 지적한 글 등을 모아서 한국비판서로서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조선족출신 작가 김 재국이 쓴 한국은 없다》는 본인이 한국의 실제 체험에 근거하여 썼기에 리얼한 감이 있는데 김 문학의 한국비판서는 그런 리얼한 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비판을 한다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여기저기서 뼈껴다 취합했구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작 한국인들은 이런 책들을 보고 화도 나지만 조선족으로 한국을 너무 몰라서 그러는구나하여  진짜 한국인이 일본에서 이런 책을 쓰기보다 너그럽게 생각해주는 면이 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취합하기 전의 김 문학의 한국이해란 어떤 것일까? 런 면에서는 동세대의 다수의 조선족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중국에서 태어나서 오래동안  한국과 직접 접촉한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자라면서 조선족으로서 인식하는 조선이해, 중국의 남조선인식, 북조선의 남조선인식에서 월등히 벗어난 것이 없고 일본에 가서는 일본속의 긍정적인 한국론보다 소위 嫌韓론이라 불리우는 부정적인 한국론을 한국에 대한 지

식으로서 더 많이 접했을 수 있다. 일본에 있으면서 최근에는 한국에 자주 다닐 수 있으나 한국비판서들을 쓸 무렵에는 한국에 갈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실제적인 한국체험이 별로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비판서만이 아니라 한국문화론도 여기서 일일히 논거를 다 들 여유가 없는데 어떤 내용들을 보면 李 御寧선생의 한국문화론에서 차용한 것 같아 보인다. 상대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독창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 중국문화론은 어떤가? 김 문학의 중국문화론은 내용상에서 중국문화의 부정적인 또는 어두운 면을 많이 다루고 있다. 반문화 지향의 중국인》, ()의 중국인-일본인이 모르는 행동원리의 심층》이라는 제목

에서 나타나다싶이 김 문학의 중국문화론에서는 중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안 생긴다. 일중비교愚劣론-동아시아의 내분을「超克」하는 방법》에서는 이미 이 연재의 김 문학이 욕 먹는 이유의 장에서 언급했지만,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性善論적 인식에 가깝게, 중국,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는 거의 性惡論적 인식에 가깝게 비교했다. 간단히 구체 사례를 든다면, 김 문학의 일중비교愚劣론-동아시아의 내분을「超克」하는 방법》의 3 일중비교우렬론에서 정직한 일본인과 사기적인 중국인,자기반성적인 일본인과 남의 탓만 하는 중국인,중국의 반문명의 전통적체질,(중국의)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국민성,대륙적 호전성,(중국의) 自害 역사」등 분석을 보면 과연 김 문학이 중국문화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원래 사회의 어두움 면을 들어내기 좋아하니 그럴까 하기도 생각하나 일본에 대해서는 좋은 점만 많이 얘기하는 것을 보면 결국 그런 것도 아니다. 일본에서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중국을 싫어하는 보수적인 독자들을 상대로 책을 많이 파려는 商術적인 요소가 충분히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아무래도 중국문화의 깊이를 그리 잘 이해하고 있지 않는 것 같고 피상적인 면에서의 중국의 상대적으로 낙후한 모습을 중국문화로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인식에서는 4000년의 찬란한 문화대국의 모습도 나오지 않고 현대중국의 생기발랄한 문화도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

  김 문학에게서 보이는 이런 점은 결국 우리 조선족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라 생각된다. 연변같은 지역에서 조선어로 교육받은 사람은 조선어는 잘하나 상대적으로 중국어가 약 할때가 많고 중국문화의 깊이를 그렇게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한족지역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은 한어를 잘 하고 중국문화에 친숙하나 또 조선어를 잘 모르고 조선반도의 역사나 문화에 어두울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개혁개방이전까지 중국의 조선족은 한국사회를 그리 잘 알지 못했다. 이러고 보면 조선어, 중국어를 다 알고 있어도, 조선반도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지 못하는 약점을 많은 조선족들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필자도 일본에서 대학교수를 한다지만 한국문화를 한국인 이상으로 안다고 자신하기 어렵고, 중국문화에는 아직도 모르는게 너무 많다. 이러고 보면 본인들이 상당히 노력하지 않으면 중국문화, 조선문화 어느 쪽도 반중건중으로 이해하고 말 가능성

이 있다. 조선족이 조선어, 중국어를 알고 일본어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중한일 삼국을 다 정통했다고 자만할 수만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 언어는 두루 통하지만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는 주변인으로서의 인식에 머물러 심층까지 잘 모르고 지날 수 있다.

   김 문학 본인은 항상 중일한 삼국문화를 정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는 삼국을 두루 아우르면서 비교하는것은 신선한 감이 있지만 깊이가 그리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남들의 글을 취합해놓은 것이 많구나 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바로 이런 약점에서 오는 것 같다. 이러기에 너무쉽게 동아시아 삼국을 다 안다고 하지 말고 허심하게 동아시아의 서로 다른 문화를 배울 필요가 있다. 필자도 한국이 자기의 모국이지만 찾아갈 때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점이 많다. 필자의 한국이해는 아마 한국에 수년이상씩 체류한 조선족들보다 못한 곳이 많다. 그러니 조선족한테는 사실 동아시아 삼국의 문화가 어느 쪽도 이문화라고 생각하고 너무 안이한 자세로 대하지 말하야 한다.

그 다음 김 문학을 조선족 전체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김 문학이 잘 얘기하는 越境, 즉 국경넘기가 아직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가 통하니 동아시아 삼국의 어느나라도 제집처럼 드나들수 있는가 생각하면 그리 쉬운 것도 아니고 각 나라에서 인정받도 성공하자면 각 나라의 현실에 맞추어야 하거나 타협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이런 때 각자의 신념이나 지조가 튼튼하지 못하면 여기저기서 그 사회의 현실에만 영합하고 그 속에서 자기의 실리만 채우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김 문학이 일본에서 한국과 중국 비판서를 많이 낸 것은 틀림없이 일본의 보수적이고 嫌韓, 嫌華 감정에 영합하여 책을 쉽게 내고 많이 팔자는데 기본동기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또 한국에서는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책, 중국에서는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책, 최근에는 중국에新丑陋的日本人》이라는 책도 내는 것을 보면 김 문학은 실지는 동아시아 삼국의 어느 나라에도 충성심이 거의 없는 것 같고, 국경을 넘어다니면서 책이나 많이 내고 많 파는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오히려 참모습같아 보인다.

이런 김 문학의 모습을 보면서 필자도 그럼 나는 100% 그렇지 않는냐 하면 거기에는 말문이 막힌다. 필자에게도 잘 생각해보면 그런 면이 없을 수 없다.

중국 조선족은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조선반도에 모국이 있고 지리적으로도 가깝기에 혈연적, 문화적, 역사의식적인 연대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중한수교이후에는 그 관계가 더 깊어지고 있고, 국적과는 별도로 의식속에서는 중국과 한국(조선도 포함하여)을 다 조국정도로 생각하는 조선족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일본과는 해방전에 36년간이나 식민통치를 받았기에 좋던 그르던 관계가 깊었고 중국의 개혁개방후에 수만명 정도의 조선족이 일본으로 유학하고 진출하면서 일본과 조선족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있다. 이러고 보면 중한()일 삼개국을 서로 비슷하게 모국정도로 생각하는 조선족도 확실히 늘아나고 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진출하는 조선족도 많으니 이제는 조선족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규정하기도 어렵게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무리 국제화시대라해도 국가와 민족의 장벽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조선족은 중국, 한국, 일본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도 아직은 소수집단이고 어디서도 주류사회를 흔들만한 영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더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고 그 사회에 맞추어 살지 않으면 힘들수 있다. 이러는 과정에서 각자의 신념이나 지조가 튼튼하지 못하면 지나치게 그 사회에 타협하려 하고 영합도 하려하는 과정에서 주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 조선족이 언어나 문화적인 면에서 동아시아 국경을 넘기 쉬운 반면에  의식적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이런 주체성상실이 찾아올 수 있고, 이런 현상이 보편화되면 동아시아, 또는 더 너른 국제사회에서 조선족은 실리나 잘 챙기고 어느 나라에서도 충성심도 시민의식이 없는 집단으로 이해될 가능성이 있다. 양날의 칼이라고 조선족이 월경하기 쉬운 면과 그 이면에 주체성을 잃어버리기 쉬운 면, 양 측면을 잘 이해하고 각자의 신념과 지조를 튼튼히 세울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알고 보면 김 문학의 소위 친일언행도 이런 문제와 관계된다고 생각한다. 원래 일본을 좋아하고 일본문화에 심취하는 것은 사실이나 일본의 철저한 우익적인 사상을 김 문학이 마음깊이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본에 유학하면서 문필활동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내보려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중국문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책을 내고, 한국을 비판하는 책을 내니 일본의 보수적인 성향의 출판사에서 관심을 가진 것 같고 (혹은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선을 나준것 같아 보인다) 그런 출판사와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한국비판서가 일본에서는 잘 나가고 반응이 좋고 그래서 속편도 만들어 낸 것이라 추측한다. 그런 연장선에서 중국비판서도 여러권 냈다고 할 수 있다. 비판이 과격하여 사회에서 화제를 모을 것을 고려하면서 그 정도까지 나가는 것은 솔직히 조선민족으로서도, 중국인으로서도 양심을 어기고 양측 민족의 질책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가볍게 생각하면서 그런 방향으로 대담하게 나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 문학도 무모한 사람은 아니니 중국비판이 적정수준을 넘기전에 일본국적을 취득한 것이 아닐 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문필활동을 좋아하고 저서를 많이 내는데 승부심이 강한 김 문학이 그런데 너무 집착하면서 일본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강해보이는 보수층에 영합해가고 그런 사람들의 지지, 후원속에 한국, 중국비판을 꺼리낌없이 해가고 종국에는 일본의 한국지배, 중국침략문제에서도 어찌 저런 발언이 김 문학한테서 나오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마구 나왔다. 어찌보면 책을 빨리내고 많이 내는데 너무 빠져버리지 않았는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보니 본인이 걷고  있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을 수 있다. 필자가 김 문학에 관한 연재를 하면서 올라온  댓글을 보니 이 사람이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필자의 이 연재가 김 문학에게 귀과 아프고 마음이 아픈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겠으나 그 때문에 김 문학이 자기를 성찰해보고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문필활동이 보다 성숙되고 긴 안목에서 보면 그런 성찰이 있었기에 김 문학 자신이 몇단계 업그레드 됐다고 생각한다면 필자도 공연히 김 문학에게 나쁜 짓만 안했다고 위안을 얻겠다.

김 문학의 친일언행에 대해서 조선족 지식인들에게 건의를 드리고 싶다. 조선족 지식인이면 거의 누구나 그의 친일발언의 소상한 내용을 알게되면 기분이 상하고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김 문학의 이런 발언들이 나온 배경을 보면 그가 일본의 우익사상가로도 보이지 않고, 단지 책을 많이 내고 많이 팔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 같아 보인다. 혹시 초기에 한국,중국에 대한 책들을 내면서 보수적인 출판사들과 관계를 잘 못 맺아 본인의 의사가 아닌데도 출판사나 주변의 보수적인 인사들의 권유, 또는 강압에 의해 단지 이름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그런 책들을 냈을 가능성도 100% 부정 못한다. 일본출판계에는 필요에 따라 代筆이라는 현상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그의 인간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너무 무게있는 정치적기준으로 이 문제를 고려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나와서 매도하는 것은 상책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각자의 역사관과 민족의식에 맞추어 개인적인 감정표시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필자로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조선족지식인 사회가 집단으로 나서서 이런 문제에 대응하면 국제화시대에 외부세계에서는 이상해 보이고 조선족 지식인 사회의 건전한 발전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일파이요, 한간이요 하는 통상적인 개념도 본인이 일본국민이 되었을 때에는 의미가 없는 용어가 된다. 어디까지나 조선민족, 중국인일때 이런 개념도 성립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연재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필자가 조선족 지식인 사이에서 진행된 김 문학논쟁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솔직하게 얘기드리겠다.

필자는 1986년에 중국의 동북사범대학 일본학과를 졸업했는데 일본어학과의 1년 선배가 김 문학이었다. 대학교 재학시 같은 외국어학부의 조선족학생들의 모임에서 몇번 정도 같이 참가했던 기억이 있고, 그외에 더 깊은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단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면 한번 김 문학의 침실에 일본의 작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이 보이기에 아 소설읽기를 좋아하구나 생각했고, 한번은 학과의 게시판에서 김 문학이 조선어로 쓴 나무의 年輪을 보고 착상해서 쓴 짧고 아름다운 시가 보이기에 혹시 김문학이 장래 윤동주같은 시인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해보았다.

서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연락도 없이 지냈것으로 기억하는데 1992년쯤인가 김 문학한테서 전화가 와서 일본교토에 유학왔다하고 연락와서 기회가 있을 때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아마 필자가 재일한국인교수 김 양기선생과 접촉이 있었고, 김 문학이 일본에 가기전에 김 양기선생의 책 한권을 중국에서 번역하면서 필자의 연락처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1998년에 김 문학이 일본에서 한국에서도벌거숭이3국지-일중한삼국비교문화론을 출판했다는 소문을 듣고나서  마침 동경에서 활동하던 조선족단체 천지클럽」(후에 천지협회로 개명에서 필자의 제안으로 중국조선족의 국제사회에서의 성공모델을 소개듣는 자리를 마련하여 그런 성공모델의 강사로서 김 문학과 중국에서 일본에 연구차 나와있던 다른 두명의 조선족 교수를 청하였다. 그러고나서 김 문학에게 갚음을 해주느라고 이틑날 동경시내관광을 안내해주었다. 그 후로는 연말이면 연하장을 주고받거나 김 문학한테서 전화로 연락이 올 때가 있었고, 어느 때인가 히로시마에서 동경에 왔다가 필자와의 관계로 재일연변대학학우회의 술모임에 잠깐 들렀다가 간적이 있었다. 그후 김 문학이 새로 낸 책 두권 정도를 출판사를 통하여 필자에게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2년쯤인것으로 생각되는데 김 문학이 일본에서 또 다시 한국국민에게 고한다! -반일이라는 어리광을 그만닥치라》라는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여 잠깐 펼쳐보다가 전체적인 내용이 한국을 상당히 부정적인 것도 있었지만 일본식민지지배를 전면긍정하는 것 같은 내용이 들어있고, 특히 안 중근의 우상을 한국에서 해체해야 한다는 내용을 읽어봤을 때는 일순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내용까지 쓰는가? 정말이지 서점에서 이 책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이미 그 이전에 한국국민에 고한다!-일본거주 한국계중국인의 통곡의 조국비판도 읽어봤는데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한국의 허물을 캐내는 책이었기에 읽고서 기분은 좋지 않았다. 그 때부터 김 문학이한테서 연락이 와도 필자가 소극적으로 대하면서 점점 연락이 끊겨 이제 거의 10년은 만난 것 같지 않다.

  조글로에서 김 문학의 옹호론을 열심히 펴는 사람이, 누가 김 문학을 비판하면 김 관웅교수던 필자인던 마구 공격에 나서는데, 이 사람이 김 관웅교수를 비판하는 글에 애족자의 허울을 쓰고 자신이 눈에 거스리는 사람들을 전부 걸고 넘어지려드는 행위라는 표현을 사용하던데 필자가 일본에서 10여년을 살아왔는데도 안 중근을 우매한 인간으로 내리깍는 김 문학의 글을 읽고나서 분노를 느낀 것이 사실인 것을 보면 필부에게도 애족심은 있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다. 오늘 이때까지 김 문학의 친일언행이 수많이 조그로에서 공개됐는데도 김 문학의 친일언행에는 한사코 외면하려하고 김 관웅교수나 필자한테 공격을 서슴치 않은 이 사람이 과연 한국이나 중국에서 살 필요가 있는 사람인지 의문마저 든다. 최저의 애족애국심도 없다면 그런 나라에 살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허울로는 조선족이요, 한민족이요 하면서 말이다   
   필자는 작년
11월경부터 조글로에 미국에서의 소감을 적은 글을 연재
하면서 가끔 중국내의 조선족 소식도 체크해보고 다른 분들의 글도 읽어보고 있다. 그러다가 금년 3월부터 김 문학이 조글로에 등장하여 제일먼저 안 증근의사에 대하여 연재하고 그 다음 조선족에 관한 글과 100년전의 동아시아를 발견해보는 글을 연재했는데 안 중근에 대하여 아주 좋게 평가하는데 대하여 의아하여 일본에서는 안 중근을 내리깍던 사람이 이제는 180도 평가가 봐뀌는가하면서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더이상 의견을 제출한 것도 아니고 가끔가다 김 문학의 글을 읽어봤는데 사실 조선족을 논하는 글은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구조선족,신조선족이라는 이런 개념이 왜서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가끔가다가 연변의 김문학비판자들에 대한 공격, 또는 비아냥이 새어나오고 자기자랑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거의 10년전에도조선족대개조론이라는 것을 내놓으면서  조선족 지식인 사회에 찬반양론으로 불화를 조성하더니 이번에도 조짐은 좋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조선족대개조론의 경우를 보면 본인이 처음부터 의식하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조선족 지식인 사회를 어느 정도 시끄럽게 만들고 분열도 조성하는 면이 있었다. 그 이유는 조선족 사회에 대한 깊은 조사나 분석이 없이 생각을 마구 쏟아내고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자세가 없기때문이다. 본인이 조선족사회에 던진 화제로 논쟁이 생기면 본인도 여러가지 설명을 해가면서 타협점을 찾아보도록 하기보다 던져준 화제를 가지고  조선족 사이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 정작 본인은 일본에서 다른 창작활동에 열중하면서 제 책내기에 바빴다. 그러면 찬반양론이 생기는 자체가 오히려 이상하다. 이번에도 조선족론을 펼치면서 정작 본인이 현재 어떤 국적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기본상황에 대해 설명하면 시작부터 정직해보이고 본인도 할말 안할 말 가려하겠는데 그런 절차가 없이 시작하니 내용이 헸갈릴 때가 많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필자는 미국에서 자기 공부가 바쁘니 조글로에 원고를 제때에 보내지 못하고, 조글로에 들어와 보지 않은 기간도 꽤 있었다. 그러다가 금년 8월부터 조글로에서 어느 사람이 김 문학에 대한 열띤 변

호를 자주 하기에 차차 그 변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김 관웅교수가 중국조선족문화통신에서 김 문학비판을 하는 사실도 알게 되었. 필자가 일본에 오래동안 있었다하여 김 문학의 저술활동의 내용을 소

상하게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여서 사실말이지친일파중국인에 의한 참을수 없는 일본질책론-「반일」에 미친 중국,「우호」를 구걸하는 일본》이라는 책이 2004년에 김 문학에 의하여 일본에서 출판된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다. 생각을 바꾸어보면 이런 책들이 일본에서도 별로 화제를 모으지 못하여 필자도 전혀 들은봐가 없었던 것이다. 조글로에서 김 문학을 옹호하는 사람의 글이 빈번하게 올라오면서 차차  그런 글에 댓글형식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특히 821일에 김 문학 비판과 죽이기라는 글이 올라온 것을 보고나서 분노가 치밀어 올았다, 김 문학이가 분명히 일본에서 욕먹을 책을 적지 않게 쓴 것으로 아는데 어찌 조선족사회에 나와서 이렇게도 당당하며, 그것도 조선족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 글을 마구 쏟아내고, 그런데가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변호에 나오는 사람도 있단 말인? 그 때문에 참지 못하여 그 사람의 글에 댓들도 달았다. 그 직전부터 이 사람의 김 문학옹호론에 반대의견을 표시하는 댓글이 많이 나타났다.

  그러다가 이런 형식으로는 서로 의견이 평행선만 달리겠다 생각하여 조선족 지식인들이 김 문학의 저술활동, 특히는 일본에서 하는 저술활동의 전체적인 상황을 알고나서 서로 빗나가지 않고 초점에 맞춘 논쟁이 필요하겠다 생각하여 일본어판 아마존닷컴에서 찾아보니 김 문학의 일본어저서는 대체 다 소개가 올라와 있었기에 그것을 년대별로 표제사진을 올리고 제목과,출판사, 출판년도 등을 번역하여 조글로의 필자의 미니홈형식으로 올렸다. 이렀게 함으로서 김 문학의 일본어저서의 대체적인 상황은 알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댓글이 많이 올라오고 반응이 좋았지만 표제사진까지 올린 것이 저작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지 하는 우려가 있었고, 아무래도 대학교 1년 선배되는 분의 찬반양론에 깊게 개입하는것이 좋을 것 같지 않아서 약간한 설명을 한후에 조글로에서 내렸다.

  그랬더니 생각 외로 조글로에서 김 문학옹호론을 열심히 펴는 사람이 필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소신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그 글을 미국의 어느 조선족 사이트에서 옮겨가서 거기서도 일시적으로 필자를 기회주의자다. 이게 학자양반들의 진모습이다, 자신이 없어서 그런다 하고 욕설도 꽤 퍼부었다. 김 문학 본인도 김 관웅선생을 비판하는 글에서 필자가 자라목을 움추러드리듯이 숨어들었다는 표현으로 비난했다. 필자가 김 문학에 대한 배려가 있어서 그만두었다고는 왜 생각못하는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도 김 문학을 둘러싼 논쟁이 좀처럼 사라지는 모양이 없이 조글로와 중국조선족문화통신, 그리고 정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의 어느 조선족 사이트에서 끈질기게 지속됐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한 것이 조선족 지식인들이 할 일도 많은데 언제까지 김 문학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반목해야 하는가? 이런 논쟁이 생기게 되는 원인은 근본적으로 김 문학에게 있지 않는가? 처음부터 조선족 사회에 진솔한 마음으로 다가오고 자신을 과대포장한 이미지로 나타내지 않고, 겸허한 자세를 보여주었더라면 이렇게 부질없는 논쟁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많이 생각해보다 필자가 일본에 오랜 생활해왔으니 일본의 상황에도 익숙하여 한번 마음먹고 조선족 지식인 사회에 김 문학의 진실한 모습을 알려주자고 결심했다.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과대포장된  허상이 드러날수 있고 허물도 드러날 수 있으나 김 문학의 실상을 제대로 아는 것이 잘 모르면서 마구 치켜세우거나 또 방향이 꼭 정확하지 않은 비판을 하면서 조선족 지식인 사회가 서로 시간을 소모하고 반목하기보다 더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약간의 준비를 거쳐 930일부터 김문학에 관한 연재를 조글로에 올리기 시작했다.

  이런 연재를 해가면서 필자자신도 김 문학의 저술활동에 대하여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다수였다. 그전까지 일본에서 필자도 자기 사는 일에 바쁘다니 김 문학이 몇권 정도의 책을 쓴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이 쓴 것은 정말 몰랐고 욕 먹을 책이 이렇게 많은 것도 820일경에 일본어저서목록을 만들어보면서 처음 알았다. 김 문학이 일본에서 일본국적에 가입했다는 것도 누가 알려준 것이 아니고 본인의 책표제에 나와 있기에 안 사실이다.

 이 연재를 쓰면서 마음속으로는 쉽지 않았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을 그것도 면목을 아는 사람을 내가 무슨 정신에 이런 연재를 하는지 회의감이 자주 들었다. 특히 세번째회의 연재가 나가고나서 어느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의 댓글에 김 문학과 대학교 선후배같은데 그런 것도 언급없이 연재합니까? 하는 질문을 듣고서는 혹시나 김 문학씨 처가 아닐까 하면서 마음이 심하게 동요됐다. 또 조글로에 올라와 있는,서울에서 이광수 차녀와 같이 찍은 사진에 김 문학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오기에 김 문학이도 일본에서 쉬운 인생이 아니였겠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연재를 하는 자신이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아무래도 쓰던 연재를 도중에서 팽개칠수는 없고  그래서 이제 더는 김 문학의 사진을 보지말고 이 연재를 마치기로 했다.

  필자가 김 문학에 대하여 조선족 지식인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다 알렸다. 바램은 이 연재가 계기가 되어 김 문학논쟁이 빨리 종결되고 각자가 서로 보다 중요하고 생산적인 일에 매진할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도 너무 시간이 바쁘고 할일이 많으니 김 문학의 이 연재를 마치고나서 김 문학논쟁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 논쟁과 관해서 꼭 필요한 질문에는 대답하겠으나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새로운 논쟁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

 

  마지작으로 조선족지식인들이 이제 김 문학에 대할 때 이런 自問을 먼저 해보았으면 한다. 나라면 김 문학처럼 많은 책을 동아시아 삼국에서 낼 수 있었겠는가? 또 김 문학처럼 여러 나라 국경을 넘나들면서 나도 완전무결한 인간으로 남아있었을 수 있었겠는가? 물론 필자도 이런 自問을 하면서 김 문학에게 대할 생각이다.                        

                                      (이상 연재를 마칩니다)

 

                                          20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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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5 ]

35   작성자 : 중국
날자:2011-10-09 17:58:55
조선족으로서 너무 김문학을 욕하지 마시요
34   작성자 : 심각
날자:2010-10-21 00:33:54
한태삼 - 2010/10/19 21:24:16 이 글을 마감으로 니카에서 다시는 김관웅이라는 이름 석자를 거론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김관웅씨의 글은 이제 글로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이분의 비정상적인 심적발로가 아닐가요? 그리고 모두 담담하게 너그럽게 묵과하고 그대로 넘겨주심이 어떠하실런지요? 우매한자를 타독이는 - 2010/10/19 21:28:34 한태삼님. 내 의견이 바로 그러합니다. 지나가다가 - 2010/10/19 21:45:01 한태삼님 건의가 좋다고본다. 한마디만 더하고 물러가갔데 김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전혀없는것도 아니다 김환자에게서 빼앗아간것을 김환자에게 돌려주면 되지않겠나? 김문학이 선심을 좀 쓰기 바란다. 이것은 진심의 충고다. joa - 2010/10/20 02:28:11 국내에 계신 학자님들은 무엇때문에 이렇게 해외에 계신 학자님들에 대하여 이처럼 증오하고 경멸하는 태도로 나오시는지 리해가 안되여요. 반화와 반공이란 말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닌가요? 여기 중문방송에서 학자님들이 토론하는 대담프로를 본적 있어요.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미국에서 교환학자로 와계신분이 말씀하시던데 반화라는 말은 중국인으로 태여난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화라는 말은 중화민족을 증오하고 중화민족의 문명과 력사를 혐오하는 타민족이나 다른 나라 사람에게 있을수 있다고 그래요. 그러나 반공은 다르죠. 공산당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어제 에 실린 소식을 보니까요. 일본 日本东京都知事 石原慎太郎이 그런 말을 한 인터뷰가 발표되였던데요. 반공은 하지만 반화는 하지 않는다. 중국의 찬란한 문화와 력사를 존중하며 사랑한다고 그랬네요. 찬란한 문화와 력사를 존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중국 사람들이 있을수 있나요? 반화와 반공이라는 단어를 분별하여 사용하셨으면 합니다. 국내 학자님들은 정말 단어사용도 제대로 하지못하나봐요. 너무 안타까운 현실인것 같아서 한마디 합니다... 김동찬 - 2010/10/20 03:13:19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솔제니친은 소련 내 비참한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는 미국 여론을 향해 "믿기지 않는 것을 믿는 용기"를 역설했었습니다. 전송철 - 2010/10/20 04:24:05 여러가지로 의미가 깊도 또 필요한 시점에 써주신 날카로운 칼럼이라고 생각합니다. 빈술잔님의 견해도 나무랄바가 없지만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연변대학에는 젊은 부교수들이 백여명 넘게 있는줄 압니다. 조문학부에만은 한 20여명 되겠지요? 자세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칼럼속에 어떤 부교수인지 밝힌바가 없고 제가 알기에는 원래 연변대학에 김관웅교수를 지지하면서 김문학선생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칼럼에서 밝힌거처럼 정말 어쩌면 한사람도 나서지 않고 있는것일가요? 적어도 6적가운데서는 어느 1적이라도 나설줄 알았는데 아니거든요. 왜서일가요? 바로 하도 정신병자처럼 노니까 같이 정신병자로 해받을가봐 모두 멀리쯕히 피해버린것이지요. 때문에 이 칼럼이 그런 상황을 설명해주고 이제부터는 더는 학자와 작가 문화인들이 관계할 현상이 아니라고 하는것은 간적접으로 김관웅씨의 비정상적인 현상에 대하여서는 신경쓸 필요도 없고 모두 함께 무시하자자고 호소한것이라고 봅니다. 때문에 이 칼럼은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무시하여야 한다고 선포한것으로 보게됩니다. 전송철 - 2010/10/20 04:25:39 이제 이 칼럼을 읽고나면 혹시 김관웅본인은 제정신이 들수도 있을것이겠지만 더 병이 엄중하여져서 발작을 한다고 해도 정신병 전문의가 알아서 관계해야 할 문제라고 간주하고 다른 학자와 작가 문화인들은 더는 개의치않아할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칼럼이 목적하는바에 도달하게된것이 아닐가요? 전송철 - 2010/10/20 04:28:48 김관웅씨의 癲狂病을 넘어서는 心風症勢는 이제 조선족의 학자와 작가, 문화인들이 관계할 문제가 아니다. 반드시 정신과 의사가 진단해봐야 하는 전문적 분야라 판단한다. 이 한마디로 이제는 모든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김관웅씨가 아무렇게나 미친소리로 짖어대도 그것을 믿을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전송철 - 2010/10/20 04:29:39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켜 멘탈리티와 뇌 신경 정상 유무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최련화 - 2010/10/20 04:42:16 애드립(adlib) 내지 ‘개(犬)드립’......... 모르던 신조어를 배웠네요 .. 그런데 검색하여보니 애드립은 사용할 필요가 없고 그냥 ‘개(犬)드립’이라는 이 단어 하나만 사용하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최련화 - 2010/10/20 04:43:59 신조어 ‘개드립’ 2010년 08월 02일 (월) 안준헌 경거망동(輕擧妄動)은 경솔하여 생각없이 망령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황당무계(荒唐無稽)는 말이나 행동 따위가 참되지 않고 터무니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고, 허무맹랑(虛無孟浪)은 터무니 없이 거짓되고 실속이 없음을 이른다. 이러한 사람, 즉 언행이 진실되지 못한 사람을 일컬어 조롱하는 말이 채동지(菜同知)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채동지와 비슷한 뜻으로 개드립이라는 신조어가 쓰이고 있다. 이는 애드립(adlib)이란 단어를 격하해 쓰는 드립에다 앞에 개(犬)라는 접두어를 붙여 더 폄하해 이르는 말이다. 애드립은 공연이나 방송도중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해 즉흥적으로 말하는 것을 뜻한다. 생각지도 않던 말을 갑자기 하려다 보니 상황과 전혀 다른 생뚱맞은 말이 나올 수도 있고, 어이없는 말이 불쑥 튀어 나올 수도 있다. 네티즌들은 이런 경우를 드립이라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상에서 채팅을 할 때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말을 하거나 진실되지 못한 발언을 할 때 드립이라고 일축한다. 헛소리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면 부정적 의미를 더한 개드립이라 하는데, 이 정도면 언어 폭력이라 볼 수도 있다. 최련화 - 2010/10/20 04:45:21 선생님의 글에서 배운 제일 인상깊은 단어 두개를 말하라고 하면 수필 에서 나오는 -보헤미안....이라는 단어와 이번 - 개드립이란 단어가 되겠네요^^ 최련화 - 2010/10/20 04:48:03 김관웅교수님의 글에서는 -조방구(꾸)니....라는 단어 김문학선생님의 글에서는 -노정한다는......단어... 조선족작가님들의 글들에서 구경한적 없는 단어들이잖아요... 서로 존경하고 배타하지 않는 좋은 사이로 돌아올수는 없을가요? 최련화 - 2010/10/20 04:50:11 노정3[路程] [명사] 1 목적지까지의 거리. 또는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2 거쳐 지나가는 길이나 과정. 사용처가 조금은 불분명한 것 같기도 하지만.. 조연희 - 2010/10/20 05:29:11 이 칼럼은 그분 본인께는 정말 타격이 크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 좋은 쪽으로 효과가 난다면 좋겠지만 더 이상하게 나오기 시작하면 결국 한 학자를 해치는것으로 되지않을가요? 걱정스럽네요... ㅠㅠ 강소성 - 2010/10/20 05:52:56 그는 환자이다...라고 생각하고 일절 관심을 끕시다.이젠 정말 지루해죽겠습니다... 우매한자르 타독이는 님의 이 말씀이 정말 옳다고봐요~ 신지 - 2010/10/20 09:45:29 우리 담찬인물 유순호선생님^^ 존경합니다~~^^ 유선생님이 아니시면 그누가 대신해서 이런 말 해줄수 있을것입니까?... 이 세계에는 없을 것입니다 ~~ 역시 기예하고 굉장합니다... ... 장석준 - 2010/10/20 11:05:55 인간 고유의 샤머니즘 기능 회복을 통해 인간의 정신병 치료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식으로라면 오히려 병증세를 더 가중시킬수 있지 않을가 우려스럽습니다. 리쳐드 - 2010/10/20 11:17:30 샬롬 ! 하나님의말씀이다. 말씀대로 사는자는 영원히 흥하리라!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리라... 할레루야... 美麗心情 - 2010/10/20 12:39:00 叔, 뭐라고 하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계미화 - 2010/10/20 12:44:07 안녕하세요, 글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계속 화이팅이예요!!! 애야 어서 자자 응? - 2010/10/20 20:36:27 관리자가 삭제한 글입니다. 경천 - 2010/10/21 01:26:46 정신병으로까지 비친 김관웅교수 그 글을 읽어보고 왔습니다. 정말 한말을 하고 또 하고 끝없이 회설수설해대고 있군요. 정신병증상이외에 다른 설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정신과 의사가 진단해봐야 하는 전문적 분야라 생각합니다. 모두 외면하고 더 이상 자극하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경천 - 2010/10/21 01:27:30 心風患者가 앞 뒤 논리가 맞지 않는 말을 횡설수설 反復하고 翻覆하는 증상을 가리켜 東醫寶鑑에서는,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모두 망령된 것으로,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평생에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을 직접 본 것처럼 말하고 심지어 귀신을 보았다고 하는, 망상증이나 정신분열병의 망상 형에 해당된다.’고 쓰고 있다 이 증상과 백분백으로 딱 어울립니다.
33   작성자 : 말이 새나갔다
날자:2010-10-12 08:30:51
지나가다가 개 수노라는 것 이 세상 코플래기가 다 안다. 며칠전에 동경대 박사께 항복한다고 굽실거리더니 이게 웬일이냐? 뒤에 가서는 온통 욕설질이다. 사이코중에 사이코이니 과눙도사가 또 식칼 갈아야 되것다. 아차 말이 새 나갔다.
32   작성자 : 야랑자대
날자:2010-10-11 15:40:54
연변대 학자, 동네망신 동경대 박사, 해외망신 (펌) 지나가다가 - 2010/10/11 16:36:57 역시 김문학은 김문학이다. 김관웅이나 김관웅을 닮은 김광림이나 100년을 악전고투해도 따라잡기는 어려울걸... 갈길 바쁜 나그네의 바지가랑이에 매달려 그만 성가십게 굴었으면 좋겠다... 심술도 질투도 유분수지... 누구 말마따나 그것도 비슷하게 따라잡을때 통하는 말이고 이건 그야말로 하늘과 땅차이로다. 개똥벌레가 하늘의 달을 쳐다보면서 나도 불빛이 있노라고 앵앵거리는 꼴밖에 더 되겠나...
31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11 14:00:44
김교수님 회답 감사합니다. 재일조선족사회에서 김무학은 이미 설자리를 잃었다고 봅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때도 저의 주위의 친구들은 김무학이라면 코웃음을 치군 했었습니다. 2005년이였군요...제 기억도 대개 그런것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연길로 돌아와서 몇달 안됩니다.앞으로 어떤 비지네스를 할까 천천히 생각하는 중입니다. 저도 후에 기회가 있으면 한번 만나보기 싶습니다. 님의 건투를 빕니다.
30   작성자 : 두소리
날자:2010-10-11 11:26:02
김교수님이 말씀하신것처럼 지난해인가 금년에도 일본의 조선족연구단체어서 김문학을 청해다 강연시키려고 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김문학문제는 그 개인에 그치지 않고 그를 부추기는 주변사람들의 문제도 크다고 보아야 합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세번씩 거듭하니 말입니다. 금후에도 또 시도할수 있으니 일본에 계시는 지성인들이 경각성을 높여서 돌이킬수 없는 착오를 범하지 말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일본의 조선족연구학회는 김광림교수를 비롯한 많은 조선족유학생들이 어려운 여건중에 설립하고 유지시켰다고 들었습니다. 그러한 연구회에 김문학과 같은 역적을 등장시키는것은 대역부도하다고 말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29   작성자 : 김광림
날자:2010-10-11 10:08:15
위의 우매(약칭)님 질문이 계시기에 답변 드립니다. 제가 여기시간으로 오늘 온 하루 외출하면서 답변이 늦어졌습니다. 1. 김 문학씨 처를 저는 전혀 모릅니다.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김 문학씨에 대하여 쓴 연재의 제3회가 나가니 댓글에 여성다운 글씨로 제 연재에 불만을 표시하기에 자기 남편이 비판받는 것이 싫어서 부인이 그런 댓글을 단 것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2. 저는 8형제(아들넷, 딸 넷) 중의 막내입니다. 그러기에 아직도 마음이 약한 면이 많습니다. 사실 김 문학연재를 하고나서 저는 마음이 거뿐하기보다 김 문학본인에 대해서는 마음이 무거워 납니다. 조선족 지식인 사회의 건전화, 사회적 정의라는 면에서는 제가 연재한 것이 조금도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김 문학씨가 욕을 더 먹게 되면 본인한테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3. 일본의 조선족단체에서의 김 문학강연에 대한 얘기인데 2005년에 있은 조선족국제심포지엄에 처음에 발표자나, 토론자로 참가한다고 나오다가 도중에서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아마 누가 반대한 것 같습니다. 결과 다른 단체에서 강연한 것같습니다 금년에 조선족연구관련단체에서 김 문학씨를 초청하여 강연시키려하다가 내부에서 반대의견이 있어서 무산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2005년에도, 금년에도 저는 그런 반대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단체의 조직자가 흥행효과를 고려하여 2005년에도, 금년에도 그 사람이 번마다 김 문학을 초청해보려는데 그 때마다 내부에서 반대의견이 나오는 것이 확실합니다. 회장이니, 부회장 등 유명인이 아니고 일반회원, 또는 행사의 기획에 참가하는 사람들중에 반대자가 꼭 나옵니다.번마다 누가 같은 사람이 나와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추측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민심이 아닐까 합니다. 누가 조직적으로 반대하지 않아도 무언가 움직임이 있을 때 이 사람은 아니다고 하는 사람들이 꼭 나오는 것이 재일조선족사회의 현실입니다. 사실 저는 김 문학의 문제가 되는 중국비판서의 존재를 금년 8월 하순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조글로와 중국조선족문화통신을 통해서 말입니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것이 이래서 생긴 것 같습니다.일본에 21년이나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4. 우매님은 혹시나 중국의 심장부에 계시면서 활발한 문필활동을 하시는 그분이 아니신지요? 일본에 대하여, 한국에 대하여 그외에도 아시는 것이 많으시기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언제 만날 기회가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제 연락처는 조글로 김 삼사장이 잘 알고 있습니다.
28   작성자 : 두소리
날자:2010-10-11 09:29:43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님, "두소리"가 쓴"그가 "반일"에 미친 중국, "우호"를 구걸하는 일본이라는 책을 낸후, 일본의 모조선족학회에서 그에게 강연자리를 마련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이 지성인들의 반대로 강연은 중지되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동경의 다른 조선족단체가 그를 초청해 강연을 시켯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김문학의 강연을 저지하기 위해 반대자중 한사람은 김씨의 상기의 책을 직접사서보고 관계자들과 교섭했다고 들었습니다.
27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10 19:05:24
이 자리를 빌어 韓寒과 다른 유명인들과의 설전을 소개합니다. 꽤나 재미있으니 김정룡씨.유순호씨.김문학씨도 읽어보십시오. http://www.360doc.com/content/09/0406/02/78535_3035679.shtml
26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10 18:16:17
그가 "반일"에 미친 중국, "우호"를 구걸하는 일본이라는 책을 낸후, 일본의 모조선족학회에서 그에게 강연자리를 마련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이 지성인들의 반대로 강연은 중지되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동경의 다른 조선족단체가 그를 초청해 강연을 시켯다고 한다. ------------------------------------------------------------------------------------------------------------------- 우에 내용이 확실한건지 환인못해봐서 몰겠지만, 한때 김무학이 여러곳의 재일본 조선족단체들을 돌아다니며 강연할때(아마 2003년 좌우?),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김무학이 그런 엉뚱한짓을 했다는것을 잘 모를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김무학의 [조선족대개조론],연변씹기만 알고 있을때였다. 그후 차차 그런것들이 우리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자 재일 조선족들은 한결같이 김무학 비판에 나서게 된다... 그후로부터는 조선족들앞에서 강연했다는 소식을 듣지못했다.
25   작성자 : 두소리
날자:2010-10-10 16:59:04
자기를 잃은 김문학,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그는 도대체 어떤사람일까? 일본에 귀화했다고 하루아침에 조선족으로부터 일본인이 되는것도 아닐것이다. 또 배타성이 강한 일본인이 귀화한 외국인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주지도 않을것이다. 한편,조선족과 한국인을 매도하고 중국도 팔아먹었으니 조선족 아니면 중국인으로 자처하기도 곤란할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의 귀속을 잃은 불쌍한 존재밖에 될수없다. 이러한 결과는 주요하게 김문학자신이 초래했지만 그가 처한 환경의 영향 또한 작지 않았을것이다. 그는 동북에서 살때 한족의 기시를 받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피해자성향을 갖고 중국때리기에 나섰을수도 있다. 중국을 떠나서 일본에 갔을때 마침 일본은 버블경제가 깨지고 우익이 힘을 얻을때였다. 그러한 일본사회에서 역사지식이 결핍한 그가 반화, 반한을 강요받고 쉽게 친일을 선택했을수 있다. 뿐만아니라 그의 주변에서도 그를 부추기기도 했다. 그가 "반일"에 미친 중국, "우호"를 구걸하는 일본이라는 책을 낸후, 일본의 모조선족학회에서 그에게 강연자리를 마련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행이 지성인들의 반대로 강연은 중지되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동경의 다른 조선족단체가 그를 초청해 강연을 시켯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의 김문학을 만든데에는 그 자신외에 여러가지 요인이 있고 거기에 대한 비판과 반성도 게을리 하지말아야 할것이다.
24   작성자 : 길림
날자:2010-10-10 08:40:48
저위에 김관웅의 글을 퍼온늠아야 그글이 뭐가 그렇게 잘못 되여서 그렇게 난리 부르스를 떠냐 ..그 속담 하나를 놓고 그리 딴지를 걸고 싶냐 ..에라이 이 비천한 순호의 발닦애들아...한때에는 김관웅의 글이라면 손바닥이 닳아 떨어질 지경으로 박수를 쳐대더니 ..유순호의 김관웅 배신한마디에 덩달아 손가락 질이고 한때에는 또 김문학 타도에 팔소매를 걷어 올리며 열을 올리던 작자들이 유순호의 김문학 칭송 한마디에 묻지마 만세소리만 웨쳐대는 이 유치하고 너절한 유순호의 노예들아...
23   작성자 : 玄 庄
날자:2010-10-10 03:28:32
허참....한심하군~~~ 마무리를 짓는다는 집마당에 우르르 몰려들어 썩은 악취를 풍기는 사리마대를 뒤집어쓰고 또 다른사람의 흉을 보는 이들은 도데체 인간이냐 귀신이냐???
22   작성자 : 한마디만 더 보탠다면
날자:2010-10-10 01:31:02
누가 김광림처럼 -벌거숭이 김관웅-을 쓸 필요가 없어진게짐. 제절로 다 벗어던지고 달아다니니까...
21   작성자 : 한마디로
날자:2010-10-10 01:24:34
한마디로 불쌍한게짐...
20   작성자 : 살아가자니
날자:2010-10-10 01:23:24
살아가자니 어쩔수가 없지. 불쌍한 김관웅박사도 별수 있나? 완전 코미디수준이지... 그리구는 남을 향해 반화분자니 반혁명분자니 한단말이...
19   작성자 : 그런데 더 웃기는것은
날자:2010-10-10 01:20:28
누가 이 일을 고발해서 연변대 당위서기가 불러다가 묻자 나는 이렇게 쓴적이 없고 네티즌들이 자기이름을 도용해서 그런 글을 올린것이라고 발뺌했다는말이... 그리고 이 글이 처음 올랐던 자기의 싸이트는 부랴부랴 폐지해버린거고 싸이트 이름으 우리동네 문학동네... ㅋ 이래서 세상는 또 한번 리해불가란말이.
18   작성자 : 우매한 자를 타독이는
날자:2010-10-10 01:18:37
대충 읽어ㅤㅂㅘㅅ는데 별로 문제될건 없구만?ㅎㅎㅎ
17   작성자 : 핵심
날자:2010-10-10 01:16:09
5년전에는 요런식으로 김학철옹을 웃읍게 보다가.... 하지 말아도 괜찮은 일을 찾아 하는 행위를 두고 중국 사람들은 《개가 쥐를 잡으려고 설치는 싱거운 짓(狗拿老鼠多管閑事)》이라고 한다. 중국조선족들은 중국에서나 한국에서《개가 쥐를 잡으려고 설치는 싱거운 짓(狗拿老鼠多管閑事)》을 적지 않게 하면서 살아 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쟁이나 정치생활에서 중국조선족은 너무나도 과분한 적극성을 보이였다. 자기가 그 정도 나서야 하는지를 별로 생각지도 않고 설치면서 살아왔다. 얼마 전, 해외에서 한 친구가 김학철의 문학을 저항문학이라고 규정 지을수 있는가 나한테 물어왔다. 나는 그때 외적의 침략에 저항한 문학은 저항문학이라고 말하지만 국내에서의 자국정치에 대해 부동한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문학은 《부동한 정치견해를 가진 자 의 문학》이라고 한다고 한다고 알려준적 있다. 이런 의미에서 김학철선생의 문학을 《저항문학》 또는《부동한 정치적견해를 가진 자의 문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김학철선생은 어찌보면 싱거운 짓을 한 점도 없지 않다. 그 분은 워낙 조교였다. 5년뒤에는 다시 김학철의 거룩한 령혼을 업고 나서면 자신이 어필될것을 감안... 우리 두 형제는 김학철의 생전이나 사후나 모두 시종여일 그의 숭배자이고 문학팬이다. 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변함이 없을것이다.......... 한평생 가장 사람답게 살아오면서 불의에 용감하게 저항을 해온 가장 인간다운 김학철의 거룩한 령혼과 만나고 또 수시로 대화를 나눌수 있다는것은 이 삭막한 세상에서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 아닐수 없다........ 희세의 카멜레온교수라는 호칭 이래서 생긴것이 아닐런지???
16   작성자 : 너무 대조됨
날자:2010-10-10 01:11:22
5년뒤에 변화가 너무 대조되짐. 때와 필요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실익을 챙길수 없으니까.. 거룩한 령혼과의 만남 김관웅 김호웅 우리 두 형제는 연길에서 태여나서 연길에서 자라면서 어려서부터 먼발치에서나마 쌍협장(肋杖)에 몸을 싣고 외다리로 걸어다니는 김학철의 모습을 보았었다. 그러나 그때는 다만 김학철은 우파분자들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우파분자”라는 소문만 들었지 그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본적도 그의 작품들을 읽어본적도 없었다. 다만 당시 대학을 다니는 열성스러운 문학도인 큰형을 통해 항일투사로서의 그의 신상이나 경력을 대충 얻어들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남정북전(南征北战)을 하면서 다리 하나까지 잃은 반일투사가 우파분자로 되였다는것만이 어린 생각에도 너무나 이상스럽기만 했었다. “문화대혁명”초기에 홍위병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김학철의 집에서 “악독한 반동소설”을 들춰냈고 그가 바로 이때문에 감옥에 잡혀갔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그 진실의 내막은 알수 없었다. 1975년 5월, 김학철이 연변공인문화궁에서 “제2차 공판”을 받을 때도 연길에서 그 소문만 귀동냥으로 들었지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그 공판에 대해 뒤골목들에서 떠도는 무성한 소문을 들으면서 우리 두 형제는 보통인간들이라면 기가 질려서 똥오줌이라도 싸버릴 그런 무서운 장면에서 조금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는 그 “용감한 척각의 괴한”을 만나보고싶은 충동이 자꾸만 머리를 드는것만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속의 생각뿐이였지 실현가능성이 없는 일이였다. 그후로부터 몇년이 지나서 김학철이 감옥에서 만기출옥을 하고 또 몇년이 지나서 복권을 한 뒤에는 우리 두 형제도 신진소설가로서 문단에 등단하여 가끔 문단행사에서 어쩌다가 김학철을 직접 만나서 몇마디 말도 여쭤보고 직접 말씀도 들어보고 큰형의 소개로 그의 저택을 방문해 직접 그와 근거리에서 대화를 나눌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이때로부터 그의 문학, 즉 그 령혼과의 본격적인 접촉이 시작된것이다. 김학철의 전반 창작중에서 대부분의 작품들이 80년대 이후 복권후에 창작되고 발표되였기에 우리 두 형제는 그의 가장 열성스러운 독자와 문학팬이 되였다. 우리 두 형제는 그의 생전에 그분의 문학세계에 심취되여 그이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으면서 문학수업을 하고 문학창작을 할수 있게 된것을 커다란 행운으로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는 김학철문학의 단순한 독자만이 아니라 그의 문학세계와 문학정신에 대한 우리들의 리해를 광범한 독자들에게 전달하여 공유하는 김학철문학에 대한 평론도 겸하여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 두 형제를 포함한 수많은 김학철의 숭배자들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김학철을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하는 사람들도 우리 문단에는 적지 않았다. 작년에 연변대학에서 우리 두 형제가 주최한 “김학철문학연구토론회”를 열었는데 그 회의에서 김학철의 신격화문제,《연안문예좌담회에서의 연설》에서 “정치표준 제1, 예술표준 제2”라는 이 문학평가의 표준에 대한 찬동 및 김학철에 대한 문제 등으로 소위 문단분위기문제를 제기한이들이 있다. 김학철이 애증(爱憎)이 분명한것처럼 타인들도 그에 대한 애증이 분명하게 갈라진다. 이처럼 생전에만 아니라 사후에까지 그를 존중하고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를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두 형제는 김학철의 생전이나 사후나 모두 시종여일 그의 숭배자이고 문학팬이다. 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변함이 없을것이다. 우리 두 형제의 김학철문학 관련 평론이나 수필, 잡문 같은 글을 묶은 이 책은 우리 두 형제의 개체적생명이 그의 거룩한 령혼과의 만남을 통해 얻어진 소감들을 적은 글들이고 김학철문학과의 심리적인 공명으로서 순 개인적인 열독을 토대로 한 독후감묶음이라고 할수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이 책은 어디까지나 우리 두 형제의 개인적인 열독행위이고 평론행위이다. 그의 문학을 좋아하든지 나빠하든지 모두 각자의 몫일따름이다. 우리 두 형제들은 자신이 그의 문학을 좋아한다고 해서 또 그를 존경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우리 두 형제처럼 생각하라는 뜻은 조금도 없다. 한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해 긍정해도 좋고 부정해도 좋고 가송해도 좋고 반대해도 좋다. 아무튼 그것은 독자들의 개인적인 자유이다. 쉐익스피어를 좋아하지 않았던 똘스또이가 쉐익스피어의 비극을 서푼에도 싸지 않다고 폄하를 하든지 인도(印度)를 주고도 쉐익스피어와 못 바꾼다고 영국인들이 하늘높이 칭찬을 하든지 그것은 다 개인의 자유이다. 중국에는 시무달고(诗无达诂)하는 미학범주가 있다. 시는 해석에 이를수 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심미활동은 강렬한 주관성을 내포하고있는 까닭에 시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규준을 정하기 참으로 어렵기때문이다. 심미활동의 하나의 중요한 분야인 문학감상활동도 강렬한 정감활동을 동반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 두 형제는 김학철에 대해 무한한 숭배와 존경의 마음을 간직하고있기에 그와 그의 문학을 일정한 거리에 놓아두고 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였다. 우리 두 형제는 그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늘 시인처럼 강렬한 감정이입의 심리상태에 처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바이다. 우리 두 형제는 김학철의 문학작품들을 읽을 때 마치도 그가 우리들의 내심세계에 들어와 대화를 나누는것 같았으며 또 우리들도 그의 내심세계에 들어가 그이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것 같았다. 그리하여 하나로 마음이 뒤엉켜져서 령혼의 공명을 일으킬 때가 많았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은 우리 두 형제가 김학철과 만난 생명체험의 기록이라고 할수 있다. 김학철문학 관련 평론집인 이상 이 책은 마땅히 랭철한 리성에 바탕을 둔 학술론문이나 문학비평이 되여야 하겠지만 우리 두 형제의 감정적요소, 주관적요소, 개인적인 요소가 많이 개입되였음을 시인한다. 우리 형제는 김학철의 문학을 우리 문학판도에서의 하나의 “산맥”이라고 비유를 한적 있다. 산을 관조(观照)하는데는 여러가지 각도가 있음을 소동파(苏东波)는 “제서림벽(题西林壁)”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은적 있다. “가로 보면 면면한 산발인데 세로 보면 들쑹날쑹한 고봉들(横看成岭侧成峰)”이여서 보는 각도가 다름에 따라서 산의 경치가 달라지고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다 중중첩첩하지만 높은데서 보는것과 낮은데서 올려다보는것은 판이하다(远近高低各不同)”고 하면서 “려산의 진면목을 잘 모르는것은 바로 몸이 그 산속에 묻혀있기때문(不识庐山真面目,只缘身在此山中)”이라고 설파한적 있다. 김학철과 사상, 감정적으로 가까와져 합일(合一)의 경지에 이르는것은 좋은 점도 있지만 오히려 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보는데 방애가 될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우리는 가급적이면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리론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관조(观照)하려고 애썼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작품연구, 전기비평, 사회력사적 비평방법과 리론을 계속 활용함과 더불어 비교문학의 주제학, 형상학 등 연구방법과 리론 그리고 심리학, 학제연구의 방법과 리론 등을 적극 도입하여 그의 문학을 여러가지 시각과 방법으로 접근하기에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리고 김학철의 문학을 중국 주류문학과의 비교속에서 그리고 조선반도 본토문학과의 비교속에서 쏘련 등 기타 외국문학예술과의 상호 련관속에서 연구함으로써 김학철문학연구에서의 중국조선족문학이라는 단일한 시각을 드넓은 국내, 국제적 시각으로 바꾸어놓으려고 노력을 경주하였다. “문화대혁명” 당시 모택동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모택동저작 학습적극분자를 뽑고 강용대회(讲用大会)를 열면서 전민적인 “모택동저작 학습운동”을 벌린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행위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김학철의 문학작품을 읽고 평론하는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행위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독자 제씨들은 “열독정치학”에서 해탈되여 우리 두 형제가 김학철의 문학작품을 읽고 평론한 글들을 우리들의 개인적인 열독행위 내지는 그것에 토대한 개인적인 비평활동임을 리해해주었으면 감사하게 생각하겠다. 다만 우리 두 형제는 김학철의 정신과 그 정신을 담은 그의 문학은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데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인생의 정도(正道)를 가리켜주는 인생의 지침서 같은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우리 두 형제는 김학철의 정신과 그 정신을 담은 그의 문학은 우리 민족정신의 홰불 같은 존재이고 우리 민족문학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울러 우리 두 형제는 우리 민족의 보다 많은 독자들이 그의 문학과 만나서 령(灵)적인 대화를 나누게 될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인간은 거룩한 령혼과의 만남을 통해서만이 정신적으로 성장할수 있기때문이다. 하느님도 구세주도 없고 신선과 황제와 영웅도 없다고 “국제가”에서 갈파했듯이 근대이후로는 인간만이 이 세상에 남아있게 되였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는 인간들마저 다 소외되여 자기의 본질을 잃어가고있다. 서양의 표현주의소설가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이나 부조리극의 대표작가 외젠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코뿔소”가 시사하다싶이 우리들이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있는 현대와 당대는 신(神)만 죽은것이 아니라 인간들마저도 “벌레”가 아니면 코등에 뿔 달린 “코뿔소” 같은 존재로 이질화(异质化)되여가는 시대이다. 바로 이런 부조리한 실존상황하에서 한평생 가장 사람답게 살아오면서 불의에 용감하게 저항을 해온 가장 인간다운 김학철의 거룩한 령혼과 만나고 또 수시로 대화를 나눌수 있다는것은 이 삭막한 세상에서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 아닐수 없다. 2008년 7월 25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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