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기획기사(내가 바라본 세상)
[들어가면서]
박달족의 이름은 왜 그곳에 나타날까
지명에만 그것도 단 한번 등장하는 한자漢字가 있다. 바다 이름 발渤이다. 그런데 그 유일한 지명인즉 “발해渤海”이다. 발해는 가로세로 해석해도 결국 바다라는 의미가 되겠다. 도대체 무슨 감투 끈인지 몰라 어리둥절 한다.
그러나 우리말이라고 하면 대뜸 경우가 달라진다. 이때 발해는 바다를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유민 대조영大祚榮이 698년 만주(동북)에 세운 나라의 국호이다. 아쉽게도 세상에 잘 알려진 국호와는 달리 이 발해(국)의 의미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당나라 제6대 황제 현종玄宗이 대조영을 “발해 군왕”으로 책립하면서 국호가 자연스럽게 발해(국)로 되었다고 전할 뿐이다.
기실 바다 발해는 발해국뿐만 아니라 또 (고)조선과도 이어지고 있다.
선진先秦 시기의 고서 “산해경山海經”은 중국에서 제일 오랜 지리서地理書인데,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며 그 이름을 조선이라고 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 朝鮮)”라고 (고)조선의 위치를 기록하고 있다. 북해는 발해 남쪽의 내주만萊州灣을 이르는 말이며 광의적인 의미에서는 발해 전체를 가리킨다.
잠깐, 선진 시기 북해 즉 발해의 기슭에는 동방대국인 박고국薄姑國이 있었다. 박고족薄姑族은 조이鳥夷의 한 갈래인데 제나라濟國의 말로는 이와 비슷한 발음의 “박고薄鸪”라고 불린다. 아무튼 “박薄”이 고대 중국말에서 “발渤”, “박博”, “포蒲” 등 글과 통용, 가차假借할 수 있기 때문에 박고족이 살던 고장 부근에는 “발해渤海”, “박흥博興”, “포대蒲臺” 등 많은 옛 지명이 생겨났던 것이다.
이 “박”, “발”의 음은 우리말 고어에서도 역시 하나의 뜻으로 통한다. 박, 발, 부루, 불은 모두 광명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겨레의 건국시조인 단군檀君이라는 칭호는 바로 “박달임금, 밝은 임금”이라는 뜻이 된다. 단檀은 박달을 의미하는 말로 박은 밝과 통하며, 군君은 임금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이름은 선인先人들이 태양을 숭배하고 태양신의 후손으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을 불러온 옛 명칭이었다.
국호 “조선朝鮮” 역시 한자漢字로 풀이했을 때는 “동쪽의 햇빛이 밝은 곳”, “아침 해가 선명한 곳” 등으로 역시 “밝다”는 의미로 된다.
누군가는 “조선”이라는 국호는 한자가 생긴 후 비로소 생긴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런 고로 조선을 기어이 상고시대 신화인물과 연관을 지어 “밝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데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긴 그럴 법 한다. 옛날 열수洌水, 산수汕水, 습수濕水 등 세 개의 강이 합쳐 열수로 되었으며 조선은 이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또 조선의 어원은 기실 숙신肅愼이라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그래서일까, 청나라의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는 숙신의 옛 이름이 주신珠申이며, 주신은 다스리는 지경 안의 땅을 의미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국호 조선이 문헌적으로 맨 처음 등장하는 것은 춘추시기(B.D.770~B.D.476)이다. 제나라의 유명한 정치가 관중管仲의 저서라고 전하는 “관자管子”에서 “발조선發朝鮮”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얼굴을 보인다. “발發”은 순 우리말 고어로 “밝다”라는 뜻이니 “발조선”은 결국 “밝은 조선”으로 해석된다. 그러고 보면 나라 “발+조선”도 바다 “발+해”처럼 같은 의미를 갖는 두 형태소의 합체가 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을 한자가 생긴 후 만든 이름이라고 해도 그때 일부러 “밝은 나라”라는 뜻으로 표기했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이 “발조선”은 제나라 때 더는 “북해의 모퉁이”에 있지 않았다. 벌써 제나라에서 멀리 8천리나 상거한 나라로 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발조선”을 한반도에 갖다 놓고 있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을 지을 수 없다. 관중은 오吳, 월越 등 나라와 곤륜崑崙의 나라도 모두 8천리 밖이라고 이야기하며, 이로부터 미뤄 볼 때 8천리는 단지 상대적으로 먼 거리를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에 앞서 기자箕子 조선은 발해 남쪽이 아닌 북쪽의 난하灤河 유역에 나타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북해 모퉁이에서 살고 있던 박달족은 어느 시점인가 벌써 발해의 다른 쪽으로 자리를 뜨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대륙에 찍었던 박달족의 발자취는 인제 상당부분 더는 복원하기 어렵다. 선인先人들은 웬만해서는 해득하기 어려운 코드를 우리의 유전자에 심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대손손 전하는 박달족의 전설을 한낱 허황한 이야기라고 단언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새는 날아가도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법. 세상의 인연은 모두 흔적을 남긴다. 한때 북해 기슭에 삶의 터를 잡고 있었던 박달족은 바다와 강, 산, 벌에 도대체 무슨 기억을 묻고 있을까…
......
.....
(중략).
발해의 서북쪽에 “천서天書”가 있는 부산釜山이 있고 발해 서남쪽에 옛 유적이 있는 장백산長白山이 있다.
발해, 바로 그곳에는 분명히 하나의 진실한 천년의 이야기가 있었다…
전체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