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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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 제일 많은 나라
2007년 02월 26일 19시 19분  조회:3394  추천:143  작성자: 김호림
 

  어린 학생들을 싣고 서울의 밤거리를 달리는 버스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차체에 '00학원'이라고 쓰인 것으로 보아 학원생들의 셔틀버스인 듯싶었는데, 귀가 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새벽이었던 것입니다.

  시골은 모르겠지만 도시에 살면서 학원 문턱을 밟아 보지 않은 학생은 제가 보기엔 단 한명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영어학원은 기본이고, 보습학원(학교에서 공부하는 내용을 복습, 예습시키는 학원), 예체능학원(피아노, 발레, 미술, 수영 등을 가르치는 학원)까지 아이들은 하루에도 여러 학원을 전전한다고 합니다.

  보습학원 같은 경우 주 5일, 날마다 수업시간이 1시간 반 내지 2시간 정도이니 말이 학원이지 학교와 다름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학교를 두세 개씩 다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학교 교육보다 학교 밖 교육의 비중이 큰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기형적인 교육 현실은 물론 널리 알려진 한국인들의 교육열 때문입니다.

  내 친구 하나는 딸애를 서울에 데려다 초등학교에 넣었는데, 반년 만에 중국으로 돌려보내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르칠 과목을 학원에서 미리 배우다 보니 정작 학교에서는 그리 열성적으로 가르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초등학교는 중국에서 온 학생에게는 빈 껍데기였던 것입니다. 애들이 학교에서 배울 걸 학원에서 모두 배웠다니 학교에서는 도대체 뭘 하겠어요. 여자애들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마냥 꽃 그리기, 수놓기 같은 일과가 전부였습니다. 부부가 모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네는 그렇다고 아이를 학원에 보낼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빈약한 주머니 사정으로는 아이를 하나도 아닌 여러 가지 학원에 보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학원 한 군데 다니는 비용이 한달에 최소 7만~8만원, 또 교재비는 별도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한국에서 학생 1인당 연간 사교육비는 초등학생이 1백35만원, 중학생은 1백53만원, 고등학생일 경우 1백76만원, 대학생은 2백64만원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인들이 사교육에 들인 비용은 한화로 26조원, 국가 교육예산 21조원을 훨씬 뛰어넘는 액수입니다.

  한국인들은 자녀교육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옛날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라도 자녀를 공부시키던 미풍양속이 그대로 이어진 것일까요. 만만찮은 교육비용이지만 기꺼이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누군가가 한달에 과외비로만 수백만원을 지출한다고 자랑처럼 말하는 것을 잡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약과라고 하겠습니다. 최근 신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대개 영어자모 'R'와 'L'의 발음을 구분하기 어려워합니다. 어릴 때부터 익혀 온 한국어 발음에 혀가 굳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이것이 선천적으로 혀가 짧은 탓이라고 우기면서 코흘리개 자식들의 혀 수술까지 단행하고 있다니 기겁할 노릇입니다.

  그것을 사랑이라 해야 할까요? 아니면 집착이나 무지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영어를 잘하는 한국사람들을 만나면 그의 혀가 언제 입밖으로 나오나 말똥말똥 살피는 못된 버릇이 생겼습니다. 저 사람도 어릴 때 붉은 혀에 얼음장처럼 흰 칼을 박아 보았던 것은 아닐까 해서요.

  이런 일들은 뜻 있는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지만, 과열된 교육열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부모들의 그런 열띤 기대 속에서 대학 입시를 앞둔 아이들의 노력은 말 그대로 아예 뼈를 깎는 처절함입니다. 어릴 때부터 너나없이 모두 그렇게 길들여진 터라 대학입시 때에는 더군다나 기를 쓰고 뛰어야겠죠.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뒤지면 좋은 대학은 물 건너 간 것이 되겠으니 말이죠.

  입시생들을 위한 보습학원의 경우, 밤 12시 심지어 새벽 1시에 마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이른 아침이면 또 감기는 눈을 비비며 등교하는 아이들이 정말 안쓰럽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들은 여린 몸으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웬만한 어려움에는 눈도 깜짝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 제일로 꼽히는 서울대 등에는 모두 그런 뜀박질 끝에 입학한다고 합니다.

  S대에 다니는 중국 유학생 김영화씨는 OO연구팀 팀장으로 여러 명의 석사, 박사연구원을 이끌고 있습니다. 실험실에서의 악착같음과 집요함으로 소문난 김영화씨도 한국 후배들에게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고 합니다.

  "한국 학생들은 일단 실험을 했다 하면 밤을 여러 날 지새워도 끄떡없어요. 진짜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니까요"

  하루 이틀도 아닌 며칠을 의지력과 집중력으로 조금의 실수도 없이 버텨야 하는 무수한 실험들이었습니다. 체력의 극한을 초월하는, 그런 어려운 순간들을 일상처럼 스쳐 보내는 후배들이 한순간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비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무한경쟁의 달리기 코스를 수없이 뛰었던 한국 학생들이라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일류대 진학은 아이들이나 부모들 모두 자나깨나 바라는 것입니다. 일류 대학이 일류 직장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일류 운명을 만든다는,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좁다란 그 문에 들어서는 것은 사투에 가까운 노력의 대가가 없이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대학 진학을 꿈꾸는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그곳에 몰려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옛날과 달라 너나없이 공부에만 몰두하다 보니 대부분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에 1점이나 2점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상위권 대학이냐 하위권 대학이냐 하는 승부가 판가름되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입니다. 학원에 다니면서 모의고사 같은 실전경험을 두둑이 쌓아 두는 게 좋은 결실을 맺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벽까지 쏟아지는 잠을 쫓으면서 쳇바퀴 돌 듯 집과 학교, 학원을 전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운명들인 것입니다.

  무거운 멍에를 쓰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공부할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입시교육에 매달린 학교 역시 그들에게 별도의 공부장소를 마련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도서관이 있는 중학교는 겨우 1%, 도서실이 있는 중학교는  60% 안팎이라고 하는 집계가 있습니다. 본의든 타의든 교과서 외의 독서는 아이들과 멀리 떨어진 별나라 얘기가 되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진국인 일본의 경우 거의 모든 중학교가 나름대로 도서실을 갖추고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학교들에서 마냥 백이면 백, 만이면 만으로 똑같은 '붕어빵'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대학교라는 허기만 채우면 되니까, 별미가 담긴 '빵'을 만들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몰라요. 확실히 창의력과 사고력은 아주 떨어지거든요." 김영화씨는 한국 학생들이 같은 세대의 중국 학생들과 비교할 수 않을 정도로 뒤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디어가 속출해야 하고, 나름대로의 분석력을 갖추어야 하는 실험대 앞에서 그런 격차는 금세 눈에 뜨인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 교육계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시 과다경쟁이 부른 학생들의 창의력 부족에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 교육계에 마침내 '적신호'가 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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