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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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경찰군단, 그 속에 있는 조선족들
2007년 03월 29일 14시 54분  조회:3541  추천:134  작성자: 김호림

  베이징의 경찰군단, 그 속에 있는 조선족들
 
                                                               김호림  


박성국(36세, 남)씨는 나젊은 형사이지만 마약수사에서는 벌써 10년이라는 오랜 경력을 자랑한다. 개인표창, 개인 3등공, 집체 1등공 등 공로메달만 해도 10여개 된다. 베이징시공안국 마약수사실 정찰대  대장이라는 직위가 바로 그런 화려한 경력을 말해주는 듯 하다.

  그는 마약사범들에게는 철면 사나이로 통한다. 추호의 인정사정도 없는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남몰래 애써 숨기는 나약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조선족 마약사범들을 만날 때가 그러했다.

  “같은 민족이라 동정심이 생기는걸 어쩔수 없었어요. 참"

  박성국씨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때의 착잡한 심경을 조금이나마 읽을수 있을 것 같았다.

  직업 관계로 박성국씨는 자타를 불문하고 조선족 마약사범은 물론이요, 한국 마약사범을 체포하는 현장에 자주 등장한다. 언제인가 중국 언론에 드물게 보도되었던 북한의 마약사범도 그가 직접 체포했다고 한다.

  진짜 한순간이나마 마음이 심란해지는 경우였다. 더군다나 여자 마약사범을 만나 그가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애원을 할 때는 지어 괴롭기까지 했다.

  “시초에는 느낌이 이상했는데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죄는 지은대로 가야 하잖아요."

  베테랑급 형사인 그에게 인제 마약사범은 단지 마약사범일 따름이다.

  마약범죄는 거개 조직범죄이다. 마약사범들은 일단 잡히면 열에 아홉은 사형인줄 알기 때문에 극단적인 사례를 낳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박성국씨는 늘 죽음의 고비를 제 집처럼 넘나들어야 했다. 언제인가 그는 마약사범으로 가장하고 혈혈단신으로 마약거래 현장에 들어간적도 있다. 그의 말을 빈다면 허리에 머리를 차고 들어간 셈이다. 마약사범을 체포할 때 자칫 총에 맞을번 한적도 있단다.

  솔직히 키가 1미터 67센티미터인 박성국씨는 형사치곤 "난쟁이" 모자를 벗기 힘들다. 그래서 그가 형사라고 하면 머리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탓일가? 사복차림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주객이 전도되어 엉뚱한 단속을 받은적 있다. 현지 보안인원은 그가 경찰인지 뭔지 금방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

  그러고 보면 억울해도 한창 억울한 셈이었다. 박성국씨는 경찰과 친지관계라고 할수 있는 체육학교의 출신이기 때문이다. 유달리 반응이 빨랐던 그는 복싱을 배운지 1년 7개월만에 54킬로그램급에서 성급 1위를 차지하며 성 대표팀과 국가 대표팀의 평가전에서 단연 상대방을 제압한다. 그리하여 국가 대표팀에 발탁되고 이어 국가대표팀에서 복싱 감독의 추천을 받아 베이징체육대학에 입학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는다. 그는 대학기간 공안국에서 한국계 미국인 마약사범을 나포한후 중국 경찰측의 통역을 서면서 베이징시공안국의 "포획"대상 명단에 편입된다. 결국 복싱, 언어 등 남다른 특기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그에게 경찰복을 입게 했다.

  박성국씨는 마약수사계 형사로 되는 순간 마약과 일대 선전포고를 했다고 자부한다. 인생의 좌표계를 마약사범과의 전쟁에로 쭉 그었던 것이다.

  현 세계에서 금전의 유혹 때문에 다국적 마약사범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중국이 직면한 주요한 마약 진원지에는 동남아세아의 "금삼각"과 아프카니스탄이 망라된다. 이 두 진원지는 베이징에도 마찬가지로 피해가 막심하다. 이밖에 동북방향으로부터 베이징에 밀반입되는 마약도 급격히 성장, 지난 한해에만도 12% 늘어났다는 베이징시공안국 관계자의 소개이다.

  중국에서 마약복용자는 100여만명이라는 방대한 군체를 갖고 있다. 지난 해 중국에서 수사해낸 마약범죄안건은 4.5만건, 체포한 마약사범은 5.8만명에 달했다. 마약의 소비시장을 위축하는 일환으로 지난해 중국은 연 29.8만명에게 강제적으로 마약을 끊게 했으며, 연 7만명에게 노동교양을 통해 강제적으로 마약을 끊게 했다.

  현재 성급 이상 급별의 공안국에는 모두 강제적으로 마약을 끊게 하는 마약복용자 강제치료소(戒毒所)가 있다. 베이징시공안국 마약복용자 강제치료소 역시 이런 차원의 강제치료소이다. 이 강제치료소는 지난 6월 새 청사에 이전했다. 깊은 산속에 있던 원래의 청사에 비해 새 강제치료소는 교통이 더 편리하게 되었으며 환경, 관리제도 등 측면에서 국내 선진수준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1천개의 침대가 있는데, 건축물, 장소, 시설에서 모두 국가 1류의 마약복용자 강제치료소의 기준에 이르렀다.

  이성문(35세, 남자)씨는 9년전에 베이징중의약대학을 졸업한후 베이징시공안국 마약복용자 강제치료소에서 임상의료 의사로 있는 경관이다. 날마다 동네사람처럼 마약복용자를 접촉하는게 바로 그의 일상이다. 그는 마약복용자에 대한 인상을 단 한마디로 일축했다.

  “의기소침하고 또 옷차림이 지저분한게 바로 마약복용자의 자화상입니다."

  그들을 보면 저도 몰래 불쌍하고 마음이 아파난다고 한다. 그들이 하필이면 만인이 저주하는 길을 선택했는가 싶다. 그럴수록 직업을 떠나 마음으로부터 마약극복에 대한 책임감이 짙어진다.

  “…금단현상을 해제할 수 있는 약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여가를 타서 고대 의학서적을 찾아 마약극복 조제약의 비밀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소박한 꿈이라고 한다.

  마약치료는 생리적인 마약 탈리, 심리적인 금단현상의 해제, 사회로의 귀환 이 3개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강제적인 치료과정은 반년동안 지속된다. 이중 2-3주의 시간을 들여 마약복용자에게 마약 탈리, 생리적인 금단현상 해제를 하는 외 기타 시간은 기본상 법제, 마약의 피해 등 측면의 교육 그리고 "심리적인 금단현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미한 노동을 시킨다고 한다. 강제치료소는 또 재배, 양식 내용의 노동 장소를 만들어 일부 마약복용자들에게 강제치료소에서 나간후 생계를 이을 재간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에는 아직 마약투약이 범죄인가에 대해 왈가불가 판정이 나있지 않다. 만일 마약투약 행위를 범죄라고 계선을 확정한다면 관련되는 측면은 아주 넓다. 중국에서 잠성(潛性)의 마약복용자까지 포함하면 마약복용자는 1천만명에 이른다는 설법이 지배적이다.

  이성문씨는 마약금지는 사회적인 방대한 공정이라고 역점을 두어 말한다.

  “마약밀매를 엄격히 타격해야 하거니와 여러 가지 마약극복 형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약 피해에 대한 홍보를 늘리는 등 해야 할일은 한두 마디로 요약하기 힘들어요."

 “마약”은 이상한 연줄로 되어 이성문씨와 박성국씨를 굴비처럼 한줄에 엮어놓았다. 사실 그들은 "마약"과 관련 없이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군 한다. 같은 경찰복을 입은 한 피줄의 동료라는 의미 때문이다. "마약"처럼 끈끈한 정분은 속일수 없는 모양이다. 이처럼 자주 만나는 조선족 경찰은 그들 둘뿐이 아니다.

 “여럿씩 만나는 경우는 많아요. 그러나 한꺼번에 만나기는 진짜 힘들구요."

  올해 박성국씨의 주선으로 베이징시 조선족경찰 13명은 어렵사리 만남의 장을 가졌다고 한다. 그들은 베이징시공안국 여러 부처에 모래알처럼 널려 있고, 또 주거지도 베이징의 산지사방에 흩어져 있다보니 전부 만나려면 아닌 게 아니라 바위에 구멍을 뚫는 노력을 해야 한다.

  베이징에서 조선족경찰은 일찍 지난 세기 80년대에 나타났었다. 지금 베이징시공안국에는 정치부, 외사과, 치안처, 파출소 등 여러 부문에 조선족이 약 20명 된다. 박성국씨나 이성문씨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직접 공안국에 배치받은 사람이 대부분이며, 일부는 군인에서 제대한후 직접 공안국에 요원으로 배치된 사람이다. 지금 중국에서 제1류의 경찰을 육성하는 중국공안대학에도 "후보 경찰"인 조선족 학생은 여럿 된다.

  와중에서 일부 경찰은 조선족이라는 이름과 관계없이 직업적인 관계로 신분 노출을 무척 꺼린다. 김철(42세, 가명)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제대한후 공안국에서 소임을 맡은 그는 근무 수칙상 그저 공안국 모 부문의 경찰로 통하는 사람이다. 또 일부 사람은 시야비야 하는 구설수에 오르기 싫어 베이징의 조선족무대에 아예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다.

  “모르는게 오히려 편안하죠. 뒷말도 없구요."

  그러다니 워낙 가물에 씨 나들 듯 드문 조선족경찰은 베이징에서 더구나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외계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존재라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둘린 화려한 빛 무늬에 색이 바래지는건 아니다.

  그들과 인터뷰를 할때 누군가 화제로 담았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천안문광장에서 관객이 하나 깜짝 놀라 가로되, "베이징에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경찰이라니? 이게 도대체 웬 일이냐?" 진짜 코미디 같은 장면이다. 
                                         

2006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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